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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케이크를 자른다면

등록일 2021-01-04 18:54 게재일 2021-01-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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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br>인문글쓰기 강사·작가<br>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며칠 전 여고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희야, 항상 네 글 잘 보고 있어. 글 읽을 때마다 이런 걸 공짜로 읽어도 되나 항상 생각해. 나는 선반에 있는 약을 꺼내서 손님에게 전해주기만 해도 돈을 받는데 글 쓰는 사람들은 그냥 나눠주니까 불공평한 것 같아. 내가 책값 보내고 싶은데 꼭 받아줘.” 하면서 책값이라고 할 수 없는 큰돈을 보내왔다.

그 후 불공평이라는 말이 자꾸 맴돌다가 ‘창힐이 문자를 만들자 하늘에서 곡식이 비처럼 내렸다’는 말이 떠올랐다. 중국 고전 ‘회남자’에 나오는 말이다. 문자가 생기면 빈부격차가 심해져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 하늘이 곡식을 내려주었다는 말이다. 문자가 생기기 전에도 계급 차이는 있었겠지만, 문자 시대 이후보다는 덜했을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문자를 쓰지 않고 새끼줄을 꼬아 의사소통하는 시대’를 이상사회로 보았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단순히 문자를 아는 것만으로 지배층이 될 수는 없고 시대가 요구하는 전문성과 기술을 습득할수록 기득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등장해서 분야에 따라서는 전문지식이나 기술이 있어도 어려운 상태가 되어 가고 있다.

이런 시대 변화 속에서 분배 문제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다. 사서삼경만 외워도 행세할 수 있는 전근대 사회에서도 지식인들은 과하게 특혜를 누렸고, 현대 사회에서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정당한지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정의 기준은 어떻게 정할까? 공정하게 분배하려면 이익의 원천을 평가해야 할 텐데 과연 이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에서 생산력을 산출하는 요소를 토지, 자본, 노동 세 가지라고 한다. 여기서 토지와 자본은 시대가 변해도 크게 변하지 않고 오히려 가치가 꾸준히 상승하는데 노동은 평가가 요동을 친다. 어떤 노동은 엄청난 보상을 받고 어떤 노동은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같은 노동이라도 시대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

때로는 동일한 사람이 그 능력으로 강의를 하면 보상이 높고 글을 쓰면 보상이 낮다. 중앙 일간지에 칼럼을 쓰는 꽤 유명한 작가 역시 글만 써서는 생활할 수 없다며 코로나19로 강의가 끊겨 살기가 곤란하다고 고충을 고백한다. 따지고 보면 강의는 같은 말을 무수히 반복해도 상관없지만, 글은 절대로 같은 내용을 허용하지 않는데도 그렇다.

‘내가 케이크를 자른다면’은 공정한 분배를 탐색하는 그림책 제목이다. 만약 내게 케이크를 자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면 나는 조용히 그 칼을 내려놓을 것이다. 공정하게 자를 자신도 없고, 어느 한 사람에게 케이크를 자르게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가 조승연은 인문적 교양이란 감성비를 높여주는 것이라 말한다. 사람답게 사는 데 가성비만 따질 수는 없다. 그러나 감성비를 높여주는 활동에 대한 보상은 지나치게 탄력적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의 책임을 사회에만 미룰 수는 없다. 감성비 높이는 활동에 보상받는 방법을 당사자도 연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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