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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후 위기와 지각 단풍

우정구 논설위원 가을에 접어들어 기온이 낮아지면 나무는 녹색 색소인 엽록소를 분해해 체내에 보관한다. 물과 영양소를 체내로 흡수하면서 다가올 월동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대신에 물이 공급되지 않는 잎에는 남아 있던 안토시아닌과 같은 색소가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데, 이때 붉게 혹은 노란색으로 보이는 것이 단풍이다. 추석 연휴까지 이어지던 무더위로 올해는 단풍이 물드는 시기도 작년보다 조금 더 늦어질 것 같다는 소식이다. 산림청은 올가을 단풍은 10월 말이 절정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역별로 차이는 있으나 설악산 10월 22일, 지리산과 팔공산 10월 25일, 내장산 10월 27일, 한라산 11월 6일 등이 절정기다. 산 전체를 기준으로 나뭇잎의 20% 가량이 단풍으로 물들면 단풍의 시작 시기로 본다. 80% 이상이 물들면 절정기라 부른다. 단풍은 기온변화에 민감해 통상 기온이 1도 오르면 단풍나무는 4일, 은행나무는 5.7일씩 물드는 속도가 늦어진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로 지구의 평균 기온이 올라가면서 우리나라도 단풍이 물드는 시기가 조금씩 늦어지고 있다. 1990년대와 비교하면 지리산은 5일, 월악산은 2일 정도가 늦어졌다고 한다. 특히 폭우와 같은 극한기후 변화가 잦으면 단풍은 제 색깔을 가지기 힘들어진다. 급변하는 날씨로 단풍이 곱게 물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은 일종의 생태계 파괴 현상이다. 가을철 불타는 산을 만산홍엽(滿山紅葉)이라 부른다. 지구촌의 기후변화가 시시각각 인류를 위협하는 속에서 지각 단풍에서도 기후 위기를 새삼 느끼게 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9-26

기후 위기 대응이 곧 민생이다

조지연 국회의원(국민의힘·경산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후 위기는 당장 체감하기 어려운 인류의 거시적인 과제나 담론처럼 여겨졌다. 지금은 농가에도, 시장 상인들에게도, 궁극적으로 민생 물가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현안이 되었다. 필자는 이번 추석 명절에 이를 확연히 체감했다. 장을 보기 위해 지역 전통시장을 찾았더니 평소와 달리 이번엔 예상보다 지갑이 빨리 가벼워졌다. 시금치 등 각종 채소 가격이 오른 것은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겠지만, 기후 위기를 빼놓을 수 없다. 시장에서 만난 상인과 농민들은 이구동성으로 폭염으로 인한 농산물 생산 차질에 우려를 표했다. 지역구인 경산시는 복숭아, 자두, 포도, 대추 등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작황을 우려하는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졌다. 유난히 덥고 습했던 날씨 탓에 과일의 당도를 걱정하거나 심지어 겉은 멀쩡한데 열어보면 속이 덜 익었다고 했다. 더운 날씨에 과일의 겉만 익어버린 것이다. 이는 고스란히 서민의 생활 물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세계 유수 연구기관들이 기후변화가 물가 안정을 위협하는 핵심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국은행도 최근 월평균 기온이 1℃ 오르면 농산물가격과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각각 최대 0.44%P와 0.07%P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미 ‘기후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기후 위기는 우리나라와 같이 곡물자급률이 낮고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에는 식량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최근 3개년(2021~ 2023) 평균 곡물자급률은 19.5%로 나타났다. 모자라는 곡물은 수입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농축산물 무역수지 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져 5년 전인 2017년에는 181억300만 달러 규모였으나 2022년에는 311억7800만 달러로 치솟았다. 현재 흐름이라면 농축산물로 인한 무역수지 적자는 향후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세계 주요국들은 기후 위기에 따른 식량안보 대비책을 앞다투어 마련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6월부터 ‘식량안보보장법’ 시행에 들어갔다. 일본은 지난 5월 ‘식료·농업·농촌 기본법’을 개정해 ‘식량안보 확보’를 추가했고, 관련 평가지표도 새로 도입할 예정이다. 인도는 기후 영향으로 자국 곡물 생산의 어려움을 겪은 뒤 옥수수와 쌀, 밀 등 곡물 수출량을 대폭 줄였다. 이제 국회가 나서야 할 때다. 기후 위기가 민생과 직결된다는 것을 직시하고, 제도적 대책 마련에 앞장서야 한다. 정부도 기후 위기 문제에 대해 다각도로 접근하고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정부가 발간하는 환경백서에 기후 위기와 물가, 그리고 식량 안보 문제를 면밀히 다루어야 하며 ‘기후변화 상황지도’에도 기후 위기에 농수산업을 비롯한 산업계가 구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맞춤형 기후지도 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논의해 볼 만하다. 추석 민심이 안겨준 과제가 한아름인데 국회는 계속해서 정쟁에 발목 잡혀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농민들과 상인들의 한숨에 담긴 기후 위기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실질적인 민생 대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첫 정기국회에 임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으로서 필자에게 주어진 책무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2024-09-26

밥 딜런을 떠올리는 가을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끝이 보이지 않던 지긋지긋한 폭염이 마침내 꼬리를 감추며 사라졌다. 아침저녁으론 서늘한 공기가 창밖을 서성인다. 이불을 끌어당겨 덮게 되는 새벽이 오고 있다. 누구도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이 새삼스럽다. 여름은 가고, 가을이 목전에서 서성인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지난 2016년. 미국의 포크송 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스웨덴학술원이 “밥 딜런은 밀턴과 블레이크로 이어지는 영어권 문학 전통 속에 우뚝 자리한 위대한 시인”이라고 상찬하자 당장 반발이 일었다. “인류 보편이 인정할 수 있는 미학적 성취를 이룬 시인과 소설가가 적지 않은데, 무슨 딴따라 가수에게 노벨문학상을 준단 말이냐”가 반발하고 비난하는 이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천만에. 밥 딜런의 노래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의 가사를 음미해보자. ‘얼마나 자주 올려다봐야/진정한 하늘을 볼 수 있을까/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이웃의 울음을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비극의 끝이 모습을 드러낼까…’ 선명한 메시지와 명쾌한 은유를 보자면 밥 딜런이 만든 노랫말은 이미 시원찮은 시(詩)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는 시인들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밥 딜런은 어떻게 ‘시인의 마음’과 ‘시인의 태도’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직접 묻지 않아도 돌아올 답변은 불을 보듯 뻔하다.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 다독(多讀)은 그게 시건 가사건 좋은 글을 쓰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도 밥 딜런처럼 독서하는 가을을 살아보자.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9-25

관광과 평화

장규열 고문 세상은 넓다. 나라마다 독특한 분위기와 느낌이 있고, 민족마다 고유한 품성과 자태가 있다. 먹거리와 볼거리로 채워진 세상을 낱낱이 가 살필 수 있을까. 문명이 만들어낸 산업들 가운데 관광만큼 이곳저곳을 다차원적으로 넘나드는 가닥도 흔하지 않다. 경제와 사회, 문화와 산업을 가로지르며 관광이 만들어내는 유익이 상상을 넘는다. 매년 9월 27일은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가 지정한 ‘세계 관광의 날(World Tourism Day)’이다. 관광은 우선 도시 및 국가의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산업이다. 전 세계적으로 관광은 모든 일자리의 약 10퍼센트를 만들면서 각국 총생산량(GDP)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특정 도시와 국가의 경제성장에 지대한 역할을 하며, 관광지로 유명한 지역은 관광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 관광객을 유치한다. 관광은 숙박과 유흥, 음식점, 가이드, 교통, 기념품 판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자리를 제공한다.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숙련되지 않은 노동력도 쉽게 고용할 수 있어 사회 전반의 일반 고용률을 높이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다. 관광산업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관광은 경제적 수익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교류를 통해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양한 국적, 인종, 문화의 관광객들이 특정 도시나 국가를 방문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지역의 문화와 전통을 배우고, 또 그들 자신만의 문화를 전파하게 한다. 관광이 빚어내는 문화적 교류는 지역 주민과 관광객 간의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고, 글로벌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데 한 몫을 한다. 관광으로 지역의 전통문화가 활성화된다. 전통 공예품이나 지역축제, 문화유산 등은 관광객의 관심을 받으면서 더욱 자라나고 발전한다. 문화적 자산이 보존되는 동시에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만들어낸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예술, 공연, 음식 등 문화개발 프로그램을 육성한다. 관광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려면 경제성장과 더불어 환경보호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에코투어리즘을 통해 자연을 보존하면서 수익을 일으키거나 저탄소 교통수단을 장려하는 등의 방법으로 환경보호에 기여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관광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보호하고 관광객이 환경을 존중하며 여행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정책을 도입한다. 관광이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고려할 때, 도시와 국가 경제는 장기적으로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 관광은 글로벌 경제 협력을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여러 나라와 도시들이 관광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진다. 유럽의 국가들은 관광으로 협력하며, 상호 간의 교류와 협업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 국가나 지역의 성장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경제적인 상생과 외교적 협력을 도모하게 할 터이다. 관광은 나라들 사이의 갈등과 불화를 치유하고 상생과 협력을 가져오기도 한다. 2024년 ‘세계 관광의 날’ 테마는 ‘관광과 평화’라고 한다. 긴장을 넘어 평화에 이르는 길을 관광으로 열어 가자는 다짐이자 권고가 아닐까. 관광은 세상을 향해 우리가 만드는 창틀이 아닌가.

2024-09-25

무릎을 꿇다

피귀자 수필가 우윳빛 융단 위의 솜이불처럼 포근하고, 금방 낳은 달걀처럼 따스하다.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사랑하는 이의 신발 끈을 묶어주는 모습은. 빛을 향해 뻗어가는 새순처럼 풋풋한 두 사람 사이는 종달새의 밀어로 흐르는 시냇물 같다. 타닥! 순간, 눈앞에서 불꽃이 일었고 사정없이 패대기쳐지는 사지를 수습할 여가가 없었다. 쫙 미끄러지면서 얼굴이라도 들어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고작이었다. 운동화 끈이 풀어진 줄 모르고, 앞서 가던 친구들을 급히 뒤따르다가 반대쪽 발이 늘어진 다른 쪽 끈을 밟고 말았던 것이다. 스텝이 꼬인 발의 순간적인 위력은 엄청났다. 고속도로 휴게소 아스팔트를 찧은 턱의 쓰라림과 놀람에 일어설 수가 없었다. 피가 나는 턱 주변과 터진 입술이 금방 부풀어 엉망이 된 모습을 본 친구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두 팔을 뻗으며 엎어지는 순간을 본 친구의 이야기로는 사람이 그렇게 순간적으로, 그렇게 위력적으로 엎어질 수가 있는지, 마치 땅바닥이 끌어 당기기라도한 듯, 처음 본 모습이라고 했다. 흉해진 얼굴과 무릎이 까진 아픔에 이은 창피함과 자괴감에, 마른 나뭇잎 버석거리는 소리가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다행히 뼈는 다치지 않았지만 잠에서 깨어난 아침은 부스스했다. 집안에 갇혀 일상은 물기를 잃어갔고 안착한 것 같으면서 겉돌기 일쑤였다. 한자리에 눌러앉은 마음을 달래려 애썼지만 자꾸 발을 거는 머릿속도 쉼표가 필요했다. 잠시 나를 내려놓으면 여유가 생길 텐데. 별은 이미 늘 그 자리에 떠 있고 내 몸의 움직임과 환경, 내 시선에 따라 보였다 말았다 하는 것임에도 조급증이 마음 안에 바람을 부추겼다. 하루에도 수차례 수선한 마음이 구름처럼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그 후 속으로 핀 꽃이 켜가 되어 신발 끈이 풀린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알려주게 된다.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웬 오지랖이냐는 듯 시큰둥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사인사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일은, 알려주는 말을 들은 옆에 있던 앳된 소녀가 친구 앞에 말없이 살폿 앉으며 운동화 끈을 얌전히 묶어주던 모습이다. 말간 모습처럼 다소곳하게 앉던 소녀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동작은 누가 해도 하나 같이 해맑고 순한 모습일 것이다. 두 친구의 마음도 꼬투리 속의 콩알처럼 탱탱하게 익고 있었으리라. 지인의 아들은 남미의 여행지 순례 길에서 평생의 동반자를 얻었다. 아가씨의 풀린 운동화 끈을 묶어준 것이 계기가 되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건실한 청년이 결혼을 하지 않아 부모 속을 무던히 끓이게 하던 중의 일이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 풀어진 운동화 끈을 묶어주는 남자에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아가씨가 있으랴. 퍼져나가는 순금 햇살 같은 마법의 시간 속, 한국 사람이라곤 단 둘 밖에 없었던 머나먼 남미의 여행지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마음이 싹텄던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은 여행자의 가슴에 쉼표 하나 던져주어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눈짓, 봄이 눈처럼 하얗게 내렸던 것이다. 신발 끈을 조이듯 나이 따라 느슨해진 순발력과 이해력, 해이해진 마음을 조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심리학에는 ‘15’초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하나의 감정이 치솟아 정점을 찍는 데 15초가 걸린다는 것이다. 화가 나면 화의 갈래로, 기쁨이 일면 기쁨의 갈래로 접어드는 데 3초가 걸리고, 그 감정의 정점은 15초면 도달한다나. 그러고 나면 이내 다른 감정으로 변한다고 한다. 고작해야 15초에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음에랴. 오늘도 반성문 한 장 쓴다. 문제를 해학적으로 바라볼 수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매너리즘에 빠졌을 땐, 해이해진 감정의 끈을 다시 조이기 위하여, 토라진 감정에게 신발 끈을 묶어주듯 그때마다 순하게 무릎을 꿇어야 하리.

2024-09-25

AI로 여는 미래 혁신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인류사회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 왔다. 현대 문명은 4차 산업혁명을 통해 급속히 발전해 왔고, 다가올 미래 AI시대 세상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측하기 어렵다. 챗 GPT는 시작에 불과하다. 정치, 사회, 환경, 기업, 생활 문화 등 AI가 가져올 사회적 변화가 사뭇 기대가 된다. AI (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는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거나 이를 뛰어넘어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AI 혁신 기술은 인공지능을 발전시키고 다양한 산업과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핵심 기술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술들은 AI가 더욱 정교하게 학습하고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만드는 기반을 제공한다. 대표적인 AI 혁신 기술은 첫째,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이다. 머신 러닝은 컴퓨터가 명시적인 프로그래밍 없이 데이터를 분석해 학습하는 기술이다. 특히, 딥 러닝(Deep Learning)은 여러 층의 인공 신경망을 통해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복잡한 패턴을 인식하는 고급 형태의 머신 러닝이다. 둘째, 자연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는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기계는 텍스트와 음성을 분석하고, 번역, 요약, 질의응답 등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셋째, 컴퓨터 비전(Computer Vision)이다. 컴퓨터 비전은 AI가 이미지나 비디오를 분석하여 객체를 인식하고 상황을 이해하는 기술이다. 자율주행자동차, 의료 영상 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AI가 여는 미래 세상은 자동화 되고 효율적이며 개인화된 세상이 될 것이다. 주요 변화되는 세상은 제조업, 물류, 서비스 산업 등에서 단순 반복적인 작업을 자동화하고 인간은 창의적이거나 복잡한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AI는 소비자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개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개인 취향에 맞춘 콘텐츠나 상품을 추천하거나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교통, 에너지, 환경관리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고 자율주행자동차는 교통 사고를 줄이고 스마트 시티는 자원 관리와 공정 안전을 향상시킬 수 있다. 또한 질병 예측, 진단, 치료에 활용되어 의료의 정확성, 맞춤형 치료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AI 혁신 기술은 다양한 산업에서 적용되고 있으며, 향후 더 많은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어 낼 것이다. 지금 일어나는 혁신은 인공지능이 이룰 성취의 첫걸음에 불과하다. AI는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오늘날 문제가 되는 모든 한계를 돌파해버릴 것이다. 인공지능은 거의 모든 직업에서 인간을 밀어낼 것이다. 우리는 지금 과학혁명의 중심에 있다. 인류의 진보는 가속을 얻고 전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가 창출 될 것이다. 특히, 인간의 지능을 보조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기술들이 점점 더 발전함에 따라 AI는 산업 전반에서 효율성, 생산성, 창의성을 극대화 할 것이다.

2024-09-24

세계유산 활용사업 ‘소수서원 필리아’의 매력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길고도 지루하던 더위를 깡그리 밀어내기라도 하듯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간간이 산허리까지 안개가 내려와 비 오는 날의 운치를 더하고, 흠뻑 젖은 솔숲에서는 빗줄기와 어우러진 솔내음이 차분하게 깔리는 듯했다. 송림에 둘러싸인 고풍스러운 서원(書院) 기와의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마냥 또렷하고 정겨운 해설사의 설명을 툇마루에 걸터앉아 듣고 끄덕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진지하게만 보였다. 이와 같은 장면은 국가유산청의 2024년 세계유산 활용사업의 일환으로 열리는 ‘소수서원 필리아’의 한 부분이다. ‘세계유산 활용사업’은 국가대표 브랜드로서의 세계유산 가치의 보존 및 전승, 융복합적 활용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기획된 사업으로, 영주시에서는 국가유산청의 2024년 공모사업에 ‘소수서원 필리아’ 등 2건이 선정됐다. 동양대학교 한국선비연구원에서 주관하는 ‘소수서원 필리아’는 일상생활에 지친 도시인들의 심신을 힐링하면서 선조들의 지혜를 느끼도록 하는 프로그램으로,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총 10회에 걸쳐 소수서원과 선비촌 일원에서 개최되고 있다. 해설사와 함께하는 소수서원 탐방을 시작으로 내 몸을 행복하게 하는 치유음식 특강과 청국장 영양식단이 나오고, 꿈결같이 달빛과 별빛이 쏟아지는 소수서원의 솔숲에서 해금과 거문고의 그윽한 선율이 흐르면 지나가던 바람조차 멈추고 풀벌레들의 청아한 합창이 추임새를 더하며 여흥을 돋우기도 한다. 그리고 여명 속에서 서광을 맞이하는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는 아침에 다향을 맡으며 차훈(茶熏)명상을 하고 나면, 그야말로 심신의 평온함과 안정감이 얼굴에 쓰여 질 정도로 개운하고 여유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필리아(Philia)는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행위나 증세’ 등을 뜻하는 영어 접미어로 우애 또는 형제애로 옮겨진다. 즉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러한 바람이 쌍방적으로 상호 간에 인지하고 있는 품성상태’를 말한다. 예부터 강학과 제향기능이 있었던 서원이 현대교육의 도입으로 대중과 멀어지고 향사기능 위주로 축소되자, 정부에서는 2013년부터 ‘서원향교활용사업’을 기획, 지원하여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서원문화행사를 열어 왔다. 소수서원은 동양대 한국선비연구원의 협력으로 서원스테이, 사마(司馬)선비과정, 소수서원 필리아 등의 다양한 사업으로 서원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해왔다.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중에서도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소수서원에서 옛 숨결을 느끼며 자연과 인문학으로 서원의 학맥을 계승하는 문화사업을 펼친다는 자체가 의미 있고 법고창신의 새로운 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를 통해 전국에 소재한 문화·자연·무형유산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며 다양한 아이템과 연계사업 추진으로 지역문화유산의 활용도를 높이고 고유한 문화전통으로 존속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리라고 본다. 세계문화유산과 함께 지역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적·물적 자원과 결합해 지역민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늘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자 기획, 추진되는 문화사업이 지속되기를 기대해본다.

2024-09-24

낯선 곳에서 익숙함을 느끼는 이유는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무심히 있을 때는 흘러가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던 시간도,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하고, 무언가 해야할 일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실제로 흘러가는 것을 느낀다. 여름이 한창일 때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그 계절도 뺨에 스치는 바람 한 줄기, 길가의 나무들의 색이 바뀌는 것을 보고나서야 다음의 계절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본래 시간이란 나와 관계 없이 규칙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을 느끼는 나의 감각이나 감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늘 다니고 있는 이곳의 거리도 마찬가지다. 공간이란 늘 그곳에 그렇게 나와 상관 없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결코 그렇지 않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공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그 공간을 어떻게 인지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따라 그 공간은 나에게 전혀 다른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 공간의 형태,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구조물도 그렇지만, 그 안에서 일어난 삶에 있어서의 사건들은 우리를 그 공간을 하나의 의미 있는 장소로 받아들이는 데 주요하게 작용한다. 우리가 처음 가본 장소와, 추운 겨울날 친구와 거리를 걷다가 꽈당 넘어진 장소의 의미가 같을 수 없는 것처럼, 어린 시절부터 계속 다녔던 그 거리 곳곳에는 그 공간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기억들이 켜켜히 쌓여 무언가 특별한 어떤 것이 된다. 우리가 옛날부터 살았던 동네에, 한참 어른이 되어 다시 갔을 때 느끼는 어떤 종류의 느낌은 바로 그 공간이 아직 나에게 특별한 장소로 각인되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처럼 시간도 공간도, 단지 무심하게 그곳에 놓여 천천히 풀리고 있는 태엽 같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과 만나게 되면, 좀 더 특별한 무언가가 된다. 타인이 보기에 별 것 없는 오후 4시의, 어디에나 있을 법한 공원이라도 그곳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의 기억은 쌓여 있게 마련이다. 누군가는 그 공간을 장소로서 기억하고, 누군가는 그 장소를 사진으로 남기고, 또 어떤 사람들은 무언가의 이야기를 담아 때로는 소설로, 때로는 영화로 타인에게 전한다. 그렇게 어떤 공간에 담겨 있는 누군가의 특별한 기억은 단지 그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으로 공유된다. 한국에서 이처럼 특별한 장소에 대한 기억을 특히 소설로 잘 구현했던 작가는 아마도 작가 이효석이 아니었을까. 그가 쓴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짧디 짧은 단편은 장소 속에 담긴 인간의 특별한 기억을 타인에게 공감의 형태로 전했던 가장 특별한 사례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메밀꽃밭이야 단지 이효석의 고향이었던 평창 봉평에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칠흙 같은 밤 메밀꽃밭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남긴 몇 줄의 글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몇 줄의 글에 담긴 조선달과 동이의 미묘한 이야기와 메밀꽃밭을 비추는 달빛이 없었다면, 애초에 메밀꽃밭이라는 것이 특별할 까닭은 없는 것이다. 당연히 작가 이효석이 달밤과 메밀꽃밭에 대한 기억도 전혀 없이 이 작품을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소학교를 평창에서 다닌 이후 계속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그의 어린 시절 어딘가에는 분명 “부드러운 빛을 흐뭇히 흘리고” 있던 달빛과 흐드러진 메밀꽃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존재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가 남긴 짧은 글을 통해 그의 극히 내밀한 기억을 훔쳐보고 있을 뿐이다. 낯설기 짝이 없는 그 시간과 장소를, 마치 내가 언젠가 경험했던 것 같은 익숙한 기억을 가지고. /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4-09-24

대마에 거는 기대

60년대까지 청송엔 대마 농사가 성행했다. 집집마다 씨앗을 뿌려 대마를 길렀다. 대마 채취가 끝나면 마을 사람 모두가 나서서 삼굿을 했다. 삼 껍질이 잘 벗겨지도록 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구덩이를 파고 장작을 깔고 그 위에 돌을 얹어 삼을 재고 풀과 흙을 덮은 후 불을 지폈다. 삼굿은 힘이 많이 드는 일이어서 마을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삼굿이 끝나면 푹 삼긴 삼을 꺼내 차가운 계곡물에 식혔다가 건져내어 껍질을 벗겼다. 삼에서 뽑아낸 실을 꼬아 삼을 삼고 베를 매고 짜는 일은 대부분 섬세한 아녀자들 몫이었다. 삼베가 완성되면 잘 짜진 베는 팔아 살림에 보탰고 올이 굵은 베로는 가족들 옷을 지어 입혔다. 밤이고 낮이고 베틀에 올라앉아 베를 짜던 아낙들이 이제는 텃밭 농사도 힘에 부쳐서 경로당에 모여 시간을 보낸다. 주왕산 마을 여든을 훌쩍 넘긴 어르신들이 삼 농사지어 베 짜던 시절 얘기를 주절주절 풀어놓는다. 삼굿이 끝나고 차갑게 식힌 삼 껍질을 벗길 때 집집이 해 온 밥을 펼쳐놓고 거랑가에 둘러앉아 먹던 때가 어제 일처럼 선하단다. 어느 댁은 계추리(황저포)를 잘 짰고 어느 댁은 열세로 치는 계추리는 아니라도 일곱세는 짰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그 시절을 지나오지 않은 내 귀에는 무슨 암호처럼 들린다. 눈치 빠른 어르신이 설명을 보탠다. 계추리는 삼의 겉껍질을 긁어버리고 만든 고운 실로 짜는데 부드러워서 삼베 중에 최고로 치고 올이 굵은 삼베는 다섯세, 여섯세도 있었단다. 어렴풋이 귀가 열린다. 한창 삼을 삼고 베를 짤 무렵 어르신들 손가락 끝이 얼마나 아렸을까 싶어 멀쩡한 내 손끝이 저려온다. 정작 직접 짠 고운 삼베를 오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는 어르신 얼굴엔 자부심만 한가득이다. 온몸으로 세월을 건너온 어르신들이 지구 생태에 건강한 영향을 끼쳤다는 걸 알고나 계실까. 어머니가 들려준 외조모 얘기도 주왕산 어르신들 못지않다. 외조모는 손이 매워서 삼베는 물론이고 무명이며 명주 짜는 솜씨가 유달리 좋았다고 한다. 마을의 부자로 통했던 외조부가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다 날리게 되면서 외조모의 진가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집안이 망했다고 낙담할 사이도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키웠다. 누에에서 실을 뽑아 몇 날 며칠 베를 짠 후 공인된 허가증을 목에 걸고 명주를 팔러 나섰다. 차만 타면 멀미를 하는 통에 아무리 먼 길도 걸어 다녔다. 가지고 간 베를 다 팔 때까지 남의 집 고방에서 묵는 일은 예사였고 끼니를 굶는 일도 숱했다. 무거운 명주를 이고 지고 발품을 팔아가며 번 돈으로 자식 공부를 시켰다. 쓰러졌던 외가는 억측이었던 외조모로 인해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외조모에게 뽕나무와 누에와 명주는 삶을 지탱해 준 고마운 것이었고 그분은 몰랐으나 그로 인해 지구 한 귀퉁이는 맑았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면서 값싼 화학섬유로 만든 의류가 시장을 지배했다. 경제개발이란 미명하에 품이 많이 드는 삼베며 무명이며 명주는 우리 주변에서 밀려났다. 경지 정리된 논에는 대마와 목화와 뽕나무 대신 소출이 많다는 벼가 심겼다. 사람들은 더 이상 비싼 값을 들여 몸에 좋은 천연 섬유로 짠 옷을 입지 않았다. 베틀은 쓸모가 없어졌고 대마는 아편처럼 중독성이 있다는 불명예마저 안게 되었다. 시골 구석구석 흔하게 자라던 대마가 한순간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십여 년 전 청송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을 때 빈 집 울타리 안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대마가 저절로 자라는 걸 본 적 있다. 이곳 토박이들의 오랜 역사를 만난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었으나 얼마 안 가 사라지고 없었다. 한 뿌리라도 키우면 불법이라는 걸 마을 사람 누구나 모르는 이가 없게 된 까닭이었다. 안동은 안동포의 명맥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요즘 들어 대마 농사를 짓는 농가도 늘고 있다고 한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주 작목인 고추 농사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반면 대마 농사는 수월함과 수익성을 모두 갖춘 때문이란다. 대마는 밭을 갈고 씨만 흩뿌려서 흙을 덮어주면 3개월 동안에 2미터 이상 자랄 정도로 잡초보다 성장이 빠른 작물이다. 비료 없이도 잘 자라고 1년에 2 모작이 가능하다. 병해충에 강해 농약을 칠 필요도 거의 없다. 이러한 이점 덕분에 최근엔 대마 농사를 짓기 위해 멀리서 알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단다. 섬유용 대마는 옷부터 건축자재, 자동차 내장재까지 다양한 산업분야에 활용될 정도로 미래 산업가치도 뛰어나다. 몸에 좋은 대마종자유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외국에서는 새롭게 떠오르는 작물이기도 하다. 박월수 수필가 나무는 온실 가스를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성장이 빠른 대마를 심는 일은 뜨거워지는 지구별을 구할 수 있는 가장 값싼 방법이라고 생태환경 운동가들은 말한다. 자연분해가 가능하고 독성이 없는 대마를 이용해 플라스틱을 만들어 쓸 수도 있다니 석유화학물질에 대한 의존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다.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대마가 합법적으로 재배되고 있다는 건 지구별의 입장에선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지구의 내일을 위해 중독성 없는 대마를 재배하는 일이 어디에서나 가능해지기를 바라본다. ◇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 /박월수 수필가

2024-09-24

특권폐지 운동의 선봉자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 정치가 국민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 이론을 달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국민 눈에 비치는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라고는 정쟁과 몸싸움, 방탄, 가짜뉴스 양산, 혈세낭비 등등 뿐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줄이자는 데 대해서도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명 중 6명은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지난해 4월 16일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 등 3명의 공동대표는 특권폐지 국민운동본부를 출범시켰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과 고위공직자의 전관 예우 등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에게 부여된 200가지의 특권 폐지를 목표로 1000만명 서명운동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그들은 “한국의 정치는 특권집단화와 양극화의 심화로 국민 상호간의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으며 이것이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밝히고 “정치가 국민의 희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선 특혜와 특권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권 폐지의 방안으로 국회의원의 월급을 근로자 월평균 임금으로 줄이며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 폐지 등 구체적 대안도 제시했다. 국민의 여론 지지만큼 특권폐지 운동이 활활 불붙진 않았으나 지금도 특권 폐지 정신을 지지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특권이란 나만 누리라는 특별한 권리가 아니다. 국회의원으로서 주어진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라고 준 권한이다. 그 권한 뒤에는 국민의 혈세와 희생이 있는 것이다. 재야 시민운동가이자 정치인인 장기표 대표가 별세했으나 그가 말년에 힘을 쏟아부은 특권폐지운동의 정신은 그의 사후에도 지속 이어져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9-24

의대생 집단유급되면 의료시스템 망가진다

심충택 논설위원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2일 기준 전국 40개 의과대학에서 2학기 등록금을 낸 학생이 전체 1만9374명 중 653명(3.4%)에 불과하다. 의대생 대다수가 아예 등록 자체를 거부해 집단유급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재학생 중 일부는 다른 대학에 수시모집 원서를 내거나,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어렵게 자녀를 의대에 보낸 학부모들의 속이 어떨지는 짐작이 간다. 교육부는 지난 7월 의대생들의 유급 판단을 학기 말에서 학년 말로 미루고, F학점(낙제)을 주는 대신 추후 성적을 정정해주는 학점제도를 도입할 것을 대학에 권고했다. 통상의 학사운영 기준을 적용하면 대다수 의대생이 유급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부라고 해서 등록도 안 하고 수업도 안 듣는 학생을 진급시킬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은 없다. 법령과 학칙에서 예외를 두는 것은 다른 학과 학생들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나 불가능하다. 만약 2학기에도 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유급이 확정된다면, 2025학년도에는 현재 1학년·신규 입학생(7500명)이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한다. 이들은 동시에 진급하기 때문에 6년 내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다. 현 의대 교육여건상 수업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이와함께 의대 본과 4학년들이 의사 국가시험 지원을 계속 거부하게 되면, 내년에는 신규의사도 배출되지 않는다. 진료와 교육, 임상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한국 의료시스템이 대학교육이라는 첫 단계에서부터 망가지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지금은 대규모 의대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이 8개월째 지속되면서 환자와 수련병원, 의과대학 모두 패닉상태다. 중환자들은 수술일정을 잡지못해 생명을 위협받고, 병원과 학교를 떠난 전공의 1만2000명은 돌아올 기미가 없다. 지친 의대교수들도 병원을 떠나고 있다. 입원·외래환자가 반토막 난 수련병원들은 심각한 경영난에 처해 있다. 의료시스템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전공의들의 병원 복귀다. 의사는 전공의 시절이 가장 중요하다. 인턴은 레지던트 1년 차한테, 레지던트 1년 차는 2년 차한테 배운다. 한 해라도 레지던트 정원에 결원이 생기면 이런 ‘도제식 교육’에 후유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수련병원에서 전공의가 사라지면 전문의와 의대교수들도 배출될 수 없다. 내년에는 전문의 배출이 평소의 10분의 1 정도로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2000년부터 8년간 삼성서울병원에서 4·5·6대 병원장을 지낸 이종철 서울 강남구 보건소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의료가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하는 전공의들의 노력 덕분에 열악한 환경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를 수 있었다”고 했다. 정부는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전공의들이 하루빨리 제자리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료대란으로 국가 의료시스템이 망가지고 국민이 생명을 잃으면, 의료개혁이 성공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한 여당 국회의원의 말에 공감이 간다.

2024-09-24

지구를 위해 손을 내밀자

김규인 수필가 민족의 큰 명절인 추석이 지났다. 상인들은 불경기로 힘들다고 하지만, 골목마다 내어놓는 쓰레기 더미는 만만치 않다. 버려진 건 빈 상자, 플라스틱 포장 재료, 음료수병, 비닐봉지 등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이렇게 많은 물건이 다 어디로 갈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다. 제대로 재활용하는 물건도 적거니와 버려진 상태도 제멋대로이다. 자세히 보면 음식물이 묻은 종이류, 먹다 남은 음식물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 양념이 묻은 종이와 비닐류가 무엇을 담고 있었는지 묻지 않아도 몸으로 말한다. 쓰레기의 분리수거는 어려운 것인가. 버려진 양심을 가득 담은 쓰레기들이 거리를 뒹구는데 사람들은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추석인데도 한여름 날씨가 이어지니 사람들은 덥다고 난리를 친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우가 내리는가 하면 비가 내리지 않아 마실 물을 걱정하는 곳도 늘어난다. 곳곳에서 이상기후로 인해 집을 잃은 사람들이 힘들어한다. 계속되는 태풍에 물난리를 만난 이재민은 늘어나지만 정작 근본적인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은 적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한 번씩 특집으로 환경문제를 다루지만, 구색을 갖추기 위한 행위처럼 느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환경문제는 밥을 먹듯이 매일 신문의 1면을 차지하거나 방송의 첫머리를 장식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도 실상은 환경오염의 실태조차 파악하지 않으려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답답하다. 얼마나 더 지구가 망가져야 사람들은 진정으로 환경을 걱정할까. 아니 지구가 아니라 자신이 살기 위해 매달릴까. 지구는 아프다고 앓는 소리를 내거나, 걸핏하면 자신을 태우며 고통을 호소하는데 사람들은 자기의 일이 아니라는 듯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물건을 만드는 공장에서는 물건보다 포장재에 많은 신경을 쓰고, 사용하지 않아도 될 물건을 채워 넣는다. 보기에 좋게 비닐로 코팅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화려한 장식을 더 한다. 물건보다 소비자의 관심을 받는 데만 신경 쓰는 모습이다. 어떻게 하든지 물건이 잘 팔리고 좋은 가격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인터넷 판매를 하는 업체에서는 조그만 물건을 부치는데 너무 큰 상자를 사용한다. 정작 택배 물건을 받아 상자를 뜯어보면 실제 물건은 외롭게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있다. 상자가 작으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 그렇게 보낸다. 운반비도 늘어날 텐데 원가관리 측면에서 보더라도 효율적인지 의문이 든다. 국가에서는 재활용을 권장하나 이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고 공장에서는 물건을 팔기 위해 오늘도 포장에 공을 들인다. 차량은 더 무겁고 큰 상자를 싣고 힘들게 언덕을 오르느라 오염된 가스를 내뿜는다. 일회용품은 넘쳐나고 불어난 쓰레기는 산천을 뒤덮는다. 이대로 계속되어도 좋은 것인지 묻고 싶다. 이제라도 지구를 위해 무엇이든지 실천하자.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쓰레기와 오염 물질이 가득 찬 별이 될 것이다. 지구가 아파하고 몸부림치는 고통에 사람들도 죽어갈 것이다. 이제라도 스스로 살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절박한 몸부림이 필요하다.

2024-09-23

각개전투의 시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곧 마무리될 것 같았던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싸고 시작된 갈등이 어느 순간 자존심 싸움으로 치달으며 출구 없는 미로에 갇혀버렸다. 지난 추석을 앞두고는 응급실 진료를 받지 못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사례가 연이어 언론에 보도 되며 긴장감을 높였다. 정부에서는 구급대원의 입을 단속하고 군의관을 현장에 파견하며 문제에 대응하고자 했으며, 의료계는 이런 정부의 태도에 비판적 입장을 표했다. 동시에 정부는 전공의의 현장 복귀와 의대생의 학교 복귀를 꾸준히 설득하고 있다. 특히 의대생의 학교 복귀를 돕기 위해, 두 개의 학기로 구성된 연 단위 학사 일정을 변경하는 학칙 개정까지 각 대학에 요구하고 나섰다. 의대생들의 휴학 신청을 승인하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들이 학사경고를 받아서 유급되는 상황을 막으려는 대책이지만 현장에서는 교수도 학생도 모두 반대하는 정책이다. 의대생들의 학교 복귀가 요원한 현실에서, 이번 학사일정 변경은 의대생을 위한 특별 혜택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더 이상 이번 사태의 책임을 어느 한쪽으로 돌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분명한 점은 이번 일로 아픈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 아이가 두 살 때 자정이 다된 시간에 대형병원 응급실에 급하게 간 적이 있었다. 줄자의 예리한 칼날에 베인 아이 손가락의 피가 한 시간이 넘도록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응급실에서 의사의 도움으로 베인 손가락을 꿰매고 돌아올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고 늦은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응급실 밖에는 없다. 중증 환자가 아닌 경우 응급실을 자제하라는 권고에 따르면 이런 환자는 새벽에 어디서 치료를 받아야 할까? 국민은 국가를 믿고 일상을 살아간다.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믿음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근 추석을 앞두고 지인들과 나눈 인사는 추석 때 절대로 아프지 말자는 자조 섞인 말이었다. 의료 개혁이라는 명분은 눈앞의 불안과 고통을 감내하기에는 공감하기 어려운 말이다. 의사들의 이기주의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우리는 그 누구도 믿지 말고 각자 알아서 자기와 가족을 지키는 삶, 각개전투의 삶이 현명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2023년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8년째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8년 동안 빠지지 않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크고 작은 정책이 시행되었지만, 반등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그간 출산 장려금 등 부수적인 것에 정책이 집중되었으며, 그럴수록 근본적인 문제, 국가에 대한 믿음은 사라져 갔기 때문이다. 의료·교육·주거 문제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며 결국 나의 무능력을 탓하는 현실에서 누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각개전투의 시대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결국 국가 아닌가.

2024-09-23

유행 흐름 속에서 생존하는 방법

슬럼프가 찾아왔다. 나름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이 원하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 이유였다. 나는 좋게 말해 다소 개성 있는 시를 쓰는 시인이고, 다르게 말하면 조금 이상한 시를 쓰는 시인이다. 어떤 면에서는 구닥다리 같은 측면이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름 진정성 있는 작품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몇 차례 반복되니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지도교수이자 은사님이신 유성호 교수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아무래도 지금 우리나라 시단이 원하는 방향이 제가 쓰고 있는 방향과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럴 수 있지.” “다음 원고는 좀 다른 방향으로 써 보려고 합니다.” 나름 생각을 많이 하고 드렸던 말씀인데 선생님께서는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그러지 마쇼. 쓰던 대로 쓰면 돼.” 전화를 끊고서 그 말씀을 한참동안 머릿속에 가두어 두었다. 오랜 생각 끝에 나는 어렴풋하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어떤 뜻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나가던 조씨’란 사내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의 본명은 조현철. 나와 함께 ‘백수와 조씨’라는 2인조 밴드로 활동한 적 있었던 악기 연주자이다. 그는 여러모로 희한한 사람인데 언제나 가장 눈길을 끈 것 중에 하나는 그의 패션이었다. 그는 내가 기억하기로 이미 15년이 넘는 세월동안 검정 계열의 아웃도어 의류를 주구장창 입고 다녔다. 간혹 체크 남방 같은 것을 함께 입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의 패션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는 등산복이었다. 나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패션을 비웃었는데, 최근 들어 뜻밖의 현상이 일어났다. 기능성 아웃도어 의류와 일상복을 믹스매치하는 고프코어(Gorpcore)룩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고프코어룩의 선두주자라 하면 모델 겸 방송인 주우재 씨를 많이 떠올린다. 그러나 나는 확언할 수 있다. 주우재 씨가 있기 전에 조현철이 있었노라고. 그가 무심코 입던 스타일이 어쩌다 보니 유행과 맞아떨어지게 된 것이다. 그 다음으로 ‘현대 축구의 반역자’ 후안 로만 리켈메 선수가 떠올랐다. 그의 전성기였던 2000년대 중반은 전통적인 공격형 플레이메이커가 각광받는 시대가 아니었다. 다양한 선수가 공격을 조립하고 팀 전체가 유기적으로 전술을 수행하는 시대에서 리켈메는 여전히 전통적인 플레이메이커로 남았다. 모든 공격상황에서 공은 그를 거쳐야 했고, 공격의 템포는 빠르지 않았다. 대신 창조적이고 정확한 패스를 뿌릴 줄 알았고 때로는 직접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현대 축구의 흐름에 역행했지만 그는 스스로 하나의 전술이 되어 수많은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고, 스페인 리그와 아르헨티나 리그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한 매체는 그를 200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 4위로 꼽았다. 선생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은 유행을 좇기보다는 뚝심 있게 내 영역을 개척하라는 말씀인 것 같다. 약간은 우스갯소리처럼 한 말이지만 지나가던 조씨라는 친구가 더 이상 옷차림으로 놀림받지 않게 된 것처럼, 그리고 리켈메가 결국 자신만의 축구로 역사를 이룬 것처럼 가던 길을 우직하게 가는 것이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가르침이셨을 것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소위 주류라고 하는 스타일을 흉내 내는 것 정도는 나도 할 줄 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스타일을 내면화하여 쓰는 사람보다 잘 쓸 자신은 없다. 아등바등 그들 꽁무니를 좇다가 드디어 그들과 나란히 설 수 있을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무렵 또 새로운 것들이 유행하기 시작할 것이다. 유행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그 유행의 선두에 서서 걷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스타일리시하고 멋지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들 뒤에는 끝없이 유행의 뒤를 좇지만 결국 유행을 따라잡지 못하는, 세상에서 제일 촌스러운 사람들도 있다. 차라리 유행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가는 사람들이 훨씬 멋져 보이는 때가 많다. 돌고 도는 유행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건 그들은 끝내 살아남는다. 유행을 창조하고 선도하던 이들이 지쳐서 끝내 뒤처지고 마는 순간에도 자기 길을 걷던 사람들은 거기 남아서 그들의 세계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시인이 되었을 때는 이십 대 초반이었다. 내가 제일 어렸고 그래서 내가 최첨단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나도 이제 곧 사십이고 나보다 어리고 잘 쓰고 반짝반짝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등장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사라질 순 없다. 나는 계속 여기서 나만의 견고한 성을 쌓을 거다. 아무도 저런 성은 쌓지 않는다고 누군가는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두고 보자.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2024-09-23

가족의 일

이번 추석은 평소의 추석과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폭염의 가을이라니.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도 그러했지만, 개인적으론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은 것이 명절 분위기를 흐리는 데 한몫했다. 이번 추석은 여러 상황을 종합하여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는 방식을 택했고 형제들이 모여 간단히 식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만큼 온 가족이 모이는 북적북적한 모습은 연출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대체 언제 은강이의 신작 소설이 출간되는 거야?’ 혹은 ‘시집을 갈 생각이 있긴 하니?’ 같이 잔소리하는 친지들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뜻. 간소화된 식사 자리에서 은근히 느껴지는 부모님의 걱정의 눈빛을 묵묵하게 견디는 것으로, 비교적 조용하게 명절을 끝마쳤다. 온 가족이 모이는 일이 부담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 가족들 앞에서 내 역할을 증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은 꽤 오래되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방향이 미세하게 수정될 뿐이다. 나는 항상 나대로 살고 있는데, 어쩐지 내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평소에는 자부심을 가지고 잘 해내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 한순간에 쓸모없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나 자신이 원하는 것과 가족이 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인 것만 같다. 우리 사회는 관계 지향적이다. 오랜 시간 동안 공동체의 존속을 위하여 개인의 돌발적인 행동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취급받았다. 이러한 맥락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는 아주 짧은 시간 내에 큰 발전을 이루었다. 잘살아 보겠다는 뚜렷한 목표는 삶의 강한 동력이었다. ‘더 빨리,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선 다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고 어떤 면에서 그것은 훌륭한 문제 해결 방식이 된다. 그러나 사회 전체를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개인의 삶을 지워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것은 한 사람의 삶보다 우선시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개인의 감정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 취급된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우리 사회의 기조는 한 사람이 입을 다물면 많은 것이 해결된다고 믿는 것에서부터 나온다. 이는 우리가 가진 고유한 모양이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자각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자기 자신에게, 나아가 가까운 사람에게까지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지나온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상대의 약한 부분을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 삶에서 이 정도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관계로는 응당 가족 공동체를 들 수 있다. 김소연 시인의 저서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아주 친밀한 사람에게 ‘가족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특별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실재하는 가족은 특별함을 일찌감치 지나쳐 온갖 문제가 산적한 집합체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 내면에 간직된 상처의 가장 깊숙하고 거대한 상처는 대부분 가족으로부터 얻은 것”이며 “오래된 제도로서의 가족은 서로를 계속해서 희생해야만 존속”되어 왔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가족 공동체는 사회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 우리 개인은 국가로부터 받은 모종의 상처를 안고 있으며 대의라고 명명되는 것의 희생양이라는 생각을 쉽게 지우지 못한다. 상처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곪아버리기 마련. 겉을 감싸는 화려한 포장지에 집중하느라 썩어버린 내부를 놓쳐서는 안 된다. 깊숙한 상처를 마주하고 계속해서 좋은 공동체란 무엇인지에 관해 골몰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명절의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음에 슬퍼하는 이와 ‘가족 간에 정을 나누는 일’에 상처받는 영혼이 공존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안식을 찾지 못하고 밀폐된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중이다. 이것을 극단적 고립주의나 철저한 개인주의로 나아가려는 신호로 읽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건강한 형태의 집단을 만들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면 어떨까. 가까운 사람에 관해 알고 싶은 것은 사랑의 한 형태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삶을 어떠한 잣대를 두고 판단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우리는 저마다의 인생을 그려가고 거기에 완벽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가족이란 함께 묶일 수도 있지만, 또 언제든 떨어져 존재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것. 같은 곳을 바라보기보다 등을 맞대더라도 체온을 나누는 것. 그러한 마음을 가지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2024-09-23

표준어 사이의 이정표, 충북 방언시

충청 방언은 흔히 양반 말이라고도 한다. 호서 방언 혹은 서남방언이라고도 하는데 충북과 충남 방언은 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충청 방언은 경기 방언과 억양, 음운, 문법 면에서 이질적인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따로 구분하여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충북 방언은 경기 방언과 호남 방언의 중간점에 위치하여 둘 사이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해유’와 같이 말끝이 길게 늘어지고 말의 흐름 또한 느리고 온화하며, 억양이 차분한 것이 특징이다. 충북 방언은 단양, 제원군, 중원군, 괴산군의 연풍과 장연 지역의 동부 방언권과 중원군, 음성군, 진천군, 괴산군, 보은군 등지의 중부 방언권, 옥천군, 보은군, 영동군의 동부 지역 등 남부 방언권으로 나뉜다. 충청북도는 박완호, 서경은, 오탁번, 윤관영 등 이름난 시인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진천 출신의 박완호 시인은 ‘씨부럴’이라는 시에서 충청도 방언의 특유한 말투인 ‘~유’를 적절하게 섞어 충북 방언의 말맛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시팔이라구 쓰구는, 씨부럴이라구 했시유,/가 봐야 인자는 모냥새도 안 남은/구봉리 고향집, 푹석 자빠져부린/기둥이랑 들보 쓱어가는 새/여그저그 속 모르구 고개 쑥쑥 내민/풀잎사구 흔드는 바람만/괴사리손 빠져나가는 미꾸리들뫼양/눈그물 밖으로 내삐는디” 오랜만에 찾은 구봉리 고향집의 전경을 고향의 어법으로 구사한다. 충청도 방언에서 ‘ㅓ:’는 ‘ㅡ:’로 실현되며 말투 역시 느릿하게 ‘~유’라며 말꼬리가 축 드리워진다. 시의 말미에 “낫살에 안 맞게/엉엉 울어버리구 말았시유”라며 구봉리 고향을 나이들어 뒤늦게야 찾은 시인은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알싸한 고향의 그리움은 고향의 말씨와 뒤섞여 제 맛깔과 빛깔을 찾게 된다. 제천 출신 서경은 시인은 충청도의 낱말 가운데 ‘올뱅이(다슬기)’, ‘새뱅이(새우)’라는 단어로 한 편의 시를 지었다. 제천과 인접한 경북 영주지역에서도 ‘올뱅이’, ‘올갱이’라는 방언이 나타난다. 옹솥에 펄펄 끓인 새뱅이국과 올뱅이국을 끓여 먹으며 강에서 물놀이하던 추억을 한편의 그림처럼 그리고 있다. 우리말에서 ‘ㅂ’과 ‘ㄱ’은 쉽게 교체된다. 소위 음운교체라고 한다. ‘올뱅이’와 ‘올갱이’는 ㅂ과 ㄱ의 교체형으로 ‘붚(붑)북(鼓)’의 변천과 같은 예이다. “물놀이에 함께 가지 못하고/혼자 집을 보고 있노라니/부아가 치밀었던가/옹솥 안에서 ‘새뱅이’들이/또 한 번 끓어오르며 왁자지끌하였으나/늦은 저녁으로 먹은 ‘새뱅이’국맛은/여전히 달랐다.”라며 충청도 제천의 대표적인 방언 어휘인 ‘올뱅이’와 ‘새뱅이’로 맛있는 한 상의 저녁상을 차려낸다. 오탁번의 산문집 ‘두루마리’(태학사, 2020)를 보면 그가 충북 제천 방언을 얼마나 아끼며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스스로를 ‘별별 오두방정을 떠는 철부지 시인’이라고 ‘자뻑’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방언으로 언어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그는 참 아름다운 시인이다. 그의 시 ‘잘코사니’에 나오는 ‘잘코사니’는 얄미운 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하거나 봉변당하는 것을 고소하게 여길 때 내뱉는 제천 방언이다. 경상도 방언으로는 ‘아방신이다’, 서울방언으로는 ‘고소하다’정도의 말맛을 가진 단어다. 탁월한 방언 시인이기도 했던 오탁번은 “쥐코밥상 앞에서/아점 몇 술 뜨다가 만다/저녁은 제대로 먹으려고/밥집 찾아 들랑날랑하지만/늙정이 입맛에 영 아니다/다 버리고 고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을 찾아왔는데/입은 서울을 못 잊었나 보다/야젓하게 살고 싶지만/뭘 먹어야 살든 말든 하지!”에서 ‘쥐코밥상’, ‘늙정이’, ‘야젓하게’와 같은 제천 입말을 고급진 표준어 사이에 이정표처럼 끼워넣어 고향으로 간다. 오탁번 시인은 과연 “남몰래 슬프고 황홀했던” 삶을 살았던 것일까. 마치 자신의 모어, 살가운 사투리에 살짝 갸울은 시인이었다. ‘눈부처’의 “이승 저승이/입술에 닿는 술잔만큼/너무 가까워/동네사람들은 함빡취했다/-잔 안 비우고 뭐해유?/한 씨에게 자꾸만 술을 권했다”에서처럼 쉬 이승을 떠난 고향사람들을 회상하듯 자신도 입술에 닿는 술잔만큼 가까운 저승으로 떠났다. 노루잠에 개꿈을 꾸듯 살았던 이승의 그리움을 뒤로 밀어두고. 필자는 오탁번 시인이 남긴 방언시를 매우 아끼고 사랑한다. 시어로 방언을 마구잡이로 노출시켜 시적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시들은 오히려 방언을 오염되고 누추한 변종으로 추락시킨다. 이에 반해 오탁번은 방언 시어를 적절히 끼워넣어 시적 미의식을 감쇄시키지 않는 절대 균형을 이룬다. 섬세한 절제의 언어 수단으로만 방언을 시어에 사용했다. 방언시어로 언어의 원형을 복원하고 또 그 원형의 상징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표준어가 고급진 언어라면 방언은 그 고급진 언어로 향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4-09-23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연구년을 맞아 2025년 9월 1일부터 1년간 도쿄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출국을 앞두고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지진에 대한 염려였는데요. 모두 알다시피, 노토 반도 대지진으로 2024년을 맞이한 일본에서는 지난 8월에 지진이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8월 8일 미야지마 지진을 시작으로, 9일 가나가와현에서, 10일 홋카이도에서 지진이 일어났던 겁니다. 이로 인해 난카이 해곡에서 100~150년 간격으로 발생한다는 대형 지진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일본 정부는 지난 8일 ‘난카이 해곡 지진 주의’를 발표하기까지 했는데요. 그래서인지 저를 아끼는 많은 분들은 지진에 대한 걱정을 참 많이도 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저도 나중에는 걱정이 될 정도였는데요. 한국인에게 일본과 지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포의 대상으로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발생한 간토대지진의 참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일본에 입국한 날은 101년 전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9월 1일이었습니다. 간토대지진은 참으로 끔찍한 진재(震災, 지진에 의한 재해)였는데요.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 도쿄를 비롯한 간토 일대를 강타한 지진은, 도쿄제대에 설치된 지진계가 고장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이 지진으로 수십 만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요. 더욱 끔찍했던 것은 이후 계엄령이 내려지고, 일본군과 경찰들의 직접적인 가담 내지는 방조에 의해 수천 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했다는 사실입니다. 학살은 주로 자경단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들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들이 불을 지르고 다닌다’, 심지어 ‘임신부처럼 배에 폭탄을 넣고 다니며 일본인을 죽인다‘ 등의 유언비어를 빌미로 그런 만행을 저질렀던 겁니다. 시인 쓰보이 시게지는 시 ’15엔 50전(十五円五十錢)‘에서 그 날의 참상을 “나라를 빼앗기고/말을 빼앗기고/최후에 생명까지 빼앗긴 조선의 희생자여/나는 그 수를 셀 수가 없구나”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일본에서의 첫 번째 주말을 맞이한 제가 향한 곳은 스미다구에 있는 요코아미초 공원이었습니다. 요코아미초 공원은 간토대지진 당시 공터(본래는 일본 육군 피복창터)여서 많은 사람들이 피난했다가, 오히려 갑자기 닥쳐온 열폭풍으로 무려 3만8000명이 희생된 곳입니다. 여기에는 웅장한 일본풍의 도쿄도위령당이 있었는데요. 그 옆에 검은 색의 ’관동대지진조선인희생자추도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추도비 옆에는 ‘관동대진재 조선인희생자 추도행사 실행위원회‘가 1973년에 세운 비석이 하나 더 있었는데요, 그 비석에는 “1923년 9월 일어난 간토대진재의 혼란 속에서 그릇된 책동과 유언비어로 6000여 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귀중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우리들은 50주년을 맞아 조선인 희생자를 마음으로부터 추도합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올해도 9월 1일에 추도식이 열렸으며, 제가 이곳을 찾은 9월 7일에도 여전히 꽃과 술병들이 억울한 넋을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올해는 사이타마현 지사와 지바현 지사가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 추도 행사에 처음으로 추도 메시지를 담은 조전을 보냈다고 합니다. 또한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는 9월 1일 일본 도쿄 주일한국문화원에서 열린 ‘101주년 관동대진재 한국인 순난자 추념식’에 자민당 출신 전직 총리로는 처음 참석하기도 했는데요. 행사 이후 한국 기자들과 만나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은 “역사적인 사실”이라며 ‘한·일 공동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간토대지진 당시 6600여 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한 사실을 흔쾌히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전직 총리가 이를 ‘사실’로 확인한 것은 의미 있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현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조선인 희생자를 위한 어떤 행보도 보이지 않았네요. 특히 2016년까지 도쿄도지사가 매년 추도문을 발표했던 것과 달리,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2017년 취임 이후 올해까지 단 한 번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추도문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본래는 요코아미초 공원 근처의 스미다가와 강변도 걷고, 아사쿠사 관광지까지도 가볼 생각이었으나, 100년 전의 그 처참한 만행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부인의 폭력 때문인지 갑자기 너무나 큰 피로를 느꼈습니다. 급하게 연구실로 돌아왔지만, 토요일이어서 연구실 건물 자체가 출입불가였습니다. 할 수 없이 중앙도서관에 갔을 때, 놀랍게도 그곳의 1층 전시 코너에서는 ‘눈앞에서 펼쳐진 학살의 기록과 시민의 대처-관동 대지진 당시 살해당했거나 살해당할 뻔한 사람들을 애도한다’는 이름의 전시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진재발생, 그리고 사람들은…’, ‘일고생이 본 관동대진재’, ‘진재 당시의 조선인 유학생’, ‘학살의 실태를 조사하다-조선인 조사단과 요시노 사쿠조’, ‘진재에 대한 끊임없는 증언과 그 후’, ‘잊지 않기 위해-시민의 활동과 추도회’라는 여섯 개의 세부 코너에 총 34개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큰 규모는 아니지만, 간토대지진과 관련한 역사적 증언들과 자료들을 살뜰하게 모아 놓은 전시였습니다. 그 전시를 보고 숙소로 걸어가면서, 어쩌면 절망도 그리고 희망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2024-09-23

국회의원 특권, 무엇이 문제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세계 최고의 특권과 특혜를 누리고 있지만, 그들의 정치수준은 낙제점이다. ‘고비용·저효율의 정치’를 ‘저비용·고효율의 정치’로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가 없다. 극심한 정쟁을 하면서도 자기들 이익을 위해 야합하는 표리부동한 정치행태를 보라. 특권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그들이 어떻게 국민의 공복이 될 수 있겠는가. 이러한 현실은 특권 폐지의 당위성을 말해준다. 국회의원 특권의 무엇이, 왜 문제인가? 그것은 첫째, 특권·특혜가 너무 많아서 권력이 봉사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불체포특권·면책특권에다가 연봉 1억6000만원, 명절휴가비 850만원, 입법·특별활동비, 유류비·차량유지비, KTX 특실과 비행기 비즈니스석 제공, 연 2회 해외시찰, 9명의 보좌진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180여 가지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한국보다 부유한 프랑스·독일·스웨덴·일본 등 정치선진국들보다도 특혜가 더 많으니 어이가 없다. 정치선진국과 후진국 차이는 정치를 ‘봉사와 희생의 직업’으로 인식하느냐, 아니면 ‘특권과 특혜를 누리는 직업’으로 인식하느냐에 있다. 전자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보좌관 없이 스스로 업무를 수행하지만, 후자는 보좌관이나 비서에게 시켜놓고 전용승용차로 경조사 다니면서 폼을 잡는다. 정치선진국은 의원 보수를 외부 독립기관에서 결정(영국·스웨덴·캐나다)하거나, 경제지수와 공무원 보수액에 연동해서 결정(미국·독일·프랑스)하는데 반해, 한국은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보수를 결정하고 있으니 코미디가 아닌가. 둘째, 특권을 폐지하지 않고서는 한국정치가 정상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권 자체가 반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특권·특혜가 많을수록 오만과 독선에 빠져 국민의 공복이 되기 어렵다. 특권을 잡기 위해 정상배(政商輩)들이 벌떼처럼 모여들고, 권력에 줄서는 정실주의 정치가 만연한다. 특권을 폐지해야 ‘잿밥에만 관심 있는 정치꾼들’이 사라지고 진정한 정치인들이 정도정치를 펼 수 있다. 국회의원들의 특권카르텔을 해체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한국정치발전의 길이다. 셋째, 국회의원들이 특권 폐지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이 나서야 한다는 사실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 없듯이, 후안무치(厚顔無恥)한 그들에게 특권 폐지를 기대할 수는 없다.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가 2023년 국회의원들에게 등기우편으로 특권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총 300명 중 6명만 찬성하고 나머지는 모두 응답을 거부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선거 때만 특권 폐지를 약속하는 그들에게 맡겨두면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니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국민이 특권폐지운동을 주도하는 수밖에 없다. ‘국민의 수준이 정치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주권자인 국민이 깨어있지 않으면 특권에 취한 그들은 절대로 깨어나지 않는다. 주인(국민)이 언제까지 머슴(국회의원)에게 농락당하고 살 것인가. 주인이 현명해야 머슴을 잘 부릴 수 있다.

2024-09-23

멀리 있는 사람을 모이게 하는 정치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정치 실망의 시대’를 넘어 ‘정치 부재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는 2024년 가을의 초입이다. 여당과 야당의 화합과 협치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고, 국회의원과 장관이 마주 서면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저 멀리 자취를 감춘다. 오직 서로에 대한 비난과 상대방을 향한 질타와 질책만이 신문과 방송의 정치 관련 뉴스 헤드라인에 횡행한다.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와 대정부질문을 보고 있으면 한숨부터 나온다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앞으로도 이 상황이 개선되거나 달라질 가능성이 낮다는 건 더 큰 문제다. ‘논어’ 자로편(子路篇)을 펼친다. 이런 문장이 나온다. ‘섭공문정 자왈 근자열 원자래(葉公問政 子曰 近者說 遠者來). 2500년 전 공자는 “바람직한 정치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 앞에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자신 가까이 있는 이들에겐 기쁨을 주고, 멀리 있는 사람들을 곁으로 모이게 하는 것이다.” 가까이서 기쁨을 선물하고, 멀리서 찾아가 들어볼 만한 고담준론을 해줄 수 있는 정치인이 지금 우리 곁에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너나없이 참혹한 심경이 된다. 공자가 살아온다면 끌탕할 일이다. 정치에서 희망이 사라진 시대임을 알기에 사람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에게 ‘근자열 원자래’ 같은 현자(賢者)의 정치철학을 가지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만의 틀 안에서 자기편만을 보고 정치하지는 말라는 것, 한 번쯤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 달라는 것, 그게 멀리 있는 사람을 모이게 하는 정치가 될 것이니. 이 정도 부탁도 들어주기 어렵다면 정말 심각한 일 아닌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9-23

통일정책은 국민 합의가 먼저다

김진국 고문 “통일 하지 말자”라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이 파문을 던졌다. 그는 19일 ‘9·19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자”라면서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라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은 전대협 의장 시절 임수경을 북한에 보냈다. 문재인 정부가 끝날 때는 “다시 통일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통일 하지 말자”라고 외치니 많은 사람이 놀랐다. 지난 연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남 관계는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고 주장했다. 그 뒤로 북한은 통일 관련 구호나 조직을 모두 없앴다. 동포가 아니라 ‘원쑤’가 된 것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김정은이 통일 거부 선언을 한 것과 연관 짓지 않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보수진영은 일제히 김정은 주장에 장단 맞춘다고 비난했다. 해방 정국에서 통일은 절대 가치였다. 백범 김구 선생과 이승만 전 대통령을 대비한 역사전쟁은 지금도 뜨겁다. 우파인 백범까지 내세우며 통일을 강조하던 진보 진영이 갑자기 통일하지 말자고 하니 어리둥절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2 국가론에는 여러 가지 전략적 암수(暗數)가 숨어 있다. 분명한 것은 적화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북진 통일’을 주장했다. ‘평화통일’은 금기어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7.4 남북 공동선언을 하면서 대화가 시작됐다. 구체적인 통일정책을 처음 만든 것은 노태우 정부다. 이홍구 통일부 장관이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김대중·김종필, 세 야당 총재 사이를 수없이 오가며,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으로 녹여냈다. 이것을 김영삼 정부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으로 발전시켰다. 이것이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이다. 자주·평화·민주 원칙과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완성이라는 3단계 통일 방안이다. 찬찬히 따져보면 여건이 만들어지기까지는 교류 협력하고, 통일을 미루자는 얘기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여정이다.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는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했다. 두 개의 나라는 아니지만, 서로의 실체를 인정했다. 유엔에 동시 가입해 국제적으로 두 나라로 인정받았다. 특수관계를 내세워 관세 등에서 국제사회의 특혜를 요구했다. 임 전 실장 발언에 놀랄 일이 아니다. 김정은이 감춘 비수와 그에 휘둘릴 가능성이 위험하다. 북한은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6·25 남침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주장했다. 남쪽의 좌파 단체와 학생운동권도 이에 동조했다. 전대협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 통일 한반도’는 자유의 이념으로 북한을 통일하겠다는 구상이다. 남쪽의 젊은이들은 이념 전쟁에 회의적이다. 통일을 반대한다기보다, 굳이 통일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해야 하느냐고 생각한다. 바른언론시민연합이 지난해 4월 20·30대 남녀를 조사한 결과 ‘통일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응답이 61%, ‘꼭 필요하다’는 응답은 24%였다. 통일부와 교육부의 22년 통일교육실 태조사에서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한 초·중·고생은 16.2%에 불과했다. 지난해 민주평통의 청소년 대상 조사에서는 통일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은 10명 중 1명,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러보지 않은 사람이 10명 중 7명이었다. 바람직한 미래상으로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2국가’를 52.0%가, ‘단일국가 통일 모델’를 28.5%가 꼽았다. 우리 사회의 인식이 크게 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국민적 합의다. 잘못된 안보 전략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적을 앞에 두고 분열하면 자멸(自滅)뿐이다.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에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뜻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초당적인 노력 덕분이다. 통일·안보·외교를 다루는 자세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초당(超黨)적 대처는커녕 정략적으로 이용한다. 핵무기에 맨몸으로 노출된 위기 상황에서도 그러고 싶은지 참담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9-22

안동시 3대 특구로 미래 100년 위한 발판 마련

권기창 안동시장 지난해 정부의 국정목표인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구현을 위해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 제정과 함께 지방시대위원회가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정부는 지자체가 직면한 지역소멸, 인재 유출 등의 문제에 대응하고 본격적인 지방시대를 열기 위해 기회발전·교육발전·도심융합·문화도시 등 4대 특구를 추진하고 있다. 균형발전이라는 국토공간의 공정성, 지방분권이라는 중앙권력의 공정성을 토대로 지방이 주도적으로 정책을 펼치고 중앙이 지원하는 상향식 균형발전 체계를 만들어 가려는 계획이다. 문화특구와 교육발전특구 지정에 이어 기회발전특구까지 석권한 안동시는, 이를 통해 미래 100년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 대한민국 문화도시 선정 안동시는 2023년 12월, ‘대한민국 문화도시’ 조성계획 승인대상지로 최종 선정됐다. 시는 이에 따라 올해 1년간 예비사업을 추진하고, 연말에 예비사업 추진실적 심사를 거쳐 최종 지정을 받는다. 최종 지정 시 2025년부터 3년간 최대 국비 100억 원을 포함한 2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안동시는 ‘유쾌한 놀이문화도시, K-play hub-안동’이라는 비전과 △안동의 놀이, 문화상품화 △놀이로 젊은 문화도시 만들기 △주민참여 K-마을놀이터 만들기 △어깨동무 놀이문화 네트워킹이라는 4가지 목표 아래 전통문화의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사업을 추진한다. 민관 거버넌스를 토대로 안동의 유교·정신문화 브랜드 가치를 창출하고 산업화, 관광자원화하며 안동뿐만 아니라 경북 북부지역과 함께 균형발전, 동반성장을 이끌어 K-전통의 관문도시로 나아간다는 계획이다. □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 선정 올해 2월, 안동시는 교육부에서 주관하는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으로 예천과 함께 최종 지정됐다. 교육발전특구는 학생 선발, 교과과정 개편 관련 규제 완화와 교육수요자의 선택권 확대, 교육 공급자 간 경쟁 기반 교육 자율권을 확대하는 지역으로, 안동시는 K-인문(인성)교육 부분에 대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최종 지정이라는 쾌거를 거뒀다. 안동시는 최근 선정된 국립안동대와 경북도립대의 글로컬대학30과 경북도청 신도시 개발이라는 이점을 살려 △지자체가 함께하는 온돌(온종일 돌봄) 체계 구축 △K-인문(인성)교육을 통한 안동·예천형 공교육 혁신모델 정립 △지역기반산업 연계형 인재양성체계 구축을 주요 전략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1차년도 수요자 중심의 교육 및 연구 추진과 2차년도 ‘K-교육혁신모델’창출에 이어 3~5차년도에는 ‘지역사회와 기업이 함께하는 지역 정주 인재양성 모델 안착’으로 ‘공교육 혁신-인재양성-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지역 정주 선순환 체계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 기회발전특구 지정으로 3대 특구 석권 산업통상자원부가 6월 지방시대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안동을 기회발전특구로 지정했다. 기회발전특구는 지방에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세제·재정지원, 규제특례, 정주여건 개선 등을 지원하는 구역이다. 안동시는 풍산읍 매곡리 일대 경북바이오 2차 일반산업단지 내 약 7만 평에 총 5550억 규모의 신규 투자를 바탕으로 기회발전특구 지정을 신청했다. 시는 바이오·백신 및 헴프산업의 혁신 성장거점을 구축하고, 미래 첨단 바이오산업을 선도하는 기반을 다져 바이오·백신 및 헴프산업의 ‘산·학·관·연 협력 생태계’를 조성할 계획이다. □ 안동의 미래 100년 초석 안동시는 기회발전특구 지정으로 기업투자를 통해 양질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고, 교육발전특구로 공교육 혁신을 통해 지역 혁신인재를 양성해 지역에 정착시키고, 문화특구로 관광객 증가 및 이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등 3대 특구의 복합효과로 지역소멸 위기를 벗어나 사람이 떠나지 않고 오히려 찾아오는 새로운 안동을 만들고자 한다. 민선 8기는 대전환을 꿈꾸며, 변화와 개혁을 통해 ‘활력 넘치는 성장도시’, ‘함께 만드는 희망 안동’을 그리며 쉼 없이 달려왔다. 기회발전특구 지정을 계기로 안동시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등 국가적 위기에 대응해 끊임없는 창의와 혁신의 자세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고, 안동의 미래 100년의 주춧돌을 놓겠다.

2024-09-22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 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 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이성복,‘그 여름의 끝’전문 (‘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사) 끈질긴 여름이었다. 그래서 살아남았다. 혹 72세가 된 이성복 시인이 27세 때 쓴 시를 만난다는 건 이미 27세에 72세가 들어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 시에서도 문제는 시간이다. 백일이 붉은 꽃이라 하여 백일홍이라. 이처럼 한정된 여름의 질은 사랑의 힘을 과장하고, 여름의 양은 사랑의 태도를 흔들며, 여름의 속도는 사랑의 한계를 강화한다.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무사했다”는 진술은 폭풍의 격랑 속에서 삶은 무엇이든지 할 수도 있고 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증언과도 같다. 이즈음 긴 폭염 한 가운데 서 있는 백일홍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목백일홍은 여름만큼이나 힘이 세다. 폭풍은 한 차례, 또 한 차례 반복된다. 삶의 고통 또한 늘 그렇게 반복된다. 그럼에도“나”는 쉬이 절망하지 않을뿐더러 장난처럼 붉은 꽃을 매달았다고 했다. 이쯤에서“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라고 했던 줄리언 반스의 단 하나의 질문을 대입해 보면, 화자는 마치 폭풍 한 가운데서 “나무 백일홍”이 무사했듯“나”역시 쓰러지지 않고 견뎌내었다고 결연히 답하고 있는 듯하다. 이 시가 그렇다. 나무 백일홍이 폭풍을 견디고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피우는 것처럼 화자는 절망을 “장난처럼 붉은 꽃들”의 비유처럼 여유롭게 환치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사고와 감정을 유발하는 원동력을‘욕동’이라고 했다. 자아와 동일시된 나무 백일홍의“억센 꽃”은 폭풍에 대한 응전이며, 죽음 욕동을 극복한 삶을 욕동하는 표징이라는 독해는 강인하면서도 연약하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이 피어 있는 두어 평 좁은 마당은 퍽 몽환적이다. 치열한 싸움 끝에 피 냄새를 풍기는 살의의 풍광 속에 사랑은, 삶은 위치한다. 그곳이 화자의 고통스런 내면의 공간에 있기 때문이다. 그곳이 바로 시가 틈입할 자리이지 않겠는가. 삶 속에서 갈망하는 모든 것들이 순하게 이루어진다면 시라는 공간에 들어올 여지는 없을 테니까. 기실 우리의 사랑은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성을 통해 항구성을 말하는 것, 그것을 언어화하는 것이 시가 된다. 이희정 시인 시인은 말한다. 행복 속에 불행이 은거하듯 언어는 양면테이프처럼 “이중 접착제”여서“죄가 없으면 은총도 없다.” 그 구조가 언어의 구조가 된다. 죄가 있어 은총이 있을 테니 말이다. 그이의 말처럼 있음은 없음으로부터 온 것인 듯하다. 본래 없음에서 왔다는 걸 알면 쉬울 것이다. “존대받으려, 사랑받으려 하면서 홀대받을 짓만 골라 하는데 그게 바로 존대받으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도 그렇다. 욕망 혹은 그리움의 대상에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언어화하는 것이다. 충족된 것들은 언어의 옷을 입지 못한다고 했다. 이 시에서 절망의 끝은 다른 세계로의 이환을 예비한다. 왜 유보되거나 지연된 것들만 언어의 옷을 입을까. 그것이 그리움의 문법인 것이고, 사랑의 불가능과 불가피성은 시간의 유한성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도 곧 사라져 갈 테니까. 그 부재와 불구의 문법인 절망이란 단어로 물리적인 유한성조차 항구성으로 탈바꿈하는 장치가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마침내“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다”는 고백은 삶이란 시간 속의 어둠을 몰아내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인의 언어는 시간의 플롯에 잘 어울리는‘미완’과‘불가능’의 꼭지점에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꿈을, 삶을 쓰고 있다.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 삶은 꿈이다.”

2024-09-22

지방과 서울의 집값 희비 쌍곡선

우정구 논설위원 9월 중 대구지역의 아파트값이 44주째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의하면 9월 셋째 주 대구지역 아파트값은 전주보다 0.08%가 떨어졌으며 하락 폭은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고 한다. 반면에 같은 기간에 서울의 아파트값은 0.16%가 올랐다. 26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고, 전국 시도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나타낸 것으로 조사됐다. 수도권 지역도 서울지역 아파트값 상승에 영향을 받아 지속 상승세에 있다. 특히 수도권 1기 신도시 지역인 분당, 일산, 평촌, 산본 등은 재건축 기대감으로 집값이 연일 들썩이고 있다고 한다. 분당지역의 한 아파트는 지난 4월에 비해 3억원이 올라 거래됐다는 뉴스도 눈에 들어온다. 언제부턴가 서울의 똘똘한 집 한 채가 부동산 투자대상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국토면적 세계 108위 좁은 나라에서 서울과 지방의 집값이 이처럼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이 놀랍다. 지금 서울은 아파트는 물론 빌딩, 상가 등 닥치는대로 부동산을 사겠다는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 4월 서울지역 아파트 매입자 4000여 명 가운데 1000여 명이 서울 외 지역 거주자로 밝혀졌다. 반면에 대구지역은 1만가구가 넘는 미분양 아파트와 준공 후 미분양인 악성 미분양 물량이 겹쳐 집값이 몇 년째 내리막길이다. 중개업소 등 관련 산업계가 벼랑 끝에 몰려 이제 더이상 버틸 수 없어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 그런데도 서울 집값 잡는다고 지방까지 규제로 붙잡고 있으니 집 안팔려 이사도 못하는 지방사람들은 억장이 무너질 판이다. 지방은 안중에 없는 정부 정책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실망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9-22

불같은 추석을 보내고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1년에 네 번은 서울에 간다. 부모님 기일과 추석, 그리고 설 명절에 상경한다. 열차를 타기도 하지만, 언제부턴가 타자(他者)가 옆자리에 함께한다는 사실이 아주 낯설어졌기에 승용차를 이용한다. 어머니 살아생전에는 과일 같은 제수(祭需) 물품을 차에 싣고 다닌 적도 있었지만, 3년 전부터 홀가분한 여행이 되고 말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이번 추석에는 동생들과 함께 생선 횟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기로, 예정보다 하루 일찍 운전대를 잡는다. 312㎞를 4시간 반 운전하여 당도한 동생 집에서 잠시 여독을 풀고 약속 장소로 나간다. 상당히 넓은 횟집에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불경기라고들 하지만 역시 되는 집은 되는 것이다. 세상은 보이는 것과 매양 다르게 굴러간다. 그렇게 3박 4일의 추석 서울 나들이가 시작된다. 나와 두 동생, 계수와 내 큰아들 모두 다섯 사람이 주고받는 지난 시절 이야기가 두 시간 남짓 이어진다. 화제 중심에는 언제나 부모님이 자리한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하는 두 분의 행적이나 사건은 조금씩 엇갈린다. 불완전한 기억 때문이다. ‘라쇼몽’(1950)에 그려진 것처럼 인간은 선택적 기억에 의지해 살아간다. 서울이나 경기도에 갈라치면 나는 거의 매번 두 분 묘소를 찾는다. 충북 음성군에 자리한 ‘대지공원묘지’를 22년째 찾아다니고 있다. 한여름처럼 불같은 서울 날씨를 뒤로하고 지난 수요일 오전 7시 13분 운전을 시작한다. 간밤에 길 떠날 만반의 채비했기에 따로 시간을 축낼 일은 없었다. 다음날 일정을 전날에 숙고하면 삶은 그만큼 여유로워진다. 동생이 준비해준 물품 덕에 두 분께 올릴 제수가 풍성하다. 드넓은 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영령은 어제 온종일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분망했을 터. 하지만 오늘은 드물게 찾아오는 이들을 제외하면 비둘기나 까마귀 등속이 전부다. 묘소 경내를 정리하는 노동자들의 분주한 발길과 고함이 가끔 들릴 뿐이다. 망자와 산자가 공존하는 기묘한 공간! 지난 6월 이후 일어난 일에 관해 말씀드리고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전송한다. 저 아래 주차공간에 차를 대고 허위허위 걸어 올라왔기로 온몸이 땀범벅이다. 하얀 고무신이 시멘트 콘크리트와 만나면서 딱딱한 질감을 선물한다. 아득한 동녘 산등성이 쪽으로 아파트 군락이 보인다. 거기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어른들의 한숨과 걱정이 한창일 것이다. 하지만 망자들의 공간은 고요만이 감돈다. 노자(老子) 말처럼 고요함은 시끄러움의 근간이 된다. 나의 피부와 허연 머리털과 얼굴을 무참하게 들쑤시는 무지막지한 햇살은 얼마나 장려(壯麗)한지, 감히 대적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9월 중순의 태양이 아니라, 8월 초순의 햇살처럼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무엇이 우리의 영원한 태양을 저토록 이글거리도록 했을까?! 하라리 말처럼, 사피엔스는 자발적인 소멸의 길을 밟다가 정말 ‘데우스’가 되기로 한 것일까?! 두 계절이 바뀌면 나는 다시 묘소를 찾아 인사를 드리고, 표표히 귀로에 오를 것이다. 생은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복은 살아있음의 진정한 증표다.

2024-09-22

제조 휴머노이드시대 작업자 역할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가 삶을 살아가다 보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대부분 눈으로 보이는 것인 외모나 태도 행동으로 사람이나 상황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으며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사려깊게 들여다보는 것은 쉽지않다. 그러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두가지를 놓고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라고 물으면 필자는 단연코 보이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불교에서도 눈을 표현하는 용어로 보이는 것인 육안을 포함하여 보이지 않는 지혜의 눈이 천안 혜안 법안 불안으로 휠씬 많기 때문이다. 세상 이치가 그러하듯 기업도 마찬가지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보이는 것은 기업이 경제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으로 이윤창출이며 보이지 않는 것은 기업에 속해 있는 직원들의 역량으로 인재양성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업(企業)이라는 한자도 사람(人)이 일(業)로 머무른다(止)로 풀이된다. 사람이 일로 머무르기 위해서는 먼저 보이는 것인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며 기업이 지속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인 직원들의 역량에서 나오기 때문에 지속적인 학습과 인재양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래서 제조현장에서 인재란 생산과정에서 돈이 되는 것을 찾아내거나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거나, 돈이 안되고 원가만 상승시키는 낭비를 발굴하고 개선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특히 지금과 같이 빠른 속도로 제조 현장의 지능화 로봇화가 진행되면 지금까지는 운전과 조작 조치를 잘하는 기능이 필요하였다면 다가오는 미래는 지능화 로봇화되어 기계가 일을 대부분하는 현장에서는 사람은 운전 조작하는 기능적인 측면 보다는 생산과정에 낭비를 개선하여 가치를 창출하는 슈퍼바이저(Supervisor) 역할로 변화가 필요하다. 제조 현장의 직원이 슈퍼바이저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 생산과정에 고객 입장에서 가치가 있는 일과 가치가 없는 낭비를 제대로 인식하고 발굴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즉 지능화 로봇화 된 단독 기기의 원리와 작동 여러 대의 로봇이나 기계가 연동하여 움직이기 위한 조건과 작용을 이해하고 생산 과정에서 가치가 없는 낭비적인 움직임을 찾아내어 연속 흐름을 만들어가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는 매우 쉽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러 대의 로봇이나 기기 작업자의 움직임을 보면서 낭비적인 움직임을 이해하고 찾아내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현재 휴머노이드와 같이 AI를 탑제한 로봇을 보면 가까운 미래에는 기술이 더 발전하여 사람과 설비가 같이 하던 생산을 지능화된 로봇이 사람의 일까지 대체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제조 현장은 재료가 투입되어 제품이 되는 과정에 로봇의 동작 측면의 낭비적인 요소가 있기 마련이며 이는 원가 차이로 나타나게 되고 제조경쟁력이 된다. 결국 같은 로봇으로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제조 경쟁력을 높여가는 것은 변함없는 사람의 역할이며 지능화되고 로봇화 될수록 더욱 정교하게 작동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사람도 한층 더 높은 수준의 낭비발굴 능력과 개선역량이 요구되며 변화되는 현장을 빠르게 학습하고 개선하는 능력이 곧 개인의 경쟁력이 되는 것은 변함 없을 것이다.

2024-09-22

나 혼자 살 수도

유영희 작가 한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지났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확실히 명절 풍속이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한다. 이제 민족 대이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명절이라고 해서 며느리가 꼭 시댁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늘고 있다. 각자의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며칠 전, ‘가족×멜로’라는 특이한 제목의 드라마가 종영했다. 여기서 가족은 아빠 변무진, 엄마 금애연, 딸 미래, 아들 현재, 이렇게 네 명인데, 변무진이 잦은 사업 실패로 아내와 이혼한 후 죽은 줄 알았다가 엄청난 부자가 되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마침 종영한 날이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일요일이라 가족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금애연은 11년만에 나타난 변무진을 생각보다 빨리 수용하지만, 딸 미래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세발자전거를 탈 무렵 아버지의 대화를 우연히 듣고 자기 때문에 아빠가 야구 선수를 포기했다고 오해한 상처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딸이 우여곡절 끝에 변무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도 흥미 있었지만, 변무진과 금애연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재결합하지 않는 결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마트 시식 코너에서 일하던 엄마 금애연은 홈쇼핑 모델이 되어 수입이 늘자 가족에게 상의하지 않고 자동차를 장만한다. 50 넘은 여자가 누구의 도움 없이 자동차를 산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설정이다. 보통 자동차는 남성성을 의미하는데, 금애연처럼 소극적으로 살던 여자가 자동차를 자신의 힘으로 장만했다는 것은 그만큼 남성 같은 힘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앤소니 브라운의 그림책 ‘돼지책’에도 남편과 두 아들 뒷바라지하다 지친 엄마가 가출했다 돌아와서 한 일이 자동차를 손보는 것이었다. 딸 미래는 자신이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독립 가구가 된다. 비혼주의를 고수하지만 오래도록 연애하기로 한 남자친구는 있다. 네 명의 가족 아닌 가족은 따로 또 같이 살아가면서 한 달에 한 번 식사하는 것으로 가족의 멜로를 완성한다. 두 주인공이 다시 결혼으로 묶이지 않는 것은 각자 경제력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금애연은 그동안 자신의 삶이 너무 의존적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혼자 사는 삶을 선택했고, 변무진은 그런 금애연의 선택을 충분히 존중했기 때문이다. ‘가족×멜로’ 드라마의 변무진과 금애연의 선택은 새로운 가족 형태를 예고한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마주 앉아 밥 먹는 부부 이상으로 사랑하고 신뢰도 회복했으니 재결합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데 부부가 되지 않고 따로 사니 말이다. 앞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과 성격, 지향에 따라 어떤 가족 형태를 선택할 것이고, 그래서 가족의 형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해질 것이다. 영화감독 팀 버튼도 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와 결혼 당시 가까운 거리에서 따로 살았고, 배우 오나라도 한 사람과 24년째 연애 중이라고 한다. 사회 제도에 구속되지 않고 자기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드라마를 통해 사회 변화를 체감한다.

2024-09-22

찬밥 신세 된 쌀밥

우정구 논설위원 한국과 일본, 중국 일부 지역에선 자포니카종의 쌀밥을 먹는다. 쫀득쫀득하며 찰기가 도는 쌀이다. 씹다 보면 은근히 단맛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동남아 등지에서 먹는 안남미라는 별명의 인디카종 쌀은 그렇지 않다. 찰기가 없고 밥알이 흩어진다. 접시에 놓인 쌀밥을 젓가락으로 마시듯 먹는다. 찰지고 맛있는 우리나라 쌀이 소비가 영 안돼 문제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갈수록 소비가 줄어 정부도 대책 마련에 골몰한다. 작년 우리나라 1인당 쌀 소비량은 56.4kg으로 나타났다. 쌀 소비 관측을 시작한 196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쌀값도 작년 10∼12월 80kg들이 한 가마가 평균 20만2797원 하던 것이 지난달에는 17만6628원으로 뚝 떨어졌다. 쌀값이 10달 넘게 폭락하자 성난 농민들이 추석을 앞두고 논을 갈아엎는 일까지 벌어졌다. 쌀 재배 면적을 줄여도 선진농법의 도입으로 생산량은 오히려 더 늘어나 쌀값을 안정시키는 게 쉽지 않다. 지난해 소비량 기준으로 한 사람이 하루 밥 한 그릇도 채 먹지 못한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우리 속담에 한국인은 밥 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기운이 없어 축 늘어졌을 때 밥 굶지 말고 다니라는 위로의 말이다. “밥 심이 보약”이라는 말이 안 통하는 요즘이다. 정부가 아침밥 먹기 캠페인을 벌이면서 쌀소비 촉진을 권장하고 있으나 효과는 별무인 모양이다.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쌀을 주류 등 식음료 재료로 권장하고 있는데 그것도 신통찮다고 한다. 쌀밥 먹는 것이 소망인 시절도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이젠 쌀밥이 찬밥 신세가 된 꼴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9-19

지방시대 명절날, AI가 밉다

정태옥​​​​​​​​​​​​​​​​​​​​​경북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 나는 경북 영일군(지금은 포항시) 어느 산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내가 1~2학년 때쯤 다니던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에 졸업식이 열렸다. 이 골짝 저 골짝 촌로들이 흰 두루마기를 입고 식장을 가득 채웠다. 교장 선생님의 거창한 식사에 이어 5학년 언니의 송사(送辭)와 졸업생 누나의 답사(答辭)가 이어지는데 온 식장 안이 눈물바다였다. 아예 엉엉 우는 졸업생 누나들에 영문도 모르게 나도 따라 울었다. 졸업하는 언니들이 왜 그렇게 서럽게 울었는지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 알게 되었다. 그 시절 우리는 너무 가난하여 여학생의 초등학교 졸업은 사실상 사회생활의 끝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몇 년간 집안일을 돕다가 시집가서 육아와 가사 일에 전념하게 되는 것이다. 70년대 경제성장이 본격화되면서 그 서럽던 소녀들이 도회지로 대거 몰려나와 섬유와 전자공장에 취직하고 공장 부설 야간 학교를 다니면서 시골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명절이 되면 그 누나들은 선물셋트를 들고, 형님들은 포니 자가용을 끌고 고향을 찾아왔다. 명절날 시골은 그야말로 잔치집이었다. 그들이 간 곳이 굳이 서울 구로공단이나 성수동 공장도 아니었다. 대구 제일모직과 구미 삼성전자, 울산 자동차 공장이었다. 21세기를 AI가 주도하는 첨단산업시대라고 한다. IT(정보), CT(통신), BT(바이오), NT(나노), ET(엔터테인먼트)가 주력이다. 이들 산업이 지방 소멸을 부추기고 있다. 20세기의 주력산업이 섬유산업을 거쳐 철강 자동차 조선 전자 화학 등 중화학 산업이다. 중화학 산업은 본사는 중앙 정부와 가깝고, 해외 무역에 유리한 서울에 둔다고 해도 공장은 지방에 두었다. 넓은 공장부지가 필요하고 항구가 가까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수도권 집중이 심했지만 울산 포항 구미 거제 광양 같은 곳도 번성했다. 한때 울산의 GRDP가 서울을 능가하고 거제의 물가가 서울에 버금갈 경우도 있었다. 불균형적이기는 해도 지방도 개평으로 먹고살만 했다. 첨단산업시대에는 지방이 없다. 일단 대규모 공장용지가 필요하지 않다. 공장이 필요하더라도 굳이 애국심에 불타 지방에 지을 필요가 없다. 베트남이나 폴란드에 지으면 된다. 첨단산업시대에 필요한 것은 머리 좋은 인재다. 인재는 좋은 대학이 몰려 있는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은 소득 수준도 높아 여가와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곳에 살기를 원한다. 수도권 집중에 따른 폐해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의 대부분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 간 청년도 수도권 집값이 너무 높아 결혼하기가 힘들고 애기 키우기가 힘들다. 출퇴근하기 힘드니까 선진국 문턱이라지만 인생은 고달프다. 지방은 노인들만 살아서 마을회관 청년회장이 68세다. 복숭아꽃 살구꽃 꽃대궐 우리 고향에는 스러져가는 빈집과 기름진 문전옥답에 녹음방초만 우거져 있다. 그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다. 그 비용을 지방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해결책은 명확하다. 지방에 더 좋은 대학을 만들어 머리 좋은 인재들을 지방에서 키우고, 그 인재들이 지방에서도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투자해야 한다. 왜 국민이 다 같이 내는 세금으로 국립 미술관, 박물관, 오페라 하우스를 서울에만 짓는가. 나는 보름달이 훤하게 뜬 명절날 AI가 밉다.

2024-09-19

소나무숲 단풍이 들면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올해 추석은 30도가 넘는 더위에 태풍도 멀리 비껴가 버린 마른 한가위였다. 저녁 바다 위로 떠오른 슈퍼문을 보러 바닷가로 가봤더니, 명절 인파가 북적이는 달밤의 해변은 가을 정취로 가득하고 작은 소나무 숲은 보름달의 고요한 빛을 품고 있었다. 다음날 부모님 산소에 갔다 오기 위해 아침에 서둘러 나섰다. 대구 팔공산 줄기를 찾아가는 먼 길은 딸과 아들이 번갈아 운전대를 잡고 나는 아내와 함께 뒷자리에 평안하게 앉아 창밖을 보며 가을이 오고 있는 풍경을 즐기고 있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붉은색, 아니 갈색의 단풍(?)이 든 소나무가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산소를 오르는 길목의 산에는 한 자락 기슭 모두 초록색이 아니었고 산꼭대기까지 단풍이 들어있었다. 아름다운 단풍은 아니다. 근래 번지고 있는 소나무 재선충(材線蟲)에 의해 누렇게 말라버린 탓이다. 재선충은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발견된 이후 그 피해가 늘어나며 한동안 주춤했다가 2년 전부터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142개 지자체에서 860만 그루가 피해를 입고 있는데 지난 2년간 90만 그루가 또 갈색으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이러한 사태가 계속된다면 70년대 이후 치산녹화 10년 계획으로 산림녹화 운동을 벌여 유엔식량농업기구가 산림 증가율 1위로 선정했던 삼천리 금수강산의 소나무가 절멸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 소나무 병은 1㎜ 크기의 선충이 매개체인 솔수염하늘소에 의해 소나무 잣나무 곰솔 등에 옮겨지고 그 중심부의 수관(水管)을 막아 단시간에 고사시키는 시들음병인데, 일본 중국 타이완 및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도 피해가 늘고 있으며, 중국은 모두 베어내고 일본은 홋카이도를 제외한 곳에서 소나무가 사라졌다고 한다. 경북은 경주와 영덕에 피해가 큰 반면 영양과 울진은 현재 미발생지역이라니 다행이다. 포항과 동해안은 지난해 60여만 그루에 발생하여 전국에서 가장 피해가 심한 곳이다. 불국사 주변에도 번지고 있어 걱정이고 감포 도로변의 폐목 등이 쓰러져 민가에 피해를 주고 있으며 해안이 이암토질의 경우 산사태도 우려되는 만큼 산림청에서는 피해 등급을 1~5단계로 하여 소나무재선충병 발생위험예보를 하고 있다. 2005년에 제정된 소나무방제특별법에 따라 병든 나무는 벌목, 파쇄, 소각, 열처리, 훈증 등으로 우리 민족의 정신적 텃밭인 푸른 소나무숲이 사라지지않도록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재선충 방제는 베어내는 벌목이 최선이겠지만 잘못 건드리면 확산의 우려가 있으므로 솔수염하늘소가 성충이 되기 전 10월에서 이듬해 3월 사이에 벌목하는데 예산 부족 등으로 모든 소나무 방제는 불가하다고 본다. 또 벌목한 후에도 이동을 단속하고 베어진 나무는 녹색 비닐로 덮어 훈증을 하게 되는데 ‘나무의 무덤’이다. 약으로 나무에 주사하기도 하고 다른 곤충의 천적을 이용하기도 한다. 송림이 사라지면 송이버섯도 자취를 감추게 될까? 산소에 술 따르고 가족 오붓이 묘원을 내려오는 길 주위에 붉게 타버린 소나무들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푸른 소나무 숲과 함께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가을을 걷고 싶다.

2024-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