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수학 시간, 선생님은 일명`빡빡이`라 불리는 숙제를 검사했다. 연습장 앞뒤로 빡빡하게 몇 장씩 수학 문제를 풀어오는 것이었다. 역시 몇몇 학생들은 일찌감치 숙제를 포기하고 손바닥 맞는 길을 택했다. 나머지 숙제를 해온 학생들도 제 스스로 문제를 풀어온 경우는 드물었다. 대부분은 습관처럼 참고서 풀이 내용을 앞뒤로 빡빡하게 베꼈을 뿐이었다.
이제 도덕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은 군사부일체에 대해 열변을 토하신다. 좀 부당하고 불합리하더라도 부모에 효도하고 스승을 존경하는 일이야말로 도덕적 인간이며, 나아가 애국 시민이라는 논리였다. 앞선 두 시간에 손바닥을 맞지 않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뿌듯한 심정이 된다. 가정선생님과 수학선생님이 불합리하고 부당한 건 인정하지만 그분들의 지시사항을 따르는 건 학생의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뭐 이런 취지의 뿌듯함이다. 그들은 순간적이나마 손바닥을 맞은 친구들에 비해 훨씬 도덕적이라는 느낌마저 받는다.
하지만 그날 오전 집단상담 시간에 그들의 개인적 가치를 물었을 때 그들은 스스로 손바닥 맞은 친구들에 비해 그다지 도덕적이라고 자부한 건 아니었다. 불합리한 상황을 따르게 되었을 때 그것에 적당한 응원이 실릴 경우 우리는 스스로 도덕적인 인간이라고 포장한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비도덕과 도덕의 경계에서 흔들리는`인간적인`존재일 뿐이라는 걸 증명하는 셈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