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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 잠들 착한 사람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7-03 00:23 게재일 2013-07-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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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서 마지막으로 착한 사람을 재웠던 게 언제인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밤에 나는 창문을 닫고 물을 끓이고 손으로 이부자리에 묻은 머리칼을 떼어냈을 것이다.` 김도언의 `불안의 황홀` 중 어느 오월에 쓴 일기 전문(全文)이다.

오래토록 호흡이 진정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런 기억을 떠올린 지 오래 되었고,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왜 이런 단상을 길어 올리지 못했을까 하는 탄식이 지나갔다. 과외로 연명하던 청춘 시절, 낮잠 자고 음악 듣고 글쓰기를 해도 시간은 넘쳤다. 그렇게 남는 시간,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끼리 모여 놀았다. 착하지만 뜻대로 안 되었던 우리는 좁은 골방에 틀어 앉아 청춘을 둘러싼 제 환경을 성토했다.

아버지 눈치를 보느라 자주 내 방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나는 곡예를 즐기듯 그 시간을 즐겼다. 주먹구구식으로 만든 호떡과 설탕 듬뿍 넣은 커피를 앞에 두고 에어 서플라이나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며 수다를 떨었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친구를 위해 간이침대 밑 먼지를 훔치고 창문을 여몄으며, 물을 끓이고 홑이불의 머리칼을 떼어냈다. 그렇게 음습한 수다의 환희로 청춘의 정점을 찍었다. 불안한 미래였기에 뭐든지 불온하게만 받아들였고, 부족한 현실이었기에 무조건 불편하기만 하던 시절이었다.

세월은 흘렀다. 불안도 결핍도 덜한 나날이 되었다. 물리적 환경이 아니라 시간이 그렇게 만들었다. 더 이상 친구를 위해 요령부득의 호떡을 굽느라 부산을 떨지도 않고, 설탕 듬뿍 넣은 촌스런 커피를 내놓지도 않는다. 문자 한 번이면 오리구이집이나 물회집에서 편리하게 만날 수 있다. 불안의 황홀 대신 편안의 불손이 유머로 먹히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내 방에 잠든 착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잃는 만큼의 감칠맛 나는 입맛을 기억하는 시절이 된 것이다. 오늘 하루쯤은 마음으로나마 오랜 친구를 위한 잠자리를 마련해도 좋겠다. 어딘가 묵어있을 에어 서플라이의 당신이 사랑한 사람, 밤이 깊을수록 등의 테이프를 곁들인다면 금상첨화!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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