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대한민국 정국은 일련의 막장드라마였다. 수많은 등장인물과 사건사고가 버라이어티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드라마의 표면상의 주제는 검찰개혁이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주연을 맡고, 그 안티히어로 격인 상대역은 윤석열 검찰총장이었다. 두 캐릭터의 등장 배경부터가 격렬한 갈등과 충돌을 예감케 한다. 거기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까지 겹쳐서 드라마 전편에 음울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더했다.
남자 주인공은 소위 ‘촛불혁명’이란 민중봉기에 고무된 검찰의 선봉장이 되어 대통령을 비롯한 전 정권의 주요 인사들을 모조리 법정에 세우는 공로를 인정받아 일약 검찰총장이 됐다.
그는 임명하는 자리에서 살아있는 권력에도 비리가 있으면 엄정하게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의례적인 덕담(?)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현 정권의 실세들에게도 법의 칼끝을 들이대었다. 화들짝 놀란 대통령은 측근 실세인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에 임명하여 검찰개혁을 구실로 제압하려 했으나, 하자가 많은 인물이라 야권과 여론의 거센 반발로 한 달여 만에 물러나고 만다. 후임으로 판사출신에다 5선 국회의원으로 당대표를 지낸 추미애를 임명하면서 드라마의 막이 오른다.
주역을 맡은 추미애 장관은 기대 이상의 맹활약으로 막장드라마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등장하자마자 마구잡이로 인사권을 휘둘러 정권실세들 관련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들을 모조리 좌천하는 ‘학살인사’를 두 차례나 단행해서 검찰총장의 수족을 다 잘라버리는 위력을 과시했다.
검찰개혁이란 한갓 허울일 뿐이고, 속속 들어나는 비리와 부정을 덮고 검찰을 장악하기 위한 꼼수라는 걸 잘 아는 야권의 반발과 검찰내부의 집단 저항에 부딪치자 한술 더 떠서 검찰총장을 찍어내기 위한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일단계로 총장의 직무배제에 들어갔지만 법원이 집행정지신청을 인용하는 바람에 무산되자, 이번에는 징계위원회에 회부해서 두 달 간의 정직(停職)처분을 내렸다. 그마저도 절차상의 하자와 징계사유의 부당성을 이유로 또다시 집행정지신청이 인용되어 드라마는 바야흐로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막장드라마’란 일반적으로 지나치게 비윤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설정으로 사회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드라마를 속되게 일컫는 말이다. 지난 한 해 매스컴을 온통 도배한 추미애 장관의 윤석열 총장 찍어내기 활약상은 한 편의 막장드라마로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법무장관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법은 물론 일말의 양식도 깔아뭉개는 인성의 막장을 보여주었다는 것과,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광기어린 오기와 독기로 시청자들의 분노게이지를 높여가는 전개는 가히 막장드라마의 끝판이라 할만 했다.
일 년 내내 숨 가쁘게 달려온 드라마는 추미애 장관의 사의표명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막장드라마답게 한국사회에 끼친 해악은 결코 적지가 않지만, 한편으로는 집권세력들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서 맹종하던 민심이 이반하는 순기능도 없지 않았다. 새해에도 새 장관이 임명되면 검찰개혁 막장드라마의 속편이 또 시작될 것이다. 모쪼록 후속 편에는 반드시 사필귀정의 결말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