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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달달한 자궁

피귀자 수필가 칼 맛을 보더니 더 독해진 걸까. 날 선 칼을 튕기며 길을 내주지 않는 단 호박. 남반구의 강렬한 햇빛이 키운 완강한 근육을 진작부터 알아봤지만 이리 돌 같을 줄이야. 칼의 길을 더 이상 용납 않는 호박과의 씨름이 낭패스러웠다.겉가죽이 검푸른 단 호박 한 덩이를 샀다. 작은 크기에 비해 묵직한 뉴질랜드산 호박이다. 깨끗한 공기와 끝없이 푸른 들판을 머금은 환경은 직접 보기도 했지만 숨긴 속내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 먼 길을 돌았어도 상처 하나 없이 암팡지게 내려앉은 모습이 유장하기까지 하다.말쑥하게 목욕시키고 식초 단장까지 마친 후 자르려고 칼을 넣었다. 처음부터 이가 약한 세라믹 칼을 들고 설친 게 실수였다. 칼끝을 날리고서야 겨우 빼낸 후 무쇠 칼로 바꾸었다. 쇠 칼날을 물고도 완강하게 버티는 호박을 도마에 대고 탕탕 치며 이리 돌리고 저리 흔들다 보니 겨우 한쪽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철옹성 같은 짙푸른 초록의 속이 샛노랗다 못해 주황빛이다. 드러난 속살에 옛 추억이 소환된다. 낡은 창고 지붕이 위태로울 정도로 큼지막하게 자리 잡았던, 늙은 호박 속과 닮았기 때문이다.할머니의 칼 아래 누르스름하게 골진 단단한 껍질이 벗겨지고 쫙 갈라지던 거대한 호박 속. 처음으로 자세히 본 호박 속은 어린 마음에 금화 가득한 흥부의 박 속처럼 신기했다. 늙은 호박은 겉도 누런 색깔로 골이 깊게 패이고 높이보다 옆으로 넓게 자리 잡은 모습과 달리 단 호박은 작고 껍질이 검푸른 탓일까 늙은 호박 속보다 더욱 붉게 보이니.환한 빛 내뿜는 단 호박 구멍 속에 손을 넣었다.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은 호박씨를 손가락에 힘을 주어 긁어내자, 미끌미끌한 실끈에 달린 호박씨들이 줄줄이 달려 나왔다. 근육을 키운 자양분 주황 물이 끈끈한 피 마냥 손을 적신다.오글오글 모여 있는 호박씨들이 곧 깨어날 개구리알 같다. 코끝에서 싱싱한 야생의 기운을 내뿜는 입김이 달착지근하다. 달달한 향이 솔솔 흘러나온다. 잘 익은 과일의 농익은 달콤함과 제철 과일의 싱싱함까지 품은 호박 향이 저절로 가을 들판을 달리게 한다.씨가 빠져나가자 움푹한 구덩이가 드러났다. 입김 달달한 경이로운 동굴이 옹골차다. 완강한 근육 속 고백, 단단한 몸이 만든 샛노란 자궁이다. 몸 전체가 자궁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으니 몸의 크기에 비한다면 아마 가장 큰 자궁이리라. 산도를 따라 피어난 저토록 야무진 둥근 방, 눈부시도록 환한 속은 계절을 삭힌 여백일까. 한 발 한 발 넓혀나가느라 운 울음의 깊이일까.반백년을 코앞에 둔 어느 날, 자궁을 잃어버렸다.정확히는 수술대 위에서 의사의 시술로 어쩔 수 없이 빈 궁마마가 되어 버린 것이다. 헛꽃 물혹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비록 생산의 소임을 다했다지만 여성으로서의 상징 같은 자궁을 상실한다는 의미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여성성을 도려내는 듯 상실감도 밀려왔지만 겉으론 쿨 한 척 이 또한 가볍지 않겠느냐고 너스레를 떨었던 기억이, 알알이 영근 씨를 가득 품은 호박 속을 보며 되살아났다.그 일로 수혈을 많이 한 까닭인지 수족냉증이 와서 겨울마다 오랫동안 고생했던 일도 이젠 추억이 되었다. 원래 피가 모자란다는 소리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수혈 양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있던 피가 텃세를 한 탓일까. 들어온 피와의 화합이 그리 어려웠던 것인지. 아무튼 찬물에 넣으면 손과 발이 빨개지고 따가울 정도여서 괴로웠는데 세월이 약이었다.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이 되듯, 모진 비바람과 땡볕과 가뭄을 이겨내고 익어서 제 소임을 다하는 호박 앞에서, 지금 이 시점이 내 인생의 어디쯤인가도 다시 가늠해 보게 된다. 언젠가 해는 서산으로 넘어갈 것이고, 나도 저물어 갈 것이니까. 지금은 품을 자궁이 없는 나, 저 달달한 자궁의 농익은 문장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저리 붉게 활활 토하는 저 문장을.

2024-08-28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물을 주다

나무들은 뿌리가 깊으니까 아래에 있는 흙에서 물을 당겨올 수 있지만 꽃이나 풀들은 뿌리가 얕아서 조금만 비가 안 와도 힘들다며, 정말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물었다. /언스플래쉬 상사화 꽃대가 잘렸다. 하루에 한 뼘 이상 솟아오르던 꽃대의 허리가 두 동강이 났다. 자줏빛 꽃을 기대하던 K는 아연실색.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오늘 아침에 동네 전체에 약을 쳤거든. 약 치시던 분이 가지치기를 해 주겠다 하더라고. 고맙다 했지. 그런데 저렇게 해뒀더라고. 뭐라고 말도 못하겠고.”작년에는 황칠나무의 몸통을 자른 분이다. 다행히 옆으로 새 가지가 나오기는 했지만.“이 땡볕에 약 친다고 고생했을 텐데 뭐라 할 수도 없고.”K는 바닥에 널브러진 꽃대를 들고 서서 또 다른 이상은 없는지 주위를 살펴보았다.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한다 해서 상사화라 부른다지. 꽃과 K가 만나지 못하는 여름이 되어 버렸다.“이리 줘.”S는 내 손에서 꽃대를 빼내 집으로 들어갔다. 긴 유리잔에 물을 받고 꽃대를 담았다.다행히 꽃이 피었다. 하루 이틀의 간격으로 봉오리들이 자줏빛 꽃잎을 펼쳤다.“고마운 일이네.”“얘가 조금 빨리 나왔어. 조금 있으면 옆에서 다른 애들이 올라 올 거야. 너무 마음아파 하지마.”S가 위로를 했고 K는 가만히 상사화를 들여다보았다.며칠 뒤부터 한동안 비가 왔다. 이 비는 언제 그칠까? 이 정도 비면 땅 속 깊이까지 충분히 젖겠지. 처마 아래에서 비를 피해 서 있던 K는 이제 막 영글기 시작한 단감의 개수를 헤아리며 생각했다. 그리고 땡볕 더위가 이어졌다. 2주? 3주? 내일이면 조금 시원해질까 싶었지만 뜨겁다 못해 따가운 햇살은 이른 아침부터 초저녁까지 이어졌다. 축 늘어지고 말라가는 잎을 보며 물을 줘야 하나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너무 더운 탓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해가 있을 때 물을 주면 잎이 다 타버린다는,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핑계 삼아 저녁에 물을 주겠다 다짐했지만 그저 변명일 뿐이었다. K는 약속이 많았고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물을 주는 것은 S였다.일요일 아침이었다. 밤새 더위로 뒤척였지만 K는 평소처럼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묵직한 두통과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일어나 앉았다. 멍하니 있다가 지난 밤 남겨놓은 수박을 찾아내 몇 조각 먹고는 믹스 커피를 탔다. 커피 잔을 들고 정원으로 나갔다. 잔디는 아직 견디고 있는 듯 보였고 국화와 나팔꽃 잎은 바싹 쥐면 바스락 소리를 내며 가루가 될 것 같았다. 늘어지고 말라비틀어진 고추 줄기와 잎 사이로 천천히 오가는 벌레들이 보였다. 약을 줘도 소용이 없네. 하지만 K는 호스를 끌어와 물을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일쯤 비가 오면 좋겠는데. 비가 온다 하지 않았나? 생각만 하고는 돌아서는데, 상사화 꽃대 두 개가 보였다. 저건 언제 올라왔지? 그런데 힘이 없어 보였다. 꽃봉오리도 마찬가지 끝부분이 말려들어가고 생기가 없었다. 물을 없나? 올해는 제대로 된 상사화를 보기 힘들겠네. K는 남아있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처마 아래 그늘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바람은 조금 시원해진 듯 했다. 이제 곧 가을인가? 그런데 왜 이리 더운 거야. K가 혼잣말을 하는 사이 S가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침 일찍 운동을 나갔던 S였다.“상사화 꽃대가 올라왔어. 두 개나”K는 일어나 S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그런데 말라가네. 힘도 없어 보이고.”“물을 주지 그랬어.”S는 상사화를 살피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지친 꽃들, 풀들은 이제야 제 주인을 만났다는 듯 바람을 따라 살랑거렸다.“지금 물 줘.”“해가 있을 때는 물주면 안 된다고 했는데.”“다 죽을 판인데 그런 게 어디 있어. 여기도 주고 저기도 주고. 돌단풍도. 봐봐. 여기 정상인 게 있어.”K는 감나무와 소나무, 단풍나무를 가리키며 재들은 그래도 괜찮아 보이는 것 아니냐고 대꾸했고 S는 나무들은 뿌리가 깊으니까 아래에 있는 흙에서 물을 당겨올 수 있지만 꽃이나 풀들은 뿌리가 얕아서 조금만 비가 안 와도 힘들다며, 정말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물었다. K는 대답할 말이 없어서 머리를 긁적이다 물 호스를 쥐었다.“돌단풍, 상사화, 나팔꽃, 고추, 국화만 주면 되는 거지?”“이왕 주려고 마음먹었으면 다 줘. 근근이 버티고 있다고 해서 괜찮은 건 아니잖아. 알면서 왜 이래?”K는 괜한 고집을 부렸다. 나무 밑 그늘에 있는 애들은 괜찮아 보이지 않냐고, 잔디는 잘 견디고 있는 것 같고, 돌단풍은 원래 낮이면 저렇게 풀이 죽어 있지 않았냐고.“물을 너무 많이 줘도 안 되는 거잖아. 필요한 아이들만 주면 안 돼?”K가 볼멘 목소리로 말을 했다. S는 기가 찬다는 듯 K를 보다 한 마디 내뱉고는 집으로 들어갔다.“아, 마음대로 해.”K는 집으로 들어가는 S의 뒷모습을 보며 잔에 남은 커피를 마신 후 한숨을 잠깐 내쉬고는 따라 들어갔다. S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고 K는 거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지금 뭐하는 거야? 거부권이야? 자기도 누구처럼 거부권이라도 행사하려는 거야?”주방에 들어갔다 나온 S가 말했다.“아니야. 하려고 했어.”K는 현관으로가 긴 팔 작업복을 꺼내 입었다. 모자까지 찾아 썼다.“다 주란 말이지?”“그래, 몇 번을 말해야 하는 거야? 정이 많은 사람이 왜 그래? 다 쓰러지고 말라비틀어진 뒤에 물을 주면 뭣해. 거름 만들 거야? 큰 나무들은 괜찮다 쳐. 우리 정원에 큰 나무만 있으면 되는 거야? 그럴 거면 전부 벽돌이나 시멘트로 발라버리면 되지. 그렇게는 안 된다고 한 게 자기잖아. 정원이란 것이 나무도 꽃도 풀고 돌도, 심지어 벌레도 있어야 한다고 한 게 자기 아니야? 그런데 왜 그래? 한 두 시간 물주고 와서 샤워 한 번 하면 될 것을.”“알겠어. 알겠다고.”K는 신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수도꼭지를 열고 호스에 있던 더운 물을 모두 빼낸 후 물을 주기 시작했다. 반쯤 주었을 때 S가 물이 담긴 유리컵을 들고 왔다. 시원한 물이었다. K는 땀을 훔친 후 컵을 받아들었다.“물주니까 좋잖아. 집도 시원해지고.”“나무도 줘? 그 아래 그늘에 있는 팔팔한 놈들도?”“뭐라고?”K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은 S가 컵을 받아들며 말했다.“자기도 참, 이럴 땐 애 같아. 어휴. 정말 힘들면 나무는 안 줘도 돼. 재들이야말로 잘 견딜 수 있을 테니까. 지난번에 내린 비로 아직까지는 아래 흙은 촉촉할 테고, 또 다른 것들에게 물을 충분히 주면 그 물이 아래까지 가겠지. 그늘도 그래. 이 땡볕에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그늘은 소중하기는 하지. 하지만 그게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더운 날씨를 모두 감당하지는 못해. 잘 알면서. 오늘 자기 좀 이상하다.”물을 다 주고 들어온 K는 샤워를 했다. S와 함께 아침 겸 점심을 먹었고 담배 한 개비를 들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뜨거운 햇살에 금방 땀이 배어나오기는 했지만 바람은 조금 더 시원해진 듯 했다. 늘어져있던 나팔꽃 잎이 조금은 펴졌고, 색을 되찾은 고춧잎 사이 매달린 초록 고추가 반짝였다. 상사화 꽃대는 힘을 찾았는지 내일은 십 센티미터는 더 올라올 듯 보였다. 덩달아 감나무 잎도, 소나무 잎도 더욱 푸르렀다. 끝 김강 소설가·내과의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 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24-08-27

한동훈 리더십은 ‘용산’이 좌우한다

심충택 논설위원 취임 한 달을 넘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정치력과 리더십 성적은 어느 수준일까. 나는 비교적 빠른 시간에 친정체제를 구축했고, 거대야당의 입법공세와 친윤(윤석열)계 견제에 맞서 ‘민생이슈’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우수한 점수를 주고 싶다. 정치 입문 8개월밖에 안 된 데다 원외 당대표라는 취약한 입지에서 ‘뇌관’이었던 당 지도부 구성을 속도감 있게 마무리한 것은 정치력과 리더십이 없으면 불가능했다.한 대표는 취임 이후 정치공학적 이슈보다는 정책에 올인했다. 정쟁(政爭)과는 일정부분 거리를 두고 우리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격차 해소’를 비롯해 민생문제에 이슈를 집중시킨 것은 ‘이재명 정치’와 차별화된다. 한 대표가 내건 민생이슈는 모두 시의성과 관심도가 높았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반도체특별법 제정, 간첩법 개정, 취약 계층 전기료 감면, 청년 고독사 문제, 티메프사태 대책, 전기차 안전 대책 등은 모두 민생문제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각종 특검법과 탄핵에 몰두한 민주당과 대비된다.한 대표를 비롯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오는 30일 윤석열 대통령과 만찬을 하면서 다양한 현안을 논의한다니 기대가 크다. 최대 민생현안인 의료공백 사태에 대해 당정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한 대표는 지난 20일 박단 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과 장시간 면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지금 추석연휴를 앞두고 대구·경북을 비롯해 전국 대형병원 응급실은 의료진 부족으로 언제 ‘셧다운’ 될지 모르는 상태에 있다. 만약 간호사·의료기사 등이 실제 총파업을 단행하면, 응급실 의료공백 사태는 어떤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정부가 대형병원 응급실 위기를 지금처럼 내버려두면, 자칫 정권위기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 현재 정부의 의대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병원을떠난 지 6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이번 당정회의는 반드시 의료공백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국민은 응급환자가 늘어날 추석 연휴를 앞두고, 끔찍했던 2020년 코로나 악몽을 되살리고 있다.한 대표가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는 윤 대통령과의 관계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곳곳에 지뢰가 널려 있다.대표적인 지뢰는 민주당이 ‘제3자 추천 채상병 특검법’을 고리로, 한 대표와 윤 대통령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한동훈 특검안’을 수용하겠다며 압박강도를 높이는 것도 여권분열을 노리는 포석이다. 한 대표로선 윤 대통령과 친윤계가 특검법 발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어 운신의 폭이 그리 넓지 않은 상태다.한동훈 특검안에 대한 국민의힘 내부의 부정적 기류는 한 대표가 자신의 리더십으로 해결해야 한다. 한 대표의 리더십과 정치력은 윤 대통령의 신임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대표로선 용산과 소통을 자주하면서 현안을 풀어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윤 대통령도 건전한 당정관계를 위해 한 대표의 위상을 존중해 줘야 한다. 채상병 특검법으로 인해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갈등이 더 커지면 양측 모두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2024-08-27

스프링클러 없는 숙박시설 수두룩…대책은?

지난 22일 경기도 부천의 한 호텔에서 발생한 화재는 노후건물의 부실한 소방시설 등이 직접적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수사가 진행돼 봐야 밝혀지겠지만 현재까지는 노후건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전기적 요인과 스프링클러 미설치 등이 유력하다고 한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9∼2023년) 우리나라 숙박시설에서 발생한 화재는 모두 1843건에 달한다. 해마다 300건 이상이 각종 숙박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그 중 모텔화재가 35%로 가장 많고 펜션과 여관, 호텔 등이 뒤따른다. 같은 기간 대구와 경북에서도 총 170건의 화재가 일어나 33명의 인명피해가 났다.특히 화재 발생 시 강력한 제어장치인 스프링클러가 없어 인명피해가 더 커졌다는 지적이 많다. 부천호텔 경우도 9층 규모에 64개의 객실이 있으나 스프링클러 시설이 전혀 갖춰지지 않아 인명피해가 더 커진 케이스다.스프링클러는 1981년 11층 이상 시설에 11층 이상에만 설치하도록 규정이 만들어진 후 2005년 11층 이상 숙박시설 전층 설치를 의무화했고, 2018년에는 6층 이상 숙박시설, 2022년에도 층수와 상관없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토록 법이 강화됐다. 그러나 관련 기준이 강화돼 왔음에도 소급 적용은 되지 않아 과거 건축된 숙박시설은 여전히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21년 된 부천의 호텔도 소급적용 대상이 아니다.숙박시설뿐 아니라 스프링클러가 없는 노후 건축물은 우리주변에 여전히 많다. 부천의 호텔과 같은 화재 위험이 상존한다는 말이다.노후건물 소방안전을 위한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보강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현재도 기존건물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경우 정부의 지원이 있으나 큰 공사를 벌여야 하고 비용도 많이 들어 건물주들이 기피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사각지대에 놓인 노후건물의 안전시설 보강을 위한 새로운 입법 조치와 함께 소방당국의 철저한 안전점검 노력이 필요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2024-08-27

TK행정통합, 소통과 양보로 해법 찾아라

대구·경북(TK) 행정통합 논의가 난항을 거듭하고 있어 안타깝다. 대구시는 “경북도가 28일까지 대구시가 제시한 최종 합의안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통합은 장기 과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오는 30일 대구시·경북도가 합의서에 서명을 마쳐야 중앙정부 협의·국회 입법절차를 거쳐 새 통합시장이 취임하는 2026년 7월 ‘대구경북통합시’가 출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대구시와 경북도가 대립각을 세우는 핵심쟁점은 두 가지다. 통합시 시군구의 권한 축소 문제와 경북도내 청사 소재지 문제다. 통합시 시군구 권한과 관련한 대구시 안(案)은 ‘대구경북 31개 기초자치단체의 명칭과 지위는 그대로 유지하며 사무 권한은 서울특별시 체계로 조정하자’는 내용이다. 대구경북특별시는 서울시처럼 집행기관이 되기 때문에 기존 시군구 권한 축소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반면 경북도는 중앙정부로부터 넘겨받는 권한을 재이양 할 경우, 오히려 ‘현장을 아는’ 시군에 더 많은 권한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국토계획, 산림, 환경, 수자원, 농업, 문화·관광, 재정 분야는 시군에 권한을 이양하자는 주장이다.청사 위치와 관할 문제에 대한 견해차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대구시는 대구, 안동(경북청사), 포항(동부청사) 3곳에 특별시 청사를 두자는 입장이다. 이에대해 경북도는 “경북 시군 권역을 통합시의 직접 행정 체제로 편입하려는 의도로, 행정통합의 원칙과 방향에 어긋난다”며 반대하고 있다.TK행정통합은 대구시와 경북도가 합의안을 마련해 정부에 건의해야 정부 차원의 검토가 이뤄질 수 있다. 30년 넘게 유지돼 온 대구시와 경북도가 하나로 합쳐지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대구시나 경북도 모두 통합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는 만큼, 적극적인 소통과 양보로 합의점을 찾기를 바란다. TK행정통합은 국가적으로도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신호탄이 되는 매우 중대한 일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빨리 절충안을 짜내 특별법 합의안을 도출해 내야 한다.

2024-08-27

확대되는 교통복지

우정구 논설위원 경북도내 최고 오지인 청송군은 지난해 1월부터 농어촌버스 무료운행을 전국 최초로 도입했다.연령과 소득, 주소지 등 조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청송에서 운행되는 시내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군은 무료버스 전면 시행과 관련, 군민의 대중교통 편의 증진과 줄어드는 농촌지역 인구 감소에 대응하고자 한다고 했다.청송군의 농어촌버스 전면 무료운행이 알려지면서 전국의 많은 지자체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전남 완도군은 청송군의 제도를 상세히 벤치마킹한 후 곧바로 시행에 들어가기도 했다.경북에서는 봉화군이 올해부터 관내 농어촌버스 전면 무료운행을 실시했다. 군은 주민의 이동권을 개선하고 공공교통 활성화가 목적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경북 의성군이 내년 1월부터 시내버스 무료 승차제를 시행키로 하고 준비 작업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경북에서는 청송군, 봉화군에 이어 의성군이 세 번째로 전면 무료승차제도를 도입하면서 무료승차제 도입 군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청송군은 무료버스 운행으로 지역민의 시내버스 이용률 증가와 더불어 경제적 성과도 커 긍정적 측면이 많다고 했다. 이용객이 20% 이상 늘고 버스회사 지원금보다 더 많은 경제적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대중교통을 활용한 복지정책은 65세 이상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대도시 지하철 무임승차제도가 대표적이다. 지하철 없는 농촌의 시내버스 무료승차는 교통복지 측면에서 보면 자연스런 현상일지 모른다.광역단체 중 처음으로 세종시가 내년부터 시내버스 무료화에 도전한다고 하니 교통복지의 범주가 갈수록 커진다. 다만 교통복지 확대에 따른 예산이 얼마나 뒷받침될지는 숙제로 남는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27

생각의 힘과 성과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인공지능의 탁월한 역량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시대, 역설적으로 인간 고유의 사고력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최고의 IT 기업과 제조업에서는 면접 자리에서 엉뚱한 질문이 튀어나오곤 한다. ‘맨홀 뚜껑은 왜 둥근가’ ‘뉴욕에 있는 신호등은 모두 몇 개인가’ 등과 같은 물음이다. 지원자의 생각하는 힘을 가늠하기 위함이다. 생각하는 능력, 창의적인 사고력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최고의 경쟁력이라 할 수 있다. 생각의 역량을 기르고 품격을 높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방법 6가지는 첫째, 질문을 바꿔본다. 질문은 생각의 새로운 차원을 여는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다른 차원, 다른 관점, 다른 관심사를 바탕으로 차별적인 질문을 해본다. 질문의 각도가 달라지면 생각의 각도가 달라지고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생각의 길이 열린다. 둘째, 대상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기른다. 통찰력은 대상의 전후, 깊이와 넓이를 한 눈에 굽어보는 고도의 사고력이다. 오랜 경험이 농축되어야 도달하는 경지이지만 적절한 사고력 훈련을 통해서도 연마 할 수 있다. 전체를 파악하는 프레임워크 사고력, 복잡한 구조를 하나로 압축하는 추상적 사고력, 결론을 예견하는 가설적 사고력을 두루 기르고 발휘한다. 셋째, 섬세함과 단순함을 기른다. 섬세함과 단순함은 동시에 추구할 수 없는 미덕으로 보이지만 생각의 실제에서는 함께 발현되곤 한다. 세밀한 관찰과 분석은 실제적 정보를 명확히 파악하게 만들고, 이 과정에서 본질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디테일하면서도 심플한 사고가 생각의 격을 정한다. 넷째, 역 발상의 지혜를 발휘한다. 기발한 아이디어는 보통의 생각을 파괴하고 뒤집고 비트는 의식적인 과정에서 탄생한다. 세상을 바꾼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거꾸로 생각하기’에서 나왔다. 다섯째,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휘한다. 부정적인 사고는 염려와 절망으로 이어진다. 부정적 감정이 압도 할 때는 생각이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고 사고력은 정지된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바탕으로 한 플러스 발상법의 유무에 따라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 부자와 빈자의 운명이 나뉜다. 여섯째, 생각의 근육을 키운다. 다양성을 확장시키는 훈련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수용함으로써 사고력의 지평을 확장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습관으로 생각의 근육을 단련한다.기업에서 보면, 구성원의 생각과 성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생각하거나 기존의 정보를 재구성하는 과정이 효과적일 때 좋은 성과를 도출 할 수 있다. 또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생각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여 조직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생각은 제품 개발, 프로세스 개선, 마케팅 전략 등 다양한 분야에서 더 나은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사람의 생각에서 조직의 문화가 달라지고 구성원 생각 수준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한다.

2024-08-27

붓으로 다듬는 먹빛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여름이 길어지고 있다. 더위를 마감한다는 처서(處暑) 지난 지도 한참이고 태풍도 한 두 차례 올라왔지만, 여전히 한낮으로는 노염(老炎)의 기세가 만만찮은 것 같다. 여름날의 끝자락을 잡고 매미는 막바지 울음을 여기저기서 스테레오로 울리는데, 이에 뒤질세라 가을을 마중하는 풀벌레들의 합창은 옥양목을 자르는 가위질 소리마냥 나날이 또렷해지고 있다. 산업의 고도화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계절의 변곡점도 갈수록 모호해지는 것 같다.유난히 무더웠던 여름날이 무색하리만치 자신의 의지를 불태우며 집념과 몰입으로 자신의 기량을 꾸준히 가꿔온 사람들이 있다. 20대의 청순한 대학생에서부터 80대 노익장의 작가지망생까지 남녀노소 실로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여 붓끝에서 쓰여지고 그려진 한판 작품 겨루기가 펼쳐진 것이다. 이들은 지난 봄, 아니 어쩌면 연초부터 새로운 계획과 목표를 세워 숱한 나날 먹을 갈고 붓을 다듬어 습작과 교정을 거듭한 끝에 자신의 작품세계를 당당히 내보이며 경쟁과 평가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즉, 지역에서 펼쳐진 서예작품 공모전에 출품하여 자신의 노력과 기예를 시험해 본 것이라 할 수 있다.포항지역의 서예가들이 두루 참여하여 서예인구의 저변확대와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을 도모하는 포항서예가협회가 주최한 ‘제32회 전국공모 포항시서예대전’의 작품접수와 심사가 관심과 기대 속에 지난 주 열렸다. 신진작가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서예 공모전은 그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붓글씨 솜씨 발휘와 작품 인정을 받으며 조금씩 서예작가의 면모를 갖춰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서예대회를 통해 한글·한문·문인화·캘리그라피 등 다양한 부문의 서예작가가 배출되고 아울러 서예문화의 확산과 발전의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다.‘마음의 뜨락에 서(書)의 창을 드리워/먹 갈고 붓 잡기 위안으로 삼은 나날/무채색 끝 모를 깊이에 솟아나는 빛 줄기//순백의 설원에 그리움의 점을 찍고/마르고 거친 맥박 애환의 획을 그어/들끓듯 뿜어진 먹빛/눈부신 침묵이어라//잡힐 듯 멀어지는/보일 듯 사라지는/불가해(不可解)의 숨결인가 미몽(迷夢)의 필화(筆花)인가/또 한 겹 껍질 벗기며/먹빛 순수 솎는다’ -拙시조 ‘먹빛 솎기’전문모든 예술과 창작행위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육신의 고단함과 마음의 척박함에도 애써 붓을 잡아 먹물을 찍어 획을 긋고 점을 찍는 이유는 좀더 순수와 궁극의 세계에 이르기 위해 자신을 가다듬는 곡진한 노력이 아닐까 싶다. 한 발짝 파고들수록 벽에 부딪치고 타성에 사로잡혀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먹빛의 번뜩임을 향해 외롭고도 쉼없는 걸음을 옮겨 나갈 때, 필묵의 메아리가 비로소 기운생동으로 굽이치리라. 눈물을 이겨낸 자만이 인생의 눈부신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뜨거운 여름날에 후끈한 열정으로 서예삼매(?)에 빠져 무수한 붓질과 숱한 파지(破紙)를 쌓으며 전심전력한 결과가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서예농사라는 것이 어찌 일희일비에 그치랴. 필묵의 밭을 일구는데는 부지런함이 지름길이요, 배움의 바다는 끝이 없기에 배를 노저어 가듯이 인내하고 극복하며 꾸준히 나아가야 하리라.

2024-08-27

공무원들 안일한 업무대처로 수해복구 부실 공사 우려

정안진 경북부 지난해 7월 예천군은 기록적인 폭우로 막대한 피해를 입어 수해복구 공사가 시공 중인 가운데 공무원들의 안일한 대처로 부실시공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다.당시 산사태 등으로 15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으며 도로(지방도 포함) 66곳, 하천(지방하천 포함) 83곳, 수도시설(지방상수도 등) 34곳, 주택 피해 253동, 농경지 침수 1108㏊ 등의 피해를 입었다. 사유시설 피해도 컸다. 주택 전파·유실 40동을 포함한 주택 피해 253동, 농경지 침수 및 유실 등 1108㏊, 비닐하우스 침수 및 유실 13.9㏊, 각종 농작물 피해 등이 집계되었다.채상병 사망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고 추석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 많은 이재민들이 컨테이너 생활을 하고 있다.올해 예천군 지역 내 수해복구공사가 252건, 소요예산 1922억 원 정도(예천군 168곳 예산 766억885만6000원, 경상북도 84곳 예산 1155억9285만5000원)를 투입해 공사가 진행 중에 있다. 유례없이 많은 공사가 발주되자 건설업체들은 즐거운 비명소리가 높다. 이때 예천군 일부 기술직 공무원의 현장 관리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8월 초 부실시공 논란이 발생한 대왕보 공사는 감독관청의 안일한 업무대처로 재시공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민이 수차례 지적하였으나 담당공무원은 확인하겠다고 답을 해놓고 공사현장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사이 공사는 진행되었고 마무리 단계까지 왔다. 또 해당공무원은 제보자 개인정보를 업체에 알려줘 말썽의 소지를 남겨두고 있다.현대인들의 정신은 공직자들보다 한 발 앞서고 있다. 예천군 기술직 공무원들의 노고가 많다고 하지만 맡은 일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작품을 만든다는 신념으로 공무수행에 임하는 것이 혈세 낭비를 막는 길이다.특히 각 언론사에서 군 홍보 기사가 게재되면 행정 내부망 게시판에 기사를 공유하여 공무원들에게 홍보를 하지만, 군정의 비판기사가 게재되면 게시판에 올리지 않고 빼는 것으로 알려져 공무원들의 알권리를 묵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안전재난과, 건설교통과, 농촌활력과, 도시과, 건축행정 등 각 부서에서 수해복구공사가 진행 중에 있어 각 실과 기술직 공무원이 행정 내부망 게시판을 함께 공유해 잘못된 점을 지적한 기사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반성하면서 현장을 다시 한번 점검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군수와 부서장들은 기술직 공무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졌을 때 예산낭비와 부실공사를 막는다는 것을 직시하고, 다시 한 번 수해복구 공사 현장을 관리 감독하는 기술직 공무원들에게 책임의식 소양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ajjung@kbmaeil.com

2024-08-26

정치의 존재이유를 명심하라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정치인은 ‘정치의 존재이유’를 제대로 인식하고 정치를 해야 한다. 정치는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기 때문에, 그 존재이유는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이해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해 나가는데 있다. 정치인에게는 특별히 균형감각과 책임의식이 요구되는 까닭이다.그럼에도 정치인들은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진영정치·부족정치·팬덤정치·방탄정치 등 특정집단의 이익을 도모하는 ‘패거리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을 나눠 가진 여야가 상대를 죽이고 나만 살겠다고 야만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정치인들이 ‘한 나라 두 국민’을 만들어놓고서도 잘못을 모르니 어이가 없다.‘정치의 실종’은 ‘진정한 정치인(statesman)’의 부재를 의미한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무엇보다 ‘권력만 탐하는 정치꾼(politician)’들의 성찰과 반성이 시급하다.권력은 마약이다. 마약에 중독되면 초심을 잃고, 초심을 잃으면 정치괴물이 된다.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항상 자신의 정치행태를 성찰·반성·혁신해야 한다. 자기성찰에는 인색하고 상대비판에만 열을 올리는 ‘정치꼰대들’은 결코 정도정치를 할 수 없다.정치인에게 중요한 것은 ‘확고한 소명의식’이다.베버(M. Weber)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에게는 ‘열정·책임의식·균형감각’이 필수라고 했다.‘열정’은 대의(大義)에 대한 헌신이고, ‘책임의식’은 권력의 통제와 조절에 필요하며, ‘균형감각’은 열정과 책임의식 사이의 균형을 말한다.‘서로 다름을 인정’하는데 필요한 ‘관용과 자제’, 그리고 ‘갈등의 통합’에 필요한 ‘대화와 타협’이 민주정치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정치인이 국민에 대한 ‘책임윤리’는 없고 자신의 ‘신념윤리’만 고집하면 ‘정치가 전쟁’이 된다.정치인에게 권력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권력 자체가 목적이 된 정치꾼들은 권력이 ‘국민을 위한 정치의 수단’이 아니라 ‘자신이 누려야 할 힘’이라고 착각한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은 ‘자기 멋대로’가 아니라 ‘국민 뜻대로’ 행사되어야 한다. 물론 이때의 국민은 ‘내편 국민’이 아니라 ‘전체의 다수 국민’이다. 권력에 연연해서 비굴하게 패거리정치에 줄서지 않았던 정병국(5선)·김세연(3선)·표창원(초선)의 경우처럼, 아니라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물러나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진정한 정치인은 ‘가물에 콩 나듯’하고, 권력에 혈안이 된 정치꾼들만 득실거리니 정치가 실종된 지 오래다. 정치를 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에게 1억5000만원의 연봉에 180여 가지의 특혜를 주고 있으니 말이 되는가.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해야 마땅하다. 말기암 투병 중인 팔순 투사 장기표가 “정치가 도덕성과 인간성을 상실하면 나라는 망한다”고 한 충고를 명심하라. 정치를 잃어버린 정치인들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은 왜,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가? 권력 때문에 정치를 잃어버린 당신이 정말 쪽팔리지 않는가?

2024-08-26

청년들 취업포기…‘급여 양극화’탓이 크다

지난달 일도 하지 않고 구직활동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쉬었다’는 청년(15~29세) 니트(NEET)족이 44만3000명에 달했다. 이 중 75.6%인 33만5000명은 ‘일할 생각이 없다’고 답해 충격적이다. 니트족은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말한다. 무직청년들이 취업이나 창업 준비를 하고 있으면 다행이지만, 자포자기한 상태로 놀고 있다면 큰일이다.니트족이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급여양극화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한국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세전)은 대기업 591만원, 중소기업은 286만원이다.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러니 청년 대부분이 대기업 취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의 억대급여나 성과급이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보도되는데, 청년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중소기업에 취업할 마음이 생기겠는가.대기업 고용 시장에 찬바람이 분지는 오래됐다. 상당수 대기업들은 채용 방식을 대규모 공개채용 위주에서 경력 위주로 바꾸고 있다. 우리나라 4대 기업 중 공채를 유지하는 곳은 삼성그룹뿐이다. 2019년 현대차를 시작으로 LG, 롯데, SK그룹이 공채제도를 폐지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매출 1조원 이상 대기업 100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지금까지 공채를 유지 중인 대기업 5곳 중 1곳은 올해까지만 공채를 유지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해진 기간 일정 인원을 선발하던 정기 공개 채용 제도 대신 수시·상시 채용을 늘리겠다는 의미다.청년들의 구직포기는 사회·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 취업의욕은 한 번 떨어지면 여간해선 회복하기 어렵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결혼·출산을 포기하게 되고, 결국 국가가 인구소멸 위기로 치닫게 된다. 가장 좋은 해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근무환경 격차를 줄이는 것인데 쉽지 않다. 모든 분야에서 양극화가 심각하게 진행되는 우리 사회의 그늘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2024-08-26

되풀이되는 가축폐사 동물복지도 생각해야

최근 5년간 폭염으로 전국에서 폐사된 가축 수가 700만 마리를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정희용(고령·성주·칠곡) 의원이 농림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무더운 날씨 때문에 매년 전국에서 수십만 마리의 가축이 폐사하고 있으며 폭염이 유난히 기승을 부린 올해는 8월 현재 104만 마리의 가축이 폐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올해는 8월 중에 전년도 폐사한 92만 마리를 벌써 추월해 앞으로 폐사가축 수는 더 증가할 것으로 짐작이 된다. 경북에서는 최근 5년간 47만 마리가 폐사했다.폐사가축을 종류별로 보면 닭이 607만 마리로 가장 많고, 돼지 32만 마리, 오리 17만 마리, 소 등 기타가 66만 마리다.이로 인해 지급된 가축재해보험금만 648억원에 이르고 있다. 재해보험금 지급으로 축산농가의 피해를 일부 보상은 하겠으나 경제적 손실을 완전히 만족시켜줄 수 없다. 또 대량의 가축폐사가 일어나면 생산자 가격 인상 등의 각종 문제를 유발할 수도 있다.가축폐사는 매년 연례 행사처럼 되풀이되나 피해를 줄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작년부터는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이상기후로 여름철 기온이 더 높아지고 더위 일수도 더 증가해 가축폐사에 대한 보다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가축폐사는 밀집사육이 가장 큰 원인이다. 단위 면적당 권장 사육두수를 준수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가축 중에 돼지와 닭, 젖소 등은 체온조절이 취약해 폐사 위험이 크다고 한다. 폭염기의 가축관리 요령을 준수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축들은 고온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열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해 사료 섭취량이 줄어든다. 깨끗한 물을 충분히 마실 수 있게 하고 사육장의 청결 유지로 세균의 번식을 막아야 한다.동물복지 차원에서 보더라도 가축폐사는 줄여나가야 한다. 올여름 두 달 동안 폭염으로 100만 마리의 가축이 폐사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건강한 동물은 곧 축산물의 안전을 보장한다. 여름철 가축폐사에 대한 행정당국의 더 많은 관심과 대책이 나와야 한다.

2024-08-26

김정은의 흡연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화기(火氣)로 한담(寒痰)을 공격하니 가슴에 막혔던 것이 자연히 없어졌고, 연기의 진액이 폐장을 윤택하게 하여 밤잠을 안온하게 잘 수 있었다.”담배는 조선 중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조선 22대 왕 정조의 ‘담배 사랑’은 대단했다.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위와 폐를 편안하게 해 불면증을 없애주는 게 담배라고 믿었다.당시 담배는 ‘남령초’라 불렸다. 담배의 유래와 활용법이 과거시험 문제로 출제됐고, 흡연에는 반상(班常)의 구분도, 남녀노소도 없었다.그로부터 수백 년이 흘렀다. 오늘날 담배는 ‘공공의 적’ 수준으로 그 지위가 추락했다. 흡연자가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진다.게다가 거의 ‘공포스럽다’ 할 수준의 흉물스런 사진이 담뱃갑마다 새겨졌다. ‘이런 끔찍한 꼴이 될 텐데, 그래도 피울래?’라며 끽연자를 겁박한다.만약 사무실이나 버스, 식당 안에서 담배를 꺼내 문다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가 예닐곱 살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에서 담배를 피운다면? 애들 부모에게 몰매 맞을 일이다.남한에선 불가능한 흡연 형태가 북한에서 벌어진 모양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수재민 아이들의 수업을 참관했는데, 그 자리에 담배와 재떨이가 있었다고. 그는 열 살 안팎으로 추정되는 딸 곁에서도 담배를 피운다고 알려졌다.지난 2020년 북한은 금연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큰 권력을 가진 자들은 중세의 왕들처럼 법 위에 군림하려는 행태를 보인다. 법은 힘없는 자들이나 지키는 것인가? 김정은 위원장은 전제국가(專制國家)의 통치자 정조 흉내를 내는 걸까?/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8-26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8월 25일 현재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에 따르면 이달 1~24일 전국 폭염일수는 14.8일로 집계되었다. 최근 10년간 전국의 8월 폭염일수 집계결과 순위는 2016년이 16.6일로 1등이고 올해가 2등이다. 1등과 차이가 불과 1.8일인데 아직도 8월이 1주일이나 남아있어서 아마도 올해가 1등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전국이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최근 그린피스 동아시아가 발표한 국내 주요 25개 도시의 최근 50년(1974~2023) 동안의 여름철 폭염 발생일수, 지속도 등의 분석결과는 놀랄 만하다.지난 50년간 25개 도시 평균 폭염일수(5~9월)는 계속 증가하여 최근 10년(2014~2023) 51.08일로 20년 전(2004~2013)의 20.96일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2일 이상 연속 폭염발생 일수도 최근 10년이 40.56일로 20년 전 14.68일에 비해 무려 3배 정도 증가했다. 압권은 도시별 통계인데 최근 10년간 폭염일수가 가장 많았던 도시는 구미(106일)이며, 그 뒤를 이어 광주(105일)와 대전(96일), 대구(83일), 포항(81일) 순이었다.전국 분석 대상 25개 도시에 포함된 대구시와 경북도의 구미, 포항 등 3개 도시 모두 5위 이내 순위에 포함된 것이다. 그린피스 동아시아는 이번 폭염 리서치 결과가 폭염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며, 안토니우 쿠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말을 인용하여 전세계 정부가 즉각적인 탄소감축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고 경고했다.그래야만 지금까지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 시대’에서 상상하기 싫은 ‘끓는 지구(Global Boiling) 시대’로의 변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모든 지방정부와 도시가 이제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야만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최근 글로벌 기후에너지 시장협약(GCOM, Global Covenant of Mayors for Climate Energy)으로 시행하는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 Carbon Disclosure Project)가 주목받고 있다.‘GCOM’은 기후변화 대응 및 에너지 전환에 대한 세계 최대 지방정부 공동 기후행동 추진계획(이니셔티브)으로 2017년부터 시작되었다. 2024년 8월 기준 세계 140여 개국 1만3500여 개의 지방정부가 참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서울, 대구, 경기도 등 7개 광역지자체와 서울 도봉구, 수원시, 포항시 등 20개 기초지자체가 참여하고 있다. 대구시는 2021년부터 ‘CDP’에 참여하여 2022년에 최고 등급인 A점수를 획득하였고, 2023년과 2021년에는 바로 아래 단계인 A- 점수를 획득하였다. 이렇게 대구시는 ‘CDP’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과 폭염적응 정책의 글로벌 리더십 단계를 계속 유지하여 최대 폭염도시에서 물러나고자 하며, 실제로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구미시를 비롯한 대구경북의 많은 기초지자체들도 GCOM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와 같은 지방정부 주도의 탄소감축 행동에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다.

2024-08-26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지난해 경남 김해에서 여중생을 집단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중학교 재학생과 졸업생들인 가해자가 2주 넘는 기간 폭행했다. 담뱃불로 지지거나 오물을 먹이는 행위로 사회의 우려를 자아냈다. 범죄 연령은 낮아지고 폭행 장면이나 신체를 촬영하여 유포하는 등 죄질마저 나쁘다.50대의 사회인이 허위 예약하여 음식점에 해를 끼치는 일도 발생했다. 붙잡힌 후에 단순히 골탕을 먹이고 싶어서 했다는 변명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다른 여성은 음식을 엉터리 주소로 배달시키고 배달되지 않는다고 항의 전화까지 한다. 모두가 힘든 시기에 장사하는 사람의 아픔은 보이지도 않는지.사는 게 힘들다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라면 하나 산다고 무시하는 것 같아서, 감옥에 가고 싶어서, 아무 이유 없이 남에게 해를 가하거나 사람을 죽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60대 남성이 6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도 뚜렷한 이유도 없다. 어쩌면 우리의 일이 아니라고 방치하는 사이 폭력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비슷한 여건에 처한 사람들이 따라 하는 듯한 느낌마저 지울 수가 없다. 나라가 경제적으로 더 부유해지는 건 맞는데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삭막해지는 걸까.사회는 급속도로 발전한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바꾸어 놓는다. 많은 사람이 하던 일을 인공지능이 대신한다. 같이 모여서 일하거나 회사에 출근하기보다 재택근무 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직장인이 사회의 구성원임을 느끼기보다는 개인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난다.어디 일만 그런가. 밥을 먹는 일도 노는 것도 혼자 하는 것을 사회는 부추긴다. 회사는 끊임없이 1인용 식사 거리를 제공하고 게임 업체는 집에 틀어박혀서 혼자 노는 상품을 수도 없이 개발한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일도 식사하는 일도 택배회사는 상품으로 만들어 개인의 삶을 돈으로 바꾼다. 시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에누리를 하고 다양한 삶을 만나는 기쁨을 우리 사회는 상품화하기에 바쁘다.살아가는 데 과정은 없고 결과만 남는 일상이 계속된다. 사람을 네모난 공간에 가두어 사람 사이의 정이 사라지는 시대다. 이런 과정에서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은 겪는 힘든 시기에 사람을 붙잡아 주는 안전장치는 우리 사회에 이미 없다.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도 어머니의 젖꼭지를 빨며 인간의 정을 느끼는 시간도 사라졌다.그런 가운데 우리는 스스로 괴물이 되어간다. 정녕 방법이 없는 것일까. 사람이 사람의 따스한 손을 잡고 희망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가. 지금도 찾아보면 세상은 따뜻하고 착한 일을 하는 사람도 많은데 말이다. 왜 따스한 이야기는 자꾸 사라지는 것일까. 사람의 삶마저 자극적인 뉴스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 때문은 아닐까.정치인들이 국민의 삶은 모른다고 자기네들만의 다툼을 벌이더라도 우리는 달라야 한다. 우리는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기고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기회를 자주 만들고 손에서 손으로 따스함을 전할 수도 있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우리를 위한 무엇이라도 해야만 한다. 인간의 체온을 느낄 수 있도록.

2024-08-26

오늘도 더울 것 같군요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은 오후 1시에 플레이 볼! 고시엔 상공은 투명할 정도로 푸릅니다. 오늘도 더울 것 같군요.”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 ‘H2’ 마지막 장면이다. 쾌청한 여름 하늘의 뭉게구름으로 종이비행기가 날아가고 라디오에서는 고시엔 결승전을 예고한다. 고교야구 선수인 히로와 히데오 그리고 이들의 연인인 히카리의 미묘한 삼각관계 속에 찬란한 청춘의 열정을 그려낸 스포츠만화의 수작이다. “오늘도 더울 것 같군요”라는 캐스터 멘트는 등장인물들을 영원한 여름, 영원한 청춘에 머물게 한다.일본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 이른바 고시엔은 일본의 최대 스포츠 축제이자 모든 야구소년들이 꿈꾸는 무대다. 일본에서는 이 고시엔이 ‘여름’과 ‘청춘’의 뜨거운 상징이다. 약 3800개의 고등학교 야구팀 중 단 49개 팀만이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단 한번이라도 고시엔구장의 흙을 밟는 건 엄청난 영광이다. 경기에서 패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지 못한 소년들이 울면서 유리병에 흙을 담는 건 고시엔을 상징하는 장면이 되었다.10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고시엔에서 일본 내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우승했다. 전교생 130명의 작은 한국계 학교, 운동장이 작아 정상적인 타격과 수비 훈련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터진 야구공을 테이프로 감아 쓰면서도 선수들은 꿈을 위한 노력의 경주를 멈추지 않았다. 1999년 야구부가 만들어지고 몇 년 동안은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점점 실력이 늘어 창단 35년만인 올해 새 역사를 썼다. 연장 접전 끝에 2대 1로 승리한 간토다이이치고와의 결승전은 그야말로 야구의 정수였다.그런데 박수만 받아도 모자란 이 위대한 승리는 곧장 한일 양국에서 정치적으로 소비되었다. 우승한 학교의 교가를 부르는 전통에 따라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를 부르는 장면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고 한국 언론은 바로 그 한국어 교가, 그중에서도 ‘동해’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예민한 독도 문제를 포함해 반일감정을 드리우면서 교토국제고의 우승이 마치 일본을 정복하고 그들의 심장에 태극기를 꽂은 ‘한국의 승리’인양 보도했다. 일본에서도 일부 극우세력이 수치니 굴욕이니 혐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교토국제고를 제명해야 한다는 여론 몰이를 했다. 어린 선수들이 보여준 땀과 눈물의 드라마를 낡은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정치병자 어른들이 더럽힌 것이다.하지만 혐한은 일부일 뿐 일본 국민 대부분은 교토국제고의 우승을 축하하며 차별과 혐오를 멈추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교토는 축제 분위기다. 지역 언론은 호외까지 발행해 우승 소식을 알리고, 상인들은 우승 기념 할인 행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일본 최대 포털사이트인 야후는 ‘교토국제고’를 검색하면 “우승 축하해”라는 메시지가 팝업으로 띄워지도록 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생각이 있다. 비판 받는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야구를 위해 이 학교에 들어왔다”는 교토국제고 야구부 주장 후지모토 하이키 군의 말에는 울림이 있다. 야구부원 61명 중 한국계 학생은 단 세 명뿐이다. 일본인 학생들은 오직 야구를 위해 이 학교에 왔다. 한국어 교가를 바꾸는 것을 반대한 것도, 경기장에서 “동해 바다”를 힘차게 외친 것도 일본인 학생들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에 고시엔과 같은 대회가 있고 일본계 국제학교가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 소년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가령 “후지산의 태양 찬란하다”로 시작하는 일본어 교가를 부르는 일이 가능할까? 광복절에 열린 프로야구 경기에 일본인 선수의 출전을 반대한 일부 팬들의 비난으로 두산 베어스 시라카와 게이쇼는 선발투수로 등판하지 못했다. 식민 지배를 한 국가와 당한 국가의 역사적 정서는 다를 수밖에 없고, 반일에는 과거사를 바로 잡자는 나름의 응당한 논리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스포츠를 어른들의 전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우리는 농구 만화 ‘슬램덩크’에 열광하면서 등장인물인 강백호와 서태웅의 청춘 서사에 감동하지만 그들의 원래 이름이 사쿠라기 하나미치, 루카와 카에데라는 사실은 잊는다. 교토국제고의 남학생들은 야구를 위해, 여학생들은 한류에 대한 호감으로 입학했다. 한국 인디음악의 명곡인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은 만화 ‘H2’를 모티브로 해 만들어졌다. 정치가 과거에 붙들린 사이 대중문화와 스포츠는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하며 더 나은 미래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2024-08-26

삶이 보내는 신호

최근 한 심리상담센터에서 TCI(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 성격유형검사를 받고 왔다. TCI는 Robert Cloninger 박사가 개발한 성격 평가 도구로 개인의 기질과 성격을 7가지 요소로 나누어 분석하는 심리검사다.생물학적 요인으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기질’ 그리고 환경적 요인과 개인 경험에 의해 형성되는 ‘성격’을 각각 나누어 평가하여 개인의 강점, 약점, 그리고 본인이 지니고 있는 성격을 객관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검사를 마친 후 깜짝 놀랄 만한 결과가 나왔는데, 바로 기질의 위험회피(HA)부분에서의 예기불안이 만점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인생에 만점을 받은 기억이 없는데 하필 심리 검사에서의 불안 부분이 만점을 받다니. 게다가 높은 두려움과 낯선 사람에 대한 수줍음까지. 나의 못난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아 와중에 얼굴이 자꾸만 붉어졌다.그 뒤로부턴 나는 불안도가 높은 사람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 취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멀리 떨어져 걷거나, 지나치게 좁고 거울이 없는 엘리베이터는 타지 않는다거나, 카페 테이블 모서리에 아슬아슬 걸쳐 있는 컵을 보기 어려워하는 등,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신경 쓰는 행동들이 모두 불안도가 높아서 그런 것임을 깨달았다.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유전적인 기질이라니 뭐 별 수 있나. 불안이 높다는 건 그만큼 위험에 대처할 능력이 있다는 거겠지, 싶어 조금씩 나에게 너그러워지고 있다.나를 조금 더 알며 지내고 있는 요즘이지만, 언제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법. 좁고 어둑한 엘리베이터를 어쩔 수 없이 타게 되는 날에, 유난히 지독한 사람을 지하철에서 만날 때, 뭘 해도 일이 자꾸만 꼬일 때에 맞이하는 하루의 끝은 다시금 쓸쓸히 난처해진다.그럴 때 꺼내 드는 것이 감사일기다. 감사일기는 말 그대로 감사한 것들을 일기장에 부려놓는 것으로, 하루에 감사한 몇 가지들을 떠올린 뒤 단어로만 짧게 나열한다. 그날의 감사함은 친절한 사람에게 느꼈던 고마움일수도 있고, 우연히 마주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일수도 있고, 또는 오늘 나를 편안하게 해준 물건일 수도 있다.조금 유난스러워 보일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루를 돌아보면 감사한 것들이 은근히 있다. 예를 들자면 이른 새벽의 맑은 숨,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커피 한 모금, 버스에서 마주한 친절한 사람, 좋은 사람과의 건강한 대화 등. 종이 위로 기록되는 순간 그러한 것들이 선명해지며 불쾌한 불안보다 작은 기쁨들로 가득찬 하루로 기억할 수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김영민 교수의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선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생활에서는 멀어지지만 어쩌면 생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라 말한다. 이처럼 저자는 ‘어려운 시절에 죽음을 생각하고’, ‘나는 이미 죽었으므로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간다’는 다짐을 한다.저자가 죽음을 생각하며 삶을 다잡는 것처럼 나의 삶의 갈피는 감사를 기억하는 일이다. 기쁨을 주었던 날씨나 물건, 고마움을 느끼게 했던 이름 모를 사람들 등 낯설고 불안했던 대상들을 하나씩 감사하게 기억할 때에 삶은 다정한 것임을 느낀다.또한 감사함을 기억하는 동안 따라오는 기쁨은 물을 길어 올릴 때의 마중물을 붓는 것과도 같다. 깊은 곳에서의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많은 힘이 들지만 위에서 조금의 물을 부어준다면 금세 아래의 물이 빨려 올라온다. 소소한 감사함을 느끼는 동안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삶의 즐거움은 불안 속에서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그러니 어려운 시절이 와도 삶에게서 온 편지에 회신을 남길 수 있다. 오늘도 작은 감사함을 느끼며 삶의 희열을 길어 올릴 것이라고. 다행히 삶은 답장을 바라지 않고 꾸준히 신호를 보내므로 나는 계속해서 편지를 써야한다.

2024-08-26

김동원 시인의 영덕 방언으로 바라본 바다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바다는 제 몸 위에 어떤 입체물이 얹히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제 몸 하나로 일어섰다가 주저앉으며 하나로 모일 뿐이다. 바다의 소리가 있는가? 바다는 원래 언어를 잉태한 적이 없다. 바다는 원래 언어를 갖지 않았지만 바다의 언어를 시로 쏟아낸 작품은 적지 않다. 바다, 존재로서 인간의 인식 대상으로서의 그 이전의 바다의 시니피에는 충돌이며 시니피앙은 하나의 몸일 뿐이다. 허만하 시인은 바다가 끊임없이 일어서려고 해도 본질적으로로 설 수 없는 존재의 한계를 노래했다. 선다는 것은 욕망이다. 바다는 제 몸 위에 어떤 것도 얹히는 것을 부정하듯 인간의 욕망을 수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김동원(‘관해(觀海)’)은 ‘수평의 시’로서 바다를 관조한 철학적 함의를 품은 고급 시편을 발표하였다. 시인 김동원은 바다가 거부하는 사물을 바다의 몸 속에 투사시키는 고급의 시적 작위를 성공시킨 것이다. 경계와 이음, 주술과 접신을 배타적인 바다의 속성 안에 일즉다의 방식으로 내장시켰다. 일찍 바다에 침몰한 어부 아버지의 그리움을 일몰의 시간 황금빛으로 이글거리는 저녁노을로 회생시켜내면서 고뇌와 아픔을 소멸로 녹여낸 멋진 시작으로 이어냈다.“아이고, 자가 누고! 복순 아버지, 순돌이네 큰애, 뒷집 허삽이 아재 아이가. 신묘년 오징어잡이 한배 닸다가 몽땅 수장(水葬)된, 가엾은 엾은 목숨들. 흐렁흐렁 흐렁 물 밟고 서성이네. 그래 그래…. 물은 무탈하니 훨훨 다 벗고 올라가거래이, 돌아볼 것 없다 카이! 아이고, 이 새벽 뭐 할라꼬 또 흰 수의(壽衣) 입고 저리들 몰려오노!” -김동원의 ‘흐렁 흐렁, 흐렁’중김동원 시인의 내면에는 일찍 오징어배 침몰로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이웃 사람들의 죽음과 그토록 아름다운 바다와 상충되는 심층에 수장된 죽음을 그리고 그 물귀신들의 원혼들을 물려내치는 무술적인 기운이 서려 있다. “신묘년 오징어잡이 한배 닸다가 몽땅 수장(水葬)된, 가엾은 엾은 목숨들. 흐렁흐렁 흐렁 물 밟고 서성이네.” 환영이 아니라 바다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외적인 이물인 수장된 사람들의 이물과 그 영혼들을 바다 밖으로 불러내는 신굿을 하던 기억들과 만난다. 그 안스러운 물귀신들이 가 제 자식처럼 보였는지 ‘흐렁, 흐렁, 흐렁’이라는 시어는 물귀신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신호이자 염원이다. “그래 그래 그래…. 물은 다 무탈하니” 동해에 빠져 죽은 모든 물귀신들아! “훨훨 다 벗고 올라가거래이, 돌아볼 것 없다 카이!”라는 강한 경상도 영덕 강구의 말씨로 염원을 빌고 있다.김 시인의 화법으로 “시는 풍경이다.” 그러니까 시는 바다 안에도 있고 바다 밖에도 있다. 그런데 정작 바다는 바다 이외에 어떤 것을 바다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니까 거센 파도를 세찬 풍파를 일으키며 살아 있음을 포효하고 있다. 그 바다를 관조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눈에는 바다가 때로는 새로로 일어서려다가 때로는 가로로 끝없이 퍼져나가는 인력의 힘을 잠시도 쉬지 않고 위세처럼 펼치고 있다. 이 바다의 힘을 바다의 목소리로 전달할 때 제 맛이 살아난다. 김동원 시인이 바다를 관조하고 쓴 시들에 바다 소금바람에 쩐 강구 사투리로 시를 쓴 이유가 시적 현실감을 더 고조시키기 위한 중요한 장치이자 도구일 것이리라.“내가 바다를 바라본 까닭은, 밀물 속 흐릿하게 밀려오는 마흔에 가신 아버지가 출렁거리기 때문이다. 네 살 난 아들을 두고 가신, 그 흉중의 물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아침 해만 보면 청상의 어머니는 ‘아이쿠, 느그 아부지 바닷속에 장작불 때는 것을 좀 보래이’그러셨다. 동해를 숫제 우리집의 가마솥으로, 붉은 해를 아궁이의 장작불로, 방언나 고등어를 무슨 고봉밥처럼 귀히 여겨셨다. 나만 보면 까까머리 쓰다듬으며, ‘우예, 이리 제 아비를 닮았을꼬?’ 신기해 하셨다. 언재나 엇비슥 웃는 그 서른의 어머니는 봄날 수평선 위에 모란꽃처럼 환하셨다.”(김동원의 ‘흉중 1,’) 끊임없이 출렁이는 저 바다는 밀물과 썰물이라는 율동을 그리고 선율과 아침과 저녁이면 붉게 타오르는 태양의 찬란한 빛의 축제를 바닷속 깊은 가슴에서 끓어 올렸다. 시인의 어머니는 마당에 있는 솥아궁이에 타오르는 장작불이 저 동해바다의 흉중에서 쏫아오르는 것을 아셨다. 그것도 자신의 남편을 집어삼킨 거대한 바다에서. 그 아침 핏빛 바다 물속 잠기여 꿈틀거리던 붉은 햇덩이는, 사무친 아비의 글썽이는형상이며 그것을 지켜본 어머니는 봄날 수평선 위에 핀 모란꽃이었음을 방언시로 노래하고 있다. 참 오랜만에 신선한 바다의 시와 자작 해설의 빼어난 글을 읽으니 무더위조차 저 멀리 달아난다.

2024-08-26

오스만, 끝나지 않은 제국

오스만 제국은 쉴레이만 1세에 오면서 전성기를 구가한다. 유럽에서조차 쉴레이만을 대제라 부르며 존경했다.‘쉴레이만법전’을 편찬해 그 옛날 로마제국이 누렸던 공존의 혜택을 골고루 부여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입법자란 호칭이 따르기도 했다.당시에 잉글랜드 헨리 8세가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부상하고 있었고, 에스파냐 카를로스 1세인 동시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가 호령했다. 또한 프랑스 프랑수아 1세와 더불어 쉴레이만 1세가 합세하면서 앞을 예측할 수 없이 유럽은 역동적이게 돌아갔다.1526년 초 오스만군대는 도나우강변의 노비사드 페트로바라딘 요새를 지키던 헝가리군을 물리치고 진군을 거듭했다. 그해 8월 헝가리군 외에도 도이칠란트, 체코, 폴란드군까지 합세한 ‘모하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당시 1만5000명의 기독교 군사가 전사하는가 하면, 헝가리 왕 러요시 2세마저 목숨을 잃어야 했다.헝가리 도나우강을 경계로 서쪽 부다는 오스트리아 대공 페르디난트가 귀족의 추대로 왕좌에 올랐다. 1529년 봄이 되자 오스만은 오스트리아 수도 빈을 공략하기 위해 진격했다. 동쪽 헝가리를 지배하던 자폴야가 쉴레이만 1세를 맞이하면서 왕위 상징인 보관(寶冠)을 바쳤다. 이때부터 1687년 모하치 전투에서 오스만제국이 패할 때까지 160여 년 간 페스트 지역은 이슬람 지배를 받아야 했다. 쉴레이만의 등장에 놀란 오스트리아 페르디난트 대공은 형 에스파냐 카를 5세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프랑스와 전쟁 중이던 카를로서도 속수무책이었다. 페르디난트는 보헤미아로 줄행랑을 쳤지만, 귀족들은 성 슈테판 성당을 지휘부로 하여 결사항전으로 맞섰다. 운이라고 해야 맞지만, 때마침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졌다. 이슬람 군사들은 행군 내내 쫄딱 젖고 말았다. 장거리 행군에 비까지 맞은 터라 피곤에 절어 모든 것이 정상이 아니었다. 군사 장비도 대부분 망가지면서 가동이 어려웠다. 그런데도 공격이 개시되었다.견고한 빈의 성벽은 끄떡도 않았다. 시간은 흐르고, 오스만제국의 막강한 군대도 지쳐갔다. 식량마저 바닥을 보였고, 기병과 포병 등도 기능을 잃어갔다. 천하의 쉴레이만도 알라가 더는 허용치 않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오스만제국 빈 공략의 실패가 주는 의미는 컸다. 제국이 팽창을 거듭하다 멈춘 시점이 바로 제국의 최고점이었다. 더구나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가 등 뒤에서 호시탐탐 제국을 노리고 있었다. 광분한 쉴레이만 1세가 동쪽으로 칼날을 돌렸다. 1533년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실크로드를 완전장악하기에 이른다. 그 여세를 몰아 이란의 북부지역까지 점령해버렸다. 두 손발 다 든 사파비 왕조는 1555년 아마샤조약을 맺음으로써 40년 전쟁이 막을 내렸다. 그리고 1683년에 다시 빈을 포위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제국의 쇠퇴가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이었다.쉴레이만은 이스라엘 유대민족 중 가장 현명한 왕으로 칭송받는 솔로몬의 투르크식 이름이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아이러니 할 수 있지만, 유대인의 능력을 아끼고 박해를 피해 제국의 품으로 도망쳐 온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한 공로를 유대인들이 존경했던 까닭이다.오스만은 쉴레이만이 죽자 예니체리 횡포와 셀림 2세의 난삽한 생활에 의해 하향곡선을 그렸다. 1571년 10월 7일 지중해 패권을 두고 베네치아공국과 신성로마제국이 연합해 오스만제국과 레판토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이 ‘돈키호테’ 저자 세르반테스가 참전해 부상을 입었던 ‘레판토해전’이다. 이때 오스만제국이 궤멸하다시피 했다. 1678년, 때마침 헝가리 개신교도들이 반란을 일으켜 신성로마제국 레오폴트 1세에게 대항했다. 개신교는 오스만제국의 재상 카라 무스타파 파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슬람군은 역사에 있어 세 번째 빈을 포위했다. 이때 폴란드 국왕 얀 3세 소비에스키가 지휘하는 8만 명의 유럽연합군이 오스만 군사 뒤에 포진했다. 그러나 정작 포위된 성에서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카푸친 수도사 마르코가 포위망을 뚫고 성으로 잠입하여 협공작전으로 배후 기습 공격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전투가 ‘칼렌베르크 전투’다.오스만의 상징 초승달을 닮은 빵 크루아상과 함께 카푸친 수도사 소속의 이름을 딴 카푸치노 커피가 이때 생겼다. 커피가 도망친 오스만 군사에 의해 빈에 남겨지고 이를 우유에 타서 마시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카푸치노다.서세동점의 시각 중 중요한 내용을 첨부한다. 그리스 독립전쟁과 관련된 역사작가이자, 여행 작가의 말이다.“기독교인이 무슬림을 죽이는 것은 옳은 행위이고,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을 죽이는 것은 판단 오류이므로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무슬림이 기독교인을 죽일 때 우리 마음은 잔혹하게 변한다.”오늘날 벌어지는 폭력의 선동 같아 마음이 무거워지는 대사다./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8-26

누구에게 맡겨도 더 좋아진다는 희망 줘야

김진국 고문 정치가 없는 시대다. 대통령의 축하난 사태가 여실히 보여준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연임을 축하하는 난(蘭) 화분을 보내기로 했다. 속마음으로 정말 축하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제1야당 대표가 선출되면 대통령이 축하해주는 게 관행이다. 그런데 축하와 감사를 전달하며 훈훈해야 할 축하난 전달이 정쟁의 불씨가 됐다.그게 정치력의 최고수여야 할 대통령 정무수석과 야당 대표의 수준이다. 난초 화분 하나 전달하는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려운 정치 쟁점들을 어떻게 풀겠다는 것인지 숨이 막힐 지경이다. 입씨름 내용도 한심하다. “아침부터 연락했으나 답을 못 받았다.”, “정무수석 예방 일자를 조율했으나, 축하난과 관련해 어떤 대화도 나눈 적이 없다.”축하난 하나 전달하는데 문자를 남기고, 답이 없다고 발표하는 건 뭔가. 대통령 정무수석이 연락했는데, 답을 주지 않는 건 또 뭔가. 정무수석이 연락했는데, 그게 축하난 전달인지, 뭔지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는 게 어이가 없다. 김명연 대통령 정무1비서관과 이해식 민주당 당 대표 비서실장이 전화 통화로 축하 난 공방을 멈추자고 합의했다고 한다. 축하난 전달을 위해 그렇게 바로 통화할 수는 없었는가.물론 양측이 의심할 수는 있다. 불신이 쌓여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윤 대통령이 보낸 난 화분을 돌려보냈고, 다른 소속 의원들은 ‘버립니다’라는 쪽지를 붙여 SNS에 올렸다. 그래도 민주당은 수권 정당이 아닌가. “지금 당장이라도 오라. 만나자”라고 전화하지 못하나. 윤 대통령도 직접 전화해 “축하한다”라고 말했으면, 더 진심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정치 초보도하지 않을 오해와 갈등을 왜 방치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 대표가 코로나19에 걸려 입원했을 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쾌유를 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과일 바구니를 보냈다. 윤 대통령은 아무 말이 없다. 조문 외교에는 전세계 정상들이 나선다. 핑계 김에 많은 정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병문안도 마찬가지다. 난 화분은 결국 흐지부지됐다. 거대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 운영이 어렵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절박하지 않은 것 같다.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회담도 시간을 끌고 있다. 정치는 갈등을 푸는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말했다. 범부가 보기에는 도저히 풀릴 수 없는 문제를 풀고, 해답을 내놓는 게 정치다. 정치는 권력을 잡는 게 끝이 아니다. 그때부터다. 국정을 잘 운영해야 한다. 야당도 국정 운영 능력을 보여줘야 정권을 잡을 수 있다. 정권을 잡고, 국력을 낭비하며, 자기 주머니만 채운다면 ‘큰 도둑’에 불과하다.한 대표 측에서는 회담을 생중계하자고 제안했다. 이 대표 측은 ‘정치 쇼’라고 의심했다. 밀실 회담은 오해를 낳는 일이 많다. 상대방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일이 다반사다. 국민이 판단하도록 하자는 생각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정치는 설득과 타협이다. 윈-윈하는 상생 정치는 서로 명분을 얻어야 가능하다. 모든 것을 국민에게 알리겠다는 생각은 이해하지만 결국 양쪽의 강경 세력만 기세를 얻고,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상대 주장을 이해하기는 하나도 어렵지만, 꼬투리를 잡을 일은 수백 가지다.의제도 서로 생색낼 생각만 가득하다. 한 대표는 금융투자세 폐지와 상속세 완화 등을, 이 대표는 채상병 특검법과 25만 원 민생지원금 등을 꺼낼 예정이다. 물론 이런 쟁점들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고, 자신은 생색이 나기를 기대하면 안 된다. 정치 협상은 승패를 가리는 자리가 아니다. 크게 이기면 오히려 실패다. 당장 의대 증원으로 응급실이 무너지고 있다. 여야가 손을 잡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 정말 국민에게 필요한 문제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이 대표가 코로나로 입원하면서 실무 협상이 중단됐다. 기회다.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상생할 방법을 찾기 바란다. 정치를 복원하고, 두 사람 누구에게 맡겨도 나라가 발전하겠다는 희망을 주기를 기대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8-25

엄마의 눈이 붉다. 거친 손마디가 눈두덩이를 지나갈 때마다 짧은 속눈썹이 몇 가닥씩 뭉쳐져 보인다. 엄마는 새 집에 보금자리를 틀고 식구들을 불러 모았다. 엄마는 옷소매를 한참 적셨지만 그저, 노인이 겪어온 지난날의 힘든 여정을 내려놓는 것으로 여기거나 새 집을 얻은 기쁨쯤으로 생각했다. 나는 미처 구경하지 못한 집 안을 살폈다. 겨울이면 추웠던 집이 따뜻하게 변한 게 가장 좋았다. 안방을 둘러보다가 나는 이 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를 발견하였다. 침대 옆에는 주인을 잃은 외로운 화분이 2개 놓여 있었다. 그 곳에는 화초 대신 자갈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저 쓸모없는 것을 엄마는 왜 버리지 않고 간직 하고 있는 것일까’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 엄마는 자갈의 사연을 말해 주었다. 엄마는 자갈을 버리려고도 해 보았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고 했다. 할머니 몸을 닦아 주듯이 자갈 하나하나를 깨끗하게 씻고 닦아서 말렸다고 한다. 자갈은 외할머니가 남겨준 하나 밖에 없는 유품이라며 한 가지 부탁의 말을 덧붙였다. “나, 죽거든 저 자갈 버리지 말고 무덤 옆에 차곡차곡 둑처럼 쌓아다오.”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일찍 죽고 혼자서 생계의 짐을 메었다. 5남매를 여자 혼자서 돌보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새벽 일찍 먼 길을 걸어가 생선을 떼어와 장사를 시작했다. 지치고 힘든 몸으로 다시 먼 길을 걸어 집에 오면 찬물 한 사발로 저녁을 해결했다.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입 하나라도 줄여야겠다는 마음으로 첫 딸인 나의 엄마를 시집보내는 날, 집 안 곳곳을 뒤져도 도무지 나올 것이 없었다. 장독 두 개를 사 주며 고생만 시켜 미안하다며 밤새 베겟닛을 적셨다. 할머니의 걱정과 다르게 엄마는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하늘이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일까, 엄마는 감당할 수 없는 무너짐 앞에서 망연자실 했다.그 해, 큰 홍수가 나면서 둑이 무너졌다. 물은 엄마의 보금자리도 함께 쓸고 가 버렸다. 할머니가 준 장독도, 애써 이룬 가구며, 살림살이도 모두 휩쓸고 갔다. 간신히 가족만 남겨진 걸 감사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큰 집의 건넛방 신세를 지게 되었지만 단칸방에서 갖은 서러움을 당했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들, 가족이라는 커다란 둑이 있어서 힘을 내고 견디며 살았다.엄마는 5년 만에 작은 집을 하나 장만했다. 고생만 하던 딸이 첫 집을 장만하여 이사를 하던 날, 할머니는 참 많이 우셨다. 이제 장독마저도 하나 사 줄 형편이 안 되었던 할머니는 다음 날부터 몸을 바쁘게 움직였다. 구석구석 청소를 하시더니 병든 몸으로 대야를 들고 공사판에 가서 자갈을 담아 장독대에 나르기 시작했다. 딸이 첫 장만한 집에 복을 나르는 마음으로 장독대가 넘쳐 나도록 자갈을 옮겼던 것이다. 햇빛을 받은 자갈은 엄마 삶을 축복해 주듯 반질반질 빛이 났다. 할머니는 자갈을 옮기며 아무리 거친 파도가 살과 뼈를 깎는다 해도 이 자갈처럼 둥글게 잘 이겨 내라고 했다. 많은 풍파 속에서도 자갈은 수많은 해초들을 잘 키워 내고, 인생의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잘 막아내고 헤쳐 나가라는 할머니만의 철학을 담아 옮긴 것이다. 김경아 작가 축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듬 해, 아버지는 의사로부터 마지막을 준비 하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6개월, 아버지에게 남은 삶의 기간이었다. 가정의 큰 둑이 점점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생활은 점점 힘들어졌다. 엄마는 팔뚝을 걷어 부치고 구멍 난 곳을 막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막기 시작했던 둑은 주먹으로, 팔뚝으로, 등으로. 온몸으로…. 엄마는 스스로 둑이 되어갔다. 둑이 되어버린 딸을 힘겹게 바라보시던 할머니는 그해 자갈을 밟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장독대 모퉁이 마다 남아있는 할머니의 흔적을 어루만지며 엄마는 몇 날을 통곡했다.할머니의 바람대로 정말 자갈이 복을 가져다 준 것일까. 아버지는 엄마의 간절한 기도와 보살핌으로 몇년 뒤 완치되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커다란 시련을 겪은 뒤 우리들에게 더 견고한 둑이 되어 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둑을 가지고 살아간다. 둑이 홍수를 잘 견디기 위해서는 구멍이 날 때마다 메워줄 그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엄마에게 할머니의 자갈이 있었듯이.

2024-08-25

경주 APEC, 도시 브랜드 가치 높일 절호의 기회

주낙영 경주시장 전 세계의 눈과 귀가 경주를 향하고 있습니다.미·일·중·러 세계 4강을 포함한 아·태 21개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2025 APEC 정상회의’가 바로 이곳, 대한민국 경주에서 개최되기 때문입니다.이번 APEC 정상회의는 ‘2005 부산 APEC’ 이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매머드급 이벤트로 대한민국 뿐 아니라 아시아 태평양 전체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국제회의입니다.이를 통해 경주가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게 됨은 물론, 단순히 회의 개최지로서 역할을 넘어 그간 경주가 축적해 온 역사와 문화 그리고 발전상을 전 세계에 선보일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세계 각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역사문화관광도시 경주의 정체성과 첨단도시로 나아가는 확장성을 전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라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일례로 2016년 베트남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이 하노이 하이바쯔엉구의 ‘분짜 흐엉 리엔’이라는 식당을 찾았던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방문 이후 이 식당은 ‘분짜 오바마’로 불리며 현재도 세계 각지에서 온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답니다. ‘분짜’는 쌀국수의 일종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이곳을 찾은 덕분에 베트남 국민 음식 ‘분짜’가 세계적인 음식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이 같은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방한 당시, 청와대는 만찬 메뉴로 ‘도화새우’를 내놨는데 이때 문재인 대통령은 이 새우가 잡힌 곳의 지명을 따 ‘독도새우’라고 소개한 것이 바로 그것이죠. 이후 독도새우는 ‘미국 대통령이 먹었던 그 새우’라는 별칭과 함께 ‘국민 수산물’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됐답니다.이처럼 세계 정상들이 어느 식당을 찾았는지, 어느 숙소에 묵었는지, 어느 상점에 들렀는지, 이들의 동선 하나 하나는 곧 뉴스가 되고 이슈가 됩니다. 세계 정상들이 방문하는 장소, 먹는 음식, 사용하는 상품은 단순한 뉴스 이상의 파급력이 생기기 때문이죠. 세계 정상들의 방문과 선택은 해당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임은 물론,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게 할 것입니다.저 역시 APEC 정상회의 이후 경주의 어느 식당이 제2의 ‘분짜 오바마’가 될지, 또 경주의 어떤 전통 음식이 제2의 ‘독도새우’가 될지 기대가 매우 큽니다. 이를 통해 경주의 풍부한 문화유산과 수많은 전통 음식이 세계 무대에서 빛을 발하게 될 게 분명합니다.이뿐만이 아닙니다. APEC 정상회의 개최지는 도시 브랜드 가치 또한 수직 상승하게 됩니다. 실제로 러시아 동부 끝단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톡’은 2012년 APEC 정상회의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고, 베트남 남중부 상업도시 ‘다낭’은 2017년 APEC 정상회의 이후 세계인들이 즐겨 찾는 유명 관광지로 거듭났습니다.이는 APEC 정상회의가 그 지역이 가진 가치를 뛰어넘는 상전벽해의 영광과 그 도시가 품은 역량을 넘어 전 세계인이 찾는 관광도시로 거듭날 수 있게 해 준 적절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그간 경주시가 ‘2025 APEC 정상회의’ 유치를 위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행정력을 집중해 온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계 정상들이 머무르고 체험하는 모든 것이 곧 경주의 도시 이미지로 직결되기 때문입니다.APEC 정상회의로 경주는 역사 문화관광 도시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제도시로 위상이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저는 확신합니다. 경주는 2015 세계물포럼 등 대규모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노하우와 APEC 미래 비전인 ‘포용적 성장’에 가장 적합한 도시인 덕에 역대 가장 성공적인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함에 부족함이 없습니다.이로 인해 경주는 그간 쌓아왔던 무궁한 역사와 문화의 유산을 바탕으로 역대 가장 성공적인 APEC 정상회의를 개회한 도시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이와 함께 역대 가장 성공적인 APEC 정상회의 개최를 위해서는 질서 유지, 친절 봉사, 도심 청결 등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선진 시민의식이 더해질 때, 경주는 전 세계에 더욱 빛나는 도시로 기억될 것입니다.

2024-08-25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CSPC법인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필자가 QSS 혁신 활동을 중국법인에 처음 전파한 시기는 2008년 7월로 쿤산시에 있는 POSCO-CSPC라는 자동차 강판 가공법인이다. 2003년에 설립한 이 법인은 작년 누적 판매량이 897만 톤에 달하는 포스코 최대규모의 자동차용 강판 전문 가공센터이다. 이 법인은 글로벌 전기차 회사가 밀집해 있는 상해가 포함된 화동지역에 있다.이 활동은 낭비제거를 통해 수익성 향상은 물론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포스코 고유의 현장혁신 활동이다. 이 활동은 직원의 성장 즉 지식근로자를 양성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 활동은 직원 스스로 조직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낭비 요소와 문제점을 찾아내고, 이를 개선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과제 활동과 일상관리하에서 설비의 성능을 저해하는 불합리 요소를 발굴, 개선하여 설비의 강건화, 고도화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상활동의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2008년 가을 이 법인의 법인장은 필자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선물을 해 주었다. 바로 이 법인의 혁신 시작을 알리는 QSS Kick Off 행사를 중국에서 가장 긴 잔도를 가지고 있다는 삼청산(1819m)이란 산의 정상에서 전 직원과 함께 진행하였다.이 산을 가기 위해 버스 5대를 전세하여 6시간의 이동하였으며 산 중턱 숙소에서 1박을 하고 곤돌라로 1시간, 걸어서 1시간을 올랐다. 정상에서 보는 기암절벽의 풍경은 가희 절경이었다.그때 준비했던 말은 ‘산이 높아 명산이 아니라 신선이 살면 명산이 된다는 말처럼 명산을 만들려면 신선이 있어야 하듯 좋은 기업을 만들려면 조직을 빛낼 인재가 있어야 한다. 여러분이 함께 참여하여 명가 CSPC법인을 만들자’라는 메시지였다.직원들 앞에서 추진 방향을 설명하면서 ‘이 정성이면 실패하는 것이 더 어렵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법인은 2010년 해외 최우수 법인으로 선정되었고 중국 가공법인 전체에 혁신이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다.그리고 다음 해인 2011년 북경에 있는 POSCO-China에 통합 혁신 Hub가 탄생하였다. 현재도 Hub을 중심으로 15개 법인에 혁신 활동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나비의 작은 날갯짓처럼 미세한 변화, 작은 차이가 향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라는 나비효과처럼 그 시절 중국 삼청산 정상에서 외쳤던 혁신 함성의 시작이 현재 중국 가공법인 전체에 확산되어 곳곳에서 성과를 이루고 있다.‘토요타 TPS’는 기업혁신의 모델로 많은 기업이 벤치마킹하며 그 방법론을 배우고 있다. 그러나 이 모델을 도입해 성공한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토요타의 TPS가 방법론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 즉, ‘사람’의 변화에 있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先革人, 后革物’은 모름지기 사물을 변화시키기 전에 사람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말로 혁신은 사람이 우선이고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전 세계 기업이 토요타의 TPS 혁신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아니라 QSS 혁신을 벤치마킹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2024-08-25

선물이란 무엇인가

유영희 작가 몇 년 전 오래 알고 지낸 동료와 선물 문제로 멀어졌다. 동년배 세 여자가 가끔 만났는데, 나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그 일을 핑계로 밥을 여러 번 샀다. 그렇게 내가 밥을 산 날이면 디저트는 그 둘이 샀다. 그런데 내가 책을 출간했을 때 A가 책을 선물로 달라고 한다. 밥을 사면서 등가교환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서운한 마음에 끝내 책을 주지 않았다.그렇게 그 일은 넘어갔지만 얼마 안 있어 A가 취직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연락하니 A는 취직 사실을 감추었다. 지나치게 주고받기를 의식하는 사람도 부담스럽지만, 그가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자 그 이후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둘이 사는 줄 알았던 내 몫의 디저트는 언제나 B가 냈다고 한다.이 일을 겪으면서 아무리 자발적으로 준 것이라 해도 결국 모든 선물은 기브앤테이크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친구 간에 대가 없는 선물이라도 그 안에는 돈독한 사회관계 형성이라는 기대가 들어 있고, 등가는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주고받기가 이루어지리는 기대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심지어 부모자식 사이에도 그렇다. 유산을 줄 때는 암묵적인 봉양의 의무가 전제되어 있고, 대놓고 요구하기도 한다. 봉양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회수하기도 한다.마르셀 모스는 ‘증여론’에서 고대 사회의 선물에는 세 가지 의무가 있다고 한다. ‘주는 의무’, ‘받는 의무’, ‘갚는 의무’가 그것인데, 이렇게 선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부의 재분배도 일어난다고 한다. 현대 사회의 선물이나 증여는, 고대 사회처럼 강한 의무가 동반되지는 않지만,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선물을 주기만 하는 관계는 없다. 누구라도 어떤 선물을 받으면 경조사 부조금처럼 어떤 형태로든 갚아야 할 빚으로 느낀다.그런데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추석 명절 청탁금지법 바로 알기’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내용이 이상하다. 누구든지 친구, 친지 등 공직자가 아닌 사람에게 주는 명절 선물은 금액 제한 없이 얼마든지 줄 수 있고, 직무와 관련 없는 공직자에게는 100만 원까지 선물해도 된다는 말이 처음에 나온다. 홍보물 순서를 보면 마치 선물을 장려하는 캠페인처럼 보인다. 뒤를 이어 직무와 관련된 사람에게는 5만 원까지, 농수산물이라면 15만 원까지 허용되는데, 명절 전후 30일 동안은 30만 원까지 허용한다는 내용이 나온다.아무래도 공직자가 하는 선물은 아니고, 민간인이 공직자에게 선물하는 경우에 해당할 텐데, 왜 친구나 친지에게 주는 선물 이야기를 맨 처음에 하는지 의아하다. 직무 관련 여부를 세 가지로 나누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직무 관련 없는 공직자에게 주는 100만 원어치 선물에는 대가성이 없다는 장담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민은 커피 한 잔, 국밥 한 그릇을 얻어먹어도 갚을 궁리를 하는데, 공직자들은 그런 선물을 받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이 사는 세상이 궁금해진다.

2024-08-25

냉동난자 시술

우정구 논설위원 냉동난자는 난임에 대비해 난자를 보관하는 시술을 말한다. 과거에는 불치병이나 항암 치료를 앞둔 암환자들이 난소 기능 상실에 대비해 난자를 보관하던 수단으로 주로 이용했다.그러나 요즘은 2030 젊은여성을 중심으로 냉동난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활용률도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전국 의료기관에 보관 중인 냉동난자는 2020년 약 4만개 정도였지만 지난해는 10만개로 늘었다. 불과 4년 사이 2.5배가 증가한 셈이다.취업과 결혼이 늦어지면서 난임가정이 늘자 난자를 미리 보관하려는 젊은 여성들이 많아진 것이 이유라고 한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더라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의 건강한 난자를 미리 보관해 놓음으로써 난임에 대비할 수 있고, 건강한 2세를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여성이 늘어난 것이다.전 세계적으로도 미혼여성이 만혼에 대비해 난자를 보관하려는 현상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세계보건기구가 기준으로 삼는 노산(老産)의 연령은 35세. 여성이 35세에 이르면 자궁과 난소의 노화가 시작되고 이로 인해 기능이 저하하기 때문이다. 통계에 의하면 20세 이전 결혼한 여성의 불임률은 5% 미만인데 35세 이상부터는 30%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남성들의 늦둥이 출산이 화제가 된 적은 자주 있었다. 영화배우 안소니 퀸은 84에, 피카소는 90세에 아이를 낳았다. 공자의 아버지는 16살 부인을 통해 70세에 공자를 낳았다고 한다.냉동난자 시술은 늦둥이와 달리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다는 면에서 다소 충격적이다. 건강한 2세를 위한 의술의 발달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인간의 욕망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까 두렵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25

무지개를 보다가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일주일을 사이에 두고 두 번이나 무지개를 보게 되니 마음이 적잖게 설렌다. 구룡포 앞바다에서 바다낚시를 하다가 무지개 떴단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아주 짧게 내린 소나기가 주고 간 선물치고는 후한 녀석이다. 잡지도 못할 물고기를 노리다 하늘을 바라보지 못한 탐욕스러운 몸뚱이가 못내 아쉽고 성가시게 다가온다. 언제나 자유를 얻을 것인지?!지난 목요일 경산에 갔다가 잠시 내린 상큼한 빗줄기 뒤로 무지개가 다시 나를 찾는다. 감출 수 없는 기쁨과 환희가 나의 전신을 감싼다. 휴대전화기를 서둘러 꺼내 무지개 영롱한 하늘을 향한다. 그리고 속으로 떠올린다. 고3 시절 체력장 시험 마치고 친구들과 찾은 청평에서 만난 쌍무지개의 화사한 풍광이 찬연하게 남아있는 것이다.무지개를 가장 많이 본 곳은 어학 과정 다녔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수도 쾰른이었다. 분단 상황이었던 그곳에는 비가 자주 내렸고, 특히 여름철이면 무지개가 창궐(猖獗)하다시피 했다. 언젠가 쌍무지개 떴다는 반가운 소식을 같은 기숙사 사는 계명대 출신 부부에게 알렸다가,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하는 퉁명한 답변에 머쓱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사람마다 정서가 다르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바뀌는 게 사람 마음이라는 걸 늦게 알았다. 하지만 그때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속상했던 기억은 죽기 전까지 차마 나를 떠나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이웃 사는 유학생이 알려주는 멋진 쌍무지개 소식을 그렇게 냉담하고 무신경하게 받아치는 인간의 속내가 어떤 것인지, 지금도 헤아리기 어렵다.그런 점에서 이육사 시인의 단시 ‘절정’에 나오는 강철로 된 무지개는 정말 가슴 아프고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서릿발 칼날 진 고원에서 시인이 만난 무지개 재료는 ‘강철’이었다. 일곱 빛깔이 아니라, 회색 강철의 부자연스럽고 냉정한 무지개가 걸린 고원 지대의 어디선가 육사는 절망의 정점, 혹은 절정의 절망과 한탄을 날려 보내야만 했을 터였다.더욱이 육사가 만난 무지개는 한겨울에 뜬, 상상 속의 무지개였으니, 그 심사가 어땠을까 돌이키면 송구한 마음이 앞선다. 식민지 조선의 문인들이 앞다투어 시와 소설 출간하던 시절에 육사는 절필을 선언하고, 독립운동에 매진했던 시절. 그가 군자금을 안고 설한풍(雪寒風) 뚫고 고원 넘어가며 느꼈을 절해고도(絶海孤島)의 적막함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한순간에 스러질 운명이되, 순간의 아름다움으로 인간의 영혼을 뒤흔드는 무지개와 아침이슬과 한단지몽과 벽력같은 우레, 이와 같은 운명적인 허망을 육사는 정녕 알았던 것일까?! 육사는 북경 감옥에서 한겨울에 소리도 없이 스러졌다. 1944년 1월 16일의 일이다. 그날 북경에는 강철 무지개가 떠올랐을까?! 혹은 조국광복과 해방의 기막힌 무지개가 떴을까?!요즘 건국절이란 전대미문의 용어가 국민을 현혹하고 ‘중일마’라는 듣보잡 어휘가 횡행한다. ‘중요한 것은 (일본과) 일본인의 마음’이라니, 자다가 벌떡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본 무지개가 진정 헛것이었는지, 혼잣말로 묻는다. “당신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오?!”

2024-08-25

포항의 홍등가, 시민문화공간으로 조성되길

지난 23일자 본지에 보도된 한 성매매 여성의 이야기는 독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대부분 성매매 여성이 그렇듯이, 그녀도 ‘선불금(2000만원)’ 때문에 서울 영등포와 포항 성매매업소에서 지옥같은 22년을 보내야 했다. 선불금은 고율의 이자가 붙기 때문에 한 번 올가미에 묶이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좀처럼 빠져나오기가 힘들다.포항시 중앙동 ‘성매매 집결지’에는 현재 약 35개의 업소가 영업 중이다. 6·25전쟁 직후 포항역 주변에 형성된 업소들이 오늘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다. 아직도 성매매 집결지가 존재한다는 것은 공권력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포항시는 그동안 성매매 집결지 정비를 위해 노력을 하긴 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진 못했다. 지난 2021년부터는 민·관이 참여하는 ‘지역 협의체’를 구성해 지속적인 집결지 정비 대책을 수립해 왔으며, 올들어서는 부시장을 단장으로 하는 TF까지 가동시키고 있다. 지난해는 옛 포항역 주변부지를 용도변경해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건립이 가능하도록 했다. 대구 도원동(자갈마당)의 경우도 대대적인 도시개발 사업을 통해 성매매 집결지를 정비할 수 있었다.포항시내 성매매 집결지 문제를 공론화시키는데는 포항시의회 김은주 의원(민주당)의 역할이 컸다. 김 의원은 오래전부터 시민들과 함께 ‘성매매집결지 걷기 운동’을 정기적으로 개최해 오고 있다. 포항시 여성가족과는 성매매여성 자활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종사자들의 생계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성매매집결지 정비가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올해는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되는 해다. 특별법 시행 이후 전국적으로 대부분 성매매 집결지가 폐쇄됐지만, 아직 남아있는 곳은 포항을 비롯해 10여 곳 뿐이다. 하루가 다르게 첨단 산업도시로 변신해가는 포항시내에 아직도 성매매 집결지가 있다는 것은 도시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요인이 된다. 앞으로 성매매집결지 정비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돼, 이 일대가 쾌적하고 안전한 시민문화공간으로 조성되길 바란다.

2024-08-25

박정희 광장을 정쟁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대구시가 동대구역앞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명명하고 박정희 광장 표지판을 설치한 것을 두고 민주당 대구시당이 고발하자 대구시가 맞고발로 맞서는 등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박정희 광장 명칭은 1960년대 대한민국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사업이다. 대구시는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명명하고 이곳에 박 전 대통령의 동상도 세울 예정이다. 특히 대구시는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의 구국정신과 1960년 2·28 민주화 운동, 1960년대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 정신을 대구근대 3대정신으로 선정한 바 있다.문제는 박정희 광장 표지석 설치에 대해 민주당 대구시당이 불법이라며 홍준표 대구시장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대구시당의 고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국회 국토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다시 꺼내 정쟁화로 이끄는 분위기다. 표지석 설치가 국토부 등과 협의 없이 설치된 점과 명칭변경은 역명에 따르게 돼 있는 관리지침을 위반한 것이라며 이 문제를 따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광장 명명 등의 문제는 지역여론 등을 살펴 지자체가 판단할 영역이 많다는 점에서 중앙 정치권의 개입은 적절치 않다. 지방자치 정신에 기초한 자치단체의 판단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뜻이다. 홍 시장은 박 전 대통령 표지판 설치와 관련 “목포나 광주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동상과 공원, 기념관이 많다”며 “역사적 인물에 대한 공과를 논할 때는 과만 보지말고 공도 기리는 그런 세상이 됐으면 한다”고 밝했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박정희 광장 명칭과 동상 건립에 시민의 70%가 긍정적 답변을 했다.민주당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2014년 지방선거 때 박정희컨벤션센터 건립을 공약으로 내세운 적 있다. 지금 와서 민주당의 입장이 달라진 지 모르나 박정희 광장 명명을 두고 민주당이 시비 거는 것은 이념공세를 통해 정쟁화하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절차가 잘못됐다면 고치면 되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 사업으로 고발을 일삼는 것은 시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다.

2024-08-25

아직도 친일몰이, 피해망상인가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자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해를 입고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나 생각을 가지는 심리적 상태를 피해망상(被害妄想)이라 한다. 이는 정신질환의 주된 증상 중 하나로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서 나타난다. 유전적 요인도 있고 도파민, 세로토닌 같은 뇌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유발될 수도 있다. 심한 스트레스나 트라우마가 원인일 수도 있고 약물남용이나 신체적 질병이 원인이 될 수도 있다.피해망상의 주요 증상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공격, 감시, 음모 등의 피해를 보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비합리적인 경우가 많다. 확실한 근거도 없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거나 속이거나 이용하려 한다고 믿는가 하면, 주변의 사소한 일에도 자신을 겨냥한 의도적인 공격이나 비난이 있다고 느껴서 과민반응을 한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감시하거나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고 CCTV를 설치하는 등 비정상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일제의 식민통치 기간 우리 민족이 직간접적으로 받은 고통과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특히나 일제에 대항해 싸우다 순국하신 분들과 온갖 고초를 겪으며 옥살이를 하신 분들, 그 유족들의 원한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일제의 죄악상을 낱낱이 밝히고 항일투쟁을 하다 순국하셨거나 고초를 겪으신 분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우와 보상도 마땅히 따라야 한다. 역사적 사건의 진상은 학자들이 철저히 규명할 일이고, 개별적이고 개인사적인 일들은 문학작품 등을 통해 조명되기도 했다.올해는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지 79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제 일제의 식민지를 경험한 사람들은 80세 이상 되는 노인들 뿐이다. 그분들 중에는 아직도 상당한 트라우마를 가진 분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사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우리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방심하다가는 또다시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될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우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을 추월하는 단계에 이른 지금도 그런 우려를 하는 국민은 아마 없을 것이다.그런데도 친공·좌파들은 아직도 일본에 극도의 피해의식을 가진 것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금도 일제의 식민지라는 착각에 죽창이라도 들고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이는 심각한 정신질환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걸핏하면 들고 나오는 좌파들의 친일몰이는 그런 피해망상이나 위기의식은 아닌 것 같다.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수시로 친일몰이를 꺼내드는 것은 궁지에 몰린 국면을 뒤집어 보려는 교활한 수작인 줄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프랑스와 독일이 지금 우방으로 지낸다고 침략전쟁의 과거를 잊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듯, 윤석열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정책도 일제의 침탈을 망각하거나 용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좌파 정치인들이 당면한 사법리스크 방탄용으로 써먹는 친일몰이에 현혹되어 퇴행적 과거집착에 함몰할 것이 아니라 지금은 오로지 새로운 역사를 쓸 때다.

2024-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