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버킷리스트는 여전히 유효하다. 은퇴 전에 작성된 목록엔 단연 여행 계획이 많았다. 퇴직 후 바로 감행할 것을 코로나19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손주들의 유치원 등하원 봉사에 묶여 또 미룰 수밖에 없었다. 작년 말 베트남여행으로 워밍업했으니 올해는 유럽 여행을 바로 감행할 참이다. 마음 바뀌지 않으려 얼리버드로 비행기를 예매했고, 계획도 꼼꼼히 짜 두었다. 수영, 요가, 자전거 타기, 하루 5천보 걷기 등의 체력 단련 리스트도 꽉 차게 버티고 있다. 그 중 몇 가지는 실천했고, 게으르고 끈기없는 탓에 접었다. 실패했을 땐 재도전이 필요하니 새해 새 다짐으로 다시 시작할 것. 손녀의 유치원 봉사가 끝나면 바로 차를 팔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걷기를 생활화할 거다. 틈나면 자전거의 타이어도 점검해 둬야겠다. 이보다 더 많은 것은 학습목록이었다. 한국사능력시험이나 일본어 회화공부는 잠시 제쳐둔다. 대신 새해 새 계획으로 새로운 접근을 하자. 한글서예 공부는 계속할 것이고, 최근 한자공부에 눈떠 재미있어하는 손녀와 한자검정시험에 도전해 볼 요량으로 급수시험 대비용 한자책을 사 두었다.
나의 버킷리스트는 유기체처럼 살아있어 새롭게 생성추가된 것도 있다. 자격증 도전하기. 격조했던 후배가 전화를 했다. 퇴직 후의 근황을 물었다. 나의 버킷리스트를 소개하면서 실패담을 얘기했다. 나보다 퇴직이 몇 년 더 남은 영문학 전공 후배의 계획은 나와는 달랐다. 평생 인문학을 했으니 퇴직 후엔 전혀 다른 계열의 공부를 해 보고 싶단다. 어떤 공부에 관심 있냐고 물으니 그녀의 답은 구체적이되 도전적이었다. 30년 넘어 영문학을 공부했다. 인문학은 인간 정신에 관한 학문이다. 퇴직 후엔 인간의 몸에 관한 공부를 하고 싶다. 간호학 같은 걸 공부해볼 생각이다. 인생의 절반은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싶다는 그녀의 계획은 참신했다. 동행이 있어야 실천하기 수월할 거라며 동참을 제안했고 난 흔쾌히 맞장구를 쳤다. 후배도 스승이요, 이 또한 후생가외였다. 집 가까이 간호학원을 검색하여 전화했다.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던 학원에서는 혹시 내일배움카드를 갖고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내일배움카드는 취업준비생, 이직을 준비하거나 업무역량을 키우고 싶은 재직자, 나 같은 은퇴자,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경력단절여성의 역량개발에 필요한 훈련비를 국비로 지원하는 제도다. 생애에 걸쳐 직무능력습득과 향상을 위해 국민 스스로 직업능력개발을 할 수 있도록 1인당 500만원 한도 내에서 훈련비를 지원한다. 내친 김에 바로 카드 발급을 위한 서류를 준비, 대구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갔다. 인터넷으로도 된다지만 그 자리에서 신청했고, 은행에 가서 카드 발급을 받았다. 틈나는 대로 국비 지원 프로그램을 탐색하고 있다. 간호조무사자격증을 위해 간호학원을, 최신 매체를 공부하고 싶어 유튜브아카데미를 점찍어두었다. 나도 유튜버가 될 수 있을지 모를 일 아닌가. 오늘 길에서 지게차, 굴착기 국비무료교육 현수막을 보았다. 몸 쓰는 일이니 이것도 좋네. 당장 전화 걸어 자격증 취득을 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