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세모와 송년회

강희룡 서예가세밑(歲─) 또는 세모(歲暮)는 한 해가 거의 다 가서 얼마 남지 않아 곧 한 해가 다가는 무렵을 가리킨다. 올 한해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의 기승으로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운 처참히 무너진 일상으로 우울하게 저물어 간다. 우리가 부르는 세모는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일본식 한자라 하여 세밑으로 순화해 쓰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이 단어는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초간본)에 “세모에 음양이 짧은 해를 재촉하니, 하늘가의 상설이 찬 하늘이 개었도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율곡이 지은 연시조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의 제9곡 문산(文山)의 경치를 읊은 부분에 ‘구곡은 어드메오, 문산에 세모(歲暮)커다, 기암괴석이 눈 속에 무쳐셰라’란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조선시대에도 세모란 말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볼 때 세모로 사용해도 틀린 어휘는 아닌 것 같다.우리의 세시풍습은 입춘으로 시작하여 대한으로 끝나는 24절기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는 섣달그믐이 되면 고관들은 왕에게 문안을 하고 사대부집안에서는 가묘(家廟)에 절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 또 집안마다 어른을 찾아뵙고 묵은세배를 올리는 한편, 친지끼리 특산물을 주고받으면서 한 해의 끝을 뜻있게 마무리하였다. 또한 수세(守歲)라 하여 섣달 그믐날이면 방, 부엌, 마구간까지 온 집안에 불을 켜 놓고 조상신의 하강을 경건하게 기다렸다. 부엌신인 조상신은 1년 동안 그 집안사람들의 선악을 섣달 스무 나흗날 승천해 옥황상제에게 고하고 마지막 날 밤에 하강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때문에 연말 일주일은 한 해 동안의 처신을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심판받는 기간이었다. 이러한 풍속은 36년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일관된 식민 지배의 탄압과 영구예속화를 위한 고유성 말살 및 우민화정책으로 철저히 왜곡되거나 실종되었다. 해방 후 우리의 고유 세시풍속이 사라진 자리를 ‘망년회(忘年會)’란 이름의 술 파티가 등장한다. 이 망년회는 연말과 연시로 이어지는 일본의 비공식적인 연휴로 신년회까지 이어지는 오랜 풍습이다. 한 해 동안의 온갖 핍박과 수탈을 모두 술로 잊어버리자는 의미로 망년회를 사용하였다. 이 단어를 일본어투의 말이라 하여 90년대에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송년모임 또는 송년회’로 순화했다.사회구조가 다양하게 발전하면서 현대인들은 직장을 비롯해 여러 갈래 집단 간의 모임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모임들은 연말이면 송년회란 이름을 빌어 본격적인 권주절(勸酒節)을 만들어 간다. 망년회란 의미의 내용은 그대로 두고 겉으로 이름만 송년회로 포장한 이 상품을 우리는 목청 높여 뜻도 의미도 없는 ‘위하여’를 외치면서 건강을 해치고 경제력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새해를 맞는 심정은 동서고금이 모두 같다. 지나가는 한해가 안타깝고 아쉽지만 다가오는 새해의 희망과 비전이 있기에 즐겁기만 하다. 이웃을 한번쯤 둘러보면서 서로 갈등으로 반목했던 사람들도 화합과 용서로 바뀌는 것이 바로 새해다. 그래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송구영신(送舊迎新)에 깊은 의미를 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밝아오는 신축년에는 전염병을 속히 퇴치하고 서로가 소통하는 일상을 찾는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2020-12-27

우리는 할 수 있다

윤영대 수필가한 해가 저문다. 희망과 설레임으로 맞이했던 2020 경자년도 코로나19라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역병의 창궐로 우리 모두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긴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작년 12월 말 중국 우환에서 들어온 원인불명의 폐렴 전염병이 이제 매일 1천 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오고 국민의 불안은 가중되어 간다.우리 생활의 변화는 엄청나다. 거리 두기 2m라는 제한 속에 비대면, 랜선, 언택트라는 신조어들을 머리에 새기고 확찐자, 집콕족, 금스크 같은 우스개 소리도 챙겨야 했다. 이제 마스크 쓰기와 언택트로 소통하는 방식은 하나의 새로운 문화이자 평범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서로의 만남이 두려운 우리는 ‘우리’라는 넓은 범위의 이웃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우리 다 같이 노력하여 되찾고 모두가 긍정적 생각으로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 개인의 삶도 우울하지만 사회도 우울하고, 마음의 평온과 삶의 믿음을 위해 교회나 절에서 모여 영혼을 위로받고 싶지만 어려운 실정이다.세계 각국은 자국의 방역을 위해 외국과의 왕래도 통제하고 세계 축제인 올림픽도 연기된 아픈 기록을 남겼다. 국내는 백신 구입의 기회를 놓쳤다고 비난을 받는 와중에서 정치권의 줄다리기 싸움을 지켜보며 마음은 짜증나고 어둡기만 하다. 학생들의 생활도 빗나가버렸다. 한창 감성이 무르익을 학창시절을 등교의 불확실성에 비대면 수업이라는 사태까지 와버렸으니 앞으로 코로나 세대라는 신세대가 사회의 흐름을 어떻게 기억을 할지….올해는 문화예술계와 체육계도 힘을 잃었다. 전시회가 취소되거나 인원 제한에 언택트 공연이 되었고, 국민 생활의 활력소를 얻던 각종 경기 등도 취소되어 함성과 박수가 요란했던 경기장은 조용하다. 연말이면 안방을 달구었던 각종 시상식들의 화려함도 볼 수 없다. 해외여행 불가로 나의 꿈, 버킷리스트 하나를 접어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그러는 가운데 망년회도 없이 연말을 맞은 마음은 쓸쓸하다. 이제 마음을 추스르며 나의 주위를 정리해 본다. 소소하게 즐겼던 취미 생활의 흔적을 차곡차곡 정리해 보고 단조로운 일기장을 뒤적이며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들과 무언의 대화들을 하나둘 지우며 나의 기억 속에 묻어둔다.내년은 신축년 소띠의 해이다. 말없이 부지런히 일하는 소와 같이 정부는 선지적인 상황판단과 결단력으로 현명하게 대처하고 국민 각자는 마스크 쓰기, 손 씻기 등 스스로 할 수 있는 방역대책을 준수하며 병상 부족 상황에서도 고된 업무를 이겨내려는 의료인들의 헌신적인 봉사 정신을 가슴에 품고 이 난관을 타개하고 밝은 내일을 만들어 가자.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다.내일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맑은 마음, 밝은 웃음으로 깨끗한 몸을 가꾸고 이웃들과의 관계를 더욱 따뜻이 하여 이 환란을 이겨내자. 제야의 장엄한 종소리도 새해 첫날 타오르는 일출도 각자의 위치에서 마음으로 듣고 보며 새해를 맞이하자.“우리는 할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

2020-12-27

포항경제의 혁신적 발전을 위한 의견

지난 12월 14일 포항세관이 발표한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의 누적 수출액은 64억5천6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78억4천500만 달러보다 17.7%가 감소하였다. 지금 추세로는 역시 연간 전체로도 전년 대비 감소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원인이라면 역시 지역 철강제품의 수출 부진에 따른 것이다. 지역별로는 최대 수출 지역인 유럽에 대한 수출이 1~11월까지 누적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2.0%가, 동남아시아 지역은 10.9%가 각각 감소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지역에서 코로나19에 따른 피해가 컸던 탓인데, 이 추세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 같다. 포항경제도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올해 중국의 달러화 표시 무역총액은 1~11월 기간 중 전년 동기 대비 0.6% 증가하여, 10월까지 누적 기준 감소에서 증가로 전환하였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피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운데, 중국 당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밝혀진 약점을 최대한 보완하고 이를 극복하여 더욱 도약하기 위한 대외무역과 관련한 정책 대안을 마련하였다. 지난 11월 9일 중국 국무원은 “대외무역의 혁신적 발전 추진에 관한 실시의견”(关于推进对外贸易创新发展的实施意见)을 발표하였다. 이 실시의견은 혁신과 최적화를 키워드로 삼아 대외무역을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모두 11항으로서 1항은 2항부터 10항에 이르는 9개의 대책을 포괄하는 전반적인 방향과 기준을 나타내고, 마지막 11항은 9개 대책을 지속 달성하는데 필요한 기반을 보장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실시의견이 지향하는 전체적인 요지를 나타낸 1항에서는 5개 부문(국제시장과 국내지역 배치, 경영 주체, 상품구조, 무역방식)의 최적화와 더불어 3대 부문(대외무역의 구조 전환과 고도화를 위한 기지, 무역 촉진 플랫폼, 국제 마케팅 체제)의 정비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최근 중국 당국이 강조해 온 국내외간 치밀한 상호작용(쌍순환)을 기반으로 하되 여기에는 과학기술, 제도, 모델, 업태를 모두 포괄하는 혁신으로 국제경쟁력에서 우위를 확보하여 대외무역의 혁신적인 발전을 도모한다는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2항부터 10항까지는 실천적인 9개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1)개척방식의 혁신과 국제시장배치의 최적화(국제경제, 무역환경의 최적화, 무역원활화 메커니즘의 정비, 신기술, 새로운 채널 활용에 따른 국제시장 개척), 2)비교 우위에 바탕을 둔 국내 지역배치의 최적화(동부지역에서 무역의 질적 향상, 중서부지역에서 무역 비중의 확대, 동북지역에서 대외개방 확대, 지역간 대외무역협력 메커니즘의 혁신), 3)부문별 지도 강화와 경영주체의 최적화(선도기업의 육성, 중소기업 무역경쟁력의 강화, 협동적인 발전 수준의 향상, 기업에 대한 서비스의 적극적 제공), 4)생산요소 투입방식의 혁신과 상품구조의 최적화(산업망, 공급망의 보호와 발전 촉진, 산업구조의 전환, 고도화 추진, 수출제품의 품질향상, 수출입제품 구조의 최적화), 5)발전모델의 혁신과 무역방식의 최적화(일반무역 규모 확대와 부가가치의 향상 등 강화, 가공무역의 고도화, 국경무역과 같은 기타무역의 확대 촉진, 대외무역의 일체화), 6)운영방식의 혁신과 국가 차원의 무역구조 전환, 고도화기지의 건설추진(조직체제를 건전화하고 연구소, 대학, 무역촉진기구, 업계단체, 기업 등에 의한 공공서비스플랫폼의 정비). 7)서비스모델의 혁신과 무역촉진 플랫폼의 정비 추진(국제수입박람회의 역할 강화, 수입 촉진을 위한 모니터링, 평가, 퇴출 메커니즘을 정비한 혁신적 모델 구역 육성), 8)서비스채널의 혁신과 국제마케팅체계의 정비추진(기업 단독 또는 협력방식의 국제마케팅체계의 정비 가속, 자원공유 공공플랫폼의 정비). 9)업태모델의 혁신과 대외무역의 새로운 원동력 육성(국경을 넘는 전자상거래 등의 새로운 업태 발전 촉진, 중고차 수출의 적극적 추진, 신흥서비스무역의 발전 가속, 대외무역의 디지털화의 발전 가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 11항에서는 이와 같은 발전 환경을 최적화하고 보장할 수 있는 건전한 체제 확보를 위해 자유무역시험구, 자유무역항의 역할 강화, 수출입관리 및 서비스 최적화, 국제물류에 의한 보장의 강화, 리스크 방지 능력 향상 등을 제시하였다. 한 국가의 종합적인 전략 내지는 정책을 망라하고 있는 만큼 매우 방대한 내용이지만 이 모든 대책을 지역에 적절하게 적용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정책들이다.이상과 같이 중국이 대외무역을 보다 혁신적으로 촉진하기 위해 내세운 대책의 핵심적인 단어는 역시 혁신과 최적화다. 포항경제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혁신과 최적화는 늘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어떠한 방향으로 대처해 나갈 것인가는 다른 이야기다. 이에 개인적인 견해이기는 하지만 중국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대책들을 포항경제의 실상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가칭 ‘포항경제의 혁신적 발전을 의견’으로 9가지 정책적 방향성을 제시해 보았다.1)지금과 같이 관세부과와 같은 충격이 발생하였을 때 이를 회피하기 위해 유럽, 동남아시아와 같은 지역으로 수출대상국을 변경하는 순응형 해외시장개척에서 벗어나 철저한 신기술, 고부가가치제품을 기반으로 해외시장을 개척, 2)중국의 대외정책에서 동북지역의 대외개방 확대를 지향하고 있으므로 동북3성 지역에 대한 수출시장 개척을 강화, 3)포항시가 지원하는 강소기업 등 지역 선도기업을 지속 육성해 나가되 이와 더불어 비철강부문의 중소기업에 대한 무역지원과 행정서비스도 적극 제공, 4)지역 철강산업의 생태계 조성과 혁신을 위해 기초 소재만이 아니라 중간재, 최종재로 이어지는 공급망을 최대한 보호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전국에 산재한 소규모 철강공장들을 적극 수용, 집약시키는 방법도 동원, 5)포항시 발전모델은 지금까지 소재인 제철, 제강에만 주목해왔으나 앞으로는 세계적인 추세에 맞추어 철강과 금속을 묶는 철강금속산업의 이미지를 강화하고 영일만항 등을 기반으로 식품가공과 입항선박에 대한 보급기지로서의 기타 거래도 확장, 6)포항시 전체에 산재하여 개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학, 연구소, 상공회의소, 중소기업단체 등을 연결하는 정보 공유와 산학협력체제를 더욱 활성화, 7)단순한 철강 소재를 활용하는 연례행사보다는 전국 대상의 가칭 ‘철강금속제품박람회’를 기획하여 철강소재가 포함된 최종재 생산 중소기업을 초청, 포항에서 판촉활동을 지원하고 소비자가 구매토록 함으로써 생산기업과 관광소비객의 유치를 동시 달성, 8)비대면 비접촉 시대에 본격화에 대비하여 지역 특산물의 국내외 판매온라인채널을 구축하고 지역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빅데이터를 수집 축적하며 이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과 관련 기반을 정비, 9)포항은 철강도시에 더하여 관광, 문화도시를 표명하지만 국제항만도시인 만큼 기존의 특구 기능을 활성화하되 출입구인 영일만항을 비롯한 항만의 검역, 방역, 통관기능 등 다양한 부문에서 최적화된 물류 체제를 지속 정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그동안 포항경제와 관련하여 전문가들의 많은 조언이 있었고, 이상의 9개 대책도 분명 제시된 바 있었다. 하지만 의견을 제시하고 듣기만 해서는 아무런 변화도 이룰 수 없다. 이제는 움직여야만 한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끝

2020-12-27

레임덕

레임덕은 본래 18세기 유럽 증권가에서 채무 불이행자를 가르키는 경제용어로 사용되다 19세기 미국으로 건너와 임기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은 대통령의 권력누수 현상을 가르키는 말로 바뀌었다. 절름발이의 lame과 오리의 duck을 합친 말로 뒤뚱되는 오리걸음을 묘사한 표현이다.권력이란 영원히 거머쥘 수 없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권력 누수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우리 속담의 권불십년(權不十年)이 이런 의미다. 세상의 아무리 높은 권세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권력을 잡으면 언젠가는 물러나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여서 열흘 피는 꽃이 없다(花無十日紅)는 말도 있다. 권력을 잡은 사람이면 반드시 가슴에 새겨둬야 할 경구다. 거대한 중국을 하나의 나라로 최초 통일한 진시황도 불로장생의 약초를 구하지 못하고 겨우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이룩한 진나라도 그의 사후 5년만에 멸망한다. 세상사 사람이 하는 일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유한한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정치학자가 제시하는 권력자의 레임덕 이유는 대체로 이렇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거나 권력자의 건강에 문제가 있을 때, 또 집권당의 다음 후보가 자신의 세력을 빠르게 결집했을 때, 권력자 본인이나 친인척의 비리가 드러나는 경우, 리더십이 현격히 떨어질 때 등등이다.정경심 교수 유죄판결과 윤석열 총장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나오자마자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의 레임덕이 화두다. 일반적으로 집권 4년차가 되면 지지율이 떨어지는 시기여서 레임덕 거론이 자연스러울 때도 있다.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최초의 레임덕 없는 정권이 될 것이란 기대감을 받아온 정권이라는 점에서 이번 레임덕의 등장은 각별하게 느껴진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12-27

외눈박이들의 ‘탄핵’ 놀이

안재휘 논설위원조선 숙종 때 당하관(堂下官) 벼슬에 있던 이관명(李觀命)이 암행어사가 되어 영남지방을 시찰한 뒤 돌아와 왕에게 아뢴다. “황공하오나, 대궐의 후궁 한 분의 소유로 되어 있는 통영의 섬 하나에서 수탈이 어찌나 심한지 백성들의 궁핍이 참혹하옵니다” 숙종은 화를 벌컥 내면서 책상을 내리쳤다. “과인이 그 조그만 섬 하나를 후궁에게 준 것이 그렇게도 불찰이란 말인가?”그러나 이관명은 굴하지 않고, “누구 하나 전하의 거친 행동을 막지 않았으니 저와 대신들을 아울러 법으로 다스려주십시오”라며 엎드린다. 숙종은 화가 치밀어 올라 승지를 불러 전교를 쓰라고 명한다. 그리고는 “전 어사 이관명에게 부제학을 제수한다”고 명했다. 그리고 곧 명을 고쳐 ‘홍문제학’을 제수한다고 했다가, 마지막에 “예조참판을 제수한다”고 다시 명을 바꿨다.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정직 2개월’ 징계 결정이 법원에서 뒤집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의 재가가 난 징계결과를 일개 판사가 어떻게 뒤엎을 것이냐 하고 벌인 막장 싸움에서 완패했다. 또다시 나타난 여권의 치사한 분기탱천이 기가 막힌다. 어째 이렇게들 끝까지 쪼잔한지 도통 모르겠다.때마침,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1심 판결도 나왔다. 정 교수는 입시 비리 등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판결에 볼복하는 친여 세력들이 서울중앙지법 재판관들의 이름을 낱낱이 적시하며 탄핵 국민청원을 냈다. 이 청원에 순식간에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의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다.‘윤석열 찍어내기’ 집착에 빠진 민주당 쪽의 광기 또한 가관이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이 총대를 멨다. 김 의원은 윤 총장을 국회에서 탄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한편 추미애 장관에게 징계위원회를 다시 열어 해임하라고 떼를 썼다. 입법을 통해 검찰의 수사권을 아예 제거하겠다는 격앙된 반응도 등장했다.이쯤 되면 이 나라는 ‘법치’뿐만 아니라, 국가의 근본 틀인 ‘3권분립’에도 통째로 빨간 불이 켜졌다고 볼 수 있다. 국민청원 놀이터에서 올곧은 ‘판사’들을 쫓아내라고 ‘난리굿’을 치기 시작한 무리는 한낱 패거리 맹신주의에 빠진 외눈박이 좀비들에 불과하다. 선택적 ‘정의’에 만취해 몰려다니는 홍위병 망령의 허수아비들이 이 나라를 망국의 블랙홀로 내몰고 있다.“없는 죄를 뒤집어씌워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검찰”이라는 김두관의 험구에서 ‘검찰 해체’를 노리는 확증편향 조폭 조직의 가없는 복수심 같은 살기마저 읽힌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정작 노무현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외눈박이들의 ‘탄핵 놀이’를 허하지 않았을 것 같다. 임금의 잘못을 탄원하는 당하관 이관명을 단숨에 예조참판으로 임명해 오히려 나라의 큰 그릇으로 쓴 숙종처럼 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라면 패거리 적개심에 취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검찰총장과 판사들을 물어뜯는 추한 모습을 연출할 리가 절대로 없다.

2020-12-27

허리 끊긴 철도 ‘문경~상주~김천’ 구간 반드시 연결해야

강영석 상주시장근·현대사에서 경부축 교통망을 비켜나 낙후의 쓰라림을 감내 했던 상주가 이제 사통팔달의 교통 결절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토의 중심에 위치한 데다 중부내륙, 당진~영덕, 상주~영천 등 고속도로 3개 노선이 지나고 나들목도 6개에 이른다. 이 같은 교통 여건과 앞선 농업기술을 바탕으로 스마트팜 혁신밸리와 경북도농업기술원을 유치해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기업과 귀농귀촌인 유치, 관광산업 육성 등 도시를 역동적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하지만 고속도로 외에 지역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인프라가 있다. 바로 철도다. 정부는 서울 수서에서 출발해 경남 거제에 이르는 철도 노선을 구축하고 있다. 국토의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노선이다.현재 수서에서 문경까지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2023년 완공 예정이다. 김천~거제 노선은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되면서 철도 건설을 위한 기본계획수립 용역이 진행 중이다.문제는 서울에서 거제까지 노선 가운데 중간 지점인 문경~상주~김천 구간(73㎞)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 노선이 없다는 것은 국토 종단 철도의 허리가 끊긴 것이나 마찬가지다.올해 4월 시장으로 취임한 후 이 노선의 연결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미래형 친환경 교통수단인 철도가 없이는 지역 발전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수도권의 기업과 귀농귀촌인,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수도권과의 접근성을 개선해야 상주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 볼 때도 그렇다. 수도권에서 충청·경북·경남의 주요 도시를 연결해야 철도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지방 도시가 공존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된다. 미래 세대와 국가의 재도약을 위해 필수적인 사업이다.그동안 철도 연결을 위해 정부 관련 부처와 출향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당위성을 역설했다.청와대·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국회 등 관련기관을 40차례 가까이 방문하는 등 노선 건설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시민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문경~상주~김천 구간 조기 구축 탄원서 서명 운동에 상주 시민의 97%인 9만5천300여 명이 뜻을 함께했다.이웃 도시인 문경과 김천 역시 힘을 보탰다. 지난 6월 상주·문경·김천시의 관련 부서장이 모여 중부내륙철도 문경~상주~김천 구간 건설 실무협의회를 열고 활동에 들어갔다. 이어 각 도시별로 서명운동이 시작됐고 철도 연결을 촉구하는 현수막도 내걸었다. 이 결과 상주·문경·김천 시민의 79%인 24만4천여 명이 서명에 참여할 정도로 반향이 컸다. 지난 7월에는 세 도시 시민의 강력한 바람이 담긴 탄원서를 대통령 비서실, 국회의장,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철도시설공단 등에 제출했다.철도 조기 구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물불가리지 않고 달려가 예비타당성 조사의 조속한 통과와 당위성을 강조했다. 문경~상주~김천 노선은 총 길이 73㎞에 예상 사업비가 1조3천700여억 원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5월부터 이 노선의 경제성 여부를 확인하는 예비타당성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고민은 지방에서 하는 대형사업 중 경제성이 제대로 인정되는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런 만큼 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예비타당성조사 통과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었다. 최근에는 공사비 절감 방안을 마련해 해당 부처인 국토교통부에 다시 제출하는 등 막바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이런 노력 덕분에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취임 직후 상당히 걱정스러웠던 상황과 달리 희망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지난 2일 통과된 2021년도 정부 예산에 문경~상주~김천 철도기본계획 수립비 35억원이 확정되면서 청신호가 켜졌다. 이르면 내년 2월께 나올 예비타당성조사 결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국책사업을 유치하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예비타당성조사의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시민과 함께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상주 시민과 경북 도민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철도망 확충으로 경북의 도시들이 상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2020-12-27

폐교에서

기억의 첫 장은 골목에서 시작된다. 근대문화역사거리로 되살아난 골목에는 옛날을 떠올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걷다보니 머릿속에서 스러져가던 풍경이 하나씩 깨어난다. 골목 끝에 추억을 파는 상점이 있어 쫀드기 하나 집어 든다. 쫄깃쫄깃한 옛 맛을 씹으며 언덕을 오르니 야트막한 동산 위에서 허름한 건물이 구룡포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다.잃을 것도 지킬 것도 없기에 폐교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 하릴없는 바람이 붙잡고 흔들어보는 국기 게양대를 바라보며 조회라도 하는 걸까, 운동장에는 작물들이 삐뚤빼뚤 줄을 맞추고 있다. 아이들의 수다는 다 어디로 날아갔는지 느티나무 위에서 참새들만 재잘거린다. 빈 책상이 점점 늘어 학교가 문을 닫기까지 참새는 출석부에 이름 한 줄 채우지 못했다. 첨성대모형을 바라보며 별처럼 반짝이는 꿈을 키우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떠났을까.‘끼익!’ 교무실 문을 열자 우당탕거리며 자리에 앉는 아이들의 환영이 스쳐간다. 벽에 기우뚱 기댄 뜀틀과 먼지를 뒤집어쓴 구름판 위에 줄다리기 밧줄이 축 늘어져있다. 아이들의 마지막 낙서를 붙잡고 있는 칠판 앞에서 생활기록부를 툭 건들자 사진 몇 장이 떨어진다. 촌스런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는 언니들, 두 줄이 선명한 하늘색 운동복을 입고 손등에 1등 도장을 찍기 위해 달리는 주자들, 가을볕에 그을린 그들의 운동회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초점이 흐려서인지 인물보다 많은 수를 뽑았는지 앨범 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한 사진은 여태껏 오지 않은 주인을 기다린다.내 마음속에도 학교가 있었다. 걸음이 느린 내게 운동장은 뜀박질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움직이는 그림이었다. 그네 타는 아이의 흔들림, 지구본을 열심히 돌리는 친구의 발동작, 아침조회 때 미끄럼틀 너머에서 철거덕철거덕 내달리던 기차. 쉬는 시간이면 그것들을 스케치북 위에 담았다. 단풍이 들면 온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뒷동산에 올라 몰래 훔친 언니의 물감으로 달력 뒷장에다 풍경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화가가 되는 꿈을 한 장 한 장 꾸었다.어렸을 적에는 꿈을 꾸면 그것이 내게로 다가올 거라고 믿었다. 오늘 벌어야 내일 끼니를 거르지 않던 20대, 결혼 후 반복되는 일상을 버리지도 못했다. 길고 지루한 정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싶어 무작정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배우고 읽으며, 하루를 서두르면서 살다보니 내 마음의 학교도 문을 닫았다. 어릴 적 저축해두었던 꿈을 곶감 빼 먹듯 사는 것이 인생이지만 지금이라도 꿈을 키우지 않는다면 다시 되살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꿈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끝나기 전에 불씨를 되살려야 했다.‘삐그덕!’ 닫혀있던 문을 열었다. 창고에는 하나씩 버린 것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뒤죽박죽 쌓여있었다. 게시판에는 ‘나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탈색된 그림이 활짝 웃고 있었다. 스케치북과 연필을 찾아 입으로 호호 불었다. 구석에 드러누워 있는 구름판을 꺼내 놓고 몇 발짝 물러났다. 도움닫기를 하자 야무진 꿈들이 부스스 깨어나 기지개를 켰다. 매년 전시회를 여는 화가, 베스트셀러 작가, 여백이 없는 여권을 가진 여행가. 생각만 해도 행복한 꿈들이다. 그렇게 나는 마음의 학교 문을 열어 펄럭이는 깃발을 게양대에 올렸다.김순희 수필가운동장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하늘은 각도기 전체를 다 써야 할 만큼 넓다. 수평선은 전교생이 두 팔을 뻗어도 모자랄 만큼 길다. 탁 트인 하늘과 바다를 보며 저만한 꿈을 키운 아이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폐교가 모교가 된 그들도 나처럼 문득 뒤를 돌아보다가 빛바랜 꿈을 꺼내 닦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기억의 첫 장이 있는 골목을 찾아 추억의 조각을 주워 마음의 책갈피에 간직할 것이다.어린 시절에는 밥보다 별을 많이 먹었다. 평상에 누워 따먹는 밤하늘의 별은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꿈이었다. 되살아난 골목을 걷는 사람들도 반짝이는 꿈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다들 학교는 졸업했지만, 인생학교는 걸음을 멈추는 날까지 재학 중이기에.

2020-12-27

코로나 일상 속 통계조사, 언택트로!!

김원식동북지방통계청 포항사무소 소장이제 경자년(庚子年) 쥐띠의 해 끝자락이다. 코로나19 확산부터 관광 및 여행 등의 관련산업 불황, 학생들의 멈춘 등교, 재택근무 등 개인, 기업, 국가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너무 힘든 1년이었다.통계청도 예외는 아니었다. 3월에 실시하려던 투입구조조사는 코로나19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중지됐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공무원 복무관리 지침이 하달됐고, 대면 및 현장방문 조사에서 비대면·비접촉 조사로 원칙이 변경됐다.그 후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지역별고용조사, 경제통계통합조사, 인구주택총조사 등 13종의 연간조사를 벌였다. 마지막으로 실시한 12월 농림어업총조사(12월 1일∼18일)도 마무리됐다.이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올해만큼 ‘안전’이라는 가치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낀 적이 없다. 올해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통계청 포항사무소도 안전한 통계조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약속을 드린다.먼저 통계조사원 모집 시 온택트(Ontact) 면접을 도입한다. 온택트는 비대면을 일컫는 ‘언택트(Untact)’에 온라인을 통한 외부와의 ‘연결(On)을 더한 개념으로 온라인으로 대면하는 방식이다. 온택트 면접은 2021년 고령자조사(3월 17일∼30일)를 대상으로 시험 운영할 예정이다. 이러한 경험 축적을 통해 효율적인 언택트 인프라 탐색 및 적용, 온라인 면접 프로세스 구축, 온택트 면접심사 매뉴얼 제작 및 공유를 통해 국민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 또 통계청에서 매달 실시하는 경상조사를 언택트 방식으로 운영한다. 조사 안내, 답례품 배부, 온라인 조사 등으로 개인과의 접촉점을 최소화해 전염병 확산 예방은 물론, 대상자의 편의를 도모한다.내년에도 경제총조사 등 40종의 크고 작은 연간조사와 경상조사가 예정돼 있다. 2021년에도 믿을 건, 성숙한 시민들뿐이다. 사실 올해에도 코로나 대유행 속에서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없었다면 국가통계 생산에 많은 차질을 생겼을 것이다. 내년에도 코로나19에 대비해 방역지침을 철저히 준수하고, 자체 노력을 강구해 언택트 통계행정을 펼치겠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2020-12-23

그러던 어느 날, 빈 캐럴이!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추수는 끝났지만, 다시 푸름으로 조용히 분주한 12월 들판을 본다. 11월까지 콤바인이 그리는 그림 제목은 ‘비움’이었다. 기계는 들판의 바닥을 향해 나아갔다. 바닥에는 농부들의 발자국이 화석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유례없는 태풍에 인간사회는 초토화되었지만, 벼는 풍년이라는 선물을 농부에게 주었다. 그 이유를 서로 엉켜 하나 된 발자국을 통해 알 수 있었다.지금 사회는 진리가 죽은 사회다. 물론 그 원흉은 자신들의 헤게모니에 빠져 절대 진리조차 그들의 입맛대로 바꾸는 떼거리 정치인이다. 천지를 모르고 날뛰는 그들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식인은 변(便)을 피하듯 그들을 피하고 있다. 가면 갈수록 우리 사회에는 변을 치울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니 우리 사회에는 구린내만 진동한다.사람의 감각 중 가장 예민한 감각은 후각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적응이 빠른 감각 또한 후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 썩는 냄새를 못 맡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때는 불처럼 일어난 적도 있었다. 그때 냄새가 너무 강해서인지 사람들은 그보다 더 썩은 냄새는 맡지 못한다. 이는 후각의 진리인 ‘베버2013페흐너의 법칙’에 어긋나는 일이다.비록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베버와 페흐너는 다음과 같이 후각의 특징을 말했다.“지독한 냄새를 맡고 난 후 99%의 냄새를 제거해도 1%의 냄새만 있어도 사람은 30% 정도 악취를 느낀다. 그만큼 독한 냄새를 맡게 되면 이후 조금의 냄새만 있어도 독하게 느낀다.”필자는 한때 “나라를 나라답게, 국민과 함께 갑니다.”라는 말에 모든 감각이 열린 적이 있었다. 곧 신세계가 펼쳐지는 줄 알았다. 헌법에서조차 소외된 대안학교 학생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회 약자들이 최소한 법이 정한 정당한 대우라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 말이 독인지는 몰랐다. 무감각할수록 상처는 커진다고 했다. 우리 사회의 상처가 너무 크다.그러던 어느 날, 필자에게 감각을 되찾아 준 것이 있다. 바로 자연이다. 매일 다니는 길이지만 필자는 눈을 뜨고도 못 보는 무지에 빠져 살았다. 절기는 소설과 대설은 물론 동지까지 지났는데, 들판은 다시 푸름으로 영롱하였다. 필자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내려 푸름이 자라고 있는 들판으로 갔다. 거기에는 마늘 싹이 푸른 길을 내고 있었다. 순간 마늘이 매운 이유를 알았다. 소한과 대한을 지내려면, 그들을 오롯이 들이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마늘은 땅한테 독하게 배웠을 것이다. 독함과 매움, 삶이 같은 단어라는 것을 마늘은 푸르게 말해주었다.마늘과의 교감을 끝내고 다시 차에 시동을 거는데, 캐럴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너무 슬프게 들렸다. 소리는 있지만 모든 것이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 빈 자리에 어느 학생의 울부짖음이 메아리 되어 들렸다.“학교 가기 싫어요! 집에서 과제만 하라는 게, 이게 무슨 학교에요!”2020년 캐럴과 학교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둘 다 텅텅 비었다는 것이다. 빈 캐럴은 끄면 되지만, 빈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할까!

2020-12-23

김종인 위원장의 사과 눈물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종인 위원장은 이번 대국민 사과에서 잠시 울먹이는 장면을 보였다. 그는 지난달 광주를 찾아 5·18 묘역에서 무릎을 꿇고 광주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것은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솔직히 사과했다. 사실 직전 대통령이 두 명이나 수형생활을 하는 것은 세계 어느 정치사에도 드문 일일 것이다.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 역시 수감된 적이 있으나 오래지 않아 풀려났다. 김 위원장은 당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공개사과 했다. 그는 위원장직 사직이라는 배수진을 치면서 이를 강행했다.김 위원장의 공개 사과에는 복합적인 배경이 작용했다. 전직 대통령 구속에 대한 사과 없이는 내년 보선도 당의 개혁도 어렵다는 판단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는 취임 초부터 사과할 뜻을 비쳤으나 당내 반발이 여의치 않아 이를 미룬 것이다. 내년 서울·부산 보선을 앞둔 시점에서 당 이미지 개선 없이는 승리가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이다.그는 당 뿌리부터 개혁 없이는 당의 외연 확대도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는 당 인적쇄신의 걸림돌인 수구 보수 세력의 제거를 당 개혁의 당면과제로 인식한 듯하다.이에 대한 당내의 반응은 입장에 따라 엇갈리고 있다. 58명의 초선의원과 당내 중도 개혁파는 대체로 그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당내 보수 강경세력들은 여전히 그의 행태를 비판하거나 반대하고 있다. 박근혜 구속에 항의해온 석방을 요구해온 조원진, 김진태, 민경욱 등 친박세력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야당 입당문제가 여의치 않는 홍준표는 ‘얻어터진 사람이 가해자에게 사과하니 배알도 없느냐.’고 김종인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당의 전반적 분위기는 침묵하고 있으며 이를 ‘전략적 인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이번 김종인의 사과는 당 개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의 대국민 사과는 당 개혁엔 일정 부분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그의 과거 사과는 당 이미지를 중화시키고 당의 인적 쇄신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실망한 일부 보수층을 회귀시키고, 중도 층의 외연 확장에는 기여할 것이다. 지구당 개편 시 정치신인 확보등 인적 쇄신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좌 클릭 정책이 보수정당의 정체성에 상처만 준다는 반론도 있다. 그 결과 내년 4월 보선과 대선에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80대 고령 김종인의 정치는 피아의 전선이 분명한 한국의 정치 풍토에서 무척 이해하기 힘든 행보이다. 그는 정치의 달인이라는 평가와 함께 변신이라는 평가도 따른다. 비례 대표 한 번도 어려운 정치 풍토에서 5선 의원이라는 그의 처신은 누구도 모방하기 어렵다. 그는 여야를 넘나들며 2명의 대통령을 당선시킨 후 불화가 있자 흔쾌히 결별했다. 그렇다고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 받지는 못한다. 그의 ‘경제민주화’정책은 개발 독재 시대용이며 유효기간은 끝나 버렸다. 그의 정치 행보를 노탐(老貪)으로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그의 마지막 정치 행보를 주시할 뿐이다.

2020-12-23

다시 봄을 추억하다

배문경수필가1954년 오늘 조지프 머레이와 하트웰 해리슨이 환자에게 쌍둥이의 콩팥을 이식했다. 인간의 장기이식에 성공했다. 신장이식이라는 획기적인 일을 통해 인간의 수명은 더욱 연장되었다. 더 나아가 생명은 선순환의 신기원을 이루었다.오래전 만난 할머니는 흰 머리를 곱게 빗어 늘 비녀를 꽂았다. 참빗이 한 올 한 올 머리카락을 통과하는 사이에 몇 올은 버려지고 매끄러워진 머리는 정수리에서부터 쓸어내려 뒤로 쪽을 지었다. 여든을 넘긴 몸 어디에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단호함이 서렸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죽음으로 가면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똑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호스피스병동이 없는 병원의 일 인실에서 통증을 어떻게 참으며 자신을 다독였을까.노인들은 젊은 사람들에 비해 암이 천천히 전이되거나 죽음으로 천천히 간다. 그래서 가족들은 환자 당사자에게 쉬쉬하며 돌아가실 때까지도 숨기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자식들이 힘들까 봐 도리어 침묵한다. 그 마음속에는 묵직한 바위 하나가 들어 있었으리라.할머니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아들과 며느리, 딸들이 그들의 자식들을 데리고 자주 왔다. 먼 곳의 자식들은 주말에 들러 계절과일을 깎아 두거나 정성들인 음식을 갖고 왔다. 할머니는 큰소리로 말하거나 음식을 먹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았다.간혹 할머니가 창가를 서성이거나 밖을 바라볼 때 슬픔의 무늬가 어른거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담아둔 살아온 삶의 회한이 왜 없었을까. 살고 싶다고 발버둥을 치고 싶지는 않았을까. 아무도 할머니께 그 죽음으로 가는 길을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끝이 결국 마지막을 향해 열려있는 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듯했다. 찬찬히 자신의 삶을 하나하나 정리해가는 단단하고 정갈한 마음가짐을 엿볼 수가 있었다. 자신을 잘 갈무리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쪽은 늘 무거웠다.누구나 자신의 죽음을 직감할 때가 있다. 어린 날 추억 속을 더듬어보면 집에서 키우던 송아지가 암소가 되었다. 부모님께는 큰 재산이었고 나에게는 누렁소가 가족처럼 정다웠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오니 소를 팔았다고 했다. 그 소리에 밖으로 뛰어나갔을 때 소를 실은 트럭이 덜컹거리며 내 앞을 지나갔다. 그 트럭 속에서 나를 바라보던 집에서 가족처럼 함께 하던 소를 보았다. 소는 그 큰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도살장으로 가는 길이란 것을 알고 있는 듯이.밤새 안녕이었다. 누웠던 침대 시트는 새로 깔아져 있었다. 자신의 운명이 바람 앞에 촛불임을 알고 얼마나 절망했을까. 자식들이 힘들어할까 봐 혹은 타인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면벽 승처럼 단단히 자신을 옭아맨 채 버텼을 노인을 생각하니 마음은 나사가 빠진 듯이 덜컹거렸다. 창밖에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된 할머니의 몸은 대학교에 기증되었다. 의대생들의 해부학 시간에 실습용으로 제공되리라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의 몸이 의학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속내를 밝혔다고 했다. 여든이 넘은 노인이 어떻게 기증을 생각했을까. 그토록 대단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힘은 자신의 삶을 지탱하던 정신력의 산물은 아니었을까.결코, 쉬운 결정이 아닌 사체 기증을 승낙한 할머니는 온 도시를 불붙이던 벚꽃이 채 다 떨어지기도 전에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 맺혔을 눈물 한 방울은 금강석처럼 반짝이지 않았을까. 고요의 시간 속으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를 본 것 같았다.오늘 그 할머니를 다시 생각한 것은 누군가의 생명이 누군가에 의해 살아나고 있으리란 희망 때문이다. 겨울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지만 봄엔 환하게 꽃이 필 것이고 냉골 같은 고통에서 벗어난 환자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웃을 것이다. 선순환을 몸소 실천한 할머니가 봄꽃처럼 환하게 웃으실 모습을 떠올려본다.

2020-12-23

비춰 보기

아침마다 돈나무 화분을 들여다봅니다. 부자 되라고 집들이 선물로 지인이 놓고 간 것이지요. 덕담 달린 그 나무를 누군들 싫어할까만, 아침마다 돈나무를 관찰하는 건 부자 되라는 그 덕담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루살이 버섯 때문입니다.어느 날 선잠을 깨 화분에 물을 주려는데 신기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흙더미를 뚫고 작고 흰 버섯 한 송이가 우뚝 솟아 있는 게 아니겠어요. 독야청청 고매한 소나무처럼 이끼를 뚫고 자태를 뽐내고 있었지요. 분명 간밤에는 뵈지 않던 것이었지요. 시쳇말로 하루만에 ‘갑툭튀’한 생명의 신비라니요. 비록 작고 앙증맞은 식물이지만 하룻밤 새 성체로 자라 꽃피울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습니다.혹 잘못 본 건가 싶어 녀석의 하루를 관찰했습니다. 이른 아침엔 종 모양으로 팽팽하더니 조금 있으니 우산모양으로 제 머리를 부풀렸습니다. 변화무쌍한 그 기개에 살짝 당황했습니다. 눈치 채지 못할 사이에 이끼를 뚫고 나와 온 낮을 새침한 원맨쇼로 장식하는 녀석을 보니 호기심 대신 의구심이 싹트지 뭡니까. 독버섯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자신의 별을 위협하는 바오밥나무 어린순을 뽑아야 하는 어린왕자의 심정이 되어 녀석을 퇴치해버려야겠다고 맘먹었습니다. 하지만 돈나무와 공생하는 독버섯 콘셉트도 괜찮아보였습니다. 좀 더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부자로 키워줄 돈나무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독버섯이란 이름 정도와 더불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요.한데 웬 일입니까. 볼일을 보고 저녁에 귀가하니 버섯이 사라져 버리고 없습니다. 낮에 분명히 눈도장을 찍어두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버섯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뵈질 않던 녀석이, 원래 있던 반대쪽 이끼 위에서 줄기가 말라비틀어진 채 죽어 있습니다. 잡초라고 생각하고 남편이 뽑아버렸나 싶어 물었더니 자신은 모르는 일이랍니다.그 다음날도 또 그다음날도 새로이 피었다가 사라지는 신비를 경험했습니다. 오늘 피어난 버섯이 죽고 나면 그 옆에 새로운 놈이 내일 돋아나는 식이었습니다. 그제야 이 버섯의 생애가 궁금했습니다. 뒤늦게 구글링을 해봤습니다. 녀석 생애의 비밀은 그리 어렵지 않게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살이 개체였습니다. 밤새 이끼 밑에서 뿌리를 만들고 조금씩 몸피를 밀어내, 아침이면 팽팽하게 부풀다가 한낮이 오기 전에 활짝 피어납니다. 해가 강렬해지면 서서히 지다가 저녁이면 저 먼 우주를 향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하루살이 버섯이었던 거지요. 물기 많은 화분에 잘 피었다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녀석처럼 하루살이 개체 버섯이 더러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김살로메 소설가분명 예쁜 이름도 있을 터인데 살뜰히 찾아 봤지만 끝내 버섯 이름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망태말뚝버섯의 경우도 그렇다는데 제가 본 버섯은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하얗고 소담스런 그 버섯이름을 몰라 제 맘대로 ‘하루살이 버섯’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한나절을 살다 저녁이 오기 전에 제 삶을 마감하니 ‘한나절살이’ 버섯이라고 해야 옳을까요.돈나무에 기생하는 하루살이 버섯. 아무 의미 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러 오지는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독버섯이든 이로운 버섯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룻길 사념들로 균형을 잃을 때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의미로 그 작은 생명체가 눈앞에 나타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마다 생기는 허욕, 때때로 얽히는 오해, 시간 단위로 붙는 게으름 등등을 제때 살피라고 은유적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한나절이라는 짧은 생을 마디고 알차게 살다가는 녀석들. 그에 비하자면 영겁에 가까운 인생 주기이니 자신들보다는 느긋하고 차분하게, 인간답게 살다 가라고 깨쳐주기 위해 제 곁에 온 것 같습니다. 즐기되 허비하지 말고, 열정을 가지되 헐레벌떡 쫓기지 말 것이며, 섞이되 아웅다웅 하지 말라고 몸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명랑한 감성으로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라고 녀석이 눈에 들어왔나 봅니다.삶의 기본 가치 이를 테면 성실할 것, 최선을 다할 것, 배려할 것 등등에 대해 생각합니다. 제 하루가 근심으로 얼룩지는 건 이런 선(善)의 기준에서 자신을 놓아버리기 때문입니다. 가만 보면 오늘 하루도 만족함이 없이 보냈습니다. 늦잠으로 시간을 축냈고, 저녁 운동을 하겠다는 결심도 무너뜨렸습니다. 가족이나 타인에 대한 마음 씀도 부족했습니다. 후회와 번민은 큰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이런 사소한 데서 생깁니다. 하루살이 버섯만큼 짧은 생의 주기에도 최선을 다하는데, 사람살이라는 맞춤한 생의 주기가 주어졌는데도 하루살이 버섯보다도 못한 시간을 꾸려서야 될는지. 하루살이 버섯이라는 거울을 통해 제 모습을 비춰보는 저녁입니다.

2020-12-23

AI동맹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기업협의체 또는 산학연협의체인 AI동맹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AI기술 개발에 나서 화제다.최초의 AI동맹은 올해 1월 박정호 SKT CEO가 삼성전자 등에 AI분야 협력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SK텔레콤, 삼성전자, 카카오는 각사 CTO 또는 AI 전문임원이 참여하는‘AI RD 협의체’를 구성, 코로나19 조기극복과 공공이익을 위한 AI개발에 나섰다.우선 내년 상반기 ‘팬데믹 극복 AI’를 첫 합작품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팬데믹 극복 AI는 유동인구, 빅데이터, 공공재난 정보 등을 통해 현재 위치의 코로나 위험상황을 실시간 파악하고, 스마트폰 등에 기록된 일정, 예약정보, 평시 이동경로 등 데이터를 바탕으로 위험도를 분석해 이용자에게 안내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서울 을지로입구 주변 건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 당시 주변 유동인구가 800명이었고, 이중 20%가 역삼동으로 이동했다는 점을 분석해 을지로 입구의 위험도를 ‘상’으로, 역삼동을 ‘중’으로 분류한다. 그러면 을지로로 출퇴근하는 이용자에게는 자차 이용을 권유하고, 역삼동 영화관을 예약한 이용자에게는 거리두기를 권고하게 된다.또 다른 AI동맹은 KT가 주도하고 있는‘AI 원팀’이다. AI 원팀은 지난 2월 출범한 산·학·연 협의체로, 이 팀에는 현대중공업지주, KAIST, 한양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이어 LG전자와 LG유플러스가 합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발생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데이터와 기술을 공유, KT의 감염병 확산방지 노하우와 LG유플러스의 통신 및 로밍 데이터를 함께 활용키로 했다.AI동맹이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인공지능의 위력을 맘껏 뽐내주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2-23

늘 그래야 했던 연말은 없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12월은 늘 그랬다. 가까이 어울렸던 사람들과 떠나가는 한 해를 아쉬워하며 모이느라 바빴다. 오래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새해에는 자주 보자고 한 잔 기울이며 따뜻했다. 망년회와 송년모임이 줄을 이었고, 도시의 불야성은 아쉬움과 희망을 번갈아 목격하였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뜻을 담았다지만, 왠지 언제나 피곤한 뒤끝을 남기는 연례행사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보면 새해 첫 달의 절반쯤이 지나고 있었다.둥둥 뜬 느낌으로 지나가는 한 달. 가까워도 서먹해도 한자리에 모이면 들썩이는 분위기에 해가 저물어가는 한 달. 마지막 한 달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도 했다. 이 땅에서 버티려면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였다. 들뜨고 설레며 즐길 만도 했다. 그러는 사이, 마음으로는 가장 가깝다면서 어쩔 수 없이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족. 연말연시 지치고 피곤한 몸과 마음을 겨우 추스르며 돌아보게 되는 가족. 으레 그곳에 있거니 해서일까 흥분도 기대도 별로 없는 가족. 아니 진짜로 바쁜 사람들은 새해 아침에도 돌아보지 않는 가족. 그랬던 가족과 함께할 기회가 왔다.코로나19. 모두를 ‘힘들게’ 하는 이 녀석이 희한하게도 ‘선물’도 한 자락 가지고 왔다. 근데 우선, 힘들다. 감염될까 아슬하슬하여 힘들다. 함부로 나다니지 못해서 힘들다. 정겹게 만나지 못하여 힘들다. 동네 가게들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힘들다. 학교를 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힘들다. 맨 앞에 서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힘들다. 그 틈에 정치가 끼어드는 것도 힘들다. 백신과 치료약은 어디쯤 오는지 살피면서 힘들다. 멀리멀리 떠나고 싶은 역마살이 힘들다. 힘들고 힘들어 코로나19가 얼른 지나갔으면 하지만, 애틋하게 돌아볼 식구들이 있어 따뜻하지 않은가.우리의 뉴노멀에는 ‘가족’이 들어가야 한다. 밖에서 바쁘다고 안을 돌보지 않았던 공허함을 없애야 한다. 말로는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라면서도 한없이 쫓기며 아내와 가족에게 무심했던 과오를 되짚어야 한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야 한다. 코로나19 탓에 아니 덕에 가족과 마주 설 시간이 길어지게 생겼다. 잃어버린 망년회와 송년모임을 투덜거릴 게 아니다.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겨울엔 접었으면 한다. 더 많이 만날 가족들에 집중하는 세모(歲暮)가 되었으면 싶다.스위스의 사상가 힐티(Carl Hilty)는 ‘바다가 생명을 얻기 위해서 태풍이 몰아쳐야 하는 것처럼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는 병의 홍수와 태풍같은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했다. 인간다운 인간은 누구일까. 저 넓은 밖을 헤아리며 선한 일을 펼치는 인간다움도 귀하지만, 날마다 삶을 나누는 가족과 따뜻한 가슴을 함께 하는 인간다움이 먼저가 아닐까. 병을 통해 인간의 무지와 한계를 깨닫는다면, 이제는 가족과 함께 마음과 생각을 나누는 연말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 2020년의 세모는 가족의 소중함을 새롭게 새기는 따뜻한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코로나19가 지나간 다음에도 가족은 오래오래 남아야 한다.

2020-12-23

적반하장(賊反荷杖)

김락현 경북부구미시가 연일 청렴도 문제로 시끌벅적하다.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9일 발표한 ‘2020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 결과에 따르면 구미시 종합청렴도는 전국 시(市) 단위 지방자치단체 75곳에서 가장 낮은 5등급이다. 2016년부터 3년 연속 5등급을 받은 뒤 지난해에는 3등급으로 격상했으나 1년 만에 다시 전국 최하위로 떨어졌다.당연히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구미시의회가 구미시의 청렴도를 비판하는 모습은 솔직히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최근 발표된 국민권익위 전국 48개 기초의회 대상 청렴도 평가 결과에 따르면 구미시의회는 의정활동, 의회운영 모두 4등급, 종합청렴도 역시 4등급을 받았다. 두 기관은 나란히 청렴도 낙제점을 받은 셈이다.그렇다할지라도 구미시의회는 구미시의 청렴도 하락에 대한 문제를 지적할 수는 있다. 다만, 자신들의 반성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건 말그대로 ‘헛소리’일 뿐이다.이지연 시의원은 지난 17일 제245회 제3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에서 구미시의 청렴도 문제를 지적했다. 구미시의회는 또 청렴도 제고를 위해 윤리강령을 강화하고 행동강령도 제정했지만, 예산심사안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의혹들은 청렴도 제고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거나 개선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맞는 말이다. 그러나 예산심사안 과정에서 불거진 그 의혹들이란 것이 사실과 다른 것도 있었고, 대부분 시의원들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더욱이 한 시의원은 구미시립예술단원 선발시험에 참관하고 시장에게 시립무용단 안무자 해촉을 요구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는 행동강령 조례 제13조 7항(각종 수상, 포상, 선발 등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행위)와 제10조 인사청탁 등의 금지(의원 직위를 이용해 직무관련자의 임용·승진·전보·포상·징계 등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해서는 안된다) 위반이다.이지연 시의원은 “구미시의회가 구미시의 반부패 정책에 걸림돌이 된다는 오명을 쓸까봐 두렵다”고 지적했지만, 정작 구미시민과 공무원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아마도 이미 걸림돌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kimrh@kbmaeil.com

2020-12-22

그럼에도 희망하는 것

올해가 끝나간다. 머지않은 날에 2020년도를 돌이켜 보며 ‘맞아, 2020년은 유독 다사다난한 해였지’ 말하며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입으로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올 한해는 코로나19로 인한 질병의 두려움으로 혼란스러웠고 여전히 세상 안팎에선 많은 사건 사고가 오갔다. 그럼에도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엔 때에 맞춰 꽃이 폈고 기온이 오르내렸다. 꿈쩍하지 않을 것 같았던 한 해가 끝나간다니. 아직 모든 것이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되진 못 했지만, 한 해의 끝에서 올해를 돌아보자니 나의 생활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적게 소비하고 소유하는 미니멀라이프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제한하는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를 지향하면서 내가 가진 것으로만 생활하고 기쁨을 느끼며 현재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무척 만족하고 있다.코로나 블루로 인해 우울감을 느끼는 나날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웃음을 자아내는 이들에게 눈이 오래 머물렀다. 구독자 57만 명을 보유하고 있는 유튜버 ‘핏블리(FITVELY)’는 국제 트레이너이자 스포츠 영양코치다. 주로 운동 콘텐츠를 올리던 그는 코로나로 인해 개업을 앞둔 헬스장을 닫아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열지 못한 헬스장 안에서 치킨을 먹으며 하소연하는 방송을 진행하자 신기하게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건강한 몸을 위해 영양학적 지식을 쌓으려 영양학 자격증까지 딸 정도로 공부한 그는 평소 절대 먹지 않을 음식들을 한 상 가득 차려 맛있게 먹는다. 난생처음 맛보는 치즈볼 먹방이나 케이크, 마카롱, 족발 등 고칼로리 먹방을 선보이며 타락한 헬스인, 코로나19가 만든 괴물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한 포털사이트에서 자신이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라 밝힌 닉네임 ‘월터’는 “단골 가게에서 매일 시켜 먹는 메뉴에 내 닉네임이 추가 됐다”는 글을 올렸다.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짐승파스타’에서 가게 단골 손님이 매일 감바스를 시킨다는 이유로 배달 앱 내 메뉴 이름인 ‘감바스 알 아히요‘를 ‘월터 감바스 알 아히요’로 수정한 것이다. 이 유쾌한 사연은 순식간에 각 커뮤니티와 SNS에 화제가 되며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과거 폐업까지도 고민했던 ‘짐승파스타’였지만 현재는 본점에 이어 부평점을 오픈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되자 코로나가 이어지는 기간 동안 임대료를 면제하는 착한 건물주의 사례나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가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메뉴를 판매하는 가게의 선행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매출로 혼쭐을 내주자’라며 사람들은 가게의 상호를 공유하고 리뷰를 남기며 현재까지도 선한 영향력을 활발히 나누고 있다.지난 1일 사다리차로 인명을 구한 한상훈 씨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인테리어 자재 운반을 하던 한상훈 씨는 불길 속 베란다 난간에서 구조 요청을 하는 주민을 발견한 뒤, 자신의 사다리차를 이용하여 주민을 구했다.이어 구조 요청을 하지 않는 학생 2명을 발견하고 사다리차가 망가질 것을 감수하면서도 학생들을 구조했다. 긴박한 상황이었음에도 자신의 안전보다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나서는 용기 있는 행동에 많은 이들의 경직된 마음에 따스함을 안겨 주었다.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웃음을 찾고 따스한 것에 본능적으로 눈길을 둔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가장 간절한 것은 사람과의 대화뿐만 아닌, 서로가 지닌 온기나 존재감, 우리가 여기 함께 있다는 믿음이나 확신이 아닐까.코로나19는 그간 볼 수 없었던 새롭고도 독특한 문화 양상을 보여주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평소에 하지 않던 즐길거리를 집 안에서 찾기 시작했다. 올해 초 인스턴트 커피와 설탕, 약간의 물을 넣은 뒤 400번 저어야 만들 수 있는 달고나 커피나 1000번 저어 만드는 수플레 계란말이, 1000번 이상 주물러 만드는 아이스크림 등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야 하는 레시피가 큰 인기를 끌었다.N차 신상은 또 어떤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불황으로 사람들은 새로운 물건을 구입한다기보단 집에 잠자고 있는 안 쓰는 물건을 팔아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저렴한 가격의 필요한 물건을 산다. 최근 지역 기반으로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당근마켓이 큰 인기를 끌면서 중고거래는 하나의 새로운 놀이문화가 됐다. 희소성을 가진 한정판 운동화나 구하기 힘든 명품 의류나 가방을 거래하며 신상이 아닌, N차 신상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뿐만 아니라 취향이 유사한 사람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제품의 사용법을 공유한다. 단순히 가격만 보고 사고파는 것이 아닌 공감대를 형성하며 취향을 나누는 모이는 모임이 성행하고 있다.코로나19는 글로벌 색채전문기업인 팬톤(PANTONE)의 올해의 컬러에도 영향을 미쳤다. 매년 12월 올해의 컬러를 선정하는 팬톤(PANTONE)은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에 영감을 주며, 한 해의 컬러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지난 10일 발표한 2021년의 컬러를 대표하는 두 가지 색상은 일루미네이팅(Illuminating)과 얼티밋 그레이(Ultimate Gray)다. 밝은 노란빛으로 보이는 일루미네이팅은 따뜻한 햇살을 떠올리게 하며 긍정, 낙관을 의미를 담고 있다. 다소 차분한 회색빛의 얼티밋 그레이는 풍화를 견디는 해변의 자갈 같은 회색으로 견고함과 회복을 의미한다. 팬톤은 위 색상을 코로나19로 불확실하고 우울했던 한 해를 격려하고 극복해 나가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말했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일루미네이팅과 얼티밋 그레이 색상이 재미있는 것은 두 가지 색상은 빛과 그림자처럼 상반되는 색을 띠었다는 점이다. 로리 프레스만 부사장과 레트리스 아이즈만 전무 이사는 “코로나19로 거리를 둬야 했지만 동시에 서로가 필요함을 체감한 한 해를 보냈다”고 말하며, 두 가지의 색상을 올해의 컬러로 지정한 이유에서는 ‘강인하고 희망찬 두 컬러의 화합을 통해 우리에게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위 컬러를 선정했다고 말했다.코로나19로 인해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성은 간략하고 분명해졌다. 화장품이나 옷을 사는 대신 꼭 필요한 것들로만 내 안을 채우는 소비 습관을 지니는 것은 물론 필요 없는 물건이나 관계마저 정리하게 되었다. 혼란의 폭풍 속에서 한 발짝 멀어져 휘청거리던 나를 다시금 바로 세우는 일은 많은 죄책감을 갖게 했지만 어떠한 용기가 생겼다. 타인을 멀리하고, 그러다 쉽게 배제도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거리두기의 시간은 사람의 정과 온기를 그리워하게 했다.그럼에도 늘 세계는 혐오와 증오로 점철되어 있고, 나 또한 어느 순간에는 나만이 아는 무지의 동굴로 빠져들지만 그런데도,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돌아보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척 이기적이고 무모하고 난해하더라도 동굴 속의 빛을 쫓듯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의 희망을 바라고 믿어보는 것이다.

2020-12-22

비움과 채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날 선 바람이 뼈 속까지 파고드는 계절, 모든 걸 얼려버리고 움츠리게 할 듯한 동장군의 기세가 등등하기만 하다. 갈수록 으스스해지는 기온에 코로나19의 난맥상마저 가중되니 세상이 정말 꽁꽁 얼어붙을 것만 같다. 그러나 언제 끝날지도 모를 불안과 위축이 휑한 가슴에 스며들어도 수묵빛 세월은 또 한 겹 연륜을 두르며 세모로 치닫고 있다.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다. 동짓달은 한겨울의 길목이자 한 해를 갈무리하는 매듭달이다. 추위와 매듭에 즈음해서 버릴 것은 떨구고 남길 것은 거두고 새길 것은 쟁이는 정리와 동장(冬藏)의 시간이다. 즉 불필요함을 없애고 내밀함을 채워가는 과정이랄까? 비웠다가 채우고 채웠다가 비우는 자연 순환이 그러하듯이 세상만사 돌아가는 이치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들판에 가득했던 곡식을 거둬들이고 텅 비게 남은 들녘이나 무성했던 잎새와 열매를 떨군 채 빈 가지로 떨고 있는 나목은 결코 쓸쓸하다거나 허전하지가 않다. 채움으로서 비로소 비워낼 수 있고 비움은 또 다시 새로운 채움을 기약하기 때문이다. 가장 비근한 예로 사람이건 동물이건 음식물을 섭취함으로써 배를 채우고 배설로 비워낸다. 비움으로써 더 가벼워지고 넉넉해지며 아름다워질 수 있다. 산사의 범종도 소리를 울려 떠나 보냄으로써 골과 마루에 은은한 종소리가 가득해진다. 그래서 ‘텅 빈 충만’이라 했던가.봄에 핀 꽃의 향기와 여름날에 드리워진 시원한 녹음과 가을날에 내려앉은 색조 고운 단풍을 모두 채우고 떠나 보내며, 이제는 겨울날의 허허롭지만 을씨년스럽지 않은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어째보면 비웠다가 채우고 채웠다가 비우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고 인간의 습성이다. 즉, 비움과 채움은 자연의 이치면서 인간사회의 논리가 아닌가 싶다. 노력과 성공으로 야망을 채우고 비움과 떠남으로 용퇴와 양보하는 모습은 아름답게 비쳐진다. 떠남과 물러남을 아는 지혜와 판단은 누구에게나 통용되지만 그렇게 결단을 내리기가 결코 쉽지는 않다. 그 모든 것들은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드러남이며,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깊이라 했다. 세상만물은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는 말이다. 채움에도 깊이가 있고 비움에도 정도가 있다. 채웠다고 모든 걸 충족시킬 수 없으며 비워내도 마음 켕기는 구석이 있다. 적절히 채우고 적당히 비워내는 것이야 말로 개인과 시민사회의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희망과 욕심으로 채워진 가슴을 만족과 불욕(不辱)으로 마무리하는 용단과 슬기가 있어야 한다.칩거와 동안거(冬安居)에 드는 시기에 코로나로 인해 집콕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절체절명의 시대적인 상황이라지만, 이런 때일수록 욕심과 마음을 비우고 책과 다양한 콘텐츠로 마음의 양식을 쌓아가면 어떨까? 부질없는 마음을 내려놓고 새롭고 신선한 생각을 채워가면 의식과 행동에 작지만 큰 변화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욕심을 줄일수록 잡다함이 사라지고 마음을 모을수록 목표에 다가설 수 있다.

2020-12-22

라이벌들이 남긴 흔적을 생각하며

박문하전 포항시의회 의장한국 정치에서 YS와 DJ, 가요계의 나훈아와 남진, 바둑계의 조훈현과 서봉수, 사학 명문 연세대와 고려대, 중국 초한의 항우와 유방 등 익숙한 이름의 이들을 사람들은 영원한 라이벌이라고 부른다.우리는 동서고금을 통해 누구나 예외 없이 수많은 라이벌들이 상대의 대척점에 머물면서 치열하게 대립하고 경쟁했던 과정을 지켜 보아왔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편에서 목표를 향해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숱한 라이벌들은 어떤 흔적과 교훈을 남겼을지 한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다.라이벌(Rival)의 어원은 River(강)에서 나왔고 같은 강을 끼고 사는 이웃이라는 의미처럼 라이벌도 피해를 주는 것과 도움을 받는 것을 인정하고 성숙한 관계를 쌓아가야 한다는 뜻에서 라이벌이 어떤 관계인가 진정한 의미를 알 듯하다.하지만 불행하게도 라이벌의 대결은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을 것 같다. 서로 공존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아름다운 라이벌도 없지는 않지만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이 타도의 대상으로 반드시 끝장을 봐야 하는 증오와 분노의 라이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모택동과 장개석. 숙명의 두 라이벌이 시작한 중국의 내전은 800만명의 인민이 사망한 세계 최대의 재앙이었다. 그들에게는 화해와 타협이라는 단어는 아예 없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멸시와 반목으로 일관하였다. 수많은 라이벌 중에는 저주에 가까울 만큼 앙숙이었던 미국의 에런 버와 알렉산더 해밀턴이 있다. 두 사람은 1840년 미국의 역사를 뒤흔든 뉴저지주 위호겐의 권총결투에서 해밀턴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 유례없는 라이벌이었다.이처럼 한 시대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었고 역사의 항로를 변화시켰던 라이벌이 있는 반면에 서로를 존중하여 동행하고 있는 행복한 라이벌도 없지는 않다.아름다운 라이벌의 대미는 빙상 500m 종목의 이상화와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가 보여주고 있다. 밴쿠버와 소치에서 이 종목 금메달을 목에 건 이상화는 마지막 평창에서 3연속 금메달 도전에 나섰지만 최대의 라이벌인 고다이라에게 패하며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라이벌 이상화가 직전의 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울분과 아픔으로 지켜보았을 고다이라는 평창에서 통쾌하게 설욕하며 우쭐할 만도 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라이벌 이상화가 트랙을 돌면서 눈물로 고별인사를 하고 있을 때 고다이라가 다가가 진한 포옹으로 아쉬움을 달래주었고 이 사진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타전되었다. 치열한 경쟁을 펼치면서도 상대를 격려해 주는 모습은 평창 올림픽 최고의 명장면으로 선정되었고 ‘한·일 우정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었던 것이다.인간은 누구나 삶의 현장 주변에서나 격동의 역사 위에서 수많은 라이벌들을 만나고 그들이 던져 주는 물음표를 생각하며 살아간다. 분명한 것은 제로섬 게임처럼 이길 대상인 라이벌보다 서로 윈윈하며 본받을 대상의 롤모델을 라이벌로 설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라이벌이 있어 부담도 되지만 더 노력하고 집중하여 자기성장과 더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는 지혜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2020-12-22

시시비비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으로 불렸던 김삿갓의 시 가운데 시(是)와 비(非) 두 글자 만으로 지은 칠언절구 시가 있다.시시비비비시시(是是非非非是是) 시비비시비비시(是非非是非非是)로 시작하는 시다. 내용은 이렇다. “옳은 것은 옳다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함도 옳지 않을 때가 있다” “그른 것 옳다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도 옳지 않을 때가 있다” (중략)김삿갓의 글 재주는 어렸을 때부터 뛰어나 커서는 큰 벼슬을 할거라는 주변의 칭찬이 자자했다. 그러나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이 선천부사로 재직하면서 홍경래의 난을 막지 못하고 항복함에 따라 그 집안은 졸지에 망하게 된다.황해도 산골로 피신했던 김삿갓이 이후 집안의 사면이 이뤄짐에 따라 과거시험을 보게 된다. 김익순을 비판하는 시제가 출제되고 이를 주제로 장원급제에 이르나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인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는 벼슬을 포기하고 방랑 길로 나선다. 그는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란 별명이 붙었다.그 당시 조선은 세도정치가 판을 시절이라 김삿갓의 시는 권력자와 부자들의 놀음을 풍자하고 조롱한 글이 많아 대중의 애환을 달래주었다고 전한다.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 아시타비(我是他非)는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뜻이다. 이 한마디로 올 한해 정치와 이념으로 지리멸렬했던 우리 사회의 분열상을 꼬집었다. 다르다(異)와 틀리다(誤)를 구분 않는 우리 시대의 극단적 배타 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시시비비는 사리를 공정하게 판단함을 이르는 말이다. 내년에는 시시비비가 제대로 가려지는 올바른 세상이 되길 기원해 보면 과욕일까. /우정구(논설위원)

2020-12-22

봄이 온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엊그제가 동지였다. 입동에서 시작하는 겨울이 소설과 대설을 거쳐 동지에 이른 것이다. 이제부터 소한과 대한을 지나면 입춘이다. 그날이 왔다고 곧바로 봄은 아님을 경험은 가르친다. 하지만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드디어’ 하는 고요한 탄성이 시나브로 자리하게 될 것은 명백하다. 생명 가진 모든 것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사멸과 적요(寂寥)의 기나긴 터널을 지나 생명과 약동의 시절과 대면하게 되리라.12월 21일 세계 전역이 코로나19로 동분서주할 때 천상에서는 진기한 장관이 연출됐다. 무려 400년 만에 토성과 목성이 근접하는 보기 드문 천문현상이 관측된 것이다. 그런 일은 앞으로 60년 후에야 재연(再演)된다고 하니, 지금의 40-50세대는 죽어서야 그 소식을 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주가 제공한 희귀한 장면에 눈과 마음을 돌렸을지 알 도리는 없다. 그래서 더욱 궁금한 게다.‘별 헤는 밤’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시인 동주는 별을 향한 그리움과 찬탄과 미구에 다가올 찬연한 봄날의 도래를 노래한다.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하나씩 붙여가던 시인은 별빛이 내린 언덕에 ‘자신의 부끄러운 이름’을 써보고는 흙으로 덮어버린다. 식민지 조선의 백면서생으로 살아가야 했던 지식인의 자화상이 서러웠을 터. 하지만 그는 자기부정의 세계에서 긍정의 세계로 이동한다. 내가 동주를 아끼고 사랑하는 소이는 거기 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별 헤는 밤’ 마지막 연)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멀리 북간도에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로, 아버지가 보내주는 학비로 학업을 이어가는 대학생으로, 용정의 이국 소녀들을 기억하는 청년으로 동주는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성찰과 응시를 별로 치환한다. 그리하여 치열하게 자신의 실존을 날카롭게 부정한다. 아름다운 것들의 정화가 쏟아져 내린 언덕 위에 제 이름을 썼다가 황급히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긍정과 확신의 세계로 환원하는 시인의 내적인 의지가 아름답게 다가온다.아침 해가 늦게 뜨고, 저녁 해가 서둘러 지는 아파트가 싫어서, 하루가 멀다 않고 일어나는 끔찍한 층간소음을 피해서, 자동차들의 경적과 소란스러움이 징글징글해서 도피하듯 찾아든 농촌의 삶이 어느덧 6년 반을 넘어서는 시점이다. 아침 해는 서둘러 오고, 저녁 일몰은 천천히 찾아오는 곳. 새들의 층간소음에 잠을 깨고, 자동차의 경적마저 고요한 공간. 여기서는 외려 도회의 부산스러움과 시끌벅적함이 더러 그리워진다.사람은 언제나 얻을 궁리만 한다. 잃어야 얻고, 얻으면 내놓아야 한다는 자명한 이치를 모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식자나 평균인이나 다를 바 없다. 겨울의 정점이 왔기로, 봄을 향한 그리움이 짙어질 수 있으며, 근본적인 부정이 있고 난 후에야 비로소 긍정의 세계가 문을 연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운 아침이다. 언젠가 지나갈, 그리하여 추억으로 남을 코로나19와 온갖 번다한 세상사와 잠시 거리 두고 동주와 함께 천상의 별을 헤아릴 일이다.

2020-12-22

경이로운 나날들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어떤 친구가 나에게 “너는 사는 것이 재미있나?”고 물었다. “재미로 사느냐? 재미가 있든 없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했더니 그 친구 대답이 “나는 이제 사는 것이 지겨워서 못 살겠다”고 한다. 매일 똑같이 회사 출근하여,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와도 그렇고 반복되는 일상이 너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못 살겠다는 것이다. 웨인 왕 감독의 ‘스모크’라는 영화가 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가게 앞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무려 4천장을 찍어 앨범에 담아 놓았다. 이 앨범을 보던 사람이 물었다. “어째서 똑같은 사진을 4천장이나 촬영하여 보관하고 있나요?”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똑같은 사진이 아닙니다. 장소는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사진마다 빛이 다르고, 색조가 다르고, 계절이 다르고, 날씨가 다르고, 분위기가 다릅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찬찬히 관조(觀照)하여 보니 그야말로 한 장 한 장이 다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다른 모습의 사진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깜짝 놀라운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몇 해 전에 죽은 아내가 가게 앞을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지나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놀랍고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그 날 이후로 그는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매일 반복되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똑같은 일상이 매일 매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경이롭고 놀라운 일상이 되었다.로고테라피를 창시한 빅터 프랑클은 절망적이고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아우슈비츠의 자살적 일상을 살다가 어느 날 이런 고난의 날들에도 삶의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일상의 의미를 찾다 보니 하루 하루가 달리 보이고 드디어 그 일상이 경이롭고 놀라운 날들로 다가왔다. 그는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후에 일상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 이른바 의미요법으로 불리는 로고테라피를 창시하게 된 것이다.기원후 60년대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에 저항하다가 수십 만 명이 학살당하고, 성전이 파괴되는 등 절망적인 삶을 살게 된다. 매일 매일의 삶이 비통과 고난의 날들이었다. 이를 본 유대의 현자들은 어떻게 하면 이 절망적인 일상을 희망찬 날로 변화시킬까를 생각하다가 매일 매일 읽고 묵상할 수 있는 예배 캘린더를 만들어 그 날 그 날 성경을 읽고 묵상 하였다. 그렇게 한 결과 하루 하루의 삶이 놀랍고도 경이로운 날들로 바뀌게 되었다. 그들은 그 예배력을 ‘경이로운 나날들(Day of Awe)’이라 이름 하였다.지루하다고 여겨지는 일상을 마음을 달리하여 깊이 관조하여 보면 어제의 날이 오늘 다르게 보이고, 어제 봤던 사람이 오늘 다르게 보이는, 하루 하루가 다르고 새로운 놀랍고 경이로운 나날들이 될 것이다.

2020-12-22

‘엄마를 부탁해’서 찾은 나

전효선씨“너의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고 시작하는 신경숙님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엄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두 아들의 엄마인 나 자신도 생각해 보았다.엄마가 아니면 공감할 수 없는 가슴 먹먹한 내용들로 인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엄마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인줄 알고 무엇이든 자식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사람 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엄마도 누군가의 딸 이었거나 한 남자의 여자였으며 사랑 받기를 갈망하는 존재임을 잊어버리고‘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기를 강요당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아들에게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였고 처음 만나는 세상이었고 울타리였다. 모든 것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은 그 엄마가 아이가 커가면서 엄마의 곁을 떠나게 되고 힘없고 늙은 엄마는 세상의 울타리가 되어 주기에 너무 작아져 버렸다. 그러면서 우리는 엄마를 점점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이 책은 생일을 맞아 서울에 있는 자식 집을 아버지와 함께 상경한 엄마를 지하철역에서 잃어버리면서 엄마를 기억해 내는 과정을 통해 과거의 나를 만나게 된다. 항상 자식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던 엄마. 같은 걸음으로 남편과 걷기를 바랬지만 남편은 앞장서 가면서 뒤처져 따라오는 아내를 나무란다. 뒤돌아보면 엄마는 항상 있었다. 엄마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나의 삶의 전부를 잃는 것이었다. 책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우리의 엄마를 절대적인 힘을 가진 이에게 부탁을 한다. 엄마를 찾기만 하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엄마를 돌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가슴이 터질 듯 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음을 알고 절망하던 큰아들 형철의 모습에서 우리는 노년의 부모를 책임지기에 버거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부모들도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전전긍긍한다.가족이라는 이름은 누군가에게 짐이 아니라 같이 있게 행복한 존재들로 남기를 소망한다. 나는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기 위해 독서모임하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아이의 글쓰기 선생님을 통해 신문의 독자란에 글을 쓰면서 “나에게도 이런 재주가 있었지”하며 잊고 살던 꿈을 찾게 되었다. 이 또한 엄마이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50대 중반에 초등학교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으로서 고단함도 있지만 엄마로서 기쁨과 감사가 더 많다. 13년을 엄마로 살아 그 깊이를 다 알 수 없는 초보 엄마가 세상의 모든 엄마에게 감사를 드리며 이 글을 쓴다. /전효선(포항시 북구 흥해읍)

2020-12-21

딸기가 좋아

나는 딸기를 무척 좋아한다. 그 예쁜 빨강과 꽃받침 같은 초록의 꼭지는 크리스마스트리의 변함없는 조합처럼 질리지 않는 색이다. 점점이 일정한 비율로 박힌 딸기 씨의 그 질서는 또 어떤가! 모나지 않은 삼각뿔 같은 딸기의 모양은 가로로 썰어도, 세로로 썰어도 식욕을 마구마구 일으킨다.잘 익은 딸기의 달큰하고도 아름답기까지 한 냄새를 맡노라면 내 모든 후각세포가 들고 일어나 환호하는 듯하다. 딸기를 씻고서 잘라낸 딸기 꼭지를 주방 싱크대에 두어도 온통 딸기향이 진동을 한다. 작은 몸으로 한 공간을 채우는 녀석의 힘이 대단하다.원래 딸기의 계절은 봄이라지만 찬바람 부는 겨울에 하우스에서 재배된 딸기는 어찌된 일인지 제철 봄딸기 보다 더 달고 맛이 좋다. 농부들이 딸기에게 쏟는 정성이 얼마인지 당도로 짐작할 따름이다. 한겨울에 맛보는 딸기 케이크는 조각난 단면이 어서 한입 커다란 포크로 잘라내 맛보라는 듯 유혹적이다. 봄에 본격적으로 딸기가 재배될 때 알이 좀 작은 것을 골라 잼을 만든다.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덜 달게 하되 알맹이의 과육을 살아있게 끓여두었다가, 푹신한 하얀 식빵에 발라 먹을 때면 입안에 침부터 고인다. 그리고 알이 좀 굵은 딸기는 싱싱한 것을 골라 냉동해 두었다, 여름에 우유나 얼음을 넣고 갈아서 쉐이크나 쥬스로 마셔도 마음이 붕붕 뜨고 좋아진다.크리스마스가 너무 조용하다. 캐럴이 저작권 문제로 거리에서 사라진 지는 좀 되었지만, 지금의 이 고요가 어디 저작권 때문이겠는가. 꿈과 설렘이 있는 크리스마스인데 산타 할아버지는 굴뚝으로 다니니 자가격리는 저절로 되실 듯하다. 집콕 하는 시간이 길어질 때 딸기를 썰어 생크림을 사용해 산타 딸기를 만들어 먹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올 한 해 우는 일이 많았어도 크리스마스 선물이 배달된 것만 같아진다./권마루(포항시 북구 장성동)

2020-12-21

난 이런 셀러리맨이 좋다

차를 샀다. 지지난해 12월이니 일 년차 무료점검 기간이 지났고 이년이 지나면 무료가 아니란다. 내게 팔았던 그 사나이가 1년이 다가올 무렵 전화라도 주었으면. 차를 판 후로 연락이 없다. 물론 새로운 차가 나왔다고 팸플릿은 고정적으로 온다. 6개월에 한 번 정도 차를 잘 타고 다니는지 안부라도 전한다면. 자동차 서비스공장에 가서 무료 서비스를 받았는지 슬쩍 팁을 준다면 이 사람을 나의 네트워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소개하겠다. 하지만 소식이 없다.보험을 들었다. 아들이 길에서 자전거 타고 가다 넘어져 팔이 부러졌다. 병원에 입원해 수술도 받았다. 보험을 타려니 서류가 참 많이도 필요했다. 또 팩스나 등기로 보험회사에 보내야 했다. 아이가 아픈 것도 힘든데 서류에 또 보험회사에서는 이것저것 따지며 보험금을 쉽게 주지 않으려 했다. 혼자 뛰어다니니 눈물이 났다. 이럴 때 설계사가 찾아와 서류도 알아봐 주고 한다면, 난 이 사람 또한 친구들에게 시간 내서 소개해 줄 것이다. 도배를 하고 나서도 한 달쯤 지나서 우리 집에 다시 방문해서 불편한 건 없나 물어봐 준다면 그 사람 또한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알려주리라. 하지만 아직도 내 주위에 이런 세일즈맨은 없다. 딱 한사람 빼고.그 사람은 남편 후배이다. 자동차 보험을 파는 사람인데 서비스가 만점이다. 어느 날 길에서 내 차가 서버렸다. 연락하니 바로 렌터카를 보내준다며 학교 앞으로 찾아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렌터카는 개인적으로 보내준 거지 보험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남동생이 빙판길에 사고가 났다. 물론 남편 후배가 일하는 보험사가 아니었지만 내가 조언을 구하자 모든 일을 해결해 주었다. 그 후로 우리 집 모든 형제들 보험은 그 후배에게 들었다. 세일즈는 자기 자신을 파는 것이다. 팔기 전에 갖은 애교보다 팔고 나서가 더더 중요하다./최순자(포항시 북구 용흥동)

2020-12-21

어머니는 나 자신

‘어둠이 내리면 작은 등불 하나 밝힌다. 암흑의 천지를 다 밝힐 수는 없지만, 그 누구의 호젓한 마음 하나 밝히기 충분한 빛이다. 언젠가는 어두운 밤하늘 수많은 별 중의 하나 되어 영원히 빛날 그 빛이다.’사진에서의 대상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도 하고 그 대상이 과거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도 한다.또한, 내 눈앞에서 존재하고 있다 하더라도 미래에는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진에서의 대상은 존재한다는 것과 사라졌거나 사라지리라는 것을 함께 의식하게 되므로 존재와 부재를 동시에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진 이미지의 특성 중 하나인 시간의 다양성이라 하겠다. 따라서 대상의 존재와 부재에 대한 사유는 시간의 다양성 선상에 있게 된다.아울러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인간의 심리구조를 인간 상호작용 차원에서 조명한다. 이 이론에 비추어 보면, 어머니는 그 상호 작용의 첫 대상이며 심리구조 형성의 기초가 된다. 어머니에 대한 존재와 부재에 대해 인식하거나 간과(看過)하고 있더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개개인의 심상에는 남아 있기 마련이다. 어머니란 존재가 나(자아)를 형성하는 원초(原初)가 된다는 이론은 어머니가 나 자신이기도 하다는 의미이다. /나호권(사진작가)

2020-12-21

비아 칼차이우올리서 만난 오르산미켈레

르네상스의 도시답게 피렌체에서는 거리 곳곳 어디로든 눈을 돌리면 거장들의 걸작을 마주할 수 있다. 여행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역사의 흔적들이 이곳에서는 그저 평범한 일상에 불과하다. 피렌체만큼 훌륭한 역사책이 또 있을까? 꽃의 도시라는 별명의 이곳 중심을 가로지르는 거리 비아 칼차이우올리(Via Calzaiuoli). 그 유명한 두오모를 지나 시뇨리아 광장을 향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접어들게 되는 길이다. 칼차이우올리를 걷다보면 오른편으로 색조 대리석의 장식 없는 건물이 하나 보인다. 투박한 건물은 마치 외부와는 단절된 도시 속 요새 같이 보인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곳이 오르산미켈레(Orsanmichele)라는 이름의 교회라고 한다. 일반적인 교회건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오르산미켈레는 원래 곡물창고였다. 중세가 가을을 맞이해 저물어갈 무렵 도시들이 발달하고 농업에서 상업으로 경제구조가 서서히 변하게 된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몰려 들었다. 풍부한 노동력으로 도시 경제는 활기를 띠었지만 뜻하지 않게 식량난이 발생했다. 대토지를 소유한 주교들이 폭리를 취하기 위해 곡물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길드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폴리 왕국으로부터 대량의 곡물을 들여왔고 이를 보관하고 거래하던 창고로 사용되던 곳이 오르산미켈레이다.오르산미켈레에서 곡물을 사고 팔던 상인들은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기둥에 그려진 성모 마리아 그림 앞에서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이 성상이 기적을 행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심지어 교황이 공식적으로 이곳을 성지로 선포를 한다. 그 때가 1292년 7월이다. 신비로운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해 봉헌을 했고, 이 돈으로 곡물을 사들여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나눠 줬다. 절정에 달했을 때는 하루에 8천명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1304년 불행하게도 화재가 발생하면서 성모 마리아 그림이 완전히 불타 버렸고 훗날 화가 베르나르도 다디에 의해 복원됐다.14세기 초, 피렌체의 인구는 대략 10만 여명으로 당시 유럽의 도시로는 꽤 규모가 큰 편이었다. 그런데 1346년 검은 죽음이라고 불리는 흑사병이 창궐해 유럽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7년 동안 유럽 전역에서 7천500만 명이 생명을 잃었다. 유럽 인구가 절반으로 준 것이다. 피렌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고 흑사병이 물러갔을 때 이곳의 인구는 겨우 3만 명 남짓에 불과했다.흑사병의 창궐과 세상을 뒤덮은 죽음.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엄청난 일을 당하게 되면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검은 죽음을 진노한 신이 내린 대재앙으로 여겼다.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를 피하게 해 주는 영험한 효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오르산미켈레의 ‘은총의 성모 마리아’를 찾아 기도를 올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던지 봉헌한 돈이 35만 플로린, 지금 돈으로 환산해 보면 자그마치 2천800억 원이나 된다.1380년경 피렌체 주요 길드 연합은 오르산미켈레를 교회로 개조했다. 르네상스가 이제 막 꽃을 피울 무렵 피렌체 대표 14개의 길드들은 자신들의 수호성인을 조각으로 만들어 오르산미켈레 외벽을 장식했다. 건물 외벽은 시각적 공공을 지닌 장소이니 만큼 요즘 식으로 일종의 공공미술인 셈이다. 길드들은 경쟁적으로 가장 명성이 높은 미술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미술가 섭외에 열을 올린 것은 길드 간에 부와 명예 그리고 자존심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천재들이 피고 지던 르네상스의 중심지에서 최고의 미술가를 모셔 올 수 있다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덕분에 미술가들의 몸값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자존감이 높아졌다.브루넬레스키의 그 유명한 돔이 머리를 장식하는 대성당을 지나 구 시청사 팔라초 베키오가 자리한 시뇨리아 광장으로 향하면 비아 칼차이우올리를 걷게 된다. 그리고 조금 걷다 보면 조각 작품으로 장식된 투박한 건물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미술사학자 김석모

2020-12-21

절제 속에서 빛나는 완강함… 전남 남원 실상사(實相寺)

지리산 서쪽 들판에 천왕봉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절이 있다. 천왕봉과 반야봉, 덕유 산맥의 봉우리들로 둘러싸여 연꽃의 꽃밥 자리에 위치한 실상사이다. 일주문을 대신하는 해탈교를 건너도 익숙한 차안의 고리는 그대로 따라온다. 익살스러운 표정의 세 돌장승을 지나고 천왕문을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불국토는 멀어 보였다.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 홍척 증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신라 구산선문 중 최초로 문을 열었다. 중국으로 건너가 제일 먼저 선법을 배워온 이는 가지산문의 도의국사였지만 산문을 연 이는 실상산문의 홍척국사가 먼저라고 한다. 단일 사찰로는 국보 1점과 보물 11점으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천년 고찰이다.구산선문은 귀족, 왕실과 결탁하여 타락한 교종불교에 반기를 들고 나말여초에 중국 달마의 선법을 수용한 선종불교의 아홉 산문을 말한다. 교종불교가 인과율에 얽매어 운명론적 인식을 가졌던 데 비해 선종은 누구나 마음을 깨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상으로 신라 말 혼란기 때 실상산문을 최초로 형성하게 된다.하지만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실상사도 불타버리고 백 년 가량 폐사처럼 방치되어 오다 숙종 16년, 크게 중창되었지만 고종 때 다시 소실 돼 1884년에 여러 승려들의 힘으로 10여 채의 건물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엄청난 양의 와편들로 이루어진 탑이 웅장했을 실상사의 옛날을 짐작케 한다. 멀리 정면으로 보광전이 보이고 그 앞에 보물 제 37호 동·서 삼층석탑의 정교한 상륜부가 추위 속에서도 꼿꼿하다.둥근 장고모양의 기둥과 소박한 듯 우아한, 보물 제 35호 석등은 소박한 전각들에 비해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한다. 온갖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실상사를 지켜온 진리의 등불,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사찰을 환하게 밝혔을 석등 앞에 서니 스스로가 작아진다. 어둠이 찾아오면 의식을 치르듯 성스러웠을 수많은 점화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두 손을 모을 수밖에 없다.마당을 흐르는 겨울의 찬 공기도 천년의 보물들 앞에서는 유순하기만 하다. 삼층 석탑이나 석등에는 철재 보호막이 없지만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위용이 느껴진다. 하늘을 찌를 것만 같은 신라인의 기상을 안은 두 탑과 석등의 아우라가 뿜어내는 깊은 정적, 큰 상흔 없이 천 년의 시간을 건너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가. 내 안에 흐르는 한국인의 혼이 자랑스럽다.단청이 벗겨진 보광전의 수수한 자태 앞에서 신발을 벗지 않을 수 없다. 아미타 삼존불 옆에서 광채를 발하는 범종, 종을 치는 부분에 일본 지도 모양이 있어 종을 치면 일본이 망한다는 설로 일제 말기에는 주지가 문초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주치는 것들마다 스토리가 숨어 있어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것만 같다.경관 좋은 산속을 두고 하필이면 황량한 들판에 자리한 실상사, 그로 인해 마주해야 할 고난의 순간을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촉촉해져 온다. 이토록 많은 보물들이 큰 상흔 없이 천년의 세월을 살아 온 게 고맙고 대견할 뿐이다. 남아 있는 빈 터마다 과거의 영화와 아픔이 애틋하게 피어오른다.천천히 옮기는 발걸음에 사색의 무게가 더해진다. 크고 웅장했던 옛 전각을 그려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옛 기단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낮은 기단을 쌓아 아담하고 소박한 전각들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서둘러 절을 증축하기보다 최대한 옛 흔적을 간직하려는 진중함이 보여서 좋다. 적어도 전통과 현대가 어색하게 어울려 격을 떨어뜨리는 과오를 범하지는 않았다.조낭희 수필가나라에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리는 이적을 보인다는 영험한 불상이 봉안되어 있는, 실상사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약사전으로 향한다. 낮은 기단 앞에 놓인 댓돌 하나에도 생명력이 느껴지는데 약사전을 지키는 나목의 자태는 왠지 모르게 안쓰럽다. 법당 문을 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철불이 좌대 없이 맨땅에 모셔져 있다. 실상산문의 2대 조사 수철화상이 4천 근의 철을 녹여서 만든 3m의 거대한 철불이다.천왕봉의 정기가 일본 후지산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자리에 모셨다고 하지만 수난의 시기도 있었다. 조선 시대 지방 유생들의 방화로 가람이 불에 타는 비운을 맞자, 철불은 들판에 방치되어 인근 주민들에게 병을 고쳐 주는 약사여래로 숭배되었다고 한다. 숙연한 마음으로 나는 백팔 배를 시작하고 법당 밖에서는 대나무들이 스산하게 울어댄다.법당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더 없이 차분하다. 이곳저곳 흩어져 있는 보물들을 찾아가는 발길도 엄숙해진다. 절제미가 뿜어내는 소박함, 그 속에 숨어 있는 의연한 기상, 새로운 것에 휘둘리지 않는 안정된 눈빛, 다양한 기운들이 자꾸만 가슴을 뭉클거리게 한다.짧은 겨울 해가 소나무 가지에 걸려 보석처럼 부서지자, 황량하던 실상사가 한껏 몸을 일으키며 다시 살아난다. 석양으로 지는 해가 명부전의 엄숙한 이마 위에 번지고, 차가운 겨울 공기로 초췌해 보이던 실상사의 낯빛도 환해진다. 오랜 시간을 머물렀는데도 돌아서는 발걸음은 좀체 가볍지가 않다. 나는 옷깃을 여미며 멀리서 실상사를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2020-12-21

위안부 ‘앵벌이’의 와인파티

강희룡 서예가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바탕으로 일어나는 문제 중에서 당연히 인간으로써 지켜야 하는 도리나 원리를 우리는 윤리라고 일컫는다. 윤(倫)은 무리, 질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리(理)는 이치, 도리 등을 의미한다. 그 중에 윤의 어원은 사람(人)과 무리(侖)라는 의미를 가진 합성어이다. 그래서 윤리는 무리의 관계로부터 지켜나가야 하는 도리를 의미한다. 우리사회에 지켜야 할 수많은 규범들이 존재하는 것은 윤리라는 두 글자에서 파생된 사회제도이다. 또한 윤리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평가와 잘못된 것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에 자신과 남의 행동에 대해 옳다 혹은 그르다고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되기에 윤리는 인간에게 인성이나 인생관 형성에 있어서 나침반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개에게 물린 사람은 한나절 치료받고, 뱀에게 물린 사람은 3일간 치료받고 나았으나 사람의 언행에 다친 사람은 완치에 기약이 없다.’는 말이 있다. 공자는 칠십이 넘어서야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不踰矩)며 말에 실수하지 않으려면 삼사일언(三思一言)을 심비(心碑)에 새기라고 가르쳤다. 신중치 못한 언행이나 행동은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비수(匕首)가 된다. 공동체 생활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법도로 한번 행동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라는 삼사일행(三思一行)은 바로 행동의 신중함이며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더라도 닥친 문제를 극복할 힘을 준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일본의 어지러운 나라 사정과 관계가 깊은 몰락한 무사들이나 농민들이 해적이 되어 고대부터 우리나라의 해안지방에 침입해 노략질을 일삼았다. 오죽하면 신라 제30대 임금인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용이 되어 왜적을 막겠다.’며 죽은 후 자신이 동쪽바다에 묻혔다. 이렇듯 우리나라와 중국의 해안지역에 걸쳐 약탈을 일삼던 일본 해적을 우리는 ‘왜구’라 부른다. 이 왜구보다 더 악질적이며 반사회적이고 반윤리적인 인간들이 토착왜구다. 이들은 일그러진 신념과 욕망으로 무장된 이중인격자들로 바른 언행이나 부끄러움은 그저 사치품일 뿐이다. 그래서 금수(禽獸)만도 못하다고 지탄받는 것이다. 30여 년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앵벌이도구로 이용하다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정의연(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된다며 일상을 잠시 멈춰 달라’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호소한 후 당일 본인은 지인 5명과 노마스크 와인파티를 한 사진을 올리며 ‘길(원옥)할머니 생신을 우리끼리 만나 축하하고 건강기원’이라고 적었다. 허나 길할머니 측엔 아예 연락도 없었으며 그날은 정작 음력으로 본인 생일이었다. 악질 토착왜구의 이런 일탈행위는 인간의 이중성이 얼마나 추악한지 잘 보여준 사례이며, 아직도 선(善)의 탈을 뒤집어쓰고 할머니의 통장에 빨대를 꽂아 고혈을 빨고 있는 앵벌이 행태를 계속 하고 있다는 확증이기도 하다. 이 사회에 반윤리적, 반사회적인 위정자들이 득실거리는 환경은 국민들이 만들었다. ‘국가는 반드시 내부의 적으로 망한다.’ 참정권의 권리가 있는 국민들이 냉철함을 잊고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스스로 망국의 무덤을 파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2020-12-21

세계기록유산과 포항, 그리고 KBS

박혁준KBS포항방송국장‘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는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자연유산 및 인류무형문화유산과 더불어 세계기록유산을 등재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선정기준이다.현재 우리나라는 ‘해인사 장경판전’등 14건의 세계 문화·자연유산과 ‘판소리’ 등 21건의 인류무형문화유산, 그리고 16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다른 유산들이 ‘Heritage’라고 표기되는 것과 달리 세계기록유산은 영문으로 ‘Memory of the World’인데, 용어 번역의 통일성 목적과 더불어 역사적 의미와 정신적 가치를 기록하고 기억하라는 함의를 추론하게 된다.우리나라의 ‘훈민정음 해례본’을 위시하여 독일의 ‘양피지에 인쇄된 구텐베르크 42행 성경’, 중국의 ‘갑골문’등이 세계사적 의미를 인정받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방송된 프로그램이 기록된 2만522건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는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Finding Dispersed Families)’ 기록물이 그 보편적 가치를 평가받아 상기 유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등재되어 있다는 점이다.방송을 통해 상봉한 이산가족이 1만 건이 넘는 등 국민들이 주시는 소중한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 한국방송이 아니라면 그 어느 매체도 할 수 없는 인류사적, 인도주의적 쾌거로 기억되고 있다.KBS가 기록해온 켜켜이 쌓인 시간의 층위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산업화를 이끌어 온 포항의 여기저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장기면 장기유배문화체험촌에 가면 유배생활을 하며 회한의 시간을 보냈을 다산 정약용 등의 흔적을 볼 수 있고, 이러한 귀양살이의 모습은 KBS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에 생생히 재현되어 있다. 송도동에 위치한 운하관에는 다섯 개 섬마을이었던 수산업 전진기지 포항이 시민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으로 산업화의 선두에 서기까지의 시간이 기록되어 있고, 괴동동의 역사박물관에서는 제철보국(製鐵報國)의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세계적인 철강도시로 발돋움하는 포항시를 알리는 데에는 KBS의 역할이 컸는데, 1973년 포항제철 포항1기 준공을 계기로 줄곧 황금시간대 메인뉴스는 물론 대대적인 특집방송을 편성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표했고, 1974년에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던 드라마 ‘꽃피는 팔도강산’을 준공 1주년을 맞은 제철소 현장을 무대로 두 달간 제작·방송함으로써 막 도약하는 포항시의 철강산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애정을 증폭시켜 발전에 일조했다.수산업 전진기지에서 철강도시로, 그리고 미래 신성장 산업도시로 변모 중인 포항시의 역사를 기록해온 KBS의 방대한 아카이브는 수신료의 가치에 대한 당연한 공적 책무를 이행해 온 결과이다. 맨손으로 땅을 간척하며 오늘의 포항을 만들어 온 시민들의 위대한 노력이 망각(忘却)의 여백(餘白)에 남아 그 보편적인 가치를 인정받아서 언젠가 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데 KBS의 영상자료가 그 초석이 되기를 간구한다.

2020-12-21

아시타비(我是他非)

아시타비(我是他非)는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뜻으로, 이른바 ‘내로남불’을 한자어로 옮긴 말이다. 교수신문은 지난 7~14일 교수 9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588명(32.4%·복수응답)이‘아시타비’를 선택했다고 최근 밝혔다.아시타비는 ‘똑 같은 사안이라도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이중잣대를 말하며, 사자성어보다는 신조어에 가깝다. 1990년대 정치권에서 이중잣대를 비판하는 관용구로 쓰이던‘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내로남불’로 줄었다가‘아시타비’란 신조어로 변신했다.신조어인 아시타비가 올해의 사자성어에 뽑힌 이유는 뭘까. 그만큼 정치·사회 전반에 아시타비가 만연했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무엇보다 정부여당의 계속된 내로남불 행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재·보궐선거 원인 제공 시 당 후보 무공천’당헌을 뒤집은 여당에 대한 비판이다. 이로써 서울·부산시장 모두 여당 소속 지자체장의 성추행 비위로 보선이 치러지게 됐음에도 원인을 제공한 민주당도 후보를 낼 수 있게 됐다. 이 정부 들어 예타면제 사업규모가 박근혜 정부의 24조 원은 물론이고‘삽질 정부’라고 비난했던 이명박 정부의 60조 원보다 훨씬 많은 규모에 이른 것 역시 내로남불이다.문재인 정부 들어 예타 면제 사업 규모가 88조 원에 이르고, 가덕도 신공항까지 포함하면 거의 100조 원에 달한다.‘5·18 역사왜곡 처벌법’을 강행 처리한 여당이 ‘천안함 왜곡 처벌법’에 대해서는 국회 국방위원회 법안소위 문턱도 넘지 못하게 한 것도 그렇다. 이러니 내로남불 행태를 가리키는 아시타비 신조어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힐 수 밖에 없었으리라 여겨진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