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금지곡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엄마가 싫어하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여자의 일생’이라는 노래다. 엄마는 그 노래를 유독 싫어했다. 큰 소리로 가요를 따라 부르다가도 그 노래가 나오면 빠른 속도로 버튼을 눌러 껐다. 그 노래는 우리 집의 금지곡이었다. 그 노래 속에는 엄마 동생의 삶이 들어 있었다. 노래의 가사처럼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떠나 버린 이모는 엄마의 아픈 노래였다. 이모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와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이모의 공부 뒷바라지를 하며 처가의 짐을 덜어 주었다. 이모는 우리 남매들에게 언니 같은, 누나 같은, 아버지에게는 자식 같은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모 뒷바라지는 그리 길지 못했다. 이른 나이에 폐결핵으로 삶을 정리하며 집에서 요양을 했다. 젊은 엄마에게는 아버지의 병간호와 생계의 멍에가 너무 무거웠다. 엄마를 대신하여 이모는 학업을 포기 하고 우리를 돌보았고, 우리 남매들의 뜨신 밥을 맡으면서 우리 집의 살림도 떠맡게 되었다. 몸이 아픈 아버지는 예민해지고, 성격은 날로 불같이 변해갔다. 무슨 일이든 참지 못했고, 이모와 자주 싸웠다. 곰보였던 이모 얼굴은 비포장 길처럼 울퉁불퉁했다. 사춘기였던 우리 3남매는 그런 이모를 친구들 앞에서 늘 부끄러워했다. 어느 날, 집 마당이 소란스러워 나가보았다. 동네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건넛방 아저씨가 돈 3만원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다. 마당을 쓸다가 3만원을 주운 이모는 도둑으로 의심을 받게 되었다. 이모는 자초지종을 말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모의 옷을 구석구석을 뒤졌다. 눈물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이모의 음성은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가 되었다. 다음 날, 눈물 줄기 같은 비가 내렸다. 이모는 우리에게 말 한마디 없이 떠났다. 부엌의 도마 소리는 허공에서 자꾸만 들려왔다. 마당에 날아와서 먹이를 쪼아 먹던 까치도 외로워 보였다. 정답게 이야기 해 주던 이모가 사라진 자리에서. 모든 집안일은 아버지와 언니의 몫이 되었고 엄마는 더욱 바빠졌다. 이모는 점점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기억의 끈도 삭고 삭아졌다. 하지만 엄마는 우리와 달랐다. 텔레비전에서 ‘여자의 일생’ 노래가 나오면 채널을 돌렸다. 우리가 따라 부르는 것도 싫어했고 화를 내기도 했다. 잊히지 않는 이모를 떨쳐내고 있는 것이었을까. 창밖에 새끼 손톱만한 달이 까만 하늘에 노랗게 박혀있는 것을 보며 잠이 들었다. 어둠이 짙은 밤공기를 따라 흐르는 노래 소리는 구슬프게 들렸다. 엄마는 우리의 머리맡에 앉아 달을 보며 우리에게 금지시켰던 노래를 조용조용 부르고 있었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내 볼에 닿는 엄마의 소매는 젖어 있었다. 김경아 작가 강산이 서너 번도 더 바뀌었다. 엄마는 10년 전부터 이모의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뜬금없이 엄마는 이모를 찾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엄마의 뜻을 받아들여 이모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모를 찾기로 마음먹기까지 참으로 오랜 아픔을 그냥 넘기며 살아왔다. 이모는 살아 있었다. 35년 만에 이모를 만났다. 이모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큰언니였던 엄마는 허리가 다 꼬꾸라져 있었고 말썽쟁이였던 막내 동생은 백발이 무성했다. 이모의 곰보 자국 덕분에 우리가 이모를 알아보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준비되지 않았던 이별과 만남의 대사는 눈물이 대신했다. 이모는 우리 집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도 모질게 대했던 아버지와 숙맥 같았던 이모의 만남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이가 숭숭 빠진 모습으로 끌어안고 우는 모습은 백일 된 아기 같았다. 눈물의 의미를 아무도 해석하지 않았지만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모는 아버지의 손을 맞잡았다. 모두가 손을 잡았다. 그때, 아버지가 ‘여자의 일생’ 노래를 갑자기 부르기 시작했다. 긴 세월 우리 집에서 금지 되었던 노래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2024-11-24

태아성감별 금지법 역사속으로

우정구 논설위원 태아 성감별 행위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킨 것은 법 제정후 37년만인 올해 2월이다. 헌법재판소는 위헌헌법소원 심판에서 남아선호 사상에 따라 성의 선별적 출산과 성비 불균형을 막기 위해 만든 의료법 제20조 제2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일명 태아성감별 금지법에는 의료인은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나 임부를 진찰하면서 알게 된 태아의 성을 함부로 누구에게나 알릴 수 없도록 했다. 1980년부터 2000년 중반까지 우리사회는 남아선호 사상으로 여아낙태가 많아 심각한 남초현상이 빚어졌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990년대 들어 국내 출생아의 성비(출생 여아 100명당 남아 수)는 남아선호 영향으로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아 1993년에는 성비가 115.3명까지 기록했다. 이후 출산율이 줄고 사회 인식과 여성의 사회진출, 결혼관 등이 변하면서 우리 사회의 남녀성비는 차츰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올 2월 헌재의 결정도 이런 사회적 흐름을 반영한 결과다. 헌재는 판결을 통해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알고자 하는 것은 본능적이고 자연스런 욕구이며 태아의 성별을 비롯 모든 정보에 방해받지 않을 권리는 부모로서 당연하다”고 판시했다. 지난주 국회 보건복지위는 태아성감별을 금지한 의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본회의 통과라는 절차는 남았지만 태아성감별 금지법은 이젠 영원히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는 부계 혈통사회라는 전통적 가족제도에 기인했던 남아선호 사상의 퇴조와 흐름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성비의 인위적인 왜곡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전망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1-24

다시 ‘논어’와 만나며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지난 2월 20일 시작한 청도 인문학 첫 번째 주제 ‘문명과 인간’은 10월 22일 ‘동북아평화경제공동체구상’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됐다. 주 1회 90분으로 실행한 청도 인문학 강연은 이로써 27회로 하나의 매듭을 짓게 된 셈이다. 세계 4대 문명과 초원 문명으로 시작하여 칼 야스퍼스의 ‘축(軸)의 시대 Achsenzeit’를 거쳐 유라시아의 문명사를 두루 살핀 것이다. ‘문명과 인간’은 2020년 11월에 출간한 졸저(拙著) ‘유라시아 횡단 인문학’에 터를 둔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유라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기준으로 두고, 그것에 기초하여 동북아 세계의 미래상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분기점이지만, 과거의 축적이 현재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과거는 현재만큼 중요하다 할 것이다. ‘유라시아 횡단 인문학’은 상당히 많은 분량을 20세기까지의 과거에 할당했고, 21세기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미래진단은 소략한 감이 있다. ‘동북아평화경제공동체구상’은 대내외적인 정세변화가 극심했던 까닭에 자기검열에 걸려 빠지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청도 인문학 강연에서는 그것을 강조했기로 내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하겠다. ‘문명과 인간’을 마칠 즈음에 수강자들에게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고, 그들은 스스럼없이 ‘논어’를 거론했다. 그리하여 10월 29일부터 ‘논어’ ‘학이편’ 제1장부터 읽기로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2500년 전 공자와 그 제자들이 남긴 어록을 낯선 한문 문장과 해설, 각주(脚註)까지 참고해 읽어야 하니 수강생들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2006년 9월에 ‘논어’를 처음 만났다. 연구년 한 학기를 허송세월(虛送歲月)하다가 홀연 반성하는 생각이 들어 지인에게 어렵지 않은 번역본 ‘논어’를 추천받은 것이다. 그리하여 개강할 무렵까지 6개월 동안 6번을 읽고, 감명 깊게 다가온 문장을 A4 용지 6장 정도로 축약했다. 그리고 아침마다 1시간 남짓 그것을 한문으로 쓰는 습관을 만들었다. 나중에 독회 10번을 채우고 분량도 A4 용지 10장으로 늘렸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식당에서 잠자기 전에 아침에 일어나서 10장을 다 외우려고 무던히 애썼다. 좋은 문장이나 구절 혹은 단락은 통째로 기억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어서 그런지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논어’를 읽으면서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의 ‘장자’, 사마천의 ‘사기 열전’을 보태서 읽었다. 그런 독서 사이사이에 ‘논어’, ‘도덕경’, ‘장자’, ‘열전’ 관련 서적들을 대략 30권 남짓 통독했다. 좋은 서책은 당연히 서평(書評)을 써서 기억에 오래 남도록 ‘홈페이지’에 쟁여놓았다. 그런 결과로 2008년 가을부터 ‘동양고전’ 대중강연을 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 형편이다. ‘논어’와 처음 만나려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내 눈으로 읽고, 내 손으로 써보고, 내 머리로 먼저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노력한 만큼 독서의 결실이 나와 함께한다는 이치를 기억하시기 바란다. 하나의 문장이라도 기억하려 애쓰고, 기억한 문장을 실생활과 대화에 활용하면 더 유익할 것이다.

2024-11-24

울릉군, 독도의 날 지정 유감…칙령 제41호 제정 또는 공포기념일로 해야

김두한 기자 경북부 2005년 3월18일 일본 시마네현의회가 1905년 2월22일 소위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로 독도를 편입한 100년을 기념해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독도의 날)을 제정했다.  그런데 올해 5월 24일 울릉군의회가 매년 10월 25일을 공식적인 독도의 날로 제정, 지난 10월 25일 울릉군이 첫 기념식을 했다. 민간단체들이 10월 25일을 독도의 날이라고 하지만, 공식적으로 지정된 것은 울릉군이 처음이다. 일본이 독도의 날을 제정해 기념식을 하는 데 대응해 독도의 날을 제정한 것은 일본을 뒤따른다는 느낌이 든다. 독도에 대해 기념일을 제정한다면 ‘칙령 제41호 공포 또는 제정기념일’로 하는 게 옳다. 문헌에 의해 독도가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의 땅이 된 것은 1900년 10월25일 고종이 ‘칙령 제41호’를 공포하면서 독도가 조선의 땅이라는 사실을 공식적 반포 했기 때문이다.  이 칙령은 “울도(鬱島)를 군으로 개칭하고, 관할구역은 울릉 전도(全島)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울릉도 명칭은 ‘울도’로 단순 섬이었지만, 고종 칙령 제41호로 울도군으로 승격했다. 초대군수로 배계주를 임명하고 관할구역을 울릉도(본섬)와 죽도(댓섬), 석도(독도)를 관할토록 했다.  그런데 일본은 석도가 독도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울릉도 주변에는 독도외에 큰 섬인 관음도와 죽도가 있다. 따라서 일본학자들은 칙령은 이섬을 지칭한다며 석도는 독도가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허구다.  석도는 한문의 돌석(石)자 붙여 석도라고 했다. 나무가 자라지 않는 돌섬이라는 뜻이다. 독도는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  관음도와 죽도는 소나무와 대나무, 후박나무 등 큰 나무와 울창한 숲이 우거져 석도(돌섬)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다. 독도와 울릉도 접근이 어려운 일본학자들이 엉터리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공식 문헌에 독도를 꼭 집어 관할하라는 것은 고종의 칙령 제41호가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의 땅으로 첫 인증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칙령 제41호에 따라 울릉군으로 승격한 날이 울릉군 기념일로 정해진 것이다. 따라서 독도는 울릉도 부속도서로 자연스럽게 울릉군민의 날과 함께 포함된다. 별도로 독도의 날을 정할 필요가 없다.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의 섬은 총 3348개로, 이 중 유인도는 430개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섬들은 다양한 특징을 갖고 있다. 중요한 섬에 대해 모두 기념일을 정할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독도의 날 기념일은 일본인들이 억지로 자기 땅이라고 우기기 위한 느낌이 드는데 구태여 우리까지 독도의 날을 정한다는 것은 일본을 따라하는 느낌이다. 공식적으로 독도를 편입한 날을 기념해 울릉군 기념과 겹치지 않는 칙령 제41호 공포기념일 또는 제정 기념일로 하는 것이 기념일의 뜻과 이치에 맞는 듯싶다./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4-11-24

“비트코인은 사기”라던 트럼프, 왜 달라졌을까

트럼프 美 대통령 당선인으로부터 촉발된 비트코인 랠리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비트코인 관련 뉴스가 공중파로 전해지는 모습이 더이상 낯설지 않다. 바야흐로 비트코인이 주류 경제의 한 복판에 들어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초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되면서 비트코인의 제도권 진입이 가시화됐다. 하지만 해외 금융기관들은 오래 전부터 비트코인 거래를 하고 있었다. 해외 은행들은 선물사를 통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유동성 공급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었고 나라별로 비트코인 선물 ETF를 상장한 곳도 있었다. 여전히 비트코인 ETF 상장에 인색한 국내 금융 환경과 비교하면 전혀 딴판이었다. 본래 비트코인은 주식시장의 흐름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자산 헷징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경제 위기나 국제정세 불안 등으로 시장이 불안정할 때마다 대체 자산으로서 가격이 뛰었다. 지금과는 정반대의 낯선 풍경이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비트코인과 주식시장은 커플링되기 시작했다. 블랙록과 같은 금융 자본들이 본격적으로 비트코인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일찍이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 시장을 새로운 먹거리로 점 찍은 듯 하다. 그리고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막대한 베팅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내년 출범할 트럼프 2기 행정부도 이 같은 요구에 부합하는 행보를 보일 것이다. 1기 때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양상이다. 비트코인은 사기이고 일론 머스크를 ‘멍청이’라고 묘사했던 트럼프의 발언이 아직도 생생한데 말이다. 미국의 거대 기관들이 비트코인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뭘까.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단순화 하자면 돈이 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왜 그럴까. 비트코인이 기존 금융시장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24시간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기존 현물 및 선물시장이 국가별로 하루에 정해진 시간 동안만 거래할 수 있는 반면 비트코인은 국경이 없고 유일하게 시간 제한이 없는 시장이다. 기관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고 그들에게 비트코인만큼 먹음직스러운 상품도 없을 것이다. 한 가지 걸림돌은 미국 정부의 규제였다. 자산운용사들은 수년 동안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을 요청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다. 하지만 끈질긴 항소 끝에 법원이 자산운용사의 손을 들어주면서 상황이 바꼈다. 세계 최대 규모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필두로 11개사의 비트코인 현물 ETF가 일괄 승인됐다. 업계에서는 블랙록이 오랫 동안 치밀하게 상장 준비를 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블랙록은 이제 비트코인 파생상품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올해 3월 자산토큰화 펀드 ‘비들’(BUIDL)을 출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비들’의 공식 명칭은 ‘블랙록 USD 기관 디지털 유동성 펀드’다. 자산토큰화란 한 마디로 다양한 실물자산을 담보로 토큰을 발행하는 것을 말한다. 부동산, 금, 은, 석유, 희토류 등과 같은 현실세계의 자산을 토큰으로 발행, 유통하는 사업을 지원하는 게 토큰화펀드다. 소위 RWA(Real World Asset)로 불리는 토큰을 육성, 지원하는 프로젝트인 셈이다. 목적은 간단하다. 전통적으로 선물시장에서 다뤄지고 있는 수많은 실물자산들을 토큰화 해서 24시간 거래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토큰화된 자산들은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거래할 수 있게 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토큰화된 자산은 실물자산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에 유리하다. 즉 실물 기반 리스크 관리와 레버리지 수익을 동시에 꾀할 수 있는 현실적인 투자처가 될 수 있다. 앞으로 금융기관들은 비트코인을 넘어 전통 자산들마저 토큰화된 형태로 거래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펼칠 것이다. 시장을 예측하기란 어렵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금융거래에 있어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토큰화된 자산 시장과 24시간 무한경쟁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다.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을 비트코인 1위 보유국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한 속내 역시 다르지 않다. 트럼프 당선인의 공언이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몇 년 사이 그가 달라진 이유를 곱씹어 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가상자산을 둘러싼 규제 불확실성 속에서 시장도 기업도 투자자도 하루하루 지쳐가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총체적 대안 마련이 시급한 때다. /최진승 가상화폐 전문가 - (현)두코미디어 전략기획 이사 전 씨엘모빌리티 전략기획부 책임

2024-11-21

수성못 오리배가 추억으로

우정구 논설위원 대구시 수성구 두산동에 소재한 수성못은 대구의 상징이라 할 만큼 유명한 전국적 명소다. 팔공산과 함께 대구 12경의 한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일본인 미즈사키 린타로가 조선인과 함께 수리조합을 결성해 축조한 농업용 저수지이다. 당시는 수성들 일대 농지에 물을 공급했으나 세월이 흘러 못의 용도가 없어졌고, 50년 전쯤에 유원지로 지정됐다. 대구에 도시개발의 광풍이 불면서 대구시내에 남아 있던 많은 저수지들이 하나둘 메워지고 택지로 변했으나 수성못은 유원지라는 이유로 아직 원상태를 보존하고 있다. 동촌유원지와 달성공원 등과 함께 수성못은 일찍부터 대구시민의 휴식처로 이용됐다. 봄철에는 학생들의 소풍 장소로, 겨울에는 스케이트장,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있었다. 이곳 수성못은 지금도 연간 수백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다. 거리공연과 축제가 끊이질 않고 커피점과 음식점 등으로 연중 어느 시기든 사람들이 붐비는 대구의 핫플레이스로 손꼽히는 곳이다. 최근 대구시와 수성구청은 수성못 북서쪽에 대규모 수상공연장을 건립한다고 발표했다. 총 1500석 규모 공연장으로 대구를 대표할 랜드마크급으로 조성할 계획이라 한다. 이와 관련 수성못의 소유주인 한국농어촌공사가 1988년부터 허용해 왔던 수성못 오리배 위탁사업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수성못의 명물로 많은 시민의 사랑을 받았던 오리배가 이젠 추억으로만 남게 됐다. 농어촌공사의 사정은 알 수 없으나 수성못의 명물인 오리배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데 대한 시민의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1-21

초고령화 사회와 계속고용

김위상 국회의원(국민의힘·비례대표) 한국 사회가 초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문제에 직면하면서 고령 근로자들의 고용 연장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지방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하여 도시보다 심각한 고충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고령 근로자의 경제 활동 참여를 높이고, 이들의 안정적인 소득원을 마련하는 방안이 더욱 절실해졌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정년 이후 근로자를 계약직 등으로 재고용하는 사업장 비율이 2019년 28.9%에서 2023년 36%로 증가했다. 특히 택시·버스 기사와 같은 운수업종 및 아파트 경비와 청소직 같은 시설관리업에서는 재고용 도입률이 더욱 높아져 정년 이후에도 이들의 노동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이 부각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수도권보다 인구와 인프라가 열악한 지방에서는 더 큰 도전과제를 안겨 준다. 지방의 경우, 청년층이 도시로 빠르게 유출되면서 노동력 공백이 커지고 있으며, 기존 인력의 고령화가 심화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제조업과 농업, 그리고 운수업 등 지방 경제의 주요 업종에서는 고령 근로자가 없으면 인력 부족이 극심해질 위험에 처해 있다. 청년층 유입이 적은 상황에서 고령 근로자들이 계속 일할 수밖에 없고, 이는 숙련된 기술을 지닌 노동력이 점차 단절되는 문제로 이어져 지역 산업의 경쟁력까지 위협하게 된다. 또한, 지방에서는 국민연금 수급 연령 상향이 고령 근로자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2028년에는 연금 수급 연령이 64세, 2033년에는 65세로 상향되면서, 60세 정년을 맞이한 지방 근로자들은 은퇴 후 수년간 소득 공백을 겪게 된다. 이는 빈곤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방의 고령층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지방정부와 지역주민들은 이러한 경제적 부담을 해결할 방안을 마련하기 어렵기에, 국가 차원의 체계적 지원과 재고용 제도의 법적 안정성이 더욱 필요하다. 최근 의원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90%는 정년 이후에도 일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이를 위한 성과급제 등 임금체계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높았다. 이는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고령 근로자 고용 연장이 중요한 문제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방의 경제적 활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고령층의 경제적 안정과 세대 간 일자리 균형을 맞추는 유연한 고용정책이 필수적이다. 정년 연장과 재고용 제도는 더 이상 특정 세대나 특정 지역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고용 구조, 청년 실업 문제, 노인 복지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요소가 얽힌 복합적인 과제이자 시대정신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지방에서는 고령 근로자의 경제적 안정이 지역 사회 전반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되므로, 정부와 기업, 지역 사회가 협력하여 지방에 적합한 고용정책과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다.

2024-11-21

덕동마을 용계정(龍溪亭)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벌써 흰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 절기라 늦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도 차가운 ‘손돌바람’에 낙엽을 떨구느라 정신이 없는 듯하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지난 8월에 국가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된 포항 두 곳의 조선 후기 정자(亭子) 용계정(龍溪亭)과 분옥정(噴玉亭)을 둘러보러 단풍이 곱게 물든 시골길을 달렸다. 포항에는 문화유산 보물이 12곳이 있는데 이번에 지정된 용계정과 분옥정 이외에, 보경사에 8개, 오어사와 상달암에 각각 1개씩 있다고 한다. 먼저 용계정을 찾아간다. 기계읍을 지나 북쪽으로 20여 리를 달려 여강 이씨 향단파 집성촌인 덕동문화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부터 용계정 보물 지정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마을 둘레길을 따라 걷다 덕동민속전시관 덕연관(德淵館)에 들어갔다. 이곳에는 여강 이씨 문중에서 소장 중인 고문서를 비롯한 67점의 유물이 문화재 552호로 지정돼 있다.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전시된 문방사우, 가재도구, 놋쇠 그릇, 베틀, 농기구 등 수많은 민속품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물과 공기가 새지 않도록 장독 윗부분을 오목하게 덧붙인 단지 설명과 함께 보물로 지정된 용계정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관장의 안내 설명을 듣고 나오면서 이 많은 문화재를 더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관을 크게 넓혀주는 문화재 관리지원을 건의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시관 앞마당에는 ‘제4호 기록사랑마을’ 표지석이 눈에 띄고 그 옆에 덕연구곡(德淵九曲) 비문도 마음에 담고 기북오덕 전통 고택을 보러 마을 길로 들어갔다. 몇 개 쌓아둔 기왓장과 작은 반송이 예쁜 애은당(愛恩堂)을 보고 흙돌담길을 걸으면 민속자료 문화유산인 여연당(與然堂)과 사우정(四友亭) 고택을 만나는데 둘 다 임란 의병장 정문부(鄭文孚)의 흔적도 있는 곳이다. 그 안쪽의 근대한옥을 기웃거려 보고 나와서 문이 닫힌 덕계서당을 담 넘어 보니 강의재가 생각보다 작다. 조용한 골목과 채소밭을 지나니 회나무 우물과 도송(島松) 숲을 끼고 있는 작은 연못 호산지당(護山池塘)을 만난다. 초록색 연잎들이 수면을 덮고 있다. 숲속의 누운 소나무 밑을 지나 개울가로 내려가니 단풍 가지 사이로 이층 누마루 용계정이 맑은 개울물에 모습을 비추고 있다. 농재 이언괄의 4대손인 사의당 이강(李58C3)이 착공한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일자(一字)형 팔작지붕의 아름다운 누정(樓亭)은 보물로 지정될 충분한 가치가 있겠다. 계곡의 둔덕으로 올라가서 노란 낙엽이 소복이 깔려있는 옆문을 지나 올라가 보니 붉은 대들보와 기둥, 그리고 화려한 장식의 누마루가 예술품인 듯하고 난간에 기대어 내려다보니 연어대(鳶魚臺) 바위 절벽이 와룡암과 합류대를 지나온 맑은 냇물을 지키듯 우람하게 버티고 있다. 아름다움에 취해 한참을 멍때리다가 정자를 나오니 얼굴 없는 불상이 앉아있는 세덕사(世德舍) 터에 조선 말의 서원철폐령에 뜯겨버린 서원을 그리듯 높다란 은행나무가 황금빛 잎사귀를 뿌리고 있다. 숲과 개울, 계곡과 정자가 어우러진 덕동 300년, 그 민속 마을 입구의 전통문화체험관을 살펴보고 나오며 제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생명상(대상)을 받은 덕동 숲이 국가 문화재 명승 81호의 명예를 안고 마을 수구막이 숲으로 잘 보존되기를 빌었다.

2024-11-21

정치판의 지각변동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우리나라 정치판은 상충하는 양대 지각판으로 형성되어 있다. 집권여당을 포함하는 자유우파가 한쪽 판이고 야당과 좌파들이 다른 쪽 판을 이루고 있다. 상당히 견고해 보이던 양쪽 판에 최근 들어 균열이 생기며 일대 지각변동이 발생할 조심을 보인다. 지난 15일, 이재명 더블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위반 1심 공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형이 선고되자 야권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만 확정되어도 국회의원직과 당 대표직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 대선보조금 434억 원도 반환해야 한다. 그리고 벌금형인 경우 향후 5년, 징역형일 경우 10년 동안 피선거권도 제한된다. 더구나 며칠 후에 열릴 위증교사혐의에 대한 1심 공판에서도 유죄일 가능성이 거의 확실해서 이재명 대표의 정치생명은 이제 끝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대장동, 위례신도시, 백현동의 개발비리혐의에다 성남FC 불법후원금, 불법대북송금, 법인카드 유용, 공무원을 사적으로 부리는 등 각종 직권남용혐의가 줄줄이 사법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탄탄하게 뭉쳐있던 야당의 정치인들이 갈팡질팡 흔들릴 수밖에 없을 터이다. 여당과 자유우파 쪽에서도 상당한 균열과 혼란이 일고 있다. 한동훈이란 이름과 한동훈 대표의 가족들과 같은 이름으로 당 게시판을 도배하다시피 한 게시글들이 일파만파 충격파를 일으키고 있다. 한동훈 대표를 비롯하여 배우자(진은정), 모친(허수옥), 장인(진형구), 장모(최영옥), 딸(한지윤)과 같은 이름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비방·음해하고 한동훈을 찬양하는 글이 1000여 건이나 올라있다고 한다. 실명인증을 해야 당원게시판에 글을 쓸 수가 있다고 하니 그들이 한동훈 대표의 가족이 맞는지는 간단하게 확인이 될 일이다. 여섯 명 모두가 한 대표 일가족과 동명이인일 확률은 제로에 가까운 확률이다. 본인들이 직접 글을 쓴 게 아니라면 누군가가 그들의 명의로 당원 가입을 하고 게시 글을 작성했다는 얘기가 된다. 당원게시판에 1호 당원인 대통령과 영부인을 원색적인 막말로 비방·모욕하는 글로 도배한 것이 당대표와 그 가족들이라면 이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여론조작 등의 법적문제 이전에 인간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비열하고 사악한 짓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글을 올린 것과 문제가 불거지자 한꺼번에 사라지는 등 조직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아도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시판 관리자가 사실 여부를 밝히는 대신 게시글을 삭제하거나 검색을 할 수 없게 하는 등 비상식적인 짓을 하는 것도 의구심을 더 키운다, 경찰에서 수사를 착수할 것이라고 하니 조만간 진상이 밝혀질 것이다. 큰 지각변동이 있은 후에는 새로운 지형이 만들어지는 게 자연현상이다. 정치판의 지각변동도 지금까지의 혼란과 부패의 지형을 뒤집고 사필귀정이라는 안정된 지형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2024-11-21

70년 전 독도대첩의 기억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4년 11월 21일. 일본은 1000t급 함정 PS9, 10, 16 등 3척의 군함과 항공기를 독도 인근으로 보내온다. 그때도 독도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로 이야기됐다. 두 나라 모두 그 섬을 자국의 지배권 아래 두고자 했다. 독도 지배를 통한 정치·경제적 국익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출동한 일본 군함을 확인한 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 대장은 수비대 대원에게 전투 준비를 명령했다. 이어 일본 함정에게 경고성 포탄이 발사됐고 한국과 일본의 싸움이 시작됐다. 한국전쟁 때 명사수로 이름을 날린 제1전투대장 서기종의 박격포 사격은 일본 PS9함을 화염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갖추고 있는 무기가 얼마 없었던 독도의용수비대는 필사적으로 일본 함정의 상륙을 막아야 했다. 검게 칠한 통나무를 대포처럼 위장한 전술이 동원됐고, 이에 놀란 일본 함정과 비행기는 독도 주변을 맴돌다가 퇴각했다. 사건 직후 NHK 뉴스는 “독도에서 한국 경비대가 일본 해상보안청 함정에 포격을 가해 1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급하게 알렸다. 이상이 1954년 독도대첩의 전말이다. 이 전투의 패배는 일본 요시다 시게루 내각의 붕괴를 불렀다. 독도대첩이 있은 다음 달 내각불신임 결의가 있었고, 정권은 하토야마 이치로 내각에게 넘어가게 된다. 현재도 일본은 “독도는 언젠가는 찾아와야 할 우리 땅”이란 주장을 하고, 한국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망언”이라 맞서고 있는 상황. 독도에선 여전히 ‘보이지 않는 전투’가 이어지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1-20

기자와 대통령

장규열 고문 20세기를 가로지르며 백악관에서 활약했던 기자가 있었다. 헬렌 토마스(Helen Thomas). 1961년 케네디 대통령에서부터 2010년 오바마 대통령까지 열 명의 대통령을 상대하였다. 여성 저널리스트의 영역을 개척하면서 대통령에게 어려운 질문을 수없이 던지면서 언론의 자유를 지켰다. 전쟁과 인권에 관하여 분명한 태도를 견지했으며, 대통령과 정부의 투명성을 강조하였다. 여럿 대통령을 겪은 소회를 책으로 정리하였다. ‘대통령님, 들으세요.(Listen Up, Mr. President.)’ 그가 지적한 대통령이 지녀야 할 덕목의 첫째 가닥은 ‘책임과 투명성’이었다. 대통령은 국민을 향하여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하며 투명해야 한다고 하였다. 두 번째는 ‘정직과 성실’.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보다 국민에게 덕이 되어야 하며, 숨김없이 정직해야 하고 한결같이 성실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국민의 일상에 관하여 늘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소통’해야 함은 세 번째 덕목이었다. 대통령의 관심이 엘리트 정치권(‘Washington bubble’)에만 갇혀서는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해야 하는 미국의 대통령은 전쟁보다 외교에 방점을 두고 갈등상황을 해결해야 함을 네 번째 덕목으로 지적하였다. 역대 대통령들이 외교정책을 추진하면서, 군사적 개입보다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 항상 우월한 결론에 이를 수 있었음을 강조하였다. 저널리즘의 역할과 위치를 존중하고 투명하게 소통해야 함은 다섯 번째 덕목이다. 언론과 건강하고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든든하게 지켜내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언론과 통하지 않고는 실질적으로 국민과 대화하고 소통할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경고하였다. 연속성과 역사성을 가져야 하는 대통령직을 고려할 때,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참고하고 현직 수행에 참고해야 함을 여섯 번째 덕목으로 삼았다. 대통령실의 전통과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치명적인 실수를 피해갈 수 있으며 백악관의 위치를 굳건하게 세워갈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일곱 번째 가닥은, 대통령이 국민의 일상을 헤아리면서 국정에 임해야 하는 ‘연민과 공감’의식이었다. 사회적 경제적 이슈들에 민감해야 하며 민생에 관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 누구보다 대통령에게는 ‘균형감각’이 중요함을 지적하면서, 의사결정에 있어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청취하여 치우치지 않는 결정에 이르러야 하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였다. 저널리즘의 본진이라 불리우는 미국에서 대통령실을 50년도 넘게 드나들었던 기자 헬렌 토마스가 전하는 말은 귀기울여 들을 가치가 있어 보인다. 대통령 자신에게 들으라고 언급한 여덟 덕목이지만, 언론사 소속 기자들에게도 깨우치게 하는 뜻이 깊다. 저널리즘이 민주주의를 지킨다. 권력자의 행동양식을 바르게 이끌고 투명하고 정직한 임무수행을 담보하며 국민의 일상이 편안하게 안정되려면 언론이 깨어 있어 대통령과 정부를 일깨워야 한다. 기자는 국민과 대통령을 잇는 건강한 다리여야 한다.

2024-11-20

왕릉에서

배문경수필가 진평왕릉은 밤새 내린 서리와 안개에 젖어 천 년 전 역사조차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것 같다. 실제의 사물보다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처럼 이곳은 신이 아니고서는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다. 밤새 호위무사 한 명 없이 저 큰 능에서 벗어나 달밤에 홀로 느티나무와 나무들 사이를 거닐었을까. 삼국사기에 따르면, 진평왕(眞平王)은 태어날 때부터 외모가 범상치 않았고 체격이 컸으며 지혜롭고 의지가 굳고 밝고 활달했다. 키가 11자나 되었으며, 천주사(天柱寺)를 방문했을 때 그가 밟은 돌계단이 한꺼번에 3개나 부러지기도 했다고 하니 대단한 풍채를 지닌 왕이었나 보다. 그러니 무엇이 두려웠을까. 멀리 개 짖는 소리 컹컹 들린다. 늠름했을 그의 위엄이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했을 터, 맞은편 낮은 산 와상부처가 지켜주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하며 들이 울리게 웃음소리 요란했겠다. 진지왕이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에 죽은 뒤에 아들이 아니라 조카인 진평이 왕위에 올랐다. 진평왕은 행정조직을 정비해 왕권을 강화했다. 능을 바라보며 서리 내린 잔디를 밟고 서서 왕릉을 바라보는 사이 후배가 도착했다. 함께 선덕여왕길을 걷는다. 경주 숲 머리 길이라고도 부르는 이 길은 진평왕릉에서 명활산성까지 이어진다. 봄이면 겹벚꽃이 풍성한 길이고, 가을은 단풍이 아름답다. 맨발 걷기를 하도록 길을 조성해 산책로로 그저 그만이다. 우리도 잠시 선덕여왕이 되어 걸어본다. 누가 비질을 했는지 걷는 길은 낙엽이 쓸려 있다. 늦가을 정취와 초겨울이 맞닿아 차고 신선하다. 힘들던 시간이 박하사탕처럼 싸하니 입속이 맑아진다. 한동안 안부를 묻지 못했으니 이야기는 많고 길다. 각자 짧든 길든 자신의 생활에 충실하였고 힘들고 벅찬 일들이며 즐거운 개인의 나날이 걸음의 보폭만큼 넓게 좁게 이어진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래서 고마운 것. 나날이 보태져 오늘을 있게 했으니. 앞선 사람들이 먼저 명활산성에 도착했다. 남산성, 선도산성, 북형산성 등과 함께 신라 경주의 동쪽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왜구로부터 수도를 방어하는 성곽이고, 유사시 왕성의 역할을 했다. 선덕여왕 때에는 비담 등이 이 성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김유신을 중심으로 한 관군에게 평정되었다고 한다. 돌무더기를 보며 과거의 흔적 일부를 보며 끄덕끄덕 수긍한다. 역사 속 그들은 그 시절의 주인공이다. 이제는 낮은 성곽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이 최선이었으리라. 이미 흩어진 이름들의 공허와 삶의 잔상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우리는 돌아서서 진평왕릉으로 다시 왔다. 차에 싣고 온 세상에서 제일 맛나다는 커피 믹스를 종이컵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붓고는 접이식 의자와 테이블을 꺼내 간단한 브런치와 커피를 즐긴다. 왕릉을 바라보는 오늘과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왕릉의 고요와 두런두런 삶의 이야기가 하모니를 이룬다. 진평왕릉은 다른 신라왕릉과 달리 산이 아니라 논밭에 둘러싸였다. 산에 자리한 능이 둘레에 소나무가 섰다면 이곳은 물길을 둘렀다. 시냇물 같은 해자가 논과 능을 구분한다. 그래서 경주의 가을 풍경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온다. 이른 아침에 오면 남산을 넘어오는 아침노을을 감상할 수 있고, 저녁이면 해의 긴 그림자가 능 주변을 붉게 서성인다. 사람들의 발길이 넘쳐나는 유적지가 아니라 조용히 가족 단위로 피크닉 바구니를 펼쳐 소소한 소풍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왕과 여왕의 이야기들이 풍성한 이곳, 왕릉을 곁에 두고 사는 경주 사람의 복이다. 역사가 가득한 유적지 곁에서 우리는 오늘의 나의 역사를 쌓아가면 된다. 커피가 식는 사이 안개는 걷히고 햇살이 눈부시게 얼굴을 비친다. 오늘 우리의 소풍이 끝나가고 있다. 다시 올 때는 조금 더 왕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그는 정말 어떤 삶을 살았을까. 오래전 일이라 더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야 들릴 것이다.

2024-11-20

수상(受賞)의 의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몇 일새 뚝 떨어진 기온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가로의 플라타너스 넓은 잎이 포도(鋪道)에 뒹굴며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올해도 50여 일밖에 남질 않았으니, 찬바람이 불기 전에 겨울 채비를 하면서 지나온 날들과 주변을 살피고 챙기며 결산을 해야 하는 모종의 암시(?)를 내리는 듯하다. 앞만 보고 줄기차게 달려왔었던 지난날들에 대한 회고와 자취를 더듬어 한 해의 활동과 공과를 정리하고 결산을 준비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연초에 계획하거나 목표로 했었던 일들을 되짚어보며 근사치나 달성치를 가늠해보는 것은 내심 관심거리가 아닐까 싶다. 자신의 1년 동안의 삶의 궤적을 반추하고 확인해보는 일종의 체크 리스트나 자기진단표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다시 말해 ‘1년 농사’를 어떻게 지었느냐에 대한 작황을 생각해보는 성찰의 시간 같은 것이다. 이런 과정이나 절차를 거치면서 해마다 ‘삶의 농사’는 노력과 실천에 따른 공과(功過) 득실로 환산되어 자신의 삶이 풍부하고 윤택하게 가꿔지는 것이리라. 개인적인 삶이 이럴진대, 어떤 조직이나 단체, 기업이나 기관 등의 경우에는 보다 체계화되고 실질적·합리적인 장치에 의해 공적이나 유공을 파악, 추천하여 심사와 검증과정을 거쳐서 포상 또는 표창을 하게 된다. 즉 ‘상을 준다’는 것으로, 상(賞)이라는 것은 잘한 일을 격려, 칭찬하고 그 일을 장려하기 위하여 주는 물질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상은 선행·공적·미기(美技)·실력·능력 등을 칭찬하고 사회에 장려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모범적이고 사회공공적이며 교육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은 광범위한 정부의 포상제도에 따른 훈장과 포장을 비롯, 사회의 각 기관·단체들도 각종 상급규정을 마련, 시상을 하고 있다. 또한 문학·미술·음악·학술·체육·과학·언론·사회봉사·출판 등 각 분야에 걸쳐 포상제도가 마련되어 있고, 민속제와 민속대회 및 각종 공모·공연·경기에도 상을 걸어 수상자를 뽑고 있어 상의 분야와 종류 면에서 아주 다양하다. 이처럼 상이 극도로 다양화·다종화 되고 상금과 부상도 대규모화 되어 많은 사람들이 치열하게 열정을 쏟아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는 점 등이 오늘날 우리나라 포상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한달 여 전, 한강 작가가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면서 개인의 영광을 넘어 한국문학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반가운 기별 마냥 도처에서 들려오는 이러저러한 수상 소식이 한해의 소중한 결실로 나타나 기쁨을 더해주고 있다. 각종 문학상을 비롯 문화상이나 작품상, 봉사상, 선행상 등이 저마다의 분야에서 정성과 노력을 다한 증표 마냥 빛나고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수상은 그만큼 대내외적인 의미가 크고 파급력이 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코 상금의 액수나 권위, 명예 등을 가늠해서 수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상이 있기까지 수상자만의 남모를 인내와 땀방울, 숱한 고초가 쌓인 내공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24-11-20

사계절 모기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이라는 전래동화가 있다. 아들이 서당에 갔다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죽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되는 괴물이 어머니를 해코지했다고 알려줬다. 아들은 복수를 결심하고 괴물을 찾아 길을 떠난다. 가는 길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힘든 일을 해주는 대가로 괴물이 살고 있는 장소를 찾아낸다. 괴물의 집에 숨어 있다가 부엌으로 유인하여 솥 안에 가두고 불을 때어 태워 죽인다. 이 괴물이 죽은 재가 변해 주둥이가 길고 꼬리도 긴 모기가 되었다는 모기의 유래담이다. 베트남의 ‘모기의 기원담’은 또 다르다. 남편의 지극한 사랑을 배신한 부인이 결국 벌을 받아 모기가 된다는 얘기다. 저승까지 함께 가기로 약속한 부부가 결혼 후 오래지 않아 부인이 죽자 망연자실한 남편이 매일 세 번씩 아내의 시체를 안으며 환생을 기원한다. 갸륵한 남편을 위해 부처님은 죽은 아내의 입술에 세 방울의 피를 떨어뜨려 아내를 소생시킨다. 그러나 소생한 아내는 재물에 눈이 멀어 남편을 배신하고 세 방울의 피를 돌려준 뒤 남편을 떨쳐낼 요량이었지만 피를 뽑아낸 후 깨어나지 못한다. 부처님은 아내를 모기로 변신시켜 살게 했다. 또 어떤 나라에는 사냥꾼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괴물을 해치우고 불로 태우자 괴물의 재가 모기로 변해 사냥꾼을 괴롭혔다는 우화도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상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 어느 때부터 모기는 인간을 괴롭혀온 괴물 같은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모기와의 전쟁이 시작되고, 이 전쟁은 ‘모기의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가 되면 한시름 놓게 된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지금이 11월, 절기상으로는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는 소설(小雪)이 내일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모기는 윙윙대며 기승이다. 한여름에나 피우던 모기향을 아직도 켠다. 손주들이 온다고 하면 미리 방안에 모기약을 쳐야 한다. 유난히 모기에 취약한 나는 이 가을과 겨울의 사이, 매일 밤 모기에 물린 손과 발, 팔과 다리, 목과 등, 심지어 얼굴에까지 약을 바르며 긁어대고 산다. 그러고 보니 한여름엔 오히려 모기가 없었던 듯싶다. 더위를 피한 저녁과 새벽녘에 풀을 뽑을 때만 영락없이 독한 풀모기에 물렸을지언정 정작 방안에선 모기에 그다지 물리지 않았다. 폭염이 유난히 길었던 올 여름이었으나 정작 30도 이상의 폭염엔 모기도 너무 더워서 날지 못한다고 한다. 대신 따뜻한 가을이 길어지면서 모기 활동기가 늘어났단다. 낮 기온이 13도 이상 되면 모기들이 흡혈활동을 하는데, 11월의 지난주까지도 낮 기온이 20도 가까웠다. 해마다 11월에 치러지는 수능일, 이젠 ‘수능한파’가 아니라 ‘수능모기’를 걱정해야 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앞으로는 1월 기온 평균 기온이 10도 이상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연중 모기가 활동할 수 있고, 이는 한여름만이 아니라 사계절 내내 모기와 싸워야 한다는 얘기다. 이 또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위기 탓이라고 하니 옛이야기 속의 괴물모기 뿐 아니라 지금의 이 모기도 인간이 자초한 것이긴 하다.

2024-11-20

기업 혁신 진화와 바른길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일류기업의 특징은 혁신활동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하면서 일의 속성과 제조 조건의 특성, 생산 프로세스 특징에 맞게 진화 발전시켜 자사 고유의 혁신 문화를 형성해 왔다. 혁신활동을 통해 최적화된 생산방식을 만들고 생산 프로세스 수준을 높여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춤으로써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선진 기업이 되는 것이다. 혁신하지 않는 기업이 일류 기업이 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혁신을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자사에 맞게 진화 발전시키는 기업만이 성공한다. 기업의 혁신 진화 과정과 성공의 열쇠는 무엇일까. 기업 혁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과 기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동태적 과정이다. 자사에 맞는 혁신 기법을 도입하고 진화 원리와 진화과정을 이해하고 기업 특성에 따라 어떻게 적용해가는가에 성공과 실패가 나눠진다. 혁신 컨설팅은 기업의 닥터 역할이고 컨설팅 기관의 진단과 처방에 따라 기업 병을 치료 할 수 있고 건강한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 세계 유명 기업이 혁신에 성공했다 하여 국내 여러 기업이 그것을 도입하지만 실패한 경우가 많다. 미국의 GE 회사가 6시그마 기법을 경영에 접목하여 성공시키자 많은 기업이 도입하였지만 성공한 기업은 드물다. 그것은 자사의 특성을 반영하여 모방에서 응용과 창조로 진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 혁신 도입과 진화 과정은 자사의 일이 무엇인지부터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동차 생산라인은 조립공정이고 수작업이 대부분이다. 차 바퀴와 차량 문을 시간 내에 조립하는 것 등이 생산성과 직결된다. 제철소 생산시스템은 전 공정이 자동화 되어 자동차 라인과는 일의 속성이 다르다. 두번째는 설비 특성을 알아야 한다. 자동차 조립하는 장비와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의 설비는 다르다. 작업 조건 중 설비 관리와 개선 방법에 차이가 있다. 세번째는 생산 프로세스 특징을 알아야 한다. 기업 혁신하는 이유는 생산 프로세스 수준을 높여서 경쟁력 확보와 수익성 실현이다. 수많은 부품을 조립하는 자동차 라인은 부품을 제때 공급하는 것이 관건이다. 제철소 생산라인은 제조 조건과 시스템 제어가 생산성을 결정하고 낭비 내용과 발굴 방법이 다르다. 마지막으로 시간, 손, 근무 체계 등의 혁신 활동 인프라다. 계획을 잘 수립해도 실행력이 낮은 것은 활동 인프라를 감안하지 않은 계획 때문이다. 필자가 컨설팅 하고 있는 포스코의 혁신 활동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2005년 9월에 처음 도입한 현재의 QSS(Quick Six Sigma)는 내년이면 20주년이 된다.‘QSS 2.0’이라 명명하고 활동 인프라를 반영하여 내실화에 초점을 맞췄다. ‘Back to the Basic’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운영체계화와 동기부여를 강화하고 ‘Working Life Cycle’에 맞춰 신입부터 정년까지 레벨 단계에 맞는 역량 향상 프로그램이 도입되고 인사와도 연계를 한다. 생산 현장의 50%가 넘는 MZ세대의 특성을 반영하여 개인의 성장과 회사의 발전에 방향을 설정한 것이다. 기업 혁신은 다양한 대내외 환경 변화와 자사 특성에 맞게 진화 발전하는 것이 가치 있는 혁신으로 가는 길이다.

2024-11-19

수족냉증과 건강의 온도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혈액순환이 잘되면 건강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심장은 혈액을 펌프질해 온몸 구석구석 사지 말단까지 보낸다. 피가 손끝 발끝까지 잘 전달이 되면 손과 발은 따뜻하고 그렇지 않으면 손발은 차가워진다. 혈액의 온도는 중심체온인 37도 정도로 본다. 누구나 중심체온은 37도로 비슷한데 손발이 따뜻한 사람이 있고 손발이 차가운 사람이 있다. 여성보단 남성이, 마른 사람보단 체격이 있는 사람이 손발이 따뜻하다. 운동을 하는 사람과 고기 위주의 식사를 하는 사람의 손발이 더 따뜻한 경향을 보인다. 동물의 몸집은 크면 클수록 인체의 열을 안정적으로 보존할 수가 있다. 인체의 체표면적이 인체 질량 부피보다 상대적으로 적어 사람의 몸은 커질수록 열의 발산이 상대적으로 줄어 체온을 몸 안에 많이 보존할 수 있다. 그래서 추운지방으로 갈수록 동물이 커지는 이유가 인체의 열을 보존하기 위해서 생긴 진화의 방향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키가 작고 몸무게가 적기 때문에 몸 안에 있는 열을 밖으로 쉽게 뺏긴다. 근육량도 여성이 남성보다 1.5배 정도 적기 때문에 인체 온도가 낮은 경향이 있다. 손발이 차서 한의원에 오는 환자들의 대부분이 여성이다. 면역력 저하, 위장장애, 동맥경화, 자율신경실조, 스트레스 등 다양한 원인이 있고 이에 모세혈관이 수축되고 이는 수족냉증으로 이어진다. 수족냉증은 단순히 손과 발이 차다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의 경우에는 배와 자궁이 같이 차서 자궁의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남성은 생식기 쪽의 기능이 떨어진다. 피가 잘가는 곳의 세포는 건강하고 활력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은 비실비실 거리고 변형이 된다. 손발이 찬사람은 피부의 혈액순환도 좋지 않아 추위를 잘 타고 감각이 둔해지는 등 감각이상도 생긴다. 피부에 잡티가 잘생기고 거무튀튀하고 혈색이 나빠진다. 혈액순환이 잘되어야 피부가 맑고 광택이 나고 잡티 등이 잘 낫는다. 혈액순환이 잘되고 손발을 따뜻하게 만들려면 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해야 한다. 특히 근력운동을 하고 고기나 단백질을 먹어서 근육의 양을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 근육의 양이 늘어나야 면역력도 올라가고 몸이 따뜻해진다. 몸이 따뜻해지면 다시 면역력이 올라가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마른사람이거나 여성일수록 헬스장에 가서 근력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 유산소와 병행을 해야 하고 근력운동을 8 유산소 2 정도의 비율로 하는 것이 좋다. 바빠서 하나만 선택을 해야 한다면 우선 근력운동을 한다. 평소 고기나 지방을 먹지 않고 채소와 탄수화물 위주로 먹는 사람들은 식단을 바꿀 필요가 있다. 고기나 생선을 먹는 비중을 많이 늘려 몸을 이루는 단백질과 지방의 섭취를 높여야 한다. 추운지방에 사는 동물들은 지방도 많고 살도 많다. 이는 전부다 열을 내는 에너지원으로 작용을 한다. 탄수화물 위주로 먹으면 생활 에너지로 다 나가고 과잉 섭취되면 몸에 좋지 않은 중성지방으로 변해 필요 없는 살만 찐다. 계피나 생강 대추 등을 차처럼 꾸준히 끓여서 먹어도 좋고 한의원에 내원해 몸의 면역을 올리고 따뜻하게 하는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2024-11-19

경주APEC 카운트 다운… “경북의 기회”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 14일부터 7일간 페루 수도 리마에서 열린 ‘2024 리마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경북·경주가 국제외교 무대의 중심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든다.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은 지난 16일 페루 수도 리마 컨벤션센터에서 내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회의 의장국 정상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페루 전통 양식으로 만든 ‘의사봉’을 전달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날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APEC회의와 함께 열린 ‘CEO 서밋’ 의장인 페르난도 자발라 의장으로부터 차기 의장직을 인계받았다. 경주 APEC회의는 내년 10월 말~11월 초에 열리며, 21개 회원국의 정상 및 글로벌 CEO, 내외신 기자 등 2만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은 의장직을 인계받으면서 “대한민국은 2000년 역사를 간직한 문화 도시 경주에서 2025년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한다”고 했다. 경주 APEC회의가 성공할 것이라는 예감은 리마 회의 곳곳에서 묻어났다. 지난 15일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먼저 윤 대통령을 초청했고, 윤 대통령도 시 주석의 방한을 제안했다. 양 정상은 모두 “초청에 감사한다”고 화답해 시 주석은 APEC회의 때 경주를 방문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시 주석이 경주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날 경우 경주는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가 된다. 이번 APEC 정상회의에 대통령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리마를 방문한 이철우 경북도지사에게도 외신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이 지사와 김석기 국회의원(경주), 주낙영 경주시장이 미디어센터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은 ‘세계 속의 경북·경주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 지사 일행은 “내년에 경주를 찾아와 좋은 취재를 해 달라”고 했고, 기자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APEC회의는 부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열린다. 지난 2005년 11월 부산 APEC회의 때 주회의장으로 이용된 해운대 누리마루는 당시 최첨단 회의 시스템과 고품격 서비스, 한국 전통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모두 겸비한 최고의 회의장이라고 극찬을 받았었다. 이곳은 지난 2019년 한국 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장소로 이용됐으며, 지금도 국가 간 장관회의나 글로벌 CEO 및 임원회의, 국제포럼 등 고급 회의시설로 활용된다. 경주 APEC회의는 경제파급 효과만 2조원에 달한다. 아태지역 21개국 정상과 2만명 규모의 손님을 제대로 맞으려면, 정부도 마찬가지지만 경북도와 경주시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이 지사가 “경주 APEC회의는 신라 삼국통일 이후 가장 큰 국제행사”라는 의미를 부여했듯이, 경북도와 경주시는 정상회담 주 회의장으로 사용될 화백컨벤션센터와 언론취재의 각축장인 미디어센터, 글로벌 기업인들이 집결하는‘CEO 서밋’ 장소, 오·만찬장, 문화행사 장소 등이 ‘역대급’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 참가자 모두가 깊은 감동을 받아 경주를 잊지 못하는 도시로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4-11-19

꼭지 달린 사과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나라에 사과가 처음 들어온 것은 조선시대 효종 때며 당시 인평대군이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사과나무를 수레에 싣고 왔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현재 재배되는 사과종은 1900년초 미국인 선교사가 대구에 들여온 것으로 대구사과 시초다. 대구에 사과가 재배되기 시작하면서 대구는 사과로 유명해졌고 사과 덕분에 미인이 많은 도시로 소문났다. 전국 최고의 품질과 생산량을 자랑하던 대구사과는 기후온난화로 북상하면서 지금은 안동, 청송. 문경 등 경북 북부지방이 주산지가 됐다. 경북도내 사과 생산량은 전국의 62%를 차지한다. 매년 11월쯤이면 경북도내 사과 주산지에서 생산된 사과가 서울로 올라가 판촉 행사를 벌인다. 청송군에서는 지난해부터 꼭지없는 사과를 출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관행적으로 사과 유통과정에 사과에 상처가 생기지 않게 수확한 사과의 꼭지를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 그러다보니 꼭지 작업에 소요되는 인건비가 만만치 않다. 청송군에만 꼭지 제거에 들어가는 인건비가 연간 90억원이다. 전국적으로는 650억원이 드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청송군이 전국에서 최초로 시도한 꼭지 달린 사과가 시간이 갈수록 많은 사과농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시중 마트 등에서 꼭지 달린 사과를 이젠 제법 볼 수도 있다. 연구에 의하면 소비자가 꼭지를 제거하지 않은 사과를 구입해 3개월 정도 보관하는 경우 그렇지 않은 사과보다 수분 증발량이 4% 정도 줄어 더 신선한 사과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사과 생산농가들은 인건비를 줄이고 소비자는 더 신선한 사과를 사먹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아주 간단한 발상 전환 하나가 만든 유익한 효과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1-19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느닷없는 마음

연은 무이네를 다녀온 뒤 인에게 헤어지자는, 느닷없는 통보를 했다. 인은 무척이나 당황했고 당황한 만큼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왜? 라고 묻지도 못했다. 인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 라는 짧은 답뿐이었다. 인은 자리로 돌아와 입고된 책을 확인하고 주문일자와 주문자를 찾아 종이 가방에 나눠 담았다. 어휴, 인은 매대에 깔린 도서를 정리하다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인은 사다리에 기대서서 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왜?’ 인과 연은 이 년 전 만났다. 지역에서 열린 도서축제에서였다. 해변을 주 무대로 한 축제였기 때문에 출판사나 책방들의 천막들이 해변을 따라 나란히 자리를 잡았고 인의 책방 또한 그들 틈에 끼었다. 축제 전날부터 바람이 세게 불었고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졌다. 인은 천막 앞으로 차양을 길게 내고 매대 앞쪽의 책에 비닐을 씌웠다. 인의 목덜미에는 바람이 품은 소금기과 뭉친 땀이 끈적이듯 흘렀다. 아직 세상은 여름의 끝자락에 머무르고 있었다. 인은 천막의 뒤를 가릴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나마 불어오는 바람을 -소금기 가득한 바람이지만- 막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천막 뒤로 들이치는 빗방울도 없었고 천막 뒤쪽에는 책을 진열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세 번째 날이었다. 날씨 탓인지 이번 축제에는 예전보다 방문객이 적었다. 방문하는 이들도 가족 단위, 아이들 체험학습이나 기념품 구매 등이 목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날 오후만은 젊은이들, 연인들이 제법 많이 몰려들었다. 메인 무대에서 열릴 예정인 초청 공연의 영향이었다. 공연 두세 시간 전부터 모여든 사람들로 행사장이 북적거렸고 줄지어선 천막들을 둘러보며 책을 집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다 게 중 더러는 책을 사기도 했고 더러는 책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만 했다. 인은 그들을 비난하거나 쫓지 않았다. 북적거리는 천막이 그저 좋았다. 그것도 잠시, 곧 공연이 시작된다는 알림에 모두들 메인 무대로 몰려갔다. 인은 아무도 없는 천막에서 어질러진 책을 정리하다 뒤를 보았다. 마침 썰물이었고 수평선 넘어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도서축제에 랩이라니. 인은 메인 무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알아듣기 힘든 랩을 견디며 천막 앞으로 고개를 빼 무대 쪽을 보았다. 번쩍이는 조명 아래 객석을 가득 메우고 넘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이 다 어디서 왔지? 궁금해 할 즈음, 문득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란 물방울 원피스를 입은 단발머리였다. 공연을 안 보는 사람이 있네. 인은 고개를 살짝 숙였고. 이어서 안녕하세요, 책방 수북입니다, 큰 소리로 말했다. 단발머리는 멍하니 있다 곧 아, 안녕하세요, 하고 대답을 하고는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연이었다. 단발머리는 잠시 진열된 책을 만지작거리다 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전화번호 주세요. - 신기하지 않아? 내 이름이 인이고 자기 이름이 연이니. 이런 것을 두고 인연이라 하는 것 아닌가? -그건 신기하기는 하지만 진짜 인연일지는 아직 모르지. 이름으로 대충 때워 넘어가려고 하지 마. -아니, 전화번호를 먼저 물어본 쪽은 자기잖아. 이제 와서 이러나? 둘이 손을 맞잡던 날, 인이 물었다. -그런데 나 어디가 좋아서 내 전화번호를 물은 거야? 연은 아마도 노을 때문이었을 거라 대답했다. 노을? 인이 되물었고 연은 응 노을, 하고 대답했다. -글쎄 천막들을 하나씩 둘러보며 지나치는데 자기가 보였지 뭐야. 그런데 그 순간 자기밖에 안 보이더라고. 그런 것 있잖아. 자기만 선명하게 들어오고 주위의 모든 것들이 흐릿해지는 그런 것,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막…. 느닷없이 자기를 갖고 싶은 마음이…. 정말 느닷없었다니까. 연은 아마도 노을이 자기 등 뒤에서 뿜어낸 빛들이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고, 그런데 노을을 등진다고 해서 모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겠냐고, 아마 그 시각, 그 자리, 그 각도에 인이 서 있었던 것 이런 모든 조화가 만들어 낸 것이지 않겠냐고 말을 이었다. -아무튼, 자기 번호를 얻어야겠다 마음먹었지. 그래서 물어본 것이고. 자기는 일 초의 망설임도 없더라. 누구든 아무나 번호 물어보면 다 줄 것 같던데? 그렇지? 자기는 내가 아니라도 번호를 줬을 거잖아. 둘은 느닷없는 입맞춤을 했고 연인이 되었다. 연은 지난 달 친구 세 명과 베트남으로 여행을 갔다. 갑작스레 가게 된 여행이었다. 다 같이 있던 자리, 누군가의 생일 파티를 명목으로 모인 자리에서 친구 중 하나가 베트남에 사막이 있다 이야기했고 사막에 샘이 하나 있는데 요정의 샘이라고, 이름이 너무 예쁘지 않냐고, 그리고 사막에서 맞이하는 해넘이가 그렇게 멋지다 한다고 덧붙였다. 핸드폰으로 검색한 지명이 무이네라는 것을 또 다른 친구가 찾아냈고 모두들 무이네의 사막 사진에 와아, 하고 감탄을 하던 중 생일이었던 친구가 말했다. -우리 가자. 무이네. 동네 이름도 이쁘네. 무이네. 호치민에서 판티엣으로 그리고 무이네로. 연과 친구들은 차량을 렌트해서 달렸다. 출발한 지 세 시간, 네 시간 쯤 지났을까 무이네에 들어섰다. 무이네에서만 3박을 예정하고 있었기에 급하지도 않았고 웬만한 것은 모두 둘러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연과 친구들은 티격태격 댔다. 두 명은 활동적인 일정을 가지기를 원했고 두 명은 조용한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연은 조용한 쪽이었다. 연은 무엇보다 지치지 않은 몸과 마음으로 해넘이를 보고 싶었다. 결국 둘째 날은 두 명씩 짝을 지어 따로 셋째 날은 다 같이 지내기로 일정을 짰다. 연과 친구가 찾은 곳은 사막이었다. 화이트 샌듄과 리틀 그랜드 캐니언, 요정의 샘을 걸으며 시간을 보내면서 연은 틈만 나면 시계를 보았다. 친구가 뭘 그리 보느냐 물었고 연은 해넘이를 놓치기 싫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모래썰매를 탔지만 몇 번 탄 후 둘은 기진맥진했다.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것은 신나고 즐거운 일이었지만 썰매를 들고 모래 언덕을 오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맑은 하늘과는 달리 바람은 거셌고 바람에 날리는 모래 알갱이들이 팔과 다리, 얼굴을 괴롭혔다. 연은 지친 상태로 해넘이를 보고 싶지 않았다. 연이가 말했다. 그만 타자. 이제 그만 레드 샌듄으로 가야겠어. 모래 언덕 너머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붉은 물결 같은 모래무늬 뒤로 짧은 그림자가, 모래 언덕 뒤로는 긴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림자는 짙고 연한 어둠을 만들었고 그 위로 햇살은 막 떠오르는 해와 같이 밝고 붉게 빛났다. 연은 작은 모래 언덕 기슭에 앉아 큰 모래 언덕 너머로 넘어가는 해를 보았다. 해가 언덕 너머로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셋째 날 연은 모든 일정을 친구들에게 양보했다. 무엇이든 친구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겠노라고. 단 한 가지, 한 번 더 해넘이를 볼 수 있게 해 달라 했다. 그날 저녁 연과 친구들은 해넘이를 보았다. 친구들이 이리저리 위치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은 동안 연은 전날 앉았던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해넘이를 보았다. 그들은 다음날 돌아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은 인에게 이제 그만 만나자는 느닷없는 통보를 했다. 그날 사위가 어둑어둑해질 즈음, 연으로부터 답은 오지 않았고 인은 일찍 문을 닫았다. 당황스러운 마음은 여전했으나 연을 찾아 달려가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연으로부터는 답을 들은 후에, 그런 후에야 무엇을 할지 결정할 참이었다. 밖에 내어 놓았던 입간판을 책방 안으로 들여놓고 있을 때 연으로부터 답이 왔다. ‘그곳에 네가 없었어. 두 번을, 한 참 동안 가만히 찾았는데 네가 보이지 않더라. 일부러 애쓰지는 않았어. 널 처음 본 그 순간처럼 네 모습이 그냥, 아무런 예고 없이 보였으면 했는데, 보이지 않더라고. 내 속에 네가 없는 거지. 네 잘못은 아니야. 그냥 느닷없는 거, 느닷없는 마음, 내 마음 때문이야. 원래 사랑이 그런 거잖아. 느닷없는 것. 우리도 느닷없이 시작했잖아. 끝내는 것도 느닷없자, 우리.’ 끝 김강 소설가·내과의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 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24-11-19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데보라 스미스의 ‘HUMAN ACTS’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5·18 시민군에 휩쓸린 어린 소년 동호의 죽음을 회상한 ‘소년이 온다’는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작에 선정되기 이전 2014년 만해문학상,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전세계 20여개국에서 번역 출간되면서 한국문학의 세계화의 길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벨상을 계기로 이제 우리나라 문학이 세계의 문턱을 넘어 세계 각국의 독자와 한결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한국 민주화의 전환점을 불러온 5·18민주화운동은 광주를 지역적 배경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일어나서는 아니 될 내전에 가까운 전쟁으로 인해 숱한 생명이 고문과 학살로 사그라졌다. ‘소년이 온다’는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공간 속에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다룬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소설”(가디언)로 평가되었다. 교련복 차림의 어리고 어리숙한 동호의 이름없는 죽음에 그의 어머니는 리얼한 광주방언으로 피눈물을 쏟아낸다. “상처의 구조에 대한 투시와 천착의 서사”인 이 소설 중 제6장 ‘꽃 핀 쪽으로’는 당시 중학생이었던 동호의 죽음에 대해 20여년이 지나서 동호를 가장 사랑하던 어머니가 지난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대사와 지문이 구분이 없되, 광주방언만이 깨알처럼 박혀 있다. 작가 한강은 동호의 죽음만이 상처가 아니라 그의 일가족과 광주시민 모두가 헤어날 수 없는 오래 묵은 상처를 가지고 있음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 머시매를 따라갔다. 머시매 걸음은 빠르고 나는 늙었는디, 아무리 걸어도 따라잡을 수 있어야제. 조금만 옆으로 고개를 돌려주먼 옆얼굴이 보일 것인 디, 아무 데도 안 둘러보고 앞으로, 앞으로만 가야. 요새 어느 중학생이 그리 짧게 머리를 깎겄냐이. 동그스름한 네 두상을 내가 아는디, 분명히 너였다이. 느이 작은형이 물려준 교복이 너한테는 너무 컸다가 3학년 올라감스로야 겨우 몸에 맞았제.” 작중 화자는 한글을 조금 읽을 수 있는 가난하고 무지한 광주의 소시민인 동호의 어머니다. 그의 언어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이미지는 오래전 한국의 어머니의 전형이 아닐까? 자연 그의 언어는 토착의 사투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나의 관심은 바로 이러한 광주 방언이 번역문에는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가였다. 지역의 토착적 분위기가 동호의 죽음과 가족사에 그늘진 모습을 어떻게 투사하고 있는지를 밝혀보고 싶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Deboraha Smith)의 ‘HUMAN ACTS’ GRANTA 영어판을 사서 살펴보았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는 탁월한 한국문학 번역가로 알려졌고, 특히 한강의 소설을 훌륭히 번역한 것으로 영국 맨부커상도 한강과 공동 수상한 번역가다. 한강을 뛰어넘어 제2의 한강이라며 그녀의 번역에 대한 호평이 자자했다. 그러나 방언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앞의 동호 어머니의 독백과 같은 광주방언 대사는 지나친 의역으로 원작이 품고 있는 토착적 향기는 모조리 증발되어 버렸다. 그도 방언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충분히 했을 거라는 짐작은 간다. 필자는 번역전문가는 아니지만 문학작품 번역에서 방언을 어떻게 투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오래도록 해 왔다. 1885년 미국의 마크 트웨인이 쓴 ‘허클베리핀의 모험’은 형식상으로는 ‘톰소여의 모험’(1876)의 속편으로 발표되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흑인과 백인의 언어는 사회적 방언으로 차이가 컸는데, 흑인의 방언이 그대로 쓰여 큰 이슈가 되었다. 글로 쓰인 방언을 가시방언(Eye DIalects)라고 하는데, 이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들이 이어졌다. 향후 k-문학이 세계로 뻗어나기 위해서는 우수한 원작이라는 조건에 더해 탄탄한 번역이라는 또 하나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 토착 방언에 대한 문학적 기능과 역할에 대한 국제적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미세하고 다양한 인류 언어의 공통적 자산을 한 단계 도약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AI기계번역이 도달하지 못하는 문맥에 따른 이미지의 다양성, 상징과 비유 그리고 방언의 번역이라는 보다 순도 높은 언어 소통의 기술력을 위한 우리의 관심과 노력 그리고 투자가 절실한 시점이다.

2024-11-18

실크로드를 가다 - 인연, 아주 오래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 선조가 남긴 유물유적을 사랑했다. 짝사랑이 반복되면 고소 섞인 아내의 눈길을 애써 무시한 채 길을 떠나곤 했다. “여행은 간절함으로 무수한 삶을 찾아 헤매다 내 안으로 되돌아가는 행위”라고 어느 글쟁이가 말했다. 기회는 우연을 가장해 필연처럼 찾아왔다. 평소 꿈꾸어왔던 실크로드, 앞선 한국인 혜초(慧超)가 눈물을 뿌리며 넘었던 고원과 황량한 사막, 미지의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실크로드를 열었던 사람들이 남긴 흔적과 사연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무엇보다 역맛살이 게맛살보다 이토록 맛있고 매력적인 까닭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설렘 때문이었다. 이번 실크로드 중국 길에서 만난 인연은 다양한 형태로 내 가슴에 들어왔다. 수다보다 침묵이 더 잘 번진다고 한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은 탓이지만, 무의식의 저편에 그들이 보는 세상이 침묵으로 전해왔다. 시안(西安) 후이족 거리에서 아이와 주고받은 눈인사는 이국의 낯선 땅 번잡하고 들뜬 이방인 마음에 환영의 꽃다발이었고, 라블랑스에서 받은 소년의 해맑은 인사는 연꽃이 피어날 때 둔탁하면서도 청량한 미성(美聲)이었다. 인연은 그런 것,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정이 있다면 우리나라든 중국이든 어떤가. 밤의 한기가 가시지 않은 어둑새벽, 찬 언덕에 걸터앉아 신을 향해 물같이 흐르는 행렬을 보면서 지금까지 걸어왔던 궁색한 사연들을 시간의 저편으로 흘려버렸다. 얼마나 오래된 인연인가. 평안으로 향하던 초원에서 만난 순박한 아가씨 미소를 떠올리면 여전히 설렌다. 전생에 어떤 인연이 닿아 있어 막연한 그리움은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를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은밀한 추억 한 자락 감춰둔 듯 얼굴이 붉어진다. 검게 탄 피부, 갸름한 얼굴 곳곳에 꾸밈없이 핀 점, 다소곳이 숙인 쑥스러운 미소에서 어린 시절 계단 아랫집에 살던 순이가 떠올랐다. 도심의 삶에서 사라진 그리움이었다. 짓궂은 신의 장난인가. 함께 찍은 사진이 남아 있었다면 그리움이 덜했을지 모르지만, 다행히(?) 물리적 저장 공간을 잃어버린 덕에 마음속에 더 깊이 담아두게 되었다.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오랜 시간 길에서 시달린 여행객에게 한 모금 청량제 같은 인연도 있다. 황량한 벌판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과일 파는 아가씨의 수다 섞인 웃음은 잘 익은 과일만큼 맛있다. 덤을 주는 모습은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와 다르지 않았고, 이 빠진 할아버지의 순한 웃음은 물리적으로 그어놓은 국경을 허물기에 충분했다. 그들에게는 허세도 가식도 없었고, 종교도 정치도 민주화도 중요하지 않았다. 종교는 분열을 획책하지만, 믿음은 화합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그들 마음속에는 믿음뿐인 듯했다. “아이들에게는 적은 없고 친구만 있다” 뭇 남성의 영원한 연인 오드리 햅번이 한 말이다. 아이들만 사는 세상이라면 어떤 모습일까? 피터 팬이 늙지 않고 산다는 ‘네버랜드’ 같을까? 가식 없이 해맑은 아이들을 만났다. 닫혀있던 내 마음을 쉽게 열어버린 위구르 아이들, 막대 아이스크림을 나누며 함께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훌쩍 떠나는 우리를 버스까지 따라온 사슴 같은 눈망울과 마주치자 웃어 준다는 게 슬픈 여운만 남기고 말았다. 아이의 투명한 시선은 내 가슴에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건방진 우월적 측은지심이었을까. 불쑥 나타나 공허한 외로움만 안겨 준 것은 아닐까? 어른의 잣대로 주었던 정은 무던했던 아이들에게 파문만 일으킨 꼴이었다. 조선의 반항아 이옥이 한 말처럼 천고에 더는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이 회한의 가슴을 여미게 했다. 위구르 아이들 여운이 가시기 전 밤에만 몰래 피는 박꽃 같은 아이를 만났다. 이방인이 소리에 잠에서 깬 듯했다. 흑석같이 짙은 눈동자에 통통한 볼, 어머니 사랑의 증표인 듯 하얀 둥근 귀걸이를 한 아이는 카메라를 피하지 않았다. 자기를 바라보는 나보다 나를 더 궁금해 하는 듯 보였다. 돌아서는 발길, 등 뒤에서 무엇이 툭 친다. 처음으로 내게 주는 엷은 미소였다. 지구촌 어디든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정이 넘치고 사랑이 있다. 말과 글이 달라도, 종교가 달라도, 문화가 생소해도 변하지 않은 진실이다. 폭력이 난무하고, 분배의 정의가 사라진 혼탁한 세상에서 화려하거나 빛나지는 않지만, 강물이 흐려지지 않게 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역사의 주인공이다. 실크로드 중국 길에서 만난 인연들이 시시때때로 떠올라 가슴을 적신다. 사람의 꿈을 들여다보면 그 내면을 알 수 있다는데 ‘긍정의 힘’과 현실에 감사하는 ‘신의 은총’을 읽을 수 있었다. 명분 따위나 욕심에 집착한 나머지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과거의 내 가난한 삶은 이제 그 의미를 잃었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서 맹목적인 순종자에 불과했던 내가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 오롯이 내 삶의 길과 마주했던 소중한 시간이자, 삶 자체가 풍요로워진 참 맛있는 여행이었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11-18

2025년 신춘 문예를 지켜보며

김규인 수필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더는 우리나라가 문학의 변방이 아니라 중심부에 가까이 있음을 말한다. 노벨문학상 발표 이후 한강 작가의 책은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린다. 책이 없어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수필 쓰는 사람으로 얼마 만에 찾아온 기쁨인지. 이제 문학도 한류의 주역임을 확인하게 되어 기쁘다. 신문사에서는 신춘 문예의 계절이 왔음을 알린다. 글 쓰는 사람들의 잔치다. 하지만 수필을 쓰는 사람은 초대받지 못한 사람처럼 남의 잔치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된다. 이제까지 발표된 전국 일간지 24개 신문사의 신춘 문예 공고를 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중앙지에서는 수필을 뽑는 곳은 없고 지방지에서 세 곳만 뽑는다. 그것도 한 곳은 등단한 자는 제외한다. 시의 스물네 곳과 단편 소설의 열아홉 곳에 비하여 턱없이 부족하고 동화와 비교해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요즈음 많이 쓰지 않는 시조의 아홉 곳에 비하여도 훨씬 적다. 신춘 문예에서 수필이 홀대받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왜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참담하기 그지없다. 수필은 다른 문학에 비하여 출발은 늦었지만,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와 더불어 수필 인구도 많이 늘었다. 여기에는 1974년 창간한 한국수필을 비롯한 문예지의 역할도 컸다. 그 후 수십 년간 매년 등단자를 배출하며 수필 인구의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늘어난 작가 수만큼이나 문학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수필은 글쓰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손을 내밀어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으며, 스스로 책을 사서 읽는 데도 수필의 역할은 너무 크다. 그러한 공로는 뒤로한 채 수필은 한국 문학에서 먼저 자리를 잡은 시와 소설, 동화와 시조에도 밀리고 마지막 남은 몇 곳의 신문에 간신히 의지한다. 수필은 문학의 지평을 넓혀왔으며 토양을 단단히 하였다. 수필로 시작하여 문학에 입문한 사람이 시와 소설로 넘어가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나 주위에서 수필을 대하는 태도는 싸늘하다. 신변잡기라고 부르며 밀어낸다. 누구나 시작은 어설프기도 하고 모자라는 부분이 많은 게 당연하다. 지금은 그러한 시간을 딛고 뛰어난 작품을 쓰는 수필가도 많다. 문학의 발전을 위해 신춘 문예를 주최하는 신문사를 탓할 생각은 없다. 더 큰 안목으로 내일을 내다보고 조화와 균형을 생각한다면 수필을 위해 신춘 문예의 폭을 더 넓혀야 한다. 신춘 문예를 통해 좋은 수필 작품이 발표되면 수필과 한국 문학의 질적 향상도 도모할 수 있다. 수필의 질을 탓하고 기득권을 내세워 신문의 지면을 아낀다면 수필의 발전은 이룰 수 없다. 수필에 대하여 우대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다른 문학과 동등한 대우를 원한다. 늘어난 수필가들의 수만큼이나 수필의 질도 좋아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수필 또한 소재의 다양화, 의미화와 형상화를 통해 문학성을 높여야 한다. 제대로 된 평론과 각고의 노력으로 질적 향상을 이뤄내야만 한다. 많은 수필가가 있어 한강처럼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작품이 나온다고 굳게 믿는다.

2024-11-18

‘그린 카본’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대구기상청은 입동(立冬) 다음날인 지난 11월 8일을 팔공산 단풍의 절정이 관측된 날이라고 밝혔다. 일 최저기온이 5℃ 이하로 떨어지고 일교차가 크게 벌어져야 단풍이 들게 되는데, 올해는 이상기후로 인해 가을 늦더위가 계속 이어지면서 평년보다 12일이나 늦었다고 한다. 단풍의 절정은 산 80%에 단풍이 들었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고 하며, 현재 전국 유명산 21곳 가운데 팔공산을 포함해 19곳이 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주변 지인의 단풍 소식에 따르면 한국 최대의 단풍 명소인 내장산과 한반도의 마지막 단풍이 머무는 전남 해남 두륜산과 달마산은 이제 절정으로 가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도 시간이 지나면서 낙엽이 되어 다 떨어지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낙엽이 분해되거나 축적되는 과정에서 탄소 흡수와 저장 기능에 기여할 수 있다. 즉, 낙엽은 식물이 광합성으로 흡수한 이산화탄소(CO2)를 고정한 유기탄소로 구성되어 있다. 낙엽은 땅에 떨어져도 그 자체로 탄소를 보유하고 있고, 토양 표면에 쌓이거나 분해되면서 탄소를 토양에 저장하는데 기여한다. 이를 통해 낙엽은 간접적으로 기후변화 완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낙엽을 만드는 식물이 육지의 생태계에서 광합성을 통해 흡수하고 저장하는 탄소를 ‘그린 카본(Green Carbon)’이라 한다. 해양생태계에서 흡수 및 저장되는 탄소인 ‘블루 카본(Blue Carbon)’과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블루 카본’은 주로 해안과 해안 생태계서 발생하고 염습지, 맹그로브 숲, 해초밭, 산호초 등이 포함된다. 반면 ‘그린 카본’은 열대 우림 및 온대 숲, 초원과 사바나, 농업 및 목초지, 조생수 및 조림지 등에서 다량 발생한다. ‘그린 카본’은 육상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CO2)를 흡수하고, 식물체(줄기, 뿌리, 잎) 및 토양에 탄소를 저장한다. 그런데 ‘그린 카본’은 개발압력이 높아지면 숲과 초지의 감소 혹은 정체로 이어지면서 그 양이 감소하게 된다. 실제로 우리나라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서 2030년까지 부문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보면, 흡수원 부분 감축량이 2018년 4130만톤에서 2030년 2670만톤으로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정부는 연안습지 복원과 바다숲 확대를 통한 ‘블루 카본’ 증대사업과 함께 도시숲 조성과 유휴토지 조림 등 신규 흡수원 확대 사업으로 ‘그린 카본’의 증대를 도모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신규 흡수원 확대사업에 더해 생장 기간이 10~25년으로 매우 짧은 수목인 ‘조생수’를 심거나 더 나아가 인공림에서 가장 성장이 뛰어난 수종을 인공적으로 교배해 만든 ‘엘리트 트리’를 심어서 ‘그린 카본’을 늘리고 있다. 그리고 이들 나무가 다 자라면 벌채하여 목재 제품으로 활용하는데, 탄소 저장량을 극대화 하기 위해 ‘고층 건축물의 목조화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대구경북 미래 50년 발전을 위해 공항, 도로, 산업단지와 건축물 건설이 필요한데, 이때 ‘그린 카본’을 줄이지 않는 고민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2024-11-18

‘위험한 투자’에 매달리는 사람들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박봉을 쪼개 꼬박꼬박 은행에 적금을 붓는 회사원과 생활비를 아껴 차곡차곡 통장에 모으는 주부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그런 방식을 대신해 기대 수익률이 높은 비트코인 등의 가상자산에 자신이 가진 돈을 투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형태의 투자는 적금이나 예금에 비해 위험성이 훨씬 높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 이후부터 가상자산에 대한 공격적 투자와 세칭 ‘몰빵 투자’의 상승폭이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온다. 실제 11월 18일 현재 비트코인의 시세는 1억2천만원을 상회 중이다. 이런 들뜬 분위기에 편승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도 한판 크게 투자해 지긋지긋한 월급쟁이 노릇 그만하고, 해외여행 다니고 골프 치며 나머지 삶을 즐기고 싶다”며 가상자산 투자에 눈독을 들인다. 현재는 한국예탁결제원 등 금융 관련기관이 ‘안정적 자산이라 할 수 있는 예금과 적금에서 빠져나간 돈이 고위험성 투자자산에 몰리고 있다’는 경고음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공격적 성향이 강한 일부 20~30대 투자자들은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어가며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사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쯤 되면 이건 여유자산으로 하는 건강한 투자가 아닌 ‘투기’가 아닐까? 이미 모두가 아는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싶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 비트코인 등의 투기성 가상자산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은 100명 중 하나, 아니 1000명 중 하나에 불과하다. 과도한 욕망이 불행을 부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때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1-18

‘무신불립(無信不立)’을 명심하라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정치지도자의 생명은 ‘신뢰’다. 권력의 정당성이 주권자의 신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도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국정을 수행하기 어렵다. 공자의 가르침, ‘무신불립’은 예나 지금이나 정치지도자가 늘 가슴에 새겨야 할 명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여론은 긍정평가 17%, 부정평가 74%(한국갤럽, 11월 8일)로서 취임 후 최저치다. 보수의 텃밭인 TK지역에서도 부정평가(63%)가 긍정평가(23%)의 두 배를 훨씬 넘는다. 분노한 민심을 외면하고 “돌을 던지면 맞고 가겠다.”고 ‘마이 웨이(my way)’를 고집한 결과다. 게다가 ‘명태균 사건’에 대해서 “취임 전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대통령실의 해명은 국민 부아만 돋우었다. 대통령의 아이콘(icon), ‘공정과 상식’이 ‘불공정과 몰상식’으로 조롱받고 있는 까닭이다. 이처럼 레임덕 위기에 몰린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머리 숙여 사과하고 쇄신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이 회견에 대한 평가는 여당에서도 ‘친한’과 ‘친윤’이 달랐고, 야당은 위기돌파를 위한 꼼수라고 혹평했으며, 국민들 역시 대체로 냉담한 반응이다. 리얼미터(11월 11일)의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의 회견에 ‘공감하지 못한다.’(69.8%)는 여론이 ‘공감한다.’(27.3%)의 두 배를 넘는다. TK지역에서도 비공감 의견(52.2%)이 공감 의견(45.6%)보다 높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솔한 반성과 실천행동’이다. 권력은 민심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말한 대통령이 민심과 싸우면 국민은 위임한 권력을 다시 회수하려 할 것이다. 신뢰상실의 원인이 언행불일치에 있음을 왜 모르는가. 대통령이 여론을 설득할 수 없다면 여론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실의 전면적 인적 쇄신이 시급하다. 민심이 돌아선 것은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참모들의 잘못이 크다. 참모는 민심을 정확히 파악하여 대통령에게 사실대로 고언(苦言)할 수 있는 이른바 ‘악마의 대변인’이 되어야 한다. 권력에 아부하는 예스맨(yes man)이 아니라 민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충신들이 있어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나아가 국민의 절대다수가 요구하는 ‘김건희 특검’도 정면 돌파해야 한다. 수많은 의혹들은 단순한 사과나 해명으로는 해결될 수가 없다. 아무리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라 하더라도 정권의 사활이 걸려있는데 민심과 싸울 수는 없지 않는가. 이제 여당은 ‘공정한 특검’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객관적·중립적 특검이라면 야당도 거부하기 힘들 것이며 국민의 신뢰도 회복할 수 있다. 대통령 집무실에 있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팻말은 장식용이 아니다. 떠난 민심을 다시 돌아오게 해야 하는 것도 대통령의 책임이다. 그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권력을 위임한 국민은 대통령의 직무유기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2024-11-18

수카바티 안양!

인구 55만명의 위성도시 안양에는 프로스포츠 구단이 세 팀이나 있다. 농구의 정관장 레드부스터스, 아이스하키의 안양한라 아이스하키단, 그리고 축구의 FC안양이다. 스포츠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이 굉장히 뜨거운데, 특히 FC안양 향한 사랑은 애틋하고도 감동적이다. FC안양의 창단에는 눈물겨운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안양에는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안양 LG 치타스 프로축구팀이 있었다. 지역민들의 자부심이라고 할 만큼 안양 LG를 응원하는 팬들의 함성은 굉장했다. 서포터즈 ‘RED’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큰북을 치면서 선수들을 응원했다. 하지만 2004년 안양 LG는 열성적인 서포터즈와 지역민들을 버리고 서울로 연고지를 옮겨 버렸다. 당시 지역에서 강한 반발이 일어 연고지 이전을 반대하는 삭발 투쟁과 가두행진, LG전자 불매운동 등이 펼쳐졌지만 소용없었다. 팬들은 하루아침에 그들이 사랑하는 팀을 빼앗겼고, 그때부터 무려 9년 동안 안양에는 축구팀이 없었다. 그 9년 동안은 눈물겨운 세월이었다. 지역민들을 배신하고 팀명을 바꾼 FC서울은 빅클럽으로 승승장구했다. 안양 축구팬들은 FC서울을 ‘북쪽 패륜아’로 부르며 야유했지만 그 야유는 공허한 마음을 더욱 시리게 만들었다. 안양에 다시 축구팀을 유치하기 위해 시민들이 나섰다. 공청회를 열고, 서명운동을 하고, 축구계에 호소하면서 다수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애썼다. 서포터즈를 비롯한 시민들의 갖은 노력에 안양시가 응답하면서 마침내 2013년, 시민이 주인인 시민구단 FC안양이 창단됐다. 우리나라 프로축구 K리그는 승강제로 운영된다. FC안양은 창단 이후 계속해서 2부 리그인 K리그2에 있었다. K리그2 우승팀은 K리그1로 자동 승격된다. 10년 동안 K리그1 승격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렸지만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2024년 11월, FC안양은 K리그2 우승을 확정지으며 꿈에 그리던 K리그1 무대를 내년부터 밟을 수 있게 됐다. 승격이 확정된 날 팬들과 선수단, 구단주인 최대호 시장까지 모두가 얼싸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2000년대 초반 안양 축구를 사랑하던 20대 청년들은 어느새 40대 중년이 됐지만 가슴속 붉은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승격을 확정하고 홈구장인 안양종합운동장 ‘아워네이션’으로 돌아오는 선수단을 위해 특별한 이벤트가 열렸다. 수백 명의 서포터즈가 안양 축구 응원의 상징인 홍염을 환하게 밝히고 응원가를 부르며 구단 버스를 맞이한 것이다. 선수들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버스에서 내려 서포터즈와 함께 춤추고 노래했다. 시즌 최종전이 열린 지난 11월 9일에는 아예 시 차원에서 공식 축하 행사를 열었다. 구단주 하려고 시장 출마한다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축구에 진심인 3선의 최대호 시장이 주장 이창용 선수와 함께 머리를 보라색으로 염색했다. 승격 공약을 지킨 것이다.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시청까지 2㎞ 도로를 안전하게 통제한 뒤 3000여 명의 시민과 서포터즈, 선수단이 함께 어깨를 부여잡고 행진했다. 거리 곳곳에 승격을 축하하는 보랏빛 현수막이 내걸렸다. 안양은 예로부터 포도 농사로 유명한데, 포도의 보랏빛이 안양 축구를 상징하는 색깔이 됐다. 시민들이 이룬 보랏빛 물결이 늦가을 노을과 어우러져 장관이었다. 축구 사랑이 뜨거운 독일이나 영국에서 볼 법한 광경이 경기도 안양에서 펼쳐진 것이다. 시민들과 선수단은 한 목소리로 ‘수카바티 안양!’을 외쳤다. ‘수카비티’는 산스크리트어로 ‘극락’을 뜻한다. 안양(安養)은 괴로움이 없고 지극히 안락한 불교의 ‘안양정토(安養淨土)’에서 온 지명이다. 시민들은 모처럼 걱정도 고민도 없이 마냥 기쁘고 평안한 주말을 보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전쟁이다. 안양 시민들은 FC서울을 안양종합운동장으로 불러들여 경기하는 날만을 기다려 왔다. 그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아마 도시 전체가 열광의 도가니가 될 것이다. 이제 안양에 이사 온 지 5년이 된 나는 조금씩 안양시민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쌓아가고 있는데, FC안양의 감동적인 서사 덕분에 내가 사는 동네를 더 사랑하게 됐다. 내년 봄 나는 시즌입장권과 보랏빛 유니폼을 구입할 것이다. 그리고 외쳐야겠다. 수카바티 안양!

2024-11-18

2024년과 보통의 일상

2024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되돌아보면 참 여러 일이 있었고 일도, 주변 사람도, 환경도, 사는 곳도 참 빠르게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곁에 남아 좋은 영향을 주는 것들이 있어 올 해도 참 부지런히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배운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뜨개질이다. 뜨개질은 앞을 향해서만 나아간다는 점에서 달리기와 비슷하다. 달리기는 일정한 호흡과 함께 더 멀리, 더 빠르게 몸을 활용하여 나아가는 것이면, 뜨개질은 바늘과 실을 반복해서 통과하며 정신으로 집중해서 나아간다. 달리기가 온몸으로 하는 것이라면 뜨개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섬세하게 나아가는 일종의 정신 수련과도 같달까. 물론 달리기와 뜨개질이 크게 다른 점이 있는데, 앞으로 빠르게 뛰는 달리기와는 다르게 뜨개질은 다시 뒤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점이 있다. 안뜨기나 바깥뜨기만을 반복하는 대바늘 뜨기는 특별한 기법이 없어 단순하다. 쉬운 난이도 덕분에 뜨개를 처음 접할 때에 가장 먼저 배우는 기법 중 하나기도 하다. 단순히 반복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자칫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들기도 쉽다. 생각이 다른 길로 세는 순간 바늘은 기다렸다는 듯 엉뚱한 실의 구멍으로 들어가 버린다. 바늘코가 빠져 커다란 구멍이 생기거나 또는 패턴이 망가져 전체적인 편물의 모양에 흠이 나고 만다. 정갈하게 촘촘히 짜여있는 패턴에 흠 하나가 너무 잘 보일때의 스트레스란… 어느 때엔 화가 나서 씩씩거리게 되지만 그럴 땐 빨리 마음의 평화를 찾으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푸는 방법은 간단하다. 모조리 바늘에 걸린 실을 모두 빼어 그대로 쭉 풀면 된다. 어느 때엔 잘못 뜬 부분을 늦게 발견해서 한 두시간 뜬 결과물을 모조리 풀어야 할 때도 있다. 물론 실 특성마다 달라 풀자마자 끊어져 버리거나 눈에 띄게 상하는 실도 있어 되도록 실수는 안 하면 좋다. 다행히 두께가 어느 정도 있거나 비교적 튼튼한 실일 경우엔 어느 정도 부담을 덜고 풀 수 있다. 뜨개인들은 잘못 뜬 부분을 다시금 푸는 것을 ‘푸르시오 엔딩’이라고 하는데, 실수를 자책하는 시간에 어서 이 실패의 엔딩을 끝맺음하고 실을 다시금 모조리 풀으라는 뜻의 우스갯소리다. 푸르시오 엔딩이 유독 잦은 날은 화가 많이 나는 날이나 또는 과거의 사건에서 자꾸만 마음이 머물러 뜨개에 집중하지 못할 때다. 과거 내가 한 선택들로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결과들, 어쩔 수 없는 상황과 나의 실수로 멀어진 사람들, 과거와 내가 크게 달라진 부분 등등. 왜 자꾸만 과거를 떠올렸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앞자리가 바뀌는 나이, 그에 따른 책임감, 어른으로서의 일인분의 몫은 무엇인지, 내가 과연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아함에 뒤숭숭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괜시리 그 답을 자꾸만 과거에서 찾으려고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아직도 어른으로서의 의문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이젠 뜨던 편물에 구멍이 생겨도 조금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잔 실수로 구멍이 여기저기 얼룩덜룩 보이는 결과물일지라도 여전히 형태는 여전하고 가치 또한 그대로 유지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잔 실수가 보여도 조금 더 너그럽게 애정을 가지고 차분히 뜨개질을 하면서 겨울에 쓰일 유용한 물건들을 이것저것 많이 만들고 있다. 뜨개를 좋아하는 이유 중 또다른 하나는 단순 반복 행위는 오히려 자칫 지루한 삶을 견디게 해준다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는 것,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 간단한 아침식사를 꼭 하고, 주 2회 정도는 되도록 저녁 일곱시쯤 운동 하기, 주말엔 정해 놓은 공부를 한 시간 정도 하는 것 등등. 일상에 정해 놓은 반복되는 일들은 자칫 지루할지라도 일정한 손놀림으로 만들어내는 손뜨개처럼 소박하고 정직하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하루이지만 결국 무탈한 한 해가 되면서, 생의 지루함에서 조금 물러나 충직하게 살아가게끔 한다. 하루하루 또는 매해가 영화 속 주인공처럼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 거대한 사건이나 이벤트가 생기지 않는 다소 심심한 일상이어도 그저 현재에 충실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딘가 심심하고 무언가 지루하지만 충실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뜨개질이 알려준 행복에 충실했던 올해가 빠른 속도로 가고 있다.

2024-11-18

대선 불복 넘어 사법 불복인가

김진국 고문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지난 금요일 선거법 위반 1심 재판 결과다. 집행유예라고 가벼운 처벌이 아니다. 선거법위반으로 징역형을 받으면 10년간,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받으면 5년간, 공직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공직선거법 제266조) 대법원에서 이대로 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가 앞으로 두 번의 대통령 선거와 두 번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현역 의원이 피선거권을 잃으면 의원직을 내놓아야 한다. (국회법 제136조 제2항) 이 대표가 국회의원직도 잃게 된다는 뜻이다. 또 당선무효의 형이 확정되면, 그 사람이 선거 때 보전받은 비용을 모두 국고에 반납해야 한다. (공직선거법 제265조의2 제1항)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은 434억 원을 보전받았다. 이 대표가 못 내면 민주당이 물어내야 한다. 징역형은 대부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여권도 마찬가지다. 여당 의원이 100만 원 이하 벌금을 예측해 비난받기도 했다. 터무니없는 형량일까. 아니다. 허위 사실 공표는 엄중하게 처벌해 왔다. 국민의 선택을 방해하고, 민주주의의 기초인 선거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제1야당의 대표이니 봐주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관측이 퍼져 있었다. 정치권에 불러올 엄청난 파장이 부담스러울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우리는 정치를 욕한다. 해마다 신뢰도 조사를 하면 언제나 정치 분야가 꼴찌다. 욕을 하면서도 정치인에 대한 특별 대우는 묵인한다. 정치인을 보는 자세가 ‘팬덤’으로 변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기준이 너무 감정적이다. ‘내로남불’이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은 무엇을 해도 응원한다. 음주 운전을 한 연예인을 두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빠’(문 전 대통령 극렬 지지자들)만 ‘우리이니(문재인 전 대통령)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외치는 게 아니다. 법을 만든 국회의원이 법을 조롱하면 그 법을 누가 지키나. 지지 정치인을 무조건 응원하는 유권자도 책임이다. 민주당 김동아 의원은 대장동 사건 변호를 하고 벼락 공천받았다. 그는 선거 직후 “4·10 총선 전날 이 대표를 굳이 재판에 불러 세워 놓은 것이 이번 총선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라며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민주적’이라는 말만 붙였지,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사법부까지 좌지우지하겠다는 말이다. ‘민주적 통제’가 아니라 ‘민주당 독재’다. 민주주의가 건강해지려면 정치권력이 사법 권력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사법 권력이 정치권력을 견제해야 한다. 민주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부패다. 그냥 두면 돈과 자리를 나눠 먹는다. 어느 나라에서나 다나카 총리, 닉슨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사람을 구속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무지막지한 정치권력을 견제할 마지막 보루가 사법부다. 이 대표에 대한 1심 판결을 두고 ‘정치의 사법화’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로 풀 것을 사법부로 떠넘기는 걸 의미한다. 대화와 타협으로 정치권 내에서 풀어야 할 것을 재판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승자와 패자로 가르는 것은 최악의 정치다. 불법행위를 사법부가 심판하는 것과는 다르다. 불법행위를 사법부가 아닌 정치권이 어물쩍 처리하는 것은 ‘사법의 정치화’다. 정치의 ‘사법 방해’다. 무법 사회를 만든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주말 광화문 광장에서 “이재명은 죽지 않는다”라고 외쳤다. “손가락 하나라도 놀리고, 전화라도 한 통 하고, 댓글이라도 쓰고…” “손을 잡고 싸우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의 변호사들에게 공천을 줘 민주당을 로펌처럼 만들었다. 모든 당력을 방탄에 모았다. 재판을 지연하고, 위증했다. 수사 검사를 탄핵하고, 검찰 예산을 깎았다. 이제 법원과 판사를 협박한다. 대선 불복을 넘어 재판 불복이다. ‘사법의 민주적 통제’가 이런 건가. 정치가 사법을 쥐고 흔들면 사악한 정치인만 살아남는다. 정치의 사법 방해를 방치하면 불법과 사기가 지배한다. 정치의 사법화는 우둔하지만, 정치의 사법 통제는 훨씬 더 위험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1-17

도로망 확충 전력투구 ‘육지의 섬’ 오명 벗는다

오도창영양군수 지금 영양군은 ‘육지속의 섬’이란 오명을 벗어나 희망찬 변화 행복한 영양으로 도약하기 위해 고속도로 건설과 국도·지방도 확장 등 도로망 구축에 전력투구 중이다. 영양군은 지역만이 가진 특색을 살린 생태관광과 문화적인 발전, 정주여건 개선으로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꾀하고 있지만 처참한 교통망은 오지 중에 오지, ‘육지 속의 섬’이라는 오명을 남겨주고 있다. 주민들의 위한 다양한 정책과 복지 향상으로 삶의 질은 높아졌다지만 4차로 없는 지자체, 고속도로와 철도가 없는 낙후 지역이란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군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결국 남북 9축 고속도로 개통과 지역을 오가는 국도·지방도의 개량이 절실하다. 교통의 편의와 삶의 윤택함은 비례한다. 교통망이 갖춰지면 생존을 위협받는 노령의 환자를 위한 의료공백 해소는 물론 불편한 접근성으로 방문을 꺼렸던 관광객들의 발길도 이끌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국가의 혈관인 도로망 구축과 빠른 이동은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요소들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촉매제로 국가가 지향하는 지역균형개발의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경북과 강원도 지역의 10개 시군이 ‘남북9축 고속도로’의 조기 건설을 위한 행동에 돌입했다. 남북9축 고속도로 추진협의회(회장 박현국)는 조선시대 만인소를 모티브로 지난 7월부터 각 시군 주민 1000명 이상씩 총 1만3800여명의 서명을 받아 지난달 22일 정부에 청원서와 함께 제출했다. 남북9축 고속도로는 양구∼인제∼홍천∼평창∼정선∼영월∼봉화∼영양∼청송∼영천 등 강원도와 경북도를 잇는 309.5㎞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총사업비만 14조8천870억원이 소요된다. 이 사업은 국토종합계획과 고속도로 건설계획 등 관련 국가 계획에는 반영돼 있었다. 그러나 장래 추진으로 분류돼 수십년째 진척이 없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1970년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는 전국을 1일 생활권으로 묶으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다. 호남고속도로는 농산물의 생산과 유통, 수도권 연결을 통한 호남지역 균형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또 88고속도로는 영·호남 교류의 시대를 여는 주역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고속도로가 지역개발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고속도로가 개발되는 지역마다 경제와 문화, 관광 등 산업전반에 걸쳐 눈부신 발전을 이룰 때, 고속도로 없는 강원과 경북은 급속한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아직도 오지와 두메산골로 불리는 영양군이 도시민들에게는 정감 있게 들릴지 모르지만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낙후지역이자 소멸지역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주민들은 지역의 발전이 곧 대한민국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지방시대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오지의 도로 교통망 개선은 필수적인 사안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고속도로 건설만이 이러한 불균형과 부작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고 있으며 실례로 2016년 12월 상주∼영덕 고속도로가 개통되자 15만명이던 동해안 관광객이 개통 1년 만에 33만명이 몰리는 등 2배 이상 급증한 사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 정부의 지역 균형발전에 대한 확고한 의지로 남북9축 고속도로가 준공되면 한강의 기적을 이은 지방시대의 기적을 이뤄낼 것이라며 조속한 추진을 기대하고 있다. 이에 영양군은 지역을 오가는 국도와 지방도 확장과 선형개량 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영양군을 편리하게 오갈 수 있는 외부와의 연결 도로망 구축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에 국도 31호선 확장 공사, 지방도 920호선 도로개설 및 도로 확장 공사, 자라목재 터널건설공사 등을 추진했다. 지역 교통의 편의를 위해 영양전통시장에서 산촌문화누림터 간 연계도로와 군도 14건 및 농어촌도로 13건 등 관내 도로망을 구축해 군민들의 불편함을 해결하는데 나섰으며 주민들의 발인 버스와 행복택시도 확대했다. 영양군은 ‘내륙의 섬’ ‘교통 3무(철도, 고속도로, 4차로) 지역’으로 불릴 만큼 교통 여건이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인구소멸 위기 극복과 미래 세대에 체념이 아닌 희망을 주는 일이라면 언제든, 어느 곳이든, 누구든 만나서 남북9축 고속도로 조기 건설의 당위성을 피력하고 건의할 것이다. 지역의 활력을 되찾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가며 전 국민이 찾고 싶은 지방정원 조성, 기후변화 대응 농업대전환, 외국인 계절 근로자 유치 확대, 건강·노인복지 증진, 군민의 안전과 편리를 보장하는 생활 SOC 확대 등 다양한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낼 것이다. 희망찬 영양을 목표로 행복한 변화를 거듭하는 영양군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2024-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