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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의 말말말

등록일 2023-05-17 20:20 게재일 2023-05-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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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손자는 종종 재미있는 어휘를 제 맘대로 사용하여 날 웃게 한다. 작년 어느 날 아침 유치원 등원 중이었다. 챙겨야 할 것을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가는 길에 할머니가 깜빡 잊어 미안하다고 했더니 손자가 묻는다. 왜 깜빡깜빡해요? 나이가 많아서 그렇다고 했다. 몇 살이냐고 또 묻는다. 67살이라고 말하며 리얼미러로 뒷자리의 손자를 살폈다. 손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와 나는 7살인데 할머니 많이 컸네.” 파안대소했다. 그래그래 할머니 많이 컸지? 웃고 또 웃었다. 손자는 나의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누가 더 크냐고 묻는다. 그들은 왜 키를 묻느냐고 의아해한다. 키를 묻는 게 아니고 누가 더 나이가 많은가를 묻는 표현이라고 하면 재밌다고 껄껄 웃는다. 그 후 친구들과 만나면 어디 많이 컸나 보자라며 농을 하곤 한다.

2년전 설연휴였다. 코로나19 중이어서 설날은 쇠는 둥 마는 둥했다. 설 다음날 아들네랑 손주들을 데리고 자연휴양림으로 놀러갔다. 눈발이 날렸고, 눈 구경 힘든 대구 아이들인지라 그것만으로도 신나했다. 얇게 깔린 눈을 긁어모아 자그마한 눈사람을 만들며 재미있어했다.

이튿날 가까운 절에 올라갔다. 하얗게 눈 쌓인 작은 절은 참 예뻤다. 가파른 계단을 뛰어올라 절문 앞에 멈추더니 손주들은 두 손을 모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자동차 사게 해주세요, 난 커다란 인형 사게 해주세요. 애들의 소리를 들으신 것인지 주지스님께서 나오셔서 애들 손을 잡고 종무실로 이끄셨다. 스님께 세배하면 세뱃돈 줄게 그러면 자동차도 인형도 살 수 있지. 스님께는 세 번 절하는 거라고 하자 삼배를 공손하게도 했다. 스님은 빳빳한 세뱃돈을 많이도 주셨다. 절 안마당에는 눈이 꽤 쌓여있었다. 눈밭에 아예 누워 뒹굴며 정신없이 노느라 땀에 눈에 온몸이 푹 젖었다. 그렇게 실컷 놀고 내려와 점심을 먹는 식당에서였다. 손자가 제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 느닷없는 질문에 며느리는 너희 낳았을 적에라고 대답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놀러갔을 때라며 다시 묻는다. 며느리는 제주도 갔을 때라고 대답했다. 내가 손자에게 되물었다. 너는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 손자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냉큼 대답했다. “지금, 지금이 제일 행복해.”

손자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어버이날 풍습이 달라졌다. 유치원 때는 카드나 종이꽃을 만들어 주더니 이젠 우편으로 편지를 보낸다. 수신인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보내는 주소는 학교에서 일괄 쓴 것 같고, 받는 주소는 제 엄마가 쓴 듯했다. 보내는 이의 이름과 받는 이의 이름은 손자가 직접 썼다. 빨간 새(닭인가 했더니 앵무새라고 했다)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 종이에 쓴 사연은 짧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의집에서 일을 같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따랑해요. 이건 올림. 우리 부부는 편지를 사진으로 찍고, 액자에 넣어야지 부산 떨며 감동해했다. 이튿날 아들네 집에 갔더니 제 부모에게 보낸 편지 사연은 더욱 감동적이었다. “엄마 아빠 평생 사랑해요. 평생 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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