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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움직인다

등록일 2021-01-04 19:34 게재일 2021-01-0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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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힘은 육중한 건물이나 서가의 갯수가 아니라 인류의 지식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힘에서 나온다.

도서관은 단지 책을 모아둔 커다랗고 컴컴한 건물을 가리키는 단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착각중에 하나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도서관에 가보면, 그렇게 착각할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도서관이 폐쇄되는 상황 때문에도 그렇지만, 그에 앞서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도서관이라는 공간 자체가 지식의 정리보다는 단지 문화와 관련된 행정기관으로 간주되고 말거나, 자기 공부를 할 공간을 찾는 이들의 공공 공간 정도로만 생각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분명 책문화의 급격한 몰락으로 인해, 도서관의 의미 역시 점차 퇴색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간의 의미는 그 자체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채우고 활동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영위하는 지식은 책을 벗어나 디지털 미디어로, 네트워크로 점차 변화해 나가고 있는데, 도서관만은 여전히 책을 가득 안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아쉬움은 남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류의 문화는 변화해가는 중이다.

도서관이 갖고 있는 일차적인 힘은 정리와 분류에서 나온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밤의 도서관’에서 도서관에서 ‘정리’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개인적이고 느슨한 분류로부터 학문적 분류가 포함된 주제명 표목 등으로 발전하여 결국 멜빌 듀이에 의해 완성된 현재 대다수의 도서관에서 채택하고 있는 분류법으로 정착되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도서관은 인간이 쌓아올린 학문적 결정체인 책을 어떻게 분류하고 정리할 것인가 하는 인간의 지식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실체였다. 인간이 새로운 학문을 추구해나가면, 당연히 그것에 대한 분류법 역시 다르게 바뀌어 나갈 것이다. 누구보다 책을 사랑하여 ‘밤의 도서관’을 만들었던 망구엘에게 있어서도 도서관이란 그저 어떤 건물 속에 머물러 있는 실체가 아니라 디지털이라는 무한한 세계로 펼쳐질 수 있는 인간의 지식의 저장과 정리, 그 분류방식 그 자체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도서관을 조금은 달리 사유해야할 이유를 부여한다.

아르헨티나의 환상소설작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
아르헨티나의 환상소설작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쓴 단편 ‘바벨의 도서관’은 어쩌면 이러한 도서관과 학문의 사유의 정점에 놓여 있다. 그에게 있어 ‘우주’는 무한한 갯수의 육각형 진열실로, 또 그 진열실 속에는 스무개의 책장들이 들어서 있는 무한의 도서관이었다. 그 도서관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은 젊은 시절부터 한 권의 책, 아니 책 목록에 대한 목록을 찾아 방황을 하며 여행을 한다. 신의 암호를 풀어냈다는 사람의 뒤를 따라 가보기도 하고, 책들의 놓여 있는 곳의 정보를 알기 위한 책들이 놓여 있는 곳을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기도 한다. 보르헤스에게 있어서 이 도서관의 비유는 인간이 태어나서 어떤 의미를 추구하면서 방황하는 삶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물론, 그 의미는 인간이 평생 찾아야할 지식이나 학문과 관련되어 있다. 이 계시와도 같은 짧은 소설의 마지막에 보르헤스는 이 도서관이 한계가 없지만 주기적으로 움직인다고 쓴다. 한 세기도 살기 어려운 인간의 아득한 역사는 기억과 망각 사이, 질서와 무질서 사이를 주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다시 도서관을 생각한다. 우리에게 도서관은 무엇이었고 무엇이어야 할까. 책들을 가득 저장하고, 진열하고, 정리하여 쉽게 찾을 수 있는 공간. 적절한 정의이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우리는 우리의 ‘도서관’을 되찾을 수 없다. 망구엘은 다시 독서가의 힘은 정보를 수집하고 목록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변형시키는 재능에 있다고 말한다. 책들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다고 도서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지식들을 변형하여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에서 도서관의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도서관은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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