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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민심과 업고 가려는 노력이 없었다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기자회견후 여론이 더 안 좋아졌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17%로 한 주 사이에 2% 떨어졌다. 기자회견 전에 조사한 것인데도 그렇다. 실제로 듣는 여론은 더 나쁘다. 당장 보수 언론들조차 모두 윤 대통령의 인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기자회견 다음 날 중앙일보는 1면 머리기사에 “윤 대통령 ‘어찌 됐든’ 사과”라는 냉소적 제목을 달았다. 조선일보가 “저와 아내 처신 올바르지 못해 사과드린다”라고 가장 우호적으로 붙였다. 그런 조선일보의 양상훈 주필도 칼럼에서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이 좀 더 많은 듯하다”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의 회견에는 ‘억울하다’는 감정이 가득하다. 그는 “침소봉대는 기본이고 없는 것까지 만들어 제 처를 많이 악마화” 한다며 “본인도 억울함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 휴대폰에 온 문자에 답하느라 밤을 새운 부인에게 “미쳤냐”라고 말했다는 대목이나 “순진한 면이 있다”는 답변에서는 애잔함이 배어있다. 이게 무슨 잘못이냐는 항변으로 들린다. 끝부분에서 “무엇을 사과한다는 말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면 답하겠다”라고 버럭 화를 냈다. 국민의 분노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왜 이런 간극이 생기는 걸까.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가 육영수 여사처럼 대통령을 도운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국민은 다르다. 공동통치자, 심하게는 대통령보다 더 위에서 인사와 정책을 흔들었다고 의심한다. 김 여사는 전화 녹취에서 “멍청해도 말을 잘 들으니까 내가 데리고 살지”라며 국정을 자신이 주무르는 듯한 말을 쏟아냈다. ‘김건희 라인’ 행정관이 수석비서관의 말도 무시하고, 공적 위계질서를 파괴한다고 걱정한다. 최근 주요 공직에 대통령이 내정한 사람을 제치고 뒤늦게 김 여사가 추천한 인사가 차지했다는 소문까지 나온다. 한국일보 한희원 논설위원이 “우리는 김건희 여사를 뽑지 않았다”라며 날을 세운 이유다. 물론 대통령제 국가에서 영부인의 역할에 대해 논란이 많다. 존 로버츠 2세는 ‘위대한 퍼스트레이디 끔찍한 퍼스트레이디’라는 책에서 “백악관의 여성들은 국가의 대소사와 선거, 대통령의 인사정책에서 항상 분명한 힘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라며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던 퍼스트레이디들조차 어느 정도의 정치적 개입을 했다”라고 말했다. 내조형이었던 낸시 레이건의 부속실장 제임스 로즈부시는 “퍼스트레이디는 대통령의 정치적 파트너”라며 “대통령직 수행은 두 사람의 직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는 김정숙 여사의 타지마할 방문을 “우리나라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라고 미화했다. 관광 논란도 있지만 어쨌든 영부인이 ‘단독 외교’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역할 범위가 넓다는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는 7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대통령보다 자신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각에) 기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권 인수 과정에 매우 깊게 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부자처럼 정치적 역할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기 때는 딸 이방카와 사위가 공개적으로 활동했다. 그렇다고 “선출되지 않은 아들과 딸이 왜 설치느냐”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윤 대통령이 억울해하는 것도 한편 이해가 된다. 그는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도와서 선거도 좀 잘 치르고 국정도 남들한테 욕 안 얻어먹고 원만하게 잘 하길 바라는 그런 일들을 국정농단이라고 한다면 그건 국어사전을 다시 정리해야 할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여사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한국 국민이 용납할 범위를 넘어섰다. 역할을 넓히려면 민심부터 얻어야 한다. 믿음이 있으면 일을 할수록 칭찬받는다. 미국에서도 영부인 역할 기준은 고무줄이다.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천공’이네 ‘미륵’이네…수준 미달인 사람을 가까이하고, 풍수를 따져 집무실을 옮기고…. 이런 소문부터 국민을 참담하게 만든다. 그런 의심을 풀어주지 못하면 영부인의 역할을 완전히 접어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1-10

일론 머스크가 그리는 세상

우정구 논설위원 전기차 테슬라의 최고 경영자이자 트럼프 대통령 후보의 적극 지지자인 일론 머스크가 새삼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 1위 부자인 그의 재산은 약 2500억 달러(한화 336조원)다. 재산의 상당 부분은 테슬라 주식이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알려지던 날 테슬라 주식이 폭등하면서 그의 재산은 하루 만에 55억 달러(7조6000억원)가 올랐다. 언론은 그를 트럼프 재집권의 최대 수혜자, 킹메이커, 미 대선 최종 승자라 표현했다. 트럼프 정부가 머스크를 채용하는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그는 경영자로서 승부사라는 별명을 일찍부터 가지고 다녔다. 자신의 회사를 위해선 도박과도 같은 과감한 결단을 스스럼없이 내리는 그를 두고 몰빵 신이라고도 불렀다.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정착한 그는 어릴적부터 컴퓨터 게임에 관심이 많아 12살 때는 자신이 만든 슈팅 게임기를 게임잡지에 실어 판매도 했다. 그가 최고의 혁신가로서 호평을 받는 이유는 뛰어난 기술력과 식견을 먼저 꼽는다. 또 디자인 감각이나 중독에 가까운 일에 대한 성실함, 현장 중심의 경영도 이유라 한다. 그리고 그의 미래지향적 비전과 도전정신은 기업을 세계 최고로 키운 비결이라 주변에선 평가한다. 경제성이 없다는 전기차를 상업화하는 데 성공했고, 지금은 우주탐사, 인공지능, 에너지산업에까지 새로운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특히 그가 도전하고 있는 우주탐사는 인류가 새로운 행성에 세상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트럼프 당선과 함께 머스크가 그려갈 새로운 세상에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1-10

아침 안개를 보면서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아침마다 안개가 짙게 내리는 시절이 왔다. 해마다 11월이면 청도 화양에는 지척(咫尺)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가 내리곤 한다. 날이 많이 차거나, 바람이 몹시 불거나, 일교차가 아주 적거나 하는 일이 있다면 모를까, 안개는 예외 없이 날마다 두툼한 얼굴을 내민다. 안개 속에서 모든 것은 짙은 차폐(遮蔽)의 장막 속으로 숨거나 사라져버린다. 안개를 오래도록 묵상한 시기는 대구 금호강 안심 습지(濕地) 부근에 살았을 때였다. 겨울 아침마다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안개가 찾아왔다. 일출과 무관하게 이어지는, 안개가 지배하는 시공간에서 무기력하게 금호강을 내려다보며 깊은 상념에 잠기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안개에 관한 짧은 명상’이라는 시를 써야만 했다. 2부로 나누어진 시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썼다. “모든 떠나간 것들은 언젠가 그 자리로 반드시 회귀할 것을 나는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날마다 찾아오던 안개가 사라져버린 황량한 금호강 풍경을 떠올리면서 나는 안개가 속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안개가 사라진 금호강 습지의 철모르는 오리무리를 보면서 느꼈을 허허로움이 지금도 감촉되는 듯하다. 그저께 아침에도 화양(華陽)에는 짙은 안개가 찾아와 오전 10시 42분이 되어서야 천공의 태양이 빛나는 얼굴을 내밀었다. 붉은 해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모든 것은 어둠의 장막 아래 침전한다. 안개의 그늘, 어둠의 심연 속에서 혹자는 평안하고, 누군가는 당혹스러워한다. 사람은 혼란을 기꺼워하는 이와 혼란에서 고통을 느끼는 자로 나뉘기 때문이다. 안개의 본질 가운데 하나는 어둠과 혼돈이지만, 다른 본질은 안개는 언젠가 반드시 사라진다는 것이다. ‘금강경 사구게(四句偈)’에 나오는 ‘몽환포영(夢幻泡影)’ 같은 것이다. 그렇다, 안개는 꿈과 환상, 물거품과 그림자처럼 시나브로 사라져버린다. 안개를 데려가는 것은 태양과 바람이다. 그것들로 인해 안개는 스르륵, 소리 없이 불귀의 객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안개 속의 풍경’(1988)은 안개로 시작하여 안개로 끝나는 안개 영화의 전범이다. 12살 소녀 불라와 다섯 살짜리 남동생 알렉산더가 아버지가 있다는 ‘게르마니아’로 길을 떠나는 영화 ‘안개 속의 풍경’. 그들이 여로(旅路)에서 마주치는 세상의 인간들과 풍경과 내면세계를 느려터진 사진기로 잡아내는 앙겔로풀로스. 지독하게 막연한 행로 첫머리에서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태초에 어둠이 있었다.” 도대체 그들의 아버지는 실제로 있는 것일까, 있다면 도이칠란트 어디에 있단 말인가! 여리고 어린 남매는 어떻게 아버지를 찾아갈 수 있단 말인가! 남성 어른들이 뿜어내는 무한폭력과 그것에 무너져가는 남매의 모습이 안개 속에서 고요하게 숨 쉬고 있을 뿐이다. 영화 말미에서 남매는 속삭인다. “태초에 어둠이 있었 다. 그리고 빛이 있었다.” 앙겔로풀로스는 빛과 어둠으로 점철된 그리스 현대사를 이것으로 드러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어둠(안개)을 거두는 빛을 찾아 떠나온 남매를 비추는 찬란한 빛! 어둠은 빛을 끝내 이기지 못한다!

2024-11-10

영주 시민들이 진정한 리더!

박남서 영주시장 지방자치 시대가 개막한 후 각 지자체들은 잘사는 고장, 미래가 있는 고장을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국의 240여개 지자체들은 현재에 국한되지 않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미래세대에 대한 지향점을 두고 경쟁력 있는 도시 조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성공한 지자체에는 특별한 리더가 있다는 말이 있다. 리더는 바로 지역의 주민들이다. 지역민들의 애향심, 미래를 위한 관심과 투자, 함께 나누는 사회 분위기 조성 등 다양한 부분에서의 노력이 미래 지역사회의 발전 방향을 이끌게 된다. 이런 부분에서 영주시민들은 진정한 리더라 할수 있다. 영주시가 미래 먹거리를 위해 시민들과 함께 염원하고 기대했던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승인과 영주댐 준공은 지역민들의 깊은 관심과 함께 노력한 결과물이다. 시민들의 자발적 관심과 참여, 지역에 대한 애정과 행정에 대한 믿음과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주시민들은 진정한 리더이다. 도시 발전에는 경제 활성화가 중요한 부분이다. 과거에는 정부 중심의 경제구조였다면 현대에는 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다. 지자체의 발전은 기업의 유치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고품격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많은 기업의 유치가 있어야만 지역 경제가 돌아간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국가첨단베어링산업단지다. 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은 계획에 따라 추진중이다. 산단 입주 기업유치를 위해 현지 방문 및 홍보물 배포, 다양한 행정지원 대책방안을 마련해 놓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 기업이 선호하는 도시, 투자를 위해 찾아오는 도시,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기업지원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영주댐 수변 지역에 대한 활용도를 높이고 특화된 관광산업화를 위해 영주호개발과를 신설해 새로운 트렌드의 관광수요 창출에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역 산업화와 관광산업화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들이 있다. 인구감소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중소도시의 현실은 미래 발전방향 지표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영주시는 국토부가 추진한 공모사업에서 지역활력타운사업이 선정돼 지역 발전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국가산단과 영주댐 건설에 따른 인구 유입 가능성이 높아진 시점에서 이를 수용하고 MZ세대가 원하고 녹아들 수 있는 주거환경과 주변 시설의 확충에 방점을 두고 시는 지역활력타운사업에 전력하고 있다. 최근 영주역에서 남부육거리 구간에 공정률 80%를 보이며 공사가 한창인 도시재생 사업은 역세권의 상권 부양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조성하고 있다. 또 중앙선철도 복선화사업의 일환으로 공사가 완료된 역세권 개발사업은 도시재생 사업과 맞물려 영주시의 대표적 관문인 영주역 인근 지역은 새로운 면모를 갖춰나가고 있다. 이같은 사업은 한데 맞물리며 영주시가 한층 더 발전하기 위한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다. 우리 시는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재된 부석사, 소수서원을 비롯해 천혜의 경관을 갖춘 소백산,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등 다양한 문화유산과 자연을 보유한 고장이다. 현대인들은 도심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디자인이 아름다운 녹색 도시로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현대인들이 원하고 바라는 트랜드에 맞춰 영주시는 자연도시로서의 성장력을 함께 키워나갈 것이다. 우리 영주시는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 미래가 있는 도시, 생명력 있는 도시로서 누구나 오고 싶고 살고 싶은 도시를 목표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영주시는 미래가 있는 도시로의 성장을 위해 산업, 관광, 교육, 농업, 복지, 문화가 우리 생활속에 녹아들 수 있는 시민과 함께하는 행정을 펼쳐나갈 것이다. 영주시가 주민의 뜻을 살린 행정을 구현하는 것은 지방자치시대의 기본적인 이념을 따르고 이곳 영주에서 생활하고 삶을 이어가는 근본이 바로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영주시는 앞으로도 후세에게 물려 줄 미래가 있는 영주, 시민이 중심되는 영주, 누구나 오고 살고 싶은 영주 건설을 위해 진정한 지역의 리더인 시민의 뜻과 생각을 반영한 행정을 구현에 나갈 것이다.

2024-11-10

어머니의 손. 어린 시절 엄마의 손에는 늘 상처가 있었다. 밴드도 붙이지 않은 손가락에는 곳곳이 칼에 베어 살들이 벌어져 있었다. 엄마는 피가 마르지 않은 손으로 빨래도 척척 해내고 설거지도 후다닥 해치웠다. 그 손이 아플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엄마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인 나의 아버지가 아팠다. 어린 자녀들을 두고 아픈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엄마는 젊은 나이에 시장에서 회를 팔았다. 회를 뜨는 일은 경험이 없는 엄마에게는 생소한 일이었다. 회를 뜨는 칼에 생선살과 함께 자신의 살도 베는 일이 많았다. 그 상처는 보이지 않는 가슴의 상처와는 비할 수가 없었다. 살아 내어야 한다는 강한 의지는 아버지도 살려냈다. 아버지는 엄마의 억척스러운 손으로 인해 새로운 생명을 찾았다. 엄마 손에 가락지만 주렁주렁 달아 주겠다던 아버지의 약속은 금이 간 지 오래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겠다던 다짐은 온데간데없다. 엄마의 손은 눈물로 젖어 불어 있었다. 건강을 찾은 아버지는 엄마의 삶을 보상해 줄줄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겉돌았고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우리를 돌보지도 않았다. 일에 지친 엄마는 가끔씩 악을 썼다. 엄마는 일생을 젖은 손으로 우리를 공부시켰고 결혼도 시켰다. 일흔이 넘어서야 물에서 손을 떠나보냈다. 우리들이 엄마가 되고 나니 이따금 마음의 말을 내어 놓는다. 손 한 번 잡고 살려줘서 고맙고, 고생 시켜 미안 하다는 말 한 마디만 해 주면 고생 한 거 다 잊을 것 같다며 야속한 아버지를 탓했다. 몇일 전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침대에서 떨어져 꼼짝을 못한다며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왔다고 했다. 누워 있던 엄마의 다리는 미이라 같았다. 왼쪽 발에서부터 골반까지 하얀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엄마는 일어나 앉지도, 옆으로 돌아눕지도 못했다. 자신의 다리를 혼자서 굽히지도, 들지도, 펴지도 못했다. 수술을 할 때까지 그저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서 떨어져 고관절이 산산 조각이 났다. 당장 수술을 해야 했지만 심장이 좋지 않은 엄마는 늘 아스피린을 복용했다.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누워서 죽만 받아먹고 물도 빨대에 꽂아 먹이고 양치도 누운 상태에서 했다. 소변 줄을 달고 큰 볼일도 기저귀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엄마는 볼일이 힘들어 거의 곡기를 끊었다, 김경아 작가 엄마의 손은 허물 벗은 뱀 껍질처럼 물기하나 없었다. 거죽만 남은 엄마의 손을 닦이고 로션을 발랐다. 엄마의 손은 이불에 닿을 때마다 까슬까슬 소리가 났다. 거칠었다. 가정을 위해, 어린 자식을 위해 ‘여자의 손’을 포기 하고 선택한 ‘엄마의 손’이었다. 수술 전 날 가족들이 다 모였다. 집에서 걱정만 하던 아버지도 오셨다. 청각 장애가 있는 아버지는 조용한 장소에서는 의사소통이 힘들다. 아버지는 그저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옛 세대들이 그렇듯 힘들어 하는 엄마 앞에서도 무덤덤해 보였다. 저녁이 되었지만 아버지는 집으로 가지 못하고 발지도만 그렸다. 겨우 일어나 나가던 아버지는 자꾸 엄마 쪽을 보았다. 문을 열고 나가려다 돌아서서 성큼성큼 엄마에게로 왔다. 갑자기 이불 속에 있는 엄마 손을 꺼내더니 덥석 잡았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마이 무라. 손이 이게 뭐고. 다 말라 비틀어졌다. 마이무래이” 아버지 두 손 안에 엄마 손 하나를 감싸 잡았다. 앉아 있는 내내 하고 싶었던 마음의 말을 입으로 삼키다가 돌아서서 한 마디 하고는 다시 돌아섰다. 엄마 눈에는 왜 눈물이 고였을까. 엄마는 수술로 인해 아프고 불편한 다리를 가졌지만 평생을 삭혀둔 가슴의 상처가 치유 된 듯하다. 아버지의 말대로 엄마는 많이 드시고 손에 조금씩 살이 차올랐다. 수많은 손들이 있지만 자식을 향한 수만 가지의 사랑과 정성이 들어 있는 세상의 어머니들 손은 아름답다. 아팠던 손 안에서 상처가 꽃이 되어 삶의 꽃이 피어났다.

2024-11-10

속도 관리의 중요성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기업의 성과를 견인하는 것은 리더에게 부여된 매우 중요한 미션이다. 그래서인지 서점가에는 리더가 갖춰야 할 지침서 격인 서적들이 넘쳐나고 있다. 또한 콘퍼런스다 강연이다 하여 훌륭한 강사들이 연일 교훈적인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인덕을 갖춰라’ ‘MZ 세대는 이렇게 소통해라’ 같은 뻔하면서 현장성 떨어지는 소리는 책을 덮게 만들고 강의실을 나서는 순간 휘발되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교훈이 감성은 두드려도 성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통이나 공감 능력도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지금의 시기에 매우 중요함에 틀림이 없으나, 성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존경받는 리더로 남을 가능성은 낮다. 성과가 곧 리더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가 제품의 가격보다 커야 하는 것이 전통적 생존 방법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기술력으로 세상에 가치를 더하고 인류에 효용을 제공하는 역할이 지속가능 기업의 생존 방정식이다. 서양에서 고래잡이 포경을 하던 주요 이유는 고래 고기가 아니라 양초를 얻기 위해 고래의 두터운 지방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수십 년 동안 번성했던 포경의 황금시대를 종식시키고 고래를 살려 환경 파괴를 막은 것은 인간의 동물에 대한 인류애적 인식의 변화가 아니라, 인류가 사용하지 못하던 원유를 정제해서 연료로 바꾸어준 정유 기술 덕분이다. 존 록펠러가 세운 스탠더드 오일에서 생산된 석유가 값싸게 공급되면서 촛불은 가정에서 빠르게 사라졌으며, 그 자리를 호롱불이 대신하면서 기술로 세상에 가치를 더하는 기업의 역할이 새롭게 정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인류를 구원할 아무리 훌륭한 기술도 값싸게 공급할 수 없다면 지속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든다. 상품의 시장 지속력을 결정하는 가격이나 기술력은 속도가 핵심 요소이다. 그래서 리더의 능력은 속도 관리에 있다. 상품 개발 단계부터 완성까지 소요되는 속도,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리딩 하여 성과를 내기까지의 속도, 계획된 생산량을 불량 없이 완성하는 속도가 리더의 성과 지표이다. 방향성도 중요한 항목이긴 하나 속도가 결여된 방향성은 희망고문일 뿐이며, 속도는 신속한 방향 수정을 통해 만회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제공한다. 속도는 성과를 시간으로 나눈 값으로 정의할 수 있다. 기업의 리더는 관리범위에 있는 일의 속도를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정지해 있거나 속도가 떨어지면 사람이나 설비 또는 표준화된 방법에 문제가 발생된 것임을 알고 대책을 신속히 입안해야 한다. 1시간에 10개를 생산하던 속도가 5개 생산으로 느려졌다면, 실제로는 30분 동안 설비가 정지했다는 인식을 하고 즉시 근원적 원인을 찾아야 한다. 생산 속도는 느려졌으나 전력 등 제반 비용은 그대로 공급되고 있을 테니 상품을 만드는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높은 가격은 시장이 외면하여 이익은 소멸되고 기업은 경쟁에서 밀려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프리미어 리그에 열광하는 것도 선수들이 보여주는 속도에 있고, 90분은 어느 리그에서나 똑같이 흘러가지만 속도는 다르다는 것을 직시해야 하는 이유이다.

2024-11-10

공자가 정명을 말한 뜻은

유영희 작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그 여러 사건의 한 축에 있는 인물이 명태균이다. 그는 자신이 여론을 조작하여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든지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을 의심할 만한 내용들을 폭로하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그는 부부와 대화한 내용을 폭로하며 이슈몰이를 하다가 지난 8일 8시간에 검찰 조사를 받고 나왔다. 검찰에서 나오면서 그는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전제 군주 시대에는 권력이 군주에게서 나오고, 군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사람이 십상시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에게서 권력이 나온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거짓 뉴스, 허위 보도, 그리고 허위보도를 퍼나르는 패널들이 우리 사회의 십상시다. 언론은 국민에게 좋은 안경을 끼워줘야 한다. 뉴스토마토와 강혜경은 거짓의 산이다. 조사하면 그 거짓의 산은 무너질 것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명태균이 기자들에게 한 말을 듣자니, 공자가 정명이 생각난다. ‘정명’은 ‘논어’ ‘안연’ 편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만일 위나라의 왕이 선생님을 맞이하여 정치를 맡긴다면, 무엇부터 하시렵니까?”라는 물음에 공자는 바로 “반드시 먼저 이름을 실제와 맞게 하겠다.”고 하였다. 공자가 이름을 실제와 맞게 하겠다고 말한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아 백성이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이름이 실제와 맞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고, 말이 통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예악이 흥하지 못하고 예악이 흥하지 못하면 형벌이 적당하지 못하고 형벌이 적당하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다.” 여기서 예악은 기본 상식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 일이 진행이 안 되면 상식이 무너지고, 형벌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게 되며, 그러면 국민은 어떤 일로 벌을 받을지 전전긍긍하여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명태균의 말대로 우리 사회 체제는 민주주의이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그래서 국민이 대통령을 뽑은 것이고, 임기 동안 국민의 권력을 대통령에게 위임한 것이다. 그러니 현실에서 권력은 대통령에게서 나온다. 위임한 권력이 제기능을 못할 때 비판하는 것은 주권을 가진 국민의 권리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이름에 걸맞는 실제이다. 명태균은 언론을 십상시라고 하지만, 언론과 국민의 관계가 권력자와 권력자 측근의 관계라고 할 수 있는지도 매우 의문이다. 십상시는 중국 후한 말 제12대 황제 영제 때 황제 가까이에서 국정을 농락한 10여 명의 환관들을 말한다. 영제는 십상시의 대장인 장양을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여서, 그들은 황제의 후광을 업고 많은 땅을 차지하였으며 그들의 부모형제까지 권력이 대단했다. 이들은 주로 벼슬을 팔고 사는 매관매직으로 권력을 행사했다. 뉴스토마토의 영향력은 십상시가 누렸던 권세와는 전혀 다르다. 이름을 실제에 맞게 붙이는 것은 언어를 소통하게 하는 힘이니,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2024-11-10

드론 강국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달 18일 우크라이나군 최고의 드론 조종사 빅토르 스텔마흐가 29세 나이로 사망했다는 현지 보도가 나오면서 드론이 전장에서 얼마나 중요한 무기가 되고 있는지를 다시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군사력이 약한 우크라이나가 세계 최강의 러시아와 대등하게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배경에는 단연 드론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드론전에서는 사실상 최강자라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이날 사망한 빅토르는 최정예 드론 조종사다. 우크라이나 드론부대 창설멤버이며 드론 훈련을 주도한 인물이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전장에서 그는 러시아군 500명을 사살한 우크라이나 전쟁 영웅이다. 최근 우크라이나에서는 또 한명의 젊은이가 드론 영웅으로 화제를 모았다. 학창시절 공부는 안 하고 비디오 게임만 한다고 늘 핀잔받던 한 젊은이가 러시아군을 잡는 저격수로 등장했다는 뉴스가 소개됐다. 이처럼 우크라이나는 드론전에 익숙한 젊은세대가 많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미래전쟁은 드론전으로 갈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무인항공기 정도로 알았던 드론이 최첨단 장비를 장착하면서 이제는 전쟁의 양상을 바꿔가고 있다. 드론은 전쟁에서 정찰, 감시, 타격 등의 다양한 임무 활동을 동시에 수행한다. 저비용으로 적의 방어를 무력화하는 최고의 전력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다. 북한에서 보낸 드론이 서울 상공에 나타나면서 우리나라도 드론작전 사령부가 올해 창설됐다. 드론을 군사 전략화하는 신예부대다. 게임 등 디지털 문화가 세계에서 가장 능숙하다는 한국도 드론 강국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1-07

TK신공항, 제대로 가고 있는가?

박형수 국회의원(국민의힘 경북도당위원장/의성·청송·영덕·울진) TK신공항 건설 사업이 표류하고 있어 시·도민들의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구시가 지난 1년여 간 매달려온 SPC(민관공동개발 특수목적법인) 구성이 건설경기 침체 등으로 최종 무산됐다. 대구시는 이제와서 ‘기부대양여’라는 사업방식을 바꾸어 정부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아 사업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신공항의 화물터미널 위치 문제도 타협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화물터미널 위치에 대해 국토부, 국방부, 경북도, 의성군 간의 관계기관 실무협의체를 가동해 어렵게 실마리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이 의성군민들의 서측안 주장을 ‘이익집단의 억지와 떼쓰기’로 매도하며, 이전 대상지를 옮기는 ‘플랜B’를 추진하겠다고 언급해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관련 법률과 주민투표에 따라 결정되어 법률에 명시된 이전대상지를 대구시 임의로 변경하는 ‘플랜B’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경북도와 의성군이 주장하는 화물터미널 서측안은 민간투자로 조성될 항공물류단지와 항공정비산업단지의 확장성·경제성·효율성을 고려한 것이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당장의 비용과 군 작전성을 들어 동측안을 받아들일 것을 종용하고 있다. 동·서측안의 화물터미널 조성비용 문제에 대해서도 국토부와 경북도의 계산이 거의 2000억 가까이 차이가 나며, 양측은 서로 상대측이 제시한 위치가 경제성이 없다는 주장이어서 교차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리고 군작전성 문제는 국회와 국방부 간에 수차례 소통한 결과, 국방부(공군)는 ‘동측안이 작전여건상 유리하지만 서측안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 왔다. 이런 상황에서 느닷없는 대구시장의 ‘떼쓰기’, ‘플랜B’ 발언은 대구시의 SPC 미구성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들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사업표류의 책임 공방을 떠나 TK신공항 이전사업이 당초 왜 추진되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출발은 대구 시민들의 항공기 소음문제 해결과 후적지 개발을 통한 ‘대구 발전’을 위해 시작되었다. 경북도 역시 소음을 떠안고 군위군을 대구시에 떼주면서까지 공항유치에 나선 것은 ‘지역발전’을 위해서다. 그렇다면, 해결 방향은 자명하다. 신공항 건설은 대구와 경북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대구시 분석에 따르면, 사업방식에 따른 금융비용만 14조8000억원에서 3조1000억원까지로 추산된다. 이러한 천문학적 금액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당장의 1000억~2000억원의 화물터미널 건설 비용의 과다를 따지면서 갑론을박할 때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대구시와 경북도는 공적자금을 지원받든, SPC 구성을 공동으로 추진하든 신공항 이전을 위한 최적의 방안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화물터미널은 장래 항공물류 허브 공항으로 도약할 수 있는 확장성과 발전성이 있는 입지를 선택하여 국토부와 국방부, 기재부 등 관계부처 설득에 함께 나서서 대구경북의 상생발전을 이끌어야 한다.

2024-11-07

대왕고래의 꿈, 산유국(産油國)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지난 6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첫 국정 브리핑에서 “포항 앞바다에 막대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깜짝 발표’를 했었다. 물리탐사 결과 동해안 영일만에 석유가스전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아래, 세계적 기술팀에게 의뢰한 결과 매장량이 최고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있을 가능성을 보고받았다는 것이다. 매장량 1/4이 석유일 것이라는데 그 35억 배럴은 우리나라 연간 석유수입량이 약 10억 배럴이니 4년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이에 한국석유공사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시추 승인을 받아 12월 중순부터 포항 동쪽 50㎞ 떨어진 8광구와 6-1광구에서 시추하는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실시할 예정이다. 결과는 내년 상반기에 발표될 것이며 확률은 20%로 보고 있다. 매장이 확인되면 석유가스전을 개발하게 되는데 2028년까지 탐사 시추를 하고 2035년부터 상업 개발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석유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76년 1월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포항에 석유가 난다’며 작은 병에 든 석유를 마셨고 TV를 시청하던 사람들은 일어나 만세를 불렀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석유가 아니고 정제된 경유로 밝혀지면서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렸다. 만약 그때 석유가 나왔다면 막 철강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포항제철은 어떻게 될까? 하고 염려도 했었다. 3년 후 한국석유공사가 설립되고 대륙붕 탐사를 계속한 결과 1987년 심해 가스층을 발견하며 1~8광구를 설정하였으며, 그중 8광구는 최대 매장량이 있을 것으로 보아 바다에서 제일 큰 동물인 ‘대왕고래’라 명명했다고 한다. 앞으로 국력을 기울여 대왕고래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우리나라는 매장량 140억 배럴인 세계 15위권의 산유국이 되는 것이다. 사실 2002년 김대중 대통령 때 ‘동해-1’ 해양플랜트 기공식을 갖고 2년 후부터 천연가스를 생산하여 오다가 2021년에 중단하고 현재 시설을 철거 중이다. 포항의 옛 지명은 신라시대 때 퇴화현(退火縣)이라 했다. ‘불이 꺼졌다’는 뜻이니 아마 옛날부터 가스가 나와 불길이 치솟은 것은 아닌지? 포항 지역은 지하자원 매장 가능성이 높은 신생대 3기 지질이고 최근까지 철길공원의 ‘불의 정원’에는 가스가 타고 있었다. 작년 8월까지 15년간 탐사했던 호주의 석유개발 회사가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결론을 내렸다지만 더 발전된 방식으로 유전을 찾아내어 푸른 동해바다에 커다란 대왕고래가 헤엄치는 꿈을 이루듯 우리 기술로 거대한 해양플랜트를 세워서 지구 속 에너지를 퍼올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탄소중립 계획에 반대되는 일’이라면서 메탄가스 배출량이 크고 시추와 개발에 10년 이상 소요된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천연가스와 석유를 생산하는 에너지 부국으로 장밋빛 경제 효과를 가져오게 되면 ‘바다가 흥한다’는 흥해(興海)의 예언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포항은 최근 2차 전지와 바이오 산업에 이어 수소연료 특화단지를 구축하여 3관왕을 이루었으니 해양 석유개발이 현실화 되면 금상첨화이리라.

2024-11-07

들꽃 산책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들길은 꽃길이다. 철따라 온갖 풀꽃들이 피고 진다. 나는 날마다 그 꽃길을 걸어서 들을 한 바퀴 도는 산책을 한다. 들길 산책은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풀꽃을 만나는 기쁨을 빼놓을 수 없다. 꽃들은 언제나 나를 반겨 활짝 웃는 모습이다. 몰려든 군중들의 환호를 받는 유명인사의 기분이 어떤지는 몰라도, 풀꽃들의 환대를 받으며 들길을 걷는 것보다 더 좋을 것 같지는 않다. 이 고장은 기온이 온화한 편이어서 겨울에도 피는 풀꽃이 더러 있다. 개쑥갓이나 봄까치꽃은 혹한이 닥치면 잠시 움츠렸다가 조금만 기온이 올라도 무작정 꽃을 피운다. 물론 양지바른 둑길 밑을 눈여겨봐야 겨우 보이는 작고 희미한 꽃이다, 제철에 무리지어 화사하게 필 때도 좋지만, 삭풍을 맞으며 명주실오리 같은 겨울햇살을 부여잡고 간신히 피어있는 풀꽃이 더 뭉클한 감회로 다가온다. 크고 화려한 꽃보다 초라하고 가냘픈 겨울 풀꽃이 더 감격적인 것은 나뿐일까. 봄날엔 민들레가 이 들녘의 주인공이고 여름에는 개망초꽃,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미국쑥부쟁이가 주종을 이룬다. 가을이 깊어 추수가 끝나가는 들길에는 뚱딴지꽃과 왕고들빼기꽃이 눈길을 끈다. 돼지감자로도 불리는 뚱딴지는 해바라기과로 토양이 좋으면 3m까지도 자란다. 꽃은 작지만 해바라기를 닮았다. 이름이 뚱딴지인 것은 엉뚱하게도 땅속 덩이줄기가 감자를 닮아서 붙여진 거란다. 야생으로 많이 자라지만 당뇨 등에 약효가 있다고 재배를 하기도 한다. 푸른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높다랗게 피어 있는 샛노란 꽃은 가을의 정취를 자아낸다. 왕고들빼기 꽃이 지금 한창인 것은 여름 내 수시로 뜯어먹었기 때문이다. 왕고들빼기는 식용으로 용도가 다양하다. 봄에는 뿌리째 뽑아서 겉절이나 김치를 담기도 하고, 여름에는 순을 잘라서 생으로 쌈을 싸먹거나 데쳐서 무치거나 비빔밥에 넣으면 쌉싸름한 맛이 산나물 못지 않다. 잎이 자란 순을 자르면 얼마 안 가서 더 많은 순이 돋아나서 여름 내내 거듭해서 뜯어먹을 수가 있다. 연노랑 왕고들빼기꽃은 가을이 깊어갈수록 생기를 더해가는 쑥부쟁이에 비해 연약해 보이는데, 아기의 배냇저고리처럼 포근한 느낌을 준다. 물론 그밖에도 빼먹으면 섭섭해 할 들꽃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여뀌꽃이다. 꽃이 붉고 잎이 매운 여뀌를 엮어서 문설주에 매달아 두면 역귀(疫鬼)를 물리친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여뀌는 종류가 많은데, 그 중에서 붉은털여뀌와 흰여뀌가 가장 꽃이 탐스럽고 곱다. 이른 봄의 한 때를 장식하는 광대나물꽃과 흐린 날과 밤에만 피는 달맞이꽃, 메꽃, 달개비꽃도 들길에서 반갑게 만나는 친구들이다. 가을이 깊었다. 또 한해가 기운다. 올해도 나는 꽃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언제나 들꽃들이 반겨주어서 내 삶은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았다. 남은 가을은 쑥부쟁이가 동행을 할 것이고, 겨울이 오면 늦게 핀 개쑥갓의 배웅을 받으며 이 해를 넘어갈 것이다. 그러면 또 봄까치꽃이 또 마중을 나올 것이고. 내 생을 마치는 날, 나는 꽃길을 걸어서 한세상 지나왔노라고 말 하리라.

2024-11-07

트럼프 is back!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미국 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개표 초반부터 경합 주에서 트럼프가 선전하며 일찌감치 당선을 확정지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단순히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미국 대통령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우리나라에 주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8년 전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와 비교해 보면, 당시에는 트럼프라는 정치 신인이 어떤 정책을 어떻게 결정할 것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예측하기에 어려워 많은 이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였지만, 이번에는 지난 2017~2021년 간의 임기를 통해 차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예상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분야는 바로 국방 분야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가 미국우선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에도 주한미군 방위비 협상 등과 같은 부분에서 우리의 경제적, 군사적 부담이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에도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파행을 거듭하다가 결국 바이든 행정부에 이르러서야 타결되었던 경험이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0월 4일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을 타결하여 2026년부터 2030년까지 분담금 규모를 확정하였으나, 이에 대해 트럼프 후보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을 재협상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이 개시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의 가장 가까운 우방국으로 반세기 이상 역할을 해 온 미국에서 대통령이 먼저 이러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 일각에서는 독자 핵무기 개발 등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여전히 북한의 핵 위협이 존재하는 상황 가운데,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우리와 군사적으로 가장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미국이 우리나라 국방에 점차 발을 빼려는 모양새를 취하면, 우리나라도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취하거나 실제로 핵무기를 개발하지는 않더라도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핵무기가 국제사회에서 갖고 있는 상징성을 고려하지 않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핵무기는 그 자체로 살상력이나 파괴력으로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되기 때문에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더 이상 핵무기를 보유하거나 확대하지 말자는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여 핵에너지의 평화로운 사용에 합의하고 이행 중이다. 핵무기 개발을 주장하는 것은 북한 등과 같이 국제적 왕따를 자처하는 것으로 국가 안보의 선택지에 넣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순히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그만일까?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이고, 만일 우리가 그에 응하지 않는다면 여러 가지 형태로 경제적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트럼프는 후보 시절 외국에 일괄적으로 관세 10~20%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반도체, 자동차 등에서 對美 무역흑자를 거두고 있는 입장에서는 미국의 이러한 조치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서는 미국의 관세 정책을 실제로 실행할 경우 우리나라의 총수출액이 최대 448억 달러(약 61조 7000억 원)가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 대한 직접적 관세 부과에 따른 감소액이기도 하지만, 다른 국가로의 중간재 수출이 감소하는 효과도 고려한 데에 따른 예상이다. 김준협 RISTI 미래전략연구소 책임연구원 무역 분야뿐 아니라 트럼프 당선 이후 금리, 환율, 주가 등 금융 시장에 미칠 파급력에 대한 전망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관세를 인상함과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감세 정책을 본격화하고 불법 이민자 추방 등을 실행하게 되면 임금 상승 및 물가 상승이 촉발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연방준비제도에서는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를 낮추는 ‘빅컷’을 단행하며 기준금리 인하 기조로 접어들고 있어,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질 수도 있는 상황에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미동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있어 미국 대선 결과가 더욱 크게 와닿을 수 있겠지만, 우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유럽 국가들에게도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주는 의미가 크다. 트럼프 1기 시절 유럽에 방문하며 나토(NATO)에게 안보 무임승차에 대해 비난하며 나토 탈퇴까지 언급한 적이 있었다. 나토의 안보 우산 속에 있는 유럽 국가에게는 이러한 움직임에 큰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전 세계가 최소한 4년 동안은 각자도생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 우리 부모님 세대가 겪었던 ‘보릿고개’가 국가 차원에서 안보·경제 등의 분야에 찾아온 것이라고도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지혜롭게, 그리고 우리나라가 국가 차원에서 큰 손해를 입지 않는 앞으로의 4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24-11-06

휴가만족도 1위 도시 경주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황금의 천년왕국’으로 불렸던 신라의 유적과 유물이 도처에 산재했고, 거대한 왕릉과 고분이 우뚝 솟아 여행자를 놀라게 하며, 황리단길 곳곳에 자리한 맛집이 사람들의 미각을 자극하는 도시가 바로 경주다.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경주가 매력적인 관광지로 떠오른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휴가를 계획하는 이들 사이에선 제주도와 동해안의 인기를 넘어섰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최근 휴가지로서 경주가 지닌 위상을 확인해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9월 여행리서치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는 국내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1만7077명에게 여행지가 어디였는지, 그곳에 얼마나 만족했는지,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 결과 경주가 전국 54개 지자체 중 휴가지 만족도 1위를 차지했다. 경남 산청, 강원 평창, 전남 순천, 강원 고성 등의 도시가 뒤를 이었다. “경주는 볼거리는 물론 실용적인 기념품 구입이 가능하다는 것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안전과 치안, 청결과 위생 항목 평가에서도 점수가 높았다”는 게 조사기관의 부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휴가 패턴이 바뀌고 있다. 아무리 경치가 좋고 이름난 곳이라 해도 숙박업소와 음식점의 터무니없는 바가지요금과 상인들의 불친절, 지저분한 환경을 웃으며 넘어갈 관광객은 이제 없다. 관광은 21세기 유망산업으로 주목되며, 한국 대부분의 지자체가 여행자 유치에 골몰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야를 조금 넓혀보면 이는 한 도시의 흥망과도 연결된 문제다. 무엇이, 어떤 노력이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현명한 관광정책을 세우는 지자체들이 늘어가길 기대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11-06

왕과 대통령, 백성과 국민

장규열 고문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서기로 하였다. 소란스러운 정국을 설명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나설 터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우방 미국은 대선을 치른다. 새 대통령이 선출되면 대한민국과 어떤 관계를 이어갈 것인지도 사뭇 관심을 끈다. 조선이 무너진 후 짧았던 대한제국을 거쳐 일제강점기를 지나 그리 심도깊은 훈련없이 우리는 민주정체를 국체로 삼았다. 그래서였을까, 산업화의 귀한 발자취를 남기면서도 우리는 본격적인 민주화에는 더디 다가섰다. 아직껏 무르익었다 말하기 힘든 민주주의의 토대는 언제 든든하고 편안하게 설 것인지, 국민은 늘 목이 마르다. 왕과 대통령은 무엇이 다른가. 그 옛적 백성과 오늘의 국민은 같은가 다른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국민의 기대와 권리가 이따금씩 외면당하고 배반당할 적에 우리는 당혹스럽다. 조선의 백성은 왕정체제의 피지배층으로 왕권에 속하는 존재였지만, 오늘날 국민은 민주체제에서 국가의 주권자로서 독립적 권리와 책임을 가진다. 백성이 피동적 종속자였다면 국민은 능동적 주체자이다. 백성은 왕의 통치 아래 보호받으면서 세금을 내고 의무를 지며 나라의 정책과 정치적 결정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정부를 구성하고 정책과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칠 권리를 가진다. 법 앞에 평등하고 기본적 인권이 보장될 뿐 아니라 국가는 국민을 보호의 대상일 뿐 아니라 국가의 주체로 인식한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세습하여 권좌에 올랐던 옛적 왕의 권력은 유교이념과 천명사상으로 정당화되었다. 조정과 신하들의 자문과 조력을 받지만, 왕은 국가의 운영에 있어 무한한 최종결정권을 가졌다. 대통령은 국민이 선거를 통하여 선출하며, 권력은 국민의 선택과 민주주의 원칙에 기반한다. 대통령의 권력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제한되고 국민에 의해 위임된다. 행정부의 수반으로 정책을 결정하지만 입법부인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사법부인 법원의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 왕의 임기는 종신제였지만 대통령은 법에 따라 정해진 임기 동안에만 임무를 수행한다. 왕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다스리는 군주로 신성시되었지만, 대통령은 국민의 대리자로서 민주적인 권위를 가지지만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권위를 유지할 수 있다. 대통령의 권위는 헌법과 국민의 지지로부터 비롯한다. 국민을 향한 담화에 나서는 대통령은 국민 앞에 겸허해야 한다. 들려줄 메시지는 간결하고 분명해야 하며, 국민의 시선과 눈높이를 적절하게 헤아려 진솔하고 시의적절해야 한다. 정부에 실수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행정부 최고위 책임자로서 분명하게 시인하고 타당하게 고쳐 갈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다양한 의견을 가진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일상에 임할 수 있도록 균형있고 사려깊은 주제 선정과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다음 대통령으로 누가 선출되더라도 담대하고 자신있게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킬 대표성과 책임감이 우러나야 한다. 통치하는 왕이 아니라 대변하는 대통령으로 나서야 한다. 백성이 무서워하는 왕의 모습이 아니라, 국민을 두려워하는 대통령의 참모습을 기대한다.

2024-11-06

찹쌀새알미역국

정미영 수필가 어제부터 세찬 바람을 동반한 가을비가 내린다. 나무가 휘청거릴 정도로 바람이 불자, 그 결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낙엽 때문인지 거리가 온통 가을로 꽉 찬 느낌이다.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니 몸이 으슬으슬 춥고 떨린다. 갑자기 뜨거운 국물이 먹고 싶어 냉장고 속 음식 재료를 살펴본다. 냉동실에 얼려 둔 새알이 눈에 띄어 미역국을 끓이기로 마음을 정한다. 황태채와 불린 미역을 참기름에 볶는다. 물을 부어 한참을 뭉근하게 끓이면서 찹쌀로 빚은 새알과 들깨가루를 넉넉하게 넣는다. 나는 새알이 퍼지는 것을 선호하지 않기에 쫀득해졌다 싶을 때를 기다렸다가 가스레인지 불을 끈다. 알맞게 끓여진 국을 대접 한가득 담아낸다. 그런 뒤에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는다. 맛을 음미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친정어머니가 알려주신 대로 끓여보아도 매번 친정에서 먹던 그 진한 국물 맛은 아닌 것 같아, 왠지 야속하다. 친정어머니는 내가 감기에 걸리면 ‘찹쌀새알미역국’을 끓여주셨다. 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 먹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었다. 그러면 감기약을 먹지 않아도 몸이 낫는 것 같았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근심이 버무려져 음식에 담겼기 때문이리라. 나는 아직도 몸이 아프거나 입맛이 없을 때면 ‘엄마표’ 음식이 생각난다. 대학을 졸업한 큰아들이 있는 데도, 내 나이에 상관없이 친정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엄마, 하고 나지막하게 불러보면 결혼 전의 내가 떠오르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러면서 위로가 된다. 지난여름,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서문시장에 갔다. 나는 요즘 대형마트에 가면 온갖 생필품과 음식 재료가 많아 재래시장을 찾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래서인지 모처럼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면서 장터를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 했다. 내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동네 골목시장이 아닌 서문시장 정도의 큰 시장에 가야,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구경할 수 있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나 빨리 흘렀다니, 새삼스러웠다. 볼일을 마치고 나니, 점심시간이었다. 보리밥집으로 가서 등받이 없는 긴 벤치 모양의 의자에 앉았다. 자리가 나면 순서대로 앉아야 할 만큼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메뉴를 보던 친정어머니께서 새알미역국을 주문하셨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면서 친정어머니는 “너희 외할머니는 내가 기운이 없으면 찹쌀새알미역국을 끓여주셨는데.”라고 말씀 끝을 흐리셨다. 그 순간 내 가슴에 찌르르 전율이 흐르며 아렸다. 살면서 생활에 지치거나 힘이 드는 순간이면 나만 엄마가 필요한 줄 알았다. 그런데 팔순을 앞두고 있는 친정어머니께도 돌아가신 ‘엄마’가 필요한 모양이다. 엄마라는 낱말이 갖고 있는 대단한 힘인 것 같다. 실존하지 않는 분이라도 호명하자마자 당신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온몸의 감각 세포를 일깨우는 것임에랴. 예전에 친정어머니가 내 외할머니를 찾아뵈러 갈 때면 손수 미역국을 끓여주셨다고 했다. 국물에 들깨가루를 듬뿍 넣어 주셨다던 외할머니 손맛의 미역국! 첫아이를 유산하고 몸조리를 제대로 못한 채 일상 생활해야 했던 나의 어머니를 한평생 가엽게 여기셨던 외할머니셨다. 친정어머니가 몸져누울 때마다 “그때 미역국 한 그릇 제대로 못 먹어서 그렇제.”라고 안타까워하셨다. 그러면서 찹쌀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나면 근기가 있어 속이 든든하다고, 일부러 찹쌀로 새알을 빚어 미역국을 끓여주셨단다. 그래서인가. 친정어머니는 내가 삼 남매를 출산할 때마다 미역국은 잘 챙겨 먹었는지부터 물어보셨다. 외할머니와 친정어머니 그리고 나에게로 이어지는, 건강을 챙기라는 당부의 말씀이었다. 아프고 기운이 없을수록 끼니를 든든하게 챙겨먹어야 한다는, 당신들이 체득한 금언 속에는 찹쌀새알미역국이 포함된다. 그것은 우리 집에서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세대 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매개체다. 나는 찹쌀새알미역국을 먹을 때면 그분들의 사랑을 느낀다.

2024-11-06

발바닥 통증의 예방과 치료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발바닥에 오랜 시간 하중이 실리게 되면 발바닥 근막 쪽이 붓게 되고 염증이 생긴다. 특히 발뒷꿈치 바닥 쪽에 부하가 많이 실리게 되고 방치하게 되면 골극이 생기기도 한다. 골극이 생기면 영구적으로 그 부위가 압박이 되기 때문에 조금만 무리를 하게 되면 근막이 자극되어 붓고 염증이 생기게 된다. 실제 발바닥 통증으로 내원한 환자 중 일부는 골극이 생긴 환자들도 있다. 발바닥 통증이 생긴다면 골극이 생기기 전에 주변 한의원이나 병원을 찾아 빨리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 발바닥 통증은 심해지면 걷는 것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오랜 시간 서 있는 직업에서 많이 생기는 병인데 마트에서 서서 계산을 하는 직업을 가진 여성이 이 질환에 많이 걸린다. 한 자세로 서 있으면 걷는 것 보다 발뒷꿈치 바닥 쪽으로 몸을 지탱하는 시간이 월등히 길어져 부하가 가중된다. 또 여성들은 남성보다 근육이 작고 약하기 때문에 더 힘들게 일하는 남성들보다 빨리 근육이 피로해지고 염증이 생긴다. 다른 부위는 아프면 사용을 하지 않고 쉬게 둘 수 있으나 발바닥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또 잘 낫지 않는다. 이동을 하려면 무조건 걸어야 하고 서있어야 하는데 이런 일상생활 자체가 발바닥에 무리를 준다. 초음파로 아픈 발바닥을 멀쩡한 발바닥과 비교 확인해 보면 아픈 쪽의 발바닥 근막이 뼈에 부착하는 부분은 확연히 부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부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골극이 보이기도 한다. 근막이 부어 있는 상태에서 걸어다니니 다시 통증이 발생해 붓게 되고 염증이 생기는 악순환이 계속 된다. 일반적인 치료만으로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직접 그 부분을 보면서 약침액을 주입하는 초음파 가이딩 치료를 하는 것이 제일 효과적인 방법이다. 최근 맨발걷기의 유행으로 발바닥이 아파서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뒷꿈치 바닥뿐 만이 아니고 발가락쪽 바닥쪽이 아파서 온다. 보통은 2지나 3지쪽 바닥이 아프고 역시 잘 낫지 않는다. 맨발걷기를 이제 막 시작하는 초보자들은 신발이나 양말을 따로 준비해 발바닥 통증이 좀 심해진다 싶으면 바로 중단을 하는 것이 좋다. 장화같이 발바닥을 보호하는 쿠션이 없는 신발을 신고 일을 해도 발바닥 통증이 잘 발생을 하니 이런 신발을 신고 오래 일을 해야 한다면 휴지를 말아 쿠션역할을 할 수 있게 발바닥에 덧대는 것도 방법이다. 발바닥 통증은 한번 생기면 치료 없인 잘 낫지 않고 또 많이 걸어 다니면 낫지 않는다. 발바닥에 무리가 가는 걷기 관련 운동은 바로 그만두고 치료를 해야 하고 직업적으로 꼭 발바닥을 사용해야 한다면 발바닥에 휴지 같은 걸 넣어서 충격을 흡수하는 쿠션을 만들어 줘야 한다. 집에선 따뜻한 물에 종아리를 푹 담궈 풀어준 다음 종아리와 아킬레스건을 적당한 강도의 마사지로 풀어주고 발바닥도 적당한 강도로 꾹꾹 눌러 지압을 매일 해준다. 완치가 될 때까지 치료와 관리를 해야 한다. 치료와 생활 관리로 좋아졌다고 바로 무리를 하면 금방 재발을 하니 완치까지 신경을 쓰고 운동욕심은 줄여야 한다.

2024-11-06

나의 기울어진 독서벽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노벨상을 받은 한강의 열풍은 침체기의 늪에 빠진 우리 독서계를 순식간에 휘저었다. 서점가엔 그의 소설이 동이 나고 인쇄소에선 밤을 새워 그의 책들을 찍어내는데도 예약 없인 사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광풍 같은 열정은 정말 못말리겠다 싶은 생각도 하면서도 나 역시 그 대열에 끼지 않으면 왠지 애국자가 아닐 것 같았다. 바쁠 거 없어, 이 바람이 어지간히 숙지막하면 사야지 하면서도 괜히 조바심이 났다. 은퇴 후엔 책을 사지 않으리라는 강한 결심을 하고 주로 집 가까운 공공도서관에서 대출카드를 만들어 두고 책을 빌려보던 나였다. 도서관 검색을 해 봤더니 역시나 한강의 책들은 모조리 대출되었다. 예전 ‘채식주의자’를 미국의 지인에게 주고 온 것을 살짝 후회했다. 이정희 교수께서 세 권의 그의 책을 가지고 있다시길래 나중에 빌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남편이 종종 가기를 즐기는 경주 라한호텔에 있는 경주산책이라는 서점에 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원에게 한강의 소설 없죠? 라고 물었다. 있다며 그가 가리키는 곳, 서점 입구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한강의 작품들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닌가. 워낙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서점이라 아직도 팔리지 않은 책이 있구나 생각하면서, 혹시나 다른 사람이 눈치챌까 괜스레 좌우를 살폈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얼른 집어들었다. 나온 지 며칠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새 책이었다. 무려 128쇄, 28쇄나 되었다. 하여튼 책을 들고 집으로 오면서 마침내 나도 애국자(?)가 된 듯 설레며 책 읽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이 책들은 ‘채식주의자’와 같이 불편해하지 말고 잘 읽어야지 결심을 곱씹었다. 그러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 밝힌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범들을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쓰인 그의 소설은 잘 읽혀지지 않았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 내려가기가 쉽지 않았다. 서사로 읽는 보통 소설과 달리 술술 읽혀지지 않은데다가 시 감상하듯 읽어도 만만치 않고 하염없이 더뎠다. 책 뒷면의 “읽는 쪽에서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다고 각오한 사람조차 휘청거리게 만든다”, “시적 초혼과 산문적 증언을 동시에 감행하는 거의 원망스러울 만큼 정확한 표현으로 읽는 이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말에 동의하면서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위안을 받을 정도였다. 그래도 두 권을 머리맡에 두고, 마치 어려운 숙제하듯이 번갈아 읽고 있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소설의 주된 테마로 삼은 소설가로 박완서가 떠올랐다. 박완서는 자전적인 체험을 소설로 쓴 ‘나목’을 비롯한 대부분의 소설이 작가의 인생과 가족사를 바꿀 정도로 가장 강렬한 경험이었던 6·25를 바탕으로 했다. 뿐만 아니라, 분단국가로서의 현실, 가부장적 가정 구도, 전후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반공주의, 여성, 중산층 등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 아래 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날카롭고 예리하게 관찰한 작품들이 많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배경으로 한 ‘그 남자의 집’을 책장에서 꺼내와서는 단숨에 다 읽었다.

2024-11-06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같이 가자 해놓고

그러게. 같이 가자, 하지 않았어요? 한 날 한 시에 손 꼭 잡고 눈길 한 번 맞춰보고 고개 한 번 끄덕이고 그러고 가자, 하지 않았어요? 애들 번거롭지 않겠다. 문상객들도 편하겠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아니지, 아니지. 나는 무조건 당신 다음에 가야지. 그래야 당신 가는 길에 꽃도 뿌리고 향도 피우고 내 그동안 당신한테 못해준 것, 잘못한 것 다 갚지는 못해도 꽃도 뿌리고 향도 피우고 그거라도 해야지. 그래야지. 난 무조건 당신 다음에 가야지. 그러지 않았어요? 결국은 또 말 뿐이었네요. 당신 귀에 인이 박히도록 했던 말, 내가 수없이 내뱉었던 그 말, 맨날 말만하고 바뀌는 게 없다는 그 말을 내가 또 하고 있어요. 준연은 입을 열어 말하지 못했다. 그저 입안을 맴도는 말 덩이들을 꾸역꾸역 삼키는 중이었다. 허리께를 더듬어 닦을 것을 찾았으나 손에 닿는 것이 없었다. 그저 흐르는 것은 흐르는 대로 둘 수밖에. 하긴 언제 이렇지 않았던 때가 있었나. 애들은 괜찮을 거예요. 해준 것 없이 잘해온 애들이니. 내딛는 걸음마다 걸리는 것 없이, 바로가든 돌아가든 지들 가고 싶은 곳으로 잘 걷는 것 보았잖아요. 첫 걸음을 뗄 때 알아보았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저 우리 같을까 싶어, 넘어질까 싶어 그저 엉덩이를 받힌다 어깨를 잡는다 호들갑을 떨었지요. 넘어지면 그게 또 뭐 대수라고. 그래도 대견하지 않아요? 당신도 그랬잖아요. 참 대단한 녀석들이라고. 애들은 잘 할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여긴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해졌어요. 검고 붉은 감나무 잎이 모란 아래 쌓였어요. 당신이 참 좋아했던 모란인데. 십칠 년쯤 되었다고 십칠만 원에 샀었지요. 지금은 오십만 원쯤 되겠네요. 이제는 제법 꽃이 많이 핀답니다. 자주 빛 빌로오드 꽃이 활짝 필 때면 어쩔 줄 몰라 하던 당신이었는데. 라탄 의자에 앉아 모란을 보며 담배를 피던 당신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나 당신이 담배 피는 게 그렇게 싫었는데, 그 모습 하나는 조금 좋았어요. 아니 그 순간 당신은 제법 멋졌어요. 모란과 당신과 하얗게 피어오르던 담배 연기와…. 그런 것들로 가득했던 봄. 참, 올해는 유채도 활짝 피었어요. 몇 해 전부터 집 옆 공터에서 보이더니 이번 봄은 장관이었어요. 길 가던 사람들이 사진 찍겠다고 줄을 섰다니까요. 유채를 보며 당신, 아니 우리를 생각했어요. 그 해 봄, 파랑과 노랑 사이에 우리가 있었지요. 화산석 돌담을 사이에 두고 당신은 노란 유채밭을 등지고 있었고, 나는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었어요. 당신과 나 사이 현무암 담장 틈을 오가는 바람이 당신 옷자락을 흔들었어요. 이리 오라, 당신이 손을 뻗어 나를 부르는 것처럼 보였지요. 하지만 난 쉽게 발을 떼지 못했어요. 바다가 항상 자기 자리에 있는 것처럼, 제가 서 있던 자리는 익숙하고 오래된 제 자리였거든요. 봄이 되어야 피어나는 유채꽃,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유채꽃. 당신은 제게 그런 어떤 존재였어요. 알지요? 저는 결혼이란 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었다는 것도. 얘기했지요? 그때의 저는 한 곳에 머물지도, 한 사람에게 책임을 다하고 싶지도 않았다는 걸. 그때 제가 제법 모질었지요.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고 지금 서로를 어루만지고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것은 순간의 감정이라고. 당신에게 그렇게 말했지요. 미안해요. 우리가 다시 마주 한 순간이었어요. 화산석 돌담은 접견실 유리창인 양 놓여있었고, 어색한 눈빛과 말끝을 흐리는 안부인사가 이어졌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아쉬운 거예요. 당신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마음이 제 속을 채우는 거예요. 유채꽃이 예쁘네. 나, 사진 한 장만 찍어주면 안될까? 사실 당신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어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고 담장을 넘어 갔지요. 담장 틈 사이로 바다 내음이 들어왔고 우리는 같이 사진을 찍었어요. 손을 마주 잡았고 그렇게 우리는 평생을 약속했고요. 어제는 조금 덜 익은 감을 몇 개 따다 식탁에 올려두었어요. 좀 두었다 맛이나 보려했지요. 그냥 두었다가는 직박구리들이 다 쪼아 먹을 것 같았거든요. 걱정 말아요. 손이 닿는 곳 위로는 따지 않았으니. 따지도 못해요. 사다리든 무엇이든 밟고 올라서는 일은 이제 못한다는 걸 당신도 알잖아요. 몇 계단 밟고 오르지도 못할 거면서 뭔 애를 그리도 썼을까요? 그때 그 시절 우리 말이에요. 암튼, 작년에는 해갈이를 하는지 감이 별로 열리지 않더니 올해는 제법 많이 달렸어요. 그러니 새들 걱정은 안 해도 되요. 그러니까, 우린 이게 문제였던 거예요. 알아서들 잘 사는데 굳이. 그렇지 않아요? 거긴 어때요? 따듯하고 좋아요? 듣던 대로 즐겁고 기쁜 일만 가득합니까? 뭔 재밌는 일이 있을까, 나는 별로 기대는 안 합니다. 그저 당신 얼굴 한 번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기는 해요. 당신이 기다리고 있다면 말이에요. 창을 열어두었나? 준연은 마룻바닥을 타고 오르는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집안의 창들을 떠올렸다. 아침에 환기시킨다고 열었던 창 중에 닫지 않은 것이 있는지, 1층부터 2층까지 머릿속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다. 아닌데, 다 닫았는데. 어디서 들어오는 냄새지? 자동차 매연이나 먼지 냄새는 아닌데, 고소한데, 누가 뭘 고나? 아. 장어. 이젠 정말 갈 때가 되었나 봐요. 금방 했던 일인데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글쎄 둘째 아이 목소리가 조금 안 좋더라고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풀이 좀 죽은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일인지 당연히 말하지 않을 것이고, 말한다 해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고. 그러니 내가 뭘 했을 것 같아요? 알지요? 시장에서 민물장어를 사다 고았지요. 뭐든 해야 했거든요. 아파도 장어, 피곤해 보여도 장어, 슬퍼해도 장어, 만병통치약 같은 장어. 당신이 리듬까지 붙여가며 노래를 불렀잖아요. 장어들이 튀어나올까봐 곰솥 냄비 뚜껑을 손으로 누르고 있는 나를 돕지는 않고 놀리듯 노래만 불렀지요. 아니에요. 가끔 도와줬다는 것도 기억해요. 아무튼 장어를 사다 고았어요. 식혀서 기름덩이를 걷어내려고 뚜껑을 열어두었는데, 그 냄새가 이리 흘러 들어왔네요. 작은 통에 나눠담아야 하는데. 내가 이러고 있네요. 조금은 졸린 것 같기도 하고. 냄비 뚜껑이라도 덮어두어야지. 준연이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는데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나마 답답했던 가슴은 조금 나아졌다. 아니 답답하지 않았다. 발끝의 저림도, 욱신거리던 종아리의 아림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뻐근하던 허리의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허리가 없어진 것처럼. 냄새도 창도, 빛도 사라졌다. 벌써 밤인가? 내가 언제 일어났더라? 여기가 어디더라? 간다는 게 이런 건가 봐요. 당신도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아니었을 거예요. 당신이 가는 길옆에는 제가 있었으니까. 당신 이마며 눈꺼풀이며 입술이며 내 이 두 손으로 다 한 번씩은 쓰다듬었으니까. 다행이었어요. 조금은 부럽기도 하고. 그래요. 할 말은 해야겠어요. 같이 가자 해놓고. 한 날 한 시에 손 꼭 잡고 눈길 한 번 맞춰보고 고개 한 번 끄덕이고 그러고 가자 해놓고. 무조건 나 다음에 간다 해놓고. 나 가는 길에 꽃도 뿌리고 향도 피우고 나한테 못해준 것, 잘못한 것 다 갚지는 못해도 꽃도 뿌리고 향도 피우고 그거라도 해놓고 간다 해놓고. 그렇게 말해놓고. 그럴 줄 알았어요.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네요. 맨날 말만. 당신 귀에 인이 박히도록 했던 말, 내가 수없이 내뱉었던 그 말, 맨날 말만하고 바뀌는 게 없다는 그 말을 내가 또 하고 있어요. 거기서 기다려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말고. 나 지금 가니까. 가서 또 말할 테니까. 말만 하는 당신이라고. 끝 김강 소설가·내과의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 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24-11-05

‘여야의정 협의체’ 곧 가동, 기대 크다

심충택 논설위원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논란이 국내외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집어삼키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의료 공백사태가 9개월째 접어들면서 국가의료시스템이 망가지기 일보직전인데도, 최근에는 관련 기사가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다. 위중한 환자가 없는 가족들은 마치 의료현장이 평온하게 굴러가고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다. 당장 내년에 우리나라에서 신규의사가 거의 배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올해 의사 국가시험을 봐야 했던 의대 본과 4학년(7월 22일 기준 3088명)들이 대부분 휴학하면서 내년에는 의사 공급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의사국가시험은 통상 9∼10월에 실기, 이듬해 1월에 필기시험을 치르는데, 올해 실기시험에는 347명만 응시했다. 예년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이로인해 4∼5년 후 배출될 전문의도 2000명이상 줄어들게 됐다. 의대생들은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한 후 대부분 전공의(인턴 1년, 레지던트 3∼4년)과정을 거치고 전문의 시험을 치른다. 내년에는 인턴 과정을 밟는 전공의가 거의 없으니, 자연적 4~5년 후 배출될 전문의도 극히 소수다. 신규의사가 없으니 군의관과 공중보건의 수급 문제도 큰 과제다. 상급종합병원은 현재 심각한 과부하에 걸려 있다. 응급의료센터 의료진 약 30%가 과로로 인해 사직한 상태다.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는 최근 “상급종합병원에서의 심장 수술이나 장기이식 수술 등 중증 환자의 진료는 비상사태”라고 했다. 전공의가 병원에 돌아오지 않는 한, 정부라고 해서 별다른 대책이 있을 수 없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그저께(4일) 당 최고위 회의에서 “하루하루 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보다 시급한 민생은 없다. 오는 11일 여야의정 협의체를 출범하고자 한다”고 했다. 오는 11일 첫 회의를 열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의료위기를 방관한 채 남 탓만 하는 상황에서, 한 대표가 주도적으로 협상테이블을 마련하겠다고 나선 것은 박수를 받을 일이다. 현재 의료단체 중 대한의학회와 의대학장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는 정부가 최근 의대생 휴학을 승인한 후, “협의체에 참여해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었다. 다만 의사협회와 전공의협의회는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재검토하지 않는 한 불참하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정작 협의체를 제안한 민주당이 협상테이블에 앉지 않겠다며 발을 빼는 모습이다. 의대생과 전공의 단체가 참여하지 않는 협의체는 의미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대표는 “여의정(여당·의료계·정부)만이라도 우선 출발하겠다”고 밝혔다. 의료 문제는 정쟁을 떠나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민주당은 협의체 출범에 대승적으로 동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의대생, 전공의단체도 정부가 “2026학년도는 증원 ‘0명’부터 논의할 수 있다”고 협상 여지를 내비친 만큼, 이제는 협의체에 참여해서 대화를 통해 꼬일대로 꼬인 실타래를 풀어나가야 한다.

2024-11-05

노후는 각자도생으로

우정구 논설위원 개인주의 사상이 발달하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n분의 1 개념의 계산방식이 자주 통용된다. 계산할 때 전체 비용을 사람 수로 나눠 각자가 내는 것을 말한다. 각자가 쓴 것을 각자가 부담하는 더치페이와는 조금의 차이점이 있다. n분의 1은 개인마다 소비 규모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비용만큼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말로 “자기 팔 자기가 흔든다”는 것처럼 세상은 개인주의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개인주의란 말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이기주의와 개념적 차이가 있다. 경제적으로 개인 소유권과 경제활동의 자유가 인정되는 사상이자 정치적으로도 국가의 통제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공동체에 무게를 두었던 집단주의 성향이 강했던 과거의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로 흐르는 것은 시대적 조류여서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 될 일이다. 젊은세대 중심으로 이런 개인주의는 더 뚜렷한 경향을 보인다. 최근 경북도가 조사한 경북도 사회지표 조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 하나가 있다. 부모부양 책임자에 관한 질문이다. 응답자의 65.4%가 “부모님 스스로”라고 대답했다. 20대는 94%, 30대는 88%가 “부모님 스스로”라 해 젊을수록 노후는 부모 스스로가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5년 전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국민의 부모부양 가치관이 연도별로 급격히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부모부양 책임이 가족에게 있다는 답변이 2006년 63%에서 2018년에는 27%로 뚝 떨어졌다. 부모부양을 효로 생각했던 가치관이 바뀌면서 노후는 이제 각자도생의 길로 가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11-05

공공시설을 아름답게 가꾸는 손길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을 가르며 서서히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도심을 가로 지르는 포항철길숲 길가로 줄지어 선 나무들과 눈인사하며 가볍게 저어가니, 붉거나 누런빛을 띈 잎새가 간간이 떨어지며 반기는 듯하다. 한결 선들해진 날씨에 여행을 떠나거나 활동하기에 편한 계절, 아침 일찍 자전거 두 바퀴를 한 시간여 굴려서 당도한 곳은 영일대해수욕장 끝 해안마을 뒷동산에 위치한 환호공원 내 물의공원 입구다. 챙이 넓은 파란 모자를 쓰고 연청색 조끼를 사람들이 삼삼오오 물의공원 벤치에 모여들어 인사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입구 쪽 도로변에는 삽과 곡괭이, 호미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는 관목류의 묘목이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는 걸 봐서는 묘목을 심기 위해 준비해 놓은 것으로 여겨졌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단장인 듯한 사람이 앞에 나서서 오늘의 작업내용과 일정 등에 대해 안내하고, 초청한 조경전문가가 관목류 식재방법과 요령, 주의점 등에 대해 실습을 곁들인 현장교육을 진행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포스코 포항제철소 공공시설가꾸기봉사단의 ‘제80차 환호공원 가꾸기’ 자원봉사활동의 시작 모습이다. 이어 30여명의 봉사자들은 각각 삽이나 곡괭이, 호미 등을 들고 흩어져 익숙한 듯 재발리 활동에 들어갔다. 오늘 심게 되는 나무는 하얀꽃·분홍꽃 진한 향기가 은은히 피어나는 원예종 ‘꽃댕강나무’이다. 수종이 다소 생소한 것 같지만 ‘평안함’이라는 꽃말로 학교나 공원, 공공건물 등지의 진입로 유도식재로 많이 심게 되는 덤불형 관목이다. 봉사단원들은 3~4개팀으로 나눠서 땅파기와 골 타기, 나무 심기, 흙 북돋우기 등의 과정을 분담해서 손발을 맞춰가며 순조롭게 작업을 이어갔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지나가던 많은 관광객들은 봉사자들의 수고로움에 감사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특히 프랑스에서 왔다는 3명의 여성들은 ‘볼런티어 원더풀(Volunteer Wonderful)’을 연거푸 외치며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공공시설가꾸기봉사단은, 지난 2021년 11월 포스코에서 사회환원의 취지로 기증한 전국적인 핫플레이스 ‘스페이스워크’ 개장과 함께 출범, 초창기에는 스페이스워크 방문객들의 조형물 이용 안내와 안전유지, 주변 환경정화 등의 활동을 실시했었다. 그러다가 봉사단의 의미와 활동범위를 확장시켜 환호공원 전역과 포항운하 시설물까지 포함하여 곳곳의 미관개선과 편의성 증대를 위한 보행로 주변 화단조성 및 녹지대 명패관리 등 필요한 개소에 맞춤형 활동을 펼침으로써 공공시설물의 가치와 실질적인 유지보수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시민들의 문화와 여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포항 최대 규모의 공원을 더 깨끗하고 편리하게 가꿔 나가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아름답기만 하다. 스페이스워크로 가는 길목에 지난 봄날 400여 그루의 형형색색 수국을 심은데 이어, 이번에는 900여 그루의 꽃댕강나무를 심어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지는 꽃향기와 환한 꽃망울로 환호공원을 찾는 이들을 반겨 맞을 것이다. 식재작업을 마치자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오후부터 가늘게 내리는 가을비가 포스코의 따스한 지역사랑 마냥 촉촉하고 흡족하게 땅을 적시고 있었다.

2024-11-05

기술연구소 혁신과 방향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기술연구소도 혁신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기업 혁신은 생산, 서비스, 사무 간접 등이 일반적이지만 연구소 실험 프로세스를 혁신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필자는 P사 기술연구소 혁신 컨설팅을 2013년부터 작년까지 긴 시간 지원했다. 포항, 광양, 송도 3개 지역에서 600여 명의 공학박사들이 제철소 공정기술 개발과 신 강종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예를 들면, 수소분석기를 통한 녹이 슬지않은 강종 개발이나 자동차 휠을 알루미늄에서 철로 바꾸는 기술이 접목되어 성공하는 사례도 나왔다. 이러한 것들은 가볍고 단단하고 내구성이 강한 비행기 재료 같은 강종을 개발하는 것이다. 세탁기, 냉장고에 들어가는 스테인리스 강도 더 가볍고 디자인성이 좋게 하고 칼라 강판도 개발하여 최종 제품공장으로 공급해 소비자를 만족 할 수 있게 한다. 기술연구소 혁신의 방향과 방법론은 무엇인가. 기술연구소는 철의 강종(고강도, 고인성 강재) 개발을 효율적으로 혁신하기 위해 3가지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첫째, 고성능화 및 친환경성이다. 기존 강종 대비 강도와 인성을 향상시키고 친환경적인 신소재 개발에서 경량화와 탄소배출 절감을 목표로 해야한다. 둘째, 지속 가능한 생산 프로세스 개발이다. 재료 생산과정에서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생산 공정을 최적화 해나가야 한다. 셋째, 스마트 제조기술 도입이다.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제조 및 품질관리시스템을 구축하여 개발 과정의 불합리를 줄여 효율성을 극대화 해야 한다. 연구소에 혁신 방법으로 6시그마를 도입한다고 했을 때 연구원들의 이견이 있었다. 그것은 연구원의 고유 연구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혁신 기법은 일의 속성과 설비 특성, 프로세스 특징을 이해하고 맞는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일괄적 동일 방법으로 도입하는 것은 지속되지 못한다. 연구소의 혁신 방법론은 연구소 실험 과정에 맞게 개발하여 모두가 공감하는 것으로 실행 효과가 있어야 한다. 연구 특성에 맞는 RD형 혁신방법론을 개발하고자 설계를 하고 시범 모델 7팀을 꾸렸다. 공정기술 개발, 강종 개발에 물리적 실험, 화학적 실험, 자동차 강판 실험, 강구조 실험 등 팀을 구성하여 1년간 진행했다. 설계 내용대로 실험하며 다양한 변수를 개선하고 실험 정확도, 스피드 향상에 초점을 둔다. 연구 프로세스의 실험 조건을 세분화하여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는 등 혁신 방법론을 최적화 한다. 실험 품질은 실험결과 데이터의 편차가 없고 재현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여러 가지 검증을 거쳐 연구소에서 인증하는 RD형 혁신 방법론을 정립했다. 기술연구소의 실험 정확도와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고급기술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과 첨단 분석 장비와 실험 환경의 인프라가 있어야 하고, 신 강종이 실제로 산업현장에서 어떻게 사용될 지, 고객 니즈에 맞는 강종 개발과 정립 된 RD형 혁신 방법론은 지속성 속에 진화 발전하게 된다.

2024-11-05

경산시 문화관광재단에 거는 기대감과 아쉬움

심한식 경북부 경산시가 지역 문화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고자 설립하는 비영리 법인 문화관광재단이 경북도의 설립 허가(10월 24일)를 거쳐 마지막 관문인 등기를 진행하고 있다. 경산 문화관광재단은 지역 문화의 양적·질적 성장에 따른 지역 특성에 맞는 문화 콘텐츠 개발과 문화사업을 전문성을 무기로 부흥기를 이끌고 경산이 문화도시로 정착할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공개적으로 모집한 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직에 15명이 응모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치단체가 출자해 운영하는 기관들의 대표이사는 사회적으로 알려지거나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 맡는 것으로 인식한다. 높은 지명도가 대외적인 활동과 재단의 운영에 도움이 되고 직원 유치 등에 활용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속 사정을 자세하게 알 수는 없으나 경산 문화관광재단의 대표는 대외적인 지명도 보다는 지역색이 강한 인물이 선정됐다. 물론 자신의 능력을 지금까지 발휘하지 못한 부분도 있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지역의 문화와 관광의 부흥에는 중앙정부와 인맥의 활용성이 필요하다. 특히, 초대 대표이사가 갖는 상징성이 바로 재단의 상징성이 되고 판단의 기준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경산 문화관광재단은 얼마 후 함께 할 직원을 선발할 예정이다. 경산 문화관광재단이 예산이라는 덫에 걸려 대표이사 초빙에 실패한 것처럼 인재를 선발하지 못하는 우를 법하지 않았으면 한다. 전문성과 열의, 창의성을 가진 인재를 선발해 경산 문화관광재단이 추구하는 지역 특성에 맞는 문화 콘텐츠와 관광자원을 개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새로운 시도에는 항상 시행착오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시행착오를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대표이사가 필요하다. 선장의 능력에 따라 배의 항로가 결정되듯이 닻을 올리는 경산 문화관광재단호가 순항을 할 수 있도록 능력을 발휘해 세간의 걱정을 잠재우길 바란다. /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4-11-05

전국 산업폐기물의 58%를 처리하는 경북!

피현진경북부 안동시 의일리에 슬러지(오니) 폐기물처리공장이 들어서고 있어서 주민들이 봉기하고 있다. 지난해 풍산읍 신양리에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들어온다고 온 주민들이 죽을 각오로 막고 있는데, 이번엔 또 녹전·도산면 주변에 산업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녹전면 도산면 등 농촌지역은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죽기 살기로 싸울만한 여력도 부족한 실정이다. 힘없는 농촌지역 노약자들의 생활 터전에 유해성 폐기물이 들어온다는 것은 주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문제다. 꼭 필요한 것이라면 주민들 모르게 할 이유가 없고 공개적으로 홍보하고 설득해야 마땅한 것이다. 제대로 잘 모르고 있다가 늦어서 할 수 없이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투적 행정은 구태다. 민간사업자들이 온 천지에 돌아다니며 돈벌이 수단으로 세균, 병균, 독성 오염물질이 가득 베인 산업폐기물을 방역 대책도 없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실어 나르며 이윤추구에 혈안이다. 문제는 이렇게 실어 나른 산업폐기물을 경북이 처리한다는 점이다. 경북의 산업폐기물처리시설은 고령과 포항, 경주, 구미 등 4개 시·군 17곳에 이른다. 역설적이게도 서울은 0곳이다. 이곳에서 한 해 355만t의 폐기물이 처리되고 있다. 전국 처리용량의 58%나 된다. 전국 산업폐기물 절반이 경북지역에서 처리되고 있는 것이다. 산업폐기물처리시설이 경북으로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주민 갈등과 환경 오염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타당해 보일 지경이다. 이들은 10%밖에 안 되는 생활폐기물을 행정기관에서 처리하면서 90%나 되는 산업폐기물을 민간에서 처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국회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난 8월 토론회를 열었다. 농촌지역 환경 오염과 고수익에 따른 변칙 증여까지 악용되고 있는 산업폐기물처리는 광역시·도별로 공공기관에서 책임지고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천문학적인 이윤을 추구해 온 산업폐기물 사업자들에게 더 이상 끌려다녀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나라가 멍들고 국민이 병들고 농촌지역은 소멸하고 있다. 귀농·귀촌을 권유하면서 농촌지역에 폐기물이 들어차면 누가 거기에 호응할까? 행정절차에 준하더라도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라는 헌법 1조의 원리와 농촌지역 소멸과 사회적 정의와 균형·복지 차원의 합리·합목적에 따라 거부하거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산업폐기물처리 기본계획 수립·추진 정책을 시행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phj@kbmaeil.com

2024-11-04

생활권 공원녹지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산림청은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는 참나무류, 단풍나무류, 은행나무의 단풍시기를 담은 ‘2024 산림단풍 예측지도’를 지난 9월 23일 발표하였다. 수종별 단풍절정 시기가 지역별로 차이는 있으나 기후변화로 인한 늦더위가 지속되어 예년에 비해 단풍이 다소 늦어질 것으로 예상하였다. 팔공산과 대구수목원의 단풍나무류 절정 시기는 각각 10월 26일과 11월 6일로 예측하였다. 올해도 10월 말부터 11월 초에는 팔공산과 대구수목원 등에는 단풍을 즐기는 인파로 가득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시간 여유가 많은 사람들은 단풍명소를 찾아 먼 곳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 나설 듯 한데, 한국관광공사는 전국 단풍명소 27곳을 소개하는 ‘가을 단풍여행지도’를 만들었다. 카카오내비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국 9개 권역에서 작년 단풍 시기에 전월 대비 방문자 수가 대폭 증가한 여행지를 각 3곳씩 선정해 ‘가을 단풍 여행지도’에 담았다. 경기 광주 화담숲, 충북 단양 보발재 전망대, 전북 무주 적상산, 경북 경주 경북천년숲정원 등이 포함됐다. 대구경북에는 경북천년숲정원 외에도 팔공산 케이블카와 주왕산도 포함되었다. 이렇게 단풍시기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단풍이 물든 숲과 나무를 찾게 되지만, 평소에는 도시민들이 일상 생활권 내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원과 녹지 공간 즉, ‘생활권 공원녹지’를 기반으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생활권 공원녹지’는 주민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자연을 접하고 휴식하며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주거지나 상업지 근처에 조성된다. 지난 2023년에 발표된 ‘2040 서울시 공원녹지 기본계획’을 보면 3가지 목표 중 하나로 ‘맞춤형 녹색이용’을 목표로 제시하고 세부전략인 녹색여가 증진을 위해 공원 명소화와 반려동물 놀이터 확대사업을 제시했다. 아울러 정신건강 지원을 위해 정서지원 및 공동체 형성공간 제공 사업을 제시했다. ‘도시의 작은 틈에도 녹색채움’을 목표로 입체도시공원 시범사업, 교통 및 환경 기초시설 상부공원화사업, 중점녹화지구 활성화 사업 등을 제시했다. ‘지속가능한 녹색회복’을 목표로 탄소중립 대응(공원녹지의 탄소 흡수 기능 강화 등), 방재기능 강화(집중호우, 화재, 산사태 등 적응기능 도입 등), 미세먼지 저감(바람길 조성 및 그린인프라 시설 도입 등), 생물다양성 증진(야생동물서식지 확보 및 지속가능한 보호 플랫폼 구축 등) 등을 전략으로 제시했다. 이렇게 서울시는 공원녹지를 양적으로 확대하고 질적으로 개선하면서 광역권 그린웨이와 연결한 생활권 그린웨이 조성사업을 ‘생활권 공원녹지계획’을 통해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어 대구경북지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통계청에서 관리하는 국민 삶의 질 지표에 ‘1인당 도시공원 면적’이 핵심지표로 관리되는데, 2022년 기준 전국평균은 12.3, 대구와 경북은 각각 8.4와 16.1, 계획된 신도시인 세종시는 58.1㎡/인이다. 대구 시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생활권 공원녹지’ 확충사업이 필요함을 지표는 명확히 알리고 있다.

2024-11-04

아침산책

유복혜 전 청도전례원장·영남대 사회교육원 강사 새벽 여섯 시가 조금 넘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니 아직도 어둡다. 내가 일어나는 시간은 늘 같은데, 가을도 깊어지니 해 뜨는 시간은 자꾸 늦춰진다. 한기가 훅 끼쳐 절로 손을 모아 가슴을 껴안게 된다. 신에 발을 꿰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 하나 멀리서 차갑게 떨고있다. 달은 벌써 기울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어두워 발 딛기가 다소 두렵긴 하다. 작년 봄 산책 중 집 앞 둠벙을 뛰다가 넘어져 크게 다쳤다. 1년 이상 온갖 신고(辛苦)를 한 탓인지 익숙한 길인데도 이젠 어둠조차 몹시 두렵다. 그래도 발길을 조심조심 옮겨본다. 걷다보면 차차 밝아 오겠지. 어둑한 길을 건너는데 흰 물체가 눈앞을 휙 스친다. 깜짝 놀라 가슴에 절로 손이 얹힌다. 종종 고라니가 나타나 껑충거리며 지나는 길이다. 걷던 발을 멈춘 채 가만히 뚫어지게 본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살폈다. 희붐한 어둠 속에서 보니 흰 개다. 들갠가 보다. 저도 놀랐는지 날 쳐다보고 있다. 잠시 후 조심스레 발을 떼고 몇 걸음 걷다 뒤돌아본다. 그대로 날 쳐다본 채 서 있다. 또 몇 발자국 걷다 뒤돌아보니 세상에나…. 꼬리를 흔들고 있다. 저도 안심하였나 보다.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걷던 길을 재촉해본다. 내일 다시 또 만나면 반가워하려나. 어둠이 가시자 하늘의 별은 어느새 빛을 잃었는지 숨었고 대신 구름이 보인다. 코끝에 닿는 찬 공기가 맛있다. 크게 숨 쉬어 뱃속 깊이 들이마셔 본다. 입술을 내밀어 천천히 큰 숨을 내뱉으며 또 쳐다보게 되는 하늘에서 크고 흰 두루미 한 쌍이 들판으로 내려앉는다. 시선이 저절로 따라 내린다. 끼루룩 소리를 내며 열심히 뭔가를 쫀다. 내가 지나가는데도 날아가지 않고 저희들의 일에 몰두하고 있다. 방해하지 않으려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본다. 일찍 일어난 새가 아침을 먹는구나. 논둑 사잇길로 들어섰다. 나락 향이 훅 끼친다. 숨을 깊게 들이쉬며 가슴 가득 구수한 향에 취한다. 모질고 유난했던 무더위를 견뎌내더니 제법 알곡이 맺혀 누르스름한 색을 띈다. 아침저녁 서늘한 바람과 낮의 뜨거운 햇살을 맞아 알은 더 여물어지고 단단해지면 이 황금빛 너른 논도 추수로 비어지겠지. 부지런한 농부는 작은 땅도 허투루 두지 않는다. 논둑 따라 좁은 길가에도 한 줄씩 뭔가가 심겨져 있다. 지난 여름 이름도 모르는 푸성귀 사이를 비집고 고개 내민 아기 주먹만 한 자그마한 애호박이 어느새 굵어져 누렇게 둥근 호박으로 뒹군다.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게 된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밴다. 이 이른 아침부터 벌써 밭에서 땀 흘리는 농부를 만난다. 며칠째 흙을 뒤집고 부수기를 하더니 샛노란 흙이 부드러운 속살을 보인다. 양파씨를 뿌린단다. 내년 봄에 수확할 양파를 위해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수고로움을 감수하는구나. 더없이 고맙다. 그냥 고맙다. 진심을 담아 수고하신다는 말을 건넨다. 땀범벅이 된 채 집에 돌아오면 꼬리 흔들며 반겨주는 강아지 두 마리. 영감도 그새 일어났는지 이제 제법 우글거리며 자란 무와 배추밭에 엎드려 풀을 뽑고 있다. 한 시간 남짓의 아침 산책은 내 시골살이 행복의 일 순위다.

2024-11-04

융합예술, ‘제6의섬’을 둘러보고

김일광 동화작가 포항문화재단은 지난달 25일부터 2024 포항융합예술주간 ‘제6의섬 ’을 개최하고 있다. ‘제6의섬’은 포항시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다섯 섬과 호수 셋을 역사적, 지리적 바탕으로 융합예술을 선보이는 기획으로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나는 5도 중 하나인 상도동에서 태어나 송도에서 살고 있다. 그야말로 평생을 5도의 햇살과 바람을 입고 산 셈이다. 어쩌면 나 자신이 융합 예술의 한 요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연출되는 현장을 찾았다. 가까이 있는 송도 바다를 먼저 찾았다. 평화의 여상과 다이빙대는 설치된 연한으로 따진다면 포항의 상징물로 대접 받기 충분하다. 그러나 추억의 장치쯤으로 치부되어 왔다. 그런데 이번에 포항해상공원과 함께 시선에서 밀려나 있던 평화의 여상과 워터폴리를 무대 안으로 끌어들인 것은 참으로 신선한 발상이었다. 송도 평화의 여상에 연출된 ‘Song도포tal’ 빛과 소리로 공간을 꾸몄다. 송도 바다 위에 거대한 달을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바라보았을 때 가운데 설치된 빛의 공간으로 토끼가 등장할 것만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서 편안한 자리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악에 몸을 맡겨도 좋지만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 들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30분 이상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비가 내린다면 어떤 느낌일까. 수평선에서 달이 떠오르면 또 어떨까. 춤추는 포스코의 야경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마침 선배 두 분과 일부러 동빈문화창고까지 걸어갔다. 시간이 고인 옛 골목이 기지개를 켰다. 9섹션으로 구성된 작품들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기대 이상이었다. ‘르 썽띠넬 2024’ 막을 걷고 들어갔을 때 자글자글 로봇이 돌아다니며 만들어내는 소리에 압도되었다. 무대에 나타나는 우리 삶과 관련된 낱말들,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로봇과 맞서보라는 안내에는 차마 따를 수가 없었다. 상호작용이 가능한 로봇과 아직은 융합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메탈 레이브’ 형산강 오염도가 주는 소리는 신기함을 넘어 안타까움이었다. 형산강의 신음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망둥어, 어린숭어와 어우러지던 생명의 강이었다. 신음 같은 그 소리를 오래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우는 쇠; ’떠는 쇠‘도 진동이 주는 새삼스러움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였다. ‘미상의 푸른 돌멩이’ 슬래그의 예술적 변신과정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쇠똥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탐색과 기술의 과정을 거쳐서 예술이라는 장르로 연결되었다. 문득 이 과정이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조상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염료를 식물과 광물에서 구해 왔다. 그렇게 본다면 기술과 예술의 융합이 갑자기 만들어 진 게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철이 오늘날까지 인류와 함께 하는 것은 다른 금속과 융합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기술이 예술을 재해석하고, 인간 삶에 들어와 미학을 새롭게 구축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삶이 있고, 또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포항과 시민들은 어떤 삶을 또 미래를 꿈꾸며 살아갈까? 예술을 품은 기술, 기술로 재해석해 보는 예술, 융합예술이 실현되는 포항 제6의 섬, 꿈꾸는 포항이 자랑스럽다.

2024-11-04

침묵의 소리 안에서

무미건조한 삶의 불안에게서 도망치는... /언스플래쉬 삶이라는 거대한 미션 속에서 너무 도망치고 싶거나 의기소침한 마음이 들 때쯤 영화 ‘졸업’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 ‘졸업’에선 상류층 가정에서 부모님 뜻대로 착실히 살아온 스무살 초반의 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대학 수석 졸업을 마치고 집으로 금의환향한 벤은 부모님이 마련한 성대한 파티에 참석한다. 그는 상류층 집안에서 부모님의 뜻에 따라 착실히 순종적으로 지낸 아들이면서, 명문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명석한 두뇌의 엄친아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기엔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그의 스펙이지만 실은 벤은 계속해서 물에 잠겨 있거나 넓은 바다 위를 홀로 외롭게 부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어쩐지 떨어뜨릴 수 없다. 무언가 단단히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 벤. 하지만 그런 착잡한 마음을 아무도 알아주지 못해 시간이 흐를수록 거듭 외로워질 뿐이었다. 그러한 불안의 상황속에서 갑작스레 벤 앞에 나타난 로빈슨 부인. 그녀는 의도적으로 벤과 부적절한 관계를 취하고 벤 또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그녀의 손아귀에 이끌려 다니게 된다. 부적절한 관계 속에서 공허하고 혼란스러워하던 벤이었지만 자신의 아버지의 소개로 로빈슨 부인의 딸 일레인과 만나게 되고, 일레인과의 데이트 도중 그녀에게 사랑에 빠지고 만다. 점차 자신의 감정이 깊어져 가던 도중 일레인에게 벤자민 부인과의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되지만 일레인은 자신의 어머니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벤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이 다니던 대학으로 멀리 떠나게 된다. 벤은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진 일레인의 부재를 견디지 못하고 그녀의 대학까지 쫓아가 일레인을 다시금 붙잡아 보지만 일레인의 마음은 이미 혼란스러운 상태. 벤은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서 일레인이라는 주체적인 선택을 하고, 일레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한다. 하지만 일레인은 결국 벤을 떠나 은신하며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선택하게 되고 이를 알아챈 벤은 소식 없이 사라진 일레인의 뒤를 쫓아 결혼식장까지 난입하게 되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장면인 웨딩드레스를 입은 일레인과 손을 잡고 도망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결국 도망치는 데에 성공한 벤과 일레인은 버스를 잡아 타고선 서로를 향해 활짝 웃어보이는데 영화의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둘은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착잡과 두려움, 혼란과 절망이 모두 담긴 표정이 클로즈업 되며 영화는 생뚱맞게 막을 내린다. 그 장면 속에 삽입된 폴 사이먼의 The Sound Of Silence의 곡 또한 “반갑네, 내 오랜 친구 어둠이여. 다시 한 번 말을 나누려 왔다네”, “현자의 말이란 오직 지하철 역사의 벽이나 노숙 시설의 벽 따위에 적혀 있도다. 그렇게 속삭였네, 침묵의 소리로”라는 가사가 등장하며 인생의 공허와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어우러지며 삶의 불안은 언제나 누구나 겪는 것이며, 삶의 불안에게선 절대 도망칠 수 없고 외면할 수 없단 메시지가 드러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벤과 일레인, 그들은 여전히 미래로부터 불안하고 현재라는 삶의 불확실함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이 메시지를 전달한 영화 ‘졸업’은 1967년 개봉작이며, 개봉 당시 60년대 미국은 기성세대 간의 갈등이 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벤은 자신의 부모님인 기성세대의 뜻에 반하여 자신의 커리어와 재력을 모두 버린 채 오직 일레인만을 선택한다는 행동이 더욱 강조되기도 했다. 또한 60년대 말은 베트남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로 꿈과 희망을 담은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기 보단 혼란스럽던 시대 그대로를 고스란히 담은 영화가 흥행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때 열풍이 불었던 아메리카 뉴웨이브 시네마는 당시 미국 사회 현실을 냉철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결국 해피엔딩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굵직한 주제의 영화가 주로 등장했으며, ‘졸업’도 그 중 하나의 대표작이라 볼 수 있다. 무미건조한 삶의 불안에게서 벤과 일레인처럼 마냥 도망칠 수만은 없을 터. 그렇다고 슈퍼히어로처럼 막대한 힘으로 이길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지며, 또는 언젠가는 두 눈을 부릅뜨며 유연하게 나아가는 수밖엔 없지 않을까. 가수 아이유의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곡의 마지막 가사처럼.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겠지만’, ‘또다시 헤매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고 있다면’ 말이다.

2024-11-04

아우라와 지속적인 체험

길버트 카플란(1941~2016)은 스물세 살 평범한 경영대학원생이었다. 1965년 그는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갔다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듣고 엄청난 충격과 감동에 휩싸인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번개가 나를 꿰뚫고 가는 듯한” 전율을 체험한 것이다. 그날 이후 그는 엉뚱한 꿈을 품는다. 단 한 번도 정규 음악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음알못’이지만 언젠가는 꼭 말러 교향곡 2번을 지휘하는 지휘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대학원 졸업 후 금융전문잡지를 창간해 큰 성공을 거둔 그는 백만장자가 됐는데, 젊은 날의 꿈을 잊지 않았다. 개인 교사를 고용해 하루에 몇 시간씩 화성학, 대위법, 지휘법 등을 배우기 시작한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아우라(Aura)’를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으로서, 곧 예술작품이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것이 뿜어내는 재현 불가능한 단 한 번의 영적 광휘”라고 정의한다. 사진술과 영상술, 레코딩 기술이 발명되면서 이 아우라는 위기를 맞는다. 사진으로 복제된 이미지와 음반은 언제 어디서든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예술작품을 무한대로 반복해서 감상할 수 있게 해주고, 그러면서 예술작품은 그 신비의 베일이 벗겨져 감상자는 이제 숭배가 아닌 비평을 하게 된다. 이는 대중문화의 시대를 여는 중요한 변화가 되었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실시간으로 현장에서 감상하는 예술작품의 감동, 아우라까지는 재현할 수 없다. 벤야민은 아우라의 붕괴를 긍정적인 변화로 여기면서도 인간에게서 ‘지속적인 체험의 기회’를 앗아간 것을 안타까워했다. ‘모나리자’를 본다는 것은 그냥 그림 한 장 보는 게 아니라 파리의 공기와 분위기, 루브르 박물관 외벽에 드리워진 햇살, 그림이 걸린 벽면의 명암과 조명, 그림 앞에 선 사람들의 경탄 어린 표정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체험인 것이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 보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이 있는 시간과 장소로 나아가야 하고, 그 나아감 가운데 다채롭고 우연한 아름다움들과 마주하게 된다. 스마트폰 검색을 통한 예술 감상에는 이러한 지속적 체험이 없다. 수년의 노력 끝에 길버트 카플란은 말러 교향곡 2번을 지휘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 처음 말러를 듣고 전율한 지 18년만인 1981년, 카플란은 자비로 카네기홀을 빌리고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섭외했다. 세상은 백만장자의 과시욕이나 엉터리 괴짜의 기행쯤으로 여겼지만 그의 손에 들린 금빛 지휘봉이 공중에 우아한 선을 그으며 1시간 20분짜리 대곡의 마지막 5악장을 마치는 순간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후 그는 말러 교향곡 2번만을 지휘하는 전문 지휘자가 되어 세계를 돌며 공연했다. 누군가는 카플란이 지휘하는 ‘부활’을 들으면서 과거의 그가 그랬던 것처럼 번개 맞은 듯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아우라를 체험한 사람은 아우라의 생산자가 된다. 내 시를 읽으면서 어떤 숭고한 광휘를 느낀 독자가 과연 있을까마는 내가 지금껏 문학가로 살 수 있던 것은 문학과 음악과 미술을 통해 감각한 아우라 덕분이다. 아우라가 있는 시간과 장소에 도달하기까지 체험한 세계의 다채로움 덕분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스물두 살 여름, 크레타에 무작정 가고 싶어 아르바이트로 여행 경비를 마련해 그리스 땅을 밟았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고는 영화 속 북유럽 풍경에 매료돼 통장을 탈탈 털어 노르웨이로 가는 항공권을 끊기도 했다. 스페인 문학에 등장하는 새끼돼지 통구이 ‘코치니요 아사도(Cochinillo Asado)’를 꼭 한번 먹고 싶어 바르셀로나 외곽을 헤매거나 티브이에서 녹화 중계해준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의 감동을 직접 느끼고자 독일에 가는 동안 대출금은 늘어나고, 여행 후 삶이 고달파졌다. 하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이 가을, 예술작품이 있는 시간과 장소로 직접 나아가보라. 가는 길의 햇살과 단풍과 낙엽을, 설렘으로 부푸는 가슴의 떨림과 친구의 웃음소리와 호수에 비친 산그림자를 모두 몸과 마음에 담으면서. 이런 지속적 체험을 통해 우리는 보편적 타인과 구별되는 개성을 갖게 되며, 영원히 아름다운 예술작품처럼 찬란한 아우라를 발산하는 고유한 개인이 될 수 있다.

2024-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