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을 짓기 전, 컴퓨터가 먼저 짓는다
사람들은 흔히 건물이 세워지는 순서를 이렇게 상상한다. 설계사가 도면을 그리고, 시공사가 땅을 파고, 인부들이 벽돌을 쌓는다. 그러나 오늘날 대형 건설 현장에서는 이 순서보다 앞서는 단계가 하나 더 생겼다. 컴퓨터가 먼저 그 건물을 짓는다.
이른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라 불리는 기술이다. 실제 건물을 세우기 전에 컴퓨터 안에서 똑같은 건물을 가상으로 완성하고, 바람의 방향, 햇빛의 각도, 자재의 강도, 지반의 상태, 공사 일정까지 수백 번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실수는 컴퓨터 안에서만 발생하고, 현장에서는 이미 검증된 결과대로 시공이 이루어진다. 마치 비행기 조종사가 실제 비행 전에 모의비행 훈련을 거치듯, 건설 현장도 이제 디지털 예행연습을 마치고 착공한다.
현대건설은 6.4km에 달하는 남양주 왕숙 입체 지하도로 전 구간을 디지털 트윈 시스템으로 통합 모니터링하면서, 공사 중 돌발 상황에도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한 환경을 구현했다. 삼성물산 역시 중동의 대형 플랜트 프로젝트에서 디지털 트윈 기반 가상 시공 모델을 도입해 착공 전 수십 차례 시뮬레이션을 반복한 결과, 설계 변경 건수를 35% 이상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 AI가 설계를 최적화하는 방식
AI가 건설 설계에 개입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생성형 설계(Generative Design)다. 건축가가 조건을 입력하면 AI가 수백, 수천 가지 설계안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주택 설계 전문 AI 메이켓(Maket)은 주거 평면과 3D 모델을 자동으로 생성하고 지역 건축 법규까지 검토해 규정에 맞는 설계안을 제안한다. 부지 개발에 특화된 AI 테스트핏(TestFit)은 대지 면적과 요구 조건을 입력하면 최적화된 건물 배치와 용적률 계산까지 자동으로 수행한다. Brunch
둘째는 BIM(빌딩정보모델링·Building Information Modeling)과의 결합이다. BIM은 건물의 3차원 디지털 설계도다. 평면 도면이 종이 지도라면 BIM은 내비게이션에 가깝다. 여기에 AI가 더해지면 설계 단계에서 자재 사용량, 에너지 소비량, 공사비까지 자동으로 계산되고 오류가 자동으로 탐지된다. 현대건설은 2025년 스마트건설 챌린지에서 AI 기반 자동화 기술로 BIM 분야 최우수 혁신상을 수상했다. 국내 시공 능력 평가 30위권 기업 중 86.7%가 이미 BIM을 도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토교통부는 2026년까지 3432개에 달하는 국가 건설기준 전체를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하는 사업을 완료할 예정이며, 이 데이터가 민간에 무료로 개방되면 설계 자동검토와 시방서 자동 작성 등 다양한 AI 솔루션 개발이 가능해진다. 지금까지 두꺼운 종이 문서로만 존재하던 건설 기준이 AI가 직접 읽고 판단할 수 있는 데이터로 바뀌는 것이다.
■ 부동산 가격, AI가 먼저 계산한다.
건물을 짓는 것만큼이나 우리 생활과 밀접한 문제가 있다. 내가 사려는 집이, 팔려는 땅이 과연 제값인가 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부동산 가치평가는 감정평가사가 현장을 방문하고 비교 사례를 분석하는 방식이었다. 같은 땅인데 누가 평가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랐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이 문제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구조적으로 약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해 온 시장이 부동산 시장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AVM, 즉 자동가치평가모델(Automated Valuation Model)이다. 과거 거래 데이터, 주변 시세, 교통, 학군, 상권, 건물 노후도 등 수십 가지 변수를 AI가 동시에 분석해 해당 부동산의 추정 시세를 자동으로 산출하는 시스템이다. 같은 주소지라도 층수, 향, 엘리베이터 유무, 리모델링 이력까지 반영해 개별 호실의 시세를 산출한다.
국내 빅데이터 기반 부동산 플랫폼인 부동산플래닛은 2025년 상가·사무실을 대상으로 AVM 서비스를 출시했다. 22만여 건의 실거래 데이터를 학습한 결과, 서울 지역 기준 예측 오차율이 5.80%에 불과하고, 오차 10% 이내 비율이 90%를 넘었다. 한국부동산원도 AI 기반 이상거래 모니터링 시스템을 강화해 허위 거래나 투기성 매매를 자동으로 탐지하는 기능을 도입했다.
■ 정부 정책과 AI: 빛과 그림자
AI가 부동산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는 사이, 정부도 이 흐름에 올라타고 있다. 정부는 출범 이후 부동산 문제를 핵심 경제 과제로 삼고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다.
긍정적인 면도 있다. 무주택자라면 소득과 자산에 관계없이 저렴한 임대료로 30년 이상 거주할 수 있는 기본주택 정책, 수도권 집값 급등에 대응한 주택담보대출 상한 규제, 공직자의 다주택 보유를 부동산 정책 입안에서 배제하는 조치 등은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 주거 안정을 꾀하는 방향이다. 출범 1년이 지난 현재, 매매 시장의 폭등세가 진정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그림자도 분명하다. 금융 규제가 강화되면서 무주택 서민의 실수요 접근이 어려워졌고, 규제 풍선효과로 전세 시장이 불안정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수도권 집값 상승률이 2025년 한 해 11%를 넘어선 반면, 지방과 수도권 외곽은 여전히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고, 서울 상위 20%와 하위 20% 집값 차이는 역대 최고인 12.8배까지 벌어졌다. 정책이 수도권 투기 억제에 집중하는 사이, 지방 주택 시장의 현실은 전혀 다른 처방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AI를 통한 수요·공급 데이터의 정밀한 분석 없이는, 정책 효과가 지역별로 엇갈리는 불균형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 포항의 역설: AI 시대의 공급 폭탄
포항의 현실은 이 역설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인구 50만의 포항에서 2021~2022년에만 무려 1만5000가구 이상이 일시에 공급됐고, 2024년에는 1만1000여 세대가 추가 입주했다. 국토교통부 기준 연간 신규 주택 적정 수요의 두 배가 넘는 물량이 한꺼번에 시장에 풀린 것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남구 이동, 북구 양학동 등 대단지 아파트에서는 급매물이 속출하고, 5억 원대 분양 아파트가 4000만 원씩 빠져도 팔리지 않는다는 현장 목소리가 나왔다. 포항자이애서턴, 분양 당시 인기 단지에서도 수천만 원의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발생했으며, 분양가 5억 원대 물건이 4000만 원 넘는 손실을 보고 처분된 사례도 확인됐다. 2027년까지 추가 입주 물량이 예정돼 있어 시장 조정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만약 분양 당시 AI 기반 수요예측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어땠을까. 공급 과잉의 신호는 데이터 안에 이미 있었다. 인구 감소 추세, 세대수 변화, 주변 미분양 현황, 적정 수요 대비 공급 비율-이 모든 정보를 AI가 통합 분석했다면, 적어도 이 정도의 충격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AI는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이기 이전에, 문제를 미리 보는 눈이 될 수 있다. 그 눈을 외면한 결과가 지금 포항 계약자들이 짊어진 수천만 원의 손실이다. 기술의 도입보다 기술을 활용하는 의지와 제도가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것
그러나 기술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토데스크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건축·엔지니어링·건설 분야 기업의 76%가 향후 3년 내 AI 투자 확대를 계획하면서도, AI 설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건축가가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적절한 조건을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AI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적해를 찾을 뿐이다. 어떤 삶을 위한 공간인지를 묻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집은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아침에 어느 방향에서 햇빛이 들어오는지,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어노는 소리가 이웃에게 얼마나 들리는지, 노부모가 계단을 오르내릴 때 얼마나 편안한지-이런 삶의 감각들은 데이터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다. 부동산 가치 역시 마찬가지다. 바로 옆 골목에 오래된 분식집 한 채가 있어 동네의 분위기가 살아있다는 사실, 30년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만들어내는 그늘의 가치는 어떤 알고리즘도 완전히 수치화할 수 없다.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그의 저서 ‘공간의 시학’에서 집은 우리의 첫 번째 우주라고 했다. AI는 이 첫 번째 우주를 더 효율적으로 짓고 더 정확하게 값을 매기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집에 어떤 삶의 온기를 불어넣을 것인지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포항의 빈 아파트들이 말없이 던지는 질문도 결국 같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어떤 집을 짓고 있는가.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