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심리학자가 시사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해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여성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 발언 때문에 각종 매체가 시끄럽다. 아마 `최초의 여성 대통령론`을 펼치는 박 후보의 정체성에 브레이크를 걸고 싶었나 보다. 정치적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된다. 하지만 정치 문제를 벗어나, 언제 어디서나 내가 여성이라는 것을 한 때도 잊은 적 없는 나 같은 시청자는 금세 흥분지수가 높아질 만하다. 황상민 교수의 논지는 대개 이렇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생식기가 아니라 역할의 차이이다. 여성의 대표적 역할은 결혼하고 애 낳고 그 애를 키우는 것이다. 박 후보가 결혼을 했나, 애를 낳았나? 학교 다닐 때는 여성들이 남성보다 대우받는데, 결혼하고부터 여성들이 차별 받는다. 따라서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여성의 차별을 이야기하기가 사실 힘들다.이 말 속엔 모름지기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시집살이도 해보고, 남편 보필도 제대로 해봐야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나아가 모성을 잃어서도 안 되며, 온갖 세파에도 끄덕하지 않은 불굴의 의지를 경험한 경우라야 진정한 여성이라 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마초적이고 폭력적인 여성관을 어떻게 저리 쉽게 방송에서 드러내고 떠들어댈 수 있을까.세상의 모든 여성은 다만 여성일 뿐이다. 결혼하고, 애 낳고, 단맛 쓴맛을 경험해봐야 꼭 여성인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한정된 의미의 여성은 전 여성의 반에도 못 미친다. 결혼 안 한 여자, 아이 안 낳은 여자, 세파에 시달려보지 않은 여자도 부인할 수 없는 여성이다. 모성이 없어도 여성이요, 심지어 여자라고 자기 정체성을 확신하는 단순 생물학적 남성도 여성이라 할 수 있다.여성의 범주는 마초적 성향의 남자 잣대에 달려 있는 게 아니다. 여성이면서도 남성적 시각으로 같은 여성을 바라보는 치들과 더불어 내가 가장 혐오하는 부류가 저런 시각의 보유자들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2-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