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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경견완증후군 주의보

가정이나 직장에서 컴퓨터 앞에 긴시간 앉아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경견완증후군 주의보가 내렸다. 경견완증후군은 온종일 컴퓨터 자판을 치는 등 상체를 이용해 반복된 작업을 지속했을 때 나타나는 목, 어깨, 손목의 통증을 가리킨다.흔히 ‘오십견’으로 불리는 유착성 관절낭염, 테니스·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자주 호소하는 팔꿈치 관절 주위의 통증이 주요 증상으로 나타나는 내외상과염, 잘못된 자세로 오래 자판을 치게 될 경우 겪게 될 수 있는 ‘손목터널증후군’을 가리키는 근막통증증후군과 수근관증후군 등이다. 주로 목, 어깨, 팔꿈치, 손목 등에 무감각, 통증, 뻣뻣함 등을 유발하는데, 1주일 이상 지속하거나 한달에 한 번 이상 이런 증상이 보이면 경견완증후군을 의심할 수 있다. 특히 경견완증후군은 X선, MRI(자기공명영상)를 촬영해도 원인을 알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주의해야 한다.치료는 스트레칭, 약물, 물리치료를 병행하고, 통증이 심한 경우 주사치료를 하게 된다. 치료가 쉽지않은 경견완증후군을 예방하려면 구부정한 자세를 피하고, 바른 자세를 갖는 게 좋다. 증후군 예방을 위한 올바른 자세는 허리는 곧추 세워 등에 골이 만들어지게 하고, 가슴과 어깨는 활짝 편 채 턱을 당기고, 의자에 앉아 있을 땐 무릎의 위치가 엉덩이보다 높지 않게 하고, 엉덩이와 허리의 각도를 90도로 만든다. 소파처럼 푹신한 곳에 앉을 때는 작은 쿠션을 소파와 허리사이에 받치고, 컴퓨터를 사용할 때는 모니터 중심이 사용자의 코앞에 오도록 조절한다.무엇보다 오랜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하는 일은 피하고, 중간중간 휴식과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풀어주는 게 긴요하다. 건강한 삶이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8-19

살아내기

강길수수필가얼마나 아팠을까. 나 같으면 까무러쳐 깨어나지도 못했을 테다. 그런데도 다시 몸을 추스르고, 연녹색 맑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이 의젓해 보인다. 도대체 생명이 무엇이기에, 저토록 억척스러운가.며칠 전 땀을 훔치며 이 곁을 지나갈 때다. 방금 풀을 베었는지 향긋한 풀냄새가 팔월 상순 대낮의 더위를 봄 나비 날개처럼 팔랑팔랑 날려버렸었다. 이 녹지 곁을 하루에 두서너 번은 지나다닌다. 출퇴근과 점심 먹으러 갈 때 다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엔 주로 자전거로 오가지만 그 외의 철엔 걸어서 지나간다.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을 초지로 만든 곳이기에, 자라나는 아이들과 푸른 녹지가 잘 어우러져 저절로 관심을 끌었다. 지금 팔월 초순인데, 내 기억엔 올해 벌써 두 번째 전체 풀베기를 하였다. 교장 선생님이 바뀌었는지 학교 관리가 아니라면 해당 행정기관의 배려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지난 늦봄, 오월 하순께도 풀을 베어냈었다. ‘아직 가을은커녕 채 여름도 되지 않았는데, 웬 벌초인가. 이상하다.’고 그때 생각했었는데 두 달여 만에 또 베어냈다.풀베기를 시킨 이들은, 녹지를 더 깔끔하고 아름답게 유지 관리하기 위해서 베었을 것이다. 하지만 잎과 줄기가 한해살이인 잔디, 쑥, 클로버, 민들레, 개보리 그리고 이름 모르는 외래종들로 어우러진 풀밭이다. 내 생각엔 베지 않고 그냥 한해를 다 살도록 놔두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기도 좋을 것이다. 자연은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지 않은가. 어릴 때 산골에서 자라나며 겪은 삶은 그야말로 있는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것이었다.풀들은 영문도 모르고 한순간 땅 위 몸이 댕강 잘려 나갔다. 그 고통과 상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풀들은 몸을 여미고 재기(再起)를 시작한다. 잘린 경계면 아래 잔디 잎은 끝이 조금 마르며 그대로 자라나고, 곁엔 봄 새싹 같은 순이 다시 돋아난다. 지난 늦봄 벌초를 당했을 때도 풀들은 슬픔을 이겨내고 곧바로 녹지에 정갈한 연록 새봄을 연출하였었다. 오가는 이들과 운동을 하거나 쉬는 사람들, 나아가 날아드는 참새, 까치, 비둘기, 애완견까지 즐겁게 해 주고도 남았다. 특히, 아침 출근길에 새 고사리손마다 동녘햇빛 머금은 영롱한 이슬을 앙증스레 쥔 풀들의 영접을 받는다는 것은, 나에겐 생명의 본모습을 만나는 행운의 시간이다.한여름에 몸 잘린 풀들은 또 하나의 새봄을 이 녹지에 공연하려는 준비가 한창이다. 새싹이 여름의 더위를 잘 이겨낼지 모르지만, 몸을 여미는 모습을 보노라면 틀림없이 한여름의 새봄을 선물할 것이다. 그리되면 나는 한 해에 세 번의 봄 새 생명을 만나는 복을 누리는 사람이 될 터다. 비록 날씨 탓에 이슬 머금은 모습은 못 만날 지라도 한여름에 새싹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한데, 왜 풀들의 고통 앞에서 내 마음이 달떴던 것일까. 호모사피엔스 이래, 조상 대대로 연연히 풀을 먹으며 살아온 사인인 까닭일까. 제 뜻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결정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예초기의 무서운 날에 몸이 반 토막 난 상황. 그 황망함은 보이지 않고, 보려고도 애쓰지 않지 않았는가. 내가 풀이라면, 두 번씩이나 몸이 잘려 나간 처절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 고해의 세상에 무에 미련이 있어, 또다시 살아가려 한단 말인가.마음의 눈에 풀들이 다시 살기 위해 새마을사업이라도 하듯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땅속 물을 빨아들이고, 공기의 이산화탄소를 붙잡아 몸의 탄소동화작용 공장을 가동한다. 설비에서 연록 새잎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새잎은 모양을 갖추며 고사리손이 된다. 손은 땅을 솟아오르며 새봄을 부른다. 공장 가동 소리가 아카샤 기록(Akashic records) 동영상으로 이렇게 저장되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들은 사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살아낸답니다.”라고…. 그랬구나! 풀들이 아름다운 것은, 삶을 살아가지 않고 살아내기 때문이었어. 그래서 몸이 몇 번을 잘리거나 훼손당해도 또 일어서고, 새로 태어나는 삶을 바지런히 살아내고 있었던 거야.올여름 녹지에 태어날 새봄 고사리손엔, 아마도 하늘 빗물이 송골송골하겠지….

2020-08-19

때론 혼자의 시간

때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피치 못해 사회적 관계망에 부대껴야 하는 현대인들. 무리에 섞인 단독자의 자아는 덜컹거리고 욱신거립니다. 한시 바삐 정돈된 자기만의 시공간으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지고 오롯한 혼자를 느낄 때의 해방감과 안온함이란! 다수의 무관심이라는 횡포에 방치된 자아를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말한다면 무리에서 탈출해 자발적 유폐를 지향하는 자아를 ‘군중 밖의 희열’이라 명명할 수 있을까요.우양미술관 소장품전에서 본 그림 한 점을 떠올립니다. 독일작가 요르그 임멘도르프의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Dinner with friends)’. 별 생각 없이 전시작들을 둘러보다가 그 그림 앞에서 발길이 멈춘 적이 있습니다. 가로 5미터가 넘는 유화 작품은 카툰의 성격이라기엔 어딘가 무거워 보이고 일러스트라기엔 풍부한 얘기가 들어있었습니다.어두운 초록빛 배경 속, 긴 식탁을 중심으로 아홉 명의 친구들이 앉아 있습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이를 테면 정치가, 사업가, 협잡꾼, 기자 등등의 타이틀을 단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일견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모임인지라 만찬 테이블이 화려합니다. 재떨이, 꽃병 등 소품 하나하나까지도 신경 쓴 흔적이 보입니다. 고급한 음식과 포도주 위로 정치적 찌라시들이 날아다닙니다. 그래서일까요. 만찬 자리가 그리 편하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자세히 보니 노동자 차림의 붉은 모자를 쓴 사내도 보입니다. 유일한 불청객일까요? 둘 곳 없는 시선을 제 앞의 음식에만 가두고 있습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옆 사람들은 붉은 모자에게는 말조차 건네지 않습니다. 저 건너편, 영향력 있는 두 사람의 논쟁에 귀를 열어 두느라 손에 든 담배조차 잊을 지경입니다. 그 둘은 그들만의 이슈에 빠져 나머지 친구들에게 눈길을 줄 여력이 없습니다.정치인 친구의 속절없는 야심을 보면서 사업가 친구는 줄을 댈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허풍과 위선을 일삼아 온 고급 룸펜은 정치인 친구에게 맞장구를 칩니다. 모두들 눈동자 굴리기에 바쁩니다. 친구들과의 저녁식탁은 하염없이 겉돌 뿐입니다. 포크와 나이프는 어디에 있는지, 포도주 맛은 신지 쓴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치 동상이몽이란 사자성어를 배운 임멘도르프가 회화적 기법으로 그 뜻을 알리려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여기서 그치면 클라이맥스 없는 스토리가 되겠지요. 하단 오른쪽, 관람자를 응시하는 듯한 표정의 화가 자화상이 보입니다. 그림의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현장성을 증명하기 위한 작가의 의지로 읽힙니다. 입을 벌린 채 의자를 뒤로 빼서 앉은 화가는 이 만찬의 내레이터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화가는 저녁식사 자리의 처음과 끝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섯 손가락마다 낀 금반지와 과장된 당나귀 귀로 자신을 희화화해 만찬 자체가 우스꽝스런 퍼포먼스임을 암시합니다. 인간 군상이 모인 곳의 환상에 대한 비틀기를 시도하는 것이지요. 그림 속 화가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니들 알아? 관계는 때로 피로하다고. 손가락에 낀 화려한 반지만큼이나 불편하다고.이 작품에서 자화상은 낭만적 방관자가 아닌 위트 있는 고발자로서 기능합니다. 붓 터치의 적나라한 은유를 통해 사회적 얼개의 위선과 부질없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무리 속의 자아가 겪는, 어찌할 수 없는 혼돈에 대한 알레고리와 풍자로 이만한 그림이 있을까요. 2차 세계대전 전후 작가가 겪은 개인적 트라우마나 사회적 경험이 이런 통렬한 비판 의식을 키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원하든 그렇지 않든 관계가 지속되는 한, 그림 속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같은 상황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초록실 밀실로 표현된 그 공간은 현대인의 낭만적 관계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매개물로 보입니다. 예민한 눈썰미로 세세한 것까지 포착해 공개적으로 고발하는 작가는 어쩌면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연민 서린 그 녹색 분위기를 통해 깊은 성찰로써 관계망 속에서의 스스로를 재조명할 것을 주문합니다. 그래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덜컹거리고 욱신거리는 찌꺼기가 남는다면 그것을 끊어낼 배짱이라도 발휘하라고 조언하는 것 같습니다.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친구들과의 저녁 식탁에 초대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의미한 자리라면 그 사람은 애꿎게도 핸드폰 화면을 터치하거나 진주 귀걸이가 달린 귓밥이나 문지르고 있겠지요. 일부러 손가락마다 반지를 낀 채 위악을 떠는 임멘도르프의 통찰을 흉내 낼 수 없거나, 그 자리를 스스로 성찰할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그 자리를 벗어나 조용히 숲속으로 들어도 좋겠지요. 가까운 숲 모퉁이를 돌아들면 친구들과의 저녁식사를 해설하는 임멘도르프의 자화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2020-08-19

종교와 과학

김규종경북대 교수K-방역으로 불리며 세계적인 찬사의 대상이었던 대한민국에 코로나19 대유행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8월 4일부터 17일까지 2주 동안 신규 확진자 1천126명 가운데 65%에 이르는 733명이 지역 집단감염 사례로 보고되고 있다. 그동안 해외유입 사례는 190명 17%에 불과하다. 8월 12일 서울시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사랑제일교회 관련 확진자는 19일 낮 12시 기준 623명이다. 대구·경북의 최근 사랑제일교회 방문자는 80명이며, 대구에 주소를 둔 시민은 33명이다. 이 가운데 서구와 달성군 주민 2명이 확진자로 드러났다. 경북도민 가운데 교회 방문자는 47명이며, 상주, 포항, 영덕 거주자 5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8·15 광복절 집회에 대구·경북에서는 최소 수백에서 최대 1천여 명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져 집단감염이 가시화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보수 기독교 단체로 알려진 일군의 교회가 기본적인 방역수칙을 어기면서까지 집단감염을 자초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과학의 발전과 비호 없이 종교의 융성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1348년 유럽에서 발생한 흑사병은 신의 징벌이라고 생각되었다. 신의 노여움을 누그러뜨리려고 유럽인이 가장 많이 사용한 방법은 유대인학살과 마녀사냥이었다. 1450년부터 1550년까지 독일에서만 10만 명의 마녀가 화형을 당한다.신의 은총과 사랑으로 흑사병을 극복하려고 교회에 모여 기도했던 숱한 사람이 집단감염으로 죽어 나갔고, 그 후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가 도래한 것은 잘 알려진 바다. 과학은 자신의 이론이나 방법론이 잠정적이고 수정되어야 할 것이라 예상하며, 그것이 완벽하거나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에는 나만 옳다거나 나만 진리라고 주장하는 도그마가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은 관찰과 실험, 반복-검증된 결과를 토대로 잠정적인 진실을 주장한다. 종교는 예배 공간과 교리 그리고 개인의 도덕률을 전제로 성립한다. 모든 종교에는 나름의 예배 공간이 있다. 그곳은 대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유산으로 남겨져 있다. 그런데 종교의 교리는 영원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차이를 드러낸다.개인의 도덕률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지만, 그 고갱이는 공동체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특정 종교집단의 존립과 번영을 위해 다수 공동체가 희생을 감내하고 죽음조차 불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신앙의 자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주장이 타자의 파멸과 죽음을 불러온다면 그것은 철회해야 마땅하다.종교와 과학은 인간 생활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다. 과학에 기초한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을 고려하면서 이제 종교도 타자와 공존하는 법을 심도 있게 숙고해야 할 때다.

2020-08-19

8월 학교 운명은?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선생님, 2학기부터는 매일 등교하래요.”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중학교 1학년 자녀가 필자를 보더니 도저히 자신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지듯이 물었다. 필자의 놀람에 아이는 더 큰 소리로 말했다.“선생님, 만약 우리가 코로나에 걸리면 국가가 책임 져 주나요? 학교에 가면 수행평가밖에 하지 않는데 왜 학교에 오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께서 말씀 좀 해주세요.”아이는 정말 진지하게 말하였다. 그 어조를 그대로 옮길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이를 만나기 며칠 전 필자는 아이의 놀람이 담긴 공문을 보았다.“현재 감염병 위기 단계인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를 전제로, 지역사회 여건 및 기초학력 보장 등을 위한 대면 수업 확대 요구를 반영하여, 전교생 매일 등교수업을 권장함.”이제는 매일 등교수업이 이상한 시대가 되었다. 또 교육청에서 등교를 권장하는 시대라니 필자는 너무도 낯선 지금의 상황에 코로나 멀미가 날 지경이다.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하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학부모와 학생 중 코로나19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일명 코로나 트라우마로 등교를 거부하는 이들이 늘면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하나?매일 등교가 낯선 것은 분명 학생들만이 아니다. 과제 학습에 익숙해진 교사들은 낯섦을 넘어 짜증이 날 것이다. 걱정보다는 편함을 반납해야 하는 그 심정은 어쩌면 짜증을 넘어 화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그 화가 부디 학생들에게 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과연 지금까지 원교 수업이라는 명목으로 낸 그 많은 과제를 교사들은 평가했을까? 물론 학생 개인별로 피드백을 해준 교사도 있다. 그리고 그 과제를 정리하여 책으로 만든 교사도 필자는 안다. 그런데 필자가 아는 아이 중 학교에서 과제에 대해 정확하게 피드백을 받았다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 피드백 대신 벌점을 받은 아이들을 필자는 알고 있다.익숙해진다는 것의 방향은 늘 자기 쪽이다. 그 방향은 익숙함의 정도에 정비례한다. 익숙함이 강해질수록 다른 사람의 다른 생각은 안중에도 없게 된다. 혹 누가 뭐라고 하는 순간 그 사람과의 관계 앞에 적대(敵對)라는 말이 붙는다. 그것은 학생도, 교사도 마찬가지이다.이 글을 쓰고 있는데, 지인으로부터 댓글을 잘 읽어보고 답을 좀 해대라는 메시지가 왔다. 지인은 “교육부 2단계에도 교사는 출근 이후 등교·원격수업이 원칙”이라는 기사에 달린 댓글을 말하고 있었다. 필자는 댓글을 모두 읽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광복절 기념 축사를 다 듣지 못하고 구역질 때문에 채널을 돌린 그때의 느낌과도 같았다. 교사와 일반인으로 편이 나뉘어 싸우는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렸다.그리고 직감적으로 이제 이 나라 교육도 문을 닫아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학교가 학교 기능을 하지 못한지가 오래이지만, 그래도 좋든 싫든 학생들과 교사들은 학교에는 갔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학생과 교사 모두 학교를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무슨 교육이 되겠는가! 자율성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8월 학교 교육도 글렀다.

2020-08-19

집 사서 부자 되는 사회를 살아가며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중.친구들과의 술자리는 내겐 가장 큰 낙이었다. 신해철 노래처럼 ‘고흐의 불꽃같은 삶’이나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에 대해 이야기 한 건 아니지만 설익은 머리로 쥐어짜낸 개똥철학을 나누는 게 좋았다. 아니면 재밌게 본 영화 얘기, 재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뒷담화, 요즘 만나고 있는 사람 이야기, 야구 이야기, 음악 이야기, 그냥 영양가 없는 우스갯소리들. 그렇게 다채롭게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 좋아 그렇게 술을 마셔대곤 했다. 그런데 서른이 지나고 언젠가부터 술자리의 재미가 뚝 떨어져버렸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밤새워 침 튀어가며 떠들던 이야기들이 머물던 곳에는 새로운 이야깃거리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량주니 잡주니 하는 주식 이야기, 누구랑 누구의 팔자를 고치게 해 주었다는 가상 화폐 이야기, 그리고 요즘은 뭐니 뭐니 해도 부동산 이야기. 어제 만난 친구들도, 그 전에 만난 친구들도 한참을 부동산에 대해서 떠들었다.친구 A가 무리한 은행 대출로 집을 사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를 말렸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더 큰 집이 필요해질 텐데, 무리해서 집을 살 필요가 있겠느냐고. 이미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서울 집값이 설마 더 오르겠냐고. 그런 나의 이야기를 비웃듯 집값은 폭등했고, 친구는 그 재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A 본인에게는 성공신화일지 모르겠으나 자리에 있던 나머지들에게 그 이야기는 다소 허탈했다. 늘 그랬다. 가상화폐 투자로 누가 대박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어디 어디 주식을 사서 재미를 쏠쏠하게 봤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나는 무언가 허탈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투자가 성공신화로 다가올 때, 대부분에게는 그때 빚을 내어서라도 했어야 하는 것, 그렇게 하지 못해 원통한 것이 되어 돌아온다.어느 날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1991년으로 날아가한창 잘 나가던 30대의 우리 아버지를 만나 이 말만은 전할거야아버지 6년 후에 우리나라 망해요 사업만 너무 열심히 하지 마요차라리 잠실 쪽에 아파트나 판교 쪽에 땅을 사요 이 말만은 전할거야-강백수 ‘타임머신’ 중.사회적 성공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대개는 비약적인 경제적 성취를 사회적 성공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노동이나 자영업, 소규모 사업 같은 행위를 통해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순진한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성공을 위해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분야는 어떤 때는 주식이었고, 어떤 때는 가상화폐였으며, 언제나 부동산이었다. 이런 사회에서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고 작은 ‘사업만 너무 열심히’하다가 ‘6년 후에 우리나라 망’하며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우리 아버지나,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도 글 쓰고 노래를 지어 부르는 노동을 통해 언젠가는 대단한 부는 아니더라도 가족들 번듯하게 건사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성취를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 나는 바보가 되어버리고 만다.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현재를 버텨나갈 수 있는 동력과 미래에는 현재보다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동시에 필요하다. 그것을 위한 일이 아버지에게는 작게나마 사업이었고, 내게도 어설프게나마 대중예술이다. 현재를 살아나가기 위한 동력으로서도 위태롭기만 한 직업인데, 지금보다 미래에 상황이 비약적으로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언제나 희박하기만 했다. 그나마 ‘좋은 직업’이라 여겨지는 안정적인 직업들을 가진 친구들 역시 현재를 살아나가는 데에는 유리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것은 까마득하기만 하다고 말한다. 노동으로 삶이 나아질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방법은 오로지 투자, 부동산일 수밖에 없다.정부는 8월 4일, 새로운 부동산 대책을 내어 놓았다. 그런데 이 대책이 정말 새로운 대책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포털사이트에 ‘부동산 대책’이라고 검색했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8.4 부동산 대책만 있는 게 아니라 7.10부동산 대책이 있었고, 6.17 부동산 대책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대책까지 현 정부는 스무 번이 넘는 대책을 내어놓았다는 것. 현 정부만 그랬을까, 여태까지 어떤 정부도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막아낸 적이 없다. 그러니 내 친구들은 누구도 이번 대책이 부동산 폭등 현상과 투기를 훌륭하게 막아낼 거라고, 집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 될 거라는 오래된 이야기를 현실화 할 거라고, 20년 넘게 이루지 못한 숙원을 정부가 이루어낼 거라고 믿지 않는다.나라의 똑똑한 분들이 다 같이 모여 머리를 맞대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나라고, 우리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 어쨌거나 우리는, 동풍에 나부껴 눕고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떼기 같은 우리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고, 그 와중에 헌법에 적혀있는 것처럼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한다.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라도 정보랍시고 주고 받아야 하고, 집 잘 사서 부자 된 친구들을 칭송하며 그들로부터 뭐라도 비결이 있을까 기웃거려야 하고, 없는 살림에 어떻게든 빚을 져서라도 내 인생을 역전시킬 집 한 칸을 살 궁리를 해야 하고, 그 조차도 어렵고 어두운 나 같은 애들은 멍한 얼굴로 그렇게 재미없는 대화들이 오가는 술자리에서 아무래도 나는 잘못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나 하며 지루함을 견딜 수밖에.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중.여러 정부를 거치며 많은 분들이 개선을 위한 노력이야 해 오셨겠지만, 나는 진실로 이러한 현실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발 빠르게 집을 얻고, 그 집의 가격이 오르는 것으로 우리 인생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난다는 것은 사회 구조에 무언가 잘못된 점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부동산을 비롯한 투자정보가 풍요롭기 위한 필수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모든 이들이 제 자리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하는 것만으로 남부럽지 않은 풍요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즐겁기 위해 모인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누군가가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하며 ‘불안한 맘’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부디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어 모두가 투자, 혹은 투기에 목메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이 모든 일들은 과연 가능할까.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정부와 의회의 역할이겠지. 나는 그런 세상을 기다리며 내가 있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러니까 부동산과 주식과 가상화폐의 은혜로부터 소외된 이들과 공감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일을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자신의 역할인 이들이 꼭 그렇게 해 주리라 한 번 더 믿어보며.

2020-08-18

코로나와 트로트, 한국 정치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루한 장마같이 코로나의 위험은 계속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기를 끌었던 방송 프로는 트로트 열풍이었다. 어느 종편에서 시작한 여성 트로트 경연은 여러 방송으로 확대되어 방송가를 뒤흔들었다. 뒤이은 남성 트로트 경연은 더욱 인기 프로그램이 되어 여러 명의 신인 가수를 배출했다. 그간 젊은 세대들이 거부하고 인기 없었던 트로트가 다시 부활하는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의 비극이 이 땅에 트로트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코로나 시대 트로트를 들으면서 한국 정치의 파행을 생각한다. 방송가에서 트로트가 다시 각광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트로트는 한동안 뽕짝으로 불려지며 젊은 세대로부터 외면 받았다. 우선 코로나 시대의 비대면 문화가 가족들을 TV 앞으로 불러 모았다. 코로나라는 비극적 상황이 트로트를 통해 심리적 위안을 초래한 결과이다. 트로트 특유의 슬픔과 이별, 한이 서린 노래 가사는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제가 되었다. 트로트에 심취한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트로트가 힐링 수단이 되고도 남았다. 전쟁과 비극, 가난과 보릿고개, 이별과 달뜨는 저녁, 봄바람과 연분홍 치마는 자신의 희망봉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파행적인 정치 현실은 아무런 위안도 희망도 주지 못했다.트로트 가수는 시청자들에게 노래로서 마음을 위로하는데 우리 정치인들은 민초들의 희망마저 빼앗아 가 버린다. 트로트는 민초들의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묶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가슴에 불만 지르고 갈라놓았다. 검찰 개혁, 부동산 정책, 비리 수사 등은 본질에서 멀어져 국론 분열만 조장하고 있다. 우리 정치는 여전히 이념 과잉과 진영 대립, 지역적 틀에 묶여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이번 트로트 경연은 연줄이나 배경보다는 공정한 룰을 통해 신인을 과감하게 선발하였다. 나이, 연령,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실력으로 승패를 갈랐다. 내공과 실력을 쌓은 무명 가수도 판정단의 공정한 심사와 일반 관객의 투표로 선발되었다. 솔직히 트로트 경선 방식은 한국 정치의 대선 후보나 당대표 선거과정 보다 공정성이 담보되었다. 우리 정치도 이제 패거리 정치, 마타도어, 흑색선전 정치를 탈피해야 한다. 우리 정치도 이제 트로트 경선처럼 배경과 힘없는 흙 수저가 등판하여 성공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우리 한류는 이제 곳곳에서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코로나의 ‘K 방역’도 세계적 모범으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아직도 OECD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우리 경제 수준에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의 정치도 이제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정치로 재탄생해야 한다. 경선을 마친 트로트 가수들의 상호배려 하는 정신이라도 배워야 한다. 아직도 우리 정치는 상호 비방과 폄훼를 일삼고 승자 독식, 패자 거부의 저주의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우리 트로트 계에는 존중받는 원로들이 여럿이지만 우리 정치계에는 아직 존경받는 정치 지도자 한 명 없으니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2020-08-18

저 이런 사람입니다만….

박화진지킴랩 기업탐정본부장전 경북지방경찰청장처음 만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파악하는 일이란 만만찮다. 예고된 만남인 경우에는 직장, 지위, 세평 등 여러 정보를 가지게 되어 상대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된다.우연한 만남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상대에게 자신을 구구절절 소개하는 것, 상대방이 인내하며 듣고 있을 리 만무하고 예의도 아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oo물산 대표 홍길동’, ‘ oo부 국장 아무개’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 대부분은 자신의 직장, 직위,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가지고 있다. 가벼운 인사말과 함께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라는 명패 교환이 이루어진다. 눈길은 순간 상대의 이름 앞에 새겨진 수식어에 먼저 가게 된다. ‘기업대표군’,‘꽤 높은 나랏일 하는 사람이네’,‘쳇, 월급쟁이잖아’, ‘오잉, oo사!, 전문직 고소득자’ 짧은 시간 안에 인간상품 등급이 매겨진다.허름한 차림과 어눌한 말투 탓에 가볍게 대접받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이름 앞 수식어 때문에 순식간에 상대로부터 겸양의 말과 상석을 양보 받는 간사한(?) 리액션이 펼쳐진다.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릴 일은 아니다. 직업으로 등급 매겨진 인간역사는 유구하니까. 누구나 이삼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100여명에게는 족히 뿌릴 수 있는 명함이 사회생활 기초용품이 된 지 오래다.명함이 어느 날 벼랑 끝에서 갈 길을 잃게 된다. 이직, 실직, 퇴직이 되면 이름은 있는데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날아가게 된다. 명함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슬픈 눈동자의 소녀처럼 유폐된 자신을 바라보는 일상에 사람 만나기가 꺼려진다. 막상 알지 못하는 사람과 접촉하게 되면 구차해진다. ‘한 때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과거형 문장이 왠지 어색함을 넘어 비굴함마저 든다.퇴직한 선배와 조우한 적이 있다. ‘oo기획 감사 왕선배’ 새로 취업했다며 명함을 건넨다. 새로운 일자리로 뒷방노인 신세를 탈출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그런데 명함 뒷면에 노안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읽기 힘든 빽빽한 활자가 가득 차 있었다. 현역시절 본인의 화려한 경력이 이력서처럼 빼곡히 순차적으로 새겨져 있었다. 제법 거물로서 활동했던 이력이 맨 위에 올라 있었다. 지금은 이런 일하지만 한때 ‘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메마른 성대로 최대한 힘을 주어 웅변을 내뱉는 것 같았다. 그의 빛바랜 투혼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잊혀져가는 자신을 소개하는 친절한 방법을 구사하는 재빠른 재사회화의 기법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명함에 새겨진 이름 앞의 수식어로 사람을 오롯이 등급매기는 세태가 현실이기 때문이다.‘oo엄마’의 실종된 명함은 어쩔건데? 전업주부들의 항의가 귓전에 아른거린다. 앞면에 ‘위대한 대한민국 전업주부 ooo’. 뒷면에는 ‘아들 둘 모두 현역병에 차출시킨 위대한 애국엄마, 찌질이 남편을 대기업 사장반열에 올린 내조의 여왕, 동네방네 정보수집과 밑바닥 민심을 샅샅이 꿰차고 있는 열혈 아줌마 등등’, 전업주부로서 화려하고 찬란한 직책과 이력을 새겨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어떻겠습니까?(급 존대어를 쓰게 된다)

2020-08-18

제국과 코로나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임진왜란 당시 노량해전에서 남긴 이 충무공의 말이다. 이 유언은 승정원일기와 류성룡의 징비록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적에게’라는 말은 실제로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같은 유언을 남긴 사람이 또 있다.몽골제국의 기틀을 다졌던 칭기즈 칸이다. 그는 서하 정복을 앞두고 낙마사고 끝에 병사하면서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적이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절대로 곡을 하거나 애도하지 말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가 사망한 날짜가 1227년 8월 18일, 바로 어제였다.몽골제국.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나라이다. 몽골제국의 영토는 최대 3,300만㎢에 이르러 유럽과 중근동을 지배했던 로마제국의 6.6배나 되었다고 한다.고려는 칭기즈 칸 사후인 1231년에 첫 침공을 받은 후 1257년까지 몽골과 아홉 차례의 전쟁을 치른 끝에 결국은 패배하여 몽골의 간섭을 받은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삼별초의 대몽 항쟁과 같은 끈질긴 저항과 협상을 통해서 명목상으로는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다.경기도 강화 고려궁터, 용인 처인성, 제주도 항파두리 토성, 그리고 경상북도 상주 백화산성 등 우리나라 곳곳의 항몽 유적지는 몽골의 침략과 간섭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고 또 고려의 민중들이 얼마나 거세게 저항하였는지를 엿보게 해 준다.전 세계를 말발굽 아래 초토화시켰던 몽골제국은 1271년 국호를 원으로 개칭한 후 100년도 되지 않은 1368년에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은 몽골이라는 이름만 겨우 이어받은, 러시아와 중국의 사이에 위치한 영토도 경제력도 미약한 나라로 쪼그라들었다.우리나라에는 여성 한복의 족두리, 신부의 뺨에 찍는 연지 등의 풍습과 ‘송골매, 보라매, 가라말, 조랑말, ~아치’ 등 몽골어의 흔적만을 남겨 놓았다.몽골제국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을 만들어내었던 로마제국도 사라지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었던 대영제국도 찬란했던 빛을 잃어버린 오늘날, 코로나가 지구 전체를 휘감은 채 세계인을 위협하고 있다.2020년 8월 18일 낮 3시 현재, 코로나는 2천2백만 명이 넘는 확진자와 78만2천여 명의 사망자를 기록하며 세계 214국에 퍼져 있다. 가히 코로나제국이라고 할 만하다. 창칼과 총도 없고 기마대도 탱크도 비행기도 없는 코로나 군단은 조용히 그러나 세차게 전 세계를 정복하고 있다. 그 강하고 무서운 힘을 우리는 지금 처절하게 경험하고 있다. 잦아드는가 했던 우리나라의 코로나도 최근 다시 확산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칭기즈 칸은 죽었지만, 코로나는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로마제국과 몽골제국과 대영제국이 사그라든 것처럼, 14세기 유럽에서 1억 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간 흑사병(페스트)이 종식된 것처럼 결국에는 코로나제국도 사그라들 것이다. 그렇다고 피해를 빤히 바라보면서 사그라들 때까지 그냥 방치할 수는 없다.방역 당국과 더불어 우리 국민들은 더 철저한 방역과 재난 극복의 노력에 동참하여야 한다. 지금은 함께 할 때이다.

2020-08-18

민심무상(民心無常)

민심은 말 그대로 백성의 마음이다. 통치자 입장에서 보면 대중의 심리를 이르는 말이다. 통치권자가 법보다 대중의 요구를 중시하게 되면 국가의 통치기능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민심이다.국민정서법도 이런 배경의 용어다. 실정법에는 어긋나지만 국민의 법 감정에 호소하여 법보다 우선하여 판단하는 경우다. 법 경시 풍조를 유발할 소지가 있다. 그럼에도 국민정서법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민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예로부터 민심을 천심이라 불렀다. 세상 민심이 곧 하늘의 뜻이란 말이다. 민본주의나 민주주의의 민(民)은 백성을 말한다. 맹자가 민본사상을 주장한 것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평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민(爲民)정치가 같은 말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도 같은 의미다. 헌법 1조에 표기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의 참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민심무상은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이다. “백성의 마음은 일정하지 않다(民心無常). 군주가 선정(善政)을 베풀면 사모(思慕)하고 악정(惡政)을 하면 앙심(怏心)을 품는다”고 했다. 불교에서 무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민심무상은 백성의 마음이 혜택을 주는 쪽으로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이다.민심을 요즘 말로 표현하면 여론이다.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에 줄곧 뒤져왔던 미래통합당 지지율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처음으로 여당을 앞섰다. 100년 집권을 운운하던 여당에 비상이 걸리고 야당은 야당대로 민심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운다.예로부터 민심을 물에 비유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 정치권이 민심무상의 의미를 잘 새겨야 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8-18

때로는 말씀보다 무거운 침묵으로… 영동 영국사(寧國寺)

산세가 빼어나 충청북도의 설악산이라 불리는 천태산, 그 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영국사를 찾아 내비게이션에 하루를 맡긴다. 차는 산길을 한참 올라 화전민들이 살았을 법한 평평한 고원지대로 들어서고, 한 때는 밭이었을 것 같은 평지와 드문드문 몇 그루의 호두나무들이 보인다.영국사는 법주사의 말사로 527년에 원각국사가 창건했다. 그 후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해 절을 국청사라 부르고 지륵산이던 산 이름을 천태산이라고 했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원 마니산성에 머물며 이절에 와서 기도를 드린 뒤 국태민안이 찾아와 영국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천연기념물 제 223호인 영국사 은행나무는 어떤 모습으로 반길지 내심 기대가 컸는데 첫 만남이 실망스럽다. 축대 아래에 자리를 잡은 터에 700년 된 고령의 은행나무는 나이에 비해 어딘지 왜소해 보인다.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소리 내어 운다는 나무, 불교가 전래되어 들어올 때 같이 들어 왔다는 설로 수령이 부풀려지기도 하는 은행나무가 사진과는 많이 다르다.절 앞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하고, 만세루는 보수 중이라 분진 방지막을 두른 채 어수선하다. 고령의 은행나무와 절 사이에 주차장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먼 길을 달려왔지만 나무와 나는 어떤 교감도 나눌 수 없다. 축대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서자 나무의 웅장함이 비로소 보인다.또 하나의 길이 계단 아래로 이어져 있고 그 길을 따라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내려가고 있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일주문 쪽의 광경이 그제서야 잡힌다. 나는 두 갈래의 길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힘이 빠진다. 어떠한 노력이나 수고로움도 없이 무례하게 절의 옆구리를 박차고 들어온 셈이다.한참 동안 나무를 올려다보지만 그의 시선은 먼 곳을 응시할 뿐이다. 쉽게 얻은 것일수록 감동은 적고 쉬이 잊혀질 수밖에 없다. 편리함에 중독되어 가는 현대인들의 난치병과 우리가 잃어야 할 것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마음을 씻으며 일주문을 들어설 때의 감회와 고령의 은행나무 아래에서 겸허하게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나무는 품격이 넘치지만 미동도 않고, 나는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언어 이전의 언어를 애타게 불러본다. 풀벌레 소리 가득한 산중에 밤이 찾아오면 달과 별들 모두 내려와 은행나무에 깃들리라. 새벽을 여는 도량석 목탁소리에 밤새 피안에 들었던 나무는 또 하루를 열 것이다.양산 팔경 중 일경에 속한다는 곳, 영국사를 찾는 방문객은 의외로 많았다. 그에 비해 절은 소박하다. 마당을 지키는 단아한 수형의 단풍나무가 눈길을 끌고, 그 옆에는 오래된 보리수나무 한 그루가 보물 제 533호인 삼층 석탑을 지킨다. 그 석탑은 또 대웅전을 지킨다. 서로가 서로를 향한 시선은 오로지 한 곳으로 모아져 있다. 나만 홀로 무언가를 찾아 절간을 두리번거린다.바깥에서 바라보는 것과 달리 대웅전 법당에서 바라보는 한여름 풍경은 여유롭다. 낯설고 어색한 마음을 가라앉힐라치면 모습을 감춘 만세루의 정경이 안타깝게 아른거린다. 오늘따라 부처님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법당에 앉아 정신없던 한 주를 돌아보고 싶은데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다.경내는 약속이나 한 듯 침묵 속에 잠겨 있고, 700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도, 한 가닥 희망을 안고 백팔 배를 올린 부처님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다시 먼 길을 돌아갈 생각에 마음만 초조해져 온다. 법당을 나와 천태산 주봉 쪽으로 100m쯤 올라간 곳에 있었다는 옛 절터를 멀리서 더듬어 보다 발길을 옮긴다.또 다른 보물이 있다는 이정표를 따라 산길을 오른다. 개발을 서두르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흙길이 말을 걸어온다. 당신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느냐고. 보물 제 534호 원각사비와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를 보물 제 532호 팔각원당형 승탑조차 감흥 없이 둘러본다. 한여름의 태양을 이고 그 뒤로 이어지는 산길을 무작정 걷고 싶다. 소나무 그늘에 앉아 있는 나를 석종형 승탑이 지긋이 바라본다. 내 앞에는 높은 곳을 향해 모든 것을 버렸을 맑은 생 하나 말없이 서 있다.조낭희 수필가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나는 심사숙고하지 않았다. 더 이상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음에도 단호히 뿌리치지 못했다. 절 기행은 자연히 뒤로 밀려났고 나는 시간을 다투며 절을 찾아 나서야 했다. 어쩌면 영국사의 침묵은 예고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모든 일에는 과정의 무게가 따르는 법, 그것을 기꺼이 짊어질 용기도 없이 섣불리 절 문을 두드렸다.솔밭에서 만난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끊어진 길 앞에서 홀로 서성이고 있는 나, 그 모습은 장마가 할퀴고 간 상흔보다 더 남루했다. 영국사의 침묵은 그런 나를 향한 엄중한 경고였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내려오는 길에 대웅전을 향해 두 손 모을 때 내 안에 길이 보인다. 희미하게 영국사도 보인다.

2020-08-17

거대한 풍경에 놓인 정물(사람)의 삶

‘2천년의 도시가 2년만에 잠겨 버린 곳’ 샨사는 차오르는 댐의 수위와 함께 떠나가고, 잠기고, 무너지는 과정을 겪는다.영화 속 모든 풍경은 잠긴 것과 잠길 예정인 것, 무너져 내리는 것들과 그 위에 새롭게 건설된 것들의 연속이다.이러한 풍경 속에서 사람은 댐의 수위에 따라 떠나가고 이동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어느 누구도 감격스러워 하거나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노자가 말한 물의 이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영화 속 산샤에 들러붙어 살아가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시간은 댐의 수위가 차오르는 과정까지의 시간이며, 그 시간 속에서 한정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긍정과 부정이 없으며, 기쁨과 분노가 모두 차오르며 흘러가는 물을 닮은 사람들.‘스틸 라이프’는 산샤댐 건설의 과정과 피해, 개발에 밀려 황폐해져가는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새롭게 건설되는 것보다 무너지고 잠기는 것들이 더 빠른 속도를 내는 곳에서 과거에 묶여, 혹은 그 과거를 확인하기 위해 산샤를 찾거나 산샤에 머문다.산샤(三峽)로 한 남자가 스며든다. 16년 전 떠난 아내가 남긴 주소가 적힌 쪽지 한 장을 들고 아내를 찾는다. 이미 그 주소는 수몰지역이 되었으며, 철거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휴일이면 아내를 찾아 나선다.소식이 끊긴지 2년 째 남편을 찾아 산샤로 찾아든 또 한 명의 여자. 그녀 역시 산샤의 풍경을 배경으로 남편을 찾아 산샤를 떠돈다.지아 장 커 감독의 영화 ‘스틸 라이프’는 산샤라는 공간, 하루 하루 모습을 달리하는 그곳이 주인공이다. 그 주인공이 배경이 되고 은유가 되어 풍경 속에서 하루 하루를 버텨가는 인생들을 배치시킨다. 2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가 16년의 공사를 거쳐 단 2년만에 물에 잠겨 버린 곳으로 16년전 헤어진 아내를 찾아 2년 째 소식이 끊긴 남편을 찾아 산샤를 찾아 온 것이다.샨샤가 변화를 거친 기간과 그곳으로 스며든 이들의 시간이 나란히 병치된다. 지폐속에 남은 산샤의 아름다웠던 풍경을 이야기하고, 아직도 남아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화면에 놓는다. 그 속에 100만 명 이상의 사람이 이주했으며, 유구한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했던 장소가 어떻게 수몰되어갔는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아름다웠던 과거의 풍경과 아름다운 지금의 풍경이 교차된다. 자연이 만든 풍경과 인간이 만든 풍경이다.자연이 만든 풍경이 물 속에 잠겨 갈 때, 인간이 만든 풍경은 스스로가 만들었던 것을 허무는 과정에 드러나는 폐허의 아름다움이며, 그 폐허 위에 장엄하게 건설된 다리와 댐의 모습이다. 영화 속에서 두 번의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두 스스로가 만들어 낸 아름다움 위에서 인간은 춤을 춘다.풍경이 주인공인 영화 속에서 그저 지금, 이 영화의 시간 속에서 제3기 수위가 차오르기 직전인 2기와 3기 사이의 한정된 시간이 보여주는 풍경과 그 풍경에 둘러붙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놓인다. 짧게 등장하고 퇴장하는 이들의 모든 사연은 깊이와 넓이가 있겠지만 카메라는 그 속에 머물지 않는다.그렇게 영화는 끝까지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몇 개의 약속을 하지만 그 약속이 희망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다.그렇다고 불행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도 않다. 구구절절한 사연과 현재의 모습이 불행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가늠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잣대가 존재하지 않는다.철거의 과정에 유적이 나와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 이들과 철거 현장에서 끊임없이 무너뜨리는 이들과 그 위에 거대한 공사를 완성한 이들 모두가 산샤댐 수위에 맞춰 살아가는 삶이다. 거대한 공간(혹은 풍경)이 주인공인 영화 속에서 인간은 영화의 제목처럼 하나의 ‘정물’로 머문다.그 ‘정물’은 댐의 수위에 따라 위로 이동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떠나갈 것이다. 영화 속 풍경과 정물 속에서 UFO가 하늘을 날고, 창밖으로 보이던 건물이 갑자기 로켓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을 목격하더라도 놀랍거나 당황스럽지 않다.그것은 영화 속 풍경(산샤)에 놓인 정물(사람)의 삶이 어떤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놀랍지 않은 모습으로, 역사가 수몰되고 새로운 건설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문화기획사 엔진 42 대표

2020-08-17

공인의 봉사활동

강희룡서예가공자가 제시한 사람을 관찰하는 방법은, 먼저 그 행위를 보고, 다음은 어떤 동기에서 그런 행위를 했는지를 살펴보고, 진정으로 기꺼운 마음에서 한 행위인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사람이 어찌 자신의 속마음을 숨길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하지만 드러난 행위 이외에 그 동기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측은지심이나 즐거워서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이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늘 남의 행위에 대해 의심하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것이 위선자가 선인인 것처럼 행세하는 경우일 것이다. 사람들이 그 이면을 다 들여다보고 있는데도 그럴듯하게 궤변으로 포장해서 남의 이목을 속이려 드는 행위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게 되고 분노까지 느끼게 된다. 특히 공인의 경우에는 국민들은 더욱 화가 치밀게 된다. 예컨대 2017년 7월 봉사활동을 위해 청주 수해 현장을 찾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황제 장화 논란이다. 당시 홍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초청한 청와대 오찬에 불참하는 대신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수해현장을 찾았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 준비된 장화를 신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장화를 신은 게 아니라 관계자가 허리를 숙여 신겨줬다. 봉사활동 시간도 45분 늦게 현장에 도착해서 실제 작업한 시간은 약 1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이날 자신의 봉사활동을 페이스북에 ‘오랜만에 해 보는 삽질이라 서툴렀지만 흡족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실제 피해를 당한 주민들에게는 봉사로서의 도움이 되지 못하고 민폐만 끼친 것이다.올해 장마는 유난히도 길고 국지적으로 폭우가 쏟아져 그 피해가 엄청나다. 정의당 대표 심상정 의원이 경기도 안성의 한 수해현장에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허나 수해복구를 도왔다기엔 옷차림과 신발이 누가 보아도 너무 깨끗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정의당에서는 심 대표가 보여주기식 봉사를 한 게 아니라고 변명했지만 긴급복구 현장에 실질적 도움이 못되면서 민폐만 끼친 예견된 결과가 입증된 것이다. 또한 청와대가 ‘문의가 많아 알려드린다.’며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수해 복구 현장 봉사활동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이 사진을 두고 여당 인사들이 김 여사 ‘예찬경쟁’에 나섰다. 정청래 의원은 12일 페이스북에 ‘그 어떤 퍼스트레이디보다 자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썼으며, 민주당 8·29 전당대회 최고위원에 출마한 노웅래 의원이 김 여사와 2017년 허리케인 하비의 상륙으로 멜라니아 여사가 하이힐에 선글라스 차림으로 등장한 재난패션을 비교하며 ‘클래스가 다르다’는 찬사를 보냈다. 민주당 최민희 전 의원도 김 여사의 ‘진짜 봉사’라고 칭찬했고, 진혜원 대구지검 부부장 검사는 ‘진정성과 순수함을 느끼게 된다며 측은지심을 구비한 분에게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어떤 이들이 청와대에 김 여사 봉사를 문의해서 사진을 올렸는지 모르지만 눈치 살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런 얄팍한 아부성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행위에 국민들은 혀를 내두른다. 봉사는 음덕(陰德)의 일종이다. 누구라도 봉사활동을 여러 통로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 이익을 취하려 한다면 이미 ‘봉사’로서의 가치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2020-08-17

창백한 푸른 점

김현욱시인보이저(Voyager) 호는 1977년 8월 20일과 9월 5일에 각각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발사한 무인 우주탐사선이다.8월 20일에 발사된 것이 보이저 2호, 9월 5일에 발사된 것은 보이저 1호다. 보이저 2보다 보름 정도 늦게 출발했지만 보이저 1호는 지름길을 이용하여 1979년 3월에 목성을, 1980년 11월에는 토성 가까이 접근했다. 그리고 1990년 2월 14일, 태양에서 61억km 떨어진 지점에서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촬영한 사진을 전송하였다. 그 사진이 바로 칼 세이건(1934~1996·미국의 천문학자)의 유명한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이다. 당시 보이저 계획의 화상 팀을 맡았던 칼 세이건은 이 사진을 보고 동명의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저서에 이렇게 소감을 적었다.“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 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 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중략)저 작은 픽셀의 한 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앨 고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의 마지막에 이 사진이 삽입되었는데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라는 칼 세이건의 말을 인용했다. 지구 온난화를 지금 당장 멈추게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앨 고어는 이 사진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상 기후의 징후는 세계 곳곳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창백하게, 두렵다.

2020-08-17

지역 문화예술과 전통공예를 살리자

최근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코로나19의 백신 개발에 나섰으나 일단은 러시아가 한발 먼저 내디딘 모습이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 이 백신이 공인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주요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듯이 과연 러시아 의료산업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백신 개발임을 증명할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국익을 우선한 또 다른 웃음거리의 하나로 끝날 것인지도 함께. 이와 별개로 세계 각국의 정책당국자들은 여전히 자국의 경제회복과 고용 창출에 모든 정책적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처럼 어떤 국가나 지역이든지 모든 분야에 걸쳐 총체적인 위기를 맞이하게 되면 지원대상에서 가장 뒷전에 놓이는 분야가 있다.어쩌면 아예 머리에서 떠올리지 못할 수도 있다. 바로 음악, 전통공예, 미술, 역사나 국학연구, 문학 등 해당 국가나 지역의 정신문화와 연관성이 깊은 문화예술, 인문분야다. 일반적으로는 의식주 문제부터 해결하고 나서야 국악이나 판소리와 같은 민족 예술 공연에 눈을 돌리고, 마음에 여유가 생겨야 향토사 등 인문분야를 살펴보게 되며, 전통공예나 현대 작가들의 미술작품 전시회를 둘러보며 소장 욕구를 키우기 마련이다. 현대 물질문명 사회에서 정신문화가 밀리는 것은 그만큼 삶의 여유를 찾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당연히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국가 경제 전반의 위기상황에서는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문화예술 분야가 큰 타격을 입게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국가나 가계가 부유하더라도 문화예술, 인문분야에 대한 수요는 제한적이기 마련이다. 체질적으로 문화예술의 소비는 사람들이 모여, 접촉하고, 대화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인데 비대면, 비접촉과 더불어 이동 자체가 제한되는 이번 사태는 문화예술인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실제 일본의 전통문화예술계는 최근 그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본 전국에서 전통공예품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367개 사업체 가운데 지난 4월 매출액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0% 이상 줄어든 업소가 56%에 이르며, 이들 중 약 40%는 폐업 위기에 몰렸다고 한다. 그동안 이들 대부분이 백화점, 특급호텔 등의 유통망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 더욱 피해를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매출 수입이 감소하고 있는데도 인건비 등 고정비용이 지속되면 경영악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경우 전통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 대부분이 고령이고 후계자가 부족하다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들은 독자적인 판매망을 가지고 있지 않아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경제회복이 지연되면 결국 폐업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사실 우리라고 해서 사정이 다르지는 않다. 당장 포항지역만 하더라도 그동안 자생적으로 명맥을 유지해온 젊은 문화예술인들이었지만 후계자를 키울 정도의 여력은 없어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만 있다. 국악, 수묵화, 전통공예, 판소리 등을 이어가고 있는 지역의 문화예술인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시민들도 허다하다. 지역 문화예술인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은 앞서 언급한 일본의 사례보다 더욱 심각할 것으로 짐작된다. 더구나 소수이긴 하겠지만 지역의 전통문화예술을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사명감과 애향심만으로 스스로 호구지책을 마련하면서 배움의 길을 걷고 있는 후계자 후보들은 거의 중도에 포기할 생각을 심각하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포항시가 문화예술교육 거점으로 선정된 것이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들에게 작용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포항시가 진정한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행정기관의 지원, 특정 기업의 메세나 활동, 일부 관계자의 기부 행위만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 문화예술은 돈으로 사면 생산공장이 돌아가면서 활성화되는 물질문명이 아니라, 정신문화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평소 경기가 좋고 성장 단계에서 가계의 소득이 지속 증가하던 시기에는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한 문제점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경제 성장 단계에서는 축적된 재산을 이용하여 고미술품부터 전통 회화, 전통공예품은 물론 현대 작가의 작품을 불문하고 일종의 투자 등의 목적으로 관련 소비가 왕성해지기 때문이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도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면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국악이나 판소리 공연의 관람부터 전통도예가의 작품이나 현대 화가 미술작품의 전시회관람, 작품구매 등 다양한 문화예술에 대한 소비 욕구를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번과 같은 위기에 닥치면 상황은 급변한다. 문화예술의 소비자 가운데 허영이나 과시 목적의 소비계층이 제일 먼저 떨어져 나간다. 기업이나 단체의 메세나 활동을 위한 예산도 경제위기에서는 축소 내지는 중단될 수밖에 없다. 평소 지역의 정신문화나 인문분야에 관심을 기울여 왔던 뜻있는 애호가인들 도리가 없다. 당장 생계문제부터 해결해야만 한다. 이러한 현상이 한꺼번에 몰리면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생각지도 않던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다.이번 위기를 계기로 지역 문화예술계도 고령화의 진전, 후계자 부족,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문화예술의 유통부문을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당장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일 것이다. 다행히 정부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여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지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자체나 단체에서 지역 문화예술인을 보호하여 지역 고유의 문화예술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비대면, 비접촉 시대에도 지속 가능한 무언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공연예술, 전통공예품, 회화나 조각 등의 소비자와 공급자를 중개할 수 있는 ‘시장’ 예를 들어 온라인중개사이트를 구축하였으면 좋을 것 같다. 지금은 공연이면 공연기관의 포스터나 안내, 전시회면 전시회를 개최하는 미술관의 홍보만이 유일한 시민과의 소통 채널이다. 문화예술인 자신들도 그동안 스스로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전통공예작품이나 예술작품을 오직 오프라인의 전시회를 통해 직접 구매자와 대화하고 교류해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생산하는 공연예술이나 전통공예, 문화예술 서비스는 미술관, 공연장 등과 같은 ‘공간적 장소’를 통해서만 가능한 수준 높고 차원이 다른 예술이라는 자존감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실제 고미술품이나 골동품과 같은 문화재급의 예술작품들도 카탈로그나 화상을 통해 수십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금액이 경매로 거래되기도 한다. 일반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작품을 온라인 전시하고 택배 배달하는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문화예술작품이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판매되어야만 수준 높은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며, 택배로 주문 판매되는 작품이라고 해서 문화예술작품의 품격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문화예술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편하게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포항이 진정한 문화도시라는 타이틀을 달려면 행정기관의 지원만 바라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시민 한 사람당 단돈 천 원이라도 들여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의 작품 하나를 소장하기로 하자. 비대면 시대인만큼 자기 동네부터 살펴보자. 커피숍에서 모인 시민들이 자신이 최근 구매한 작품이나 만나본 지역 문화예술인의 작품세계를 거침없이 이야기하게 되는 순간 포항은 진정한 문화도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될 것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8-17

살인진드기병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살인진드기병 주의보가 내렸다. 학술용어로는 중증열성혈소판 감소증후군(Severe Fever with Thrombocytopenia Syndrome·SFTS)으로 불리는 살인진드기병은 제3급 법정감염병으로, SFTS 바이러스에 감염된 참 진드기가 사람의 피부에 붙어 흡혈할 때 인체 내로 바이러스가 주입되어 발생하는 중증의 인수 공통 감염병이다.2011년 중국에서 최초로 SFTS 원인 바이러스가 확인된 이후 2013년 5월 국내에서도 첫 환자가 보고됐다. 진드기의 활동 시기인 매년 4월부터 11월 사이에 전국적으로 발생한다.대표적인 증상으로는 발열이 있고, 피로감, 두통, 근육통 등이 동반하지만 구역감과 구토, 복통, 설사 등의 소화기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70세 이상의 고령이거나 다른 만성질환이나 면역저하 질환이 동반되어 있는 경우 사망할 확률이 높아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아직까지 치료효과가 확인된 항바이러스제나 백신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따라서 병원에 가더라도 보존적인 치료가 주된 치료가 된다. 대부분 보존적인 치료만으로도 회복되지만 약 20%가량은 중증으로 이어져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진드기에 물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작은소피참진드기의 활동 시기인 봄철 4월부터 11월 사이에 산이나 들판에 들어갈 때에는 긴 소매, 긴 바지 등을 입어 피부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고, 야외 활동 시 약국이나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기피제를 뿌리는 게 좋다. 특히 풀밭 위에 옷을 벗어 놓고 눕거나 잠을 자는 것은 피하고, 야외에서 활동 후에는 즉시 샤워나 목욕을 하고 옷은 세탁하는 것이 좋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8-17

외로울 때는 시 쓰기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며칠 전 대학원 은사님께서 시집을 보내오셨다. 세 번째 시집이다. 3년 전 첫 시집을 받았을 때는 참 낯설었다. 철학을 전공하고 한평생을 학술 논문만 쓰신 분이 갑자기 시집이라니, 평소 이미지와 조화가 잘 안 되었기 때문이다.앞뒤 표지를 훑어보고 나서 첫 장을 들추니, ‘매화 한 그루’라는 시가 있다. 동양철학을 전공하신 분이라 매화를 찬양하는 시겠거니 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난초 한 촉 간수 못하는 / 손길로야 널 어찌 / 보듬겠냐마는 // 벌 나비 올 때까지만이라도 / 나 네 곁에 있어 주면 / 어떨까’얼핏 보면 매화 옆에 있고 싶은 것이 매화를 위한 것인 듯하지만, 사실은 매화가 내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 후기를 보니 이런 구절이 나온다. ‘노인과 고독은 동의어처럼 보인다.’정년 퇴임하신 지 20여 년이 지난 데다 몇 년 전 상처하시고 자제들은 모두 분가하였으니 아무리 철학으로 중무장했다 한들 외로움에서 자유롭지는 못하셨나 보다.‘반가사유상’에서 ‘윤회의 굴레 벗고 / 해탈의 경지로 / 비상하기까지 // 밤하늘의 적막 속 / 외로움 삼키고 빛 뿜는 / 샛별만이 단짝일 듯’이라며 부처님조차도 외로울 것이라고 생각하시니 말이다.시를 읽다 보니, 5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외로움과 그리움에 힘들어하시다 93세에 생애 처음으로 ‘思婦曲’(아내를 그리는 노래)이라는 시를 쓰셨다.‘많은 실수를 하며 살았더라도 /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산 것보다 좋다 // 그것은 / 발로 밟아도 지워지지 않는 공룡 발자국 같은 / 추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 누군가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보다 / 누군가를 사랑하며 괴로워하며 사는 것도 좋다 // 당신이 떠나기 20일 전 나를 불러 당신이 먼저 죽소 / 그 한 마디는 내 심금을 울렸소.’라시며 어머니를 그리워하셨다.시와는 인연이 먼 나 역시 아버지마저 돌아가신 후 저절로 시가 써졌다. 천성이 무뚝뚝하고 둔하기 짝이 없는 데다 외롭다고 말하기도 부끄럽고, 사랑한다는 말에는 더더욱 오글거리는 성격이지만, 어쩔 수 없이 닥치는 인간의 조건 앞에서 말문이 터졌나 보다.그 당시 한시를 배우며 이런 시를 썼다. ‘送君’(당신을 보내고)이다. ‘歲晩愁雲滿江城 (세만수운만강성) 세밑에 구름 같은 근심은 강성에 가득한데 // 送君塵外夢難成 (송군진외몽난성) 당신을 다른 세상에 보낸 후 꿈에서도 만날 수 없네.’은사님 시집을 읽다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그 선배는 현직 교수인데다 워커홀릭 기질이 다분하여 엄청 바쁜 줄을 뻔히 알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었다. 선생님 시집을 받았는데 같이 만날까요? 선배는 흔쾌히 약속을 잡는다. 시집 받은 지 세 시간 만에 세 사람이 몇 년만에 만나게 되었다.시의 힘은 위대하다. 그러니 외로울 땐 시를 쓰자.

2020-08-17

인강에 지쳐가는 캠퍼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많은 이들이 오랜 해외생활을 끝내고 돌아와서 당황하는 건 이해하기 난해한 신조어의 등장일 것이다.필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학시절 서클(circle)이라고 부르던 말은 동아리라고 바뀌었고 커트라인(cut line)이라고 부르던 말도 입결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엉뚱한 단어로 바뀌어져 있었다. 인강이라는 말도 신조어다. 인터넷 강의를 줄여 쓴 말인데 “인강의 1타 강사”라는 국적 불명의 말도 쓰인다. 인터넷 강의를 최고로 잘하는 강사라는 말이다.캠퍼스가 인강에 지쳐가고 있다.코로나19 때문에 대학가에는 초유의 인강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교과목 강의는 물론 졸업식, 입학식도 각종 세미나나 교내 집단 행사 등이 모두 인강으로 대치되고 있다. 이웃 일본의 경우 학생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고 한다. 주요 대학들이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이번 가을 학기에도 온라인강의를 진행하기로 결정하면서 학생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학교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신입생들이나 지역출신 학생이나 유학생들은 고향이나 본국으로 돌아가 온라인 강의를 듣겠다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대학들이 골치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한국이나 일본 모두 최근 트위터에선 ‘대학생의 일상도 중요하다’는 해시태그를 단 글들이 확산되고 있고, ‘가을학기도 온라인으로 결정됐다. ‘벌써부터 지친다’ ‘온라인 수업은 대면과 질이 다른데도 학비는 왜 똑같은가?’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정부는 대학들에 온라인 수업과 대면수업의 병행을 촉구하고 있지만, 대다수 대학은 여전히 학생들의 캠퍼스 생활보다 감염 확산 방지가 우선이라며 대면수업에 소극적이다.한국은 제한적으로 교수들의 대면 수업을 허용하지만 조건이 까다롭다. 교수들의 대처 방안도 다소 신경질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학생들이 오가는 활기찬 모습이 캠퍼스의 모습이건만 지금 캠퍼스는 학생이 보이지 않는 썰렁한 캠퍼스로 변했다. 학생, 교수, 직원 모두 지쳐가고 있다. 불안장애 같은 정신적 질환도 암암리에 앓고 있다.코로나19로 빚어진 캠퍼스 대참사로 인하여 캠퍼스는 삭막해져 가고 있다. 일부 교수들은 불필요한 회의나 출장이 크게 줄어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교수와 학생, 교수와 교수간의 대화도 사라지고 침묵이 감도는 것이 캠퍼스의 현실이다.아마 캠퍼스는 더 삭막해 질 것이고 지쳐갈 것이다.평생을 살면서 마스크를 6개월 이상 써야 하는 상황을 당해 본 적이 없는 데 지금 우리는 인류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모두들 지쳐 가지만 캠퍼스는 그 정도가 더 심한 듯하다. 인강이 언제 끝날 것인가? 아무도 예측을 못하는 가운데 러시아에서는 백신이 개발되어 출시 되었다고 한다.신규 감염자 제로의 시간이 언제 올 것인가? 꽃이 피었던 캠퍼스는 이제 녹음이 푸르고 싱그럽다. 언제 학생들과 교수들이 캠퍼스로 돌아올지 기약은 없고 이제 곧 캠퍼스에는 낙옆이 쌓일 것이다.지쳐가는 캠퍼스는 언제 활기를 찾을 수 있을까?

2020-08-13

개망초꽃 여름

김병래시조시인여름 들녘에 개망초꽃이 지천이다. 누가 뭐래도 여름은 개망초꽃의 계절이다. 아무도 개망초꽃을 피해서 여름을 건너갈 수는 없다. 이 땅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고 우리의 정서에도 잘 맞는 것 같지만, 개망초는 사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라 한다. 그 시기도 구한말쯤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마치 서양문물이 그렇듯 지금은 한반도를 거의 점령하다시피 번성한 풀이다.개망초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망초란 풀이 따로 있다. 망초도 개망초 못지않게 흔한 풀지만 좁쌀처럼 자잘한 꽃이 눈에 잘 띄지 않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보통은 이름에 ‘개’자가 들어가면 급이 좀 낮은 걸로 치지만 개망초꽃은 예외다. 망초나 개망초의 이름에 망(亡)자가 들어간 력에는 귀화해서 한반도 전역에 퍼지기 시작한 시기가 일제의 식민통치 시기와 겹쳐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 꽃이란 원망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 후에 우리나라의 부흥과 함께 왕성한 번식력으로 널리 퍼졌으니 이제는 망초가 아니라 흥초로 불러도 되겠다.개망초꽃은 흔하디흔한 꽃이다. 지천(至賤)이란 말이 그렇듯 흔히들 흔한 것은 천한 것이란 인식을 갖고 있다. 도처에 널려 있으니 귀하게 여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터무니없는 착각이고 오류다. 세상에 가장 흔한 것이 공기지만 없으면 단 5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이듯, 흔한 것이 값나가지 않는 것은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값으로 따질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걸 잊고 있는 것이다.흔하다는 것은 그만큼 생명력이 왕성하다는 의미도 된다. 개망초는 옥토든 박토든 가리지 않고 최소한의 조건만 되면 싹을 틔워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기름진 땅에서는 무성하게 자라고 척박한 땅에서는 왜소하게 자라지만 환경이나 조건을 불평을 하거나 비관하는 기색이 없다. 소박한 꽃이지만 결코 초라하지는 않다. 크고 화려한 꽃들에 비교해서 조금도 기가 죽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당당한 모습이다. 흔해빠진 들꽃이라고 자기비하를 하거나 상대적 박탈감 따위로 우울해하는 건 사람들에게나 있는 일이다. 물론 개망초란 불명예스러운 이름 따위도 전혀 개의치를 않는다.우리나라 사람들 모두 개망초꽃을 닮았으면 좋겠다. 저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생명의 존엄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탐욕과 위선과 비겁과 사악함이 없이 진실하고 소탈했으면 좋겠다. 세상에 하나라도 무의미한 사물이 있을까마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것들에게서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메시지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공부도 좋고 몸의 건강을 위한 노력도 좋지만 시시각각 전개되는 대자연의 현상에서 삶의 에너지와 지혜를 얻는 일이 무엇보다 기본이라는 생각이다.내일이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지 75주년이자 대한민국 정부수립 72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룩한 것은 분명 온 국민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축할 일이다.

2020-08-13

길고 긴 장마

1984년 여름 끝에 춘천 하고도 중도라는 섬으로 2학기 개강 앞두고 엠티를 갔다. 같은 과 1학년 학생들끼리 친목을 다져 보자고 선배도, 지도교수도 없는 모험을 감행한 것. 저녁에서 밤까지 재밌게들 놀았고 밤 깊어지자 좁은 농가 주택 둘에 각기 나누어 쪽잠들을 청했다. 그런데, 새벽 여섯 시도 안 된 참에 벼락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 밖에 나가보니 우리 한편이 자던 집 옆 마당이 물에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일은 그때부터. 밤새 비가 너무 내려 소양감댐 수문을 열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북한강 한가운데 있는 이 섬이 물에 잠기게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를 구조하러 온다는 헬리콥터를 목빼고 기다린 끝에 드디어 헬리콥터가 날아와 헬리콥터를 타고 문도 안 닫은 채 공중으로 날아오르는데 아래를 보니 과연 물바다라 할 만했다.그게 바로 엊그제 일 같다. 요즘 기나긴 장마 생각에 옛일이 새로웠다.아침저녁으로 오가는 강북강변도로. 서울에서 이 도로는 모든 혈액 순환의 중추 역할을 한다. 이 강북강변도로가 불어난 한강 물로 곳곳에 도로가 통제 되면서 동맥경화 현상을 보였다. 평소 일곱 시 반쯤 출근하는 사람이 열한 시 반이 되어도 출근을 마치지 못했더라는 것이다.그런가 하면 장마 때문에 아주 오랜만에 임진강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북한에서 황강 댐이라는 것을 남측에 통보도 하지 않고 수문 개방을 한 게 그렇잖아도 큰 피해를 더 키웠다는 것이다. 임진강가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분들이 집도 잃고 농사도 망치고, 그나마 군인들까지 나서 복구를 하던 판에 또 비가 퍼부어 모든 수고를 수포로 돌아게 했단다.비는 또 정치에서도 논란을 부추겼다. 섬진강 제방이 무너져내리고 강물이 대범람을 하여 주변 가옥과 농토를 집어삼켜 버리자 4대강 치수 사업 때 해당 안 된 곳이라서 그렇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낙동강이 범람하고 여러 지천들이 흘러넘쳐 피해를 키우자 4대강 곳곳에 설치한 보가 오히려 홍수 피해를 키운다고들 했다.강뿐 아니라 유난히 잦은 산사태는 태양광 발전에 엮여 설왕설래를 낳았다. 산에 태양광 집적 시설을 얼마나 세웠는지 알 수 없지만 원자력 대신 태양광을 선택한 정부 정책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2013년에 장마가 그렇게 길었었다는데 올해는 더 길어 장장 오십 일을 넘어가리라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비가 지긋지긋하다는 말들이 나올 지경, 물난리처럼 마음 심란하고 지치는 일이 또 있을까. 집 잃고 농사 망친 분들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 가눌 수 없다. 난리에 목숨까지 잃은 분들도 여럿이다. 싸우지들 말고 매몰된 새끼를 찾던 어미 개의 마음으로 슬픈 이웃들을 돌봐야 할 때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8-13

병사의 월급

징병제를 시행하는 나라에서 주는 병사의 월급은 일반 기업의 월급제와는 개념이 다르다. 일한 대가에 대한 보상보다 국가에 대한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의무감의 개념이 앞선다.국민의 4대 의무인 국방 의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월급은 국가가 형편대로 주어도 된다는 것이 병사 월급에 대한 통상적 생각이다. 병사들도 이런 생각에 별다른 이의가 없다. 그래서 과거 병사 월급이라고는 담배 몇 갑이나 자장면 몇 그릇 사먹을 정도가 고작이다.한 자료에 따르면 병장 기준의 월급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70년도 900원, 1980년도 3천900원, 1990년도 9천400원, 2000년도 1만3천700원, 2010년 9만7천500원이다. 올해 병장 월급은 54만원 정도라 한다. 세월이 흘러 병사 월급도 많이 인상됐지만 아직은 월급이라 하기에는 작은 금액이다.최근 국방부가 국방 중기계획을 발표하면서 2025년에는 병장 월급 100만원 시대를 연다고 밝혔다. 향후 5년간 78%를 인상하겠다는 계획이다. 병사의 월급이 올라 반갑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방의무 수행자에게 봉급생활자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과 “군대를 복지기관 정도로 여기는 것 아니냐” “포퓰리즘적 발상” 등등이다.현재 우리나라 군 사병이 받는 월급이 적정한지는 기준을 잡기가 어려워 판단이 쉽지 않다. 징병제가 실시되고 경제력 등에서 우리와 비슷한 이스라엘의 병사가 50만 원 정도 받고 있다고 하니 참고는 된다.국방부의 계획대로라면 인건비 비용이 1조원이 더 소요된다. 병사월급 인상이 국방력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예측이 쉽지 않다. 그러나 군에서는 전투력 증강이 최고의 가치라는 점을 잊고 예산을 짜서는 안 된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8-13

널뛰는 지지율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더블스코어 차이를 보이던 미래통합당과 오차범위 내 접전을 펼치다가 마침내 역전되고 말았다.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실시한 8월10일~12일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 집계 결과 통합당 지지도는 전주보다 1.9%p 상승한 36.5%를 기록했다. 민주당 지지도는 1.7%p 내린 33.4%였으며, 두 당의 지지도 격차는 3.1%p로 나타났다. 통합당 지지도는 역대 최고치로, 통합당이 민주당 지지도를 추월한 건 창당 이래 처음이다. 특히 4·15총선에서 민주당이 ‘싹쓸이’한 서울에서 통합당(39.8%)이 민주당(32.6%)을 오차범위를 넘어 앞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결과는 일단 정부·여당의 독주에 대한 견제 심리와 부동산 정책 실패 등에 대한 불만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다 크고 작은 악재가 잇따르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 지지도가 떨어진 결과다.여당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부동산정책 실패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부동산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여당의 입법독주도 많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수차례 부동산문제 해결을 자신했지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아파트값이 폭등을 거듭한 것이나 청와대와 민주당, 정부의 이중적 행태도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다주택자를 투기수요로 규정하고, 불로소득을 환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부동산정책을 담당하는 고위공직자들은 집을 팔지 않고 미적거리다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청와대와 민주당이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부르기를 고집해 여론의 지탄을 받은 것이나 박 전 시장의 장례를 서울시장(葬)으로 지내면 안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59만명을 넘었지만 강행한 것 역시 무리수였다. 박 시장 사태는 민주당을 강하게 지지했던 20·30대 여성들이 돌아서는 계기가 됐다.그렇다해도 여야의 지지율 역전은 반사이익의 성격이 짙다. 통합당의 선전덕분이 아니란 얘기다. 그래서일까. 통합당 역시 탄핵 정국 이후 첫 지지율 역전이란 희소식에도 마냥 기뻐하긴 면목이 없어보인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13일 소속 의원들과 당직자, 보좌진 등 약 300명과 함께 전북 남원 금지면 수해지원 봉사활동에 나선 자리에서 “우리가 노력한 만큼 국민이 알아준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며 “결산 국회나 정기국회 때 법안이든 예산이든 국민이 아쉬워하고 필요한 것은 여당보다 더 정교하게 잘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라고 다짐했다. 다만 통합당이 새 강령에 5·18 민주화운동을 삽입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사과 의지를 내비치는 등 외연을 넓히려는 노력들이 주효했다는 분석도 있다.그렇다해도 통합당은 새롭게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다. 정부여당에 실망하고 있는 국민에게 성큼 다가설 수 있는 파격적인 정책이나 스토리를 한시바삐 마련해 제시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게 야당으로서, 공당으로서 해야할 일이다.

2020-08-13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지루한 장마가 이어집니다. 물난리로 전국이 혼란스럽습니다. 7월 장마, 8월 무더위라는 기상 패턴이 무색할 정도로 안타까운 날들입니다. 위험 수위를 넘은 물길은 아량을 모릅니다. 교각을 삼키고 제방을 무너뜨리더니, 순식간에 들판의 경계를 없애고 집들을 고립시킵니다.그나마 이곳은 장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습니다. 점심 약속을 위해 길을 나섭니다. 비 그친 하늘이 가을날을 앞당겨 놓은 것 같습니다. 좀 전까지 떠올린 ‘위험수위’에 대한 단상이 지워질 정도로 산뜻한 풍광입니다. 갓길에 차를 세워 가없이 푸르고 높은 하늘빛을 맘껏 담는 여유도 부려봅니다.주유소에 들릅니다. 세차 먼저 하고 주유해도 되나요? 잠깐 갠 날씨 덕에 목소리 톤이 눈치 없이 높았나봅니다. 기름 넣어도 세차 할인은 안 됩니다. 심드렁한 직원의 대답에는 ‘나 귀찮으니 건드리지 마시오’하는 기색이 묻어납니다. 고객에게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했을 터이니 그 정도까지는 이해가 갑니다. 청명해졌다지만 여전한 고습도 날씨 앞에서 한결같은 친절 모드를 유지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 다음이 문젭니다. 단 몇 초 사이, 차창문을 닫을 기회조차 주지 않고 직원은 냅다 차에다 물을 뿌리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전 제스처도 경고도 없는 돌발행동입니다. 쌓인 스트레스를 그런 식으로 고객에게 푸는 모양입니다. 급히 창문을 올려 물세례는 면했지만 썩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사소한 지점에서 손상 받는 거니까요. 무시당한 게 분명한데 화를 내기엔 미묘한 순간이랄까요.세차기가 돌아가는 동안 크게 쉼 호흡을 합니다. 이어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몇 번 되뇝니다. 십 음절로 된 그 말을 되풀이하다보면 달아오른 얼굴빛이 가라앉고 벌렁거리던 심장도 누그러집니다. 마법의 주문처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찾는 일은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을 건너야 할 때 활용하는 저만의 방법입니다.점심 장소인 일식집에 도착합니다. 위로 둥근 손잡이가 달린 육수 냄비를 양손에 든 점원이 테이블로 다가옵니다. 얼마나 조심성 없게 들고 오는지 뜨거운 국물이 넘치는 게 다 보입니다. 어이쿠, 어이쿠 조심하라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기어이 가까이 앉은 제게 육수를 쏟고 맙니다. 뜨거운 물기가 스치자 놀란 개구리처럼 몸이 절로 솟구칩니다.국물이 원피스 허리춤을 타고 허벅지로 흘러내립니다. 일행들도 놀라 휴지와 행주를 들고 모여듭니다. 한데 아르바이트생인 듯한 점원은 남 일 보듯 “괜찮아요”라는 한 마디가 끝입니다. 이런 일이 대수롭지 않게 일어난다는 듯 테이블 세팅에만 손길을 놀립니다. 맘에 없더라도 미안함이나 겸연쩍음 정도의 액션을 취하는 게 당연한 순서일 텐데 그럴 기미조차 없습니다. 애써 무시하는 품새에서 무례함만 도드라집니다.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서운함을 내비치거나 클레임을 건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게 아니니까요. 스스로 달라질 마음이 없는 자 앞에서 정당한 한 말씀보다 나쁜 충고는 없습니다.차라리 주인이 그렇게 응대했다면 속 시원히 뭔가를 말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힘없고 스트레스만 많을 ‘을’을 상대해봤자 찜찜함만 남겠지요. 어찌할 수 없는 소심함으로 소탈한 척(실은 허탈하게) 웃었을 뿐입니다. 속절없이 예의 무궁화꽃송이만 피웁니다.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그렇게 가라앉히다보니 덴 피부의 열감도 숙지고 속도 편안해집니다. 주유소 직원이든, 일식집 점원이든 그들이 보기에 상대가 긴장할 만한 대상이었다면 그토록 투박하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위압적인 느낌을 주거나 사회적 지위가 검증된 이들 앞이었다면 한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을 테고, 손님 입장에서 불쾌한 상황으로 이어지지도 않았겠지요. 혹여 실수로 그런 그림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금세 실수를 인정하고 미안함을 표현했겠지요.김살로메소설가큰 것 앞에 작아지고 작은 것 앞에 커지며, 큰 것에 분노하는 일보다 작은 일에 흥분하기 쉬운 게 인간입니다. 들고 일어설 때는 물러나고, 물러서도 좋을 때 일어나는 게 인간의 속성이구요. 삶은 달콤함 못지않은 위험수위의 연속입니다. 을의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위험수위 근처에 다다른 을의 스트레스가 갑에게 맞닿기보다 엇비슷한 다른 을에게 닿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씁쓸한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작은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마음을 다칩니다. 그것이 곧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연습하고 연습하는 이유가 될 테지만요.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스스로 하는 무궁화꽃 술래놀이의 필요충분조건은 누가 뭐래도 작고 사소한 세계에 한합니다. 사무치도록 화가 쌓인 경우, 이를 테면 그것이 갑을 향한 것이라면 정공법을 택해야겠지요. 그땐 맞서고 부딪치는 일만이 온당할까요. 날씨 탓이든 상황 탓이든 이 세상 모든 을들이 스트레스 덜 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수위가 낮아지듯 무궁화꽃 주문을 되뇌는 날도 줄어들겠지요.

2020-08-12

밤바다 산책

윤영대수필가요즈음 중부 지방에는 폭우로 내리붓는 장맛비에 온통 물난리인데 여기 포항은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계속되고 열대야가 밤잠을 못 이루게 한다. 코로나19로 답답해진 마음에 밤바다를 거닐고 싶어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산책을 나가본다. 바닷가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아파트를 나서면 벌써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에 와 닿고, 골목길 빠져 해변 도로를 걸어보면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예년 같으면 방학에 피서철이라 발 디딜 틈도 없을 인파가 저 바닷가 파도처럼 일렁일 텐데…. 멀리 까만 바다 끝에 반짝이는 불빛은 호미곶인지 떠 있는 배들인지 정답게 다가오고, 수평선에 떠오른 보름달은 바다와 거리두기를 하는지 구름 마스크를 쓰고 하늘 높이 떠 있다.넓은 모래밭에는 젊은이들이 쏘아 올리는 불꽃 터지는 소리와 물가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산책길에는 가족끼리 또는 연인끼리의 걸음들이 모두 가볍고 길가에 앉아 서로 속삭이거나 혼자 생각하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도 해변의 낭만이다.사람들과 섞여서 천천히 걷다가 모래밭으로 내려서면 마르고 푹신한 느낌이 좋다. 아예 신고 간 샌들을 벗고 맨발로 걸으니 사각거리는 모래의 감촉이 아스팔트 길에 잊어버린 발바닥의 촉감을 찾아준다. 내친김에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용히 밀려오는 밤바다의 물결 소리가 종일 TV 소리에 지친 나의 귀를 간지럽히고, 두 발에 전해오는 차가움은 가슴으로 올라와 온몸의 열기를 식혀준다.바닷물에 세족(洗足)을 하니 생각난다. 8월 4일은 음력 6월 15일, 유두절(流頭節·유둣날)이다.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이라 동쪽으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나 폭포수에 몸을 씻고 머리를 감고 친척들과 떡이나 전을 먹으며 유두잔치를 하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고 병이 없다는 신라 때 명절인데 잊혀져가는 옛 풍습이 아쉽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영일만으로 흘러들어 오는 형산강이 동쪽으로 흐르는 물이라 ‘잘 됐구나’ 하며, 오늘 저녁 유둣날의 기분에 한껏 젖어보았다.바닷물에 발 담그고 돌아서서 해변 야경을 보니 알파벳과 외래 이름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어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요즘 해외여행이 발 묶여버린 마음에 언젠가 가봤던 기억의 어느 외국 해변 풍경을 그리며 그곳에 와있노라고 상상해보는 것도 나쁠 건 없겠지.모래밭에는 매년 만들어 놓는 모래 작품들도 볼거리다. 섬세하게 쌓아 올린 이름난 건축물 조각상 앞에서 흐르는 불빛 따라 즐겁게 사진을 찍는 모습 또한 행복해 보인다. 발의 모래를 털고 다시 길로 올라오면 즐비한 스틸아트 작품들이 포항의 얘기를 들려주는 듯 밤의 산책을 즐겁게 한다.해변 끝에서 높고 좁다란 방파제에 올라 운동하러 나온 주민들의 씩씩한 발걸음을 따라 끝까지 걸어 가본다. 빨간 등대 불이 깜빡이는 어둠의 배경은 7, 80년대 형산강의 기적을 만든 포스코, 옛날 그 힘찬 용광로의 불꽃은 다 어디로 갔는지 옛 함성을 반추하듯 초대형 전광판의 글자가 길게 늘어져 지나간다. 나는 그 전광판에 새기고 싶다. ‘포항의 영광을 되찾자.’ 그리고 등대 벽에 낙서한 연인들의 마음을 읽으며 통통거리며 들어오는 고깃배의 만선을 빌어본다.돌아오는 길, 200여 그루의 곰솔 숲 앞을 걸으면 풀잎 지붕의 둥근 테이블마다 바닷바람을 쐬며 술이나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를 즐기고 있는 모습도 흥겹다. 그런데 모든 공연이 금지된 버스킹 무대에는 할머니 몇 분이 손주들 재롱을 즐길 뿐이다. 모래밭에 줄지은 천막은 비어있는 듯하지만 길가 술집과 커피숍은 그래도 젊은이들로 북적이는데 실내 금연이라 밖에 모여 피워대는 모습도 안쓰럽지만 그들이 버린 꽁초가 쓰레기 더미와 함께 하얀 애벌레처럼 밤길에 나뒹구는 광경은 하루의 마음을 정리하며 밤 산책하고 돌아오는 마음을 무겁게 한다.영일대 누각에 올라 보석처럼 반짝이는 해변의 불빛을 가르며 내 달리는 제트보트의 날렵한 질주를 눈에 담고 집에 돌아와 폭포수처럼 틀어놓은 샤워기로 젖은 땀을 씻고 유둣날의 복을 빌어본다. 남은 말복에 더위 먹지 말기를…. 지난 7일이 입추(立秋), 벌써 가을이 오는가 보다.

2020-08-12

혹시 당신의 마음 속에 행복이 있지 않습니까?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나에게 티끌 하나 주지 않은 걸인들이 내게 손을 내밀 때면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에게 전부를 준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나한테 밥 한 번 사준 친구들과 선배들은 고마워서 답례하고 싶어 불러내지만, 날 위해 밥을 짓고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제대로 존재하지도 않는 드라마 속 배우들 가정사에 그들을 대신해 눈물을 흘렸지만, 일상에 지치고 힘든 어머니를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습니다.골방에 누워 아파하던 어머니 걱정은 제대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친구와 애인에게는 사소한 잘못 하나에도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지만, 어머니에게는 잘못은 셀 수도 없이 많아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죄송합니다.이 세상 떠나신 후 이제야 알게 돼서 죄송합니다.어떤 분은 말합니다.신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두 가지는 ‘눈물’과 ‘웃음’이라고 합니다.눈물에는 치유의 힘이 있고 웃음에는 건강이 담겨있다고 합니다.당신의 마음속에는 특별한 스위치가 있는데 오직 자신이 직접 켜고 끌 수 있는 행복 스위치입니다.지금 내가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지 않다면 나도 모르게 그 스위치를 꺼 놓고 있는 건 아닐까요?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행복은 누리고 불행은 버리는 것입니다.소망은 쫓는 것이고 원망은 잊는 것입니다.기쁨은 찾는 것이고 슬픔은 견디는 것입니다. 건강은 지키는 것이고 병마는 벗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끓이는 것이고 미움은 삭이는 것입니다. 가족은 살피는 것이고 이웃은 어울리는 것입니다. 자유는 즐기는 것이고 그런 속박은 날려버리는 것입니다. 웃음은 나를 위한 것이고 울음은 남을 위한 것입니다. 기쁨은 바로 행복입니다.행복은 누가 만들어줄까요?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의 마음속 행복 스위치를 다시 켜보세요. 밝고 환한 행복이 켜집니다.잡은 것이 많으면 손이 아픕니다. 들고 있는 것이 많으면 팔이 아픕니다. 지고 있는 것이 많으면 어깨가 아픕니다. 보고 있는 것이 많으면 눈이 아픕니다. 생각하는 것이 많으면 머리가 아픕니다. 품고 있는 것이 많으면 가슴이 아픕니다.이제라도 모두 다 내려놓으세요.전부 다 놓아버리세요. 그리고 편안하게 사세요.우리가 아픈 것이 많은 것은 모두 다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이 들 땐 잠시 내려놓고 쉬세요. 그럴 땐 자신에게 칭찬의 한마디를 해주세요. “여기까지 참 잘 왔구나! 고생했네! 힘들었지!” “이만하면 열심히 안 살았나? 그래 참 잘하고 있다.” 소소한 한마디가 그 어떤 힘보다 강하게 되어있습니다.

2020-08-12

서울만 바라보라는 말이냐

장규열 한동대 교수워싱턴으로만 달려가지 않는다. 도쿄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런던만 살 곳이라 여기지 않는다. 파리에만 모두 몰리지도 않는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수도권과 지역 중소도시가 함께 어우러지며 나라를 이룬다. 미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도시들은 거의 워싱턴이 아니다. 일본에 가면서 도쿄만 생각나는가. 런던도 파리도 수도의 역할을 훌륭하게 하면서 크고작은 다른 도시와 지역들을 외면하지 않는다.우리 서울은 독특하다. 그래서 ‘특별시’일까. 나라 면적의 10퍼센트 남짓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44퍼센트가 산다. 국가경제활동의 70퍼센트가 수도권에 몰려있다는 게 아닌가. 부동산정책으로 몸살을 앓는다는데, 지방도시의 국민들은 이게 누구 이야기인가 싶다. 출신은 하나같이 지방 어느 곳이었지만 현역 정부 고위인사들은 거의 서울에 집 한 채쯤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출신만 지역인 셈이 아닌가. 국회의원들의 ‘지역대표성’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쏟아지는 부동산정책은 누가 보아도 ‘수도권부동산정책’이 아닌가.서울과 수도권, 물론 중요하다. 나라를 대표해야 하고 경제의 중심이어야 한다. 하지만, 나라의 정책이 수도권만 배려하거나 국민의 시선이 서울로만 향하고 있다면 문제가 아닌가. 지역을 대표하는 이들이 수도권만 지향하는 정책입안 태도를 수정해야 하며, 서울로만 향하는 관심은 지역민들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인위적으로 인구를 분산시키는 일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역에도 자연스럽게 스스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여건조성에 힘써야 한다.지역은 무엇을 해야하는 것일까. 지역이 발전하기 위하여 지역 스스로 먼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역발전을 도모하면서 중앙정부의 도움에만 기대는 접근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중앙의 지원이 주도하는 지역발전은 특색없고 획일화된 결과를 빚어낼 뿐이다. 지역이 스스로 품격을 올리고 지역브랜딩을 강화하며 고유문화를 발굴하여 일으킬 때, 지역민의 자긍심이 높아지고 외부의 관심도 일어나지 않을까.청년들에게 물으면 지역에 ‘일자리와 문화’가 없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꿈과 희망을 품고 미래를 열어갈 일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에서 공부하고 서울로 떠나버린다면 지방대학의 존재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지역마다 다른 모양을 가졌을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일자리와 문화가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발견하면 중앙정부를 비롯한 외부의 관심은 저절로 꿈틀거리지 않을까. 밖으로부터의 지원과 투자도 내적으로 만들어낸 동력에 따라 유도될 터이다.부동산정책뿐일까. 정책수립과 입안이 거의 모두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중앙이 중요한 만큼 지방도 소중하다는 발상의 전환이 없는 한, 불균형적이며 왜곡된 발전 양상을 벗어날 길이 없다. 지역이 가지는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지 않고는, 균형적인 국가발전을 도모할 방법이 없다.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다양하고 풍성하며 역동적인 삶을 구가할 수 있을 때, 나라다운 나라도 구현되지 않을까.

2020-08-12

구성의 오류

구성의 오류는 부분적 성립의 원리를 전체적 성립으로 확대 추론함에 따라 발생하는 오류를 말한다. 개별적인 것을 합한 것이 전체의 모습과 다를 수 있는 것, 혹은 한 사람, 한 사람은 영리하고 똑똑한데, 여러 사람이 모인 군중은 어리석을 수 있다는 논리도 여기에 해당한다.구성의 오류를 개별 경제적 관점에서 볼 경우, 절약은 미덕이 될 수 있으나 국가 전체적 관점에서는 해악이 될 수 있다는 ‘절약의 역설’이 대표적이다. 개인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면 부유해질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저축만 하면 총수요가 감소해 사회 전체의 부가 오히려 줄어든다. 저축을 위해 소비를 억제해야 하고, 줄어든 소비로 인해 생산된 상품은 팔리지 않고 재고로 쌓인다. 이는 총수요 감소로 이어져 국민소득이 줄어든다. 그렇기 때문에 돈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소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절약만 하고 쓸 줄 모르면 친척도 배반한다’는 속담은 구성의 오류를 경계하면서 생산과 소비 균형이 경제 성장에 중요한 요인이라는사실을 웅변한다.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최근 열린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부동산시장의 특성상 개인의 합리적인 행동(자산증식을 위한 주택구매)이 전체로는 합리적이지 못한 결과(부동산 가격폭등)를 가져와 시장 불안정성을 높이는 일종의 ‘구성의 오류’가 발생한다”면서 부동산가격 폭등이 구성의 오류에서 비롯됐다고 말해 논란이다.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주택공급을 늘려달라는 시장의 지적에 “공급은 충분한데, (가격폭등은) 투기세력 때문”이라며 규제대책만을 23차례 남발한 정부가 이제와서 구성의 오류 탓을 늘어놓는 것은 무책임하고, 무신경한 처사가 아닌가.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8-12

2학기 준비는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정말 난리도 이런 난리는 없다. 말 그대로 현대판 삼재(三災)다. 전염병, 장마, 폭염! 더 이상 또 무엇이 있을까? 자연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인간에게 무서운 경고를 보내고 있다. 제발 인간만을 위한 이기적인 개발을 멈추라고! 하지만 인간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이번 삼재는 분명 인재(人災)다. 코로나19 사태만 보더라도 바이러스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바이러스가 사람을 전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바이러스를 오염시키는 것이다. 사람이 오염시키고, 사람이 퍼트리고, 사람이 아파한다. 내 몸 안에서 바이러스를 다스리는 방법은 없을까? 면역(免疫)이라는 말은 대결이라는 사람의 본능에서 나온 사람 중심 용어이다. 사람의 면역력은 어디까지 사람을 지킬 수 있을까? 그래서 생각한다, 바이러스를 정복할 수 없다면 그들과 선의의 공생(共生)을 하면 어떨지!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허락이 아닌 바이러스의 허락이 먼저다.우리 생각은 우리 몸이 제일 잘 안다. 이는 우리 몸 안에 있는 바이러스들도 우리 생각을 다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들을 괴멸하려고 하는데 생존 본능이 있는 한 그걸 알고도 그냥 당할 생명체는 없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더 발버둥 치는 것이며, 거기서 돌연변이와 같은 변종이 생긴다. 이미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변종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몸을 빌려 사는 자연은 우리와 대결할 생각이 없다. 말 그대로 자연주의는 공생주의다. 자연의 공생주의에 몽니를 부리는 것은 사람이다. 자연은 그것을 다 받아준다. 자연의 공생주의를 착각한 인간들만 더 파괴적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자가 치료 능력이 있는 자연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사람과의 진정한 공생을! 사람의 모습을 보면 바이러스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자연이 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가 자연에 한 것처럼 똑같이 당할 수밖에 없다. 맞서려 하면 할수록 저항은 거세진다. 공생의 방법은 자연이 인간을 인정한 것처럼 우리도 바이러스를 인정하는 것이다.2학기 교육 계획을 세우고 있는 지금 학교에서 과연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를 생각한다. 온라인 개학은 더이상 교과 수업을 학교 안에서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온라인에는 학교보다 훨씬 더 알찬 교과 수업들이 많다. 굳이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도 되는데, 학교는 왜 있는 걸까? 이젠 학교의 존재 의미를 단순히 교과 수업에 두는 시대는 끝났다. 빅 데이터 시대에 검색만 하면 누구나 자신이 부족한 과목의 내용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이것은 학교의 기능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학교는 앞으로 어떤 기능을 해야 할까?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까지 학교가 보여준 오류를 인정하고, 과감히 고쳐야 한다. 하지만 고집불통 학교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곧 시작할 2학기에 학교에는 새로운 것이 뭐가 있을까? 아이들의 순수한 미래를 학교가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분명 죄다. 그러기 위해 2학기 시작 전에 모든 교사를 대상으로 ‘공생과 인정’을 위한 연수를 할 것을 제안한다.

2020-08-12

사학비리와 공영형 사립대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지난 7월 14일 한국인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한국 대표 사학 연세대의 비리가 교육부 감사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연세대 송도캠퍼스 전 부총장의 딸과 연루된 대학원 입시비리를 비롯해 학사비리와 회계비리가 민낯을 제대로 드러냈다. 이른바 명문사학 연세대의 비리가 이 정도라면, 여타 사립대학은 어느 수준일까, 모골이 송연(悚然)할 지경이다. 이참에 한국의 고질적인 사립대학 문제를 심도 있게 성찰하고, 대안을 마련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한국은 대학교육을 내팽개침으로써 전국에 수많은 사립대학이 세워진다. 오늘날 대학생들의 80%가 사립대학에 재학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립대학의 원조라 불리는 미국의 두 배 수준이다. 국가는 사립학교법인 설립자가 사회에 재산을 환원한 것으로 생각하여 설립자에게 각종 세제 혜택과 사학 경영권을 보장했다. 하지만 설립자들은 대학을 이윤 창출의 도깨비방망이 혹은 화수분으로 생각하여 사학비리가 양산되었다.사학비리가 창궐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70년 장구한 세월 이어진 부패의 구조화와 조직화가 문제다. 사학비리는 역사화-체계화되어 가보나 훈장처럼 대물림되고 있다. 둘째로 2005년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이 개정한 사립학교법을 2007년 한나라당(미래통합당)이 개악(改惡)함으로써 사학의 효율적인 관리가 매우 부실하다. 셋째로 사학의 이해당사자들이 정계, 관계, 재계, 언론계, 종교계 등에 포진하여 부정부패 카르텔을 전방위적으로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립대학의 부정부패를 뿌리째 끊어내려면 국가가 주도하는 감사의 상설화가 절실하다. 그와 함께 사립대학을 건전하게 육성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공영형 사립대학은 여기서 출발한다. 사학을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시의적절한 방안이 공영형 사립대학이기 때문이다.공영형 사립대학이란 국가가 대학 운영비를 50% 이상 책임지는 대신에 이사진의 50% 이상을 공익이사로 구성하여 반(半) 국립처럼 운영하는 제도를 말한다. 공영형 사립대학 제도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017년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계획’에 포함된 사업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고등교육의 공공성 확보, 대학서열 구도 완화, 지역균형발전 등을 위해 논의 중인 대안이기도 하다.그러나 대통령의 임기가 3년이 지났음에도 공영형 사립대학 제도는 기획재정부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2018년에는 교육부가 요구한 812억 예산 전액을 기재부가, 2019년에는 87억 증액요구를 국회가 모두 삭감해버린 것이다. 올해는 교육부 주도로 상지대, 평택대, 조선대 등이 공영형 사립대학 연구에 돌입하였다. 기재부도 내년 예산안 확정 이전에 교육부와 예산편성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낭보(朗報)도 들려오고 있다. 3050클럽에 속한 대한민국의 세계적인 위상과 미래기획을 위한 공영형 사립대학 제도 도입은 국가균형발전과 부합하는 좋은 방안이 아닐 수 없다. 관계부처의 적극적인 대처를 기대한다.

2020-08-12

익숙함과 새로움의 경계에서

레트로 열풍이 한창이다. ‘김희선 곱창밴드’로 시대를 풍미했던 헤어 스크런치가 다시 유행하고 배꼽티와 통 넓은 바지가 옷가게 여기저기에 걸려있다. 추억의 경양식 돈가스를 전면에 내세운 식당은 인테리어며 식기며 심지어 콜라병조차 이전에 생산되었던 모양을 고수한다. 음악은 또 어떤가. 최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혼성그룹 ‘싹쓰리’로 활동하고 있는 이효리, 유재석, 비는 90년대 느낌이 물씬 나는 청량한 노래를 발표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비트를 듣고 있노라면 코끝이 찡해진다. 눈을 감으면 새하얀 백사장과 파도가 일렁이는 어느 여름 바닷가가 펼쳐지는 듯하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든다. 나는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 거지? 사실 미디어에서 주입하는 추억은 내 추억이 아니다. 어쩌면 나는 그리움마저 답습해버린 세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나의 추억에는 멋이 없다. 초등학생일 때부터 휴대전화를 썼고 방과 후엔 컴퓨터 학원에 다녔으며 만화영화로 ‘스폰지밥’과 ‘파워 퍼프 걸’을 즐겨봤다. 이문세의 ‘붉은 노을’보다 빅뱅의 ‘붉은 노을’이, 산울림의 ‘너의 의미’보다 아이유의 노래가 익숙하다. 종로의 LP바에서 “아, 심신 최고였지”하는 선배의 넋두리를 들으며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미안해요. 난 이 노래 몰라요. 나 때는 동방신기가 최고였다고요.11학번의 문학도로 나는 꽤나 갈팡질팡한 대학 시절을 보냈다. 대학생이라는 자아와 문학도라는 자아가 만나 이상하리만치 비대한 자아가 탄생했는데, 그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닌 듯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문학 하는 사람’의 흉내를 냈다. 옆구리에 보들레르 시집을 끼고 미간을 살짝 찌푸려 고뇌에 빠진 표정을 짓는 건 기본이었다. 윤동주와 기형도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통기타에 김광석의 노래를 흥얼거리던 남학생들도 있었다. 우리 학교에는 학생운동 시절부터 전통으로 내려오는 ‘문선’이란 것이 있었다. ‘바위처럼’이나 ‘가자, 노동해방’과 같은 노동요에 맞춰 정해진 율동을 하는 행위였다. 학교 축제가 되면 무대에 올라 사회에 저항하는 몸짓을 선보이는 것이 관습이었다. 나는 무려 문선장을 맡아 이마에 빨간 띠를 두르고 “마침내! 노동 해방!”을 부르짖었다. 문선을 가르쳐주던 선배들은 말했다. “질문은 허용하지 않는다. 당연히 해야만 한다.” 나 역시 후배들에게 그렇게 일렀다. “너희들은 이 명맥을 꼭 이어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뭔 진 몰라도) 아주 큰 일이 날 것이다.”실제로 우리는 이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했다. 수업이 끝나면 강제로 남아 빈 강의실에 모여 밤늦게까지 율동을 익혔으며 완벽한 ‘칼군무’를 위해 주말에도 학교에 나왔다. 시큼한 땀 냄새를 풀풀 풍기며 ‘바위처럼’을 오백 번도 넘게 들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의 율동을 열심히 연습하던 친구가 운동화를 벗어 자신의 양말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아이돌그룹 샤이니의 멤버인 태민의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은강아, 사실 나 샤월(샤이니 월드)이야. 태민이 최애야.” 그랬다. 그녀는 유재하도 김광석도 아닌 샤이니의 팬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내 모닝콜도 ‘누난 너무 예뻐’야.”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 노동요에 맞춰 춤을 추고 있지? 무엇을 위하여? 어쩌면 과거의 선배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나, 너희 아직도 이거 해?나는 왜 “노동 해방”을 외치면서 “문선 해방”은 외치지 못했는가. 그야말로 구시대적 행위를 대학 시절 내내 고수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그것이 멋있어 보였다. 자신을 내던져서 정치적 열망을 부르짖는 행위는 내가 생각했던 진짜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문선을 연습하는 동안 나는 체제에 저항하며 대단한 일을 행한다는 자기애에 빠질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유튜브 동영상 박제라는 끔찍한 벌을 받게 되었지만.돌이켜보면 그랬다. 가끔은 이전 세대를 지나왔던 이들을 질투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시청하며 내 것이 아닌 향수에 잠기기도 했다. 민주주의의 쟁취라는 내러티브를 살아보고 싶었다. “겪어보지도 못한 네가 뭘 아느냐”며 배제 당하는 일은 억울하지 않은가.뉴트로의 탄생엔 이런 맥락도 있을 것이다. 뉴트로란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과거의 것을 새롭게 향유하는 현상을 말한다. 레트로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며 향수를 느끼는 것이라면 뉴트로는 과거의 모습에서 색다름과 신선함을 느낀다.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콘텐츠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현재의 시선을 통해 전혀 색다른 종류의 질감을 가지게 된다. 미지의 문화를 직접 발굴해낸다는 일종의 고고학적 감수성과도 궤를 함께하게 되는데, 나는 이 강렬한 경험에 공감한다.나는 첫 번째 장편소설의 주인공을 50대 여성으로 설정했다. 1980년대를 청년 세대로 살아온 그녀를 표현해내는 것은 꽤 어려운 작업이었다. 누군가에겐 당연하게 존재했던 시간이 내겐 불가해한 우주를 탐사하는 것과 같았다. 집필을 하며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은 부모님이다. 나는 그들의 젊은 시절을 생생하게 전해 들었다. 정치적 열망이 가득했던 그때를. 사랑과 낭만이 흐르던 어느 밤을. 동시에 부모님 역시 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내가 생각하는 시스템의 문제와 나를 억압하는 시선에 관하여. 우리는 한곳에 모여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각자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의 삶은 더 이상 상상의 영역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시야를 공유하면 확장된 세계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지금보다 더 큰 세계를 알게 되는 일. 다양한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는 일. 그것은 단순한 답습도 강요도 아니다. 함께 공존하며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가치다.어쩌면 미래의 아이들은 지금의 일상을 신기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할머니 세대에는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다녔다면서요? 분리수거도 운전도 직접 했다면서요? 완전 멋지다.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으이구 무지몽매한 어린 것들”하고 혀를 쯧쯧 차는 할머니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그때의 나는 샤이니의 노래가 얼마나 좋았는가에 관한 연설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즐거워할 것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는 말한다.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래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런 거니까.”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추억은 아름답다. 우리는 거꾸로 된 거름망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일상을 집어넣으면 무겁고 커다란 절망이 가장 먼저 빠져나가고 아픔이 점점 퇴색되어 고통은 지워지고 가볍고 빛나는 것들만 남게 된다. 그것을 아름다움의 형태로 재구성하여 추억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어쩌면 그리움은 우리가 만들어낸 하나의 생산품일지도 모른다.나의 여름은 현재진행형이다. 바지런히 살아가며 미래의 추억거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조악하게만 느껴지는 현실도 언젠가는 역사가 될 테다. 얼마 전, 엄마와 함께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이효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그녀의 타투가 조금 무섭다고 했고 나는 너무나 간지난다고 했다. 엄마는 그녀가 핑클로 활동했을 때를 추억했고 나는 효리네 민박에 출연했던 모습에 대해 말했다.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며 자기 소신을 지키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말 멋있는 사람이야.” 우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라디오에서 싹쓰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효리가 40대라니,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는 것 같다며 엄마는 작게 웃었다. 가사를 흥얼거리며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들이 있지. 그중 하나는 과거의 시간을 지나온 이들을 향한 존경의 마음일 거라고.

2020-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