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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유튜브 선거전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예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우선 언론을 장악하는 것이 순서다. 절대 권력일수록 언론의 통제도 절대적이기 마련이다. 통제 밖으로 유출하는 언로를 막지 않고는 권력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에서도 시작부터 친정부 좌파들이 방송매체를 접수했다. 지난 정권이 발탁했거나 우파성향의 인사들은 당연히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방송매체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정보에 의존해서 현실을 인식하기 마련인데, 지상파 방송은 물론 보수성향 종편방송도 생사여탈권을 쥔 정권에 대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론을 필두로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틀어쥐면서 좌파들의 장기집권 플랜이 착착 진행 되는가 했다.그런데 의외의 변수가 발생했다. 유튜브(YouTube) 개인방송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이다. 지상파방송에서 쫓겨난 인사들이나 보수패널로 출연하던 평론가들이 유튜브 개인방송을 개설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정권의 억제로 막혔던 언로가 새로운 물꼬를 트고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노란딱지’를 붙여 수익을 차단하는 등의 제재가 가해졌지만 언론의 자유를 표방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원천봉쇄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유튜브는 미국의 구글(Google)사가 운영하는 동영상 공유 플랫폼이기 때문에 함부로 통제할 수 있는 매체가 아니다. 수십만의 구독자를 확보한 유튜버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맹활약을 하는 바람에 지상파방송들의 권력옹호가 잘 먹혀들지 않게 됐다.유튜브 개인방송은 대부분 그 성격이 좌와 우로 뚜렷이 갈린다. 즐겨 찾는 구독자들도 인터넷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자신들이 선호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게 돼, 양편 사이의 골은 점점 더 깊어졌다. 그래서 확증편향을 심화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지만, 일방의 독단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순기능이 더 많다고 할 것이다. 자유우파 유튜버들이 종북주사파가 주축이 된 좌편향 언론의 균형을 잡는 역할은 획기적이라 할 만하다. 악의적인 가짜뉴스가 양산되는 부작용을 감안하더라도 권력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유튜브 기능은 결코 적지가 않은 것이다.우리나라 좌파세력은 상당기간 학습된 논리와 단합된 조직을 가지고 있는 반면, 우파 성향의 국민들은 대부분 지리멸렬 개별적인데다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지식도 갖추지를 못했다. 그래서 좌파들의 준비된 공세에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유튜브 개인방송을 거점으로 한 보수성향 국민들의 반격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정의감과 양식을 갖춘 논객들이 명석한 해설과 논평으로 대거 보수층 국민들을 계도하고 탄탄한 논리로 무장시킨 것이다. 반민족 매국노와 친일 독재자로 매도되었던 이승만과 박정희를 건국과 민족중흥의 영웅으로 당당하게 추켜세울 수 있게 해준 것도 유튜브의 힘이었다.본격적인 대선정국에 들어서자 정권교체의 가망이 높아지고 있다. 다행히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면, 그 수훈의 갑은 자유우파 유튜버들이란 생각이다. 그들이 불철주야 사회의 혈맥인 언로를 열어 마비된 세상을 일깨운 덕이라 할 것이다.

2022-02-24

적폐청산과 정치보복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문재인 정권은 시작부터 소위 ‘적폐청산’에 전력했다. 그들이 말하는 적폐(積弊)란, 이명박·박근혜 두 전임 대통령의 모든 정치행위와 그것에 가담하거나 동조했던 사람들의 행적에 적용되는 말이었다. 그래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실정과 과오는 적폐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적폐청산 부처별 TF(Task Force) 구성현황과 운용계획을 회신하라’는 공문을 발송하자 정부 각 부처들은 조직적으로 과거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 활동에 들어갔다.지난 정권의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주요 인사들과 국정원, 검찰, 국방, 사법, 교육, 언론 등 전 분야에 걸쳐 대대적인 청산작업(?)을 감행했다. 그 결과 1천 여명을 수사해서 그 중 150여 명을 구속하는 실적을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들, 정부의 부처장은 물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까지 좌편향 인사들로 물갈이를 했다. 국회의석 180석을 차지한 여당은 위헌의 소지가 있는 공수처법, 대북전단금지법, 5·18특별법개정안, 언론중재법개정안, 임대차3법 등을 야당의 반대를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였다.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은 ‘강력한 분노’를 표명했다.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해야죠”라고 대답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윤 후보는 ‘시스템에 의한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를 할 것이고 대통령이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문 대통령은 ‘적폐가 있었으면 검찰총장 자리에 있을 땐 왜 하지 않았느냐. 없는 죄를 만들어 정치보복을 하려는 게 아니냐. 사과하라’고 했다. 그에 따라 청와대와 여당에선 일제히 ‘정치보복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윤 후보를 공격했고, 국민의힘당은 ‘대통령의 선거개입’이라고 맞받았다.그런데 문 대통령의 말에는 분명 어폐가 있었다. 윤 후보는 검찰총장 시절에 현 정권의 적폐를 알고도 모른 척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통해 조국 일가 비리수사나 울산시장선거조작,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 등을 수사하는 수사팀을 해체하는가 하면 윤석열 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총장 자리에서 몰아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을 터인데도, 시치미를 떼고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자유민주당 대표 고영주 변호사가 나열한 현 정권의 적폐혐의는 한둘이 아니다. 울산시장 선거개입과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말고도 라임·옵티머스 펀드사기, 태양광사업 비리, 탈북주민 강제북송 등도 결코 가볍지 않은 적폐라는 것이다.노무현을 수사한 것은 정치보복이고, 이명박·박근혜를 감옥에 넣은 것은 적폐청산이라는 논리는 적어도 과반수의 국민들에겐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 다시 야당대권후보에게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내가 하면 적폐청산, 남이 하면 정치보복’이라는, 문재인 정권이 초지일관 견지해온 ‘내로남불’의 결정판으로 손색이 없겠다. 하지만 그것은 저들만의 일시적인 정신승리일 뿐, 남에게 휘둘렀던 적폐의 잣대가 결국엔 자신들에게도 돌아올 거라는 불안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2022-02-17

입춘첩(立春帖)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일 년을 24등분 한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는 중국 주(周)나라 때 만들어 졌다고 한다. 동이족으로 알려진 희화자(羲和子)라는 사람이 주나라 책력을 기반으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지구에서 보기에 태양이 하늘을 일 년에 걸쳐 이동하는 경로인 황도(黃道)를 기준으로 해서 달을 기준으로 한 음력(陰曆)과는 맞지 않는다. 태양의 기울기에 따라 변하는 온도의 차가 농경사회에서는 중요한 조건이었기 때문에 따로 24절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황도 좌표의 경도(經度)를 황경이라 하는데 춘분을 기점(0°)으로 하지는 90°, 추분은 180°, 동지는 270°, 다음 춘분까지는 360°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충렬왕 때 도입이 되었고, 2016년 12월 1일 중국의 신청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입춘(立春)은 이십사절기의 시작인 첫 번째 절기다. 봄이 들어선다는 의미가 있지만, 중국 화북지방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서 우리나라에서는 한참 이르다. 아직은 겨울이 가시지 않았지만 설명절과 겹치니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도 있고, 봄을 좀 가불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튼 입춘첩을 써 붙이는 등 한 해의 안녕과 행운을 기원하는 풍습은 지금도 남아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대궐에서는 설날에 문신들이 지어 올린 연상시(延祥詩) 중에서 잘된 것을 선정하여 대궐의 기둥과 난간에다 입춘첩을 써 붙이는데, 이것을 ‘춘첩자’라고 한다. 경사대부 및 도시나 시골 할 것 없이 일반 민가와 상점에서도 모두 입춘첩을 붙이고 새봄을 송축한다. 이것을 ‘춘축’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민간에서는 입춘첩으로 그 해의 행운을 빌고 축원하는 상서로운 글귀를 써서 대문이나 대들보, 부엌문 등에 붙였다. 주로 쓰이는 입춘첩으로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댜경(建陽多慶)’,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 ‘수여산(壽如山) 부여해(富如海)’, ‘거천재(去千災) 래백복(來百福)’, ‘부모천년수(父母千年壽) 자손만대영(子孫萬代榮)’,‘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 사방무일사(四方無一事)’등이 있고, 사대부들은 좋은 글귀를 새로 지어 쓰거나 혹은 옛사람들의 문장 중에서 좋은 구절을 골라 쓰기도 했다.나라가 하 수상해서 입춘첩이라도 써 붙이고 싶은 심정인데, 이 시국에 어울리는 문구로는 어떤 것이 좋을까. 우선은 ‘괴질극복, 평상회복’이었으면 좋겠다. 2년 동안이나 조금도 누그러질 기미가 없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온 세계를 불안과 우울의 그늘로 뒤덮고 있다. 올해는 부디 그 먹구름이 걷히기를 기원한다. 또 하나는 대선이 임박한 때이니 만큼 제대로 된 인성과 식견을 가진 사람이 선출되어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는 의미로 ‘양재선출, 정상국가’를 써 붙이고 싶다. 특히나 북한의 정세가 매우 불안정하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급변사태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굳건하고 긴밀한 한미 동조로 일단 유사시에 대한 철저한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확고한 한미동조’야 말로 ‘확실한 통일한국’의 첩경이다. 위태롭고 불안한 정권은 바꾸어야 한다.

2022-02-03

선거판 막장드라마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광산 갱도의 가장 안쪽 막다른 곳을 막장이라고 한다. 광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땀 흘려 일하는 절실한 삶의 현장이다. 오늘이 있기까지 대한민국 산업을 일으킨 동력을 제공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막장이란 말이 ‘막장드라마’나 ‘막장국회’처럼 좋지 않은 쪽으로 쓰여 광부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다. 이 때의 막장이란 ‘갈 데까지 간, 가장 나쁜 상태’란 의미가 된다. 막장드라마란 조어를 한 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보통은 불륜, 패륜, 선정, 폭력 등 불건전하고 비상식적이거나 자극적인 요소들을 남발하여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저질 드라마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대선정국이 가열되자 여기저기서 막장드라마를 뺨치는 사건들이 불거지고 있다. 공영방송이 야권 대선후보 배우자의 사적인 전화통화 녹취록을 공개한 사건이 그 한 가지다. 유튜브방송 기자를 자칭하는 인물이 비열하고 간교한 속임수로 접근해서 수십 차례 통화한 것을 몰래 녹음하여 퍼뜨리고 공영방송에까지 넘겨준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의리조차 짓밟은, 인간성의 막장을 보여주는 추악한 짓이다. 그것을 받아 방송한 MBC나 한 건을 잡았다고 쾌재를 부르며 본방사수니 뭐니 호들갑을 떤 여권 인사들이나 상식적인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은 마찬가지로 보인다.여권 대선후보를 둘러싼 추문과 의혹들은 어떤 막장드라마도 따라가지 못할 막장의 극치를 보여준다. 먼저 후보자가 친형과 형수에게 내뱉은 악담과 욕설은 보통의 비위를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끝까지 들을 수 없을 정도다. 인성의 밑바닥까지 더럽혀진 사람이 아니고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내용들이다. 자신을 닦고 집안을 바로 꾸린 후에야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을진대, 피를 나눈 형제에게도 그런 패악질을 해대는 사람이 생판 남인 국민을 위해서 옳은 일을 하겠다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그야말로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할 일이다. 국민은커녕 형제도 안중에 없고 오로지 자신의 야욕과 영달을 위해서만 못할 짓이 없는 사람에게 어찌 나라를 맡기겠는가.관련자들이 몇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한 ‘대장동사건’도 또 다른 막장드라마다. 월세도 못 내서 폐업하는 소상공인들이 부지기수인데, 불과 몇 억의 자본금으로 수천억을 벌었다는 것은 막장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일이 아닌가. 당시의 시장이었던 사람은 본인이 설계하고 결제한 일인데도 비리와 부정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열흘이나 함께 여행을 한 부하직원도 모른다는 사람의 말을 누가 믿는가. 그런 인물을 대선후보로 지지하는 국민들이 무려 40% 가까이 되어서 지지율 1위인 여론조사도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다.대통령직은 국운을 좌우하는 자리다. 악화일로의 미·중관계나 연이은 북한의 도발로 위험이 고조되는 시국에 사리사욕이나 진영논리로 대선에 임하는 것은 천추의 한을 남기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누가 되든 내 알 바 아니라는 방관이나 그 놈이 그 놈이라는 냉소적인 양비론도 민주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방기한 무책임한 태도다.

2022-01-27

겨울 들판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흰 비닐로 감싼 볏짚뭉치들이 박하사탕을 뿌려놓은 것 같던 진풍경도 사라지면 겨울들판은 자유의 몸이 된다. 옛날처럼 이모작으로 보리를 심지 않으니 내년 모내기철이 될 때까지는 휴식의 기간이다. 텅 빈 들판을 불어가는 바람도 거칠 것이 없고 오가는 새들도 얽매임이 없다. 날마다 들판을 한 바퀴 돌아오는 내 발길도 자유롭고 해찰하는 마음에도 걸림이나 구속이 없다.사방이 트인 들판에는 사철 바람 잘 날이 없다. 미풍에서 태풍까지, 삭풍에서 열풍까지, 무수한 스펙트럼의 바람이 시시때때 방향을 바꾸어 불어간다. 그래서 바람은 들판의 호흡이고 기분이다. 방한복으로 온몸을 감싸고 태풍 급의 칼바람 속을 걸어가는 것은 가슴 뿌듯한 겨울의 맛이다. 거침없이 불어가는 바람을 안간힘으로 버티며 걷다보면 원초적 존재감 같은 것이 차오른다. 찌들고 남루해진 목숨이 한 아름 벅찬 생명감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바람을 거슬러 걸어간 길을 등 떠밀려 돌아오는 건 또 다른 기분이다. 이 풍진 세상을 사는 동안 누가 이렇게 확실하게 등을 밀어 준 적이 있었던가.겨울 들판엔 씨를 뿌린 듯 온통 참새들 천지다. 추수할 때 떨어진 낟알 때문에 겨울 동안 들판은 새들의 나라다. 비둘기나 까치 같은 텃새도 없지 않지만 가장 흔한 것이 참새다. 새 이름에 ‘참’자가 든 것은 ‘참한 새’라는 뜻인가? 농부들에게는 참하기는커녕 애써 지은 농작물을 축내는 얄미운 새이다. 허수아비를 세우거나 솔개모형의 연을 매달아 놓기도 하지만 그다지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참새들은 잠시를 가만히 있지 않는다. 땅에 내려서도 걷는 법이 없다. 아무튼 끊임없이 날고 뛰고 재잘거리는, 한 점 어둡고 무거운 기색이 없는 그 생기발랄이 좋다.이 들녘엔 해마다 먼 곳에서 손님이 찾아온다. 청둥오리와 고니와 기러기들이다. 청둥오리는 텃새가 된 것까지 합해서 수백 마리는 될 것 같은데, 멸종위기생물 2급에다 천년기념물 20-1호로 지정된 고니는 흔하지가 않다. 기러기도 이 들에선 보기 드문 손님들이다. 편애하는 것까진 아니지만 시베리아나 알래스카 같은 머나먼 곳에서 이곳 한반도 동남쪽까지 찾아온 손님들이라 사뭇 반갑고 설레는 마음이다. 이번 겨울에는 고니 50여 마리와 기러기 일곱 마리가 산책길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놀라서 달아나지 않도록 멀리서 조심스럽게 바라보곤 한다. 경계를 늦추지 않다가 다가가면 후다닥 날아오르는 걸 보면 본능적으로 사람을 위험한 동물로 느끼는 것 같다.얼핏 보면 무채색의 텅 빈 들판 같지만, 이렇듯 뜨거운 생명감이 있는가 하면 발랄한 생동감이 있고, 기쁘고 설레는 긴장감도 있다. 나는 그 모두를 통틀어 자유라 부르고 싶다. 인류가 추구하는 자유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진정한 자유란 자연스러움에 더도 덜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무튼 이 들판엔 아무런 구속이나 억압이 없다. 정치적 이념도 없고 백신패스도 없다. 누구든 틈나는 대로 겨울들판의 자유를 누려보시길 권한다. 무겁고 어둡고 복잡한 마음 다 내려놓고 겨울바람 속을 걸으며 새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힐링’이 될 것이다.

2022-01-13

위기의 대한민국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우리는 사라져가는 이 나라를 위해/ 애써 ‘대한 만세’라고 작별인사를 보낸다./ 그래, 한 국가로써 이 민족은 몰락하고 있다./ 어쩌면 다시 일어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말없이 마음이 따뜻한 이 민족에게/ 파도 너머로 작별인사를 보낸다./ 지금 나의 심정은/ 마치 한 민족을 무덤에 묻고 돌아오는/ 장례행렬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착잡하기만 하다….”독일인 선교사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1911년 우리나라를 다녀가면서 쓴 글이라 한다. 한일합방으로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이듬해이니, 망해가는 나라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서려 있는 글이다. 일본이 소위 대동아전쟁을 일으키고 진주만을 기습해서 미국의 원자폭탄을 맞고 패망하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일본 영토가 되고 우리는 모두 일본인이 되었을 것이다. 베버 신부가 본 것처럼 우리에게는 일제의 손아귀를 벗어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당시에 우리나라를 다녀간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구한말의 백성들은 가난에 찌들어 누추하고 무력한 모습이었다. 일본이나 중국인에 비해 체구도 크고 성품도 좋아 보였지만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에 시달려 몹시 피폐한 생활상이었다는 것이다. 의욕을 가지고 노력을 해봤자 부패하고 악랄한 한 관리들에게 수탈의 빌미를 줄 뿐이니 가난과 체념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거였다. 여행가 헤세 바르텍은 ‘조선, 1894년 여름’이란 책에서 당시 서울(한양)의 모습을 이렇게 적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거리로 하수가 흘러들어 도랑이 되어버린 도시가 또 있을까? 한양은 산업도, 굴뚝도, 유리창도, 계단도 없는 도시, 극장과 커피숍이나 찻집, 공원과 정원, 이발소도 없는 도시다. 집에는 가구나 침대도 없으며, 변소는 직접 거리로 통해 있다. 남녀 할 것 없이 모든 주민들이 흰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다른 곳보다 더 더럽고 똥 천지인 도시가 어디에 또 있을까? ….”그랬던 나라가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우뚝 선 것은 무엇보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6·25 전쟁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을 때 미국을 위시한 유엔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난 것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때 중공군의 개입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훨씬 더 부강한 통일국가가 되었을 텐데 천추의 한이 아닐 수 없다. 오로지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산업화에 매진한 박정희 대통령의 통찰력과 추진력도 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새마을 운동’으로 다잡아 의욕과 희망을 가지게 한 것도 인류역사에 남을 혁신적 혜안이고 쾌거였다.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이 또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가 피땀으로 쌓아올린 공든 탑을 일시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좌파정권이 보여주었다. 좌파세력들의 집요한 세뇌공작으로 국민 대다수가 무의식중에 좌파성향을 갖게 되어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패망의 길을 걷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2022-01-06

돌아보는 2021년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다시 겨울이 오고 한 해가 기울었다. 세밑이 되면 지난 해를 돌아보게 된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을 잘 하기 위해서는 지난 것을 무조건 버리고 잊을 것이 아니라 돌아보고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의 삶일지라도 몸담고 있는 사회에 무관할 수는 없을진대, 나의 삶을 돌아보는 것에는 국가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도 포함이 된다. 국제정세까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의 사정은 각종 매스컴을 통해 대강은 훑어보면서 지나왔기에 여러 가지로 감회가 착잡하다.지난 일 년을 관통하는 가장 큰 이슈는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느 분야도 팬데믹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비대면 대인관계, 집회·결사·종교의 자유 제한, 경제적 파산지경에 몰린 사람들, 천재지변에 가까운 충격파가 온 나라를 휩쓸었다. 21세기 문명세계가 바이러스 전염병 때문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인류문명에 대한 상당한 회의와 불안을 가져다주었다. 더불어서 자원고갈,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등 각종 불안요소들이 한 발짝 더 구체적으로 다가선다. 기고만장하던 과학만능주의가 희망보다는 불안의 그림자를 안고 있다는 사실, 인류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을 너무 멀리 와버린 거라는 절망감을 실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지난 한 해는 문재인 정권을 결산하는 해이기도 했다. 아직 임기가 5개월여 남긴 헸지만 그릇된 정치적 이념을 가진 지도자와 그를 지지하는 무리들이 나라를 어떻게 망칠 수 있는가는 충분히 보여주었다. 실패한 구시대적 산물인 사회주의 이념에다 북한의 주체사상까지 더해진 황당한 논리와 주장으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정책으로 혼란과 퇴보를 자초했다. 국제사회의 망신만 산 외교, 포퓰리즘 미봉책으로 빚더미에 앉은 경제, 한미동맹을 저해하고 북한의 핵무장만 강화시킨 안보, 삼권분립과 법치의 파괴, 실책과 무능을 호도하는 편향된 언론 등 좌파정권의 실체와 한계를 더 이상은 볼 필요도 없게 다 드러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갈등과 대립의 골이 깊어지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가치관의 혼란을 초래한 일이었다. 거짓과 위선과 후안무치가 정의와 능력인 양 호도되는 사회, 제 편이면 무슨 짓이든 무조건 용납되고 미화되는 진영논리가 천박하고 비뚤어진 사회를 만들었다.대선정국에도 유례가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인성이나 양식이 보통사람의 수준은 되어야 할 텐데, 파렴치한 전과와 엄청난 비리의혹에다 패륜적이고 후안무치한 언행을 일삼는 사람이 상당한 지지를 받는 후보인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당의 대표가 언론사마다 찾아다니며 시시콜콜 자기 당내의 분란을 까발리고 후보를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으니 실로 해괴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그 당 대표의 ‘성접대’ 의혹이 불거져도 오히려 반대편 당에서 두둔을 하고 나서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민심은 지금 불순한 이념이 초래한 정치적 팬데믹에 빠져있다. 코로나19와 함께 물리쳐야 할 병폐가 아닐 수 없다.

2021-12-30

성탄절 추억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 청소년 시절엔 부지런히 교회를 드나들었다. 함석지붕의 단층 목조건물과 나무기둥의 종각이 있는 작은 교회에는 낡은 풍금도 있었다. 산과 들 말고는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청소년들에게 더없이 좋은 만남의 장소였다. 교회의 청소나 페인트칠 등 자질구레한 일들은 모두 청소년들이 맡아서 했는데, 그 중에서도 성탄절행사 준비가 가장 큰 일이었다. 소나무를 베어와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고, 대나무 뼈대에 창호지를 발라 별모양의 등을 만들었다. 저녁마다 모여 유초등부 어린이들에게 성극과 무용, 합창 연습도 시켰다. 한밤중에 오들오들 떨면서 촛불을 켠 별등을 들고 먼 마을까지 새벽송을 갔던 일도 잊지 못한다. 청소년기가 끝날 무렵, 문학이니 철학이니 독서에 빠져들면서 교회를 떠났지만 해마다 성탄절이면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살을 에는 삭풍에 문풍지 우는 밤이면, “까막까치 다 얼어 죽겠다.” 할머니는 그렇게 짐승들 걱정을 잊지 않았다. 요즘처럼 방음장치 된 이중 창문 안에서는 밖에 태풍이 불거나 난리가 나도 모르겠지만 옛날 창호지문으로는 낙엽 지는 소리 달빛에 수런대는 댓잎소리도 환히 들렸다. 방안에 누워서도 한 호흡으로 자연과 소통하니 어찌 날짐승들 안부인들 궁금하지 않겠는가.단간 셋방에 신접살림을 차려 첫 아이를 얻은 해 겨울이었다. 한파가 닥쳐 밤새도록 전신주가 울부짖고 깨어질 듯 창문이 덜컹대는 밤이었다. 무심결에 ‘까막까치 다 얼어 죽겠네’ 중얼거리다 문득, 낮에 본 시장 바닥의 거지 모자가 생각났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듯한 여자가 두어 돌이 되었을까 싶은 아이와 함께 누더기를 뒤집어쓰고 시장 땅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어린것이 이 밤을 넘길 수 있을까, 생각하니 하얗게 잠이 달아났다. 내 아이는 기침만 해도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는데….“혹한을 몰아오는 칼바람에/ 밤새도록 전신주가 울부짖고/ 깨어져라 창문이 덜컹댄다// “문 열어라 이놈들아,/ 너희만 살면 다냐?”// 시장 바닥에 실성한 그 여자/ 두어 돌이 되었을까 싶은 어린것과 함께/ 이 밤 무사할까, 얼어 죽지나 않을까”- 졸시 ‘겨울 밤’이튿날 아침에 찾아가보니 먹을 것을 얻으러 갔는지 여자는 보이지 않고 아이 혼자 사시나무처럼 떨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생각나는 대로 읍사무소 사회과로 전화를 해봤으나 아무 대책이 없다고 했다. 몇 군데 교회에 전화를 해서 겨울 동안만 데려다 놓을 수 없겠느냐고 했지만 역시 안 되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교회 청년들을 불러 의논을 했다. 권사인 장모님의 간곡한 청을 거절할 수 없어 결혼 후 건성으로 다니던 교회였다. 텐트가 좋겠다는 결론이 났다. 히말라야 눈 속에서도 텐트로 야영을 하지 않던가. 주머니를 털어 시내로 텐트를 사러갔다. 사정을 얘기 했더니 텐트 값을 많이 깎아주었다.시장 귀퉁이에 텐트를 치고 바닥에는 두꺼운 스티로폼을 깔았다. 오줌에 절은 누더기도 버리고 깨끗한 이불로 갈았다. 따끈한 호빵을 한 봉지 사서 안겨 주었더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어둠이 내리고 희끗희끗 눈발이 날렸다. 성탄전야였다.

2021-12-23

무 싹이 나왔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동치미 담그고 남은 자잘한 무 몇 개/ 밑동을 잘라내고 수반에 세웠더니/ 파릇한 싹이 돋아나 자꾸만 눈길을 끈다// 잘려진 무 동강이 기를 쓰고 밀어 올리는/ 꽃도 씨도 되지 못할 무모한 무의 싹이/ 겨우내 어둑한 방에 싱싱한 긴장을 채운다// 생명이란 무얼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시시각각 그 자체로 목적이고 충만이라고/ 연약한 무 싹이 번쩍, 나를 들어 올린다” -졸시 ‘무 싹이 나왔다’마트에서 사온 무나 당근도 며칠 두면 싹이 나온다. 생장조건이 맞지 않을 것 같은 비닐봉지 속에서 어느새 노랗게 싹을 내민 것을 버리기가 뭣해서 대강이를 잘라 수반에 세워 두고 한동안 함께 지내곤 한다. 서재 겸 침실인 좁고 어둑한 방에서 겨우내 무나 당근의 싹과 함께 호흡을 한다는 건 작지만 그런대로 생기로운 일이다. 먼지를 뒤집어쓴 수천 권의 책보다 무 대강이 하나가 내민 새싹이 훨씬 더 생생한 생명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무나 배추 같은 채소는 봄에 씨를 뿌리면 장다리가 나와 꽃이 피고 씨를 맺는다. 그것이 한해살이 식물의 정상적인 한 사이클이다. 늦가을에 수확을 하는 김장용 무나 배추는 그런 과정을 벗어난 비정상적인 것이다. 사람의 용도에 맞게 인위적으로 품종개량을 하고 심는 시기를 늦추어서 꽃피고 씨를 맺지 못하도록 한 것이니 식물로서는 여간 억울한 노릇이 아닐 터인데, 아랑곳하지 않고 무성하게 자란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그러니까, 식물의 성장을 두고 꽃 피우고 씨를 맺기 위한 수단이나 과정으로만 보는 것은 편협한 생각인 것이다.위의 시는 오래 전에 그런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고 쓴 것이다. 잘려진 무 동강이가 한사코 밀어 올리는 새싹을 무모하고 측은하게만 바라보던 나에게 어느 날 문득 한 소식이 온 거였다. 어떤 경우이든 생명이란 무얼 위한 수단이나 과정이 아니라 시시각각 그 자체로 완성이고 충만(充滿)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그것은 비단 무나 당근 같은 식물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 인간에게도 해당하는 진리요 섭리라는 것이다. 삶의 무목적성이야말로 오히려 허무와 절망을 무산시키고 활로를 여는 역설이었다. 우리가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은 어딘가에 있거나 스스로 상정한 바로 그 목적이라는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얼마 전 ‘대장동 사건’에 관련되어 수사를 받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는 성남도시개발 사업본부장을 거쳐 경기도 포천도시공사 사장 자리까지 올랐으니 제법 출세를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것을 미루어볼 때 그 출세가도가 공명정대하지만은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출세라는 목적을 위해서 나름 열심히 달려 왔겠지만 막상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그동안 성취해온 것들이 별 소용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지 않았을까 싶다.‘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한다’는 것을 모토로 지금 대선판을 종횡무진 누비는 어느 후보도 그 결말이 아름답지는 못할 거라는 느낌이 든다. 그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짓밟은 것들이 결국 그를 삼켜버릴 늪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2021-12-16

세계 인권의 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 났으며 서로 동포의 정신으로 행동해야 한다.’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1조다. 전문과 30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선언은 인간으로서 시민적·정치적 자유 및 사회보장과 노동권, 공정한 보수를 받을 권리, 노동자의 단결권, 노동시간의 제한과 휴식, 교육에 관한 권리,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등 사회적·경제적 권리에 관한 규정을 하고 있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자면 당연한 소리 같지만, 수천 년 인류문명사가 마침내 도달한 최상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규정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그것을 기념하여 1950년 12월 4일에 열린 유엔총회에서 매년 12월 10일을 세계 인권 선언일로 결의하였다.인권(人權)이란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인간의 권리 및 지위와 자격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이는 한마디로 ‘사람은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으로 지역이나 민족, 성별, 나이 등에 관계없이 적용되는 보편성을 지닌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오늘날 국제법이나 국제 규약, 대다수 국가들의 국내법에 실정법으로 규정된 인권은 자연법(自然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자연법은 자연과 이성을 전제로 하는 법으로서, 자연법 규범의 절대성을 인정하는 자연법사상을 내용으로 한다. 자연법론은 신이 정한 인간사회의 질서로서 형이상학적으로 존재한다는 전통적 자연법론과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인식된다고 정의하는 근세적 자연법론으로 나뉜다. 현대 법사상의 흐름은 실정법과 자연법의 대립적 태도를 지양하고 그 조화를 요청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유엔은 지난달 17년 연속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안은 고문·자의적 구금·성폭력, 정치범수용소, 이동의 자유 제한, 송환된 탈북자 처우, 종교·표현·집회의 자유 제약 등 북한 정부차원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강력한 용어로 규탄하고 있다. 아울러 이산가족 상봉 재개와 일본인 납북 피해자 즉각 소환, 미송환 전쟁포로와 그 후손에 대한 인권침해 우려 등도 올해 처음으로 추가됐다.그런데 정작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인권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분단과 전쟁으로 생이별을 한 천만 이산가족의 당사국인 대한민국이 3년 연속으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의 공동제안국 동참을 거부한 사실에 대해 국제사회는 의아해 한다. ‘한반도 상황을 고려해서’라는 이 정부의 궁색한 변명으로는 북한 주민의 인권은 아랑곳없이 세계가 지목하는 최악의 독재자 김정은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한 게 아니냐는 비난을 면할 수가 없을 터이다. 무슨 명분으로든 그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외면하는 반인륜적이고 비정상적인 처사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2021-12-09

초겨울 단상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12월 초순이다. 아직은 가을의 잔병들이 머뭇거리고 있지만 입동과 소설이 지났으니 절기상으로는 겨울인 셈이다. 만산홍엽 타오르던 단풍은 낙엽이 되고 엽록소를 탈색한 마른 풀잎들이 싸늘해진 북서풍에 수런거리는 계절이다. 개구리와 뱀이 동면에 들어가고 풀벌레들도 월동준비를 마치면 겨울 철새들이 돌아온다. 초겨울의 대략적인 풍경은 이러하지만 자세한 내막으로는 적지 않은 예외와 이변도 없지 않다. 특히나 풀을 배어낸 곳에는 뒤늦게 새싹이 돋아나 철없이 꽃을 피운 것도 있고, 가끔씩은 메뚜기나 나비가 초췌한 모습으로 눈에 띄기도 한다.12월은 세월의 강물 소리를 듣는 달이다. 벽시계의 톱니 소리를 평소엔 의식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듣게 되는 것처럼 한 해의 막바지에선 문득 세월의 흐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세월의 강에 인간사가 휩쓸려가면서 역사가 된다. 얼마 전 그 역사의 흐름에 두 전직 대통령이 잇달아 떠내려갔다. 그들의 재임기간과 박정희 정권 시절을 포함한 삼십년을 군사정권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그 삼십 년 동안 대한민국은 가장 눈부신 성장을 했다. 국민소득이 고작 100불에 불과하던 극빈 후진국이 8천불이 넘는 국민소득에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치른 중진국으로 도약한 것이다. 그 성과와 업적에 대해서는 김일성이 집권한 북한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알 터이다. 군사독재라고 하지만 그것이 북한 김일성의 독재와는 어떻게 다른지를 증명하는 일이다.박정희의 5·16은 다행히 무혈의 쿠데타였지만 전두환의 군사정변은 5·18이라는 유혈사태를 초래했다. 항쟁하던 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해서 무장을 하지 않았더라면 희생이 훨씬 적었을 테지만, 12·12사태와 과잉진압 등이 원안제공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두 사람 다 대통령 임기를 마치기는 했지만 후임 김영삼 정권 때 군사반란 및 내란혐의, 불법비자금조성 등의 혐의로 처벌받고 자격을 박탈당했다. 나중에 특별사면을 받았으나 전임 대통령의 예우는 물론 유골을 묻을 장지조차 정하지 못한 처지라고 한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 발생했던 일들도 600년이 지난 오늘에는 은원친소의 감정을 떠난 역사적 사실로만 평가를 하듯, 군사정권 30년도 먼 훗날에는 원한과 감정의 앙금이 가신 역사적 사실로만 남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5·16도 5·18도 진행 중인 역사다.인류역사라는 대하(大河)의 한 지류인 대한민국 역사는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통치자 한 사람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는 예가 드물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가 석 달 앞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현 정권 사람들의 언행을 보면 이대로 가다가는 뭔가 크게 잘못될 수도 있다는 우려와 불안을 금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온 국민이 신뢰하고 기대할 만한 후보가 없다고 한다.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빗방울이 모여 강을 이루듯 국민 개개인의 의지와 판단이 역사의 흐름을 만든다. 한 해가 기우는 초겨울, 나를 돌아보는 일과 함께 역사의 향방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이다.

2021-12-02

대선정국 읽기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정부를 수립한 지 73년이 되는 대한민국은 그동안 6·25전쟁과 4·19혁명, 5·16군사정변, 5·18항쟁, 대규모 촛불시위 등 몇 번이나 위기와 혼란을 거듭하면서도 상당한 발전을 지속해왔다. 산업화로 일컬어지는 경제발전과 민주화로 불리는 자유민주주의 신장은 서로 길항하면서도 결국 상승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된다. 경제발전을 기반으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었고, 자유민주주의 토대 위에서 한 단계 더 경제적 도약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숱한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70년 역사는 큰 흐름에서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그 결과 세계 10위권의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그러나 아직도 균열이 깊은 이념갈등과 핵무장한 북한은 커다란 불안과 위협의 요소로 남아 있다. 일차적으로는 남남갈등으로 대변되는 좌·우 이념의 대립이 국민화합과 나라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군사정권에 이어 문민정부가 시작되자 그동안 탄압을 받았던 좌파들이 양성화되어 세력을 확장해가면서 우파와의 갈등과 불화가 끊이지 않다가 소위 주사파 운동권 세력이 주도하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부터는 매우 심각한 대립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백여 일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 역사의 한 전기(轉機)가 될 것이다. 좌파 운동권 세력이 주도하는 정권을 심판하는 선거가 될 것이기에 그렇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적지 않다. 그것은 곧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전철을 밟는 일이다.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절체절명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1980년대 이후 각종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진지를 구축한 좌파세력은 민노총, 민변, 참여연대 등이 주도하면서 강력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마침내 정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친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몰지각하고 시대착오적인 망상에 사로잡힌 세력이 주축이 된 정권은 얼마 못 가서 그 한계와 본색을 드러냈다. 지난 정권은 적폐로 몰아 처벌해놓고 정작 자신들의 비리와 부정을 덮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가 하면 소득주도 성장이란 ‘퍼주기식’ 포퓰리즘으로 나라 경제를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굴종적 대북정책에 목을 매는가 하면 노골적인 반미친중으로 자유우방들과의 외교를 망치고, 세계 최고 기술력의 원전을 포기하는 대신 자연을 훼손하고 경제성이 떨어지는 태양광발전에 매달리고, 가뭄과 홍수에 대비한 4대강 사업을 악의로 왜곡 폄훼하여 파괴하려는 정권이다.좌파정권의 파렴치와 부도덕성은 대선후보 선출에서 정점을 찍은 것 같다. 운동권 출신 권경애 변호사의 탄식처럼 이재명 후보가 그들의 결론이자 결과일진대, 그것은 대한민국의 국운이 아직 다하지 않아 새로운 전기가 올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만천하에 드러난 그의 패륜적 행태나 포퓰리즘의 전형을 보여주는 나랏돈 퍼주기, 대장동 사건을 비롯한 각종 비리에 버물린 의혹들만 하더라도 도무지 국정을 맡길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어찌 모르겠는가.

2021-11-25

합리적 추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인생에는 합리적 추론이 필요할 때가 많다. 사람의 심리는 복잡 미묘하고 안팎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리학이나 논리학, 정신의학 등에서 합리적 추론에 관련된 연구를 해왔다. 물론 학문적이고 전문적인 영역 말고도 상식적 수준에서의 합리적 추론은 일상생활에서 다반사로 있는 일이다. 사람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시시각각 분별하고 판단해서 삶을 영위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합리적 추론이 필수적인 요건이 아닐 수 없다.추론(推論)이란 이미 알고 있거나 확인된 정보로부터 논리적 결론을 도출하는 행위나 과정을 말한다. 즉 어떤 판단을 근거로 다른 판단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그 판단의 근거가 되는 정보나 자료가 이치에 맞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합리적 추론의 과정이 필요하고, 합리적 추론을 위해서는 기왕의 사실이나 정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개인적 호불호나 이념적 편향에 등에 따른 편견이나 고정관념으로 정보의 수용에서부터 왜곡이나 오류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여당 대선 후보 배우자가 한밤중에 낙상(?)을 해서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된 사건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여당에서는 가짜뉴스에 강력 대처하겠다며 유포자 두 명을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가짜뉴스의 확산에 빌미를 준 것은 사고경위에 대한 설명이 명확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는 낙상사고라고만 했다가 나중에는 구토 설사 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열상을 입었다는 해명이 뭔가 미심쩍은 뉘앙스로 받아들여진 거였다. 병원 진료기록에는 오심 구토 설사 의식소실이라고 적혀있다니 일단은 그것을 판단의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이다.그런데 그날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야근을 마치고 퇴근했다가 다시 불려나가 질책을 당했다고 한다. VIP의 사건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이유란다. 누가 시청의 익명게시판에 올린 그 사실이 일파만파로 퍼져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사고 당사자가 VIP일 경우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데다, 그게 어찌 퇴근한 사람을 불러내어 문책할 만큼 다급하고 중대한 일인가. 다음날 출근을 하면 불러도 충분한 일인데,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퇴근한 구급대원을 서둘러 불러낸 것에는 필시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 아마도 그 상급자는 어디로부터 무슨 지시(?)를 받지 않았을까, VIP의 사건을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문책이란 구실일 뿐이고, 그날 그 사고현장에서 구급대원들이 보고들은 일체의 사실에 대한 함구령을 내리려는 것이 화급히 불러낸 진짜 이유가 아닐까.대선정국에는 온갖 가짜뉴스가 난무하기 마련이다. 거짓으로 꾸며서라도 자기 편 후보는 미화하고, 상대편 후보는 어떻게든 흠집을 내기 위해 흑색선전에 혈안이 된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들이 합리적 추론에 따른 올바른 판단으로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이번 선거는 나라의 명운을 좌우하는 한판 승부다.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 오로지 국민들의 판단과 결정에 달렸다.

2021-11-18

가을 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추수를 마친 들판이 벼들의 키만큼 낮아졌다. 낟알을 떨어낸 볏짚이 줄지어 누워 가을볕에 말라간다. 이는 물론 저절로 된 가을 풍경이 아니다. 땅을 갈아 벼를 심고 가꾸는 일련의 과정에 자연과 인위(人爲)가 뒤섞였다. 그 인위에는 사람의 육신보다는 기계문명이 더 큰 역할을 했다. 바둑판같은 구획정리,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 곧게 흐르는 수로, 곳곳에 설치된 관정까지 들판도 이제는 상당히 문명화 된 모습이다. 비료와 살충제, 제초제 같은 농약이 없어도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들판의 가을 풍경에는 이런 내막이 있다.갈색으로 보호색을 바꾼 메뚜기들이 가끔씩 눈에 띈다. ‘메뚜기도 유월이 한철’이란 속담이 있듯이 철지난 메뚜기다. 꼬투리 터진 콩알처럼 튀어 달아나던 한창 때의 모습이 아니다. 이번 가을에 새삼 발견한 것은 메뚜기들이 작아졌다는 사실이다. 제초제와 살충제 때문에 개체수가 줄어든 것은 알겠는데, 메뚜기들의 몸집이 절반가량이나 작아진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비와 잠자리도 이따금 눈앞을 스친다. 아직은 쑥부쟁이 같은 늦게 핀 꽃들이 있으니 나비의 역할도 남았으리라. 늦가을 들판에는 바야흐로 억새가 제철을 맞는다. 억새는 노후가 유난히 길고 젊은 시절보다 더 환한 모습이다.들판을 휘돌아 흐르는 냇바닥에 우거진 풀들은 제멋대로다. 일 년에 한두 차례 큰물이 져서 휩쓸리기도 하지만 저절로 난 풀과 나무들이 길길이 우거져 숲을 이루고 있다. 억새와 갈대가 주종이지만 군데군데 버드나무도 있고 그 틈새를 비집고 온갖 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 무질서하고 혼잡한 자연의 숲이다. 그 속에서 새들은 둥지를 틀고 고라니가 몸을 숨기기도 한다. 사실 냇바닥의 생태계는 오래된 자연의 모습은 아니다. 골재를 채취하거나 준설을 하면서 파낸 냇바닥을 자연이 급조한 생태계인 셈이다. 그런 혼잡에도 불구하고 봄철에는 신록으로 여름에는 녹음으로 지금은 가을빛으로 통일을 이루고 있다.가을 길에는 온갖 것들이 뒤섞여 있지만 그 모두를 아우르는 가을 빛이 있고 그것이 또 정서의 강을 이루기도 한다. 봄의 생기와 여름의 열정을 지나 가을에는 차분해지고 완숙해지는 계절이다. 그러다 가을이 더 깊어지면 다 놓아버리고 허허로워지는 계절이다. 자연의 가을이 그렇고 인생의 가을도 그렇다. 가을에는 가을 길을 갈 일이다. 가을의 산천초목이 내어주는 길, 높푸른 하늘 흰 구름이 써늘해진 바람이 가리키는 길이 있다. 아무튼 한 두 마디 시적인 문장으로 뭉뚱그릴 수 없는 복잡하고 구체적인 생태의 모습들이 가을 들길이다.인생을 나그네 길이라고도 한다. 사람에 따라 그 길은 다양하고 우여곡절이 많기도 할 것이다. 탄탄대로거나 꽃길이거나 난마처럼 뒤엉킨 길이거나 죽음이라는 종착지는 같은 길이다. 그러나 산천초목이 일사불란 계절을 따라가듯이 인생에도 어디든 희망의 이정표가 없지는 않은 게 섭리다. 다만 욕심이나 어리석음에 눈이 멀어 보지 못할 뿐이다. 생명의 이정표, 대자연의 이정표를 수시로 확인하는 삶이라야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2021-11-11

검찰개혁의 민낯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검찰개혁을 대한민국의 지상과제요 역사적 사명인 것처럼 몰아가던 때가 있었다. 조국 전 민정수석 일가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고부터였다. 물론 그 전에도 검찰개혁이란 말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검찰의 과도한 권력을 제한하고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원래 취지였다. 그러나 지난 정권을 적폐로 몰아 단죄하는데 일등공신인 윤석열 검사를 검찰총장으로 임명할 때까지는 검찰개혁이 그렇게 절박한 과제가 아니었다.윤석열 검찰이 조국 일가의 비리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자 화들짝 놀란 정권은 검찰개혁을 꺼내 들었다. 피의자인 조국을 검찰개혁의 적임자로 법무부 장관에 앉혀 검찰을 장악하려고 했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뒤를 이은 추미에 법무장관은 재임기간 오로지 검찰개혁(?)에 올인 했다. 추 장관의 검찰개혁 제1 목표는 윤석열 총장이 구성한 수사팀을 해체하고 눈엣가시 같은 총장을 몰아내는 거였다. 그러나 그것은 현 정권에 관련된 수사를 막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여론과 검찰 내부의 반발에 부딪히는 일이기도 했다.윤석열 총장의 손발을 자르고 검찰 밖으로 내몰기 위한 추미애 법무장관은 일 년여 재임기간 두 차례나 ‘학살인사’를 단행해 법무부와 각급 검찰청의 간부들을 요직에서 밀어내고 정권 실세들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인 수사팀을 해체했다. 두 번이나 윤 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한 것도 모자라 직무정지와 징계청구권을 발동하기도 했다.법무장관의 이런 처사에 대해 춘천지검의 한 검사는 SNS에 “법무부는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 이후 수사지휘권을 남발하며 인사권, 감찰권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검찰을 압박하고, 비판적인 검사들을 검찰개혁에 반발하는 세력인 양 몰아붙이고 있다”며 “혹시 장관님은 정부와 법무부의 방침에 순응하지 않거나 사건을 원하는 방향으로 처리하지 않는 검사들을 인사로 좌천시키거나 감찰 등 갖은 이유를 들어 사직하도록 압박하는 것을 검찰개혁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닌지 감히 여쭤보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윤석열 총장이 사직을 하고 나오자 검찰개혁이란 말이 사라졌다. 더이상 검찰개혁의 필요성이 없어졌거나 이제는 검찰개혁을 완성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윤 총장의 제거가 검찰개혁의 목표이고, 지금의 검찰이 바로 그토록 애타게 부르짖던 개혁을 한 검찰인 셈이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위시해서 대검찰청, 중앙지검 등 법무부와 검찰의 모든 요직에 오로지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물들만 앉혀놓았으니 이제는 두 다리 쭉 뻗고 자게 되었다는 것인가. 늑대 같은 검찰을 발바리나 푸들 같은 애완견으로 길들여 놓고 이게 바로 개혁된 검찰이라면 어리석은 백성들은 그런가보다 할 따름인가.그런데 그렇게 개혁된 검찰의 민낯을 보게 될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으니 바로 ‘대장동 사건’이다. 여권의 대선후보가 성남시장일 때 발생한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검찰개혁의 진면목을 보게 될 것이다. 수사를 하는 척 뭉그적거리다가 결국 꼬리 자르기로 매듭지을 거라는 예측이 무성하다.

2021-11-04

요행과 확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대략 815만분의1 정도라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당첨이 안 될 확률이 99.99…%라는 얘기다. 벼락을 맞아 죽을 확률보다도 배나 낮은 것이 로또복권 일등 당첨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도 매주 8백만 매 이상 복권이 팔린다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그만큼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위험부담이 적으면 버리는 셈치고 해보게 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심리일 것이다. 상당한 위험부담이 있는 데도 요행을 바라고 투기를 하는 것은 남달리 사행심이 강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일 터이다.‘오징어게임’이라는 드라마가 세계적인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거액의 빚을 지고 삶의 막장으로 몰린 사람들이 456억 원이라는 거액에 눈이 멀어 0.2%의 확률에 목숨을 걸고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이 드라마의 내용이다. 전혀 아무런 탈출구가 없다가 일확천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풍족한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이성을 마비시켜버린 거라고나 할까. 아무리 돈이 절박하더라도 죽을 확률이 99.8%인 게임에 목숨을 건다는 건 정상적인 심리상태가 아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인 오늘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하는데, 세상이 이런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건 너무 끔찍한 현상이 아닌가.카메라 앵글은 최후의 승자인 주인공을 쫓아가지만 그동안 죽어간 사람들은 아무런 해결도 없이 더 참담한 결과만 남겼을 뿐이다. 참가자 456명 중에 455명이 죽고 단 한 사람이 살아남는 건 사회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가 비록 거액의 상금을 손에 쥐었다 한들 456명 중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사람들 말고는 대다수가 처참한 일을 당한 사회라면 그게 바로 지옥이 아니고 뭐겠는가. 지금 한반도의 북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도 거기에서 멀지 않을 것이다.‘오징어게임’ 만큼이나 매스컴의 화제가 되고 있는 게 ‘대장동사건’이다. 일확천금이라는 점에서는 양자가 닮았지만, 한 쪽은 목숨을 걸고 수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은 데 비해 다른 쪽은 땅 짚고 헤엄을 쳤다는 점에서는 천양지차다. 몇 사람이 수천억 원의 돈을 챙기면서 남을 죽이기까지 한 건 아니지만, 여러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편취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징어게임’ 승자가 차마 그 돈을 쉽게 쓰지 못한 것과는 달리 대장동사건 관련자들은 6년 근무 직원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주는 등 로비자금이다 고문비용이다 흥청망청 광란의 돈 잔치를 벌인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사행심이나 한탕주의가 횡행하는 사회는 분명 병든 사회다. 의식주가 절박하던 시절에 비해 몰라보게 경제사정이 좋아졌지만, 그것이 물질적 속박을 벗어나게 한 것은 아니었다. 물질에 집착하고 예속되는 현상은 오히려 더 심해진 게 아닐까 싶다. 물질문명에 경도되어 정신적 가치를 등한시해서는 삶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가 없다. 풍요롭고 균형 잡힌 사회로 가려면 교육이나 언론도 중요하지만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좋은 본을 보여야 한다. 지금의 대권후보들 중에는 그런 인성과 지성과 품격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2021-10-21

한글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내일은 훈민정음 반포 575주년이 되는 한글날이다. 일제치하인 1926년 조선어연구회는 11월 4일에‘가갸날’을 선포하고 2년 후에는 ‘한글날’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40년에 발견된 ‘훈민정음하례본’에 근거하여 1945년부터는 한글날을 10월 9일로 정하고 훈민정음 반포 500돌이 되는 1946년에 국경일(공휴일)로 지정하였다. 1990년 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하는 바람에 기념일로만 유지하다가, 2005년에 다시 국경일로 격상되고 2013년부터는 공휴일도 회복 되었다.자국의 글자를 만들어 선포한 날을 기념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만든 이유와 사람과 연대를 아는 문자를 가진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는 6천800여 종이지만, 문자로 표현이 가능한 언어를 가진 나라는 100개국 정도이다, 그중 자국어를 가진 나라는 28개국이고 고유한 문자는 한글, 한자, 로마자, 아라비아문자, 인도문자, 에티오피아문자 등 6개뿐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고유한 말과 문자를 가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인 것이다.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음소문자(音素文字)이자 자질문자다. 문자는 크게 표의문자와 표음문자로 나뉘고, 표음문자는 다시 음절문자와 음소문자로 나뉘는데, 한글이 음소문자 가운데에서도 가장 우수한 것은 자질문자(featural writing system)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음소문자란 글자 하나하나가 하나의 소리를 낸다는 것이고, 자질문자는 자음이나 모음을 나타내는 각각의 글자들이 별개의 독립적인 기호가 아니라 일정하게 연결된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질문자인 한글은 감정 표현을 더 세심하게 할 수 있는 장점을 가졌다.한글의 모음 10개와 자음 14개를 조합해서 표현할 수 있는 소리는 무려 일만 천 개 이상이나 된다. 고작 300개인 일본어와 400개인 중국어(한자)와는 비교가 안 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가 한글이다. 또한 한글은 조합된 문자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제자의 원리만 이해하면 누구나 쉽사리 익힐 수가 있고 쓰기도 쉽다. 유네스코에서도 말은 있되 글자가 없는 소수민족에게 그들의 말을 한글로 쓰도록 함으로써 소수언어의 사멸을 막자는 제안이 있고, 실제로 인도네시아 소수 민족인 찌아찌아족과 남태평양의 솔로몬제도에서는 한글표기법을 사용하고 있다.한글(훈민정음)은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이 되었고,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도 만들어 매년 시상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한국인들 중에는 한글이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한 문화유산인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요즘 인터넷 등에서 자행되는 한글 파괴현상은 여간 우려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상한 비속어와 은어, 국적불명의 신조어 등으로 우리의 말과 글이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유행과 변화를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교육현장이나 공영방송 등 책임 있는 기관만이라도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고 가꾸려는 성의와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1-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