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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가닿기를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1-28 02:01 게재일 2014-01-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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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는 2013년도 노벨 문학상을 탄 앨리스 먼로의 소설집이다. 평생 단편만을 고집해온 작가에게 노벨 문학상이 주어진 건 이례적이다. 작가들은 언젠가는 장편을 써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독자 또한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스토리 전개가 확실해야 하고, 주제가 거창해야하며, 보편타당한 감동이 전제되어야만 꼭 소설인 건 아니다. 장편이 추구하는 그런 부분만 독자로서 극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디어 라이프`는 괜찮은 소설로 읽힌다.

소설은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인간의 마음을 섬세하게 읽고 짚어내는 과정의 소산물이다. 앨리스 먼로의 이 담담한 전언들은 꼰대들의 가르침에 길들여진 영혼에게는 그다지 울림을 주지 못한다. 내면이 어딘지 불온하고, 라일락꽃의 썩은 향도 삶의 큰 부분이란 걸 갈파한 이에겐 썩 어울리는 책이다. 소설에서 `좋은 생각`같은 잡지를 기대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앨리스 먼로의 힘은 `여성적 시각이 주는 섬세한 공감`에의 호소에 있다. 십여 편의 작품 대개가 내 이야기 같고, 내 마음을 대변해준다.

때론 사랑은 불온한 정직함이다. 부조리한 그 기로에서 갈등해보지 않은 사람은 사랑의 한쪽 길만 아는 거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그 사랑의 맛은 어쩌면 태생부터 불온한 속성을 지닌 건지도 모른다.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 오더라도 한 번쯤은 격렬히 부딪쳐 신열을 앓게 하는 그 무엇. 그 순간만은 세상의 그 어떤 시선과 잣대에서도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사랑과 별개로 결핍 또한 나의 주인이다. 누군가 상실의 고통으로 힘겨워 한다면 그 계단에 퍼질러 앉아 서로의 결핍을 위무할 수도 있는 거다. 사랑은 피자조각처럼 딱딱 나눠지는 게 아니라 흐르는 물처럼 차차 스며드는 것. 그렇게 상처와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의 삶이 작가의 미시적 시선에 포착된다. 과장이나 미화 없는 그 섬세한 물결을 따라가다 보면 내 삶이 얼마나 관습의 장벽과 마주하고 있는가도 알게 된다. 몸과 마음에 드리운 그것을 한 겹만 벗길 준비가 된 독자에겐 맞춤한 책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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