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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헵번의 옆모습

요즘 젊은 연예인들의 얼굴은 똑 같다. 갸름한 달걀형 라인에 이마는 봉긋하고 콧날은 오뚝하며 눈은 앞트임을 곁들인 쌍꺼풀이 대세이다. 눈썰미 젬병인 나 같은 이는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아 갑갑하기만 하다. 아이돌의 노래나 춤을 보면서 활력을 얻고 싶은데,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안 되니 재미가 반감 될 수밖에. 개인적으로 나는 달걀형 얼굴에 대한 환상이 있다. 이목구비가 아무리 뚜렷해도 턱 선이 곱지 않으면 내 기준의 미인 목록에서 탈락시키곤 했다. 이마 좁고, 광대뼈 나오고, 턱 선이 발달한, 전형적인 몽골리안 계통의 내 얼굴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에 그런 생각이 자리했는지도 모른다. 한데 무개성한 브이자 얼굴이 유령처럼 뒤덮는 세상을 보면서 조금 달라졌다.인물사진의 대가 유섭 카쉬(Yousuf Karsh)가 찍은 오드리 헵번의 옆모습을 오래 들여다 본 적이 있다. 흠잡을 수 없는 오드리 헵번이지만 예의 내 기준에 의하면 그녀가 미인일 리 없었다. 사각 턱에 가까운 얼굴형 때문이었다. 그녀가 현재 우리 연예계에 진출했다면 턱 선 교정은 피할 수 없는 강요가 되었을 것이다. 한데 들여다볼수록 무한 애정이 생긴다. 발랄한 듯 기품 서린 오드리 헵번의 숨은 `강단`이 그녀의 턱 선에서 보이는 것이다. 진주 품은 조가비처럼 어금니 꽉 깨문 외유내강이 그녀의 턱 선에서 읽히는 것이다.배우로 이룬 꿈을 유니세프 친선대사라는 사회적 가치로 환원한 그 행보가 각진 턱에서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명성을 개인적 목표보다는 사회적 이타심과 결합하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다. 누군가의 건전한 결정이 아무리 즉흥적이라도 해도 삶에 대한 깊은 사유가 전제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헵번식 사유의 출처를 나로서는 그녀의 강인한 턱 선에서 찾고 있었던 것. 그녀가 세상을 뜬 지 이십 년이나 지났지만 우아하고 결단력 있는 그녀의 옆모습은 누군가의 내면을 자극하는 강단 있는 매개물이 되어 줄 것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3-02-27

코트의 진실

델포이 아폴론신전 진실의 벽엔 탈레스 혹은 킬론이 말했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경구가 새겨져 있다. 이 금언이 대중성을 확보한데는 자신의 철학 근간으로 이 말을 애용한 소크라테스의 공이 크다. 어쨌든 탈레스에 의하면 남에게 충고하는 일은 쉽고, 자신을 아는 것이야말로 가장 힘들다고 했다. 프로이트 역시 자신을 아는 것이 어렵다고 보았다. 나보다 타인이 나를 잘 알고 있으며, 역으로 이웃보다 내가 이웃을 잘 아는 수가 있다고 했다. 대체로 인간은 나 자신보다 타인을 분석하는데 탁월한데 이는 반쪽짜리 분석일 뿐이라고 보았다. 나를 포함한 분석이어야 제대로 된 정신분석이 되기 때문이다.우리가 얼마나 자신을 모르는가는 프로이트 자신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여름휴가 때 한 청년을 알게 된 프로이트는 그와 친해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청년은 곧 산책 가자는 프로이트의 제안을 거절했고, 아내가 오기로 했으니 저녁마저 먼저 먹으라며 피했다. 다음날 부부의 저녁 식사에 초대되었을 때 프로이트는 들뜬 맘으로 청년의 식탁으로 갔다. 부부 자리 맞은편에 의자 하나가 마련되었는데, 그곳엔 두툼한 코트가 걸쳐 있었다.분석의 대가인 프로이트의 결론은 이러했다. `나는 이제 당신이 필요 없고, 여긴 당신 자리가 없습니다.` 프로이트의 이 사례는 `정당한 오해`에 대한 진실을 보여준다. 오해를 살 만한 행동에 그 어떤 의도가 없었음을 항변해도 당한 쪽에서는 상대방의 속을 다 읽어낼 수 있다. 이 경우 진실을 밝히기라도 한다면 청년은 모욕을 느끼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 프로이트는 이를 `내적 부정직함`이라고 불렀다.불편한 진실을 들춰내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프로이트. 하지만 타인에 앞서 나를 알려면 이 정도의 따끔거림 정도는 감내해야 한다. 자신이 걸쳐 놓은 코트 때문에 상대를 아프게 하는 나는 상대가 눈치 채기 전, 가만 의자 쪽으로 걸어가야 한다. 코트 걷은 그 자리엔 상처 받은 프로이트의 엉덩이를 데울 방석을 깔 일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3-02-26

용서의 시효

누구나 실수한다. 실수나 상처가 당사자들에게 큰 아픔이긴 해도 그 자체가 문제 되지는 않는다. 언제나 그 후가 더 중요하다. 사람이란 게 간사해서 받은 상처는 잦고 깊고, 준 상처는 드물고 얕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용서는 쉽게 받고 싶고, 용서 하기는 어려운 이유이다. 내가 준 상처 중 가장 잊히지 않는 건 건 얌전한 모범생을 순간의 판단 잘못으로 자전거 도둑으로 몬 경우였다. 그 아이와 부모의 눈빛이 나를 용서하지 않았기에 그건 아직 미완의 사죄로 남아 있다. 그들의 분노와 응어리가 현재진행형이라면 당연히 내 사죄 또한 그러해야만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용서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지만 그 역시 내가 판단할 것은 못 된다.영화 `밀양`에서는 신이 용서했다는 이유로 가해자는 피해자를 또 한 번 수렁으로 빠뜨리고, `내가 살인범이다`에서는 공소시효가 면죄했다는 이유로 가해자는 피해자와 관계자를 농락한다. 출옥한 범인이 `봐라, 법과 대중이 날 이렇게 용서하는데, 당사자인 너희들만 용서하지 못하고 있잖아.` 라는 뻔뻔함으로 용서의 칼자루마저 자신이 가지려 한다.용서의 시효는 가해자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용서의 아버지는 시간이다. 정말로 타인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생각하면 피해자가 필요한 시간만큼 기다려주는 게 양심 있는 자의 태도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잘못을 해놓고도 용서의 시효마저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경우도 있다. 자숙 기간이나 용서의 시효는 한 사흘쯤이면 충분한 것일까. 용서의 기간이 단축되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급기야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조차 몰라 반문하기까지 한다.법적용서는 공소시효가 정하고, 하늘나라에서는 신이 용서한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엔 시간이 용서한다. 그 시간을 정하는 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피해자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스스로를 성찰할 일이다. 그것마저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 다른 피해자인척 하는 건 상처 입은 자에게 대한 예의가 아니다./김살로메(소설가)

2013-02-25

왼손잡이 로망

중학교 2학년 때 내 짝지는 왼손잡이였다. 상냥하고 눈치가 빨라 선생님들께 귀여움을 받았다. 그녀가 선생님들께 관심을 받은 또 다른 이유는 왼손으로 글씨를 쓰기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왼손잡이에 대한 시선이 썩 호의적인 시절이 아니었다. 왼손잡이라도 글씨만은 대부분 오른손으로 썼기에 짝지의 상황은 희소가치가 있었다. 공책을 오른쪽으로 90도 각도로 돌려놓고, 짝지는 옛사람들처럼 위에서 아래로 글씨를 썼다. 오른손잡이처럼 노트를 놓고 쓰면 왼손바닥에 연필 자국이 새까맣게 묻을 뿐만 아니라 노트 글씨에도 얼룩이 지기 때문이었다. 선생님들은 지휘봉으로 짝지의 꺾인 노트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얌마, 오른손으로 바꿔 써!`하곤 한마디씩 하곤 했다. 훈계나 시비를 위한 것이 아닌 애정과 관심을 향한 것이었다. 짝지는 그 상황을 즐길 만큼 마음이 여유가 있었고,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질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사춘기가 오던 시절이었기에 남자선생님들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한데 남선생님들의 관심은 왼손으로 글씨 쓰는 짝지에게만 가 있었다. 나도 짝지처럼 되고 싶었다. 짝지 따라 노트를 비스듬히 놓은 채 왼손 글씨를 써보기까지 했다. 왼손 글 솜씨는 늘지 않았고, 여전히 남선생님들의 관심은 짝지에게 가 있었다.왼손잡이가 못 된 나는 아직도 왼손잡이에 대한 로망이 남아 있다. 해서 아들과 딸이 왼손잡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은근히 서운하기까지 했다. 한때의 경험 한 자락이 평생 자기 인생관에 녹아날 수도 있다는 게 신기하다. 지금도 새로운 왼손잡이를 만나면 `글씨도 왼손으로 써요?` 라고 묻는 버릇이 있다. 상대의 대답이 아니라고 하면 괜히 실망하게 된다.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녀가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건 예쁘고 상냥한데다 영민했기 때문이지 결코 왼손잡이어서만이 아니다. 그래도 왼손잡이에 대한 긍정적인 로망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맙기만 하다./김살로메(소설가)

2013-02-22

인사

술을 못 마시더라도 술잔을 들어야 할 경우는 있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이 있는데 그분의 작은 행동 때문에 더 좋아진 적이 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옆자리에 앉게 된 그분은 건배가 있을 때마다 내가 든 술잔 높이보다 낮은 높이로 자신의 술잔을 부딪는 것이었다. 우리사회처럼 은연 중 위계질서가 몸에 밴 곳도 없는데 연배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그분이 내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처음 한두 번은 재미로 그러나 싶었는데, 가만 보니 몸에 밴 자연스런 제스처였다. 조그만 데서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나는 세 번째 잔부터는 무조건 그분보다 낮게 들었다. 그분이 눈치 채지 않게 속으론 끙끙댔다. 한 편의 코미디 같은 그 상황이 싫지는 않았다.스위스 화가 파울 클레의 동판화 중에 `인사`라는 작품이 있다. 키가 크고 군살이라곤 없는 두 남자가 서로 낮게 인사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고개를 숙인다. 허리를 있는 힘껏 앞으로 꺾어 바닥과 친구가 될 정도다. 하지만 얼굴은 서로의 옆모습을 향해 치켜들고 있다. 서로 계급이 낮다고 생각해, 한껏 고개를 숙이긴 하는데 상대를 의식하고 눈치를 보느라 차마 얼굴까지는 숙이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까지 낮아진 게 아니라 몸만 낮아지는 인사의 겉치레에 대한 풍자로 읽힌다.관계란 상대적이다. 상대 쪽에서 `적의 없음, 배려할 것임, 군림할 의향 없음, 낮아질 것임, 친구가 되고 싶음` 이런 신호를 보내오면 내 쪽에서도 당연히 더한 우호와 존경으로 상대를 대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지나치면 클레의 그림처럼 형식적인 것이 되지만 맘이 원하는 대로의 배려는 무척 자연스럽다.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싶다면 눈높이는 상대와 맞추고 술잔은 낮게 들어보자. 단, 고개를 지나치게 숙일 필요는 없다. 비굴을 감춘 게 들키거나, 과장된 마음이 드러나면 명징하던 술잔소리도, 맞춤한 눈높이도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리니. 술잔 낮게 들고, 눈높이를 상대에 맞추러 오는 세상의 모든 친구들과 건배를!/김살로메(소설가)

2013-02-21

돌아오지 않을 것들

일반적으로 여행의 끝은 `돌아옴`에 있다. 그 덕에 우리는 당장이라도 여장을 꾸려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 돌아 올 희망의 기미는 여행을 여행답게 하는 온전한 힘이다. 하지만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이라면? 맥없이 너털거리는 발자국이요, 오래 쌓인 무덤 속 먼지다. 그런 여행이라면 행선지도 궁금하지 않고, 행장 꾸리는 손끝은커녕 콧노래도 곁에 두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여행을 두고 돌아오지 않는 눈부심이라고 비에 젖은 꽃잎처럼 말하는 시인이 있다.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틀린 말을 하는가 / 보라, 여행은 안 돌아오는 것이다 / 첫 여자도 첫 키스도 첫 슬픔도 모두 돌아오지 않는다 / 그것들은 안 돌아오는 여행을 간 것이다 / 얼마나 눈부신가 / 안 돌아오는 것들`. `여행`이란 편도 차표를 끊은 이진명 시인은 사그라지는 것들의 씁쓸한 찬란함에 주목한다. 차표 쥔 시인의 손끝에 매달려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 채 새벽을 맞는다.모든 만남은 여행의 다른 이름이다. 반짝이는 모래알, 뭉툭한 자갈돌, 설레는 무지개, 번득이는 번개처럼 여로의 꽃은 피고 진다. 애초에 질 꽃이라면 씨앗 심지 않으면 좋으련만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순정한 영혼들은 만남이란 꽃을 피운다. 하지만 꽃의 길은 필연적으로 희거나 검은 상처를 드리운다. 돌아오지 않거나 돌아올 수 없는 그 흔적들이 뭉쳐져 삶을 단련시킨다. 첫 슬픔이거나 첫 매혹이었을 그것들은 때가 오면 담담하게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여행이란 꼭 돌아와서 좋은 것이긴 하지만 가끔은 돌아오지 않아서 찬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의혹으로 흔들리는 누군가의 눈빛을 읽는다거나, 닿을 수 없는 협곡 같은 절망이 그대 입술에 맺힌다면 이제 당신들은 여행을 끝낼 시점이다. 돌아오지 않을 그 꽃잎일랑 놓아주고, 새로운 씨앗을 틔우는 여행을 꿈꿔도 좋은 것. `첫`이라는, 안 돌아오는 것들의 묵직한 축복을 위해 시가 있고, 씁쓸함이 있고, 잠 못 드는 새벽은 온다./김살로메(소설가)

2013-02-20

더는 연습

소학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불행이 있다.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 하는 것이 그 첫 번째요, 부모형제의 권세를 빌어 좋은 벼슬을 하는 것이 두 번째 불행이며, 재능이 높아 문장을 잘하는 것이 세 번째 불행이다. 소학 말씀대로라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세 가지 불행의 이유에 하나도 닿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불행할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때론 불행해도 좋으니 저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충족해 봤으면 하는 맘이 든다. 특히 세 번째 구절, 문장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이룰 수만 있다면 불행이 오기 전 자기 관리를 잘 해 불행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면 되지, 하는 싱거운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하지만 옛말 그르지 않다고 전적으로 소학의 저 말씀을 신뢰한다. 어린 나이에 성공하면 편한 일상은 누릴지 몰라도 정신적 황폐를 곁에 두기 쉽다. 이른 성공을 이룬 예술가들이 이 요절하거나, 말로가 좋지 않은 경우가 하 얼마이던가. 집안 배경 덕에 이룬 표면적 성공 역시 본받을만한 건 못된다. 재벌가의 볼썽사나운 이권 싸움이 가십거리가 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문장 재주가 좋아도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내면 수양에 소홀한 채 자신의 능력에만 기댈 경우 시샘의 상대는 될 수 있을지언정 존경의 대상은 될 수 없다.이제껏 내 허영심 때문에 문장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고픈 바람을 버리지 못하고 살았다. 하지만 이룬 적 없는 그 욕심을 내려놓도록 연습해야겠다. 맛 나는 요리엔 많은 재료가 필요한 게 아니다. 훌륭한 맛을 내려고 이것저것 재료 욕심을 내다보면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재료라는 욕심을 뺄수록, 잘 쓰겠다는 허영을 버릴수록 원재료에 가까운 담백한 맛을 얻을 수 있다. 음식이든 글이든 더해서 얻어지는 맛보다는 덜어서 내는 맛이 더 진실에 가깝다./김살로메(소설가)

2013-02-19

아니 에르노

수치심을 감추려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가령 `열두 살 무렵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 했어요`라고 누군가 진지하게 말한다면 듣는 이는 왠지 모를 부담감을 안게 된다. 누군가의 수치심은 곧 타인의 거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위의 예는 작가 아니 에르노의 실제 경험에서 따왔다. 일반적으로 부끄러움 앞에서 글은 솔직할 수 없다. 하지만 아니 에르노식 글쓰기는 그걸 해낸다. 작가는 경험하지 않은 모든 글은 허구라고 단정 짓고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 경험의 최고 수위에 부끄러움으로 명명되는 그녀의 수치심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부끄러움`이라는 작품의 첫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1952년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넘었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다른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이 문장 하나 만으로도 에르노식 글쓰기의 실체를 알 수 있다. 작가는 정신적 외상이 된 일련의 체험들을 까발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통스럽고 불편하지만 당돌하고 진솔한 글쓰기를 통해 인간 본연에 대해 성찰한다.알고 보면 글이란 게 얼마나 기만적이고 허영덩어리인가. 내 부끄러움, 내 수치, 내 껄끄러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수치심이나 증오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체험들을 객관화시켜 글로 쓴다는 게 얼마나 힘들 것인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 약점을 방어하려는 본능 때문이다. 진실한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나 충족감만큼이나 수치심을 경험하며 산다. 하지만 충족감은 발설하기 쉽고, 수치심은 감추기에 쉽다.부끄러움과 수치심의 경험치가 많아서인지 그미가 쓴 `부끄러움`을 제대로 읽고 싶어졌다. 바로 검색했더니 절판이다. 중고판매를 알아본다. 육천 원이던 책값이 적게는 이만 원에서 많게는 십만 원까지 불어났다. 남의 부끄러움엔 시쳇말로 돌 직구를 날리기 쉽지만 내 부끄러움을 글로 까발리는 건 그만큼 어렵다는 걸, 귀해진 중고책값이 가르쳐주는 것만 같다./김살로메(소설가)

2013-02-18

사람이 지나갔다

책꽂이에서 시집 두어 권과 그 외 몇 권의 책을 골랐다. 시와 소설을 공부하는 이에게 보내려던 참이었다. 누군가 내게 책을 선물한데 대해서 릴레이로 보답을 하고 싶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책 선물을 즐기는 편이다. 책장에 넘쳐 방치되느니 친구들과 나눠서 좋은 게 책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책방에 꽂혀 있다 뿐, 내 책은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있지는 않다. 급하게 읽어야 할 책을 찾지 못해 다시 주문하거나 빌릴 때도 있다. 정리정돈을 제대로 못할 바에는 집안으로 물건을 들이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어찌된 건지 내 깜냥으로 소화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책만은 다달이 사들인다. 책꽂이는 한정되어 있으니 주변과 책을 나누면 책방도 깔끔해지고 마음도 달달해지니 일석이조가 아닌가.박스 포장을 하기 전 책을 한 번씩 쓰다듬어 본다. 시집 한 권에 손길이 오래 머문다. 처음 펼치던 순간 헐거웠던 심장이 조여지는 듯한 그 느낌이 다시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나갔는지 마당이 어지러웠다 -싸리비로는 어쩌지 못했다, 바닥이 잃어버린 부력을 그늘로 눌러놓은 이곳.` 젊은 시인 신용목의`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에는 이처럼 사람 사이의 여운이 감지된다. 비망록에 새겨둔 바람 같고 물풀 같던 마음결이, 머리가 아니라 손끝이나 가슴으로 읽힌다.사람이 지나간 마음자리는 어지럽기 마련이다. 싸리비는커녕 손부채 한 번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부력 잃은 그 자리엔 그늘이 눌러 채운다. `걸음이 찍어 놓고 간 발자국마다 감잎이 앉아 있었다 어깨가 아팠다`라고 시인은 마치 독자의 마음 끝을 낚기라도 하듯 끝까지 눈썰미라는 낚싯대를 놓지 않는다. 사람이 지나가면 그 발자국마다 감잎이 앉아 어깨가 아프긴 하다. 그 감잎 줍기 위해 날개를 너무 꺾기 때문이다.시집을 받을 순한 이는 마당이 어지럽지도, 부력을 잃지도, 어깨가 아프지도 않기만을. 그저 `사람이 지나갔다`에서 시인을 뛰어 넘는 무한 발산의 발랄한 상상력을 채워갔으면./김살로메(소설가)

2013-02-15

졸업 축사

졸업 시즌이다. 마침 아들도 졸업하는 지라 오랜 만에 학교에 가게 되었다. 우리가 다닐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화기애애한 졸업식 분위기였다. 하 수상한 시절 탓인지 그때의 식 절차는 얼마나 까다롭고, 방식은 얼마나 딱딱했으며, 시간은 또 얼마나 지루했던가. 별 의미도 없는 사전 연습을 몇 번에 걸쳐 해야만 했다. 연단에 올라 졸업장과 상장을 받아 옆구리에 끼는 팔의 각도까지 담당 선생님이 정해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리허설을 되풀이하곤 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는 창의적이지도 않았고 운치도 없었다. 초대 손님의 축하 인사말은 겉도는데다 그 대상도 불분명하기 일쑤였다. 강당도 없는 운동장에서 그 길고 지루한 시간을 당연히 견뎌야 하는 것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한데 요즘 졸업식 풍경은 그때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우선 주인공인 졸업생을 충분히 배려하는 점이 맘에 들었다. 졸업장을 받은 학생들 한 명마다 선생님들은 어깨를 보듬고 덕담을 건네신다. 교장 선생님 훈화는 딱딱하지도 틀에 박히지도 않았다. 축하 인사를 건네는 손님도 교육계 인사라 현장성이 있었다.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담임선생님들의 격려 말씀 또한 현실적이고 유머가 깃들어 있다.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진다.여러 말씀 중 귀담아 들을 만한 것들이 많았다. 백두산에 오르는 가장 빠른 방법을 아느냐고 한 선생님이 운을 떼신다. 비행기로 가는 것도, 헬리콥터를 타는 것도, 남다르게 보폭을 빨리 하는 것도 아니란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는 것이 가장 빨리 백두산에 오르는 비법이란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면 한 시간이 일분처럼 느껴져, 지루할 틈이 없다나. 교장선생님은 사회에 나가면 꼭 존경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사람 셋은 만들란다. 물론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도 잊지 말란다. 두 분 다 사람이야말로 중요한 자산이란 말씀이렷다. 졸업 축사로 이보다 더한 구체성을 획득하는 것도 없다 싶다.시대 흐름에 따라 유연해진 졸업식 풍경에 훈훈해진 하루였다./김살로메(소설가)

2013-02-14

타자의 욕망을 살다

고위 공직자 후보들의 본인 및 자녀 군필 유무는 그들의 국가관 및 도덕성을 판단하는 가장 가시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군면제 비율이 일반 국민들의 그것에 비해 훨씬 높다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거기엔 저마다 합당한 사유가 있고, 우연한 결과일 뿐이라고 누군가 대변한다 해도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보도들이 이어지자 군대에 대한 명랑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아들이 말한다. 군면제 받은 당사자들은 군대 가는 것을 원했을 수도 있지 않았겠냐고. 그 말도 맞겠다. 군필자가 되고 싶지만, 주변의 강권이나 환경적 학습에 의해 안 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경우도 있으니.내 욕망은 따지고 보면 순수한 내 욕망이 아니다. 내 내면의 의지는 실제론 타자가 욕망하는 욕망이다. 이런 욕망의 타자성에 대해서 라캉은 `주체가 스스로를 발견하고 제일 먼저 느끼는 곳은 타자 속에서이다.`라고 통찰했다. 군 입대 면제를 받거나, 판검사가 되거나,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에 취직하는 것 등은 따지고 보면 내가 원해서가 아니다. 사회가 원하는 타자의 욕망 일순위에 그것이 있고 주변에서 원하니 따를 뿐이다. 명예와 안정이 보장되니, 마치 처음부터 그 길을 가려고 했던 것처럼 착각할 뿐이다.개별자의 자아는 스스로 형성되는 게 아니라 타자를 매개로 다듬어지거나 만들어진다. 타자를 넘어서 진정한 자아의 욕망을 회복하는 길은 쉽지 않다. 타자의 욕망, 즉 부모나 사회가 정해놓은 길을 가면 실패할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자의 길은 진정성이 담보된 길이 아니기에 갈등하게 된다. 그리하여 라캉의 말대로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자신이 소망하는 것인지 혹은 소망하지 않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주체는 다시 태어 날 수 있어야만`하는 사유를 낳는다. 그 누구도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꾸릴 순 없다. 다만 타자의 욕망 속에서 끊임없는 자아의 욕망을 탐구하는 의지라도 있어야 내 주체는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된다./김살로메(소설가)

2013-02-13

존 레논에게 말(言)이란

말은 말로써 기능할 때 가장 말다운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보편타당한 말의 태생적 효용을 구차하게 설명하려는 것일 뿐 실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말로써 제 말을 다 부리지 못한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로 제 가슴 속의 말을 전하고자 안간힘을 써왔다. 그 산물로서 미술, 문학, 음악 등의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한 때 아내였던 신시아에게 존 레논은 이렇게 말한다. 젊어서 성공한 것이 기쁘다고. 그들 곁에 아들 줄리안도 있었고, 적어도 겉으로는 단란한 가정을 이루던 시절이었으니 충분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었겠다. 사람들은 평생 성공할 때를 기다리며 살지만, 그것을 얻었다고 만족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데도,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겪어야만 하는 것이다.` 라고 한 평생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직조하는 대부분의 우리를 향해 존은 서늘한 통찰의 한 마디를 던진다.존의 이 말이 내겐 성공한 자의 비애로 들린다. 존의 표현에 의하면 비틀즈는 애초에 큰 성공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차트 정상에 올라보는 소박한 꿈이 있었을 뿐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큰 결과 뒤에 환멸과 자기정체성의 혼란이 따라온 것. 성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내면의 갈등을 겪게 된다. 그때는 돈도 필요 없다. 존도 물질적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대가로 당연히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성공한 자인 존에게 말은 거추장스러운 그 무엇이었다. 타인과의 대화에서 기쁨을 맛보진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다정한 대화보다는 무례한 행동에 노출된 그로서는 대화만큼 요점 없는 것이 없었다. 그에게 언어로서의 말은 가장 느린 대화의 형태였다. 진정한 대화는 음악일 수밖에 없었다.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로 음악적 유폐를 고집했다. 가령 존의 생각을 알고 싶으면 존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보다 `페퍼 상사` 앨범의 한 곡을 듣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예술가의 언어는 말이 아니라 예술작품 그 자체이니./김살로메(소설가)

2013-02-12

봄 오시네, 그 음악

지난 시간을 규정할 수 있는 자신만의 합당한 추억 매개물이 있다. 일기장, 편지, 액세서리, 책, 사진, 음악 등이 그것이다. 이 모든 요소들이 현재까지 남아 있어준다면 지난 시간들을 그리는데 느꺼운 바탕이 되어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물리적 실체가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자의든 타의든 사라지기 쉽다. 그나마 무형의 산물인 음악은 원하기만 하면 시간여행의 고마운 친구가 되어준다. 내 청춘의 절정기인 80년대에도 음악이 곁에 있었다. 그땐 팝송이 대세인 시대였다. 김기덕도, 황인용도, 이종환도 팝송과 어울리는 라디오 디제이였다. 더러 취향에 따라 클래식을 곁들이는 이들이 있었는데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그날의 클래식 입문기가 떠오른다. 단체 엠티를 가는 날이었다. 여장을 푼 누군가가 텔레비전을 켰을 때 흘러나온 음악이`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이었다. 그 시절 공영방송 텔레비전의 주말 프로그램 안내에 깔리던 무척 익숙한 곡이었다. 제목은 물론 그날 알았다. 모두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분주히 들떠 있었기 때문에 배경 음악 따위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오직 누가 알아서 먼저 쌀을 안쳤으면, 빨리 밥 먹고 카드나 게임 판을 벌였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그 와중에 한 아이가 말했다. 그 곡이 배경 음악으로서가 아니라 단독으로 얼마나 품격 높은 것인가에 대해서. 오페라의 서곡이며 작곡가는 글린카이고 푸시킨의 시가 단초가 되어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는 얘기까지 조곤조곤 들려주는 것이었다. 야외 소풍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얘기를 무심하게 하는 그 아이 눈빛이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후 그 아이 안내로 자연스레 클래식에 입문하게 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생명이 약동하는 듯한 그 음악의 제목은 몰라도 그 시대를 건너온 누구라도 그 곡이 주말 방송 안내에 깔리던 것이라는 건 금세 눈치 챌 것이다.봄이 머지않았다. 봄기운과 어울리는 그 때 그 음악이 다사롭게 떠오르는 아침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3-02-08

오만과 허영

애덤 스미스의`도덕 감정론`을 펼치다 보면 그가 경제학자이기 전에 철학자라는 걸 알게 된다. 중등교육 과정을 거친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 손`이란 시장 경제의 원리를 전파한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도덕 감정론`이나`국부론`에서 그것에 할애한 부분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지닌 도덕적 본성 및 감정에 대해 말하고 있는 도덕 감정론은 인간의 이기심이 공감이라는 사회구성의 합의를 획득할 때 공공선이 될 수 있다는 논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흥미 있는 부분이`오만과 허영`에 관한 것이었다. 그에 의하면 오만한 사람은 표리부동하지 않다. 근거 없는 우월감의 확신에 차 있어 타인도 자신을 인정해주기를 바란다. 자신의 우월함을 타인이 느끼게 하기 보다는 그 우월감 때문에 타인이 비굴함을 느끼게 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 든다.반면에 허영이 많은 사람은 표리부동하다고 보았다. 자신의 우월성을 확신하진 않지만 타인이 그것을 인정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자신이 가진 색깔 이상으로 화려하게 타인이 봐줬으면 하고 바라는데, 이때 공정한 관찰자가 나타나 본래 색깔로 봐버리기라도 한다면 수치와 모욕을 느낀다. 애덤 스미스에 의하면 이 두 가지 결점은 동일한 캐릭터 안에 존재해, 오만한 사람이 곧 허영에 차 있고, 허영에 찬 사람은 흔히 오만할 수도 있단다.재미있는 것은 애덤 스미스는 지나친 비하 보다는 지나친 오만이 낫다고 보았다. 과도한 것이 부족한 것보다는 스스로와 공정한 관찰자 모두에게 덜 불쾌하다고 보았다. 자기비하와 자책에 비하면 허영과 오만이 훨씬 솔직한 감정이라고 보았다. 발전가능성만 보더라도 오만파가 자기비하파에 비하면 훨씬 높지 않겠나. 잘난척하는 밉상보다는 짜증나는 진드기가 훨씬 더 견디기 힘들다는 걸 이백여 년 전 애덤 스미스도 갈파한 것일까. 앞서 말한 인간 이기심이 사회적 공감을 획득한다면 다수의 선이 될 수도 있다는 논지가 여기에도 적용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3-02-07

불안

살다 보면 스스로에게 당황할 때가 있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과 맘이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MRI 촬영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내게 경미한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건 여러 체험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폐쇄공포증세에 비하면 그것은 천국이었다. 좁은 원통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가고 문이 닫히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과 공포가 밀려왔다. 그대로 40여 분을 꼼짝 않고 누워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과 마음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답답해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미친 듯이 벽을 두드려 위급함을 알렸다. 탈출을 하고 나니 천국이 따로 없다. 이런 사람 제법 있다며 촬영기사가 위로를 해준다. 항불안제를 맞고 재촬영을 하겠느냐고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좀 진정이 되자 멍청하고 창피하단 생각에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왔다.사전 설명 없는 가운데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서 그런 상황을 맞닥뜨린 것 같다. 좁고 폐쇄된 공간 자체의 위압감, 바깥과의 소통 단절에 대한 불안, 위급 상황이 생겼을 때 어쩌지 하는 걱정, 등 그 짧은 시간에 그토록 급작스런 불신감으로 불안해할 수 있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불안과 공포는 인간이 느끼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한데 그것이 과하다 싶으면 스스로 당황하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심리적·유전적 요인, 과거의 경험, 현재의 정보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불안을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그 원인을 내가 시원하게 모르니 더 불안하다. 이토록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불신이 깊었나, 이런 불안감을 스스로 자초한 건 아닐까,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왜 몸과 마음이 격렬하게 반응하는 거지, 하는 혼란스러움이 한동안 휘젓고 다닐 것이다. 여기저기 불안의 시대를 살다보니 몸과 맘이 지쳤는지도 모르겠다. 팽팽하게 부푼 풍선 같은 맘 걷어 내고 그 자리에 낭창거리는 버들가지 하나 내다는 연습을 해야겠다. 자고로 긴장은 불안을 낳고, 여유는 안심을 낳으리니./김살로메(소설가)

2013-02-06

시누이 자랑

전통적 가족 제도의 보편적 정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시누이와 올케 사이가 스스럼없기란 쉬운 게 아니다. `친동생처럼 대한다`는 시누이의 말은 `딸처럼 생각한다`는 시어머니의 말 만큼이나 공허할 가능성이 높다. 혈연으로 맺어진 감정과 사회적 계약 관계에 의해 생긴 그것은 심리적·정서적 출발부터 같을 수가 없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시누·올케 관계는 `스스럼없음`이 아니라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리라. 내게도 시누이가 한 분 있다. 손위인데 예의 친자매처럼 흉허물 없는 관계는 아니다. 나이 차가 있는 시누이를 내 쪽에서 어려워하고 존경한다면, 당신은 일방적으로 베풀기만 하는 역할이다. 시누이 노릇 한답시고 내게 며느리로서의 의무감을 압박하거나 눈치 비슷한 거라도 준 적이 없다. 이십여 년 동안 한결 같은 배려와 관용으로 대하신다.통념상 해야 할 며느리의 도리마저 시누이가 저 만큼 앞서서 본보기를 보이신다. (실은 내가 안 하거나 못하니까 시누이가 어쩔 수 없이 하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어머니의 물리적·정서적 지원자가 되는 것은 물론이요, 올케인 나의 정신적·심리적 상담자까지 자청하신다. 시누이로서 올케에게 왜 서운한 감정이 없겠는가. 한데 천사표 시누이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신 위주로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지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인정해버리면 서운한 것도 잠시다.` 라고 말하는 분이다.천성이 고운데다, 자기 수양의 모범을 보이는 분을 시누이로 만난 건 내겐 큰 복이다. 가끔씩 남편이 힘들게 할 때도 `아참, 내겐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시누이가 있었지`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정도이다. 사람 관계는 상대적이다. 나처럼 까칠하고 칠칠치 못한 이도 시누이라는 바람막이 덕에 적어도 나쁜 며느리는 면하고 산다. 내 깜냥만으론 어림도 없다. 좋은 사람 곁에서 좋은 사람 흉내 내기란 얼마나 쉬운가. 내가 며느리로서 평균점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이는 오롯이 시누이 덕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3-02-05

착한 사람 글쓰기

쓴다는 게 뭘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형식 상 잘 쓰는 것과 내용 상 절절하게 쓰는 것은 다릅니다. 잘 쓴 글은 시샘을 유발하고, 절절하게 쓴 글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물론 잘 쓰면서 절절하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런 글쓰기는 작가들에게도 쉽지는 않겠지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도 잘 쓴 글을 좋아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진심이 담긴 글을 더 좋아합니다. 오늘 어떤 분을 급히 만나야 했습니다. 글쓰기 대회 입상자인데, 그 글을 활자화하기엔 비문이 많아 퇴고할 기회를 드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분과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입상자 참 잘 뽑았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은 새벽마다 신문을 돌린다고 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본보기도 될 겸 다이어트도 할 겸, 즐거운 맘으로 새벽 공기를 가른다고 합니다. 이것만도 대단하다 싶은데, 아직 받지도 않은 제법 많은 상금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모처와 약속을 했답니다.아주 세속적인 저는 그 상황이 이해하기 어려워 정중함을 가장한 오지랖을 떨어보았습니다. 글쓰기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인데, 상금의 일부분이라도 자신을 위해 쓰는 게 의미 있지 않겠느냐고요. 어디 제 말이 씨알이라도 먹혔겠습니까. 그분 왈 “그 상금 제 것 아니에요. 글을 쓰게 한 주변 것이지요.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요” 얼음주머니로 머리 한 대 맞은 듯한 명징한 떨림이 밀려왔습니다.그분에게서 새삼 확인했습니다. 잘 쓴 글은 기법상의 하자 없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깃든 내면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글임을. 돌아오는 길 혼자 중얼거립니다. 착한 사람들이 정직한 비문(非文)으로 제 안의 나무에 꽃을 피울 때, 그렇지 못한 저는 경직된 완문(完文)을 찾아 저 밖의 태양을 좇고 있더란 겁니다. 그래도 욕망투성이 스스로를 보편적 인간이라 달래며 부끄러워하진 않겠습니다. 대신, 이분 같은 이들을 존경하고 칭송하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제 안의 찌꺼기 하나를 털어내는 기분입니다./김살로메(소설가)

2013-02-04

해바라기 스캔들

둘만 되어도 필연적으로 갈등하게 되어 있는 게 사람이다. 오죽하면 사르트르가`타인은 지옥`이라고 표현했을까. 적당한 거리 확보 없는 모든 관계는 실패하게 되어 있다. 평화를 가장한 전쟁, 미소로 위장한 침울, 침묵으로 포장한 폭발이 당신 곁에 맴돈다면 이는 틀림없이 적당한 거리의 법칙이 무시당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관계의 법칙에 가장 적절한 예가 예술가들일 것이다. 예민한 예술혼이라는 짐을 진 대신 `제멋대로`라는 면죄부를 얻은 그들의 관계는 더 쉽게 깨지고, 그 파국 또한 처절할 수밖에 없다. 고흐는 해바라기를 그렸다. 고갱도 해바라기를 그렸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심연을 후벼 파는 듯 격정적이고, 고갱의 해바라기는 자유분방한 듯 자신만만하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고, 고갱의 해바라기는 맘먹고 검색이라도 해봐야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고흐의 해바라기는 더 아름답고, 고갱의 해바라기는 덜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두 해바라기라는 예술혼의 방식이 너무 다르다는 데 있다.고흐는 자신의 예술욕을 채우기 위해 고갱을 아를르로 불러들였다. 도도하고 지적이고 권위적인 고갱에 비해 고흐는 격정적이고 소박하고 성실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의 매뉴얼을 담당하는 건 인지상정. 둘 사이의 권좌 차지인 고갱은 소박한 의자에 앉아 매달리는 고흐가 성가실 뿐이었다. 참을 수 없었던 고흐는 광기를 핑계로 자신의 귀를 고수레라도 해야 상처받은 영혼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터였다.고흐의 해바라기는 예술혼의 결정체이다. 고갱의 해바라기도 그렇다. 너무 다른 자신만의 해바라기를 위한 것이었다면 그 둘은 만나지 않은 게 더 나을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각각 신경강박증과 오만방자가 없었더라면 누가 그들의 해바라기 은유에 대해 그토록 오래토록 기억해줄 것인가. 오늘밤도 몇 번씩 제 귀를 면도날로 오리는 악몽에 시달리는 당신, 당신이야말로 해바라기 품는 예술가임을 잊지 않았으면./김살로메(소설가)

2013-02-01

한 호흡

내 하루는 언제나 다짐으로 시작해 결국 후회로 끝나지. 오늘 당신이 없는 사이, 누군가에게 당신에 관해 이야기할 것만 같았어. 그러고 싶지 않았어. 한 호흡만 참을 수 있다면 누군가의 온당한 말은 세상이 먼저 수용하게 되어 있거든. 역시나 당신 모르게 나는 당신을 아프게 했어. 그렇게 치욕스런 하루가 지났어. 젊은 시인 박준은 이렇게 말하네.`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았다`고. 하지만 시인이 못되는 나는 그대 아프게 한 벌로 어깨뼈마디마디가 쑤시는 아픔을 견뎌야 했어.후회할 일은 언제나 한 호흡 사이에 일어나. 물 한 모금 들이켜거나, 침 한 번 삼키거나, 하늘 한 번 쳐다보거나, 입술 한 번 앙다물거나…. 그 짧은 시간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후회하는 거지. 집을 나설 때 우리는 몇 가지 스스로에게 다짐하지. `유쾌한 대화는 즐기되 쓸 데 없는 말은 삼가자, 의견은 말하되 논쟁은 피하자, 비겁한 자기변명 따위는 사절하자, 말해서 허망할 일이라면 차라리 침묵하자` 등 숱한 경험들이 가르쳐준 자기만의 어록을 새기며 힘찬 발걸음을 내딛지.하지만 순간이야. 물 위에 뿌린 말처럼, 하늘에 새기는 글씨처럼 이 모든 다짐들은 너무 쉽게 사라지고 말아. 아무리 결연한 다짐도 그 영속성을 담보하진 못해. 애초에 다짐이란 건 밧줄처럼 길고 단단한 게 못되거든. 장난기 가득한 신은 다짐이란 말에 `잠재적 휘발성`이란 속성을 부여해놓았어. 당연히 다짐은 까먹기 위한 것, 후회를 위한 필요조건이 되고 말지.마음의 평화가 찰나에 흐트러지는 건 참아야 하는 한 호흡보다 반 박자 빠른 악마의 유혹 때문이야. 그 반 박자 빠른 유혹을 한 호흡 안에 쥐락펴락할 수 있는 자만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어. `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기까지 나는 아직 멀었어. 오늘도 당신을 아프게 한 나는 비굴한 자책으로 오후토록 아파야했어. 무서운 건, 내일 하루도 변함없이 다짐하겠지만 속절없는 후회로 마감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거야./김살로메(소설가)

2013-01-31

단 한 번의 연애

지금 대한민국은 스토리텔링 열풍 중이다. 교육, 역사, 문화·관광, 심지어 수학이나 과학에서도 스토리텔링을 접목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고유 영역을 홍보하기에 바쁘다. 사람들 관심을 유도하고 나아가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이야기 형식보다 나은 게 없다. 순간의 미학인 방송 광고조차 등장인물과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 방식을 택했을 때 훨씬 더 구매욕을 자극한다고 하지 않는가. 각 지방자치단체도 예외가 아니다. 저마다 지역 알리기와 지역 관광 활성화에 적극적이다. 그 방안으로 스토리텔링이 주목받게 되는데, 각종 보도에 따르면 우리 지역에도 이런 방식이 도입되었다. `문화스토리발굴사업`의 일환으로 일억원의 창작 지원금이 지원되었는데, 성석제의 `단 한 번의 연애`는 그렇게 탄생한 포항 관련 소설이다. 이 소설이 많은 독자를 만날수록 포항에 대한 간접 홍보 효과 및 문화관광 콘텐츠로서의 활용 가치는 드높아질 것이다.고래잡이 딸을 사랑하는 해녀 아들 이야기가 중심축인데, 그 공간적 배경이 포항지역이다 보니 자연스레 간접 광고 효과를 바라게 된다. 구룡포에서 시작되는 그들의 행적을 따라 가다 보면 포항제철소가 나오고, 송도해수욕장이 보인다. 보경사를 휘돌아 마성까지 접수한 뒤 고래잡이와 먹거리를 살피다 보면 어느덧 순정한 한 남자의 연애사가 마무리 된다. 연애 소설, 후일담 소설, 풍물 기행기 등 세 박자가 어우러진 이야기로 읽힌다.한 발 주춤한 구성, 등장인물에 대한 일관성 부족, 스토리 전개에 대한 개연성 의문 등 몇 가지 독자로서 불만스러운 점도 있었다. 작가로서의 최대한 자유의지가 담보되었다 해도 스토리텔링이라는 부담감을 완전히 떨쳐내기에는 좀 더 숙성된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문화스토리와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다 바라는 건 독자로서 과한 욕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소설이 많은 독자들을 만나 우리지역에 대한 관심과 여행 욕구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건 시민으로서 당연한 소망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3-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