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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달리는 아버지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6-14 00:34 게재일 2013-06-1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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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시인의 시 중에 `델리카트슨`이 있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길렀다/ 당연히 잡아 먹으려고` 이렇게 시작하는데 시인은 영화 `델리카트슨 사람들`을 보고 이 시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는 질곡의 부성(父性), 부성의 패악과 연민 등으로 읽힌다. 불편한 진실의 따끔거림, 옛날에는 이런 시들도 괜찮다 느꼈는데 요즘은 이런 것보다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시들에 더 마음이 간다.

이 시를 대하면 어떤 연유에서인지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이 떠오른다. 분위기는 비슷한데 그 맛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가 등장하는 건 같지만 두 아버지는 서로 대척점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빠른 피아노 반주와 어우러지는 `마왕`은 음으로만 듣는 게 아니라 얘기로 이해하는 음악이다. 슈베르트가 열여덟 살 어린나이에 광풍에 휘말리듯 작곡한 이 곡은 괴테의 시`마왕`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다. 절절한 부성이 전해지는 이 곡을 들을 때면 이미 알고 있는 노랫말 덕에 그림이 그려지곤 한다.

밤늦게 아버지 말 달리신다. 사경을 헤매는 아들을 팔에 안고서. 아들의 눈에는 헛것이 보인다. 옷소매 당기는 마왕이 보이지 않느냐고 아버지께 보챈다. 아버지는 아들을 달랜다. 아들아, 저것은 안개의 춤사위고, 마른 잎에 바람 부는 소리란다. 마왕은 유혹한다. 예쁜 꽃과 황금 옷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자고. 아들은 공포에 떨고 아버지는 다시 아들을 달랜다. 아버지는 아들을 안고 힘껏 말 달리지만 결국 마왕은 아들의 죽음을 거둬간다.

한 성악가가 각각 내레이터, 아들, 마왕, 아버지가 되어 변주를 한다. 북유럽 어딘가의 설화를 시로 재해석한 괴테도 대단하고, 단번에 이런 시에서 영감을 얻어 가곡을 만든 어린 슈베르트도 위대하다. 대개의 아버지는 말달렸고, 무심한 자식들은 회한만 남아 이렇게 노래로써 부성을 추억한다. 자식은 아버지를 파먹고 자랐고,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그저 말 달렸을 뿐이다. 이 가곡, 나로서는 `마왕`이 아니라 `말 달리는 아버지`였으면 좋겠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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