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신축년 소띠 해다. ‘신(辛)’은 흰색, 그러니까 올해는 ‘흰 소의 해’이다. 사실 띠로 말하는 음력 새해 즉, 설날은 아직도 한 달 열흘가량이 남았으나 양력을 따라야 하니 어쩔 수 없다. 소는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우직하기도 하다. 어떤 힘든 일도 순종하며 참을성 있게 묵묵히 해내는 소. 그러나 한번 성나면 주인이 와도 못 말린다. 지난 쥐띠 해는 쥐새끼들이 날뛰듯 코로나 세균이 설치고 세상이 시끄러워 평온한 일상이 뒤틀려 버렸지만 올해는 소의 성실함으로 나라 안팎이 평정을 되찾기를 빌어본다.
매년 새해 첫날은 일출을 보러 간다. 먼동이 트는 새벽녘 영일대 해수욕장과 호미곶으로 달려가곤 했지만, 올해는 이들 주요 해맞이 장소가 모두 폐쇄되었다. 12월 마지막 날 저녁에 영일대 바닷가에 가보았더니 빨간 출입금지 줄이 길게 둘러져 있었다. 신년행사는 취소되고 거리는 한산했지만 시민들의 마음은 새해의 안녕을 빌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할 수 없이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엇비껴 들어오는 첫 태양의 난반사를 볼 수밖에 없었다. 또 새해의 시작에 즐기는 일은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이 또한 온라인 행사로 텅 빈 종각 영상에 종소리만 울릴 뿐 새해의 복을 비는 군중의 함성은 없었다. 중국 우한발 코로나19가 처음 알려진 것이 벌써 1년째, 전 세계로 번진 역병은 걷잡을 수 없이 혼돈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코로노믹스라는 새로운 경제계의 팬데믹은 얼마나 갈는지…. 내 마음속의 맑은 종을 울리며 새로운 질서의 세계가 펼쳐질 것을 기대해 본다.
새해 첫날 시골집 황토방에 군불을 때고 뜨뜻한 방구들에 엎드려서 이 글을 쓴다. 밖에는 하얀 첫눈이 내리고 있다. 불을 지피니 잘 안 타고 연기가 아궁이 밖으로 밀려 나오기에 오랫동안 굴뚝 청소를 하지 않은 탓이려니 하고 연통을 뽑아보니 밑둥이 꽉 막혀있다. 뭉쳐 있는 그을음을 털어냈더니 시원하게 불길을 잘 빨아들여 방이 금방 뜨거워진다. 우리 일상도 무관심하게 오래 지나다 보면 어떤 어려움이 뭉쳐져 있는지를 잘 모른다. 한 번씩 살펴보면서 고쳐나가야 한다. 올해의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연말부터 카톡과 문자로 지인들과 옛 제자들로부터 고마운 연하 인사를 전해온다. 격리된 느낌의 한 해를 견뎌온 외로움을 따뜻이 풀어주는 고마운 글들이다. 나도 간단히 그린 연하장에 덕담을 쓰고 휴대폰 사진으로 담아 감사의 답장을 보내고 있다. 올 신축년에는 역병이 사라지고 웃음이 넘치는 일상으로 되돌아 행복하기를 빌어본다. 새 달력도 걸었다. 황토방의 열기를 배에 깔고 1년의 계획을 적어본다. 평범한 일상 속에 특별난 것은 없다. 문화원의 새로운 과목을 들어볼까도 하고, 국내 여행과 산행 코스도 몇 개 잡아두었다. 해외여행도 계획해 보지만 코로나 확산 속에 실현될지 의문이다. 가진 것들을 정리하며 건강생활과 자기성찰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뜻이 ‘마음먹고 한 일이 사흘도 못간다’는 말인지 ‘마음먹는 일에 사흘은 공을 들여야 한다’는 말인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나는 뒤의 뜻으로 받아들여 작심하고 올해의 계획을 세워보고자 한다.
근하신년 첫날, 마당엔 흰눈이 쌓이고 있다. 깨끗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