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 들어오는 학생들이 모두 놀란다. 문과 창문을 제외하고 삼면을 꽉 채워 천장까지 쌓인 책들을 보고는 꼭 한마디씩 한다. 교수님은 이 책들 다 읽으셨어요? 워낙 자주 받는 질문인지라 대답은 한결같다. “당연히 다 읽은 것 아니다. 수도 없이 여러 번 읽은 책도 있고, 단 한 줄만 읽은 책도 있고 안 읽은 책도 많다. 논문 쓰기 위해 필요한 책은 반드시 사야 해서 갖고 있는 책도 많고 앞으로 읽을 필요가 있어서 사 둔 책도 있다. 저 위 자료집은 대부분 안 읽은 것들이지.”
게다가 해마다 2~4회까지 발행되는 몇 권의 학술지며 정기간행물들이 25년이나 보태어졌으니 오죽하랴. 그래도 책에 둘러싸여 지낸 시간은 행복했었다. 은퇴를 몇 달 앞두고 책들을 정리했다. 논문 쓸 일 없으니 학술지와 정기간행물을 다 버렸다. 최근에는 학술지가 PDF로도 제공되기도 때문에 더 이상 필요없기도 했다. 그렇게 많이 버렸음에도 책은 1톤 트럭 두 대를 가득 채웠다. 어딘가 둘 곳을 찾아야만 했다. 소중한 나의 책들은 의성의 작은 마을도서관에 임시보관해 두기로 했다.
이미 집엔 두 방도 넘쳐 베란다까지 점령한 책들이 있었다. 대학도서관에 8천 권의 책을 기증하고 남은 책들이었다. 2년 전 남편의 연구실을 비운 책들은 따로 서재를 마련할 정도로 우리집엔 책이 많고 많았기 때문에 내 책까지 비집고 들어올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책을 다 함께 모을 수 있는 공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계획을 이룰 수 있을 때까지 난 더 이상의 책은 사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읽고 싶은 책, 예전 종이신문을 볼 때 주말섹션에 소개되는 신간을 사던 버릇은 여전해서 인터넷으로 종종 소개되는 책의 유혹들이 있었다. 사지 않고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공공도서관. 집 가까운 시립도서관을 검색해서 찾아가 바로 발급받은 게 책이음카드였다. 내가 사는 수성구 내에 10곳의 도서관이 있는데 이 모두를 이용할 수 있고, 전국 공공도서관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카드다. 1인당 도서관별로 10권, 최대 30권을 15일간, 나같은 65세 이상 노인은 30일을 대여할 수 있는 고마운 제도다. 카드 만든 김에 도서관 서가에 꽂힌 책들을 둘러보고,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세 권 빌렸다. 빌려 온 책을 열심히 읽다 보면 반납 기일을 통보하는 문자가 온다. 날짜 어김없이 반납하게 되는 친절한 정보다.
지난해 가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자 평소 친하게 지내던 교수와 독일의 외사촌과 그의 작품 얘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몰랐던 작가와 수상작들이었다. 시립도서관에 검색해봤더니 어떤 책은 있고 어떤 건 없다. 있는 책은 대출 중이었다. 대출대기자 명단에 올렸더니 며칠 뒤에 대출 가능하다는 문자가 왔다. 어디 그 뿐이랴…. 도서관에 없는 책은 희망도서로 신청해 두면 며칠 뒤 책이 확보되었으니 대출 가능하다는 문자가 또 온다. 친절하고 신속하고 멋진 정보화의 시대를 고마워하며 노후의 즐거운 독서생활을 하고 있다. 책이음카드를 모바일로 등록해 두면 더 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