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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즐거운 한가위 황금연휴 어디로 떠나볼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오곡백과(五穀百果)가 영글어가는 가을의 정취 아래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이 성큼 다가왔다. 긴 연휴 기간동안 지난여름 폭염으로 지쳤던 심신을 달래고 가족 및 친지와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보자. 추석 기간 지역의 풍성한 볼거리, 즐길거리는 무엇이 있는지 소개해 본다.되짚어보는 옛 선현들의 지혜와 생활영주시는 23일부터 26일까지 4일간 선비촌 일원에서 추석맞이 특별공연과 민속행사를 개최한다.시는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는 귀향객과 관람객들이 가족, 연인과 함께 즐거운 공연을 즐기고 다채로운 전통놀이와 옛 선현들의 생활상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추석 당일인 24일에는 ‘아카펠라 젠틀맨’의 아카펠라 공연이 오후 3시부터 50분간 진행되고, 25일에는 ‘재즈피아니스트와 소리꾼의 만남’ 공연이 오후 3시부터 50분 동안 진행된다.체험행사로는 24일∼25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전통공예 매듭체험과 딱지 접기 체험이 있고 낮 12시와 오후 2시에는 떡메치기 행사도 진행된다. 이외에도 윷놀이, 투호놀이, 굴렁쇠굴리기, 제기차기 등 다양한 체험을 준비했다. 한편, 추석 당일에는 선비촌을 비롯한 소수서원, 소수박물관을 무료로 개방하며, 26일도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무료로 개방할 방침이다.이색적인 체험관·도심 버스투어 대구 동구 신천동에 위치한 얼라이브 아쿠아리움에서는 추석을 맞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바닷속 세상을 유영하는 다이버들이 특별한 인사를 한다. 특히, 다이버들은 추석 메인수조에서 한복을 입고 관람객들을 맞는다.아울러 아쿠아리움 곳곳에 있는 보름달을 찾아 개수를 맞히면 한정판 펭귄 뱃지를 증정하는 ‘한가위 보름달을 찾았달’ 이벤트도 진행된다. 또 퀴즈를 풀고 선정되면 대구∼타이베이간 왕복 항공권을 주는 행사도 마련된다.동물들과 함께 뛰어놀고, 만지고, 먹이도 주고, 사진도 찍는 ‘교감형 생태동물원’ Resort 스파밸리 네이처파크도 추석 연휴에 방문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네이처파크는 올봄 기존의 온실 2개동을 4개관으로 변경하고 펫타운을 추가해 5가지 테마 동물원으로 확장 후 새 단장을 마쳤으며, 대만새우낚시잡이 등 이색체험을 더해 인기리에 운영 중이다.추석에는 타지역 방문객이나 한복착용 방문객 입장료를 1만원으로 할인해 주는 이벤트도 진행한다.긴 추석에 교육적인 관광지를 찾고 있다면 국립대구과학관이 제격이다.국립대구과학관은 오는 12월 2일까지 ‘수학나라의 앨리스’를 기획 전시 중이다.이번 특별전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해 신비한 수학나라를 탐험하면서 수학을 재미있게 익힐 수 있도록 기획됐다. 또 경북대학교 김창수 명예교수가 기증한 농기구 80여 점을 활용한 ‘쟁기, 트랙터로 진화하다’ 특별전도 만날 수 있다.추석 방문객은 상설전시관 입장권이 50% 할인되며, 한복 착용 시 상설 전시관 무료입장 이벤트도 진행된다.간송미술관 개관 80주년을 맞아 대구미술관에서 개최된 ‘간송 조선회화 명품전’도 추석 연휴 마지막으로 전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신윤복, 정선, 사임당 등 교과서로만 만나던 조선최고 거장들의 명품 조선회화 100여점과 간송 유품 30점, 현대적인 미디어 아트 등 대구시민들의 문화적 품격을 올려줄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이와 함께 도심 버스투어도 이색적이다. 향촌문화관, 근대역사관 등 도심에 밀집된 8개 중구 명소들을 보고싶다면 청라버스를 타면 된다.또 대구시내 구석구석 14개 대표 관광지들을 모두 보고 싶다면 시티투어 버스를 추천한다. 양쪽 모두 당일 승차권 한 장으로 하루 종일 무제한 승하차가 가능하다. 한복 입고 타면 승차권 50% 할인해주는 ‘청라버스 한가위 이벤트’는 덤이다.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 운영되며, 코스 및 요금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한편, 대구 중구(구청장 류규하)에서는 오는 26일까지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도록 계산예가와 쌈지공원, 김광석길 등의 관광안내소를 운영한다.특히, 대구 중구는 연휴 기간 근대골목을 찾는 관광객들이 스탬프 골목투어 리플릿에 6개의 스탬프를 찍어오면 선착순 100명에게 소정의 상품을 제공한다. 바다와 운하를 배경으로 낭만을해양관광도시의 명성에 걸맞게 포항에서는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축제와 포항운하 관광이 연휴 기간동안 인기를 끌 전망이다.국내 유일 ‘철’을 주제로 한 예술축제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이 포항 영일대해수욕장에서 ‘호랑이 꼬리를 잡다’를 테마로 진행되고 있다.전문작가 작품 22점과 철강기업체 작품 20여 점, 시민참여작품 500여 점을 전시하는 스틸아트웨이와 크루즈선과 버스를 타고 포항의 문화예술관광자원을 둘러보는 스틸아트투어 프로그램, 매주 주말과 공휴일에 진행되는 다양한 국내·외 거리극, 버스킹, 버블쇼 등을 볼 수 있는 스틸아트웨이쇼가 펼쳐진다.올해는 한국을 대표하는 최정상급 작가인 김구림, 이강소 작가와 오원영, 이용백, 정현, 김병호, 이이남, 이세현, 이상준, 황성준, 장승효, 김승영, 정정주 작가의 설치 작품과 최문석, 노해율 작가의 작품 등 22개의 전문작가 작품을 전시한다.(주)포항크루즈는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는 귀향인사와 연휴를 즐기는 시민 및 타지역 관광객을 위해 추석 연휴 특별할인 행사 및 포스코 LED불빛 야간 해상투어를 실시한다.사상 최대 긴 연휴기간이었던 지난해 추석연휴 당시 10일간 약 1만3천명의 관광객이 찾은 포항운하크루즈는 올해 추석연휴를 포함한 22일부터 30일까지 9일간 포항운하크루즈를 방문하는 타지역 관광객에게 포항시민과 동일한 20% 할인을 적용(대인 8천원/소인 6천원, 주간요금에 한함)한다.특히 이 기간 코레일을 이용한 귀성객이나 일반시민에게는 무려 40%의 할인율을 적용(코레일 티켓 또는 모바일 티켓 제시)할 방침이다.이와 함께 지난 포항국제불빛축제 기간 불꽃타상시간에 맞춰 운행한 특별야간운항에서 전일 매진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포스코 LED불빛 해상투어’도 추석연휴기간 22일부터 25일까지 매일 운항한다.야간승선요금은 대인 1만2천원/소인1만원이며 탑승방법은 사전 전화예약으로만 가능하고, 잔여석에 한해서는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판매되며 출발 30분 전 까지 표를 구매해야 한다.전통놀이로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이 추석을 맞아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했다.추석 당인일 24일부터 26일까지 경주엑스포공원 선덕광장(경주타워 옆)에서 체험마당과 공연마당이 무료로 펼쳐진다.체험마당은 수막새 등 탁본 뜨기, 전통 팽이 및 제기 만들기와 놀이가 진행된다. 광목 컵 받침대, 솔방울 책갈피, 나뭇잎 차량용 전화번호판 만들기도 선보인다.공연마당은 국악, 성악, 첼로, 밸리댄스 등 명절 흥을 돋울 다양한 전통공연과 현대공연을 준비하고 있다.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마술공연과 지역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버스킹 공연은 관람객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하게 된다.방학기간 수도권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고 경주로 복귀한 넌버벌 퍼포먼스 ‘플라잉’은 추석연휴기간 40%할인 행사를 가진다. 한복을 입고 입장하면 60%까지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경주 보문호수의 가을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경주타워’, 경주 최고(最高) 카페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구름 위에 카페’(아파트 30층 높이),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솔거미술관’은 경주엑스포공원에서 꼭 들러야 할 필수코스로 손꼽힌다.이 외에도 8세기 서라벌을 재현해 놓은 ‘신라문화역사관’, 가상현실 기술로 석굴암을 만날 수 있는 ‘석굴암 HMD트래블’, 동양 최대의 화석박물관 ‘쥬라기로드’, 어린이 관광객의 성지인 ‘또봇 정크아트 뮤지엄’ 등 교육과 재미, 체험과 힐링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가득하다. /박순원·황성호·고세리기자

2018-09-21

가면 갈수록 가고 싶은 곳…짭짤한 삶의 향기 물씬

영덕은 거듭해 방문할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곳이다. 푸르게 빛나는 보석 사파이어 수만 개를 뿌려놓은 듯 청아하게 출렁이는 바다, 짙은 녹음과 붉은 단풍이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산, 거기에 대게와 송이버섯, 시원한 물회와 따끈한 매운탕 등 맛깔스런 음식이 관광객을 반겨준다.바다와 산이 근사하게 조화를 이룬 영덕의 풍광은 유럽의 유명 관광지 어느 곳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이탈리아 남부 아말피(Amalfi)와 포지타노(Positano)는 기암절벽 아래 펼쳐진 바다 색깔이 곱기로 이름난 도시다. 영덕의 바다 빛깔? 그곳에 못지않다. 호주 브리즈번(Brisbane) 근교 글래스하우스 마운틴 숲은 위로와 치유의 장소다. 영덕의 산?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취재를 위해 해마다 1~2차례 영덕을 찾았다. 바다를 산책하며 혹은, 산을 오를 때마다 든 생각은 “이곳 풍경은 크로아티아의 흐바르(Hvar) 섬과 닮았다”는 것이었다. 인기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 여행지로 소개된 이후 많은 한국인들이 찾고 있는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Dubrovnik)나 스플리트(Split) 만큼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흐바르 섬의 바다와 산은 사람들의 입을 절로 벌어지게 한다. 몇 해 전. 흐바르 섬에서 사흘을 묵었다. ‘매혹’이라 이름 붙일 수밖에 없는 그곳에서의 추억이 앞으로도 한참을 잊히지 않을 듯하다. 몽환적인 보랏빛 라벤더가 무더기로 꽃을 피운 흐바르 섬 해변을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바로 영덕의 바닷가와 산책길. 이런 축복받은 자연환경에 사람들의 열정적인 노력이 더해진다면 영덕은 분명 크로아티아나 이탈리아 바닷가마을이 부럽지 않은 ‘관광 명소’가 되지 않을까? 그러니, 영덕군이 자신들의 ‘마을’과 ‘길’에 즐거움과 매력이라는 ‘관광 요소’를 결합시키기 위해 환경조성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 부흥리, ‘영덕의 랜드마크’가 된다 남정면 부흥리는 영덕으로 진입하는 관문에 위치한 고즈넉한 마을이다. 조그맣고 소박했던 이 마을이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작년 초 시작돼 올해 말까지 진행될 예정인 ‘부흥리 마을 토탈 경관디자인사업’이 성과를 하나 둘 드러내고 있는 것.“부흥리를 영덕의 랜드마크로 만드는 동시에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마을로 연출함으로써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영덕을 찾은 여행자들에게 행복한 기억을 선물하겠다”는 슬로건 아래 진행된 ‘부흥리 마을 토탈 경관디자인사업’.이 사업은 지하도와 건물에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과 조명을 설치하는 유해환경 개선사업, 광장을 만들고 각종 부조로 마을을 꾸미는 경관디자인 조성사업, 해변 도로에 설치된 음식점 등의 간판을 깔끔하게 정비하는 옥외간판 시범거리 조성사업 등으로 진행되고 있다.영덕군청에 따르면 “벽화거리는 이미 조성됐고, 바람개비와 거북이, 코스모스와 낚시꾼들을 흥미롭게 형상화한 조형물 설치도 마무리 단계”라고 한다. 물론 밤거리를 밝힐 조명과 가로등도 깔끔하게 거리에 들어섰다. 부흥리 주민들은 맑고 깨끗한 바다가 지척인 ‘풍광 수려한 곳’에 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각종 시설물과 건물 등이 노화된 상태라 “동네를 시대에 맞게 개발해야 된다”는 요구가 없지 않았다. 이번 사업을 통해 마을이 환하게 정비된 것을 본 주민들은 “이제 관광객이 찾아오면 웃으며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도시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는 목표는 달성된 셈이다.“앞으로는 공사가 진행 중인 시설과 벽화의 세부적인 요소들을 적절한 위치에 조정해 영덕을 찾는 이들이 동해대로를 통해 자연스럽게 부흥리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할 동선 계획을 세울 것”이라는 게 군청 관계자의 이어지는 설명이다. 지역민의 정서와 자연환경을 접목한 공공디자인의 개발은 시골 마을을 ‘지속성장 가능한 공간’으로 바꾸는 방법 중 하나다. 이를 위한 주민과의 소통과 합리적인 의견 교환은 필수다. 이것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영덕의 관광산업은 한 단계 더 도약할 테고, 부흥리를 포함한 영덕군 마을들은 스쳐가는 관광지가 아닌 ‘머물고 싶은 여행지’가 될 것이다. ◇ 블루로드와 함께 ‘오십천 제방 탐방로’도시원스럽게 흐르는 실개천과 깨끗한 시가지가 자리한 영덕읍 덕곡천 친수공간도 이제 그 모습을 군민과 방문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대게의 주산지인 강구항과 영덕 시가지를 잇는 ‘오십천 제방 탐방로 조성사업’도 순조롭다.오십천 제방 탐방로는 바다와 산을 함께 품은 블루로드와 함께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길’로 평가되고 있다. 올 봄에는 덕곡천 보행로와 교량의 통행이 시작됐다. 영덕시장 앞 야성교에서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덕곡교까지 880m에 이르는 구간. 여기엔 차도와 보행로를 분리해 통행하는 이들의 안전성을 확보했다.“향후 덕곡천에 분수대와 공연장 등을 설치하고, 월드컵교와 덕곡교 구간엔 다양한 꽃도 심을 예정”이라고 영덕군청은 말한다. 또 “지속적인 물 공급으로 덕곡천이 마르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덕곡천은 영덕 중심에 위치했다. 여기에 정비된 친수공간이 생긴다면 주민들의 삶의 질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덕곡천 친수공간은 다양한 문화공연과 지역 행사를 진행하는 곳으로도 역할이 가능하다”고 설명한 영덕군청 문화관광과 직원은 “지역공동체 활성화라는 보다 높은 차원의 기대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더해 ‘자연과 잘 어우러진 관광도시 영덕’의 이미지 확산에도 도움을 줄 듯하다.덕곡천 친수공간·오십천 제방 탐방로 조성은 영덕군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3대 문화권 동해안 연안녹색길 사업’의 결과물이다. 사업비 88억 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지난해 10월 시작됐고 올 연말 마무리될 계획이다. 오십천 제방 탐방로 조성을 위한 포장공사는 이미 마무리됐다. 영덕대교부터 강구 신대교까지 약 7km 구간이다. “이제 조경수를 심고 영덕의 특산물인 대게, 송이, 황금은어, 복숭아를 테마로 한 다양한 쉼터도 만들 예정”이라고 군청 문화관광과는 말한다.주민들은 “영덕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오십천을 따라 형성된 탐방로는 강구항과 전통시장, 시가지를 잇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영덕을 사계절 찾고 싶은 도시, 바다와 산, 맑은 하천과 낭만적인 마을 풍경이 어우러진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군청과 군민의 노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형형색색 반짝이는 길… 동화같은 환상 속으로 ‘쏘옥’영덕군 창포리 해맞이공원 주변 도로가 ‘낭만 상실의 시대’에 로맨틱한 분위기를 선물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해맞이공원 ‘빛의 거리’ 경관조명이 지난 7월 다시 불을 밝힌 것이다.영덕군청은 “영덕을 향해 뻗은 고속도로와 동해안철도 개통으로 늘어난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인 볼거리를 제공하고, 군민에겐 특색 있는 휴식공간을 선사하기 위해서”라고 경관조명을 다시 켠 이유를 설명한다.지난 2007년 가을 만들어진 해맞이공원 ‘빛의 거리’는 청정에너지를 생산하는 풍력발전단지를 가진 영덕의 이미지와 결합된 공간. 밤은 물론 낮에도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이름이 높다. 이에 영덕군은 전망대와 경관조명 시설을 이 지역에 설치했다.이후 해맞이공원 일대는 ‘아름다운 빛의 향연’이 펼쳐지는 낭만적인 데이트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시원스럽고 아름다운 경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창포말등대와 더해져 빼놓을 수 없는 영덕의 관광명소로도 발돋움했다.하지만, 시설 노후화와 장비와 부품의 단종 등으로 2015년 5월 어쩔 수 없이 불빛을 꺼야 했다.1억8천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이번에 다시 환한 조명이 쏟아지는 공간으로 꾸며진 ‘영덕 해맞이공원 빛의 거리 조명 보수공사’는 3개월의 시간이 소요됐다.이와 관련 영덕군 관계자는 “노후된 경관조명을 산뜻한 제품으로 교체하고, 그외 관련 시설도 현대화했다”고 설명했다.덧붙여 “꺼졌던 조명이 다시 켜졌다. ‘빛의 거리’가 낭만적 공간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며 환하게 웃었다.푸른 동해의 물결과 아름다운 야경을 만날 수 있는 해맞이공원이 새롭게 단장됨으로써 관광객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군민들에겐 ‘야간 드라이브를 즐길 명소’가 생긴 것이라 지역에서도 반기는 분위기다.영덕군청은 밤에 해맞이공원을 찾는 사람들의 안전과 조명 시설 도난 방지를 위해 ‘빛의 거리’ 전체를 CCTV로 24시간 촬영 중이다. 이와 함께 “감전의 위험이 있으니 조명은 눈으로만 즐기고 손을 대지는 않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9-21

“물산업클러스터 성공 위해 물기술인증원 유치 올인”

대구의 미래먹거리 중에서 물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대하다. 지난 6월 13일 지방선거 이후 민선 7기를 시작한 권영진 시장은 “지역의 산업구조 변경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물산업과 전기자동차 산업을 핵심으로 꼽았다. 특히, 전 세계 800조원 규모 (2016년 기준)의 물산업은 연평균 3% 성장이 전망되는 만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대구시는 이 같은 지역 물산업의 전진기지로 달성군 구지면에 위치한 국가물산업클러스터를 내세우고 있다. 특히, 대구시는 물산업클러스터의 성공을 위해 물기술인증원의 대구 유치에 올인한다는 방침이다. 경북매일신문은 대구 물산업클러스터 현 주소와 물기술인중원의 유치 필요성을 진단해 본다. 물산업 클러스터내 물기술 인증원 유치로실증화·인 검증 시설 연계물기업 대상원스톱 서비스 가능市, 2020년까지 50개 기업유치·입주 목표저울질 기업 대부분“물기술 인증원있으면 이전”□ 2018년의 물산업클러스터, 그리고 대구의 물산업대구 달성군 구지면 일대에 조성 중인 물산업클러스터는 64만9천㎡ 규모다. 국내 물 관련 기업 중 투자유치대상을 선정한 끝에 100개 업체가 선정됐고, 대구시가 유치전을 펼쳐 21개 업체가 유치됐다. 앞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물산업 진흥시설과 기술개발의 현장이 되는 실증화단지 등 다양한 물관련 시설들이 들어설 전망이다. 대구시는 달성군의 물산업클러스터를 한국 물산업을 이끄는 메카로 부상시킨다는 전략이다.이 같은 대구시의 물산업 전략은 세계 시장의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세계 물산업은 수처리 기술혁신과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한 물 공급의 스마트화, 첨단기술 기반의 대규모 글로벌 산업, 상하수도 관리시장의 민간 참여 확대, 상하수도 사업의 통합 및 광역화 등의 방향으로 가는 추세다. 국가별로는 미국의 경우 전체 물시장의 60%가 운영시장이고, 노후화된 물 시스템 개량과 보수에 대규모 민간자본이 참여하는 육성정책이 대세다.중국은 수십조(水十條·수오염방지행동계획) 사업으로 장강 등 7대강의 수질개선에 350조원을 투자하는 한편 향후 하수·폐수 분야의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20일 대구시에 따르면, 상·하수가 물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산업은 운영과 설계 등 서비스 분야의 전망이 가장 밝다.중국과 베트남 등이 신흥시장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물 전시회 등 참가업체도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중국에서 열렸던 물 전시회에서는 487개의 업체가 참가했으나, 지난해 행사에서는 877개 업체가 자리했다. 또 베트남의 물 전시회에서도 2014년 368개 업체에 불과했던 것이 2017년 480개 업체로 늘었다.□ 대구의 물산업, 순항할까.지난 4월 대구시는 물산업클러스터 추진에 빨간불이 들어오기도 했었다. 세계 물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국가전략사업이 수시배정 예산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수시배정은 사업 계획이 미비하거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을 경우 기획재정부가 예산배정을 보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대구의 물산업클러스터 조성도 중단위기에 직면했었다. 하지만 지난 5월 대구시가 물산업클러스터 조성사업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물관리 기술발전 및 물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다.이 법안의 통과로 물산업 관련 예산 배정 확보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진 것이다.대구시는 “클러스터 기능을 강화하고 우수 물 기업을 유치하는 데 탄력을 받게 됐다”면서 “유치 기업 지원시스템을 구축하고, 국제 물 분야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사업도 원활한 추진이 가능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올해 말 클러스터 조성공사 완공과 내년 상반기 시험 운전 등의 계획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물 기업 유치에도 속도를 높인다. 시는 지금까지 클러스터 기업집적단지에 20개 기업을 유치했다. 올해 10개 기업을 추가로 유치하는 등 2020년까지 50개 제조기업을 입주시키겠다는 계획이다.아울러 물 분야의 국제적인 네트워크도 다져나갈 예정이다. 올해 9월에 열리는 제3회 대한민국 국제물주간은 국내 물 분야 기관 및 기업의 전시참가를 100여 개로 늘리겠다는 것.대구시는 “불투명하던 예산 확보에 숨통이 트이는 한편 내년도 준공할 클러스터의 운영 주체도 명확해져 물산업 육성에 힘을 받게 됐다”며 “그동안 추가 투자를 미루던 입주 기업들이 법 통과를 계기로 시설투자를 진행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입주 기업 물색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물산업클러스터의 날개, 물산업인증원 유치한국물기술인증원은 미국 FDA(식품·의약품)와 우리나라 KS마크(공산품)인증처럼 물관련 분야의 모든 인증을 담당한다. 미래먹거리로 물산업을 추진하며, 물산업클러스터를 조성 중인 대구시로서는 역량있는 물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물산업인증원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실제로 물산업클러스터의 입주를 저울질 중인 대부분의 기업들은 “물기술인증원이 대구에 온다면, 대구의 물산업클러스터로의 이전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입을 모은다.대구 물산업클러스터를 위탁운영하고 있는 한국환경공단 전병성 이사장도 한국물산업인증원을 대구에 설립해 물산업클러스터와 함께 운용할 필요가 있음을 밝혔다.그는 지난 8월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현재 용역 중인 결과에 따라 정부 방침에 따르겠다. 물기술인증원은 물산업클러스터와 같이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수질오염관리와 상·하수도 관리에 대한 환경공단의 30년 노하우를 바탕으로 물산업클러스터를 반드시 성공시키고 대구도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대구시는 “5년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한 물산업클러스터는 전주기(life cycle)체계가 제대로 갖춰져야 가능 할 수 있으며, 그 핵심에 ‘인·검증 시설’이 있다”고 밝혔다. 국가물산업클러스터 내에 실증화시설과 인·검증시설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물기업에 대한 원스톱 서비스의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다는 이야기다.대구시에 따르면, 물기업이 개발한 기술과 생산한 제품의 인·검증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실증화 시설이 필요하다. 대구시는 “물산업클러스터는 인증과 검증을 위한 최적의 실증화 시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물기술인증원이 국가물산업클러스터 내에 입지하지 않으면, 세금 2천335억원을 투입해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준비한 물산업클러스터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식품클러스터’로 전락하게 된다.대구시는 “현재 예비타당성조사 중인 ‘대구산업선 철도’가 건설되면 수도권에서 국가물산업클러스터까지 편도 2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다”면서 “5년 이후 대구 및 경북 통합신공항이 건설되면, 수도권에서 도달시간이 1시간 이내로 단축되고, 세계 어디든 진출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한편, 환경부는 한국물기술인증원 설립을 위한 용역을 발주했다. 오는 11월께 결과가 나올 예정이며, 환경부는 이를 토대로 물기술인증원 설립위원회 구성과 입지를 결정키로 했다.▲ 강효상 국회의원“물기업인증원 불발 땐 반쪽짜리 물산업 전락”-강효상 “물기술인증원 대구 설립은 필수”대구·경북 지역 국회의원 중에서 대구 물 산업에 상당히 관심을 쏟는 강효상(대구 달서병) 의원은 물기술인증원의 대구 유치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현재 대구에 물산업클러스터가 조성됐지만, 물기술인증원이 유치되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물산업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강 의원은 “물기술인증원 입지선정에 대한 환경부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는 정무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정부는 입지 선정에 있어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와야 한다”며 “물 산업에 대한 인프라가 구성된 대구이기에 물기술인증원의 유치는 당연할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특히, 강 의원은 “물기술인증원이 대구에 유치되면 생산유발 2천805억원, 부가가치 유발 1천100억원, 고용유발 3천800명 등이다. 일자리 창출과 신성장동력의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는 인증원이 물관리 기술 및 제품 등에 관한 인·검증 및 기준개발·조사연구, 증명서 발급 등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이어 “인증원이 유치돼야 대구 국가물산업클러스터 활성화를 위해 80여개 물기업에 대한 원스톱 지원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다”면서 “물기술 관련 인·검증 기능은 물기업 육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고 덧붙였다.그는 “인증원이 대구에 설립되면 국가물산업클러스터와 최적 연계가 가능하고 별도의 건축비가 필요하지 않아 다른 경쟁지역에 비해서도 유리한 점이 많다”며 “관계부처가 정무적인 판단을 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주장했다.강효상 의원이 이 같이 물 문제에 적극적인 것은 국회 환경노동위에 소속돼 있는데다 대부분 대구 경북지역의 문제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그동안 강 의원은 내년도 성서산업단지 폐수 처리수 재이용 시설 구축사업에 국비 14억원을 반영시켜 부산, 울산, 경남 등 낙동강 하류 주민들의 물문제로의 확산을 막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2018-09-21

지역민 ‘든든한 동반자’로 거듭나게 노력

뜨겁기만 하던 더위도 물러가고, 수확의 계절인 가을이 됐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풍요의 상징이자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을 맞게 됐습니다. ‘행복한 한가위 되십사’ 정중히 추석인사 올립니다.550만 대구·경북 시·도민 여러분, 그리고 경북매일신문 애독자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기적과 영광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외세의 침략과, 동족상잔이라는 크나큰 아픔을 이겨내고 조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시대의 소명을 이루어 냈던 것입니다. 그 역사의 노정에는 우리 대구·경북인들이 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또한 거기에 더하여 우리 대구·경북인들의 의식과 정신의 밑바탕에는 경북매일신문의 정의로운 논조와 날카롭고 곧은 펜이 늘 함께 해 왔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는 또 한 번의 엄중한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청년실업, 수도권과 지방간 격차의 확대, 사회갈등구조의 고착화 등 사회문제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대외적으로는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화해분위기 이면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급변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는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사의 중심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는 새로운 기회입니다.저 또한 그 여정에 시·도민 여러분들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 저와 1만 여 대구시 공직자는 지난 4년간 다져온 ‘소통과 협치의 시정’과 ‘산업구조개편’을 토대로, 새로운 4년을 펼쳐 가고자 합니다. 명실상부한 상생을 바탕으로 우리 대구·경북을 세계 속의 메가시티로 가꾸어 가겠습니다.시·도민 여러분, 경북매일신문 애독자 여러분,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어려움을 현명하게 이겨내고, 나아가 청년이 머무르고 싶은 지역, 누구나 살고 싶은 대한민국 행복지수 일등 지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시·도민 여러분들의 협조를 당부 드립니다.

2018-09-21

‘경북發 새바람’으로 대한민국 변화 주도

존경하는 도민 여러분, 설레는 마음 안고 달려오신 출향인 여러분.정든 고향에서 가족 친지와 함께하는 추석입니다. 환하고 둥근 보름달처럼 넉넉한 웃음이 가득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특히 연휴에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땀 흘리는 산업역군 여러분께도 격려의 인사를 전합니다.올해는 유례없는 폭염으로 많이 어려웠습니다만, 어느덧 청명한 가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천리 동해안과 백두대간, 낙동강 칠백리 구석구석에도 풍요로운 기운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이는 삶의 현장을 지켜 오신 도민 여러분과 고향사랑으로 언제나 각별한 성원과 협조를 보내주시는 출향인 여러분 덕분입니다. 참으로 고맙고 자랑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경북의 담대한 도전은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목표는 좋은 일터가 넘쳐나고, 아이 낳아 잘 키울 수 있는 지역을 만들어 다시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우뚝 세우는 것입니다. 경북이라면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대한민국을 지키고 이끌어온 경험이 있고 밝은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있기 때문입니다.현실은 어렵긴 합니다만 ‘경북발 새바람’을 불러일으켜 도민 모두가 행복한 경북, 대한민국의 변화를 주도하는 경북을 앞당겨 가야 하겠습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도민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 출향인의 고향사랑을 하나로 모아주시길 바랍니다.또 좋은 소식도 들려옵니다. 남북정상이 만나 화해무드가 무르익고 있습니다.북한에서 민족의 행복과 번영을 기원하는 메시지가 도래하듯 우리 경북민들의 집집에도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원하겠습니다.경북도는 신북방경제의 거점지역인 만큼, 앞으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을 많은 일자리들을 만들어내 사람들이 몰려오는 경북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했습니다. 이번 추석은 고향 경북에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시고, 기운을 충전하기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행복한 추석 연휴 보내시고, 안전운전 하십시오.

2018-09-21

새로운 생각과 행동으로 새로운 의회 일궈내

가족의 정을 느끼게 하는 민족 고유의 명절 추석입니다. 추석이면 부모님이 계신 고향을 찾는 기쁨에 언제나 들뜨고 설레는 마음일 것입니다.올해는 추석 연휴가 조금이나마 길어서 그 어느때보다 넉넉한 추석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 친지, 지인들과 고향에 대한 정담도 나누고 가정마다 웃음 꽃이 만발하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평소 보고 싶고 사랑하는 가족, 친지들을 만나면 나눌 얘기가 참 많으실겁니다.취직도 잘 되고 아이들 교육이나 집값, 노후 걱정도 덜하고, 살림살이도 좀 넉넉해졌으면 하는 것이 모든 분들의 바람일 것입니다.취직이 안된 청년들도 이번 추석의 넉넉한 기운을 받아 모두 취직될 수 있도록 빌어봅니다.경상북도의회에서도 청년들의 조속한 취업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특히 올해는 새롭게 도의회가 구성된 만큼, 도민 여러분의 뜨거운 격려와 질타를 가슴에 품고, 초심의 마음으로 의회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배전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항상 도민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여러분들께서 걱정하는 문제들, 하나하나 잘 풀어 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경상북도의회는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행동으로 새로운 의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그리고 일자리 창출과 저출산 극복을 위한 혁신적인 의정활동으로 웅도 경북의 희망을 만들어 가겠습니다.아무쪼록 이번 추석 여행길, 고향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 안전운전 하시고, 이웃의 어려움도 함께 나누는 넉넉한 한가위가 되시길 바라며, 편안하고 안락한 고향 방문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아울러 한가위 보름달의 왕성한 기운을 받아 뜻하시는 모든 일 이루시고, 만사형통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2018-09-21

전통시장 ·골목상권 ‘상생’으로 지켜낼 터

사랑하는 대구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일 년 중 달빛이 가장 아름다운 추석입니다. 한 해 결실을 수확하는 농부들의 마음처럼 따뜻하고 훈훈한 한가위를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제8대 대구광역시의회가 개원한 지 100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큰 응원과 충언을 해주신 모든 시민들께 감사드립니다.시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소통하는 민생의회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시민속으로 한 걸음, 소통하는 민생의회’라는 새 슬로건처럼,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소통하고, 말보다는 실천하는 의회로 만들어 가겠습니다.시민들의 눈높이에서 불편한 사항을 하나하나 해결해 갈 수 있도록 의정역량과 지혜를 모아가겠습니다.추석을 앞두고 우리 의회뿐만 아니라 대구 곳곳에서 어려운 이웃에 대한 따뜻한 손길과 지원이 이어지고 있어 마음이 훈훈해집니다.앞으로도 소외계층뿐만 아니라 시민 모두가 이번 명절 그리고 연말을 편안하게 보내실 수 있도록 세심하게 관심을 가지고 살펴가겠습니다.대구시내에는 서문시장, 칠성시장, 서남신시장, 방천시장, 달서종합시장 등 지역의 특색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좋은 전통시장들이 곳곳에 많이 있습니다.전통시장과 골목 상권을 이용해 알뜰한 장보기를 통해 이웃과 풍성한 정을 나눌 수 있고 동네상권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시면 어떨까요.대구광역시의회에서도 경기불황으로 어려워하는 골목상권을 지켜내고, 대형유통업체들과 상생·협력해 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살피겠습니다.특히, 특화 잠재력을 갖춘 시장들을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특화시켜 시너지효과를 올릴 수 있도록 도와가겠습니다.고향 가시는 길, 안전운전하시고 가족 친지들과 정과 담소를 나누는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환한 보름달처럼 모든 대구시민의 앞길이 언제나 밝게 빛나길 소망합니다.

2018-09-21

영덕 깊은 땅 속에서 당신에게 가을을 전송 중 입니다

경제적 발전은 사람들의 ‘먹을거리 선호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단 자신이 먹는 음식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미식가(美食家)가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수의 한국인들이 이제 ‘양’보다는 ‘맛’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세태는 앞으로도 가속화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 하다. 지난달 업무 때문에 서울을 찾았다. ‘미식가’의 순위를 정하라면 어디에서도 빠지지 않을 사진작가 하나와 방문한 강남의 레스토랑. 트러플(Truffle·유럽산 송로버섯)을 올린 파스타가 나왔다. 향기 하나만으로도 포크를 든 사람 모두를 매혹할 만했다. 허겁지겁 그걸 먹는 기자를 웃으며 지켜보던 사진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맛있지? 근데 아무리 품질 좋은 트러플도 송이버섯 향기만은 못해. 왜냐고? 송이버섯은 우리에게 보다 친숙하잖아.”거기에 이런 대꾸를 내놓을 수 있었던 건 기자가 경상북도에 사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그럼 곧 열릴 영덕 송이축제 오셔야겠네요. 향기만으로도 배부를 테니.” 전국 송이버섯의 1/3 영덕 생산기온 등 송이 생장의 최적환경 자랑17일부터 ‘2018 영덕 송이장터’직거래마당·시식·체험 등 즐길거리 다양◆ 영덕의 송이버섯은 ‘숲속의 로또’짙푸른 바다와 청정한 산이 조화를 이룬 영덕군은 최상품의 송이버섯이 생산되는 곳으로 오래 전부터 이름을 알렸다. 여름철에는 잦은 비가 내리고, 여기에 타 지역에 비해 기온이 낮은 영덕은 자연산 송이의 고향으로 수백 년 전부터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송이버섯을 성장하게 하는 생육조건은 매우 까다롭다. 6월에는 3~4일마다 비가 내려줘야 하고, 기온은 20~23도를 오르내려야 한다. 여기에 송이가 자라기 좋은 산 속 환경까지 갖춰야 하는 것.영덕군은 해마다 2~3t의 송이버섯을 채취농가로부터 구입한다. 이는 농민들의 주요 수입원인 동시에 영덕군 인구가 급속하게 줄어드는 것을 막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우윳빛의 매끈한 몸체에 동그랗게 자리한 머리 부분. 쫄깃한 식감과 매혹적인 향기를 지닌 영덕의 송이는 가을마다 한국 미식가들을 설레게 한다.영덕군청의 공무원들은 말한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송이버섯의 1/3이 우리 고장에서 나옵니다. 사실 영덕 송이는 군(郡)의 보물을 넘어 한국의 보물이지요.”정치적·사회적 변화에 따라 크게 흔들리는 게 조그만 지역사회의 경제상황이지만 영덕은 송이 덕택에 이런 걱정에서 훌쩍 벗어나기도 했다. 한국의 전체 경기와 상관없이 송이버섯이 나오는 계절이면 영덕의 송이요리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송이버섯에 곁들일 쇠고기를 판매하는 정육점까지 호황을 누린 것. 이를 반영하듯 해마다 9~10월이면 공중파와 케이블방송 PD들이 송이와 관련된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영덕군을 찾는다. 이른바 ‘송이버섯 로드의 탐구’다.오랜 세월 송이를 채취해온 영덕읍의 이상범 씨는 “송이 생산량이 늘면 영덕 사람들의 웃음도 환해진다”는 말로 송이버섯이 자신의 고향에 미치는 영향력을 시적(詩的)으로 설명했다.◆ 영덕 송이가 맛있는 이유는 뭘까한국 최대의 송이 산지인 영덕군. 군청 산림자원과 관계자는 ‘영덕 송이버섯이 맛있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송이가 잘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알아야 한다. 영상 17도 내외의 기온에서 송이버섯은 가장 잘 자란다. 또한 8월을 시작으로 9월과 10월에 생육의 90%를 이루는 게 송이다. 영덕은 이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갖춘 지역이다. 앞으로도 영덕군은 정확하고 치밀한 과학적 조사와 연구를 통해 영덕 송이의 품질을 최고로 유지하려는 노력에 게으르지 않을 것이다.”사실 송이버섯은 경상북도와 강원도에서 대부분 자라고 채취된다. 전국 송이 생산량의 92%가 이 지역에서 나오는 것. 현재는 각종 환경적 영향 등으로 생산량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앞서 언급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낮아지는 송이 생산량을 현재의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이 다방면에서 진행되고 있다.영덕군은 올해 봄 산림청 공모사업에 선정돼 ‘임산식·약용버섯연구센터’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 사업비 50억 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을 통해 영덕군은 지품면 삼화리에 연구시설과 유량종균 배양시설, 버섯 시험재배시설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이 센터는 송이를 포함한 버섯 생산기술의 첨단화를 지향하며 ‘송이버섯 최대 생산지’ 영덕의 위상을 이어갈 중심 역할을 하게 된다.영덕군청 산림지원과장인 권오웅 씨는 “임산식·약용버섯연구센터의 유치는 영덕군이 ‘버섯 도시’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이버섯 채취로 적지 않은 수입을 올려온 영덕 농민들도 “송이버섯의 시장 확대와 관련 산업의 동반 성장, 농가 수입 증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연구센터의 건립을 반기고 있다. ◆ 많은 이들이 기다려 온 ‘2018 영덕 송이장터’지난해 펼쳐진 영덕 송이장터는 지역민과 방문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행사장을 찾은 군민들은 “영덕의 소득증대와 홍보에 이만한 역할을 한 것이 없다”고 입을 모았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송이버섯을 맛보고 구입한 관광객들은 “평소에는 먹기 힘든 송이가 소량으로 포장돼 판매되기에 우리도 그 풍미를 즐길 수 있었다”며 환하게 웃었다영덕군청은 매일 행사장을 찾아 철저한 관리를 통해 상거래 질서를 바로잡고, 송이의 등급과 품질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을 일소시켰다.송이와 함께 판매된 쇠고기, 오징어, 고추, 각종 과일도 영덕 생산농가의 소득을 높여줘 농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이와 관련해 영덕군청은 “앞으로도 장터 운영의 문제점을 개선해 우리 군에서 생산된 송이의 명품화와 산업화에 더욱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내놓은 바 있다.그 약속은 올해도 지켜진다. 오는 17일부터 시작돼 내달 21일까지 35일간 펼쳐질 ‘2018 영덕 송이장터’가 바로 그 현장이다.영덕읍 경동로에 위치한 영덕군민운동장과 ‘사랑해요 영덕휴게소’ 일원에서 진행될 이번 송이장터는 송이 직판장과 농·수·임산물 판매장이 열릴 직거래마당, 송이 불고기와 송이 칼국수 등을 맛볼 수 있는 먹거리마당, 송이차 시식과 송이 깎기 목공예 체험이 진행될 체험마당 등으로 구성됐다.보다 상세한 ‘2018 영덕 송이장터’ 관련 내용은 영덕군 홈페이지(http://www.yd.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행사에 대한 문의는 영덕군청 산림자원과(054-730-6315~6317)로 하면 된다. 이벤트성 축제 탈피해송이직판 실속 장터로 탈바꿈전국 최다 생산량은 물론, 맛과 향에서도 빼어난 송이를 생산하는 영덕군. 이를 관광객과 주민들에게 선보이는 ‘송이장터’는 영덕군이 진행하는 연중 가장 중요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생산자 직판을 통한 채취 농가의 소득 증대’와 ‘송이를 이용한 새로운 먹을거리의 개발과 보급’이란 목표 아래 펼쳐진 지난해 ‘송이장터’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실수와 미비점을 개선해 ‘송이장터’를 보다 내실 있는 축제로 성장시키려는 영덕군의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지난해 송이장터는 이벤트성 축제를 탈피한 송이 직판 중심의 실속행사,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직거래 장터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 영덕 송이버섯의 전국적 홍보 등을 슬로건으로 추진됐다.영덕군 산림자원과는 ‘2017 영덕 송이장터 운영 결과’를 데이터화 해 올해 펼쳐질 ‘2018 송이장터’가 진일보한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TV와 신문을 통한 적극적인 홍보, 송이장터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주변 환경 조성, 목재를 이용한 자연친화적 홍보물 설치, 송이 직거래 부스의 확대 등이 이미 전문가들의 논의 과정을 거쳐 구체화에 들어갔다. 특히 올해는 송이차와 송이빵, 송이 불고기 등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체험 부스가 더 많아진다.여기에 송이버섯과 함께 ‘영덕의 특산물’로 불릴 수 있는 다양한 농수산식품을 판매하는 장터도 세워질 예정이다.‘2018 영덕 송이장터’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땀 흘리고 있는 영덕군청 관계자들은 “올해 송이장터는 관 주도에서 벗어나 민간이 중심이 되는 주민참여형으로 진행될 것이고, 축제 기간 중에는 다채롭고 흥미로운 문화행사도 함께 진행될 것”이라며 “송이와 함께 향기로운 가을을 맞이하고 싶은 분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9-14

‘포항만의 꿈틀로’ 시작으로 문화·예술의 자생적 생태계 구축해야

글 싣는 순서 1. 밀라노 예술가들의 성지 ‘토르토나’의 탄생2. 이탈리아 넘어 세계 최고를 꿈꾸다 ‘슈퍼 스튜디오 그룹’3. ‘두마리 토끼 한 번에’ 순천 문화의 거리4.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에서 가능성을 보다5. 자생적 문화생태계 구축을 향해 가야할 길□ 예술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자생적 생태계 구축공업과 예술. 두 단어에서 연결고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그런데 놀랍게도 앞서 살펴본 국내외 사례에서 두 단어는 매우 핵심적인 요소로 평가받는다. 19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공업도시였던 밀라노는 현재 세계의 트렌드를 이끄는 문화예술도시로 완벽히 재탄생했다.전남지역 최대도시 중 하나인 순천도 인근 광양, 여수와 함께 중공업을 바탕으로 성장했지만 현재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문화예술지구인 문화의 거리가 정착과정에 있다.철강도시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어울리는 포항도 이러한 변화의 바람에 동참하려 하고 있다. 단순히 공업도시 이미지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목적만은 아니다.도심공동화로 활력을 잃은 원도심을 사람들이 다시 찾고싶은 장소로 만들고 더 나아가 이곳에서 새로운 먹거리산업을 창출해 도시발전과 인구증가라는 선순환적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한 목표가 되고 있다.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생적인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이탈리아 문화예술지구 ‘조나 토르토나’는 수십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자생적 생태계를 구축했다. 밀라노시의 지원에 의지하기 보다는 지구 내 입주한 예술가들이 직접 협회를 만들고 입주환경을 바꿨다. 유명예술가들이 앞장서서 실천적 행동을 보이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은 안심하고 이곳에 터를 잡기 시작했다. 저렴한 임대료와 장·단기로 설정 가능한 임대기간은 자본이 부족한 예술가들에게 커다란 메리트로 작용했다.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필두로 한 크고 작은 축제도 이곳 예술가들에게 긍정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전세계에서 밀라노를 찾은 수만명이 넘는 방문객들 앞에서 예술작품을 선보이며 자신을 어필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토르토나 내 최대 문화예술기업인 슈퍼 스튜디오 그룹(Super Studio Group) 지셀라 보리올리 대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심각한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폐허나 다름없었던 토르토나는 이제 이탈리아를 넘어 전세계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지구로 거듭났다”며 “열정을 지니고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으로 전진한다면 포항 꿈틀로도 성공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포항만의 브랜드 ‘꿈틀로’포항 꿈틀로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은 경관 위주의 물리적 재생보다 장소성이 가진 서사성을 살리고 주민 공동체가 자발적 중심이 된 사회적 재생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포항문화재단은 예술가와 기존 주민이 삶터로서의 관계성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먼저 예술가와 주민이 1:1 자매결연을 맺어 서로에게 필요한 도움을 나누며 공동체적 삶을 영위해 나가는 프로그램인 ‘문화품앗이’가 운영되고 있다. 구제옷가게, 소규모 양품점, 분식집, 세탁소 등 꿈틀로 내 영세상가 대부분은 제대로 된 간판이나 사람의 발길을 끄는 세련된 실내 인테리어를 갖추지 못했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영세상인을 위해 꿈틀로에 입주한 예술가들은 자신이 가진 재능을 통해 이색적인 간판을 만들어 주거나 실내 인테리어를 단장해 주면서 영업에 활력을 도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문화반상회’는 음식이라는 매개체가 가져다주는 소통과 연대의 효과에 착안해 주민과 입주예술가가 정기적으로 함께 밥을 먹으며 주민과 예술가의 문화간극을 좁히고 서로 소통하며 공동체 형성을 돕는 프로그램이다.이밖에 ‘철수와 목수’는 철공과 목공이라는 수단을 활용해 지역사회 자원활동가가 주민(상인)이 필요한 간판이나 생활용품을 만들어 주면서 꿈틀로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문화공작소 기능을 담당한다.예술가들이 자생력을 키워 스스로 꿈틀로의 경쟁력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브랜드를 개발하고 입주작가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예술가를 대상으로 전문가의 1:1 컨설팅을 통한 1작가 1콘텐츠를 개발해 예술가의 역량 강화와 참여도를 높이고 적극적인 활동 유도를 위한 평가 매뉴얼을 새롭게 구축할 예정이다. 또 꿈틀로만의 브랜드와 문화상품 개발을 위해 향후 맞춤형 교육과 추가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꿈틀로 축제 등 꿈틀로 자체 문화행사는 물론, 지역축제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지역의 문화특화 브랜드로 성장시켜 나갈 계획이다.숭숭 뚫린 빈 점포에 예술·창의성으로 공간재생예술가 역량강화 프로그램 통해 꿈틀로 자생력 키워예술가-주민 ‘문화 품앗이’ 통해 공동체 문화 창조이강덕 포항시장 인터뷰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사업이 본격화된지 벌써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짧은 시간이지만 꿈틀로 거리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꿈틀로 사업을 단순히 문화부흥사업을 넘어 도시재생사업으로 이끌고 있는 이강덕 포항문화재단 이사장과 사업에 대해 대화를 나눠봤다.- 꿈틀로 사업이 추진된 포항 상원동 일대는 몰락한 구도심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어떤 가능성을 봤는가.△꿈틀로는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3∼4집 건너 빈점포가 방치될 만큼 도심공동화가 심각한 곳이었다.가능성을 가지고 시작했다기보다는 원도심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정책적으로 시작한 사업이다.골목 일대 숭숭 구멍 뚫린 것처럼 비어있는 빈 점포에 예술가들을 불러들인다면 그들이 가진 창의성으로 공간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을 거란 계획이었다. 이미 도심공동화에 대한 대안으로 물리적인 투자방식보다는 예술가가 중심이 된 국내외 도시재생의 성과사례를 통해 봐왔기 때문에 예술과 사람중심의 공간재생이 보다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것이란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다.오히려 그 절박함이 희망의 가능성이 아니었나 싶다.- 꿈틀로 사업이 첫발을 내딛은 2016년부터 현재까지 어떠한 성과가 있었는지.△꿈틀로는 2016년 하반기에 21개팀의 입주작가가 공모를 통해 선정됐고 이들이 둥지를 틀면서 꿈틀로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17년 5월 공식 오픈을 했으니 본격적으로 운영된지는 이제 1년을 조금 넘겼다. 그동안 예산 등 여러 가지 조건적 한계로 인해 입주후 1년간은 작가들이 정착하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았고 지난해 말부터 꿈틀로 축제, 꿈틀로 미식여행 등 입주작가들이 자신의 창작활동을 기반으로 한 시민 커뮤니티 활동을 해오고 있다. 올해는 추가로 6개팀의 신규 입주작가들이 선정돼 회화, 공예, 스틸아트, 연극, 사진, 음악, 일러스트 등 총 27개팀의 다양한 장르의 창작활동과 꿈틀로를 알리는 대외활동을 해오면서 조금씩 거리에 활기를 보태고 있다. 덕분에 꿈틀로가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지는데 일조를 했고 타 지자체에서 벤치마킹을 오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국내외 문화예술지구 성공사례를 살펴보면 자생적인 생태계 마련이 중요한 원동력이 됐다. 꿈틀로가 자생적 생태계를 갖추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이 사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예술가들이 중심이었고 당연히 그들을 위한 지원과 자생력 강화가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사업을 추진하면서 깨달은 것은 꿈틀로의 자생력을 위해서는 작가들의 노력을 강요한다거나 ‘월 임대비를 지원했으니 나머지는 작가들이 알아서 하겠지’하는 작가 의존적 방식을 고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문화재단에서는 꿈틀로 입주작가들이 스스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도록 예술가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예술가들은 자신의 창작이 브랜드로 다듬어 지는 과정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더욱 완성도 높은 아트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이러한 결과물들이 꿈틀로의 자산이 되고 지역사회에 환류되는 선순환을 통해 꿈틀로의 자생적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라 믿고 있다. 또 꿈틀로는 입주 예술가들의 공간이기에 앞서 오랜시간 동안 거주한 주민들의 공간이다. 서로 생각과 관점이 상반되는 두 집단이 하나가 되어서 꿈틀로의 새로운 주민공동체로 거듭날 때 꿈틀로가 온전한 기반이 형성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꿈틀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어떠한 계획을 갖고 있는가.△앞서 언급했듯 꿈틀로는 우선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환경개선도 필요하지만, 입주작가와 주민이 단순히 공간의 점유자가 아닌 공간을 살려 나가는 주체자로 만드는 의식변화가 먼저 시작돼야 한다.현재 추진중인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의 주된 의제는 바로 그러한 주민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내부 커뮤니티 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입주작가가 주민에 먼저 다가가서 간판개선과 같은 실내환경 조성을 해주면 주민은 작가들의 활동 시 자원봉사라든가 음식제공을 통한 ‘문화품앗이’를 해주는 방식으로 공동체 문화를 쌓아 가는 것이다.‘내가 사는 공간은 내가 지킨다’는 공동체 의식은 꿈틀로의 성공적인 정착에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이외에도 꿈틀로가 가진 서사성, 즉 원도심이 가진 의미와 요소를 되살리는 내용을 더해 꿈틀로를 문화적 깊이가 느껴지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끝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8-09-11

낯선 곳으로 떠나는 설레임… 그곳에도 가을?

그 어떤 해보다 길고도 지루했으며 무더웠던 2018년 여름이 이제야 꼬리를 보이며 우리 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견디기 힘겨웠던 폭염과 동남아시아의 스콜처럼 예고 없이 쏟아 붓던 무시무시한 폭우. 그것들도 이제 곧 불어올 서늘한 가을바람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게 시간이고 세월이다.휴가를 즐기는 방식에도 변화가 왔다. 많은 이들이 피서를 떠나는 피크 시즌을 피해 ‘나 홀로 또는, 우리 식구만의 조용한 휴가’를 기다려온 독자들도 적지 않을 듯하다.최근의 여행 패턴을 고려해 9월에 떠나도 좋을 멋진 해외 휴가지 3곳을 소개한다. 1천 년 전 만들어진 사원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와트10세기를 전후해 인도차이나 반도의 지배로 군림했던 크메르왕조. “나는 신을 대신해 인간을 통치하는 지배자”로 스스로를 칭했던 왕들이 남긴 캄보디아 씨엠립의 사원들은 21세를 사는 우리들을 압도한다.‘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을 비롯해 할리우드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를 매혹한 ‘타 프롬’까지 사방 몇 km에 산재한 1천 년 전의 힌두교-불교 유적은 ‘인간과 세계는 어떻게 생성되고 소멸하는 것인지…’라는 본원적인 물음을 여행자에게 던져준다.그런 거창한 ‘철학적 기대’가 아니라도 좋다. 독일과 네덜란드, 프랑스와 스웨덴 등 유럽인들이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찾아오는 아시아의 대표적 유적지를 많은 비용 들이지 않고 둘러볼 수 있다는 건 한국 여행자들의 특권이라면 특권일 수도 있다.만약 캄보디아 씨엠립을 휴가지로 정했다면, 미학적 완성도에서 세계 최고라 불러도 좋은 사원들과 함께 아시아에서 2번째로 큰 호수인 톤레삽의 붉은 석양을 꼭 만나보라고 권한다.3시간 30분 남짓 짧은 시간에 전세기로 날아갈 수 있는 캄보디아는 요즘 한국인들에게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베트남, 라오스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수도는 프놈펜. 인구의 90%가 크메르족이다. 그들은 외국인을 환한 웃음과 친절로 대한다.겉으로는 ‘왕정국가’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정부 수반인 총리가 행사한다. 그의 이름은 캄보디아인민당(CPP)의 지도자 훈센(Hun Sen).화폐 단위는 리엘(Riel)인데, 여행지에선 달러가 자국 화폐처럼 사용된다. 가벼운 식사 한 끼는 1~2달러 이내에서 해결이 가능하다.1975년부터 1979년 사이에 프랑스에서 유학한 사회주의자 청년 폴 포트 등이 주도한 대학살 ‘킬링필드(Killing Fields)’는 영화와 소설 등으로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하다. 그 역사적 상처를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건 이 나라를 여행하는 또 다른 ‘목적’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앙코르와트와 톤레삽 호수가 자리한 씨엠립엔 ‘캄보디아의 미래’라 불러도 좋을 청년들이 흔하다. 그들을 만난다면 마음을 터놓고 친구가 되려 노력해보자. 낭만과 함께라면 ‘더위’ 속에서도 행복하지 않을까* ‘열대의 섬’ 일본 오키나와고전 소설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율도국(栗島國)은 실제로 존재했을까?일본 본토보다 타이완에서 더 가까운 오키나와를 “홍길동이 자신을 따르던 무리를 이끌고 가서 세운 나라”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오키나와는 일본과 중국 건축 양식이 묘하게 결합된 궁성과 미국과 일본 문화가 뒤섞인 요리가 매력적인 휴양지다.조그만 해수욕장들은 깨끗하게 정돈돼 있고, 식당과 카페에선 전형적인 ‘일본식 친절’을 만나게 된다.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한국의 1970~80년대 풍경과 유사한 바다와 산이 관광객을 유혹한다. 정겹다. 중심가라 할 국제거리의 휘황한 네온사인과 흥청거림은 한국의 홍대거리와 비슷하다. 연인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지만, 아기자기한 선물을 쇼핑하고 예쁜 찻집에서 향기로운 차를 마시고 싶은 여자 친구끼리의 여행에도 최적지.오키나와는 세계 제2차대전 이후 지속적인 성장일로를 달려 만만치 않은 경제력을 갖추며 국제사회에서의 지위를 확고히 한 일본이 자랑하는 휴양지다.미국과 유럽 사람들은 물론, 최근에는 중국 관광객도 많이 몰려들고 있다. 일본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2개의 축으로 운행되는 나라지만, 오키나와에선 인간적인 정과 의리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일본 풍속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토속적인 매력이 방문자를 매혹한다.통상 일본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선회와 초밥도 맛있지만, 오래 전부터 주둔한 미국 군대의 영향 때문인지 오키나와의 스테이크도 일품이다.일본 쇠고기가 가진 풍미를 맛보고 싶다면 조금 부담스럽더라도 레스토랑 웨이터에게 “여기 잘 익힌 스테이크 하나 주세요”라고 청해보길 권한다.여기에 정보 하나 더. 오키나와는 ‘아름다운 여배우와 가수가 많이 배출된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고적한 풍광 속 동유럽 낯선 공간에서 맛보는 적요함* 마케도니아 작은 마을 오흐리드조금 긴 기간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고, 비교적 넉넉한 예산이 준비됐다면 알렉산더 대왕(Alexandros the Great)이 태어난 나라 마케도니아로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마케도니아는 인구 200만 명 정도의 조그만 나라지만, 멋진 호수가 여행자를 반기는 도시 오흐리드는 유럽의 어떤 관광지보다 매력이 가득한 공간이다.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지점에 위치했기에 다양하고 이색적인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건 ‘맛집 순례’를 좋아하는 요즘 세대들의 취향에도 맞는다.해질 무렵, 호숫가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백조와 함께 물속으로 사라지는 태양을 바라보는 건 두말 할 것 없이 낭만적인 체험이 될 것이다. 여기에 비극적 역사 속에서도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은 발칸반도 사람들과 맥주 한 잔 기울이는 건 늦은 휴가가 주는 덤이다. 쓸쓸하고 고적한 풍광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마케도니아는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 내륙 중앙에 위치한 나라. 북쪽으론 코소보, 동쪽으로는 불가리아, 남쪽으론 그리스와 국경이 닿아 있다. 마케도니아정교를 믿는 이들이 대다수지만 이슬람교도도 적지 않다. 소수의 가톨릭교도도 존재하는데,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인도에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생애를 바친 테레사 수녀. 그녀는 알바니아계 마케도니아인이다. 최소 400만 년 전에 생겨난 맑고 투명한 물빛의 오흐리드 호수는 마케도니아 전통문화와 이슬람문화가 어우러진 스코페의 ‘올드 타운’과 함께 이 나라의 대표적인 여행지.한국에서 마케도니아로 가는 배낭여행자들은 터키 이스탄불에서 출발하는 야간열차를 타고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로 입국해, 거기서 마케도니아 국경을 넘는 국제버스를 탄다. 하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관광객이라면 오스트리아 비엔나 혹은, 프랑스 파리에서 오흐리드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도 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9-07

사람 떠난 잿빛 거리에 ‘문화예술의 새싹’ 움틔우다

□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의 시작1980∼90년대 포항에 거주했던 사람이라면 대부분 아카데미극장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시절 포항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곳 주변을 설명할 때 “옛날에 아카데미극장 있던 곳”이라는 부연은 다른 어떤 표현보다 쉽게 와닿는다.2017년 전국공모 통해 오랫동안 비어있던 점포에임대료 등 지원받은 예술가 21개팀 둥지 틀어올 3월 ‘문화적 도시재생사업’ 선정, 총 27개팀 입주민간전문기구 ‘포항문화재단’ 으로 사업 이관거리축제·문화장터·시민커뮤니티 프로그램 등다양한 행사 개최, 도심문화 앵커공간 조성 박차글 싣는 순서1. 밀라노 예술가들의 성지 ‘토르토나’의 탄생2. 이탈리아 넘어 세계 최고를 꿈꾸다 ‘슈퍼 스튜디오 그룹’3. ‘두마리 토끼 한 번에’ 순천 문화의 거리4.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에서 가능성을 보다5. 자생적 문화생태계 구축을 향해 가야할 길지난 1979년 포항시 북구 여천동에 문을 연 포항 아카데미극장은 이후 20여년간 포항극장, 시민극장, 가고파극장, 명보극장과 함께 포항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책임졌다. 특히 이중에서도 아카데미극장은 598석으로 포항극장(518석), 시민극장(400석) 등을 제치고 지역에서 가장 많은 관객이 동시에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극장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그런데 지난 2003년 포항지역 최초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메가라인(현 CGV 북포항)이 등장하면서 급격한 변화의 시기가 찾아왔다.최고급시설의 대형 스크린 8개를 보유한 메가라인은 관객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고 경쟁에서 밀린 단관들은 하루 입장관객이 10여명으로까지 줄어들며 사실상 괴사 수준에 이르렀다.포항극장, 시민극장 등 경쟁업체들의 줄폐업 속에서 입장료 대폭할인, 예술영화관 지정 등 자구책을 찾아나섰던 아카데미극장도 끝내 버티지 영업난을 못하고 2003년 9월 문을 닫았다. 이후 이곳은 대형주점, 성인 나이트클럽 등으로 10여년간 활용되다 4년전 옛건물을 허물고 32세대 규모 나홀로아파트가 새롭게 들어섰다.사라진 것은 극장만이 아니었다. 상가, 음식점, 주점 등 극장 주변에 형성된 상권이 극장폐업 후 불과 4∼5년 새 급격히 무너졌다.상인들은 대부분 이 곳을 떠났고 거리는 빈점포들로 가득했다.그런데 최근들어 폐허로 변해버린 이곳에 다시 희망의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포항시가 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주무대로 이곳을 낙점한 것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포항시는 지난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문화도시 조성 시범사업에 선정돼 국비 15억원, 도비 6억7천만원, 시비 15억8천만원 등 총 37억5천만원의 예산을 확보했다.이를 바탕으로 2016년부터 옛 아카데미극장 일대 중앙로 거리를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로 명명하고 사업에 본격 돌입했다. □ 문화적 도시재생사업 선정으로 사업 박차꿈틀로는 시민공모를 통해 정해진 공식 명칭으로 ‘꿈틀꿈틀’이라는 생기 있는 움직임과 ‘꿈의 틀’이란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포항시는 꿈틀로 주변의 오랫동안 비어있던 점포를 활용,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공간으로 만들었다.지난 2017년 11월 전국공모를 통해 회화, 공예,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21개팀이 빈 건물에 입주했다.입주가 확정된 예술가들에게는 매월 30만원의 임대료와 간판지원비를 지원하며 이외의 비용은 예술가들이 직접 부담케 했다.2018년에도 6개팀이 신규작가를 추가로 공모·선정해 현재 27개팀의 예술가가 꿈틀로에 입주해 있으며 그림책 마을, 꿈틀로 갤러리, 꿈틀로 운영지원센터 등 문화공간도 마련돼 있다.입주예술가들이 중심이 되어 꿈틀로는 다양한 예술체험 및 교육의 장으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자전거 톱니바퀴를 모양의 입체벽화와 포항북부경찰서 중앙파출소 건물을 활용한 부엉이파출소 등 스토리가 있는 독특한 조형물들이 거리 곳곳에 설치돼 꿈틀로의 상징성을 담아내는 스토리텔링 포토존으로 변신했다.이러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지난 3월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인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에 꿈틀로가 선정되면서 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됐다.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은 도시 공간을 문화적으로 활용해 침체된 도심과 공동체의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한 사업이다.포항시를 비롯해 충남 천안시, 전북 군산시, 부산 영도구 등 4곳이 사업지로 선정됐다.꿈틀로는 꿈틀 문화공작소인 ‘철수와 목수’와 꿈틀 시민 디자인 팅킹(Design Thingking) 스쿨, 꿈틀 예술자판기, 꿈틀로 문화카페 ‘청포도 다방’ 조성 등 지역의 아이덴티티를 바탕으로 주민·시민과 예술가가 중심이 되는 공유가치를 살린 차별적 프로그램을 제시해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포항시는 이번 사업 선정으로 국비 8천만원을 지원받아 올해 1년간 총사업비 2억5천만원으로 도시재생 뉴딜사업과 연계한 꿈틀로의 장소성 회복과 커뮤니티 활동, 장소디자인 구축 사업을 펼치고 있다.문화적 도시재생사업 대상지로 선정됨에 따라 전문가 현장실사와 컨설팅을 통해 꿈틀로의 현황과 문제점을 진단하고 사업의 실효성을 위한 예술가, 상인, 건물주 등 사업관련 주체들과의 거버넌스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꿈틀로의 경우 현재까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이지만 타지역 사례를 살펴보면 공간재생사업을 시작으로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예술가와 주민이 해당 지역 밖으로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흔히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포항시는 사업시작 당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예방책으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포항지회, 건물주, 예술가간 공동 협약을 맺기도 했다.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들 협의체간 지속적인 관계형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 예술가들만의 공간이 아닌 시민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포항시는 지난 5월부터 문화도시 조성사업을 (재)포항문화재단으로 이관했다.지난 2017년 2월 문화중심도시 도약을 목표로 출범한 포항문화재단은 1년여 동안 활동을 거쳐 민간전문기구로 잡으며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사업 이관으로 포항시 공무원 중심에서 전문가 중심의 민간주도형으로 추진주체가 달라지면서 효율적인 사업추진이 기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포항문화재단은 문화도시TF팀을 새롭게 구성하고 그동안의 사업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사업의 완성도를 높일 새로운 밑그림 구상을 마쳤다.특히 꿈틀로에 대해서는 전략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먼저 한국예총 포항지회와 함께 꿈틀로에서 거리축제를 열어 예술가들이 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 지난 7월 6∼7일에는 꿈틀로 작가와 시민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여름날의 소소한 축제’가 열렸다.축제에는 꿈틀로 예술가 18개팀이 참여하는 시민 예술체험을 비롯해 △아트마켓 △아틀리에 라면 토크 △작은음악회 △기획사진전 △캐리커처 그리기 △페이스 페인팅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또 도시재생 마을공동사업인 문화장터 ‘꿈짱’이 함께 열려 예술가들이 직접 제작한 아트상품을 전시·판매하고 즉석에서 캐리커처 그려주기와 예술체험 등을 진행해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가을에 접어든 지난 1일부터 2일까지는 꿈틀로 입주예술가들이 마련한 시민커뮤니티 프로그램 ‘꿈틀로 예술산책’이 열렸다. 이번 행사는 예술체험, 아트마켓, 캐리커처 그리기, 페이스페인팅, 아틀리에 팥빙수 토크, 꿈틀로 작가전 및 작가전 경매, 작은 음악회 등 다채로운 예술행사가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아틀리에 팥빙수 토크에서는 지역 유명예술가인 박수철 화백이 시민들과 함께 팥빙수를 나눠먹으며 그의 작품세계에 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꿈틀로 작가전 출품작 경매에서는 꿈틀로 작가들이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준비한 행사로, 시민들은 예술가들이 그동안 작업한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하고, 경매를 통해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포항문화재단은 앞으로 꿈틀로에서 정기적으로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커뮤니티프로그램을 마련해 꿈틀로를 시민이 즐겨 찾는 도심 문화 앵커공간으로 조성해나갈 계획이다.황상해 포항문화재단 문화도시TF팀장은 “꿈틀로는 포항시와 지역 전문가, 시민들이 함께 참여해 탄생한 공간이다”며 “성공적인 도시재생의 모델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참여자 간의 협업과 소통, 이를 지원하는 행정지원체계, 전문가의 컨설팅 등 다각적인 거버넌스 구축과 지역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전했다./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2018-09-04

일자리 걱정없고 이웃과 함께하는 ‘감동 경북’ 만든다

경북도가 민선 7기 비전과 목표에 대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담은 ‘도정 운영 4개년 계획’을 확정했다.이철우 경북도지사는 3일 도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자리, 4차 산업혁명 선도, 관광, 이웃사촌 복지, 소득 걱정 없는 농촌, 365일 안전, 사통팔달 교통망, 자긍심이 높아지는 감동 경북 등 경북발전 8대 분야 100대 과제를 발표했다. 기업과 관광 서비스, 스마트 농업, 건설, 사회적 경제 등을 중심으로 임기 안에 좋은 일자리 10만 개를 만들고 이를 위해 투자유치 20조원, 농업 수출 7억 달러, 내국인 관광객 2천만 명, 외국인 관광객 200만 명 시대를 연다는 구상이다. 도는 이를 위해 2020년까지 4년 동안 13조5천억원(국비 9조1천억원, 도비 1조 1천억원, 시·군비 1조7천억원, 기타 1조6천억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민선7기 경북도 슬로건 ‘새바람 행복경북’경북도는 민선 7기 새로운 슬로건을 ‘새바람 행복경북’으로 확정해 발표했다. 도민, 공무원 등을 상대로 공모해 접수된 534건 가운데 전문가 자문과 선호도 조사를 거쳐 정했다.도는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의 새바람을 일으켜 도민 모두가 행복한 경북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이를 위한 도정 4대 목표로 △일터 넘치는 부자 경북 △아이 행복한 젊은 경북 △세계로 열린 관광 경북 △이웃과 함께 복지 경북으로 설정했다.첫 번째 도정목표인 ‘일터 넘치는 부자경북’은 일자리야말로 최고의 복지라 인식하고 도정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 단순한 기업 유치뿐만 아니라 권역별 신산업을 육성하고 기업의 과감한 투자를 촉진한다. 중소기업의 성장사다리를 구축해 고용효과도 높인다. 청년벤처, 청년농부, 청년상인 육성으로 청년의 꿈을 실현하는 등 모든 분야에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두 번째 ‘아이 행복한 젊은 경북’은 지방소멸 위기에 처한 경북의 현실을 직시하고 아이가 많아지는 활력 넘치는 경북을 목표로 경북형 온종일 돌봄시스템, 출생에 대한 인식변화 유도 등 전방위적인 출산지원정책을 펼쳐나가겠다는 의지를 담겨있다.세 번째 ‘세계로 열린 관광경북’은 수많은 문화자원을 간직하고도 관광객을 불러들이지 못하는 현실을 반드시 타개하겠다는 의지에서 채택된 것으로 보인다. 관광컨트롤타워인 문화관광공사를 설립하고 공격적인 마케팅과 세일즈를 통해 관광경북의 명성을 되찾겠다는 것이다.마지막 ‘이웃과 함께 복지경북’은 더불어 함께하는 공동체 복지실현을 목표로 공동체를 통해 함께하는 복지체계를 구축하고 계층별 맞춤형 복지기반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공동체 기반 복지정책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의미다.□ 4대 목표 달성 위한 8대 핵심 분야 100대 과제경북도의 도정 방향의 핵심은 일자리와 아이, 관광과 농촌이다. 경북 발전을 위한 8대 핵심 분야에는 일자리, 신성장 산업, 문화관광, 복지, 농산어업, 안전, SOC, 상생협력과 정체성 분야가 있다.이들 8대 분야 100대 과제를 살펴보면 우선, 일자리 분야는 안정적인 좋은 일자리 10만개 창출과 투자유치 20조원 달성을 중점 추진 방향으로 설정하고 △일자리창출 컨트롤타워 및 거버넌스 구축 △산업단지 리노베이션을 통한 경쟁력 향상 △청년일자리 종합지원시스템 구축 △취약계층 맞춤형일자리 창출 등 12개의 실행과제가 있다.신성장 산업 분야에서는 권역별 신산업융합 클러스터 조성과 경북의 강점을 활용한 미래 먹거리 마련, 전문기관 설립과 인재 양성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중점 추진 방향으로 설정하고 △4차 산업혁명 지원전담기관 설립과 핵심인재 양성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 산업생태계 △인공지능 거점센터 △해외석학·과학기술인·기업가 협의체 △강소형 연구개발특구 △북부권 생명바이오·신소재벨트 △남부권 첨단소재클러스터 △서부권 ICT 프론티어 벨트 △동해안권 융합에너지 클러스터 등 18개 과제를 설정했다.문화관광 분야에서는 △문화관광공사 설립과 관광기금 1천억원 조성 △천년고도 경주 본모습 재현 △경북 산야·아시아 알프스 프로젝트 △낙동강 글로벌 문화관광 거점화 △스마트 문화관광인프라 △해양관광레포츠벨트 △환동해 마리나 루트 등 12개 과제다.복지 분야에서는 △지방소멸 극복 모델 이웃사촌 시범마을 △민간·국공립 차별 없는 경북형 보육환경 △경북형 온종일 돌봄 체계 △초·중·고 의무급식 확대 △장애인 복지공동체 △찾아가는 3대 의료서비스 △경로당 중심 이웃사촌 복지공동체 △다자녀가정 행복더하기 등 13개 과제가 반영됐다.농산어업 분야에서는 △농식품 유통전담기관 △경북형 농업복지모델 △스마트팜 혁신밸리 △청년창농 및 미래농업인재 육성 △6차 산업화 전진기지 구축 △경북형 두레공동체 △경북형 생태복지축산단지 △임산물 6차 산업화단지 △풍요로운 어장, 살맛나는 어촌 만들기 등 15개 과제가 제시됐다. 이밖에도 안전 분야 7개 과제, SOC 분야 16개 과제, 상생협력과 정체성 분야에 7개 과제가 계획에 반영됐다.100대 과제 실천을 위한 세부 사업은 277개로 이 가운데 신규 119개, 기존사업 확대 88개, 기존사업 보완 70개다. □ 도정 투명 공개… 일·성과 중심으로 조직 운영경북도는 모든 도정시책을 도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도 소유의 각종 시설을 도민에게 개방하는 열린 도정을 펼치기로 했다. 이미 도지사실을 개방한 것을 필두로 모든 도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도민과의 소통시스템도 획기적으로 보강할 방침이다.온라인을 통해서는 ‘경북은 지금’이라는 도정 라이브 방송을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한편, 도민과 함께하는 공감토크쇼를 정례화한다. 경북도 홈페이지에는 도민들의 민원을 청취하고 도지사가 직접 답변하는 ‘도지사에게 쓴소리!’라는 코너를 운영해 도민들로부터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또 출자·출연기관이 30여 개로 너무 많다는 지적에 따라 신규 설립을 지양하고 기존 기관 간 연계체계, 경영혁신을 강화하기로 했다. 재정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일에도 적극 나선다. 세출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소모성 경비는 과감하게 감축해 나간다. 공직문화도 확 바꾼다. 일과 성과 중심으로 조직과 인사를 운영하고 부서 간 칸막이를 없애고, 도와 시·군간의 협력시스템도 제도적으로 강화한다.이철우 지사는 “도전과 변화의 새바람을 주도해 도민 모두가 행복한 경북을 만드는 것이 민선7기에 부여된 시대적 과제로 보고 전 공직자가 변화의 중심에 서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북도정 4개년 계획… 톡톡 튀는 기발한 시책들경북도의 민선7기 도정운영 계획에는 톡톡 튀는 이색 정책들도 여럿 제시됐다.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이 ‘세계 드론 축구대회’다. 경북 드론축구단 창단해 경북형 드론 축구규칙을 마련하고 세계적인 드론 기업들을 대거 초청해 온다면, 드론산업 육성에도 크게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테크노파크(TP)하면 신산업과 벤처기업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경북이 농업테크노파크를 만들겠다고 한다. 농업도 과학이란 인식에서 나온 발상이다. 경북도는 경북농업기술원 이전지 부근에 ‘농업TP’농산업 과학시범단지를 조성해 농업을 첨단과학과 접목해 나가겠다는 것인데, 그 시도가 벌써부터 주목된다.경북도는 미혼남녀의 짝을 찾아주는 일에도 발 벗고 나선다. 바로 ‘내짝은 어디에, 미혼남녀 대축제’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도와 시군은 물론, 학교, 기업, 공공기관 등이 대대적으로 참여한다. 미혼남녀의 고민도 듣고 그들끼리 소통하는 기회도 준다. 얼마나 많은 미혼남녀가 참여할지, 또 짝은 얼마나 맺어질지 기대된다.또 관광에 청년을 끌어들이는 시책도 나왔다. 바로 ‘경북청년관광콘텐츠랩’이다. 문화관광에 일가견이 있는 청년 PD들을 선발해 경북의 비인기 관광콘텐츠를 초기화해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시책이다.그리고 ‘경로당 행복도우미’도 눈길을 끈다. 경로당 두 곳마다 한명씩의 행복도우미를 배치해 경로당을 단순히 쉬는 곳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즐기고 배우는, 동시에 일감까지 찾아주는 그런 행복공간으로 만들고, 행복도우미라는 새로운 일자리도 만드는 일석이조의 시책이다.‘경상북도 사회적 경제 실리콘밸리’도 신선한 아이디어다. 사회적 기업들이 한곳으로 모이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이곳에 금융과 교육 등을 집적화하는 한편, 1천명에 달하는 사회적 경제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것이다.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해 지역 화폐를 만들어 경북사랑상품권과 연계, 수수료 없이 스마트폰으로 도내 어디서든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경북 GB페이’. 도지사와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고 조언도 구하는 ‘도지사와 한 끼’ 프로그램 등 기발한 아이디어도 나왔다. /손병현기자 why@kbmaeil.com

2018-09-04

국내 유일 곤충 페로몬 제품 보유, 맞춤형 해충방제기술 전파

“경북 북부권 청년창업지원센터의 지원 덕분에 사업 초기 일찍 자리를 잡았고, 창업 1년 만에 12억원의 매출을 달성 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 됐습니다.” 새로운 창업에 대한 수많은 정부의 지원과 정책들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지만, 신규 창업에서 살아남는 창업주는 극히 드물다. 10명 중 한두 명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극악의 성공률을 보이는 창업, 그러한 창업 전선에서 창업 1년 만에 500%의 급성장을 이룬 (주)에이디 권기봉(35) 대표를 만나 청년창업의 성공담을 들어봤다.- (주)에이디의 간단한 소개해 달라△(주)에이디는 곤충 페로몬을 이용한 친환경 해충 방제 전문회사로 현재까지 곤충 페로몬 관련 자체 기술과 제품을 보유한 국내 유일한 회사이다. 곤충 페로몬 및 물질 합성 기술, 곤충 페로몬 루어 및 트랩 개발, 개발 제품의 현장 적용 등 최적의 기반을 갖추고 있다. 안동대 화학과 출신 청년 5명이 모여 지난해 6월 초기 자본 2천만원으로 창업. 사업 시작 약 6개월 만에 2억원의 매출 기록했고, 현재까지 1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고 올해까지 총 12억원의 매출 달성을 앞두고 있다.- 어떤 계기로 곤충 페로몬 사업을 하게 됐는지△지역에서 중·고등학교에 이어 안동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처음 취업한 곳이 곤충 페로몬을 이용한 친환경 농업 해충 방제 회사였다. 그곳에서 곤충 페로몬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당시 국내 곤충 페로몬 관련 회사 대부분이 페로몬을 분석해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 수입해 포장재만 바꾸는 식으로 판매를 하는 실정이었다. 해외에서 생산한 곤충 페로몬 제품의 경우 국내 곤충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아 국내에선 그만큼 방제 효과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국내 곤충 페로몬의 정확한 화학식을 분석해 국산화된 제품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방제 효과가 크게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 그 기대감은 적중했고, 국내 곤충 페로몬 관련 자제 기술 제품을 보유한 국내 유일한 회사가 됐다. - 곤충 페로몬은 무엇이며, 국내외 시장 규모는△곤충 페로몬의 사전적 의미는 곤충이 몸 밖으로 분비해 같은 종류의 다른 곤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화학 물질이다. 즉 곤충의 종(種)내에서 의사 교환이나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체내에서 합성해 냄새로서 이동, 먹기 찾기, 짝짓기, 알 낳기 등을 위해 대기 중으로 방출하는 것이다.이런 곤충 페로몬을 이용, 농작물과 산림에 유해한 곤충을 유인해 포획하는 ‘곤충 페로몬 제품 시장’의 전 세계 규모는 현재 1조5천746억원에 이른다. 북중앙아메리카가 9천908억, 유럽 2천900억, 아시아 1천10억, 오세아니아 820억, 남아메리카 670억원 순이다. 하지만 국내 시장은 80억원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제4차 친환경 농업 육성 5개년 계획을 통해 친환경 농업 육성정책이 추진하고 있어 시장 규모는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농림축산식품부의 국내 친환경 페로몬 제품 지원 사업 분석에 따르면 유기농과 무농약 등의 친환경 농산물의 시장규모가 지속해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고 그 사업 규모도 매년 증가해 2020년에는 193억원, 2024년에는 726억원대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최근 정부는 내년 1월부터 농산물에서 ‘등록되지 않은’ 농약이 0.01ppm 이상 검출되면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분류됨에 따라 잔류 농약 걱정이 없는 곤충 페로몬 친환경 해충 방제가 크게 주목받고 있다.- 창업 초기 힘들었던 점과 어떻게 극복했는지△창업 초기 페로몬 국내 기술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나를 비롯한 전 직원 전원이 연구원으로 시제품을 만들어 유통하기까지의 과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 제품 판매에 앞서 특허 등록·출원, 디자인 등록 등 막대한 초기 자본도 필요했다. 그러던 중 경북 북부권 청년창업지원센터로부터 창업초기 시제품을 개발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또 제품 특허 등록·출원, 디자인 등록 등에 대한 재정적 지원에서도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우리 사업과 관련된 기관들과 네트워크 형성을 할 수 있어 제품 개발 후 유통경로 확보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를 통해 낸 특허를 담보로 특허기술보증기금에서 저금리 대출을 받아 사업을 운영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현재까지 특허등록 5건(국내 3건, 중국 1건, 일본 1건), 특허출원 1건, 디자인등록 4건, 유기농업자재공시 4건의 지적재산을 갖출 수 있었다. 또 농촌진흥청과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의 연구 과제에 선정돼 지원을 받게 됐다. - 현재 판매하고 있는 제품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소나무재선충병 매개 하늘소를 친환경적으로 유인·포획하는 트랩을 비롯해 농작물에 매우 심각한 피해를 주는 노린재를 유인·포획하는 트랩, 성페로몬을 이용해 나방류의 교미를 교란하는 제품과 예찰 트랩, 골프장과 그 밖의 잔디밭에 피해를 주는 풍뎅이류를 포획하는 트랩 등 다양한 제품이 있다. 그중 노린재 트랩의 경우 최근 국내 농업 대표기업인 팜한농과 연간 7억6천만원 규모의 제품 계약을 체결했다. 또 경북능금농협 판매처에 나방류 교미 교란제와 예찰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현재 경북 도내 소나무 숲은 재선충에 시달리고 있다. 제품 중 소나무재선충병 매개 하늘소 유인·포획 트랩이 있던 데 어떤 제품인가△‘소나무 에이즈’라고 불리는 소나무재선충병은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를 잡아야 해결할 수 있다. 솔수염하늘소는 4월에 부화해 건강한 소나무를 갉아먹으면서 소나무재선충을 감염시키고, 가을철 나무껍질에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이런 하늘소 포획에 최적화된 유인 물질(페로몬, 카이로몬)구성과 산림환경에 적합한 유인제 방출기, 매개 하늘소 포획 전용 트랩으로 갖춰져 매우 우수한 유인 포획력을 자랑하는 제품이다. 특히 강력한 유인제의 시기별 복합적 역할로 윤인해 매개충 우화후부터 시작해 후식·교미·산란시기까지 전 기간에 걸쳐 유인한다. 현재 정부에서는 항공방제와 나무주사를 이용한 예방에 나서고 있다. 방제의 경우에는 꿀벌과 같은 좋은 곤충들도 함께 죽일 수 있고 소나무 근처에서 자라는 송이버섯에 잔류할 수 있다. 나무주사의 경우에는 나무에 구멍을 뚫어 약제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주사를 맞은 소나무의 경우 침입하는 선충의 번식을 막음과 동시에 잎이나 줄기를 갉아먹은 솔수염하늘소의 수명을 절반 이상 줄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감염 시기를 늦출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이 때문에 매개충인 하늘소를 포획할 수 있는 이 제품을 함께 써야 소나무재선충병의 원천 차단이 가능하다. 이 제품의 경우, 산림청에 검증을 받아 국제방제메뉴얼에 등록된 제품이다.- 진행 중인 사업과 신제품 개발 상황은△최근 농촌진흥청이 12억원을 들여 3년간 해외에서 들어오는 해충을 유인하는 페로몬과 트랩 개발에 대한 연구과제에 참여하게 됐다. 이를 통해 3년간 약 2억여 원의 연구과제비를 확보했다. 또 단독으로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에서 1억8천만원을 들여 2년간 노린재 유인을 위해 빛과 페로몬을 연구하는 사업에도 선정됐다. 이는 빛에 대한 노린재류 반응을 규명하고 트랩 형태 및 구성, 후각 및 시각 기반 친환경 노린재 전용 유인등 개발하는 사업이다.이밖에도 담배나방과 담배거세미나방 2종에 대한 교미 교란제, 노린재류 기피제를 연구·개발하고 있다. 페로몬을 활용한 친환경 해충 방제 외에도 시장 흐름과 소비자들의 충족에 맞춘 모기류 기피제와 바퀴벌레 트랩, 진드기 트랩도 개발했다.- 창업에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무모하고 즉흥적인 도전보다는 사전에 경험을 쌓으면서 착실하게 준비를 한 뒤 창업 전선에 뛰어들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도 역시 학교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취직해 7년간 경험을 쌓았다. 그곳에서 창업 아이템을 찾았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다.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고 거기에 미치지 않고서는 성공의 길에 가까이 갈 수 없다.‘곤충 페로몬’이라는 것이 지역 농가에서는 다소 생소하겠지만 이미 해외에서는 큰 규모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 국내 시장 자체가 크지 않아 해외 제품이 고가에 팔리고 있고 해외 환경에 맞춘 제품이다 보니 국내 해충에는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곤충 페로몬 제품 자체의 신뢰성을 떨어트려 농가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여기에서 착안해 곤충 페로몬 국산화에 성공한 (주)에이디는 안동에 위치하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남도를 비롯해 성남시, 용인시, 경북산림환경연구원 등과 함께 다양한 사업도 추진 중이다. 앞으로는 경북도를 비롯해 안동지역 농민들과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안동/손병현기자 why@kbmaeil.com

2018-09-03

사랑·질투·권력… 저마다 찬란한 꽃 같았던 1천년 전 여인들의 삶

영화 ‘이유 없는 반항’과 ‘에덴의 동쪽’ 주연배우로 잘 알려진 제임스 딘(James Dean·1931~1955). 겨우 스물네 살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그가 다음과 같은 근사한 말을 남겼다는 걸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하고자 하는 건 인간이란 존재만의 특징이다.”다분히 철학적인 문장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제임스 딘이 지적한 바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내야 하는 것일까?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조언한다.“과거를 통해 현재를 인식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우리의 오늘을 보다 명확하게 해석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다.”아득한 옛날 존재했던 왕국 신라. “그 시절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란 단순하고 소박한 질문에서 이 기획기사는 출발했다.여성의 삶을 탐구하는 건 인간보편의 삶을 학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믿음 또한 있었다.그랬다. 10세기 저편 신라 시대 사람들의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빛과 그림자, 꿈과 환멸이 궁금했다. 하지만 이것들 모두를 짧은 지면에 다 담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신라의 여인들’에 포커스를 집중해 보편적 신라인(人)의 삶을 조명하는 방식을 택한 것은 그 때문이다.기사를 연재하며 신라 시대 여성의 지위와 사회활동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높았고 활발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현상·해석학적 교육연구’에 실린 하현진의 논문 ‘화랑세기에 나타난 신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활동’에서의 서술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런 대목이다.“유교적 여성관이 강조되기 이전 한국 고대 사회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사회적 지위가 높았고, 공적인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는 물론 그 후대인 고려나 조선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여왕이 세 명이나 등장한다. 또한 여성이 남성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정치 분야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 여왕 이상의 정치적 실권 가진 여성도 존재했던 신라사실이 그랬다. 신라는 이 땅에 존재했던 어떤 왕조국가에도 없었던 여성 최고 통치자가 3명이나 있었다.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이 바로 그들.탁월한 미학관을 갖춘 선덕여왕은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당대 남성 엔지니어들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줬다. 진덕여왕 역시 실질적 군사 지휘권을 장악하고 있던 김유신을 왕궁으로 불러 호통을 칠 정도로 드높은 기개를 가진 여성이었다. 진성여왕은 ‘무능력’과 ‘성적 타락’이라는 학계의 공격을 받고 있지만, 재위 기간에 보여준 ‘백성에 대한 애정’과 ‘사리사욕 없음’은 재평가 받아야 할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비단 여왕들만이 아니다. 신라 역사에는 왕과 어깨를 견줄만한 정치권력을 행사한 여성도 등장한다. 바로 ‘미실’이다. 아래는 이와 관련된 하현진의 논문 중 한 대목.“신라는 개방적인 성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남녀 관계는 쌍방향적이고 호혜적이었다. 미실은 색공(色供)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단계적으로 상승시켰고 정치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왕의 즉위와 폐위에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이처럼 여성이 왕이 될 수도 있었고, 여성 정치실력자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신라 사회가 여성과 남성을 동등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신라의 여성들은 남성과 평등한 인격체로 존중받았고, 남성보다 더 많은 권력을 지니기도 했던 것이다.”신라의 여인들이 정치 분야에서만 두각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고전문학 연구자들로부터 신라 시대 대표적 시가로 평가받는 ‘헌화가(獻花歌)’와 ‘해가(海歌)’의 주인공인 수로부인은 그 미모가 전설 속 짐승인 용까지 유혹할 정도로 빼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우리 고대문학에 비밀스런 상상력의 숨결을 불어넣은 매력적인 여성임에 분명하다.‘화랑의 전신’으로 불리는 원화(源花)를 주도했던 두 여성 준정과 남모의 이야기도 여러 가지 함의를 담고 있기에 흥미롭다. 준정과 남모의 행적을 기록한 문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백 명의 남성을 이끌던 리더십 강한 두 여성이 단순히 ‘질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했을까”란 의문이 생기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여기에 오십 살의 나이 차이를 훌쩍 뛰어넘은 소지왕과 벽화의 열정적인 ‘러브 스토리’, 비단 한 필로 언니의 꿈을 사서 태종무열왕의 아내가 되는 문희의 에피소드도 낭만적이다. 동시에 보다 심도 깊은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 전하지 못한 신라 여성들의 이야기새삼스럽게 에드워드 카(Edward Carr·1892~1982)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역사란 결국 과거의 ‘그들’과 현재의 ‘우리’가 나누는 끊임없는 대화”라는 걸.신라 시대를 살았던 세 명의 여왕(선덕·진덕·진성)과 미실, 수로부인과 준정·남모, 벽화와 문희…. 독자들이 대화하고 싶은 신라의 여성이 이들만은 아닐 게 분명하다.‘삼국유사’ ‘삼국사기’ ‘화랑세기’ 등에는 그녀들 외에도 수많은 신라 여인들의 삶과 죽음이 길게 혹은, 짧게 기록돼 있다. 어떤 이야기는 슬프고 어떤 건 재미있으며, 몇몇 일화는 놀랍고도 감동적이다.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 태어난 알영부인(閼英夫人)은 신라의 첫 번째 왕 박혁거세의 아내다. 용의 옆구리에서 나왔다는 설화가 전하는 알영은 닭의 부리와 같은 입을 가진 여자아이였는데 신성한 우물에서 목욕을 시키자 그 부리가 떨어졌다고 한다.그녀는 외모만 빼어났던 것이 아니라 인성까지 선량하고 자애로웠기에 박혁거세가 인자한 군주로 자리매김 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선화공주(善花公主)의 이야기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진평왕의 딸 중 가장 미모가 빼어났던 선화공주는 훗날 신라의 라이벌인 백제의 무왕(武王·재위 600~641)이 되는 서동(薯童)의 계략에 의해 혼인에 이르게 된다. 개인적으론 그 결합이 크게 불행하지 않았으니 다행스런 일이다.신라에는 여성 시인도 드물지 않게 존재했다. 희명(希明)은 서라벌 백성들이 인정한 향가(鄕歌) 작가다. 경덕왕 시절 쓴 것으로 알려진 ‘도천수관음가(禱千壽觀音歌)’. 이 향가에는 병을 얻어 눈이 멀어버린 자식을 위해 애절한 기도를 올리는 어머니의 서러운 마음이 잘 표현돼 있다고 한다. ◆ 지속돼야 할 ‘신라’에 대한 탐구이외에도 요석공주, 선묘낭자, 원명부인, 도화녀, 강수부인 등 독자의 관심과 역사학자들의 연구를 기다리고 있는 신라 여성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언젠가는 그녀들의 생애에 관해서도 쓸 날이 오지 않을까? 길고 지루했던 여름이 우리 곁을 떠날 준비를 서두르던 며칠 전. 경주시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아 1천 년 전 서라벌 시내를 재현해놓은 조형물을 오래 들여다보았다.“그 시절 신라 사람들은 어떤 꿈을 꾸고 무엇을 희구하며 살았을까”, “그들을 웃기고 울린 건 뭐였을까”란 궁금증이 이어졌다. 바로 이러한 ‘지적 호기심’이 앞으로도 신라의 여인들, 아니 ‘신라’라는 나라 전체에 대한 탐구열정을 자극할 것이 분명하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끝

2018-08-31

‘정치’가 아닌 ‘진심’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새마을운동의 바른 정신

△경제살리기에 두팔을 걷다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이 나서야 된다고 생각해요. 역사를 봐도 항상 그렇게 해왔구요. 나라가 힘들면 결국 국민이 힘드니까 스스로 해결해야죠.경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IMF 당시 금모으기 운동을 해서 전국에서 구미새마을회가 1등도 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어요. 10원 동전모으기, 재활용품 수집 등 작은 일이었지만 나라살림에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했어요.사람들은 금모으기 운동 밖에 기억하지 못하지만. 동전모으기 운동은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어요. 학생들은 돈이 없으니까 10원 동전이라도 모아서 나라살림에 보탬이 되라고 시작했죠. 학생들도 적극 동참했었어요. 당시 모금 금액이 얼마인지는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학생들이 모은 10원 동전을 도청에 전달했어요. 매년 해오던 사업이긴 하지만 재활용품수집경연대회도 나라살림을 위한 모금이었죠.당시 동네 주민들이 적극 도와주었어요.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동참해 고철 등을 모아 기금을 마련했어요. 지금 생각하도 우리 국민만큼 애국심이 강한 나라는 없을 거에요. 나라가 어려울 때 마다 나라를 지킨 국민들이니까요. 새마을운동도 애국심에서 비롯된 거에요.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런 봉사를 할 수가 없거든요.北 돕는 것에 정치잣대 안돼어려운 사람 외면말고 도우면마음·진심이 반드시 통해△어려운 가정환경의 학생들을 돕다난 공부를 안해서 좋은 대학에 못 간거지, 환경이 어려워서 공부를 목 했던 것은 아니거든요. 또 아버지가 지역에서 존경받는 교육자이셔서 그런지 어려운 환경으로 학업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요.그러다 우연히 전자공고 학생 2명이 가정이 어려워 학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학비를 졸업할 때까지 내가 내주었어요. 점심시간에 불러내서 밥도 해먹이고, 교복도 해주고 했어요.그 학생들이 졸업을 한지가 벌써 30년 가까이 되는 것 같아요. 잘 살고 있을거라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작년에 한번 찾아왔더라구요. 얼마나 반갑던지. 지금 김천우체국에서 근무하고 있다면서 꿀 한병하고 유과 한상자를 들고 왔어요.그동안 먹고 살기 바빠서 찾아 뵙지 못했다면서. 정말 그때 감사했다고 말하는데 눈물이 다 나더라구요.그래도 날 이렇게 기억해주고 번듯하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또 한번은 남편 제자 중에 김천여고에 들어갔는데 교복 살 형편이 안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김천 동신양잠점에 가서 교복을 하나 맞춰 주었어요.그 학생 부모님이 항아리 장사를 하시는데 고맙다면서 멋진 항아리를 주시기도 했어요. 아직도 그 항아리가 집에 있어요. 항아리를 볼때마다 생각이 나요.돈이 없어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진짜 말이 안되는 것 같아요. 자기가 하기 싫어서 안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하고 싶은데도 못하는 것은 안되는 거에요. 그런 일이 없도록 이 사회가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어린 학생들에게 어른들이 좀 더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간섭을 하라는 것이 아니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에요. 구미시새마을부녀회가 주관하는 바자회가 있어요.내가 회장을 맡고 있을 당시에는 그 수익금으로 장학금을 지급했었어요. 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회장을 맡았던 5년동안은 그렇게 했어요. 금오공과대학교 학생들에게 매년 2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죠. 한 학생에 100만원씩. 2명에게 장학금을 주었어요. 비록 큰 금액은 아닐지라도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새마을운동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제발 어린 세대들이 새마을운동을 지붕만 고쳐주는 그런 사업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 정신을 제대로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요. △남을 위한 마음이 세상을 움직여 1990년인가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 맞을 거에요. 당시 경기도 파주에 물난리가 나서 많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구미시새마을회가 도움을 주기로 했어요.간장, 고추장, 수건, 라면 등 생필품을 챙겨 트럭 2대에 싣고 파주로 갔어요. 트럭 2대분을 싣고 현장에 가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하더라구요. 물난리라는 걸 TV로만 봤지, 현장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가서 생필품을 나눠 주고 마음으로 위로를 해드리고 왔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잊을 때 쯤 구미에서도 물난리가 났어요. 1991년 8월로 기억하는데 강평동이 완전히 물바다가 됐어요.뉴스에도 보도가 되고 했는데, 그 뉴스를 봤는지 파주에서 예전에 도와줘서 고맙다며 쌀 100포를 싣고 왔어요. 그걸 함께 수해민들에게 나눠주는데 정말 고맙더라구요.이래서 서로 돕고 살아야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 지역과 국가가 있어서는 안되요. 지금은 잘 살아도 언제 어려워 질지도 모르는게 세상살이 잖아요.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절대 외면하면 안되는 거에요.이 지역에서 40년 넘게 새마을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점은 절대 어려운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거에요. 그건 새마을정신에도 어긋나는 일이에요. 가끔 북한을 돕는 일에 정치적인 해석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이 정치적인 잣대를 갖고 일을 해서는 안되는 거죠.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어려운 사람을 진심으로 도우면 되는 거에요.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그 진심을 알거든요. 그런 진심이 세상을 움직이는 거에요. 정치가 세상을 움직이는건 아니에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좀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조순란 전 구미시새마을부녀회장이 그동안 받은 상장과 감사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모든 책임은 나에게가끔 사람들이 물어봐요. 구미시새마을부녀회장 임기가 3년씩 두번인데 6년이 아니라 5년만 한 이유가 뭐냐고. 참 부끄러운 일이라 대답하기가 곤란해요.그냥 마음에 묻고 살아야지. 다 내 잘못이니까. 사실 5년째 되던해에 내가 스스로 물러났어요. 어떻게보면 불명예스러운 일이죠. 40년 넘게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해 왔는데 그 경력에 큰 오점을 남긴거에요.당시 바자회에 쓰라고 한 업체가 상품으로 스폰을 해줬었어요. 좋은일을 하는 거니까. 그런데 스폰을 받은 물건이 다른 곳에 쓰여졌어요. 비록 내가 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회장이고 책임자니까 그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거죠.이런 불미스런 일을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당시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절대 아니에요. 변명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단지 누구나 자신의 직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에요.요즘 사람들은 항상 남 탓을 하잖아요. 위에 높으신 분들이 더 그러는 것 같아요. 지도자라면 밑에서 잘못한 일도 스스로 책임을 질줄 알아야해요. 사람을 잘못 쓴것도 지도자의 책임이니까요.지도자가 밑에 사람이 한 잘못을 회피한다면 그건 지도자가 아니죠. 새마을운동은 지도자 교육이라는 걸 하잖아요. 그건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에요.지도자가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시민들이 믿고 따르는 거니까. 난 새마을운동을 정말로 신바람나게 일했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자부해요. 그리고 새마을 지도자라서 항상 조심했어요. 내가 하는 언행에 있어 신중하게 했어요. 내가 잘못을 하면 새마을 전체에 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비록 명예스럽지 못하게 회장직을 중간에 그만 두었지만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아요.다만, 책임을 져야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에요. 그래야 우리같은 국민들이 편하게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라도 사람들이 새마을운동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해요. 그래야 지도자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구미/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8-08-31

IMF 당시 십시일반 모아 양파망에 담아간 금·달러 ‘전국 1등’ 영광으로

▲ 조순란 전 구미시새마을부녀회장이 자신이 큰 손으로 불리우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조순란(68) 전 구미시새마을부녀회장은 1949년 12월 1일 김천에서 3남4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남편 일 도우며 봉사활동 시작새마을부녀회 뿐 아니라동네 부녀회장 지내며‘큰 손’ 으로 불릴만큼마을·지역 위해 활발한 활동김천에서 교직에 몸 담고 있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예의범절 교육을 엄하게 받았다. 부친은 당시 대구사범을 나와 17세에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해 26세부터 학교장을 역임했다.평생 교육계에 몸 담은 아버지는 항상 남을 위한 봉사활동도 많이 해 지역에서 가장 큰 어른으로 존경을 받았다. 조 회장과 형제들은 혹여 아버지의 명예에 누가 될까 품행에 각별히 신경을 많이 썼다.조 회장은 24세에 결혼한 후 26세 때 남편의 직장 문제로 구미로 이전해 처음으로 새마을운동을 접하게 됐다. 조 회장은 부모님이 평소 지역에서 남을 위한 일을 많이 하신 것을 옆에서 보고 자랐던 터라 봉사는 그에게 당연한 것이었다고 말한다.봉사활동에 누구보다 열정을 가진 그를 주위사람들은 큰 손 회장이라 부른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퍼주는 손이 크다는 이유다. 조 회장은 구미시새마을부녀회 부회장, 구미시새마을부녀회장을 거치면서 새마을유공자상, 내무부장관 표창, 새마을중앙회 공로상 등을 수상했다.△아버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딸아버지는 평생을 교육에 몸 담으신 분이셨어요. 항상 책을 가까이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굳이 나의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진심으로 존경할만한 그런 분이셨죠. 대구사범도 1등으로 졸업하고, 항상 장학생 자리를 놓치지 않으셨대요.26세 때 교장이 되셨으니 어려운 점도 많았을텐테 현명하게 잘 풀어내셨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교장이 되셨으니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선생들과 지내기가 말처럼 쉽지 않았을거 아니에요.그런데도 어느 누구에게도 손가락질 한번 안받고 평생을 사셨으니 그것만으로도 존경을 받을 만 한거죠.우린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형제가 모두 잘 됐어요. 나만 빼고.나는 고3때 속된 말로 농띠라는 것을 쳐서 대학을 못 갔어요. 형제들 중에 유일하게. 다른 형제들은 좋은 대학 나와서 모두 좋은 직장에 들어갔어요. 그래서인지 전 아버지에게는 아픈 손가락이었던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많이 죄송해요.공부만 그런게 아니에요. 결혼도 마찬가지에요. 결혼 당시 남편의 집안은 정말 많이 가난했어요. 그래도 성실한 남편만 믿고 결혼했어요. 남편은 6형제에 장남이었어요.결혼 후 내가 모든 시동생을 거둬야했죠. 내가 나이어린 시동생들 목욕탕에서 씻기고 키워 장가 다 보냈어요. 사실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돈이 없어서 아침 저녁은 항상 국수를 먹을 정도였어요.아버지는 그런 내가 항상 마음에 걸리셨을 거에요. 아버지는 내가 결혼을 했는데 6개월 동안 혼인신고를 못하게 하셨어요. 아마도 내가 그 고생을 참지 못하고 되돌아 올거라 생각하셨던 같아요.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가 농사꾼이었으면 아마 바로 친정으로 도망갔을 거에요. 하지만 아버지가 명색이 교육자로 지역에서 존경 받는 어른이신데 차마 그럴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지금부터라도 아버지 기대에 부응하는 딸이 되어야 겠다고.항상 솔선수범하고, 모범이 되는 사람이 되자. 남들에게 상처주는 일 하지 않고 봉사하며 살겠다고 다짐했어요. △남편을 따라 구미로 이사24살 때 결혼해 26살이 되던 해 구미로 오게 됐어요. 남편이 김천에서 체육관을 하고 있었는데, 작은 아버지가 성진고등학교 야간부에 계셨는데 체육선생이 필요하다고 해서 구미로 오게 됐어요.야간 학교니까 체육선생을 하면서 합기도 영비관을 운영했어요. 한 5년을 그렇게 일하다가 구미시체육회 사무국장으로 근무하게 됐죠.처음에는 구미 원평3동에서 살았어요. 그러다 한우 아파트 15평을 분양받아 살게 됐어요. 그런데 주민들이 나보고 아파트 부녀회장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하는 거에요.처음에는 왜 나더러 부녀회장을 맡으라고 하는지 몰랐는데, 남편이 체육회 사무국장이다보니 무슨 행사 때마다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봤었나봐요. 나중에 알았는데 주민들이 부지런해 보여서 추천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당시엔 남편을 위해 일을 많이 했어요. 경기가 있으면 선수들 밥 굶지 말라고 김밥 100인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체육인의 밤 같은 행사가 있으면 새벽부터 장을 봐서 지짐도 굽고 여러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어요.그러면 행사에 오신 시장님이나 서장님 같은 분들이 사무국장 아내 분 때문에 이런 행사를 잘 치를 수 있다고, 사무국장님은 정말 장가 잘 가신거라고 치켜세워 주셨어요.그런 식으로 나름 소문이 나기 시작해서 지역에서 여러 봉사일을 맡게 되었죠. 그래서 새마을운동도 하게 된 거구요. △큰 손으로 불리게 되다결혼을 한 뒤부터 봉사하며 살겠다고 마음을 먹어서 그런지 봉사할 수 있는 곳에서 나를 많이 찾았어요.처음 구미에 와서 원평3동 총무를 하다가 한우아파트에 입주한 뒤에는 부녀회장을 맡았고, 형곡동 2주공에서도 부녀회장을 지냈어요.구미시새마을부녀회 부회장을 4년동안 하고 부녀회장을 5년동안 맡아했죠.사람들이 나더러 큰손이라고 부르는데 그건 아마도 내가 손이 커서 그런 것 같아요.무슨 일을 하던 부족하면 안된다고 생각해 매번 푸짐하게 해서 그런가봐요. 처음 큰손으로 불리우게 된 것은 학교 어머니회 회장을 하고 있던 때였어요.당시 금오초등학교 어머니회장을 했었는데 교장 선생님이 아버님이랑 잘 아는 사이였어요. 그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학교에 복사기가 없어 학생들 시험 때마다 힘들다고 하시더라구요.그래서 당시 600만원을 주고 복사기를 학교에 기증했어요. 선생님들이 많이 고마워 하셨어요.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교육자이셨기 때문에 학생들 가르치는데 불편함이 없어야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거에요.금오여고 어머니회장을 했을 때에는 학교 전 교실에 커튼과 선풍기를 달아줬어요. 스승의 날이면 음식을 해서 선생님들에게 대접했구요.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존경해야 한다는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거에요. 이런 일들 때문에 큰손으로 불리운 것 같아요. 하지만 진짜 큰손은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시작됐어요.IMF 당시 금모으기 운동, 10원 동전 모으기 운동 등에서 큰손의 힘이 발휘됐어요.△금 모으기 운동때 전국 1등 하기도내가 4대 구미시새마을부녀회장이었어요.1995년부터 2000년까지 5년동안 부녀회장을 했는데 그 중 가장 어려웠던 일이 바로 금모으기 운동이었어요. 부담감도 컸구요. 나라가 힘든 상황에 처해 있으니 새마을회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고, 그러니 당연히 지도자들이 나서 솔선수범 해야했어요.정말 이 일은 잘하고 싶었어요. 다행이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셨어요. 역대 전 회장님들도 많이 도와주셨구요.금모으기 운동이었지만 당시 달러도 받았어요. 내 기억으로는 달러도 많이 받았어요. 금액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금액이 상당히 많았어요. 미안하다면서 그냥 현금으로 주시는 분들도 많았거든요.그 많은 금과 달러, 현금을 들고 직접 새마을중앙회까지 가서 내야했는데 너무 겁이 나는 거에요. 그래서 이화자 전 회장님과 함께 새마을호를 타고 갔어요.그런데 어디에 금을 넣고 갈까 고민하다가 양파망에 넣어 갔어요. 사람들 눈에 별로 띄지도 않을 것 같고 해서. 지금 기억에 모은 금의 부피가 큰 양파망에 반 이상 찼었어요. 무게도 무지 무거웠구요. 그래도 어렵게 들고 간 보람은 있었어요. 구미시가 전국에서 1등을 했으니까.지금 생각해도 나라를 위해 무엇이라도 했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해 준 금모으기 운동이었어요. 그때 우리 국민이 이 나라를 정말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어요.구미/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8-08-30

‘민족의 아리랑’ ‘품격의 찻사발’로 세계가 주목하는 문경 재탄생

문경시가 글로벌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문경시는 최근 미국 여러 도시와 우호증진을 위한 자매결연을 통해 국제 교류도시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여기에 잘 짜여진 교육 인프라를 활용한 학생들의 영어교육과 우수한 체육시설을 바탕으로 외국팀을 유치하는 등 글로벌 도시에 걸맞는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문경시의 이러한 노력이 문경의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문경시가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 도시를 위한 정책들을 점검해 본다.미국·중국 등 해외도시와 자매결연지속적 국제교류 확대로 관광객 유치우수한 체육인프라… 세계 스포츠인 유혹문경오미자 효능 해외 홍보에도 열성△미국 3개도시와 자매결연 등 국제교류 추진문경시 권기섭 부시장 일행이 지난 7월 14일부터 21일까지 미국 뉴욕주 Putnam County(풋남 카운티), 뉴저지주 Bergen County(버겐 카운티), 캘리포니아주의 Orange County(오렌지 카운티)를 방문, 국제관계자와 미팅을 통해 자매결연을 협의하고 금년 중 답방 의향을 받았다.이번 교류에는 명상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봉암사 스님 등 불교계 인사들로 구성된 문경세계명상마을추진단도 함께 동행했다.미동부의 뉴욕주 Putnam County는 인구 약 10만 명으로 뉴욕시에서 승용차로 1시간 20분 거리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으며 인근에 문화유산, 명상센터, 사찰이 많이 있어 문경과 유사한 점이 많은 곳이다.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주의 Orange County는 인구 340만 명으로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LA에서 승용차로 1시간 3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다.County 산하 제2구역 Michelle Steel위원장은 적극적인 결연 의지를 표명했으며, 봉암사 템플스테이 등 문경체험을 위해 조만간 문경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미국 거주 동포들도 만나 문경시와의 국제비즈니스에 대해 논의했다. 예천 출신으로 미국, 캐나다 전역에 100여 개의 대형마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경북지역 수십 명의 인턴학생을 채용하고 있는 권일연 H마트 회장과 경주출신으로 의류, 디자인 사업을 하고 지역 대학생 수십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경북도해외자문위원인 이돈 Active USA 회장 등 한인 기업인을 만나 현지 세일즈 외교를 추진했고 이용규(운강 이강년 선생 손자)국제로터리회장, 영남향우회 회원들을 만나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또 조계종 관계자들과 문경세계명상마을 건립과 관련해 뉴욕시와 LA 인근의 Zen Moutain Monastery, Blue Cliff Monastery, Garrison Institute, Lake Shrine 등을 방문해 예산확보, 건축, 디자인, 운영방식, 직원 채용 등 벤치마킹했다.문경시는 세계화를 촉진하고 국제교류협력의 확대를 위해 2008년 중국 이싱시와 자매결연을 추진한 이래 11차례 방문교류를 했다.올해 4월 베트남 송콩시와 우호교류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초중고 영어 캠프로 외국어 능력 향상 교육문경시의 글로벌도시화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먼저, 글로벌 인재 육성을 위해 글로벌 선진학교의 초중학생 영어체험 캠프를 2010년도부터 해마다 실시해 오고 있다.지역 초등학생 300명이 4박 5일간, 중학생 100명이 4박 5일간의 합숙훈련을 통해 원어민교사의 직접지도 아래 다양한 영어체험학습의 기회를 제공 받고 있다.또 문창고 1학년 20명 내외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부터 뉴질랜드 영어캠프를 실시하고 있으며 문경시청 직원들도 외국어 능력 향상을 위해 외국인 새마을 행정인턴과 함께 1주 1회 영어학습반을 운영해 세계화 시대에 맞춤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체육인프라 우수해 외국팀 전지 훈련지로 각광2015세계군인체육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우수한 체육시설을 바탕으로 2016년부터 말레이시아 등 4개국 100여명의 선수들이 다녀간 이래 올 6월까지 일본, 중국 등 11개팀 1천400여명의 외국팀이 수영, 농구, 태권도, 근대5종 등 훈련을 위해 문경을 다녀갔으며 인원수와 종목이 해마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문경시는 공격적인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전지훈련으로 매년 3만여 명이 넘는 선수 및 임원들이 다녀가고 있으며 25억 원의 지역경제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밝혔다.이는 문경시가 전지훈련 유치를 위해 매년 적극적이고 활발한 스포츠 마케팅을 벌이는 한편 스포츠 인프라 구축을 위해 노력한 결실이다.지금까지 문경시는 배드민턴 경기장, 온누리체육관 건립 및 시민정구장 리모델링, 국궁장, 인공암벽장, 영순천마광장 조성 사업 등 많은 체육시설을 확충했다.문경시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스포츠도시 문경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고자 ‘문경종합스포츠타운 조성’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사업용역을 시작으로 지역 스포츠 발전을 견인할 것은 물론 문경시와 국군체육부대간의 상호협력 관계가 더욱더 돈독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더불어 진천선수촌 개장에 따른 국군체육부대와 상호 협력하에 제3국가선수촌 조성 등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 전지훈련 메카 육성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또한 기존 문경실내체육관의 협소한 장소 및 접근성이 낮아 국제대회 및 큰대회 개최가 어려운 문제점을 보완 문경시 종합체육관건립 중장기계획을 수립, 국·도비 확보 후 총사업비 500억 원으로 신축을 검토 중에 있다.이 시설이 완공되면 2015세계군인체육대회 성공 개최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대회 개최 및 전지훈련 확대 유치는 물론 국군체육부대 시설과 연계한 스포츠 도시 문경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될 것이다. 또한 문경시민정구장 돔 설치를 위해 도비 11억 원을 확보해 여름철 폭염 및 우천과 강설 시에도 대회 개최 및 전지훈련을 할 수 있는 사계절 스포츠 도시가 된다.△아리랑 도시 문경새재국제아리랑제 개최 추진아리랑의 도시 문경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미지를 제고시키며 문경아리랑을 세계에 홍보하고 아리랑 국립무형문화센터 건립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다.문경시는 2008년부터 아리랑 관련 사업을 꾸준히 준비해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아리랑을 한데 묶어 우리 민족 고유의 정체성 확립,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해 국내 아리랑 전승자와 해외동포 예술가가 함께 하는 아리랑 공동체를 결성해 아리랑 허브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올해 11월, 2018문경아리랑제(세계아리랑제)를 개최 할 예정이다.△문경오미자 해외 홍보 및 판매 추진지난 3월 세계3대 식품박람회중 하나인 FOODEX JAPAN 2018에 참가해 문경 오미자의 세계적 홍보와 국제 판로 확대를 모색했다.이 자리에서 문경오미자 학술세미나를 개최해 오미자 효능의 우수성을 해외 바이어들에게 홍보했으며, 문경오미자전시관운영을 통해 120여명의 바이어 발굴 및 미팅, 오미자시음 5천여명, 캐나다, 멕시코, 태국, 일본, 대만 음료회사와 스페인, 오스트리아 와인 회사 등 7개국의 바이어들의 수출 오더 진행이 예상됐으며, 오미자외에도 표고버섯, 사과, 배 등이 바이어들을 사로 잡았었다. △문경찻사발축제 등 외국인 방문 증가문경은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관광지 중 1위를 차지하고 한국관광의 별 1위로 선정된 ‘문경새재’를 비롯한 천혜의 청정 환경과 관광지를 보유하고 있다.지난해 문경새재도립공원 오픈세트장 일원에서 열린 제19회 문경전통찻사발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 무인계수기 확인 결과 23만6천여 명이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2016년 보다 22.5% 늘어난 수치이다. 입장료 수입도 2016년 1억2천550만원에 비해 25.8% 늘어난 1억5천800만원으로 잠정 집계됐다.특히 문경전통찻사발 축제는 대한민국 대표축제, 최우수축제 6회 등 관광축제의 대표주자이다.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을 통해 적극적인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문경전통찻사발 축제에 다녀간 해외관광객수가 2017년도에는 7천600여명에 달했으며, 해마다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이 같은 노력을 통해 문경시는 미국도시와의 자매결연을 통해 국제교류 도시의 다변화를 꾀한다. 문경의 우수한 관광자원과 휼륭한 체육시설에 국제 우호증진을 더해 해외관광객 유치와 특산물 판매를 모색해가는 한편 잘 갖춰진 우수한 관광 인프라에 글로벌 역량을 보태 명실상부한 글로벌 도시로 도약할 것이다.문경/강남진기자75kangnj@kbmaeil.com

2018-08-28

시름시름 골목길 문화예술 새 옷 입고 북적북적 핫플레이스로

글 싣는 순서 1. 밀라노 예술가들의 성지 ‘토르토나’의 탄생2. 이탈리아 넘어 세계 최고를 꿈꾸다 ‘슈퍼 스튜디오 그룹’3. ‘두마리 토끼 한 번에’ 순천 문화의 거리4.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에서 가능성을 보다5. 자생적 문화생태계 구축을 향해 가야할 길□ ‘도시재생’, ‘문화도시’ 두마리 토끼 한 번에순천시는 1980년대까지 순천 동천과 봉화산을 중심으로 서쪽지역에 위치한 원도심을 중심으로 도시가 성장했다.그런데 1990년대 들어 원도심에 자리잡고 있던 법원, 검찰청, 교육청, 세무서 등 공공기관이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동천 동쪽지역의 연향, 조례, 금당, 신대지구에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향동, 행동, 중앙동 일원의 원도심은 재래식의 좁은 골목길, 생활 편의시설 부족 등으로 거주하고 있던 주민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도심공동화로 이어지면서 거리는 활력을 잃고 말았다. 원도심 중심상권에 위치한 상점들은 시설노후화에도 대부분 투자여력이 부족한 영세상인들로 구성돼 재투자가 전무하다시피 하면서 죽은 도시로 변한 반면, 신도심은 각종 의료기관과 대형상가가 형성되면서 사람들이 스스로 찾고 싶어하는 거리로 바뀌었다. 도심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순천시는 칼을 빼들었다. 침체된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순천의 문화자원들이 후세에 전해질 수 있도록 보전하는 이른바 ‘도시재생’과 ‘문화도시’조성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한 번에 달성하기 위한 대형 프로젝트를 구상한 것이다. 이를 위해 순천시는 지난 2008년 순천 문화의 거리 조성 및 지원 조례를 제정해 원도심 일부를 문화의 거리로 지정하면서 문화도시 만들기 사업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2009년에는 당시 국토해양부가 추진한 ‘살고싶은 도시 만들기 사업’에 선정돼 총 30억원의 예산를 확보했다. 순천시는 사업 선정을 바탕으로 향동, 행동, 중앙동 등 원도심 일원 14만7천㎡에 문화의 거리를 본격 조성했다.우선 향동 삼성생명 빌딩에서 금곡사거리 구간 보도블럭 및 가로등 교체, 간판정비사업, 냉각탑 리모델링, 가로화단 조성 등 거리 경관을 개선했다. 또 아름다운가게∼호남사거리간 130m 구간에는 부읍성곽 이미지 재현, 성돌배치, 잔디블럭, 화강석포장, 수목식재 등 문화광장 조성과 함께 매산고등학교 앞 공터를 주차장으로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특히 문화의 거리 내 입주한 문화예술인 육성 및 지원, 각종 문화공연 운영, 문화시설·예술공방 연계한 테마스토리텔링 코스개발 등 문화예술거리가 지니는 본질적 요소를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 주민 돌아오고 유동인구 늘어나2010년부터 2013년까지 장기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추진한 ‘살고싶은 도시 만들기 사업’이 성공을 거두면서 순천시는 또다른 사업에 관심을 두게 됐다. 국토교통부가 2014년 공모한 도시재생 선도지역 사업에 ‘자연의 씨줄과 문화의 날줄로 엮어내는 천가지로(天街地路)’라는 주제로 응모해 당당히 선정되며 무려 200억원을 확보하게 됐다.순천시는 도시재생 사업이 원도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하고, 생태·문화·역사가 통합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전략으로 이 사업에 응모했다. 확보된 예산을 바탕으로 대부분 단독주택으로 이뤄진 노후주택은 집수리사업과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통해 창호와 단열재를 모두 친환경 자재로 바꿨고, 전등도 LED로 교체했다. 정돈되지 않은 도로는 차 없는 거리를 신설해 보행자들의 편의를 도모했고 거리 곳곳을 아름다운 벽화와 정원, 바닥분수 등으로 꾸몄다. 원도심의 빈 상가는 문화예술인을 위한 창작스튜디오, 전시실, 예술학교로 운영하며 전문예술인이 양성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입주를 희망하는 문화예술인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 점을 고려, 상가 임차료를 연간 400만원 한도로 최대 3년간 지원했다.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은 우수한 성과로 이어졌다. 순천시에 따르면 사업 초기인 지난 2010년 20곳에 불과했던 문화의 거리 내 문화예술업종 점포수는 지난 2017년 기준 77곳으로 급격히 증가했다.2009년 당시 문화의 거리 주변 빈집은 190개에 이르렀으나 현재는 10여개로 줄었으며 유동인구는 2015년 10월 1만여명에서 지난해 10월 2만5천여명으로 2배 이상 껑충 뛰었다. 주민들이 참여한 마을협동조합 등 사회적기업 30여개가 생겼고 일자리도 150개 가까이 늘어났다. 옛 순천중앙파출소 건물을 리모델링한 ‘조강훈 아트스튜디오’와 순천 출신 한복명인 김혜순 디자이너의 작품이 전시된 ‘김혜순 한복스튜디오’등은 문화의 거리를 상징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 순천 대표축제, 문화재 달빛야행문화의 거리가 순천을 대표하는 문화예술거리로 성장하면서 이곳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지난 2016년부터 시작된 순천 문화재 달빛야행은 순천부읍성 재생사업의 의미를 되새기고 지역 문화유산과 주변 문화콘텐츠를 하나로 묶어 달빛아래 문화재를 체험할 수 있는 행사로 마련됐다. 올해도 지난 8월 3일부터 5일까지 ‘순천가(順天歌)와 함께 하는 풍류기행’이라는 주제로 행사가 열려 큰 인기를 끌었다.이번 순천문화재 야행에서는 선암사 승선교 조형물을 설치해 순천가의 한 대목에 언급된 승선교의 가치 복원 및 지난 6월 말 유네스코 세계유산 선암사 등재에 대한 축하 의미를 부여했다.축제 개막행사에서는 승평지 편찬 400주년을 기념해 순천시민 400여명이 음악의 선율로 하나되는 합창을 선보였고 24개 읍면동에서 발원한 ‘청수(淸水)’를 모아 화합을 표현하는 합수식이 이어졌다. 달빛 야행에 참가한 시민, 관광객들은 문화의 거리를 중심으로 500m이내의 순천향교, 팔마비, 근대문화유산, 기독교 유적 등 14곳의 지역명소를 둘러보며 순천의 아름다운 야경을 즐겼다.이번 축제는 문화의 거리에 입주한 문화예술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전에 열린 2차례 행사에 비해 두배 이상의 체험부스를 마련했다. 체험부스는 시민들이 직접 예술품 제작을 체험하고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구성됐다.또한, 혹서기를 대비한 휴게 공간 및 프로그램을 운영해 관광객들의 편의 서비스를 확대해 만족도를 높였다.무더위를 식혀주기 위해 대형 선풍기를 행사구간에 설치하고, 대형 얼음을 이용해 문화재를 만드는 아이스카빙 체험도 진행됐다. □ 자생적 생태계 조성 목표3문화의 거리 조성사업이 10년차를 맞이하면서 순천시는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게 됐다.문화예술인을 한데 모으고 특화된 거리를 조성하면서 문화의 거리라는 이름에 걸맞는 구색은 갖추게 됐지만 또다른 부작용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일부 양심없는 업자들이 점포 월 임차료를 90% 범위 내로 연간 40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3년간의 임차료 지원이 끝나면 점포를 고스란히 외부로 이동시키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순천시는 이같은 현상이 반복되지 않도록 조례 개정을 통해 올해 1월 1일부터 문화예술인 지원제도를 개편했다.개편된 지원제도에 따르면 2018년 이전에 임차료 지원금을 신청한 문화예술인들을 제외한 신규 신청자의 경우 소요액 40% 범위 내로 회당 200만원 한도로 연 1회 창작 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이를 통해 가파른 월세 상승속도로 인한 시 재정부담을 감소시키고 지원 종료 후에도 문화예술인들이 자생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토대를 마련할 방침이다. 지난 2017년 5월 문화체육관광부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 공모에 최종 선정되며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확보하게 된 37억5천만원의 사업비는 지역의 특화된 문화자원을 창조적으로 발굴, 활용해 지역의 대표 브랜드로 육성하는 작업에 쓰인다.1년차에는 사업추진을 위한 사업추진체 조직 및 도시의 문화 핵심가치 실현을 위한 프로세스를 구성하고, 2년차부터는 본격적인 시민참여형 문화기획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업기간 종료 후에는 도시별 사업평가를 통해 지속 관리를 위한 2년간 추가 지원이 가능하며,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사업 중간평가를 통해 문화도시 지정 신청 및 문화도시 인증을 받게 된다.순천시 관계자는 “순천이 문화도시 사업을 시작한지 어느덧 10년이 지나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다”며 “이제는 새로운 도전보다는 사업진행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문제점을 보완해 문화의 거리가 자생적인 생태를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8-08-28

새마을운동의 참 의미 ‘봉사’로써 세대간 격차 줄어들 수 있기를

△ 새마을알뜰벼룩장터를 만들다구미시 새마을부녀회장을 2006년 맡게 된 이후 당시 남유진 구미시장의 권유로 알뜰벼룩장터를 만들게 됐어요.재사용이 가능한 물건들이 너무 쉽게 버려지는 것을 조금이나마 막아보자는 취지였죠. 한마디로 ‘아나바다’운동이죠. 그런데 남 시장님이 물건 가격은 무조선 1천원 이상은 안된다고 못을 박았어요. 가격이 너무 저렴하니까 사실 하기가 쉽지 않았죠. 시장님과 가격 절충을 해야했어요. 다른 곳에서 열리는 벼룩장터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대구 두류공원, 서울 뚝섬 같은 곳에 다녀왔었어요. 그 곳에서는 전부 가격이 자율에 맡겨져 있더라구요. 그런 내용들을 몇번이나 시장님에게 건의했는데 정말 씨알도 안먹혔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2007년 처음으로 새마을알뜰벼룩장터를 열었어요. 제법 괜찮은 물건들도 나왔어요. 그런데 괜찮은 물건도 조금 못한 물건도 모두 1천원이니까 파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거에요.국수 같은 음식도 1천원, 옷도 1천원, 장남감도 1천원이니 파는 사람들이 힘들어하죠. 국수를 팔기 위해서도 면을 뽑고 육수를 준비하려면 적어도 3일은 걸리는데 말이에요. 나중에 알았는데 그래서 새마을부녀회에다 그 일을 맡긴거에요. 다른 단체에서는 그렇게 못하니까. 손해보면서 누가 하려고 하겠어요. 오롯이 봉사라고 생각하고 해야하는 일이에요. 처음 그렇게 고생했어도 계속 열리고 하니까 어느정도 기틀이 잡히기 시작하더라구요.지금도 매월 둘째주 토요일에 시청 후면 주차장에서 열리고 있어요. 구미에 오면 꼭 한번은 가봐야 하는 곳으로 추천하고 싶어요.새마을운동으로 단 한푼도 벌어본 적 없어잘못된 언론 이야기로 젊은 세대들이 오해젊은 지도자 나와 기성세대 이끌어줘야젊은이들에게 지도자의 기회를 줘야새마을운동이 더 활기차게 될 것△ 아무리 어려워도 남 탓은 하지말자부녀회장이 되고 나서 해외에도 몇 번 나가게 됐어요. 당시 새마을세계화운동이 한창이었거든요.간혹 해외 나가서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우리가 놀러가는게 아니잖아요. 정말 안가보면 몰라요. 얼마나 열악한 곳에 가는지를. 한번은 몽골 수와바트라에 가는데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로 13시간을 이동해요. 그런데 길도 비포장이고, 먼지가 버스 안으로 막 들어와요.버스 안에 있는데 바닥에서 먼지가 막 올라오더라구요. 당시 하얀옷을 입고 갔었는데 아주 까맣게 되기도 했어요. 천으로 입도 가리고 가야할 정도였죠. 그렇게 어렵게 도착하니 밤이 됐더라구요. 근데 허허벌판에 길 위에서 잠을 자야했어요. 아무것도 없이 그냥 맨 땅바닥에 누워 자는거에요.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머리는 먼지로 다 엉켜있고.처음에는 ‘나를 이런 곳에 대체 왜 데려왔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 힘드니까 남 탓을 했던거죠. 그러다 하늘을 봤는데 정말 별이 곧 쏟아져 내릴 것만 같더라구요. 그렇게 한동안 별을 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여기 온 것도 다 이유가 있겠지. 남 탓을 하지 말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생각한 ‘남 탓을 하지 말자’가 지금 저의 좌우명이에요. 내가 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내가 노력을 더 해서 끌고 가면 되는거다. 그렇게 믿고 살아가고 있어요.아무튼 그때 그런 마음이 생기니까 불평불만도 없어지고, 일을 더 열심히 했어요. 당시 말도 안통하고 무엇부터 해야할지 몰라 허둥대기도 했지만 뭐라도 하려고 하는 나를 보면서 그 사람들도 마음을 열어주는게 느껴졌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나에겐 큰 가르침을 받게 해 준 고마운 곳이에요.△ 젊은 세대에게 새마을운동의 기회를 주어야언젠가 언론에서 새마을은 지금까지 장사를 많이 했으니 이제 내려놓을 때가 됐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봤어요. 하지만 이건 정말 잘못된 말이에요. 나부터 새마을운동으로 단돈 100원도 벌어본 적이 없어요. 구미시부녀회장 할적에 500만원, 경북도부녀회장 할적에 1천만원의 돈을 내면서 했어요.언론에서 알지도 못하면서 막 떠들어대니까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새마을운동을 오해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사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어떻게 새마을운동에 대해 알 수 있겠어요.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그리고 새마을운동과 그 정신은 옆에서 누가 교육한다고 되는게 아니라고 생각해요.새마을운동 자체가 생활이 되어야하는 거죠. 새마을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식구들은 새마을운동에 대해 잘 알아요. 옆에서 항상 보는 거니까. 새마을운동을 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모르죠. 그런 와중에 기성 세대라는 사람들은 “옛날에 우리는 어떻게 했다. 정말 어려운 시절이었다”라고 말을 하는데 그걸 경험하지 못한 지금 젊은 세대들이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그냥 마지못해 듣고 흘리는거지.새마을운동이 앞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잘 전달이 되려면 기성 세대가 생각을 열어야해요. 젊은 세대들에게 기회를 주어야해요.젊은 세대들이 봉사를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거에요. 사실 부녀회장만 해도 어른들, 즉 나이든 분들만 하게끔 하거든요. 젊은 사람들에게 지도자의 자리를 주어야한다고 생각해요.그래야 새마을운동의 지도자로서 책임감도 가질 수 있을 거고, 직접 해 봄으로서 새마을운동이 이런 것이라는걸 알게 되겠죠.새마을지도자가 꼭 나이가 든 사람이 할 필요가 없어요. 항상 앞장서서 누구보다 열심히 해야하는 자리니까 젊은 사람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면 지금보다 더 활기찬 새마을운동이 될거라 믿어요.그렇다고 기성 세대가 물러나라는 소리는 아니에요. 옆에서 조언을 해주면 되는거니까. 이제는 젊은 새마을지도자가 나이 든 회원들을 이끌면서 봉사하는 그런 모습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럴 수 있다면 새마을운동의 종주도시인 구미에서 그런 모습이 제일 먼저 나오길 바래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가장 해 주고 싶은 말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에요. 옛날에는 배고픔이 가장 힘들었다고 하잖아요.전 배고픔을 아는 세대는 아니지만, 지금보다는 풍족하진 못했다는 거에요. 저보다 앞의 세대가 배고픔을 겪은 세대죠.그런 세대들이 힘들게 노력한 덕분에 저의 세대는 배고픔을 모르고 자랐고, 지금의 세대는 먹는거에 있어서는 넘치는 세대가 된거죠. 하지만 사람이 먹는것만 해결된다고 사는게 아니잖아요.요즘 젊은 세대들이 혼족이니, 혼밥, 혼술을 한다고 들었어요. 혼자 하는거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그렇더라구요.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동물이 아니잖아요. 사회적 활동을 해야만 하는 동물이고, 그래야 성취감도 생기고 행복해 질 수 있는 거라 생각해요. 젊은이들이 이젠 그만 인터넷 가상세계 이런 곳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왔으면 해요. 그리고 그 사회로 나오는 길목에 새마을운동이 있었으면 하구요.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제 젊은이들이 지도자가 되어 어른들과 함께 손잡고 지역사회와 국가를 위해 봉사를 하면서 이 사회를 이끌어 주었으면해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젊은이들의 뜻이 갈 수 있는 길이 새마을이었으면 해요.그러기 위해서는 기성세대들도 많은 것을 내려 놓아야하구요. 새마을운동이 뭐에요. 국민운동이에요. 누구나가 할 수 있는거에요. 젊은이들도 새마을운동이 나쁘다 좋다 말로만 하지말고 몸소 한번 실천을 해보고 새마을운동에 대해 이야기해야 되는 거에요.새마을운동이 봉사로 세대간의 격차를 줄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새마을운동의 옛 구호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처럼 모두가 잘사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구미/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8-08-24

비단 주고 산 언니의 꿈으로 왕비가 된 문희… 1천년 전에도 사랑은 뜨거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으로부터 최소 1천 년 전을 살았던 신라 사람들도 21세기 우리와 똑같이 사랑을 하고 결혼도 했다. 까마득한 과거 서라벌에도 비극적인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하던 청년이 있었고, 매력적인 사내와의 결혼을 꿈꾸며 노심초사하던 처녀가 있었다.‘삼국유사’ ‘삼국사기’ ‘화랑세기’ 등 신라의 역사를 기록한 고문헌을 읽다보면 드물지 않게 ‘러브 스토리’가 등장하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것은 재미있고 웃음을 부르는 반면, 또 다른 어떤 것들은 슬프고 애절하다.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신라의 여인들도 오늘날의 여성처럼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에 애태우고, 근사한 남성과의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을 꿈꾸곤 했다.그중 일흔 살의 왕이 사랑했던 열여섯 살 소녀의 이야기와 ‘꿈을 거래한 덕분’에 왕비가 된 김유신의 여동생 이야기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회갑 넘긴 소지왕, 16세 소녀 벽화를 만나다“통치하는 기간 내내 백성의 삶을 가까이서 살폈고, 무엇보다 민생을 중시했다”고 평가받는 소지왕(재위 479~500).자비왕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겸손한 태도를 가졌기에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았다.재위 기간에도 고구려와 일본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방어해 나라가 곤경에 빠지는 걸 막았고, 서라벌 곳곳에 성을 쌓아 국방을 튼튼히 했다.행정 시스템을 개선하고, 백성의 결속을 다짐으로써 정치력을 극대화시킨 것도 눈길을 끈다. 신라에서 최초로 역참(驛站)을 설치하고 관도(官道·국가가 관리하는 길)를 보수한 것도 소지왕의 업적이다.여기에 더해 사람들이 굶주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왕궁의 곳간을 기꺼이 열었고, 고생하는 군사들을 직접 찾아 따뜻한 겨울옷을 나눠주기도 했으며, 고통 받는 고아와 홀로 사는 노인들을 위로했다니 분명 자애롭고 좋은 왕이었다.그런 소지왕이 생애 단 한 번 ‘좋지 못한 소문’에 휩싸인 적이 있으니, 열여섯 소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 것이다. ‘삼국사기’에 실린 관련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회갑을 넘겨 일흔이 가까워오던 소지왕이 신라의 북쪽 국경마을 날이군(捺已郡·현재의 영주 지역)으로 순시를 나갔다. 왕을 맞이한 그 마을 유력자가 자신의 딸 벽화(碧花)를 치장해 바쳤다. 겨우 16세 소녀였다. 받을 수 없다고 거부하며 돌아왔지만 얼핏 본 소녀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손녀 또래의 여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이후 소지왕은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변복(變服)하고 날이군을 찾아 여러 차례 벽화와 통정했다. ‘왕이 신중하지 못하게 처신한다’는 고약한 풍문이 떠돌았다. 그러나 남들의 손가락질도 그의 정열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벽화를 왕궁으로 불러들인 소지왕은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기도 했다.”때때로 사랑은 노인을 ‘철없는 소년’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보편적이지 않지만 스스로 제어할 수 없고, 견딜 수도 없는 연애의 감정은 1천500년 전 신라에도 분명 존재했던 것이다. ◆ 문희, 비단을 주고 언니의 꿈을 사다앞의 에피소드에선 남성(소지왕)이 적극적이었다면, 이번에 소개할 이야기는 ‘능동적인 여성’이 주인공이다. 이미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겠지만 ‘삼국유사’에 기록된 걸 간략하게 소개한다.“신라의 장군 김유신에겐 보희와 문희라는 두 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어느 날 언니 보희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문희에게 들려줬다. ‘서라벌 높은 산에 올라가 소변을 보았는데 시내가 온통 물바다가 돼버렸다’는. 당시 신라에선 꿈과 별자리로 미래를 점치곤 했다. 그 꿈이 상서로운 것임을 눈치 챈 문희가 비단 한 필을 주고 언니의 꿈을 샀다.며칠 후 김유신의 집에 풍채 좋은 김춘추라는 청년이 찾아왔다. 사소한 사고로 옷이 찢어진 김춘추는 보희를 대신해 바느질을 해주러 온 문희를 눈여겨보았다. 오래지 않아 사랑에 빠진 문희와 김춘추는 밀애를 시작했고, 연이어 문희가 임신을 함으로써 김춘추와 혼인하게 된다. 모두가 알다시피 김춘추는 후에 태종무열왕(재위 654~661)이 되는 인물이다.”겨우 비단 한 필로 ‘왕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문희의 일화는 어떤 측면에선 농담처럼 재미있고, 또 달리 보자면 낭만적이기도 하다.하지만 이 ‘러브 스토리’를 당시 신라의 정치·사회적 현실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역사학자들도 다수다.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발행한 ‘신라의 사회 구조와 신분제’에선 김춘추와 문희의 결혼 이면에 자리한 김유신의 야심(野心)을 이렇게 쓰고 있다.“김유신은 누이동생인 문희를 김춘추와 혼인시켰다. 또 자기 자신도 김춘추의 딸인 지소부인(智炤夫人)과 혼인하여 김춘추 가문과 중복적인 인척 관계를 맺었다.이는 진골로서 그 가문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자 하는 김유신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김유신 집안은 신라 왕실 안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굳히고, 진골로서 신분적 위치도 확고히 할 수 있었다.”둘의 결합은 문희가 우연히 언니의 꿈을 사서 얻은 행운이거나, 김춘추의 애정 공세가 만들어낸 극적인 드라마가 아니라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신라에서 자기 가문의 권력을 강화하려 한 김유신의 계략에 의한 것이었을까?지금도 이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내놓을 사람은 없다. 당시로 돌아가 문희와 김춘추, 김유신에게 직접 물어보고 그들의 대답을 들어보기 전엔. 다만 이것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신라 시대나 오늘날이나 사랑을 차지하고 결혼에 이르기 위해선 무엇보다 ‘적극적인 능동성’이 필요하다는 것 말이다. 학계로부터 “음탕한 동시에 무능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신라의 진성여왕. 시인 김선향이 “권력자가 아닌 여성으로서 가졌을 진성여왕의 고뇌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시 한 편을 본지에 보내왔다. 역사 인물에 대한 문화적 해석을 독자들과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이를 게재한다.진성여왕을 위한 변명경문왕과 문의왕후의 딸너는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다음란과 방탕, 신라 멸망의 원흉너에게 찍힌 낙인을 지운다오라버니 정강왕의 유언으로 너를 기억한다만(曼)은 총명하고 민첩하여골상(骨相)이 장부와 같으니옛날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처럼그녀를 왕으로 받들라즉위 다음해 숙부이자 애인 위홍이 죽자너는 큰 슬픔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밤낮으로 남자들에 탐닉한다이미 신라는 바람 앞의 등불서라벌에 흉년이 들고 해가 뜨지 않는다근년에 백성이 굶주리고 도적이 일어나는데이는 내가 덕이 없는 까닭이다이제 숨어 있는 어진 자 요(嶢)에게 왕위를 물려주노라너는 비단옷을 버리고 탐스러운 머릴 자른다여왕이 아닌 여자가 되어홀연히 순례를 떠난 너는그해 겨울 영원히 세상을 버린다그 무엇도 아닌 본래의 너로 돌아간다.◆ 시를 쓴 김선향 시인은…196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충남대학교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2005년 문학계간지 ‘실천문학’ 신인상에 당선된 후 창작 활동을 본격화했다.2016년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문학적으로 탐구한 시집 ‘여자의 정면’을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수원시 다문화센터에서 여성 결혼이민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오랫동안 했었고, 시 쓰는 모임 ‘사월’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8-24

민원 ‘Zero’ 승차 불안 ‘Zero’ 대기 시간 ‘Down’ 포항버스는 대변신 중

일반적으로 도시의 버스노선체계를 살펴보면 시내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수많은 노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그 도시의 시민이라도 해당 지역에 살지 않고서는 선뜻 노선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확실하게 아는 노선이 아니면 대중교통인 버스를 이용하기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남들에게 대중교통의 이용을 권하기도 어렵다.버스가 택시나 승용차와 경쟁하려면 이들을 앞서는 장점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버스를 타면 승용차처럼 편히 앉아서 문 앞까지 갈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불편하지는 않아야 하며, 가능하다면 승용차만큼이나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어야 한다. 포항시는 교통여건 변화에 맞춰 시내버스 노선개편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시내버스 노선 전면개편 이후 교통여건 변화에 따라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지역주민의 이용 편의와 이용자 중심의 대중교통체계 구현하고자 지난해 2월 노선개편 사업에 착수했다. 올 하반기에는 주민설명회 등을 통해 시민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작년 2월 개편 착수, 올 하반기 주민설명회 개최도심 환승센터 확보·급행좌석 버스제 도입양덕·문덕지구 등 신규 주거지 순환버스 검토철도역·터미널·공항 등 교통 거점시설 연계 등심도있는 분석 통한 최적의 대안 마련 ‘기대’버스수송 분담률 등 각종 통계지표 파악 안돼현실과 동떨어진 결과 나올까 우려도 커□ 노선 개편에 대한 우려노선 개편이 추진 중이지만 일부에서는 이번 개편이 현실과 동떨어지게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포항시의 버스이용객이 해마다 줄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인 가운데, 특히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등으로 시내버스의 경영난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서 적자 노선에 대해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포항시의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이런 가운데 버스 수송 분담률과 같은 교통량 사용 분석을 가늠하는 각종 통계지표 등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서 주먹구구식 대중교통 정책을 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상위 정책인 포항시 도시기본계획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아 하위 개념의 인구 추계 통계는 물론, 버스 수송 분담률과 같은 통계도 나오지 않고 있다. 관련해서 포항시는 내년 하반기 전면적인 버스 노선 개편을 위해 용역을 의뢰해 대중교통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등 시민들의 편의와 수요에 적합한 대중교통 정책을 펴기 위해 전문가 자문 등 다방면으로 최선의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노선개편 어떻게포항시의 이번 버스노선체계 개편은 무엇보다 도시 팽창과 교통여건 변화로 대중교통의 핵심인 시내버스에 대한 시민들이 요구사항이 날로 증대하고 있어서 이에 따른 시내버스 노선개편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또한 그동안 교통카드 결제시스템 도입, 무료 환승제 실시, 버스도착 예고시스템 도입, 그리고 읍·면 오지지역중심으로 공영버스 도입·운영하고 있지만 오히려 버스 이용객은 해마다 줄고 있는 점을 심각하게 판단했다는 후문이다.포항시는 이밖에도 ‘더 빠르고, 더 편리하고, 더 저렴한’ 대중교통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로 막바지 준비에 총력을 쏟고 있는 가운데 최근 교통안전의 주요 키워드로 꼽히는 ‘보행자’와 ‘고령자 안전’ 등 생활지역에서의 보행자 안전증진에 대한 고려도 함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특히 버스노선체계의 개편을 앞두고 예측되는 문제점 및 시민, 관광객 등 이용자들의 혼란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모아 시행 초기 예상되는 혼선과 민원 등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대책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교통정책이 모든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키지는 못하지만 서민의 발을 자처하는 대중교통을 서민들이 바라는 시간대에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노선에 대한 편리함 등을 꼼꼼하게 챙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포항시의 이번 노선체계 개편에는 △도심 환승센터 신규확보 및 간선·지선노선 운영방법 재정립 △배차간격의 적정성 검토 및 죽도시장 경유노선 시장주변 분산운영 △급행좌석 버스제 도입 검토(국도 7호선, 국도대체 우회도로 운행) △포항형 교통카드 도입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신규 주거지 순환버스 도입 검토(양덕, 문덕지구 등) △교통 거점시설 연계방안 마련(철도역, 터미널, 공항, 여객선터미널) 등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 최적의 대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시민 의견 최대한 반영포항시는 앞서 노선개편 초기 단계에서부터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 반영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용자 중심의 대중교통체계를 만들기 위해 시민 참여단을 모집한데 이어 참여단의 아이디어를 시내버스 정책개선에 적극 반영할 계획이다.이강덕 포항시장은 “이번 버스노선체계 개편은 민원 ‘0’, 승차불안 ‘0’, 기다리는 시간 ‘짧게’를 목표로 시민을 비롯한 이용자 중심의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노선의 효율성과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를 위한 노선체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관련해서 포항시는 단순히 시민들만을 위한 노선체계가 아닌 지역적 특성과 외지인 유입 등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개방적, 미래적 노선체계 나아가 대중교통체계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버스는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말 그대로 ‘시민의 발’이다. 개인 중심이 아니라 대중이 중심이 돼야 하며, 서로가 조금만 배려하고 양보하는 생각을 가진다면 모두가 이용하는데 편리한 대중교통이 될 것이다. 포항시의 버스노선체계의 개편이 가야 할 방향이다. 이용객 감소로 위기맞은 포항버스깊어지는 버스업계 노사 갈등부족한 동·서축 연결도로 등산적한 문제점 우선 해결돼야포항시에는 지선 94개, 간선 15개의 노선에 총 200대의 버스가 운행 중이다. 지선은 파란색 버스로 좁은 지역안에서 많은 곳을 다니며 간선버스 등으로 쉽게 환승할 수 있고, 간선은 초록색 버스로 시 외곽에서 도심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시내버스는 ‘시민의 발’로서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가장 친근한 대중교통수단이지만 과거의 위상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코리아와이드 포항’에 따르면 버스 이용객 숫자는 2016년 2천680만명에서 2017년 2천56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올해는 월평균 이용객 180만명을 바탕으로 추산하면 2천370만명 수준으로 더욱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포항시의 차량등록대수는 2016년 24만8천281대, 2017년 25만4천292대, 2018년 25만8천713대로 해마다 늘고 있다. 더구나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시행으로 촉발된 버스업계 노사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며 포항 버스업계의 임금·단체협상이 결렬돼 파업의 먹구름마저 드리우고 있다.이 외에도 드러난 문제점은 많다.우선 동서축을 연결하는 버스 노선이 부족하다. 대부분의 노선이 남북축을 연결하고 있는 실정으로, 인구 7만5천여명이 거주하는 경북지역 최대 동(洞)인 장량동의 경우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할 때 포항역까지 10여분 정도 걸리지만 시내버스를 이용할 경우에는 환승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최소 30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되는 현실에 처해 있다. 인접한 흥해와 장량동을 오가는 버스노선도 상황은 비슷하다.일부 지역의 인프라 부족도 이슈다. 일례도 북구 흥해읍 학천교차로 정류장에 드나드는 버스는 고작 배차 간격 20분의 175번 버스가 전부로, 875세대 삼도뷰엔빌과 779세대 학천삼도미래타운1차 및 360세대 삼도뷰엔빌스마트 등 총 2천세대가 넘는 아파트단지가 몰려 있는 곳 치고는 너무 열악하다. 더구나 그 흔한 버스정보시스템(BIS) 하나 없으며 인도도 없어 바로 아래 하천 부지와 도로 사이의 1m 남짓한 폭이 버스를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의 전부다. 안전사고 문제까지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이런 가운데 포항시의 버스 노선 개편에 시민들이 거는 기대가 크다. 즉, 포항시가 기본적인 대중교통 인프라와 시민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열린 행정을 펼치기를 시민들은 바라고 있다. ‘자가용 없이 살기 어려운 포항’의 대중교통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인구유출 등의 근본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포항시 버스 노선 개편이 큰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끝

2018-08-23

협찬받은 무대복 입고 전국대회 ‘장려상’… 최선 다한 결과 가슴 벅차

▲ 김선애 전 경상북도새마을부녀회장이 구미시새마을여성합창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김선애(56) 전 경상북도새마을부녀회장은 1962년 11월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당시 의성에서 새마을부녀회장을 하던 모친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봉사와 새마을운동을 접했다. 1985년 결혼을 한 후 대구에서 살면서도 봉사활동에 참여했다.이후 남편 직장때문에 구미로 이전한 뒤 구미시새마을여성합창단장을 시작으로 새마을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2006년 구미시새마을부녀회장을 6년간 역임하고 2012년부터 올해 2월까지 경상북도새마을부녀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12년동안 구미시와 경상북도 새마을부녀회장을 역임하면서 알뜰장터와 새마을대청소 등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올해 2월 경북도새마을부녀회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지역 봉사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구미 새마을여성합창단장 시절보조금 없어 발품팔아 단원 구색 갖춰단원들 자비로 전국대회 출전도베트남서 첫 해외공연… 열악한 조건에도땀 흘리며 마치자 끊임없는 박수세례△봉사는 대가를 바라고 하는게 아니다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어요. 어릴적 기억에 어머니가 새마을부녀회장을 오래 하셨어요. 지금은 임기가 있어 임기가 끝나면 다른 사람이 하지만, 당시에는 부녀회장을 하면 임기라는게 없었던 것 같아요.시골이었으니까 더 그랬겠죠. 그리고 우리집이 구판장을 했으니까 당연히 어머니가 부녀회장을 하신거 같아요. 시골동네여서 그런지 어머니가 부녀회장이고 다른 아주머니들은 모두 부녀회원이었어요. 동네 전체 아주머니 모두가 부녀회원이었죠. 내 기억으로는 동네에서 무슨 일만 있으면 어머니를 비롯해 동네 아주머니 모두 모여 일을 했어요.지금 생각해도 그땐 단합이 참 잘되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도 매우 적극적인 성격이셨기에 동네 잔치, 동네 청소 등 모든 일에 적극적이셨어요. 내가 대구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 하기 전까지 어머니가 하시는 일들을 옆에서 보면서 자랐죠. 제가 조금 철이 들고나서는 어머니가 하는 일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저리 열심히 일을 하는지 몰랐거든요.나중에 알았죠. 그게 봉사였고, 새마을운동이라는 것을. 사춘기 시절 어머니께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냐고 물어 본 적이 있었요. 그때 어머니는 웃으면서 “봉사는 댓가를 바라고 하는게 아니다”라고 대답하셨는데 그 말이 잊혀지지 않아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바로 새마을정신이 아니었나 싶어요.△구미시새마을여성합창단장을 맡다결혼하고 대구에서 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직장문제로 구미로 오게 됐어요. 대구에서도 봉사활동을 했었으니까 구미에 와서도 봉사활동을 계속했죠.지역에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다보니 여러사람들을 알게됐어요. 그러다 어느날 한 지인분이 새마을여성합창단장직에 나를 추천하셨어요. 난 합창단원을 한 적도 없고, 합창단에 대해 솔직히 아는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거절을 했죠. 거절은 했는데 너무 신경이 쓰이는 거에요.그래서 여성합창단에 대해 조금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이게 원래는 송정어머니회 합창단이었다가 나중에 없어지면서 새마을합창단에 편입이 되었더라구요.근데 보조금이나 이런게 없다보니 사실상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그러니 활동하기가 많이 어려웠던거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았어요.합창단에 대해선 모르지만 대외적인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또 부단장이 있으니까 내부적인 일은 부단장이 하고 외부적인 일은 단장이 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구미시새마을여성합창단장을 하기로 결정했죠.근데 막상 합창단을 보니까 힘든 점이 한 둘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내가 합창단에 대해 잘 모르고, 외부인이다보니 보이지 않는 텃새 같은 것도 조금 있었구요. 그런건 사실 별 문제는 아니었고 진짜 문제는 너무 열악한 환경이었어요.합창단원들이 무대에 서려면 그래도 무대복이라도 변변한게 하나 쯤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어요. 그래서 발품을 팔았죠. 돈이 없으니 발품이라도 팔아야 했어요. 다행히 대구에서 생활할때 아시는 분이 섬유공장을 하고 계셔서 무대복을 만들 수 있는 천을 협찬을 받고, 무대복을 만드는 것도 전부 협찬을 받았어요. 구두도 협찬을 받고.그분들에게 그냥은 못가니까 연락해서 점심이나 하자고 약속을 잡고 밥 먹으면서 부탁을 했죠. 그렇게 발품을 팔아 단원들의 복장을 다 갖출 수가 있었죠.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면서 맺은 인연으로 그분들이 도와주신거죠. 지금도 그때 도와준 분들에게 감사하죠. 참 고마운 분들이었어요. △전국합창대회에서 장려상을 받다합창단이 어느정도 구색이 갖추어진 뒤로 여러 무대에 오를 수 있었어요. 매년 두 차례 정기연주회와 각종 행사에 특별출연을 했죠. 그래도 구미시새마을여성합창단이니만큼 구미를 알릴 수 있는 합창단이 되고 싶었어요.좀 더 전문적인 합창단이 되어야했죠. 하지만 재정적으로 열악하다보니 전문가를 모시기가 사실 어려웠어요. 지역 대학에는 음대가 없다보니 다른 지역에 계신 분들이 오셔야 하는데 교통비 드리기도 빠듯한 실정이었으니 사실상 어려웠어요.사실 반주자와 지휘자는 전문가가 해야하는 거에요. 시에서 보조금을 주긴 했는데 사실상 그분들에겐 너무 적은 금액이었죠. 사실상 봉사개념으로 봐야 했어요.그래도 그런 분들이 계셔서 전국대회에 나갈 수 있었어요. 보조금은 전부 그분들에게 줄 수 밖에 없으니 단원들은 모두 자비로 했어요. 연습하고 난 뒤 밥이나 간식 같은 건 모두 단원들이 자비로 했죠. 그만큼 합창단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어요. 그런 열정으로 전국대회에 나가게 됐어요.내가 단장을 맡고 처음 나가는 전국대회가 바로 제주도에서 열리는 탐라전국합창경연대회였어요. 2004년도에 열린 대회에 우리가 참가했어요. 그때 장려상을 수상했어요. 비록 1등은 아니었지만 열악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었기에 그 의미가 남달랐어요. 그래서인지 당시 언론에서도 많이 다뤄주었어요.신문에 우리가 장려상을 탄게 보도가 많이 되었죠. 새마을여성합창단이 새마을운동의 발원지인 구미를 전국에 알렸다며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도 가슴 한켠이 뜨거워 지는게 참 고맙고 대견하게 생각해요. 그 일을 계기로 많은 행사에서 우리를 찾아주셨어요.환경연수원의 숲속음악회, 금오공대 총동창회 축하공연, 길거리 공연 등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에는 꼭 우리 새마을여성합창단이 함께 했죠. 참 행복했어요. △해외 공연으로 새마을운동을 알리다전국 대회에서 입상을 한 뒤 해외 공연까지 가게 됐어요. 제일 기억에 남는 해외 공연이 처음으로 간 베트남 공연이었어요. 첫 해외 공연이라 사실 기대했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너무 시설이 열악한 거에요. 정말 너무 놀랐어요.공연장이라고 마련된 곳이 그냥 천막이 쳐진 곳이었고, 그 더운날에 냉방은 전혀 안되어 있었어요. 대형 선풍기가 있었는데 그건 또 관람하는 사람들 쪽으로 되어 있었죠. 그래도 공연을 하러 간 이상 공연을 무사히 마쳤죠. 정말 열심히 했어요. 무대에 조명 장치가 없어 단원들이 노래를 하면서 손전등을 돌려가며 노래를 불렀으니까요.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땐 진지했어요. 정말 좋은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진심으로 공연을 열심히 하니까 통하더라구요. 그사람들도 우리가 무대복을 입고 땀을 줄줄 흘려가며 공연을 하니까 감동을 받았었나봐요.박수가 끊임없이 나왔어요. 베트남에서 그렇게 열정적인 박수를 받은 사람들은 아마 우리 합창단원밖에 없을 거에요. 무엇을 하더라도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게 새마을운동이잖아요. 난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우리 단원들은 공연으로 베트남 사람들에게 새마을운동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 것이라고.구미/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8-08-23

전시회·예술교육·체험까지 ‘원스톱’ 복합문화예술공간 세계 예술산업 새 기준점 제시

글 싣는 순서 1. 밀라노 예술가들의 성지 ‘토르토나’의 탄생2. 이탈리아 넘어 세계 최고를 꿈꾸다 ‘슈퍼 스튜디오 그룹’3. ‘두마리 토끼 한 번에’ 순천 문화의 거리4.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에서 가능성을 보다5. 자생적 문화생태계 구축을 향해 가야할 길□ 토르토나 지구를 문화예술지구로 만들다이탈리아 밀라노는 화려한 패션과 명품거리로 대변되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돼 있다.여느 성공한 도시와 마찬가지로 패션 1번지 밀라노가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희생이 존재했다.밀라노라는 도시가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패션 1번지였고 100년, 200년 뒤에도 아무 노력없이 패션 1번지 자리를 사수할 수 있다면 언급할 가치가 없는 이야기다.이처럼 오늘날 밀라노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기업이 있다.이탈리아 최고의 문화예술기업 슈퍼 스튜디오 그룹(Super Studio Group)이다.슈퍼 스튜디오 그룹은 1983년 슈퍼 스튜디오 13(Super Studio 13)이라는 이름으로 토르토나 지구에 처음 발을 내딛었다.슈퍼 스튜디오 13은 오픈당시 사진작가, 미술감독, 패션디자이너, 홍보전문가 등 문화예술산업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춘 사진스튜디오 13개로 구성됐다.독립적인 시설인 개별 스튜디오에 의상실, 분장실, 음향장비 등을 갖췄고 작품제작, 사진촬영, 홍보활동 등 모든 작업이 한 번에 가능했다.불과 2∼3년 만에 유명세가 퍼지면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들이 이 스튜디오를 활용하기 시작했고 슈퍼 스튜디오 13은 세계 예술산업에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슈퍼 스튜디오 그룹 공동창업자인 플라비우 루치니(Flavio Lucchini)씨는 “처음에는 단순히 밀라노에서 유명한 사진작가를 모아 이들을 키워내기 위한 장소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며 “그런데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고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듭하면서 우리는 밀라노를 국제적인 패션도시로 만드는데 마중물이 되기로 하고 또다른 벽을 넘어서는 도전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 복합문화예술공간 ‘슈퍼 스튜디오 피우’슈퍼 스튜디오 13이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전시회, 예술교육, 체험활동이 가능한 복합문화예술공간의 필요성이 대두됐다.슈퍼 스튜디오 그룹 공동창업자인 플라비우 루치니와 지셀라 보리올리(Gisella Borioli)는 패션, 커뮤니케이션, 창조영역의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체계적인 공간을 밀라노에 제공하고자 했다.이에 그들은 슈퍼 스튜디오 13에서 200여m 떨어진 장소에서 생산공장을 가동했던 미국계 전기조명업체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이 떠난 폐공장부지 1만7천㎡를 매입해 슈퍼 스튜디오 피우(Super Studio Piu)를 만들었다.슈퍼 스튜디오 피우는 현대적이고 다재다능하고 횡단하는 멀티 장소이자 패션, 예술,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문화,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활발한 사람들과 대중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또한 밀라노 패션 위크(Milano Fashion Week), 밀라노 디자인 위크(Milano Design Week)로 대표되는 각종 행사, 전시회, 컨벤션, 박람회 등 대규모 행사 개최장소로 활용되고 있다.뿐만 아니라 사내 파티, 동호회 모임, 댄스공연 등 비공식적이고 소규모로 치러지는 행사를 위한 장소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크기가 다른 공간들은 가구, 자동차, 광고 영화, TV촬영 등 어떤 종류의 서비스든 넓고 편안한 공간이 필요한 곳에 딱 맞는 공간이며 트럭형 입구 형태라 접근하기도 용이하다. □ ‘세계적 기업이 한 곳에’ 지상 최대 디자인 쇼슈퍼 스튜디오 그룹은 매년 4월 개최되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Milano Design Week)에서도 자신들의 진가를 톡톡히 발휘하고 있다.약 1주일간 진행되는 이 전시회에서 슈퍼 스튜디오 그룹은 지난 2015년부터 슈퍼 디자인 쇼(Super Design Show)라는 단독행사를 마련해 디자인 위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슈퍼 디자인 쇼는 예술과 디자인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크고 작은 글로벌기업의 제품을 새롭게 디자인하며 상품가치를 창출하는 노력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회다.이탈리아 자국 기업 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중국, 프랑스, 덴마크, 일본, 벨기에, 영국 등 세계 20여개국에서 각 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기업들이 저마다 독특한 디자인으로 작품을 출품하고 있다.한국에서도 삼성과 LG가 슈퍼 디자인 쇼에 참여해 국가 위상을 드높였다.시대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이 행사를 관람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2천명이 넘는 기자와 1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행사장을 찾고 있으며 불과 4년 만에 지상 최대의 디자인 쇼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치아라 페렐라 팔다(Chiara Ferella Falda) 슈퍼 스튜디오 홍보팀장은 “세계 트렌드를 이끄는 이탈리아 밀라노이지만 변화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없이 결과를 기대한다면 그 상태 그대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며 “지금까지도 충분히 성공적인 쇼를 보여줬지만 앞으로도 더욱 뛰어난 쇼를 만들기 위해 인도, 러시아, UAE 등 이전까지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의 기업을 유치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다”고 밝혔다.지셀라 보리올리슈퍼 스튜디오 그룹 창업자 인터뷰비전과 진심을 팔아라장기적 투자 바탕으로창작활동에 매진하라포항 꿈틀로,한국의 밀라노로재탄생할 것모두가 안된다고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불가능해 보였던 도전을 성공적인 결과로 이끌어낸 그들은 이제 신화로 남게 됐다. 이탈리아 최고의 문화예술기업 슈퍼 스튜디오 그룹(Super Studio Group) 공동창업자인 지셀라 보리올리(Gisella Borioli·사진) 대표와 남편 플라비우 루치니(Flavio Lucchini)씨의 이야기다.이탈리아의 유명 잡지 클래스(Class)가 선정한 이탈리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으로 꼽힌 보리올리 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나눠봤다.- 슈퍼 스튜디오 그룹의 창업배경은△남편이 패션잡지 보그(Vogue)의 창간인이자 편집장이었고 나 또한 패션관련 리포터로 근무하고 있어 패션, 예술, 디자인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패션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머리를 맞댄 결과 작품제작, 사진촬영, 전시회, 예술가양성 등 모든 과정을 한 곳에 모은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좋은 아이디어였지만 실행을 하기에는 부담이 컸다.주어진 돈이 많지 않았는데 밀라노 도심의 건물은 입주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쌌기 때문이다. 적당한 공간을 찾다보니 토르토나(Tortona)라는 옛 공장지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폐허에 가까운 곳이었지만 근처에 기차역이 있어 교통이 좋았고 건물임대료도 매우 저렴했다. 그리하여 슈퍼 스튜디오 그룹의 원조인 슈퍼 스튜디오 13(Super Studio 13)을 설립했는데 이곳에는 사진촬영공간, 의상실, 예술인 양성학교 등이 마련됐다. - 슈퍼 스튜디오 그룹이 오늘날 세계 최고의 문화예술기업으로서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1999년 토르토나 구역 내에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공장 부지가 매각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정원과 테라스, 야외공간, 사무실, 창고가 있는 1만7천㎡의 넓은 공간이었지만 매각대금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은행에 대출을 시도했지만 뚜렷한 비즈니스 계획이 없다며 거절당했다.고민 끝에 투자설명회를 열어 당시 3천만유로라는 많은 투자금을 모았다. 우리는 투자자들에게 비전을 팔았고 그 진심이 통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매입한 건물에는 슈퍼 스튜디오 피우(Super Studio Piu)를 세웠다. 단순히 예술활동 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예술, 패션, 디자인, 엔터테인먼트 등이 모두 가능한 복합예술문화공간이 탄생했다.슈퍼 스튜디오 피우가 설립된 이후 토르토나에도 변화가 생겼다. 아르마니(Armani), 펜디(Fendi) 등 유명 패션브랜드들이 줄지어 이곳에 쇼룸을 만들었고 크고 작은 공방들도 들어왔다. 오직 토르토나 만을 위해 일하는 컨설팅업체 토르토나 로케이션스(Tortona Locations)의 역할도 토르토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 슈퍼 스튜디오 그룹의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포항 ‘꿈틀로’에 조언을 부탁드리자면△슈퍼 스튜디오 그룹을 처음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4가지가 있다.엄격한 작품선정, 최상의 품질, 혁신적인 요소, 미적인 아름다움이 바로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의 가장 끝부분에 연결돼 있는 단어는 예술이다. 아무리 뛰어난 쇼여도 예술적인 요소가 결여돼 있다면 그것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더라도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슈퍼 스튜디오 그룹은 밀라노를 제작의 공간에서 창조의 공간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장기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인내심을 갖고 창작활동에 매진한다면 꿈틀로도 포항이라는 도시를 창조의 공간으로 충분히 탈바꿈시킬 수 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2018-08-21

새마을금고 저축했던 女직공, 고향에 선물한 소 한마리로 ‘장관 표창’

나이 어린 10대 여직공들 위해새마을운동 교육·절약정신 심어줘공단 내 근로자 90% 이상이 새마을금고 회원고기잡는 법 가르쳐주는 새마을운동어려움 딛고 일어서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복지△새마을운동 교육으로 어린 직공들을 선도하다구미국가산업단지 내 직물협업단지에서 근무하는 80%이상이 미혼 여성이었어요. 대부분 나이가 어린 10대 여성들이었죠. 그 애들도 참 고생을 많이 했어요. 힘들었을 거에요.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당시 동구방직과 코오롱 회사 안에 고등학교가 있었어요. 시내에 한 곳도 있었구요. 초창기에는 대부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니까 어린 애들이고 하니 그런것이었지만 월급도 오르고 하니 하나 둘씩 노는데 정신이 팔리기 시작했어요.촌에서 자라 이곳에 와서 돈을 제법 벌게되니 씀씀이가 커지기 시작한거죠. 그렇다고 여긴에선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어렵게 번 돈이니 절약하며 아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어요. 회사에는 일만 잘 시키면 되지 그런것까지 간섭을 하려 들지 않았구요. 또 어린 여자애들이 돈이 있다는 소문이 나니까 야간에 그 여자들을 꼬시려는 남자들도 생기고. 풍기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어요.그냥 가만히 둘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도 그런것이 이런 안좋은 소문들이 나기 시작하니까 시골 가족들이 딸을 공장에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거에요.당시에는 유교적인 사상이 강해서 안그래도 딸을 객지로 보내 일을 시키는것을 꺼려하는데 풍기 문제가 생기니까 더욱 안보내려고 했어요. 이런말을 하는게 좀 그렇지만 당시 구미공단에 딸을 보내면 시집은 못보낸다는 소문까지 있었어요.일단 사람이 있어야 공단이 돌아가니까 시골 면장과 사전에 이야기를 하고,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 구직 설명회를 가졌어요. 그 설명회는 일을 하는 당사자가 아닌 그의 부모들에게 하는 거였죠. 월급은 얼마나 주고, 밥과 기숙사 시설은 어떻고, 올바른 교육을 시키기 위해 이런 교육 등을 한다고 설명했죠. 그리고 회사측의 배려로 그 부모들에게 공장 견학까지 시켜주었어요. 그랬더니 사람을 구하는 일은 좀 해결이 되었어요. 그리고 어린 여성 근로자들을 선도하기 위한 새마을운동 교육을 함께 진행했어요.일단 풍기 문제는 당시 구미경찰서의 도움을 받아 매일 야간에 순찰활동을 벌였죠. 또 1976년부터는 구미경찰서와 선도교육을 실시했어요. 처음에는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그도 그럴것이 야간 쉬는 시간에 잡아두고 이런저런 것들을 하지 말라는 교육이었으니 좋아하지 않았죠. 하지만 120여회 정도 반복적으로 하니까 풍기문란 행위는 거의 사라졌어요.그때 구미경찰서 손승락 보안과장과 같이 일을 했는데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운 사람이었어요. 정말 물심양면으로 많은 걸 도와주었지요. △절약정신을 심어주다풍기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고 나서는 사치와 낭비를 추방해야 했어요. 시골에서 올라와 어렵게 번 돈을 함부로 쓰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건전소비생활교육이란 것을 5년동안 300여차례에 걸쳐 진행했어요. 저축을 통해 미래를 설계하는 방법을 주로 교육했어요.어린 직공들어었지만 미래 설계에 대한 관심을 굉장히 높았어요. 지금보다 미래에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이 다들 있었으니까요. 저축을 하기 위해선 돈을 맡길 곳이 필요했죠. 그래서 1979년 3월 회원 45명에 출자금 6만5천원으로 새마을금고를 발족했어요.당시 새마을금고 담당하는 여직원 한명과 둘이서 모든 업무를 봤죠. 힘들었어요. 내 일은 하면서 금융업무도 봐야했으니. 힘들었지만 보람도 있었어요. 공단 내 근로자 90% 이상이 새마을금고 회원이 돼 저축을 하게 됐으니까요. 거기에 사업자금, 농사자금, 주택자금, 학자금 등을 필요할 때 언제든지 빌려 쓸 수 있게 됐으니까요.그리고 그냥 돈만 모으도록 교육하지 않고, 충효 교육도 같이 했어요. 어렵게 번 돈을 미래의 자신을 위해 쓰는 것도 맞지만 키워 준 부모에게도 보답을 해야한다고 가르쳤어요.그러다 어느날 한 어린 여직공이 공단에서 3년 정도 일을 했는데 처음으로 고향에 갈 일이 생겼는데 부모님께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지 물어보는 거에요. 고향이 강원도 인제라고 했어요. 그래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니 소를 한마리 사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죠. 그래서 큰 소를 하나 선물했나봐요.거기에다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경로잔치까지 열어 주었더라구요. 그 소식을 듣고 잘했구나 생각했는데 며칠 후에 그 마을 동장이라는 사람에게서 편지가 왔어요. 이 여 직공이 마을 사람들에게 새마을운동 교육으로 저축도 하고 공부도 하고 있고 있다는 설명을 했나봐요. 편지에는 ‘선생님 이런 험악한 세상에 아이들을 잘 교육시켜 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어요. 정말 힘이 나더라구요. 많이 고마웠어요. 그래서 새마을 운동의 좋은 사례라고 생각해 이 여 직공의 이야기에 대한 공적조서와 마을 동장 편지를 함께 제출했어요.그 후 1년 뒤에 여 직공이 당시 내무부 장관 표창을 받게 됐어요. 그 소식이 또 고향마을에 알려지게 됐구요. 마을에서는 내무부 장관 표창을 받은 사람이 처음이라며 잔치까지 열어주었다고 하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도 뿌듯하고 고마워요.△구미시새마을협의회장을 맡기까지구미국가산업단지 내 직물협업단지에서만 새마을 운동 지도자 활동을 했는데 열심히 하다보니 그게 소문이 났나봐요.한번은 공단동에서 날 찾아와 새마을동협의회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거에요. 당시 국가공단 전체를 맡아달라는 거였어요. 그때가 1978년 이었으니까 지금처럼 국가공단이 크진 않았어요.섬유관련 업체가 대부분이었고, 전자 관련 기업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였어요. 낮에는 나의 고유업무를 봐야하고 저녁에는 새마을교육을 나가야 하고 정말 힘들었지만, 공단동 새마을협의회장을 맡기로 했어요. 앞에서 이야기 한 것들을 공단 전체로 확대해 일을 진행했죠.그러다 1981년에 구미시새마을협의회장을 맡게 됐어요. 사실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어요. 아시겠지만 새마을협의회장은 돈을 받고 하는게 아니라 돈을 내고 하는 자리에요.월급쟁이인 저에게는 사실 부담이었거든요. 그래도 동협의회장들이 회의를 거쳐 추대한 것을 못하겠다고 할 수만은 없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죠. 당시 집에서는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렇지 않아도 새마을교육을 한답시고 집에 붙어있지도 않는 사람이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에서 돈을 내고 구미시새마을협의회장을 한다고 하니 좋아할 리가 없었죠.그래도 집사람이 하지 말라는 소리는 안했어요. 싫은 기색은 있었지만 말은 하지 않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도 고맙죠. 내가 새마을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말없이 날 도와 준 집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니까요.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새마을운동당시에는 검소하고 절약하고 열심히 일해서 잘사는 것이 새마을 운동이었다면 지금은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것이 새마을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은 혼자 잘 산다고 되는게 아니거든. 더불어 잘 살아야하는 거지. 내가 좀 잘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베풀줄도 알아야한다는 뜻이에요.사람은 베풀 줄도 알아야하고 남을 도울 줄도 알아야해요. 도움을 받은 사람은 언젠가 나도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구요. 내가 생각하는 새마을운동은 바로 이런거에요.가끔 메스컴에서 보면 복지정책이라고 여러가지 나오던데. 난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 사람들이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복지라고 생각해요.가끔 주위에 받는거에 익숙한 사람들이 있어요. 도움을 받는데 익숙해진 사람들. 난 그건 잘못된 거라 생각해요.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지금이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새마을운동과 그 정신이 가장 필요한 때인 것 같아요.새마을운동의 참모습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내 말에 수긍할 것이라 믿어요. 그 믿음을 가지고 새마을운동과 정신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래요.구미/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8-08-17

빼어난 미색의 두 여인 준정과 남모… 질투로 얼룩진 죽음의 스캔들

동서양을 불문하고 ‘여성의 질투’가 가져온 비극적인 사건을 기록한 문헌이 적지 않다. 프랑스의 왕비와 황제의 내연녀였던 백작의 부인, 남아메리카 예술가와 그가 사랑했던 몇 명의 여성들이 만들어낸 추문은 문학작품이나 음악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그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고 놀라운 것 중 하나가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의 아내와 첩이었던 ‘여태후(呂太后)와 척부인(戚夫人)의 사연’이다. 중국 역사서 ‘사기(史記)’에 기록된 이 일화는 너무도 끔찍해 그대로 옮기기가 어려울 정도다.“여태후는 유방의 조강지처다. 그와의 사이에서 혜제(惠帝·한나라의 2대 왕)와 노원공주를 낳았다. 유방이 초나라 항우와의 싸움에서 고전할 때 힘을 다해 도왔으나, 정작 한나라의 왕이 된 유방은 여태후가 아닌 척부인과 그녀에게서 낳은 아들을 더 아끼고 사랑했다. 질투의 불길이 타올랐다. 유방이 죽자 여태후는 척부인의 아들을 독살하고 무딘 칼로 척부인의 손과 발을 잘라버렸다. 그것으로는 화가 다 풀리지 않았던지 벌겋게 달아오른 숯을 억지로 먹였고, 눈과 귀를 멀게 한 후 오물 가득한 돼지우리에 척부인을 던져 넣어 굶겨 죽였다.”이처럼 호러 영화 수준의 두려움을 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질투가 부른 무시무시한 스캔들’은 신라에서도 발생했다. 화랑(花郞)이 생기기 전 신라의 청년들을 이끌던 전위 조직 원화(源花)의 리더였던 준정(俊貞)과 남모(南毛)가 바로 그 스캔들의 주인공이다. 먼저 원화가 어떤 조직이었는지 살펴보자.◆ 여성 둘의 뒤를 따르던 수백 명 신라 청년들보각국사 일연의 ‘삼국유사’는 원화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진흥왕은 천성이 어질고 신선(神仙)을 숭상해 민가의 낭자 중 아름답고 예쁜 사람을 택해 원화로 삼았다. 이것은 무리를 모아 인물을 뽑고 그들에게 충성과 효도, 우애와 신의를 가르쳐 나라를 다스리는데 도움을 받고자 함이었다. 이에 준정과 남모, 두 원화가 선택됐는데 둘을 따르는 청년들이 무려 300~400명에 이르렀다.”‘삼국사기’의 김부식 역시 원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적고 있다. 이런 것이다.“진흥왕은 능력 있는 사람에게 그에 걸맞은 벼슬을 주고자 했다. 하지만 개개인의 능력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걱정 끝에 젊은이들을 함께 모여 즐기게 하고 그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 발탁해 쓰는 방법을 택했다. 그런 필요에 의해 준정과 남모가 원화로 뽑혔다.”‘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적힌 문장을 쉽게 해석하면 어린 나이에 왕좌에 앉은 진흥왕은 인재 발탁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향후 신라의 발전을 이끌 젊은이들을 필요로 했다.그 목적의 달성을 위해 청년들이 기꺼이 따를 수 있는 아름다운 두 명의 여성 준정과 남모를 내세웠던 것이다.역사학계에 따르면 준정과 남모는 원화의 리더 역할과 동시에 당시 신라의 왕이 수행했던 종교의식을 곁에서 돕기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지금으로부터 1천500여 년 전. 서라벌 최고의 미모를 가진 준정과 남모, 거기에 빼어난 용모의 귀족 청년들 수백 명이 말을 타고 풍광 수려한 곳을 찾아다니며 몸과 마음을 닦던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시원스러움을 제공한다.그러나 원화의 결말은 아름답지도 희극적이지도 못했다. 다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인용한다.“준정과 남모, 두 여인은 서로의 아름다움을 질투했다. 이에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으로 불러 억지로 독이 섞인 술을 권했다. 준정은 술과 독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남모를 깊은 연못으로 끌고 가 익사시켰다. 남모를 따르던 무리들은 슬퍼하며 준정의 음모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그 노래는 진흥왕과 진흥왕의 어머니 귀에까지 들어갔고,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자 준정도 사형을 피해갈 수 없었다.” ◆ 남모의 죽음은 단지 준정의 질투 탓?서강대학교 사학과 조범환 교수는 ‘한국고대사탐구(韓國古代史探究)’에 발표된 논문 ‘신라 원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놓는다.“비록 원화가 오랫동안 유지되지 못하고 화랑도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었지만, 화랑도가 생겨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사실 한국 사학자들의 화랑(남성) 연구에 비하면 원화(여성)에 대한 연구는 극히 미흡한 수준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는 단순히 사료(史料)가 부족했던 탓일까? 그것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우리의 연구 성과가 미약했기에 일제강점기 일본 역사 연구자들은 원화를 창기(娼妓·몸을 파는 기생) 정도로 격하시키거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가상의 인물로 치부하기도 했다.이와 관련 조 교수는 “원화의 신분이라든가 원화 아래에 있었던 청년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하며 “남모에 대한 준정의 질투가 원화의 폐지를 가져왔다는 단순한 해석에서 벗어나 원화 해체의 이면적 배경을 밝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원화 신분과 ‘해체의 본질적 이유’ 연구해야앞서 언급한 논문 ‘신라 원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삼국시대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주목의 첫 번째 이유는 원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신분이었는지 알려준다는 점이다.“원화는 단순히 미모의 여성이 아닌 화랑과 같은 진골(眞骨)이었고, 왕실의 제사를 보조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 이는 과거 일본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해석이다.또 하나. 조범환 교수의 논문은 원화의 폐지가 단순히 ‘준정과 남모의 스캔들’ 즉, 여성의 질투만이 이유가 아니었을 수도 있음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원화의 해체는 당대 신라가 처한 시대적 상황, 체제 내에서 벌어진 왕과 귀족의 권력 다툼, 약화된 이념 구조의 보완을 위한 차원에서 진행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조 교수 견해에 대한 학계의 연구와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화’ 폐지하고 ‘화랑도’ 설치‘가장 아름다운 절’ 불국사 중건한 지소태후사연과 곡절 많은 삶이라면 법흥왕의 딸이자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태후(只召太后· 574년 이후 사망 추정)도 어느 신라 여성 못지않다.‘이차돈의 순교’라는 사건을 통해 불교를 신라의 국교로 공인한 법흥왕과 보도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지소태후는 당시 풍속대로 여러 명의 왕족·귀족과 관계를 맺었다. 여기서 낳은 자식이 6~7명.신라 24대 왕인 진흥왕과 함께 미실의 첫 번째 남편인 세종(조선 4대 왕인 세종과는 다른 인물)도 지소태후의 아들이다. 딸 역시 여러 명이었다.540년 가을이 깊어갈 무렵 법흥왕이 아들 없이 사망하자, 진흥왕은 겨우 만 6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세상사 이치와 법도를 명확히 분간하기 힘든 나이. 어머니인 지소태후의 걱정은 당연했다. 그런 이유로 진흥왕이 즉위한 이듬해부터 섭정(攝政·임금을 대신해 통치하는 행위)이 시작됐다.지소태후의 섭정 시기에 대해 역사학계는 비교적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그녀는 빼어난 정치가이자 군인이었던 이사부(異斯夫), 거칠부(居柒夫) 등의 조력을 받아 아들이 수행해야 할 통치자의 역할을 큰 실수 없이 해냈다.545년엔 국사(國史) 편찬을 지시했고, 경쟁 관계에 있던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밀리지 않는 뚝심을 보여줬다. 불심이 깊었던 부친 법흥왕의 뜻에 따라 흥륜사를 완공하는 등 불교 중흥에도 공을 세웠다. 지소태후의 섭정은 10년 가량 지속된 것으로 알려졌다.지소태후는 574년 불국사를 중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시기에 ‘아미타여래상(阿彌陀如來像)’과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만들어졌고 이는 불국사에 봉안(奉安)됐다.이를 볼 때 그녀는 아버지 이상으로 불교에 기대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까지도 불국사는 “가장 크진 않지만 가장 아름다운 절”로 이름이 높다.‘화랑세기’에 의하면 지소태후는 원화를 폐지한 인물이기도 하다. 준정이 남모를 죽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지소태후는 망설임 없이 원화를 해체하고, 원화를 따르던 무리들을 화랑으로 재편성했다.서강대 조범환 교수는 ‘원화 해체-화랑도 설치’라는 지소태후의 결정이 가진 의미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새로운 인재 발굴을 통해 어린 아들(진흥왕)이 법흥왕 시절 이루어진 여러 가지 변화를 계속 추진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 것이며, 사상의 변화 과정에서 그것을 수용하고 새로운 종교적인 변화를 이끌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8-08-17

공장 새마을운동으로 ‘경쟁 아닌 협동, 같이 살아가는 동지’ 깨달아

이헌영(88) 전 구미시새마을협의회장은 1930년 안동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6.25전쟁 중인 1952년 배고픔이 싫어 자원해서 군에 입대했다. 8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1971년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될 당시 구미로 왔다. 공단 내 직물협업단지의 공장을 관리하는 직물협업회 상무이사로 근무하면서 새마을운동을 처음 접하게 된다. 자진해 새마을운동 지도자 교육을 받은 이 전 회장은 당시 직물공장에서 근무하는 나이어린 근로자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새마을운동 교육을 시작했다.직물협업단지에서 시작한 그의 새마을교육은 이후 공단전체로 확대됐다. 이후 공단동 새마을협의회장을 거쳐 구미시새마을협의회장과 경상북도새마을협의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이 전 회장은 90이 다 되어가는 나이임에도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1973년 28개 구미 직물공장 관리당시 경쟁 심했던 각 공장들 설득해‘새마을체육대회’ 개최직장윤리·애사심·협동심 크게 고취△ 전쟁통에 배고픔이 싫어 군에 자원입대난 안동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자랐어요. 당시 어릴때는 남들이랑 다 똑같아요. 시골이다 보니 모두가 힘든 시기였어요. 어릴적 시절에 대해서는 별로 할 이야기가 없어요. 배고팠던 기억밖에 없으니까요. 그 배고픔이 싫어 군대에 입대했어요. 6.25가 한창이던 1952년에 입대했어요.군에 가면 밥을 많이 준다는 말만 믿고. 그 당시에 굶어 죽으나 총 맞아 죽으나 별반 다를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만큼 배가 고팠어요. 군에 가니까 정말 밥은 많이 주더군요. 전쟁 중이라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지만, 악착같이 살아 남았어요. 전쟁이 끝나고도 한동안 군에 있었어요.지금 사람들은 이런 말하면 웃을지 모르지만, 난 당시 끼니 걱정하기 싫어서 군에 남았어요. 8년 간 군생활을 했죠. 제대 후에는 대구에서 직장 생활을 했어요. 그러다 구미에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구미로 가게 됐어요.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구미에 첫 발을 딛다군 제대 후 대구에서 일반 직장에 다니다가 1972년 6월 구미로 가게 됐어요. 당시 구미에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있었는데 산업단지 내 직물협업단지를 조성하는게 나의 일이었어요. 당시 산공부에서 직물업체를 관리하도록 구미직물협업회를 조직했는데 내가 상무이사로 있었죠.공단에 중소기업들을 유치해 수출품을 만들려고 했기에 체계가 잡히지 않은 중소기업들을 관리하는 조직이 필요했던거고, 그게 바로 직물협업회였어요. 그 일을 맡아하기로 하고 처음 구미에 왔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와요.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냥 황무지였어요.주민들이 살고 있는 자연부락만 군데군데 있을 뿐이었어요. 자연부락의 주민들도 공업단지 조성으로 이주하기에 바빴어요.그때 9만5천평의 공장부지를 조성하는게 나의 주 업무였는데, 건물 철거에서부터 묘지 이장, 정지작업 등 해야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너무 힘들었어요.당시에는 변변한 이동수단이 없어 조성되는 공단을 걸어다녀야 했고, 밥을 먹고 잠을 잘 곳도 마땅치 않아 여간 힘든게 아니었어요. 그래도 참고 일을 하니까 결국 공장이 하나 둘 들어서고, 산업단지의 모습이 갖춰지기 시작하더라구요.1973년 하반기부터는 일부 공장이 가동을 시작해 수출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어요.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뜨거워지는게 감격스럽고 뿌듯했어요. 그때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어요.△새마을운동 지도자가 되기로 결심하다국가산업단지가 조성이 되고 직물협업단지에는 28개의 직물공장이 입주했어요. 지금은 자동화나 기계화가 되어 있으니 일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당시에는 직기 하나에 사람 1명이 필요했기 때문에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구하기 위해 구미로 왔어요.직물협업단지에 28개의 공장이 있고, 그 공장에 직기가 6천여대가 넘게 있었으니 갑자기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죠. 전국에서 한꺼번에 4천여명이 공단에 들어왔어요. 이 중 80%이상이 미혼여성이었죠. 아무래도 천을 짜는 일이라 어린 여성들이 많았어요.배고픈 시절이라 처음에는 끼니만 해결되면 월급을 주지 않아도 된다며 공장을 찾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래도 어떻게 월급을 주지 않을 수 있겠어요. 국가에서 관리하는 국가산업단지인데. 직물공장이 대부분 영세업체이긴 해도 수출품을 제조하는 공장이어서 많지는 않지만 월급은 줄 수 있는 기업들이었어요. 그렇게 처음에는 모든 일이 수월하게 진행이 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곧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죠. 새롭게 만들어진 공장이고 직원 대부분이 경력이 없는 젊은 여성들이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경력이 쌓인 여성직공들의 이직이 많아진거에요.그 이직이라는 것이 바로 옆에 있는 공장으로 이동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구요. 그러니 업체간에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기껏 기술을 가르쳐 놓으니까 옆 공장에서 월급 조금 더 올려주고 빼내가니 사이가 좋아질리 없잖아요.공장이 28개뿐이니 처음에는 사장들도 서로 잘 지냈는데, 기술자를 빼가는게 문제가 되어 사장들의 사이가 급격하게 나빠졌고, 공장마다 다른 공장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사태까지 일어났어요. 그러니 자연히 생산능률도 떨어졌구요.공단을 관리하는 나로서는 가만히 보고 있을수만은 없없어요. 그러던 중 공장새마을운동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공장 사장들을 찾아가 새마을운동 지도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어느누구도 하지 않으려 했어요.그래서 내가 새마을운동 지도자가 되기로 한 거에요. 1975년 4월 사비로 상공부 제2 새마을연수원 지도반에 입교해 교육을 받았어요. 그게 저와 새마을운동의 첫 만남이었죠. △단합만이 살길이다막상 새마을지도자 교육을 받고 돌아왔는데 어느 업체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새마을운동은 행동이고 실천이다라는 교육까지 받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우선 공장새마을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경영자와 관리자가 새마을운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했어요. 그래서 24개 업체의 사장들로 구성된 새마을 산업시찰단을 조직해 우수새마을업체였던 한일합섬 등 12개 업체를 차례로 시찰하고 추진사례를 듣도록 했어요. 큰 기업의 업무추진사례 등은 중소기업에게 큰 도움이 되다보니 새마을 산업시찰단은 잘 운영이 되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경력직들의 이직으로 인해 사장들의 관계는 좋지 않았어요. 사장들의 관계가 좋지 않으니 당연히 직원들도 다른 공장직원들과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죠.난 이런 문제가 직장윤리와 애사심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공단에 있는 전 사원들이 참여하는 단합행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추진했어요. 예상은 했지만 반대가 무척 심했어요. 겉으로의 반대 명분은 회사가 하루 쉬면 손해가 막대하다는 거였어요. 또 체육대회를 하고 나면 그 다음날 힘들어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반대하는 이유였어요.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거였죠. 다른 공장직원들과 한 자리에 두게 되면 이직을 할 수 있는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계속 찾아가 설득하는 방법 이외에는. 계속 찾아가니까 나중에는 만나주지도 않는 사장까지 생겼죠.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어요.그러다 끈질긴 설득에 지친 13개 업체가 참여하는 새마을체육대회가 결국 열리게 되었어요. 2천여명이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기회사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분위기가 고조되었어요. 참가한 직원들도 사장도 모두가 만족하는 대회가 됐어요. 체육대회 이후 직원들이 애사심을 가지게 되면서, 무단으로 전출하는 일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그러니 당연히 생산성도 크게 향상되었구요. 체육대회는 그 후 1976년 17개 업체가 참여했고, 1978년에는 21개 업체에서 3천여명이 참가하면서 아주 큰 행사가 되었어요. 다른 공단에서도 부러워하는 연례행사가 된 거죠.자연히 사장들도 사이가 좋아졌구요. 서로 경쟁만하는 사이가 아니라 협동해 같이 살아가야하는 진짜 동지가 된거죠. 구미/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8-08-16

신속한 피해 수습… 無에서 有를 창조하다

경북 제1의 도시 포항에 큰 상처를 가져 왔던 11·15 포항 지진. 지진은 지역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그리고 이를 겪으며 축적된 경험을 통해 하나하나 지진 대응책을 만들어 가며 포항은 無에서 有를 창조하고 있다. 포항시는 우선 피해를 입은 시민들을 위해 전국 최초로 지진 전담부서인 ‘지진대책국’을 신설해 운영하고 있으며, 단순히 지진피해 복구와 수습을 넘어 지진에 강한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선제적 지진방재 대책 △피해지역 특별도시재생 및 재건 △이재민들의 안정적 주거실현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포항만의 지진대응 대책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포항형 365 선제적 지진 종합대책’ 4대 플랜(예측·예방, 사전대비, 지진발생 시 대응, 조사·복구)을 마련해 지진으로부터 시민들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방재안전도시로 도약하고 있다. 또한, 지진 피해지역에 국가방재교육공원과 다목적 대피시설, 트라우마 치유센터 등 방재인프라를 구축하고, 현장센터를 통한 시민들과 소통으로 특별도시재생 뉴딜사업과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市, 전국 최초 지진전담부서 신설영일도서관 등 학교·도서관 11곳에스마트지진방제시스템 구축재난구호소·국가방재교육원 등방재선구도시 도약 교두보 마련도시재생뉴딜사업도 ‘잰걸음’□ 포항형 365 선제적 지진방재 종합대책 수립포항시 지진대책국은 ‘포항형 365 선제적 지진방재 종합대책’을 현실화시켜 시민들이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편안하게 일상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먼저 주목할 것이 첨단 ICT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지진방재시스템’이다. ‘스마트 지진방재시스템’은 ‘포항형 365 선제적 지진방재 종합대책’의 주요시책 중 하나로, 광·무선통신을 이용한 광센서가 시설물의 주요부분에 설치돼 지진이나 여진으로 인한 미세한 진동과 균열을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한 조기경보로 학생과 시민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첨단시스템으로, 흥해 영일도서관에 전국 최초로 운영되며 추가적으로 포항시 피해지역 총 11곳의 학교와 도서관에 설치된다.이를 위해 포항시는 앞서 KT와 ‘스마트 지진방재시스템 구축 업무협약’을 체결했으며 시스템 준비기간과 현장 조사를 거쳐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스템 구축에 들어가 오는 8월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이 시스템이 구축되면 각 시설마다 설치된 감지센서들의 데이터 값이 포항시 지진대책국과 각 학교 교무실, 당직실 등에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되고 위험단계의 진동이나 흔들림이 감지되면 즉각 대응할 수 있어 앞으로 첨단기술을 활용한 지진교육과 대피훈련을 통해 학생들이 지진 발생 시에도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질 것으로 기대된다.또한, 흥해읍 일원에 ‘다목적 재난구호소’가 건립되면 평상시에는 주민 체육 및 여가공간으로 활용하고 지진이 발생하면 재해요원활동과 구호물자 수송 등 핵심시설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더해 역사적 가치와 지진방재전문가 양성, 실질적 방재 시스템을 갖춘 ‘국가방재교육원’을 설립해 대한민국 대표 ‘방재선구도시’로서 우뚝 일어설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할 예정이다.‘국가방재교육원’은 우선 역사적 가치 보존을 위해 파손된 일부 건축물을 선별 전시해 현세대는 물론 미래세대에 지진에 대한 위험성을 전달함과 동시에 재앙에 대비할 수 있도록 경각심을 느끼도록 할 것이며, 실질적인 방재대책과 체험시설 등을 완비해 타지역과 차별화된 체험형 방재시설로 만들어진다.또 지진뿐만 아니라 화재 및 태풍과 같은 풍수해, 지진해일까지 연구 분야를 확장해 고차원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재난을 이해하고 극복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방재전문가’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이 밖에도, 포항시는 지난 5월에 보건복지부로부터 국비 3억4천만원의 예산을 확보해 흥해 보건지소를 리모델링하고 10명의 정신건강전문요원을 채용해 ‘포항시 재난 심리지원 센터’를 개원했다. ‘포항시 재난 심리지원 센터’는 지진과 여진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로 일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주민들의 심리 회복을 돕는 등 정신건강증진을 위한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센터는 추후 재난 발생 시 긴급하고 체계적인 심리지원으로 심리적 고통을 경감시키고 재난 전 일상으로 빠른 회복을 위한 각종 마음건강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며, 이와 함께 포항시는 정부 100대 국정과제인 ‘국립트라우마치유센터’ 포항 유치에도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 도시재생 뉴딜(New Deal) 사업 추진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포항 흥해지역에 대한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국내에서 처음 추진되는 ‘특별재난형 도시재생사업’으로 포항시가 중앙정부에 강력하게 건의한 사업이다. 앞서 포항시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가 피해현장을 방문했을 때 ‘도시재생 뉴딜사업’특별지역 지정을 건의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과 총리는 모두 적극 검토를 약속했고, 정부는 후속조치로 대규모 재난피해를 입은 지역을 대상으로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특별재생지역 제도’를 신설해 근거를 마련했다.이어서 김정재(포항 북구) 국회의원은 흥해읍이 특별재생지역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도시재생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 3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개정된 도시재생특별법으로 흥해읍을 중심으로 한 포항 지진 피해지역은 특별재생지역으로 지정돼 LH(한국주택공사)와 함께 용역을 실시하고, 그 결과가 나오면 하반기부터 도시재생 사업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총 사업비는 국비 2천145억원과 지방비 489억원, 민간과 공공기관 3천866억원 등으로 6천500억원 이상이 투입된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일반 도시재생사업과 비교해 볼 때 가장 큰 차이점은 기존 개발이익 중심의 전면 철거방식을 원칙적으로 배제한다는 점이다.‘도시재생 뉴딜사업’은 도시공간을 혁신적으로 활용해 삶의 질 향상 및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마련됐다. 특히, 주민과 지역이 주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가면서 공동체 회복 및 사회통합에 이바지할 수 있으며, 노후 주거지를 쾌적한 주거환경으로 정비하고 쇠락한 구도심을 혁신 거점 공간으로 조성해 지역 기반의 도시재생으로 지역경제 생태계 회복과 함께 상가 내몰림 현상(젠트리피케이션 부작용)에도 적극 대응할 수 있다.이러한 흐름 속에서 포항시도 흥해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흥해 도시재생 주민협의체’에 참여할 주민을 공개 모집하고 있다.이들은 뉴딜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주민 대표로서 주택정비와 도시 재생 활성화 방안 등 두 분야로 나눠 지역 주민이 주체가 돼 추진하는 상향식 모델이며, 정부와 포항시가 주민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한다.또한, ‘주민참여컨설팅단’에 소속된 도시재생분야 전문가들이 직접 흥해읍 주민들과 만나 도시 부흥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지역 주민들이 직접 ‘새로운 흥해’를 설계하도록 돕고 있다.이밖에도 한동대나 포항대, 선린대 등 지역 대학생들의 집합체인 ‘흥해 아이디어 발굴단’을 통해 대학생들이 보고 느낀 아이디어를 수집해 도시계획에 반영한다. 아울러, 이강덕 포항시장은 지난 6월 28일 지역주민이 원하는 특별재생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흥해 주민들과 만나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당면 문제를 함께 풀어가기 위한 소통 간담회를 마련했다. 이는 한신·아와지(고베) 대지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지자체 및 주민들의 협력이 이뤄지면 소통을 통한 당면 과제 순차적 해결과 주민 의견 적극 반영으로 성공적인 도시재건은 물론 지역의 독자적인 문화가 형성되고 지역주민의 공동체 의식이 높아지기 때문. 이를 통해 도시경쟁력이 높아지고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지난 연말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 시범사업’의 대상지역으로 선정된 중앙동 일원 지역 도시재생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중앙동은 지역경제에 새 바람과 함께 지역발전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올해부터 5년간 국비와 지방비, 기금 등 1천176억이 투입될 예정이어서 흥해읍과 함께 총 7천700여 억원의 사업비를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중앙동 일대는 전통적으로 포항시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해 왔으나 인구가 도심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도심공동화 현상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침체돼 온 지역으로, 지난 11.15 지진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북구청사를 비롯해 일부 공공기관 건물과 노후 주택들이 붕괴가 우려될 정도로 피해를 입으면서 함께 도시재생 사업의 필요성이 제기된 지역이다. □ 지진 피해 극복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지난해 11월 15일 지진 이후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포항시는 지진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변화시키고 새로운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도심재생 뉴딜사업’을 통해 전국 제일의 ‘안전한 도시 포항’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이 민선7기 출범과 함께 더욱 가속화 될 전망이다. 특히,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흥해 일원의 급속한 도시공동화와 서민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특별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이재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정비와 공급, ‘지진방재 종합대책’ 수립 등 실질적 방재계획들을 착실하게 추진해 전국 최고의 안전한 도시를 만듦과 동시에 새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포항시 지진대책국 관계자는 “이미 지진전문가 3명을 채용했으며, 하반기에는 방재직 공무원도 추가할 계획이다”며 “단국대와의 관학 협력을 통해 건축물 리모델링을 통한 내진성능 향상 기술을 개발해 접목하는 등 지진 대응을 위한 신기술 개발과 도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시민과 학생들에게도 체험형 교육과 훈련을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실시해 지진에 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끝

2018-08-16

폐허가 된 공장에서 꽃 피는 예술… 세계 문화예술 허브로 재탄생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다.2차 산업인 철강산업을 기반으로 수십년간 성장하다 최근 철강산업 성장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포항도 4차 산업을 재도약의 기회로 판단하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세계에서 3번째로 구축한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신약개발, 질병원인 분석, 신에너지 개발 등 부가산업을 창출할 전망이고 포항 수중로봇복합실증센터에서 개발 중인 수중로봇, 국민안전로봇 등은 산업뿐만 아니라 실생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새로운 먹거리 산업 중 하나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문화예술산업이다. 인류 역사상 문화와 예술은 대중의 소비 속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어왔다. 오늘날 이러한 문화예술적 콘텐츠를 산업화시킨 것이 바로 문화예술산업인 것이다.포항시도 지역에 문화예술을 부흥시키기 위해 지난 2016년부터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조성에 나서고 있다.아직까지는 시작단계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인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에 꿈틀로가 선정되면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본지는 이번 기획시리즈를 통해 문화예술이라는 콘텐츠를 활용해 침체된 구도심과 지역경제 회복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한 이탈리아 밀라노, 전남 순천 등 타지역 사례를 살펴보고 철강도시 포항이 문화예술도시로 재도약할 가능성에 대해 논의해본다.글 싣는 순서 1. 밀라노 예술가들의 성지 ‘토르토나’의 탄생 2. 이탈리아 넘어 세계 최고를 꿈꾸다 ‘슈퍼 스튜디오 그룹’3. ‘두마리 토끼 한 번에’ 순천 문화의 거리4.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에서 가능성을 보다5. 자생적 문화생태계 구축을 향해 가야할 길□ 19세기 밀라노의 대표 공업지역이탈리아 북부지역 최대 도시이자 로마와 함께 이탈리아 경제를 이끌어가는 양대 축인 밀라노는 ‘패션의 본고장’이라는 수식어로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다.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평가받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가 20년 가까이 지내며 ‘최후의 만찬’을 포함한 수많은 작품을 남긴 도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오랜 세월동안 세계의 문화와 예술을 선도하고 있는 밀라노이지만 정작 밀라노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지구 조나 토르토나(Zona Tortona)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이탈리아어 ‘조나(zona)’는 영어 ‘존(zone)’과 같은 의미이며 조나 토르토나는 곧 토르토나 지구를 뜻한다.밀라노 서남부에 위치한 토르토나 지구는 1865년 포르타 제노바역(Porta Genova)이 들어선 이후 외곽의 농촌에서 도심시가지 중 하나로 급성장했다.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농경지와 과수나무들이 자리잡고 있던 자리는 공장과 주택가가 대신하게 됐다. 토르토나 지구는 나빌리오(Naviglio)와 올로나(Olona) 두 하천에서 공업용수를 원활히 공급받을 수 있고 포르타 제노바역에서 유럽 전역에 화물운송이 가능하다는 뛰어난 입지조건을 바탕으로 1960년대 말까지 약 100년간 밀라노를 대표하는 공업지역으로 유명세를 떨쳤다.이 시기 철도회사인 안살도(Ansaldo), 생수업체 비슬러리(Bisleri), 조명업체 오스람(Osram), 식가공업체 네슬레(Nestle) 등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토르토나 지구에서 생산공장을 운영했다.그런데 1960년대 말 생산체계의 급격한 변화와 에너지 위기로 인해 토르토나 지구에 자리잡고 있던 기업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안살도는 대부분의 생산라인을 제노바로 옮겼으며 많은 회사들이 다른지역으로 생산공장을 이동시켰다.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며 석유가격이 최대 4배까지 오르는 오일쇼크 사태가 발발하자 남아있던 공장들 마저도 문을 닫거나 해외로 생산시설을 빼냈다.토르토나 지구를 가득채웠던 거대한 공장 부지는 순식간에 폐허나 다름없는 공간이 됐다. 수만평에 이르는 부지가 한꺼번에 산업유휴시설화 되면서 일대는 우범지대로 전락했다.사람들이 떠난 거리는 낮에도 밤처럼 어두웠고 각종 범죄가 급증하며 암흑도시처럼 변해갔다. □ 폐허로 변한 공장지역, 예술가들의 성지로 재탄생하다도무지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토르토나 지구에 구원의 손길이 뻗친 것은 1983년.이탈리아의 유명 패션잡지 편집장 플라비오 루치니(Flavio Lucchini)는 패션전문기자이자 자신의 부인인 지셀라 보리올리(Gisela Borioli)와 함께 토르토나 지구를 찾았다.10년이 넘도록 폐건물로 방치된 포르타 제노바역 인근 옛 상들리에 제조공장을 살펴본 그들은 임대료가 저렴하고 접근성이 뛰어난 이곳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문화예술과 관련된 제품을 사진으로 촬영해 잡지, 광고, 홍보물 등에 활용하는 사업으로, 당시에는 획기적인 사업이었다.사진작가인 파브리시오 페리(Fabrizio Ferri)도 사업에 참여하며 슈퍼스튜디오(Super Studio)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이 업체는 오늘날 토르토나 지구가 밀라노를 넘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지구로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1985년에는 유명 사진작가인 카를로 오르시(Carlo Orsi)가 비아 토르토나(Via Tortona)에 스튜디오를 마련하며 문화예술사업을 시작했고 같은해 루시아노 포르미카(Luciano Formica)도 비슬러리 제조공장의 일부를 개조해 자신의 작업장으로 만들었다. 1987년 또다른 사진작가인 지오바니 가스텔(Giovanni Gastel)은 자신의 작업실인 가스텔 앤 어소시에티(Gastel Associati)를 비아 토르토나(Via Tortona)로 옮긴 후 세계적인 패션작가로 거듭나게 됐다. 밀라노시는 1990년 철도회사인 안살도(ansaldo)가 사용했던 2만㎡ 규모의 대형공장 건물을 매입했고 이곳을 이탈리아에서 가장 웅장한 오페라하우스라 평가받는 스칼라극장(Teatro alla Scala)의 무대제작실로 활용하고 있다.대장장이, 목수, 세트 디자이너, 경치 기술자, 조각가, 의상 디자이너 등 150여명이 근무하는 이 무대제작실은 세트디자인, 의상디자인, 세트조립, 기계작업 뿐만 아니라 오페라 출연자들의 합창연습실과 공연 리허설을 위한 무대공간도 마련돼 있다.이밖에 1991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역작 ‘최후의 만찬’을 복원한 예술작품 복원전문가인 피닌 브람빌라 바르실론(Pinin Brambilla Barcillon)도 토르토나 내 비아 사보나(Via Savona)에 작업실을 마련하며 수많은 예술작품을 재탄생시켰다.유명 예술가들이 토르토나 지구에 하나 둘씩 입주하면서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젊은 예술가들도 덩달아 토르토나 지역에 입주를 희망하기 시작했다.오래된 공장 건물은 예술가들이 창의성을 발휘하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노동자들이 출퇴근길로 이용하던 철도 선로는 패션모델의 런어웨이 무대가 됐다.근래에 들어서는 아르마니(Armani), 제냐(Zenga), 토즈(Tods)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토르토나 지역에 쇼룸을 설치하고 안도 타다오(Ando Tadao),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이 지역 건축물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하는 작업에 참여하면서 토르토나 지역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예술문화 중심지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 세계 문화예술 허브 ‘토르토나’ 토르토나 지구는 2000년대 들어 세계 최대 규모의 디자인 전시회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브레라(Brera), 람브라테(Lambrate) 등 밀라노의 또다른 시가지와 함께 분산 개최하고 있다.토르토나 디자인 위크로 불리기도 하는 이 행사는 2004년 설립된 컨설팅업체 토르토나 로케이션스(Tortona Locations)의 주도 하에 매년 4월 열리고 있으며 전세계 160여개국에서 30만명이 넘는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행사 주관업체인 토르토나 로케이션스는 디자인 위크를 포함해 토르토나 지역에서 연간 10여회에 달하는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는 시기에 맞춰 점포 임대를 희망하는 기업 또는 개인에 대한 종합적인 카운슬링을 하며 토르토나의 부흥을 이끌고 있다.4㎡에 불과한 작은 가판대에서부터 3천㎡에 달하는 옛 공장건물에 이르기까지 입주 희망자들이 원하는 컨셉에 맞춰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수개월 동안 작업공간을 임대해주고 있다.여기까지는 우리나라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하는 일과 매우 흡사해 보일 수 있으나 토르토나 로케이션스는 단순히 건물을 임대해주는 것으로만 자신들의 업무를 끝내지 않는다.토르토나 지구에 입주한 사업자들이 사업설계, 세트디자인, 설비구축 등을 위해 지구 내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컨설팅업체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토르토나 지구 내 업체들 사이에서는 인적교류가 활발히 이뤄졌고 자연스레 예술가로 구성된 네트워크가 형성됐다.이렇게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토르토나 지구는 최근 또 한 번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토르토나 지구와 150년을 함께한 포르타 제노바역은 예전만큼 기차가 많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100m 거리에 포르타 제노바 지하철역(Porta Genova FS)이 개통되며 기차역 이용객이 급감하면서 대부분 기차가 인근 기차역인 산 크리스토포로역(San Cristoforo)에 멈춰서기 시작했다.밀라노시는 역 주변 공간을 공원으로 개발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토르토나 지구의 흥망성쇠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토르토나 지구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조프(Zoff)씨는 “토르토나 지구는 산업단지를 문화예술지구로 변모시켰다는 역사적인 배경과 나빌리오 운하와 같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인접해 있는 장점 등이 복합돼 관광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며 “최근 밀라노 내 타지역에 토르토나 지구와 같은 문화예술지구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토르토나 지구 만이 지닌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오랜 기간 동안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글·사진/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2018-08-14

지진으로 틀어진 이해관계, 도시 재건으로 화해해야

단 한 번의 지진에서 파생된 상황은 수백이 넘는다. 피해 주민 개개인마다 상황과 피해규모 등이 달라 이를 최대한 만족시킬 해결책이 필요하다. 다양한 이해관계 조정이 시급한 이유다.11·15 포항지진으로 진앙지 인근인 포항시 북구 일대는 건물이 기울어지고 일부가 파손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상대적으로 포항시 남구는 혼란이 적었다. 또 북구에서도 흥해읍과 인접한 장성, 양덕동 일대에 피해가 집중됐다. 전파 판정을 받은 건축물이 대부분 흥해, 필로티 구조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던 곳이 바로 장성, 양덕동이다. 양덕동에는 신축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던 고층아파트 외벽에 심각한 균열이 일기도 하는 등 지진의 직격탄을 맞았다.포항시는 지진 발생 초창기 수많은 민원과 신고 전화로 혼선을 빚고 업무가 마비되는 등 적절한 대처를 못했다. 지난 2016년 경주 지진을 겪은 포항시였지만 ‘간접적’이었을 뿐이었다. 대외홍보성 지진정책 발표와 달리, 막상 지진을 겪었을 때 준비된 무엇 하나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이는 중앙정부나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포항지진 복구포항시는 지진이 발생한 뒤 응급복구 작업으로 시작으로 항구 복구대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지진의 예측과 예방, 사전대비 및 지진발생시 대응, 지진피해조사 및 복구 등의 계획을 수립했다.그 중에서도 현재 피해지역에 대한 항구적 복구 대책이 가장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시는 4급 국장을 비롯한 3과 8팀 27명으로 지진대비 전담조직인 ‘지진대책국’을 신설해 △선제적 지진방재 대책 추진 △교육·훈련 △방재 인프라 구축 △트라우마 치유 △피해지역 도시재생 △이재민 장기 주거지원 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시는 이와 함께 지열발전소 공동연구단 구성을 통한 철저한 원인규명, 건축물 내진보강 국비지원, 피해보상 현실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확대, 이재민 장기 주거대책 마련 등의 종합적인 대책을 추진 중이다.무엇보다 폐허가 되다시피한 지진피해지역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흥해도시재생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지만 여러가지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합치된 의견으로 모아갈지가 최대 과제가 되고 있다. 문제는 정부나 기초자치단체의 지진 피해복구과정에 대한 불신이 깊이 패여 있어 조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 애초 지진 피해 조사와 판정 부실, 피해보상을 위한 법규미비 등에서 불신이 시작됐다. 사상 초유의 강진에 대응하는 사전 메뉴얼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곳곳에서 대혼란이 일어났다.지진 피해주민들의 불만은 가장 큰 혼란은 재난지원금의 지급에서 나타났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건물의 피해정도를 전파, 반파, 소파로 구분했다. 이를 두고 가구마다 천차만별로 다른 상황을 단 3가지로 구분해 기준을 적용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20평형 아파트와 70평형 주택에도, 그 반대도 전파 기준에 따라 모두가 획일화된 90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지원받는다. ‘복지행정’이 아닌 ‘행정상 편의’를 위한 법령으로밖에 볼 수 없다. 가구 수부터 건물 규모 등 이재민들의 상황이 다름에도 ‘재난법’에 이재민들의 상황을 끼워 맞추는 식이다. 양방향이 아닌 ‘일방통행 행정’에 지진 피해 이재민들은 오히려 행정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 기존 재난지원금이 실제 주택 보수 비용과 동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정부는 지난달 24일 정부는 자연재난 복구비용 산정기준을 기존보다 44% 인상했다. 그러나 꾸준한 물가상승과 비교해 재난지원금은 아직 ‘주고도 욕먹는’ 수준이라는 반응이다. 도시를 중심으로 평당 1천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고층아파트부터, 높은 지대를 유지하고 있는 시가지나 번화가 일대의 땅값과 비교했을 때 지금과 같은 재난지원금은 현실과의 괴리가 남아있다. 백분율을 활용해 전파는 매매가격의 최대 30%까지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등의 더욱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법령의 제정을 이재민을 바라고 있다.흥해읍 이재민 A씨는 “평수가 넓은 단독주택이 평수가 작은 아파트와 같은 기준을 적용받았다”며 “모두가 같은 이재민이라도 각자 복구비용부터 자재값, 주변 환경 등 조건이 다 다르다. 지금의 재난지원금은 현실과 동떨어진 선심성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해관계 조정산적한 과제 중에서도 선결돼야 할 1순위는 피해주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어떻게 아우를 것이냐이다.지난해 11·15 포항 지진 이후 각 읍면동에 접수된 사유시설 피해신고건수만 4만5천여 건에 달했다. 4만여 건이 소파에 해당했고, 상가건물에서도 3천여 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포항 인구 대비 지진으로 약 1/10 정도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셈이다.아직까지도 이재민 중 일부는 지자체와 갈등을 빚고 있다.전파 판정에 포함되지 않은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을 중심으로 한 불만의 큰 줄기는 ‘현재의 집에서는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전파나 반파나 파손 유무가 동일한 상황에서 불안감 등으로 더는 집에서 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수차례의 민원과 집회 개최 등 행정기관과 이재민 사이에 갈등의 골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건설적인 방향으로 도시를 재건하기 위한 ‘중간자’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주민들과 가장 가까운 시의원과 지역구 국회의원을 필두로 한 민·관·정계 대타협 조정기구를 구성해 현재 포항지진과 관련해 산재해 있는 각종 사안을 집중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흥해읍 개발구역에서 제외된 일부 가구들 사이에서는 벌써 뒷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구체적인 기준안부터 하나씩 설정해가면서 묶인 실타래를 풀어나가야 한다.□ 일본의 지진피해 복구엄밀히 말하자면, 일본은 지진으로 파손된 사유재산 보상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이는 행정기관 주도의 정책 등 그 나라의 문화에서 비롯한다는 분석이다.방재 선진국으로 강력한 지진을 비롯한 각종 풍수해 등 재해·재난을 수차례 겪은 일본의 방재정책은 무엇보다 ‘자조’와 ‘풀뿌리’에 충실해 있다.최악의 지진으로 기억되고 있는 ‘한신·아와지대지진(사망 6천434명, 부상 4만3천792명. 우리에겐 고베지진으로 더 잘 알려졌다)’이 발생한 이후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파괴된 항만, 철도와 같은 사회간접자본(SOC)을 원상 복구 수준 이상으로 재건했다.도시 재생과 재개발·건축 등 주거지를 중심으로 한 피해복구는 시민 주도로 이뤄졌다. 각종 협의체와 추진위원회가 구성돼 의견을 모았으며, 공공의 이익에 목적을 뒀다.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건 시민단체들이었다. ‘한신·아와지대지진’ 직후부터 전국에서 몰린 자원봉사자들이 구조작업부터 복구작업까지 함께하면서 공권력의 한계를 극복한 사례로 소개된다.특히, 자원봉사활동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지진 이후 약 10년 뒤인 지난 2006년에는 고베시가 있는 효고현 내 NPO(특정비영리활동)법인이 1천개를 넘어서면서 전국 6위를 기록하기도 했다.정부역할과 시민의 역할이 정확하게 분리돼, 전국에서 몰린 자원봉사자들과 시민단체 등 민간 주도의 정책적 방향이 ‘허물어진 도시 고베’를 새로운 관광지로 재창조했다. 지진 이전 일본 최대의 물류항이었던 고베시는 지진을 겪고 나서 전 세계적으로 지진을 극복하고 이겨낸 일본 최고의 방재도시가 됐다.일본은 현재도 자주방재시스템 구축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자율방범대, 유·소년, 부인방재클럽 등 지역별 자주방재단체를 조직해 생존교육을 이어가고 있다.일본 오사카시 소방국 관계자는 “지진이 났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살아있는 것이다. 생존은 안타깝게도 자신의 문제다. 이를 위해 국가에서 방재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소방국)가 할 수 있는 건 지진 이후 생존자들을 최선을 다해 구조하고 2차 피해를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

2018-08-14

모두가 협동해 재난을 이겨내는 것이 ‘새마을 정신의 본 가치’

△ 고철 모으기로 환경보호까지당시에는 새마을행사라고 해서 여러가지 행사들이 많았어요. 그 중 고철 모으기가 있었는데 우리 비산동이 구미 27개 읍면동에서 1등을 한 적도 있어요.비산동이 공단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큰 고철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런 고철을 치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장정 1∼2명으로는 옮길 수 없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중장비를 동원할 수 없으니 모두 사람의 힘으로 옮겼죠.물론 동네 몇몇 분들이 고철을 실을 수 있는 차량 등의 협찬은 있었지만, 차량에 옮기는 것은 모두 사람 힘으로 해야만 했어요. 지금은 고철이 돈이 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어요. 그냥 쓰레기와 똑같았죠. 그러다보니 고철 덩치가 크면 그냥 버리고 가는 거에요. 그걸 그대로 방치하면 고철에서 나오는 녹 등으로 환경오염 문제도 있을 것 같아 정말 열심히 치웠어요.특히 이 동네는 공단 부근이다보니 공사하다가 버린 고철부터 시작해 타다가 버린 자전거 등 고철이 정말 많았어요. 거기에 비라도 한번 많이 오면 강변에 떠내려오는 고철도 상당했어요. 물론 쓰레기도 많았지만 고철도 상당했어요. 아마도 비산동이 지대가 낮으니까 비가 많이 오면 이 곳으로 쓰레기 등이 다 떠내려 오는 것 같아요.지금은 정비가 되서 그렇진 않지만 당시에는 침수가 자주 됐어요. 지금 생각하면 우리 주민들은 단순히 고철만 모은 게 아니에요. 정말 자신들이 사는 삶의 터전을 깨끗하게 가꾸기 위해 자발적으로 고철을 모으고, 쓰레기를 치운 거에요. 이러한 것들이 진정한 새마을운동이라고 생각해요. 믿을지 모르겠지만 당시 고철을 비산동에서만 70여t 정도 모았어요. 모두 사람의 힘으로만. 그래서 비산동이 구미에서 고철 모으기 1등을 한거에요.내 삶 터전위해 마을 주민들 자발적 봉사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고철 70여t 모아젊은이들의 새마을운동 외면 아쉬워인성·예의·지혜 배울수 있는 ‘ 정신운동’△재난도 새마을정신으로 이겨내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비산동은 지대가 낮아 장마철 침수가 많은 곳이었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비산동이 그리 잘 사는 동네가 아니였어요. 판자촌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죠.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 곳 토박이가 아닌 일자리를 찾아 여기로 온 나같은 외지인들이었죠. 열악한 상황이었어요. 그래도 다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마음 만큼은 따뜻한 사람들이었어요. 2004년인가 2005년인가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그때 물난리가 크게 한번 났었어요. 당시 새마을협의회는 복구작업을 하고 부녀회는 끼니 때마다 라면을 끊여주었어요. 몇 날 며칠을 작업에 매달리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마을 안쪽까지 완전 침수가 되서 정말 힘들었어요. 강변에 있던 식당들은 더했어요. 남아 있는게 별로 없었으니까.힘든 시기였지만 새마을협의회 말고도 다른 단체에서도 발 벗고 도와주어서 힘이 많이되었어요. 힘든 일이 닥치니까 모두가 하나가 되더라구요. 이 동네가 당시 다른 지역에서 직장을 찾아 모인 사람들이다보니 약간의 서먹함이랄까 그런게 있었거든요. 아무래도 고향도 다르고 그러니까. 그랬던 사람들이 매일 진흙범벅이 되서 같이 일하니까 그런 서먹함들이 없어지더라구요. 모두가 협동해서 고난을 이겨낸거죠. 그게 새마을운동 정신이라고 생각해요.그리고 그때부터 각자의 고향은 달라도 제2의 고향은 구미인 사람들이 남았어요. 같은 공통분모를 찾은 거죠. 당시 비산동사무소 직원들도 주민들이 하나가 되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복구작업이 끝나면 공무원들이 막걸리 같은 걸 가지고 와서 같이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기도 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물난리가 고향이 각기 다른 우리 주민들을 하나로 만들어 준 것 같아요.△새마을운동은 인성교육내가 새마을운동이 무엇이다라고 정의를 내릴 만한 사람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하자면 새마을운동은 인성교육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지금이나 예전이나 젊은 사람들은 윗사람 이야기를 잘 안들었어요. 안 듣는 강도의 차이가 있을뿐이죠. 저도 어릴적에 부모님 말씀 안들었어요. 그렇게 공부하라고 하셨는데 전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부모님의 삶을 존중했고 그분들의 충고는 마음에 깊이 새겼어요.새마을운동을 하면서 어른들에 대한 공경의 마음을 더욱 강해졌어요. 그 분들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삶의 지혜 같은 걸 배웠거든요. 그분들을 통해서 사회생활에서 지켜야 할 예의와 규범 등을 배웠어요. 조금 잘났다고 어깨에 힘주는 사람을 대하는 방법, 정말 어려운 사람들을 마음으로 대하는 방법 등을 배웠어요. 이런 건 절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이에요. 전 요즘 젊은 사람들이 새마을운동에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다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지금의 젊은이들은 동네 이웃에 사는 사람이 누군인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러면 자신이 사는 지역을 위한 일을 하기가 어렵죠. 서로 같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젊은이들이 이웃주민을 잘 알았으면 해요. 그렇다고 강제할 수는 없겠죠.다만 새마을운동이 좀 더 대중화가 된다면 젊은이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해요.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 새마을운동을 너무 괄시하는 것 같아요. 새마을운동은 그런 게 아닌데. 새마을운동은 사람들이 서로 같이 살아가는 걸 도와주는 정신운동이에요. 새마을운동 자체가 인성교육이에요. 우리 사회가 그걸 좀 제대로 알았으면 해요.△새마을운동가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었으면새마을운동가를 활동하다가 지금은 봉사활동에만 참여하고 있는데 느낀 점이 많아요. 나의 젊음을 새마을운동과 같이 했는데 지금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조금 섭섭한 마음이 있어요. 나뿐만 아니라 이전에 새마을운동에 참여하신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실 거에요.그렇다고 우리가 이만큼 했으니 좀 알라달라는 그런 뜻이 아니에요. 지금 이 사회가 새마을운동을 폄하하지 말고, 제대로 인식해 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지금 젊은이들은 새마을운동이 무슨 정치조직 정도로 아는 것 같아요. 새마을운동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더라구요. 그건 옳지 않은 거잖아요. 새마을운동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고 이해한다면 새마을운동가를 자연스럽게 존중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 믿어요. 그리고 새마을운동 조직에서도 새마을운동가 원로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구미에는 새마을운동가 원로들이 참여하는 새마을후원회라는 것이 있어요. 난 새마을후원회 사무장을 4년동안 했어요. 초대 회장은 박병군 전 구미시새마을협의회장님이 하셨고, 이후 저도 회장직을 4년동안 했어요. 임기는 2년인데 연임해서 4년을 했죠.▲ 배병희 전 비산동 새마을협의회장이 비산동주민센터 앞에서 예전과 달라진 동네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락현기자회원 자격은 구미시 27개 읍면동 협의회장, 부녀회장을 했던 사람들이에요. 새마을운동을 했던 지도자들을 모아 지금 새마을운동을 지원하기 만든 조직이에요. 우리가 주축이 되지 않고 지금의 새마을협의회가 하는 봉사활동을 뒤에서 보조해주는 역할이죠. 새마을 한마음 대회라든지 연말 평가대회 등을 도와주기도 하고, 여름철 금오산 야영지 휴지줍기 등도 하고 있어요. 알뜰 벼륙시장에서는 직접 솜사탕 기계를 가져가 아이들에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팝콘도 만들어주곤 해요. 큰 일은 아니지만 새마을운동 지도자로서 끝까지 이 지역을 위해 작은 봉사를 하고 싶은 거에요. 우리 새마을운동가들은 정말 진심으로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에요. 제발 사회가 우리를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서로가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우리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더 열심히 봉사를 할 수 있으니까요./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8-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