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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좋은 사람

공자와 자공의 수많은 대화 중 ‘좋은 사람’에 관한 부분은 제법 회자 됩니다.자공이 묻습니다.“마을 사람이 다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공자가 대답합니다.“좋은 사람이 아니다.”“마을 사람이 다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공자가 대답합니다.“좋은 사람이 아니다. 마을의 선한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마을의 선하지 않은 사람이 그를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좋은 스승답게 공자님 화법은 에둘러 갑니다. 곧장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두어 번 호흡을 가다듬을 여지를 줍니다. 우선, 공자님이 말씀하신 좋은 사람 아닌 것에 대해 짚어봅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야합에 물들었을 수 있고, 모든 이가 싫어하는 대상이라면 실없이 굴어 신뢰를 잃은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 아닌 것이 맞습니다.좋은 사람 아닌 것을 예시로 들면서, 공자가 정의한 좋은 사람은 다음과 같습니다.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의롭지 못한 이들이 미워하는 사람이지요. 그런 사람이라면 부조리 앞에서 단호하게 비타협을 실천할 것이며, 어려운 문제 앞에서 사심 없이 공정함을 논할 것입니다. 공자의 ‘좋은 사람’이란 한마디로 참되고 정의로운 삶을 살아내는 이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착한 사람은 좋아할 것이지만, 나쁜 사람은 미워할 것이 자명합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나쁘게 말할 리 없고, 나쁜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을 좋게 말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못된 사람으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부정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하지만 공자가 정의내린 좋은 사람이 되거나, 그런 대상을 만나기란 쉬운 게 아닙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시시각각 타협을 종용 받고, 공정함 따위는 버리라고 재촉 당합니다. 공자가 말한 ‘좋은 사람’을 꿈꾸기는커녕, 비겁함을 무기삼아 조금씩 나쁘게 살아가는 편리를 택합니다. 좋은 사람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은 철학적 이상으로 새길 수는 있으되, 현실에서 접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애초에 좋은 사람, 운운하면서 규정을 지으려고 한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완벽한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한 그러한 판단은 하지 않을수록 좋기 때문입니다. 좋은 물건은 그냥 좋은 것이고, 좋은 사람은 마냥 좋은 것일 뿐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챙기고 싶은 마음은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심리적인 호응 관계에 기반한 지극히 감정적인 반응 체계니까요. 분명히 좋은 이유가 있을 테지만, 정확하게 말할 수 없어야 그 대상을 좋은 사람의 범주에 넣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은 좋은 사람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을 마음에서 자주 불러내는 일입니다. 좋은 사람은 정의 내리는 대상이 아니라 곁에 있음을 자각하는 거울 같은 존재니까요.많은 곁사람들이 떠오릅니다. 감히 따라갈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정서적 감성과 예술적 감각을 지닌 다정한 사람들. 그들이 전하는 따뜻함과 성실함을 접하면서 세상엔 좋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 하고 반성합니다. 오늘만 해도 그렇습니다. 음나무 장아찌가 잘 익었다고 누군가가 집 앞까지 배달해주고 갑니다. 새 집에 어울릴 거라며 오르골과 스노우볼을 놓고 가는 이도 있습니다. 며칠 앓았다는 것을 안 누군가는 죽 쿠폰을 전송해 옵니다. 천사 이름표를 단 것도 모자라 긍정의 에너지로 세상을 가꾸는 이들입니다. 처방전 없이도 받을 수 있는 명약이자, 예약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명의 같은 존재들. 울컥해집니다. 제 진심을 다 표현하기엔 오글거리고 그 마음을 다 갚기엔 아득하기만 합니다. 제대로 된 보답조차 없이 다만 오래토록 좋아할 뿐입니다. 은근히 까다롭고 대놓고 급한 제 곁에 훈풍 같은 여운이라니요.김살로메소설가좋은 것과 싫은 것에는 실체적 결론이 있는 게 아닙니다. 다만 좋아하고 싫어하는 호불호가 있을 따름이지요. 점점이 떠있는 저 부표처럼 사람들은 닮은 듯 다른 듯 제 하루를 표류합니다. 그 단독자의 삶이 서로 엮여있음을 느끼는 때가 바로 여운을 맛볼 때입니다. 이런 날이면 공자님의 좋은 사람에 대한 정의를 제 식으로 바꿔봅니다. 꿈속에서 공자의 제자가 된 누군가가 묻습니다.“마을 사람이 여운을 남기는 것은 어떻습니까?”공자가 대답합니다.“좋은 사람이다. 마을의 선한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마을의 선하지 않은 사람이 그를 본받으려 하기 때문이다.”아뿔싸! 좋은 사람에 대한 정의가 없는 줄 알았는데, 공자님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2020-06-24

바이러스가 소환한 미래세상

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비대면(Contact-free)’이 요즘 세계 IT 연구와 산업계의 큰 화두다. 비대면이란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하지 않는 상호작용의 방식을 의미하는데, 온라인 쇼핑과 로봇 배송을 비롯하여 원격근무, 원격학습, 원격의료,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샵스트리밍(Shopstreaming) 같은 가상경험경제가 대표적이다. 기술적으로는 가상현실, IoT, 센서, 인공지능, 빅데이터, 5G 등 소위 ‘4차산업혁명기술’이 총동원되어야 실현될 수 있다.바이러스 이전에도 원격, 온라인, 무인화, 자동화 등의 이름으로 선보여진 ‘사촌’ 개념들이 많았지만 대세가 되지는 못했다. 대면 때보다 비언어적 소통이 차단된다는 한계로, 소비자 불만을 우려한 기업들이 대면적 상호작용을 더 선호하여 항상 보조적인 수단 역할에 그쳤다. 비대면은 이제 옷, 신발처럼 생활의 필수품이 되어 버린 마스크처럼 포스트 팬데믹 시대 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 산업경쟁력의 핵심으로 등극한 것이다.빠른 종식을 기다리는 모두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이 가까운 시일 내에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멈춰버린 경제가 저절로 회복될 거라 기대하기는 더 어렵다. 인간성의 상징인 사람과의 교류가 건강과 생명의 위협이 되어버린 지금, ‘비대면’이 구성원과 고객의 불안감을 극복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와 같은 비대면 상황에서도 생산성을 유지하여 사회·경제적 충격을 완화해 줄 포스트 팬데믹 시대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사람 대하기가 불안해진 마음이 앞당겨 소환한 미래세상의 한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최근 몇 달 우리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애써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기업에서는 선택의 여지 없이 재택근무가 시작되었고, 생존을 위해 업무방식, 조직구조, 근무장소와 시간 등 모든 것을 바꿔야 했다. 비즈니스의 상징인 회의와 출장은 크게 줄었고, 이메일, SNS, 화상통화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비대면 업무가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재택근무나 비대면 업무가 가능한 직업은 전체 직업의 27%에 불과하다고 한다. 학교, 공연장, 소상공인, 관광지, 병원, 복지시설 등 대면접촉과 현장성이 요구되는 그 외 대다수 사업체는 형언하기조차 어려운 타격을 입었다. 사악한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사회의 가장 취약한 곳부터 먼저 공격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세상을 지탱해 오던 선량한 사람들을 재난 전선의 최전방으로 밀어내었다. 그러니 포스트 코로나 대책으로의 ‘비대면’ 활성화는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산업들부터 우선 적용되어야 한다.미래기술은 꼭 필요한데 아직 실현되지 않은 바람직한 모습을 떠올리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 어머니가 마스크와 장갑으로 중무장하고 바이러스의 위험 속으로 나가시지 않아도 되는 세상, 집 거실에서 가상현실 안경을 끼고 동네 반찬가게, 빵집, 야채가게를 한 바퀴 돌고, 서울 친구 집에도 휙 하니 마실 다녀오실 수 있는 세상처럼….

2020-06-23

울릉도行 대체 선박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천혜의 비경이 돋보이는 울릉도를 다녀왔다. 지난 80년대 초에는 고교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처음으로 가봤고, 2011년엔 가족들과 함께 명소 관광과 산행, 독도 탐방을 겸해 갔으며, 이번엔 직장동료들과 함께 자전거 라이딩과 성인봉 등반을 위해 갔었다. 풍랑 등의 기상조건에 따라 계획대로 섬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쉽질 않은데, 근 40년 동안 큰 차질없이 세번을 다녀왔으니 그나마 다행스럽고 감사하기만 하다.여행의 반 부조는 날씨라고, 입도(入島) 첫날 약간 흐리고는 이틀 동안 쾌청해서 섬 일주 라이딩과 성인봉 등정을 하기에는 최적이었다. 더구나 시원한 바람의 결 속에 온갖 비경을 접하며 파도소리와 원시림의 녹음 추임새에 맞춰 페달을 밟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국토의 막내 울릉도는 약 250만 년 전 화산 활동에 의해 생긴 섬이다. 성인봉(986m)을 주봉으로 크고 작은 봉우리와 죽도, 관음도 등을 거느린 거대한 산 같은 섬이다. 전체가 하나의 섬이지만 화산성 물질의 분화로 험준한 봉(峰)과 유일한 나리분지가 형성되는 등 지질학적으로도 학술가치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또한 부속섬인 독도는 고유한 우리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의 터무니없는 영유권 주장으로 외교적인 마찰이 끊이질 않는 민족의 자존심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지난 40여년 간 포항∼울릉도를 오가던 배의 운항에도 몇 차례 변화가 있었다. 필자는 무려 11시간이나 걸리던 청룡호를 타고 갔다가 6시간 걸린 한일호를 타고 나온 적이 있다. 그 후 2천400톤급 썬플라워호를 타고 비교적 빠르면서 안정적으로 다녀올 수 있었는데, 지난 2월말로 선령을 채운 뒤 대체 선박 투입 문제가 연일 뜨거운 감자처럼 떠오르고 있다. 썬플라워호의 선령 만기가 벌써 4개월이 지나가는데도, 무슨 뒷북 치는 것도 아니고 사전에 운항사와 울릉주민, 포항해수처와의 협의, 조정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여태껏 난항을 거듭하고 있으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모름지기 인무원려난성대업(人無遠慮難成大業·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 일을 이룰 수 없다)이라 했다.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휘호한 유묵의 글귀이기도 하다. 세상이 복잡하고 어려운 때일수록 미래를 예견하고 통찰하는 안목과 지혜를 길러야 한다. 무슨 일이든지 준비와 계획, 대비와 기획을 잘 해야 한다. 그것은 곧 나무도 알고 숲도 볼 줄 아는 혜안이기도 하다. 근시적이나 임시변통식 대처는 소모적인 논쟁과 손실을 끼칠 따름이다. 타협과 조율의 퍼즐로 상생하는 기틀을 빠르고 신중히 마련했으면 한다.파고 탓인지 기존보다 1/4 정도로 줄어든 규모의 엘도라도호를 타고 포항을 출항하는 것부터가 상당한 고역이었다. 승객 대부분이 선체의 심한 롤링으로 인해 역겨운 배멀미에 시달리는데, 배가 작아 조금만 너울이 일어도 크게 흔들리고 기상악화에 결항이 잦다는 어떤 분의 씁쓸한 푸념이 울렁거림을 더하는듯 했다.

2020-06-23

삐라 갈등

우리말 사전에 삐라는 전단과 같은 의미이나 북한어라 설명하고 있다. 우리말로 쓰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라 밝히고 있다.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전단 또는 광고용 포스터라는 뜻의 영어 표현인 빌(bill)에서 나왔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빌이 일본식 발언인 삐라로 변형돼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삐라는 전단의 성격이지만 주로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될 때 부르는 표현이다. 상업용 전단지와는 어감부터 다르다.삐라 살포의 시초는 16세기 종교개혁 중 교황을 고발하는 그림이 뿌려진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심리전 목적으로 전선에 뿌려져 적의 심리를 교란한다 하여 종이폭탄이라는 별명도 붙었다.우리나라도 해방 후 남북이 극심한 이념대립을 하면서 삐라가 많이 활용됐다. 특히 6·25전쟁 중에는 남북이 심리전의 매개로 사용하면서 엄청난 양의 삐라가 뿌려졌다. 체제의 우월성, 전쟁의 당위성 등을 주 내용으로 삼았다. 남북은 같은 민족이어서 언어나 문화적 장벽이 거의 없다. 그래서 당시 뿌려진 삐라는 약발은 잘 받았다. 6·25전쟁 기간 중 남한과 유엔은 25억장, 북한과 중국은 5억장 정도의 삐라를 뿌렸다고 한다. 전쟁 후에도 남북은 더 많은 삐라를 뿌렸고 삐라를 보고 월북 혹은 탈북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정부가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고 있는데도 북한이 되레 대남전단 살포를 예고하고 있어 남북 간 삐라 갈등이 심각하다. 특히 북한이 문 대통령을 조롱하는 사진을 담은 삐라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통일부가 유감을 표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삐라의 역사를 보면 삐라는 남북간 갈등의 선봉에 늘 서 있었다. 최근 삐라 갈등도 남북관계가 범상치 않음을 말해준 일례라 하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6-23

오른쪽, 왼쪽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이 맛은 왼손으로 비비지 말고 오른손으로 돌려 먹어라.”젊은이들에게는 꽤 알려진 남성 가수 그룹 ‘노라조’의 노래 ‘카레’의 가사이다. 인도 전통 음식인 카레는 오른손으로 조물조물 다져서 먹는다. 인도에서는 식사 때 불결하고 부정한 손으로 여겨지는 왼손을 사용하면 안 된다. 어디 인도뿐이랴. 우리 형편도 별반 다르지 않다.어린 시절 내 수저는 늘 왼손에 들려 있었다. 부모님은 왼손에 가 있는 수저를 오른손에 무던히도 옮겨 주시다가 결국은 포기하셨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사달이 났다. 왼손에 연필을 쥐고 있는 나를 보신 담임 선생님은 내 자리로 오셔서 오른손에 연필을 쥐여 주셨다. 그러나 선생님의 뒤돌아섬과 동시에 연필은 다시 왼손에 가 있었다. 교육자적 사명감에 투철하셨던 선생님은 며칠을 교탁과 내 자리를 오가시다가 급기야 내 왼손을 당신의 향기로운 손수건으로 묶어버리시고야 말았다. 그래서인가, 50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선생님의 성함과 얼굴, 그 향기는 존경스러운 마음과 함께 내 가슴에 생생하게 간직되어 있다. 아무튼 오롯한 왼손잡이인 나는 글씨만은 오른손으로 쓰게 되었고, 졸필의 탓을 여기에 돌리고 있다.오른쪽의 ‘오른’은 ‘옳다’에서 왔고, 왼쪽의 ‘왼’은 ‘외다’ 곧 ‘그르다’의 관형형에서 비롯됐다. 우리말을 풀어보니 왼쪽이 문제가 많아 보인다. 그르고 잘못 됐으니 왼쪽이 부정적일 수밖에.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좌우의 개념이 한 쪽이 긍정적이고 다른 한 쪽이 부정적인 것은 원래 아니었다. 조선시대 의정부 세 정승 중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서열이 높았다. 우리말로는 ‘오른쪽 왼쪽’이지만 한자로는 ‘좌우’로 왼쪽이 우선한다.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제가 들어서면서 우리의 국회격인 국민공회가 만들어졌다. 의장석에서 볼 때 보수적이고 혁명에 소극적이며 자본가 계층을 대변하는 온건파인 지롱드 파가 오른쪽에, 급진적이고 과격한 혁명 추진세력으로 소시민과 민중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자코뱅 파가 왼쪽에 자리 잡으면서 우파와 좌파라는 표현이 생겨났다. 역사적으로는 좌파가 더 진보적이고 과격하다고 하는데 요즈음은 오른쪽도 만만찮다. ‘가장 옳’아야 할 ‘맨오른쪽’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극우 단체, 극우주의자들의 문제는 바다 건너 일본이나 유럽 등 딴 나라 이야기거니 했다. 그런데, 이들이 어느덧 우리 사회의 한 복판에서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은 구제와 선행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하라는 뜻인데, 지금 오른쪽 왼쪽은 드러내놓고 서로 제 잘났다 대립하고 반목하고 있다. 리영희 교수가 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책 이름을 되뇌어 본다. 아무렴, 오른쪽과 왼쪽은 반목이 아닌 협조의 관계로 살아야지. 함께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날아갈 수도 있는데.“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 두 손을 다 쓰면 더 잘 비벼지고 더 맛있어지지 않을까. 오른쪽과 왼쪽이 힘을 합하고 어울려 사는 맛깔나고 멋진 세상이 아스라하다.

2020-06-23

에브리맨으로 살아가기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요즘 연예인을 꿈꾸는 아이들이 많다. 예전에는 대통령이었는데,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연예인이든 대통령이든 모두 주목받는 사람들이니, 예나 이제나 특별해지고 싶은 소망은 변함없는 듯하다. 오죽하면 ‘텔레비젼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동요까지 있을까.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런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도 사그라진다. 이제 흔해빠진 평범한 삶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작가 필립 로스는 그의 소설 ‘에브리맨’에서 그런 흔해빠진 인물을 그려낸다.‘에브리맨’의 주인공 그웬은 결혼하고, 직장 다니고, 나이 들어서는 병원에 자주 다니는 남자다. 그러나 세 번의 결혼은 모두 이혼으로 끝난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생활을 책임져야 해서 직장에 다니며 꿈을 미룬다. 생애 마지막 7년 동안은 매년 병원에 입원하다가 결국 수술실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무슨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고, 큰돈을 번 것도 아니고, 그저 그런 그웬의 삶은 우리의 삶과 너무나 비슷하다. 이런 상황과 감정들은 누구나 겪을 법한 것들이다.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이런 삶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평범한 것, 흔해빠진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흔해빠진 것이 가슴을 아리게 하고 각인된다고 한다.그웬은 세 여자와 이혼하면서 가족들에게 상처는 많이 주었지만, 이혼 후 양육비는 꼬박꼬박 보낸다. 늙어서는 딸 낸시의 쌍둥이를 돌봐준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기 집 근처로 이사 오기를 바라는 소심한 사람이다. 은퇴 후 그토록 원하던 이젤 앞에 섰을 때는 눈물을 흘릴 만큼 그림에 대한 열정이 많다. 주 1회 그림 교실을 열어 같이 늙어가는 이웃과 교류한다. 이런 일들은 정말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는 평범한 일들이다. 현실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냥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라는 주인공의 말이 그의 삶을 대변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죽음 역시 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그웬은 큰 수술을 앞두고 가족 공동무덤에 찾아가 무덤 파는 남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 남자는 무덤 파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침대를 놓아도 될 만큼 평평하게 해야 하고,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멋있어 보여야 한단다. 그웬은 나이 든 사람에게 좋은 공부가 되었다며 고마워한다. 이 말이 그웬에게 안정을 주었을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고, 그렇게 되지 못했을 때 자책하고 실망한다. 나 역시 중고등학교 시절 위인전을 읽으며 모름지기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을 남겨야 의미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던 탓인지, 가끔은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지 난감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간 사람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연이 있고, 열정이 있고, 선택이 있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려고’라는 말이 있다. 부귀영화만이 삶의 의미는 아니다. 평범함 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만들고 확인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2020-06-22

편리미엄

편리함과 프리미엄을 결합한 용어로, 편리함이 중요 소비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소비자들이 가격이나 품질 등 가성비를 넘어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는 편리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선호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예컨대 외식업계에서는 이미 손질된 음식 재료를 받아 데우기만 하는 간편식이나 즉석조리식품(RTC·Ready to Cook) 등이 부상하고 있으며, 가전업계에서는 적은 노동력으로 가사 부담을 덜어주는 의류건조기나 식기세척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또한 뷰티업계에서는 다기능성 제품인 올인원 에센스와 머리 감는 시간을 줄여주는 드라이 샴푸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맨처음 가사 노동의 강도를 줄이고자 가전제품에서 시작한 ‘편리미엄’이 식품 업계에도 나타나 가정간편식과 레토르트 식품 시장이 성장했다.환자의 식단도 편하게 섭취할 수 있고 더욱 전문적으로 영양 성분이 설계된 케어푸드로 변화하고 있다. 영양 성분에 맞춰 따로 식사를 준비해야 하고 외출할 경우 도시락을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케어푸드를 통해 해결됐다. 케어푸드는 영유아나 노인, 환자 등 맞춤형 식사가 필요한 이들이 균형 있는 영양 성분을 섭취하고 소화하기 편하게 만들어진 식품이다.최근 고령자와 환자뿐 아니라 바쁜 일상 때문에 식사를 챙기기 어려운 이들에게 식사대용식으로도 주목받고있다. 최근에는 1~2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과일 상품이 인기를 얻자 1~2인 가구의 니즈(Needs)를 반영해 잘라서 소분한 ‘조각 과일’과 일반 과일보다 크기가 작은 ‘소과종 과일’ 등이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고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를 누를 수 있는 시장은 없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6-22

문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4·19에 의한 하와이 망명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최측근의 손에 의해 희생되었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비리로 옥고를 치른 후 아직도 재산을 추징당하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역시 아들의 비리로 명예의 손상을 남겼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 조사 중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비리로 재판중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농단 사건으로 탄핵되어 아직도 수감 중이다. 해방 후 짧은 정치사에서 이토록 많은 대통령이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사례는 세계사에서 드문 일이다.불행히도 우리는 자랑스러운 전직 대통령을 가지지 못한 셈이다. 상당수의 전직 대통령은 본인과 친인척의 비리, 권력의 남용으로 고통을 겪었다. 권력이 집중된 우리나라의 단임 대통령제는 원천적으로 직권남용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순수성은 지지층뿐 아니라 상당수의 국민들이 신뢰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다행스럽게 대통령 주변의 잡음이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정권이나 말기에 가까울수록 친인척 등 권력 측근들의 비리 가능성은 높아진다.문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주변부터 경계를 보다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문재인 정부는 재판에 계류 중인 대통령 측근에 대한 재판의 공정성부터 보장하여야 한다. 조국 전 법무장관 사건뿐 아니라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정의연과 윤미향 사건은 이미 사법적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조국 전 장관과 그 부인 사건은 아직도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시정에서는 대통령의 조국 전 장관에 대한 ‘마음의 빚’이 사법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와 대통령 주변 사건에 대한 심판이 공정해 질 때 권력형 비리의 의혹은 해소될 것이다.또한 여당이 압승한 21대 국회도 문재인 정부의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대통령 지지율이 60%를 유지하고 집권 여당은 민주화 이후 최대의 의석을 확보하였다. 이럴 때일수록 문재인 정부는 오만과 독선의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19세기 영국 역사학자 로드 액튼은 일찍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해방 후 짧은 우리 헌정사에서 우리는 집권 여당의 권력형 비리를 수없이 보았다. 벌써 집권 여당의 ‘의회 독재’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집권 여당의 독주가 임기 말의 문 대통령에게는 부메랑이 될 수 있음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 민중 항쟁인 촛불에 의해 당선된 대통령임을 자인하였다. 대통령은 이제 그가 약속한 ‘공정하고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답변서를 써야 할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이를 위해 대통령은 독선적 권력은 끝까지 감시 통제해야 한다. 대통령의 눈과 귀는 그를 구해준 친문 여론에만 의존해서 안 된다. 특히 ‘대깨문’이라는 절대적 지지 세력의 좌익 모험주의는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임기 말의 한탕주의적 권력비리는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척결되지 않는다. 신설되는 공수처의 최우선 과제는 권력 측근의 비리 수사에 두어야 할 것이다.

2020-06-22

합리적인 예술인 고용보험이 절실하다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지난달 제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코로나19 관련법과 n번방 방지법, 구직자 취업촉진법, 예술인 고용보험법 등 민생법안들이 황급히 국회를 통과했다. 소위 고용보험 대상에 예술인을 추가한 ‘고용보험법’ 및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개정안이 새로운 제도로 법정효력을 얻게 된 것이다. 물론 제21대 국회에서 문화예술진흥법 개정과 시행령이 제정되어져야하는 후속 조치는 아직 남아있지만 그 실효성에 관한 뒷이야기들은 문화예술행정가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올해 초 전 세계에 불어 닥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패닉상태에 직면한 국내 문화예술계에서 고용보험법이란 제도가 과연 예술가를 위한 복지정책인지 아니면 증세를 위한 또 다른 세금정책인가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우리나라에서 고용보험법이 처음 도입된 건 1995년이다. 이 법은 근로자가 실직하였을 경우 실직한 근로자 및 그 가족의 생활안정과 재취업을 촉진하기 위한 근로자 복지제도로 , 실업보험이 실업급여 중심이라면 우리나라는 고용보험제도의 도입이라는 특수성을 갖는다. 즉, 실업 이후에 실업급여를 제공하는 것보다 실업 그 자체를 예방하고 고용구조를 개선하는데 그 비중이 더 크다. 근로자의 직업능력 향상으로 전통적인 실업보험제도와 직업훈련, 고용 안정 사업 등이 결합된 제도라 할 수 있다. 적극적 정책의 수단이 연계된 시스템의 개념이다. 일반 근로자의 경우,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회사의 폐업 등의 이유로 휴직 기간일 때는 고용보험의 적용으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문화예술 용역계약을 체결한 예술인 역시 고용보험 적용대상이 되며 임금근로자와 유사한 수준으로 실직시 실업급여와 출산시 출산전후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하지만 예술인의 경우는 이처럼 권고사직, 계약기간 만료, 정년, 회사 폐업 등 비자발적인 사유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가 새로운 현안이 되고 있다. 현재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국예총)에는 130만 명 예술인들이 소속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예총 이외 단체와 개인으로 활동 중인 예술인까지 모두 합친다면 300만 명이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자신들의 열정과 예술세계를 피력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 왔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문화행사가 취소 또는 연기된 사례만 하더라도 전국적으로 2천500건 이상, 피해액만 500억원대라고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예술인들의 보험계약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기획재정부에서는 “전 국민 대상의 고용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에 2022년까지 9천억원 정도의 재정을 투입하려 한다. 그리고 우선 예술인과 특고 대상자들의 고용보험 가입을 지원하고,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사업과 구직급여 재정도 확충하고자 한다”는 정책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좋은 제도라도 일반직장인과 예술인과의 차별이 균등하게 이루어지고 분배되어진다면 예술인들은 상대적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국내 예술노동 환경의 열악함을 무시한 일방적 제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0-06-22

렘브란트의 자화상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화가 렘브란트(1606∼1669)는 ‘빛의 마법사’라고 불린다. 빛과 어둠의 대비가 극명한 신비한 분위기의 걸작들을 많이 남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100여 점의 자화상을 그린 렘브란트는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많은 자화상을 남긴 화가이기도 하다. 20대 초반 화가로 성장해 가던 풋풋한 청년의 모습에서부터 대성공을 거두며 자신에 차 있는 당당한 모습 그리고 한 순간 몰락을 경험하며 깊어가는 고뇌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자화상까지 렘브란트가 남긴 몇몇 점의 자화상만 살펴보더라도 한 명의 거장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자취를 찬찬히 쫒아갈 수 있다.렘브란트가 활동하던 17세기, 해상무역의 강자로 떠오른 네덜란드는 큰 부를 축적한다. 길드들은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과시하기 위해 최고의 미술가에게 작품을 의뢰하곤 했는데 1632년 암스테르담 외과의사협회는 아직 젊은 화가 렘브란트에게 단체 초상화를 의뢰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렘브란트의 걸작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이다.렘브란트 이전의 화가들은 그림 속 인물들을 마치 개개인의 증명사진을 오려붙여 놓은 듯 경직된 모습으로 그렸다. 그런데 렘브란트는 초상화에 연출이라는 개념을 적용해 생동감 있는 장면을 만들어 낸다. 배경은 연극 무대처럼 배치했고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이 그림으로 스물여섯의 렘브란트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부호들과 협동조합들은 앞다투어 청년 화가에게 작품을 의뢰했고, 큰 부와 명예를 쌓았다. 1634년 성공가도를 달리던 렘브란트는 베레모를 쓰고 고급 모피 외투를 두른 자신의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 밝은 빛이 화가의 얼굴을 밝히고, 자신에 찬 매서운 눈빛으로 감상자들과 시선을 교환한다.1640년에 그린 자화상을 보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화가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대가의 여유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열정의 시기가 지나고 본질을 꽤 뚫고 있는 그런 분위기의 자화상이다. 그림 속 화가가 오른 팔을 난간에 걸치며 여유로이 화면 밖을 응시하고 있는데, 이는 베네치아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티치아노(1490∼1576)가 그린 ‘누빈 소매 옷을 입은 남성’(1515년경)의 초상에서 가져온 것이다.정점에 올랐다는 것은 서서히 또한 기운이 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지만, 멈추지 않는 회화적 실험 정신이 렘브란트의 화가 인생을 내리막길로 안내하고 만다. 시민 민병대에서 의뢰한 단체 초상화가 문제였다. 1642년 폭이 4미터가 넘는 대작을 완성하고 의뢰인에게 건넸을 때 그 반응은 예상 밖으로 아주 부정적이었다. 민병대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출동하는 절도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기대했을 텐데,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인물들은 제각기 시끌벅적 떠들어대는 무질서함을 보이고 있다. 렘브란트는 연극적인 요소를 극대화해 자유분방한 화면을 구성하였지만, 의뢰인들의 기대에서 아주 벗어났던 것이다.한 점의 그림으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렘브란트는 한 점의 그림으로 가파른 내리막을 경험한다. 불행이 또 다른 불행을 불렀는지 세 명의 자녀들이 세상을 떠났고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가세가 기울었고 화가는 일순간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다. 젊은 시절의 자화상에는 의욕과 자신감이 넘쳐났고, 전성기 시절에는 고귀한 모습으로 자신을 그림에 담았다면 몰락을 경험한 노년기 렘브란트는 새로운 차원의 정신세계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자화상은 인물화의 한 종류로 미술가가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은 것을 이야기한다. 초상화가 그렇듯 화가의 자화상 또한 단순히 그려진 인물의 외모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성품과 내면 그리고 생의 단면들이 색과 선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며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0-06-22

진정한 행복의 척도는… 영천 부귀사(富貴寺)

산길을 접어들자 더이상 민가는 보이지 않고 차는 하염없이 숲을 빠져들듯 나아간다. 산은 적막감에 싸여 베일에 가려진 듯 조심스럽고, 무성한 나무들의 푸른 눈빛은 너무나 성성하여 두려움조차 인다.네비게이션은 태연하게 그 길을 고집하는데 친구와의 대화는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말수마저 줄어든다. 흔치 않은 경험이다. 잠시 그늘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연다. 커피를 마시며 애써 숲을 예찬해보지만 하오의 신록은 끊임없이 나를 불안 속으로 몰아넣는다. 용기를 내어 꾸역꾸역 낯선 이름, 부귀사를 찾아 산길을 오른다.부귀사는 신라 진평왕 13년(591년)에 혜림대사가 거조암과 동시에 창건한 1400년이라는 긴 역사를 지닌 절이다. 고려 때는 보조국사 지눌이 주석한 절로, 도중에 폐사되지 않고 명맥을 이어온 크게 알려지지 않은 고찰인 것이다. 산이 좋고 귀한 물이 있다는 산부수귀(山富水貴)로 알려져 약수는 아토피성 피부병에 효험이 탁월하고 각종 차맛을 내는 찻물로 유명할 만큼 수질이 뛰어나다고 한다.몇 개의 굽이를 지나자 커다란 바위 아래 부도밭이 보이고 그 너머로 아늑한 분지형 터에 부귀사가 자리하고 있다. 어떤 인위적인 꾸밈도 없이 환하게 트인 공간 위로 뻐꾸기 소리만 쏟아져 내린다. 신비스러울 만큼 작은 절이 고요를 삼키며 참선 중이다. 결코 낯설지 않은, 그런데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신세계에 이른 듯 경이롭다. 여느 사찰과는 달리 깊고 깊은 산중에 자리한 때 묻지 않은 절이다.불안했던 여정은 계단 위 보화루 앞에서 씻은 듯 사라지고 감탄사만 쏟아낸다. 소박하면서도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절이다. 보화루를 향해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저절로 경건해진다. 일주문이나 천왕문은 없지만 보화루는 사찰의 마지막 문인 불이문에 해당한다. 저 해탈문을 들어서면 부처님의 나라, 불국정토에 이른다. 우측 담장 끝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큰 나무들의 눈빛도 넓고 깊다.어쩌면 부귀사에 오는 동안 우리를 두렵게 했던 나무들은 천왕문을 대신했던 것이 아닐까. 현란하고 삿된 마음 돌아보지 않고 잡담을 이어오는 우리를 향한 무언의 경고였으리. 산 아래에서부터 이어지는 일주문과 천왕문을 마음으로 읽지 못하고 어리석게도 숲의 적막함만 보였던 것이다. 모든 나무와 숲, 자연에는 오염되지 않은 혜안을 가진 기운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아담한 보화루를 누하진입식으로 통과하면 부처님 세상에 닿을 수 있다. 누각 아래의 어두운 통로 저쪽 편은 마치 딴 세상처럼 밝고 환하다. 누각 밑의 어두움은 나의 어리석음을 뜻한다. 그 장애물을 극복해야 비로소 극락에 들어설 수 있다. 머리가 천장에 닿을 것처럼 누각을 낮게 만든 것도 깊은 뜻이 숨어 있다. 머리를 숙이며 나를 내려놓고 온갖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리라는, 즉 하심(下心)하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는 것이다. 불교 공부에서 첫걸음이자 마지막이 곧 하심이다.그 동안 수도 없이 머리를 숙이고 절을 들어섰으며 법당에서의 백팔 배도 오로지 하심을 위한 기도였다. 그런데도 절문을 나서면서 그 간절함은 어디론가 흩어지고 일상은 또 허둥거리며 자기반성만 되풀이하느라 바쁘다. 절실함이나 일념의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리라. 절 기행은 성숙한 외관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멀고 힘든 일이지만 하심하는 마음은 죽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하리라.보화루를 통과하는 마음이 더없이 차분하다. 경내에 들어서자 몸과 마음이 불국토임을 먼저 알고 편안해진다. 절은 어떤 인기척도 없고 오래된 석등 하나 외롭다. 극락전을 지키는 배롱나무 그늘 뒤편으로 하얗게 피어서 지고 있는 클로버 무리들과 알 수 없는 꽃향기로 경내는 아찔하다. 빈 절에 들어서면 몸가짐과 행동은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고향집에 돌아온 것처럼 따뜻한 이 느낌은 무엇일까?조낭희 수필가극락전에는 주존불인 아미타여래불을 중심으로 세지보살과 관음보살이 봉안되어 있으며, 삼존불 뒷벽에는 1754년에 제작된, 18세기 중엽의 전형적인 양식의 후불탱화 미타회탱이 보인다. 부족한 안목으로 탱화를 감상하기보다는 법당의 아늑한 분위기에 이끌려 가부좌를 하고 앉는다.불안과 공포, 평화와 행복을 오갔던 일련의 마음들을 모처럼 들여다본다. 일상을 따라다니던 생각과 잡념의 징그러운 고리들, 쓸어내고 비워내도 다시 쌓이는 탐욕들을 가만히 응시해 본다. 이내 마음이 고요해져 온다. 친구는 요사채 뜰에 앉아 시간을 즐기고 나는 수행기도도량인 부귀사의 청정한 맥박 소리를 듣는다.요사채를 돌아 작은 마당에 들어서니 요사채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스님은 잠시 포행이라도 나가신 듯하다. 뜰 위에 쌓여 있는 장작과 큰 채반에 널린 밥이 유월의 햇살 속에서 말라가고 있다. 수행 중인 스님의 삶과 첩첩 산중에 홀로 깨어 있는 작은 절이 내 안에 불을 밝힌다. 보화루 처마에 걸린 하얀 지등(紙燈)을 향해 두 손 모으는 내게 말씀 하나 들린다.‘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가지느냐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느냐에 달려 있다.’

2020-06-22

부국강병책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은 나라 살림을 살찌우고 군사력을 튼튼하게 하는 국가 안위와 관련한 주요 정책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치자들이 일관되게 추진해온 정책이라 말할 수 있다.지금도 부국강병책은 국가 안보전략의 핵심적 위치에 있다. 인류의 모든 역사가 전쟁의 결과에 따라 그 줄기를 이어갔던 것을 나라마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수백 개의 제후국에서 전국 7웅으로 재편되고, 다시 진(秦)나라로 천하가 통일됐던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으로 날이 새던 시절이었다. 전쟁을 통해 나라가 이합집산하고 결국은 힘이 센 나라가 천하를 얻게 된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보여준 시대였다.오늘날도 국가의 안위를 보전하는 방법은 예전이나 다름없다. 나라의 힘이 세야 국가를 지키고 국민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한 수많은 고사성어 중에 전쟁과 관련한 것이 유독 많았던 것은 전쟁만큼 인간에게 혹독한 교훈을 주는 것도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전쟁은 자국의 이익과 번영을 위한 무력 수단이다. 힘으로 다른 나라를 침범해 주권과 재산 심지어 생명까지 빼앗는다. 춘추좌씨전에서는 거안사위 유비무환(居安思危 有備無患)이라 가르치고 있다. 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하고 미리 대비하라는 뜻이다.북한이 온갖 위협을 일삼고 있다.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 폭파 후 “이것은 처음 시작에 불과하다”고 엄포까지 놓고 있다. 북한의 추후 도발이 무엇이 될지 모르나 국민을 불안케 하기에 충분히 고조된 분위기다. 국민의 불안감을 다독여 줄 정부의 확고한 응징의지가 필요하다. 부국강병의 안보관이 절실한 지금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6-21

‘봄’이 폭파되다

안재휘 논설위원중매에는 ‘잘 하면 술이 서 말이요, 잘못하면 뺨이 석 대’라는 속담이 따라다닌다. 속담은 중매가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만큼 어렵다는 경계를 전한다. 사전적 의미로 혼인은 억지로 권할 일은 못 된다는 말이기도 하고, 중매 또한 함부로 할 일이 못 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깜냥도 안 되는 서툰 사람이 큰일을 망친다는 뜻의 ‘반풍수 집안 망친다’는 속담도 있다.한반도 비핵화라는 세기적 과업을 목표로 하는 북미회담의 중매 역할을 자임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렸다. 북한이 예고했던 대로 개성공단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저들이 끝내 ’남북 합의’ 전면 파기 수순에 돌입하는 사태를 보면서 왕조 세습국가 북한을 설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한다. 요 몇 해 남북이 ‘봄이 온다’, ‘봄이 왔다’ 운운하며 열광했던 ‘평화의 봄’은 연락사무소 폭파 쇼로 끝장이 났다.평화는 ‘평화 타령’만으로 지켜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재확인된 셈이다. 굴종으로 잠시 유보한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될 수 없다는 사실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아무래도 신변이 무탈하지 않은 것 같은 김정은의 형편과 재선 가도에 빨간 불이 켜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지 사이에서 한반도의 작금 상황은 매우 엄중하다. 우리의 의지와 아무 상관 없이 미지의 시한폭탄이 작동되고 있는 느낌이다.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코너에 몰린 것인가. 지난 일들을 차례로 복기해보면, 북미회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섣부른 ‘낙관’이 중대한 원인으로 짚어진다. 때마침 폭로되고 있는 존 볼턴 전 미국 대통령 안보보좌관의 고백 속에 힌트가 있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에 전혀 관심이 없이 사진찍기에 혈안이 됐던 트럼프와 내부 갈등을 빚은 볼턴의 장난질을 간파해내지 못한 패착이었던 것으로 유추된다.절박했던 것은 우리뿐이었다. 집권 이래 ‘세계 대통령’의 지위를 포기하고 국수주의(國粹主義)적 외교 행태를 보인 트럼프는 한반도의 운명을 한바탕 체스판처럼 다뤘는데, 청와대는 그걸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북미회담에 대한 문 대통령의 희망 섞인 낙관은 결국 양쪽으로부터 세찬 원망을 듣게 되는 최악의 결과를 빚고 말았다. ‘조선반도 비핵화’와 ‘북한 비핵화’의 근본적 차이를 묵과한 문 대통령의 전술이 실패로 귀결된 것이다.이제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반미 운동권이 ‘대북 전단’과 ‘한미워킹 그룹’을 철천지원수 삼아 잡드리하는 행태에서는 그 어떤 해법도 있지 않다. 희생양을 자처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의 퇴임사에 성성한 날카로운 가시들을 잘 읽어야 한다. 최소한 지금처럼 낭만주의 평화론에 찌든, ‘무능한’ 청와대 참모들과 국정원으로는 출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평화 쇼를 연장하며 시간을 번 북한의 핵 무력은 한층 업그레이드돼 있을 게 분명하다. 시계 제로의 안개 속에 묻힌 나라의 아찔한 운명 앞에, 우리는 연일 조마조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2020-06-21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생존하기 위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소비자의 비대면, 비접촉에 대한 수요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지게 될 것이라는 데는 누구도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이러한 소비자 행동의 결과는 우리나라는 물론 주요국에서도 대형 유통소매업체들의 매출 하락으로 뚜렷하게 증명되기 시작하였다. 실제 미국의 백화점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3월 마이너스 25.1%에서 4월 마이너스 47.0%로, 의류(apparel) 업체는 3월 마이너스 49.8%에서 4월 마이너스 89.3%로 하락 폭이 확대되고 있다. 스웨덴의 세계적인 패션업체인 에이치앤엠(HM)은 지난 3월 이후 약 2개월간 매출액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마이너스 57%를 기록하였다. 일본의 백화점 매출도 3월 마이너스 33.4%에서 4월 마이너스 72.8%를, 의류 분야는 3월 마이너스 22.7%에서 4월 마이너스 53.6%로 확대되는 등 전 세계의 소매업종이 모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그만큼 그동안 사람이 밀집되고 있던 백화점, 그리고 많은 사람이 입어보고 만지게 되는 의류와 같은 소매업종일수록 비대면, 비접촉시대로 이행되는 과정에 있는 지금 시기에는 직접적인 피해가 가중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사실 이와 같은 세계적인 유통소매점들이 그동안 온라인쇼핑몰과 택배 서비스로 연결되는 전자상거래에 무관심했던 것도 아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지난 5년간 일본의 편의점업체 세븐앤아이는 총매출액 대비 전자상거래를 통한 매출비율이 0.9%에서 2.7%로 늘었고, 미국의 월마트는 2.3%에서 6.8%로, 코스트코는 4.0%에서 7.0%로 늘어났다. 또 미국의 가전유통업체 베스트바이(Best Buy)는 10.1%에서 20.3%로, 영국의 식품마트 세인스베리(Sainsbury’s)는 5.1%에서 14.8%로 대부분의 소매유통업체는 온라인 쇼핑 거래 비중을 상당히 큰 폭으로 확대해왔다. 이들의 온라인거래 강화는 앞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조준하면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생각한다.더구나 이들 대형 소매점들은 최근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여 그동안 추진 중이던 디지털화, 온라인화에 더하여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 더욱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 눈에 뜨이는 것은 역시 관점 내지는 시각의 변화다. 지금까지 소매점들은 최대한 고객들이 물건을 찾기 위해 점포를 몇 차례나 둘러보게 만드는 등 고객의 점포 내 체류 시간을 늘려 매출을 극대화하는 상품 진열방식 등 다양한 전략을 채용하여왔다. 하지만 최근 소비자들이 원하는 비대면 비접촉과 더불어 점포 내 체류 시간을 줄이려는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많이 찾는 생필품들을 점포 내 최단 이동 거리에서 선택하여 점포 체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상품배열을 조정하고 있다. 일부 점포에서는 스마트폰 앱으로 고객이 물품을 즉각 찾을 수 있는 안내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특정 점포에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대와 한적한 시간대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등장한 신규 서비스로는 소비자가 방문 전 미리 온라인으로 선택한 물품을 점포 외부 로커(locker)에 넣어두면 해당 고객이 스마트폰으로 인증한 후 로커를 열어 물품을 직접 인수하는 방식이다. 점포의 종업원과는 아예 비대면 비접촉이 실현되는 셈이다. 그리고 고객이 물품을 손수레(cart)에 담아오면 종업원이 바코드만 인식시킨 후 계산은 고객이 무인 결제하는 방식도 도입하고 있다.게다가 이들 소매점 업체의 수익확보를 위한 경영전략도 다각화되는 모습이다. 이들은 지금 백화점에서 사용하고 있는 유사한 방식을 채용하여 해당 소매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주요 제품의 진열 장소를 해당 제품 제조업체에 맡겨 제조업체가 자사 제품을 직접 홍보하는 부스로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방식의 채용으로 제조업체는 자사 제품의 홍보와 장점을 고객에게 직접 설명할 기회를 얻고, 해당 소매점 경영자는 제품이 판매되지 않더라도 일정 공간을 대여해 주는 것에 대한 수수료를 받을 수 있어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어느 소매점에서는 가게 안에 다양한 센서 등 전자기기를 설치하여 두고 고객들이 어느 제품에 관심을 두는지, 어떤 제품을 만져보는지, 그 체류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등 다양한 데이터를 수수료를 받고 해당 제조업체에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맞게 별도의 대화나 설문 조사 등이 없더라도 고객 행동이 시사하는 정보를 해당 제조업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소매점은 새로운 수익원을 얻는 뉴노멀의 비즈니스가 탄생하고 있다.포항과 같은 지방 도시는 대체로 전국 유통망을 지닌 대형 소매점이 아닌 한 소상공인들이 경영하는 소매점이 주축을 이룬다. 아무리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한다고 하더라도 이들 모두가 지금까지 없었던 온라인상거래를 즉시 도입하거나 스마트폰 앱을 통한 대고객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처럼 세계적인 소매점들이 새로운 시대적 변화에 생존하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하는 모습만큼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현재 상황에서 충분히 아이디어를 짜낸다면 전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예를 들어 전통시장에서 배달서비스를 하기 어렵다면,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미리 전화로 주문을 받아주고 손님은 주문한 물건을 확인한 후 바로 계산하여 가져갈 수 있는 장치만 마련해도 시장 내 체류 시간의 단축과 최대한의 비접촉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생각 같아서는 시장상인회에서 손님이 시장에 방문하기 전에 필요한 수량, 물건, 가격대 등을 알려주면 상인회가 책임지고 하자 없는 물건을 모두 마련하여 두고 고객이 물건과 가격을 확인한 다음 한꺼번에 계산하고 장보기를 끝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이 또한 고객의 시간 절약, 시장의 새로운 매출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골목상권에서도 조금은 유사한 아이디어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당장 온라인매출이나 배달서비스가 어렵다면, 적어도 미리 전화로 주문을 받은 물품을 상자에 담아두기만 해도 주변 소비자들은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다. 좁은 가게 안에서 다른 손님들과 어깨를 부딪칠 필요도 없이 주문해둔 내용을 확인한 후 계산해서 물건을 가져오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비대면 비접촉시대에는 장보기 대행서비스가 다시 인기를 끌지도 모른다.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변화에 대해 개인, 중소기업, 소상공인 모두 각자의 영역에 수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만큼 우리 모두 비대면, 비접촉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아예 눈을 감아버리면 생존은 보장되지 않는다. 특히 고객과 만나고 접촉해야 하는 소매 분야일수록 이와 같은 시대적 변화에 어떻게든 적응해야만 한다. 앞으로 지역의 소상공인, 전통시장 등 각 경제주체가 지속 가능한 생존에 성공하려면 과거부터 수없이 겪어왔던 많은 외부 충격에서도 큰 탈 없었던 점만을 믿어서는 아니 된다. 지금까지 고수했던 모든 방식이 더는 통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접촉, 대면 시대의 경험을 모두 지운 백지상태에서 받아들여야만 할 것, 바꾸어야만 할 것, 버려야만 할 것, 끝까지 고수해야 할 것 등을 하나하나 따지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때가 왔다. 그리고 때로는 단순한 발상의 전환만으로도 위기를 극복할 수도,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수도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자./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6-21

취미가 밥 먹여 주냐?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식사하셨습니까?” 인사말이다. 밥 먹었냐고 묻는 말로 인사를 하는 나라가 몇 나라일까 싶다.끼니를 제대로 챙겨먹을 수 없던 시절엔 밥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밥을 먹었는지 물어보는 일이 제일 중요한 관심사이기에 인사말이 된 것이다.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던 프랑스 혁명의 초기 외침도 결국 원초적인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것의 다름 아니다. 지금도 혁명정신을 지키기 위해 프랑스에서는 빵 값을 국가에서 관리한단다. 젊은 세대들은 이 인사말의 유래를 들어도 잘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다. 배고픔과 같은 절대빈곤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밥만 먹고 사냐?’는 우스갯말이 생겨난 것을 보면 적어도 밥만 먹기 위한 경제 활동을 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기본적인 생존 위협에서 벗어나니 풍요로움 삶에 대한 욕구는 문화적 욕구로 넘어가고 있다. 여기저기 취미활동이 풍성하다. 한 때 일부 상류사회에서 그들만의 리그로 여겨지던 테니스, 골프, 승마, 요트 같은 놀이가 대중화로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골프채를 닦으며 부하 직원에게 지시하던 회장님만의 장난감이 웬만한 직장인은 물론 주부들도 주방의 국자 휘두르는 일처럼 일상화되었다. 중년 남자들이 삑소리를 무릅쓰고 굵직하게 내뱉는 저음의 부르스 곡 색소폰 연주(청중의 불안감은 내 알바 아니다)로 여심을 흔들고 싶어 한다. 헌팅캡을 삐딱하게 눌러쓴 채 긴 후드를 장착한 카메라를 들고 피사체를 향해 연신 카메라 샷을 눌리는 이는 아마추어 사진작가 반열이다. 유화 물감으로 캔버스 한 모퉁이를 알지 못할 형상의 덧칠을 하더니 붓끝을 왜 그리 열심히 보는지 이쯤 되면 피카소도 고개를 숙일만하지 않는가? 나무토막이 이유도 모른 채 끌 칼에 깎이고 톱에 잘리며 주인 잘 못 만난 탓을 하는 사이에 전문가 뺨치는 목공예 소품으로 만들어져 새 주인을 기다린다. 넘치고 넘치는 취미생활이다.이쯤 되면 그 동안 들어간 비용 손익계산서를 들여다봄직하다. 가정경제를 꾸리는 주부의 찡그린 타박이 들려온다. 남정네의 과다한 관심영역을 채워주는 취미생활이 가계에 미치는 영향을 따지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 학원비, 아파트관리비 등등. 기본 지출항목에 취미생활비용이 점점 잠식해 들어온다. “취미가 밥 먹여주느냐?”는 극언(?)이 뒤통수를 내리친다. 그동안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지쳐버린 내 영혼의 안식과 미래를 위해 재투자하는 충정을 이해 못하고 등 뒤로 던지는 비수에 급소를 맞는다. 여심을 흔들고 싶었던 악기연주도,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피카소를 소환하는 일도, 여인의 누드사진도 아니고 삶의 찐한 향기를 우려내려던 일생일대의 흑백사진도 찌든 삶의 아우성에 도로 다 물려야할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 말자. 잘 키운 취미 하나, 열 직장 안 부러운 시대다. SNS로 하는 취미생활 자랑이 돈벌이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조회 수가 많아지면 돈을 준단다. 취미가 밥 먹여주고 때론 직업으로 변신하는 시대다. 마른하늘 적시겠다고 가정용 가습기 한 대 트는 일이 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밥 먹고 사는 방법이 다양해진 세상이다.

2020-06-21

식물에게 말하기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멀쩡하게 잘 자라던 ‘뱅갈고무나무’가 하나 둘 잎을 내리더니 급기야 남은 잎들도 비틀어지는 꼴이 심상치가 않아 식물원에 찾아가서 자문을 구했다.처방으로 영양제 한 봉지를 주며 계절도 좋고 하니 당분간 밖에다 두고 신선한 바람을 맞히라 하였다. 반신반의했다. 전문가의 의견이니 존중해야겠지만, 내심으로 절반은 믿기가 어려웠다. 전원으로 이사하고 나서, 지난 20여 년 간 잘 키우던 식물에게 자연의 햇살을 보여주고 좋은 공기를 마시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밖에 내놓았더니 불과 며칠 만에 죽어버린 것이 여럿이었고, 온실을 만들어 이번에는 잘 살겠거니 기대하며 두었다가 또 많은 식물을 죽게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온실 유리를 통한 따가운 햇살을 식물들이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집 안에서 키우던 식물이 죽는 일은 없었으니 선뜻 내놓기가 망설여짐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집안에서 이미 시들고 있는 고무나무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흔히 보던 알갱이 모양의 영양제를 화분위에 뿌리고 물을 흠뻑 준 다음 햇살과 그늘이 적당한 밖에 내놓았다. 그동안 날씨가 좋았고, 두 번의 비가 내렸으나 비를 맞게 그냥 두었다. 며칠 전부터 놀랍게도 비틀어졌던 잎들이 곧게 펴지고 새잎들이 나기 시작했다. 자연의 치유 능력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자연의 질서를 헤아려 잘 적응할 수 있게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자연의 신비, 생명의 신비는 무한하다.이기심이 많은 탓인지 모르겠으나, 평소 나 이외의 타인이나 동식물에 대하여 비교적 무심한 편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지독한 어둠에 빠져있을 때, 나를 건진 건 사색을 통한 자경(自敬)이 아니라 언제나 자연이었고, 동식물이나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언젠가도 지독한 회의에 빠져 방황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식물과의 대화를 권하였다.“식물과 얘기하세요. 그들은 당신의 말을 아주 잘 들어줄 겁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함부로 옮기지도 않습니다.”그때부터 아파트 베란다에 있던 식물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고, 20여 년간 시시때때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해주며 보살펴서 한 포기의 식물도 죽이지 않았다.식물에게 좋은 음악을 틀어주면 성장이 촉진되고 병충해에 저항력이 생겨서 튼튼하게 자란다. 식물학자들의 연구에서 해충이 클로버 잎을 뜯어먹자 다른 클로버들이 서로 경고하는 신호를 보내고, 해충이 싫어하는 물질을 배출하여 벌레를 물리치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하였다 한다. 그래서 식물도 지적생물체라 하는가 보다. 식물은 말을 못할 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난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온 천지가 녹음으로 우거진 6월, 여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면활동이 편치 않다. 가까운 식물원이나 솔숲, 자연을 찾아 식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떨지.

2020-06-21

신나라 레코드

턴테이블을 샀다. 오래전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분리수거 해 버렸는데 쇼핑몰에서 아담한 녀석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버렸다. 굵직하고 낮은 목소리의 올드 팝에 이끌려 가보니 LP판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가끔씩 지직거리는 소리가 정겨워 한참을 멈춰 서서 들었다. 쇼핑목록에 없었지만 사지 않으면 눈에 밟힐 거 같아 업어와야만 했다.이 녀석은 자세히 보니, 최첨단 기능을 탑재하고 있었다. LP판을 돌리는 건 기본이고, CD를 넣는 곳도 있었고 USB도 꽂는 데가 따로 있고, 라디오 채널을 잡는 다이얼이 있어서 소리를 높일 때 사용하기도 했다. 블루투스 기능도 있어서 스마트폰에 저장된 노래도 받아 전해준다. 더 깜찍한 것은 지금은 거의 모든 기기에서 사라진 마그네틱테이프를 재생하는 기능이었다. 턴테이블이 아니라 어벤져스였다.친구 정덕이가 집안 정리한다며 오래된 LP판을 수십 장 가져와서 쓸데 있으면 쓰라고 해서 보관한 것이 산울림, 신승훈, 김현식…. 열 개 정도 된다. 소리로 재생할 기계가 집에 없는데 뭐 하러 들고 왔냐는 남편의 타박에 추억의 책갈피처럼 사용하면 되겠지 했는데 이렇게 턴테이블이 다시 생길지 나도 몰랐었다.어린 시절, 할아버지 집에 나팔 모양을 단 축음기가 있어서 제삿날에 친척들이 모이면 LP음반을 올려 들려주셨다고 한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니 캐나다에 선교사로 나가 오래 사신 용출삼촌이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관한 기억이라고 문자로 보내왔다. 그때 할아버지는 누구의 노래를 들려주셨을까? 기계 하나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기억까지 소환했다.새로 들인 어벤져스를 이용해 보리라. 레코드가게에 가보기로 하고 검색을 했더니 포항에 ‘신나라레코드’란 가게가 있었다. (구)해변레코드란다. 학창시절에 자주 드나들던 곳이라 무지 반가웠다. 좋아하던 가수의 신곡이 발매되자마자 가서 테이프를 샀던 곳이다. 이문세의 4집, 5집을 하도 들어서 테이프가 늘어 났었더랬다. 라디오에 좋아하는 노래가 샘물처럼 흐르면 공테이프에다 퍼 담듯 모았었다. 특히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와 ‘별이 빛나는 밤에’가 자주 찾던 옹달샘들이다.시내 가장 번화가 중앙로 292-1번지에 자리 잡은 레코드가게, 매장이 제법 넓었다. 테이프는 그리 많지 않았다. 몇 개 골라서 물어보면 판매하지 않는다는 게 더 많았다. 연도가 가장 오래된 것을 보니 1977년에 대도레코드사에서 만든 판소리춘향가였다. 인간문화재 박초월 외 여러 분의 사진이 뒤표지에 있고 앞표지는 신성일과 이름을 모르겠는 여배우가 출연한 춘향전의 한 장면이 그려진 포스터였다. 남편 말이 저 사진에 나온 사람들 대부분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고 한다.오늘의 국가기념일 음악 테이프도 사왔더니 이건 뭐에 쓰려고 샀냐고 웃었다. 개천절노래 반주,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음악 같은 제목이 길가다 멈춰 서서 국기 강하식을 하던 그때를 떠올리게 해서 샀다. 테이프는 이제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장님의 말이 가진 거라도 잘 간직하세요라는 말로 들려 더욱 사게 됐다.LP판이 벽면 가득했지만 비매품이었다. 또 다른 코너에는 CD가 가득했다. 최근에 나온 아이돌 가수의 앨범은 책 같기도 하고 디자인이 다양해서 팬도 아닌데 소장하고 싶을 정도였다. 아들은 레드벨벳의 한정판 앨범을 구입했는데 브로마이드가 사은품으로 딸려왔다.여고시절 드나들던 가게에서 아들과 같이 한나절 놀았다. 내가 좋아했던 노래와 가수 이야기를 해주며 아들이 군대에서 선임이 하도 즐겨 들어서 자기도 좋아하게 된 여자 아이돌 그룹 음악도 나누었다. 노포가 많이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였다.계산대에 고르고 고른 테이프와 CD를 올려놓고 기다리며 보니 두 손이 세월의 먼지가 묻어 새까맣다. 몇 년 전의 먼지일지 그것조차 정겨웠다. 거기 있어줘서 감사해요, 오래 버텨주세요. 사장님께 부탁의 말을 남기고 돌아왔다.

2020-06-21

포스트코로나 관광을 선도한다

최영조 경산시장경산시는 최근 코로나 방역이 상당기간 안정단계로 접어들고 재난 대책을 신속하게 시행함으로써 경북 최대 피해지역의 상흔을 치유하는 데 성과를 보이고 있다.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전국 자치단체 최초로 테스크포스 팀을 만들어 중앙정부의 지원기준을 지역실정에 맞게 완화해 사회적 거리두기에 참여한 시설 업종까지 지원하는 등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해 노력했다.이같은 소상공인과 자영업 경제에는 온기가 돌기 시작했지만, 아직 지역 경제는 회복을 말할 단계는 아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방역과 경제회복이 함께 성공하는 것이 최대 정책 과제가 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시민 생활은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가족주의와 삶의 질을 중시하는 생활로 변해가고 있다. 따라서 경산시의 관광정책도 사회적 현상을 반영하는 전략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음 몇 가지의 정책을 도입할 것이다.먼저, 맛보기 관광 전략이다. 국내 중심의 소규모 가족단위 여행객을 대상으로 지역 특유의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먼저 맛보기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한다. 가상관광 또는 랜선 여행 형태로 관광자원을 직접 소개하는 콘텐츠와 식도락관광 수요를 겨냥한 레시피 등 집에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다음으로, 보이지 않는 관광 인프라를 세심하게 구축하는 것이다. 경산시는 청정하고 안전한 지역, 친절한 지역이란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한 캠페인을 실시 중이다.매주 금요일을 ‘클린 경산을 위한 방역·대청소의 날’로 지정해 사회단체와 자원봉사자 등의 자발적 참여로 공공시설, 시가지, 관광지, 집 앞, 일터와 공공기관, 문화예술 체육시설, 대중교통시설 등에 대해 대청소, 방역소독, 환경정화 활동 등을 실시하고 있다.또다른 방법중의 하나로 안심 경산을 위한 생활 속 거리두기 실천 캠페인이다. 관광협회와 상인회 등이 참여해 음식점 카페, 유흥시설, 종교시설, 도서관, PC방, 학원 독서실, 대형유통시설 등의 시설은 거리 두고 손님 받기, 개인 음식문화 개선 활동을 펼친다. 물론 전통시장도 방문객들이 안심하고 이용하도록 코로나19 안심 클린시장 만들기에 동참한다.시는 코로나 사태로 앞으로 재택근무가 본격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며 도로는 물류와 이동의 수단보다는 관광의 요소로 더 두드러질 가능성이 커 도로 교통의 기능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 경산으로 들어오는 모든 도로와 교통수단이 지역에 대한 첫인상을 결정하고 주변 경관과 승차감이 좋은 도로는 관광객을 다시 오고 싶게 만든다. 특히, 대중교통의 편리성은 관광의 기본으로 경산의 관광 지도를 바꿀 굵직한 도로철도 사업들이 진행 중이다.대구 안심역에서 경산 하양역까지 구간을 연결하는 8.89km의 대구도시철도 1호선 하양 연장사업은 3개의 역이 들어서며 2023년 개통하고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구미~칠곡~대구~경산 간 61.9Km 구간을 잇는 대구권 광역철도망 구축 사업도 지난해 3월 착공해 2023년 개통 예정이다. 남산면 하대리에서 하양읍 은호리까지 9.8km의 국도 대체 우회도로도 2022년 6월 착공 예정이다.경산은 인근 지역과의 대중교통 연결망이 사통팔달 발달해 있으며 특히 지난해 대구-경산-영천 간 버스 환승으로 지역생활권이 크게 개선되고 확대되었다.관광은 교통이 발달하여도 우수한 콘텐츠가 없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경산은 분지 지역으로 어디서나 가볍게 오르기 좋은 명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남천과 오목천, 금호강이 부챗살처럼 펼쳐져 흐르는 물과 숲의 고장이다. 경산과 자인, 하양 등 지역 중심지 주변에는 관광명소가 즐비하다. 갓바위, 반곡지 등 핫 플레이스도 많지만 새로운 관광 트렌드에 적합한 숨은 명소들이 더 많다. 경산시는 숨은 명소 찾기 대회를 열어 구연정 등 새로운 명소를 발굴했으며 삼성역 역사테마공원 등 개발사업도 꾸준히 전개하는 등 새로운 볼거리를 창출해 나가고 있다.지역 경제에 큰 타격을 준 코로나19를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약의 기회, 변모의 기회로 삼고자 경산시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2020-06-21

조삼모사 정책

중국 고사에 나오는 조삼모사(朝三暮四)는 송나라 때 원숭이를 키우는 저공(狙公)의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원숭이 키우는 것을 워낙 좋아했던 저공은 원숭이와 소통은 물론 원숭이의 눈빛만 보아도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그러나 원숭이 숫자가 불어나면서 먹이 문제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가족의 식량을 줄여 나눠주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이번에는 원숭이를 불러 모아 이렇게 설명했다.“앞으로 너희들한테 아침에 도토리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 괜찮으냐”고 물었더니 원숭이들이 심하게 반발을 했다. 그러자 저공은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하니 원숭이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조삼모사에 얽힌 유래다.당장의 차이에 신경을 쓰지만 매한가지라는 의미다. 또는 잔꾀로 남을 농락하는 것을 말할 때도 쓰는 말이다.조삼모사와 비슷한 말로 조령모개(朝令暮改)와 조변석개(朝變夕改)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법을 자주 고쳐 일관성이 없고 갈팡질팡한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 변덕이 죽 끓듯 한다고 할 때 비유해 쓰는 말이다.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이 17일 또 다시 발표됐다. 이번 정부 들어 21번째 부동산 규제 정책이라 한다. 그동안 20번이나 규제책을 발표하고도 집값을 안정시키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서울에서는 강남지역 집값을 잡으려다 서울 전체 집값만 올렸다는 비판도 나온다고 한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30여 차례 부동산 규제책을 발표하고도 집값을 잡지 못했던 경우가 재차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매번 헛발만 짚어 왔다는 비난을 보면서 조삼모사 고사가 새삼 생각난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6-18

통합당의 산타클로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미국의 우박사과를 둘러싼 일화다. 미국 뉴멕시코주 고산지대에서 사과를 재배하던 농장에 우박이 내렸다. 수확을 앞두고 미리 판매계약을 마친 사과들이 우박피해를 입어 상처투성이가 돼 버린 것이다. 주변 농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넋을 잃고 힘들어할 때 영거라는 농부가 상처입은 사과를 서둘러 구매자들에게 보내면서 편지 한 장을 같이 보냈다. “우박이 내려서 사과가 뜻밖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고의 상처는 고산지대에서 자란 특산품이란 증거입니다. 고산지대에서는 가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데, 그 때문에 사과 속이 조여져서 맛있는 과당이 만들어집니다. 맛이 없으면 전액 환불해드리겠습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편지와 함께 상처는 있지만 맛있는 사과를 받은 고객들은 한 명도 환불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이것이 바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주는, 산타클로스를 만드는 발상의 전환이다.남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관점을 조금만 바꾸어도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산타클로스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존재지만 관점을 바꾸면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생기고, 그리고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드는 존재일 수 있다.21대 국회가 원구성을 시작하자마자 파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원(院) 구성을 놓고 여야가 극한 대치끝에 더불어민주당이 법사위 등 6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하자 미래통합당이 향후 의사일정 ‘전면 보이콧’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특히 통합당은 주호영 원내대표가 원 구성 협상 결렬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면서 여야 협상 채널 조차 사라져 국회정상화가 언제쯤 가능할 지 짐작하기도 어려운 상태에 빠졌다.다수당이 단독으로 개원 국회의 상임위원장을 선출한 것은 7대 국회 시절이던 지난 1967년 이후 53년 만이다. 여야는 그동안 법사위의 위원장을 누가 가져가느냐를 놓고 힘겨루기를 계속해왔다. 이번 사태는 법사위의 국회법상 권한인 체계·자구심사 권한으로 번번이 야당에 ‘발목잡기’를 당했다고 생각한 민주당이 원활한 입법으로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법사위원장을 반드시 가져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빚어진 사태다. 민주당은 오는 19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남은 12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끝내고 21대 국회 원구성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이에 맞선 통합당은 여당의 입법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선 법사위원장 자리를 양보할 수 없다며, 여당의 일방적 국회 상임위원장 선출을‘1당 독재’로 규정하고 향후 국회 의사일정에 협조하지 않겠다며 반발했다. 예전 통합당이 여당이었던 시절 법사위원장을 보장해줬던 전례마저 무시한 채 민주당이 법사위원회를 장악하려고 하려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어떤 무리수를 둬도 국민의 지지를 받아낼 자신이 있다는 오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암울해 보이는 이 상황이 오히려 민주당의 무릿수를 응징할 통합당의 산타클로스를 만들어야 할 때다.

2020-06-18

코로나19속 기말시험 풍경

코로나19 ‘재유행’은 학교 캠퍼스를 더욱 썰렁하게 만들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어제는 그래도 ‘교수 발표회’라는 것을 사회적 거리 두기 속에서 치른 날이었다.대학교에는 학기마다 늘 거쳐가는 행사가 있게 마련이다. 3월이 되면 내가 몸담은 곳에서는 첫째 주나 둘째 주에 학과 전체 교수회의를 한다. 비슷한 시기에 학부 학생들과 대학원생들은 학과 설명을 겸한 신입생, 진입생 환영회, 개강 모임 등을 연이어 갖게 되며, 중간고사 끝날 때쯤 답사 여행을 가게 된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다들 지친 기색 역력하지만 한두 주만 기다리면 시험 끝나고 방학이다. 하지만 학생들, 교수들 만남은 끊기지 않는다. 교수들은 학생 ‘지도’ 명목으로 학생들과 점심식사를 하기도 하고 종강모임도 기다리고 있고 시험 끝나면 강의 과목에 따라 뒤풀이를 하기도 한다. 앞에서 말했듯 ‘교수 발표회’라 해서 교수들이 학과의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공부를 논문 형태로 발표하는 행사도 있다.그런데 기말시험이 문제다. 수업은 줌(zoom) 앱으로 한다고 치는데, 시험은 또 어떻게 한다? 한 학기 내내 그 ‘비대면’이라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었는데, 시험마저 인터넷 화상 시험 형태로 치러야 한단 말이다? 책상 띄엄띄엄 ‘사회적 거리’ 두고 시험 치를 수 있는 ‘작은’ 강의는 그렇다 하지만 대형, 밀집 강의는 한곳에 모이는 것 자체가 무섭다. 결국, 인문대학에서는 기말시험 기간 내내 출입문을 일부 제한하고 출입 가능한 문에는 열화상 카메라와 소독제를 구비하고 시험생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 전체가 다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한편, ‘줌’으로 시험 보면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없지 않다. 이 ‘줌’ 앱은 비디오 중지니 음 소거니 하는 기능들이 있다. 회의용으로 개발된 이 앱에서 상대방이 말하는 시간에 자기 쪽의 화면이나 소리가 나가지 않도록 하는 기능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시험 치르는 학생이 자기 쪽 소리가 나가지 않도록 해놓고 화상에 나오지 않는 친구 학생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학생들의 양식에 맡겨야 하지만 시험은 부정 소지를 줄일 수 있어야 하는데, 실로 ‘인지’가 날로 발달하니 반드시 신뢰를 부여한다고 해서 다 되었다 말할 수 없다.아니나 다를까. 조교 선생이 우리 과에서 개설한 과목의 기말시험에 외국인 학생의 부정행위가 있었단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잠깐 생각해 보지만 다른 답은 없다. 시험은 대학생활의 가장 밑바닥 규범이다. 이게 허물어지면 다른 무엇을 얼마나 잘 해 놓아도 결과가 좋지 않다.학생들아, 코로나19 ‘비상시국’이라지만 시험 부정 행위가 웬 말이란 말이냐. 이런 때일수록 ‘정도’를 걸어야 하지 않으리?/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6-18

감성을 젊게

김병래시조시인먹고사는 것에 여유가 생기면서 각종 노화방지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좋은 세상 만났으니 보다 젊게 오래 살고 싶은 걸 누가 말릴까마는 외모를 더 젊고 아름답게 보이려는 여성들의 욕구는 거의 필사적인 경우도 있다. 온갖 물리적 요법에서 식이요법, 약물요법에 수술요법까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그런 것에 너무 집착하다가 부작용으로 몸을 망치기도 한다.노화는 나이가 들면서 신체의 구조와 기능이 차츰 저하되고 질병과 사망에 대한 감수성이 증가하면서 쇠약해지는 과정을 말한다. 세포의 단백질 합성 능력이 감소하고 면역 기능도 떨어지며 근육은 작아지고 근력은 감소하는 한편 체내의 지방 성분은 증가하고 골 밀도가 감소하여 뼈가 약해지는 등의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물론 노화현상은 몸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온다. 젊게 살기 위해서는 피부나 몸매를 가꾸는 것보다 마음의 긴장과 활력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하기 쉽다. 몸이 젊어야 마음도 젊어진다는 논리도 있지만, 그보다는 마음의 젊음이 몸의 건강과 젊음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말이 더 타당할 것 같다.뇌의 노화방지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노화현상의 상당부분이 뇌기능의 저하에서 온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뇌세포에 영양과 산소의 공급이 원활해야 함은 물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와 풍부한 감성이 뇌를 젊게 한다고 한다. 오감을 포함한 다양한 감각을 느끼고 지각하는 능력인 감성(sensibility)은 나이를 먹으면 무디어진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젊은 나이에도 감성이 메마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백세 고령에도 아이와 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도 없지 않다.감성의 젊음을 유지하려면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 늙을수록 고집이 세다는 것은 편견이나 아집,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가을이 되면 풀이 쇠어지듯이 마음이 완고해지는 것이 바로 노화다. 사고가 넓고 유연해지려면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하는 습관을 가지고 문학이나 철학, 예술 등 인문학적인 교양을 쌓아가야 한다. 그래서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공감능력과 불의를 외면하지 않는 사회적 정의감도 놓지 말아야 한다.그리고 무엇보다 자연현상에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계절을 따라 싹이 트고 성장하고 열매 맺고 월동하는 초목들과 친밀히 교감하는 것만으로도 감성은 늙지 않는다. 지극히 미세한 것에서부터 광대무변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하고 변화무쌍한 것이 자연이다. 지구의 생태계만 하더라도 생로병사가 수미상관으로 맞물려 생명의 역동성을 이어가는 것이고, 해마다 새 잎을 내는 고목처럼 늙을수록 감성의 잎이 더 무성할 수도 있는 것이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감성이 메마르고 완악해진 마음을 꾸짖는 예수의 말씀이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감성이야말로 천국에 이르는 길일진대 마다할 이유가 뭐겠는가.

2020-06-18

북한과 평화가 가능할까?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한 깡패 같은 친구가 힘이 없는 친구를 매일 괴롭힌다. 때리기도 하고 돈을 뺏기도 한다. 힘이 없는 친구는 평화를 위해 돈도 가져다주고 그 깡패 같은 친구가 때려도 참고 웃음을 지으면서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힘없는 친구가 주머니에 짱돌을 쥐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 깡패를 공격했다. 난투극이 벌어지고 힘없는 친구는 크게 다쳤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그 다음날부터 그 깡패가 힘없는 친구를 괴롭히는 일이 끝났다. 필자가 중학교 시절 직접 목격한 사건이다.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다. 세계사에 없는 일이 벌어졌다. 세계사에서 서로 합의하여 지은 건물을 전쟁이 아닌 상태에서 폭파시킨 예는 없다. 북한과 평화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김대중 정부 때 이야기한 햇빛정책으로 가능할까?힘없는 친구가 했던 것처럼 소를 몰아가져다 주기도 하고 돈도 엄청 가져다주었다. 그럴 때마다 북은 평화를 함께 할 것처럼 웃음 지었다. 그러나 돈이 떨어지면 다시 돈을 달라고 하고 떼를 쓴다. 말을 안 들으면 욕을 하고 난리를 핀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갈취한 돈으로 무기를 만들고 핵을 개발한다.미국과 일본과 멀어지라고 “우리끼리”라는 감언이설로 남측을 속인다. 결국 북측이 원하는 건 핵을 개발하여 남측을 속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남측을 미국과 일본과 멀어지게 해야 한다.남북 군사 합의 이후 북측이 말하는 것처럼 남측은 무엇을 배신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연락사무소가 폭파되었다. 풍선전단을 시비로 걸었지만 그건 사실상 폭파를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풍선전단을 규제하겠다고 정부가 약속했지만 그 약속조차 비난받았다. 폭파 후 북은 비무장지대 초소 진출, 접경지역 군사훈련, 대남전단 살포를 예고했다. 남측에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을 돌리며 대남비난도 이어갔다. 남측을 “비겁하고 나약하며 저열한” 상대로 매도하며 남북관계를 더는 논할 수 없고, 남북 간 접촉공간도 필요 없다고 덧붙였다.뒤늦게 정부도 대응한다. 응당한 대가를 치른다고 했지만 타이밍이 늦었다. 공산주의와의 평화는 강한 힘을 바탕으로 해야 하고 우군들인 우방들과의 강한 유대에서만 가능하다. 상대는 그걸 제일 싫어하기 때문에 우방과의 관계를 약화시키기 위해 늘 “우리끼리”라는 구호로 유혹한다. 그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대한민국의 대북 정책이 아니고 북의 대남, 대미 공작의 하청 용역이었다는 혹평들도 있다. 이제 하청업자 역할을 더이상 해서는 안 된다.이제는 강한 한미, 한일 공조를 통해 강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핵우산이든 자체 핵개발이든 강한 모습을 보여줄 때 평화가 유지 되는 것이다. 통일을 구걸하지 않을 때 통일의 기회는 더 가까이 올 수 있다. 북한과의 평화는 우리가 우방과 관계를 공고히 하고 강한 힘을 보여 줄 때에만 가능할 뿐이다.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2020-06-18

꼭 기억해야 할 아픔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섬나라 일본이 앞선 근대화로 저들이 가진 힘으로 야욕을 불태우며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 도발과 동시에 대한제국 침략의 발판을 굳히고 대한제국 황성을 공격해 당시 황궁이었던 경운궁을 점령했습니다. 이어 1904년 2월 23일에는 대한제국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대한제국 영토를 일본의 군사기지로 제공하는 한일의정서를 강압적으로 체결하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군사 요충지를 강제 점령했습니다.그 이후 1910년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되고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기쁨을 찾기까지 약 36년간의 치욕적인 시대를 우리의 역사 속에 간직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날 당시 한일합병이 무효라고 일본 역사학자들과 우리 학자들이 외치고 있지 않습니까?해방에 이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자리를 채 잡기도 전에 1950년 6월 25일 새벽을 틈타 북쪽 김일성의 야욕으로 남침함으로 민족의 한을 남긴 전쟁이 이 땅에 발발했습니다.6·25 전쟁은 남북한 모두에게 엄청난 희생과 재산을 함께 잃어버린 비운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국난에 자유수호를 위해 전투 병력을 파견한 나라 가운데 3천 명 이상 나라가 프랑스(3천421명), 뉴질랜드(3천795명), 네덜란드(5천322명), 필리핀(7천420명), 오스트레일리아(8천407명), 터키(1만4천936명), 영국(5만6천명), 미국(1백78만9천명) 등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태국, 그리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벨기에, 룩셈부르크,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노르웨이 등 많은 나라 군인들이 전사했거나 부상당하였습니다.6·25 전쟁으로 희생된 전사 및 사망자가 17만8천569명. 부상 5만5천22명. 실종 2만8천611명. 포로 1만4천158명, 우리나라 통계는 전사자 13만7천899명, 부상자 45만742명으로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얼마나 많은 희생의 값을 치러야 했습니까?그 아픔과 상처의 자리에 하나님의 회복과 치유의 역사로 오늘의 조국 대한민국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 아픔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6월에 이제 조국 대한민국의 근대사에 얼룩진 역사 현장을 기억하며 다시 이런 아픔과 슬픔을 후세대에 물러주지 않기 위해 새로운 도전과 결단으로 새 역사를 다시 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0-06-17

거리 두기

여전히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 되는 나날입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잘 실천하고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만큼 가족 간의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음을 의미합니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아들이 코로나를 핑계로 귀가했습니다. 스무 살 넘으면 집 떠나야 한다, 는 생각을 지닌 터라 갑작스런 아들과의 동거가 적잖이 신경 쓰입니다. 일찍이 객지 생활을 한 아이였기에 애틋한 감정이 앞서지만, 며칠 새 불편한 상황들이 그 감정을 섞어버리는 걸로 보아 제 모성에도 이끼 같은 스트레스가 끼나 봅니다.여기까지야 엄마로서 감당할 저만의 상황이니 괜찮은데, 살짝 한 발 더 나가는 게 문제입니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부모 입장에서의 당연한 말씀이 뒤따르는 것 말입니다. 일찍 일어나라, 운동해라, 감성을 잃지 마라, 그리고 계획해라……. 네, 하고 건성으로 돌아오는 대답 또한 십 년째 변함이 없습니다. 지리멸렬하기만 한 훈화와 답하기 속에서 두 사람의 생각은 다릅니다. 엄마는 누르고 눌러 겨우 한 번 말한 것 같은데, 아들은 오늘도 어제와 같은 레퍼토리를 들어야 하나 하는 부담감을 맛봅니다. 가까이 있는 한, 엄마는 하나마나한 ‘좋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자식은 들으나마나한 ‘잔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모는 경험한 대로의 삶의 나침반을 제시한다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바라던 바가 아닌 모정의 덫에 걸리는 격입니다. 거리 두기는 ‘사회적’으로만 필요한 게 아니라 ‘가정적’으로도 요청된다고나 할까요.적당한 거리가 확보 되어야 현명한 소통에 이를 수 있다는 건 만고의 진리입니다. 시공간적으로 너무 가까운 거리는 느긋하고 성숙한 관계를 해치는 훼방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족애든 우정이든 또는 사회 관계망이든 다 해당 되는 말씀 같습니다. 일단 너무 가까우면 상대의 초심에 괜한 의문을 갖게 됩니다. 흔히, 믿었던 상대에게서 실망감을 맛보면 우리는 ‘초심을 잃었다.’라고 표현합니다. 곰곰 생각하면 그 누구도 초심을 잃은 적 없는데 말입니다. 초심은 한 가지가 아닐뿐더러 거기 그대로 있는데다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이런저런 초심들이 사람 안에 살지만 우리는 상대에게서 보고 싶은 한두 가지만 봅니다. 좁은 거리감에서 오는 기대감이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이지요. 초심을 잃은 건 상대가 변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믿음이나 환상을 가진 내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자신의 환상을 상대에게 투사해 초심을 잃었다고 단정해 버리는 것이지요. 내 환상이 걷힌 자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상대의 초심이 되는 겁니다. 기대라는 가지에 달아버린 나의 환상이 언제나 문제인 것이지요. 이 모든 게 너무 가까워서 생기는 심리적 착시라는 생각이 듭니다.누구나 타고난 단점과 성장 과정의 결핍, 그로 인한 묻어버리고 싶은 콤플렉스를 지니고 삽니다. 약점 많은 사람끼리 잘 지내려면 거리가 필요합니다. 저 테라스에 피어난 제라늄 화분만큼의 거리면 딱 좋겠습니다. 적당한 거리가 유지된 만큼 꽃끼리 뭉치는 법도 없고, 남의 화분을 침범할 이유도 없습니다. 안심 거리를 확보한 꽃들은 거리낄 것 없이 화사한 빛깔을 피워 냅니다. 화분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다면 저마다의 꽃잎들이 저토록 창 아래서 생기를 뿜지는 못하겠지요. 다닥다닥 좁혀진 거리라면 작은 바람에도 꽃잎끼리 부딪혀 물러지고 질척거리게 될 테니까요.찢어지기 쉽고 떨어지기 쉬운 꽃잎 같은 관계의 속성에 주목한다면 적당히 무심해야 오래 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랄 게 없으면 야속할 일도 없습니다. 물이나 주고 바람정도나 통하게 두면 꽃피울 것을, 매일 물을 주고 매만지다 보면 꽃 피우기는커녕 새싹 돋는 것도 만나기 힘들겠지요. 매일 보면 찡그릴 수 있지만 가끔 만나면 웃음 짓게 됩니다. 괜히 고슴도치 이론이 있는 게 아니겠지요. 좋다고 비비대면 서로 돋은 가시에 상처만 입을 뿐입니다. 근원적인 친밀감이 형성되었다면 적당히 멀 때, 오래 가고 피로도도 덜합니다. 가까워지려고 허둥대는 마음이 항상 상대에게로 순정하게 전달되지만은 않습니다. 적당히 떨어져야 가볍고 산뜻한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핀 꽃도, 예쁘다고 꽃병 앞에서 코를 박는다면 꽃병도 깨지고 내 코에도 파편이 박힙니다. 코를 들이미는 대신 맞춤한 거리에서 덤덤히 바라보면 그 꽃은 오래 갑니다. 자주 본다고 깊어지지도, 멀리 있다고 얕아지지도 않는 게 관계입니다. 요란한 결속일수록 풀어지고 흩어지기 쉽습니다. 관계의 밀도는 지근한 거리가 아니라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두는 것이니까요.마인드맵처럼 번져가는 반성문을 쓰다 보니 당장 아들에게 필요한 건 ‘모성의 거리’라는 걸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거리 두기의 지향점은 결국 자신을 향한 것이네요. 타자로부터의 거리 두기는 스스로부터의 거리 두기에로 종결 되는 것 같습니다. 자기 내면과 떨어지는 연습을 통해 자기 객관화를 도모하는 길 말이에요. 가족애든, 인류애든 조금 떨어지는 과정을 통해 좀 더 성숙된 사랑을 연습하고 실천할 일입니다.

2020-06-17

지식

강길수수필가쪽지가 잘 나오지 않는다. 앞선 이들은 한 번에 잘도 집어내던데, 나는 그러지 못하다. 아마도 다른 쪽지들보다 깊게 꽂혀있거나, 약하게 뽑았을 것이다. 두 번째 당겨도 역시 마찬가지다. 당황스러워지며 뒤에서 기다리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왼손 엄지와 검지에 힘을 더 주어 뽑아낸다. 세 번 시도 끝의 성공이다.삼세번 당겨 손에 잡은 불혀 모양의 연녹색 성령칠은(聖靈七恩) 낱말쪽지…. 어느 은혜를 선택했을까 아니, 주어졌을까. ‘코로나 19로 모두가 어렵게 사는 지금 내게 긴요한 은총은 무얼까’하고 마음이 자문하지만, 미사 중에 열어볼 수가 없다. 공지사항 시간에 보리라 마음먹고, 궁금증도 함께 담아 매일미사 책갈피에 넣어 둔다.미사 끝자락, 공지사항 시간이다. 책갈피의 쪽지를 꺼낸다. 이른 봄, 돋아난 지 얼마 안 된 연록 생강나무 잎을 닮은 성령칠은 쪽지다. 불혀와는 어울리지 않는 색깔이란 생각이 스친다. 두 겹으로 접어져 있다. 색종이에 낱말을 써넣고 접어서 불혀 모양으로 오린 것이다. 연록 불혀를 살짝 연다. 왼쪽 면의 “지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다시 접어 책갈피에 꽂는다. 집에 가 자세히 보리라 마음먹는다.미사가 끝났다. 신부님과 교우들의 작별 인사를 안고 집으로 향한다. 올핸 왜 ‘지식’을 받았나 하는 의문이 오는 동안 뇌리를 맴돈다. 명색이 글도 쓰는 사람이라고 끊임없이 지식을 추구하라는 건가. 아니면, 얕은 지식에 기대어 교만하지 말라는 경고인가 등등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드디어 집 거실이다. 찬찬히 성령칠은 쪽지를 연다. 왼쪽 면에, “지식”이란 굵고 큰 글자 아래 “(scientia)”라 씌어있다. 오른쪽 면에는 “신앙감, 믿어야 할 진리와 허위를 식별하는 은혜.”라고 적혀있다.미사 끝 무렵 처음 확인 때 들었던 생각과는 다른 내용이다. 물론,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는 그 옛날 고교 시절의 교리문답 내용과 이후 받았던 여러 교육을 통해 가진 지식에 대한 관념과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핵심내용이 ‘식별’이란 점에서 거리감이 느껴진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식의 개념과는 차원이 다르다. 즉, 국어사전에서 말하는 ‘체계화된 인식의 총체’나 ‘사물, 상황에 대한 정보’가 사회에서 말하는 지식의 내용일 테니까 말이다.오히려, 철학에서 말하는 ‘객관적으로 확증된 판단의 체계’와 내용이 일맥상통해 보인다. 인식의 총체나 정보에 따라 판단하고 진리와 거짓을 식별하여, 그것을 믿고 받들며 살게 하는 힘이 지식 곧, 시엔티아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또, 진리는 신앙적 내용뿐 아니라 온 세상을 품을 것이므로, 진실도 그 안에 자리함이 마땅하다. 즉, 지식은 신앙적 진리뿐 아니라 사회적 진실도 당연히 식별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지식과 관련하여 어찌 살고 있는가.한마디로 성령의 은혜로 주어지는 지식과는 별개로 살아왔다. 공부도, 직장 일도, 신앙생활도, 사회생활도 식별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고 또, 살고 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믿어야 할 진리와 믿지 않아야 할 거짓을 구분하려 들지 않았다. 다다익선처럼 ‘나와 가정과 사회공동체에 해가 되지 않는 것이라면, 윤리 도덕 내지 신앙적으로 꼬치꼬치 따질 필요가 없지 않은가’하는 생각으로 살아 온 것이다.진실과 거짓을 식별하는 지식의 눈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 어떨까. 지난 4·15총선 부정선거 의혹만 하더라도, 언론이 담합이라도 한 듯 보도치 않아 국민의 알 권리는 유린당하는 현실이다. 동일한 모집단의 사전투표 결과가 본 투표와 달리, 거의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기이한 통계적 패턴을 보이며 여당에 표를 몰아주었다. 또, 비례대표의 정당별 득표율과 정당별 의원당선자 수의 비율이 상식 밖으로 차이가 났다. 경영학을 배웠던 내 통계적 소견에 비추어 보아도,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선거 결과다. 이러한 팩트가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는 연유는 무엇일까. 나도, 국민들도 지식에 근거한 식별의 눈을 크게 뜨고 살아가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지식의 은혜가 온 세상에 내려, 진실과 거짓이 제대로 식별되면 좋겠다.

2020-06-17

국가경쟁력

국가경쟁력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국가의 총체적인 능력, 주어진 국제 경제 환경 속에서 한 나라의 경제 주체들이 다른 나라와 경쟁하여 이길 수 있는 총체적인 능력을 모두 국가 경쟁력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회간접자본 외에 국제화, 경영능력, 금융과 같은 경제의 소프트웨어도 포괄한다.지난 95년부터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와 세계경제포럼(WEF)에서 1년에 한 번씩 각국의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내놓고있다.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은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총 63개국 중 23위로 평가했다. 지난 해 28위에서 5계단 상승함으로써 30위에서 34위로 추락한 일본을 넘어섰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효율적으로 관리한 게 순위 상승의 배경으로 알려졌다.이는 역대 최고치인 22위(2011~2013년)에 근접한 수준이다. 인구 2000만명 이상 국가(총 29개국) 중에선 8위다. 국민소득 3만달러-인구 5천만명 이상 국가 중에선 4위다. IMD의 4대 평가 분야 가운데 경제성과(27위)는 그대로였고, 정부효율성(31→28위), 기업효율성(34→28위), 인프라(20→16위)에서 순위가 올랐다. 경제성과에서는 양호한 경제성장(28→27위), 경제회복력(40→30위), 낮은 소비자 물가상승률(17→7위) 등에서 순위가 오른 반면 실업률(18→20위), 공공부분 고용 비중(9→12위) 등에선 순위가 하락했다. 국가경쟁력 1위는 싱가포르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1위를 유지했다. 덴마크, 스위스, 네덜란드, 홍콩이 뒤를 이었고, 지난해 3위였던 미국은 10위로, 중국은 14위에서 20위로 떨어졌다. 코로나 사태가 국가경쟁력 순위까지 흔들어놓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6-17

마스크보다 답답한 정치

끝을 짐작할 수 없는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가 더이상 갑갑하지 않는 일상이 됐다.하지만 북한의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사건과 여당의 수적 우세를 앞세워 제1야당을 배제한 상임위원장 선출 등 현 정세가 답답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역대 이 정도의 난맥상을 보인 정국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코로나19 사태야 국민 개개인이 사회적 거리두기와 생활 속 거리두기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책을 찾아가는 상황이지만, 북한의 요즘 행태와 정치권의 행보는 타결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코로나19는 이미 우리 국민의 뛰어난 위기대처 능력으로 인해 ‘K방역’이라는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낼 만큼 부러움의 대상이 된 반면에 북한과의 관계나 정치권은 여전히 과거로 회귀하는 씁쓸한 모습이다.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정치권의 협치가 되살아나야 적극적인 대응이나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데도 여전히 여당은 수적 오만함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연일 강행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북한은 오히려 이런 국내 정치의 파행적인 상태를 즐기는듯 연신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미의 행동을 보여주며 노동신문을 통해서도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여당은 야당인 미래통합당의 구태의연한 정치행태라고 비난을 하고 있지만 정작 구태라는 표현이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과거 여당이 해온 행보를 그대로 보는 듯해 씁쓸함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 운영에서 든든한 맏형 역할을 해야 할 여당이 힘의 논리만을 앞세워 어린 동생들을 막 다루는 모습으로 비치는 우를 범하는 것으로 보인다.통합당도 여당의 숫자놀음에 그냥 속수무책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전혀 대처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겠다는 강수를 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돌파구나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과거 민주당이 야당이었을 때를 상기하면 지금의 통합당보다 적은 국회의원 숫자로 견제와 협상 능력을 보여줬고 자신들의 견해를 관철하기 위해 성명을 통해 여당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는 면모를 보이는 등 상당히 압박을 가했다. 지금의 통합당은 야당 경험 부족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며 속수무책인 상태이고 당 비대위 역시 여당의 밀어붙이기식 진행에도 당의 진로를 모색하지 못하는 무기력증만 노출하고 있다. 이 정도의 정치국면이라면 현재 통합당 대표인 비대위원장이라도 나서서 자신의 경륜과 식견을 바탕으로 혜안을 제시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야당은 여당의 과거 수적 우위의 오만함으로 이어진 선거에서 국민이 야당을 선택했다는 사실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마저 드는 부분이다. 물론 과거 강한 여당의 수적 횡포에 국민은 표로서 따끔한 일침을 가하며 심판해 왔다. 그러나 이런 국민적 판단에는 반드시 야당의 눈물겨운 대여투쟁의 노력을 눈여겨봐 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당의 거친 행보에 지친 국민이 다음 선거에서 어떻게 표로서 반응했는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대선이 2년 앞으로 다가와 있다.

2020-06-17

방아쇠 수지 증후군

김규종 경북대 교수마당이 딸린 집에서 살려면 적잖은 노고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6년 넘도록 촌에서 살다 보니 생각지 못한 수고가 곳곳에 필요하다. 처음에는 농촌생활이 즐겁고 행복했다. 층간소음도 없고, 콘크리트와 자동차 경적(警笛)과 온갖 소음에서 벗어난 만족감이 깊이 밀려오곤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흘러가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여 퇴색하고 시들어지기 마련 아닌가.작년에는 전남대 교환교수로 지내다 보니 집안일에 더욱 소홀하고 말았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19가 ‘집콕’을 유도했기로, 기회다 싶어 육체노동을 아끼지 않았다. 오래도록 방치된 유리창을 정성스레 닦고, 현관 데크에는 오일 스테인을, 계단과 가구에는 니스를 칠했다. 뒷마당의 대나무 뿌리 제거작업을 신호탄으로 좁지 않은 대지의 식물 전체를 손보기로 한다.땅속에서 종횡으로 뿌리내리는 대나무를 대적하는 작업은 상상 이상이다. 호미와 전지가위, 삽과 톱을 동반한 작업이 1주일 넘도록 진행됐다. 뿌리의 완강한 저항을 뚫고, 곳곳에 박혀 있는 돌을 캐내면서 구슬땀으로 범벅된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잘 골라진 터에 왜성 체리 세 그루를 심고, 금계국과 안개꽃, 코스모스와 데이지, 구절초와 루드베키아 씨를 뿌린다.그뿐이겠는가! 체리 세이지와 정향초, 사계절 패랭이와 겹물망초를 사다가 심어준다. 장소를 안마당으로 옮기니 일이 더 많다. 30여 종에 이르는 나무를 전지(剪枝)하고, 대나무와 쑥의 뿌리를 캐내고, 사초를 한곳으로 몬다. 오래전부터 대나무에 꽂혀 있었기로 화분의 사초를 마당에 옮겼더니 제 세상 만난 듯 창궐(猖獗)했다. 그것들을 마당 한구석으로 몰아놓고 그 위에는 흑백의 자갈로 덮는 중노동을 감행한다.그러다 어느 날 오른손 세 번째 손가락이 90도로 접히면서 펴지지 않는다.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손가락. ‘햐, 뭐 이런 일이 있나?!’ 정형외과 의사는 그것을 ‘방아쇠 수지 증후군(Finger Trigger)’이라 했다. 방아쇠를 당길 때 의식적으로 손가락을 당기고 펴줘야 하는 것 같은 증상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약물요법과 수술요법 두 가지 치료법이 있다는 설명도 친절하게 덧댄다. 주사기로 약물을 투입하고, 사흘 분량의 약을 먹었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는다. 옆집 사람들에게 사정을 말하니, 남매가 유경험자였다. 한 사람은 수술했고, 다른 사람은 증상을 버려두었다고 한다. “사는 데 지장 없어예!” 남의 일처럼 말하는 품새에서 안도감 같은 게 느껴진다. 통계에 따르면, 1년에 1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방아쇠 수지 증후군을 경험한다고 한다.나도 그냥 견디기로 한다. 오랜 세월 백면서생(白面書生)으로 살아온 인간이 불과 두어 달 일했기로 겪는 고초가 그리 만만찮다. 하되 육체노동이 주는 쾌감과 성취감은 크다. 집이 모양새가 나고 틀을 갖춰나가는 것을 보면 흥이 절로 난다. 손가락에서는 아직도 소리가 나고 불편하지만, 특별한 경험으로 날로 풍성해지는 초여름날이 깊어지는 시절이다.

2020-06-17

선생님, 아파요!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등교 개학 2주가 지났다. 학교 구성원 모두가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계속되는 지역 감염 소식에 긴장은 오히려 더하다. 등교 후 매시간이 열(熱)과의 전쟁이다.전 세계가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밤을 잊고 연구를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아직 인류와 타협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민간 우주여행 시대가 열렸다고 인류는 야단법석이지만, 바이러스로부터 인류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마스크뿐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마스크에 유독 민감하다. 다른 건 몰라도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은 학생에겐 어느 때보다 지도의 소리가 높다.예방이라는 최고의 백신 역할을 하는 마스크지만, 온종일 마스크 안에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학생들의 답답함도 답답함이지만, 마스크를 쓴 채 수업을 해야 하는 교사들에게 마스크는 벽이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 벽을 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평소보다 훨씬 높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목에 무리가 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최근 코로나와 별개로 인후통을 호소하는 교사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선생님의 수업에 대한 열정은 교실을 넘어 복도를 점령했다. 그래서 등교 개학 이후 복도는 쉴 시간을 잃었다. 복도에는 쉬는 시간에는 학생의, 수업 시간에는 교사의 소리로 가득하다.그 복도에 갑자기 학생의 외마디 외침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아파요!”처음에는 겨우 들릴 정도였으나 점차 소리는 세상 모든 소리도 삼킬 정도로 커졌다.“선생님, 진짜 아파요. 아아!” 비명은 절규로 바뀌었다. “그래 소리 질러.” 비명 섞인 학생의 절규는 계속되었다. 교사는 멈추기는커녕 학생을 더 독려했다. 그냥 소리만 들으면, 누구라도 폭력 장면을 생각할 것이다.“그래 소리 질러. 아프면 소리 지르는 거야. 참지 말고 아프면 아프다고 해!”이 소리는 필자의 소리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 문단속을 하기 위해 학교를 둘러보다가 필자는 교실에 혼자 있는 학생을 발견했다. 학생의 표정은 어두웠고 몸은 경직되어 있었다. 경직된 몸을 좀 풀어줄 겸 해서 어깨 마사지를 해주었다. 학생은 손이 닿기도 전에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소리 대신 표정으로 아픔을 말할 뿐이었다.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극도로 절제된 소리로 아프다고 말했다. 그 소리에 자신도 놀랐다. 놀람 속에서도 학생은 뭔가 희망을 찾은 표정이었다. 늘 뭔가에 주눅 든 모습의 학생은 지난 학교에서 학교로부터, 교사로부터, 친구들로부터 입을 다물라는 강요부터 배웠다.“이 아픔을 가슴에 안고 어떻게 살았니. 이제부터는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질러!”“선생님, 진짜 그래도 돼요?” 학생은 소리를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어깨를 누를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학생의 얼굴이 점점 환해졌다. 줄세우기식 시험이 학생들을 옥죄는 6월, 우리 주변에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시험 점수 올리는 요령보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6월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0-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