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라져가는 이 나라를 위해/ 애써 ‘대한 만세’라고 작별인사를 보낸다./ 그래, 한 국가로써 이 민족은 몰락하고 있다./ 어쩌면 다시 일어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말없이 마음이 따뜻한 이 민족에게/ 파도 너머로 작별인사를 보낸다./ 지금 나의 심정은/ 마치 한 민족을 무덤에 묻고 돌아오는/ 장례행렬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착잡하기만 하다….”
독일인 선교사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1911년 우리나라를 다녀가면서 쓴 글이라 한다. 한일합방으로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이듬해이니, 망해가는 나라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서려 있는 글이다. 일본이 소위 대동아전쟁을 일으키고 진주만을 기습해서 미국의 원자폭탄을 맞고 패망하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일본 영토가 되고 우리는 모두 일본인이 되었을 것이다. 베버 신부가 본 것처럼 우리에게는 일제의 손아귀를 벗어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우리나라를 다녀간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구한말의 백성들은 가난에 찌들어 누추하고 무력한 모습이었다. 일본이나 중국인에 비해 체구도 크고 성품도 좋아 보였지만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에 시달려 몹시 피폐한 생활상이었다는 것이다. 의욕을 가지고 노력을 해봤자 부패하고 악랄한 한 관리들에게 수탈의 빌미를 줄 뿐이니 가난과 체념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거였다. 여행가 헤세 바르텍은 ‘조선, 1894년 여름’이란 책에서 당시 서울(한양)의 모습을 이렇게 적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거리로 하수가 흘러들어 도랑이 되어버린 도시가 또 있을까? 한양은 산업도, 굴뚝도, 유리창도, 계단도 없는 도시, 극장과 커피숍이나 찻집, 공원과 정원, 이발소도 없는 도시다. 집에는 가구나 침대도 없으며, 변소는 직접 거리로 통해 있다. 남녀 할 것 없이 모든 주민들이 흰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다른 곳보다 더 더럽고 똥 천지인 도시가 어디에 또 있을까? ….”
그랬던 나라가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우뚝 선 것은 무엇보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6·25 전쟁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을 때 미국을 위시한 유엔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난 것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때 중공군의 개입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훨씬 더 부강한 통일국가가 되었을 텐데 천추의 한이 아닐 수 없다. 오로지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산업화에 매진한 박정희 대통령의 통찰력과 추진력도 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새마을 운동’으로 다잡아 의욕과 희망을 가지게 한 것도 인류역사에 남을 혁신적 혜안이고 쾌거였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이 또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가 피땀으로 쌓아올린 공든 탑을 일시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좌파정권이 보여주었다. 좌파세력들의 집요한 세뇌공작으로 국민 대다수가 무의식중에 좌파성향을 갖게 되어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패망의 길을 걷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