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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순간의 방심

유도 66㎏급 안바울 선수의 메달 색깔이 `흰색`일 수는 없었다. 그는 황금색에 99% 다가가 있었다. 완벽하게 준비했고, 완벽하게 진행됐었다. 그런데 메달 색깔이 바뀌었다. 한 순간의 방심때문이었다. 안 선수의 천적은 일본의 마사시였다. 안은 그에게 두번씩이나 패한 적이 있었다. 안 선수는 집중적으로 마사시를 연구했고, 연장 27초 만에 되치기로 `유효`를 따내 이겼다. 숙적이라는 태산을 넘은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다 왔다!” 안도하는 마음에 마(魔)가 끼었다. 결승전에서 만난 선수는 이탈리아의 파비오 바실 선수. 그는 세계랭킹 26위였다. 1위인 안 선수로서는 `간단한 상대`일 수 밖에 없었다. 그 한 순간의 방심이 “태산준령을 넘어온 안 선수가 평지에 와서 넘어진” 결과를 낳고 말았다. 경기 시작 1분 24초 만에 바실은 업어떨어뜨리기로 안을 바닥에 눕혔다. 어이없는 `한판`을 내어준 것이다. 이것은 마치 바둑 초단이 9단을 불계승으로 물리친 것이나 같았다. 이 기막힌 현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듯 안은 한동안 경기장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큰 성취 다음 순간이 가장 취약한 시점`. 자만이라는 `마`가 둥지를 틀고 앉아 있기 때문이다.남자 축구 C조 조별 리그 2차전에서 한국은 독일을 맞아 `선제골-동점골-추가골-또 동점골-그리고 추가골`이라는 주고받기를 이어가면서 3:2를 만들었다. 남은 시간은 로스타임 3분이었다. 8강 진출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다음에 맞을 멕시코와의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8강에 오르는 것이다. 선수도 응원단도 그렇게 믿었다. “한국이 강적 독일을 이겼다”는 그 감격이 너무 일찍 왔다. 여기에 또 마가 끼었다. 추가시간 1분을 남기고 독일의 프리킥이 포물선을 그리며 골망을 흔들었다. 3:3 비기고 나니 당장 멕시코라는 철벽이 앞을 막아 선다. 멕시코와 최소한 비겨야 8강에 오른다.동·서양의 역대 현자(賢者)들이 한 목소리로 방심과 자만을 경계한 이유가 새롭게 다가온다. 이것이 어찌 스포츠계만의 일이겠는가./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8-11

노이즈 마케팅

국회의원이든, 연예인이든, 왁자지껄 떠들어서 이름을 알리고 인기를 올릴`기회`를 잘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사드도 좋은 `건수`다. 처음에는 온갖 괴담을 만들어서 말썽을 일으키다가, 과학이 그 근거를 없애버리면, 열심히 다른 이유를 찾는다. 시장판 한 곳이 떠들썩하면 거기에 사람이 몰리는데, 그 수법으로 재미를 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더민주당 초선의원 6명은 `의원외교`란 이유로 중국에 갔다. 국민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사드를 반대하는 중국에 사드를 반대하는 야당 초짜들이 가서 무슨 외교?” “시진핑 황제의 명령을 듣지 않아 죄송하다는 진사사절단인가” “중국과 북한은 기고만장할 것인데, 이것은 이적행위 아닌가” “의원외교라면 외교부와 협의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의문투성이다.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 대표도“정세 인식이 안이하다” “운동권 시절의 도로 민주당이 되려는가” “야당이 정부여당을 공격함에 있어서 가능한 것과 아닌 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 이런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면 나라에 도움될 게 하나 없다” 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중국은 이미 “사드는 북핵을 겨냥한 것이지 중국을 향한 것이 아니다. 중국은 북핵부터 저지하라. 그러면 사드는 철수한다”란 말에 귀를 굳게 닫았다. 남중국해 때문에 국제중재재판에서 실추된 위신을 `사드 저지`로 회복하겠다고 고집하는 상대에게는 어떤 말도 마이동풍이다. 결국 6명은 중국의 언론에 실컷 이용만 당할 것이다.방송인 김제동씨가 성주 시위현장에 가서 1시간 가까이 개그를 하며 사람들을 웃겼다. “뻑하면 종북 하는데, 나는 경북이다” 자기는 경북 영천 출신이란 말이다. “성주 사람 아니면 다 외부인이다. 대통령 총리 국방장관 다 외부인이다” 그러나 사드가 와서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못했다. 이유가 없거나, 사드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6명 국회의원과 김씨는 노이즈 마케팅에는 성공했다. 이름을 훨씬 많이 알렸다. 다만 그것이 약일지 독일지 지금은 알 수 없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8-10

합법적 살인

파키스탄에서는 `명예살인`으로 죽는 여성이 연간 2천명 가량 된다.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남자가족이 여자를 죽이는 풍습인데, 식구들이 “용서해주라”하면 무죄 석방된다. 최근 유명 모델 발로치가 노출이 좀 심한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친오빠 손에 숨졌다. 그녀는 평소에도 `죽을 짓`을 해왔다. “크리켓 국가대표팀이 세계대회에 우승하면 홀랑 벗겠다” “나는 평등이 좋다. 여자가 차별받는 것이 싫다” “파키스탄에는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다” 등등 `막말`을 하더니 결국 잠자는 새에 오빠가 목을 졸랐다.필리핀에서는 지난 3개월 간 700여 명의 마약사범이 살해됐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당선된 후 곧바로 `살인공약`을 실천했다. “10만명의 마약사범을 죽이는 것이 내 목표”라 했고, “당신이 마약중독자를 알고 있다면 직접 가서 죽여라”며 `007 살인면허`를 주었다. 공판 같은 적법절차는 없다. “저놈 마약 거래하는 놈이다” 한 마디에 그냥 총살을 해도 죄가 안 된다. 길거리에서 총맞아 죽는 사람이 널려 있고, 마닐라 해변에는 시체들이 떠다니고, 경찰은 미운놈을 마약사범으로 몰아 죽이기까지 한다.지난 6월 30일에 취임한 두테르테 대통령은 “6개월 내로 범죄와 부패를 뿌리뽑겠다” 했고, 현재 마약사범 5천명 가량 체포하고, 자수한 인원은 15만명 가량된다. 인권론자들은 “인권·법치 훼손”이라 비판하며 `즉결처형`된 사람들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지만, 대통령은 “인권은 범죄자 보호의 핑계가 될 수 없다” 했다. 이런 `범죄 청소`에 대해 필리핀 국민 91%가 지지한다.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3개월 간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군부 쿠데타를 핑계로 군인, 행정공무원, 법조계, 교육계, 언론인 등 5만명을 직장에서 내쫓았고, TV와 라디오 24곳의 허가를 취소했다. 그리고 사형제도를 부활할 예정이다. 터키는 사형제도가 없어진 나라지만, 이를 부활시켜 쿠데타 군인 수만 명을 죽여버릴 생각이다. 폭염 속에서 `합법적 살인열풍`이 몰아친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8-09

매우 특별한 리우올림픽

리우 올림픽은 처음부터 말썽이 많았다. 도핑문제로 러시아의 상당수 선수들이 출전기회를 잃었다. 또 브라질 대통령이 지금 탄핵중이니 정치상황도 불안하다. “경제가 엉망인데 빚으로 올림픽 하나”면서 올림픽 반대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고, 경찰이 데모를 벌여 치안이 불안하고, 선수촌이 여러 번 도난을 당했다. 지카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릴 때는 “여자선수들은 고려해야 할 것”이란 말도 나왔다. 수질도 나빠서 최근 호주 수영선수들은 “수영장 물이 수프같다”면서 훈련을 거부했다. 그러나 `난민팀` 10명의 선수가 참가한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케냐의 테그라 로두테(43) 여사가 단장을 맡았다. 여자 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인 그녀는 IOC에 탄원을 했다. “국가는 비록 파탄났지만, 선수로서의 기량은 뛰어나 올림픽에 참가할만 하고, 스포츠 정신만은 잃지 않았다. 부디 리우올림픽에 참가하게 해달라” 설득했다. 내전과 테러로 삶의 터전을 잃고 국가도 없고 국기도 없지만, “우리도 같은 인간임을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가 IOC를 감동시켰다.남수단의 육상 선수 5명, 콩고공화국의 유도 2명, 시리아의 수영 2명, 에티오피아의 육상 800m 1명 등 10명이 국기도 없이 오륜기만 들고 입장할 때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IOC위원장 등 본부석 요인과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이들을 환영 격려했다. 특히 선수중에는 시리아에서 독일로 탈출할 때 에게해를 수영으로 건넌 마르디니(18) 선수도 끼어 있었다.우리 축구팀이 피지를 8:0으로 대파한 것도 특별하다. 그러나 대승에 자만하는 것은 금물이다. 피지는 인구 90만명 밖에 안되는 작은 나라이고,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은 대부분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 골키퍼는 현직 경찰관이고, 축구는 `부업`이다. 그런데도 전반전에서 1골밖에 내어주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힘도 빠지고 전의도 상실한 후반전에 7점이나 허용한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다음에 만나는 독일과 멕시코는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을 가진 팀들이다. 매사에 자만은 독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8-08

“이 땅을 버리고…”

신라 35대 경덕왕 시절은 문물이 가장 번성할 때였지만, 왕은 `정점(頂點)을 찍으면 내리막길`이라는 불길한 조짐을 보았고, 충담사를 불러 도움을 청했다. 충담은 `안민가`를 지어주고는 표연히 사라진다. “君은 어버이요, 臣은 사랑의 어머니요, 民은 어린 아이임을 알게 되면 民은 사랑을 알 것이요. 간신히 살아가는 백성을 잘 먹여주어서,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랴” 한다면, 나라가 유지되리라. 아 君 답게, 臣 답게, 民 답게 한다면, 나라가 태평하리라” 백성을 굶지 않게 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란 뜻.초(楚)나라 대부 섭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정치란 무엇입니까?” “近者說 遠者來(가까이 있는 백성은 기뻐하고, 멀리 있는 사람은 오게 함)” 의식주가 넉넉해서 백성이 즐거워하고, “저 나라에 가면 굶주리지 않는다더라” 해서 외국인들이 살러 올 정도면, 그 나라는 정치를 잘하는 편이란 내용이 `논어`에 있다.항산이 항심(恒産 恒心)이요,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 백성이다. 생존의 기본 조건이 충족되면 국민은 딴마음을 먹지 않고 나라를 지킨다.김정은이 군기 잡겠다고, 고모부를 잔인하게 죽이고, 군 장성급 등 고위층 수백명을 처형하면서 공포정치를 펴고, “조국을 버리고 도망가는 자를 무조건 사살하라. 주는 돈은 받고 신고하라” 해서 탈북행렬이 잠시 주춤했으나, 올해 들어 탈북인구가 15.6%나 늘었다.전에는 서민들이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나라를 등졌으나, 지금은 중산층 이상 엘리트들이 탈북을 한다.여권을 소지하고 외국에 나가 있는 `외화벌이 일꾼`들이 한국 공관에 와서 망명신청을 한다.이들은 출신성분도 훌륭하고, 당성(黨性)도 강하고, 굶주리지도 않는데, 다만 `언제 숙청당할지 모르는 파리목숨`이다. `할당된 상납금`을 못 채우면 `지옥생활`을 하거나 공개처형되는 것이 상위층의 운명.어린 독재자가 자꾸 자충수(自充手)를 둔다. 국망(國亡)은 본래 `스스로 무너짐`인데, 철부지가 `그 길`만 고집한다. 고구려도 스스로 무너졌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8-05

무장해제의 역사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 군인들은 이런 지령을 받는다. “맨손체조 훈련이 있으니, 무기 없이 훈련원에 집합할 것” 서울 동대문 밖에 훈련원과 연병장이 있었는데, 우리 국군들은 “무기 없는 훈련? 낌새가 좀 이상하다”면서 연병장에 모였다. 집합이 완료되자 중무장한 일본군이 에워쌌다. “구식 군대는 해산되고 신식 군대로 교체된다”란 선언과 함께 제국 군인들은 군모가 벗겨지고 견장이 뜯어졌다. 역대로 무과(武科)시험을 봤던 그 현장에서 국군은 무장해제됐다. 그 3년후인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를 당한다. 나라가 없어졌다.1950년 6월 25일을 며칠 앞둔 어느날 3·8선 부근에 내려졌던 비상경계령이 해제되고, 고급 지휘관들의 인사가 단행돼 어수선했다. 25일은 일요일이라 장병들은 대거 외출·휴가를 갔고, 몇몇 전방 지휘관들은 24일 밤부터 새벽까지 술판을 벌였다. 당시 주한 미군은 철수를 단행하고 “한반도는 미군의 방위선 밖에 있다”란 해리슨 선언이 나온다. 최전방은 `완전한 무장해제 상태`였다. 당시 남한에는 `남로당`이라는 공산주의 세력이 조직돼 있었다. 이 `완벽한 여건`을 만들어놓고 북한군은 선전포고 없는 불법 남침을 감행한다. 낙동강까지 밀리는데는 단 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외교에 노회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대응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그대로 적화통일 `해방구`가 됐을 운명이었다.`제3의 무장해제`획책하는 세력이 있다. 북한의 핵무기를 우리는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라는 문제에 대해 “북한핵은 남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며 `연막`을 피우는 세력이 있다. `사드 배치`는 북핵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데, 중국은 이것을 뒤집어 “사드 배치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더 부추겨 한국을 더 큰 위협 속에 몰아넣고, 중국과 러시아의 보복을 부를 것”이라며 `한국의 무장해제`를 종용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한반도 적화통일`이 `우리의 소원`일 것이다. 이러니 사드를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세력들이 핏대를 세운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8-04

몰타공화국

지중해 한복판, 이탈리아 남쪽에 있는 작은 섬나라. 넓이는 한반도의 1000분의 1, 제주도의 6분의 1에 불과하고, 인구는 포항시보다 10만 명이 적은 41만이지만, 명색이 `독립국가`다. 그러나 “로마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시국(市國)보다 크고, 싱가포르와 맞먹는다”란 자부심을 가졌다. 국민소득도 한국에 바싹 따라붙는 수준이라 결코 빌빌대지 않는데, 짙푸른 지중해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대체로 몰타에서 찍고, 기후가 포근해서 관광산업이 번성하고, 물가가 싸고 인심이 좋아서 `은퇴자의 고향`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작은 나라들이 흔히 그렇지만, 두뇌산업·지식산업이 주축을 이룬다.몰타의 절대적 자부심은 수도 발레타에 있다. 천하무적 오스만투르크 대군을 당당히 막아낸 곳이기 때문이다. “세계 전쟁사에서 이런 곳 있거든 나와 봐!” 이렇게 큰소리 친다.또 하나의 자랑은 천재화가 카라바조의 불후의 명작 2점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는 `세례요한의 처형`과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을 그렸고, 몰타가 그 두 작품을 소장하면서 세계 관광객들을 불러들인다. `골리앗의…`은 그가 죽기 직전 유서 대신 그린 유화(遺畵)다. 골리앗의 얼굴이 바로 카라바조 자신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미캘란젤로가 죽은 후 몇 년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환생`이란 말도 듣는 천재지만, 성격이 워낙 괴팍해서 살인을 하고 도망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명화 한 장 그려주는 것으로 사면받아 감옥살이는 하지 않았다.볼품 없는 섬나라지만, 2003년 유럽연합(EU)에 당당히 가입했고, 내년에는 EU 의장국이 되므로 윤병세 외무장관이 얼마전 몰타를 예방, 총리와 외교장관을 만나 `북핵문제를 협의`했다. 몰타에는 북한 노동자들이 돈 벌러 많이 와 있는데, 그들에게 돌아갈 임금을 착취당하고,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인권을 침해당한다는 이유로 `비자 연장`을 중단, 그들을 쫓아냈으며, 다시는 북한 노동자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런 나라가 있는지도 몰랐던 몰타, 북핵문제와 인권에는 엄청 다부지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8-03

권력을 내려놔?

인간이든 다른 동물이든 집단생활의 기본 얼개는 `권력구조`와 `계급체계`이다. 인간사회에서는 `세금을 받을 권리`, 동물사회에서는 `암컷 분배권`이 기본이다. 피터지게 싸워서 이긴 수컷이 암컷과 식량을 독차지하는 것이 동물의 세계다. 인간의 정치사도 `권력쟁탈전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당초 신정(神政)체제였다가 세속의 권력인 왕권(王權)이 나타나면서 종교권과 왕권이 양립하고 점점 왕권이 강화되고 국법이 종교법을 압도한 것이 인간사이다.권력을 위해 형제도 죽이고 부자간에 전쟁까지 벌이는 일이 인간사에는 숱하다. 권력은 분명 피보다 진하다. 땅을 더 차지하기 위해서, 관할범위를 더 넓히기 위해서, 영향력의 강도를 더 높이기 위해서 박터지게 싸워온 것이 인간사의 골격이다. 그런데 요즘 `권력 내려놓기`란 말을 너무 쉽게들 한다. 국회의원들은 선거 전후로 그런 말을 관행처럼 해왔고, 검찰도 비리사건이 터질때 마다 `검찰개혁` 운운한다. 그러나 `말`만 무성할 뿐 `결과`는 없다. 국민들도 “그럴 줄 알았다” 하면서 차츰 잊어버린다.2011년 국회가 앞장 서서 검찰개혁의 칼을 뽑아들었다. 검찰이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당시 홍만표 검사는 `검찰 기득권 수호`의 선봉장이 되겠다며 사표를 내고 변호사 개업을 했는데, 지나친 전관예우를 받으며 막대한 수임료를 받고도 신고를 하지 않아 탈세 혐의를 받고 지금 푸른 죄수복을 입은 채 법정에 선다. 2014년에는 정종섭(현 새누리당 국회의원) 서울법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한 검찰개혁심의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어영부영 세월만 보내다가 끝났다. 검사장 출신 3명 중 2 명은 지금 수의(囚衣)를 입었고,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지낸 1명은 지금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이쯤되니,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은 `통렬한 반성과 성찰`을 하겠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고 검찰개혁 방안을 내놨지만, 하도 여러 번 속은 국민은 콧방귀나 뀐다. 국회에는 비호세력까지 있다. 천적(天敵) 없는 권력은 천정(天頂)이 없다. 검찰의 천정은 어디 있나./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8-02

강자의 민얼굴

중국 시진핑 주석은 3년전 4대 외교원칙을 발표했다. 친(親·이웃과 친한다) 성(誠·정성을 다한다) 혜(惠·혜택을 베푼다) 용(容·관용한다). 그는 해외 순방때마다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중국의 발전에 무임승차하는 것도 환영한다”며 대범함을 과시했다. 우격다짐으로 약소국들을 쥐어지르지 않고 관용함으로써 존경심을 이끌어내겠다는 뜻이었다. 중국 지도자들은 맹자의 왕도(王道)정치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미국은 패도(覇道)정치를 하는 나라”라고 욕한다. 중국은 백약이 무효인 병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세상의 중심에 있고 다른 나라들은 조공을 바치는 변방국이라는 생각을 못 버리는 정신질환이다. 작은 섬나라들한테 호되게 당하고도 치유가 안 된다. 영국은 두 차례의 아편전쟁에서 참패를 안겼고, 일본에게는 만주땅을 내주고 난징대학살을 당해 `덩치값도 못하는 뚱보`라는 비난을 받았다. 모택동은 `홍위병 난동`으로 나라를 거의 `정신병원` 수준으로 만들었다.그리고 땅욕심은 아무도 못 말린다. 내버려두었던 센가쿠열도를 일본이 차지하자 뒤늦게 “우리땅 내놔라” 하고, 난사군도는 공해(公海)이고 필리핀에 훤씬 가까운 암초지대인데 중국은 이를 매립해서 인공섬으로 만들고 “이제 내 땅이다” 하다가 국제재판소가 “아니다” 판결했지만, 중국은 이를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인다. 북한 핵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사드를 배치하려 하자 중국은 경제보복으로 협박하면서 한국의 방어력이 강화되는 것을 막는다. 북핵은 상당 부분 중국의 책임인데 그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이 없다.최근 라오스에서 아세안안보포럼이 열렸고, 한·중·북 외교장관이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중국 왕이 외교부장의 태도는 `시 주석의 4대 외교정책`과는 완전히 거꾸로 가는 것이었다. 북한 외교상과는 절친한 친분을 과시하면서 우리 외교장관은 철저히 외면했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들은 중국의 오만에 입을 닫았다. 몇 푼 던져주는 `떡고물` 에 팔린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더이상 중국을 상전으로 섬기는 제후국이 아니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8-01

핵에는 핵으로

중국의 트집이 본격화된다. 칭다오가 대구 치맥축제 참여를 취소하고, 자신들의 축제에도 대구시의 참석을 거부하는 `사드 보복`을 하더니 이번에는 한국 화장품을 가지고 시비를 건다. 중국 관영 매체들이 “한국산 화장품이 검역 검사에서 불합격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불량 밀수품이 늘고 있다”고 보도한다. 한국과 중국의 금지물질이 서로 다른데, 중국에서 금지된 성분이 한국 화장품에 들어 있다는 핑계까지 붙인다.또 관영 CCTV는 “일부 한국 상인들이 불량 가짜를 팔다가 검거되고 있다”는 보도를 계속 내보낸다.한국 화장품이 프랑스제를 밀어낼 정도로 세계 최고임을 각 나라 관광객들이 인정했고, 중국 관광객들도 다투어 한국화장품을 사가는데, 중국 관영 매체들만 딴지를 건다. 뿐만 아니고, 중국 공안이 동북 3성에 있는 탈북민들을 체포해 북으로 돌려보내고 있다.탈북자 구호단체들은 “이혜란(28)씨가 북한으로 끌려갔고, 지린성 한 농촌에 살던 탈북여성 2명도 공안에 체포됐다. 연변 일대에서 탈북자 체포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최근의 소식을 전했다.유엔의 대북 제재 행보에 중국은 그동안 마지못해 동참 흉내를 냈지만, 사드 배치를 놓고 시비를 걸다가 뜻대로 안 되니 이제 `친북 본색`을 드러낸다.아세안 안보회의에서, 왕이는 북한 외무상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한국 외무장관을 백안시했다. 북한을 지렛대로 삼아 한국을 어떻게 해볼 요량이지만, 그 하는 짓이 치졸하기 짝이 없다. 중국은 역시 국제사회에서 `미성년자` 수준이다.중국의 보복이 노골화되고, 미국 대선에서 `좀 이상한 부동산 장삿꾼`이 주한 미군 철수 운운하고, 한반도 비핵화는 이미 물건너 간 원칙이 돼버리자, 원유철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우리도 핵무장 trigger(자동조치)를 선언하자” 한다. “북한이 5번째 핵실험을 할 경우 우리도 자동으로 핵무장을 추진한다”란 선언을 하자는 말이다.북이 핵을 포기할 리는 없고, 중국도 한국의 무장해제를 획책하는 마당에 `핵에는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7-29

조롱거리 거인

모택동의 문화대혁명(1966~1976) 10년은 중국의 발전을 30년 뒤처지게 했고, 그 상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고통으로 남았다. 毛(모택동)는 새 문화정책을 내놓았는데 “모든 문화예술은 정치에 복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산주의 혁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문화예술은 철저히 배격됐다. 화가들도 `순수한 예술적 상상력`을 버리고 모택동의 초상·홍위병이나 인민해방군·농민과 도시 노동자 등 `혁명·투쟁의 도구`들만 그렸다. 모택동이 죽고 3인방이 숙청되면서 화가들도 해방됐고 그 `광란의 시대`를 화폭에 담기 시작했으니, 바로 중국의 독특한 미술장르가 된 `상흔미술`이다. 이 사조는 문혁때 가장 극렬히 저항했던 쓰촨에서 태동했는데, 쓰촨성 청두 출신의 궈웨이(56)가 대표적 화가이다. 그는 최근 서울 학고재갤러리에 28점의 인물화를 걸었다. 10대 시절에 경험한 혁명의 광기는 일생 지워지지 않는 `어두운 그림자`로 남아 그의 작품세계를 지배한다. 그는 `짙은 고뇌가 드리운 인간의 얼굴`을 주로 그렸다. 표정은 일그러지고 어깨는 축 늘어져 있다. 시진핑 주석이 점점 毛를 닮아간다는데… 화가들의 새 걱정거리다.대만 페이스북에 `對중국 사과 대회`가 열리고 있는데 독립을 희구하는 대만·홍콩 네티즌들이 열광적으로 응모한다는 소식이다. 대만 사회운동가 왕이카이가 “중국에 사과할 일이 있으면 이 곳에 사진과 글을 올리시오. `좋아요` 갯수가 제일 많은 참가자가 `사과의 제왕`으로 등극할 것이오”라는 안내글을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대만출신의 걸그룹 멤버 쯔위가 대만국기를 흔들었다고 집중포화를 맞고, 대만 배우 다이리런이 중국 영화 주연에 발탁됐다가 `대만 독립 지지 성향` 논란에 휘말려 교체된 사건 등이 발단이 돼 이 계정이 만들어졌다. 왕이카이는 “중국의 압력과 횡포를 조롱하기 위해 이 대회를 열었다”고 했다.한국의 방어력을 방해하려고 `대구 치맥축제 참가 취소` 등을 진행했었던 중국의 보복에 대해 “상전의 명령을 듣지 않고 사드를 배치하는 죄를 사과합니다”란 글을 응모해야 겠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7-28

일본의 무궁화동산

일제때 한 교육자가 친구들과 앉아 이런 말을 했다. “일본 사쿠라는 확 피었다가 확 지지만, 우리 무궁화는 석달 열흘 꾸준히 피고 진다. 그래서 무궁화다. 두고 봐라. 누가 오래 남나” 이 말을 한 밀정이 듣고 일본 관헌에 일렀다. 무궁화 탄압의 도화선이다. 전국의 무궁화를 모두 베어내어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험담을 퍼트렸다. “무궁화를 보면 눈병이 나는데 3번 침을 뱉으면 된다. 이런 꽃은 쓰레기나 퇴비더미 곁에나 심어라. 진딧물 많은 꽃이라 항상 지저분하다. 무궁화를 심었던 곳에 사쿠라를 심어라” 고운 최치원 선생이 중국에 보낸 국서에 “우리 근화지향(槿花之鄕)은…”이란 귀절이 나온다. `槿`자는 무궁화 근이다. 신라때부터 무궁화는 나라의 상징이었다는 말이다. 화심이 붉은 색이어서 `일편단심`의 꽃이고, 그래서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했다. 무궁화는 코스모스와 함께 글로벌꽃이다. 세계 어디를 가든 다 있다. 남태평양의 섬들에서 피는 무궁화는 크기가 상당한데 외지 관광객들이 올때 목에 걸어주는 `환영의 화환`으로 쓰인다. 적응력이 강해서 많은 개량종이 만들어지는데, 한국의 경제영토가 날로 진화되는 것과 흡사하다.2002년 일본에 `무궁화 동산`이 조성됐다. 거제도 출신의 재일동포 사업가 윤병도 회장이 사이타마현에 있던 자신의 산 한 모퉁이를 밀어서 세계 최대의 무궁화공원을 만들었다. 2010년에 윤 회장이 별세한 후 부인 이토 하쓰에씨와 자녀들이 고인의 뜻을 잘 받들어 관리해오고 있는데, 연간 2억1000만원 가량의 돈이 들어가고, 너무 넓어서 가족들이 감당하기 버겁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 산림조합중앙회가 지원에 나섰다. 공원에 팔각정자 `丹心亭`을 지어 기증하고, 여름에는 `무궁화축제`를 공동 주최하기로 했다. 무궁화 탄압기와 비교하면 실로 금석지감이 느껴지는 일이다.포항 기청산식물원에서 지금 무궁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통일이 되면 나라꽃으로 지정될 꽃. 한 조각 붉은 마음(丹心)을 가진 절의의 꽃. 폭염도 꿋꿋이 견디는 우리 민족성의 표상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7-27

미녀 기상캐스터

근래 들어 기상예보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 비가 온다 해서 예정됐던 야외행사를 취소했는데, 비는커녕 아름다운 뭉개구름이 점점이 떠 있는 화창한 하늘이고, 우산을 들고 외출해 줄곧 들고 다니다가 어딘가에 놓아버리면 `내것`이 아니다. 우산만큼 잘 잊어버리는 게 없다. 엉터리 기상예보 때문에 잃어버리는 우산이 부지기수다. `예보`는 물론 당일의 것까지 틀려서 “기상 예보 그만두고 기상 중계나 해라”는 질타도 받는다. 기상청으로서는, 여름이 `잔인한 계절`이다. 욕이 양동이로 쏟아지는 철이다.장비가 부실한가 해서 올 2월에는 530억원 짜리 슈퍼컴퓨터 4호기를 사왔다. 48억명의 사람이 1년간 계산해야 할 연산자료를 단 1초 만에 처리하는 능력을 가졌고, 한 달 전기료만 2억5천만원이나 든다. 또 연간 1억5천만원의 사용료를 주고 소프트웨어인 `수치예보 모델` 프로그램도 2010년 영국에서 빌려왔다.이런데도 `거꾸로 가는` 기상예보가 계속된다. 그 원인을 `예보관의 잦은 교체`에서 찾기도 하는데, 이 직책은 “욕만 먹어도 배 부른 자리”여서 2~3년마다 바꿔주어야 한다. `예보 정확도`는 수치예보 모델 성능이 40%, 모델에 입력되는 기상관측 자료가 32%, 예보관의 능력이 28%를 자치한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장비가 있어도 예보관의 능력이 떨어지면 무용지물이다.그런데, 무능한 예보관에 의한 `빗나간 예보와 바가지 욕`을 상당히 완화시켜주는 선물이 방송사로부터 전달됐다. 모든 TV들이 미녀 기상캐스터를 등장시키면서, 시청자들의 마음이 즐거워졌기 때문이다. 김동완 캐스터가 정년퇴직하면서 조석준, 이찬휘 남자 캐스터가 간혹 나오지만, 1991년 이익선 여성 캐스터가 대 히트를 친 후 미스코리아 출신의 박은지 캐스터가 시청률을 크게 끌어올렸고, 그 후 모든 방송사들이 `미녀 캐스터`를 내세웠다. “예쁜 모습에 홀려서 정작 기상예보는 보이지 않는다”는 남자캐스터들의 불만도 있지만, 그 덕분에 “예보가 다 맞을 수는 없지”라며 관대해진 측면도 없지 않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7-26

터키의 쿠데타

터키는 `묘한 나라`다. 동양과 서양의 경계지점에 있고, 기독교국가에서 이슬람국가로, 거기서 다시 기독교+이슬람국가로 가다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가 됐다. 터키는 1·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 신세지만, 케말 파샤라는 걸출한 장군을 얻게 된다. 그는 `청년 튀르크당`을 만들어서 “오스만 제국이 강해지려면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 국가`로 가야한다”면서, 당시의 술탄인 압둘라 하마드2세를 몰아내는 쿠데타에 성공한다.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업은 그는 국가체제를 완전히 뒤집는다. `공화국 헌법`을 반포하고 “술탄(왕)제를 폐지한다”고 선언했으며, 1923년 공화국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러나 이슬람의 원로들의 반발은 엄청났다. 설득과 회유로 진압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대통령은`무자비한 숙청`에 들어갔고, “국가원수를 모독한 자는 극형에 처할 수 있는” 형법을 제정해 평정했다. 그리고 그는 오직 국가를 위해 일생을 바쳤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죽은 후 남긴 재산이라고는 `양녀 결혼자금 몇푼`뿐이었다. 그는 영원한 `터키민족의 아버지`로 남았다.터키가 다시 이슬람 술탄체제로 돌아가려 한다. 에르도안 현 대통령이 케말 파샤 초대 대통령이 만들어놓은 세속주의를 뒤집어 신정국가로 가려 하자 반대파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 쿠데타는 정보가 유출돼 실패로 끝났지만 현 대통령의 자작극이란 여론도 만만찮다. 반대를 가장 신속히 박멸하는 방법이 `국가 비상사태`를 만들고 이를 핑계로 무자비한 숙청을 하는 것인데, 에르도안이 그 수법을 쓰는 것이 아니냐 한다. 그는 지금 사형제도를 부활시켜 떼죽음을 예고한다.`쿠데타와 유혈의 역사`는 반복되지만, 에르도안이 케말과 다른 점은 `재산욕심`이다. 그는 2천억원이 넘는 재산과 호화궁전 3개를 가졌으며, 세계 모든 국가원수 중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다. 또 영부인 에민은 쇼핑중독증 환자여서 그 낭비벽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여편네의 병적인 탐욕이 쿠데타를 불렀다”는 소리를 듣는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7-25

사임당의 수난

조선 중기에 태어난 사임당은 어릴때부터 비범했다. 사서삼경을 일찍 떼고, 서예와 그림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흡사하게 그려냈고 포도그림은 특히 뛰어났다. “사임당의 그림은 하늘의 능력을 빌려온 신필(神筆)이다” “천지의 이치를 깨달은 표현”이란 찬사를 받기도 했다. 사임당은 집 주위의 텃밭에 자주 나와 채소와 잡초, 곤충, 벌레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꿀벌 나비는 물론 개미와 귀뚜라미, 고슴도치 들쥐 도마뱀 쇠똥구리까지 그대로 그리는 `극사실화`의 대종을 이루었다.조선시대의 그림에는 항상 `의미` 혹은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돌잡이에게는 무병 건강을, 청소년에게는 입신출세를, 시집가는 처녀에게는 다자녀를, 노인에게는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사임당은 시집가는 마을 처녀들에게 “아들 딸 많이 낳고 다복하거라”란 기원을 담아 연꽃과 연밥, 물고기 등을 많이 그려 선물했지만 애석하게도 많이 버려져서 지금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시작품 2편, 서예 9점, 초충도 20점 정도가 고작이고 5만원권 지폐에 실린 포도그림이 대표작 구실을 한다.천재화가들이 대체로 그렇지만 생존 당시에는 별로 존중받지 못했고 특히 조선조의 여성은 흔히 무시당했으니 그녀의 작품도 박대를 받았을 것이다.지금도 사임당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 지폐 사상 최초로 여성이 5만원권에 등장하지만 그것이 고액권이라는 점이 화근이었다. 이자 없는 은행예금보다 현금을 집에 보관하기에 그 돈이 제격이라 장판 밑에 넣어두었다가 습기로 곰팡이가 피고, 회사 금고에 보관하다가 화재가 나서 소실되고 해서 많은 `사임당`이 사라지거나 훼손된다.그리고 `사임당`은 잘 돌지 않고 장롱속에 갇히는 통에 회수율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다른 지폐 회수율은 80% 이상이다.왜란(倭亂)을 예측하고 “십만의 병사를 길러야 한다” 했던 율곡의 어머니 사임당. 생존 당시에는 작품이 무시당했고, 지금은 고액권에 오르는 바람에 얼굴이 불타고 그림에 곰팡이 핀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7-22

7월에는 친구를

“7월에는/내 인생속에서/잊고 지내던 친구를 찾겠습니다//바쁘다는 핑계로/이름조차 기억하지 않았던 친구/설령 친구가/나를 기억하지 않는다 해도/상관하지 않겠습니다//친구를 찾게되면/내가 먼저 전화를 하겠습니다/없는 전화번호라고 안내되어도/한 번 더 전화해보겠습니다//결번이라는 신호음을 들으면서/묻어둔 기억을 다시 꺼내겠습니다//7월에 찾고 싶은 친구는/언젠가 만나야 할 그리움입니다/내 사랑입니다”61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난 윤보영 시인의 `7월에는 친구를` 이다. 그의 `친구`는 오뉴월 무더위를 식혀주는 소나기 같은 존재이고 아무 이해관계 없는 그저 순수한 정을 나누는 인연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친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득을 서로 주고받는 사이, 내게 보탬이 되지 않으면 아예 사귀지 않고 끌어주고 밀어주며 출세길에 동행할 친구들만 가진 이도 많다. 천성관 변호사는 과거 검찰총장 후보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재벌 2·3세 친구를 너무 많이 두었다. 건설업자로부터 15억원을 빌렸고, 업자와 해외 골프여행을 다녔고, 업자가 빌려준 고급승용차를 탔다. 청문회에서 몰매를 맞은 그는 결국 낙마하고 변호사가 됐다.진경준 검사장은 각계각층에 많은 친구를 두었다. 기업하는 친구의 도움으로 120억원의 주식대박을 터뜨렸고,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호로 승승장구했다. 이들 3명은 서울법대 동문이고, 이른바 `우병우 사단`의 일원이다. 진 검사장은 또 대기업의 탈세를 덮어주는 조건으로 처남 명의로 된 청소용역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게 했다. 그의 능수능란한 술수도 출세길에 한 몫을 했으니, 김대중·노무현정권때는 본적을 `전남 목포`로 했다가 이명박정권 이후에는 `서울`로 기재했다. 그는 평검사시절 사무실 컴퓨터로 주식거래를 하다가 적발됐지만 징계를 받지 않고 오히려 요직으로 올라갔다.그러나 오늘날 그 `영양가 있는 친구`들이 오히려 재앙이 되었다. 혼자 외롭게 묵묵히 일만 했더라면 쇠고랑 차는 일도 인생 종치는 패가망신도 없었을 것인데…./서동훈 (칼럼니스트)

2016-07-21

좀스러운 대국(大國)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이 국제재판에서 참패하자 필리핀이 기세를 올린다. EU에서 영국이 떠나는 브렉시트(Brexit)처럼 필리핀 네티즌들은 China Exit(첵시트·Chexit)운동을 벌인다. “중국은 이웃 국가 괴롭히기를 그만두라” “중국은 필리핀 영토에서 나가라” “서필리핀해(남중국해)는 너희 것이 아니다” 이런 글들이 해외 동포들에게 전달된다. 일본 외무성 기시다 후미오 장관도 응원한다. “영토분쟁 국제재판소 판결은 당사국 사이에 구속력을 가진다” 했다. 독도를 염두에 둔 말이 아닌가 싶다. 필리핀 어선들이 국제 중재재판소의 판결 후 서필리핀해에 조업을 나갔다가 중국 해경이 막는 바람에 되돌아왔다. 어선에는 필리핀 취재진이 타고 있었다. 힘으로는 안 되지만 국제여론의 위력을 빌려서라도 덩치 큰 나라에 맞서 보려는 것이다. 중국은 괘씸죄를 씌워 보복을 시작했다. 필리핀은 중국에 망고를 주로 팔아왔는데, 중국의 `애국 네티즌`들이 망고 불매운동을 벌인다. “이제 태국산 망고를 먹자” “필리핀인들을 굶어죽게 만들자”란 글을 날리는데, `관변 댓글부대`들이 “맞다. 잘 한다” 맞장구를 친다.중국의 소인배 근성은 여기저기서 보인다. 대만이 독립당의 차이잉원 총통을 뽑자, 중국은 대만행 관광객 수를 30%나 줄여서 `치졸한 복수`란 비난과 함께 “덩치값도 못하는 좀상” 소리를 듣는다. 일당독재국가인 중국은 정부와 민간이 한몸으로 움직이는데, 대형 여행사들은 대부분 국영이다. 대만인 걸그룹 멤버 쯔위가 대만국기를 흔들었다 해서 중국은 “한국 걸그룹은 중국에서 공연할 수 없다” 했다. 중국 영화에 주연배우로 캐스팅됐던 대만 배우 다이리런은 “반중 성향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중도 하차당했다.지난해 해외 망명을 신청한 중국인이 이집트와 시리아인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언론통제, 자유 옹호 인사 탄압 등으로 인권과 법치에서 멀어지는 조국을 등진 난민들이다. 중국이 아무리 맷집이 좋아도 국제여론의 몰매를 견디기는 어려울 터인데…./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7-20

법 앞에 평등?

“대어(大漁)는 그물을 찢는다” 이 말은 어디 가나 진리다. 덩치 큰 나라는 국제법도 무시하고 국제재판도 안중에 없다. 제 하고 싶은대로 할 뿐이다. 권력자 앞에서는 법이 흐물흐물한다. 그래서 다들 권력을 잡겠다고 눈에 불을 켠다. 권력이 있으면 재물이 생기고, 재물이 쌓이면 더 큰 권력을 노린다. 그러다가 재수가 없으면 감옥에 가는 수도 있지만, 그것은 재물을 너무 지나치게 탐했거나 재수가 없어도 아주 오지게 없는 경우다. 중국 남쪽에 있는 바다는 여러 나라들이 공유하는 해로(海路)이다. 중국,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등등이 이 바다를 끼고 있다. 그런데 중국이 “우리는 큰 나라이고 해안선도 길기 때문에 90%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국제법상 영해규정을 완전히 무시한 `힘의 논리`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암초지역을 매립해서 인공섬을 만들고 군용 비행장 등 군사요새를 조성해 놓았다. 그리고 “여기는 우리 해역이니 이곳을 통과하려면 허락을 받아라” 했다. 미국이 “무슨 소리냐” 대들고, 필리핀이 국제재판소에 제소를 했다.국제재판소는 국제법과 유엔법에 따른 합리적 판결을 내렸다. “중국은 필리핀의 전통적 어장에서 그들의 조업을 방해하고 원유·가스전을 개발하는 등 필리핀의 영토주권을 침해했다” 그러나 이 판결은 `선언적 효과`만 가질 뿐 강제집행할 수단이 없다.그래서 중국은 큰소리를 더 친다. “이번 판결은 불법이자 무효”라는 것이다. 인공섬을 자꾸 더 만들어서 군사기지를 넓혀가겠다는 뜻이다. 유엔으로서는 중국을 상대로 국제제재를 가할 배짱도 없다. 그래서 대어는 그물을 간단히 찢어버린다.국민의당 리베이트 사건에서, 왕주현 전 사무부총장은 구속되고, 그 윗선인 박선숙 사무총장과 김수민 의원은 빠져나갔다. 국회의원이 아니면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고, 의원이면 그런 우려가 없다는 해괴한 논리다. 왕씨는 윗선의 지시에 따른 하수인에 불과한데, 깃털만 감옥에 가고 몸통은 `그물`을 찢었다. 그래서 “출세 못 하면 개·돼지”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7-19

청개구리 기상대

“참으로 오랫만에/날아온 엽서같은//마당으로 뛰어든 청개구리 한 마리//마음속 고요를 열고/첨벙 운(韻)을 던지네//들어도 또 들어도/늘 그리운 파문으로//뼛속까지 저려오는 일획의 전언(傳言)처럼//무심의 이마를 치는/저 서늘한 여름 무늬” 올해 80이 되는 노시인 김종목의 시 `개구리 소리`다. 이 청개구리는 `말 안 듣는 청개구리`가 아니라, `모처럼 날아온 가상통보`이거나 `여름 운자를 던지는` 시심이다.청개구리를 두고 “제일 작은 것이 제일 큰 소리로 우는 녀석”이라 하는데, 그것은 오해다. 수컷들은 소리를 질러 암컷을 부르는데, 관심을 끌지 못하는 작은 청개구리들은 큰 개구리들 뒤에 조용히 숨어 있다가 암컷이 다가오면 잽싸게 먼저 뛰어나가 신부감을 낚아챈다. `힘` 없는 청개구리는 `꾀`로 혼인에 성공한다. “힘 쓰기보다 꾀 쓰기가 낫다” 속담도 있고, `거꾸로만 하는 청개구리` 라는 동화가 나온 연유가 여기에 있다.개구리는 항상 몸이 축축히 젖어 있어야 힘이 난다. 그래서 습도가 높을 때나 비가 내릴 때를 `허니문 데이`로 잡아 울기 시작한다. 밤은 낮보다 습도가 높으니 `어스름 달밤에 개구리 울음소리`란 민요가 나왔다.논에 물을 가득 채우는 모내기철에 유난히 개구리소리가 자지러지는 것도 `개구리 집단 결혼식`을 치르기 딱 좋은 길일(吉日)이기 때문이다. 개구리들은 따로따로 우는 것보다 모여서 우는 것이 유리하다는 지혜도 터득하고 있다. 소리를 모아야 멀리 있는 암컷의 귀에도 잘 들리기 때문이다.옛 사람들은 `기상청`도 없고 슈퍼컴퓨터도 없는 시절을 살았지만, 개구리울음소리 덕분에 비 올때를 잘 알았다. 비가 내릴 조짐이 보이면 개구리는 동물적 감각으로 그 낌새를 알아차리고 구애의 울음을 울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비가 오겠군. 씨를 뿌려야겠다” 영농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요즘 기상예보가 잘 안 맞는다. 때로는 거꾸로 가는 통에 “기상예보가 아니라 기상 중계”란 비난도 받고, “청개구리 기상대를 많이 조성하자”란 대안이 나오기도 한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7-18

21세기 과거제도

왕족·양반·평민·천민이라는 신분의 차이가 분명하고, 선비·농업인·공업인·장사치의 서열이 뚜렷한 세상, 그 `신분제`를 우리나라는 무려 2000년이나 지켜왔다. 신라, 고려, 조선조라는 왕조시대의 전통이 그렇게 길었다. `자유민주헌법`으로 바꾸었다 해서 그 오랜 전통이 순식간에 사라질 리 없다. 더욱이 과거(科擧)라는 고급관료 등용문이 `고등고시`로 남아 있으니, 관존민비 사상이 어디 가겠는가. 신라 35대 경덕왕 시절 충담사가 지은 `안민가` 속에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어머니요, 백성은 자식이라 했다. 백성을 자식처럼 아끼면 나라가 편안해진다고 했다.그러나 그 이념은 실현되지 않았다. 오늘날의 헌법에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했지만, 그것은 `선언적 의미` 일뿐 국민은 여전히 개·돼지다. 행정고시라는 과거시험에 붙어서 교육부 고위관리가 된 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술김에 한 실언이고 인용된 말”이라 둘러대지만, `취중진담`이다. 평소 마음에 있던 말이 술김에 튀어나왔다. 그는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관리는 양반으로, 백성은 천민으로 고정시키자는 것이다.일본인이 가장 잘하는 욕설이 “바카야로!”. `소나 들노루 같은 놈`이란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잘 하는 욕설이 “이 개 돼지 같은 놈!”이다. 인도의 `불가촉천민`이나 백인사회의 `니그로` 처럼 `인간 취급해 주지 않아도 좋은 짐승같은 존재`란 말이다. 우리 고대사에 한때는 짐승이 존중받는 토템사회가 있기는 했다. 관청이름을 `개부` `돼지부` `소부` `곰부` 로 붙였고, 12지신상은 수호신으로 존중받았다. 고조선시대 이야기인데, 지금은 그만 욕설의 재료가 돼버렸다.소설가 조정래씨가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에 대해 “국민의 99%가 개나 돼지라면 그들이 내는 세금을 받아먹고 사는 그는 기생충이나 진딧물”이라 했다. 고등고시를 거친 고급공무원들이 대체로 이런 `양반의식`을 가진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따위 `21세기 과거제도`를 이제 없앨 때가 됐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6-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