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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궤변(詭辯)

궤변의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남의 소를 훔쳐갔다. 관가에서 그를 붙잡아 왜 남의 소를 훔쳐갔냐며 신문을 했다. 그는 대답했다. “제가 길을 가다보니 길에 쓸 만한 노끈이 떨어져 있기에 그 노끈을 주워가지고 집으로 왔을 뿐입니다” 그는 소 끈에 묶인 소는 보지도 못했고 소를 훔친 의향이 전혀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한다. 이런 억지를 우리는 궤변이라 한다.궤변의 궤(詭)자는 말을 나타내는 언(言)과 위험하다는 위(危)가 합쳐진 글자다. ‘속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속임수가 있는 말이니 위험하다고 해석하면 글자 풀이를 잘한 해석이다. 사전에서도 궤변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지만 실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억지로 둘러대며 합리화시키는 것이다.’중국 춘추전국시대 궤변 사상가 공손룡은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을 궤변의 명제로 삼았다. 여러 색깔을 내놓고 그 중 흰색은 색이 아니라고 하면 여러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흰색은 색이 아니므로 흰말은 말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논리의 비약이 분명하나 그의 궤변도 한 시대의 학파로 존재했다.고대 그리스에서도 소피스트라는 궤변가가 활약했다. 당시 철학자나 교사 등 지식집단이 나서 군중을 상대로 설교한 것이 출발점이다. 그러나 소피스트들이 대가로 돈을 받고 출세욕에 사로잡혀 터무니없는 주장을 양산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는 소피스트는 부정적 집단으로 추락한다.요즘 우리사회가 논리보다 궤변과 주장이 더 앞서는 것 같아 안타깝다. 특히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발언을 보노라면 철학도 논리도 없고 소신도 없다. 목청만 높다.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궤변에 가까운 발언을 해놓고 정작 본인은 궤변인 줄조차 모르고 있으니 답답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8-11

제가치국(齊家治國)이 필요한 때

이창훈경북도청본사 취재본부장삼국시대 제갈공명은 위나라를 정벌하고 중원을 통일하기 위해 전진기지인 기산으로 수차례 출병했다. 이 와중에 한번은 가장 좋은 호기를 포착해 연전연승하며 중원 진출을 눈앞에 뒀다. 하지만 이때 본국에서 급히 귀국하라는 소환장이 날아왔다. 공명은 승리를 눈앞에 두고 눈물을 머금은 채 퇴각한다. 본국에 와 일의 전말을 알아보니 방탕한 신하들이 어린 황제의 귀를 막고 공명이 전쟁에서 이기면 역심을 품을 것이라는 선동질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이때 공명은 한탄했다. 병사들은 수 만리 먼 전쟁터에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서 전투를 수행중인데 반해 주색에 찌들은 살찐 신하들이 나라를 망치는구나라고. 공명은 내부기강과 단합이 전쟁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판단, 당분간 전쟁을 접고 내치에 접어들었다. 이후 몇 년 동안 국력을 다진 후 공명은 다시 기산으로 진출한다. 이 고사는 국가를 비롯해 크고 작은 조직, 심지어 가정 등에서 내치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주고 있다.현재 경북도의 경우를 보면 최고 수장이 지역의 백년 미래를 결정하는 신공항에 매진하는 사이에 내부 기강이 상당히 흐트러지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또 조직원 간의 불협화음은 고위, 중하위직 등에서 골고루 일어나고 있어 조직 안정화가 시급해 보인다. 그리고 구세대와 사고가 상당히 변화된 젊은 세대가 도청에 대거 진입하면서 이들 사이를 잘 조화시키는 여러 방안도 필요해 보인다. 최근 도청 토론방에서 확인되지 않은 댓글이 난무, 피해자가 악플러를 고소하는 등 경찰 수사가 불가피해졌다. 젊은 직원들이 확인되지 않은 일에 악플을 단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이고, 정확한 내용은 관계 당국의 조사 후 판가름 날 전망이다.이에 앞서 한 중간 간부급의 부적절한 처신이 올라와 댓글 수 십개가 달리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또 얼마 전에는 절도사건으로 공무원이 경찰수사도 받았다. 한 여직원이 소지품을 분실한 사건으로, 경찰 조사 결과 남자직원이 일부러 훔쳐 주변에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올 초에는 인사와 관련, 지사를 겨냥한 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이 공개된 방에 올라오기도 했다. 또 다른 한 직원은 사업소에서 상당한 문제를 일으켰으나 오히려 본청으로 발령받아 근무중이다.경북도에는 약 2천명의 직원이 북적이다 보니 크고 작은 문제는 항상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조직 내의 갈등 속에서 순기능적인 면도 있긴 하다. 하지만 지금의 경북도내 조직분위기는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강 해이에 대해 감독 부서도 별로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다. 지사가 백년대계를 위해 매진하는 동안 조직에 문제가 생긴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직원들 사이에 반목과 질시가 길어질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들의 몫이다.제갈공명의 고사가 보여주듯, 경북도도 내부 안정화와 더불어 분위기 쇄신이 필요해 보인다. 작은 불씨 하나가 마을 전체를 태울 수 있기 때문이다.

2020-08-11

윤석열 총장 두드리면 커진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 총장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법무장관과 검찰 총장이 다투는 모습은 드문 일이고 보기에 민망하다. 문재인 정부에도 결코 이롭지도 않다. 두 사람은 검찰 개혁에서부터 검찰의 인사문제, 조국 법무장관 가족수사와 울산시장 선거 등 여러 현안에 부딪치고 있다. 추미애 장관은 이번 검찰 인사를 통해 완전한 친정 체제를 구축하였다. 채널A의 이동재 기자와 한동윤 검사장 검언 유착 사건에 대한 수사도 서로 간 입장이 반대이다. 이 문제를 보는 시각도 여야가 다르고 그로 인해 여론도 분열되어 있다.지난주 윤 총장의 신임 검사들과의 첫 대면식 격려사가 또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오랜 침묵을 깨고 신임검사들 앞에서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을 무시하고 자유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며, 민주주의의 너울을 쓴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검찰은 헌법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진짜 자유민주주의’라고 강조하였다.이 같은 발언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설파한듯 보이지만 이를 해석 평가하는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그는 신임 검사들과의 첫 대면식에서 왜 이런 발언을 했을까. 본인은 한마디의 해명도 하지 않지만 정치권은 그 해석이 상반되고 있다.여권은 그의 발언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의 ‘독재와 전체주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 것이고, 심지어 신동근 의원은 ‘검찰 총장이 반정부 투쟁에 나섰다’는 입장이다. 사실 윤 총장은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여당을 향해 상투적으로 쓰는 독재라는 용어를 골라 사용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국회가 윤 총장 해임결의안을 제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정 의원은 윤 총장이 ‘검찰 개혁의 걸림돌’이 된다고 비판하였다. 여권에서는 이럴 바엔 윤 총장이 사퇴하고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좋다고 비난하였다.이에 비해 미래통합당의 입장은 정반대이다. 윤 검찰총장의 최근의 발언이나 행보는 검찰 수장으로서 당연한 직무 수행이라고 그의 입장을 두둔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이 윤석열 총장의 임명 수여식장에서 말한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도 철저히 수사’한다는 입장이다. 일부에서는 윤석열 총장은 전 황교안 대표의 대체재로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있다. 주호영 원내 대표까지 윤 총장의 발언은 문 정권의 일당 독주에 대한 실망의 표시이며 당연한 귀결이라고 그를 두둔하고 있다.그의 발언은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사실상 신임 검사들에 대한 윤 총장의 격려 발언은 법치주의를 위한 교과서적인 발언일 수도 있고, 민감한 정치적 발언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여당이 그의 발언을 비판하고 압박하는 것은 적절치 않는 모양새다. 정부나 집권당의 과잉반응은 자가 모순이며, 총장을 때릴수록 그의 대중적 인기는 높아진다. 그 스스로 도 다음 달 초 장모의 사문서 위조사건 재판이 시작된다. 정무 감각이 부족하다고 자인한 그는 스스로 검찰 조직에 충성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행보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2020-08-11

물난리가 남긴 것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팔팔 끓듯 더워야 할 팔월이 전국 곳곳의 물난리로 동동거리고 있다. 경기, 강원 북부와 대전, 충청지역에 물 폭탄 같은 수마(水魔)가 걷잡을 수 없는 침수와 산사태를 초래하더니, 주말엔 광주와 전남, 남부지역으로 이동해 사정없이 양동이 물을 쏟아내며 범람의 혀를 날름대고 있다. 봄부터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쓸린 가슴인데, 난데없는 물난리로 또 한번 소용돌이치다니 망연자실할 따름이다. 지리멸렬한 장마와 기습 폭우에 여지없이 많은 손실과 인명피해까지 속출해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실종된 일상에 변덕의 계절을 지나는 것 같아 착잡하기만 하다.물은 세상 만물에 생기를 주고 성장케 하는 자양분인데, 어떻게 물로 인해 갑작스런 변고가 생기고 막대한 수해를 가져오는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마냥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물이 어떻게 그처럼 돌변할 수가 있을까? 그러나 물도 자연의 한 산물이기에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이치나 섭리에 따라 변화하고 몸부림침은 그 나름의 속성이 아닐까 싶다. 다만, 이변의 정도나 빈도의 문제는 처해진 자연의 생태나 기후, 환경 등의 여건에 따라 다소 차이날 수도 있을 테지만….사람들은 예로부터 물의 이로움을 알았었기에 물을 통해 배우고 닮아가며 물처럼 살아가고자 했다. 이를테면 깨끗한 물을 보고 내 마음을 맑게 하고(觀水淸心), 흐르는 물은 앞서려고 다투지도 않으니(流水不爭先), 앞서거니 뒤서거니 더불어 함께 흐르고 순리대로 살아가야 함을 추구했다. 또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하여, 만물을 이롭게 하는 물의 성질처럼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도와주는 것에 아낌이 없으면서 어떠한 상황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삶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그러나 세상의 이치나 자연의 섭리가 다 그렇듯이, 정도가 심하고 상태가 지나치면 해악과 폐해를 끼치기 마련이다. 지구촌 곳곳에 나타나는 예측불허의 기상이변도 어쩌면 산업화, 문명화의 과정에서 수반되는 자연환경의 파괴와 오염, 난개발 등이 상당 부분 기인한 것임을 부인하진 못하리라. 인간 또한 과욕을 부리고 탐욕에 사로잡힌 나머지 일신의 오욕과 가정이 파탄지경에 이르게 됨을 숱하게 보아왔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알면서도 실천하고 경계하지 못하면 결국 자멸의 빌미만 자초할 뿐이다.그렇기에 우리는 기후나 생태변화 등 자연현상을 좀더 예의주시하고 천재와 인재에 대비한 방재시스템을 철저히 갖춰야 한다. 역사나 과학이 말해주듯이 재난 예방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기는 어렵다. 지혜와 지식이 더해지고 기술과 경험이 쌓여져 안목과 대응력이 길러진다. 정확한 상황판단과 예측,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예방 점검과 선제적인 사전 조치, 신속하고 탄력적인 대응, 효율적인 복구체계 등 그 모든 것이 톱니바퀴 돌아가듯이 정교하게 호흡과 박자가 맞아야 한다. 특히 오판이나 남용에 의한 인재(人災)만큼은 냉철하게 예단하고 근절시켜야 한다.물을 잘 이용하고 산과 내를 잘 돌봐서(治山治水) 가뭄이나 홍수 따위의 재해를 입지 않도록 예방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나가야 할 것이다.

2020-08-11

괴물이 된 진보, 그 위선과 오만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철학자 니체(F. W. Nietzsche)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명언이다. 젊은 시절 민주화를 위해 ‘독재라는 괴물’과 싸웠던 386진보가 권력을 잡더니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괴물’이 되었으니 말이다.괴물이 된 진보의 실체는 ‘위선과 오만의 덩어리’다. 대통령은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라”고 해 놓고선 수사하니 검찰총장을 제거하려 안달이다. 통합을 말하면서 분열을 조장하고, 정의를 말하면서 불의를 옹호하며, 협치를 말하면서 독단을 일삼는 대통령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지식인의 앙가주망(engagement)을 주장했던 조국 전 법무장관은 수많은 특권과 반칙, 비리혐의로 재판 중에 있고,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성추행혐의로 피소되자 자살했다. 모두가 하나같이 입만 살아 있는 ‘입진보’이며 ‘위선의 끝판왕’이다. 오죽하면 최장집·한상진·진중권 같은 진보학자들이 진보정권의 위선과 오만을 비판하고, 진보가수 안치환까지 ‘진보의 아이러니(irony)’를 노래했겠는가?권력의 절제를 모르는 오만한 진보는 민주적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여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키고,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한 공수처는 진보의 권력유지를 위한 반대파 사찰기구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윤석열 검찰총장은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쓴 독재와 전체주의”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게다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도 이미 중심을 잃고 정치권력에 휘둘리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3권 분립에 기초한 민주주의는 형해화(形骸化)되고 사실상 전체주의적 독제체제가 되어가고 있다.야당을 공존과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적으로 인식하고, 여당 내부의 문제제기를 진보 정체성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여 공격하는 ‘외눈박이 진보꼴통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괴물이다. 괴물이 된 인간, 즉 ‘사이코패스(psychopath)’는 ‘마음이 병들어 있는 사람’이다. 정치철학자 아렌트(H. Arendt)가 지적한 것처럼 “어떤 이념이나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르기 보다는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을 괴물로 만들었으니 자연과의 대화가 필요하고, ‘권력이라는 마약’ 때문에 마음의 병이 들었으니 ‘인간의 자기분열성’에 대한 성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하지만 괴물은 자신이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괴물을 응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깨어 있는 민주시민들이다. 아무리 정치적 선전·선동에 능한 진보라고 할지라도 국민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한국의 민주정치사는 위대한 시민들이 괴물이 된 권력과 끝없이 싸워온 투쟁의 역사이다. “나라가 니꺼냐”라고 외치고 있는 성난 민심이 마침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설 때, 괴물은 운명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2020-08-10

넛지효과

넛지(nudge)는 강압하지 않고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들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뜻한다.넛지는 원래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위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으로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는‘넛지’를‘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고 새롭게 정의했다. 그는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넛지란 말이 주목받은 것은 지난 4월 미국 뉴욕주에서 시작된 코로나 감염폭발세가 넉달이 지난 지금까지 진정되지 못하고 다른 주로 재확산한 배경에 마스크정책 실패가 있고, 이 정책의 실패가 넛지정책의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넛지전략의 핵심은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이들의 편향성을 자연스럽게 바꾸는 것이다.미국사회에서 이처럼 제1의 부드러운 개입자 역할을 해야할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인데, 트럼프는 팬데믹 기간 내내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다가 7월말에서야 뒤늦게 “마스크 착용이 애국”이라고 입장을 바꿔 마스크 정책 실패에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제2의 부드러운 개입자 역할을 해야 할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 역시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반 마스크 행보를 취해 마스크 착용문제가 “민주당원이냐 공화당원이냐”를 가르는 정치적 낙인으로 변질됐다. 심지어 민주당 소속 주지사로 마스크 의무화를 역설했던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도 마스크 착용거부자들을 향해 “무모한(reckless)”, “무책임한(irresponsible)” 등의 부정적 단어를 남발하며 압박해 오히려 반발심을 키우는 바람에 부드러운 개입자 역할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넛지전략의 부재가 재앙을 키울 수 있다는 교훈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8-10

교육적인 벌(罰), 교육적이지 않은 벌(罰)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연예인의 육아 모습을 담은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자녀를 훈육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강아지를 거칠게 다루는 자녀의 행동을 교정하고자 그 연예인은 자녀의 팔을 아프게 때리면서 “이렇게 하면 좋아?”라고 물었다. 아마도 강아지의 입장을 자녀가 체험해 보도록 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은, 즐기기 위해서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 장면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역지사지를 가르친다는 측면에서 내용상 좋았으나 방법이 부적절해 보였기 때문이다.시대가 변했고 가치와 삶의 목표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자녀를 부모에게 귀속된 존재로 여기던 과거와는 달리 많은 부모는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여기고 자녀의 의견을 존중한다. 자녀의 팔을 아프게 하며 훈육했던 그 연예인도 평소에는 자녀를 많이 사랑하고 아낀다.당시 훈육도 자녀가 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했던 훈육일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도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만큼 본 지면에서 어떤 벌이 교육적이고 교육적이지 않은가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우선 교육적이지 않은 벌은, 기준이 없고 일관성 없이 시행되는 벌이다. 부모의 기분에 따라 허용되는 행동의 범위가 달라져서 자녀가 부모의 기분을 살펴야 하는 경우이다. 부모와 자녀가 민주적으로 의견을 모아 벌을 결정하고 일관성 있게 시행할 때 그 벌이 교육적이다. 자녀가 스스로 바람직한 행동을 선택하려면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며, 예측가능하려면 일관성 있는 훈육이 필요하다. 또한 교육적이지 않은 벌은, 신체에 가해지는 벌이다. 체벌의 문제점은, 첫째 자녀가 체벌로 제압되면 폭력이 남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어 훗날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둘째, 잘못된 행동의 결과로 체벌을 받는다면, 자녀는 대안이 되는 바람직한 행동을 배울 기회가 없다. 셋째, 신체적인 벌은 고통스럽게 때문에 자녀는 이를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부모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잘못된 행동을 계속할 가능성이 생긴다. 자녀가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바람직한 행동을 하려는 동기를 갖도록 돕기 위해서는 부모가 체벌하기 보다는 행동의 결과를 자녀와 함께 평가하고 자녀 스스로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하도록 대화로 이끌어야 한다.유치원 급식실에서 아이들끼리 부딪혀 한 아이가 울게 되었다. 충돌을 일으킨 아이가 우는 아이에게 “미안해” 하니 우는 아이는 엉엉 울면서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어린 아이들도 잘못을 수습하기 위해 사과해야 하며, 사과 받은 상황에서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자녀들은 옳고 그른 행동을 알고 있으니 부모가 하나하나 열거할 필요도 없이 무엇을 해야 할지 질문만 해도 그 대화는 충분할 것이다.자녀 양육의 결과는 하루하루 노력과 인내심이 쌓여 얻어지므로 지금 당장 자녀에게서 변화를 볼 수 없더라도 먼 미래에 성숙한 성인이 될 것에 대한 기대를 놓지 말자.

2020-08-10

사불삼거(四不三拒)의 공직자 윤리

강희룡 서예가조선 중기 학자이면서 정치가였던 미수 허목은 남인의 핵심이자 남인이 청남(淸南)과 탁남(濁南)으로 분립되었을 때는 청남의 영수로서 당시 정계와 사상계를 이끌어간 인물이다. 허목의 저서 ‘기언, 허미수자명(記言,許眉53DF自銘)’에 스스로 지은 묘비명이 올려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말은 행동을 덮지 못하고 행동은 말을 실천하지 못하였네/ 부질없이 성현의 글 읽기만 좋아했지/ 내 허물은 하나도 바로잡지 못하였네/ 이에 돌에 새겨 후인을 경계하노라.’허목은 미수(米壽)를 누리기도 했거니와 글도 많이 남겼다. 미수 스스로도 내가 기언을 지어 스스로 반성하였는데 말이 많으면 유익할 것이 없으며, 옛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다고 하였다. 그중에 큰 것을 들면 자서(自序)가 2편이고 정사(政事)를 논한 것이 30편이니 말을 너무 많이 했다고 스스로 인정한다.미수는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권의 자서로 자신의 일생을 정리했다. 이 자찬 묘비명은 자서를 축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이 그리 많았던 분이 고종(考終)을 앞에 두고 132자의 짧은 글로 자신의 일생을 관조한 것이다. 말이 행동을 덮지 못하고 행동은 말을 실천하지 못했다는 미수의 자명은 행한 것은 말과 일치하지 못했고, 말한 대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겸사이겠지만 한마디로 언행이 일치되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물론 선현이라고 해서 언행일치가 쉬운 것은 아니었을 게다. ‘군자는 말이 그 행실을 지나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공자의 말씀도 이런 이유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요즘 100세 시대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예전 같으면 생을 마감했을 나이에 다시 불혹의 나이만큼을 덤으로 더 살게 될지도 모른다. 스스로 묘비명을 지어 후세에 남길 엄두를 낼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공무원을 달리 이르는 말이 공복(公僕)이다. 이 말은 국가나 국민의 심부름꾼이라는 뜻이다. 즉 국민의 일꾼으로 국민들의 편익을 위한 존재라는 것이다. 같은 의미지만 다른 어감을 주는 공무원과 공복의 차이는 책임감과 사명감일 것이다. 이 같은 차이는 존경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자기 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연결된다. 또한 이런 마음가짐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게 한다. 결국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다면 어떤 권력과 권한 속에서도 중용을 잃지 않고 영욕의 수렁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옛 관리들은 스스로 사불삼거(四不三拒)라는 불문율을 정하여 규율로 삼았다. 첫째, 재임 중에는 부업을 갖지 않는다. 둘째, 재임 중에는 집을 늘리지 않는다. 셋째, 재임 중에는 부동산을 취득하지 않는다. 넷째, 재임지의 특산물을 결코 취하거나 먹지 않는다. 다섯째, 윗사람의 부당한 청을 거절한다. 여섯째, 재임 중 경조사의 부조를 받지 않는다. 일곱, 어떤 답례도 받지 않는다. 이것의 실천이 공복의 참길이다. 지금 국민 앞에 편 갈라 갑질을 해대는 공직자들이 언행을 일치시키기 위해 살기를 다한다면 생의 마지막에 회한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겠는가. 그래야 미수가 후인을 경계한 보람도 있을 것이다.

2020-08-10

뱀이 허물을 벗듯… 무주 안국사(安國寺)

붉은 치마를 두른 것처럼 단풍이 요란하다는 적상산(赤裳山),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한여름에 오른다. 물안개가 산자락을 휘감고 있어 숲은 신비로움으로 가득하다. 마음이 이토록 평온한 것을 보니 불이문은 벌써 지나쳤는지도 모른다.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양수발전소 댐을 지나도 산은 좀처럼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참을 올라서야 안국사 일주문을 만났지만 해발 1000m의 고지대라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금산사의 말사인 안국사는 충렬왕 3년(1277년)에 월인 화상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가 복지(卜地)인 적상산에 성을 쌓고 절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그 뒤 광해군 6년(1614년)에는 조선왕조실록 봉안을 위한 적상산 사고를 설치하려고 절을 증축하여 사고를 지키는 수직승의 기도처로 삼았다.그 뒤 영조 47년(1771년)에 법당을 다시 지어 나라를 평안하게 해주는 사찰이라는 뜻으로 안국사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1910년 적상산 사고가 폐지될 때까지 호국의 도량 역할을 해왔다. 1989년 적상산에 무주 양수발전소 건립이 결정되자 안국사가 수몰지구로 편입되어 옛날 호국사(護國寺)가 있던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긴 계단을 올라 누하진입식으로 청하루를 통과하자 제 모습을 드러내는 안국사는 뜻밖에 소박하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극락전이 법당문을 활짝 열고 불자를 맞느라 여념이 없고, 큰 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성보박물관과 그 위로 선원록을 봉안했던 적상산 사고 건축물인 천불전이 절의 품격을 더해 준다.나는 법당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리며 학이 단청을 하였다는 설화를 찾아 극락전을 돌아본다.극락전을 지은 스님이 단청불사를 고심할 때, 하얀 도포를 입은 범상치 않은 노인이 나타나 단청을 해주겠다고 한다. 단청을 하는 백 일 동안 절대 들여다보지 말기를 당부했지만, 스님은 99일째 되던 날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막 안을 들여다본다. 그 때 노인은 보이지 않고 학이 입에 붓을 물고 단청을 하다 낌새를 채고 날아가 버렸다는 이야기이다.내소사의 대웅보전 단청 설화와 흡사해 신선함은 떨어지지만 극락전 뒤편 한쪽에는 하루 분량의 목재가 그대로 남아 있어 신비감을 실어준다. 재미로 그치던 설화가 오늘따라 묵직한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인간의 호기심을 경계하는 숱한 신화들도 생각난다.불경의 육바라밀 중에는 인욕바라밀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며 참고 견디는 수행을 말한다. 바라밀은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보살의 수행법으로,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번뇌와 고통이 없는 피안의 세계로 건너간다는 뜻이다.보다 나은 인격을 갖추기 위해 팔정도(八正道)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다니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해 반성할 때가 많다. 몸을 절제하고 말을 삼가는 일조차 쉽지 않은데 육바라밀은 개인의 인격 완성 단계를 넘어 이타(利他)를 향한 덕목이라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대상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고 마음을 비워내면 자연히 인욕이 된다고 하지만, 바른 지혜와 바른 알아차림으로 참된 인욕바라밀을 실천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지장전 앞에서 사람들이 수런거린다. 가까이 가보니 풀밭 위에 커다란 뱀 한 마리가 가부좌를 한 듯 적당히 몸을 접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경꾼들에게서 흘러나오는 혐오스런 눈빛들을 묵묵히 감내하며 참선이라도 하는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사람과 뱀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누군가 이 절에서 가끔 보았노라며 절 지킴이라고 말하자 그제야 하나 둘씩 자리를 뜬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붙박여 뱀의 눈빛을 바라본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지켜보며 연민의 눈빛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그와 나의 정체조차 묘연해지는 순간이다. 는개를 맞으면서도 뱀은 자리를 뜨지 않는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염불소리만 경내를 적시고 또 적신다.조낭희수필가사람들이 빠져나간 조용한 극락전에서 뒤늦게 백팔 배를 한다. 법당 안에는 영조 4년(1728년)에 기우제를 지낼 때 조성한 보물 제 1267호인 괘불이 사진에 담겨 있지만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는다. 동쪽으로 괘불함이 드나들 수 있는 앙증맞은 문 하나가 눈에 띤다. 마치 세상을 빠져나가는 마지막 문을 연상시킨다. 오직 저 문이 아니면 세상의 빛을 볼 수 없는, 생명의 문처럼 특별해 보인다. 그동안 법당문을 여닫는데 마음을 모으느라, 있어도 보이지 않던 문이었다.내 안에 존재하는 틀도 보인다. 그것은 안국사 돌 축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견고하고 무서운, 나의 의식과 에고가 빚어낸 프레임이다. 어떤 집착이나 사심 없이 대상을 대하려면 알에서 깨어나야 한다. 조금 전 보았던 뱀의 눈빛이 떠오르고 신비주의적인 진리를 상징하는 아프락사스도 생각난다. 그토록 몸을 오싹거리며 혐오하던 뱀도 상처가 생기거나 더 큰 성장을 위해서는 허물을 벗을 줄 안다.학문의 길은 쌓고 또 쌓아야 의미가 있지만, 진리의 길은 버리고 또 버리며 비우고 또 비워야 한다고 했다. 노자의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아상이라는 미혹한 옷 하나 벗을 줄 아는 지혜가 그리운 날이다.

2020-08-10

두려움과 연민, 그리고 정화

인류가 가진 고전 중의 고전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그리스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서사 예술 양식이었던 서사시와 비극에 대해 이론화한 최초의 것이자 최후의 것이라 할 만하다. 감히 최후의 것이라 과언하는 것은 인간이 어떤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극을 접할 때 어떤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가 하는 것에 대해 아직 이것보다 더 나은 해명이 존재하지 않는 까닭이다.아리스토텔레스가 다룬 ‘서사시’, 그리고 이것에 대한 극적 발전 형태인 ‘비극’은 우리가 널리 알고 있는 그리스의 신화를 그 배경으로 두고 만들어낸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실연된 극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시학’을 매개로 비극은 지금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소설과 영화, 드라마와 같은 극화된 이야기 양식과 연결된다.말하자면, 몇 천 년의 시간을 지나고도 인간이 즐기는 이야기의 형태는 그리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갖는 특별함은 지금에 있어서도 어떤 배경 아래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을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현실을 모방하고 재현해나가는 과정에서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치의 형식이나 ‘개연성’의 개념 등을 완성했다는 것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학’의 진정한 위대함은 바로 비극을 보고 있는 관객의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그려내는, 관객, 혹은 독자의 심리학의 영역을 최초로 연 사례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비극은 그 끝까지 완결되어 있고 일정한 크기를 갖는 고귀한 행동의 재현”이며 “작품을 구성하는 부분에 따라 각기 다른 다양한 종류의 양념으로 맞을 낸 언어를 수단으로” 삼고, “비극의 재현은 이야기가 아닌 극의 등장인물에 의해 이루어지며 ‘연민(eleos)’과 ‘두려움(phobos)’을 재현함으로써 그러한 종류의 감정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실현한다.” 앞의 것들이 비극의 익숙한 형식적 규정이라면, 뒤의 것은 비극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풍경에 관한 것이다.우리는 책이나 영화를 볼 때, 그 속에 재현되어 있는 우리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들, 그리고 그것을 해나가는 인물을 보면서 그 인물의 현재에 공감한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그 속에 있는 인물의 분노에 함께 화를 내고, 그 사람의 처지를 함께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종류의 ‘연민’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는 경험은 그저 밋밋한 활동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한편,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두려움’은 어떤 감정일까. 이것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지만, 나는 내가 보고 있는 인물에게 다가올 운명이 실제로 다가올까 두려워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오이디푸스’에서 주인공에게 내려진 끔찍한 신탁, 즉 신의 예언이 실현될까봐 두려워하는,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신탁대로 해버렸음을 주인공이 알게 될까 하는 두려움은 관객을 비극이 그리는 긴장의 고개로 끌고 올라간다. 마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무 것도 모르는 천진한 태도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위험 속으로, 자박자박 걸어 들어갈 때 관객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긴장과 같다.극의 절정 부분에서 압축되어 터지기 직전의 긴장은 폭발하고, 관객에게는 감정적 해소가 찾아온다. 바로 ‘카타르시스’의 순간이다. 두 연인의 오해를 지켜보던 관객의 마음속 긴장감이 터져버리는 순간, 악행과 복수의 고리로 연결된 두 사람이 결국 마지막 대립하는 순간, 운명의 장난으로 고생하다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순간, 관객은 터져 나오는 감정의 잔여물들이 범벅된 상태로 읽던 책을 마치거나 영화관을 나서게 되는 것이다.어쩌면 이야기를 향유하는 이같은 경험은 가장 인간다운 것이기에, 오랫동안 변화하지 않은 만큼 더 오래 계속될지도 모른다. 지금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홍익대 교수

2020-08-10

토론토의 한여름 해거름

아직은 해가 빠지기 전이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식고 저녁이 되었다. 해가 빠지려면 아직도 두어 시간 더 있어야 한다. 나는 집 뒤 켠, 집과 붙은 집 뒤쪽의 테라스의 의자에 혼자 앉아 하늘을 쳐다본다. 흰 구름 몇 점이 한가로이 떠간다. 가끔씩 어디에서 오는 바람인가 시원한 바람이 살랑거린다. 살만하다.바로 옆집들의 정원의 나무들이 유월의 녹음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싱싱하고 푸르다. 푸르다 못하여 진녹색이다. 짙푸른 저 나무들은 해마다 저렇게 잘 자란다. 무슨 조화일까? 나뭇잎들은 올해의 몫은 다 컸다. 이제 더 이상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가을바람이 불면 낙엽이 될 준비를 하겠지. 계절은 그렇게 지루한 듯, 그러나 잘도 간다.가끔씩 텃밭을 망가뜨리는 다람쥐가 나타난다. 나는 불이 나게 일어나 다람쥐를 쫓는다. 깡패새로 이름난 북미주의 Robin(울새)이라는 새는 오늘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 새는 사람이 다가가도 별로 겁을 내지 않는다. 뒤뜰의 관상용 양귀비는 겨우 일주일 정도를 피고는 떨어진지 오래다. 그 옆의 수선화 역시 잠시 피었다 졌다. 그야 말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그 옆으로 무궁화 몇 그루가 있다. 한 그루는 꽃을 피운지 몇 년 된다. 그러나 아직 어린 무궁화 몇 그루는 언제 꽃을 피울지 모른다. 아마 2, 3년 안에는 꽃이 필 것이다.텃밭은 해마다 심어서 올해는 묵히자고 했는데 아내가 말을 듣지 않았다. 아내는 거름을 엄청나게 많이 사서 뿌리고 몇 가지 채소를 심었다. 들깨, 고추, 오이, 부추 등이다. 거름 값도 제대로 못할 것 같다. 아내는 매일 해거름에 물을 준다. 그래도 제 구실을 할 것 같지 않다. 상추는 따로 심지 않아도 작년 가을부터 텃밭에 있던 것이 겨울을 이겨내고 올해는 그대로 조금씩 거두어 먹을 만큼 된다. 나는 이 머나먼 남의 나라에 와서 80이 다 되어도 내 고향 텃밭에서 나던 것을 가꾸고 먹는다./김용출(캐나다 토론토)

2020-08-10

바다를 먹고 산다

어둠이 가장 깊은 시간에 바다를 본 적이 있다. 내 몸속에서 바다와 우주가 출렁이는 듯했다.동빈내항을 지나 죽도시장에 도착하니 여명을 기다리는 시간인데 벌써부터 활기가 넘친다.포항(浦項)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항구에 접한 죽도시장의 수산물 유통은 동해안 최대 규모이며 죽도어시장이라 부른다.바다에서 온 생선이 밥상에 오기까지는 제법 여러 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친다. 일반적으로 생산조건과 자연환경에 따라 그 구조가 조금씩 다르다.죽도어시장은 바다와 인접한 환경적 조건으로 인해 산지위판의 특징과 소비지 도매시장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외지의 관광객들도 일부러 찾아올 만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새벽 경매가 시작되면 부산스러운 시장의 하루도 시작된다. 바다에서 온 생선들은 다시 바다가 된듯 어시장에서 출렁이고 있다. 어시장은 바다와 인간을 이어주는 관문 같다.손짓과 말을 그들만의 언어로 사용하는 경매인들과 어시장 시멘트 바닥에 경매를 기다리는 생선들과 싱싱한 해산물을 사러 온 사람들이 뒤엉켜 왁자하니 생동감이 넘친다.사람이 하루라도 바다를 떠나 산 적이 있을까? 육지에 발을 딛고 살지만 바다를 떠나지 못한다. 바다가 내어준 생선을 먹고 소금과 젓갈이 들어간 음식을 먹는다. 단 한순간도 바다를 떠난 적 없이 살아간다.새벽바다를 건너온 만선의 꿈들이 다시 바다가 돼 포항 죽도어시장에서 출렁이고 있다. /김주영 사진작가

2020-08-10

경주 기림사의 템플스테이

여고동창들과 템플스테이를 체험했다. 지난 해 대상포진으로 고생한 친구의 제안으로 떠난 여행이다. 오래된 친구들은 어제 만난 사람들처럼 서로의 일상과 생각을 공유하였다. 휴식형과 체험형이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휴식형만 운영하고 있었고, 가격은 성인기준으로 인당 5만원이었다. 삼시세끼가 포함되어 있어서 우리들은 담백한 절밥을 기대했다. 살가운 친구는 소풍가기 전 날인 듯, 간식꾸러미를 야무지게 챙겨왔다. 그 친구 정성을 까먹으며 도착한 기림사는 웅장하면서 기품이 있었고, 단아하면서도 아기자기했다. 보시로 들어오는 꽃과 화분을 심기 시작한 정원은 연꽃이 피기 시작해 더 기품 있는 사찰로 보였다.새로 지어진 멋진 한옥건물에 방마다 개인화장실과 샤워실도 같이 있었고, 시원한 선풍기 한대와 소박한 탁자 하나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템플스테이용 옷은 파란색조끼와 하늘색바지로 여고 때 체육복색과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친구들과 함께 사찰을 둘러보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니, 어느덧 저녁 식사시간이 다 되었다. 너무 배가 고파서 공양실로 한걸음에 달려간 우리들을 보살님께서 아기보살이라며 따뜻하게 불러주었다. 보약 같은 저녁 공양 뒤, 큰스님과 함께 저녁예불을 드린 후 방으로 돌아왔다.다음날 새벽, 사찰의 하루는 일찍 시작되었다. 예불은 새벽 4시반 이었는데, 전날 친구들과 폭풍수다로 우리는 오전 6시가 넘어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아침 공양 후, 용연폭포로 트레킹을 떠났다. 사찰에서 20분 거리로 평지라서 아이들과 걷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울창한 숲길을 걷다보면 ‘신문왕 호국행차길’이라는 표지판을 만나고 나서야 용연폭포를 마주할 수 있었다.산책로에서 만난 스님께서는 인생의 진리와 마음의 수양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친구들과 함께 마음공부도 하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국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기림사를 기대하면서 템플스테이가 계속되기를 기대해본다./엄미나(포항시 북구 환호동)

2020-08-10

인연

습도가 높아지고 있다. 한여름을 무색하게 할 만큼 연일 30도를 오르내린다. 진돗개의 공격을 피해 라일락 그늘이 드리운 담장 위에서 먹고 자던 고양이가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가지러 가려고 현관문을 열면 늘 먼저 야옹 하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발레리나처럼 몸을 늘려 스트레칭 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고양이는 7년 전 어미젖을 덜 뗀듯 눈매가 희미하고 털이 보송송한 모습으로 우리 집과 인연을 맺었다. 사람들 왕래가 뜸한 아파트 뒤쪽에서 비틀거리며 걷는 폼이 위태롭게 보였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가져온 우유를 주자 그 시간이면 나타나 주는 우유를 깨끗이 핥아 먹었다. 현관 앞에 집을 만들어 주고 사료를 담아 주었더니 애초부터 제 보금자리 인양 눌러 살았다. 아이들 품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고양이는 빨래를 너는 내 다리에 감기고 담장 너머 텃밭까지 졸졸 따라다녔다.어느 날 빨래를 걷는 남편의 다리에 감겼다가 그만, 밟히고 말았다. 그 후유증으로 사료를 먹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입자가 작은 사료로 바꿔주고 고양이용 캔을 사서 사료에 버무려 주었더니 곧잘 먹었다. 사료 냄새를 맡고 도둑고양이들이 몰려들었다. 사료를 주고 돌아서기 무섭게 그릇이 바닥을 보였다. 학교 갈 준비로 바쁜 아이들을 불러 세워 고양이가 사료를 다 먹을 때까지 교대로 보초를 서게 했다. 소유하는 것에는 그에 맞는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요일을 정해 밥 당번을 시켰다. 그렇게 한 가족처럼 산지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어 집을 떠났다. 성장한 아이는 부모를 떠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지만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무심코 고양이가 머물던 담장 위로 눈길이 간다. 아침이면 야옹 하고 인사를 건네던 울음소리가 그립다./김지연(경주시 마동)

2020-08-10

생각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때

이승율청도군수코로나 사태가 상식으로 통했던 일들도 이제는 상식으로 통하지 않는 등 우리의 생활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지자체장이 담당해야 할 현장 행정에도 많은 변화가 필요해졌다.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생각과 발상의 전환이라 생각한다. 생각과 발상에는 큰 차이점이 없지만, 생각은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을, 발상은 어떤 생각을 해 내는 것의 차이점이 있다.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창대해진 일들이 역사 속에는 너무나 많다. 우리 청도에도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역사적인 사건과 지역변화의 바람을 불러온 사례들이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50주년을 맞으며 세계적인 평가를 받는 새마을운동이다. 새마을운동의 시발점이라고 알려진 청도 신도리의 1950년대 말기의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임을 각종 자료로 확인할 수 있다. 4m의 농로에 잘 개량된 지붕, 시원스럽게 닦여진 마을 안길 등은 농한기에는 도박이나 술독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는 어느 시골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지 않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 보자는 시골의 순박한 마음들이 모여 남들은 생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1969년 기습폭우로 시름에 빠진 전국의 농촌을 돌아보고자 전용열차로 경남지역을 방문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신도리 주민들이 힘을 합쳐 제방복구와 안길 보수작업을 광경을 목격하고 크게 놀랐다. 더욱이 놀람에 그치지 않고 전 국민의 새마을운동으로 발전시킨 발상 전환은 조국의 근대화를 불씨가 됐다. 주어진 데로 살아가던 모습에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이 발상의 전환은 대한민국을 변화시켰고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세계가 새마을운동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앞다투어 신도리를 방문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군은 지난해 7월 지역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100인 토론회를 개최했다. 미래 먹을거리를 개발하고 후손에게 자신 있게 지역을 물려주려면 공직자들부터 안주해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다짐과 생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00인 토론회는 10대 의제와 100대 사업과제를 도출해 가시적 효과를 위해 비 예산사업은 즉시 시행하고 시급한 사업예산은 추경에 반영하고 국도비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그 결과 각종 공모사업에 선정되며 국비 사업 예산을 확보했으며 정부의 새마을운동 5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돼 환경 분야 최고상인 대한민국 환경대상을 받기도 했다.또 하나의 발상 전환은 올해 귀농귀촌 담당을 신설한 것이다. 청도는 농촌도시로 젊은 층의 인구유입이 필요하다. 노년층의 지식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전문 인력의 유입을 위해 행정과 재정적인 뒷받침을 책임지고 실행에 옮길 기구가 필요했다. 신설된 귀농귀촌 담당은 귀농귀촌인이 시행착오 없이 영농에 종사할 수 있도록 영농기반구축을 위한 귀농 창업 및 주택구매지원과 정착지원 사업, 귀농인 농어촌진흥기금지원 사업, 귀농인 정착장려금 지원사업 등을 담당한다.지난해 300여 명이 청도로 귀농귀촌 했지만 이러한 시책은 청정지역이며 많은 장점이 있는 청도로 시간이 지날수록 귀농귀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 자신한다.또 군은 농특산물의 가격 폭락에 대비하고자 2023년까지 100억원의 농산물안정기금 조성에 나서는 등 귀농귀촌인만 아니라 농민을 위한 새로운 생각을 계속 실천에 옮기고 있다. 청도의 자랑 중 하나가 지난 2000년부터 재활용품 모으기 경진대회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지역 곳곳에 버려져 환경오염의 주범이 된 쓰레기를 거둬들여 환경을 보호하고 재활용품 판매 수익금으로 매년 10여 불우이웃의 집을 고쳐주거나 소외계층을 위한 쌀·연탄 등 생필품 나눔 행사 등에 사용하는 등 작은 발상의 전환 효과가 지역민에게 기쁨을 선물하고 공공부문 자원순환 분야 대상을 받기도 했다.아무리 좋은 생각과 발상의 전환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최근 청도는 국회 미래연구원과 고려대 공동연구진이 전국 228개 시·군·구의 자치단체별 행복지수(삶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에서 전국 4위를 차지했다. 자치단체장은 지역민의 행복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귀를 열고 생각과 발상의 전환에 주저해서는 안 된다. 주변의 여건에 굴복하기보다는 새로운 도전에 나설 때다.

2020-08-09

접시꽃을 그리다

수채화 교실에서 접시꽃을 그렸다.그림을 그리기 전 날, 그릴 주인공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더 잘 그릴 거 같아서 찾아보았다. 근래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래종이겠거니 했다가 자료를 보니 예상이 빗나간 걸 알았다. 신라 말에 중국에 유학 간 최치원이 ‘촉규화’란 제목으로 접시꽃을 노래한 시가 기록으로 전해진다. 유학까지 다녀왔으나 6두품이라 출세하지 못하는 자신을 접시꽃에 비유했다. 중국에서는 접시꽃 잎이 아욱을 닮았다 해서 촉규화라고 했다.또 조선시대에는 어사화라고도 했다. 장원 급제자의 삼일유가(三日遊街)에 쓰였기 때문이다. 장원을 한 급제자가 삼 일 동안 부모님과 친인척,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풍속이다. 유가 행렬의 선두에 있는 인물은 붉은색 천으로 싼 합격증서인 홍패(紅牌)를 들고 가고 그 뒤로 7명의 악사가 풍악을 울리며 홍패를 든 이를 따라가고, 악사의 뒤를 이어 광대와 재인들이 재담을 늘어놓거나 춤을 추면서, 구경꾼들의 시선을 붙든다. 장원 급제자는 녹색의 단령을 입고, 복두(5E5E頭)를 쓰고, 어사화(御史花)를 머리 위에 꽂았는데, 이때 능소화와 더불어 사용한 꽃이 접시꽃이었다. 일반적으로 어사화는 복두 뒤에 꽂고, 명주 실로 잡아 맨 후, 머리 위로 넘겨 명주실을 입에 물었다.악사가 풍악을 울리고, 재인이 재주를 넘고, 춤을 추며 가는 행렬이다 보니, 삼일유가 행렬은 동네 사람들에겐 무척 볼만한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여인과 아이들은 담장 너머로 행렬을 지켜보고, 방 안에 있는 사람은 들창을 열어 행렬을 구경했다고 한다. 고샅길을 내다보려고 키를 담장 높이까지 키운 접시꽃은 마치 구경에 취해 볼이 발그레한 새색시를 닮았다.경주 첨성대 앞 꽃밭에 접시꽃이 한창이다. 여름이 시작할 때 피기 시작해서 가을이 시작 될 즈음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접시꽃은 우리나라 전국에서 자란다. 화단에서만 가꾸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어귀, 길가 또는 담장의 안쪽과 바깥쪽 가리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자란다. 할머니들이 좋아해서인지 지금쯤 시골 골목길에 들어서면 흙담을 등지고 기대 선 접시꽃을 만나기 마련이다. 봄이나 여름에 씨앗을 심으면 그해에는 잎만 무성하게 영양번식을 하고 이듬해 줄기를 키우면서 꽃이 핀다. 한 번 심으면 저절로 번식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꽃의 색깔은 진분홍과 흰색 그리고 중간색으로 나타난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로제트 상태로 겨울을 견디어 내고 이듬해 무성하게 줄기를 곧게 뻗어 잎사귀 사이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열매의 모양이 자동차 바퀴처럼 닮아서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씨앗이 촘촘하게 바퀴의 타이어모양으로 둘러싸여 여물고 마르면 갈라지고 떨어진다. 열매의 둥근 모양이 접시를 닮아서 접시꽃으로 불리어졌다고도 하고 꽃의 모양이 접시와 비슷하게 보여 그리 불린다고도 한다. 줄기, 꽃, 잎, 뿌리를 한약재로 쓴다. 버릴 게 없다. 특히 여성에게 유익하다고 동의보감에도 전한다. 불임을 치료했다고도 하니 보기에도 좋고 사람 몸에도 좋은 꽃이다.김순희수필가수채화 선생님을 따라 붓을 들었다. 세필로 줄기를 먼저 그린다. 줄기에 잔가지를 달고 꽃 몽우리를 봉긋하게 그린다. 물을 더 섞어 잎을 그리고 난 후, 더 짙은 초록색을 찍어 몽우리 끝에 점을 찍어 준다. 이제 꽃을 피울 차례다. 분홍색과 빨강을 적당히 섞어 꽃의 농도를 조절한다. 활짝 핀 모양과 막 피려는 봉오리와 또르르 말려 떨어지기 전의 꽃을 차례로 그렸다. 접시꽃이 화면 가득 피었다.신라시대의 할머니들이 뜰에 심어 천년이 넘도록 우리 곁에서 피어나도록 잘 간직한 접시꽃이다. 꽃도 우리에게 간직되기 위해 색깔도 더 곱게, 온 몸을 영양 가득하게 키워 약재가 되었다. 자연이 아닌 사람이 꽃을 피우는 일이 쉬운 게 아닌 것이 손바닥만 한 종이에 접시꽃을 가득 그리다보니 네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더운 여름을 잘 지나가는 묘수가 그림 속에 있었다.

2020-08-09

중고물품 거래시장의 성장조건

최근 세계적으로 온라인 중고품 거래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유럽과 같이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앞섰던 지역에서는 일반 주민들이 보유하고 있던 오래된 물건 이른바 ‘중고물품’들이 지역마다 자연스레 생겨난 벼룩시장(flea market) 등에서 거래된 지 오래다. 그런 관계로 이들 지역 주민들은 오프라인 장터를 통해 남들이 입었던 헌 옷, 헌 가방이라고 꺼리기 보다는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물품을 누군가가 다시 소중하게 다루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벼룩시장에서 불특정 다수의 거래 당사자를 만나 각자 물품에 담긴 에피소드를 말하거나 듣는 즐거운 힐링의 순간을 가지기도 한다. 이처럼 역사성을 지니면서 명물이 된 벼룩시장은 유럽을 관광하는 여행객에게는 일부러 찾아가는 관광명소로 변화하기도 하였다.반면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그와는 다소 다른 흐름을 탔다. 두 나라 모두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당시에는 국가 경제와 가계 경제가 동반 성장을 이루었다. 그 성장기의 주역이었던 베이비 붐 세대들은 가계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집, 새로운 자동차, 새로운 가구를 마련하는 것이 꿈이었다. 가계의 자산축적이 증가함에 따라 모두가 좀 더 좋은 새로운 주택, 신형 자동차, 신형 가전 등을 마련하는 것이 중산층에 진입하였음을 인증하는 것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일본과 우리나라 모두 비슷한 사회현상을 겪는 과정에서 중고주택, 중고자동차, 중고가구 등의 거래도 점차 활성화되었지만 유럽에 비하면 그 역사가 길지는 않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지금처럼 신변잡화 등 개인들이 사용하였던 중고물품이 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한 것은 경제의 체질전환이 주된 요인이다. 고도성장기의 일본과 우리나라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를 경험하였다. 국가나 지역 경제가 고도성장하는 단계에서는 과거 수요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기존 공급처의 생산시설이 완전가동상태라도 미처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지금과 달리 청년사회였고, 인구도 증가하는 사회였기에 신혼 가정, 출산에 따른 새로운 육아 환경이 필요한 양육가정 등이 증가하면서 각종 신혼살림 수요와 주택 수요, 그리고 자녀와 함께 이동하기 위한 큰 자동차의 필요성 등 신규 수요가 계속 창출되는 선순환을 일으켰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제 일본과 우리나라 모두 과거처럼 상대적 후진성을 무기로 선진국들이 닦아놓은 길을 이용하는 따라잡기만으로 성장이 가능하였던 시기는 지났다. 과거보다 더욱 많은 연구개발투자를 하더라도 신기술, 신제품의 이익을 회수할 수 있는 유효기간은 중국, 베트남 등 신흥개도국의 따라잡기로 인해 계속 단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인구사회구조도 고령화되고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상속시장도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과거 부모세대가 애지중지하면서 볼 때마다 과거의 추억을 연상시켜주었던 감성의 중고물품들이 그 자녀세대들의 눈에는 그저 오래된, 쓸모없는, 부모들 시대의 아날로그형 옛날물건에 불과하고 지금은 더욱 새롭고 좋은 디지털시대이기에 그저 생활공간만 차지하는 불필요한 물건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자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유럽이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중고품 거래시장이 자연스레 형성되기 시작한 셈이다. 게다가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전국은 물론 전 세계로도 연결되는 인터넷 시대여서 중고품 거래시장이 온라인세상으로 진입하면서 본격적인 성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중국에서도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후 오프라인의 벼룩시장보다는 바이두(百度) 등을 통해 중고물품거래 플랫폼을 검색하는 주목도가 급상승하고 관련 사이트의 거래량도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중국 경제도 고도성장기에서 중저속 성장기로 이행하는 이른바 ‘신창타이(新常態, new normal)’를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2019년도 중국 중고전자상거래 발전보고’에 따르면 현재 온라인 중고품 거래의 주요 이용자는 18세부터 34세의 청년층이고, 그 가운데 31.0%가 독신이며, 남녀 구성비는 4:6으로 고른 분포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중고시장 이용자 관찰보고’에서는 중국인의 중고품 거래 수용도가 최근 2년간 급성장하였는데 응답자 70% 이상이 주 1~2회는 중고품 거래를 한다고 응답하였고 90%는 향후 1년 이내에 중고품 거래예정이라 응답하였다. 최근 인민일보 인터넷판에서는 이와 같은 온라인 중고물품거래시장을 통해 개인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단순히 물건의 판매만이 아니라 그 거래를 계기로 새로운 동호회 활동이나 취미활동에 유용한 자료나 물품들을 주고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일본에서는 2018년 개인과 개인 간의 중고품 거래를 온라인에서 할 수 있도록 시장을 제공하는 플랫폼인 메르카리(mercari)가 도쿄증권거래소에서 기업공개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신주발행일 첫날 메르카리의 주가는 77%나 급등하며 시가총액이 6천878억 엔(약 7조 7천465억 원)을 넘어섰다. 이와 같은 현상은 미국에서도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에는 100년 이내의 물건이라 하더라도 앤티크(antique)로 분류하며 귀중하게 여긴다. 이와 같은 골동시장을 제외한 미국의 개인 간 중고물품 거래시장의 규모는 무려 약 337조 8천84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에서 시계, 가방과 같은 고가의 중고 명품전문 사이트인 더리얼리얼(therealreal.com)은 상장 첫날 주가가 44.5%나 상승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시장투자가들도 온라인 중고품 거래시장의 성장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황은 이와는 다소 다른 것이 유감이다. 정보통신기술의 선진국답게 인터넷을 통한 거래사이트가 출범한 역사는 짧지 않다. 중고 자동차, 중고 서적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온라인중고거래 사이트가 태어나고 또 사라졌다. 포털이나 옥션 등이 운영하는 중고거래사이트까지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태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문제는 중고물품거래에서 해당 플랫폼들이 일본이나 미국 등 해외 사례처럼 증권거래소에 상장될 정도로 높은 신뢰성과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선결과제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중고거래 그중에서도 직접 물품을 보지 않고 화면이나 동영상만을 보고 판매자가 설명한 그대로의 물품이 제대로 배달될 수 있을 것이라 믿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 코로나19에 따른 영향은 온라인 중고거래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비대면, 비접촉에서도 믿을 수 있는 상호 신뢰성부터 확보해야만 한다. 단지 사이트 운영자가 회원가입 과정을 통해 개인 대 개인의 거래플랫폼을 제공할 뿐 거래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선언을 공시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부분이다. 최소한의 신뢰성을 갖춘 온라인거래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이용자도 감내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거래 당사자 모두 실명인증부터 불공정 거래가 발생하면 해당 사이트에서 페널티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전 보증금 예치제도, 거래조건과 무관한 구매자의 거래 취소에 대해서는 노쇼 페널티와 유사한 벌과금부여 등 플랫폼운영자들이 책임지고 오프라인거래시장에서 가능한 부분들을 최대한 확충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8-09

의관정제(衣冠整齊)

‘옷을 바르게 입고 모자를 바르게 쓴다’는 의관정제는 옷에 대한 우리 조상의 생각을 담고 있다. 옷은 격식에 맞게 잘 차려입어야 하고 옷을 바르게 차려 입음으로써 바른 행동도 나온다고 생각한 것이다.복식 자체로서 신분을 구분하고 복식을 통해 적절한 위엄과 절제된 품격도 표현했다. 우리의 조상은 고름 매는법 등 한복을 입는 순서에서부터 보관 방법에까지 올바른 사용법을 가르쳐 왔다.의복 착용에 대한 기원은 몇 가지 설이 있다. 기후 적응설, 신체 보호설, 장식설, 수치설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어느 것이 맞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옷은 외부로부터 신체를 보호해야 하는 실용성에서 시작했으나 점차 장식의 개념이 가미되고 지금은 사회성까지 그 개념이 확대됐다.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것 중 하나가 의복이라는 사실만으로 의복이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반드시 있어야 할 3가지 기본 요소 중에도 의(衣)가 포함된다.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못난 사람도 근사한 옷을 걸치면 달라 보인다는 뜻이다. 속담에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는다는 말도 의복의 중요성을 대변한다.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정의당 류호정 의원의 국회 등원 옷차림이 논란이다. 일부 네티즌은 “소풍 왔나”등 악성 게시물까지 올렸다. 이에 대해 류 의원은 “양복과 넥타이로 상징되는 관행을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국회의원 옷차림에 대해 정해진 룰은 없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권위가 마치 양복과 넥타이 차림의 정장에서 나오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직장여성이 입는 보편적 옷차림이면 굳이 깎아내릴 이유가 없다. 국회의원의 권위는 국민을 위해 일할 때 나오기 때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8-09

‘말 따로, 행동 따로’ 정치학

안재휘논설위원“검찰에서 ‘누구누구의 사단이다’라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 애초 특정 라인·특정 사단 같은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 특정 학맥이나 줄 잘 잡아야 출세한다는 것도 사라져야 한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한 사람이 올해 들어 2차례나 검찰 학살 인사를 단행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라면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힘없는 아이를 뒷골목으로 끌고 가 실컷 두드려 패놓고 돌아서서 “폭력은 없어져야 한다”며 으스대는 일진 패악과 뭐가 다른가.모름지기 이 나라 정치권은 이중인격자들의 천국이 됐다. 앞에서 하는 말 다르고 뒤에서 시키는 일 다른 게 ‘유능한 정치’라고 믿는 타락한 정치학이 판을 치고 있다. 여러 번 속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앞에서 멋있게 좋은 말만 하고 뒤로는 민주당이 ‘독주’ 가속 페달을 밟는다. 대통령은 ‘협치’를 말하며 야당을 다독이는 척하는 선한 역할(굿캅)을 하고 민주당은 뒤에서 176석 의석수로 밀어붙여 매사를 독단으로 처리하는 악역(배드캅)을 맡는다.지난해 7월 문 대통령은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하며 “검찰이 청와대든 여당이든 권력형 비리에 엄정한 자세로 임해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한 검찰은 어떤 몰골이 돼 있나. 중요한 수사를 담당했던 윤석열 검찰총장의 동료들을 다 잘라내는 게 ‘검찰 개혁’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나.이제 국민의 관심은 이런 만신창이 검찰이 그동안 세상을 놀라게 했다가 흐지부지돼가고 있는 권력형 비리 부정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쏠려있다. 청와대 울산 시장선거 개입 의혹은 어떻게 끌고 갈 건가. 윤미향과 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은 또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 6개월째 지지부진한 추 장관 아들의 휴가 미복귀 사건 수사는 어디로 가나. 옵티머스 펀드 사건은 핵심 수사가 시원하게 진행될 것인가.윤 총장이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한 말의 파장이 길다. 그는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제 발 저린’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설훈, 김두관, 이재정 의원 등이 윤 총장의 사퇴를 종용하고 나섰다. 자기들은 한사코 ‘독재’와 ‘전체주의’ 아니라면서 왜들 그러나.손발이 다 잘렸다고 하지만 검찰총장직의 권능은 살아 있다. 윤 총장은 권력형 범죄에 대해 원칙대로 수사해야 한다. 포위한 추 장관 패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듣지 않는 대로 그 행태를 역사에 명징하게 남겨야 한다. 온 국민이 진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진짜 검사 윤석열’을 기다리고 있다.윤 총장은 지금 법대로 수사하는 게 “권력형 비리에 엄정한 자세로 임해달라”는 대통령의 당부를 지켜내게 되는 역설의 땅에 도달해 있다. 제대로 되느냐 마느냐는 다른 문제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언행불일치(言行不一致)’의 정치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시퍼렇게 멍들이고 있다.

2020-08-09

고객의 마음을 얻는 비결

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제품과 서비스는 사용자가 부여해 주는 ‘가치’를 기준으로 볼 때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첫 번째는 ‘Usable’ 유형으로, 일관성, 심미성 등 디자인 원칙에 잘 맞아 편리하다고 평가받는 제품들을 말하며, 흔히 ‘맥가이버칼’이라 불리는 스위스 군용칼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칼은 칼, 톱, 가위 등 여러 기능을 포함하고 있지만, 막상 요리나 집안일을 할 때는 사용하지 않는다. 비상시 요긴하고 기능적으로 완벽하지만, 실사용 환경에 잘 맞춰져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두 번째는 ‘Useful’ 유형으로, 식후 이쑤시개와 같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상황에 맞게 도움을 주어 유용하다고 평가받는 제품들이다. 이런 제품은 기능적으로 우수할 뿐 아니라, 실제 이용환경에도 특화되어 있어, 사용자가 의도한 목적을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이루도록 돕는다. 그러나 이런 제품에 매겨지는 가치에도 한계가 있다. 이쑤시개는 다 같은 이쑤시개일 뿐 다른 제품 대비 차별화가 느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난 꼭 이 이쑤시개가 아니면 안돼!’라고 말하는 사용자는 없을 테니 말이다.세 번째는 ‘Desirable’ 유형으로,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차별성을 인정받아 독보적인 선두 위치에 올라간 Market Leader들을 말한다. 경쟁자 대비 월등히 좋은 경험을 제공하여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명품의 반열에 올라선 제품들 말이다.자동차, 패션 등이 대표적이며, 고객들은 가격, 기능 등에서 불리한 조건이라도 선호하는 브랜드나 기업의 제품을 선택한다.마지막, 가장 강력한 유형은 ‘Delightful’ 유형으로, 고객을 기쁘게 함으로써 조건 없는 지지와 사랑을 받게 된 제품들이다. 강력한 브랜드 충성도와 팬덤이 형성되고, 종교나 컬트(Cult)에 가까운 숭배와 추종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이런 유형은 모든 기업의 꿈으로, 고객과의 지속적 관계 형성 노력으로만 달성할 수 있다.그렇다면 고객을 기쁘게 하는 제품, 브랜드, 기업의 비결은 무엇일까?Patrick Jordan 교수는 인류학자인 Lionel Tiger 교수의 이론을 토대로, 고객들이 제품을 통해 Physio, Psycho, Socio, Ideo 등 네 가지의 기쁨을 추구하며, 네 가지 기쁨이 균형 잡혀야 좋은 디자인이라 제안한다.Physio Pleasure는 고객을 유혹하는 카페의 원두 향이나 화려한 색과 같은 감각적 기쁨을 뜻한다. Psycho Pleasure는 직관적인 사용법이나 학습을 통해서 얻어지는 인지적 기쁨을 의미하고, Socio Pleasure는 제품을 통한 순위 경쟁이나 커뮤니티 등과 같은 고객 간의 사회적 교류를 말한다.Ideo Pleasure는 친환경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개념 있는’ 소비를 예로 들 수 있다.연예인도 이제 수려한 외모나 목소리(Physio Pleasure) 뿐 아니라, ‘뇌섹남녀’(Psycho Pleasure)에 ‘인싸’(Socio Pleasure) ‘개념돌’(Ideo Pleasure)이 대세인 것을 생각해 보면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비결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까.

2020-08-09

형사 콜롬보와 셜록홈즈의 협업

박화진지킴랩 기업탐정본부장전 경북지방경찰청장추억을 소환해 본다. 70년대 중반 사회적 오락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 TV가 서민들의 시름을 잠시 잊게 해줬다. 곱슬머리에 후줄근한 트렌치코트를 입은 사내가 한쪽 눈을 찡그린 채 살인사건의 용의자에게 질문을 툭툭 던지며 범행 전모를 명쾌하게 밝혀나간다. 미국 범죄수사 드라마 ‘형사 콜롬보’가 우리를 TV 수상기 앞으로 불러들였다. 어눌하지만 상대방의 신경을 자극하는 한국 성우의 더빙 목소리가 콜롬보 형사의 대명사처럼 여겨질 정도였다.한국 수사드라마 ‘수사반장’이 일반적인 범죄자들의 이야기라면 ‘형사 콜롬보’는 사회적 저명인사, 상류층 등 성공한 사람들의 살인범죄 행각을 밝힌다는 점에서 상대적 박탈감의 서민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줬다.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콜롬보 형사의 끈기와 추리능력에 감탄했다.그의 펌 머리와 트렌치코트 유행을 한 몫 하게 만들었다. 용의자와 자연스런 대화를 이끌며 범죄 혐의점을 찾아간다. 심리적 신경전을 벌이다가 마치 당신은 아닌 것 같다는듯 돌아서다가 툭 던지듯 송곳 질문을 한다.범인의 지능적인 증거인멸과 증거조작 행위에 가슴 철렁할 결정적인 한 방을 먹인다. 형사 콜롬보는 민완형사를 꿈꾸는 경찰지망생들의 로망이었다.사냥용 모자, 파이프 담배, 돋보기를 든 사내. 범죄를 추리해나가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 1890년대 후반 소설가 코난 도일이 낳은 추리소설의 등장인물. 런던 출신의 탐정 대명사 셜록 홈즈다. 주변 환경과 타인의 인상착의를 관찰하여 그 사람의 내력까지 추리해내는 프로파일링의 원조, 준 프로급의 권투실력과 괴력, 걸어 다니는 범죄학 사전, 변장술과 연기력이 뛰어난 그는 범죄사냥꾼의 전형이다. 가끔 사건해결을 위해 불법행위도 불사하는 또 다른 탐정의 모습을 보인다. 학창시절, 흥미진진한 추리전개를 끊지 못해 수업시간 책상 밑에서 침을 발라 책장을 넘기다가 혼이 나기도 했던 흑백사진 같은 추억 속 주인공이다. 법 개정으로 그동안 금지된 탐정이란 직업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수사업무 경력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게 되었다며 흥분감이 감돈다. 미행, 도청, 사생활 침해의 폐해도 우려되는 현실. 감독관청의 체계적인 관리와 같은 법적 보완이 시급하다. 그간 경찰 등 국가기관에게서 부족했던 문제들을 민간영역에서 보완해줄 수 있는 제도로 정착된다면 국민들의 성마른 갈증을 풀어줄 것 같다. 국가적으로도 전문적 인적자원을 재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셜록 홈즈의 능력이 부럽지만 그가 가끔씩 목적달성을 위해 탈법을 슬쩍 이용한 것이 뒷머리로 손이 올라가게 만든다. 그래도 형사 콜롬보가 근무여건 개선을 요구하며 잠시라도 태업한다면 셜록 홈즈라도 있었으면 하는 것이 범죄 피해자의 심정일 것이다. 콜롬보와 셜록 홈즈의 협업과 공유를 기대해본다. 최고의 케미(조합)가 되었으면 한다.“ 아! 그런데…. 홈즈 선배가 잘 하겠지요?”콜롬보가 대화 말미에 이런 말을 던질지도 모르겠다.

2020-08-09

부동산 대책을 위한 제언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현 정부를 음으로 양으로 지지해온 참여연대 조차 최근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전면 전환 촉구’기자 회견문에서 “문재인 정부 3년간 20여 차례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지만 ‘땜질식’핀셋 규제와 일관성 없는 정책 추진으로 주택 가격이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사실상 실패했다”고 선언했다.이런 와중에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등 부동산·금융정책을 다루는 주요 부처와 산하기관 고위공직자 10명 중 4명은 주택 2채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돼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마저 떨어지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6일 기자회견에서 “재산 신고내용을 분석한 결과 국토부와 기재부 등 고위공직자 107명 중 36%인 39명이 다주택자였다”면서 “부동산 정책을 다루는 국토부, 기재부, 금융위 등에는 다주택 보유자나 부동산 부자를 업무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운 부동산정책의 헛발질을 막으려면 역대 정부의 부동산정책과 집값 상승률의 상관관계를 짚어보는 게 방향성을 잡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선 위례, 판교 등 2기 신도시건설을 발표했던 노무현 정부시절 재산세인상, 종부세 도입, 양도세 중과 등 세제를 통한 규제와 분양권전매금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시행, LTV강화, DTI도입,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등 대출 및 재건축제한 등으로 집값 안정을 꾀했다. 그러나 100% 가까운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 부동산가격이 가장 안정됐던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길음, 아현 등 뉴타운개발, 강남 세곡동·내곡동 보금자리 아파트 건설, 도시형 생활주택 등이 공급됐고, 양도세 중과폐지, 세율인하, 일시적 1가구2주택 보유기관 완화, 종부세 합산배제, 투기지역 해제, 후분양제 완화 등으로 아파트분양을 촉진하는 정책이 추진됐다.집값은 마이너스 수치를 기록했다. 그랬던 집값이 3기 신도시 건설을 발표한 문재인 정부 들어 양도세 중과, 종부세 인상, 취득세 인상 등 세제 규제와 재건축안전진단 강화, 민간택지 본양가 상한제 부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부활, 신 DTI, DSR 도입 등 대출 및 재건축규제를 강화하고 나서자 다시 집값이 뛰어올랐다. 부동산가격 상승을 통한 불로소득을 유달리 혐오했던 노무현 정부와 현 문재인 정부시절 집값이 오히려 더 많이 올랐다는 게 불편한 진실이자 팩트다.주택시장 안정대책은 보유세 강화, 공급 확대 두 가지로 요약된다. 보유세 강화는 부과 기준이 되는 공시지가를 합리적으로 산정하면 된다. 또 핀트가 어긋나있는 공급확대책은 바로잡아야 한다. 시장경제 원리상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수요가 있는 곳에 주택을 공급해야 하는 데, 현 정부는 엉뚱하게 그린벨트를 해제해 3기 신도시를 추진하려한다. 이는 환경을 파괴하고, 원거리 출퇴근자만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어떤 정책도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경제학 격언을 다시 한번 새겨봐야 한다.

2020-08-06

템플스테이

템플스테이는 우리나라 불교계가 관광객에게 절을 개방하여 숙박할 수 있도록 한 일종의 관광프로그램이다. 불교가 성행하는 동남아시아 등 다른 나라에는 한국과 같은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곳은 없다. 원래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모자라는 숙박시설을 충당하는 방법으로 우리나라 몇몇 사찰에서 시작한 것이 발전하여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영문 온라인 사전인 위키피디아에도 템플스테이를 찾아보면 ‘한국 불교사원의 문화 프로그램’으로 소개하고 있다. 전국 100군데가 넘는 사찰에서 실시되는 템플스테이는 불자가 아니더라도 참여할 수 있어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찰문화 체험행사다. 특히 속세를 떠나 산사에서 수행자의 일상을 경험할 수 있고 지친 심신이 휴식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이색적인 프로그램이어서 호응도 좋다.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우리의 일상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맞으면서 휴가 문화에도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해외여행 길이 막히면서 휴가철에 해외에서 망중한을 보낸다는 것은 옛날 이야기가 됐다. 그렇다고 사람이 많이 붐비는 피서지를 찾아가기도 께름칙하다. 가족형 장박(장기 숙박)이나 차박(자동차 활용의 숙박) 등이 생겨나고 나홀로 트레킹 등 폐쇄형 언택트 액티비티가 늘어난 것도 변화다.최근에는 산속 사찰에서 스님의 수행과정을 경험하고 전통차를 마시며 온몸을 힐링하는 템플스테이가 새로운 휴가방식으로 인기를 모은다고 한다. 일부사찰에선 걷기 명상과 산책, 인근 문화재 관광까지 프로그램에 포함해 템플스테이의 묘미를 더해주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가 바꾸어 놓은 우리의 일상이 가는 곳마다 실감나게 하는 세상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8-06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김병래시조시인나이를 먹으니 단순하고 소박한 것에 마음이 간다. 젊은 시절에는 복잡하고 난해한 것에 더 오묘한 진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차츰 바뀌게 되었다. 물질과 현상의 이면에는 물론 아주 복잡한 물리와 화학과 수학적 법칙이 작용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모두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자명(自明)하게 드러나서 보이는 것만 보고 사는 것이 순리(順理)라는 생각이다.사람의 성격도 소탈한 것이 좋다. 가진 것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거만하지 않고 털털한 성격이면 한층 돋보인다. 쥐꼬리만 한 권세라도 잡으면 ‘갑질’을 일삼고, 아니면 허세라도 부려야 성이 차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남이 알아주지 않을까봐 초조해하는 소인배들과는 달리 돈이나 학벌이나 지위가 없어도 소박함으로 오히려 넉넉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행여 소박함을 천박함과 혼동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천양지차로 다른 말이다.소위 ‘운동권’세력들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졌던 내로남불, 적반하장, 후안무치, 오만방자, 표리부동, 이중인격과 같은 말들이 버젓이 용인되고 일반화되는 전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이른바 ‘대깨문’이라는 무조건적 지지층들에겐 내편이 하는 짓이면 뭐든지 옳고 정당하다는 ‘막가파’식 인식이 팽배해서 윤리나 법치도 안중에 없는 전대미문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적폐로 몰아붙인 지난 정권에는 적어도 명백한 잘못에 대해서는 부끄러운 척이라도 하는 일말의 양심이나 양식은 없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파탄지경인 경제에다 법치가 무너지고 안보가 위태로운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그에 못지않은 것이 국민들의 의식이 거칠고 천박해지는 거라는 생각이다. 편을 가르고 진영논리에 빠져 물불을 안 가리다 보면 뒷골목 불량배들이나 다를 게 없어진다. 한 마디로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천박해지고 지리멸렬해지는 걸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외치고 인권과 도덕성을 앞세우던 사람들의 이율배반과 자가당착적 행태에 무턱대고 동조를 하다보면 어느새 도덕적 해이와 불감증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권력을 잡다보니 갈수록 부실과 비리가 불거지고 위선과 가식의 민낯도 드러나서 총체적 난국의 양상을 보이는 실정이다. 이 정권의 국정운영이란 것이 그런 무능과 비리와 허구성의 노출을 수습하지 못하고 갈 데까지 가보자는 오기로 무조건 밀어붙이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과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사람을 천박하게 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정권을 잡은 자들이 독선적인 이념을 관철시키고자 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의 하나가 우민화정책이라고 한다. 백성들이 어리석고 천박할수록 프로파간다나 포퓰리즘이 잘 먹혀들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말초적이고 경망스러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정치권까지 앞장서서 천박함을 조장하는 형국이니 실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2020-08-06

정치와 과학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최근 검찰이 카이스트 총장을 불기소하기로 결정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착잡한 심정이 다가왔다.필자와 고교, 대학,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였던 그를 너무도 잘 알기에 그가 어떤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였기에 이번 결과는 예측된 것이었다. 과학계에서 오래 연구에 매진하고 과학계에 공헌한 각종 연구소의 소장이나 원장들, 그리고 일부 과기대 총장들이 이번 정부 들어 여러 명 사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왜 과학계가 정치에 휘둘려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정권교체에 따른 ‘기관장 찍어내기’ 논란은 사실상 진보, 보수 정부를 가리지 않고 오랫동안 자행되어온 아주 나쁜 관행이다. 백보 양보하여 정치, 안보, 경제 계통의 연구소의 수장들은 정권이 바뀌면 갈릴 수 있다고 하여도, 과학계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과학은 100년 앞을 내다보는 장기적 관점에서 연구해야 하며 국가의 미래와 먹거리가 과학의 발전에 의해 좌우되는데, 정권이 바뀌면 기관장 자리를 ‘전리품’처럼 여기는 풍토가 만연해왔다. 정치권 낙하산 인사나 정치권에 줄을 댄 과기계 인사가 점령군처럼 과기계의 수장으로 부임해 오는 것이 역대 정권마다 반복돼왔다. 따라서 기존의 수장들을 사임시키기 위해 무리한 감사를 통해 흠집을 잡아내려는 과정이 전통처럼 자리잡았다.이번 경우도 과기부는 무리한 감사를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 있는 로렌스버클리연구소(LBNL) 장비 사용을 위해 진행한 용역 계약이 국가계약법 위반이라고 주장했으나, KAIST 이사회는 신성철 총장에 대한 직무정지 안건을 유보시켜 과기부의 주장을 유보시켰다. 이에 반발한 LBNL은 “연구비의 집행에 문제가 없다”는 서한을 보내왔고,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도 이를 보도했다. 또한 800여 명의 국내외 과학기술계 인사들은 과기부의 처사에 이의를 제기하고, 신중한 절차와 충분한 소명의 기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확대해 나갔었다. 당시 LBNL은 이번 사태의 중심에 선 것에 당황해 하고 있다. 다만 세계적 연구기관으로서 예산의 집행에 아무런 하자가 없고 어떠한 의혹도 없다는 발표를 했다. 한국의 많은 대학들이 LBNL과 연구협력을 하고 있고, 미국의 여러 대학, 연구기관들과 연구 협약을 맺고 있다. LBNL은 한국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이후 한국대학들의 LBNL과의 협력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세계적 연구기관에 한국정부가 창피를 당한 모양새이고 결국 한국과학계의 심각한 피해를 가져왔다. 과학자, 연구자를 소중하게 여기고 보호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세계 역사를 보면 과학자를 소중히 여기는 국가가 선진국이 되었고 발전의 선봉에 서 있었다. 이제 한국정부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새 정부가 들어서면 전 정권의 과학계의 수장들을 몰아내고 무리한 감사를 통해 사임케 하는 나쁜 전통은 이제 더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정부는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모토를 내세웠다.이 모토가 제발 과학계에 대하여는 지켜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2020-08-06

마르크시즘 민주주의론 생각

지지지난 정부 시대에 모두들 드디어 민주주의가 정착됐다고들 했다. 어느 시대였던가는 숫자를 따져봐 주기 바란다. 그러나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두들 민주주의다, 독재다 말하지만 정작 민주주의는 얼마나, 어떻게, 어느 정도나 훌륭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대학 고학년 시절에 마르크시즘에서 말하는 민주주의와 독재의 ‘변증법’에 관한 책을 한 권 읽은 적이 있다. 거기서 이렇게 말한다.부르주아를 위한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다. 또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에 대한 독재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요, 독재는 독재인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독재를 거느리고 있다.흔히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부르주아에 대해 행사하는 독재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논리는 그럴듯해 보였다, 젊은 날의 내게는 말이다. 뭐든 A는 A일뿐이고 B는 B일뿐이라는 논리는 단순투명하지만 그 대상의 복잡한 양상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바로 이 복잡함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향해 한 승려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했던 것을 기억해 두기는 하자.민주주의는 언제나 독재일 수 있다고 나는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다 마코토는 국내에 번역되기도 한 작은 책자에서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에 관해, 그것은 아테네 전체 인구의 10퍼센트에 불과한 자유민들을 위한 민주주의였다고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위대한’ 민주주의 국가는 역사상 가장 호전적인 도시국가여서 전쟁을 그렇게 다반사로 치를 수가 없었다고도 한다.1980년대가 가고 김영삼 정부 시대도 가고 김대중 정부 시대가 열리자 ‘드디어’ 직선제 개헌의 참된 효과로서 정권 교체가 현실화 되었다. 그 무렵 마르크시스트들은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확대, 비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고, 덕분에 ‘절차 민주주의’라는 말이 성행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니 민주주의니 하는 원리론과 구별해서 선거 절차의 개혁이나 혁명을 설명할 필요가 생겨났던 것이다.그렇다면 이 절차 민주주의를 통해 나타난 권력은 민주주의의 진정한 담지자라고 확신할 수 있나? 옛날에 히틀러의 나치즘은 절차 민주주의로 탄생한 야만적 권력이었다고들 한다. 한 마디로 말해 표 많이 얻었다고 다 민주주의는 아니라는 것인데, 요즘 이 나라도 이 민주주의다, 독재다하는 말로 꽤나 왁자지껄할 태세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8-06

포항우체국, 추억을 갈무리하다

정미영수필가포항우체국 풍경이 역동적이다. 우편번호를 찾는 눈길과 주소를 쓰는 손길이 분주하다. 오고가는 발길이 끊어지지 않자 우편물은 자루 가득 담긴다. 분분한 사연들이 제비 떼처럼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문득, 며칠 전 읽었던 신문 기사가 떠오른다. 포항우체국은 1905년 6월 9일 연일임시우편소로 개소한 이래 올해 115년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포항우체국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오랜 세월동안 소식을 전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든든하게 수행하고 있다.사람들의 모습을 눈여겨본다. 상기된 얼굴로 편지를 들고 있는 그들에게서 달콤 쌉싸래한 표정이 느껴진다. 떨어져 지내는 가족에게 소식을 전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지금 이 시간, 그들 누구도 타인처럼 낯설지 않다.학창 시절, 집집마다 전화기가 놓여 사람들이 드문드문 편지를 쓸 때에도, 나는 편지 쓰는 일에 열심이었다. 친구가 바닷가 고향 마을로 되돌아갔기 때문이었다. 편지는 전화가 없는 친구와 나를 이어주는 소통의 끈이었다.친구는 도시로 이사를 왔다. 배를 탔던 아버지가 풍랑에 휩싸여 돌아가셨기에 어머니가 포구에서 힘들게 일했다. 하지만 접힌 삶은 곧게 펴지지 않았다. 도시 공장에 나가면 수월하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먼 친척의 말을 믿고 옮겨왔다.전학 온 친구는 반 아이들과 서먹서먹했다. 나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두 살 많고 늘 무표정이었기 때문에,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새 학기가 되어 내가 부반장이 된 직후였다. 부반장에게 솔선수범을 기대했던 선생님은 친구와 짝이 되어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데면데면한 내 행동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았다.어느 날, 수업을 마친 뒤였다. 친구는 나에게 자신의 집에 가지 않겠느냐며 조심스레 물었다.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친구의 단칸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한쪽 구석에 놓인 앉은뱅이책상 위의 불가사리들을 보았다. 친구는 여러 조각으로 잘라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불가사리가 마음에 들어 모았다고 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친구는 불가사리를 닮은 것 같다. 불가사리는 단단한 석회질 속에 싸여 있지만 몸이 수분으로 되어 있다. 친구는 겉으로 강한 척했지만, 속으로 눈물을 가득 담고 있었는지 모른다. 빽빽한 가시를 지닌 불가사리처럼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표정이라는 딱딱한 가시를 달고 살았던 것이리라.친구의 어머니는 건강이 나빠졌다. 바다에서 나고 자랐던 어머니는 고향이 그리웠을 수도 있다. 결국 모녀는 바닷가 마을로 돌아갔다. 이제 겨우 서로의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었는데…. 나는 그 후로 바닷가 소식 들려올 때면 친구를 생각하며 편지를 썼다.우정(郵政)은 우정(友情)을 이어주는 끈끈한 조력자였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닐 때에도 편지지 가득 낱말을 쏟아 부었다. 메마른 현실에 물꼬가 트이지 않을 때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 속이 후련했다. 삶의 목표가 흔들릴 때마다 마음을 내뱉고 나면, 옅어지는 의지가 다시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친구 또한 사연을 옹골지게 적어 나에게 보냈다. 마을버스를 타고 읍내 우체국에 나와 편지를 부치면, 젊은 가장으로서 짊어졌던 생활의 무게가 조금은 줄어든다고 했다.열려진 창문으로 노을빛이 찾아든다.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졌는데도 여전히 우체국 안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어쩌면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부치면서, 발신자와 수신자가 동일인이 아닌 사실에 감사할 수도 있다. 안부를 건네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 일인가.포항우체국에서 모처럼 추억을 갈무리한다. 흘러간 세월에 아랑곳없이 편지 행간에 스며있던 의미를 떠올리니 가슴 한 자락이 따스하다. 기억을 넘나드는 진실한 편지 하나 품고 있으니 살아가는 힘이 된다.나는 지금, 포항우체국 창가에 서서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띄운다.

2020-08-05

꽃 진 자리

능소화가 집니다. 무너진 꽃잎들, 담장 아래로 붉은 꽃그림자를 이룹니다. 오점의 예견도 없이 추락의 예감도 없이, 찢어지고 오므라들다 마침내 누렇게 타들어갑니다. 담담한 생의 끝자락에서 스스로 길을 내는 저 화흔(花痕)들. 제아무리 화려하고 향기로운 꽃도 지고 나면 찐득한 상처를 남깁니다.그 상처는 아이러니하게도 우연에 기댈 때가 많습니다. 꽃나무로 마당에 발을 들이는 순간, 운명이 된 우연은 상처인 줄도 모르고 꽃을 피웁니다. 그러다 돌풍 실은 바닷바람 한 점에, 여름을 재촉하는 다급한 장맛비 한 방울에 꽃잎을 떨굽니다. 일견 화려한 꽃이 안타까운 꽃 무덤으로 보이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건 너무 당연한 자연현상일 뿐입니다.진물로 끈적이는 그 자리는 끝이 아닙니다. 결코 흉물스럽지도 않습니다. 생의 이면을 날 것으로 보여주는 고해성소입니다. 살다보면 사물이나 사람을 그릇 이해할 때가 있습니다. 넘치는 욕심에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고, 어림없는 오해로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작은 우연에서 시작될 때가 많습니다. 꽃 진 자리는 이러한 우연이 마련한 통곡의 바다이자 상처의 실존입니다.하지만 그 상처는 힘이 됩니다. 그것으로 새로운 꽃망울을 말아 올릴 수 있으니까요. 결곡하게 피운 꽃은 또다시 향을 내뿜고 열매로 보답합니다.칠월의 꽃 능소화, 그 꽃 진 자리는 서러움도 추함도 아닙니다. 죽음이 아니라 또 다른 생의 시작점입니다. 곡진 생의 사이클을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증거물입니다. 그 상처가 풍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 안에서 몇 번의 개화와 몇 번의 낙화가 필연처럼 이어집니다. 싹틈 또는 꽃피움으로 이어지는 환희의 이미지, 그것이 자연의 전부는 아닙니다. 필연으로 이어지는 떨굼 또는 추락의 순환까지 거쳐야 완전체의 자연이 되는 것이지요.생각하면 모든 결실은 추락이 그 시작이었지요. 떨어져보지 않는 시간은 가짜입니다. 더럽혀지지 않은 추억은 엉터리이지요. 뭉개져보지 않은 열매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 생애, 깊어지거나 단단해졌다면 그 모든 것은 충분히 꽃 진 자리를 살폈다는 뜻이겠지요.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의 환희와 절정, 우연처럼 이어지는 청춘의 혼란과 불안. 짓무른 그 시간의 힘으로 다시 꽃망울을 맺고 피는 중년, 머잖아 운명처럼 맞이할 노년의 허무와 고독. 숨 쉬는 한 우리 삶은 비상과 추락의 변증법을 연주합니다. 저 먼 우주의 먼지로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무대 위 그 사이클은 계속됩니다.누군가 묻습니다.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망설임 없이 대답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고는 어느 시절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혹시라도 이십대 시절은 어떠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완강히 젓겠습니다. 끝없이 흔들리고 하염없이 추락하던 한 시절이었으니까요. 결실 없던 열매, 비상 없던 날개의 나날만 지속되었지요. 새벽이 올 때까지 무너지던 버거운 한 시절은 그것으로 족합니다.김살로메소설가지금의 청춘들도 별달라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겠지요. 하지만 짓무른 꽃잎 같은 시간 없이 어떻게 단련할 수 있을까요. 하염없이 떨어져본 나날들은 알게 모르게 스스로를 단단하게 부릴 줄 압니다. 싹 틔우는 모든 힘은 한 시절의 상처가 원동력이 되니까요. 떨어진 꽃잎의 선명한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굳건한 힘으로 일어설 수 있는 것이지요. 꽃의 진실은 피어서 화사하느냐, 떨어져 시드냐가 아니라 꽃 자체의 한 살이에 있습니다. 피는 꽃은 화사해서 아름답고 지는 꽃은 안타까워서 눈물겹습니다. 그러니 꽃 진 그 자리, 처절한 아름다움이라고 불러도 될까요.핀 꽃의 진실은 나뭇가지에 달리지만 진 꽃의 진실은 꽃 진 바위에 내려앉습니다. 꽃 진 자리를 톺아봅니다. 누군가 꽃 핀 자리에 눈을 높이 맞출 때, 누군가는 녹아내린 꽃무덤 속으로 마음을 보탭니다.그 속에서 생환의 뿌리를 다지고 활력의 가지를 뻗는 나무를 봅니다. 꽃 핀 나무가 단순히 밝은 눈을 선사할 때, 꽃 진 자리는 성찰이라는 깊은 우물을 보여줍니다. 생과 멸로 이어지는 이 우주적 질서는 아름다운 추락이자 처절한 비상으로 명명할 수 있겠습니다.꽃 진 그 시간을 최상의 것으로 추억하기 위해 저마다 길을 냅니다. 구구절절 말을 잇긴 했지만, 실상 떨어진 꽃잎은 해석이 필요치 않습니다. 이해되기 전에 전달되는 그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실존의 상처로 단련된 꽃무덤은 그 자체가 사유의 통로가 됩니다. 필연으로 떨어져 꽃길을 내고, 깊이 내려가 진물을 이루는 모든 것은 생의 이면입니다. 견고한 잉태와 단단한 도약을 위한 전초전입니다. 절절하게 떨어져 본 꽃잎일수록 절실하게 꽃피우는 자양분이 됩니다. 꽃 진 자리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추락 없는 꽃잎이 어디 있으며 짓무름 없는 성장이 가당키나 할까요.

2020-08-05

누구는 무너진 지구가 자기 일이라는데

장규열한동대 교수비가 오래 내린다. 장마가 그 이름이지만 올해 쏟아지는 빗줄기는 한층 더 길게 느껴진다. 지역에 따라 물난리와 뙤약볕이 함께 펼쳐진다.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이 다시 보인다. 코로나19 직전엔 호주 대륙이 난공불락의 산불을 겪었다. 감염병의 힘든 언덕을 넘으며 병균 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문명을 절감하였다.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초래했다고 했던가. 북극 얼음이 녹아내린다 하고 그 덕에 시베리아가 고온에 시달렸다고 했다. 온난화의 나비효과 끄트머리에 한국, 중국과 일본이 폭우로 몸살을 앓는다. 이상기후는 유럽에도 영향을 미쳐 영국과 스페인 폭염기록을 다시 썼다는 게 아닌가.지구 반대편도 한가할 겨를이 없다. 코로나19 위기 가운데 유난히 바쁜 기업이 있다. 스페이스엑스(SpaceX). 전기자동차 테슬라(Tesla)를 만들면서 우주개발에도 열을 올리는 일란머스크(Elon Musk)는 ‘화성에 가서 살’ 비전을 파는 중이다. 인간이 망쳐버린 지구는 인류를 수용할 능력을 이미 상실했다고 판단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류를 화성에 정착시킨다는 꿈을 향해 나아간다. 사기업으로는 역사상 최초로 유인우주선 드래곤(Dragon Capsule)을 성공적으로 쏘아올렸고 지구귀환에 성공하였다. 지난달 우리 군의 첫 통신위성 아나시스2호를 거뜬히 발사한 업체도 스페이스엑스였다. 한쪽에서 무너져 내리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개인 기업이 열심히 쌓아 올린다.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바꾸어 내겠다는 의지와 지키려는 고집스러움이 부대끼는 것인가. 코로나19와 긴 장마를 배경으로 부동산정책과 검찰개혁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모든 국민이 안정적인 주거를 확보하도록 정책이 마련되어야 하며, 부동산을 주거목적이 아닌 불로소득의 원천으로 이해하는 폐습부터 사라져야 한다. 검찰이 스스로 무너뜨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본연의 사명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국가적 과제에도 개인이나 기업이 기여할 부분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부동산정책과 검찰개혁이 적절히 펼쳐지기 위하여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부동산에 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일확천금의 꿈을 집과 땅에 걸던 생각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내 집’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주거의 안정과 생활의 공간이 적절하게 확보된다면 지나친 욕심을 품지 않고도 얼마든지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도 변화해 간다. 검찰이 가진 구시대적 권위는 이제 조정되어야 한다. 수사와 기소에 관련된 전문적 역량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유지하면서 비대하게 집중된 힘은 정당하게 조절되어야 한다. 부동산이든 검찰이든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로 이해하여야 한다.부동산쯤 되니까 내 문제로 보였을까. 일란머스크는 무너진 지구가 자기 문제라는데. 수다한 정책과제들이 사실은 모두 우리의 문제가 아닌가. 정치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정부 탓만 할 일은 더욱 아니다. 국민이 감시하고 기업이 소매를 걷어 함께 쌓아 올릴 때, 나라가 되고 국민이 산다.

2020-08-05

디지털치료제

디지털치료제는 약물은 아니지만 의약품과 같이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는 소프트웨어(SW)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애플리케이션(앱), 게임, 가상현실(VR) 등이 디지털 치료제로 활용된다. 디지털 치료제는 1세대 합성의약품, 2세대 바이오의약품에 이은 3세대 치료제로 분류된다.세계 최초의 디지털 치료제로 평가받는 제품은 미국의 페어테라퓨틱스사가 약물중독 치료를 위해 개발한‘리셋(reSET)’이다. 2017년 9월 미국 FDA로부터 환자 치료 용도로 첫 판매 허가를 받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약물 중독 환자들에게 인지행동치료(CBT)를 수행하도록 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최근 우리나라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응용소프트웨어 공급업체인 웰트와 디지털치료제 ‘리셋(reSET)’국내도입 업무협약을 체결해 화제다. 해당 앱의 임상시험 결과 리셋을 사용한 환자군에서 금욕을 유지한 비율이 40.3%로, 사용하지 않은 환자(17.6%)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정신건강 분야에서도 디지털 치료제가 개발됐다. 최근 아킬리 인터렉티브가 개발한 ‘엔데버Rx’는 FDA 허가를 받은 최초의 게임 기반 치료제다. 스마트폰 게임과 같은 형식으로 개발됐는데, 8~12세 ADHD 환자의 주의력을 개선하는 효과를 냈다. 초소형 센서를 넣은 조현병 알약 ‘아빌리파이 마이사이트’도 FDA 허가를 받았다. 조현병 환자가 알약을 몰래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데 착안, 알약 복용 시 센서가 위액을 만나 전기 신호를 만들고 이 신호가 환자가 착용한 전자기기로 의사에게 전송된다. 국내에서도 웰트, 뉴냅스, 하이 등이 디지털치료제 개발에 나서 디지털치료제가 차세대 바이오산업을 주도하는 핫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