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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대령과 인연의 끈

우정구(객원논설위원)
등록일 2017-07-05 02:01 게재일 2017-07-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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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부두 철수작전은 알아도 그 당시 미10군단 참모부장 겸 탑재참모였던 애드워드 포니 대령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10만 피난민의 목숨을 건진 전쟁영웅이자 지금의 포항 해병사단을 있게 한 미국 장교가 포니 대령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또 얼마나 될까. 포항 해병대 1사단은 2010년 포니 대령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서문에서 본부앞 네거리까지의 중심도로를 포니로(路)로 명명했다. 포니 대령과 포항해병대 1사단과의 깊은 인연을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다.

1950년 12월, 흥남부두 철수작전은 역사적으로 많은 기록을 남겼다. 세계전쟁사상 가장 인도주의적 작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10만 명의 피난민을 싣기 위해 35만 t의 전쟁 물자를 내려두고 떠났던 당시 군 지휘관의 인도적 결심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작전에 마지막으로 투입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정원 60명의 화물선. 선원 47명이 이미 타고 있어 사람이 탈 자리라고는 13자리 밖에 없다. 그러나 전쟁물자를 내리고 10만명의 피난민을 이 배에 태운다. 정원의 무려 230배가 넘는다. 역사는 단일 선박으로 가장 큰 규모의 구조작전을 성공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한다. 이날 흥남부두를 떠나는 장면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그 상황들이 묘사됐다.

에드워드 포니 대령은 당시 미 10군단장 알몬드 소장을 설득해 10만명의 피난민을 수송선에 태울 수 있도록 한 인물이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그는 한국에 돌아와 해병대 사령부 수석고문으로 더 일한다. 경기도 금촌에 창설된 해병대 1사단을 포항에 이전하는데도 큰 역할을 한다. 최근 미국 방문 길에 올랐던 문재인 대통령이 맨 먼저 들린 장진호 기념비는 흥남부두 철수작전을 성공케 한 전투로 유명하다. 중공군 12만 명에게 포위당한 미군 1만7천명이 17일간 치열한 싸움을 벌인 전투였다. 포니대령의 후손이 해병대 초청으로 포항을 방문했다. 외손녀 엘리스 크루그(60)와 증손자 벤 포니(31)다. 포니대령이 만든 인연의 끈이다. 포항과의 기분 좋은 만남이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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