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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驚蟄)과 명리 이야기

등록일 2024-01-03 18:55 게재일 2024-01-0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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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안作 ‘Hope’

24절기 가운데 세 번째 절기가 경칩(驚蟄)이다. 태양의 황경이 345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는 3월 5일(음력 1월25일)이다. 음력으로는 2월의 절기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기지개를 켜고 깨어난다는 절기가 경칩(驚蟄)이다. 경칩의 한자를 풀이하면 놀랄 경(驚)과 숨을 칩(蟄)이다. 원래는 ‘열다’, ‘일깨우다’는 의미의 계(啓)자를 써서 계칩(啓蟄)이라 했다. 하지만 한무제(漢武帝)의 이름인 계(啓)를 피휘(避諱)하기 위해 놀랄 경(驚)자를 써서 경칩(驚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서(漢書)에 나온다.

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기원전 179~122)이 저술한 ‘회남자’ 권5 ‘시칙’에 보면 음력 2월에는 초요(招搖·북두칠성 자루 끝에 있는 별)가 묘(卯) 방향을 가리키고, 방위는 동쪽이고, 수는 8이며, 맛은 신맛이다. 이달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복숭아와 오얏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하며, 꾀꼬리가 운다.

천자는 청양(靑陽)의 태묘(太廟)에서 조회를 하면서 관리를 시켜 가벼운 죄를 지은 자는 방면하게 하고, 죄수의 손발을 묶은 족쇄를 풀어주게 하며, 볼기를 치는 형벌을 사용하지 않게 하고 송사를 금지시켰다. 또한 어린아이를 돌보아 주고, 고아나 자식 없는 노인을 보살핌으로써 ‘구부러진 어린 싹들’이 잘 자라나게 하며, 길일을 택하여 백성이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게 했다.

이 시기에 천둥이 치기 시작하면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모두 깨어난다. 동면하던 동물과 곤충들이 슬슬 지상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다. 겨울의 차가운 기운이 사라지고, 따뜻하고 성장하는 목(木) 기운이 찾아온다. 초목에 싹이 돋아나듯이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고, 동면에서 깨어난다는 부활의 의미가 있다.

경칩에는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알을 낳는다. 이때 겨우내 추위로 허해진 양기를 보충하고, 허리가 아픈데 좋다고 해서 새 생명인 개구리알을 먹는 풍습이 있다. 그리고 위장병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고로쇠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을 마셨다. 이 시기의 수액에는 땅의 정기와 봄의 양기가 농축되어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관습이 생겼다고 본다. 다시 말해 땅의 정기인 토(土)는 신체에서 위에 해당하므로 위장병에 좋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경칩에 젊은 남녀가 사랑을 고백했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마주봐야 열매를 맺기에 ‘사랑나무’로 불렸다. 가을에 은행을 모아 두었다가 경칩에 사랑의 징표로 주고받았다. 은행은 남녀의 화합을 상징하는 표시다. 지금의 밸런타인데이와 유사한 형태지만 지금은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있을 뿐이다.

명리에서 경칩과 춘분은 묘(卯)월에, 음력 2월(양력 3월)에 해당한다. 묘(卯)는 목(木)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시기다. 묘(卯)는 무성하다. 즉, 양기가 생겨 번성한다는 뜻도 있다. 세시풍속으로 경칩에는 갓 나온 싹을 보호하기 위하여 농사를 짓는 밭에 불을 피우는 것을 금지하였다. 산불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추위가 완전히 물러간 것은 아니어서 꽃샘추위가 찾아오기도 하는 시기다. ‘우수에 풀렸던 대동강이 경칩에 다시 붙는다’거나 ‘정이월에 김칫독이 터진다’는 속담도 있다. 경칩이 우수와 함께 아직은 겨울의 냉한 기운이 남아있지만, 봄으로 가는 절기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묘(卯)는 동물로 토끼다. 토끼는 언제나 자신이 만든 길만 다닌다. 외부로부터 침입을 막기 위해 굴을 세 개 판다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이 있다. 그만큼 치밀하고 명석한 동물이다. 묘시(卯時)는 오전 5시와 7시 사이이므로 출근이나 등교하느라 늘 바쁘게 움직이는 시간대다. 그래서 이때 태어난 사람은 항상 부지런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류대창명리연구자
류대창명리연구자

하지만 무슨 일이든 시작은 잘하지만 마무리가 약한 것이 흠이다. 유시무종(有時無終)이다. 평소에는 잡생각이 많아 머리가 늘 피곤한 경향을 나타낸다. 변덕이 심하여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논리적이고 수학적이며 호기심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음력 2월 초에는 바람의 신인 영동할미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다가 올라간다. 농촌이나 어촌에서는 바람의 피해를 면하기 위해 풍신제(영등제)를 지냈다. 이를‘바람 올린다’고 한다. 풍신(風神)이자, 농신이므로 이렇게 풍신제를 올리면서 농사의 풍년과 고기잡이 만선을 기원하고, 가정이 무탈하기를 빌었다. 특히 어촌에서는 비바람 때문에 위험한 달이라서 조업을 하지 않았다. 이달에 결혼하면 바람난다는 속설도 있어 피했다.

우리 선조들은 이처럼 절기에 맞는 행위를 함으로써 자연에 순응하여 각종 재난을 피하고 풍요를 기원했다. 곡식은 봄에 저절로 싹이 트지만, 반드시 사람의 노력이 있어야 오곡이 성장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조들은 오랫동안 자연을 관찰하고 경험하면서 생활의 지혜를 축적했다. 이를 미신이라고 경멸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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