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현실은 힘겹고, 일상은 따분하고, 관계는 피로하다. 그건 내 안의 감옥 못지않게 타인의 감옥 또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관계없는 일상이 가당키나 한가? `타인이 곧 지옥`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타인 없는 일상 또한 지옥인 것은 마찬가지다. 시게마츠 기요시의 `허수아비의 여름휴가`에 나오는 중년의 라이언 선생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라이언 선생 같은 사람에겐 결코 타인이 지옥이 될 수 없다. 아니, 타인이 이미 지옥인 것을 일찍이 알아채고 그것을 넘어선 경지를 보여주는 건지도 모른다.
착한 사람에게 고통이 먼저 오고, 오래 참고 기다리는 사람일수록 더 깊은 회한에 사무치는 게 삶이라며, 산전수전 다 겪은 라이언은 타인의 감옥 너머 있을 타인의 천국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타인과의 꽃밭 누리를 알기에 타인의 감옥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한다.
중년 삶의 이러한 성숙함에 대해 시게마츠 기요시는 느긋하게 풀어헤친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감정의 절제도 배울 때이고, 그저 그런 내용의 별자리 운세를 보며 광분하기도 하고, 타협과 굴종의 얼굴로 지리멸렬한 일상을 견디기도 하며, 명퇴의 상처로 소심한 뒷방 가장이 되어 자식에게조차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허수아비 신세의 중년이지만 인간에 대한 희망마저 잃은 건 아니다. 이 모든 게 타인의 감옥을 천국으로 승화한 중년의 미덕이다. 라이언 선생이 말한다. 타인 없는 세상이야말로 감옥이라고.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