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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판 막장드라마

등록일 2022-01-27 19:54 게재일 2022-01-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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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광산 갱도의 가장 안쪽 막다른 곳을 막장이라고 한다. 광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땀 흘려 일하는 절실한 삶의 현장이다. 오늘이 있기까지 대한민국 산업을 일으킨 동력을 제공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막장이란 말이 ‘막장드라마’나 ‘막장국회’처럼 좋지 않은 쪽으로 쓰여 광부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다.

이 때의 막장이란 ‘갈 데까지 간, 가장 나쁜 상태’란 의미가 된다. 막장드라마란 조어를 한 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보통은 불륜, 패륜, 선정, 폭력 등 불건전하고 비상식적이거나 자극적인 요소들을 남발하여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저질 드라마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대선정국이 가열되자 여기저기서 막장드라마를 뺨치는 사건들이 불거지고 있다. 공영방송이 야권 대선후보 배우자의 사적인 전화통화 녹취록을 공개한 사건이 그 한 가지다.

유튜브방송 기자를 자칭하는 인물이 비열하고 간교한 속임수로 접근해서 수십 차례 통화한 것을 몰래 녹음하여 퍼뜨리고 공영방송에까지 넘겨준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의리조차 짓밟은, 인간성의 막장을 보여주는 추악한 짓이다. 그것을 받아 방송한 MBC나 한 건을 잡았다고 쾌재를 부르며 본방사수니 뭐니 호들갑을 떤 여권 인사들이나 상식적인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은 마찬가지로 보인다.

여권 대선후보를 둘러싼 추문과 의혹들은 어떤 막장드라마도 따라가지 못할 막장의 극치를 보여준다. 먼저 후보자가 친형과 형수에게 내뱉은 악담과 욕설은 보통의 비위를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끝까지 들을 수 없을 정도다.

인성의 밑바닥까지 더럽혀진 사람이 아니고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내용들이다. 자신을 닦고 집안을 바로 꾸린 후에야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을진대, 피를 나눈 형제에게도 그런 패악질을 해대는 사람이 생판 남인 국민을 위해서 옳은 일을 하겠다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야말로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할 일이다. 국민은커녕 형제도 안중에 없고 오로지 자신의 야욕과 영달을 위해서만 못할 짓이 없는 사람에게 어찌 나라를 맡기겠는가.

관련자들이 몇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한 ‘대장동사건’도 또 다른 막장드라마다. 월세도 못 내서 폐업하는 소상공인들이 부지기수인데, 불과 몇 억의 자본금으로 수천억을 벌었다는 것은 막장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일이 아닌가.

당시의 시장이었던 사람은 본인이 설계하고 결제한 일인데도 비리와 부정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열흘이나 함께 여행을 한 부하직원도 모른다는 사람의 말을 누가 믿는가. 그런 인물을 대선후보로 지지하는 국민들이 무려 40% 가까이 되어서 지지율 1위인 여론조사도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다.

대통령직은 국운을 좌우하는 자리다. 악화일로의 미·중관계나 연이은 북한의 도발로 위험이 고조되는 시국에 사리사욕이나 진영논리로 대선에 임하는 것은 천추의 한을 남기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누가 되든 내 알 바 아니라는 방관이나 그 놈이 그 놈이라는 냉소적인 양비론도 민주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방기한 무책임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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