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역사적인 판결이 나왔다. 작년 12월 3일 느닷없는 비상계엄으로 초토화된 한국 사회에 단비가 내렸다. 탐욕과 분노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자의 사악한 행위가 몰고 온 파국적인 상황에 최초의 마침표가 찍힌 것이다. 무려 123일 동안 이어진 극심한 분열과 혼란 양상이 어느 정도 진정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신군부가 저지른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야만적인 살육이 있은 지 45년 만에 불시에 터진 비상계엄 사태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문자 그대로 그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지경까지 진행되었다. 내란 수괴(首魁)를 하늘처럼 떠받드는 정당 대표와 그 수하 국회의원들의 4개월 동안의 기행(奇行)은 필설로 다하기 어렵다.
나는 이번 사태 진행 과정을 청도 촌구석에서 조용히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사태의 출발점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먼저 생겨난다. 나는 그것을 불교 경전인 ‘열반경’에 나오는 고사성어 ‘군맹무상’에서 찾고자 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라는 우리 속담으로 잘 알려진 고사성어가 군맹무상이다.
고대 인도의 왕이 맹인(盲人) 다섯 사람을 불러서 코끼리를 만지게 했다고 한다. 코끼리를 처음 접한 그들은 각자 다른 부위를 만지고 나서 왕에게 소감을 말한다. 코끼리 다리를 만진 자는 코끼리가 기둥 같다고 했으며, 귀를 만진 사람은 부채 같다고 했다. 코를 만진 자는 뱀과 같다고 했으며, 등을 만진 사람은 벽 같다고 했고, 꼬리를 만진 사람은 밧줄 같다고 했다.
맹인들의 말은 모두 맞지만 동시에 모두 틀린 것이다. 그들은 일정 부분을 정확히 지적했지만,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를 보지 못한 채 부분에 함몰된 맹인들은 각자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다. 그들 모두는 이른바 ‘확증편향’의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부분적 사실과 전체적인 맥락은 상호 보완적일 때에만 의미를 확보할 수 있다.
요즘처럼 지식과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는 균형 잡힌 시각과 안목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편향과 호오(好惡)가 있기 때문이다.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있고, 받는 것도 없이 좋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살아온 내력이나 경험 혹은 지역 관계 속에서 자기의 입장을 확립한 사람은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 휩쓸리기 쉽다.
더욱이 개인적인 취향과 믿음, 고집에 가까운 소신을 철석같이 가진 사람은 그야말로 요지부동이다. 정보와 지식의 원천을 특정 유튜브에 두고 있었다는 자의 망상과 궤변, 끝없는 거짓말과 자기변명은 21세기 정보사회의 실체와 한계를 여실히 폭로한다.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했고, 실제로 그렇게 실천해 온 자의 말로(末路)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선사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으로 한국 사회를 진단하고 통치했던 무능한 자와 어리석은 추종자들의 행악질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다. 부분과 전체, 사실과 진실, 역사와 미래를 두루 통찰하고, 반성적(反省的)인 자세로 우리 시대와 문제와 과제를 깊이 숙고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