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라는 지난 세기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 경제·사회·문화의 우호적 파트너로 변화한 21세기 한·일 관계. 이경재 숭실대 교수는 학술연구를 목적으로 일본을 30차례 이상 다녀온 학자다. 올봄엔 도쿄대학에 교환교수로 간다. 그간 이 교수가 면밀하게 살펴온 일본 문화·예술의 어제와 오늘을 독자들에게 들려줄 ‘이경재의 일본을 읽다’는 2024년 본지가 준비한 주요한 기획연재 중 하나다. 독자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주
홋카이도(北海道)가 떠오른 것은 연일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오랜만의 강추위가 계속되어서일까요? 어린 애들도 알다시피 일본은 네 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인데요. 가장 북쪽에 위치한 홋카이도는 남한 면적의 80%에 이르는 아주 큰 섬입니다. 특히 우리에게는 설원의 롱테이크 영상으로 유명한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생사를 뛰어넘는 순백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무대가 바로 홋카이도였던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여주인공 나카야마 미호의 “오겡끼데스까”라는 외침이 울려퍼질 듯한, 홋카이도는 눈과 벌판과 추위와 이국적인 정서로 가득한 낭만과 꿈의 무대임에 분명합니다.
홋카이도는 근대 일본의 역사적 상흔이 그 어느 곳보다 강렬하게 남겨진 곳이기도 합니다.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1542∼1616)가 즐겨 보던 세계지도에는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대륙까지 표시돼 있지만, 오늘날의 홋카이도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메이지 이전까지 홋카이도는 일본과는 무관한 아이누의 땅이었던 것인데요.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근대 국민국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일본은, 홋카이도를 일본의 지방으로 편입시켜 버립니다. 이후 제국 일본은 오키나와를, 타이완을, 조선을, 만주를 자신의 일부로 먹어치우는 침략적 야욕을 유감없이 발휘했는데요. 그렇기에 홋카이도는 근대 일본제국주의가 시작된 곳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또한 홋카이도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혹한 노동 착취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의 대표작인 고바야시 다키지(1903∼1933)의 ‘게공선’(1929)의 배경이 홋카이도인 것에서도 잘 드러나는 사실이지요. 고바야시 다키지는 홋카이도에서 성장하였으며, 그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도 다쿠쇼쿠은행 오타루 지점에서입니다. 그가 노동운동과 프롤레타리아문학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도 홋카이도에서였고, 이런 상황에서 탄생한 것이 그 유명한 ‘게공선’인 것입니다.
게공선 하쿠코마루호는 홋카이도 북쪽의 거친 바다에서 게를 잡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일종의 공장선입니다. 게공선에 승선한 이들은 가난과 자본의 핍박에 몰리고 몰려 마지막 선택지로 일종의 감옥이나 마찬가지인 배에 오른 처지입니다. 이 게공선은 당시 자본주의 일본의 온갖 문제를 통조림처럼 꽉꽉 눌러 담은 공간이기도 하네요. 게공선은 일반 선박이 아닌 공장선이기에 항해법의 적용도 받지 않고, 순수한 공장이 아니기 때문에 공장법의 적용도 받지 않습니다. 일종의 무법지대인 이곳에서는 오직 성과만을 절대시하는 자본의 논리만이 힘을 발휘하는군요. 감독인 아사카와는 자본가를 대리하며 온갖 폭력을 행사합니다. 폭언이나 폭행은 애교에 가깝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라면 고문도 서슴지 않을 정도입니다. 아사카와는 근처에 있는 게공선 자치부마루호가 침몰하는 상황에서도, 이익을 위해 400여 명의 생명을 외면하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젊은이 야마다가 죽었을 때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바다에 던져질 야마다를 새 마대 자루가 아닌 헌 마대 자루에 싸서 버리게 지시할 정도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자본의 폭력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자본가를 대리하여 게공선에서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아사카와 감독은 게를 잡아 통조림을 만드는 일이 “국가적인 일”이라 강조합니다. “대일본제국의 대장부”가 되기를 강요받는 노동자들도 처음에는 일본군 구축함을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격하며, “일본제국을 위해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게공선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파업에 나섰을 때, 게공선에 오른 일본군들은 노동자들을 도와주기는커녕 그들을 폭행하고 파업의 지도부를 끌고 갈 뿐입니다. 이를 통해 게공선의 노동자들은 ‘일본제국의 해군도 결국 자본가들과 한통속’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본래 자본주의와 국민국가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분리 불가능한 근대의 핵심적인 두 기둥이기도 합니다.
‘게공선’은 프로소설의 일반적인 문법에 걸맞게 낙관적인 전망으로 끝납니다. 한번 실패를 맛본 게공선의 노동자들은 더욱 강한 단결력과 투쟁력으로 기어이 파업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낙관적 전망은 특별고등경찰의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다 요절한 고바야시 다키지의 강렬한 사회의식이 반영된 결과겠지요. 지금도 시립 오타루문학관에 가면 이념과 문학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고바야시 다키지의 삶과 문학의 향훈을 느낄 수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2008년 신초사에서 문고본으로 재발행한 ‘게공선’이 무려 50만 부 이상 팔리고 2009년에는 영화로까지 만들어지는 등 21세기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현재의 일본이 100여 년 전의 홋카이도 바다를 다시 떠올리게 할 만큼 만만치 않은 것과 관련된 것이겠지요. 일본인조차 최고의 관광지로 꼽는 눈과 낭만의 홋카이도에서 한번쯤 근대 일본의 역사적 상흔을 떠올리는 것도 분명 의미 있는 일본체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