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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100세 시대와 운전면허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서울시가 고령운전자 면허 반납시 10만원짜리 교통 카드를 주는 제도를 4월부터 본격 시행한다고 한다.여러 지방자치 단체들이 앞다투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제도의 찬반양론과 함께 이 제도를 둘러싼 잡음도 일고 있다.일부 시·군들이 고령 운전자가 면허를 반납할 경우 인센티브로 제시한 현금이나 지역 상품권, 교통카드 등을 차일피일 미루며 수개월째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시·군들은 정부가 국비지원을 미뤄 어쩔 수 없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행정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내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1천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국민 5명 중 1명이 소위 ‘고령’이 되는 셈이다.유튜브에는 100세 시대에 젊게 사는 방법 등이 넘쳐 난다. 눈에 띄는 것 중에 하나가 나이를 20년 세월을 돌려 살아가라는 이론이다. 34세 나이에 미국 하버드대 역사상 최초로 여성 심리학과 종신 교수가 된 엘렌 랑거 교수는 ‘시계 거꾸로 돌리기(counterclockwise)’ 실험으로 유명하다. 그는 1979년 실험에 참여할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의 남성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오하이오주 지역 신문에 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심리적인 시간을 되돌릴 때 나타나는 사람의 생리적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었다.연구팀은 시골의 한 수도원에 모였다. 수도원 내부를 20년 전인 1959년처럼 꾸몄다. 1959년 이전에 생산된 TV·라디오·신문·가구·집기 등을 배치했다. TV와 라디오에서는 1959년 당시 드라마·뉴스·쇼가 흘러나왔고 신문도 1959년의 것이었다. 한마디로 1979년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누가 봐도 2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도록 했다.실험의 결과는 놀라웠다고 한다.실험에 참여한 시니어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가 놀랍도록 좋아졌다고 한다. 랑거 교수는 이를 “정신이 젊어지면 육체도 젊어진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논문에 발표하였다. 이 실험은 시니어들의 젊게 사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이들은 ‘노인’이라는 단어조차 사용하기를 거부한다.시니어 전용 영화관에 들른 적이 있다. 티켓에는 ‘노인 할인’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다. 더구나 그것도 55세 이상 노인 할인이라는 단어였다.문득 ‘노인?’하면서 고개가 갸우뚱 해졌다. 그 하나의 느낌은 왜 55세가 노인인가 하는 생각이었다.평균 수명 80세가 넘고, 그리고 곧 평균 수명 100세가 다가오는 시대에 있어서 노인이라는 단어를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신문을 보면 “노인들 겨울건강 주의보” “노인 교통사고 급증” 등 기사제목을 보면서 몇 살을 기준으로 노인이라고 하는지 아리송할 때가 많다.또 하나의 다른 느낌은 과연 ‘노인’이라는 단어를 꼭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자신이 노인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나이가 되면 노인이라는 단어가 별로 유쾌하지 않은 단어라는 것을 알게 된다.영어권 국가의 예를 보면 노년이란 단어에 해당하는 Old Man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시니어 시민(Senior Citizen)이란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며 시니어란 번역한다면 ‘선배’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극장 같은 공공 공연 장소에서 할인을 하는 경우 시니어 디스카운트(Senior Discount)란 단어를 사용한다.나이에 대해 우리가 흔히들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나이가 들면 마땅히 다 병이 생기고 쇠약하게 되며 외모가 나빠진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노안, 노망, 노환이라는 질병 용어가 생겼고 노쇠하고 노약하다는 표현도 종종 사용된다. 그러나 그러한 선입견을 몰아낸 ‘인턴’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70세 가까운 나이의 시니어가 30대의 젊은 상사 밑에서 일하는 것인데, 이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젊은 사람 밑에서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시대가 됐다. 오히려 내가 그 젊은 사람보다도 더 젊다는 선언이 되는 것이기도 하는 것이다.나이는 숫자가 아닌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시니어’라는 말도 좋고 ‘선배님’‘선생님’이란 좋은 단어가 얼마든지 있는데 이제 노인이란 단어는 묻어야 한다.이제 100세 시대에 우린 살고 있고 시니어들의 활약도 사회의 중요한 몫이 되고 있다.그런 측면에서 운전면허반납 제도는 여전히 동전의 앞면을 가지고 있다. 시니어들이 교통사고를 일으키면 큰 관심을 가지고 보도 되는 것도 문제이다. 통계적으로 유의차가 있는 나이가 언제인가를 분석해 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운전포기는 결국 외출이나 행동반격을 좁히면서 건강에 해롭다는 100세 건강관리 이론도 지지를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앞서 언급한 엘렌 랑거 교수의 ‘시계 거꾸로 돌리기’이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젊게 생각하면 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젊음을 유지하고 싶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건 시니어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100세 시대 운전면허 반납 제도는 더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2023-04-16

특정 종교 단체의 정치 간여 이대로는 안 된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 정치에서 일부 종교 단체의 정치 참여가 도를 넘고 있다. 우리의 양극화되고 분열된 극한 정치에서 파생된 기이한 현상이다. 정치와 종교의 영역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양자는 상호 존중할지언정 지나친 간섭과 투쟁은 우리 정치를 더욱 혼탁케 하고 불안케 한다. 정치의 궁극 목적은 흔히 말하는 국리민복이다.종교는 불완전한 인간이 초월자를 통해 참된 행복과 구원의 길을 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양자는 다른 영역인데 종교는 현실 정치에 야합하여 득을 보려 하고 정치는 종교 세력을 이용하는데 문제가 있다.서구 기민당처럼 종교의 이상이나 진리가 정강 정책에 반영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중세 정교일치도 아닌 현대 사회에서 종교를 정치의 수단화하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전광훈 목사처럼 정치적 간여나 투쟁행위는 오히려 국민을 불안케 하고 정당정치의 퇴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과거 공산 독재국가나 오늘의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 정치를 철저히 종교화하였다. 평양의 거리에서는 ‘김일성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다’는 슬로건이 붙어 있다. 이미 김일성 부자는 신격화되어 인민의 우상으로 고착된지 오래이다. 3대 수령에 대한 믿음과 존중은 종교처럼 내면화되었다.주민들은 수령을 절대적 칭송과 흠모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공산권의 개방화 과정에서 공산 독재자들의 동상은 파괴되었다. 러시아 레닌의 동상마저 사라지는데 김일성 동상에는 아직도 참배객이 늘어나고 있다. 수령의 만경대 생가는 성역화되었고, 북한의 가정에는 수령 초상이 걸린 지 오래다.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론은 북한수령을 통해 완전한 생명을 부여 받는다는 ‘사회 정치 생명체론’으로 대치되었다. 결국 북한당국은 정치를 종교화하여 체제 통제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최근 전광훈 목사의 정치 간여는 국민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전 목사는 오래전부터 본 회퍼의 이론을 앞세워 광화문 보수 강경집회를 주도해 왔다.그는 줄곧 문재인 정권의 퇴진에 앞장서면서 강경 보수 정치인들을 집회에 끌어들였다. 그는 강경 보수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진보 세력을 용공으로 매도하였다.전 목사는 각종 선거뿐 아니라 국민의힘 당의 당 대표 선출과정에도 노골적으로 개입한 흔적을 남겼다. 그가 지방선거뿐 아니라 차기 총선 공천권을 요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전 목사는 기존 기독교 단체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자기 과시형 언행을 쏟아 내었다. ‘하느님도 내 말 듣지 않으면 그냥두지 않는다’는 그의 발언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최근 국힘당 김재원 최고위원의 ‘전광훈 목사가 자유우파를 통일했다’는 발언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쯤 되면 그의 행태는 목사이기 전 선동 정치인이다. 일부에서 그를 예언자로 칭송하지만 국힘당에서는 그를 시급히 손절하자는 주장이 우세하다.가톨릭정의사제구현단의 활동 역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어느 신부의 윤석열 대통령 해외 순방시의 비행기 추락을 위해 기도했다는 발언은 가톨릭의 가르침에도 크게 벗어난다. 가톨릭 성직자의 금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지난주 전주에서부터 출발한 정의사제구현단의 정치 집회에도 곱지 않는 시선이 존립한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반역사성을 규탄하기 위해 전국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여기에도 진보와 보수의 찬반양론이 대립한다. 과거 가톨릭정의사제구현단은 유신 체제 타도라는 명분으로 민주화 운동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암울했던 독재 정권 시절 그들이 고통받는 민중의 선봉에 선 역할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1년도 안 된 시점의 대통령의 탄핵 주장은 지나치다는 비판도 따른다. 성직자인 사제의 입장은 정치적 투쟁이 아닌 종교적 신앙적 실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들의 활동이 자칫 정치를 더욱 분열을 조장할까 우려된다.결론적으로 종교인들의 정치 간여와 투쟁은 자제되어야 한다. 자칫 이들의 행위가 이 나라의 양극 정치나 진영 정치를 조장하고 갈등과 저주의 정치를 촉발하기 때문이다.물론 전 목사의 정치 투쟁과 정의사제구현단의 행태를 평면 비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종교와 정치는 본질적으로 다른 영역이며 양자의 범주 착오와 침범은 국론분열만 조장한다. 목회자나 성직자들이 정치에 직접 간여하려면 그들의 신분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영달이나 지지세 확산을 위해 종교 세력을 정치에 끌어 들이는데도 문제가 많다. 종교인들은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역할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 종교와 정치는 상호 범주 착오나 침범을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양자 간 애매모호한 영역은 존립한다. 종교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고, 정치는 오직 민생과 복지를 위해 더욱 매진해야 할 시점이다.

2023-04-16

전기실 안전관리의 기본과 개선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2022년 12월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의 기대수명은 남자 80.6세, 여자 86.6세로 남녀 평균 83.6세를 기록했다. 이는 2000년도 대비 7.3세가 증가한 나이이며 조선시대 왕의 평균나이 46세에 비하면 무려 2배에 가깝다. 이렇게 과거에 비해 기대수명이 늘어난 대에는 의학기술의 발달과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사회적인 변화도 있지만 청결하고 위생적인 관리가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사람의 기대수명이 증가하는 것과 같이 생산현장의 설비도 청결하게 유지될 때 수명도 길어지며 작업안전도 확보된다. 사람의 몸도 씻지 않고 청결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세균에 감염되고 병에 걸리기 쉬운 것과 같이 설비 또한 같기 때문이다.그러기에 산업안전보건법 제1편 총칙 첫 구절에서도 ‘사업주는 작업장 바닥 등을 안전하고 청결한 상태로 유지하여야 한다’라고 청결을 제일 먼저 강조하고 있다. 특히 고압의 전류가 흐르는 전기실의 경우 일반 설비에 비하여 더 청결한 관리가 요구된다.필자가 지도한 회사 중 생활폐기물을 처리하는 곳으로 매일 수백t의 가정용 쓰레기를 수거, 이를 소각하여 그 열로 스팀과 전력을 생산 판매하는 현장의 전기실 개선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처음 방문시 전기실 내부는 장시간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가 뿌옇게 쌓여있었고 룸내는 밀폐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관리를 하지 않아 외부에서 분진이 많이 유입되고 있었으며 내부에 설치된 각종 Panel과 케이블(Cable) 인입구 사이는 작업후 막음 처리를 하지 않아 그 사이로 쥐들이 드나든 흔적이 많이 보였다. 이런 상태로는 언제 큰 화재나 고장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었다.그래서 제일 먼저 전기실 전원을 차단하고 외부로부터 분진이나 이물질이 유입되는 곳을 모두 막아 청소를 한 번 하면 유지가 오래가도록 오염발생원을 제거하였다. 그리고 청소를 통해 판넬(Panel) 내부에 쌓인 먼지를 불어내고 바닥을 깨끗하게 한 다음 전기실 온습도관리 안전확보 설비점검 작업방법 측면의 모든 불합리를 현장에서 현물을 보면서 도출하여 개선활동을 실시하였다.온습도 관리는 센서를 설치하여 공조기와 연동하여 자동제어 되도록 하였으며 작업안전 확보를 위해 구획선 위험표지판을 보완하고 현장 점검이 필요한 곳은 각종 지시계류에 대하여 이상과 정상을 현장에서 현물로 파악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작업방법은 도면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표시하고 조작과 조치 요령을 판넬에 부착, 보이게 하였다. 개선 완료 후는 청결이 유지 될 수 있도록 일상관리가 필요한 청소와 점검 항목에 대하여 주기와 기준을 만들고 담당자를 정하여 표준에 반영하였다.지금도 많은 회사의 전기실 또는 현장의 조작 Panel을 가보면 관리를 하지 않고 장기간 방치하여 화재나 장애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설비가 병들기 전에 청결한 관리를 통해 예방하는 활동은 아무리 설비가 첨단화 되어도 필요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2023-04-16

습관인가, 창의성인가

유영희 작가 불경기가 계속되면서 자기계발은 선택 아닌 필수가 되었다. 자기계발 방법의 부동의 1순위는 바로 습관 만들기다. 자기계발의 목표는 대부분 부자가 되는 것이고, 그래서 상위 0.1% 부자들의 루틴 따라 하기, 초대형 1조 부자들의 5가지 습관 등등 습관 만들기 영상이 넘쳐난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들의 습관을 따라 하라는 것이다.그러나 부자들의 공통 습관을 따라 한다고 해서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부자가 된 사람 중에는 엄청나게 두뇌가 명석한 이도 있고, 물리적으로 수치화할 수 없는 그들만의 환경과 경험이 있다. 그들의 습관은 부자가 되기 위한 한 가지 요소일 수는 있어도 전부는 아니다.여기서 중요한 의문은, 과연 그들의 행동을 습관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습관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익혀진 행동 방식 또는 학습된 행위가 되풀이되어 생기는 비교적 고정된 반응 양식이다. 그러나 이것을 좀 더 파고들어가 보면, 행동의 결과가 좋지 않은데도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을 습관이라고 한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는 ‘습관’을 부정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뇌과학자 앤서니 디킨슨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는 행동에는 ‘습관’과 ‘목표지향적 행동’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예를 들어, 쥐를 며칠 굶기고 표시등이 깜박이는 동안 그 쥐가 레버를 누를 때 먹이를 공급해주면, 쥐는 표시등이 켜질 때마다 레버를 누른다. 이때 배가 많이 고프거나 먹이에 대한 경험이 좋다면 레버를 더 잘 누른다. 그런데 배가 안 고프거나 그 음식을 먹고 배가 아팠는데도 레버를 누른다면 그것은 습관이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담배가 도움이 되었다고 해서 기침하는데도 담배를 계속 피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면 목표지향적 행동은 그 행동을 처음 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기억을 가지고 계속 그런 결과를 내기 위해 하는 의식적 행동이다.일찍 일어나기, 독서, 행복한 상상, 규칙적인 운동, 명상 등 부자들이 한다는 행동이 그들에게 활력을 주고 창의성을 준다면, 그것은 습관이라기보다 목표지향적 행동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들이 목표지향적 행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이유는 자기 목표에 대한 인식이 또렷하고 그 행동의 결과를 체험했기 때문일 것이다.올해 들어 심신의 안녕을 목표로 뜻맞는 친구들과 매일 5분 이상 명상을 80일째 하고 있고, 매일 A4 한 장 쓰기 모임에 참여하여 글을 쓴 지 60일이 넘었다. 명상이든 글쓰기든 목표가 또렷하기 때문에 하고 있을 뿐, 습관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어쩌랴, 그런 행동이 어떤 유익한 결과를 내는지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것을.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습관이라면 더욱 어렵다. 습관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자기만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표를 또렷하게 갖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의식적으로 찾아서 꾸준히 실천하는 것, 그것이 창의적인 자기계발이다.

2023-04-16

울진에서 열리는 제61회 경북도민체육대회

손병복 울진군수 300만 경북도민의 대화합·축제의 장이 될 제61회 경북도민체육대회가 4월 21일 오후 5시 울진군종합운동장에서 화려하게 개막된다.‘하나되는 화합울진 미래향한 경북체전’이라는 슬로건으로 펼쳐지는 이번 경북도민체전은 21일부터 24일까지 4일간 울진군 종합운동장 및 종목별 경기장에서 개최된다.울진군은 성공적인 체전 개최를 위해 울진종합운동장을 비롯한 31곳의 보수공사를 했다. 주 경기장인 종합운동장 천연잔디 교체, 입구 게이트 설치, 전광판 교체, 야외화장실 개보수 등 전면 리모델링 공사를 마무리했다.울진군은 이번 도민체전을 문화와 스포츠를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으로 꾸민다는 계획이다. 도민체전 성공기원 전야제를 시작으로 미술·사진전, 뮤지컬 ‘가요톱텐’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 예술 공연을 기획했다.울진군은 대회 전날인 20일 저녁 7시 울진연호체육공원 축구장에서 도민체전 성공을 기원하는 화합콘서트로 체전의 개막을 알린다. 이날 콘서트는 멀티미디어쇼, 성화 안치식, 국내 최정상 가수의 축하공연으로 꾸며진다. 울진출신의 아티스트인 송푸름, 방준엽의 식전공연과 함께하는 울진이야기를 시작으로 성화 안치식, 화려한 멀티미디어쇼가 이어진다. 인기가수 축하공연에는 박창근, 에일리, 미스트롯 출신 은가은, 유쾌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노라조 등의 가수들이 초청돼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화합과 축제의 한마당을 펼친다.21일 개회식에는 정동원, 이무진밴드, 스테이씨 등 국내 정상급 인기가수 등이 출연해 울진 도민체전의 개막을 축하한다. 도민체전을 밝힐 성화는 경주 토함산과 망양정 해맞이공원에서 채화해 10개 읍면을 순회하며 봉송에는 100여 명의 각계각층 군민들이 참여한다.또, 체전 기간 내 울진종합운동장에는 부대 행사장을 조성해 23개 시·군 농특산품 전시 부스와 체험 부스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울진군은 울진종합운동장 내에 꽃 조형물을 조성하고 읍면 도로변에 대회 배너기 등 홍보물을 설치해 방문객들을 환영하는 체전 분위기도 조성했다.울진군은 대회기간 중 울진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깨끗하고 친절한 도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대대적인 환경 정비와 함께 교통질서 확립, 쓰레기 불법투기 근절, 노점상·노상 적치물 제거, 불법현수막 철거 등 기초질서를 확립한다. 식당과 숙박업소 종사자를 대상으로 친절한 손님 응대를 위한 교육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다.이와 함께 울진읍, 근남면, 죽변면, 후포면 총 6개 노선 도로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우리 동네 반짝반짝 캠페인’을 통해 도민체전 홍보 및 손님맞이 시가지 환경정화활동을 벌이기도 했다.또한, 군은 숙박시설을 전수조사해 시·군 및 경북도 협회 숙소를 예약 완료했으며 도민체전 동안 관람객과 선수단을 지원해줄 자원봉사자도 365명 모집했다. 선발된 자원봉사자는 지난 7일 자원봉사자 발대식과 기본 소양 교육 및 직무교육을 시행하고 본격적인 운영에 돌입했다.원활한 교통흐름을 위해 개막식 당일 울진종합운동장 주변 도로는 일방통행으로 운영하며 관람객들이 편안하게 개막식장으로 올 수 있도록 셔틀버스도 운행할 예정이다.선수단 급식은 숙소 주변 3~5곳 정도 음식점을 안내하고 선수단 규모를 고려해 사전 예약 안내로 불편을 해소한다는 방침이다. 또 식품안전관리 대책으로 식중독 예방 교육 및 캠페인 실시, 접객업소 업주 및 종사자 위생교육, 목욕·다방·이미용업소 및 협회에 협조를 요청하기로 했다.지난달 21일에는 울진연호문화체육센터 대강당에서 전국모범운전자회 경북지부와 함께 ‘도민체전 성공 개최 기원 교통질서 지키기 실천 다짐대회’를 갖는 등 손님맞이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손병복 울진군수는 “경북도내 군 지역에서 유일하게 도민체전 2회 유치의 역사를 이뤄낸 울진군이 한 단계 도약하는 것은 물론 300만 경북도민이 하나 되는 대통합의 장을 만들어 낸다는 비전을 갖고 성공적인 도민체전이 될 수 있도록 5만여 군민과 함께 만반의 준비를 통해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23-04-16

흔들리는 봄, 마음의 꽃갈피

이희정 시인 옛말에 꽃싸움에서는 이길 자 없다 했으니그런 눈부신 꽃을 만나면 멀리 피해 가라 했다언덕 너머 복숭아밭께를 지날 때였다갑자기 울긋불긋 복면을 한나무들이 나타나앞을 가로막았다바람이 한 번 불자나뭇가지에서 후드득 흐드득,꽃의 무사들이 뛰어내려 나를 에워쌌다나는 저 앞 곡우(穀雨)의 강을 바삐 건너야 한다고사정했으나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럴 땐 술과 고기와 노래를 바쳐야 하는데나는 가까스로 시 한 편 내어놓고 물러날 수 있었다―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 2009), ‘복사꽃’ 전문시집의 서문 격인 시인의 말이 인상적이다. “작품을 정리하다 보니 꽃을 소재로 한 시가 여러 편이다. 고운 봄날 이 거친 시집을 꽃 피는 시집으로 잘못 알고 찾아오는 나비에게 오래 머물다 가진 마시라고 해야겠다.” 나비처럼 꽃에 관한 시를 뒤적이다 덩달아 마음이 흔들렸다. 나비에게는 꽃이, 꽃에게는 나비가 욕망처럼 무섭게 당기는 힘, 그것을 색(色)이라 한다.신의 창조물 가운데 최고의 걸작은 꽃일 것이다. 예부터 ‘미’의 상징이 되어왔던 꽃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대명사다. 고려의 문호 이규보는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되면 너무 좋아 정신이 몽롱해지네”라는 시문을 남기기도 했다. 꽃에 매료되는 것은 현대인도 마찬가지이다. 송찬호 시인은 “꽃싸움에서는 이길 자 없다 했으니”, “멀리 피해 가라 했다”며 짐짓 미혹될까 두려워하는 포즈로 춘심을 드러낸다.우리의 문학작품에서는 미인을 꽃에 비유한 예를 허다하게 볼 수 있다. 위 시에서도 복사꽃은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다운 여인을 의미한다. 1918년에 발행한 ‘조선미인보감’에는 당시 서울의 권번에 소속된 기생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름에 꽃이 들어간 기생의 수는 절반을 넘었다.시인의 비유처럼 문을 열기 무섭게 “울긋불긋 복면을 한” 화인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야말로 ‘화신(花信)이 곧 춘신이고, 춘신(春信)이 곧 화신’이라는 봄의 정령들이 시인을 에워싸고 있다. 꽃은 그 아름다운 색과 자태, 그리고 그윽한 향기로 인하여 뭇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기 충분하다. 특히 복사꽃은 그 요염한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염부(艶婦)’를 상징하기도 한다.그 열매와 관련해서는 벽사력(僻邪力)을 지녔다고 믿었고, 열매의 씨앗이 일반적으로 다산을 상징하기도 한다. 시인이 마지막 연에서 돌연 “곡우(穀雨)의 강을 바삐 건너야 한다”고 한 연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곡우는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의미를 가진 봄의 마지막 절기가 아닌가. 그런데 눈부시게 무장한 무사들이 떡하니 막고 있어 다음 행보를 예비하는 데 조바심이 이는 것이 기우는 아닐 것이다. 해서 시인은 그것에 더해 비책을 제시한다. “술과 고기와 노래를 바쳐야”한다며 “가까스로 시 한 편 내어놓고 물러날 수 있었다”라고. 결국 시인의 장기인 노래(詩)를 바치는 것으로 꽃의 무사들로부터 풀려난다. 그런 면에서 이 시는 ‘헌화가’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생명체로서 꽃은 개화하여 번화하고는 시들어서 떨어지는 생리적 구조로 되어있다. 그것은 생로병사의 인간의 삶과 유사하나 꽃은 사람과 달리 다시 개화하는 재생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고전문학 세상과 만나다’의 저자 이강엽은 “꽃은 흔히 절정의 한순간으로 꽃다운 청춘이라고 할 때 꽃은 최고의 호시절을 의미하며, 꽃이 피면 마음이 밝아지고 자연스레 흥이 분출하는데 꽃노래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다시 기운을 얻어 재창조할 힘을 주는 리크리에이션(recreation)이다.”라고 했다. 독서 시간 청춘들과 일탈을 감행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교정을 거닐며 난분분 날리는 여린 꽃잎을 취했다. 이어 ‘모비딕’ 같은 두껍고 무거운 책 속에 한 잎, 한 잎 마음 다해 심었다. 다음 생에는 어여쁜 꽃갈피로 재탄생한 그녀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바람이 한 번 불자, 나뭇가지에서 후드득 후드득,”

2023-04-16

세월호 대참사 9주기

김규종 경북대 교수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시간이 흐른다. 어제가 세월호 대참사 9주기였다. 참으로 신속하다. 열일곱 열여덟 살 먹은 단원고 2학년 학생 250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세월호 대참사가 일어난 지 9년이 흘러갔다니 실감 나지 않는다. 결코 일어나서는 아니 되는 사건으로 생떼 같은 청춘 250명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자들은 희희낙락하며 절을 찾아다니며 정치 행각을 해대고 있으니 목불인견(目不忍見)이 아닐 수 없다.참혹한 사건이 벌어진 그 날,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구들방에 장작불을 넣고 있었다. 촌집으로 들어온 지 3주 남짓 시간이 흐른 때였다. 저녁 어스름 무렵 뒷집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당신 집으로 들어섰다. 왜 그러세요, 하는 내 물음에 텔레비전도 안 봐, 하고 대답한다. 집에 텔레비전 수상기가 없던 나는, 안 봅니다, 했다. 그랬더니, 이를 불쌍해서 어쩌누, 하면서 연신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하는 것이었다.그날 밤에 나는 알았다. 말도 안 되는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참사가 벌어졌다는 걸! 그 후 강의실에서 나는 경북대 학생들에게 정식으로 사죄했다. 정말 미안하다고, 나 같이 나이 먹은 자들의 잘못이라고!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해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2박 3일 동안 유민 아빠 김영오씨와 동조 단식을 하러 광화문으로 갔다.8월의 후텁지근한 기운과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음습하고 뜨거운 열기와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매연 속에서 수도승처럼 앉아 있던 그이를 잊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46일 동안 단식을 이어간 그의 초인적인 행동은 놀라운 것이었다. 단 한두 시간만 그런 자세로 앉아 있으면 무슨 말인지 실감할 터다.이듬해인 2015년 4월에 나는 청도에서 출발해 진도 팽목항 분향소에 다녀왔다. 6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진도 남쪽 끝에 자리한 팽목항 분향소 근처는 노란색 물결이었다. 305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던 분향소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영정 사진들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많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저토록 많은 생명을 앗아간 자들은 멀쩡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온갖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도는 느낌이었다. 제 나라 백성들을 사지로 몰아넣고도 뻔뻔스러운 낯짝으로 희희낙락하는 정치 모리배들의 파렴치한 철면피는 마치 철가면(鐵假面)처럼 주둥이가 째진 채 허연 이를 히죽 드러내고 웃는 것만 같았다.작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젊은이 159명이 다시 죽어 나가는 참사가 일어났다.지금까지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뭉개고 있는 정부 여당의 행악질과 후안무치는 전임 정권과 판박이다. 툭하면 선진국 타령하는 인간들의 가증스러운 행태가 되풀이되는 와중에 발생한 대참사였다. 젊은이들과 어린 학생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작태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세월호 9주기의 소감이다. 올해도 조기(弔旗)를 내걸고 젊은 영혼들의 명복을 빌었다.

2023-04-16

쓴소리 정치

우정구 논설위원 사람들이 하는 말을 상황에 따라 우리는 여럿 말로 표현한다. 쓴소리, 단소리, 군소리, 헛소리, 볼멘소리 등등 아주 많다. 그 중 쓴소리는 나쁜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다. 국어사전에도 “듣기에는 거슬리나 도움이 되는 말”로 설명한다.반대로 단소리는 듣기 좋은 말이다. 하지 않아도 좋을 쓸데없는 말을 두고 우리는 군소리라 부른다.우리 속담에 듣기 싫은 소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하나 있다. “익모초 같은 소리”다. 익모초(益母草)는 한자말로 어머니에게 이로운 풀인데, 산전산후 질병치료에 좋은 풀로 전해져 있다. 그럼에도 이 풀이 듣기 싫은 소리에 비유된 것은 지독히 쓴맛 때문이라 한다.중국 고사에 양약고구(良藥苦口) 충언역이(忠言逆耳)라는 말이 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동에 이롭다”는 뜻이다.진시황제가 죽고 난 후 궁궐을 점령한 유방이 금은 보화와 꽃같은 궁녀가 셀 수 없이 많자 그곳에 머물 것을 생각하다 부하 장수의 충언에 깨달음을 얻어 다시 전쟁터로 되돌아갔다는 일화가 있다.쓴소리는 듣기가 거북하지만 잘 새겨듣고 깨달음을 얻으면 오히려 도움이 된다. 홍준표 대구시장의 잦은 정치발언과 당내 비판에 국민의힘이 당 상임고문직을 해촉해 그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홍 시장은 “그렇다고 잘못되어 가는 당을 방치하고 그냥 두겠냐”며 반발을 했다.내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 것은 대의정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목소리를 모아 하나로 모아가는 과정이다. 쓴소리, 단소리 심지어 별별소리까지 다 들어야 한다. 그 속에 민의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쓴소리도 듣는 포용력 있는 정치를 보여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4-16

전광훈 덫에 갇힌 국민의힘

홍석봉 대구지사장 “정치인들은 권력을 가지기 때문에 반드시 종교인의 감시가 필요하다. 종교인의 감시가 없으면 그 사람들이 자기통제가 불가능하다. 다음 총선에서 200석 서포트하는 게 한국 교회의 목표다” 최근 전광훈 목사가 한 말이다.국민의힘이 전광훈 목사의 덫에 갇힌 채 허우적대고 있다.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한 모임에서 “전 목사가 우파 진영을 전부 천하통일했다”고 추켜세운 게 발단이다. 이 발언이 언론의 관심을 끌면서 국민의힘과 전 목사의 관계가 주목받게 됐다.당이 극우 성향의 전 목사에게 휘둘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광훈 리스크’가 현실화됐다. 당 안팎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전 목사와 사랑가와 이별가를 번갈아 부르며 가까와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태극기 부대’의 힘이 필요하면 전 목사를 찾았다. 그가 문제를 일으키면 거리를 뒀다.전 목사는 자유한국당 시절부터 황교안 대표와 끈끈한 관계를 맺어왔다. 그는 진보의 ‘개딸들’ 못잖은 인원 동원력과 투쟁력으로 무기력에 빠진 보수당에 힘이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태극기 집회 등에서 세를 불린 강성 보수층에는 희망의 아이콘이었다. 당원 가입도 도왔다. 추종자들을 독려, 당원 불리기에 큰 힘을 보탰다. 당 안팎에선 전 목사의 권유로 가입한 당원이 20~30만 명에 이른다는 설이 나돈다.지도부의 잇단 실언과 정책혼선으로 당 지지율은 자꾸 떨어진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위기감이 고조됐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강성 보수’ 성향의 전 목사와 관계 단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전 목사를 차기 총선 성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악재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당 지도부도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 전 목사를 손절매하고 나섰다. 급기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그 사람(전 목사)은 우리 당 당원도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홍준표 대구시장과 국민의힘 일각에서 차기 총선을 위해 전 목사와의 관계 단절을 요구했다. 홍 시장은 전 목사를 비판하면서 전 목사를 숭배하는 자는 국민의힘을 떠나라고 촉구했다. 그는 책임당원 전수조사를 거쳐 이중 당적자를 퇴출하자고 주장했다. 지난 대선 때 전 목사 추천으로 가입한 당원 상당수가 전 목사가 관여하는 정당의 당적을 중복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의힘 한 중진은 “목사 손아귀에서 움직여지는 당이 돼선 안 된다”는 말까지 했다. 당 주변에 전광훈의 그림자도 기웃거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며 전 목사 추종자들의 지지를 받은 황교안 전 대표는 지난 2019년 공천 과정에서 전 목사가 “과도한 요구를 했다”며 당에서의 축출과 단절을 요구했다. 전 목사의 영향력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그는 180석, 200석을 얻게 해주겠다며 보수 정당이 환상을 갖게 했다. 잘못 코가 꿰였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전광훈에 약점 잡혔나는 말까지 들어야 했던 국민의힘이다.이제 전광훈과 절연해야 한다. 분위기는 조성됐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국민의힘에 다음 총선은 없다.

2023-04-13

도청(盜聽) 세상

우정구 논설위원 도청은 몰래 엿듣는다는 뜻이다. 통신비밀보호법에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를 청취하거나 녹음하는 행위로 규정한다. 수사기관이 법적 근거를 가지고 합법적으로 대화를 엿듣는 것은 감청(監聽)이다.도청과 관련해 가장 큰 파문을 일으킨 역사적 사건은 1972년 발생한 미국의 워터게이트 정치스캔들이다. 당시 공화당 출신의 닉슨 대통령이 비밀공작단을 시켜 워터게이트 빌딩 안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현직 대통령이 사임하는 사태로 커진다. 닉슨은 임기를 다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됐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각종 비리와 연루된 사건에는 으레 게이트라는 접미어가 붙게 된다.이 사건은 워싱턴 포스트의 두 기자의 끈질긴 활약으로 세상에 전모가 공개되는데, 당시 두 기자는 오로지 이 사건에만 매달려 취재해 끝내 대통령의 퇴진을 이끌어 낸다.정보통신의 발달로 도청은 이제 일반인뿐 아니라 국가기관간에도 치열한 전쟁거리가 됐다. 영화에서 흔히 보는 만년필, 구두밑창, 손목시계, TV스피커 등에 설치된 기상천외한 장비들이 실제로 시중에 유통돼 개인 사생활 보호가 어려운 세상이 됐다. 심지어 레이저 발사를 통해 맞은편 빌딩에서 진행하는 회의 내용도 도청할 수 있다 하니 도청기술 첨단화가 놀라울 뿐이다.미국 정보기관의 우리나라 대통령실 도청 의혹과 관련한 논란이 시끄럽다. 국가간 정보전쟁의 한 단면으로 짐작되나 우리 정부의 모호한 태도가 오히려 더 궁색해 보인다. 국익에 배치된다면 선을 긋고 해명하는 게 옳다. 첨단화하는 도청기술에 국가나 국민 모두가 노출된 세상이 된 것 같아 두렵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4-13

놀랍고도 반가운 비(碑)

강길수 수필가 “저게 뭐지?….”수령이 300년이 넘는다는 강당 앞 고목을 살피고 돌아서다가, 눈에 들어온 커다란 표지석에 나온 혼잣말이다. 정문 안쪽 왼편이다. 가까이 가보았다.참 놀랍고도 반가웠다. 도무지 예상치 못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문학비(碑) 아니면, 기념이나 공적비일 거란 생각은 빗나갔다. 표지석은 바로 ‘국민교육헌장 비’였다. 그것도 지자체나 학교에서 설치한 것이 아니라, 개교 30주년을 맞아 동문 분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이었다. 이곳 J 중학교 동문의 깨어있는 마음들이 나를 와락 껴안는 것만 같다. 갑자기 그 옛날, 희망에 가득 찼던 시절로 되돌아간 마음이다.‘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되던 무렵, 나는 그것을 외워야 할 학생 신분은 아니었다. 그래도 사회 분위기에 따라 외우다시피 하였다. 지금도 첫 구절이 생생하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국민교육헌장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강산이 다섯 번 넘어 바뀐 지금의 내 시각으로 바라봐도 국민교육 지표로 어느 한 단어, 한 구절 버릴 것이 없다. 휴대폰 사진을 찍었다.1960년대 초 한국은 지구촌 최빈국의 늪에서 허덕였다. 그런 국민 앞에 나선 젊은 새 대통령은 ‘조국 근대화’란 기치를 내걸고,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라고 외치며 앞장서서 국민을 일깨웠다. 무기력하던 국민 가슴에 ‘우리도 하면 된다!’는 희망을 심었다. 1968년 대통령의 민족사랑 리더십은 마침내, ‘국민교육헌장’을 끌어냈다. 국민교육이 이루어낼 지표다. 뒤이어 새마을 운동도 활기차게 펼쳐나갔다.새마을기가 아직 펄럭이는 곳은 있지만, 국민교육헌장을 게시하거나 싣는 매체를 보지 못했다. 웹사이트에서 국민교육헌장에 관한 검색을 해보았다.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1968년 6월 문교부는 대통령 명에 따라 헌장 제정을 위해 기초위원 26명, 심의위원 48명, 초안 작성 관련 대학교수 20명 등의 인적자원을 구성하였다. 9회의 심의회를 거치고,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후 12월 5일 대통령이 선포하였다.1973년 3월, 헌장 선포일인 12월 5일을 정부 주관 기념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였다. 1993년까지 교육부 주관으로 헌장이념 구현 다짐 기념식, 스승 공경 기념행사, 기념 우표 발행 등도 하였다. 하지만, 문민정부인 1994년부터 기념식과 행사가 중단되고 이후 초,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국민교육헌장이 지워졌다. 2003년 국민의 정부에서 헌장 선포기념일도 폐지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한국의 국민교육헌장 제정은 당시 자유중국 총통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고, 독일 철학자 볼노브(Bollnow)의 찬사도 받았다고 한다. 한데 왜, ‘민주화’를 표방한 다음 정부들은 이 훌륭한 교육헌장의 정신과 업적을 계승, 발전시키지는 못할망정 폐지했을까. ‘국민교육’이란 나라의 근본을 자기나 자당의 이해득실만 따지는 소인배적 행태로 그리하지는 않았을까.한 국민으로서, 지금이라도 ‘국민교육헌장 정신’을 계승, 계발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이 국가와 나라 교육이 제대로 발전해 가는 길일 테니까….

2023-04-13

서쪽 하늘과 동쪽 바다의 걱정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봄 날씨가 더웠다 추웠다 갈피를 잡지 못한다. 올 3월은 기상청 관측 이래 가장 더운 봄이었다. 평균보다 7~9도 높았고 벚꽃마저 앞당겨 피어 ‘봄의 실종’을 알렸는데 올여름은 또 폭염의 우려가 있다고 한다. 그저께는 내륙 산간 지역이 영하의 날씨를 보여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어는 등 냉해 우려가 있었다니 꽃샘추위는 저리 가라는 듯하고 낮에는 20도 이상이 되어 갈팡질팡이다. 전국의 강수량은 평년의 절반 수준으로 건조주의보가 내려져 있고 동해안은 강풍 특보 속에 초속 15m 이상의 센 바람을 타고 강릉 산불은 민가 100여 채를 태우고 지나갔다.서쪽 하늘에서 황사가 덮여왔다. 중국과 몽골에서 발원한 흙먼지가 전국을 뿌옇게 시야를 가리고 미세먼지는 ‘매우 나쁨’ 수준이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잔류 황사가 서해상으로 유입하여 대기 정체로 축적이 되어 농도가 높아진 탓으로 ‘관심-주의-경계-심각’의 4단계 중 ‘관심’ 단계이고 미세먼지는 평소의 10배인 130마이크로그램 정도여서 외출 시 황사용 마스크 쓰기를 권하고 있다. 우리 집 뒷창문으로 멀리 비학산이 보이고 그 투명한 정도를 보며 미세먼지의 정도를 가늠하곤 하는데 요즘 며칠간은 아예 보이지를 않았다. 꽃 피고 새 우는 아름다운 4월의 하늘에 먼 서쪽 대륙에서 날아온 황사가 우리 한반도를 질식시키는 것 같아 기분이 우울해진다. 다행히 14일 금요일부터 이틀간 전국적으로 비 소식이 있다. 제주 50mm, 남해안과 경북 남부 10mm 정도이지만 수도권과 중부, 경북 북부는 비의 흔적이 적을 것이라고 한다.이렇게 서쪽 하늘이 숨쉬기를 힘들게 하는데 동쪽 바다는 또 다른 걱정을 하게 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폐수를 올 6월쯤 방류한다는 소식이다. 2011년 동일본 지진으로 파괴된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130여만 톤의 오염수를 수백 개의 탱크에 보관 중인데, 이를 해양 방류하면 해류를 따라 태평양을 돌아 동해안으로 들어오고 해양환경은 물론이고 인체와 수산물에 끼치는 막대한 피해는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가 없을 것이란 우려이다.일본 당국은 대부분의 방사성 핵종을 제거한 ‘처리수’라고 발표하고 있지만 우리 시민 단체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저지에 나서 줄 것을 요구하며 매월 범국민 대회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포항을 비롯한 경주·영덕·울진·울릉 등 동해안 5개 시·군은 ‘오염수 해양방류 공동 대응’을 위한 상생협의체를 구성하여 수산물 소비심리 위축과 가격하락 등 수산업계의 고민과 관광·레저업계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기금편성 등 신규사업도 건의하고 있다. 12일 포항환경운동연합, 포항YMCA 등 6개 시민 단체도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 철회 캠페인을 벌였다.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한반도가 어찌하여 서쪽 대륙에서 불어오는 황사와 미세먼지에 하늘이 덮이고 동쪽 바다에서 밀려오는 방사성 해류가 넘실대는 환경을 걱정하게 되었나. 기후변화와 인간의 실수로 말미암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우리 정계에서 소용돌이치는 분탕질 바람부터 잠재우며 현명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

2023-04-13

경북경찰청 경무기획과 교육계 경장 정현수

정현수 경북경찰청 경무기획과 교육계 경장 최근 우리 사회는 고령화·양극화·다문화 등 사회구조의 근본적 변화와 함께 빈부·세대·지역갈등까지 장기적·구조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또한, 첨단 기술의 발전은 △딥페이크 △AI·블록체인 이용범죄 △사물인터넷 해킹 △가상현실 범죄 등 경찰의 치안 영역을 끝없이 확장 시키고 있다. 치안환경 급변에 대한 대비가 지체될수록, 국민안전과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은 증대되는 만큼, ‘경찰 교육훈련 혁신’을 기반으로 ‘치안 역량 제고’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찰의 기본 핵심역량을 강화하고, 미래에 대비한 新지식‧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해야 할까? 먼저 경북경찰청은 ‘부서 간’, ‘기관 간’ 칸막이를 제거하고, 치안행정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자, 기존 경찰 교육훈련을 ‘융합 교육 중심’으로 전면 개편하였다. ‘범죄예방과 수사’, ‘치안행정과 일반행정’이 서로 융합해 시너지를 내는 ‘지방종합행정서비스’를 구현함으로써 ‘도민의 기대(눈높이)’에 부응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현장부서 ‘팀별 OJT 내실화’와 ‘도경 기능별 OJT 지원시스템’을 통해 지역현안에 대한 명쾌한 솔루션을 제공하며, ‘기능‧부서별 학습모임’ 운영을 장려하고 있다. 지역 현안에 대한 상시토론‧학습을 통해, 현장 경찰의 직무 전문성과 현장 대응력을 제고하며, ‘문제 해결역량’을 배양하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과학치안, 과학수사, 글로벌 트렌드 등 전문역량 향상이 필요한 분야에서 훈련과제를 발굴하고 ‘위탁교육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경찰 특화과정의 필요성이 높은 과제들을 중심으로 지역 민‧관‧산‧학‧연이 협업하는 ‘지역 치안거버넌스 조성’에 마중물이 되리라 본다. 사회불안은 필연적으로 ‘삶의 질 하락’, ‘생산력 저하’ 등 사회‧경제적 병폐로 이어지기에, 미래사회의 ‘국가경제’, ‘국가발전’ 역시 ‘안정된 치안’이란 기초체력이 뒷받침되어야만 튼실해질 수 있다. ‘경찰 교육·훈련혁신’을 통해 ‘치안행정의 완성도’를 높이고, 미래사회 환경변화에 대비하는 경북경찰에게 도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리며, 도내 민·관·산·학·연의 적극적인 치안거버넌스 동참을 기대해본다.

2023-04-13

카바이드 등

윤명희 수필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녀의 표정이 여느 날과는 달랐다. 할머니는 의자에 앉기 무섭게 하소연을 쏟아낸다.내 말 한 번 들어봐라, 그게 그렇게도 힘드나? 매번 내가 속이 상해. 먼저 태어난 아들이 선수고 뒤따라 나온 게 차수거든. 얼굴은 고사하고 걷는 뒤태도 둘이 똑 같어. 지 식구들이야 알아보겠지만 동네사람들은 지금도 볼 때마다 헷갈리재. 하기야 선수는 눈가에 흉터가 있으니 자세히 보면 알거라. 에이그 그 상처가 참…큰아들 선수는 말이다, 가끔씩 어디 갔다 오는 길이라면서 옥수수를 한 망태씩 사오거든. 그 많은 걸 누가 다 먹나. 그래도 어미 애비 생각해서 사오는 게 고마워서 내가 돈 십만 원을 주머니에 찔러줘. 그러면 길게도 말 안 해 ‘에이 뭘.’ 그러고는 두말 않고 받아. 걔는 뻥튀기도 잘 사오는데 한 비닐포대 갖다 놓으면 심심풀이로 요긴하지. 그러면 나는 또 집에 갈 때 통닭이라도 한 마리 사가라고 찔러 줘.뱃속에서 열 달을 붙어 있다 나왔는데 성질 하나는 어째 그리 다른지. 차수도 가끔 고기를 사와. 장보러 갔다가 생각났던 모양이라. 늙을수록 단백질을 많이 먹어야 한다나. 생각하는 마음이 참해서 슬쩍 지폐 한 장 주머니에 찔러 넣어 줬더니 괜찮다면서 그걸 식탁 위에 그냥 두고 가네. 그것도 내가 보는 앞에서 말이라. 엄마가 뭔 돈이 있냐고 매번 그래.그 것 하나 가지고 내가 이러지는 않는다고. 한 날은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사람은 없고 보따리만 현관문 앞에 있더라고. 뭔고 싶어 조심해서 풀어봤지. 작은며느리가 반찬을 조목조목해서 아들 편으로 보냈네. 아이고, 그것이 코빼기도 안보이고 줄행랑을 친 거라. 들어와 물이라도 한잔하고 가면 될 것을. 섭섭한 마음에 죄 없는 며느리한테 전화해서 쟤는 왜 그러냐고 쉰 소리를 해댔어. 며느리가 그러대. ‘엄니랑 산 세월이나 저랑 산 세월이 비슷한데 엄니가 못 고친 거, 저라고 고칠 수 있겠어요’ 참 할 말이 없데.어제는 말이야, 늙은이 생일이라고 다섯 자식에 손자들까지 다 모였어. 받은 봉투가 두둑했지. 환갑이 다 돼 가는 쌍둥이 생일이 이틀 뒤인데 어미가 되어서 받고 그냥 있을 수가 있나. 봉투를 두 개 만들었디라. 밥을 먹다, 둘한테 똑 같이 봉투를 내밀었지. 내 선물이라면서 말이야. 그래, 할마이가 손자들 앞에서 폼도 좀 잡고 싶었다. 선수는 여느 때처럼 고맙다면서 쓱 지 주머니에 집어넣는데 차수는 또 그냥 쓰지 뭘 주느냐며 몇 번이나 손사래를 치는 거라. 내민 손을 도로 집어넣을 수가 있나. 지 마누라가 내 표정을 보고는 받으라고 옆구리를 쿡쿡 찌르더라고. 마지못해 받아서는 어쩌는지 알어? 바로 옆에 앉은 지 아부지 주머니에 구겨 넣네.나는 한숨을 푹 내쉬는 할머니에게 안 받으려는 돈을 왜 주느냐고 물었다.걔들이 클 때 못해준 게 생각나서 그렇지. 그 시절, 사람 사는 게 다들 빤했지. 겨우 풀칠이나 할 정도라 노상 아껴 쓰라는 말은 기본이고 돈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니라. 시어른 모시고 다섯이나 되는 자식 건사하자니 그렇게 안 하고는 살 수가 없었거든.살다보니 그것마저 다 떨어 먹고 걔들이 초등학생 때 서부동으로 이사를 갔디라. 그 동네는 전깃불 없는 집이 태반이었거든. 밤만 되면 암흑천지라. 쌍둥이 아니랄까봐 맨 날 천 날 둘이 붙어 돌아다니더니만 어디서 카바이드 등을 구해 온 거라. 카바이드라고 아나? 예전에 포장마차 같은데서 많이 했디라. 그걸 어린 것들이 뭘 잘못 만졌는지 고마 폭발을 하고 말았재. 선수는 눈알이 빠진 거 같고 차수는 머리 한 귀퉁이가 날아간 것같이 피를 철철 흘리면서 나자빠졌는데 아이고,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린다. 어미한테 주고 싶었다는구먼. 그 날이 아직도 내 눈에서 나가질 않네. 차수 지 흉터는 머리카락으로 감추면 내 눈에 안 보이는 줄 아는 모양이재. 그 때 카바이드 등만 켜졌어도…한숨이 삼킨 마지막 말이 할머니 눈에 얼비췄다.

2023-04-12

을미(乙未)

육십갑자 중 서른두 번째에 해당하는 을미(乙未)다. 천간(天干)의 을목(乙木)은 화초나 풀을 뜻하며, 지지(地支)의 미토(未土)는 메마르고 열기가 많은 땅이다. 동물로는 양순한 양이다.을미일주는 물상으로 ‘사막의 선인장’이다. 생명력 강한 화초가 건조한 땅에 놓인 형국이다. 내면에 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발현이 쉽지가 않다. 삶에 고난이 많지만, 외유내강형이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끈기와 예리한 촉이다. 부드러운 듯 보이지만 예리한 촉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강한 끈기와 집념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안으로는 재물을 만드는 능력 또는 융통성, 지적 호기심과 남을 설득하는 능력, 자신의 뜻을 현실적으로 풀어가는 돌파력이 돋보이는 일주다. 대체로 자유롭고 씀씀이가 크다는 특징이 있다. 의외로 돈을 잘 모으지만 지출이 크지 않은 편이다.을미(乙未)의 미토(未土) 양(羊)은 순(純)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산양처럼 아주 살벌하다. 절벽에 살고 다리는 짧지만, 싸울 때는 목숨을 걸고 죽을때까지 싸운다. 마음이 급해서 성질이 나면 앞뒤도 보지 않고 누구 말도 듣지 않는다. 그러면 안 되는데도 큰일을 앞두고 대사를 그르친 민비(1895년 을미사변)처럼 자신도 주변도 모두 망가진다. 결국 인화(人和)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된다.중국 명나라 육작(陸灼)이 지은 애자후어(艾子後語)에 나오는 이야기다. 애자(艾子)는 뜰 안에다 양을 기르고 있었다. 양은 들이받기를 좋아했다. 사람이 나타나면 쫓아가서 뿔로 받곤 하였다. 애자의 제자들은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애자를 찾아가서 “선생님의 양들은 모두 수놈이라서 거칠고 사납습니다. 저희들이 양들을 거세하고자 하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성질이 온순해질 것 같습니다”라고 청하였다. 그 말을 듣던 애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들은 아직 잘 모르는군. 임금을 모시는 사람들을 보게. 모두 거세를 당하여 사나이의 성(性)을 갖지 않았지만, 사나이들보다 훨씬 더 거칠고 사납지 않는가?” 명대 환관들의 정치참여를 비판한 것이다. 힘없는 양이지만 권력이 생기면 재물이 들어와서 본분을 망각하여 쉽게 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을미의 특성은 인간관계에서도 낯을 많이 가리는 터라 마음이 잘 맞는 소수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의견이나 성향이 다른 사람들은 밀어내는 특성도 있다. 이런 기운에 사로잡힐 때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욕망과 삶의 원칙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지혜가 필요할 듯하다.을미일주에는 백호살이 있다. 백호살이란 과거 호랑이가 불시에 민가로 내려와 사람의 목숨을 위협했던 것처럼 예측할 수 없는 사고의 기운을 뜻한다. 백호는 한 마디로 강한 것을 다루는 재능이 있어 험한 세상에 잘 대처할 수 있는 힘을 내재하고 있다. 능력이 비범하여 자신의 능력을 배로 발휘할 수 있기에 부자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살 중의 하나다.부부 사이의 금슬도 좋지 않고 배우자 건강 또는 부모형제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므로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질병과 사고 등 신변에 이상이 생길 경우 단순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대한 사고와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특히 교통사고다. 한 해에 교통사고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하는 숫자가 2백만 명에 이른다.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은 주변 사람들을 고통의 늪에 빠지게 한다.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1913∼1960)는 1960년 1월 4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다. 청각장애인 어머니와 가난 속에서 자랐다. 하층민에 속한 아이는 초등교육을 졸업 한 뒤 곧바로 노동자가 되는 것이 그 당시 정해진 진로였다.그렇지만 초등학교 교사 루이 제르맹은 가난했지만 지적 탐구에 강한 호기심을 보인 카뮈를 발탁해 중학교 장학생시험을 치를 기회를 주었다. 카뮈는 당당하게 장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문학과 철학에서 그의 재능을 깨닫게 해 준 장 그르니에 교수를 만났다. 그러한 주변의 도움으로 성장하여 1957년 44세 젊은 나이에 소설이방인으로 노벨문학상 수상했다. 그는 수상 연설을 루이 제르맹 선생에게 헌사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17세 때는 결핵으로 학업도 중단하고, 부조리라고 부르는 비극적인 감정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살고자 갈망하였다. 카뮈는 삶의 부조리란 선한 일에는 선한 결과를 얻고, 악한 일에는 악한 결과를 얻는다는 합리적 관점이 적용되지 않는 세계와 그 세계를 향해 합리적인 이해를 얻고자 애를 쓰는 인간 사이에 놓여 있는 거대한 수수께끼 같은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이해할 수 없지만 인간과 세계 사이에 분명히 자리 잡고 있는 부조리를 평생 탐구했다.1960년 1월 4일, 휴가를 마친 그는 기차로 파리로 갈 계획이었다. 때마침 출판사를 운영하는 친구 갈리마르가 자기 차로 가자고 제안했다. 동승하여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47세 나이에 죽은 것도 어떤 필연에 의한 것인지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차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죽음, 그러니까 부조리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생을 마친다. 그는 생전에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만큼 부조리한 것은 없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어버렸다.노자 도덕경 5장에 ‘천지불인(天地不仁) 이만물위추구(以萬物爲芻狗)’라는 구절이 있다. 천지는 어질지 않아서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강아지와 같이 여긴다. 자연은 스스로 정해진 법칙에 따라 운행할 뿐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무관심한 것이다.인간의 합리적 물음에 대답하지 않는 세계, 그러한 세계를 상대로 부조리한 감정을 느끼는 인간은 한마디로 부조리를 느끼는 인간인 것이지 인간이 부조리한 것은 아니다. 카뮈는 부조리란 피하거나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하고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2023-04-12

스트레스로 스트레스 날리기

나선택 포항 행복한의원장 “소화가 안되고 배가 아파서 내시경 검사를 했는데 별 이상 없고 신경성이라고 해요” 진료중에 심심찮게 듣는 말이다. 신경성이라고 하는 것은 스트레스가 원인이다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왜냐하면 스트레스도 디스트레스(distress·나쁜 스트레스)가 있고, 유스트레스(eustress·좋은 스트레스)가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라는 말은 라틴어 strictus(꽉 조이는), stringere(단단히 죄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어떤 자극을 받으면 그에 반응해서 신경을 바짝 긴장 시켜서 나의 생존과 안녕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스트레스(stress)인 것이다.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기분 나쁜 일, 억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수시로 겪는다. 이런 일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면 인간은 놀람-저항-기진맥진의 단계를 천천히 거치면서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이런 것을 디스트레스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 받는다고 할 때 그 스트레스다.스트레스는 심장관상동맥질환의 위험인자로서 급성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스트레스는 고혈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교감신경이 흥분하면 아드레날린의 분비가 증가하고 이의 작용으로 혈압이 상승한다. 목덜미가 아프다, 어깨가 쑤신다,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다, 사방이 결린다 등의 만성통증증후군 역시 스트레스 때문에 온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슐린 요구량이 증가하여 당뇨병이 악화된다. 간 경화증, 간암 발생이 증가한다. 만성폐쇄성 폐질환, 폐기종, 만성기관지염, 폐암 발생도 증가한다.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생기고, 비만을 일으키고, 불감증, 월경불순, 발기불능 등의 성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디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할 만하다.한방에서는 디스트레스를 화병, 울화 등으로 표현한다. 향부자, 황련, 황금, 계지, 소엽 등의 약재를 활용하여 울체된 기를 풀어주는 약을 쓰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고, 수면과 배변 상태 등이 좋아진다. 침과 사혈요법, 추나 요법 등을 잘 활용하면 뭉친 근육을 풀고 혈액순환을 개선시켜 디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각종 통증을 쉽게 제어할 수 있다.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정적인 일만 겪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상황이 부정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면, 긍정적인 일에는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까? 이것을 유스트레스라고 한다. 어릴 때 달리기 시합 전에 느끼던 (기분 좋은)긴장감, 설렘, 흥분 등이 유스트레스의 대표적인 반응이다. 유스트레스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고 동기부여와 성취욕을 높이며, 집중력 증가, 신체 활력 증가, 면역 세포를 활성화 시키는 등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라고 할 수 있는 유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자주 만든다면, 기분 나쁜 긴장감인 디스트레스가 쌓일 틈이 없어질 뿐 아니라, 쌓여 있던 디스트레스도 없어진다. 악기 연주, 노래 배우기, 춤 배우기, 외국어 배우기 등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유스트레스가 늘어난다. 등산, 여행, 산책, 수영 등의 운동을 할 때도 유스트레스가 늘어난다.

2023-04-12

세월호 참사 9주기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오는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9주기이다. 9년이 흐르도록 사고의 원인은 밝혀지지 못했고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안산에 조성하기로 한 생명안전공원은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교통사고 운운하던 여당의 유력 정치인은 여전히 그 소신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에 쓰인 돈을 예산 낭비라고 비판하거나 자식을 잃은 부모를 비아냥거리는 시선도 변하지 않았다.세월호 참사는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사회적 재난을 대하는 사회의 구조와 인식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전히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짚어보아야 할 대상이다. 2014년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수많은 말과 글이 이어졌고, 참사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며 무엇을 바꿀지를 적어놓는 사람도 많았다. 당시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으나 그 눈물이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사죄의 표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무엇보다 온라인에 익명으로 숨어 있던 혐오 세력이 가시화된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2014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단식투쟁 중이던 유가족들 바로 앞에서 극우 세력이 폭식 투쟁을 진행했다. 이 사건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음지에서 존재하던 혐오의 감정이 광장으로 가시화되고 미디어를 통해 여과 없이 공유됐다는 점에서 ‘혐오 사회’의 제도화를 알리는 것이었다. 시간의 속도 앞에서 변화를 다짐하던 사람들의 의지도 약해져 갔다. 약해진 의지와 혐오라는 감정은 멀리 있지 않았다.세월호의 출항부터 침몰까지의 과정, 언론의 오보, 이후 이 모든 사건에 대한 국가 권력의 대응까지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 구조 전반에 걸친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폭식 투쟁이 상징하듯 제도와 개인의 감정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 권력이 자행 혹은 묵인하는 폭력의 메커니즘이 평범한 일상에 얼마나 깊게 개입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2022년 발생한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인식과 판단의 문제가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이번에도 국정조사까지 진행했지만, 사고원인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자식을 잃은 부모에 대한 혐오성 발언도 등장했다. 사회적 참사를 개인의 일탈에서 비롯된 사건으로 보는 시각도 유사하다. 9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나? 자본을 위한 국가 정책이 개인의 삶과 깊게 결부되며 비슷한 유형의 참사가 반복되고 있는 상황은 우연이 아니다.이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까?’가 아니라 ‘우리는 왜, 바뀌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은 익숙하다. 하지만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왜 사회는 그리고 우리는 바뀌지 않을까? 질문을 이렇게 던지면 조금 다른 것이 시야에 들어올 수 있다. 바뀌지 못하는 이유를 찾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부터 논의하자.

2023-04-12

直指를 잊었는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인류 소통의 역사에 혁명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오늘 경험하는 정보의 홍수는 20세기 중반에 시작된 컴퓨터의 보급이 일으킨 소통의 혁명이다. 세계사는 그보다 앞선 ‘구텐베르크(Gutenberg)의 인쇄술’을 소통혁명의 원조로 꼽는다. 교황으로 대표되는 교회나 왕실이 주도하는 상류사회에나 접근이 가능했던 성경을 비롯한 문건들이 밀물처럼 활자술로 인쇄되어 나오기 시작했으니, 가히 시민들을 위한 소통의 혁명이 시작된 셈이었다. 구텐베르크의 성경이 처음 인쇄된 1455년을 소통혁명의 기원으로 삼는 까닭이다. 보통사람들에게 비로소 눈이 열리고 생각이 트이는 혁명이었음에 틀림없다.직지(直指)를 기억하는가. 고려말 간행된 직지는 세상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이다. 1377년에 세상에 나왔으니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78년 앞선 활자인쇄물이다. 유네스코(UNESCO)도 직지의 문명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세계의 기억유산 (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하였다. 결정위원장이었던 벤디크루가스(Bendik Rugaas)는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물임을 인정한다’고 하였다.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회를 열면서 직지를 다시 한번 세상에 내어놓는다. 도서관 수장고에 보관된 직지는 1973년 공개된 이후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안타깝고 아쉽다. 구텐베르크의 성경보다 한참이나 앞선 금속활자 인쇄물이었음이 밝혀졌지만, 직지는 여태 ‘혁명적인 인쇄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서양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구텐베르크 성경은 교회의 그늘에 갇혀있던 성경을 인쇄하여 일시에 유럽전역으로 퍼져나갔던 사실이 있었다. 반면, 직지라는 인쇄술은 연이어 역사에 흔적을 남겼다는 근거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셈이다. 기술의 진보가 대중의 수용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한 탓이다. 혁명이라 일컫기엔 파급력이 미치지 못하였다는 평가가 아닌가.무엇을 해도 마지막 평가는 보통 사람들의 손이 결정한다. 나라가 어지럽다. 경제가 위태롭고 교육이 위험하며 외교가 걱정스럽고 안보가 아슬아슬하다. 선출하여 믿으며 맡긴 이들이 최선의 지혜를 모아 잘 꾸려가길 바라지만, 보통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국민을 안심시키는 정부가 되었으면 하지만, 국민들이 생각을 모아 정부가 하는 일에 조언하여야 한다. 실수와 실책은 겸허히 인정하고 국민의 인정을 회복하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 판단을 내릴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국민이 수용하고 밀어줄 때에 정부의 정책에 동력이 생긴다. 국민이 실망하여 등을 돌렸던 아픈 과거의 기억이 있지 않은가.직지가 인류문명에 기여했던 성과를 세계인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정부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땀흘리는 노력도 평가되어야 한다. 국민의 일상에 힘이 되고 나라의 앞길에 덕이 되는 정책들을 펼쳐야 한다. 정부는 국민의 호기심과 궁금증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하고, 국민은 정책의 추이를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 국민이 깨어야 나라가 산다.

2023-04-12

‘소가 사람 수보다 더 많다’

홍석봉 대구지사장 “거짓말 좀 보태서 소가 사람 수보다 더 많다”지난 11일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하는 국회 전원위원회에서 국민의힘 김형동(안동·예천) 의원이 한 말이다. 인구소멸 위기의 경북 북부지역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현재 인구수 기준의 선거구를 지역 대표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선거구제 개편에 힘을 모아달라고 했다.경북 북부 안동·예천·영주·봉화·상주·문경 지역의 의원 수는 11대 국회(당시 1선거구당 2석의 중선거구제) 때 10명에서 현재 4명으로 줄었다. 경북 북부 11개 시군의 면적은 1만786㎢다. 7천433㎢의 충북보다 훨씬 크다. 그런데도 충북은 국회의원이 8명이다.현행 선거제도를 유지할 경우 22대 총선의 수도권 의석수는 253석의 지역구 의석 중 128석으로 과반을 넘게 된다. 1981년 11대 국회 당시 서울·경기 국회의원 숫자는 52명에서 2020년 21대 때 121명으로 2배 넘게 늘었다. 11대 때 대구·경북 국회의원 숫자는 26명이었다. 21대 때는 25명으로 1명 줄었다.선거구 획정 시 지방 소멸을 고려, 지역구 면적 기준의 상한을 두거나 인구 편차 기준을 완화하는 등 지역 대표성을 반영하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인구수 기준에서 벗어나 지역 면적과 생활권 요소를 선거법에 반영해야 한다.19년 만에 국회 전원위원회가 열렸다. 각종 안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전원위에서 21대 총선 당시 ‘위성정당’ 논란을 초래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손봐야 한다. 이와 함께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요소를 선거법 개정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여야 간, 의원 간에도 이해관계가 얽혀 결론 도출이 쉽지는 않겠지만 말 잔치로 끝나서는 안 된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4-12

도서관의 새로운 변신, 미래창고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하늘이 점차 맑아지고 만물이 생기를 더해가는 청명(淸明) 즈음은 독서와 공부하기에 좋은 때다. 꽃그늘 아래서 책을 읽거나 연초록 잎새 소리 들으며 글을 쓰게 된다면? 당나라 문호 한유는 ‘마을과 들판에 서늘한 바람 불어오는(新凉入郊墟)/가을 무렵에 등불을 가까이할 수 있으니(燈火稍可親)/책을 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簡編可舒卷)’고 읊었지만, 서늘함이 어찌 가을뿐이랴. 날씨와 계절의 변화는 그만큼 사람의 감성을 움직일 수도 있기에, 비교적 평온하고도 청량한 때에 맞춰 책과 글을 가까이하고 독서를 권장하기도 한다.그래서일까? 정부는 올해부터 관계법령에 따라 ‘도서관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 오늘 4월 12일이 바로 제1회 ‘도서관의 날’이다. 1964년부터 시작된 도서관 주간은 독서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지역주민들의 도서관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매년 4월 12~18일을 지정, 운영해서 올해로 59회째를 맞고 있다. 도서관이 국민의 정보기본권 신장과 사회의 문화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지식문화 선진국을 창조하는 데 중요한 기반시설 중의 하나임을 인식하자는 것이 도서관법의 기본이념이다. 또한 도서관의 가치가 사회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그 역할을 다하며, 국민의 자유롭고 평등한 접근과 이용을 위해 도서관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보장한다는 내용 등이다.지식과 창조성의 원천이기도 한 도서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료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공공장소이며, 제대로 된 정보와 자료의 제공으로 이용률을 극대화하도록 봉사하는 시설이다. 또한 개인단위로 운영하여 자료를 공유하는 ‘작은 도서관’ 사업이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큰 도서관은, 공유경제의 효과적인 비즈니스 모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도서관의 기능을 별도의 건물이나 특정영역이 아니라, 업무적인 공간에서 자유로이 이용하며 지식을 공유하고 토론·소통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곳이 생겨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작년말에 개관된 경상북도 도청 안민관 1층 로비에 도민의 책 쉼터이자 지식공유 공간인 ‘미래창고’ 도서관이 그곳이다.‘미래창고’는 ‘도정 현안에 대한 해답과 미래를 위한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지식이 축적된 저장소’라는 의미의 명칭 공모를 통해 선정된 도서관으로, 본관 로비에 있던 구 당직실을 헐고 그곳에 독서 쉼터를 만든 전국최초의 사례이다. 일반도서 2만여 권과 다양한 이용자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세대별 추천도서, 노벨문학상 수상도서 등의 북큐레이션과 무료 도서나눔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북도내의 향토문인 전용 북코너를 도서관 입구에 개설, 책자를 비치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세상에서 가장 큰 보물 중의 하나인 도서관은 ‘무료로 다니는 대학’이자 언제나 희망이 존재하는 곳이다. 오늘부터 1주일 동안의 ‘도서관 주간’에 서울 도담도담 한옥도서관이나 인천 누리공원작은도서관, 청주 생태자연도서관 등 특색있고 이색적인 가까운 동네 도서관에서 책과 만나는 소중한 기쁨을 누려보면 어떨까?

2023-04-11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김경외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우리나라의 인구 소멸 문제가 점점 더 현실화되고 있다. 이는 국가의 존폐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35년부터는 총 인구수가 감소하기 시작하고 2060년에는 총 출생아 수가 20만 명 이하로 집계될 것이라고 한다. 사실 이 문제는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논의된 사안이 아니다. 이미 10~20년 전부터 인구감소에 대한 경고는 여러 데이터를 통해 보고되었고, 관련된 여러 통계값들의 변동 추이는 우리 사회가 심각한 인구 절벽의 문제를 직면할 것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인구감소 문제는 우리가 20년 전부터 여러 데이터를 통해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던 객관적 사실이었다는 것이다.이처럼 데이터로 발견한 하나의 사실은 매우 객관적이다. 데이터 값 그 자체의 꾸밈없고 편향되지 않은 고유한 특성은 주관적 견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가 덜 편향되고 덜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도와준다. 아무리 죄가 명백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죄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그에게 유죄를 선언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그렇기에 데이터를 통해 알려진 인구 소멸 위기에 대한 우려는 그 어떤 정치적 또는 상업적 의도가 내포되지 않은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 정보였다. 그렇다. 우리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시간도 충분했다. 다만 기성세대라고 하는 우리 모두가 국가의 존폐가 달린 이 심각한 문제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이를 제대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는 청년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을 거부하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고, 그저 가시적인 성과 창출에만 집착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동기부여(세금 감면, 부동산 청약 우선순위, 공공 정책 지원 등)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좀처럼 변하지 않는 지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통계측의 40년 후 예측치 역시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결국 데이터 활용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데이터를 통해서 객관적인 사실을 찾아내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이 객관적인 사실의 경중을 이해하고 판별하는 가치 체계이다. 물론 데이터의 양과 종류가 더 늘어나다보니 데이터로부터 수집한 수많은 객관적 사실들 중에 중요도를 판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무엇이 더 중요하고 선행되어야 하는 문제인지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한다.데이터는 결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다만 데이터를 활용하는 우리가 그 의미와 중요성을 가리는 잘못된 또는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 의사결정을 내림으로써 수많은 데이터가 경고하고 있는 객관적 예측들을 너무 쉽게 간과할 뿐이다. 현 사회와 더 나아가서는 우리 자녀들이 살게 될 미래 사회를 더 유익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데이터가 제공해주는 유익하고 객관적인 여러 정보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겸손함과 그러한 정보들을 잘 판별하여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현명함이 우리에게 더욱 필요할 것이다.

2023-04-11

봄꽃의 에피파니

산수유와 매화가 먼저 피고, 진달래 개나리 피고, 목련 핀 다음 벚꽃과 라일락 피던 시절은 추억이 됐다. 지구 환경을 생각하면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이상고온으로 개화 순서가 뒤죽박죽이 돼 한꺼번에 핀 봄꽃들을 보며 어쨌든 눈과 마음 즐거운 봄이다.벚꽃과 개나리가 색을 나누어 늘어선 강변을 걷는데, 내가 보는 봄꽃 풍경이 불현듯 특별하게 느껴졌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포레스트의 엄마가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열어보기 전에는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른다”고 한 대사를 아직 기억하는지 꽃을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초콜릿 상자’가 떠올랐다. 봄꽃은 매년 피지만 2023년의 봄꽃은 오직 이 봄에만 볼 수 있다고, 놓치면 다시 붙잡을 수 없는 아름다운 찰나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했다.상상해보자. 인간이 100년을 산다고 했을 때, 우리는 초콜릿 100개가 든 상자를 선물 받은 것과 같다고. 칸 하나에 든 초콜릿은 그 해에 먹지 않으면 폐기된다. 누군가는 100개를 다 먹고, 또 80개를 먹기도 하는데 어떤 이는 한 개도 까먹지 못한 채 상자를 반납한다. 이때 ‘초콜릿’은 봄꽃의 화사함, 여름의 무성한 녹음, 가을 단풍, 차고 맑은 첫눈의 다른 이름이다. 매년 돌아오지만 그해의 초콜릿은 오직 그 해에만 먹을 수 있다.제임스 조이스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장면이 갑자기 그 평범함이라는 외피를 벗고 진리의 얼굴을 보여주는 순간을 ‘에피파니(Epiphany)’라고 불렀다. 에피파니는 ‘나타남’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에피파니아(epiphaneia)에서 유래한 단어다. 종교에서는 순간적으로 계시를 느끼거나 비전을 보게 되는 직관적 경험, 즉 ‘신’을 보는 체험을 말한다. 문학작품에서는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 혹은 독자가 어떤 깨달음을 얻는 것을 전반적으로 일컫는 말이며, 작가가 일상 속의 평범한 소재를 통해 독자에게 계시나 깨달음을 주는 기법을 뜻하기도 한다.조용필의 ‘고추잠자리’에는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 따러 왔다가 잠든 날.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뱅뱅 날아가는 고추잠자리”라는 노랫말이 있다. 볕 좋은 가을날 야트막한 뒷동산에 올라 네잎클로버 찾고, 코스모스 꺾으며 놀던 한 소년이 잠깐 낮잠에 들었다 깼다. 때로 낮잠에서 깨면 무서울 정도의 이질감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 그런 모양이다. 저 구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태어나 처음으로 자기존재의 기원과 실존의 유한함에 대해 고뇌하기 시작한 순간 근원적인 고독감과 혼란감이 소년을 집어삼킨다. ‘가을빛 물든 언덕’이 평범함이라는 가면을 벗고 섬뜩한 진리를 드러낸 에피파니의 순간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어느 지나간 날에 오늘이 생각날까? 그대 웃으며 큰소리로 내게 물었지. 그날은 지나가고 아무 기억도 없이 그저 그대의 웃음소리뿐…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가는 걸…”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뿐’에는 데이트 하는 연인이 등장한다. 영화 보고, 맛집 가고, 사진도 찍고, 사랑의 말들을 주고받으며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중 여자가 남자에게 묻는다. “자기야, 나중에 세월이 한참 지나도 오늘이 생각날까?” 정말 그 ‘나중’이 됐는데, 그녀는 내 곁에 없고, 아무 기억도 없다. 사랑의 기억과 애틋한 약속들, ‘의미’를 지닌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시각적 인상인 동시에 일종의 상징 언어인 미소 또한 흩어진다. 긴 세월이 흐르고 남은 것은 그저 ‘웃음소리’뿐이다. 의미를 지닌 ‘말’이 아니라 오직 소리라는 감각만 주체에게 남는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떠다니는 어느 추억의 거리에서, 남자는 에피파니를 경험한 것이다.이 봄, 벚꽃과 개나리, 목련이 나란히 피어 있는 산책로를 걸으면서, 잉어들이 연안에서 헤엄치고, 오리가 수면에 내려와 앉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내가 기다리는 건 에피파니의 얼굴이다. 평범한 일상적 장면이 특별해지는 순간, 나를 둘러싼 세계의 빛깔과 질감과 음악이 달라진다. 그 체험을 통해 나는 너무 오래 묵은 내 세상을 갈아엎고 새 꿈과 새 맘을 가져보려는 것이다. 초콜릿 상자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에피파니는 초콜릿을 열심히 꺼내 먹으려는 이에게 허락되는 특별한 선물이다. 나가서 걷고, 열고, 보자.

2023-04-11

취향 넓히기

자신의 취향을 잘 알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분명히 고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있다. 옷을 고를 땐 어떤 브랜드를 선호하고 좋아하는 커피 취향은 어떤 지 분명히 말할 수 있으며,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면 수고를 들여서라도 지식을 익히고 깊게 파고든다. 선호의 기준과 취향이 명확해서 그들이 사는 삶은 무언가 견고하고 완벽해 보인다.취향이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취향을 갖고 있던가? 내 주변 인물들은 어떤 단어로 나를 설명할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나는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나는 대체 뭘 좋아하는 거지?나는 내 자신이 무색무취의 재미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고 싫어하는 것도 없다. 이것저것 일을 벌리는 건 많이 하지만 꾸준히 한다거나 뛰어나게 잘하는 것이 없다. 좋아하는 운동도 잘 모르겠다. 한때 런닝이 너무 좋아서 동호회도 가입하고 런닝용 운동화와 운동복까지 다 갖추었건만 날이 추워지면서부턴 뛰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어느 순간 관심사 밖으로 밀려났다. 좋아한다며 요란을 떨던 마음이 식을 때 무언가 심심한 듯한 허무함이 든다. 그래서 런닝복이나 운동화를 안 보이는 곳에 깊게 숨겨두고 외면하고 있다.최근 퇴근 후에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침대 위에 누워 하루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는 가벼운 문화를 소비하는 것이다. 짧게 압축한 게임 영상이나 예능 편집 영상 등 무언가를 이해하고 행하는 데에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주로 찾아본다. 또는 피로감과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 유명 패션 브랜드 사이트에 접속 후, 실시간 옷 인기 순위 기준으로 마음에 드는 옷을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그러면서 인기 순위에서 고른 패션 아이템들이 곧 나의 취향이자 센스 있는 안목이라 생각하며 으쓱해진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고민조차 할 수 없도록 스스로 취향과 개성을 실종하게 만드는 못된 습관임이 분명하다.하지만 취향을 갖는다는 건 어렵다. 취향을 갖기 위해선 일정의 소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기 위해 헬스장을 끊으려면 회원권 비용을 내야하고 같은 취미를 공유하기 위해 동호회에 가입하려면 각종 활동비부터 내야한다. 비즈십자수나 펀칭니들 같은 새로운 취미를 도전해볼까 싶으면 만만치 않은 재료비부터 든다. 여유 없이 생활에 쫓기게 되는 순간 취향은 사치라 여겨진다.그래서 나는 새로운 취향에 관심이 가면 얼마 못가 금방 시들해졌다. 취향을 위한 지속적인 소비나 수집을 하는 이들을 보면 낭비를 일삼는 피곤한 삶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취향을 위한 소비는 과한 지출이라 여겼으며, 내가 당장 얼마나 벌며 얼마나 저축을 하는 지가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생각이 얼마나 어긋나 있었는지, 올바르고 분명한 취향을 지닌 이들을 보며 깨달아 버렸다. 취향을 확보한다는 건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고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즐겁고 유쾌한 것을 인지하여 취향에 자유롭게 빠져들다 보면 나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고 소중히 다루게 된다. 아리송한 삶 속에서 취향의 가치를 발굴하여 지속하는 것은 건강하고도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 뒤늦게 깨달아버린 것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세상의 불합리함을 보며 삶은 불공평하고 덧없다며 심드렁하게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것보단 삶의 유한함 속에서 철학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가장 나다운 삶을 살아가려는 끈질김이 중요한 태도였다. 취향을 찾기 위한 호기심으로 나의 가치를 닦아 빛내어 나아가 더 올바른 이념과 인간성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음이 분명했다.이번 주말에 나는 내 취향에 걸맞은 반지를 3개 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각 손가락에 딱 들어맞는 반지를 내려다보며, 만족감에 가슴이 벅차 집에 가는 내내 호들갑을 떨었다. 언젠가 나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옷과 태도 그리고 마음가짐이 잘 정돈되어 삶을 살아가는 만족감이 강하게 드는 때가 올 것이다.집에 돌아와 반지를 벗어놓고선 타인의 취향으로 덧칠된 방을 둘러보았다. 나를 찾기 위해 깊이 파고드는 과정은 궁극적 목표에 비해선 다소 요란해 보이지만, 그런 어설픔도 무언가 애틋해서 벗어둔 반지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거울을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당시의 얼굴빛은 근래 들어 가장 환했을 것이다.

2023-04-11

엠폭스 비상

우정구 논설위원 세계보건기구(WHO)는 ‘원숭이 두창(MONKEY POX)’이란 병명을 지난해 11월 엠폭스(MPOX)로 변경해 부르기로 했다.특정 문화 및 지역과 관련해 감염자에 대한 차별과 낙인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우리 질병관리청도 이에 대응해 한국어 표기를 ‘원숭이 두창’이 아닌 엠폭스로 사용할 것을 의료기관 등에 권고했다.엠폭스는 중서부 아프리카 열대수림에서 서식하는 원숭이 사이에서 전파되는 바이러스성 질환이다. 특정 지역의 토착병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전세계로 퍼져 있다. 세계적으로 근절된 것으로 알려진 천연두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이 질병에 감염된 동물과 접촉한 사람도 감염되는 인수공통 전염병이다.2022년에서 2023년 4월4일까지 전세계 110국에서 8만6천여 명의 엠폭스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돼 있다. 사망자도 112명이나 된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6월 첫 환자 확인후 6명의 엠폭스 환자가 발생했다. 특히 국내 6번째 환자는 최근 3개월 이내 해외여행 경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국내에서의 지역사회 감염도 우려된다고 한다.코로나 팬데믹이 마무리 단계에 들면서 해외여행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해외여행을 통한 엠폭스 전염에 대한 경고도 나왔다. 특히 일본과 대만에서 엠폭스 환자가 늘고 있어 해외 여행객의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일본은 현재 엠폭스 누진 환자가 95명에 달한다.“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피해와 고통을 생각하면 엠폭스 감염 경고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엠폭스 토착화 가능성에 대비하자는 의료계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 사회가 긴장감을 늦춰선 안되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4-11

좌파진영의 ‘친일몰이’, 지겹지도 않나

심충택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에 대한 좌파진영의 ‘친일몰이’가 갈수록 거칠게 진행되고 있다. 국익이나 이웃나라에 대한 기본적 예의는 찾아볼 수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반일프레임으로 집권당 지지율을 떨어뜨리겠다는 정치공학에만 몰두하는 모습이다.과학적으로 치밀하게 검증돼 우리 수산업계와 상인, 그리고 소비자의 불안을 없애야 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검증을 앞두고도 민주당과 좌파진영은 온갖 의혹을 쏟아내며 민심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들은 친일몰이로 나라를 둘로 쪼갤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태세다.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하는 일본 도쿄전력은 지난 2011년 원전 사고로 오염된 물을 현재 원전 부지 내 수백여 탱크에 보관하고 있다. 일본은 최근 이 오염수의 삼중수소(트리튬) 농도를 자국 규제 기준의 40분의 1인 1L(리터)당 1천500베크렐 미만으로 희석해 올여름부터 방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후쿠시마 원전 내 오염수 처리 과정은 지금 국제공신력을 가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검증 중이다. IAEA는 지난 5일 전문가들이 현장 조사를 벌인 내용을 토대로 작성된 4차 보고서를 통해 “일본 측이 IAEA 요구에 따라 보완한 정보를 바탕으로 도쿄전력이 오염수를 방류한 뒤 환경 영향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세운 프로그램이 신뢰할 수 있으며 지속가능한 방사선 보호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IAEA 현장조사팀에는 우리 원자력 안전기술원도 참여하고 있다.IAEA 발표 하루 후 민주당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저지 대응단’ 소속 의원 4명이 ‘후쿠시마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일본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신뢰할 수 없다’며 2박3일 간의 일정으로 직접 후쿠시마 현장을 찾았다가 거의 빈손으로 돌아왔다. 민주당의 친일몰이 속셈을 파악하고 있는 일본 정계나 도쿄전력이 이에 협조할 리가 만무했다.국내 한 좌파언론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부산에서 광역단체장, 국무위원들과 비공개 만찬을 한 횟집 상호가 ‘일광수산’인 점을 두고 ‘일광(日光)은 욱일기의 상징’이라는 황당한 비판을 했다. 지난 대선 당시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윤석열 후보의 60년 전 돌잔치 사진 속 화폐가 일본 엔화라고 주장하면서 “(윤 후보가) 일본과 가까운 유복한 연세대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했다가, 한국은행 발행 지폐임이 확인되자 머쓱해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일단 친일 공세를 하는 것이 좌파진영의 습관이 된 지 오래다. 일본군위안부 지원 단체 활동을 하다 국회에 진출한 윤미향 의원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기부금 유용 등의 의혹을 제기하자 “친일 세력의 모략극”이라며 억지를 부린 일도 있었다.윤석열 정부에 대해 근거없는 친일몰이를 하는 행위는 결국 국격과 국익을 해치게 된다. 수권정당을 노리는 민주당이 국익차원에서 일본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고민이 없는 것은 문제가 많다. 그저 사회갈등을 키워 정치적 이득만 취하려고 하고 있으니 국가 장래를 위해 걱정이다.

2023-04-11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보는 진정한 위로의 방법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2011년 3월 9일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은 2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실종자, 47만 명에 달하는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재해 복구 사업을 통해 도로나 건물 같은 인프라는 상당 부분 복구되었지만, 이재민들의 마음까지 치유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잃은 것은 가족, 연인, 친구, 반려동물, 마을, 학교, 고향처럼 ‘사망자·실종자 수’나 ‘재산피해액’이라는 숫자로 요약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따라서 ‘후쿠시마산 농산물을 먹읍시다’와 같이 경제적 손해를 벌충해주는 방식은 충분하지 않다. 재난 이전의 삶은 어떤 경제적 보상으로도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재난 피해자들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를 기반으로 위로를 건네는 일이다. ‘지나간 일은 빨리 잊고 새출발하라’는 식의 조언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들이 이 당연한 사실을 몰라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잃어버린 소중한 존재들(피해자 자신도 포함한)을 애도할 충분한 시간, 그리고 다정하면서도 지나치지 않은 관심이 필요하다. 이는 공동체 전체의 몫일 수밖에 없다. 재난 이후에도 여전히 그들은 이웃이자 동료 시민이므로.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러한 점을 매우 잘 알고 있는 창작자이다. 전작인 ‘너의 이름을’에서 그는 재난으로 인한 상실과 회복의 문제를 다뤘다. 이 주제는 최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도 반복된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엄마를 잃은 여고생 스즈메는 지진을 일으키는 ‘미미즈(거대 지렁이 괴물)’의 존재를 우연히 알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규슈의 미야자키현에서 도호쿠의 이와테현까지 일본 열도를 종단하는 이 여정에서 스즈메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받는데, 이는 재난 피해자인 스즈메를 사회가 포용하고 위로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스즈메는 비로소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재난 이후’가 아닌 ‘미래’를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조력자들이 민박집 딸, 스낵바 마담, 대학생처럼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 또한 감동을 더한다. 재난 피해자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평범한 시민들의 공감과 선의, 연대이기 때문이다.스즈메는 또 다른 재난을 막기 위해 싸우는 히어로이기도 하다. 거대한 괴물에 맞서는 스즈메의 용기는 그녀가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재난을 겪으며 죽음에 한없이 가까이 다가갔던 경험에서 나온다. 즉, 이 영화는 스즈메를 단순히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스즈메는 상실을 애도하고 ‘재난 이후’의 삶을 일상으로 바꾸기 위해 용감하게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영화라는 감독의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지난 십여 년간 우리 사회도 세월호 사건이나 이태원 참사와 같은 재난들을 겪어 왔다. 포항에서는 몇 년 전 지진으로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고, 작년에는 폭우로 인해 일곱 명의 귀중한 생명을 잃기도 했다. 우리는 이러한 상실들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위로해 왔는가. 피해자에 대한 동정과 금전적 보상으로 충분하다고 여겨 왔던 것은 아닌가.

2023-04-10

시 낭송문화에 관한 소고(小考)

오낙률 시인·국악인 수선화는 봄을 기다리며 살지 않는다. 다만 봄날에 피워 올릴 꽃대 하나 튼실히 준비하며 겨울을 살아갈 뿐, 그들은 더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준비하느라 오히려 짧은 겨울이 아쉬울지도 모를 일이다.수선화처럼 오늘날 많은 예술가의 삶도 그렇게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나름의 예술세계를 꽃피우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했던 삶을 고스란히 견디고 살뜰히 준비해온 예술혼이 작품에 배어 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그 예술작품에서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을까도 싶다.근래 들어 많은 사람이 시 낭송에 관심을 두면서 여기저기서 시 낭송대회가 열리고 있다.그러나 그 많은 시 낭송가 중에서 시 낭송의 정체성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고 낭송에 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새로운 하나의 예술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시 낭송의 정체성에 대해서 짧은 식견이나마 더듬고자 한다.자칫 시 낭송가를 단지 한 시인의 시를 외워서 대중 앞에 효과적으로 전달해 주는 시인과 청중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시 낭송이란 엄연히 이 시대에 성행하는 하나의 중요한 문화콘텐츠로서, 시 낭송가는 한 편의 시를 자신의 해석과 느낌에 맞게 재구성해서 시 낭송이라는 콘텐츠로 완성하는 예술가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시를 전달하는 전달자로서의 개념에서 벗어나 또 한 장르의 창조예술을 하는 독립적인 예술가로서 이 사회에 당당히 자리매김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수 있겠다.시와 낭송의 관계를 음악에 비교한다면 악보와 연주자의 관계와 같다. 작곡가는 작곡가 나름의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고 연주자는 연주자 나름의 예술가로 사회적 예우를 받듯, 시와 낭송가와의 관계에서도 엄연히 그에 따른 예술 행위가 각기 다르다는 점을 명백히 밝혀 그에 걸맞은 사회적 칭호와 장르적 지위가 사람들의 인식에서 안정적인 자리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일찍이 인간은 문학을 향유 하는 방법에서 음악이라는 예술 장르를 탄생케 하였음은 짐작으로도 알 수 있다. 시 낭송 또한 시 속의 음악적 요소를 찾아내고 목소리와 표정 그리고 퍼포먼스를 곁들여 시와 청중과의 관계를 연결해 주는 작업임은 이미 전술한 바이다. 따라서 시 낭송가는 단순히 시인이 쓴 시를 세상에 알리는 매체의 역할을 넘어 연극배우나 가수처럼 공연 예술가로 자리매김 받는 것으로, 그 칭호의 타당성을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 낭송은 낯설은 장르의 콘텐츠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시 낭송이라는 문화콘텐츠가 불꽃처럼 일어나는 것은 특정 몇 인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시 낭송이 대중에게 어필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만 필자만의 시각일 수도 있겠으나 시 낭송 무대에서 낭송되는 시가 대부분 함축성이 떨어지고 다소 긴 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시를 쓰는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조금의 아쉬움이라 할 수 있겠다.

2023-04-10

서양미술사 양식의 탄생 : 로마를 닮은 ‘로마네스크’

476년 게르만의 침략으로 서로마제국이 패망한 후 유럽은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사회는 급격히 변했고 사람들은 비참한 마음을 견뎌야만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새로운 천년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종말과 심판이라는 세기말적 공포에 휩싸였다. 새천년이 밝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의 마지막도 심판도 일어나지 않았다. 종말의 공포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안도했다. 신의 분노가 진정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고 작은 마을들은 서로 경쟁하듯 낡은 교회를 단장하거나 크고 웅장한 교회를 새로 짓기 시작한다. 이 시기 미술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중에서도 ‘양식’이라는 것이 출현한 것은 괄목할 만한 점이다.미술에서 양식은 스타일을 말한다. 개개인의 미술가들은 누구라도 각자 고유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미술에서의 양식은 개별 미술가들의 독특한 특징만을 뜻하지 않는다. 같은 시대 특히 같은 지역에 속한 미술가들은 의도하지 않더라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어 있다. 미술가가 되기 위해 받은 교육이나 지역에서 흔히 접한 미술이 자연스럽게 의식으로 스며들어 영향을 준다. 미술가들은 각자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서로 비슷한 형식을 지니게 되는데 이를 가리켜 양식이라고 부른다. 서양미술사의 시대구분은 대부분 양식에 따라 나누어진 것이다.10세기에서 11세기로 넘어가는 동안 미술에 양식이 관찰되는데 후대 미술사 연구자들은 그것에 ‘로마네스크(Romanesque)’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단어는 고대 로마를 가리키는 ‘로만’과 ‘~과 닮은’을 뜻하는 접미사 ‘-esque’의 합성어로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로마를 닮은’이라는 의미다. 양식을 가리키는 용어에 ‘로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서유럽 중세 기독교 미술에 라틴 다시 말해 로마문화가 녹아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이렇듯 로마네스크라는 개념에는 라틴어 문명권의 정신적 연대의식이 담겨 있으며 고대 로마의 미술이 중세 미술에 흘러 들어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중세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건축은 많은 요소들을 고대 건축에서 가져왔다. 교회건축이 보여주는 가장 기본적인 ‘바실리카’ 구도가 로마에서 온 것이고, 세례당이나 소규모 예배당을 지을 때 나타나는 중앙집중식 원형 구도는 고대 신전이나 영묘에서 가져 온 것이다. 돔이라 부르는 반구형 천장이나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아치 그밖에도 육중하고 두꺼운 벽면구조 또한 고대로마의 건축에서 차용한 것이다. 그렇다고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이 모든 것을 고대 로마로부터 가져온 것은 아니다. 어떤 것들은 중세인들이 새롭게 발명한 것도 있다. 예컨대 목재 버팀구조의 천장을 석조 반원통형 궁륭(Vault)으로 바꾸었는데 이 새로운 천장구조는 중세 교회건축 발달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으로 꼽힌다.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의 발전을 견인한 것은 수도원과 수도사들이다. 특히나 910년 무렵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클뤼니(Cluny)에 세워진 수도원은 미술사 발달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교회 개혁을 주창했던 몇몇 수도사들은 부르고뉴의 공작 기욤 드 아키텐느로부터 땅을 기증받아 클뤼니에 수도회를 창설했다. 교회 개혁의 선봉에 섰던 클뤼니 수도회는 남으로부터 밀려오는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기독교를 지켰고 스페인 사람들이 이슬람에 빼앗겼던 땅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성인 야고보의 유해가 묻힌 것으로 알려진 성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길을 계획하면서 스페인과 프랑스 기독교도 사이의 유대감을 돈독하게 다진 것도 클뤼니 수도회였다./김석모 미술사학자

2023-04-10

고령 지산동 고분군, 대가야를 품은 평온함

고령의 지산동에는 오래된 봉분들이 즐비하다. 주산의 등산로를 따라 조금 오르다 보면 나무들 사이로 빼곡하게 드러나는 봉분들을 만날 수 있다. 주로 산의 정상부 능선, 하늘과 맞닿은 곳을 따라 볼록하게 솟은 이 고분들은 옛 고령에 터를 잡고 4~6세기를 풍미했던 대가야 왕족들의 흔적이다. 그 아래 산각과 사면에도 능선만큼은 아니지만 직경 10m 내외의 중형고분들과 그 보다 작은 소형고분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스스로 천신과 산신의 후예로 여겼던 대가야인들은 죽은 후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에 터를 잡고 그들의 품으로 돌아가 평온을 즐긴다.‘산신인 어머니 정견모주(正見母主)와 아버지 천신이 결합하여 두 알을 낳았는데, 두 아들 중 하나는 대가야를 세웠고 다른 하나는 금관가야를 세웠다.’ 대부분의 건국 신화는 남성 중심의 사회를 대변하는 남신이 주가 된다. 그에 비해 고령의 건국 신화에는 신화 이전 모계 사회의 흔적과 여럿으로 나눠 다스리던 옛 사회의 모습이 남아있다. 이는 대가야가 오랜 역사를 지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후 ‘대가야국 왕후는 죽어서 산신이 되었’고, 사람들은 해인사의 정견모주 신당(지금은 없다)에서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약 100년 전까지도 산신제가 이어졌으니 정견모주에 대한 이 지역의 믿음이 굳건함을 알 수 있다.대가야의 역사는 옛 기록에서도 남아있는 유물이나 유적에서도 잘 찾아보기 힘들다. 주로 평가하기로는 삼국에 비해 고대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쓰러진 소국들의 연합체로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 밝혀지고 있는 바에 의하면 삼국시대가 아니라 사국시대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정도다. 고구려가 남하정책을 펼쳐 백제와 신라가 가야를 덜 견제하던 시기인 5~6세기 초, 대가야는 서쪽의 백두대간을 넘어 백제와 마주했으며 동쪽으로는 신라를 경계에 두었다. 신라의 영역인 낙동강을 교류의 창구로 활용할 수 없었던 대가야는 섬진강을 따라 길게 세력을 넓혀 독자적인 활로를 개척했던 것으로 추측된다.‘고령-거창-함양-운봉-구례-하동’으로 이어지는 섬진강 루트는 대가야에게 꼭 지켜야 하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이곳을 중심으로 진안 태평봉수대(太平烽燧臺)와 같은 군사시설이 40여 개나 밀집해 있으며, 여수 고락산성(麗水 鼓樂山城)이나 하동 고소성(河東 姑蘇城)과 같은 산성들도 찾아볼 수 있다. 모두 섬진강 루트를 중심으로 찾아볼 수 있는 옛 군사시설이다. 또한 진안 장수·장계분지 고분, 장수 삼봉리 고분군(三峰里 古墳群) 등 진안·임실·장수·남원 등에는 대가야식 고분군이 종종 발견된다. 촘촘한 물결 무늬가 특색인 고령식 토기와 가야계 수혈식 석곽묘(竪穴式 石槨墓)가 대가야의 영역이었음을 밝힌다.대가야의 지정학적 위치를 보면 내륙 고령이 중심이며, 서쪽으로는 기문·대사 지역에서 백제와 날을 세우고, 동쪽으로는 신라와 마주하고 있었다. 홀로 다른 나라와 교역하기에 어려운 지역으로 보이는데, 대가야는 중국에 독자적으로 사신을 보내 그 국가적 지위를 인정받은 적이 있다. 또한 오키나와에서만 생산되는 야광조개국자나 일본에서 발견된 금동관과 금세공품으로 보건대 일본과도 활발히 교류했음을 알 수 있다. 섬진강이 교류의 창구였을 것으로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대가야가 섬진강 루트를 통해 중국·일본과 교류했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많은 봉수대와 산성, 섬진강 상류의 가야계 고분이나 토기만으로는 가설을 증명하기에 부족하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대가야는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신라에게 빼앗기는 과정에서 결국 쇠퇴의 길을 걷는다. 어쩌면 당시의 험난했던 전선에서 섬진강 루트를 지키지 못해서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확장하는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백제를 돕다가 전쟁에서 패해서일지도 모른다. 대가야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기에 주어진 정황을 살펴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게다가 562년 이사부(異斯夫)의 공격으로 신라에 복속된 이후에는 더더욱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산등성이 위로 하늘에 맞닿은 촘촘한 고분군이 옛 영광을 노래할 뿐이다.한때는 야로(冶爐, 지금의 합천)에서 생산되던 풍부한 철광석과 섬세한 금동 제련술로 한반도의 한 지역을 호령하던 옛 대가야인들이 고령 주산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봄이 날개를 편 4월, 지산동 고분군 등산로를 천천히 거닐며 옛 대가야인들을 그려본다. 잘 정비된 등산길도, 산새들의 지저귐과 봉분을 호위하는 나무들도, 이곳을 찾은 등산객도 모두 어머니 산신과 아버지 천신의 품에 안긴 옛 대가야인들처럼 평온을 즐긴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4-10

반지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우리사회의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는 심각하다. 포퓰리즘과 진영논리, 편 가르기와 팬덤정치가 공동체의 지성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지성의 최후 보루인 언론과 지식인들까지 권력과 야합하여 반지성적 행태를 보이는가 하면, 반지성주의를 비판했던 대통령 자신도 언행불일치로 반지성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반지성주의 담론은 자기중심적 가치관과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고 있어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반지성주의’란 지성의 유무(有無)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의 작용방식이 ‘이성적·합리적 소통을 수용하지 않는 정신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반지성주의자들은 대체로 자기확신·적대감·성찰불능 등의 인지적 특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미국의 반지성주의’를 쓴 호프스태터(R. Hofstadter)는 “반지성주의는 서로 대척점에 선 세력들의 공통적 특징”이라고 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 가장 큰 원인은 반지성주의”라고 민주당을 겨냥한 반면, 민주당의 박홍근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반지성주의가 대한민국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측의 공통된 잘못은 ‘가치중립적 개념인 반지성주의’를 ‘내편과 네 편’으로 나누어서 편향된 진영논리로 접근했다는 사실이다. 반지성주의를 비판한 세력이 바로 그 반지성주의에 빠져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슬픈 코미디’가 아닌가?이처럼 우리는 반지성주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탈진실시대의 포퓰리즘 정치는 인간의 지성을 위협하고 있다. 인간은 정보홍수로 인해 생각하는 것이 어려워지면 쉽게 이성을 포기하고 감정의 길을 택한다. 게다가 반지성주의는 그럴듯한 대의명분이나 선의로 포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 이해관계와 연결될 경우에는 더욱 단절하기가 어렵다.그렇다면 우리는 반지성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정신’과 ‘제도’의 양면적 혁신이 절실하다. 정신적 측면에서는 편향성 극복을 위한 지성주의 가치관의 내면화가 요구된다. 지성의 원천은 ‘사실’과 ‘합리성’이다. ‘인지적 편향성’은 소통의 과정에서 반지성주의를 유발 또는 촉진시킨다. 지성주의는 ‘감정이나 의지보다 이성과 논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타협에 필요한 민주적 가치관, 즉 “동의하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agree to disagree)”는 정신이 중요하다. 이 때 그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할 지식인은 ‘비판적 지성주의’를 견지해야 함은 물론이다.이와 함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의 혁신도 수반되어야 한다. 반지성주의 정치는 승자독식이라는 대통령제의 영향이 크다. 정치는 진영 간 싸움인 동시에 진영을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승자의 독식으로 패자에게 양보하지 않는다면 협치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화와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정치제도를 구축해야 반지성적 정치를 종식시킬 수 있다. 물론 제도개혁 이전이라도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의지만 있다면 야당과의 대화와 협치를 통해 반지성적 정치풍토를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다.

2023-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