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민심과 함께 가는 방법

김진국 고문 지난 대통령 선거는 비호감 대결이었다.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모두 50%를 넘었다. 60%를 넘은 후보도 있다. 비호감 투표를 쉽게 풀어보면 이런 것이다.“A가 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다. A만 아니라면 누가 되어도 좋다. A 외에 당선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이 B다. B에게 투표해 A의 당선을 막아야겠다.”비호감 투표에 정책이 끼어들 틈이 없다. 정책 때문에 표를 찍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후보들이 국가의 미래 비전을 그리는 데 힘을 쏟을 이유가 없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당락을 결정한다. 경쟁 후보의 비호감을 키우기 위해 흑색선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당선 가능성을 따지다 보면 양대 정당 공천이 당선의 보증수표가 된다. 이런 선거를 계속하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비호감이 늘어난다. 유권자는 정치로부터 멀어진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무당층(無黨層)이 지난해 대선 이후 가장 많은 31%에 이르렀다. 18~29세에서는 무당층이 54%, 30대도 37%나 됐다. 중도층에서는 무당층이 41%에 달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이 바람에 내년 총선에서 제3당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87년 헌법 체제에서 제3당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데도 말이다. 제3당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매번 양당제로 돌아갔다. 3김 정당과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이 한때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20~30대는 탈이념 성향이 뚜렷하다. 이들의 절반가량이 무당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그런 탓이다. 진영에 얽매이지 않고, 사안별로 자기 의견이 분명하다. 양대 정당이 이들을 품으려 했지만 결국은 갈등을 겪으며 밀어냈다. 결국은 이들이 중심 세대로 커갈 것이다. 이들의 불만이 양대 정당에서 충족되지 못하면 제3의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더 중요한 것은 선거법이다. 현행 선거법은 고칠 수밖에 없다. 계속 위성정당을 만들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연동형’은 실패했지만, 큰 방향은 지지율과 의석수의 비례성을 높이는 쪽이다. 사표(死票) 심리에 막혀 비호감 정당을 계속 선택할 수는 없다. 선거구별 인구 편차는 2대 1까지 줄였다. 표의 가치를 같게 해야 한다는 이유다. 같은 논리로 늘어난 무당파에게도 선택권을 넓혀줘야 한다.선거법을 아무리 고쳐도 대통령은 어차피 한 사람이다. 당선된 대통령이 국민을 끌어안는 수밖에 없다.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할 때마다 자신을 찍지 않은 사람까지 받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점점 더 갈등과 분열의 상징이 되어간다. 대통령은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 다른 누가 그 역할을 하겠는가.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갇혀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4주째 30% 정도에 정체돼 있다. 취임 직후를 제외하면 내내 30%와 40% 사이에 머물러 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도 지지율만 깎아 먹었다. 잔치가 되어야 할 행사가 혐오만 불러일으켰다. 지도부는 출범하자마자 계속 사고만 치고 있다. ‘윤심’ 논란 탓에 부담을 윤 대통령에게 돌렸다.윤 대통령은 정부와 정치권을 재빨리 장악할 필요를 느꼈을 수 있다. 그러나 검찰과 정치권은 다르다. 검찰은 핵심 요직만 장악하면 전체를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정당은 그렇지 않다. 검찰 조직은 일사불란하다. 이견을 틀어막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정당이 일사불란하면 유권자가 달아난다.정치는 표다.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선거를 해야 한다. 이기려면 지지 세력을 넓혀야 한다. 정치는 깎아서 빛이 나는 보석이 아니다. 깎으면 깎을수록 힘이 줄어드는 삼손의 머리카락이다. 민심은 물이다. 잘만 이용하면 땅을 비옥하게 하고, 무역선을 띄울 수도 있다. 물결을 거스르면 배가 뒤집힐 수 있다. 겁을 먹고 물길을 막으면 망조가 들 수도 있다.그렇다고 정치지도자가 민심에 끌려다녀서도 안 된다. 함께 가되 조금은 앞서서 이끌어야 한다. 마음이 앞서 너무 앞서 달리면 민심과 멀어진다. 한 발짝, 아니 반 발짝만 먼저 가야 한다. 목동은 혼자 달려봐야 소용없다. 양 떼와 함께 가야 빨리 간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4-23

슬기로운 직장생활, 신념(信念)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지난주 포스코 50기 QSS개선리더와 함께 2박 3일 제주도 연수를 다녀왔다. 코로나 엔데믹 전환에 따라 2020년부터 중단되었던 포스코 QSS개선리더 연수 프로그램을 재개한 것이다.1일 차에는 팀 안에서 나를 돌아보고, 팀워크를 향상하는 성찰 워크숍, 2일 차에는 경영 위기극복 다짐 및 QSS활동 발전 방향 워크숍, 3일 차에는 제주 용암수, 에너지 미래관 등 첨단시설 벤치마킹 견학 프로그램으로 진행했다.필자는 그곳에서 혁신 활동의 리더인 개선리더에게 ‘성공적인 QSS개선리더를 위한 자세’란 제목으로 강의를 하였는데, 이때 소개한 자세와 신념은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위해 노력하는 직장인에게 도움이 되리라 판단하여 소개하고자 한다.첫 번째는 열정과 끈기이다. 열정이란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집중하는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시간이 더디 가지만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시간이 금방 지나가는 것처럼 열정 있게 하려면 일을 좋아해야 한다. 끈기란 쉽게 단념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견디어 나가는 기운이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원주민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라는 속설에는 ‘비가 올 때까지 끈기 있게 기우제를 지낸다’ 라는 역설의 의미가 있다.두 번째는 소통과 협력이다. 소통은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는 것을 말한다.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먼저,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기본에 깔려 있어야 하고, 이해와 배려는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예의로서, 나를 낮추고 상대를 존경하고 배려해야 한다. 협력은 끈끈한 동료애와 믿음을 기반으로 서로 힘을 합쳐서 도와주는 것으로 동료에 대한 믿음이 팀워크(Teamwork)로 나타나며, 협업을 통해 성공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세 번째는 구체적 계획과 실행이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신들의 영역이라는 히말라야 8천m 고봉 16개를 최초로 등정하자 기자들이 대장에게 성공의 비결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자 “구체적인 계획과 철저한 실행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기업에서 직장인이 추진하는 프로젝트도 이와 유사하다. 변화무쌍한 프로젝트 환경에서 구체적 계획 그리고 철저한 실행을 통해야만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성할 수 있다.위에서 논한 3가지 자세는 신념이란 단어와 합해질 때 폭발적인 시너지가 난다. 신념(信念)이란 한자는 상형문자가 발전하여 한문이 됐는데, 신념이라는 한문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인 변에 말씀언이 믿을 신(信)자이며, 이제 금에 마음심이 더해져서 생각념(念)이란 글자가 만들어졌다. 따라서, 신념을 풀이 해보면 “사람(人)이 지금(今) 자기 마음(心)에 끊임없이 하는 말(言)”로 풀이가 된다.‘시크릿, 신념의 마력’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념은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믿는 것이며, 그 신념에 대한 보상은 믿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끊임없이 된다고 믿으면 이루어진다는 강한 신념을 바탕으로 “열정과 끈기, 소통과 협력, 철저한 계획과 실행”의 자세로 무장하길 바라며, 이를 통해 도전하는 삶, 성공적인 삶, 행복한 삶을 이루어 나가길 빈다.

2023-04-23

인간이기에 기억한다

유영희 작가 초등교사 이현길은 춤추는 선생님이다. 혼자서만 추는 것은 아니고 아이들과 같이 춘다. 그는 교사 생활 17년 차로, 그동안 계속 아이들과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런데 작년에 특별히 뜻깊은 졸업식을 만들어 주기 위해 무대를 만들어 SNS에 올리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다. 그가 올린 영상마다 이런 활동이 얼마나 어려운지 공감하는 현직, 퇴직 교사들의 감동 댓글이 줄을 잇는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이유는 그저 아이들에게 오래 기억되고 싶어서라고 한다. ‘기억’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돋보인다.지난주에, 암 투병 중이신 고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을 동창과 함께 만나고 왔다. 헤어질 때 선생님이 한 말씀 하신다. 지금도 내 눈에는 너그들 고등학교 때 모습이 눈에 선하다. 너네는 내 맘 모를끼다. 그렇지 않다. 선생님의 기억과 다르기는 하겠지만, 우리 역시 그때를 눈에 선하게 기억한다.기억한다는 것은 인간의 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뇌과학자 조지프 르두는 ‘우리 인간의 깊은 역사’를 통해 인간의 뇌가 발달해온 과정을 설명해준다. 새로운 상황에서 자신의 반응을 선택하여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행동적 유연성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억을 바탕으로 영장류는 숙고할 수 있게 되었는데, 특히 언어를 가진 인간은 그냥 숙고보다 뛰어난 심사숙고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어서 그는, 인간은 심사숙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에서 목표의 가치를 저장할 수 있고, 이것을 이용하여 미래에 더 새롭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좋은 경험은 삶의 활력소가 되기에 그런 일을 기억하는 것은 즐겁고 자연스럽다. 반면 나쁜 경험은 고통을 수반하기도 하고 비용이 드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인지 잊고 싶은 사람, 잊으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심한 경우, 나쁜 경험을 기억하는 사람을 조롱하기도 한다. 학폭을 오래전 장난으로 치부하거나 학폭 당한 일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그런 걸 여태 기억하느냐고 비웃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기억하는 것이다.4월은 기억해야 할 역사적 기념일이 많다. 조금 멀리는 1960년에 일어난 4·19 혁명 기념일이 있고, 가까이는 9년 전, 4·16 세월호 참사가 있다. 그러나 이 기억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치 있게 저장되어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던 신동엽의 마음을 우리는 이미 잊은 지 오래되었고, 4·16 참사의 기억 역시 기억의 저편으로 넘기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하고 심사숙고할 줄 아는 인간이다. 나쁜 경험이라도 미래의 행복을 만들기 위해서는 심사숙고해야 한다.좋은 경험으로 기억되는 데는 대화가 있다. 아이들은 이한결 선생님과 춤을 추면서 대화했고,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은 수업과는 상관없이 우리에게 5분 스피치 기회를 주었다. 4월의 경험에서 알맹이만 남기고 미래의 유익한 결과를 선택하는 심사숙고 과정에서도 우리는 더 많이 기억하고 대화해야 한다.

2023-04-23

같은 것 달리 보기

김규종 경북대 교수 얼마 전 중간시험 감독을 하다가 손에 얻어걸린 작은 책자를 읽다가 생각에 잠긴다. 몇 년 전 우리 학과에서 초빙한 신임 교수의 글에 눈과 마음이 간 것이다. 그는 20년 전의 자신과 요즘 학생들을 비교하면서 아주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학생들을 평가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2020년대 대학생들이야말로 단군 이래 최고의 이력과 지적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이다.대학에 들어오기 전에 수많은 지식과 정보에 노출되고, 체험을 통해서 예전 세대가 꿈도 꾸지 못한 것을 몸소 경험한 세대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어린 시절부터 똑똑한 전화기 스마트폰과 친하기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그들만큼 뛰어난 지식과 정보를 가진 세대는 일찍이 우리에게 없었단 것이다.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화기에 백과사전이 내장돼 있기에 필요한 어휘나 골자만 써넣으면 언제 어디서든 정보가 얼굴을 내미는 세상 아닌가?! 따라서 그는 요즘 세대를 걱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지 말고, 외려 그들의 가능성과 미래를 믿는 편이 낫다고 결론 맺는다.나는 그에게 동조하기도 하지만, 생각은 다르다. 2020년대 청년들이 휴대전화로 지식과 정보 검색 능력이 탁월하다는 사실엔 동의한다. 빠른 손놀림으로 그들은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휴대전화에서 얻는다. ‘전광석화(電光石火)’라는 말은 이런 때 쓰라고 만들어진 ‘사자성어(四字成語)’다. 문제는 이런 사자성어나 고사성어를 청춘들이 전혀 모른다는 사실에 있다.중고등학교에서 어떤 교육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교수들 입에서 나온 지 한참 지났다. 세계사나 인문 지리를 공부하고 진학한 인문대나 사회대, 경상대 학생들이 거의 없다. 한국사는 물론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 역시 깜깜이다. 시험을 위한 시험 ‘수학능력시험’에 맞춰서 찍는 훈련만 한 것인지 속이 답답할 지경이다. 모든 면에 너무나 캄캄절벽이다.전화기에 들어있는 지식과 정보는 어떻게 쓰려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필요한 지식과 정보는 그때그때 주머니에서 머리에서 가슴에서 꺼내서 쓸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그런데 잠시만요, 하고 검색할 시간을 달라고 말하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가장 큰 문제는 독서량의 절대 부족과 기본적인 한자 혹은 한문 능력 부재에 있다.손가락 몇 번 두드려서 얻어내는 지식과 정보는 이내 잊힌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나가고 상실한다. 고금동서 막론하고 진리다. 여기저기 책을 읽고 어렵게 찾아가며 묻고 기록하고 생각하면서 얻어야 진정한 지식과 정보로 남는 법이다. 더욱이 우리는 중국과 일본, 대만과 함께 유구한 ‘한자문화권’에 속한다. 최소한의 한자나 한문은 지식 습득에 필수적이다.각고(刻苦)의 고생 끝에 대학에 온 것은 대견하고 환영할 일이지만, 수능을 대신할 근본적인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때다. 강제된 독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독서와 한문 공부도 절실하다. 봄이 깊어가는 시절에 새삼 젊은이들의 오늘과 내일을 생각한다. 곧 소쩍새 울 것이다.

2023-04-23

금값의 질주

우정구 논설위원 금값이 폭등하고 있다. 지난 12일 기준 금거래소 가격으로 한돈(3.75g)에 36만7천원을 기록했다. 한국금거래소 금시장이 거래를 시작한 2014년 3월(4만6천940원)과 비교하면 7배 이상 올랐다.최근 금값 폭등과 관련해 재미있는 뉴스가 하나 떴다. 2008년 함평군이 멸종위기종으로 알려진 붉은 박쥐가 함평에서 발견된 것을 계기로 이를 관광상품화 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순금의 황금박쥐상이 대박이 난 것. 제작 당시 27억원을 들여 순금으로 만든 황금박쥐상은 예산 낭비라는 세찬 비판을 받았으나 최근 금값 폭등으로 황금박쥐상이 137억원으로 몸값이 오르자 전국적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금에 대한 인류의 애착은 오래됐다. 금관이나 금장식 등의 유물이 발굴된 것으로 미뤄보아 이미 수천년전부터 금은 인류에게 권위와 영광의 상징이었다. 영국의 파운드화가 가장 믿을만한 화폐가 된 것도 금본위제를 기본으로 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초 영국은 식민지로부터 뺏어온 금이 영국은행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우리나라에선 아기 백일이나 돌잔치에 금반지를 선물하는 관습이 있다. 아기가 금을 지니고 있으면 건강하게 잘 자란다는 속설에 따르는 측면도 있으나 시대가 바뀌어도 가치가 변하지 않는 순금의 평가 때문이다. 특히 경제가 어려울 때 금값은 더 가치를 발한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금을 되팔면 시간이 지난 만큼 보상이 되는 것이 금의 가치다.최근 금값이 폭등한 것은 코로나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 국제경제 침체 등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 금값이 폭등하면서 돌잔치 선물용인 한돈 반지가 반돈으로 줄어들고 1g 반지까지 등장했다. 금값의 질주 언제쯤 멈춰질까./우정구(논설위원)

2023-04-23

포항시 투자하기 좋은 도시 맞나

이시라 사회부 포항 경제를 성장시킬 매머드급 투자 기회를 눈앞에서 놓쳐 버렸다. 이번에는 무려 4조4천억원.포스코그룹은 오는 2033년까지 광양제철소 옆 동호안 부지에 이차전지 소재·수소단지 조성 등 신성장산업 사업을 추진한다고 19일 밝혔다.포항시가 포스코의 공장건설 부지 확보에 머뭇거리는 사이 정부의 ‘규제 적극 완화’ 카드에 포스코가 적극 호응하고 나섰기 때문이다.대규모 투자가 실행 되면 광양은 생산유발 효과가 연간 3조6천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1조3천억 원, 취업 유발효과가 연간 9천명에 이르는 엄청난 경제적 효과가 창출된다.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포항시민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지난해 인구 50만명이 붕괴되고 난 뒤 급속한 인구 유출이 지속되고 인구 감소를 해결할 만한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포스코의 투자가 포항과 경쟁관계인 광양에 집중된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다.포항이 광양에 투자기회를 뺏긴 이유는 신규 생산 설비를 건설할 부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돈다.포항시는 포스코의 이번 광양제철소 대규모 투자를 사실 왜곡없이 객관적 시각으로 들여다 봐야 한다. 그간 규제를 핑계 삼아 기업의 투자 유치에 대해 소극적 태도롤 보인 것 아닌지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실제로 이번에 포스코 수소환원제철소 부지 관련 취재를 하면서 포항시의 답변을 듣는 과정에 ‘이건 아닌데….’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직원들에게 실망했다.국제사회의 탄소 중립에 발맞춰 포스코도 수소환원제철소 건설을 추진 중이다.건설부지 확보 과정에 포항시의 행정적 지원이 중요하다고 하는데도 직원들은 한결같이 우리와는 관계없는 일이란 식이었다.전화 받는 과마다 서로 ‘해양수산부’와 ‘환경부’의 몫이라고 떠넘기며 관련없다는 식이었다.업무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부서에서는 “환경영향평가 관련 업무는 중앙행정기관이 할 일이지, 포항시의 업무가 아니어서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포항과 포스코는 반세기 동안 동고동락하며 함께 성장해왔다.긴 시간 동안 포항시민들은 포스코의 발전이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며 이는 곧 국가 경제 발전에 귀결된다는 점을 잘 안다.하지만 정작 기업활동에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할 포항시 직원들은 지역의 다급한 현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딴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지금이라도 기업하기 좋은 도시 만들기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sira115@kbmaeil.com

2023-04-20

정보통신 야사(野史)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전화기는 물론 라디오도 없는 마을에서는 이웃 마을의 소식도 누가 와서 직접 전해주어야 알았다. 재 너머로 시집보낸 딸의 안부를 장날 그 마을에서 온 장꾼들에게 물었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자질구레한 여성용품을 파는 방물장수들이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도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 말고는 자연에서 보고 듣는 것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대부분이었다.시골 동네에도 라디오가 들어오면서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그만 기계 상자 속에서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아나운서라는 사람이 수시로 나라 안팎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더 신기한 것은 남인수나 고복수, 황금심 같은 가수들의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하는 것이었다. 좀 규모가 큰 면소재지 같은 곳에서는 라디오 방송을 유선으로 중계하는 업자도 생겨났다. 라디오를 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달마다 약간의 돈을 내고 유선방송업자가 달아준 스피커를 통해서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토요일 오후 2시부터 방송하는‘금주의 인기가요’를 들으며 가사를 받아 적기에 열중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이미자, 최희준, 배호, 남진, 나훈아, 문주란이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였다.1960년대부터 KBS, MBC 같은 텔레비전 방송국이 개설되면서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중계한 것은 그야말로 인류사적인 사건이었다. 1972년 4월부터 12월까지 방영된 TV 드라마 ‘여로’를 보기 위해 국민 대다수가 그 시간에 모든 일정을 잠시 중단했다는 에피소드도 방송사에 남을 일이었다. 목소리로만 듣던 노래를 가수들이 직접 텔레비전에 나와서 부르는 걸 보고 들을 수 있다는 참으로 획기적인 일이었다. 1981년부터는 컬러텔레비젼이 나와서 모든 것을 더 생생하게 전해 주었다.교환 전화가 다이얼 전화로 바뀌면서 공중전화도 생기고 전화기 보급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여러 날 걸려 편지로나 전할 수 있었던 사연도 전화 한 통이면 해결이 되었다. 삐삐로 불리는 무선호출기도 나와서 전화기를 떠나 있는 사람에게도 급한 용무가 있으면 신호를 보낼 수가 있었다. 1980년대에는 드디어 휴대전화기가 출시되어서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통화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2010년대에는 다기능의 스마트폰이 등장해 인터넷 검색과 금융거래, 사진기 등이 한손 안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실로 개벽 세상이 아닐 수 없었다.이제 노년에 접어든 우리세대는 위의 모든 과정을 몸소 겪어온 대한민국 정보통신사(史)의 산 증인들인 셈이다. 지금은 주로 동기회나 동호인, 종교단체 등의 단체카톡방에서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유튜브를 통해서도 세상의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있다. 최근에는 챗GPT까지 등장해서 무한정 대화를 나눌 수도 있으니,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오싹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린 시절과는 천양지차의 금석지감이지만, 온갖 세상을 골고루 겪어본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일 것이다.달력을 보니 22일이 ‘정보통신의 날’이어서 잠시 지난 일들을 돌아보았다.

2023-04-20

곡우(穀雨)에 쌀값 투정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20일은 곡우(穀雨)다. 보통 음력 3월 중순인데 올해는 윤달이 끼어있어 이제야 춘3월이니 ‘봄비가 내려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농경(農耕)의 절기이다. 무논에 가래질하고 논둑을 다듬고 논갈이하여 못자리를 잘 다듬어 놓으면 한 해의 풍년이 가슴에 차오를 텐데, 일기예보를 보니 중부지방에 이슬비 오고 대구는 30℃가 넘는 초여름 날씨를 보였다고 한다.옛 농가에서는 볍씨를 담근 장독을 씻어두고 자작나무나 박달나무의 즙으로 ‘곡우물’ 마시며 반가운 사람을 기다리다가 부정한 일을 겪었던 사람들이 오면 대문간에서 소금을 뿌리거나 쑥을 태운 연기를 쬐게 하여 나쁜 기운을 막고 한해의 불행을 피하자는 풍습이 있었다.올해도 농민들의 마음은 풍년을 빌겠지만 근래 쌀 풍년의 기쁨은 국가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풍년 탓인지 쌀값이 지난해보다 20% 정도 떨어져 45년 만에 최대폭락을 기록하여 농민들의 시름이 크다. 이에 야당은 쌀값 정상화를 위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하여 국회를 통과시켰으나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 처리되어 시끄럽다. 쌀값이 떨어지면 국민은 좋을 텐데 왜 개정을 하려는가? 그 해결을 위해 국가의 수매 의무화, 다른 작물 생산 유도, 쌀 가공법을 개발을 통한 수요 증가 등이 제기되고 있다. 쌀값 폭락의 원인으로 첫째, 가격이 싼 수입쌀이 늘어나고 둘째, 우리 식습관이 변하고 있으며 셋째로 풍년으로 과잉생산된 탓이라고 한다. 중국산은 값싸고 관세할당물량으로 수입해야 하며 쌀 소비는 30년 전의 1/2 정도로 떨어졌으니 식습관을 개선해야겠다는 의견도 있다.쌀 생산을 보더라도 보급률 90% 이상으로 작년만 해도 25만t이 남았다. 쌀은 세계인구의 40%가 주식으로 하고 있는데 세계 120여 개국에서 년 6억t을 생산하며 모든 곡물의 25%이다. 우리나라 쌀 생산량은 세계 10번째 정도이지만 단위면적당 생산량은 자랑스럽게 1위이다. 그것은 우리의 기술로 신품종을 개발하고 토양관리와 병해충 방지뿐만 아니라 비료 살포 등에도 힘을 기울인 덕분이다.몇 년간 풍년이 들었고 그동안 코로나19 영향으로 식당 손님의 감소와 곡류 소비 감소 등으로 우리의 230만 농민들이 생산한 쌀을 쌓아둘 공간이 부족한 현실이다. 제안 발의된 양곡관리법의 수매 의무화 부분을 살펴보면 초과 생산 3% 이상 또는 쌀값 하락 5% 이상일 경우 정부가 의무 매입하여 안정시키겠다는 것인데, 여당은 쌀값 정상화가 아니라 남는 쌀 강제 매수법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보호 지원으로 쌀값을 올리면 남는 쌀은 정부가 국가보조금으로 매입 보상하여 생산 농민을 보호할 것 같지만 오히려 또 과다 생산할 우려도 있다.예전엔 남아도는 쌀을 북한으로 보내준 적도 있다지만 미사일을 계속 쏘아대며 국제평화에 찬물을 끼얹어 UN 제재를 받기에 보내주고 싶어도 어쩔 수 없다. 21일은 ‘과학의 날’이다. 쌀 농업과 가격조정에도 새로운 종묘법 등 기술을 개발하여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룬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어 보자. ‘쌀이 넘친다’ ‘쌀이 남아돈다’…. 그래도 흉년보다는 낫겠지.

2023-04-20

홍준표의 입

홍석봉 대구지사장 입과 손이 문제다. 구설이 잦다. 필화(筆禍)도 적지 않다. 방송 출연과 SNS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서슬 퍼렇던 독재 시절에는 논객들의 준엄한 정치평론이 문제가 돼 옥고를 치르곤 했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시기에 때 아닌 구설과 필화가 무성하다. 국민의힘은 구설로 만신창이다. 당 안팎에서 쏟아지는 구설과 필화를 쓸어 담기에 정신이 없다. 당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당 지도부가 원인을 제공했다. 최고위원과 고문 등 입만 열었다 하면 탈이 난다. 원군을 자처하는 목사까지 가세해 고춧가루를 팍팍 뿌려댄다.그 중심에 홍준표 대구시장이 있다. 홍 시장의 거친 입과 훈수에 참다못한 당 원내대표가 고문직 ‘해촉’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당 안팎에서 홍 시장에게 훈수정치 중단을 촉구했다. 일각에서 순서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행보가 꼬이고 있다. 급기야 입단속에 나섰다. 야당도 불똥을 우려,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다.엉뚱한 곳에서 다시 불씨가 되살아났다. 입심 거센 전 여성 의원이 홍 시장과 공박을 벌였다. 홍 시장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를 싸잡아 ‘놀라운 꼰대’라며 비꼬았다. “이대로면 총선 참패”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루전에 입을 닫겠다고 선언했던 홍 시장이 그 사이를 못참고 즉각 반박했다. “입 다물고 조용히 있으라”고 원색적인 용어까지 사용했다.홍준표 대구시장은 그동안 각종 정치 현안과 관련, 정부 여당은 물론, 정치권에 특유의 직설적 표현으로 훈수를 떠왔다. 지지층은 사이다 발언이라며 반겼다. 홍 시장은 상하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의 아픈 구석을 콕콕 찔렀다. 존재감을 과시했다.홍 시장의 촌철살인의 언변과 SNS글은 정치권에서 가히 대적 상대가 없을 정도다. 정치 9단의 노련한 공세에 상대는 웬만하면 두 손 들고 만다.도전은 가차없이 응징한다. 홍 시장의 입과 손에 형편없이 망가지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당하는 이들에겐 수치감과 적개심만 남는다. 차기 대권후보를 꿈꾸는 그에게 잦은 구설은 독이 될 수 있다. 지역 보수층에서는 홍 시장이 원로로서 당이 흔들릴 때는 바로잡아 주고, 후배 정치인들에게 격려와 충고를 아끼지 않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정치인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이들이 많다.예로부터 선비들은 혀끝과 손끝을 조심하라고 했다. 혀끝은 말과 음주를 말한다. 말을 잘못했다가는 구설에 오른다. 손끝은 도박을 가리킨다. 글 쓰는 이들에겐 필화다. 입과 손끝을 잘못 놀려 자칫 명예훼손에 휘말리면 경을 칠 수 있다.주나라 시조 후직(后稷)의 사당에 쇠로 만든 사람이 서 있었다. 공자가 주나라의 태묘(太廟)에 가서 이 금인(金人)을 보았다. 입은 세 겹으로 봉해져 있었고, 그 등에 “옛날에 말을 삼가던 사람이다. 경계할지어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 입은 뭐가 문제인가? 화의 문이 된다. 힘을 믿고 날뛰는 자 제명에 못 죽고, 이기기를 좋아하는 자 반드시 적수(敵手)를 만나게 된다. 경계해야 할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2023-04-20

경주 대릉원

우정구 논설위원 경주 대릉원(大陵苑)은 경주시 황남동에 위치한 옛 신라의 왕과 왕비, 귀족층의 것으로 추정되는 23기의 대형 고분군이 모여 있는 곳이다.특히 그곳에 있는 천마총은 1973년 발굴 작업을 벌여 신라금관 등 국보급 유물 10점을 포함 모두 1만1천여점의 유물이 출토된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드문 고고학적 의미를 지닌 곳이다. 당시 놀라운 유적의 출토로 많은 국민이 흥분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고분은 현재까지 내부를 직접 볼 수 있는 유일한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또 쌍무덤 형태의 대릉원 황남대총은 당시 왕족 부부의 묘로 추정되며 당시의 순장풍습을 알 수 있게 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출토된 유물로 당시에도 서역과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게 한다. 신라 최초 경주김씨 출신의 왕으로 전해지는 미추왕릉도 이곳 대릉원에 있다. 삼국사기에 “미추 이사금을 대릉에 장사 지냈다”는 글귀에 따라 이곳을 대릉원으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유네스코가 경주역사유적지 5군데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는데, 대릉원지구도 그 가운데 하나다. 대릉원은 경주의 대표적 사적지로 지난 한해만 133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때마침 문화재청이 천마총 발굴 50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벌인다고 하니 대릉원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할 것 같다.‘1973 천마를 깨우다’는 제목의 발굴 50년 기념사업은 선포식과 함께 각종 학술행사 등으로 연말까지 진행된다고 한다.경주시가 유료 입장의 대릉원을 무료 개방했다. 경주 관광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해서다. 세계적 역사문화도시인 경주의 관광산업 진작을 위해선 바람직한 결정으로 보인다. 대릉원을 중심으로 더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찾아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4-20

풀을 뽑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봄 되자 제 먼저 알고 새싹으로 내민 풀들이 마당 여기저기 그득했다. 쑥, 민들레, 봄까치꽃, 광대나물, 냉이, 망초대…. 풀을 뽑으며 풀이름을 검색해서 이름을 알게 되었으니 더 이상 잡초는 아니었다. 이 풀들은 나물이기도 하고 약초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제멋대로 자라게 해두기엔 사람 사는 집꼴이 아니었다. 작년 여름 사람을 사서 두어 번 풀을 베었어도 돌아서면 또다시 무성히 자란 풀들이었다. 예초기도 샀지만 자랄 때마다 베기엔 너무 번거롭고 성가실 것이다. 어떤 이는 제초제를 뿌리라고 했으나 손주들이 와서 놀 집인데 싶어 꺼림칙했다. 크게 자라기 전 어린싹일 때 뽑으면 쉬울 거라 생각했다. 풀 없는 너른 옆마당에 백일홍씨를 잔뜩 뿌려 한여름 내내, 최소 100일을 꽃대궐로 만들고 싶은 열망도 컸다. 환상이고 오산이었다.이틀을 작정하고 풀뽑기에 들어갔다. 앉아서 호미로 파내기도 하고, 서서 쇠스랑으로 찍어내 보기도 했지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김매듯 고랑을 만들며 앞으로 또는 뒤로 자세를 바꾸어도 보면서 풀을 뽑았다. 어린 풀들은 완강히 버텼다. 어린 풀이지만 그 뿌리는 깊고 힘셌다. 하기야 몇 년째 그 자리에서 견고하게 뿌리 내리고 줄기 뽑아 꽃 피우고 온 마당과 길섶에 마음대로 씨를 흩날려 퍼트렸던 풀들이 아닌가.망초대가 정말 가당찮았다. 망초대는 얕되 넓게 뿌리 내리는 풀이다. 가는 실뭉치가 엉긴 것 같은 뿌리는 질기고 견고했다. 뿌리를 뽑으면 묵직한 흙덩이가 딸려 나온다. 풀을 뽑는 게 아니라 땅의 거죽을 벗긴다고 할 정도였다. 망초대를 캐낸 곳엔 영락없이 움푹 팬 구덩이가 생겼다. 흙을 털어 던져 무더기를 이룬 곳에서 또 연노란 싹을 올리는 질긴 생명력이란...나는 각색 풀들과 타협하기로 했다. 쑥과 민들레의 뿌리는 깊고 길었다. 파내기가 쉽잖았다. 쑥은 캐어 쑥국을 끓여먹으리라 생각하며 뽑았다. 며칠 후 쑥은 또 무성히 자랐지만 좀 쉽게 뽑혔다. 뿌리 깊고 튼튼한 민들레는 벌써 노란꽃을 피워대고 있었다. 나비도 이따금 앉는 걸 캐내기 안쓰러웠다. 담 밑 한 귀퉁이에 모아주었더니 더욱 샛노란 빛으로 민들레밭을 이룬다, 살려두면 홀씨 날려 마당 어디든지 퍼트릴 텐데 싶어도 우선은 살려두자.뒷담벼락 따라 제법 예쁜 자줏빛 꽃을 피우는 광대나물은 과감하게 캐냈다. 예쁜 꽃이라며 남편이 몇 삽 떠서 화분에 심길래 미안함을 덜었다. 이른 봄부터 연보라색 작은 꽃을 피운 봄까치꽃도 이곳저곳 만만찮게 많다. 뽑아도 뽑아도 끝없어서 이 역시 담벼락 한켠에 흙 묻은 채로 던져 모아주었더니 생글거리며 또 연보라꽃을 피운다. 수돗가에 잔뜩 모여 잘디잔 흰 꽃을 피워낸 냉이는 캐지 않고 냉이꽃밭으로 두기로 했다. 여러 날 걸친 풀뽑기가 힘에 부치기도 하려니와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사흘에 걸쳐 풀을 뽑았다. 아니 풀들을 재배치했다는 게 옳다. 그러고도 풀들이 내어 준 너른 빈터엔 백일홍씨를 잔뜩 뿌려 주었다. 꽃대궐이 환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2023-04-19

다이어트 어떻게 할까?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봄이 되면 한의원에 늘어나는 환자군이 있다. 겨울에는 뚝 끊겼던 환자들이 오는데 바로 다이어트를 원하는 분들이다. 봄이 되면 겨울과 다르게 날이 따뜻해지고 몸도 따뜻해지고 식욕도 오르고 옷도 얇아진다. 다이어트는 사실 살을 빼는 것과 더불어 건강에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어떻게 하면 나의 건강을 위해 훌륭한 식이 요법을 할 수 있을까.현재의 다이어트는 살을 뺀다는 개념이 주로 포함된 단어지만 실제로는 식이요법이다. 즉 어떻게 음식을 잘 먹어서 나의 건강을 지킬 수 있을까가 단어의 기본 개념이다. 살을 빼는 것은 덤이고 어떤 다이어트 방법이 나의 건강을 지킬 수가 있는지 살펴보자.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먹어야 할 것은, 고기를 많이 먹고 채소는 적당히 먹는다. 먹으면 안 될 것은 밥과 빵 국수 라면의 탄수화물과 과일 그리고 과다한 물의 섭취다. 간식은 절대 먹으면 안 되고 위에 말한 식단을 하루 두 번 먹으면 된다.고기를 많이 먹으라고 하면 의례히 따라 붙는 소리가 고기 먹으면 살이 찌지 않느냐 콜레스테롤이 증가하지 않느냐 건강에 해롭지 않느냐? 반문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조던 피터슨이 본인과 딸이 먹고 건강을 되찾아 유명해진 순수 육식을 하는 카니보어 식단은 순수 육식만 했을 때 몸의 근육량이 늘고 콜레스테롤 수치나 당수치가 개선되고 특히 낫기 힘든 면역 질환이 개선된 사례가 많이 보고 되고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했던 황제 다이어트가 이것이다.고기만 먹기는 힘드니 고기를 먹다가 채소도 좀 먹고 하면 되지만 절대 같이 먹으면 안 될 것이 국과 찌개 그리고 밥 혹은 면류다. 한국인의 식습관은 국과 찌개 밥으로 마무리를 하는데 다이어트를 할 때는 절대적으로 금해야 할 것이 밥과 국수 빵 등의 탄수화물이다. 내가 살찌는 것은 탄수화물을 많이 먹어서다. 탄수화물 과다섭취로 중성지방이 축적되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지고 당 조절이 안된다. 당장 줄여야 할 것은 고기가 아니라 탄수화물이다.그리고 과일도 금해야 한다. 과당과 물이 섞인게 과일이라 과일 위주로 식단을 정하면 살이 찐다. 과일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살을 빼고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를 한다면 먹지 않는 게 좋다. 그리고 물도 일부러 많이 마시면 안 된다. 티비에서 하는 소리를 듣고 물을 많이 먹는 사람들이 있는데 살이 찐 사람은 보통 몸이 붓는다. 목이 마를 때만 물을 마셔라.밥도 먹고 싶으면 고기 채소 밥은 두숟갈 이렇게 조합해서 먹어도 된다. 너무 힘들게 다이어트 하면 오히려 한번씩 폭식을 할 수 있으니 개인 건강과 사정에 따라 적절히 조절 하면 된다.최근 설문 조사에 따르면 만족도가 모든 치료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이 다이어트 치료 법이다. 예전에는 비싼 가격으로 접근이 힘들었지만 최근에는 다이어트 환 등으로 접근성도 많이 좋아졌고 다이어트 방법에 보조적으로 꾸준히 복용하면 식욕 억제와 부종 제거 등에 큰 도움이 된다.이번 봄 열심히 다이어트 해서 건강도 지키고 살도 빼보는 건 어떨까?

2023-04-19

불씨와 풀씨

배문경 수필가 헤스티아는 불의 신이다. 근래 부쩍 늘어난 산불이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고 있다. 제우스는 그녀에게 순결을 지킬 권리를 인정하고, 인간이 신에게 바치는 제물을 가장 먼저 받을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그 제물이 산불로 희생된 산과 나무, 사람과 동물을 결코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식목일 가까이 전국에서 30여 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수십 년, 수백 년간 숲을 지키고 자란 수목들이 산불로 잿더미가 되었다. 산불의 원인으로는 실화(失火)가 25%로 가장 많고 쓰레기소각, 건축물화재, 논·밭두렁 소각, 성묘객 실화 등의 순서다. 지난해에는 740여 건의 산불이 발생해 20년간 가장 많았다고 한다. 곳곳에 산불감시원이 있지만 여전히 산불은 발생되고 있다.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월남전에서 살아온 해병대 아저씨가 선물한 아오자이를 입은 인형을 품에 안고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대들보며 기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불길은 무녀의 춤사위를 보는 듯이 현란했다. 자다 뛰쳐나온 나의 맨발에 닿던 냉기를 아직도 기억한다.그 화재로 평생 고통 받는 어머니를 보며 자랐다. 가족 모두 입을 다물고 있지만 하루아침에 전 재산이 잿더미로 변했고 어머니는 화병(火病)을 얻어 약을 끊임없이 드셨다. 늘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쉴 수가 없다며 고통스러워했다. 가족 모두가 길거리로 내몰렸다. 다행히 농사를 짓기 위해 만들어둔 농막이 결국 가족의 터전이 되었지만 남루하고 슬픈 가족사를 만들었다.몇 해 전 영주 부석사를 구경하고 늦은 시간 돌아오다 산불을 만났다. 차들은 도로를 빠져나가지 못해 긴 줄을 만들었고 먼 곳에서 회색 연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차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혀 불길에 휩싸이는 것은 아닌지 불안에 떨었다. 어릴 적 화재도 떠오르고 영화에서 본 화재가 바로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벗어나지 못한다면 차를 포기하고 공룡을 피해 달아나던 사람들처럼 뒤돌아서 뛰어야하나 고민을 했다.그때 신호봉을 든 경찰과 공무원이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안내하는 길을 따라 그 상황에서 다행스럽게 벗어날 수 있었지만 늦은 밤까지 안내하는 사람들이 걱정될 정도였다. 그제서야 뉴스를 보면서 며칠 만에 잡힌 불길의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또 다시 영주 박달산과 영지산 산불현장에 헬기 20대가 투입되었다는 뉴스를 읽었다. 끊이지 않는 산불에 잃게 될 인명과 재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소설가 김훈은 소방차가 지나가면 안도한다고 했다. 소방관을 존경한다고도 했다. 오늘도 소방관이 없다면 화재현장에서 목숨 걸고 우리를 살려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식목일에 나무를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심은 나무를 잘 건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기념할 날이 많다. 삼일절, 광복절, 추석과 설날처럼 이제 소방관의 날이 하루 더 생겼으면 좋겠다. 우리의 삶과 우리의 재산을 객관적으로 지켜줄 사람은 소방관밖에 없지 않을까. 얼마 전 결혼식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화재에 투입된 젊은 소방관의 사망소식은 안타까움을 넘어 슬펐다. 너무나 중요한 한 사람을 잃은 슬픔이었다.산불이 지나간 자리로 숲은 다시 생명을 키운다.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싹이 트고 나무가 자라기 시작한다. 황량하던 벌판에도 한해살이풀들이 자라나고 키 작은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아주 천천히 조금씩 숲이 만들어진다. 오랜 시간 후에 여러 조건에 따라서 숲을 구성하는 식물들이 바뀌어 가는 것을 숲의 천이(遷移)라고 한다. 그리고 숲을 구성하는 식물이 변하지 않은 상태로 지속되는 숲을 극상림(極相林)이라고 한다. 수종의 크기가 작고 수명이 짧은 종에서 크기가 큰 다년생(多年生)종으로 바뀐다. 이 과정은 백년에서 이백년이 걸린다.잃은 것을 되찾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영원히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큰 구원의 손길과 행운이 따라오지 않는다면.오늘도 풀씨 하나가 곱게 싹틔운다. 불씨가 태운 대지 위로.

2023-04-19

병신(丙申)

육십갑자 중 서른세 번째는 병신(丙申)이다. 천간(天干)의 병화(丙火)는 태양, 지지(地支)의 신금(申金)은 큰 바위 또는 바위산이다. 큰 바위에 햇볕이 내리쬐는 모습이다. 동물로는 영리한 붉은 원숭이다.병신일주는 화(火)가 오행 가운데 예(禮)다. 단정한 옷차림으로 깍듯하게 예의를 잘 지킨다. 상대방의 허물을 잘 보며, 활력이 넘치고 열정적이다. 자기주장과 고집이 강하고, 끊고 맺음이 분명하다. 추진력이 있어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다. 이런 분들에게 친근감의 표시로 함부로 반말하면 큰일 날 수도 있다. 욱하는 성질이 있지만, 뒤 끝이 없는 것이 큰 장점이다.양(陽) 기운이 넘쳐 사회활동과 결실의 힘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리더십이 있다. 남의 눈길을 끌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서 겉모습을 꾸미는데 관심이 많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외모도 훤칠하며, 솔직담백하므로 비밀이 없다. 남자나 여자나 잘 생겼다. 자칫 사치에 빠질 가능성도 있으며, 결과를 너무 과시하면서 생색내다가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다.병신(丙申)은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 철광석을 녹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습으로 창조성이 뛰어나다. 다방면에 재주가 많고 잡기에도 능하다. 원칙과 소신 있게 행동하지만, 여연살(女戀殺)이 있어 남자의 경우는 배우자 몰래 애인을 숨겨둘 여지가 있다.조선시대에는 병신일주를 풍수를 보는 지관의 사주라고 했다. 지관들이 풍수를 보기 위해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역마) 머무는 마을마다 여자와 인연이 생겨 숨겨둔 자식이 있다고 했다. 또한 ‘병신 육갑한다’는 말이 있다. 옛날에는 장님이나 장애인들이 점보는 일을 많이 했다. 특히 병신일주 사람들이 역학에 소질이 많아 육십갑자를 더하여 ‘병신이 육갑한다’라는 의미다. 그러나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키듯이, ‘병신자식 효도한다’라는 속담도 있다.병신의 신금(申金)은 원숭이다. 옛날에는 ‘잔나비 띠’라고 불렀다. 재주가 많고 활동성도 강하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어디든지 다녀야 직성이 풀린다고 보면 되겠다. 병신일주는 재주 있고 똑똑하며 호탕하고 원만한 성품으로 솔선수범하고 융통성이 있으며 빼어난 말솜씨로 사회생활에 지극히 잘 어울리는 성향을 갖고 있다. 공직생활에는 외교관, 회사생활에는 무역부서에서 일하면 재능을 발휘해 쉽게 인정받고 높은 자리로 승진하는 기운이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단점으로는 지나친 활동성과 성과에 집착하는 공명심이 있다. 빨리 남에게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부하직원이나 주변사람을 닦달하는 성향이 있다. 뻐기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외부로 향한 관심을 내면으로 돌려 부실함을 채우고, 결과 및 인정욕구에 연연해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예로부터 동국무원(東國無猿)이라 하여 조선에서는 원숭이가 살지 않았다. 주로 불교국가에서 원숭이 이야기가 많다.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보물 제178호)에 가면 네 귀퉁이의 처마 밑에 원숭이가 연화받침 위에 무릎을 세우고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모습이 있다. 두 귀를 막고 있는 것도 있고, 한쪽 귀를 막고 있는 것도 있다. 세상에 떠도는 말에 괴로워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여겨진다.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불경 ‘육도집경’에 따르면 부처님이 전생에 500마리 원숭이의 왕이 되어 원숭이 무리를 죽음으로부터 살려내고, 자신은 국왕에게 잡혀 “벌레 같은 몸뚱이의 썩어질 살이니 가히 왕에게 바치면 하루아침의 반찬이 될까합니다”하여 국왕을 감동시킨 이야기다. 지붕을 받들고 있는 원숭이 모습은 가히 일품이다. 원숭이들은 부처님에 대한 끝없는 공경을 나타내어 감동을 주며, 도편수의 창의성이 돋보인다.병신일주는 재물을 깔고 있으니 기본적으로 재물에 대한 욕심이 많다. 문창귀인이 있어 문필에 탁월한 재능이 있어 창의성을 발휘하여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1821∼1881)가 1866년 중편소설 ‘도박꾼’을 발표했다. 거기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그는 낭비벽과 도박으로 늘 빚에 시달린 생활을 이어갔고 죽은 형의 빚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때 출판업자가 혜성같이 나타나 매력적인 제안을 했다. 새 소설의 원고를 1866년 11월 1일까지 넘겨주면 3천루블을 지불한다. 그렇지 못하면 저작권을 포기하는 조건이다. 생각하고 말고도 없이 수락했다. 받은 돈 대부분은 형의 빚을 갚았고, 남은 돈은 유럽의 도박판에 가서 신나게 날려버렸다.날짜는 다가오는데 속수무책이었다. 아무리 졸속으로 쓴다 해도 한 달 안에 원고지 1천500매를 쓴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친구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속기사를 추천해 주었다. 속기사는 건전하고 젊은 상식적인 여자였다. 10월 4일부터 그는 구술했고 속기사는 속기로 적은 뒤 집으로 돌아가서 정서해 가져왔다. 이런 식으로 10월 29일에 마쳤다. 26일 만에 소설이 완성되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소설 ‘도박꾼’은 도박판의 탐욕과 공포, 도박꾼들의 흥분과 좌절과 긴장을 완벽하리만큼 실감나게 써냈다. 도박꾼 작가의 체험이 그대로 소설화된 것이다. 게임의 흥분과 스릴 추구는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다. 그는 생존을 위해 도박을 했고, 또한 생존하기 위해 글을 썼던 것이다.계약 이행보다 더욱 값진 성과는 속기사와의 결혼이다. 두 사람은 작업 과정에서 가까워졌고, 25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했다. 그녀는 초인적인 인내심과 사랑으로 남편이 도박에서 벗어나게 하고 책을 직접 파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빚을 청산함으로써 비교적 안정된 만년을 보낼 수 있었다. 덕분에 세계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작품이 1880년 11월 탄생됐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그는 이듬해인 1881년 1월 28일 폐동맥 파열로 사망했다.타고난 재능을 믿고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을 하든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 이는 수긍할 만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함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소홀히 대하지 않기 위함이다. 전력을 쏟지 않고 얕은꾀를 부리는 것,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 방관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바보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하는 일에 가치도 의미도 부여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을 서서히 죽이는 것과 같다.

2023-04-19

글로컬 포항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세상이 변했다. 물리적 한계와 함께 지역이 고립되던 시절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극동의 변방이었으며, 포항은 나라 안에서도 시골구석이었다. 상대적 박탈감도 한 몫 거들어 나라와 지역은 세계를 향하는 글로벌을 외쳤다. 수출은 여전히 국가경제의 주축이며 세상과 소통하는 노력은 멈출 수 없다. 인터넷과 온라인은 초연결성을 기반으로 지구를 통째로 묶어버렸다. 큰 나라들만 판을 치던 세계질서는 어느새 급변하여 대한민국을 날로 인정하는 모양이 아닌가. 중심과 변방이 따로 없으며 수도와 지역의 구분은 사라져간다.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만 알아주던 무대에 이제는 낯선 얼굴들이 쑥쑥 올라온다.21세기가 중반으로 달리면서, 또 한가닥 변화의 모양새가 눈에 뜨인다. 세계로만 달리는 태도로는 부족하다. 글로벌로만 달리면 모두 같은 모양이 되고 만다. 맥도날드가 그렇고 블루진이 그렇다. 글로벌 기준에 변화가 일어난다. 세계로 달리면서 지역의 모습을 함께 심는다. 글로벌(global)과 로컬(local)을 함께 버무려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낸다. 20세기에는 자신감과 도전정신으로 글로벌을 겨냥했다면, 21세기에는 글로벌과 로컬을 의미있게 섞는 상상과 창의가 필요하다. 글로벌마인드 뿐 아니라 글로컬마인드를 요청하고 있다. 시선은 글로벌을 향하면서 상상력의 기초는 로컬에 두는 21세기형 리더십을 길러야 한다.‘글로컬포항’이 그래서 가능하다. 지역특색을 담아 세계적 경쟁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 지역의 상상력이 주도하는 특별한 세계화는 수도권이 시도하는 밋밋한 국제화보다 앞설 수 있다. 독특한 문화적 경쟁력을 끊임없이 기대하는 시대정신과도 맞물린다. 세계화와 지방화가 만나야 한다. 지역에는 그럴만한 소재도 다양하다. 바다가 그렇고 철강이 그렇다. 온 나라와 여러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사람들이 그렇고, 여성과 아이들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다. 연로하신 어른들을 바라보는 존경심이 그래야 하고 젊은 청년들의 지역 생각을 키워야 함이 또한 그렇다. 포항에만 있거나 포항에는 있어야 하는 소재와 가치들을 찾아내고 일구어서 글로벌시장과 상대해야 한다.글로컬 시대에는 지방에서 뿌리를 찾아 세계시장과 겨루는 상상과 창의를 키워야 한다. 교육부가 나서서 지방대학들이 글로컬 가치를 살피고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일은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몇 개 안 되는 대학들을 선별하여 차등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발상은 공연히 경쟁심을 유발하고 돈으로 줄을 세우는 낡은 발상이 숨어있어 우려스럽다. 글로컬의 힘은 모든 지역에 숨어있을 터이다. 한정된 재원을 나누어 사용한다 해도, 백(100) 또는 영(0) 식으로 몰아가는 방식은 건강한 글로컬리즘의 개발과 진전에 도움이 될까.글로컬의 세상이 열렸다. 대한민국은 이미 저 앞에 서 있다. 한반도의 작은 도시 포항과 지역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중심이 되기 위하여 어떤 가치를 뿜어낼 것인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한반도를 넘어 세계시장을 직접 두드리는 포항의 미래가치에 높은 기대를 건다.

2023-04-19

태교 여행의 성지 ‘성주’

홍석봉 대구지사장 태교 여행이 신혼부부 등에게 새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임산부와 가족이 임신 스트레스를 떨쳐버리고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육아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한 것이다.세종대왕자 태실이 있는 경북 성주군이 인기 태교 여행지로 떠올랐다. 성주군이 세종대왕자 태실이라는 빼어난 관광 자원을 활용, 지역 특화 프로그램을 개발해 임산부 가족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이다.성주군은 지난 15, 16일 임산부 가족을 위한 ‘태실의 고장 성주, 미션 태교 여행’ 행사를 진행했다.국가 지정 사적(史跡)인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이 주 무대다. 올해 4년째 맞는 행사로 문화재청과 성주군이 주최했다. 자녀를 데리고 온 임산부 가족과 신혼부부들이 참여, 의미 있는 여행을 했다.행사는 선석사 태실 법당에서의 ‘산책 태교’, 태교음악 들으며 임산부에게 좋은 참외 성분 찾기, 성밖숲 산책, 오감을 만족시키는 예비맘 태교 맘마파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그 중에도 세종대왕자 태실 산책 코스는 임산부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은 성주군 월항면 선석산의 태봉 정상에 있다. 세종의 열여덟 왕자와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집단 배치돼 있다. 국내에서 왕자 태실이 완전한 모습으로 군집을 이룬 유일한 곳이다. 왕실의 태실 조성방식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성주군은 이참에 성주를 국내 태교 여행의 성지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태교 여행은 임산부들이 문화재를 관람하고 심리적 안정과 치유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성주군은 관광객과 성주 참외 판매 등 농가 소득 증대로 연결해 ‘꿩 먹고 알 먹기’ 사업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터이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4-19

간호법 제정, 충분한 공론화 필요하다

심충택 논설위원 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간호법 처리를 두고 의료계가 폭풍전야다. 간호협회만 숙원이 해결된다고 환영하지만, 의사협회를 비롯한 13개 의료단체는 연일 집단시위를 하면서,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총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민주당의 일방적인 간호법 처리가 자칫 우리사회의 의료시스템을 마비시킬 상황까지 간 것이다. 간호법이 처음 발의된 것은 지난 2021년 3월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김민석 민주당 의원과 서정숙(약사)·최연숙(간호사) 국민의힘 의원(비례대표)이 발의했다. 2년여동안 의료계 각 직역간의 갈등을 조율해 여야 합의안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현행 의료법은 의사·한의사·간호사 등 의료인의 역할과 업무 범위를 단일한 법체계로 관리하고 있는데, 간호법은 이 법에서 간호사 업무규정을 별도 법률로 분리한 것이다. 쟁점이 되는 내용은 제1조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혜택을 받는다’라고 명시한 부분이다. 의사협회에서는 ‘지역사회에서의 간호혜택’이라는 문구가 간호사들이 의사 없이 독자적인 의료행위를 가능케 하는 근거가 된다고 보고 있다. 간호법이 분리된 후 법 개정을 통해 간호사들이 지역사회에서 단독개원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개연성도 우려하는 듯하다.반면, 간호협회에서는 간호업무 영역이 장기요양기관, 노인복지시설, 장애인시설, 어린이집, 학교 등으로 다양화하고 있지만, 의료법은 의료기관 중심의 보건활동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법체계가 정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코로나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달라진 보건환경 속에서 간호 서비스가 지역사회에서도 체계적으로 제공되려면 간호법 제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간호법에 대해 간호조무사들의 반발도 크다. 법안 제12조 ‘간호조무사는 간호사를 보조하여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규정 때문이다. 이 조항이 효력을 발휘하면, 장기요양기관 등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불법근무를 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현재 간호조무사들은 장기요양기관이나 사회복지시설, 어린이집 등 지역사회에서 간호사 없이 간호업무를 하고 있다. 현직 간호조무사는 80만명 정도이며, 간호사는 약 21만명(자격 보유자는 46만명)이다.임상병리사, 응급구조사, 방사선사 등도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사들이 자유자재로 자신들의 일을 빼앗을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간호사를 위한 법률 외에도 모든 보건의료직역의 처우 개선을 위한 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윤석열 대통령은 간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되는데, 어느 쪽을 선택하든 간호사나 의료단체의 극렬한 저항에 직면하게 돼 있다. 고민이 클 것이다. 민주당이 노리는 것도 바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다. 어떤 법이든 이처럼 정치공학으로 처리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간호법과 같이 사회적 갈등이 큰 법률일수록 충분한 논의와 설득 절차가 필요하다. 의료계 직역 간 업무영역의 합리적 조정을 위해 지금이라도 차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2023-04-18

인도 인구 세계 1위 등극

우정구 논설위원 올 1월 중국국가통계국은 2022년말 기준으로 중국의 인구는 14억1천175만명으로 전년보다 85만명이 줄었다고 발표했다. 1961년 대기근으로 인구가 감소한 이후 중국에서 61년만에 처음으로 인구가 준 것이 공식 확인됐다.인도가 중국인구를 추월할 것이란 예상은 이미 작년부터 국제기구 여러 곳에서 전망치가 나왔다. 중국의 출산율이 1.15명으로 뚝 떨어지면서 빠르면 2023년에는 인도가 중국의 인구를 앞지를 것이란 보고가 쏟아졌다. 지난 4월 15일 미국의 경제종합 미디어그룹인 마켓워치는 인도인구가 중국인구를 추월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유엔의 인구 자료를 기초로 두 나라의 하루 인구변화를 적용해 이같이 추론했다.워싱턴 포스트도 유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인도인구가 중국을 제쳤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인구수로 세계 1위 자리를 놓친 건 1750년 이후 273년만에 처음이라 했다. 1990년만해도 중국인구가 인도보다 약 2억8천만명이 더 많았다. 32년이 지난 2022년 두 나라의 인구 격차는 900만명으로 좁혀졌다. 한 자녀 정책을 펼치던 중국이 다자녀장려 정책으로 전환하고 나섰지만 이제 세계인구 1위 자리를 내놓아야 할 판이다.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증가율을 보인 인도 경제에 대한 세계의 관심 또한 집중되고 있다. 인구는 생산과 소비 등 경제성장과 직결되면서 인도의 성장이 폭발적으로 늘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미국, 중국에 이어 GDP 세계 3위국 부상 관측도 나온다.2030년 인도의 30세 미만 소비자가 3억5천만명으로 세계시장의 5분의 1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은 충격적이다. 인구가 가져올 폭발적 경제력을 우리는 부러워 할 뿐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4-18

부족함 속에 감춰진 능력

김정현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으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조건을 이야기하고 있다.첫째, 의식주를 해결하기에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외모. 셋째, 자신이 기대하는 것의 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넷째, 남과 힘을 겨루어 한 사람은 이겨도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자신의 연설을 듣는 사람의 반 정도만 박수를 칠 정도의 말솜씨. 이처럼, 플라톤이 이야기하고 있는 행복의 조건에는 한 가지 공통분모가 있어 보인다. 그것은 바로 완벽함이 아닌 부족함이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우리에게 지속해서 완벽함을 요구하지만 때로는 부족함이 우리의 인생에 더 큰 가르침을 주는 경우들이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이를 “부족함 속에 감춰진 능력”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앞서 언급한 부족함 속에 감춰진 능력은 빅데이터 그리고 인공지능과 관련된 최적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전 알고리즘(Genetic algorithm)과 담금질 기법 알고리즘(Simulated annealing algorithm)의 전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유전 알고리즘의 경우에는 선택(Selection), 교배(Crossover), 변이(Mutation), 엘리티즘(Elitism) 등의 전략에 따라 조금 더 포괄적으로 근사해를 탐색하며, 담금질 기법 알고리즘의 경우에는 메트로폴리스 규칙(Metropolis criterion)을 적용하여 항상 최적의 해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확률에 따라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해도 선택하는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들은 결국 수많은 국소 최적해(Local optimum)를 가진 복잡한 문제에서 최적화를 수행하는 과정 중, 국소 최적해에 수렴하는 것이 아닌 전역 최적해(Global optimum)에 가까운 근사해를 찾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다시 말해, 이러한 알고리즘의 아름다움은 때로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해가 탐색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위의 알고리즘 예제에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체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우리가 세상에서 말하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눈높이에서 잠시 벗어나 조금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부족함은 오히려 아름다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필자는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열심히 공부하는 목적이 “5천인분을 먹을 수 있는 부자가 아닌, 5천명을 먹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설정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의 시선으로는 5,000인분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더 완벽한 사람일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평소에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현재의 삶에 감사가 있게 되고 매사에 겸손한 자세를 지니는 원천이 될 것이다.부족함은 결코 우리의 삶에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삶에 더 많은 성장과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한 부족함 속에는 분명 감춰진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2023-04-18

‘감사의 날’ 선포식장에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비가 잦아든다.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될 무렵이면 하늘에서도 ‘때를 알아 좋은 비를 내리고(好雨知時節), 가는 비로 살며시 만물을 윤택하게 하니(潤物細無聲)’ 시의적절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 무렵의 비는 한 해의 풍년을 가늠하기도 하기에 단비(甘雨) 또는 희우(喜雨)라고도 한다. 이처럼 때맞춰 오는 좋은 비는 반가운 손님 마냥 기쁘고 반가우며 감사하기만 할 것이다.좋은 시절을 알고 때맞춰 내리는 비가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감사의 마음을 들게 하는 대목이다. 자연현상에 대한 고마움과 기쁨을 표현하는 시가 이러할진데, 사람사는 세상에는 고맙고 감사한 일들이 얼마나 숱하고 즐비할까?“이 세상 무엇 하나/고맙지 않은 일이 있으랴//태어나고 자라나서 가정을 이루고 살며 사랑하며/숨쉬고 먹고 자고 입고 마시고 즐기고 느끼며/웃고 울고 기쁘고 슬프고 밝고 맑고 곱고 즐겁고 반갑고 멋지고/보고 듣고 읽고 말하고 쓰고 알고 배우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상상하며/일하고 땀 흘리고 노력하고 인내하고 성취하고 감동하고 만끽하고/은혜를 알고 표현을 하고 보답을 하고 마음에 되새기며/관심의 문을 열고 긍정이 물결치고 이해의 배를 타고 배려가 넘실대며/사랑이 샘솟는 온 누리 순간순간 감사의 빛살….//감사는 마음 따뜻한 선물/눈물겨운 행복이어라”-拙시조 ‘감사’ 전문(2012)어쩌면 사람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감사하고, 일생을 감사하게 마무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감사의 울림은 끊임없이 메아리 치고, 고마움의 나눔은 햇살처럼 비춰 들기 때문이다. 매순간 숨쉬며 건강하게 살아있음이 감사하고, 만나서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며 베풀고 나눌 수 있음이 고맙지 않을까? 큰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작은 감사에서 비롯되며, 감사하는 습관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감사는 은혜를 아는 자의 마음의 열매이며, 감사한만큼 삶이 여유롭고 따뜻해질 것이다.감사로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여 선진사회를 이루기 위한 ‘감사의 날’ 선포식이 최근 포항에서 개최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0년 전 범시민운동으로 다양하게 추진된 ‘감사운동’이 대한민국 1호 ‘인성도시’로 인정받은 감사의 메카 포항에서, 전국 최초로 민간 주도의 감사운동이 재시작된 것이다. (사)대한민국감사국민위원회는 5천만 국민의 감사하는 마음을 일깨우기 위해 매월 5일 오(5)!감사 엽서쓰기 등 전국민 캠페인에 적극 동참하여,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국정목표로 출범한 현 정부와 함께 감사와 배려, 긍정과 나눔의 사회문화 정착으로 전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여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에 따라 포항시산림조합, 포항교육지원청 등 130여 곳의 기관 단체들과 감사나눔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포항시감사운동본부를 창립하는 등 감사운동이 전국적으로 재점화해 감사와 존중이 넘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랬다.마음 따뜻한 감사, 향기나는 꽃길 같고 빛나는 보석 같은 감사문화의 확산으로 모두가 행복해지길 빌어본다.

2023-04-18

AI라는 미지

OpenAI社에서 개발한 프로그램 ChatGPT가 화제다. 사용자의 질문에 답변해주는 인공지능 채팅 프로그램인 ChatGPT는 생활과 관련된 단순한 질문에서부터 어학, 공학, 인문학, 자연과학 등 각종 분야의 전문학술적인 질문에 이르기까지 답변할 수 있는 분야가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에 여러 분야 직종에서 활발하게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나 또한 글쓰기 강사이다 보니 학생들에게 글쓰기와 관련된 강의를 하면서 ChatGPT를 부분적으로 학습시키고 있다. 복잡한 부분까지 가르치기에는 학문적 소양이 부족해 무리이기에, 프로그램의 간단한 구조와 답변 방식, 글쓰기에 있어 활용할 수 있는 부분 등을 가르치고 있다. 시의성 높은 화제를 찾는 방법에서부터 ChatGPT가 답변해준 화제를 바탕으로 개요를 짜는 방법 등 글쓰기에 필요한 사전 작업에 응용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헌데 일선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ChatGPT를 가르치다보니, 예상외의 반응이 느껴져 신기했다. 아이들은 내 생각과 달리 ChatGPT를 활용하는 것에 거부감이 컸다. 레포트를 쓰는 데에 ChatGPT를 활용했다가 감점을 당하면 어떡하나 하는 반응에서부터, ChatGPT를 쓰는 건 반칙이라고 생각한다는 반응에 이르기까지. 예컨대, ChatGPT를 쓰는 건 정당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잘 이해가 가지 않는 반응이다. ChatGPT는 결국 검색 엔진이고, 검색 결과를 문장 형태로 출력해 보여주는 것일 뿐인데, 아이들은 ChatGPT를 일종의 치팅으로 간주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글을 쓰고 결과물을 만드는 데 있어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출판물만을 제 가격을 지불하여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왜 유독 ChatGPT에 대해서는 이런 반감을 느끼는 걸까. 이런 반응은 아이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나와 같은 세대들도 회의용 문서를 작성하거나 연구를 하는 등에 있어 이러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을 일종의 치팅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사실 ChatGPT가 해주는 일이란, 인터넷을 검색하고 정리하고 요약하는 과정을 대신해주는 것일 뿐인데도 사람들을 ChatGPT가 인간 자체를 대신하는 존재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사실 ChatCPT는 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인간의 주관적 감각에 기반한 정보, 예컨대 대상에 대한 호불호를 비롯한 주관적 정보를 출력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인터넷을 통해 접근 불가능한 정보는 취급할 수 없으며, 인간이 만든 정보를 바탕으로 답변하기에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ChatGPT 또한 답변해주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ChatGPT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바로 결정과 책임이다. 그들은 우리의 일 가운데 일부를 대신해주는 것일 뿐,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인간 자체를 대신하는 존재가 될 수는 없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결정과 책임. ChatGPT가 항상 올바른 답변만을 제시할 수는 없다는 모델 자체의 한계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건 모든 인간이 만든 도구가 지닌 한계이기도 하다. 어떤 도구도 인간을 대신해 결정하고 책임을 져줄 수는 없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만이 결정과 책임을 질 수 있다. 지금보다 훌륭한 수준의 인공지능이 개발되더라도, 결정과 책임이라는 최소한의 자유의 영역은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남을 확률이 높다.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계 장치의 신. ChatGPT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표현을 인용하며 새로운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사용자로서 느끼는 인상은 ChatGPT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기계 장치의 신도 아니고, 아주 간단한 답변조차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그럼에도 사람들은 ChatGPT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반감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자신의 업무를 대신해버릴 것이라는 공포에서부터, 그들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리라는 SF적인 공포, 혹은 프로그램이 잘못된 답변을 제공하면 어떡하냐는 공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포들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이런 설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공부를 해야 하고, 지식을 계속해 축적해 나가야만 한다고. 우리가 ChatGPT를 비롯한 인공지능이 내놓는 답변의 정당성과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에 준하는 수준의 지식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건 기술이 아닌 지식이다.

2023-04-18

평점으로 평하지 않기

책상 앞에 앉아 활자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고단하게 느껴지던 주말, 강원도에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짙고 푸른 바다를 기대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막상 몇 시간이고 운전하노라니 어깨가 아프고 허리가 저릿저릿했다. 고생한 것에 비해 해변에 있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이렇게 힘들게 와서 아무거나 먹을 순 없지’하는 생각으로 맛집을 찾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의 별점과 평가로 점철된 음식점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내기 위해 끙끙거렸다. 그렇게 보고 싶던 바다를 앞에 두고 네모반듯한 휴대전화 화면만 들여다보기만을 반복, 평점에 따라 선택한 식당은 더할 나위 없이 평범했다.그러한 경험은 여행지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생활 전반에서 평점에 의지하는 우리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배달앱의 별점을 따져가며 음식을 주문하고 필요한 물건을 구매할 때도 후기를 따라간다. 좋아하는 평론가가 높은 별점을 주었다는 영화를 우선순위로 선택하며 좋지 않은 평을 했다고 하면 ‘유치한 작품인가 보다’하고 지레짐작한다. 문학 작품을 읽을 때도 그렇다. 평론가들이 손을 들어주는 작품이 가장 뛰어난 것처럼 읽히고 각종 출판사에서 부여한 상을 받은 작가들의 신작 위주로 작품을 찾아 읽게 된다.어쩌다 이렇게 평점에 의지하게 되었을까? 인생은 시험이 아니라고, 만점을 받기 위해 애쓰지 말라고 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뭔가에 너무 쉽게 점수를 매기고 또 거기에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무언가를 별 다섯 개로 평가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개개인이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는 일은 꼭 필요하기도 하다. 평점에 도움을 받는 일도 많다. 정말 좋은 것들이 선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꼭 부정적으로 보아야만 하나 싶기도 하다.바야흐로 정보 과잉의 시대다. 뭔가를 구매하기 위해 검색을 시작하면 비슷한 상품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현명하게 골라내지 못하면 우매한 소비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뭐가 좋은지 나쁜지 따져보다가 하루가 다 가버릴 때도 있다. 그럴 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이미 그것을 경험해본 사람들의 평가일 수밖에 없다.이제 큐레이터의 활동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다양한 분야에서 정보를 선별하여 전달해주는 전문가의 필요성이 늘어났다. 그것은 예술작품을 떠나 생활면으로 확장되었다. 가구, 식물, 의복, 음식과 생필품에서도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전문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들의 조언에 따라가다 보면 편리하고 무언가를 소비할 때 실패할 위험성이 낮다. 동시에 새로운 무언가를 편견 없이 직접적으로 겪어보는 일이 드물어질 수밖에 없다.매일매일 최신의 것이 자꾸자꾸 등장한다. 바쁘고 빠르게 시간은 흘러간다. 그 안에서 최선의 것을 소비하고 싶다는 마음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안전한 것만 추구하다 보면 전형성이라는 틀에 갇히게 된다. 유연함은 사라지고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우리는 실패에 관대하지 못하다.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 하루를 망쳤다는 생각이 들고 취향이 아닌 영화를 보면 무의미하게 시간을 버린 것만 같다. 그것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사실을 알지만 기분은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매일 실패해야 한다. 그러한 실패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시선과 판단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면 오히려 그것은 성공에 가깝다.자본주의 사회에선 모든 것에 차등을 둔다. 높은 별점을 받은 식당이나 물건이 더 많이 전시되고 소비되는 것은 마치 공정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물건이나 공간을 넘어서 인간에게까지 적용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곳에서 그런 식으로 개개인을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 인간의 존엄까지도 수치화된 세계는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에 가깝다.무언가를 선택할 때 평점에 현혹되지 말자는 당연하고도 어려운 결심을 해본다. 놀라운 사건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터져 나온다. 근사한 관계는 오해에서부터 시작된다. 별 다섯 개로 규정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할 때 비로소 정말 중요한 것을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다.

2023-04-18

OCI미술관 지방순회전, 문예 발전에 건강한 역할 수행 기대

허혜지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연구팀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는 지역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고미술 전시 ‘완상(玩賞)의 벽’을 개최하고 있다. 이 전시는 OCI미술관에서 OCI(주)와 함께 추진하여 포항을 이어 광양, 군산을 순회할 예정이다. OCI미술관은 개관 이후, 격년제 전시로 지역민을 꾸준히 찾아왔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4년 만에 전시를 개최한다는 점에서 더욱 반갑지 않을 수 없다.‘완상의 벽’은 우리의 도자기와 회화를 선보인다. 사실 전시 제목에서 ‘완상(玩賞)’은 ‘어떤 대상을 취미로 즐기며 구경한다’라는 뜻으로, 전시는 한국의 대표적인 완상 문화를 소개한다. 사실 ‘그릇’은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문인들에게는 완물상지(玩物喪志)를 굳게 지키면서도 일상의 겪을 높이는 물건이었다. 따라서 다양한 도자 그릇들은 부엌의 실용품이자 서가를 장식하는 예술품으로 수집되었다. 결국 완상의 대상은 저마다 가지각색이었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것은 그릇이었고, 이는 공예를 넘어 회화에도 영향을 끼치며 한국의 대표적 완상 문화로 자리 잡았다.전시장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먼저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청자이다. 청자는 특유의 비색(翡色)과 유려한 형태로 고요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사방 연속으로 만자문의 표현이 깃든 ‘백자청화운현명만자문병’은 당대의 수준 높은 미의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시는 회화로 이어지는데, 이는 회화 속에서 그릇이 비중 있는 소재가 되었음을 시사한다.‘완상의 벽’은 한국의 완상 문화를 소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OCI 그룹의 창업주인 송암(松巖) 이회림 선생이 수집한 작품을 공개하는 자리로서 그 의미 또한 크다. 특히 한 개인이 수집한 사적 취미가 깃든 작품을, 기꺼이 아무런 제약 없이 나누는 것은 예술을 감상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OCI미술관은 지방순회전을 꾸준히 기획하여 지방 사업장이 있는 도시에서 다양한 전시를 선보여 왔다. 이는 예술을 매개로 기업과 지역 사회 간의 교류를 증진하고, 문화 향유의 기회를 지역민들과 나누려는 기업의 메세나 정신이다. 더욱이 OCI(주)는 미술관을 통해 예술가들에게 창작 활동의 기반을 마련해주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기업의 ESG+메세나를 확대해오고 있었기에 기업의 메세나 정신이 더욱 와닿는다. 바라건대 앞으로도 OCI(주)가 문화예술을 통한 창의적이고 선진적인 기업문화의 발전뿐만 아니라 예술가와 시민들이 깊게 공감할 수 있는 문화예술의 발전에 건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으면 한다.

2023-04-17

황리단길 유감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포항과 경주는 지척이다. 경주에 가면 주로 황리단길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신다. 황리단길의 경관은 1960, 70년대에 지어진 구축을 리모델링한 것이 주를 이루지만 일본식 이자까야(주점)나 일본식 라면집, 퓨전 일식집 등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실제로 온라인에서 여행 후기를 찾아보면 ‘일본풍 가게가 많다’는 감상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러한 가게들의 맛과 서비스에 만족했다는 반응이 많지만, 기대했던 풍경이 아니었다며 실망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른바 ‘황리단길 유감’이다.황리단길이 소위 ‘왜색’에 물들었다고 단순하게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황리단길에는 일식 외에도 맛있는 식당과 카페, 재미있는 상점들이 많이 있다. 특히 십 원짜리 동전에 불국사 다보탑 문양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해 만들어진 ‘십원빵’은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진짜 문제는 ‘황리단길 유감’에 내재된 지방에 대한 대상화와 고정관념이다. 서울(수도권)에서 이따금씩 여행 삼아 지방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지방이 그들이 생각하는 ‘지방다움’을 유지하기 바란다. 경주는 신라 천년고도, 전주는 한옥마을, 부산은 자갈치 시장의 분위기가 나야만 한다. 지자체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고자 ‘지방다움’을 강화하는 사업들을 진행한다. 성공적인 사례도 있지만, 지나치다 싶은 경우도 많다. 1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인천의 ‘새우 타워’가 대표적 사례다.이러한 기대와 부응의 프로세스는 기존 거주민들을 소외시키기 쉽다. 때로는 주거지역의 관광지화로 기존 거주민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워지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이 일어나기도 한다. 황리단길이 황리단길이 되기 이전,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황리단길’ 사진들에서 그들의 흔적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낙후된 주거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본래의 목적과는 무관하게 지금의 황리단길은 일종의 테마파크가 되었다. 방문자들은 경주 주민들의 일상과는 완전히 분리된 공간을 거닐며 ‘맛집’과 ‘인스타 핫플’을 즐긴다. 사진만 잘 나온다면 일식이든 한식이든 상관없는 것이다. 지금 황리단길에 투입된 자본은 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물론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경주 여행’들이 축적되었을 때, 어떤 헤리티지(문화적 유산)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이다. 냉정히 말해 SNS에 올릴 사진이 잘 나오는 식당이나 카페를 꼭 황리단길에서 찾아야 할 이유는 없다. 황리단길보다 더 ‘핫한’ 또는 ‘힙(hip)한’ 거리가 나타나 입소문을 타게 되면 지금의 인기는 순식간에 식어버릴지도 모른다. 장소의 헤리티지는 기존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과정이 누적되어 만들어진다. ‘경주 황리단길’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험은 경주 주민들의 삶, 경주의 다른 장소들과 어떻게 윈-윈(win-win)할 수 있을 것인가? ‘왜색 논란’을 넘어 함께 고민해봤으면 한다.

2023-04-17

명확하고 공정한 법으로

김규인수필가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근로자 김용균 씨 압사 사고, 이천 물류창고 건설 현장 화재 사고, 모 중공업의 아르곤 가스 질식사고는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산재로 인한 사망률은 줄곧 상위권을 차지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된 작년에도 6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산업현장에선 잠시 방심하면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일어난다. 특히 고층 아파트를 많이 짓는 요즈음의 건설 현장의 추락사고는 사망으로 이어진다. 기본 자재가 중량물이 많아서 운반 시에도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중량물을 떨어뜨려서 신체 일부를 다치거나 낙하물에 부딪혀 다치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기계를 다루는 산업현장도 회전체에 신체 일부가 감기거나 회전체 사이에 몸이 끼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물건을 운반하는 지게차에 부딪히고 공기가 부족한 공간에 아무런 준비 없이 들어가 질식사하는 경우를 언론을 통해 접한다. 교통사고 없는 날이 없고 이번에는 다리의 인도교가 무너지는 사고까지 발생한다.이러한 와중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은 사고를 막지 못한다. 법의 제정 당시에는 경영자의 불만이 많았고 사고가 일어나면 근로자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왜 이런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일까. 여기에는 성과를 중시하는 사회와 근로자의 부족한 안전 의식도 있지만 중심을 잃은 언론과 급속한 성장에 젖어 결과만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 자체에 문제가 있다. 사고가 일어나도 남의 일인 양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언론은 흔들리는 눈으로만 본다. 언제나 사고의 본질은 묻힌 채 신문 기사가 나가고 독자들을 모으는 일만 중시한다. 법을 만드는 국회는 사고의 예방과 공정한 법을 만드는 것보다 표를 얻기 위해 지지자만 바라본다. 경영자도 유권자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중대재해를 예방해야 한다는 마음은 모두가 같다. 그런데도 불명확하고 추상적인 법 조항, 경영자에게 과중한 불공정한 처벌은 법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법은 명확하고, 누구에게나 공정하며 합리적이며 실행 가능해야 한다. 누구에게도 외면당하는 법은 힘을 잃고 만다.2024년부터는 5인 이상의 중소기업도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는다. 대기업은 그나마 조금 낫지만, 정보나 기술이나 자금이 모두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우는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다. 자금과 기술과 시장을 모두 관리하는 대표의 구속은 회사의 존립마저 어렵게 한다. 경영자를 향한 처벌이 나머지 근로자의 생계마저 위협하는 꼴이다. 법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국회에서는 자문해 보아야 한다.누구에게나 공정하고 실행 가능해야 법의 생명력이 길어진다. 법을 지켜야 할 국민들이 외면하는 법은 존재 이유가 없다. 고용노동부는 처벌 보다 사업장 스스로 안전 체계를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 방향을 바꿨다. 중대재해 법령을 개선하는 태스크포스팀을 발족하여 6월까지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사고 없는 대한민국은 언제나 가능할까. 안전에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올해는 안전 대한민국의 기틀을 다지는 한 해가 될 수는 없을까.

2023-04-17

포항 송도해수욕장의 재탄생

홍석봉 대구지사장 넓은 백사장과 울창한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포항 송도해수욕장은 동해안을 대표하는 피서지였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개장, 해마다 여름철이면 수 십만 명의 피서객들이 찾는 명소였다. 1980년대 까지도 그 명성을 이어갔다.하지만 1968년 포항 철강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부터 수질이 오염되기 시작했다. 해양환경이 변했다. 태풍으로 인한 모래 유실이 가속화되면서 백사장이 점차 황폐해졌다. 2000년대 들어선 사실상 해수욕장의 기능을 상실했다. 많을 때는 12만 명의 방문객이 찾았던 해수욕장이 결국 2007년 문을 닫고 말았다.추억만 남긴 채 그렇게 기억에서 멀어져간 송도해수욕장이 다시 문을 연다고 한다. 폐장 16년 만인 올여름 재개장을 목표로 준비작업이 한창이다.송도해수욕장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포항시는 2012년부터 294억원을 들여 백사장 복원 공사를 벌였다. 그 결과, 백사장 모래 품질과 수질 등이 지정 요건을 갖춰 해수욕장을 재개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주민들은 백사장이 되살아나고 해수욕장이 재개장하면 주변에 새로 조성된 운하와 솔밭 등이 한데 어울려 송도의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을 염원하고 있다.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 입점도 희소식이다. 주민들은 이미 유명 커피숍과 카페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 일대에 조성된 카페문화거리의 분위기가 더욱 풍성해질 것을 기대한다. 이곳에 자리잡은 카페들은 매장에서 동해 바다와 울창한 소나무 숲, 포스코의 야경을 파노라마처럼 감상할 수 있다. 게다가 젊은층 사이에 카페문화거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인생샷’을 찍는 문화가 유행이라고 한다. 또다른 매력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송도해수욕장의 재탄생이 기다려진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4-17

‘신공항경제권’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지난 4월 13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공포 후 4개월이 경과한 8월부터 시행된다.언론에서는 이날을 대구와 경북이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는 역사적인 날로 지칭했다. 대구경북신공항 건설사업의 시작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대구 동·북구 주민들이 군사공항 K2의 소음과 개발제한 등의 피해를 호소하며 시작되었다. 당초에는 군공항만의 이전에서 영남권 신공항건설 백지화로 인해 기부대 양여방식의 군민간공항 통합 이전으로 전환되었다.많은 진통 끝에 군위군·의성군 공동 통합공항 이전 후보지가 결정되고는 통합공항 이전이 순항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군위군의 대구시 편입법 통과도 쉽지 않았다.그러나 대구경북 미래 50년을 견인할 ‘통합신공항특별법’은 지역민의 염원을 담아 마침내 입법되었다. 당초는 항공기 소음과 개발제한이라는 환경·안보 문제로 인한 군공항 이전 사업이 이제는 국토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제고를 위한 ‘통합신공항 건설과 종전부지개발’로 크게 변모하게 된 것이다.코로나 백신 접종 확대와 국제 여행 규제 완화로 인해 글로벌 항공 여객 수요는 점진적으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되고, 앞으로 안전한 여행 환경이 조성되면서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항공화물 시장도 전세계 국제 무역 및 전자상거래 확산, 글로벌 팬데믹 이후 경제회복 등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새로운 기술 및 항공기 유형의 도입, 저비용 항공사의 확장, 인프라 투자 및 개선 등이 미래 항공화물 시장의 성장을 크게 뒷받침할 것으로 예상된다.그러나 현재의 대구국제공항 시설은 부지면적의 98%가 군소유이며, 중단거리 운항 항공기만 이용할 수 있는 짧은 활주로만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터미널은 이미 처리용량을 넘어선 매우 열악한 상태이다. 여기에다 국제 항공화물은 수도권 인천공항이 무려 국내 항공화물의 98.6%(2019년 중량기준)를 독점 처리한다. 대구와 경북 등 수도권 이외 지역 기업은 촌각을 다투는 수출용 고부가가치 항공화물을 처리하기 위해 인천공항까지 보내는 내륙운송 물류비까지 부담해야 한다. 이로 인해 첨단 신산업을 영위하는 핵심 기업은 인천공항에서 멀어지지 못하는 것이다.‘공항경제권’은 대구경북 신공항과 같은 대형 공항 주변(10~20㎞)에 신공항도시(Air-City)와 첨단산업단지가 건설되어 국제 및 지역간 교통과 물류 인프라에 의존하는 다양한 기업과 산업이 형성되는 곳이다.이 지역은 교통 및 물류 효율성, 다양한 기업 및 산업 협력, 경제적 효과, 국제화를 통해 지역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촉진한다. 또한 ‘공항경제권’을 핵으로 대구경북 지역과 주변지역 산업단지와 공항후적지를 고속철도와 도심항공교통(UAM)으로 연계한 ‘초광역경제권’ 형성도 촉진한다. 이와 같이 ‘대구경북통합 신공항경제권’은 대구와 경북의 미래 50년 대변화를 이끌 것이다.

2023-04-17

17세기 어느 저명인사에 대한 가짜뉴스의 진실

김령의 ‘계암일록’ 중 8책, 신사년(1641) 일기 수록. /사진출처 : 한국국학진흥원 ‘선인의 일상생활, 일기(https://diary.ugyo.net)’ 21세기 온라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신속한 정보 전달과 의사소통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엄청난 편의성과 효율성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심각한 폐해도 야기하고 있다. 책임 없는 표현의 자유가 무한하게 허용되면서 자극적이고 흥미 위주의 정보들이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그 안에 가짜뉴스가 있다. 카더라식 억측 보도를 넘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민 뉴스, 현재 세계는 이 가짜뉴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가짜뉴스의 최대 피해자는 정치인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다. 가짜뉴스를 통해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어 있고 또 그물망처럼 얽히게 되면서, 가짜뉴스의 양산과 유포는 통제가 불가능하게 되었다.조선 시대에도 가짜뉴스는 존재했다. 경상도 예안의 선비 김령(金坽·1577~1641)은 일기에서 이와 관련한 일화를 기록하며 분노를 표출한 적이 있었다.1641년(인조18) 1월 8일의 일기에서 김령은 3일 전 초5일에 여강서원의 사당 참례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며 가짜뉴스 일화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날 권귀중이라는 인물의 성명을 서원 명부에서 지워 버렸는데, 그 이유는 그가 얼토당토않은 말로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1538~1593)을 비난하고 배척했기 때문이었다.권귀중은 평소 떠들고 다니길 1577년 인종(仁宗)의 정비(正妃)인 인성왕후(仁聖王后)가 세상을 떠나 국상(國喪)을 치를 때 그 초기에 김성일이 소를 잡았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그 말의 출처를 따져 물을 때마다 권귀중은 ‘안동의 어떤 사람에게 들었다’라며 누구인지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었는데, 이날 여강서원 사당 참례 때 그 출처가 정유번이라는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백성 전체가 상복을 입는 왕실의 초상에 사가(私家)에서 소를 잡았다는 루머를 퍼뜨렸으니 김성일의 명예가 실추된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김성일은 경상도 안동 출신으로 퇴계 이황의 문인이다. 1568년 문과에 급제해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는 경상우도초유사에 임명되어 의병장들과 함께 전투를 이끌었다. 이듬해 경상우도순찰사를 겸해 도내 각 고을에 왜군에 대한 항전을 독려하다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령은 ‘계암일록’에서 다음과 같이 일기를 이어나갔다.“이때 와서 비로소 그 말이 정유번의 혀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다. 정유번은 비루하고 패려궂은 인사로 매우 형편없는 자인데, 권귀중이 그의 말을 곧이듣고 함부로 선대의 현인(賢人)을 비난한 것이다. 대개 섭섭한 감정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라 하니, 통탄스럽고 분하다. 정축년(1577) 겨울, 국상(國喪) 초기에 지역이 멀어서 미처 부음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안동 임하의 한 일가에서 일이 있어 소를 잡았다. 그러나 부음을 듣자마자 쇠고기를 다른 곳에 두고 아주 탄탄하게 봉해서 닫아 두었다. 이 당시 학봉[김성일]은 서울에 있으면서 미처 고향으로 돌아오지도 못했을 때였다. 그때에도 와전된 말이 있어서 임하의 온 문중이 이를 변론해 바로잡았는데, 어찌 60년이 지난 뒤에 또 이것으로 학봉에게 누를 끼치려 할 줄을 알았겠는가? 권귀중은 이 땅에 용납될 수 없는 자이다. 소인을 한을 품은 독이 매우 우려스럽다.” -김령의 ‘계암일록’ 1641년 1월 8일의 일기 중에서김성일 사후 60년이 지났음에도 그에 대한 악성 루머를 퍼뜨렸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김성일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기에 다행스럽게도 이 가짜뉴스는 결국 진실이 밝혀졌다.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책임연구위원 물리적 거리에 따라 소통의 원활성이 결정되던 시대에는 정보 수집 자체가 쉽지 않았다. 전달 과정에서 정보가 변형되거나 왜곡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대부분 의도적이라기보다 입소문으로 퍼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필연적인 현상이었다.물론 앞의 사례처럼 여러 가지 이유에서 악의를 가지고 악성 루머를 만들어내는 일도 없지는 않았다. 오보나 허위 악성 루머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파급 범위와 영향력이 막강하지는 않았다.급속도로 발전된 기술력 위에서 가짜뉴스는 생산과 동시에 일파만파 퍼져나간다. 더욱이 지금은 사적 이익 추구만을 목적으로 처음부터 드러내놓고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실정이다. 출처를 따져 진실을 가린다 해도 시간이 한참 걸리니 가짜뉴스에 현혹된 대중의 관심을 돌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다.넘치는 정보 속에서 사실과 거짓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팩트체크’가 수반되어야 할 만큼 정보를 걸러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기에, 무엇을 믿고 어떤 것을 의심해야 하는지 반드시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2023-04-17

시간의 음악과 움직임의 음악

정점을 향한 여정에 이제 한 발짝만을 남긴 인물이 있다. 물론 그 정점 너머 또 다른 목표지점이 나타나겠지만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지점의 초입에 다다른 사람.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최초의 여성 지휘자이며, 8개의 말러 교향곡 실황 녹음에 마지막 5번 교향곡 실황녹음을 앞두고 있는 ‘리디아 타르’. 물론 가상인물이다. 베를린 필은 한번도 여성 지휘자를 선임한 적이 없다.영화는 초반부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타르’가 쌓아 올린 음악에 대한 업적과 생각, 일관된(절대 다양하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 견해를 듣는다. 이 모든 것들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고난과 극복의 과정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될 앞으로의 계획과 견해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래서 구구절절하지 않고, 단순하며 예리하게 반짝이는 어떤 존재의 강연을 듣는 느낌이다.대개의 경우 성공담이라고 하면 응당 뒤따르는 고난과 극복,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의 단어들이 보이지 않는다.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에 놓여 있는 길,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길이 아닌 밝고, 아름답고, 찬란하게 보이는 길이지만 아무도 도달하지 못했던 길의 마지막 지점에 가장 근접해 있는 마에스트로의 모습이다. 확고하고 의지에 차 있으며 의심의 여지없이 이미 성취된 것과 같은 미래를 이야기한다. 영화의 초반부는 이렇듯 완고하고 완벽한(?) 정체가 도달한 예술(음악)의 빈틈없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토크쇼가 진행되면서 “요즘 시대에 다양하다는 건 좋은 말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지금은 ‘전문가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 부분은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인종과 성별, 모든 것을 망라한 최고점의 존재로서의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는 의미로 읽힌다. 여성성을 대변하는 ‘마에스트라’라는 단어의 필요성 보다는 남성성을 대변하는 단어로 인식되는 ‘마에스트로’로 불리우길 원한다. 그래서 타르의 관점은 일관되었으면서 절대 다양하지 않다고 하겠다. 이제 정점의 초입에서 빛나던 존재의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직접적이지 않고, 격정적이지 않다.우회적으로 미세하게 흔들리며 균열을 일으키는 내리막길을 보게 된다. 타르가 했던 말들과 행동, 생각들이 스스로를 향하면서부터 붕괴된다. 그 와중에도 기존의 권위와 명성을 높여가며 범접할 수 없는 지점으로 향해간다.영화 ‘TAR(타르)’는 외연적으로는 차갑지만 그 내부는 뜨겁게 끓어 오른다. 성공의 여정이 아닌 무너지는 지점으로 향하는 과정이 차분하고 냉정하게, 우아하면서 아름다운 악보를 흝는 것과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 ‘타르’는 “음악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시간은 속도다. 정해진 음표 속에서 속도를 조절해가면서 지휘자의 해석으로 연주된다. 그 속도 속에서 강약이 더해진다.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며 높고낮음을 조절하면서 음악은 진행된다. 타르의 음악에 대한 관점과도 같이 진행되며 사건은 차갑고 우아하며 단조롭게 시작되어 한순간에 그녀의 모든 것들을 무너뜨린다.하지만 견고했던 것을 무너뜨리는 쾌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을 극적이지만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자극적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만 쉽게 그것을 예측할 수 없는 지점에서, 내부적으로 흔들리고 외부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며 임계점으로 향한다. 그리고 심판하지 않는다.추락한 그녀는 고향 집으로 돌아와 오래 전에 보았던 비디오테이프를 꺼내 레너드 번스타인의 “모든건 음악은 움직임에 있으며,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흐르며, 그 움직임은 백만 단어보다 더 많은 걸 말한다”라는 회고담을 들으며 울음을 터뜨린다. 실존했던 레너드 번스타인은 가상인물 ‘타르’와는 다른 결의 마에스트로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다.실제 존재했던 20세기 위대한 지휘자처럼 베를린 필하모닉의 ‘황제’ 카랴얀처럼 시작한 타르는 뉴욕 필하모닉의 ‘연주자들의 친구’ 번스타인의 길을 보게된다. 바닥에서 다시 일어날 것인가는 마지막 장면의 해석으로 남는다. /(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3-04-17

불법 저지른 후보가 유리하면 안 된다

김진국 고문 신뢰도 조사를 하면 국회가 언제나 꼴찌다. 지난해 전국 지표조사에서 국가기관별 신뢰도를 물었더니 국회는 15%였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조사에서는 정치인을 믿는다는 응답자가 3.1%에 불과했다. 역시 바닥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불신이 넘친다. 신뢰를 생명으로 삼는 직업군에도 불신이 쌓여간다. 그렇지만 시공을 넘어 가장 불신받는 게 정치인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정치는 4류”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다. 정치인이 부정과 비리, 특권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그동안 많이 바뀌었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억울할지 모른다. 도매금으로 매도할 수 없는 훌륭한 정치인도 있다. 그렇지만 정치인의 비리 사건, 특권의식과 갑질이 수시로 불거지니 여론탓만 할 수도 없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다. 자치단체장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투표로 선출한다. 그런데도 자기 손으로 뽑은 대표를 가장 믿지 못하니 참 딱하다. 정치인을 믿지 못하니 국민의 대표로서 수행한 일들을 믿을 수 없고, 대의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도 어렵다.범죄를 수사할 때 가장 먼저 돈을 추적하라고 한다. 정치야말로 돈을 따라가야 이해할 수 있다. 돈이 이권만 사는 게 아니다. 표도 사고, 권력도 산다. 특히 과거 일본의 파벌정치는 보스가 정치자금을 마련해 돈과 공천을 나눠주고, 충성을 받았다. 우리도 과거 그런 행태를 따라 했다. 3김 정치가 그 시대의 마지막인가 했다. 그런데 아직도 남았다.전두환 정부까지는 여야의 정치자금은 비교가 안 됐다. 집권당이 폭포수를 받아쓴다면 야당의 정치자금은 폭포에서 떨어진 물방울 정도라고 했다. 야당은 정치자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웠다. 야당에 정치자금을 전달한 기업은 세무조사 등 보복을 당하기 일쑤였다. 여당이 야당의 협조를 받기 위해 일부 나눠주기도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선된 1992년 선거에 3천억원을 썼다고 회고록에 썼다. 그런데 김대중 야당 총재에게 20억 원을 줘 95년 문제가 됐다. 그러나 정권교체가 가능해지면서 야당도 정치자금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얼마 전 인기를 끈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도준(송중기 분)은 할아버지 진양철(이성민 분)에게 여당 후보에게 베팅하라고 조언한다. 진도준은 미래를 알기 때문에 그렇게 조언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미래를 모르는 기업인들도 노태우 후보에게 훨씬 많은 자금을 지원했다. 당장 정권을 쥐고 있어 언제든 보복할 수 있었고, 정권교체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자유당 시절은 물론 박정희 시대에도 막걸리, 고무신이 돌아다녔다. 5당4락이니 하며 선거자금으로 당락을 가르는 말이 나돌았다. 그에 비하면 많이 깨끗해졌다. 깨끗해진 만큼 정치도 자유로워졌다. 그런데도 아직 돈 선거의 잔해들이 남아 있다. 최근에는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돈을 뿌렸다는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현역의원 10명 등 40명 정도가 연루됐다고 한다. 민주당은 기획 수사라고 비난하지만, 녹취록이 나왔다. 녹음파일을 만든 이정근 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시인했다고 한다. 부인만 하기 어렵게 됐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3만 건이나 되는 녹음파일을 풀고 준비작업을 한 것 같다며 민주당이 선제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조직선거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하소연한다. 돈이 필요하면 정당하게 정치자금법을 손질하는 게 옳다. 불법을 저지른 후보가 더 유리해서는 안 된다. 감춰진 돈에는 악취가 나기 마련이다. 불법 정치자금은 불법 선거로 이어지고, 당원의, 혹은 국민의 뜻을 왜곡하게 된다. 대장동 사건에서 보듯 용적률을 조금만 조정해줘도 수천억 원이 생긴다. 예산을 쏟아붓는 건 공짜 돈 같지만, 모두 국민의 세금이다.윤석열 정부가 아직도 아마추어라고 비판받는다. 잘하는 게 있다면 비리 수사다. 윤 대통령은 과거 여야를 가리지 않고 칼질한 경험이 있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시대적 과제가 공정과 정의다. 민주주의가 바로 서려면 독재는 물론 돈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정치가 좀 더 깨끗해질 수 있도록 정치를 바로 세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업적이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