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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처럼 무겁게, 깃털처럼 가볍게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6-13 00:39 게재일 2013-06-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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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화 `아나키스트`를 오랜 만에 다시 보았다. 1920년대 상하이를 무대로 실제 있었던 의열단 멤버들의 독립 투쟁기가 소재이다. 당시 독립운동은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두 축을 이룬 가운데 제 3의 세력인 무정부주의자들도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역사는 은연중에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강요하였다. 김구나 안창호 등 상해임시정부 측근들이 주도한 민족주의 진영의 독립투쟁사를 정통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도저도 아닌 제3의 입장인 아나키스트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들은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싸운다는 거창한 슬로건을 내세우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행동주의자들이다. 그 단순한 목표 때문에 그들의 상처 또한 깊다. 독립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둘러싼 제 상황과 힘겹게 싸웠음을 알게 된다. 영화가 끝날 때쯤 그들이 본질적인 허무주의자가 되어 있음을 관객들은 눈치 챈다.

독립에는 소모품으로 쓰이고, 조직에는 별 도움이 못 되는 세르게이는 적이 아닌 같은 단원에게 죽음을 당하고 만다. 무의미한 투쟁이라는 걸 멤버들도 알기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아나키스트를 설명하는 말을 영화 곳곳에 장치함으로써 감독은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그리스어로 `아나르키아`는 `선장 없는 선원`을 뜻한다. 그들은 지배자가 없는 진정한 평등사회를 꿈꿨다. 일할 수 있는 만큼 일하고 먹을 만큼만 가진다는 그들의 모토는 일견 사회주의자들의 그것과 상통한다. 하지만 권력투쟁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순수한 의미의 아나키스트와는 거리가 멀다.

애석하게도 아나키스트들이 꿈꾼 대로 역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들 서로 간의 굴욕적인 투쟁의 기록에 머물고 말았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우울한 허무주의자들의 처절한 자기 고백이라 할 수 있다. `삶은 산처럼 무거우나 죽음은 깃털처럼 가볍다` -그들은 살아서 허무하고 쓸쓸했으나 진정 죽어서 깃털처럼 가벼운 희망이 되었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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