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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울릉의 과거, 현재, 미래… 척박하지만 낭만적이고 호화롭다

“나 그대에게 드릴 게 있네. 오늘밤 문득 드릴 게 있네.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 할 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별도 달도 다 따다 주겠다는 약속, 그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다짐, 터질 듯이 충만한 사랑의 고백! 이 아름다운 세레나데는 1970년대에 수많은 연인들을 꿈결 같은 낭만으로 인도했다. 현실의 삶이 아무리 남루해도 사랑을 하고 또 사랑을 받는 이들의 거주지는 끝내 천국이다. 그러니까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라는 노래는 ‘터질 것 같이 뜨거운 사랑’의 복음성가인 셈이다.저 노래를 부른 가수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그가 울릉도에 산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그곳이 ‘천국’인 줄은 몰랐다. 울릉도 북면 현포리 61-2번지에 천국이 있다. 거기 전설적인 포크 가수 이장희가 산다. 지난 2004년, 울릉도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조용한 현포리 산기슭에 정착한 그는 자신이 가꾼 동산을 ‘울릉천국’이라고 이름 붙였다. 너른 잔디밭과 알록달록한 꽃덤불, 해와 구름을 되비추는 맑은 연못, 그리고 울릉도의 하늘과 바다가 있는 이곳 울릉천국에 온 순간, 나는 근심도 걱정도 없이 영혼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 천국이 맞구나, 저절로 두 손이 모아졌다.그런데 사실 이장희가 이곳을 ‘천국’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아래에 평리침례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보다 높은 곳에 있으니 천국이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불쾌하게 여기진 않을까?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 천국과 교회는 서로 정답고 다정하게 이웃해 있다. 작은 적벽돌 건물에 흰 십자가와 스테인드글라스가 예쁜 교회는 세워진 지 100년이 넘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순교한 김해용 감로의 순교기념비가 놓여 있기도 하다.어린 시절 여름성경학교에서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 동화책과 만화영화가 묘사하던 풍경 그대로 천국은 나를 반겨주었다. 평화로운 적막 속에서 코스모스가 흔들리고, 새가 울고, 바람이 불면 나를 둘러싼 세계는 어느덧 조화로운 화음을 이루고, 어디선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성가대의 합창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단순히 깨끗한 자연과 수려한 경관 때문에만 천국으로 호명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는 2016년 ‘울릉천국 아트센터’가 들어섰다. 이장희가 자신의 땅 500평을 기증하자 경상북도와 울릉군에서 예산을 지원해 공연장과 카페, 전시장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복합 문화공간을 만든 것이다. 음악과 시와 그림이 있는 ‘마음의 천국’, 아트센터는 울릉도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사색과 휴식을 제공하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 이장희는 통기타를 메고 종종 공연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집을 구경 온 관광객들과 정겹게 기념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날은 부재 중, 파란 지붕을 얹은 소박한 집 마당엔 나비 한 마리만 천진하게 놀고 있었다.울릉천국에서 내려와 나리분지로 향했다. 나리분지는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 지대다. 1만여년 전 화산 폭발로 인해 성인봉 북쪽 칼데라 화구가 함몰되며 형성된 이곳 분지는 관광지로 각광 받는다. 이곳에서 출발하면 성인봉까지 비교적 빠르게 오를 수 있고, 나리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분지의 장엄한 광경으로 눈과 가슴을 시원하게 할 수도 있다. 울릉도 사람들은 해발 400미터 고지대의 화구 분지에 마을을 이뤄 삼나물, 더덕, 마가목, 참고비, 명이나물 등을 재배하는데 이는 세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경우다. 지질학적 연구 가치가 매우 높은, 울릉도가 자랑할 만한 명소인 것이다.울릉도가 본격적으로 ‘사람 사는 섬’이 된 것은 1884년 고종이 울릉도 개척령을 공포해 백성들에게 이민을 장려하면서부터다. 물론 1,500년 전 고대국가 우산국 때부터 사람이 살긴 했지만 조선조가 들어선 이후 수백 년 동안 빈 섬으로 방치되었다. 19세기말 개척민들이 섬에 왔을 때, 오랜 옛날부터 정주한 사람들이 산야에 자생하는 섬말나리 뿌리를 캐먹어 연명하는 것을 보고 ‘나리골’이라 부르기 시작한 게 나리분지 명칭의 유래다. 먼 옛날 화산 폭발을 잊었는지 나리분지는 평온하기만 했다. 분지를 둘러싼 산들 역시 짙푸른 녹음으로 화산의 기억을 감추고 있었다. 분지를 조금 걷다가 나리너와투막집과 억새투막집 앞에 멈춰 섰다. 투막집은 울릉도 개척 전 이곳 토착민들이 살던 재래 가옥 형태인데, 우데기로 외벽을 두른 것이 특징이다. 1940년대에 옛 형태대로 지어진 집이 아직까지 남아 울릉도의 중요한 문화재가 되었다.투막집 마당을 거닐며 이곳에 살았을 옛 사람의 어느 하루를 떠올려 본다. 뒤주에 얄팍하게 쌓인 쌀을 불려 술을 담그면, 누룩이 별을 흉내 내며 허연 쌀물 위에 어리비치다가 귀뚜라미 울음 먹고 달짝지근한 빛으로 찰랑였을 것이다. 술맛에 마음이 좋아진 그는 부엌을 함부로 구르던 개다리소반 절름발에 못을 박고, 반짇고리로 구멍 난 속곳들을 기우고, 탁주 한 사발에 고인 소낙비와 우레와 폭설이 대견하여 눈시울이 젖었을 것이다. 뒤란을 흔드는 바람에 잠 설친 고양이가 마당을 어슬렁거리다 막사발 내려놓는 소리에 놀라 도망치면 투막집 툇마루에서 홀로 탁주 마시던 이의 텅 빈 마음에 외로운 달빛이 내려와 앉았을 것이다.나리분지와 투막집을 탁주 같은 햇살 속에 남겨둔 채 북면 추산리 바닷가로 향했다. 추산 해변에서는 울릉도의 가장 아름다운 해상 바위로 꼽히는 코끼리 바위를 조망할 수 있다. 그런데 몇 해 전 이곳 추산 절벽에 마치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또 하나의 볼거리가 생겼다. 세계적인 건축가 김찬중 교수는 송곳산 옆 벼랑 위에 해와 달과 소용돌이를 형상화한 하얀 건축물을 설계했고, 이 건물은 완공된 후 영국의 유명 건축잡지 ‘월페이퍼’에서 선정한 ‘2019년 세계 최고의 호텔’이 되었다. ‘힐링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는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철근을 뼈대로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낼 수 있던 것은 신소재인 초고강도 콘크리트를 사용한 덕분인데, 초고강도 콘트리트를 특별 제작한 거푸집에 한 번에 부어 통째로 건물을 완성시켰다. 세계 건축계 및 콘크리트 학계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힐링스테이 코스모스리조트는 펜션형과 풀빌라형 두 가지 형태로 운영된다. 침대방과 온돌방, 패밀리룸 등으로 구성된 펜션형은 모든 객실에서 코끼리 바위 너머로 붉게 밝혀드는 석양의 황홀한 축제와 수평선 위로 은빛 달이 전설 고래처럼 솟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야외 테이블과 월풀 욕조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방 내부는 천정이 둥글고 높은 것이 특징이다. 아침식사가 무료로 제공되며, 1박 가격은 4인 기준 40~50만원이다. 리조트 측은 “땅과 하늘의 기운, 음양의 조화 속에서 최고의 휴식을 누릴 수 있다”고 펜션형 객실을 소개하고 있다.그런데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 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볼 수도 없는, 베일에 싸인 풀빌라 때문이다. 코스모스리조트의 풀빌라는 “죽기 전에 꼭 한 번 와봐야 할 곳”이라는 이른바 ‘버킷리스트’ 전략과 ‘신비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풍문에 의하면 이곳 풀빌라는 4인 기준 1박 숙박요금이 1천만원이라고 한다. 울릉군청 관계자들에게 들은 내용 또한 풍문과 일치했다. 환상적인 경관과 최고급 시설은 물론 서울 유명 호텔 요리사의 출장 요리까지 ‘맞춤형 스테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좋기에 하룻밤 묵는 데 천만원이나 하는지 정말 궁금해 죽겠다. 아마 나는 이 궁금증과 호기심을 평생 해소하지 못한 채 저 우주로, 캄캄한 코스모스로 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실천하기 위해 패가망신을 무릅쓰고 예약 전화를 걸 수도 있다. 그때 울릉도는 내게 진정 ‘울릉천국’이 되리라. 그러나 부디 미래의 그녀가 이 글을 읽지 않길 바랄 뿐이다.          /시인 이병철

2019-10-06

보고 듣는 단순관광은 가라… 축제·체험 가득한 고령으로

축제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흥겨움의 시간’을 사람들에게 선물한다. 우리들은 이 흥겨움의 시간을 통해 다시 하루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고령군은 경상북도의 유교문화권, 경주 일대의 신라문화권과 더불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작지 않은 ‘가야문화권’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대가야의 도읍지였던 고령은 색다른 축제와 여기에서 펼쳐지는 각종 전통·생활체험으로도 유명한 곳이다.해마다 적지 않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고령을 찾아 엿 만들기, 딸기 따기, 두부 만들기, 도자기 빚기 등을 경험하며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높이고 있어 주목된다.고령군청은 “역사와 문화, 관광과 체험을 결합시킨 미래형 복합문화공간을 더욱 많이 만들어가겠다”는 약속을 내놓고 있다. 이를 통해 ‘명품 관광도시’로 도약하겠다는 복안을 세운 것이다. ‘보고 듣는 단순한 관광’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관광 프로그램 개발에 진력하고 있는 고령군의 축제와 깔끔한 모습으로 여행자들을 기다리는 대가야의 대표적 관광지들을 아래 소개한다.◇ 가을과 봄, 고령을 화려하게 수놓는 축제올해로 9회를 맞는 ‘왕릉길 걷기 대회’는 건강과 즐거움을 함께 찾고자하는 현대인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행사다. 또한 무르익은 가을을 맞이하는 즐거운 축제다. 쌀쌀한 바람이 조금 불어온다 해도 참석자들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수백 기의 고분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솟아있는 지산동 고분군을 걸으며 깊어가는 가을의 낭만을 느끼려는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즐겨 찾는다. 그날은 사람 또한 아름다운 풍경의 일부가 된다. 고령군은 이 행사를 “대가야로의 흥미로운 시간 여행”이라며 적극 홍보하고 있다.올해 행사는 11월 9일 열릴 예정이다. 왕릉길 걷기 대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가야박물관과 왕릉전시관도 둘러볼 수 있고, 3대째 장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대장간에 들러 옛날 방식으로 만들어진 농기구도 살펴볼 수 있다. 메마른 도시 생활에 지친 가족이 함께 찾는다면 의미가 더 커질 듯하다.여기에 하나 더. 해마다 4월이면 고령군의 봄을 알리는 행사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바로 대가야읍 일원에서 열리는 ‘대가야체험축제’다. 고대국가 대가야의 생활상과 문화·예술을 관광객들에게 선보이는 이 축제는 대가야 사람들의 삶을 테마로 독특한 문화까지 접목시킨 차별화된 체험축제로 평가받고 있다. 2015년엔 ‘대한민국 우수축제’로 지정됐으며 이른바 ‘고령을 대표하는 봄 축제’이기도 하다. 매년 주제를 달리해 전개되는 대가야체험축제에서는 다채로운 문화 공연도 함께 즐길 수 있어, 성인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세계 현 페스티벌’ 뮤지컬 ‘가얏고’, 악성 우륵의 사랑을 재미있게 스토리텔링화 한 ‘사랑, 다른 사랑’ 공연 등이 특히 방문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 고령군청의 이어지는 설명이다.축제가 열리는 기간엔 개실마을과 가얏고마을 등이 농촌체험 부스를 마련해 고령의 소박한 정을 한국인 관광객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까지 전하고 있다.◇ 그냥 지나치면 아쉬운 고령의 관광 명소들고령을 찾았다면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들이 여러 군데 있다. 가야시대 최대의 고분군인 ‘지산동 고분군’도 그 중 하나다. 주산의 남동쪽 능선 위엔 한국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 지산동 44·45호분이 자리하고 있다. 인근 대가야박물관에선 대가야와 고령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왕릉전시관은 지산동 44호분의 내부를 재현해 역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불러 모은다.가야금을 만든 우륵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전시하는 우륵박물관은 음악과 역사가 어우러지는 테마형 박물관으로 알려졌다. 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는 토기와 철기, 가야금 문화를 꽃피운 대가야의 역사를 바탕으로 조성된 관광지다. 대가야 농촌체험특구에선 30여 종의 농작물을 재배 중이다. 원두막 체험과 고상가옥 체험도 해볼 수 있다.도도하게 흐르는 낙동강을 끼고 들어선 ‘개경포 기념공원’은 선조들이 호연지기를 기르며 시조를 읊던 공간에 만들어졌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장 송암 김면(1541~1593)이 일본군 1천600여 명을 격퇴시킨 곳이기도 하다.“자연과 친구가 되고 싶다면 낫질신리마을을 찾아보라”고 고령군청은 권한다. 오염되지 않은 산과 계곡이 방문자들을 반기는 이 마을에서 재배되는 무농약 쌀은 전국적으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낫질신리마을에서 채취된 산나물과 송이버섯은 누구나 좋아하는 별미다. 계절별로 벌꿀 채밀 체험, 모내기 체험, 고구마 캐기 체험, 메뚜기 잡기 체험 등이 진행된다.‘전국 최우수 체험마을’로 선정된 개실마을엔 외국인 관광객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엿 만들기와 떡 만들기는 물론, 한국 전통방식의 혼례 체험을 할 수 있어 유럽과 북미에서 고령을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여기선 한옥 숙박도 가능하다. 외국인들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은다.곽용환 고령군수 인터뷰고령 역사·문화의 향기 전달‘일상 탈출’ 치유의 공간으로“고령의 힘은 대가야의 찬란한 역사·문화와 이를 효과적으로 발전시킨 관광산업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곽용환 고령군수를 최근 만났다.곽 군수는 고령군 관광의 현황에서부터 앞으로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까지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들려줬다. 아래 그날 오고간 이야기를 가감 없이 옮긴다.-고령의 관광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고령군은 이미 1천600여년 전 독특하고 아름다운 고유의 문화를 꽃피웠다. 오늘날까지도 전해지는 대가야의 문화를 계승하고 이를 관광 활성화와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고령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과 자연자원을 테마로 특색 가득한 관광 인프라를 조성해 ‘가야문화특별시 고령군’을 만들어 가기 위해 군민들과 최선을 다하고 있다.-향후 고령 관광산업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우리 군의 저력은 대가야의 빛나는 전통과 군민들의 단합된 힘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관광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령군관광협의가 ‘관광의 민간 중심 시스템’을 새롭게 정비하고 있다.-실제로 성공적인 사례가 있었는지 궁금하다.△대가야체험축제가 올해로 15회째를 맞았다. 고령군관광협의회는 이 축제의 주축이 돼 주민주도형으로 행사를 이끌었다. 그 옛날 대가야 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관광객 참여형,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역사 교육형, 더 나아가 세대 통합형 축제로 자리매김함으로써 ‘대한민국 문화관광축제’로 9년 연속 선정되는 성과를 이뤘다.-그 외 고령군 관광산업 발전을 위한 사업은 어떤 것이 있는지.△537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진행한 대가야생활촌 조성사업이 지난봄 완료됐다.고대국가 가야의 중심이었던 대가야 시대를 효과적으로 재현해 고령군민은 물론 우리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전하고, 답답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난 치유의 공간이 될 것이라 믿는다.더불어 ‘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는 축제의 중심공간이 돼 역사·문화·관광일번지로 주목받고 있다. 지역경제 발전과 관광 활성화를 위해 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와 대가야생활촌 사이를 전기차가 운행 중이기도 하다. 이는 거점 관광시설간 이동 편의를 제공하는 것과 함께 그 자체로 새로운 관광상품이 돼주고 있다.-향후 고령 관광의 새로운 아이템이 될만한 건 어떤 게 있을까.△3월에 ‘가야고분군’이 세계유산 등재 신청 후보로 선정됐다. 2021년이면 최종 등재될 것으로 모두가 기대하고 있다. 이곳 작은 무덤에서 출토된 직경 5cm의 작은 토제방울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이 방울은 문헌에 기록된 건국 신화가 유물에 투영돼 발견된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가야 역사는 물론 고대 한국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동시에 관광객들의 관심도 모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체험관광의 활성화도 우리 군 관광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전병휴·홍성식 기자

2019-10-03

회색공단도시 구미, ‘색깔 있는 관광도시’ 옷 입다

한국의 근대산업화를 이끈 구미시가 2019년을 관광발전을 위한 원년으로 정하고 다양한 관광정책 개발과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 구미공단 조성 50주년을 맞아 한국 경제를 최전방에서 이끌어 온 구미공단 노동자 피땀의 흔적과 산업유산들을 기존 관광자원과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구미시는 삼성과 LG, SK, 코오롱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국내 최고의 첨단산업도시임에도 관광산업에 행정력을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미시는 누구나 아는 것처럼 첨단산업도시이면서 아도화상이 신라불교의 싹을 틔우고 성리학 등 영남 유학의 뿌리가 깊은 역사·문화의 도시이다. 여기에 낙동강과 금오산, 천생산 등의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도시이다. 하지만 ‘회색공단도시’라는 이미지에 가려 구미시의 뛰어난 관광자원은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외면받아 왔다. 이러한 이유로 구미시에 사는 이들조차 어떤 관광자원이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구미시가 관광산업에 집중하는 또다른 이유는 청년실업과 일자리창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광산업의 콘텐츠가 농촌·의료·미용·공연 등으로 다양화되면서 잘 만들어진 관광산업 하나가 지역의 산업 생태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이에 본지는 구미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을 소개하고, 시가 추진하고 있는 관광정책을 통해 산업과 관광을 접목한 구미만의 관광산업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편집자주최근 우리사회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바로 청년실업과 일자리창출이다. 이를 위한 여러 대안과 대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렇다할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관광산업이 그 지역의 소비를 늘리면서 일자리 수까지 늘리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구미시도 관광산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구미시는 2019년을 관광발전을 위한 원년으로 정하고 관광객의 획기적 증대를 위해 다양한 관광정책 개발과 마케팅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관광진흥 마스터플랜 수립올해 공단 조성 50주년을 맞은 구미시는 산업관광도시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스마트 관광 거점도시 도약을 목표로 ‘관광진흥 마스터플랜 수립 용역’을 진행한다. 타지자체와 차별화된 산업관광 육성방안, 머물며 즐기는 체류형 관광상품 개발, 대구와 경북전체를 묶는 광역 관광벨트화 사업, 젊은 도시 구미만의 대표 야간 관광명소 개발 등이 추진된다. 구미시가 지속가능 발전한 도시 조성을 위해 산업도시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해 산업과 관광이 함께하는 도시 만들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구미시는 최근 트랜드인 모바일기반 뉴미디어를 관광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매주 소개하고 있는 ‘사육신과 생육신이 배출된 유일한 고장’, ‘구미 핫플레이스 금리단길’, ‘별주부전의 무대인 사천시 비토섬에서 온 토끼커플의 구미여행’ 등 재미있는 스토리를 담은 관광지소개 카드뉴스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카드뉴스는 동영상으로도 변환시켜 시 지정게시판과 버스정보시스템인 230여 개의 BIS를 통해 오프라인에서도 시청할 수 있다. 또 관광지를 VR사진으로 제작해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구미지역 관광명소를 실감영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사용자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시는 모든 관광자원을 VR이미지와 동영상으로 명실공히 뉴미디어마케팅 선도도시로 그 명성을 확고히 할 계획이다.△한류스타 마케팅, 중국의 중심(中心)저격구미시는 사드사태 이후 다시 늘어나고 있는 중국 관광객을 겨냥해 지난 4월 중국 상해시 상해전람중심에서 열린 제16회 상해 세계관광박람회에 참가, 구미관광 홍보관을 운영해 중국 현지인과 외국인 방문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중국 상해 세계관광박람회는 올해 16회째로 해외 53개 국가가 참가하고 750개 업체, 500명의 바이어가 초청되는 중국 최대 규모의 국제 관광 박람회로 구미시는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중국인 맞춤형 관광 마케팅 전략을 적극 펼쳤다. 중국판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한류의 중심에 있는 구미출신 가수 황치열을 전면에 내세워 중국인들에게 인지도가 낮은 구미를 알리고 한국 방문시 구미를 찾을 수 있도록 적극 홍보했다. 특히, 중국에서 황치열 인기를 증명하듯 실제 크기의 황치열 등신대와 금오산에 설치한 ‘황치열 손 조형물’, ‘황치열 기념숲’ 등 황치열 팬투어를 소개하는 중국어 리플릿은 중국 현지의 큰 관심을 모았다. 또한 중국 현지 관광업체와의 미팅을 통해 구미 관광자원을 홍보하고, 중국 각종 미디어 채널과의 인터뷰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구미관광을 적극 알리기도 했다.△시티투어 콘텐츠 강화구미를 찾는 관광객에게 구미의 다양한 문화관광자원을 보다 손쉽게 접하게 해주는 구미시 시티투어는 현재 다양한 테마를 정해 다채롭게 운영중이다. 금오산 유교 문화투어, 초전지 불교 문화투어, 전통시장 투어, 농산물 수확체험 투어 등이 대표적이다. 시는 올해 공단50주년을 맞아 근대 산업 유산으로 지정된 오운여상, 수출탑과 구미를 대표하는 삼성 전자의 스마트시티 홍보관, 5공단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구미 에코랜드 전망대를 포함한 구미의 미래를 책임질 국가산업단지와 근대산업유산을 두루두루 둘러보는 코스로 구미만의 특화된 산업관광 투어를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내륙최대의 국가산업단지를 보유하고 있는 구미시만의 이점을 살려 산업현장을 대상으로 견학과 체험을 통해 구미만의 특색있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새로운 관광시장 개발 및 관광수요를 창출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계획이다.△역사문화디지털센터 완공을 위한 막바지 공사 박차경북도 3대 문화권 전략사업으로 2012년부터 추진해 온 ‘역사문화디지털센터 건립사업’은 고려말 야은 길재 선생부터 구한말 왕산 허위선생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개혁해 온 구미(선산)의 인물에 대한 자료를 디지털화해 교육·전시·체험하는 시설이다. 총사업비 253억 원이 투입된 이 시설은 내년 4월 완공 예정이다. 전시관, 홍보관, 체험관, 문화카페, 전망정 등의 시설을 갖춘 역사문화디지털센터는 앞으로 구미의 대표 명소인 금오산도립공원과 함께 명품 관광자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제101회 전국체전 성공적 개최 위한 관광홍보 추진내년은 구미에서 제101회 전국체전이 열린다. 구미시는 전국체전으로 4만여 명의 선수단과 관람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관광 구미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관광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구미시는 선수단과 관람객에게 볼거리, 즐길거리 등을 제공하기 위해 구미만의 특색 있는 국가산업단지 연계 산업관광투어와 다양한 관광 콘텐츠를 개발해 운영할 계획을 세웠다.장세용 구미시장은 “취임 당시부터 꾸준히 관광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올해 공단 조성 5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시민축제를 시작으로 산업과 관광을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관광산업 기반을 만들어 내년 제101회 전국체전에서 가능성을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불교 문화재 등 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 관광자원을 연계하고 킬러 컨텐츠 개발, 산업문화유산, 전통문화와 자연자원, 인프라 확충, 홍보마케팅 강화, 서비스 개선 등 관광환경 개선에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덧붙였다./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9-10-03

“에티오피아의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칠곡군이 69년 전 신세 진 에티오피아에 보은(報恩)하며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에티오피아는 6·25전쟁에 참전,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이 ‘고마운 나라’가 최근 내전 등에 의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칠곡군이 이 나라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 나섰다. 호국과 평화를 정체성으로 삼는 칠곡이기에 에티오피아 지원에 적극적이다.무엇보다 눈여겨 볼 점은 군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였다. 십시일반으로 모은 성금을 에티오피아에 보냈다. 에티오피아는 이 성금으로 도서관, 식수저장소, 마을 수도 등 여러 편의시설을 마련할 수 있었다.군민들은 “6·25전쟁에서 보여 준 에티오피아의 숭고한 희생에 결초보은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했다.군 관계자는 “첫 단계로 작으나마 경제적으로 지원했다”며 “이제부터는 문화·관광·보훈까지 영역을 넓혀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뉴부대를 기억하는 칠곡군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는 지구 반대편 낯선 나라의 전투에 자국 청년들을 파병했다. 황제의 명에 따라 6천37명의 에티오피아 청년들이 3주간의 항해 끝에 부산에 도착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청년들 중 122명이 전사하고 500여 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253차례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켰다.칠곡군은 이러한 에티오피아와 강뉴부대를 잊지 못하고 있다. 군민들은 에티오피아를 커피의 나라가 아닌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며 결초보은의 부담을 안고 살아 왔다.이에 군은 2014년 지역 대표축제인 낙동강세계평화 문화 대축전에 ‘평화의 동전 밭’을 조성하고부터 본격적으로 에티오피아 돕기에 나섰다.이듬해인 2015년부터 코흘리개 어린이에서 백발의 노인까지 657명이 이 대열에 동참했다. 매월 최대 1천260만원의 성금을 모아 에티오피아에 보내 티조 지역의 초등학교 2개, 식수저장소 2개, 마을 수도 9개 등을 마련했다. 또 대한민국을 가난에서 구한 새마을운동을 에티오피아 티그라이주에 전파했다. 티그라이주 새마을 시범마을에 새마을 조직 육성을 통한 주민의식 개혁과 새마을회관 건립, 마을안길 포장 등 환경개선, 소득증대사업도 지원했다.□ 디겔루나주 티조에 희망을 심다칠곡군 방문단은 2017년 에티오피아 디겔루나주 티조 지역을 방문해 칠곡 군민의 사랑을 전했다. 이들은 티조 워레다에 위치한 사구레초등학교를 방문해 칠곡군 유치원과 초등학생 5천여 명의 성금으로 건립한 ‘도서관 준공식’을 가졌다. 왜관초등학교 학생들이 고사리 손으로 만든 걱정을 사라지게 한다는 ‘걱정인형’과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준비한 색안경, 캐치볼, 제기 등의 장난감도 전달했다. 당시 방문단원들은 사구레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직접 걱정인형을 옷에 달아주고 한국의 전통 민속놀이인 제기차기를 선보이며 놀이방법도 가르쳐줬다. 이어 칠곡군 순심연합총동창회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식수 저장시설의 준공식을 갖고 물탱크에 연결된 마을 수도시설을 통해 주민들이 양질의 식수를 활용하는 것도 확인했다.백선기 군수는 “6·25전쟁 당시 에티오피아 병사들은 월급으로 부대 안에 보육원을 만들고 두려움에 떠는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돌봤다. 이젠 호국평화의 도시 칠곡군이 에티오피아 어린이의 꿈과 희망을 지켜줄 것”이라며 “칠곡군민은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메마른 티조에 희망을 심고 있다”고 했다.□ 아라토 마을회관 준공식에티오피아 방문 당시 칠곡군 방문단은 티그리아주에서 ‘아라토 마을회관 준공식’을 가졌다. 이 준공식을 통해 ‘새마을 세계화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마을회관의 준공으로 새마을위원회, 청년회, 부녀회 등의 새마을 조직과 영농조합 결성이 가능해졌다.에티오피아 측은 ‘경제적 도움’보다는 ‘주민 의식개혁’이 필요한 부분임을 인식하고 있었고, 새마을 운동이 에티오피아 국민에게 이러한 정신과 자신감이 이어지길 바라는 상황이었다.칠곡군의 방문은 메마른 땅에 단비와 같았다. 당시 방문단이 도착했을 때 아라토를 관할하는 티그라이주 지역 전체가 최대한의 예우를 보였다. 티그라이주 메켈레 공항에서는 아바이 월두 주지사의 경제고문과 고위 공무원이 방문단을 맞이했다. 메켈레 공항부터 아라토 마을까지 30여 대의 오토바이와 20여 대의 차량이 방문단을 호위하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지역 최대 방송국인 티그라이주 방송은 공항 도착 순간부터 늦은 저녁 시간까지 방문단을 취재했다. 또 백선기 군수와 직접 인터뷰하며 이번 사업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방문단이 마을에 도착하자 주민 1천500여 명이 태극기와 새마을기를 들고 도열해 춤과 노래로 환영했다. 칠곡군과 티그라이주 메켈레 지역에 새마을 시범마을 조성 등 지역개발을 위해 긴밀히 협력키로 한 MOU도 체결했다.백선기 군수는 인터뷰에서 “아라토 마을에서 2020년까지 새마을 조직을 육성하고 생활환경개선과 소득증대사업을 실시해 자립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에티오피아와 문화·관광·보훈 업무협약 체결지속된 교류와 인연으로 협력 분야가 확대되고 있다.지난달 30일 백선기 군수와 쉬페로 시구테(Shiferaw Shigutie) 에티오피아 대사는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서 문화·관광·보훈 교류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각종 기념일은 물론 기념행사, 축제, 국제 교류행사 등에 상호 협력키로 했다. 또 양 기관은 민간 교류를 적극 지원하고,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위해 참전했던 에티오피아 각뉴부대의 무훈을 재조명하며 참전용사 가족 지원에도 협력하기로 했다.협약을 통해 양 기관은 오는 11일부터 13일까지 칠곡군에서 열리는 ‘제7회 낙동강 세계평화 문화대축전’에 ‘주한 에티오피아대사관 부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부스에서는 주한 에티오피아대사관이 네렐라(Nerela)라는 전통 의상을 입고 생두를 작은 화로에서 볶은 뒤 다시 빻아서 주전자에 넣고 끓이는 ‘커피 세리머니(Coffee ceremony)’를 선보일 계획이다. 또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이자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에티오피아 커피를 무료로 제공할 예정이다.대축전 개막식에서 펼쳐질 ‘칠곡평화마을 자립 선포식’도 함께 하기로 했다.칠곡군은 2014년부터 에티오피아 오르미아주 디겔루나 티조 지역을 칠곡평화마을이라 부르고 초등학교 2곳을 신축하고, 초등학교 15곳의 책걸상과 기자재를 교체했다. 또 저축조합을 설립하고 식수 저장소 4기와 식수대 11기를 설치하는 등 칠곡평화 마을의 자립 기반을 마련했다.쉬페로 시구테 에티오피아 대사는 “2014년부터 6년간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백선기 군수와 군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며 “양 측 관계를 한 단계 격상해 전략적인 파트너로 발전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백선기 군수는 “호국과 보훈이 도시의 정체성인 칠곡군은 69년 전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고자 에티오피아 지원 사업을 펼쳐왔다”며 “양 기관이 이번 협약 체결을 통해 상생 발전을 이끌어 내자”고 했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19-10-01

다양한 장소·다양한 공동체서… 차별화된 서비스 나선다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경로효친사상이 많이 퇴색해졌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를 지탱해주고 있는 중요한 사회미덕으로 자리잡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70살이 넘은 원로 문신들을 위로하고 예우하기 위해 나라에서 정기적으로 기로연(耆老宴)을 열기도 했다. 현재는 노인복지법 제6조에 따라 노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공경의식을 높이기 위해 매년 10월 2일을 노인의 날, 매년 10월을 경로의 달로 지정 운영하고 있다. 조선시대 기로연은 없어졌지만, 정부는 노인의 날을 맞아 대한노인회 등 노인단체 관계자, 훈·포장을 수상하며 어르신 공경의 미덕을 이어가고 있다. 노인의 날을 맞아 초고령사회를 준비하는 포항시의 노인복지정책을 점검해 본다.□초고령사회우리 사회는 초고령사회에 대한 걱정에 앞서 우리가 현재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이 거의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점을 많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도 그럴 것이 흔히 우리는 초고령사회와 관련된 문제를 얘기할 때 주로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를 경험한 일본이나 스웨덴과 같은 나라들의 사례 정도를 꼽을 뿐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이들 두 나라의 흔한 사례들을 통해서도 초고령사회가 단순히 도시가 처한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전환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우선, 지난 2005년도에 초고령 국가가 된 일본의 경우, 공항에서부터 고층빌딩의 엘리베이터, 시골마을의 기차역, 동네 마트 진열대 앞까지 곳곳에서 활발하게 일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스웨덴의 경우는 2016년도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했으나 적극적인 인구정책과 노인세대에 대한 다양한 제도를 통해 오히려 경쟁성장률 면에서 EU국가의 평균인 2.0%보다 높은 2.4%를 기록했다.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는 노동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청년층의 비중 또한 크게 줄게 되고, 그 공백을 오히려 중·장년층들이 채워야하는 상황이 생기게 되면서 정년연장은 물론 베이비붐 세대들에게는 재취업의 기회가 늘어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우리 역시도 이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민·관은 물론 지역사회가 함께 베이비붐 세대가 퇴직·은퇴 후에 적합한 직종이 무엇인지, 어떤 직종이 얼마만큼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포항시 노인건강복지포항시는 지역의 기업들을 중심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전직과 재취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새롭게 고용이 증가하고 있는 산업군을 비롯해 생애경력을 고려한 일자리와 같은 고용특성에 따른 사업군을 파악하는 등 다변화된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포항시는 226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1천400여개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양적인 면에서는 지난해 전국 최고의 노인일자리 성과를 거뒀다. 이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포항시는 1일 노인의 날을 맞아 노인일자리 사업부문 보건복지부장관 대상을 수상했다.이강덕 포항시장은 “다양한 경력을 가진 베이비붐 세대의 수요에 부합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자리를 찾아내고 맺어주는 것이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지역경제가 침체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좀 더 탄력적이고 융통성 있는 노인일자리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틈새시장을 확대해나가겠다”고 말했다.포항시는 이와 관련해 일손을 구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농어촌을 비롯해서 중소기업과 복지 분야 등을 중심으로 노인일자리를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공공근로 가운데 단순 노동에 그치는 일부를 소상공인이나 복지시설에 지원하는 방식이나, 인건비를 일부 지원하는 식으로 노인일자리 사업을 활용하거나, 경력과 능력을 갖춘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소그룹을 만들어 참신한 아이템을 제안하면 이에 대한 지원을 하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이와 함께 포항시는 노인복지관, 경로당, 노인교실 등 증가하는 노인들의 여가 공간 역시도 새롭게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간 나눔과 기능 혁신 등의 방식으로 풀어나간다는 입장이다.현재 포항에는 1개의 노인복지회관과 616곳의 경로당, 12곳의 노인교실을 운영·지원하고 있다. 그렇지만 증가하는 노인인구와 여가 프로그램에 대한 욕구로 이미 시설 포화상태를 넘어선지 오래됐다.현재 8만명에 달하는 노인 인구 중 하루 1천100명 정도가 노인복지회관과 평생학습원을 이용하고 있다. 경로당은 2만2천명 정도가 회원으로 등록돼 있고, 이 회원 이상의 수가 노인교실을 이용하고 있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포항시는 이에 따라 두호동 노인복지회관의 경우, 지난 2016년과 올해 2차례에 걸쳐 증축을 하고, 2017년부터 경로당 8곳을 신축했다. 이어 흥해읍에 노인을 비롯한 전세대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수영장, 체육관, 다함께돌봄센터 등 복합커뮤니티센터의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하지만, 경로당 1곳을 건립하는데 4∼5억원, 노인복지관 1곳은 100억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되는 등 지방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또한, 단순히 노인전용공간에 대한 거부감도 있다는 지적에 따라서 포항시는 노인여가시설뿐만 아니라 복지회관 등 지역전체의 여가공간을 베이비붐 세대와 지역민들을 위한 복지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시행한다는 방침이다.실제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의 경우, 단순히 공간을 점유하고 시간을 보내는 여가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에 기존의 정해진 공간 활동 중심의 서비스 제공이라는 익숙한 틀을 벗어나 다양한 장소, 다양한 지역사회 공동체 내에서의 다양한 활동에 대한 지원으로 노인여가지원 사업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이강덕 포항시장은 “낮에는 어르신들의 여가와 일자리, 나눔 활동의 공간으로 저녁과 주말에는 지역주민들과 청소년들의 공간으로 사용되며 지역민들이 함께 지역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나가는 공동체의 장으로 활용되는 복지공간 활용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

2019-10-01

왕의 남자들, 장기로 오다

환관(宦官)은 통상 내시(內侍)라고도 불렀다. 환관들은 거세된 남자로, 궁에서 일하는 직책이다. 이들은 내시부(內侍府)에 속해 대궐 안 음식물의 감독, 왕명의 전달, 궐문의 수위, 청소 등의 임무를 맡았다. 오늘날로 치면 청와대 비서관의 일종이었다. 내시부의 정원은 140명. 그들은 왕과 왕비 등 왕족을 모신 유일한 남자 궁인이었다.내시부의 으뜸 벼슬은 왕의 식사와 수행비서 역할을 하는 종2품 ‘상선’이었다. 종2품은 조선시대 제4위 품계로 그동안 ‘내시’하면 떠올리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권력을 보여준다. 그 대표적인 예를 중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진시황을 보좌하던 환관 조고(趙高)는 ‘황제의 자리를 맏아들 부소에게 넘기라’는 진시황의 유언을 무시한다. 그는 둘째아들 호해에게 황제의 자리를 넘긴 후 부소를 죽이고 권력을 농단하기에 이른다. 일개 환관에 의해 황제의 권력이 좌지우지되었던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진(秦)나라는 결국 통일된 지 15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우리나라에서는 환관하면 김처선(金處善)이라는 사람이 떠오른다.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조선 전기 여러 왕을 시종한 그는 문종 때 경상도 영해로 유배되었다가, 단종 때 풀려나 직첩이 되돌려졌다. 1455년(단종3) 정변에 관련되어 삭직·유배되었고, 세조 때 복직되었다. 1460년(세조 6)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책록되었으나, 세조의 미움을 받아 자주 장형을 당하였다. 성종 때에는 의술을 알아 대비의 신병치료에 이바지하여 가자(加資)되고,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이르렀다. 연산군이 즉위하자 다시 시종에 임하였으나, 직언을 잘하여 미움을 받았다. 1505년 연산군이 스스로 창안한 처용희(處容戱)를 벌여 그 음란함이 극에 달하자, “임금치고 이토록 문란한 왕은 없었소이다“라고 극간(極諫)하다가 다리와 혀가 잘려 죽었다. 연산군은 그의 집을 당일로 철거하여 못을 파고 죄명을 돌에 새겨 그 집 길가에 묻고 담을 쌓게 하였다. 모든 문서에 ‘처(處)’자 사용을 금하여 처용무(處容舞)를 풍두무(豊頭舞)로 고치고, 일력 중 처서의 ‘처’자가 김처선의 ‘처’자와 같다하여 조서(徂暑)로 고치기까지 하였다. 김처선의 양자도 죽였고, 친족을 칠촌까지 연좌하여 처벌하였다. 하지만 1751년(영조 27) 고향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이런 환관들은 당파싸움의 희생물이 되기도 했다. 특히 왕위 계승의 정통성이 문제가 되었던 광해군과 인조, 남인과 서인이 경쟁하였던 숙종대, 노론이 주도하면서 소론이 대항하였던 경종과 영조의 교체시기, 노론이 정국을 장악했던 정조 즉위 전후에는 서로 실권을 장악하기 위한 방법으로 모반 및 역모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럴 때는 왕이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가도 중요하였지만, 때에 따라서는 왕을 제거해야할 필요성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환관과 궁녀들이 꼭 개입되었다. 왕의 의중을 알아내는 일, 음식물에 독약을 넣거나, 왕자나 왕비가 병들어 죽기를 바라는 뜻으로 흉한 물건을 일정한 곳에 묻는 이른바 매흉(埋兇)의 실행자들은 대부분 환관과 궁녀들이었다.그 구체적인 실례는 많다. 광해군때 영창대군 옹립 사건에는 선조의 총애를 받던 환관 민희건이 끼어있다. 민희건은 선조가 죽던 날 어필(御筆)을 본떠서 밀지(密旨)라고 속인 뒤 유영경(柳永慶)에게 내주어 영창대군을 보호하게 하였다. 인조때 광해군 복위운동에도 환관 배희도가 등장한다. 유호립은 궁내사람들과 짜고 궁중에 들어가 인조를 살해하고, 광해군을 상왕으로 삼고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을 새로운 국왕으로 옹립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군사가 서울에 도착하면, 환관 배희도에게 용사(勇士) 2인을 주어 인조를 시해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경종때 박상검(朴尙儉)이란 환관이 있었다. 그는 충주(忠州) 박씨로 평안도 영변 사람이다. 어려서 바로 이웃집에 살고 있던 심익창(沈益昌)에게 수학하였다. 마침 김일경과 원휘(元徽)가 차례로 영변부사로 부임해 심익창의 집에 자주 드나들자 박상검도 이들과 친교를 맺게 되었다. 뒤에 이들의 힘으로 궁궐에 환관으로 들어갔는데, 그때는 김일경이 소론의 거두가 되어 있었다. 당시 조정의 신하들은 서로 붕당을 지어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헐뜯고 싸울 때인데, 김일경이 박상검을 조정에 환관으로 심어 놓은 것이었다.그 동안의 흘러온 과정을 잠시 살피자면,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은 노론의 반대를 받았으나 소론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그게 1720년이다. 하지만 병약했던 경종은 즉위한 지 1년 되던 해(1721년), 노론 대신들인 김창집·이건명 등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복동생인 연잉군(후에 영조)을 왕세제(王世弟)로 삼고, 그에게 대리청정을 맡겼다. 당시 김일경과 박필몽을 필두로 한 소론측은 연잉군이 왕세제로 책봉되는 것을 저지하고 나섰다. 결국 경종은 다시 친정(親政)을 하고, 그해 음력 12월 김일경 등의 탄핵을 받아들여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주장한 영의정 김창집과 좌의정 이건명 등을 면직시키는 등 정국이 회오리치고 있었다.이 무렵 김일경은 심복인 박상검을 이용해 노론의 지지를 받는 왕세제 연잉군을 아예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박상검은 김일경의 무리로부터 받은 은화 수천 냥을 이용해 먼저 궁내에 있는 환관과 궁녀들을 매수하였다. 반면 매수에 응하지 않는 노론계 환관들에게는 이간질하여 궁내에서 몰아냈다. 우선 자신의 편에 서지 않았던 환관 장세상(張世相)·고봉헌(高鳳獻)·송상욱(宋尙郁)이 그 쫓겨날 대상이었다.소론을 지지하던 경종은 박상검 등의 고자질을 믿고 1721년(경종1) 12월 23일, 장세상을 경성부에, 고봉헌을 광양현에, 송상욱을 경상도 장기현에 유배시켜 버렸다. 이때 이들의 가족들도 연좌되었는데, 장세상의 가족인 장두명(張斗明)도 송상욱과 같이 장기현으로 유배되었다.정적들을 제거한 박상검은 그로부터 한 달 후인 1722년 1월, 궁 안에 돌아다니는 여우를 잡는다는 구실로 청휘문(淸暉門)에 여우 덫을 놓고 함정을 파놓았다. 이로 인해 왕세제가 경종에게 문안을 드리거나, 아침저녁으로 진짓상 돌보러 가는 길이 가로막혀버렸다. 당연히 경종과 왕세제 사이에는 오해와 불화가 조성되었다. 이들은 대전(大殿)의 궁녀들에게 왕세제를 헐뜯는 말을 퍼뜨리도록 해 경종이 이를 믿고 왕세제를 제거할 수 있는 명목을 만들었다.이 낌새를 눈치 챈 연잉군이 들고 나섰다. 그는 밤에 입직하던 궁관(立直宮官)과 익위사관(翊衛司官)을 불러 모아 놓고 환관 한두 명이 나를 제거하려 하니, 그들의 독수(毒手)를 피하기 위해 사위(辭位:왕세자의 자리를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이튿날 아침 대신들의 주청으로 주모자를 국문하라는 경종의 명령이 떨어졌다. 예상외로 일이 커지자 소론의 영수이던 영의정 조태구, 같은 무리의 김일경 등은 시침을 뚝 떼고 모든 관련자들을 잡아들여 빨리 처벌하라고 길길이 뛰었다. 자신들의 음모가 탄로 날 것을 걱정하여 미리 관련자들을 잡아 처치해버리려는 심보였다.의금부에서는 환관 박상검과 문유도(文有道), 궁인인 석렬(石烈)과 필정(必貞)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고 수사를 개시하려 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안 석렬은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잡혀온 필정도 옥중에서 자살해버렸다. 박상검과 문유도에 대해서만 국문(鞠問)이 이루어졌으나, 이들은 끝내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버티기만 하면 김일경 등이 알아서 석방해 주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관련자들을 추가로 잡아들여 심문을 하였으나 마찬가지로 혐의가 확인되지 않았다. 1722년(경종2) 1월 4일, 문유도도 심문을 받던 도중에 목숨을 잃었다. 결국 그해 1월 6일, 박상검은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기도 전에 같은 계파인 소론의 관리들에 의해 능지처참 당하였고,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이를 두고 역사에서는 ‘박상검의 옥’이라고 한다.결과적으로 박상검은 소론의 김일경 등의 사주를 받고 경종과 왕세제 사이에 불화를 일으켜 왕세제를 없애려 했지만 토사구팽이 되고 말았다.소론의 이간질을 믿고 경종이 송상욱을 장기까지 유배 보낸 이유를 보면 옹색하기 그지없다. 유배형벌 중에서도 가장 중한 유3천5백리에 처한 이유가 고작 ‘잔소리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처사에 대해서 신하들도 임금이 중도를 잃었다며 걱정을 하는 모습이 경종실록에 보인다.송상욱과 장두명이 박상검의 계략에 밀려 장기로 유배 온 지 3년 후인 1724년에 경종이 죽었다. 재위 4년 만이었다. 경종이 독살되었다는 소문을 뒤로하고 이제 노론의 지지를 받던 연잉군이 영조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영조가 즉위한 그해 10월 19일, 송상욱은 해배되어 장기를 떠났다. 그 이듬해인 1725년, 김일경 등이 박상검의 배후로 지목되어 탄핵되었고, 환관 손형좌(孫荊佐) 등에 대한 국문이 이루어지면서 이 사건은 다시 노론과 소론의 대립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이 무렵인 1725년 4월 9일, 그제야 장기에 와서 3년 넘게 유배살이를 하던 장두명도 해배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뒤에 자세하게 논하겠지만, 신임사화란 것이 있었다. 노론은 신임사화를 주도한 조태구, 김일경, 목호룡(睦虎龍) 등을 공격하기 위해 이 사건에 대한 재조사와 관련자의 처벌을 주장했다. 결국 영조 때에 다시 쓰인 경종수정실록에는 “박상검(朴尙儉)이 김일경의 손발이 되어 은밀한 기회를 몰래 주선하여 안에서 해적(害賊)이 되어 안팎에서 선동하였다”라고 기록하였다.해배되어 한양으로 올라간 송상욱은 다시 제시내관(祭侍內官)으로 복직되어 궁중생활을 이어 나갔다.서울 도봉구 창동과 월계동 사이에 걸쳐 있는 초안산에는 내시들의 공동묘지가 있다. 사람들은 여기를 ‘내시내 산’이라고 한다. 장기로 온 송상욱이나 그를 모함하여 장기로 보낸 박상검이나, 그들의 신분이 내시였으므로 모두 이곳에 묻혔을 것이다. 산자락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내시들의 묘는 문인석 등의 석물들이 처참하게 나뒹굴고 있다. 누구나 이곳에 와 보면, 너무 많은 묘에 놀라고 허술한 관리에 한 번 더 놀란다. 무덤들도 봉분이 온전한 것은 거의 없고, 소나무나 아카시 나무들이 봉분 위에 자라고 있다. 한눈에 봐도 그 누구도 이 무덤들을 거의 돌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특이한 모습은 여기 무덤과 석물들이 하나같이 서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죽어서도 궁궐이 있는 서쪽을 바라보며 임금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서란다. 생식기를 잘려버린 것도 모자라 죽어서까지 충성을 강요당한 이들의 통곡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위정자들에게 희생된 영혼들이 아직도 구천을 헤매는지 을씨년스럽기조차 하다.하지만 일제 강점기까지 매년 가을이면 산 아래 마을 민초들이 후손이 없는 내시들을 위하여 제사를 지내주었다는 안내문 글귀에서 그나마 위안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이상준 향토사학자

2019-10-01

천혜의 경관이 계획된 관광인프라와 만나 세계적 명소 탄생

서울 면적의 채 두배도 되지 않는 1천100여㎢에 7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홍콩은 최근 잇따른 시위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도시지만, 원래는 아시아 금융과 물류 허브이자 쇼핑의 메카로 유명세를 떨쳐왔던 곳이다. 1841년부터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은 그 이유에서인지 중국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즉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1국 2체제라는 이름 아래 자치권을 누리는 지방행정구역이며, 현재까지도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영토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많은 부분에서 중국 본토와 분리된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배 흔적이 남아있는 이러한 이질적인 모습은 한국을 포함한 다른 아시아 국가와는 차별된 많은 매력을 갖추고 있어 연중 수많은 외국인들이 방문하는 등 도시 전체가 관광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세계 3대 야경 중 하나로 꼽히는 마천루들의 모습,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홍콩 영화의 태생지, 중세 중국의 건축물 유적, 서양·중국·동남아시아가 혼재된 문화 등 많은 것들이 홍콩의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대부분의 인파가 몰리는 곳은 흔히 홍콩섬과 홍콩섬 맞은편이자 중국 대륙과 붙어 있는 구룡반도다. 그러나 홍콩 국제공항이 위치한 란타우 섬도 ‘의도적으로’ 관광을 위한 각종 명소가 자리를 잡고 있다. 우선 디즈니랜드가 있으며, 그다음으로 옹핑360 케이블카를 중심으로 한 란타우 섬 일주 관광 코스가 대표적이다. 특히 옹핑360 케이블카는 홍콩을 1박 이상 머무는 관광객들이 들르기도 좋지만, 공항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비행기를 환승하려고 대기하는 방문객들이 잠깐 서너 시간 짬을 내 홍콩을 구경하기에 최적화됐다.한해 200만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고 경영적인 측면에서도 계속 흑자를 유지하고 있는 옹핑360 케이블카와 그 주변 관광지에 대해 살펴보면, 풍광은 돈을 주고도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계획된 관광 인프라가 맞물려야 관광객들이 매력을 느끼고 방문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란타우 섬 관광의 시작지 옹핑360 케이블카홍콩 란타우 섬은 1998년 국제공항이 생기기 전까지는 불모지였다. 그러나 공항 건설 이후 해변 휴양지인 ‘디스커버리 베이’, 유원지인 ‘홍콩 디즈니랜드’, 아시아에서 가장 긴 이중 케이블 선로를 사용하는 ‘옹핑 360’까지 들어서며 복잡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홍콩 내에서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느긋함을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란타우섬의 관광은 구룡반도를 통과한 지하철이 멈추는 퉁청역에서 시작하는데, 그곳이 바로 옹핑360이 위치한 곳이다.옹핑360은 퉁청역에서 출발해 포린사가 위치한 옹핑 빌리지까지 이동한다. 길이는 5.7㎞로 총 소요시간은 25분이다. 케이블카는 스탠다드와 크리스탈 두 가지가 있는데, 크리스탈의 경우 요금은 더 비싸지만 바닥이 유리로 이뤄져 발아래의 모습까지 조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5분이라는 시간이 얼핏 길고 지겹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란타우 섬의 다채로운 풍광은 그러한 걱정을 말끔히 씻어준다. 바다와 섬을 공중에서 바라보며 이동하는 경험은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들다. 출발하면 가장 먼저 퉁청 개발 지역을 지나 자연 서식지이자 낚시·조개잡이로 잘 알려진 퉁청 해안이 눈에 들어온다.이 해안은 습지와 바다 식물의 독특한 조합으로도 유명하다. 이어 매일 약 1천100회의 비행이 이뤄지는 국제공항, 아시아 월드 엑스포가 먼 거리에서 감탄을 자아낸다. 50㎞ 길이인 홍콩-주하이-마카오 브릿지의 전경 또한 탁 트인 남중국해와 함께 어우러진다. 홍콩 란타우 섬, 마카오 반도와 광둥 지역의 주하이 시를 연결하는 이 다리에는 인공 섬과 해저 터널도 있다. 특히 란타우 섬 일대는 그 자체가 국립공원이라 케이블카 역시 친환경적으로 지어졌고, 그 덕분인지 잘 보존된 경관은 하이킹 코스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1978년에 설립된 22㎢ 면적의 이 공원에는 네이 락 샨과 옹핑 북부를 비롯해 선셋 픽, 이 퉁 샨, 리 파 샨, 란타우 픽 북부 경사로와 같은 꽤 많은 인기 하이킹 명소가 있다. 마지막으로 케이블카가 옹핑에 도착하기 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티안 탄 부처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옹핑360 케이블카와 연계된 란타우 섬 관광옹핑360 케이블카는 그 자체로도 관광상품이지만, 란타우섬 관광을 시작하는 출발지로서의 의미도 있다. 즉 케이블카만으로도 아시아에서 으뜸가는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주변 관광 인프라 역시 그에 못지않게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 케이블카가 도착하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은 옹핑 빌리지다. 이 곳은 불교 테마 마을로 옹핑의 경치 좋은 자연에 동화되도록 설계·조경된 마을이다. 식당과 각종 기념품점 외에도 붓다의 길, 원숭이 극장 등의 볼거리가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옹핑 빌리지를 걸어서 조금만 지나면 바로 포린사가 나온다.홍콩 최대 규모의 불교 사원으로 바로 옆에 위치한 티안 탄 부처상(천단대불)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부처상은 높이 26.4m로, 연꽃 좌석과 받침대까지 포함한 총 높이는 34m다. 250t의 청동으로 만들어져 12년 동안 주조됐으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야외 부처 동상이다. 관광 목적이 아니더라도 불교계에서도 유명해 세계 각지의 승려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68개의 돌계단을 올라 3층 제단에있는 큰 불상에 도달하면 플랫폼에서 란타우 섬과 남중국해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포린사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하면 타이오라는 어촌 마을이 나온다. 타이 오는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어촌 마을로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수상 가옥들이 유명하다. 또한 핑크 돌고래가 출몰하는 인근 바다로 떠나는 돌고래 투어도 있다. 이 외에도 청사 해변, 홍콩의 유럽이라 불리는 디스커버리 베이 등도 들를만한 곳이지만, 란타우 섬 관광의 마지막은 시티게이트 아웃렛에서 마무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옹핑360의 출발지인 퉁청역에 있는데 공항과 아주 가까워 입출국을 앞두고 방문하기에도 좋다. 아웃렛이라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고 다양한 브랜드가 입점해 있으며, 대형슈퍼 TASTE도 있어 이를 구경하는 재미도 특별하다.□ 옹핑360 케이블카의 위상옹핑360 케이블카는 란타우 섬 관광의 처음이자 끝이며,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이동 수단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 예약 없이 방문할 경우 짧게는 한 시간, 적어도 두 세 시간은 기다려야 탈 수 있을 만큼 인기도 있다. 이러한 모습은 케이블카 이동 구간마다 꽉 채워진 자연 풍광과 건축물들도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타 관광지와 유기적으로 연계된 프로그램의 역할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즉, 서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이런 부분은 케이블카의 매력이 더욱 빛을 발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케이블카는 무조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아니다.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천혜의 경관을 전제로 하고, 거기에다 철저한 계획을 통한 주변 관광 자원과의 연계가 뒷받침돼야만 제 역할을 발휘할 수 있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9-09-30

문경사과로 사랑을 전하세요

문경시는 백두대간의 태백산과 소백산을 거쳐 새재의 주흘산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산줄기들에 에워 싸인 작은 분지로 형성돼 있다.한반도 내륙성 기후의 특징인 온난한 기후와 풍부한 일조량, 주야간의 큰 일교차,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등 천혜의 사과재배 적지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과즙이 많으며 육질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다. 고유의 향기와 맛 또한 일품인 문경사과는 전국제일의 사과로, 지역 으뜸의 특산품로 꼽히고 있다.◇ 재배 및 판매현황 변화1930년대부터 재배돼 온 문경사과는 2008년도 1천600여 농가가 1천645ha를 재배해 전국 10대 주산지에 머물렀다. 재배품종도 후지, 홍로, 쓰가루가 주를 이뤄 타 주산지와 차별화가 되지 않았다. 2018년 말을 기준으로 볼 때 문경사과는 2천여호가 2천44ha를 재배하며 연간 4만5천여t을 생산, 총 생산액이 1천200억원(추정치)에 이른다. 재배면적으로 전국 6대 주산지로 성장했다.재배품종 중 당도가 제일 높은 국내육성품종인 ‘감홍’은 전국제일의 주산지로 명성이 높다.문경사과의 유통·판매는 주로 문경거점산지유통센터(문경APC), 문경농협, 지역농협, 안동공판장 등에서 이뤄진다. 최근 사과축제를 통해 소비자직거래(특판, 택배 등) 및 가공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문경사과연구소 설치 및 운영농업 개방화시대에 대비해 지역특성에 맞는 사과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문경사과의 명품화를 앞당겨 농가소득을 높이기 위해 2009년 9월 마성면 외어리 769번지 2만2천438㎡부지에 과수포장(약 20,000㎡)과 농기계창고(230㎡), 퇴비사(165㎡), 저온저장고(100㎡), 관리사(130㎡)등 4개의 건물을 갖췄다.국내육성품종 현지 적응 검정, 경비절감 기술개발, 농업 특허개발,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소 공동연구, 현장평가회 등을 수행해 농가의 재배기술발전과 경비절감에 기여했다. 2019년 교육관을 신축해 농업인교육 및 문경사과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문경행복농업대학 사과입문과 운영문경행복농업대학 사과입문과는 앞으로 고품질 안전사과 생산만이 대내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어 사과재배 농업인의 기술수준 향상을 통해 변화하는 지역과수 산업의 선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5년부터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수강대상은 귀농인, 여성농업인, 기존 과수재배인 등으로 수준별 맞춤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2018년까지 1천190명이 수료했다.◇ 한·일 사과재배 기술교류 사업시는 문경사과 재도약의 방향을 제시하고 지역에 적합한 새로운 기술 도입 및 정착을 위해 한·일 사과재배 기술교류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 야스마사씨와 오까다 오사무씨를 문경으로 초청해 지역에 적합한 사과재배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일본 현지과원을 방문, 시기별로 재배기술 교육 및 실습을 병행하고 있다. 2002년부터 2018년까지 73차에 걸쳐 일본방문(645명), 문경초청 순회기술교육(1만3천524명), 세미나 19회(4천874명)를 실시해 농업인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한·일 사과재배 기술교류는 우리지역 사과재배 농가들에게 인식 변화의 계기가 됐고, 선진기술의 조기정착으로 문경의 사과재배기술을 한 단계 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과수 꽃가루은행 운영과수의 안정적인 결실 확보와 품질향상을 위해 2004년부터 2015년까지 과수꽃가루은행을 운영했다. 사과, 배 재배농업인 3천86호가 꽃가루 38만1천159g을 채취, 3천352ha에 인공수분을 실시했다. 2016년 270ha, 2017년 236ha에 인공수분을 실시해 정형과 비율을 높여 문경사과의 품질향상으로 농가 소득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문경사과발전협의회 생산자 단체 육성문경사과발전연구회를 ’96년도 신규 조직해 현재의 문경사과발전협의회 육성했으며 지역사과재배농업인 500여명(사과재배농업인의 약 25%)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생산자단체와 매년 문경사과품평회를 개최해 문경사과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있다. 고품질사과생산을 위한 병해충방제교육과 과원순회 현장지도 등으로 문경사과의 명성을 회복하는 기반도 구축했다.◇ 문경사과축제 및 사과학술세미나 개최문경에서 생산된 사과의 우수성과 소비자(관광객)와 함께하는 축제 육성을 위해 2006년부터 문경사과축제를 개최하고 있다.축제는 시민화합 유도 및 문경의 대내외 홍보, 지역경제 활성화 등에 기여하고 있다. 2018년에는 45만3천여명의 관광객에게 13억5천만원의 사과를 판매했다.2007년부터 국내·외 사과관련 전문가를 초청, 사과학술세미나를 개최 하는 등 농업인의 기술향상을 도모하고 있다.◇사과가공산업 현황·6차농업지도 성공모델농업인의 가공수요해결과 가공사업의 효율적인 지원체계 구축, 문경사과의 지속적인 소비창출 및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2009년부터 현재까지 농식품 특성화사업을 추진해 사과칩, 사과즙 등 가공농가 40호를 육성했다. 이 곳에서 사과생산량의 25% 정도인 8천400여t을 가공하고 있다.문경사과주스플랜트 운영을 통해서는 대량창업보육농 52호를 육성했으며, 지역 내 초중고와 유치원에 백설공주 사과즙을 공급, 급식시장을 개척했다.◇ 문경사과축제 내달 12일 개막올해로 14번째를 맞는 문경사과축제는 ‘백설공주가 사랑한 문경사과’를 주제로 공식행사, 특별행사, 체험행사, 무대행사의 차별화된 컨셉으로 오는 10월 12일부터 27일까지 16일간의 긴 여정에 들어간다.올해 축제는 주 행사장을 문경새재야외공연장으로 옮겨 관람객의 동선을 최소화해 행사의 집중도를 높였다. 사과특판부스와 문경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농특산물 판매부스도 같이 운영한다. 공식행사는 10월 12일 오후 3시 주 무대에서 개막식을 시작한다.특별행사는 문경사과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특별경매를 매일 진행하며, 문경사과 품평회에서 입상한 사과와 국내·외에서 재배되는 사과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과 홍보관을 상설 운영한다. 주 행사장에서는 문경사과낚시, 문경사과 볼링, 사과활쏘기, 문경사과럭키박스게임, 사과 농구게임, 문경사과다트, 문경사과스텐실 등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체험행사가 이어진다.주무대에서는 문경국악대전, 전통가요 페스티벌, 낙동가요제 등 굵직한 문화행사를 비롯해 사과껍질길게깎기, 사과탑높게쌓기, 보이는 라디오, 텐덤노래방 등 관람객과 시민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특히 올해는 사과특판부스와 농·특산물 판매부스를 보행자의 통행이 많은 주요 통행로에 설치해 판매 부스참여자들의 판매량이 급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문경사과축제는 사과작황이 불안전한 가운데도 45만 여명의 관람객이 찾아 13억5천만원의 판매 실적을 올려 사과재배농가에게 큰 도움이 됐다.문경시 관계자는 “올해 사과작황이 작년보다 좋아 30%싼 가격에 문경사과를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사과판매액은 지난해 축제보다 늘어난 15억원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강남진기자 75kangnj@kbmaeil.com

2019-09-29

붉은 태양 솟아오르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원을 말하고

파랑이 다가설수록 빨강은 수줍게 물러난다. 울릉 바다의 해질녘은 꼭 젊은 남녀의 사랑싸움 같다. 도무지 잡히지 않을 것 같던 석양의 옷자락이 파도가 뻗은 손에 붙들리는 순간, 바다와 하늘이 포옹한다. 파랑으로 빨강이 스며들 때 수평선은 보랏빛 이불을 덮고, 빨강으로 파랑이 달려들 때 낮별들은 분홍색 꽃잠이 된다. 그 황홀한 로맨스의 시간에 나는 홀로 행남해안산책로를 걸었다.낮에 이 길을 걸을 때, 저녁 바다와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일 자리를 미리 점찍어뒀다. 해안산책로 초입에 있는 포장마차 ‘용궁’에 앉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갯바위를 때리는 파도 소리가 화음을 이뤄 듣기에 좋았다. 모둠해산물 한 접시를 시켰다. 옆 테이블에 앉은 어르신들이 나보다 먼저 저물녘 바다에 사로잡혀 있었다. “분위기 좋다”고 감탄하는 소리가 스피커와 파도 사이로 끼어들어 장단을 맞췄다. 곧 싱싱한 오징어회와 전복, 소라, 멍게, 그리고 제철은 아니지만 초장을 듬뿍 찍으면 그런대로 먹을 만한 방어회로 구성된 모둠해산물이 상에 올랐다. 내가 술잔을 비우면 파도가 빈 잔에 술을 채웠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바람의 음계가 반음 내려가 쌀쌀했다. 뜨거운 국물 생각에 오징어라면을 시켰다. 양은냄비를 비워 속이 훗훗해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들이 바다로 자맥질하고 있었다. 밤바다 위를 어칠비칠 걸어 도착한 도동항의 낡은 여관, 이불을 깔고 누우니 창을 흔드는 바람 소리가 다행히 꿈결만은 흔들지 못했다.섬은 육지보다 일찍 눈을 뜬다. 동쪽의 머리맡으로는 매일 신선한 빛이 신문과 우유처럼 배달된다. 새벽 5시 30분, 섬이 기지개를 켜 나도 잠에서 깼다. 바람 소리가 요란했다. 겉옷을 입고 도동항에 나섰다. 어부와 상인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여행객들도 졸린 발을 끌며 섬의 아무 동쪽으로나 가고 있었다. 나도 걸었다. 몇 걸음만 가면 도동항 여객터미널과 이어지는 공중공원, 부지런한 사람들이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맘때 울릉 바다는 오전 5시 50분에서 6시 사이에 해를 돋아낸다. 해돋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시린 손에 입김을 불어넣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붙잡고, 해 뜨기 전 어둠과 빛이 뒤엉켜 추는 오묘한 춤을 사진에 담았다.“올라온다, 올라와!” 저 먼 수평선에서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붉은 이마를 누군가가 먼저 본 모양이다. 그 외침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밤새 어둠 뒤에서 빛과 열을 끌어 모은 태양이 바다에 불을 지르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이내 말을 잊었다. 울릉도의 해돋이가 워낙 장엄한 까닭이리라. 태양이 펼친 붉은 돛을 열심히 밀어주는 바람의 기합소리만 들렸다. 점차 완전한 원의 형태가 되어가는 태양을 보면서, 얼굴이 금빛으로 물든 사람들은 소원을 빌고, 사진을 찍었다. 나도 사진 몇 장을 찍고는 걸음을 돌렸다. 하품이 났다. 다시 여관방에 누워 한 숨 자고 일어났더니 두어 시간 전에 본 해돋이가 마치 전생의 풍경처럼 아득하기만 했다.대부분 관광지가 그러하듯 울릉도의 식당들도 1인분은 잘 팔지 않는다. 울릉도를 대표하는 음식이라 할 수 있는 오징어내장탕, 따개비밥, 홍합밥, 오징어불고기 등은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하다. 그래서 1인분 파는 식당을 만나면 몹시 반갑다. 도동항 ‘만남의 광장’ 근처에 있는 ‘두꺼비 식당’에 들어가니 아침식사를 하는 손님들이 제법 많았다. 속풀이와 배멀미에 좋다는 오징어내장탕을 주문했다. 주문과 동시에 조리해서 15분 만에 음식이 나왔다. 매운탕 국물에 애호박, 콩나물, 대파, 다진 마늘 등 채소와 오징어 내장이 듬뿍 들어간 것이 두꺼비식당의 오징어내장탕이다. 내심 맑은 국물을 기대했는데, 울릉도에서도 식당마다 끓여내는 방식이 다른 모양이었다.오징어내장탕은 오징어를 손질하다 대개 버리게 되는 오징어 내장을 재료로 한 향토 음식이다. 오징어 내장은 쉽게 부패해 보관이나 손질이 어렵고, 기생충 위험이 있어 식용으로 적합하지 않지만, 그날 잡아 그날 손질하는 울릉도 오징어의 경우 신선도가 매우 뛰어나 내장을 얼마든지 식재료로 쓸 수가 있다. 오징어내장탕은 울릉도에 오지 않고서는 맛볼 수 없는 음식인 셈이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먹어보니 얼큰하면서도 간이 좀 셌다. 호박 맛이 강해 호박찌개 같다는 인상도 들었지만 오징어 내장에서 깊은 바다 냄새가 났다. 밥과 함께 후룩후룩 떠 먹다가 어느새 사발을 다 비웠다. 울릉도 음식은 꼭 겉은 한없이 무뚝뚝한데 속은 다정한, 표현에 서툰 우리 아버지들을 닮았다. 내일 또 오겠다고, 아버지를 어려워하는 아들마냥 말을 흐리며 식당을 나섰다.차를 몰고 울릉도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지난 3월, 울릉읍 저동리에서 북면 천부리까지를 잇는 도로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약 5㎞에 달하던 간극이 메워졌다. 오랜 세월 울릉군민은 물론 관광객들의 염원이기도 했던 울릉도 일주도로의 완전 개통이 이뤄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울릉도에 와서야 알았다. 늦게 소식을 들은 만큼 새 길부터 다녀보자며, 우선 도동항을 출발해 저동항, 내수전, 와달리를 지나 북면 천부항까지, 올해 개통된 구간을 답사하며 울릉 해안선의 절경을 감상하기로 했다. 도로는 개통됐지만 여전히 곳곳에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연속된 급커브와 경사로, 비포장길이 많아 운전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위험할 수도 있다. 버스나 관광 택시를 이용해도 충분히 섬 한 바퀴 구석구석 다닐 수 있으니, 현지 교통수단 이용을 권한다.차창 밖으로 펼쳐진 울릉 바다의 풍경은 섣부른 묘사나 상투적 감탄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절대자 앞에서 인간이 겸손해지듯, 나는 저동 촛대바위 앞에, 또 섬목에서 바라보는 대나무섬 죽도의 풍경 앞에 저절로 경건해졌다. 촛불을 켜놓고 신의 계시를 기다리는 수도자처럼, 이어도를 보며 ‘황홀한 절망’을 느낀 천남석처럼 내 내부에는 울릉도에 대한, 자연에 대한 신앙심이 깊어졌다. 제주도나 국토 최서남단 가거도에서 느낀 것과는 성분이 다른 감동이 울릉도에 있었다. 보다 거칠고 투박하며 맨주먹으로 가슴을 때리는 뭉클함이랄까. 괭이갈매기들의 천국인 관음도를 향해 새들이 떼 지어 날아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울릉 바다의 경치에 반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하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삼선(三仙)바위가 된 세 선녀는 현무암 검은 알몸을 내놓은 채 지금껏 푸른 물로 살을 씻고 있었다.바람과 파도가 주먹으로 가슴을 쿵쿵 때려대는 통에 흥분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마음을 가라앉히려면 먼저 몸을 가라앉혀야 한다고, 스스로 세운 가설에 이상하게 설득되어 바다 속으로 한번 내려가 보기로 했다. 울릉도에서는 스쿠버다이빙을 하거나 잠수함에 타지 않아도 신비로운 바다 속 세계를 구경할 수 있다. 북면 천부에 있는 천부해중전망대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수중 전망대다. 천부항소공원에서부터 바다 쪽으로 이어진 다리 끝까지 걸어가면 파란 페인트칠이 인상적인 원통형 모양의 전망대가 나타난다. 높이는 총 22m 가량인데,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해수면 아래 수심 6미터 지점까지 내려가면 넓은 유리창을 통해 바다 속을 볼 수 있다.나선형 계단을 빙빙 내려가 거대한 바다를 텔레비전 크기로 축소해놓은 창 앞에 선 순간, 나는 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말았다. 돌돔, 자리돔, 복어 등 다양한 물고기들이 푸른 바다 속을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 속 풍경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는데, 울릉도 여행에서 얻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천진한 동심도 잠시 뿐, 환한 미소는 이내 사라지고, 낚시꾼의 본능이 꿈틀거리면서 미간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연산 돌돔회의 탱글탱글한 육질, 그 달면서도 고소한 감칠맛 생각에 침이 막 고인 것이다.물속에 있다가 물 밖으로 나오니 울릉도가 낯설었다. 변덕스러운 섬 날씨가 몰아왔던 먹구름도 걷혀 하늘이 맑았다. 마치 침례를 받은 교인처럼, 마음이 깨끗해진 나는 불현듯 천국이 궁금해졌다. ‘울릉 천국’을 향해 차를 몰았다.          /시인 이병철

2019-09-29

웃음 가득한 ‘예주문화예술회관·영덕 해변’… 명품 공연장으로 자리매김

인도 남부 도시 알라푸자(Alappuzha)를 여행했을 때다. 수로가 예쁜 조그만 마을에서 이틀을 묵었다.첫날 밤. 영국에서 왔다는 나이 지긋한 관광객의 권유로 소규모 극장에서 까따깔리(Kathakali)를 관람했다. 대사 없이 몸짓과 춤, 타악기 연주만으로 인간의 환희와 고통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인도 전통 무용극. 기자를 포함한 수십 여 명 관객들 모두가 보는 내내 즐거워했다. 낯설고 새로운 것은 언제나 인간을 크게 매혹하는 법. 좋은 공연은 지역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동시에 매력적인 관광상품도 될 수 있다. 이런 간명한 사실을 한국의 지방자치단체가 모를 리 없다. 그렇기에 양질의 문화·예술 공연을 기획하고 무대에 올리고자 고심하고 있다. 영덕군도 마찬가지다. 그 현장을 확인하고 싶어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을 위해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예주문화예술회관과 ‘최고의 야외 공연장’이라 할 수 있는 영덕의 해변을 찾았다.◆영덕 아이들에게 즐거움 준 ‘번개맨’과 ‘로봇 SW 페스티벌’예주문화예술회관은 양질의 공연에 목말랐던 영덕 주민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매력적인 공연이 열릴 때마다 많은 주민들이 회관을 찾는다. 이곳에서 펼쳐진 ‘로봇 SW 페스티벌’ 뮤지컬 ‘번개맨’ ‘코미디 리사이틀’ 등은 장르의 다양성은 물론 기획력까지 돋보였다. 자녀를 동반한 부모, 노인과 청년들이 모여 앉은 공연장은 세대간의 간극을 메워 주기도 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예주문화예술회관이 브로드웨이처럼 보이는 순간이었다.영덕의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던 작품은 모두가 예상하듯 ‘번개맨’. 아동을 위한 공연이 드문 현실에서 ‘꼬마 관객들’의 환호성을 부른 무대였다. ‘번개맨’이 영덕에 나타난 날은 예주문화예술회관 주차장이 밀려드는 차량으로 몸살을 앓았다.‘번개맨’은 18년 동안 이어져온 한국의 대표적인 유아 공개방송. 부모들은 휴가를 내면서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공연장을 찾았다고 한다.영덕의 공연기획 실무자들은 EBS를 설득해 예주문화예술회관에서의 3회 공연을 성사시켰고, 3번의 공연 모두 만석을 이뤘다.‘번개맨’ 출연진과 스태프 200여 명은 영덕에서 3일간 머물며 음식점과 숙박업소를 이용했고, 이는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일정 부분 도움이 됐다.3천200명의 관람객이 몰린 ‘로봇 SW 페스티벌’도 영덕의 아이들이 즐거워한 행사였다. “콘텐츠가 색달랐고, 진행도 매끄러웠다”는 평가를 받은 이 페스티벌은 영덕문화체육센터에서 열렸다.행사장을 찾은 아동들은 커다란 로봇과 마술사가 펼치는 특별한 이벤트에 박수를 보냈고, 로봇을 직접 조종하며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아들과 함께 온 30대 아버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애들에게 딱 맞는 프로그램”이라며 환하게 웃었다.◆새롭게 단장한 예주문화예술회관 ‘웃음 가득한’ 각종 공연예주문화예술회관은 얼마 전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유아를 데리고는 공연 관람이 어려운 부모의 입장을 감안해 유아실을 새로 만들었고, 분장실도 넓혀 출연자들의 불편을 해소한 것. “객석도 기존 531석에서 679석으로 늘어났고, 로비의 디자인도 세련되게 바꾸었다”는 게 이어지는 영덕군청의 설명이다.새로운 모습을 갖춘 회관에선 ‘코미디 빅리그’와 ‘웃찾사’ 등 TV 코미디 프로에서 활동한 개그팀 졸탄과 DJ 쥬쥬, 개그맨 박수홍, 손헌수가 무대에 섰다.애초엔 주로 젊은층이 올 것을 예상했으나, 의외로 적지 않은 어르신들이 객석을 찾아 즐거워했다. 이날 관객은 1천100여 명. TV에서 보던 연예인들을 가까이서 만난 관객들은 공연진이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크게 웃었다는 후문이다.앞으로도 예주문화예술회관의 공연 스펙트럼은 계속 넓어진다. 뮤지컬과 코미디에서 마술쇼, 발레, 비보이 공연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마술사 최현우의 ‘매직 블록버스터’는 모든 세대가 흥미롭게 관람했다. 익스프레션 크루의 퍼포먼스 ‘마리오네트’ 무대 또한 호평을 받았다. “공짜로 이런 공연을 보는 게 미안할 정도”라고 말한 관객도 있었다고 한다. 가수 홍진영과 조항조의 콘서트는 중장년층에게 좋은 선물이 됐다.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의 연주회와 명창 박준형의 ‘상생 비나리’, 박금희 발레단의 춤 공연 역시 “영덕 주민들의 문화향유권을 신장시 켰다”는 평가다. 지난해 예주문화예술회관을 찾은 관객은 모두 2만2천193명.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오는 10월 29일엔 태권도와 발레, IT융합기술이 결합된 특별한 공연 ‘LED 비바츠 태권·발레’가 무대에 오른다. 한국의 대표적 국기(國技)인 태권도와 서양 예술 장르인 발레에 디지털강국의 면모를 보여주는 첨단 기술까지 더해져 아이들은 물론, 성인 관객도 충분히 매혹할 작품이다.또 12월 19일에는 아날로그 세대의 감수성을 민감하게 자극할 영덕군 송년콘서트 ‘015B김형중 메모리즈’가 예정돼 있어 벌써부터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영덕 해변’은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한 공연장사시사철 푸른 파도가 매혹하는 영덕의 바닷가도 예주문화예술회관 못지않은 ‘최고의 공연장’이 돼주고 있다. 해변은 영덕군이 가진 또 다른 ‘명품 공연장’이다.‘썸머뮤직페스티벌’은 영덕 해변에서 펼쳐지는 흥겨운 문화·예술 행사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관광객과 군민이 모이는 곳에 직접 찾아가 그들과 즐거움을 나눈다는 것이 특징이다. 가창력을 인정받는 가수 김범수와 금잔디, 걸그룹 ‘여자친구’ 등이 이 공연에서 최고의 무대를 선보였다.지역의 음악 동호인들도 평소 갈고 닦은 솜씨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영덕군 여성합창단과 영덕 색소폰동호회, 예주줌마난타팀, 통기타 동호회 ‘들꽃’ 등은 부정할 수 없는 영덕 해변의 스타다. 이들 외에도 ‘영덕 최고의 관광지’로 이름 높은 고래불해수욕장, 대진해수욕장, 장사해수욕장엔 걸그룹 모모랜드, 가수 김연자, 부활, 휘성 등이 찾아와 팬들에게 흥겨움을 선사했다.대중음악 공연과 함께 테너 류정필과 소프라노 한경미 등은 클래식의 아름다움을 영덕군민들에게 선보였다. ‘뮤지컬 갈라쇼’를 통해서다. 강구정보고등학교 치어리더들의 깜찍한 율동도 어르신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청춘버스킹 공연’이란 제목으로 열린 김창기밴드와 ‘자전거 탄 풍경’의 콘서트, 재즈 팝 밴드 ‘클래시 도미넌트’ 콘서트도 주목받은 공연들이다.◆‘장사리-잊혀진 영웅들’과 함께 한 썸머 뮤직 페스티벌얼마 전 개최된 올해 ‘영덕 썸머뮤직 페스티벌’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를 영화로 제작한 ‘장사리-잊혀진 영웅들’과 함께 한 의미 깊은 자리였다.‘자유의 함성: 장사 여름 상륙작전’이란 헤드카피가 행사장을 찾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수 DJ DOC와 오마이걸, 위키미키, 핑크레이디, 왁스 등이 영화의 무대가 된 장사해수욕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해상 불꽃놀이도 관람객의 탄성을 불렀다. ‘물총 페스티벌’과 모래 조각전도 동시에 열려 주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시켰다.대진해수욕장에서는 청춘버스킹 방송 녹화가 진행됐고, 예주문화예술회관에선 미니콘서트도 펼쳐졌다.축제 현장을 찾은 이희진 영덕군수는 “우리 군을 찾아준 관광객, 군민들과 의미 있는 행사에서 기쁨을 나눌 수 있어 더없이 즐겁고 영광스럽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영덕군청 또한 “앞으로도 실력 있는 뮤지션과 예술가들을 초청해 여행자와 주민들이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으로 향후 축제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를 증폭시켰다.예주문화예술회관과 영덕 해변에선 앞으로도 각종 콘서트와 문화·예술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9-09-26

느긋한 정취가 보탠 식도락의 기쁨이란…

늘 짠하게 바라보는 집들이다. ‘명봉양푼매운탕’은 깊은 산속에서 메기 매운탕, 홍어를 파는 곳이다. 다른 메뉴도 좋다. ‘유정식당’은 직접 잡은 미꾸라지로 전골을 내놓는다.‘명봉양푼매운탕’은 민물 매운탕을 주 종목으로 한다. 메기 매운탕은, 물론, 좋다.반전은 이 집의 백숙. 놓아먹인 닭과 인근에서 구한 능이버섯의 조화가 아주 좋다. 방목 닭은 질긴 맛이 있다. 푹 고아서 내놓으면 제대로 자란 닭고기의 맛이 난다. 여기에 능이버섯을 적절하게 더하면 더할 나위 없는 ‘능이버섯백숙’이 된다. 부추를 조금 더하고, 별다른 조미료 없이 끓여낸다. 능이버섯의 진한 맛과 방목 닭의 고소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주인이 호남 출신의 아낙이다. 경북 북부로 시집왔다. 음식 만지는 손끝이 맵다. 언젠가 시금치 무침을 세 번이나 리필했던 적도 있다. 깊은 산속의 자그마한 식당이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다. 특이하게 홍어를 내놓는다. 홍어를 찾는 손님도 제법 있다.밑반찬들이 제법 짭짤하다. 인근에 명봉산이 있다.‘유정식당’. 차별화된 식당이다. 고집불통이다. 자연산 국산, 양식, 중국산 미꾸라지를 따질 필요가 없다.이른 아침 바깥주인이 길을 나선다. 인근의 논배미나 못, 크고 작은 개울에서 미꾸라지를 직접 잡는다, 가게 한구석에 미꾸라지를 넣어둔 붉은 통이 있다. 이미 2~3일 동안 진흙을 토해낸 미꾸라지다. 이 미꾸라지로 전골을 끓인다.오랫동안 직접 잡은 미꾸라지로 탕을 끓였다. 국산 양식을 쓰면 편하다. 자연산도 구할 수 있다. 굳이 미꾸라지를 직접 잡는 것은 “직접 잡는 게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 등에서 취재 요청을 하지만 거부했다. 방송에 출연한 후, 손님들이 밀려오면 감당할 자신이 없다. 자연산 미꾸라지는 늘 부족하다. 이 집의 미꾸라지 음식은 특이하다. 서울식으로 ‘통추’를 사용한다. 큰 냄비에 미꾸라지를 넣고 채소를 더한 다음 푹 끓인다. 탕이라기보다 ‘전골’이다. 농경지역이면서 미꾸라지 손질은 마치 서울식 같다. 통추에, 된장도 아니고 매운맛이 도는 붉은 국물이다. 형식도 탕이 아니라 전골이다. 식탁에서 손님들이 직접 끓여 먹는다. 건더기를 먹고 나면 수제비를 넣어서 먹을 수도 있다.경북 지역의 지자체들은 모두 자체 브랜드 쇠고기를 내놓는다. 안동과 예천은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안동한우, 예천참한우가 따로 있다. 예천사람들은 ‘참한우’ 맛이 제일 낫다고 주장한다.바로 그 참한우를 사용하여 육회비빔밥을 내놓는다. 겉보기로는 별 차이점이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고기 육질이 비교적 탄탄하다. 입에서 살살 녹는 고기를 그리 즐기지 않는다. “고기는 씹는 맛”이라고 주장한다.‘백수식당’은 오래된 노포다. 전국적으로 이름이 났다. 최근에 리모델링을 해서 주차장, 실내가 말끔하다. 음식도 잘 정리된 모습이다.유기를 사용하니 아무래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다. 널리 알려진 대중적인 식당이니 음식은 얼마간 달다.예천에 무슨 공항?, 이라고 되물을 법하다. 예천에는 한때 민간항공기가 뜨고 내린 공항이 있었다. 지금은 군용으로만 사용한다. 공항 가까운 곳에 ‘공항휴게소’가 있다. 넓은 주차장이 있고 편의점과 식당이 붙어 있다. 한쪽은 편의점, 한쪽은 식당이다. 예천 참한우를 내놓는 고깃집인데, 식사메뉴로 육회비빔밥도 내놓는다.나물 만지는 솜씨가 수준급이다. 정갈한 밥상이다. 육회의 신선도도 좋다. 고추장 대신 간장으로 비벼 먹어도 되는 경북 북부식 육회비빔밥이다. 정확한 식당 이름은 ‘예천신공항휴게소’다.‘단골식당’과 ‘고향식당’의 공통점이 있다. 직화, 석쇠구이다. 내용은 다르다. ‘단골식당’은 돼지고기와 더불어 ‘오징어불고기’가 유명 메뉴다. ‘고향식당’은 예나 지금이나 돼지고기를 연탄 직화, 석쇠로 구워낸다.위치도 전혀 다르다. ‘고향식당’은 예천 읍내에 있다. 이전하기 전 군청 바로 가까운 곳이다. ‘단골식당’은 용궁면이다.‘단골식당’은 전국구 맛집이다. 순대국밥, 돼지고기 음식으로 널리 알려졌다. 손님들은 단골식당의 국물 맛이 진하다고 한다. 토렴을 하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단골식당’은 토렴을 했다. 가게 한쪽에 큰 가마솥을 걸고 주방 인력들이 끊임없이 그릇에 국물을 담고, 따라내고, 다시 담고를 반복했다. 겨울철 밥알이 차가울 때 토렴을 통하여 밥을 뜨겁게 하고, 국물의 깊은 맛을 그릇에 담았다.‘고향식당’은 소박한 집이다. 가게 안팎이 모두 허름하다. 음식은 늘 수준급. 가게 입구 좁은 공간에 연탄 화덕이 몇 개 있다. ‘주인 아들’이 열심히 석쇠로 돼지고기를 구웠다. 고추장, 고춧가루로 양념한 돼지고기불고기는 칼칼한 맛이 일품이다. 가족 경영이다.돼지고기의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맛이 일품. 음식이 꾸준한 것도 보기 좋다.모두 묵을 주요 메뉴로 내놓는 가게들이다. 도토리묵이든 메밀묵이든 가리지는 않는다. 도토리가 귀해지면서 메밀묵이 주 메뉴가 되었다. 원형 청포묵은 녹두로 만든 묵이다. 녹두로 만든 묵은 색깔이 푸르스름하다. 청포묵을 만들 때, 치자 물을 들이면 묵 색깔이 노르스름해진다. 황포묵이다. 청포묵은 푸른 색깔은 아니다. 오히려 흰 색깔에 가깝다.‘전국을달리는청포집’은 청포묵 전문이지만 정작 주력 메뉴는 ‘탕평채’다. 묵과 녹두나물, 홍당무, 달걀지단, 쇠고기 채썬 것, 미나리 등 푸른 채소를 골골이 놓는다. 먹을 때는 김 가루 정도를 더하고 뒤섞는다. 안동, 예천 등지에서 널리 먹는 탕평채다. 예천 현지에서는 ‘잘 차린 한정식을 내놓는 집’으로 여긴다. 밥상에 반찬이 20가지쯤 되는, 한상차림 전문점인 셈.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맛집이다.‘통명식당전통묵집’은 메밀묵이 주력 메뉴다. 현지 사람들은 ‘통명묵집’으로 부른다. 메밀묵을 썰어서 국물에 넣고 신김치, 김 가루 정도로 맛을 낸 메밀 묵밥이 아주 좋다.‘통명묵집’과 ‘동성분식’은 태평추가 좋다. 태평추는 메밀묵이나 도토리묵에 신김치, 돼지고기를 넣고 자작하게 끓여낸 것이다. 황포, 청포묵, 탕평채가 비교적 고급스러운, 반가의 음식이라면, 태평추는 서민적인 음식이다. 겨울이 되면 예천 읍내 군데군데에서 태평추를 끓인다. 연탄불 위에 태평추를 올려놓고 술잔 기울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통명식당전통묵집’은 행정구역으로는 읍내지만, 읍내에서 얼마간 떨어져 있다. 통명리. 가게 바로 옆에 개울이 있다. 허름한 시골집이지만 나름대로 운치도 있다.‘동성분식’은 읍내 작은 골목 안에 있다. 아주 작고 허름한 식당. 봉놋방이 있고, 작은 주방이 있다.‘초산정’은 전통식초 전문 업체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식초를 만든다. 전국의 식초 장인들과 손을 잡고 ‘전통식초협회’를 결성했던 한상준 대표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지자체를 찾아 식초 만드는 방법을 전수하고 있다. 식초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유산초와 초산초다. ‘초산정’은 초산초를 위주로 전통식초를 제조, 관리하는 회사다. 식초, 전통식초, 식초산업은 아직 정확한 규정이 없다. 소비자들은 마트 등에서 손쉽게 구하는 ‘양조식초’를 식초로 믿는다. 그렇지는 않다. 공업, 대량 생산한 식초는 발효, 숙성의 단계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값싼 대량 생산물일 뿐이다, ‘초산정’에서 만드는 ‘전통식초’가 바로 식초다. 다른 것은 식초 맛을 내는 공장 생산품일 뿐이다. 민간의 유산초는, 마시는 용도로는 사용할 수 있지만, 양념으로 사용하기에는 불편하다. 식초가 가지고 있는 각종 비타민, 미네랄도 ‘전통식초’와는 다르다.‘초산정’의 한 대표는 정부 해당 기관과 협의, 정확한 식초의 규격을 정하는 일부터 진행하고 있다. 한 대표가 만드는 ‘오곡미초’ 등의 레시피는 홈페이지(www.chosanjung.com)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음식평론가 황광해

2019-09-25

잠시 돌아와 마음 뉘일 고즈넉한 시간과 마주서다

넉넉한 인심과 수려한 풍광이 찾는 이들을 매혹하는 예천군. 오염되지 않은 맑은 강과 하늘을 향해 뻗은 푸른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숲. 재론할 것 없다. 예천은 아름다운 도시다. 내달 펼쳐질 ‘세계 활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예천을 다녀왔다. 회룡포와 삼강주막이 선물한 낭만과 곤충생태원에서 느낀 즐거움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활과 화살만 잡으면 당 태종 이세민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고구려 장수 양만춘이나 아들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떨어뜨렸다는 윌리엄 텔처럼 명궁(名弓)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착각이었다.청복리 널찍한 공간에 시원스레 조성된 예천 진호국제양궁장을 찾은 날. 강사의 도움을 받아 양궁체험장에 섰다. 활은 무거웠고, 화살은 과녁에서 자꾸 멀어졌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즐거움에 빗나가는 화살을 보면서도 웃었다. 1979년. 예천여고 2학년 ‘소녀 김진호’는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대회 5관왕에 오른다. 예천 진호국제양궁장은 그녀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각종 양궁대회가 열리는 이곳은 해마다 1만여 명의 양궁선수, 임직원, 선수 가족들이 찾는다. 지역경제 발전에도 한 몫 하고 있는 것. 예천군체육사업소 관계자는 “인도네시아와 홍콩의 양궁선수들에게도 ‘최적의 훈련지’로 호평받고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진호국제양궁장 인근엔 활 체험장과 다목적 운동장, 풋살 경기장도 만들어졌다. 주민들에게 ‘운동을 통한 건강한 삶’을 선물하기 위해서다.양궁 경기가 없을 때면 많은 방문객들이 ‘활쏘기’의 짜릿함을 즐기려 이곳을 찾는다. 기자는 초보자용 ‘리커브 활쏘기’를 체험했다. 좀 더 역동적인 걸 원하는 사람이라면 ‘국궁 체험’이나 움직이는 목표물을 향해 화살을 날리는 ‘AR 무빙 타깃 활쏘기 체험’에 도전하면 된다. 팀을 구성해 실력을 겨루는 ‘활 서바이벌 체험’은 젊은층에게 인기다. 활은 구석기시대 때부터 사용됐다. 1만5천 년 전 그려진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에서도 화살을 든 사람을 볼 수 있다. 한국 역시 고구려 무용총 벽화(수렵도)와 김홍도의 민화 등에서 활과 화살을 확인할 수 있다. 활쏘기는 우리 선조들이 심신을 단련해온 수단 중 하나였다. 세계전통활연맹(WTAO)이 창립되기도 한 ‘활의 고장’ 예천군은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2019 예천세계활축제’를 연다. 양궁의 도시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활을 문화관광 상품으로 키워나가기 위해서다. 축제에선 외국 공연단의 활쏘기 시범과 전통 무예 등을 관람할 수 있고, 전국 양궁동호인 대회도 이 기간에 열린다.예천군은 “다양한 공연이 펼쳐질 개막식과 거리 퍼레이드가 관광객들에게 흥겨운 볼거리를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예천 전국가요제와 어르신 노래자랑, 도립국악단과 무용단의 화려한 무대 또한 기대해도 좋을 프로그램. 축제 현장에선 예천 특산물과 공예품이 판매되고, 여행자의 입을 즐겁게 해줄 푸드트럭도 운영된다. 아이들은 플래시 몹(Flash mob)과 불꽃놀이를 기다릴 듯하다. 연초부터 축제의 기본 구상을 시작한 예천군청은 ‘2019 예천세계활축제’의 성공을 위해 철저한 안전관리 계획을 수립했고, 곧 자원봉사자 발대식도 열 계획이다. 상세한 축제 프로그램과 행사 일정은 예천세계활축제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ywa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조그만 생물 곤충, 인류의 귀한 동반자”예천 곤충생태원서 만난 ‘미래의 비전’“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문장은 긴 고민의 시간을 인간에게 던진다. 새끼손가락 손톱보다 작은 ‘곤충’들. 이것들은 대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예천군 효자면에 자리한 ‘예천 곤충생태원’은 위에 언급한 질문에 답하는 공간이다. 살아있는 곤충을 직접 보며, 그것들이 가진 ‘미래의 비전’까지를 유추할 수 있는 곤충생태원은 한국에선 전례가 드문 곤충 전문전시관.이곳을 찾은 부모들은 ‘세계의 나비관’에 전시된 날개 고운 나비와 ‘3D 전시관’ 속 화면을 종횡하는 곤충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살아있는 곤충과 교감할 수 있는 ‘신기신기 곤충체험실’과 개미와 꿀벌의 생태를 관찰하는 ‘찰칵찰칵 벅스하우스’는 그곳에서 체험한 유년의 기억을 오래 떠올리게 할 것이 분명하다.과학자를 꿈꾸는 소년·소녀들에게 예천 곤충생태원은 ‘친절한 선생님’으로 역할한다. 갈색거저리, 흰점박이꽃무지, 장수풍뎅이 등은 식량자원이 고갈된 지구에서 유용한 식용 곤충이 될 수 있는 것들. 예천군은 식·양용 곤충의 지속적인 연구와 개발을 위해 5개의 농업법인도 설립했다.대구에서 온 강석훈(42) 씨는 “평소 벌레를 무서워하던 아들이 장수풍뎅이를 직접 본 이후엔 곤충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났다”며 웃었다. 강씨 아들의 장래 희망은 이제 곤충학자가 됐다.동화 속 공간처럼 만들어진 ‘예천 곤충생태원’엔 동굴곤충체험관, 훨훨 나비터널 등이 있어 방문객들의 환호성을 부른다. 거기까지 운행되는 모노레일에 탑승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싱그럽다.생태원 관계자는 “조그만 생물인 곤충이 우리와 함께 살아갈 귀한 동반자임을 깨닫게 된다면, 인간의 삶도 보다 풍요롭게 변화하지 않을까”라는 철학적인 견해를 전하기도 했다.곤충생태원 지척엔 금당실 전통마을과 초간정, 용문사와 석송령, 선몽대 등 예천군이 내세우는 관광명소도 적지 않다. 돌아보기를 권한다.내성천이 빚어낸 절경 ‘회룡포’ 감상 후엔옛 정취 가득 ‘삼강주막’서 낮술 한잔 ‘캬~’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맑은 날도 좋지만 흐린 날이라고 유명짜한 풍광이 달라질 리 없다. 풍광 좋은 예천. 그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회룡포.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근사하게 묘사된 한국화를 방불케 한다. 누가 붓을 든 것일까?식상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회룡포 일대는 ‘눈부신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유려하게 꺾어지는 물길과 빛나는 모래사장. 거기에 깃을 털며 날아오르는 하얀 새들의 몸짓까지.회룡포를 찾아 예천군 용궁면까지 달리는 길도 매력적이다. 짙푸른 녹음과 적요해서 더욱 눈길을 끄는 비포장 시골 도로. 그 끝에 출렁이는 강이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이 길을 “신선이 사는 곳에 이르는 여정”이라고 말한다.KBS 오락·여행 프로그램에 소개된 이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는 회룡포는 내성천 푸른 물길과 그 안에 자리한 조그만 마을이 만들어내는 기막힌 절경이 방문객들을 압도한다.여기까지 찾아간 이들이라면 당연지사 ‘삼강주막’도 가야 한다. 이른바 “한국의 마지막 주모‘가 있던 낭만의 공간. 그 옛날, 과거 급제를 통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림으로써 부모의 자랑이 되고자 했던 청년들이 지친 다리를 쉬어가던 곳.예천군 풍양면 삼강주막은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134호. 선비들만이 아닌 보부상과 뱃사공의 힘겨움까지 넉넉하게 안아주던 이곳은 방과 마루, 요리를 만들던 부엌으로 구성돼 있다. 아궁이엔 아직도 옛날 그을음이 그대로다.지난 2006년 ‘우리나라 마지막 주모(酒母)’로 불리던 유옥련 씨가 사망한 후엔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됐다. 이듬해 주막이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된 것은 “전통을 복원하고, 이를 스토리텔링화 하겠다”는 예천군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회룡포 전망대를 내려와 갈 곳을 찾는 이들에게 삼강주막은 없어서는 안 될 곳이다. 지금도 저렴한 안주와 막걸리를 팔고 있으니, 백일몽을 부르는 ‘낮술’ 한잔 마시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9-09-25

낙동강,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다

‘제7회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이하 낙동강 대축전)’이 오는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칠곡보생태공원 일원에서 열린다. 올해 낙동강 대축전은 낙동강이 가지는 역사, 기억, 호국을 바탕으로 ‘칠곡, 평화로 흐르다’를 주제로 다양한 컨텐츠를 준비했다.육군 제2작전사령부 주관의 ‘낙동강지구 전투전승행사’와 3년 연속 통합 개최돼 더욱 풍성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낙동강지구 전투전승행사’의 경우 지난해까지 각각의 공간에서 킬러 콘텐트 구축의 축전과 전투 전승행사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올해는 이전의 경험이 어우러져 각각의 공간에서 융복합 돼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할 것으로 기대된다.낙동강 대축전은 특산물을 활용해 먹고 즐기는 ‘그저 그런’ 축제가 아니다. 6·25전쟁의 마지막 보루로써 역할을 하며 전쟁의 아픔을 일깨우고 전 세계에 평화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를 위해 지역의 정체성과 축제를 홍보하고자 백선기 칠곡군수를 비롯한 공직자 및 군민들이 자발적인 홍보에 동참해 눈길을 끌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이 낙동강 대축전 홍보에 동참하며 경북 대표축제 품앗이 홍보까지 이끌어냈다.본지는 1년 간의 준비 끝에 새롭게 펼쳐질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을 소개한다.□ 다양한 프로그램올해 낙동강 대축전은 칠곡보생태공원을 중심으로 평화 테마파크와 강 건너 오토캠핑장에 위치한 호국 테마파크로 공간이 분리된다. 각 테마파크를 잇는 ‘파크 브릿지’를 행사장 중앙 430m 부교로 설정해 공간을 완성도 있게 연결할 계획이다. 프로그램으로는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기억을 미디어 아트 왜관철교를 통해 만나는 ‘왜관철교 속으로’ △직접 그린 그림을 움직이는 AR영상으로 만나는 55일의 이야기와 낙동강을 한눈에 담아 보는 평화 전망대가 놓인 ‘평화의 숲’ △신나는 음악과 현란한 조명 아래 롤러를 타며 평화를 만끽하는 문화놀이 공간인 ‘평화야 롤러와’ △대한민국 군 최신 무기 전시와 훈련병 체험 등을 통해 만나는 ‘호국 테마파크 등 70여 개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이번에 처음으로 선 보이는 ‘평화야 롤러와’는 옛 추억을 담은 롤러장을 현대적인 무드로 해석한 공간이다. 신나는 음악과 현란한 조명, 롤러를 타며 평화를 만끽하는 문화놀이 공간이다. 평화야 롤러와는 롤러스케이트장, DJ박스, 포토존, 오락실, 푸드존으로 구성돼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신나게 롤러를 타며 평화를 만끽할 수 있다.□ 실경 뮤지컬 ‘55일’6·25전쟁 당시 치열하게 전투가 펼쳐졌던 낙동강, 관호산성 등의 실경을 배경으로 파사드, 레이저 등의 최첨단 특수효과가 동원돼 펼쳐지는‘실경 뮤지컬 55일’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끌 예정이다. 이 공연은 실제 경치를 활용해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길이가 50m에 달하는 대형무대 △관호산성을 스크린으로 이용한 8m 대형 LED 스크린 2대 △실제 낙동강을 활용한 워터스크린 △3만 안시급 국내 최고해상도 빔 프로젝트 △공간전체를 커버하는 레이저와 특수조명 △다양한 폭죽과 특수 효과 등 다양한 연출을 활용해 40분의 러닝타임으로 한 편의 영화같은 퀄리티 있는 공연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전문 배우뿐만 아니라 40명의 칠곡 군민과 50명의 현역 군인이 함께 연출해 더욱 의미있는 공연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군민배우는 계급장과 군번이 없이 탄약과 식량 등의 군수 물자를 지게에 짊어지고 운반했던 노무부대원과 책 대신 총을 들고 전투에 임한 학도병 역할을 담당한다. 50사단 장병으로 구성된 군인배우는 69년 전 북한군과 남한군이 돼 실감나게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재현할 계획이다.□ 특별한 보훈6·25전쟁 당시 마산·왜관·영천·포항 일대를 잇는 ‘워커 라인’을 성공적으로 사수했던 미 육군 워커(Walker) 중장의 손자인 샘워커 2세가 이번 대축전을 찾을 예정이다. 대를 이어 한국을 사랑했던 워커 가문의 특별한 감동은 물론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더불어 쉐페로 쉬구테 월라사 주한에티오피아대사 역시 칠곡군을 찾을 계획이다. 호국을 도시 정체성으로 삼고있는 칠곡군은 2014년부터 에티오피아 오르미아주 디겔루나 티조를 칠곡평화마을이라 부르고 식수와 교육 지원 사업을 펼쳐왔다. 또 티그라이주 아라토 셈하에서 대한민국을 가난에서 구한 새마을 운동의 정신을 전파했다. 군은 쉐페로 대사와 함께 낙동강 대축전에서 ‘칠곡평화마을 자립선포식’을 가질 예정이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인터뷰: 백선기 칠곡군수참전용사·호국영령에 보은전후세대엔 안보교육 현장“호국과 보훈, 평화와 통일의 가치를 올곧게 세우고 특별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호국평화 축제를 맛깔스럽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당부합니다.”백선기 칠곡군수는 다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공직자들과 함께 1년 간 쉼 없이 축전 준비에 열중했다.그가 낙동강 대축전에 대해 열정을 쏟아붓는 것은 다름아닌 칠곡군의 정체성과 전세계에 평화의 메세지를 전파하기 위함이다.백 군수는 “칠곡의 역사와 도시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은 문화행사가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이다. 낙동강대축전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과 참전용사에게는 보은(報恩)의 장이요, 전후세대에게는 안보를 교육하는 현장학습의 무대이다”며 “낙동강 대축전을 통해 호국과 보훈이 6월 같은 특정한 시기와 현충시설과 같은 제한된 장소에서만 실천하는 의전행사가 아닌 일상의 삶 속에서 향유하고 실천하는 문화행사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실제 낙동강 대축전은 진화 중이다. 지난해 30만 명의 구름과 같은 관람객을 불러 모았으며, 문화체육관광부 지침에 따라 실시한 평가에서도 5점 만점의 만족도 중 4.28점을 얻었다. 이는 문화관광축제 평균 점수인 3.47점을 크게 상회하는 점수다.올해 낙동강 대축전에서 펼쳐질 각종 공연에는 관람석 두 자리가 비워 있을 예정이다.그는 “올해부터 각종 공연이 열리는 무대에는 관람이 가장 용이한 VIP 좌석 두 곳을 전몰장병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실종 장병을 위해 비워둘 예정이다. 국화꽃을 올려두고 정복을 입은 부사관 후보생이 미동도 않고 옆에서 지킬 예정이다. 비어있는 자리는 낙동강 대축전의 의미를 국민들에게 잘 전달하는 상징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참전용사의 고귀한 희생에서 비롯됐다. 올 가을에는 6·25전쟁 최대의 격전지인 칠곡군에서 자신의 모든 것과 가족의 행복까지도 포기했던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억하고 존경과 감사를 보냈으면 한다. 역사의 이름으로 당신을 초대한다”고 말했다.마지막으로 그는 함께 고생한 공직자 및 군민에게도 감사함을 전했다.백 군수는 “이번 축전을 준비하느라 1년간 고생한 공직자와 자발적으로 홍보에 참여한 군민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또 경북 대표 축제를 홍보하기 위해 나서준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 및 관계자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고 했다./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19-09-25

영의정이 장기에서 죽다

1690년(숙종 16) 10월 12일, 사늘한 바람이 간간히 불어오는 들녘에는 가을걷이가 한창이었다. 외지 손님이라곤 손꼽힐 정도로 한적하던 경상도 장기 땅이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한양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허겁지겁 내려왔고, 장기현감은 이들을 수발하느라 혼비백산이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작년 2월에 이곳으로 유배를 왔던 영의정이 갑자기 객사를 했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직책도 그렇거니와, 그가 다름 아닌 김상헌(金尙憲)의 손자인 김수흥(金壽興)이었다. 그의 명성하나로도 전국의 이목이 경상도 장기현으로 집중되기에는 충분했다.김상헌은 절개와 지조의 상징이었다. 병자호란 때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했던 그가 후에 청나라에 끌려가면서 지은 시조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필수고전 시가가 되었다. 조선후기의 대표적 세도가문인 안동(장동) 김씨는 실질적으로 김상헌에서 출발했다.하지만 이 집안도 한 때 이처럼 고통을 겪을 때가 있었고, 그 고뇌의 현장이 바로 경상도 장기현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 사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숙종 집권기의 환국정치에 대해 약간의 이해가 있어야 한다.환국(換局)은 ‘시국 또는 판국이 바뀌는 것’을 일컫는데, 숙종의 재위 기간에만 세 번의 환국이 있었다. 숙종은 이 환국정치를 통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자신의 뜻대로 정치를 이끌어 갔다.숙종이 임금 자리에 오를 때의 집권세력이었던 남인은 힘이 너무 강했다. 그 유명한 우암조차 몰아낸 무소불위의 세력이었다. 그래서 숙종은 남인의 힘을 약화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남인의 영수였던 영의정 허적이 자신의 아버지 잔치를 위해 왕의 허락도 받지 않고 궁궐에서 쓰는 천막을 집으로 가져가고, 궁궐의 악공들을 동원한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숙종은 남인들을 역모로 몰아 쫓아내고 서인들을 적극 등용하는데, 이를 경신환국(1680)이라 한다.이렇게 권력을 다시 잡은 서인들은 자기들 세상이 영원할 줄 알았다. 이제 모든 자리가 서인 일색이었으니 자신들이 지도권을 놓칠 일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숙종의 생각은 달랐다. 두 번째 정치 승부수가 1689년에 일어난 기사환국이다. 이 해에 궁녀 장옥정이 낳은 왕자 윤(昀)을 원자(元子)로 책봉하는 문제를 놓고 남인과 서인 간에 격돌이 일어났다. 숙종은 윤을 원자로 책봉하고 장옥정을 희빈(禧嬪)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당시의 집권세력이던 서인은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정비(正妃) 민씨(인현왕후)가 아직 나이가 젊으므로 그녀의 몸에서 후사가 나기를 기다려 적자(嫡子)로서 왕위를 계승함이 옳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인들은 숙종의 주장을 지지했다. 숙종은 어느새 왕권을 능가하는 세력으로 성장한 서인의 전횡을 누르기 위해서는 남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숙종은 남인을 재등용하는 한편, 원자의 명호를 자신의 주장대로 정하고 장옥정을 왕비로 책봉하였다. 왕비 인현왕후 민씨는 쫓겨났고, 송시열은 삭탈관작 당하고 제주로 귀양갔다가 사약을 받고 죽었다. 이때 송시열과 같은 계열에 섰던 김수흥도 관작을 삭탈당하고 장기현으로 유배되고, 동생인 김수항도 남인들의 공격을 받고 사사되는 등 서인의 거물 100여 명 이상이 파직되거나 유배를 갔다. 그 대신 권대운·김덕원·목래선 등의 남인이 정치적 실세로 등용되었다. 이게 기사환국이다.기사환국으로 정권을 잡은 남인들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1694년 다시 한 번 환국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숙종은 희빈이 너무 방자하게 굴자, 민씨(인현왕후)를 쫓아낸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인들 중 일부가 폐비 민씨 복위 운동을 비밀리에 전개했고, 이것을 안 남인들은 민씨 복위 운동에 관여한 서인들을 몰아내려 했다. 그러나 숙종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오히려 남인 세력을 쫓아내고 서인을 다시 등용했던 것이다. 기사환국으로 왕후(王后)가 된 장씨를 다시 희빈으로 강등시키고, 인현왕후 민씨를 복위시켰다. 이해가 1694년 갑술년(甲戌年)이라고 해서 갑술환국이라고 한다.기사환국으로 장기현으로 유배를 온 김수흥은 호가 퇴우당(退憂堂)이다. 동생도 영의정을 지냈는데, 앞서 언급한 김수항이다. 이들 형제들은 조선후기에 문명을 떨쳤던 장동(壯洞)김씨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서울 장의동(壯義洞)을 터전으로 한 장동김씨는 원래는 안동김씨인데, 이들만 따로 신안동김씨라고도 한다. 이조판서와 우의정을 한 김상용, 앞서 언급한 김상헌 등이 이 가문에서 나와 충절로 가문을 빛냈다. 김상헌에게는 수증·수흥·수항이라는 세 명의 손자가 있었는데 모두 높은 벼슬을 하여 이 삼형제를 삼수(三壽)라고 했고, 증손인 창집·창협·창흡·창업·창집·창립 등 여섯 명도 모두 걸출하여 이들을 육창(六昌)이라 했다. 이들 삼수육창(三壽六昌)은 조선후기의 정치·사상·문화·학술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이후에도 김원행, 김조순 등 많은 인재가 배출되어 명성과 덕망을 드날렸다. 순조 때 김조순을 시작으로 조선후기 안동김씨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1626년(인조4) 10월 16일 태어난 김수흥은 조부 김상헌으로부터 가학을 이어받았다. 김상헌의 학통은 율곡과 김장생으로 이어온 서인이었다. 따라서 김수흥은 송시열과 송준길로 이어진 서인 학문의 정맥을 접하게 된 것이다.명문가에서 성장한 김수흥은 동생 김수항과 함께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요직을 거치다가 36세에는 당상관인 통정대부의 품계에 올랐으며 사간원 대사간, 한성부 우윤, 승정원 도승지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그의 호인 퇴우(退憂)가 말해주듯 그는 벼슬에 나아갔을 때에나 벼슬에서 물러났을 때에도 임금과 백성에 대한 근심을 우선적으로 하였다. 48세에는 종1품의 품계에 올라 판의금부사를 지냈으며, 다음해 국정 최고의 자리인 영의정에까지 올랐다.김수흥은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듯 했으나, 현종과 숙종 연간에 빈번하게 일어난 옥사(獄事)로 인하여 유배와 은거를 하는 등 부침이 많았다. 1674년 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하고 남인이 집권하자 춘천으로 유배를 다녀오는 가하면,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다시 집권하자 영중추부사로 복직했다. 아우 김수항의 뒤를 이어 1688년에는 다시 영의정에 임명되었으나, 1689년 2월에 기사환국으로 된서리를 맞고 장기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것이다.장기로 온 김수흥은 마치 15년 전에 이곳에서 왔던 우암 송시열이 그랬던 것처럼 장기사람들 틈에 끼여 토속을 즐기며 강학에도 힘썼으나, 아쉽게도 이듬해인 1690년 10월 12일 병을 얻어 죽었다. 이때 그의 나이 65세였다. 그의 갑작스런 객사는 조선왕조실록에 졸기(卒記)가 실릴 정도로 세상의 이목거리였다.장기에서 죽은 김수흥의 관(棺)은 경주를 통해 서울로 갔다. 김수흥의 상구(喪柩)가 올라갈 때에, 경주 영장(營將) 남헌(南巚)은 편오군(編伍軍) 2개 부대를 편성하여 그의 관을 메도록 지시한 사실이 있었다. 나중에 남인들이 이를 알고 문제 삼아 남헌은 사헌부에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해야만 했다.김수흥은 오랫동안 관직생활을 하면서 그 시대에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일들에 관련된 수많은 상소와 차자(일정한 격식을 갖추지 않고 사실만을 간략히 적어 올리던 상소문)를 올려 당시의 병폐를 지적하였고, 이를 시정할 계책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국정에 대한 다양한 의견의 개진은 충군우민(忠君愚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0권 5책으로 편찬된 그의 문집 퇴우당집(退憂堂集)에 소차(疏箚)·계(啓)·의(議)가 6권이나 될 정도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서, 그가 시무(時務)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그의 문집에는 장기 유배지에서 쓴 시들도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 그 중 몇 편을 소개하면 이렇다.장기 배소에 도착하여 의금부 감압관 오수대(吳遂大)를 조정으로 보내며/ 到長鬐配所 別吳金吾 遂大 還朝큰 바다가 동쪽에 붙어있고/ 大海東臨近무리지은 산들은 북쪽멀리 아득하네/ 群山北望遙떠도는 삶은 본래 이와 같은 것/ 浮生本如此함께 한 자 보내고 나니 내 넋조차 사라지네/ 莫遣旅魂消영남대로 봄바람 사납지만/ 嶺路春風厲강담(江潭)의 풀 색깔은 새롭구나/ 江潭草色新외로운 신하 임금 그리워 눈물짓고/ 孤臣戀君淚북쪽으로 돌아간 사람 지워지질 않네/ 灑向北歸人봉산에서 보고 느낀 일/ 蓬山卽事한양에서 10년 동안 이룬 것이 고작/ 京洛十年成底事천리 밖 바닷가에 여생을 부치는 일인가/ 海山千里寄殘生짧은 봄밤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이며/ 春宵旅榻仍無寐자리에 누워 거센 파도소리만 듣고 있네/ 臥聽長鯨鼓浪聲장기에서 불행한 최후를 맞았던 김수흥은 1694년 갑술환국 때 송시열과 같이 관작이 회복되었다. 그가 죽은 지 5년 만이었다. 이때부터 사림들이 우암 송시열을 향사하는 원사(서원·사우 및 영당)를 건립하기 시작했다. 장기사람들도 우암 영당(影堂) 건립을 추진했다. 현재 장기면 읍내리 용전이란 곳에 터를 마련하고 1707년에 죽림서원 건축을 시작하여 1708년에 완공을 보았다. 1709년 4월 6일에는 우암 영정을 봉안하였고, 퇴우당 김수흥의 문집도 같이 이곳에 보관하였다.이렇듯 김수흥은 정국의 변동에 따라 부침이 심하였지만 충군우민(忠君憂民·나라에 충성하고 백성을 사랑함)과 선우후락(先憂後樂·다른 사람보다 먼저 근심하고 즐길 것은 다른 사람보다 나중에 즐김)하는 자세는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의식은 그의 문학세계에도 깊이 스며들어 젖어 있다. 그리고 죽림서원과 이곳으로 유배를 왔던 또 다른 노론계 인맥들을 통해 장기사람들에게도 그의 사상이 깊이 전파되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상준 향토사학자

2019-09-24

‘달성 100대 피아노’ 선율… 가을 정취에 흠뻑 젖는다

깊어가는 가을을 알리는 피아노의 선율이 대구 달성군에서 울려퍼진다.‘2019 달성 100대 피아노’가 오는 28일부터 이틀간 달성군 사문진에서 개최된다.8년째 맞는 이번 축제는 다년간 축적된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블록버스터 공연의 새로운 경지를 선사한다.예술감독은 2012년~2016년까지 총 5번의 100대 피아노와 함께 해 온 임동창씨가 맡는다. 임 감독은 그동안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평의 100대 피아노의 향연을 펼친다.지휘봉은 ‘2018 달성 100대 피아노’의 총 연출을 맡았던 피아니스트 박종훈이 잡는다. 품격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킨다.감성 보컬 가수 백지영씨와 7080의 우상 쎄시봉(송창식, 조영남, 김세환)도 출연해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할 예정이다.□ 달성 100대 피아노의 역사2012년 ‘달성 100대 피아노’는 달성군 개청 100주년을 앞두고 대구 사문진으로 한국 최초의 피아노가 유입된 것에 착안해 처음 개최됐다. 이후 달성의 대표적 축제로 자리 잡은 이 축제는 해를 거듭하며 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지역적 사회적 특성과 문화적 기획력이 잘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2년 첫 축제 당시 8천명이던 관람객은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2017년 5만명, 2018년 6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간 본 공연에 참여한 아티스트만 해도 1천명이 넘는다.이러한 축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탄탄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나라 최초 피아노가 유입된 장소라는 역사적 사실에 피아노 공연이라는 옷을 입힘으로써 문화향유를 갈망하는 주민 욕구에 부응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달성 100대 피아노’는 지역의 특색을 결정짓는 하나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 또 달성을 넘어 시민들이 사랑하는 대구의 문화자산으로도 입지를 확고히 다져왔다.2017년 10월 유네스코 음악창의 도시로 선정된 대구광역시는 음악을 매개로 한 문화교류와 창의산업·관광 등 다양한 갈래로 국제 문화도시로의 발돋움을 하는 시점에서 ‘달성 100대 피아노’는 중요한 음악적 자원으로,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맞는 역량과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축제의 성장달성문화재단은 지난 8년간 다양한 시도로 ‘달성 100대 피아노’를 성장시켜 왔다. 이탈리아 ‘피아노 시티 밀라노’와 MOU를 체결한 뒤 연주자를 초청한 바 있으며,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소프라노 신영옥, 피아니스트 이루마, 유키 구라모토 등 수준 높은 아티스트들도 초청해 지역주민들의 목마른 문화 갈증을 해소시켰다. 지역민들의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들의 성원 속 기부도 이어졌다. 지난해 달성군 가창면의 한 교회 목사가 130년 전 사문진나루터를 통해 대구로 들어온 피아노를 달성군에 기부했다.당시 국내에 들어온 피아노는 미국산과 유럽산으로 구분되는데, 미국에서 들어온 피아노는 낙동강 사문진나루터를 통해 들여왔다고 전해졌다. 피아노를 기부한 배진형 목사는 “사문진을 통해 들어온 피아노의 역사성을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이 피아노는 지역 피아노의 역사성을 보여주며 군민들의 소중한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피아노는 달성군청 2층에 전시돼 있다.□ 달성 문화의식·주체성 이끌다대구시와 달성군의 대표적 축제로 자리 잡은 ‘달성 100대 피아노 콘서트’는 비단 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탄탄대로의 길만 걸은 것은 아니었다.지난해 사업수행을 위한 최소한의 예산도 확보하지 못해 공연 개최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수차례의 추경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지역 대표 공연의 연속성을 깨뜨려선 안된다는 지역민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지역민들은 ‘달성 100대 피아노 콘서트’ 개최를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금에 동참했고, 개인 뿐 아니라 지역의 기업들도 함께했다. 이들의 열정에 감동한 군의회가 힘을 보탰다. 그래서 ‘달성 100대 피아노 콘서트’는 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지역민들의 문화의식과 주체성이 눈여겨 볼 만하다.□ 올해 공연의 주안점6번째 예술감독을 맡은 임동창씨는 어느 해보다 100인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임씨는 100대 피아노의 웅장하고 장엄한 선율을 최대치로 끌어 올려 세계 유일의 블록버스터 피아노 축제인 ‘달성 100대 피아노’의 확고한 정체성을 선포한다.또 특별기획으로 ‘2019 달성 100대 피아노’와 함께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협업한다. 이들은 피아노·판소리·보컬(가요, 성악 등) 분야의 아티스트들이다. 이들은 예년과 차별된 프로그램을 주도한다. 이들에게는 예술적 에너지를 증폭시킬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첫 날 공연에는 피아니스트 박종훈씨가 지휘 한다.사회는 배우 김태우가 맡아 관객과 친근한 소통으로 음악 이야기를 쉽게 풀어낸다. 21세기형 클래식 뮤지션이라 불리며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피아니스트 지용, 색소폰으로 영혼을 만지는 뮤지션 소울 마에스트로 대니정, 파워풀한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무대를 휘어잡는 뮤지컬 배우 홍지민, 국내 최정상 피아니스트 김영호, 김재원, 유영욱, 윤철희로 구성된 피아노 앙상블과 지역의 대표 소프라노 이윤경이 출연해 풍성하고 품격 높은 무대를 펼친다. 이 밖에 첼리스트 예슬과 아코디어니스트 임슬기가 출현해 피아노와 어울리는 다양한 음악을 선보인다.둘째 날에는 임동창 예술감독이 획기적인 연출을 선사한다. 먼저, 100인 피아니스트의 웅장함에 100인 설장구와의 협업을 더해 장대한 선율을 배가시켜 관객의 이목을 집중 시킨다. 올해의 새로운 시도인 협연자 12인(피아노, 판소리, 성악)이 주축 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 이들과 100대의 피아노가 함께하는 무대를 만든다.김문오 달성군수는 “올해의 100대 피아노 향연은 기대해도 좋다. 군민은 물론 대구시민들이 사문진나루터를 찾아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을 통해 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져 보기를 권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평소 힘든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힐링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19-09-22

사파이어 빛깔 바닷물 출렁이며 신비한 음악 연주하고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鬱陵島)로 갈거나/ (….)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風浪) 따라/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유치환의 시 ‘울릉도’다. 시인은 동쪽 먼 바다의 한 점 섬 울릉도를 애타게 불렀는데, 지난 여름 내 그리움도 청마 못지않았다. 섬이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동안 나 역시 섬으로만 향하는 마음에 가슴이 일렁였다. 하지만 섬이 뭍으로 밀려올 수 없듯 나도 섬으로 흘러가지 못했다. 두 번의 태풍이 뱃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금지된 것은 언제나 더 큰 욕망을 일으키는 법이어서 내 마음은 지난 여름 내내 울릉도에 살았다. 미지의 옛 나라인 우산국의 백성이 되어 이사부의 정벌군처럼 몰려오는 태풍을 원망해보기도 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섬을 향한 그리움이 짙어질수록 여름 끝자락에서 내 입술은 때 이른 단풍처럼 붉어져만 갔다.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면 입술은 달아오른다. 울릉도를 말하고 싶어서, 노래하고 싶어서, 이 기행문을 통해 섬과 대화하고 싶어서 입술은 물론 손끝까지 벌게지는 동안 추석 지나고 가을이 됐다.마침내 바다가 길을 열어주었다. 요란한 가을장마와 제17호 태풍 ‘타파’ 사이에서 동해는 며칠 밤낮으로 가만히 다정했다. 울릉도로 가는 바닷길은 네 갈래다. 강원도 강릉과 묵호, 경북 후포와 포항에서 여객선을 탈 수 있다. 서울에서는 강릉이나 묵호가 가깝고, 후포에서 배를 타면 3시간 채 걸리지 않아 울릉도에 닿는다. 하지만 나는 포항에서 출항하는 썬플라워호에 몸을 실었다. 울릉도를 오가는 가장 큰 여객선이기 때문이다. 울릉도로 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궁금했다. 누군가는 얼굴이 환하고 누군가는 안색이 어둡겠지. 어떤 이는 행복을 좇아서 가고 또 어떤 이는 불행으로부터 도망쳐 갈 것이다. 그 ‘사람의 얼굴’을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나는 아침 9시 50분, 거대한 선체 위에 가을 아침 햇살이 샛노란 해바라기를 피워낸 썬플라워호에 올랐다.평일인데도 여객선 안은 붐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울릉도를 찾는 줄은 몰랐다. 추석 연휴에만 무려 7천 명의 관광객이 들어왔다고 한다. 울릉도 인구가 1만 명인데, 명절 동안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사람들로 섬이 보름달처럼 부풀어 올랐던 것이다. 연휴가 끝나도 울릉도로 가는 사람들 발길은 끊이지 않는 듯했다.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는 여객선 안, 어떤 사람들은 바닥에 담요를 깔고 눕고, 또 어떤 사람들은 컵라면과 삶은 계란을 먹고, 또 또 어떤 사람들은 화투패를 돌렸다.3시간 40분의 항해는 모처럼 만끽하는 휴식과 사색의 시간이었다. 클라라 주미 강이 연주한 세자르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으며 책을 읽고, 원고를 교정했다. 나에게는 천국과도 같던 여객선 안이 다른 이에게는 지옥이 되었을까. 너울이 심한 날이 아니었음에도 여기저기 배멀미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혼이 나간 얼굴을 하고 주저앉아 있다가 여객선이 한번 꿀렁거리면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게워내는 것이었다. 귀 밑에 붙인 패치도, 출항 전에 먹은 멀미약도 좀처럼 듣지 않는 모양이었다. 평소 배에 탈 일이 많은 낚시꾼들은 효과가 확실한 ‘초강력 멀미약’을 구비해 다니곤 한다. 요즘 같은 때에 추천하기 조심스럽지만, ‘아네론’이라고 하는 일본 제품이 있다.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고, 효과는 정말 확실하다. 멀미 때문에 울릉도에 갈 엄두를 못내는 사람이 있다면 권해볼 만하다.‘멀미 대소동’을 피해 잠시 눈을 붙였다. 이내 뱃고동이 크게 울어 내 옅은 잠을 깨웠다. 오후 1시 30분, 썬플라워호는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다. 항구에 발을 내딛자마자 왁자한 소리들과 함께 어깨 부대끼는 복작임이 나를 에워쌌다. 숙박업소, 식당, 택시, 렌터카, 투어 상품 등이 저마다 손을 흔들며 “이리 오이소” 소리쳤다. ‘먹고사는 일’의 그 활달한 힘 앞에, 그 숭고한 수런거림 앞에 나는 외지인이 으레 가질 법한 경계심을 풀어버렸다. 마음 빗장이 열린 자리로 현무암처럼 투박하고 거친 사투리들이 날아 들어왔다. 돌덩이 같은 말들이지만 사근사근 마음을 두드리는 묘한 다정함이 있었다. 별 흥정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숙소와 차량을 정해버렸다.복잡한 일을 비교적 쉽게 처리하자 잊고 있던 배고픔이 발길질을 해댔다. 식당만큼은 발품 팔아 찾아보기로 했다. 골목과 골목들이 얽히고설킨 울릉도 도동을 걷는 일은 마치 미로를 탐험하는 것처럼 즐거웠다. 여행지의 좁은 골목에서는 그곳 사람들의 꾸밈없는 일상과 취향, 아기자기한 생활들을 엿볼 수 있다. 예술작품 전시회장에 온 사람마냥 이리저리 눈을 돌리다가 한 허름한 식당 앞에 멈춰 섰다. 울릉군청 앞에 있는 ‘돌섬식당’은 울릉도의 대부분 음식점들이 그러하듯 따개비칼국수와 따개비밥, 홍합밥, 오징어내장탕 등을 판다. 스테인리스 미닫이문에 주인 부부가 직접 따개비를 따는 모습, 정답게 따개비를 손질하는 모습 등 대문짝만 하게 붙여 놓은 사진이 내 발길을 붙잡았다.따개비칼국수를 주문했다. 사실 따개비란 것을 처음 먹는 순간이었다. 숱하게 바다낚시를 하며 갯바위에서 밟고 다니던 그 따개비가 음식이 될 거라곤 생각 못했다. 알고 보니 탈모에 좋은 아르기닌이 풍부해 고급 식재료로 각광받는다고 한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먹을거리가 귀한 섬, 척박한 환경에서 섬사람들이 억척스레 찾아낸 식재료라 생각하니 칼국수를 휘저을 때 푸른빛을 언뜻 내비치는 따개비살이 참 귀하게 여겨졌다. 따개비칼국수는 간단하다. 따개비 삶은 육수에 칼국수 면과 애호박, 청양고추 등을 넣고 끓여낸 후 김과 참깨를 고명으로 얹으면 끝이다. 간단한 레시피지만 면과 따개비살을 젓가락으로 집어 후루룩 빨아들이면 갯바위를 때리는 파도의 시원함과 등대불빛의 온기, 푸른 물 내음이 몸속으로 함께 들어온다.소박하지만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다시 도동항으로 향했다. 도동항 여객선터미널과 이어진 행남해안산책로를 걷기 위해서다. 도동항 방파제에서부터 저동 촛대바위까지 이르는 둘레길로 길이는 총 2.6㎞다. 왕복하는 데 1시간 20분쯤 소요된다. 동해에서도 먼 바다인 울릉의 물결은 세상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파랑을 지녔다. 행남해안산책로를 걸으면 발꿈치부터 정수리까지, 혈관을 흐르는 피마저 파랗게 물드는 느낌이 든다. 걸을수록 몸이 가벼워진다. 이 길 위에서 나는 바닷새가 되어 몸이 떠올랐다가 다시 한 마리 물고기가 되어 가을햇살로 짠 은빛 비늘의 스웨터를 입었다. 해안산책로에서 가장 탄성을 자아내는 절경은 해식동굴이다. 오랜 세월 동안 파도가 깎아낸 협곡에는 사파이어 빛깔의 바닷물이 쌀 씻는 소리로 차르르, 탬버린 소리로 차르르, 사랑하는 이가 긴 머리를 감는 소리로 차르르 밀려오고 밀려나가며 신비한 음악을 연주한다. 눈과 귀를 모두 사로잡는 해식동굴의 풍경을 SNS에 올렸더니 난리가 났다. 지중해에 있느냐고, 어느 나라를 여행하고 있느냐고, 이런 바다색이 있을 수가 있느냐고 호기심과 부러움, 놀라움을 담은 댓글들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었기 때문이다.조금 걷다보니 ‘용궁’이라는 이름의 횟집이 나타났다. 움푹 팬 홈통 지형 빈터에다 테이블을 펴고 생선회와 전복, 오징어, 소라, 멍게 등 해산물을 파는 식당이다. 발밑까지 밀려들어오는 바다의 빛깔과 소리와 냄새와 감촉을 온몸으로 만끽하면서 바다가 키운 해산물로 혀끝의 쾌감까지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따 저녁에 오이소” 하며 지어보이는 푸근한 미소가 없었더라도 오늘 저녁 식사는 무조건 이곳이라고, 점을 세게 찍어두고는 다시 걸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대목이 무작정 떠오르는 오후였다. “따사로운 가을날 낯익은 섬의 이름을 외며 바다를 헤쳐 나가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쉬 천국에다 데려다 놓을 수 있는 것이어서 나는 좋아한다. 그곳만큼 쉽게 사람의 마음을 현실에서 꿈의 세계로 옮겨 가게 하는 곳은 없으리라.”             /시인 이병철

2019-09-22

풍경과 역사 어우러진 “성주로 떠나볼까”

오래 전 한 시인은 “길은 길 위에서 끝이 없다”고 썼다. 문인다운 표현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 모두가 시인이 될 수는 없는 법. 다소 어렵고 추상적인 이 문장을 유쾌하고 즐겁게 이해하기 위해 붉은 단풍 물든 아름다운 ‘길’을 직접 걸어보면 어떨까? 달콤한 참외의 생산지로 유명한 성주군엔 가을을 만끽하며 유유자적 산책할 수 있는 ‘매력적인 길’이 적지 않다. 역사의 향기가 깃든 길에서부터 향긋한 꽃차가 유혹하는 길, 여기에 등산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길까지. 가족, 또는 연인과 함께라면 물론 좋고, 혼자 떠나도 외롭지 않을 여덟 갈래 ‘성주의 길’을 아래 소개한다.◇정견모주길에선 향긋한 꽃차 한 잔을가야산신 ‘정견모주(正見母主·가야의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길’은 국립공원 가야산 속에 ‘조용히 숨어있는 진주’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어릴 적 읽었던 신화에서 만난 신비로움을 간직한 길과 무척이나 닮았다. 서늘하고 쾌적한 그늘이 한참 계속되는 숲길에서 느끼는 청량함이 좋고, 졸졸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역시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을 달래준다. 생명의 기운이 넘실대는 길을 따라 숲속 곳곳에 위치한 정자와 포토존에서 사진을 남기는 가족과 연인들이 적지 않았다.바로 옆에 자리한 야생화식물원에는 짚라인 등 아이들이 환호성을 내지를 놀이시설이 완비돼 있어 언제나 환한 웃음꽃이 핀다. 소규모지만 아기자기한 만물상과 조그만 꽃길은 식물원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볼거리다. 여기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아버지는 야생화로 만든 꽃차 한잔을 즐겨도 좋을 듯하다. 향긋한 차의 향기는 고단한 일상을 살아온 이들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선물이다.◇ 성밖숲과 별고을길에선 눈과 귀가 모두 행복성밖숲은 가족 모두가 함께 성주를 찾은 이들에게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역사 속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이다. 여기에선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별고을길 탐방단’이 성주 여행을 떠난다.이들은 성주에 관한 전문적 역사 지식을 갖춘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성주군의 주요 사적지를 돌아보며 ‘숨겨진 보물’이 가득한 별고을길을 여행하게 된다. 성밖숲에서 출발해 읍내에 있는 쌍충사적비, 성산관, 심산기념관, 봉산재, 독산 등을 지나며 역사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부모와 아이들 모두에게 의미가 적지 않을 것 같다.오순도순 모여 앉아 점심을 먹은 후에는 참가자들을 기다리는 ‘성밖숲 생태 체험 프로그램’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여기선 맨발 걷기와 그림 그리기 등의 활동이 진행된다. 이후 이어지는 ‘숲속 힐링 음악회’는 2시간 동안 여행자들을 치유의 시간으로 이끈다. 음악회에선 클래식, 통기타, 퓨전 국악 등 다양한 레퍼토리가 연주된다. 이른바 ‘눈과 귀가 모두 행복한 문화행사’다. 음악회는 21일과 28일, 오는 10월엔 12일과 19일에 열릴 예정이다.◇ 역사의 향기를 따라 세종대왕자태실과 감응사로성주군 생명문화공원 주차장에서 세종대왕자태실문화관으로 들어서면 실감나는 조선시대 역사 스토리가 전개된다.이곳에선 배아 모양으로 만든 조선 왕조의 태실 모형과 만날 수 있다. 태실의 수호 사찰인 선석사에 올라 태봉을 바라본 후 태실로 향하면 ‘모든 생명은 우주처럼 소중한 것’이란 세상사 진리와 새삼 마주치게 된다. 세종대왕자태실에선 세종대왕의 열여덟 왕자와 더불어 세종의 원손인 단종의 태실도 확인할 수 있다.한개마을은 한국을 대표하는 7개 민속마을 중 하나다.물론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여기에 숨겨진 보석은 바로 ‘감응사 산책길’. 전통 한옥과 토담은 푸른 하늘이 높아지고 산의 나무가 붉은 옷으로 갈아입는 가을에 특히 아름다움을 빛낸다. 그렇기에 적지 않은 사진작가들이 이 계절을 기다려 감응사를 찾는다. 마을 북쪽 전망대에서 절로 향하는 산길은 여행자들의 감탄사를 부른다. 아직은 덜 알려져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도 이 길의 장점이다.성주군청 관계자는 “조용함 속에서 치유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면 가을의 감응사 산책길이 최고”라며 엄지를 세운다. 이와 더불어 수많은 학자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영취산 아래 한개마을도 꼭 둘러봐야 할 곳이다. 지친 다리를 쉬며 마시는 감응사 옥류정의 시원한 약수 한 바가지는 성주 여행이 주는 반가운 선물 중 하나다.◇ 회연서원과 청천서원,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걸었던 길성주는 조선 선조 때의 대학자 2명을 배출한 고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양강(兩岡) 선생’으로도 불리는 두 사람은 동강(東岡) 김우옹과 한강(寒岡) 정구. 동강의 경우엔 대가면 칠봉리 청천서원에 배향(配享·학식과 인품이 높은 사람을 기려 서원에 모시는 것)됐고, 한강 정구는 수륜면 수륜리 회연서원이 배향하고 있다.회연서원 뒤쪽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면 대가천 맑은 물과 함께 기암괴석과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들이 기가 막힌 경치를 그려낸다. ‘무흘구곡 제1곡’으로 불리는 봉비암이 대표적이다.봉비암에선 반대편 ‘무흘구곡 제2곡’인 한강대가 내려다 보인다. 서원에서 한강대로 뻗어난 하천의 양 옆에는 ‘선비의 꽃’으로 불리는 매화가 심어져 경관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체력이 약한 사람이라도 수성리 중매댁을 들러 돌아오는 코스는 걷기에 힘들지 않다. 대가천의 물소리와 소슬한 바람 소리가 가을이 바로 곁에 왔음을 실감하게 해준다. 이곳을 다녀온 관광객들은 “풍경과 역사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선현들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는 길”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기선 오는 10월 5일부터 ‘황금들녘 가야산 메뚜기축제’가 펼쳐질 예정이다.◇독용산성에서 일출을 보고, 가야산 선비산수길로성주 독용산은 소백산맥의 주봉인 수도산 줄기에 위치했다. 해발 955m의 정상부에는 독용산성이 들어서 있다. 이는 가야시대의 토성으로 둘레가 7.7㎞. 영남지역 산성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다소 생소하게 들리지만 아름다운 산세와 완만한 등산길을 갖춘 독용산은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관광지다. 자동차나 자전거로 산 중턱까지 갈 수 있어 전문 등산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아이들을 동반한 여행자들이 좋아할 듯하다.독용산성 자연휴양림은 해가 뜨기 전 걸어봐야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웅장하게 복원된 아치형 동문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낭만과 희망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 다녀온 이들이 전하는 평가. 아쉽게도 숙박 시설은 보수 공사로 인해 12월이 돼야 다시 열린다.걷기에 어렵지 않고, 넉넉하고 미려한 풍경을 눈에 담으려는 사람들에겐 ‘가야산 선비산수길’(1코스 성주호둘레길 23.9㎞·2코스 가야산에움길 11.3㎞)을 권한다.1코스는 데크 로드와 호수 위를 지나는 길이다. 아라월드에서 전망대로 올라가 성주호를 조망할 수 있기에 “장쾌한 호연지기를 온몸으로 발산하고 싶은 이들에게 어울린다”는 것이 성주군청 문화관광과 관계자의 말. 죽전폭포를 거쳐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제2코스는 폭포의 맑고 시원한 물소리가 일품이라고 한다.◇ 만물상의 아름다움과 만날 수 있는 가야산 산행대회가야산은 ‘조선 8경’의 하나이자 ‘한국 12대 명산’ 중 한 곳이기도 하다. 계절에 따라 변화무쌍한 색채를 보여주며, 신묘한 형태의 기암과 절벽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어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재론의 여지없는 ‘천혜의 자연환경’이기에 가야산 정상인 칠불봉(해발 1천433m)은 성주군의 자랑이다. 가야산 만물상은 정견모주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그곳 바위들이 1만 가지 형상을 이루고 있기에 ‘만물상’이라 불린다.2010년까지 대략 40년간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라 원시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성주군은 “(북한) 금강산 만물상과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이에 더해 “천년고찰 심원사의 고요하고도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길을 걷다보면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동화되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부연했다. 바로 여기에서 오는 10월 26일 ‘가야산 산행대회’가 개최된다.앞서 언급한 성주의 ‘아름다운 길’과 그 길 위에서 진행될 각종 축제에 관한 궁금증이 있다면 성주군청 문화관광과(054-930-8372)로 문의하면 된다./전병휴·홍성식기자

2019-09-19

찬 바람 조금씩 불어 오면은, 별 보러 갈래한약 내음 가득한 ‘한방 힐링명소’로 갈래

그악스럽던 2019년 여름이 물러가고 있다. 새벽녘 불어오는 바람에서 북쪽 벌판의 시원스러움이 느껴져 달력을 보니 어느새 9월 중순. 추석을 보낸 독자들은 결실의 계절을 대비하고 있을 터. 영천시 역시 찾아올 관광객과 여행자를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 가을의 문턱. 한약 내음 가득한 한의마을, 아직도 호국의 함성이 선명한 영천전투 메모리얼파크, ‘꿈’의 메타포인 ‘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보현산천문대 등 영천 여행의 핫 플레이스를 돌아보았다.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 하고플 땐 한의마을다양한 약선음식·한방차 등 맛 봐전문의가 운영하는 한의원도 자리조용한 평일 오후. 영천시 화룡동으로 차를 몰았다. 깔끔하게 조성된 한옥 위 날렵한 검은 기와가 인상적인 동의참누리원 영천한의마을에 들어서니, 자연스레 시 한 편이 떠올랐다. 한의원 혹은, 한의사를 접할 때면 예외 없이 기억나는 백석(1912~1996)의 ‘고향’이다.나는 북관에 혼자 앓아누워서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그러면 아무개 씨를 아느냐 한즉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쓴다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손길이 따스하고 부드러워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젊은 시인이 타향에서 몸이 아파 한의원에 갔다. 거기서 긴 수염을 기르고 온화한 표정을 가진 한의사를 만났는데, 고향 어르신의 친구였다. 그의 위로와 진맥에 앓던 몸은 물론, 마음까지 편안해졌다는 내용을 담은 시. 영천한의마을과 썩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한방 약재로 만든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약선음식관, 다양한 한방차를 준비하고 있는 찻집, 연인과 가족 단위 관광객들의 숙박이 가능한 한옥체험관을 갖춘 영천한의마을 안엔 전문의가 운영하는 한의원도 자리하고 있다.“이곳 건물들은 인간의 몸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순환과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오장육부를 모티프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한국 한의학의 발전 과정과 다양한 약초·약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의기념관에선 한방을 통해 건강을 지키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다. 한의마을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 또한 대부분 ‘기(氣)의 순환’을 통해 인간의 몸을 보호한다는 주제로 제작된 것들이다.‘한방 테마거리’에서 즐길 수 있는 족욕 체험과 한방비누 만들기는 어른과 아이들 모두에게 인기다.6천원을 지불하면 컴퓨터와의 문답을 통해 자신의 체질을 파악할 수 있고, 체질에 따른 건강 상식도 알려준다. 이후 한약재가 들어간 따끈한 물에 발을 담그고 15분쯤 편안한 휴식을 만끽하게 된다. 어성초 등 한약재를 이용하는 한방비누 만들기 체험(1만원)에 참여한다면 자신이 직접 만든 비누 3개를 가져갈 수 있다.영천시는 1960년대부터 한약재의 집산지이자 유통 중심지로 이름이 높았다. 이곳에서 거래되는 약재만도 500종에 가깝다. 이런 지역적 특수성에 착안해 매년 열리는 ‘영천한약축제’는 건강 문제에 민감한 현대인들의 관심을 모은다. 올해 축제는 27일부터 29일까지 한의마을에서 개최된다.‘행복한 가을 힐링’이란 슬로건 아래 펼쳐질 제17회 영천한약축제에선 한방명의 진료관, 사상체질 체험관, 한방뷰티 체험관 등이 운영될 예정이다.‘건강·치유 체험’과 함께 한약재 전시장, 야생화 전시관, 약초동산·약초터널도 만들어져 방문객들과 만난다. 행사장에선 각종 한약재와 영천 특산물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동의참누리원 영천한의마을 홈페이지 www.yc.go.kr/toursub/ycherb□ 영천한약축제 관련 문의: 054-339-7247보현산천문대반짝이는 별빛 아래 낭만을 찾아서동양서 가장 큰 1.8m 광학망원경해발 1천124m 산 정상에 설치기자의 몸무게는 약 85kg. 하지만 이건 지구에서 측정했을 때다. 달이나 태양에서 몸무게를 잰다면 얼마나 될까? 이 궁금증은 보현산천문대에 설치된 체중계 위에서 풀렸다.영천은 ‘별의 도시’다. “별을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라는 보현산이 있고, 해발 1천124m 산 정상엔 동양에서 가장 큰 1.8m 광학망원경이 있다.영천시 화북면에 자리한 보현산 천문과학관은 드넓은 우주와 빛나는 별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을 위해 각종 천문과학 학습 시설을 마련했다.“어린이들이 무한한 우주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보며 다가올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것이 천문과학관 측의 바람이다. 이를 위해 ‘게임으로 배우는 우주 훈련’ ‘가상 태양계 행성 탐험’ ‘우주에서의 적응 방법’ 등 흥미로운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1박2일로 진행되는 ‘천문과학 캠프’도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다.시간이 넉넉한 여행자라면 천문과학관을 둘러본 후 보현산천문대로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산꼭대기가 지척인 곳까지 올라가면 주차장이 있다. 거기에 차를 세우고 20분쯤 쉬엄쉬엄 걸어가면 보현산천문대가 나온다. 산새의 울음소리만이 청아한 조용한 숲길은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데이트를 즐기기에도 그저 그만일 듯했다. 평소엔 해가 진 이후 출입이 제한되지만, 매년 과학의 날(4월 21일)을 전후해서는 야간 공개행사가 열린다.마지막으로 재밌는 정보 하나. 지구에서 85kg인 사람이 달에 가면 몸무게가 13kg으로 줄어든다. 태양에 가면 기자의 몸무게가 놀랍게도 2천364kg이 된단다.□보현산 천문과학관 홈페이지 www.yc.go.kr/toursub/starsm/main.do영천전투 메모리얼파크생생한 한국전쟁 현장 속으로가상전투 체험장서 영상 감상야외선 서바이벌 게임도 즐겨영천시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벌어진 지역 중 하나다. 그해 9월 5일부터 13일까지 남과 북의 군인들은 영천 일대에서 향후 전개될 전쟁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맞붙었다. 그랬기에 이 전투를 ‘조국의 명운을 건 영천 대혈투’라고도 부른다.북한군은 영천 동북쪽 방향에서 공격을 해왔고, 국군은 이에 맞서 치열한 시가전을 벌였다. 만약 이 전투에서 밀렸다면 낙동강 동·서 보급로가 모두 차단되는 것은 물론, 남한의 마지막 방어선 전체가 흔들리게 됐을 것이다.이를 잘 알고 있던 국군 8사단은 부대원 전체가 목숨을 건 호국 의지를 다지며 영천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영천시 창구동에 들어선 ‘영천전투 메모리얼파크’는 한국전쟁의 전세를 극적으로 뒤집은 영천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또한 영천이 ‘호국의 도시’임을 잊지 말자는 뜻도 담았다고 한다. 메모리얼파크는 전망타워와 전시관, 가상 전투 체험장 등으로 이뤄졌다. 2개 층으로 구성된 전시관에선 임진왜란 당시 영천 지역 의병들의 활약상과 일제강점기 의병 활동, 앞서 언급한 영천전투와 관련된 생생한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실 ‘1950, 영천 대혈투 속으로’에서는 대형 화면을 통해 상영되는 역동적인 입체 영상을 볼 수 있다. 한국 현대사에 관심을 가진 10대 학생들이 특히 좋아하는 공간이다.시원스레 펼쳐진 야외에선 시가전과 고지전 전투에 참여해볼 수 있다. 20~30대 관광객들에게 인기인 ‘서바이벌 체험’이다. 이곳에선 페인트 총과 디지털 헬멧, 보호용 장갑을 착용한 사람들이 지휘통제소의 안내에 따라 안전하게 ‘전투 체험’을 진행하고 있었다.영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타워를 통해 바깥으로 나가면 ‘영천지구 전적비’가 방문객을 맞는다. 그 앞에 서면 숭고한 자기희생을 통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젊은 군인들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영천전투 메모리얼파크 홈페이지 www.yc.go.kr/memorial/main.web/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9-09-18

향수를 자극하는 ‘불멸의 맛’·소박한 ‘추억의 맛’

영천 고경면의 ‘밀방앗간옆빵집’. ‘시골빵집’이다. 소박하고 푸근하다. 들풀 더미 한가운데 오롯이 있다. 진솔하다. 이름이 길다. 외우기도 힘들다. 한 번만 가보면 이 이름이 입에 붙는다. 한적한 시골길에 가건물 같은 빵집이 있다. ‘수요일, 토요일만 빵집 문을 연다’고 써 붙였다. 50m쯤 떨어진 곳에 허름한 건물이 있다. ‘방앗간’이라고 쓰여 있다. 빵집 부근에 밭이 있다. 빵집 주인 유정재 씨가 농사를 짓는 6천 평 밀밭이다. 직접 농사짓는 밀밭, 전용 방앗간, 빵집. ‘밀방앗간옆빵집’이다.만나기 전날. 전화로 ‘잠깐 인터뷰’를 요청했다. 펄쩍 뛰었다. 절대 인터뷰할 수 없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언젠가 자그맣게 인터뷰했더니, 다음 날부터 방송 프로그램 등에서 섭외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일을 못 했다”고 했다. 2015년께, ‘먹거리X파일_착한빵집’에 잠깐 등장했다. 두어 달 고생했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손님이 밀려들었다.빵에 대한 호기심은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다. 막연하게 ‘내 빵’을 구워보고 싶다는 생각. 도회지 생활을 접고, 고향 영천으로 왔을 무렵에도 그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빵은 밀가루로 빚는다. 밀가루는 밀이다. 밀을 기르기로 했다. 국산 밀 품종은 다양하지 않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밀 품종을 여럿 살폈다. 빵 만들기에 좋은 품종을 찾는 일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최근에는 이모작 밭을 밀 일모작으로 바꾸었다. 밀은 지력을 거칠게 빨아들인다. 어차피 밀 농사 짓기에 좋은 곳은 아니다. 남쪽 땅이라면 10t 정도의 밀이 생산되었을 것이다. 일 년에 겨우 7~8t 정도 수확한다. 그나마 일모작이니 요만큼이라도 가능하다. 일 년 내내 밭에 매여 있기도 힘들다. 추가로 인력을 쏟을 일도 아니다. 일 년 농사지은 밀을 저온 보관한다. 필요한 만큼 꺼내서 방앗간에서 제분한 다음 바로 빵을 만든다. 저온창고 보관, 제분, 제빵의 시간이 짧다. 밀의 맛과 향기를 살린다. 당일 만든 빵은 당일 판다. 하루를 넘기는 빵은 없다. 어차피 수, 토요일만 문을 연다.어린 시절 먹었던 빵, 밀가루의 맛과 냄새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향과 맛을 찾아서 빵을 만든다. 시간, 열, 습도와의 싸움이다. 수입 밀가루는 많은 첨가제를 넣는다. 쉽게, 모양이 그럴 듯한 빵을 얻을 수 있다. 향과 맛이 다르다. 대부분 빵은 다디달다. 밀가루의 풋내와 거친 신 냄새는 없다.개량제는 빵의 모양을 일정하게 잡아준다. 빵의 결과 기공(氣孔)을 일정하게, 예쁜 모양새를 만든다. 밀가루 음식을 먹고 난 후, 속이 쓰린 것은 반드시 글루텐 탓만은 아니다. 개량제, 식용 허가를 받았으니 대부분의 빵집에서 사용한다. 맛, 향에 긍정적이지는 않다. 보기 좋은 빵을 만들기 위해서다. 밀가루를 먹고 난 후, 속이 쓰린 것은 ‘지나친 개량제’ 때문이 아닐까, 라고 의심하는 이들도 많다. 가능하면 개량제를 전혀 넣지 않은 빵을 만들고 싶다. ‘밀방앗간옆빵집’에선 ‘개량제’를 소량만 쓴다.밀방앗간옆빵집은 바게트(baguette)와 크루아상(croissant), 식빵 등을 중심으로 대여섯 가지의 빵을 내놓고 있다. 바게트는 ‘서민의 빵’, 크루아상은 ‘귀족의 아침 식사’다. 바게트는 밀가루, 물, 소금, 효모로 만든다. 귀한 치즈를 더하면 크루아상이 된다. 만드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크루아상이 더 힘들다. 밀대로 일일이 밀어서 얇은 밀가루 반죽 사이사이에 치즈를 넣어야 한다. 둘 다 달지 않다. ‘식사용 빵’이다. ‘밀방앗간옆빵집’의 바게트는 재미있다. ‘겉 딱딱, 속 촉촉’이 아니다. 겉, 속이 모두 부드럽다. ‘손님’들이 딱딱한 바게트보다 겉이 부드러운 걸 원한다. 겉이 빵처럼 부드럽다. 빵 반죽으로 바게트를 만든다.바깥세상은 다르다. 일본을 통해서 받아들인 ‘과자 같은 빵’이 대세다. 달다. 단맛이 강한 ‘일본 빵’ 사이에서 즐겁게 ‘식사용 우리 밀 빵’을 만들고 있다.6월에 밀을 수확했다. 9월, 밭은 온통 잡초다. 밀밭을 보고 싶었지만, 내년으로 미뤄야 한다. 그동안은 대표 유정재 씨의 빵 만드는 솜씨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견뎌야 한다. 빵을 사려면 바지런을 떨어야 한다. 토요일에는 오전 중에 대부분 빵이 다 팔린다.소시지 등을 내놓는 ‘델리(DELI)’를 구상하고 있다. 혼자 하기는 벅차다. 아들이 둘. 둘째가 빵에 관심이 있다. 지켜보고 있다.‘밀방앗간옆빵집’ 취재 후, 한 번 더 가봤다빵을 좋아한다. ‘밀방앗간옆빵집’을 취재하던 날, 빵 두어 종류를 집어왔다. 몇 천원 빵값을 지불했더니, 한두 종류를 덤으로 주었다. 이 빵이 남질 않았다. 돌아오는 도중, 만나는 이마다 “맛있다”고 집어 먹었다. 결국 다 털렸다. 맛은 봤지만, 냉동실에 넣어둘 빵이 없었다. 다음 주에 다시 갔다. 빵을 사러.미처 물어보지 못한 궁금한 부분도 있었다. 효모.몇 해 전부터 ‘천연발효종(天然醱酵種)’이 널리 유행한다. 천연발효종은, ‘천연+발효+종’이다. ‘자연에서 구한 효모의 씨앗’이다.빵을 만들 때 천연발효종, 베이킹파우더, 이스트(YEAST, 건조효모) 등을 사용했고, 또 지금도 사용한다. 이스트는 말 그대로 건조 효모, 효모를 말린 것이다. 정확하게는 건조이스트다. 운반, 보관, 사용이 비교적 편하다. 천연발효종은, 효모 씨앗을 구해서 자체적으로 배양한 것이다. 장점도 많지만, “가장 좋은 빵을 만드는 조건”은 아니다.두 번째 빵집에 들르던 날(사실 문이 닫혀있던 날을 포함하면 세 번째다), 대뜸 발효제, 효모에 대해서 물었다.“여러 가지 써봤는데, 저한테는 세미드라이가 제일 맞더라고요.”세미드라이 이스트(SEMI DRY YEAST)는 ‘반 건조 이스트’ 쯤 된다. 냉동 보관이 가능하고, 발효시키는 힘도 비교적 좋다. 잘 부풀지 않는 우리 밀에 사용하기에도 좋다. 매일 문을 열고 여러 종류, 많은 빵을 만드는 집이 아니다. 천연발효종의 경우 보관도 문제다. 세미드라이 이스트는 유 대표의 빵 만드는 과정이 ‘실용적’임을 보여준다. ‘밀방앗간옆빵집’에 최적화된 효모다.유 대표는 대학에서 축산을 전공했다. 과학적인 데이터로 움직인다. 빵 만드는 것을 보면, 과학적이면서 때로는 ‘미련’해보인다. 밀을 직접 재배, 제분한다. 밀가루는, 우리 밀의 경우라도, 사서 쓸 수도 있다. 굳이 밀을 재배하고 제분한다. ‘미련’이다. 하지만 바탕에는 심지 깊은 생각이 있다. 빵의 기본은 밀, 밀가루다. 품종을 바꾸면서 여러 밀 종류를 재배하는 것은, “내 손에 맞는 밀가루를 쓰겠다”는 고집 때문이다. 힘들지만 밀 재배, 자체 제분기 사용을 고집한다. 덕분에 빵집은 ‘일주일에 두 번 문을 연다’.크루아상(croissant) 등은 몇 년 빵을 만든 후, 스스로 개발한 것이다. 단면을 잘라보면 잘 만든 빵이 어떤 건지 바로 구별할 수 있다. 사용한 발효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빵 만들기 힘든 우리 밀로 빵의 결, 기공을 제대로 만들어내기 힘들다. 잘 만든 빵이다. 유 대표도 초기 ‘벽돌같이 딱딱한 빵’을 만들었다. 실패작이었다.‘취재’ 덕분에 ‘방앗간’의 제분기도 돌아봤다. 몇몇 제분 공장을 가본 후, 구입한 장비다. 제분기를 보고 난 후, “이 빵집에서는 통밀빵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밀은 밀의 겉껍질을 살린 것이다. 까칠한 바깥 껍질을 벗기면, 마치 현미 같은, 통밀이 나온다. 다시 껍질을 벗기고 갈아내면 흰 밀가루가 된다. 통밀빵은 거칠다. 구수한 맛은 일반 빵과 다르다. ‘나만의 방앗간’이다. 입자 굵기 조정, 겉껍질 제분 정도를 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방앗간’부터 들르는 이유다.유제품, 육류가공품도 내놓는 ‘델리(DELI)’를 꿈꾼다. 유 대표가 ‘밀방앗간옆델리’를 만들 때까지 꾸준히 가볼 참이다.갓바위양조장은 우리와 친숙한 막걸리, 약주, 탁주, 청주 등을 만드는 곳이다. 증류주도 선보이고 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업력도 제법 길다. 이현준 대표가 20여 년 전에 양조장을 시작했다. 오래된 양조장의 경우, 별다른 변화 없이 술을 빚는다. ‘변화’는 자주 망가진다. 때로는 ‘발전’ 혹은 ‘진화’다. 이현준 대표는 쉬지 않고 변화하고 있다. 때로는 망가지고 더러 발전, 진화하고 있다. 스스로 문제를 찾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다. “20년쯤 하고 나니 이제 겨우 술이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긴 세월 동안 묵묵히 여러 가지 실험, 시험을 해봤다. 2010년에 이미 HACCP 인증을 받았다.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다. 알코올 도수 6~8도부터 12도, 18도까지 만든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주도 만든다. ‘홍국’은 재미있는 술이다. ‘붉은 누룩’이 ‘홍국(紅麴)’이다. 사전에는 ‘약주를 담그는데 사용하는 누룩’이라고 설명한다. 술 색깔도 붉다. 특이하다. 보편적인 술과는 맛, 향, 색깔이 다르다. “한국에서도 이 정도 술, 이런 막걸리를 내놓는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외국 진출도 시도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고도리와이너리’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와이너리다.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 견학, 체험학습을 오는 이들도 많다. 최봉학 대표가 와인을 만드는 재료, 포도를 직접 재배한다. 생포도도 시장에 내놓는다. 한국의 ‘국산 와인 시장’은 작다. 와인으로만 와이너리를 운영하기는 벅차다. 거봉 등 생포도를 내놓으면서 그나마 숨통이 틘다.와인의 라인업이 다채롭다. 레드를 비롯하여, 화이트, 로제, 스파클링 등을 내놓는다. 증류주도 있다. 국내 와인 제조, 마케팅은 이제 ‘시작’ 수준이다. 그 선두에 ‘고도리와이너리’가 있다. 레드와인 보다는 화이트와인이 많다. ‘고도리’라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있다. 주소가 영천시 고경면 고도리다.전국구로 유명한 맛집은 공설시장 안 ‘포항할매곰탕’ ‘금호할매추어탕고디탕’ ‘편대장영화식당’ 등이다.‘포항할매곰탕’은 업력이 긴 곰탕전문점이다. 서민의 음식. 시장통에서 상인, 손님들에게 꾸준한 맛으로 인정받았다. 가게 앞에 큰 솥이 걸려 있고 내부는 의외로 아주 작다. 국물 맛이 깊고, 고기 양도 제법 넉넉하다.‘금호할매추어탕고디탕’은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연다. 인근에 금호강이 있다. ‘고디’는 다슬기의 이 지역 사투리다. 인근에서 채취한 ‘고디’를 공급하는 이들이 있다. 실내는 허름하지만 음식은 꾸준히 수준급이다. 추어탕은 ‘갈추’로 남쪽 농경지역 방식이다.‘시골추어탕’. 재미있는 집이다. 영천 토박이들은 잘 아는 집이다. 봉놋방 스타일에 테이블이 대여섯 개 정도, 작고 소박한 집이다, 인터넷에도 포스팅이 없다. 음식은 수준급이다. 얼갈이배추, 청방배추를 고집하지 않고 배추의 여린 잎을 골라서 사용한다. 양념, 반찬 모두 깔끔하다. 미꾸라지는 인근에서 채취한 것을 구해 쓴다. 아주 곱게 갈아서, 추어탕이라는 느낌이 없다. 준비해둔 물량이 소진될 경우, 못 먹는다.‘청정석쇠촌’은 된장찌개에 돼지고기를 석쇠구이 스타일, 두루치기 스타일로 더한다. 고기의 양념이 과하지 않은 것이 장점. 혼밥도 가능하다. ‘석장밥’을 추천한다.영천읍내 ‘한그릇의만족’은 돼지고기, 순대전문점이다. 가게 입구에 큰 가마솥이 걸려 있다. 장작으로 고기, 순대를 삶아내는 가마솥이다. 주인이 주방 일을 하면서 종일 불을 살핀다.고깃집으로는 ‘편대장영화식당’과 ‘화평대군’이 유명하다.영천버스터미널에는 호밀빵을 파는 빵집이 있다. (주)하눅은 호밀 전문 회사다. 이 회사에서 만든 호밀빵, 호밀 선식 등을 선보이고 있다.      /음식평론가 황광해

2019-09-18

찬란한 천년 신라, 빛으로 되살아나다

‘2019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오는 10월 ‘문화로 여는 미래의 길(Culture, the key to our future)’을 주제로 신라문화에 최첨단 기술을 접목한 킬러콘텐츠를 대거 선보인다. (재)문화엑스포(이사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10월 11일부터 11월 24일까지 경주 보문관광단지 내 경주엑스포공원에서 ‘2019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개최한다.□ 특별한 역사·문화·체험 프로 인기전시, 체험, 공연, 영상 등 4개 분야에서 경주엑스포만의 특별한 역사·문화·체험 프로그램을 만나볼 수 있다.전시 분야에서는 △경주타워 맨 위층 선덕홀에서 펼쳐지는 ‘신라천년, 미래천년(이머시브 스크린)’ △최첨단 미디어 아트인 ‘찬란한 빛의 신라’(타임리스 미디어아트) △솔거미술관 ‘문화로 여는 미래의 길展’이 대표적인 콘텐츠이다.체험 분야에서는 △전국 최초 맨발전용 둘레 길인 ‘비움 명상길’과 이곳에서 야간에 진행되는 숲속 어드벤처 프로그램 ‘신라를 담은 별’(루미나 나이트 워크)이 관광객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공연 분야에서는 △세계 최초로 로봇팔(Robot Arm)과 3D 홀로그램을 공연에 도입해 최고의 판타지를 보여줄 ‘인피니티 플라잉(Infinity Flying)’ △국내외 예술단의 ‘공연 페스티벌’ △경주가 낳은 한국대표 문학가와 작사가를 처음으로 콜라보하는 ‘동리·목월·정귀문선생, 그리고 시와 노래’가 화려한 무대를 선사한다.영상 분야에서는 △관람객 누구나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포토와 영상을 제작할 수 있는 ‘실감 VR스튜디오’가 관광객을 기다린다.□ 전시회·공연 등 볼거리 풍성‘신라천년, 미래천년(이머시브 스크린)’ 전시는 경주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경주타워 전망대(선덕홀)의 전면유리를 활용한 신라체험 가상현실 콘텐츠이다. 관람객이 마치 8세기 융성한 서라벌로 시간 여행을 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찬란한 빛의 신라’(타임리스 미디어아트)는 전시 미술에 최첨단 과학기술을 결합시켜 신기하고 환상적인 체험을 제공하는 신개념 미술 전시이다. 경주의 대표적인 세계문화유산을 빛과 미디어아트로 체험하는 ‘오감만족’ 전시로 꾸며진다.‘경주의 핫플레이스’인 솔거미술관에서는 2019경주세계문화엑스포 주제인 ‘문화로 여는 미래의 길展’이 열린다. 한국화단의 거장 박대성 화백의 한반도 주요 비경과 공성환, 김상열, 안치홍, 오동훈 등 경북 출신 유명작가 4명이 참여해 시선을 끈다.야간에 빛을 따라 모험을 펼치는 ‘신라를 담은 별’(루미나 나이트 워크)은 경주타워 뒤편 ‘화랑숲’에 만들어진다. 전국 최초의 맨발전용 둘레 길인 ‘비움 명상길’에 황톳길과 조약돌길 등 경주 8색(적, 홍, 황, 녹, 청, 자, 금, 흑)을 주제로 코스가 조성된다.경주엑스포 상설 공연인 ‘플라잉’은 ‘인피니티 플라잉(Infinity Flying)’으로 진화해 컴백한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날아다니던 플라잉 시스템을 객석까지 확장하고, 로봇팔과 3D 홀로그램은 배우의 퍼포먼스를 더욱 다채롭게 해 관람객의 몰입감을 높인다.국내외 저명한 공연단의 화려한 무대는 2019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흥을 돋운다. 공연 페스티벌은 △경주엑스포 해외 개최국 공연단(베트남, 캄보디아) △경북도, 경주시 자매도시 공연단(인도네시아, 이집트, 중국) △지역 예술단 초청 공연 △탱고 페스티벌 등이 펼쳐진다.특히 경주 출신 시인, 소설가, 작사가가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동리·목월·정귀문선생, 그리고 시와 노래’가 큰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경주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정귀문 선생은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 배호의 ‘마지막 잎새’ 등 1천여곡을 작사한 우리나라 대중가요사의 거목이다. 노래는 유명 성악가들과 경주출신 가수 장보윤씨가 부른다.연계행사로는 경북국제식품박람회, 공예바자르, 경북예술제, 도자기 명인전, 세계시민으로 사는 경북인 2019 등이 열린다. 기존 상설 콘텐츠인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기념관, 새마을관, 쥬라기로드, 또봇 정크아트 뮤지엄, 에밀레 공연도 새 단장 해 선보인다. 뿐만 아니라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전통 민속놀이와 목공예, 금속공예, 도자기공예 등 체험장도 마련된다.□ 올해 엑스포 의미와 특징1998년 처음 시작한 경주엑스포는 올해 10회째를 맞는다. 이번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기존의 ‘단기간 집중형 문화박람회’에서 벗어나 ‘연중 축제화’를 선포할 계획이다.온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체험형 콘텐츠를 늘리고, 시즌별로 차별화한 축제를 선보이며 방문객의 만족도와 재방문율을 높인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10월 본격적인 엑스포를 앞두고 지난 5월 ‘봄축제-넌버벌 페스티벌’과 7~8월 ‘여름축제-핫 서머 버블 페스티벌’을 연계, 사전행사로 열어 엑스포 분위기를 고조시켰다류희림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사무총장은 “22년간 쌓아온 하드웨어와 올해 엑스포를 위해 개발한 지속 가능한 소프트웨어를 통해 명실상부 종합문화테마파크를 구축한 원년으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달라진 점지금까지 공개하지 않았던 경주타워 전망대(지상 82m, 선덕홀) 옥외공간은 ‘오아시스 정원’으로 꾸민다. 경주의 가장 높은 곳에 ‘스카이 워크’를 만들어 짜릿한 이색 추억을 선사한다.경주타워 전시실(지상 65m)은 전체를 ‘카페 선덕’으로 꾸민다. 경주 최고(最高) 높이에서 압도적인 뷰를 자랑하는 휴식공간으로 변한다.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경주엑스포공원을 순환 운행하는 전기자동차 ‘천마차’도 운영한다. 관람객들은 원하는 정거장에 내려 관람 후 다시 탈 수 있으며 가격도 낮췄다.(1인 2천원)□ 주목받는 킬러콘텐츠 Big4△신라천년 미래천년경주엑스포는 선덕여왕 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 건축물이었던 황룡사 9층 목탑을 형상화 해 2007년 경주타워를 만들었다. 준공 13년 만에 완전히 새롭게 리모델링한다. 경주타워 지상 82m 높이에 위치한 ‘선덕홀’에는 ‘신라천년 미래천년’ 전시관이 들어선다. 동서남북 네 방향 전면 유리 위에서 30분에 한 번씩 4면 가득 스크린이 내려온다. 몰입형 입체영상인 ‘이머시브 스크린’이 관람객들에게 천 년 전 서라벌 속을 새처럼 날아다니고 왕처럼 거니는 듯 한 경이로운 감동을 전한다.△찬란한 빛의 신라‘찬란한 빛의 신라’는 눈부신 신라의 아름다움을 입체적인 ‘타임리스 미디어 아트’로 표현해 경주의 위상을 알리고 가치를 공감하는 전시관이다. 첨성대, 금관, 석굴암, 성덕대왕신종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들이 첨단기술로 되살아나 영원한 신라로 안내한다.△신라를 담은 별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선보이는 ‘루미나 나이트 워크’ 콘텐츠인 ‘신라를 담은 별’은 최첨단 디지털 아트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어트랙션이다. 경주엑스포는 경주타워 뒤편 화랑숲에 ‘전국 최초 맨발전용 둘레 길’인 ‘비움 명상길’을 조성중이다. 이곳에서는 밤이 되면 신라의 신화와 전설이 이끄는 황홀한 빛의 탐험이 시작된다.△인피니티 플라잉올해 ‘인피니티 플라잉(Infinity Flying)’은 무대에 3D홀로그램을 입혀 관람객들이 실제 공연의 배경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로봇팔(Robot Arm)이 배우를 매달아 상하, 좌우, 앞뒤, 360도 회전시킨다. 로봇팔과 배우가 펼치는 합은 화려한 연기의 극치를 보인다. 무대 위를 날아다니던 와이어 장치의 영역을 객석까지 확대시켜 관람객들의 ‘와우’ 포인트를 늘린다. 로봇팔과 3D 홀로그램 기술이 상설공연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세계에서 최초이다.□ 기대효과그동안 경주엑스포는 △한국문화와 세계문화의 융합 △문화이벤트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 △국제교류를 통한 문화외교 △문화예술의 진흥 및 문화가치 확산 등의 성과를 이끌어 냈다. 2019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이러한 가치를 충족하는 것은 물론 경북문화자원의 융·복합적 역량 강화로 경북 문화자산을 세계화하고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문화산업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경주엑스포 홈페이지 및 각종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예매권 판매에 들어갔다. 입장권은 대인 1만2천원, 소인 1만원이다. 엑스포 개최 하루 전인 10월10일까지 예매하면 대인 1만원, 소인 8천원에 구입할 수 있다.경주/황성호기자 hsh@kbmaeil.com

2019-09-18

장기에 가면 장기사람들은아직까지 우암(尤庵) 선생이야기 하고…

우암의 은행나무. 우암 송시열 선생이 심은 것이라고 한다. 장기초등학교의 교목이 은행나무인 것도 여기서 연유된 것이다. 원목은 고사하고 그 뿌리에서 난 손자나무가 다시 자라나 그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우암 송시열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사람마다 호불호의 견해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가 조선사회에 끼친 영향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는 조선왕조실록에 3천 번이나 이름이 등장한다. 사약을 받고 죽었음에도 유교의 대가들만이 오른다는 문묘(文廟)에 배향되었고, 전국 23개 서원에 제향되었다. 그의 죽음은 신념을 위한 순교로 이해되었고, 그의 이념을 계승한 제자들에 의해 조선사회는 움직였다.이렇듯 한 시대를 좌지우지했던 우암이 경상도 장기현으로 유배를 온 것은 1675년 6월 10일이었다. 그는 약 4년간 이곳 마현리에 머물면서 장기사람들과 함께 호흡을 같이하다가 갔다. 가도 그냥 간 것이 아니었다. 17세기 후반 조선사회를 지배했던 국노거유(國老巨儒)답게 장기사람에게 그의 사상과 철학들을 한 움큼 심어놓고 갔다.그런 면에서 우암의 장기현 유배는 지역민들로 봐서는 더할 나위없는 행운이었다. 아니 장기뿐만 아니라 영남지역 전체에도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불러왔다. 인근고을에서 무수한 수령들과 학자들이 우암을 찾아와서 문안을 올렸고, 한양에서 아예 보따리를 싸서 내려온 선비들이 그에게 학업을 전수받기를 간청했던 사실들에서 이 같은 영향력의 실상을 확인할 수가 있다.우암이 장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1674년(갑인년)에 일어났던 제 2차 예송(禮訟)논쟁이었다. ‘며느리인 왕비가 죽었을 때, 살아 있는 시어머니(대비)가 상복을 얼마 동안 입어야 맞는가?’란 논쟁거리에 휘말려 장기까지 유배를 온 것이다.논쟁의 불씨를 제공한 사람은 인조이다. 소현·봉림·안평·용성대군을 낳은 인렬왕후 한씨가 죽자는 인조는 조대비(자의대비, 장렬왕후)를 계비로 맞아들였다. 이때 인조의 나이는 마흔넷이었고, 조대비는 아들인 효종(봉림)보다도 다섯 살이나 아래인 열다섯이었다. 그러다보니 효종과 효종의 비(인선왕후) 두 사람이 다 죽을 때까지도 조대비가 살아 있는 특이한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는 신하가 보는 예법책과 왕족이 보는 예법책이 달랐다. 양반들은 주자가례에 적힌 예법을, 왕족은 경국대전을 따랐던 것이다. 문제는 경국대전에 조대비 같은 특이한 경우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가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첫 번째 논쟁(1차 예송논쟁)은 1659년(기해년)에 일어났다. 먼저 효종이 죽었다. 효종은 인조의 차남으로 왕위에 오른 사람이었다. 그의 상(喪)에 어머니(계모)인 조대비가 얼마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느냐는 게 논점이었다. 원래 왕실의 예법대로 하자면 장남이 죽었을 때는 3년, 차남이 죽었을 때는 1년이었다. 그래서 조대비는 이미 장남인 소현세자가 죽었을 때 3년 동안 상복을 입은 적이 있었다.이에 대해 서인인 송시열은 효종이 차남이므로 조대비가 1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자가례에 따르면 살아있는 부모는 장자의 경우 3년, 차남 이하는 1년간 상복을 입도록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왕도 결국 사대부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같은 예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신하이지만 세력을 얻은 서인들의 자신만만한 태도가 느껴지는 부분이다.그러나 남인인 윤휴와 허목은 이들과 견해가 달랐다. 효종이 비록 차남이긴 하지만, 결국 임금이 되었으므로 장남과 같이 대우하여 3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맞섰다. 왕이니까 주자가례가 아니라 특별한 예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상주인 현종의 입장에서는 서인의 주장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버지인 효종을 맏아들로 대접하지 않겠다는 건, 정당하게 왕위를 이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고, 그렇게 되면 그의 아들인 현종 자신도 정당하지 못한 왕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막 왕위에 오른 어린 왕이었던 현종은 서인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서인과 등을 돌릴 수도 없을 뿐더러, 싸움이 너무 길어질 경우 나라를 다스리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결국 조대비가 상복을 입는 기간은 1년으로 결정되었고, 논쟁에서 승리한 서인(송시열, 송준길)이 정치의 주도권을 잡았다.우암이 장기로 유배온 계기를 만든 두 번째 논쟁(2차 예송논쟁)은 1674년(갑인년)에 일어났다. 이제는 효종의 부인인 인선왕후가 죽었다. 그때까지도 살아있던 시어머니 조대비가 상복을 얼마동안 입어야 할지를 놓고 또 논쟁이 벌어졌다. 주자가례에는 첫째 며느리의 경우는 1년, 둘째 며느리에게는 9개월간 상복을 입도록 되어 있었다. 서인은 인선왕후가 둘째 며느리이므로 9개월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남인은 효종이 임금이 되었으므로 인선왕후도 당연히 장자의 며느리에 해당하는 예를 갖추어 1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번에는 현종이 남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동안 15년이나 왕위에 머무르면서 정치에 노련해진 현종은 더 이상 서인들에게 휘둘리지 않았던 것이다. 논쟁에서 승리한 남인(윤휴, 허목)들이 권력을 잡았다. 반면 세력에서 밀려난 서인의 대표 송시열은 쫓겨나 포항 장기로 귀양을 오게 된 것이다.예송논쟁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왕실의 예절을 따지는 소모적인 다툼처럼 보였지만, 내면적으로 보면 예를 최고의 덕으로 여기던 성리학의 핵심문제이다. 이것은 효종의 왕위계승에 대한 정당성을 묻는 문제와 신하들 간의 정치적인 대립이 얽히면서, 숙종 때에 와서는 더 큰 다툼의 씨앗이 되었던 것이다.이 사건으로 우암이 장기에 위리안치된 이후, 인근 고을의 수많은 사람들과 중앙의 우암 인맥들이 장기를 찾아왔다. 1676년 2월 3일에는 명재(明齋) 윤증(尹拯)도 왔다갔다. 윤증은 조선 후기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가 유명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그가 장기현을 방문한 후 노론과 소론이 분화되고 그가 소론의 거두가 된 탓이다.윤증은 아버지 윤선거가 죽자 아버지의 연보와 박세채가 쓴 행장(行狀)을 가지고 송시열을 찾아가 묘갈명을 부탁하였다. 그런데 송시열은 ‘박세채가 쓴 행장에 이미 다 잘 나와 있다.’ 고 기피하면서 무성의하고 비판적인 내용으로 묘갈명을 지어줬다. 그리고 묘갈명 끝에다 술이부작(述而不作·있는 그대로 기술할 뿐 새로 지어내지 않는다)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는 탐탁하지 않은 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한때 스승이던 송시열이 부친의 묘갈명을 대충 지어주자 아쉬움이 남았던 윤증은 송시열이 장기에 있을 때인 병진년(1676년) 2월 28일, 추풍령을 넘어 장기까지 찾아와서 다시 써 달라고 부탁했지만, 송시열은 이것마저 거절했다.송시열과 윤선거는 사계 김장생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친구였다. 처음에는 사이가 좋았다. 그래서 윤증은 송시열의 제자가 되었다. 하지만 송시열이 경전주해(經傳註解) 문제로 윤휴(尹鑴)라는 사람과 사이가 나빠졌다. 송시열은 유학의 정맥이 윤휴 등에 의하여 심하게 훼손되었다고 생각했고, 주자의 학설을 비판한 윤휴를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았다. 그런데 윤선거는 평소 윤휴와 친교가 깊었기에 사사건건 윤휴의 편을 들면서 그를 두둔했다. 이 일로 송시열과 윤선거의 사이마저도 비틀어졌다. 그뿐이 아니다. 윤선거는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다른 선비들과 함께 결사항전을 약속하고도, 어머니와 함께 평복을 입고 빠져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 27세의 윤선거의 판단과 동기는 매우 복잡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외형적으로 그것이 그때 조선을 지배하던 이른바 ‘의리’와 ‘명분’에 어긋났다는 사실은 뚜렷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우암도 그를 의리가 없고 불충한 사람으로 보았다는 설도 있다.어쨌든 묘갈명을 계기로 스승인 송시열과 제자 윤증의 사이는 멀어져 갔다. 두 사람 사이의 불화는 윤증과 송시열이 서로를 비방했던 이른바 회니시비(懷尼是非)로 이어졌고, 끝내는 노론과 소론의 분당으로까지 비화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갈라진 이유가 윤증이 장기에 있는 우암을 만나고 간 이후부터였다고 하니, 조선 후기 정치사의 소용돌이 속에 장기현이 있었던 것이다.인근 수령들도 장기에 있던 우암을 배알하였다. 1679년 당시 영천군수로 있던 이사영(李思永)은 매월 우암에게 먹을 것을 보내주다가 이것이 문제되어 파직당하기도 했다. 장기 주민들과 우암의 접촉도 관심을 끈다. 어느 늦은 봄날 인근 주민이 살아있는 암꿩 한 마리를 잡아와서 우암에게 주었다. 우암은 여러 번 꿩을 어루만지다가 그 사람에게, “교미를 하고 새끼를 칠 때인 만큼 알을 품고 있는 금조(禽鳥)를 죽일 수는 없다.” 라고 하면서 꿩을 되돌려 주었다. 꿩을 다시 받은 주민은 숲 속에 그 꿩을 놓아주었다. 얼마 후 그 암꿩이 새끼들을 거느리고 산간을 나다니고 있는 것이 목격되었다. 이는 우암의 인품이 숲속의 새들에게까지 자비로웠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이와 곁들여 우암이 학질병까지 낫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고도 한다. 장기는 남방이기 때문에 학질이 많았는데, 주민 중에 이 병에 걸린 자가 고통을 참지 못하다가 우암의 적거지 가시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자 병이 나았다고 했다. 그래서 우암이 떠나간 후에도 장기사람들은 학질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송대감(宋大監)’이라는 세 글자를 적어서 등에 붙이면 즉시 병이 치유되었다고 했다. 이는 우암이 장기인들에게 어떻게 인식되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글자를 써서 붙였다고 해서 병이 나을 까닭이 없다. 비록 장기로 유배를 온 신분이었지만, 학질이 물러날 만큼 우암이 위엄 있었고 무서운 존재로 부각되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우암이 장기에 유배된 이후부터 지방의 풍속이 크게 변화된 것도 있다. 그 중에서도 새해의 차례를 섣달 그믐날에 행하던 풍속을 우암이 바로잡아 ‘설날(元日)’에 행하게 했다는 것이다. 설날(元日)은 응당 해가 뜬 이후부터이니, 아침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예절에 맞는다는 것이다.우암은 장기 유배 생활 중에서도 학문을 계속하였다. 찾아오는 전국의 문인들에게 강학하였으며, 때로는 지역민을 모아 가르쳤다. 우암이 머물던 집의 주인인 오도전은 4년간 우암에게 수학하여 향교의 훈장이 되었다. 장기사람 서유원과 이동철 등도 꾸준히 문하에 출입한 문인이었다. 이들은 후일 죽림서원을 창건하고 그 역사를 고증하는 일에 한몫을 하였다.우암은 대략 222제 297수의 시를 유배지 장기에서 창작했다. 이 시들을 통하여 우암은 다양한 심회를 시로 형상화했다. 또 주자대전차의와 정서분류는 장기 유배기간 동안에 저술된 대표적인 학술서이다. 이것 외에도 장기에서 지은 문충공포은정선생신도비문과 전 장기현감 이수일의 묘갈명이 전한다.우암은 1679년 4월 10일 장기를 떠났다. 우암이 처음 장기로 왔을 때부터 적거지 안에는 느티나무 한그루가 스스로 싹을 틔웠다. 거제도로 이배될 시점에 그 나무는 제법 자랐다. 우암은 그것을 베어 지팡이를 만들어 짚고 죽교(竹轎·대나무로 만든 가마)에 올라서 떠나갔다. 오도전 등 장기 제자들 일부는 선생의 가재도구를 챙겨서 짊어지고 거제도까지 수행했다. 그러나 남은 제자들은 다시 돌아올 기약도 없이 떠나는 스승을 만감에 젖어서 전송했다. 우암에게 배운 장기 선비들이 얼마나 스승에게 감사하고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우암이 장기를 떠난 지 340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장기 땅에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가 심은 은행나무가 늙어서 죽고 아들나무가 생겨났다가 또 죽고, 이제는 그 뿌리에서 생겨난 손자나무가 그때의 사실들을 이야기 한다. 설령 이 은행나무가 죽고 또 죽기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생명을 다할 때까지, 우암의 회상들은 여기 장기 땅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이상준 향토사학자

2019-09-17

100m 상공서 감상하는 도심속 바다 지역경제 활성화 원동력 키워낸다

포항시가 ‘해양관광 1번지, 명품해양관광도시’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걸고 ‘바다’를 이용한 활발한 관광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시는 지난 8월 관광특구로 지정된 영일만 일대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영일만 관광특구는 포항시 환호동에서 송도동을 잇는 약 2.41㎢(약 73만평)로 우리나라 관광특구로는 33번째다. 영일만 일대는 환호공원, 영일대해수욕장, 중앙상가 영일만친구 야시장, 죽도시장, 포항운하, 송도솔밭 도시숲 등 여러 관광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포항의 관광메카로, 연간 11만 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다. 관광특구는 현재 전국 32개로 경북도는 경주시(1994년), 울진군(1997년), 문경시(2010년)가 지정돼 있다. 경북 자체로 보면 문경관광특구 지정 이래 10년만으로, 영일만관광특구는 경상북도 내 유일한 도심 속의 바다를 끼고 있는 관광특구라 특별한 의미를 더한다. 포스코 야경과 국제불빛축제,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는 싱싱한 포항물회와 호미곶 해안선이 내려다보이는 ‘영일대해수욕장’ 일대는 우수한 해양관광 자원을 품고 있어 이번 지정으로 포항관광의 브랜딩 효과 및 대외 인지도를 높이고 새로운 관광트렌드에 부합하는 관광명소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이 중에서도 포항시는 영일대해수욕장 인근인 포항여객선터미널과 환호공원 전망대를 연결하는 총 길이 1.8㎞의 해상케이블카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영일만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그대로 살리고 환경훼손이 없는 범위 내에서 바다 위 100m 높이에 해상케이블카를 설치해 아름다운 영일대해수욕장과 깨끗한 영일만 바다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해상케이블카는 이미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여러 사례가 많다. 이 중에서 성공적인 곳을 벤치마킹해 포항 해상케이블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단해 본다.□ 선풍적인 케이블카 인기이달 초 다도해와 유달산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전남 목포 해상케이블카가 개통했다. 3.23㎞ 코스로 국내 최장 길이를 자랑하는 목포 해상케이블카는 왕복 40분이라는 탑승 시간 동안 유달산과 목포 앞바다, 목포대교, 다도해를 두루 감상할 수 있다. 모두 55대의 케빈이 시간당 1천200여명을 태울 수 있고, 이 중에서도 15대는 바닥까지 투명한 유리로 제작돼 발아래를 감상할 수 있는 장점도 갖췄다. 이를 반영하듯 추석 연휴 기간 총 3만명에 가까운 인원이 이용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케이블카 설치 열풍은 비단 목포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전국에서 대유행처럼 번지며 지자체에서 너도나도 케이블카를 추진하고자 발벗고 나서는 상황이다. 어림잡아 전국 50여곳에서 관광 케이블카를 건설 중이거나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이러한 인기는 통영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로부터 촉발됐다. 지난 2008년부터 운행을 시작해 10년 넘게 지역 관광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통영 케이블카는 해마다 140만명 이상이 찾고 있으며, 누적 탑승객은 올해까지 1천400만명을 넘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하지만 이러한 케이블카 열풍이 좋은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후죽순 난립하는 케이블카가 서로 경쟁하며 수익성이 떨어질 수도 있고, 만일의 경우 폐쇄되면 애물단지로 전락할 뿐만 아니라 환경 훼손의 가능성마저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일례로 부산 해운대와 이기대를 연결하는 해운대 해상케이블카 사업의 경우 찬반 논란으로 뜨거운 상황이다.이 사업을 둘러싸고 반대 측은 민자 사업에 대한 우려와 환경 훼손을, 찬성 측은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맞서는 상황이다.□ 포항 해상케이블카 설치 사업포항시는 해상케이블카 설치사업을 지난 2016년 말부터 준비해 왔다. 당시에는 영일대해수욕장 일원(포항여객선터미널∼환호공원 전망대)에 580억원의 민간자본을 투입해 2019년 완공할 예정이었으나, 현재는 시일이 일 년 가량 뒤로 밀린 상황이다.이에 포항시의회에서도 올해 6월 사업 현장을 방문해 “영일대 해상케이블카는 침체된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해양관광산업을 선도할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추진해줄 것”을 주문하며 신속한 건설을 요구하고 나선바 있다.시는 애초 영일만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그대로 살리고 환경훼손이 없는 범위 내에서 해상케이블카를 설치해 바다 위 100m 높이에서 아름다운 영일대해수욕장과 깨끗한 동해를 한눈에 감상하고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을 세웠다.이는 대한민국 대표 해양도시인 경남 통영과 사천, 전남 여수 등이 해상케이블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큰 바탕이 됐다. 이들 해상케이블카 탑승객은 연간 120만명에서 많게는 200만명까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도 큰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이처럼 포항지역에서도 해상케이블카가 완공되면 1천억원 이상의 생산·부가가치 유발효과와 약 1천400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포항시는 침체된 지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행히 산악케이블카보다 해상케이블카가 높은 수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성공사례도 해상케이블카가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포항의 해상 케이블카 사업은 일단 출발에서는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항 해상케이블카 어디까지 왔나영일대 해수욕장 일원(여객터미널∼환호공원)에 추진되고 있는 포항 해상케이블카는 애초 계획대로 길이 1.8㎞, 높이 100m의 자동순환식 왕복 모노케이블카로 추진되고 있으며, 사업기간은 오는 2020년까지다. 총 사업비도 내진 적용기준을 1등급으로 상향하면서 최초 발표 당시보다 100억원 가량 증가한 687억원이 됐다.사업비 모두는 민자유치 방식으로 건설되며, 2017년 6월 제3자 제안 공모 공고를 통해 그해 9월 우선협상대상자로 대한엔지니어링(주)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이어 진행된 수요예측과 재무모델 등 사업성 평가에서는 연간 128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나타나며 사업에 청신호가 켜졌다.2018년 11월에는 포항해상케이블카 특수목적법인이 설립됐고, 이 법인은 2019년 5월 사업시행지로 지정 통보됐다. 8월에는 GS건설이 특수목적법인 지분의 60%를 사들이며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를 계기로 케이블카 건설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이달 들어서는 도시공원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본격적인 사전 준비를 마쳤으며, 10월 중으로 궤도시설에 대한 실시계획인가를 거쳐 내년 하반기에는 준공할 것으로 예상된다.환호공원 쪽 탑승장은 해변공원 인근 두호동 42번지 일대로, 환호공원 내 해변공원은 동해를 조망하기 좋은 위치로 유명한 곳이다.여객선터미널 쪽 탑승장은 항구동 58-54에 위치한 여객선터미널 주차장으로, 여객선을 이용하는 고객이 배를 기다리는 동안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복안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포항시 관계자는 “케이블카 사업은 포항의 해양관광산업을 선도할 사업일 뿐만 아니라, 죽도시장·포항운하·크루즈·영일대 및 송도해수욕장 등 다수 관광지 시설과 연계해 관광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다”며 “특히 신규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의 견인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2019-09-16

퇴계와 서애의 정신 깃든 안동 도산서원·병산서원을 가다

서원(書院)은 주자학의 이념을 배우는 조선 시대 사설 교육기관이다. 교회와 기독교, 사찰과 불교의 관계와 같다.서원은 지방의 공립학교인 향교처럼 과거 급제나 관료 양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인격의 완성에 목적을 뒀다. 서원이 심신을 수양하기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이유다.서원에서는 지역의 유교 선현을 기리고 그들의 사상과 학문을 계승할 인재를 키웠다. 도서를 간행해 보관했고, 미풍양속을 장려하고 백성을 교화했다. 서원은 조선 정치·사회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다.우리나라 서원 9곳이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국의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자, 성리학 개념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된다”는 것이 세계유산회원회가 서원을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올린 이유다. 특히 이 9곳은 인격 완성과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고민했던 유학자들의 사상이 구현된 곳이다.일본의 경제 침략, 북한의 도발, 미국의 압박, 중국과 러시아의 견제 등 각종 위기에 직면한 시기, 선현의 참된 정신이 깃든 9곳의 서원 중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을 찾아가 봤다.◇ 추로지향의 성인을 찾아가는 길경북 안동은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 불린다. 맹자의 출생지인 추(鄒)나라와 공자의 고향인 노(魯)나라에서 따온 말로, 바로 안동이 유학의 고향이란 뜻이다.안동은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유교의 전통이 가장 잘 이어져 오는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서원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도산서원(陶山書院)과 가장 아름다운 병산서원(屛山書院) 등 두 곳이나 있다.도산면에는 토계(兎溪)란 이름의 작은 개울이 있다. 개울가 비탈에는 작은 건물 세 채가 복원돼 있는데 이 중 ‘溪上書堂’(계상서당)이란 현판이 걸린 초막은 퇴계 이황(1501∼1570)이 1546년 낙향해 머물며 제자들을 가르친 곳으로 알려졌다. 퇴계는 개울의 이름에서 따온 ‘퇴계’(退溪)로 호를 삼았다고 한다.퇴계는 계상서당이 비좁아 제자를 더는 받지 못하자 1560년 산 너머 낙동강 변에 서당을 짓고 살며 후학을 양성했다. 이 도산서당은 퇴계 사후 제자들이 세운 제향(祭享) 영역과 함께 도산서원을 이룬다.도산서원은 1575년 사액(賜額)서원이 됐다. 사액서원은 왕으로부터 편액(扁額), 서적, 토지, 노비 등을 받으며 그 권위를 인정받은 곳을 말한다.도산서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 중 유일하게 제향자가 직접 짓고 생활한 곳이다.도산서원으로 향하는 길 한쪽에 ‘鄒魯之鄕’(추로지향)이 새겨진 비석이 놓여 있다. 공자의 77대 종손이 1981년 도산서원을 방문한 것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오른편으로 초록빛 들녘을 배경으로 안동호로 유입하는 푸른 물줄기가 휘도는 풍광을 감상하며 조금 걷자 도산서원 앞으로 커다란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그늘을 짙게 드리운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강변 그늘에 강줄기를 향해 놓인 벤치에는 햇살과 더위를 피해 찾아든 방문객들이 시원스러운 풍경을 마주하며 여유를 즐긴다.벤치 양옆으론 절벽이 강을 향해 돌출해 있다. 동쪽은 천연대(天淵臺), 서쪽은 운영대(雲影臺)라고 부르는데, 천연대는 시경(詩經)의 ‘솔개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네’[鳶飛戾天(연비려천) 魚躍于淵(어약우연)]에서, 운영대는 주자의 관서유감(觀書有感) 중 ‘빛과 구름 그림자 함께 돌고 돈다’[天光雲影共排徊(천광운영공배회)]라는 구절에서 인용했다.강 건너 둥그런 축대 위에는 시사단(試士壇)이란 이름의 비각이 하나 서 있다. 정조는 1792년 퇴계를 추모해 관원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고, 송림에서 과거를 열었는데 응시자가 7천명을 넘었다고 한다. 이 비각은 바로 이를 기념해 세운 것이다. 옛 건물과 비는 1974년 안동댐이 건설될 때 지상 10m 높이로 쌓아 올린 축대 위로 옮겨졌다.도산서원 입구 바로 옆에는 ‘冽井’(열정)이라 새겨진 우물이 있다. 세월의 떼가 덕지덕지한 우물은 도산서당 식수로 사용한 것으로, 아직도 맑은 물이 담겨 있다.열정은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내듯 부단한 노력으로 심신을 수양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다.◇ 소박한 공간에 담긴 퇴계의 마음서원은 일반적으로 경사면에 들어선다. 전체적으로 앞쪽이 낮고 뒤쪽이 높은 전저후고(前低後高)의 형태를 띤다. 또 제향 공간은 뒤쪽에, 강학 공간은 앞쪽에 배치된다(前學後廟).도산서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도산서원은 퇴계가 지은 서당 영역이 맨 앞쪽에 있고, 사후에 세워진 강학과 제향을 위한 건물이 뒤쪽에 배치돼 있다.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서원의 중심 건물인 전교당(典敎堂, 보물 제210호)을 향해 계단이 곧게 이어진다. 정문 바로 오른쪽엔 도산서당이, 왼쪽엔 기숙사인 농운정사가 자리한다. 도산서당의 사립문은 유정문(幽貞門). 은둔하면서도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속뜻이 담겨 있다. 서당 마당에는 연꽃을 심은 작은 연못인 정우당(淨友塘)이 있다. 퇴계는 진흙탕에 살면서도 몸을 더럽히지 않는 연꽃을 꽃 중의 군자라고 했다.서당 건물은 3칸으로 검소하고 소박하다. 오른쪽에 대청인 암서헌(巖栖軒), 중앙에 침소인 완락재(玩樂齋), 맨 왼쪽에 부엌이 있다.하지만 3칸 집으로 보기는 어렵다. 완락재는 반 칸 정도 크고, 암서헌은 1칸 정도를 늘려 지붕까지 달았다. 공간의 쓰임새에 따라 크기를 달리 설계했기 때문이다.완락재는 퇴계의 침소이자 독서 공간이다. 한 사람이 겨우 몸을 누일 정도로 비좁다. 퇴계는 부엌 쪽으로 공간을 내어 서가를 마련하고 책 1천여 권을 놓아두었는데 서가 앞에서 잠을 자거나 서가를 등지고 앉는 것을 불경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제자들이 거처하며 공부한 농운정사는 도산서당 건축 이듬해 세워졌다. 퇴계는 제자들이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하는 뜻에서 ‘工’(공) 자 모양으로 건축했다. 8칸 규모 건물은 정면에서 보면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풍전등화의 조선을 지킨 정치가도산서원에서 남서쪽으로 차로 1시간 거리에는 서애 류성룡(1542∼1607)을 기리는 병산서원이 있다. ‘서원 건축의 백미’로 알려졌듯 건축 답사지로 유명하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건물이 하나도 없다. 이곳의 가치는 바로 자연환경과의 조화, 평범한 건물들이 이룬 공간과 구조에 있다.병산서원을 이해하려면 우선 류성룡을 알아야 한다. 서애는 경북 의성에 있는 외가에서 태어나 이곳 하회마을과 한양에서 성장했다.퇴계 문하에서 수학했는데, 퇴계는 “마치 빠른 수레가 길을 나선 듯해 매우 가상하다”고 평했다고 한다.서애는 25세에 관직을 시작해 임진왜란 때는 국난을 수습했다. 서애를 얘기하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이순신 장군이다. 1591년 좌의정이었던 서애는 종6품 정읍현감 이순신을 무려 7계단 높은 정3품 전라도좌수사에 천거했다. 그의 천거는 적중했다.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서애는 병조판서 겸 도체찰사로 전시 정국을 이끌었다. 왜군의 수급을 베어오면 노비를 면천했고, 대동법의 모태인 ‘작미법’(作米法)을 시행했으며, 속오군을 만들어 양반에게도 병역의무를 지웠다.전란이 끝난 후에는 하회마을에 은거하며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을 기록한 ‘징비록’(懲毖錄)을 썼다. 지난 일을 경계해 후환을 삼가라는 뜻이다. 이렇듯 그는 뛰어난 정치인이자 학자였다.병산서원은 가파른 병산 절벽이 앞을 막고 낙동강 줄기가 휘도는 곳에 자리한다. 병산서원 정면에 서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마침 서원을 향해 열을 지어 선 배롱나무가 붉은 꽃망울을 터뜨려 화려함을 더한다.서애는 1572년 병산서원의 모체인 풍산읍의 풍악서당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풍악서당은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1607년 재건됐다. 풍악 서당이 서원으로 바뀐 것은 1614년 서애의 위패를 모시면서부터다.◇ 숨 멎을 듯 아름다운 자태팔작지붕을 얹은 3칸 정문인 복례문(復禮門) 뒤로 만대루(晩對樓)의 기와지붕이 가로로 넓게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진초록의 화산 줄기가 너울거린다.복례는 논어의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에서 따온 것으로,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仁)이라는 뜻이다.복례문을 지나면 왼편으로 광영지(光影池)란 이름의 연못이 자리한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에 따라 배롱나무 그늘이 드리운 네모난 연못 속에 둥근 섬을 조성했다. 섬에는 조그만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복례문 정면으로 계단 위에는 둥근 나무 기둥 18개를 세워 올린 만대루가 펼쳐져 있다. 나무 기둥은 휘어진 모습 그대로다. 커다란 돌을 받친 기둥도 보인다.만대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백제성루’(白帝城樓) 중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마주하기 좋으니’(翠屛宜晩對)란 구절에서 따왔다. 만대루 기둥 사이로 강학 영역이 들여다보인다.만대루는 휴식과 강학의 복합 공간이다. 기둥 사이를 빠져나와 만대루에 오르자 넓은 누각이 시원스럽다. 기둥과 난간을 제외하고 어떤 것도 주변 경치를 가로막지 않는다. 복례문 뒤편으로 낙동강 줄기가 유유히 지나고 그 뒤로 푸른 병산이 우뚝 솟아 있다. 두보의 시처럼 해 질 녘 풍광이 무척 아름답다고 한다.반대편으론 강학 영역이 정갈하게 내다보인다. 유생들은 이곳에 올라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피로를 풀었다고 한다. 만대루 한쪽에는 북이 걸려 있다. 서원의 금기인 여자, 사당패, 술이 반입됐을 때 울렸다고 한다.안동/손병현기자 why@kbmaeil.com

2019-09-15

뽀얀 국물에 탱글한 생선살 한술 뜨니 ‘아…’ 말문이 막힌다

여행을 갈 때면 먼저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놓는 편이다. 계획을 세울 때부터 여행을 벌써 시작하는 아름다운 ‘들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진작 그곳에 가 내게 손짓한다. 궁금한 곳의 날씨를 검색해보는 순간, 이미 나는 여행지로 몇 걸음 나아가게 된다. 그런데 지난 계절 경북 바닷길 여행은 정말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무작정’ 떠났다. 잠잘 곳도, 밥 먹을 곳도 정하지 않고 간 여행이었다. 구경거리야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금방 찾아갈 수 있고, 잠은 아무데서나 자면 그만이다. 문제는 식도락이었다. ‘맛집’을 검색하면 되지 않느냐고 누군가는 묻겠지만, 인터넷에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 화려한 방송 출연 경력을 내세우는 집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사전 계획을 세울 때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식당 선택이다. 그렇게 공들여 찾아간 집들은 대부분 만족스러웠다.고민이 깊어져 갔다. 경북 바닷길 537㎞, 그 아득한 푸른 길에서 파도처럼 밀려올 허기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몸이 여행 중임을 알아차린 혀는 더욱 까다롭고 예민하게 미뢰를 세워 ‘아무거나’와 ‘대충’을 절대 용인하지 않을 텐데…. 우리는 ‘아무거나’와 ‘대충’을 거세게 거부해야 한다. 음식뿐만 아니라 의식주와 여행, 취향과 관련된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그래야 한다. 아무거나 대충 입고, 먹고, 보는 사람은 자기결정권을 스스로 포기한 피동적 객체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늘 같은 것만 먹는 사람, 늘 똑같은 옷만 입는 사람도 취향의 확장을 통해 감각을 쇄신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자칫하다가는 자기중심적이고 변화에 유연하지 못하며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꼰대’가 되기 쉽다 자기에게 익숙한 것, 편한 것만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직된 태도를 버려야 한다. 여행은 낯설고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다.아무거나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감각이 곧 사고 작용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감각은 체험이 되고 체험은 지식이 된다. 익숙한 감각은 익숙한 생각, 늘 똑같은 사고밖에 할 수 없게 하지만 낯선 감각, 새로운 감각은 우리의 사고 체계에 혼돈과 충격을 일으키며 신선함을 불어넣는다. 낯선 감각에 우리 몸이 반응할 때, 사고 작용도 활발하게 활성화된다. 그걸 기대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고 경북 바닷길 여정에 오른 무모함 말이다. 어쩌면 나는 계획을 세우면서 나도 모르게 내 취향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왔는지도 모른다. 입맛이란 수시로 변하기 마련인데, 계획표대로 정해진 식당 문만 열고 들어가면서 더 나은 미식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시킨 것은 아니었을까?그래서 이번엔 철저하게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만 집중해 식당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감각이 가리키는 곳, 내 미각과 후각, 향미 본능을 끌어당기는 집에 무작정 들어가기로 했다. 경북 바닷길을 쏘다니는 동안 정말 그렇게 했다. 하루 세끼 중 한번은 꼭 인터넷 검색에 의지하지 않고 ‘감’으로 선택한 식당에서 먹었다. 대만족이었다. 서울 사람이 흔히 갖는 경북 음식에 대한 편견이 싹 사라졌다. 내게 우연한 미식의 기쁨을 선물한 집들은, 현지인들만 아는 ‘숨은 진주’였다.울진 죽변항에는 생대구탕을 전문으로 하는 ‘돼지식당’이 있다. 죽변항 수협 직판장 앞에 자리한 이 집은 울진 지역 언론에 몇 차례 소개된 바 있으나 외지 사람들에게는 아직 생소하다. 울진 주민들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이 대구탕의 명가는 죽변항 근해에서 갓 잡은 싱싱한 생대구를 무와 미나리, 파 등과 함께 맑은 국물로 끓여낸다. 한 숟가락 뜨는 순간 나는 무릎을 치며 후회했다. “어제 술을 마셨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내뱉은 혼잣말의 볼륨이 좀 컸는지 다른 손님들이 깔깔 웃었다. 그 웃음은 곧 ‘당신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공감의 표시였다. 속풀이에 이보다 더 좋은 음식은 없을 것이다. 맑고도 뽀얀 국물이 김을 모락모락 내며 끓으면, 탄탄한 대구살 한 점 크게 발라 국물과 함께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구수하고 담백한 국물 맛과 탱글탱글한 생선살의 식감, 뜨끈한 온기, 몸에 찌든 때를 깨끗하게 씻어주는 듯한 시원함을 동시다발적으로 감각하는 순간, 죽변은 애인이 없어도 눌러앉고 싶어지는 애틋한 마을이 된다.영덕 강구항에는 미주구리(물가자미) 식당이 여럿 있다. 그 중 청송식당은 미주구리회를 잘하는 노포, 지난번에 다녀왔으니 이번엔 ‘나비산 기사식당’에 가 볼 차례다. 강구항 삼사사거리 입구에 자리한 생선찌개 전문점이다. ‘나비산’은 영덕 오포읍의 작은 산 이름, 높이 152m의 산은 그 형세가 나비 모양을 닮았는데 정상에서 강구항 전경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다. 산 이름을 딴 식당은 규모가 꽤 크고 주차장도 널찍해 찾아가기 편하다. 자리에 앉아 미주구리찌개를 시켰다. 정갈한 밑반찬들이 먼저 나오고, 곧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러운 찌개가 가스버너에 올랐다. 매콤하고 칼칼한 빨간 국물은 약간의 점성을 지녀 걸쭉한 식감을 낸다. 넉넉히 들어 있는 미주구리 살을 무, 두부와 함께 건져내 흰 쌀밥에 얹은 후 국물 쓱쓱 비벼 한 입 크게 떠먹으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입 안에서 화려한 축제 한창이다.포항 죽도시장에는 소머리곰탕 집들이 즐비하다. 유명한 집은 ‘장기식당’과 ‘평남식당’, 두 집 모두 문전성시라 주말에는 줄을 서 기다려도 못 먹고 돌아서기 일쑤다. 그럴 때 훌륭한 대안이 있다. 곰탕 골목이 있는 시장 초입에서 수산물 매대가 늘어선 어판장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폐백 및 이바지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들이 있다. 그 중 한 집인 ‘울릉도식당’에서는 단돈 만원으로 푸짐하고 맛있는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나는 이 집에 올 때면 뭉텅뭉텅 썰어낸 머릿고기와 누른 머릿고기(편육)를 각 한 접시씩 시킨다. 뽀얀 곰국 한 뚝배기는 무려 서비스다. 어느 겨울날 이 집에서 머릿고기 먹는데 주인 할머니가 울상이다. 송해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런 가짜 뉴스가 가끔씩 인터넷에 돌 때가 있다. 일이 손에 안 잡힌다며 침울해 하는 할머니께 “아니에요. 헛소문이랍니다. 안돌아가셨어요.” 말씀드리자 그제야 가슴 쓸어내리며 “만우절도 아닌데 왜 거짓말해!” 옆집 아주머니에게 버럭, “악성루머란다. 사이버 수사대가 잡아간단다!” 옆집 아저씨에게 버럭, “건강하단다! 어이고 오래 살겠다” 혼잣말하신다. 나는 그만 파안대소하고 말았다.경주 ‘황리단길’에는 요즘 말로 ‘힙’한 음식점들이 많다. 대부분 피자, 파스타 등 양식 내지는 한우 갈비, 불고기 등을 판다. 맛은 있지만 특색이 좀 약하다. 황리단길에 아쉬운 점은, 너무 세련된 나머지 늦은 저녁 술 한 잔 생각에 침이 고이는 애주가가 갈 만한 ‘허름한’ 대포집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황리단길을 지나 황오동에 가면 애주가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집, ‘황오실비’가 있다. 닭발, 오징어볶음, 곱창전골, 동태찌개 등 맛깔난 안주들이 많지만 그 중 압권은 홍어삼합이다. 경주에서 홍어삼합을 먹게 될 거라고 상상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삭힌 홍어를 돼지고기, 그리고 묵은지와 함께 먹으니 탁주 한 사발이 금세 비워졌다. 계란프라이 한 접시를 추가로 시키곤 ‘감격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겉바속촉’하게 반숙으로 익힌 계란프라이가 접시에 수북이 쌓여 상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우현 고유섭은 “경주에 가거든 관광 다니지 말고 대왕암을 찾으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을 이렇게 바꾼다. “경주에 가서 술 생각이 나거든 황오실비를 찾으라”라고.서정주는 “바닷속에서 전복 따는 제주해녀도 제일 좋은 건 님 오시는 날 따다 주려고 물속바위에 붙은 그대로 남겨둔단다”(‘시론’)라고 노래했다. 물속바위에 붙은 제일 좋은 전복을 따다 드리는 마음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숨은 맛집’을 소개했으니, 경북 바닷길을 여행하는 그대여, 부디 “아무거나 대충” 드시지 말기를!     /시인 이병철

2019-09-15

추석 연휴엔 대구·경북 명소로 인생사진 찍으러 가즈아~

나이가 들수록 오늘이 어제 같고, 올해가 지난해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일상에 묻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을 떠올리는데 사진만한 게 없다. 그날 옷은 뭘 입었고 머리 모양은 어땠는지, 사진은 빛바랜 추억에 숨을 불어 넣는다. 갈수록 ‘남는 건 사진뿐’이다. 계절은 돌고 돌아 어느덧 추석이 다가왔다. 해마다 명절은 찾아오지만, 작년과는 다른 올해 처음 맞이한 추석이다. 지난해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면 이번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사진 한 장 남겨보자.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만으로도 풍성한 한가위가 될 테니.특별한 장비도 기술도 필요없다. 막 찍어도 화보가 되는 ‘인생사진’을 건질만한 대구·경북지역 명소를 소개한다.□ 포항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영일만 한가운데 자리한 연오랑세오녀 테마파크는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산과 바다 자연 그대로의 형형색색 경치가 빼어나 사진 찍기에 좋은 곳이다. 베스트 포토존은 대형 정자의 전망쉼터. 탁 트인 영일만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고 포항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별다른 조명 없이도 사진을 돋보이게 하는 비결은 자연조명 덕분이다. ‘철의 도시’ 이미지와 어울리는 반짝이는 은빛 바다 물결이 반사판 역할을 한다. 카메라 셔터만 누르면 인생사진이 완성된다.공원은 꽤 넓은 편이다. 연오랑세오녀 설화가 담긴 벽화와 신라마을, 일월대, 연오랑뜰, 쌍거북바위 등 곳곳이 사진에 곁들일 볼거리로 가득하다.□ 경주 솔거미술관경주 솔거미술관에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을 배경 삼아 사진찍기 좋은 그림이 있다.‘움직이는 그림’이라 일컫는 이 작품은 전시실 한쪽 벽면의 일부를 틔워 사방을 사진틀처럼 막아 놓은 통유리창을 말한다.액자 프레임 속에는 아평지 연못을 중심으로 나무와 숲, 하늘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같은 사진 배경이 펼쳐진다. 매일 달라지는 풍경 속에서 나만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연휴 기간 추석 당일만 제외하고 관람 가능하다.□ 영덕 카페 ‘봄’영덕에도 ‘핫(hot)’한 포토존이 있다.해안가에 위치한 카페 ‘봄’은 에스프레소 샷보다 ‘인생샷’으로 더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동해를 배경으로 착시 효과를 이용한 위트 있는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파도를 품은 잔’이라는 테마로 만든 대형 커피잔 조형물을 활용해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듯한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 영천 별별미술마을이번 추석 남들과는 다르게 뻔하지 않은 사진을 찍고 싶다면 영천 별별미술마을로 떠나자.화산면 가상리 화산 1·2리, 화남면 귀호리 등 총 4개 마을로 이뤄진 별별미술마을은 지난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마을 미술 행복프로젝트로 선정됐다.골목을 따라 회화, 조각 등 다양한 예술작품 40여점이 전시돼 있어 ‘지붕없는 미술관’으로 불린다.아기자기한 벽화를 배경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이색사진을 찍기에 제격이다.□ 군위 한밤마을·화본역‘내륙의 제주도’로 주목받는 군위 한밤마을은 아름다운 돌담을 배경으로 찍기 좋은 사진명소다. 수백년간 보존해 온 고택과 돌담이 한데 어우러져 예스러운 멋을 풍긴다.한번 다녀온 사람들은 반드시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꼽는다는 화본역도 빼놓을 수 없는 포토존이다.배우 김태리와 류준열이 주연을 맡아 빼어난 영상미로 호평을 받았던 영화 ‘리틀포레스트’의 촬영지로도 알려졌다.영화 속 배경으로 이미 검증된 곳이니 믿고 찍을 수 있는 사진명소다.□ 문경 에코랄라·오미자테마터널개성 담긴 유쾌한 사진을 찍기엔 문경이 딱이다.문경시는 지난 2018년 10월 문화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총 사업비 873억원을 들여 가족형 테마파크인 에코랄라를 조성했다. 문경석탄박물관과 가은오픈세트장, 에코타운, 자이언트 포레스트 등을 한 자리에 모으고 각종 전시실과 체험시설을 더했다.여기선 물이 흘러내리는 대형 수도꼭지 조형물을 활용해 사진을 찍는 것이 촬영팁. 익살스런 표정, 포즈는 과감할수록 촬영한 사진을 보는 재미가 커진다. 사진 속에 풍성한 색감을 담고 싶다면 문경 오미자테마터널이 안성맞춤이다. 폐철도를 문화체험 공간으로 활용해 오미자넝쿨, 별빛터널 등으로 꾸민 이곳은 카멜레온이 몸 색깔을 바꾸는 것처럼 주변 상황에 맞춰 소비공간으로 변신한 ‘카멜레존’이다.□ 대구 향촌동올해 추석에 최근 유행하는 복고풍인 레트로 감성 사진을 남기고 싶다면 대구 향촌동으로 가보자. 6·25 이후 문인이나 예술인들이 주로 활동하던 곳으로 1970년대까지 대구의 중심지였다. 골목마다 근대문화 특색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당시 유행하던 다방이나 술집, 음악감상실 등 근대 건축물을 배경 삼아 셔터를 누르면 된다.추석 명절에 한복을 꺼내입으면 대구근대골목만큼 어울리는 곳도 없다. 동산선교사주택을 시작으로 3·1만세운동길, 계산성당, 이상화·서상돈 고택, 제일교회, 약령시, 진골목을 거쳐 종로까지 총 1.7km의 골목길을 걸으며 마치 시간 여행을 온 듯한 복고 감성을 사진 속에 담을 수 있다. 이번 추석에 찍은 사진이 내년엔 레트로가 된다.□ 경산 반곡지경산 반곡지에서는 누구나 셔터만 눌러도 ‘금손’이 될 수 있다.과거 농업용 저수지로 만들었는데 최고 수령 300년으로 추정되는 왕버들 고목이 저수지 둑 150m 구간에 심어져 있다. 이 버들 군락이 물가에 비쳐 마치 물속에 또 다른 버들이 있는 것 같은 데칼코마니 장관을 연출한다.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제2의 주산지’로 통하는 유명 포토존으로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사진 찍기 좋은 녹색 명소’로 선정되면서 찾아오는 발길이 늘었다./김민정기자 mjkim@kbmaeil.com

2019-09-10

고향 오가는 길 동행할 친구 챙기셨나요?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일을 하기 위해 수업 자료로, 때로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는 친구를 대신 하기도 한다. 연휴가 긴 추석에 고향을 오가는 긴 시간에 동행할 친구가 있다면 좋을 것 같아 책 몇 권을 소개해 볼까 한다. 운전하는 남편을 위해 시집을, 뒷자리에 앉은 자녀를 위해 소설을, 미래를 보는 안목을 높이기 위해 그림설명서를, 편지글과 수필 한 편도 함께 넣었다. 골라보는 재미를 느껴보길 바란다.△진달래꽃-김소월경성부 연건동 121번지에서 택배가 왔다. 누런 봉투에 경성우체국 우표와 직인이 찍혔고, 속달편으로 보낸다고 써 있다. 과거에서 현재의 내게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을 보내온 것이다. 소와다리 출판사의 초판본 디자인 시리즈의 이벤트였다. 시집 속에 경성시내 풍경이 찍힌 사진엽서도 한 장 들어 있다. 엽서에는 김소월의 손글씨체로 ‘제 시는 사랑을 받고 있나요 그때쯤은 독립을 했을런지요’라고 묻고 있다. 읽는 순간 목울대가 울렁 한다. 과연 우리는 소월이 원했던, 기다렸던 그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는가.1925년에 첫 출간된 진달래꽃은 김소월 사후에도 수많은 출판사들에 의해 꾸준히 출간되어 왔으나 국어 표기법이 정해지고 편집자들의 손을 거치며 최초 모습과는 조금씩 달라지게 되었다. 이 책은 여러 판본 중 정본으로 여겨지는 중앙서림 초판본을 내용과 표기는 물론 활자까지 그대로 복원한 책이다. 세로쓰기 및 우측 넘김으로 구성되어 있다.‘오늘도 어제도 안이잊고 먼훗날 그때에 잊었노라’싯구 ‘잊었노라’를 [니젓노라]라고 강조해서 적었다. 아직 잊지 않음이 분명하다. 우리 모두 소월을 잊지 않고 노래하고 있듯이.△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로버트 뉴턴 펙누군가 읽을 만한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다섯 권안에 들어가는 책이다. 2007년 아들의 중학교 필독서로 구입했지만 내가 더 사랑한 책이기 때문이다. 글의 배경은 1940년대쯤 미국이다. 편리한 문명을 거부하고 검소하게 살아가는 세이커교도 가족이야기이다. 세이커교는 공동생활을 강조하는 미국 기독교의 일파이다. 헤리슨 포드 주연의 영화 ‘위트니스’ 에는 아미쉬교도들이 나오는데 공동생활을 하고 있어 함께 보면 책 읽기에 도움이 된다.글의 주인공은 12살이다. 아버지에게서 삶의 중요한 모든 것을 배운다. 이웃집과 사이에 울타리를 치면서 아버지에게 사람들만 전쟁 같은 울타리를 치는 것 같다고 하자, 학교 교육을 한 번도 안 받은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것들의 울타리 치는 법을 알려준다. 여우는 자기 영역에 오줌을 눠서, 울새는 지저귐으로, 나무는 자기 둘레만큼 뿌리를 뻗어서 알려준다는 것이다. 울타리는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만드는 것이지 싸우려고 쌓는 담장이 아니라고 찬찬히 일러준다. 남들이 하기 싫고 힘든 도축 일을 하는 아버지는 성자에 가깝다.이 책의 문체를 헤밍웨이 문체라고 한다. 읽기 쉽게 쓰였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쉽게 쓰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했다.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쉽게 차분히 알려주는 주인공의 아버지는 헤밍웨이의 생각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늘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다.△오주석의 한국의 미(美) 특강-오주석한국의 옛 그림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옛 그림 감상의 두 원칙’, ‘옛 그림에 담긴 선인들의 마음’, ‘옛 그림으로 살펴본 조선의 역사와 문화’라는 세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펼친다. 실제 강의를 기본으로 한 책인지라, 잘 읽히고, 내용도 충실하다. 옛 사람들의 풍류가 담긴 여러 그림을 마음으로 느끼도록 작가는 상세히 설명한다. 간송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다 2005년 지병으로 돌아가셔서 우리에겐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미술관에 자주 가면서도 그림과 조형물의 감상법을 잘 몰랐는데 이 책에 아주 자상하게 설명해 놨다. 그 대각선의 1내지 1.5배 정도를 유지해서 거리를 두고 왠지 마음이 끌리는 작품을 느긋하게, 천천히 마음을 집중해서 감상하면 좋다고 한다. 또 이 책은 옛 그림에 대한 이야기인데 현대그림과 가장 큰 다른 점이 세로쓰기이며 세로가 길다는 것.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쓰다듬듯이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림읽기는 찬찬히 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쫓기듯 제목과 화가이름만 확인한 후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며 후루룩 미술관을 나오기 일쑤다. 그림 한 점 앞에 자리를 깔고 멍을 때리기도 하고 따라 그려보기도 하며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자. 오늘은 추사와 다음엔 김홍도와 노닐며 담소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체링크로스84번지-헬렌 한프서간체 문학이다. 글쓴이 헬렌 한프는 평생 뉴욕에서 글을 썼지만 그리 많은 명성을 떨치지는 못했다. 그의 이름은 영국의 한 헌책방과 주고받은 이 한 다발의 편지 덕분에 널리 알려졌다. 이 책방이 문을 닫을 때까지 2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들이 편지를 통해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같았기 때문이다.책을 살 때 주로 온라인 서점을 많이 이용한다. 먼저 책이름을 검색어로 치고, 중고 책이 있는지 확인한다. 가격이 새 책과 천 원 이상 차이가 나면 거의 헌 책을 산다. 나무 한 그루를 살리기 위해서 이고, 또 책의 전 주인이 책에 써 놓은 메모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책을 언제 샀는지 누구에게 선물 받은 것인지, 그날의 날씨와 기분이 써 있을 때도 있어서 그 사람의 추억도 덤으로 읽게 해 준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키다리 아저씨, 성경의 로마서·유다서 또한 편지글이다. 정약용도 유배지에서 보낸 글이 책으로 엮였고 고흐와 이중섭의 편지도 출판됐다. 요즘은 카톡과 문자로 간단히 마음을 표현하니 얼마 후에는 이렇게 짧은 메시지를 담은 책이 나올지 모를 일이다. 우리도 이왕 태어나 살고 있으니 마음을 담은 편지를 부모님께 또 군에 간 아들에게 띄워 보내는 가을이길 바란다.△돼지고기 반근-정성화여행길에 가장 읽기 좋은 글이 수필이다. 끊어 읽어도 감흥이 사라지지 않고, 누구나 부담 없고 마음만 먹으면 직접 쓸 수도 있는 가장 친근한 문학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수필의 전성시대이다. 작가 정성화의 글은 중학교 교과서에 두 편이나 실렸다. ‘동생을 업고’가 대교출판사에 ‘크레파스가 있었다’가 좋은책신사고에 수록되었다.책의 제목으로 쓰인 ‘돼지고기 반 근’은 작가의 대학입학시험에 떨어진 날이 배경이다. 짧은 수필 한 편을 읽으며 좋은 문장을 찾으려 하는데 이 글은 일부러 찾을 필요가 없다. 첫 문단부터 줄을 긋기 시작해 거의 모든 문장이 가슴을 울리기 때문이다. 자식에게 돈이 없어서 소고기도 못 사 먹이고 돼지고기를 그것도 한 근이 아닌 반 근만 끊어서 가슴에 품고 귀가하는 아버지의 슬픔이 무겁게 느껴진다.작가는 슬픔의 무게는 얼마일까 묻는다. 또 대답한다. 고작 반 근의 무게밖에 되지 않는다고. 신문에 엉겨 붙은 돼지고기 반 근과 슬픔을 맞바꾸었다고 되뇌인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한 손으로 들 수 없는 무게, 참으로 온전한 한 근 이었다며 아버지를 위한 별 하나를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린다. 이번 추석연휴에 그 별 하나를 발견하길 바란다./김순희(수필가)

2019-09-10

제철 재료에 정성 담아 ‘빚고 무치고 끓이고 맛보자’

추석은 ‘한가위’ ‘가위’ ‘가윗날’ ‘중추절’‘가배’등 많은 명칭이 있다. 이날은 설날, 단오절과 함께 우리나라 삼대 명절의 하나다. 추석이 다가오면 들판에는 오곡이 무르익고 과일들도 영그는 때다. 한 해 농사의 결실을 거두는 때이므로 모두들 새옷으로 갈아입고 그해 수확한 햅쌀과 햇곡식, 햇과일로 조상에 대한 최고의 예의를 갖춰 제사를 지낸다. 술도 햅쌀로 빚은 신도주를 올린다고 전해진다. 먹을거리가 풍성한 결실의 시기이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그런 의미에서도 추석은 특별한 가치를 갖는 명절이 된다. 김미옥 영일만소울푸드 대표가 추석 차례상에 올리는 대표적인 음식의 레시피와 우리 술을 소개한다.□송편송편은 한국 떡의 한 종류로 추석을 대표하는 전통음식이다.△흰 송편 재료 멥쌀가루(3컵)△백련초 송편 재료 멥쌀가루 3컵, 백련초가루 3T△솔잎 송편 재료 멥쌀가루 3컵, 솔잎가루 3T소 재료호두 40g, 다진 땅콩 40g, 대추 5개, 깻가루 2T, 꿀 ½T만드는 법① 멥쌀을 8시간 정도 불린 뒤 빻은 멥쌀가루를 준비한다② 멥쌀가루는 소금을 약간 넣고 섞어 밑간을 한 뒤 뜨거운 물을 나눠 넣어가며 익반죽을 한 뒤 젖은 면포로 감싸 20분 정도 숙성시킨다.③ 멥쌀가루 3컵에 백련초가루 3T 또는 솔잎 가루를 넣고 섞은 뒤 소금을 약간 넣어 밑간한 뒤 뜨거운 물을 나눠 넣어가며 익반죽을 하고 젖은 면포로 감싸 20분 정도 숙성시킨다.④ 깻가루, 다진 호두, 다진 땅콩, 다진 대추에 각각 꿀½T 넣고 섞어 소를 만든다.⑤ 숙성된 반죽은 적당한 크기로 떼어낸 뒤 동그랗게 만들어 주머니에 소를 넣고 송편을 빚는다.⑥ 솔잎은 깨끗이 씻은 뒤 줄기를 떼어내 준비하고 김이 오른 찜기에 솔잎을 깔고 송편을 올린 뒤 뚜껑을 덮고 15분 정도 쪄서 얼음물에 식혀서 참기름을 바른다.□문어산적바닷가 지역에서 차례상에 문어를 올리다 문어가 귀해져서 올리기 어려워 다리 하나씩 사서 산적 꼬치를 해서 차례를 지낸다고 한다.재료 문어다리 1개, 산적꽂이 2개, 진간장 3T, 맛술 2T, 물엿 2T, 물 2T만드는 법① 문어다리를 삶아 저며서 꼬치에 끼운다.② 팬에 양념을 넣고 바글바글 끓이다 문어 꼬치를 넣고 양념을 끼얹어 가며 조린다.□오색나물△고사리나물 재료 고사리 400g, 진간장 1T, 국간장 1T, 다진마늘 1T, 식용유 2T, 육수 1컵, 참기름, 깨소금△도라지나물 재료 도라지 400g, 다진마늘 1/2T, 육수 1컵, 식용유 2T, 깨소금 2T, 참기름 1T, 설탕약간△무나물 재료 무 1/2개, 소금 약간, 참기름 1T△미나리나물 재료 미나리 1단, 소금, 식용유, 깨소금, 참기름△콩나물 재료 콩나물, 국간장 1T, 소금, 육수만드는 법① 팬에 양념을 넣고 2∼3cm길이로 자른 고사리를 넣고 조물조물해서 불에 올려서 끓으면 육수1컵을 넣고 뚜껑 덮어 국물이 줄어들 때까지 끓여 깨소금, 참기름을 넣는다.② 도라지는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소금물에 조물조물해서 씻은뒤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마늘을 넣어 볶고 소금을 넣은 뒤 도라지를 볶다가 육수를 넣고 뚜껑을 덮고 약한 불에서 조린다.③ 미나리는 끓는 물에 데쳐 찬물에 헹궈 물기를 꼭 짜고 먹기 좋게 잘라 소금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서, 깨소금, 참기름 넣고 버무린다.④ 무는 채 썰어 참기름 두른 팬에 소금을 약간 넣고 중불에서 뽀얀물이 나오게 볶는다.⑤ 콩나물은 꼬리떼고 냄비에 담고 육수를 콩나물이 살짝 잠길만큼 넣고 소금을 약간 넣어 끓이다 볶은 무나물을 콩나물옆에 가지런히 담고 한번 더 끓인다.⑥ 그릇에 나물을 색깔 맞춰 담고 깨소금을 뿌린다.□신도주그해에 처음 수확한 쌀을 거둬들여 그중에서 가장 실하고 좋은 것만을 골라 담근 술을 올린다. 신도주의 의미는 처음으로 거둬들인 농산물을 이용해 빚는 술이라는 사실에서, 신성함과 정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맛이 매우 깨끗하고 맑으며,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술재료밑술 : 햅쌀 1말, 햇누룩가루 3되, 끓인 물 2말덧술 : 햅쌀 2말, 끓인 물 1말△술 빚는 법밑술① 햅쌀은 맑은 물이 나올때까지 여러번 씻은뒤 충분히 불린뒤 깨끗한 물에 다시 헹군 뒤 체에 밭쳐 물기를 뺀 뒤 곱게 빻아 가루를 낸다.② 쌀가루 1컵당 물 1큰술 정도로 넣고 손바닥 사이로 가볍게 비벼 중간체에 두 번 내려서 수분에 고루 퍼지게 한 뒤 물이 팔팔 끓으면 시루에 안쳐 20분간 찐 뒤 5분간 뜸을 들여 백설기를 찐다.③ 끓인 물 2말을 독에 붓고 백설기를 넣어 더운 김에 고루 풀고, 덩어리진 것 없이하여 차갑게 식힌다.(반드시 뜨거울 때 해야 덩어리지지 않는다)④ 백설기 푼 물에 햇누룩가루를 고루 버무려 섞는다.⑤ 술독에 안치고 입구에 한지나 면포를 봉한 다음 실내에서 3일간 발효시킨다.(하루에 두 번 덮개를 열고 아래위로 저어주면 발효가 잘 된다)△덧술① 햅쌀 2말을 물에 깨끗이 씻어 하룻밤 불렸다가 체에 받쳐 물기를 뺀 뒤 시루에 물을 끓여 김이 올라오면 불린쌀을 넣고 평평하게 하고 중간에 김구멍을 내주고 40분간 쪄서 고두밥을 짓고, 고루 펼쳐서 아래 위를 뒤집어 가며 차게 식힌다.② 식힌 고두밥을 그릇에 담고 물을 부어 손으로 밥알이 알알이 떨어지고 물이 고두밥에 스며들어 거의 보이지 않을 때까지 살살 주무르듯 섞는다.③ 물을 더한 고두밥에 밑술을 부어 손으로 조물조물 주무르듯 버무려 밥알이 알알이 떨어지며 밑술과 잘 어우러지도록 한다. 발효가 잘 된 밑술은 표면에 크고 작은 거품이 가득 올라와 있다.④ 밑술은 술독에 정갈하게 퍼 담아 안치고, 한지를 덮어 봉한 뒤 뚜껑을 덮고 25℃정도에서 10일간 발효시킨다.⑤ 술이 맑게 고이면 광목 주대에 쏟아 붓고 건지를 걸러내면 탁주이고 흔들지 않고 20일 정도 가만히 놓아두었다 위에 뜨는 맑은 술을 떠서 추석 차례상에 올린다.□ 닭찜우리 선조들은 햇닭에 살이 올라 한참 맛이 있는 계절이므로 집에서 키우던 닭을 다른 채소와 합해 요리해 먹었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서는 추석이 되면 “아무리 벽촌의 가난한 집안에서도 예에 따라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을 만들며,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린다”라고 했다. 조선시대 궁중의 각종 제물 단자(單子)에도 연계증(軟鷄蒸) 한 마리가 반드시 올라가는 것으로 봐서 닭은 제사 음식에서 중요한 제물이었음은 분명하다.재료 토종닭 1마리, 수삼 2뿌리, 대파 1대, 달걀 2개, 식용유 조금, 잣 조금, 황기양념장 국간장 1T, 진간장 3T, 다진파 1½T, 다진마늘 2T, 설탕 1T, 생강즙 1T, 물엿 1T, 후춧가루 1t, 깨소금 1T, 참기름 1½T김미옥(영일만소울푸드 대표)만드는 법①닭은 꽁지와 기름기를 떼고 깨끗하게 다듬어 6조각으로 낸다.②팬에 물을 자작하게 붓고 황기를 깐다.③양념장재료를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④닭을 양념장에 버무려 냄비에 넣고 끓인다.⑤수삼은 반을 가른 후 4cm 크기로 어슷 썰고 대파는 어슷하게 썰어두고 줄기는 채썰어 두고 계란은 황색 지단으로 부쳐둔다.⑥ 닭이 거의 익어갈 무렵 수삼과 대파를 넣고 끓인 뒤 그릇에 담고 채 썬 계란지단, 채 썬 파줄기, 잣을 고명으로 올린다./김미옥(영일만소울푸드 대표)

2019-09-10

과옥죄인(科獄罪人)

과옥죄인(科獄罪人)은 과거 시험에서 부정을 저지른 죄인을 말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험이 있는 곳이면 부정행위는 있게 마련이다. 조선시대 유배형벌 중 ‘유 3천5백리’에 해당하는 경상도 장기현에는 조선조 내내 과옥죄인들의 유배행렬이 끊어지질 않았다.과거 제도는 중국 한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도 788년 신라 원성왕 때 ‘독서출신과’라는 시험이 있었다. 독서 능력에 따라 상중하 3품으로 나누어 등용하였던 제도이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의 과거는 고려 광종 때 시작되었다. 이후 조선 말기까지 과거 제도는 우리나라 정치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조선시대의 과거 과목에는 문과와 무과, 생원과와 진사과가 있었다. 이 밖에 중인들이 보는 잡과에 역관을 뽑는 역과, 의원을 뽑는 의과, 천문 지리를 맡아 보는 음양과와 법률을 다루는 율과 등이 있었다. 이 중에서 문과는 문관의 등용 자격시험으로 가장 중시되어 대과(大科)라고도 하였다. 반면 성균관에 입학자격이 주어지는 생원과와 진사과는 소과(小科)로 불렀다. 문과는 1차 시험인 초시와 2차 시험인 복시가 있었다.과거제도의 본래 목적은 능력 있는 인재 선발에 있었다. 그런데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험의 공정성이 전제되어야 했다. 조선시대에도 과거시험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많았다. 부자(父子), 형제나 가까운 친척이 한곳에서 시험을 치르지 못하도록 시험장을 나누어 운영했고, 응시생이 자신의 친인척일 경우에는 시험관에 임명될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부정행위가 적발되면 해당자들을 먼 변방으로 유배를 보내는 등으로 엄하게 처벌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정행위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점점 그 수법도 교묘해지거나 대담해졌다. 오죽했으면 “돈만 있으면 어사화도 얻을 수 있다(御賜花耶 金銀花耶)”라는 속언까지 생겨났을까.과거시험의 절차에서도 부조리를 없애려는 노력이 있긴 했다. 우선 과거 응시자의 자격을 심사해 응시원서를 접수하던 제도를 ‘녹명(錄名)’이라고 한다. 그래서 과거를 보기 위해 수험생들은 먼저 녹명소(錄名所)에 사조단자(四祖單子)와 보단자(保單子)를 제출해야 했다. 사조단자는 응시자 및 그 아버지·할아버지·외할아버지·증조부의 관직과 성명·본관·거주지를 튼튼한 백지에 기록한 것으로, 양인과 서얼을 가려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오늘날 일반인에게 알려진 ‘사주단지’라고 하는 것은 본인의 생년월일과 출생한 시각 정도만 기재하고 있는 것으로 ‘사조단자’가 잘못 전해진 것이다. 보단자는 일명 보결(保結)이라고도 하는데, 6품 이상의 조관(朝官·국가공무원)이 서명 날인한 신원보증서이다.녹명소에서 녹명관은 사조단자와 보단자를 접수한 다음 응시자의 사조 가운데 경국대전에 규정한 결격 사유가 없는가 살펴보고 이상이 없을 때 녹명책에 기입하였다. 특혜를 받은 응시자라 하더라도 녹명하지 않으면 자격이 상실되었다. 만약 녹명에 부정이 있을 경우, 지방의 유향소를 통제하기 위하여 설치한 중앙 기구인 경재소의 해당 관원과 사관원은 파직되고, 응시자는 유배를 가야만 할 정도로 엄격히 다스렸다.시험장에는 수험생 이외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수험생들은 시험장 입구에서 필기도구 이외의 책이나 쪽지를 소지하고 있는지를 점검받아야만 했다. 이때 더러는 긴 도포자락에 빼곡히 예상 답안을 써왔다가 잡히기도 했고, 붓두껍에 답안을 숨겼다가 적발된 사람도 있었다. 시험장에 들어가서는 6자(약 1.8m) 씩의 거리를 두게 했지만, 담벼락 밑이나 구석진 곳 등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한 쟁탈전도 벌어졌다. 담장 주변의 장소에 자리를 잡아 하인을 시켜 종이쪽지를 건네받으려는 심보였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과거시험장의 모습은 때로는 난장판이었고, 각 당파간의 전쟁터가 되기도 했으며,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과거시험 응시의 자격은 천민을 제외하고 농민, 상인, 중인, 양반까지 가능했지만, 현실적으로 생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부에 매달려 과거에 응시하기란 어려웠다. 때문에 과거는 집안 사정이 나은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다. 양반들은 체면 때문에 과거에 응시하기도 했고, 세도가와 부잣집에서는 출제관에게 미리 뇌물을 바치는가 하면, 문장을 잘 짓는 자와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사서 대신 시험을 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과거에 합격하기도 했다.부정부패는 특히 소과(小科)인 생원시와 진사시에서 많았다. 생원시는 유교경전에 관한 지식을, 그리고 진사시는 부(賦)와 시(詩)의 제목으로 문예창작의 재능을 각각 시험하였다. 이 시험 합격자에게는 생원 또는 진사라고 하는 일종의 학위를 수여하였다. 시험은 3년에 한차례씩 정규적으로 실시하는 식년시(式年試)와 국왕의 즉위와 같은 큰 경사가 있을 때 이를 기념해 실시하는 증광별시(增廣別試)가 있었다.조선시대 과거시험의 부정행위 백태(百態)는 과옥죄인이 되어 경상도 장기현으로 유배를 온 인물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대충 정리가 된다.1660년(현종1) 1월 22일자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홍익기(洪益祺)란 응시자가 부정행위로 적발되어 의금부에 구금되었다. 그는 현종 즉위를 기념하기 위해 국자감에서 실시했던 증광문과의 생원시와 진사시 두 곳에 응시했다. 홍익기는 녹명소에 제출한 응시원서에 마치 자신이 ‘홍익조(洪益祚)’인 것처럼 적었고, 아버지의 이름까지 위조한 사조단자를 제출하여 시험관을 믿게 한 다음 시험장까지 들어갔다가 들통이 났다. 결국 그는 홍익조라는 사람을 대신해 시험을 봐주는 대사(代寫)행위를 하였고, 이를 위해서 사조단자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이름을 고치는 녹명(錄名) 조작의 부정행위까지 저질렀던 것이다.이 일로 과옥죄인이 된 홍익기는 1660년 1월 말경 경상도 장기현으로 유배를 왔다. 그 후 1666년 승정원일기에도 장기현에 정배 중이던 유배자 명단에 그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6년 이상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홍익기처럼 글재주가 뛰어난 사람 중에는 과거장 앞에서 시제(試題·시험 제목)에 따른 시권(試券·답안지)을 미리 작성하여 응시생에게 팔아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오늘날로 치면 족집게 강사들이 예상문제와 답안을 미리 작성하여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들에게 판매한 것이다. 1746년(영조 22) 경연 지사(知事) 원경하(元景夏)는 임금에게 “근래에 선비들이 공부를 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기 때문에 일종의 글을 파는 무리들이 선비들을 그르치는 일이 매우 많습니다. 이런 폐단을 통렬히 금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하고, 글을 파는 사람들을 고발하였다. 이에 남옥이란 사람이 체포되어 매문(賣文·글을 파는 것)의 죄목으로 황해도 안악(安岳)에 유배된 사례도 있다.소과에 응시하는 사람에게는 ‘조흘강((照訖講)’이라는 예비시험을 실시했다. 호적 대조를 마친 응시자들에게 소학(小學)으로 강(講)하여 이에 합격된 사람에 한하여 그 증서로 조흘첩(照訖帖)을 주어 초시에 응시하게 했던 제도이다. 여기서 발급한 합격증은 본 시험 응시를 위한 녹명의 절차를 밟을 때 반드시 제시해야 하는 일종의 신분확인증 구실을 했다.이런 조흘강에 대신 들어가서 강(講)을 본 죄로 장기현으로 유배를 온 사람도 있었다. 바로 평양에 사는 이희태(李熙泰)란 사람이다. 그는 1791년(정조15년) 8월 21일 과옥죄인 신분으로 이곳으로 와 충군되었다. 또 1792년(정조16) 6월 18일에는 류경항(柳景恒)이란 사람이 역시 나이를 속이고 형 대신 조흘강에 들어가서 강을 보다가 장기현으로 유배를 왔다.정현렴(鄭顯念)이란 사람은 1852년(철종3) 11월 9일, 소과 초시의 한 종류인 합제(合製) 때에 시험장을 어지럽힌 죄로 장기현으로 와서 충군(充軍)되었다. 또 심의경(沈宜慶)은 1880년(고종 17) 4월 27일, 패악한 무리들과 연접하여 서로 답안지를 훔쳐보거나 베껴 쓰다가 역시 장기현으로 유배를 오기도 했다.문과시험에서의 부정행위는 이런 것만이 아니었다. 시험장에 책을 가지고 들어가거나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 시험관을 매수하여 답안지 내용의 일부 또는 답안지의 번호를 알려주어 채점 때에 참고하게 하는 것, 남의 글장을 훔쳐서 봉내의 성명을 도려 버리고 자기의 성명을 써 넣는 환비봉(換7955封), 차술(借述)이라 하여 남의 답안지에 자신의 이름을 써 넣는 경우, 심지어는 시험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등 과거장의 부정행위 행태는 당시 양반 사회의 이면과 관료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장이 되기도 했다.한편, 시험의 부정행위는 무과(武科)에서도 있었다. 원응상(元應常)이란 사람은 1783년(정조7) 9월 24일, 활쏘기 시험에서 자기 대신 남을 내보내는 부정행위를 하다가 적발되었다. 법에 따라 그는 장기현으로 유배를 와 수군에 보충되었다. 또 1873년(고종 10) 9월 4일에는 김창순(金彰淳)이란 자가 무과선발시험에서 불법으로 과거시험장에 들어가는 간계(奸計)를 부리다가 역시 장기현으로 와 충군되었다.조선시대 양반은 3대까지는 신분이 유지되었지만, 그 이하 자손 중에서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나오지 못하면 양반 자격이 상실되었다. 그래서 생원이나 진사가 된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는 물론, 가문과 후손의 영예를 위해서도 절실한 소원이었다. 물론, 그들 중 관계 진출을 목적으로 다시 문과에 도전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고 생원과 진사의 자격만을 원해서 과거를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조선조 양반사회에서 어떤 한 가문이나 지역의 품격을 논할 때는 반드시 그 가문 또는 지역에서 배출된 홍패(紅牌)와 백패(白牌)의 숫자를 따졌다. 홍패는 문무과(文武科)에 급제한 사람이나 잡과에 입격한 사람에게 내어 주는 증서였고, 백패는 생원·진사과 복시 합격자인 생원·진사에게 발급한 합격증서였다. 과거제도의 부정행위가 조선 500년 내내 끊이지 않았던 배경에는 이와 같은 사회 풍조 탓도 컸다.요즈음 대학입시에서 학교장추천 우선 선발제나 기여입학제도가 있듯이 조선시대에도 재능이 있으면서 초야에 숨어사는 인재 발굴을 위해 천거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수시로 있었다. 과거제도가 지나치게 시험성적에만 의존하고 유력한 집안의 자손에게만 유리하다는 평에 따른 대안이었다. 그러나 기본 방향은 시험성적, 즉 실력에 의한 인재 등용이었다.과거시험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비록 운영 문란과 늘어가는 합격자 수로 인해 회의적인 의견이 다수 제기됐지만, 선비들의 꿈과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제도로 자리잡는 데는 변동이 없었다.능력 있는 인재에게 신분상승의 길을 열어주는 시험제도는 지금도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옛날에도 그랬고 현재도 마찬가지겠지만, 시험의 시행에는 반드시 기회균등과 공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야 개천에서도 용이 나기를 갈망하는 민초들에게 장밋빛의 희망이라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준 향토사학자

2019-09-10

구미산단 50년… 미래 100년 위한 4차 산업혁명 선도단지 날갯짓

구미국가산업단지는 1969년 낙동강변 모래 둔치에 첫 삽을 뜬지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현재 5단지까지 조성하면서 9만5천여명의 근로자들이 섬유·전기·전자 등 다양한 사업에 종사하면서 한국 경제를 이끌어 왔다. 이러한 국가산업단지를 직접 관리하면서 입주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지원해 온 곳이 바로 한국산업단지공단이다. 본지는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 50주년을 맞아 국가공단 역사를 함께 해 온 한국산업단지공단 대구경북지역본부를 통해 구미산단의 50년을 되돌아 보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한국산업단지공단 대구경북지역본부1971년 중부산업단지관리공단으로 출범한 한국산업단지공단(이하 산단공) 대구경북지역본부는 대구·경북지역 산업용지 조성, 공장설립 등의 업무를 전담하는 산업단지 지원기관이다. 입주기업의 서비스 수요를 먼저 파악하는 산업 현장 돌보미와 기업 파트너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최근엔 구조고도화·클러스터·일자리 창출, 산업단지 안전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다. 구조고도화사업은 노후 산업단지에 산업구조고도화시설, 첨단 업무시설, 주거·편의·문화·복지시설을 갖추는 것으로, 산업부지를 개발 용도에 따라 바꿔주는 민간 개발투자사업이다.최근에는 산업환경 변화로 대기업 중심에서 소규모 공장이 증가하는 추세로 바뀌면서 업종도 섬유 및 전자산업 위주에서 전자의료기기, 탄소소재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이로 인해 중소기업 지원 필요성도 커지면서 대구경북지역본부도 입주기업의 서비스 수요를 미리 파악해 대응하는 ‘산업현장 돌보미’ 역할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구미산단의 성공과 위기1971년 한국전자공업공단으로 문을 연 구미국가산업단지는 국내 최대 전자산업 집적지와 내륙 최대 수출기지로 발돋움하면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70∼80년대 구미산단 1∼2단지는 섬유·컴퓨터·반도체 업종, 90년대 백색가전·전기전자 업종, 2000년대 반도체·휴대폰·LCD 등 IT 모바일 중심 첨단 산업구조로 개편됐다. 2010년부터 4단지엔 이차전지·태양광·그린에너지 등 첨단 IT융합·신재생에너지 산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구미산단은 2013년 최대의 수출 성과(367억달러)와 무역수지 흑자(245억달러) 달성으로 한국 경제의 심장이 됐다.하지만 생산·수출·고용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위기에 직면했다.2011년 75조7천억원에 달했던 생산액은 2014년 48조6천억원, 2017년 44조4천억원까지 떨어졌으며, 수출액도 2011년 332억 달러에서 2017년 288억 달러로 급감했다.근로자 수 역시 2014년 10만명을 넘기고 2015년 10만2천명까지 늘었지만, 2016년 9만5천901명으로 10만명선이 무너졌고, 2017년에는 9만5천153명으로 또다시 줄었다. 업체 가동률 역시 2014년 70.3%에서 2019년 5월 현재 66.6%까지 하락했다.세계적 경기 침체와 미·중, 한·일 경제마찰과 대기업 해외 및 수도권 이전 등으로 경기 전망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산단공 대구경북본부, 구미산단에 변화의 바람 일으켜구미산단이 대내외적인 요인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산단공 대구경북지역본부가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어 구미산단의 옛 영광을 다시 재현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산단공은 2009년부터 구조고도화 사업을 통해 노후화된 산업단지를 혁신창출공간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현재 총 12개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 중 산학연융합단지, 근로자 기숙사 등 6개 사업은 완료했으며, 멀티플렉스시티, 친환경에너지테마파크 등 6개 사업은 현재 추진 중이다.또 국가균형발전정책의 일환으로 산업단지를 혁신클러스터로 육성하기 위해 ‘산업집적지경쟁력강화사업’을 추진하면서 구미지역을 거점으로 기계·전기전자 기업 중심의 산학연협의체(MC) 7개를 구성해 산·학·연·관간 네트워킹 및 RD과제 등을 지원해 오고 있다.3D프린팅, 고효율에너지 등 MC를 구성, 446명의 산학연 회원(기업 411개사)이 활동 중이며, 최근 2015년부터 2018년까지 216개 과제에 120억7천300만원을 지원했다.이밖에도 스마트공장 도입을 위한 수요 발굴을 적극 지원하고, 다수 기업 또는 새로운 신기술을 개발하는 RD개발에 중점 지원할 예정이다.□ 미래는 일자리에 있다산단공은 지역 일자리 창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구미산단의 미래가 일자리에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이에 작년부터 ‘구미국가산업단지 일자리지원센터’를 확대하면서 일자리매칭시스템도 구축·운영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취업인턴제, 춘하추동 취업박람회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최근 5년간 2천920명의 취업을 지원하는 등 구인·구직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지역의 강소기업 양질에 일자리를 발굴해 청년의 구미산단 유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자체 위탁사업으로 △청년공제 △청년재직자 △대학생 일본취업 △고령자 인재은행 등을 시행하고 있다.경상북도 지원사업인 ‘경북청년 일본취업지원사업’을 추진하면서 해외취업지원 사업도 지원하고 있다.어학교육, 취업컨설팅, 일본 현지교육 및 기업인턴십 등 일본취업을 위한 맞춤형과제 개설 및 운영으로 지난해 사업참가자 22명 중 13명이 취업이 확정되기도 했다.윤정목 산단공 대구경북지역본부장은 “올해는 구미산업단지 조성이 시작된 1969년을 기준으로 50주년이 되는 해다. 산단공은 구미산단의 새로운 50년, 100년을 준비하고 ‘4차 산업혁명 선도산업단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앞으로 정부·입주기업·근로자와 함께 구미산단의 밝은 미래를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김락현기자kimrh@kbmaeil.com

2019-09-08

푸른 바다와 나만의 수영장, 럭셔리한 낭만

할리우드 영화에는 수영장 딸린 비버리힐즈의 대저택이 종종 등장한다. 어릴 적에 그런 영화들을 보면 몹시도 부러웠다. ‘수영장 딸린 집’은 부의 상징인 동시에 여유롭고 낭만적인 삶을 의미했다. 그래서 이사 가자고 떼를 썼다. 그때마다 남루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아버지 손에 붙들려 간 동네 ‘귀빈탕’ 냉탕에서 물장구치다가 등짝을 얻어맞거나 엄마와 함께 과천 ‘복돌이동산’ 수영장에 가는 게 고작이었다. 또래 아이들과 함께 물 반, 사람 반의 풀장에 들어가 있으면 어떤 아이들은 물속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몸을 부르르 떨곤 했다.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나마 몸매에 자신 있던 20대 때는 한강 수영장이나 이름난 오션파크에도 좀 다녔는데, “돈 빼고 살 모으는” 무역 적자의 삶을 살다보니 근육은 빠지고,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수영장에 발길을 끊었다. 수영장에서 놀던 여름이 철 지난 영화처럼 색 바랜 추억이 될 무렵, 정말 철 지난 영화 속 비버리힐즈 저택이 떠올랐다. 타인과 살 부대끼지 않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나만의 수영장’에서 음악을 들으며 칵테일을 마시고, 그러다 물로 뛰어들어 노는 그 ‘사치스런’ 휴양이 간절해진 것이다.펜션 여행이 한창 인기를 끌던 2000년대 중반 이후 사람들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숯불에 삼겹살 구워 먹고 하룻밤 자고 오는 ‘상투적’ 여행에 슬슬 싫증이 났다. 여행 숙박업에도 다양성과 함께 개인주의 영향의 ‘프라이빗(private)’이 요구되었다. 사람들은 펜션이나 리조트 여행에서 보다 특별한 휴식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기도 가평, 포천 등 펜션 밀집지역에 우후죽순처럼 ‘스파 펜션’이 생겨났다. 제트스파 기계욕조를 설치해두고 ‘웰빙’과 ‘힐링’을 내세워 돈을 몇 배로 더 받았다. 스파 욕조에 입욕제를 풀어 거품을 몽글몽글 피워놓고, 오색으로 불빛을 바꾸는 욕조 속에 몸을 누인 채 음악과 와인을 즐기는 일은 꽤 낭만적이었다. 하지만 좁은 욕조에서 수영은 즐길 수 없다. 대부분 펜션이 스파 욕조를 실내에 설치해둬 바깥 자연의 공기와 바람, 빛을 만끽할 수도 없었다.그리고 2010년대, 바야흐로 ‘풀빌라’의 시대가 왔다. 풀빌라에서는 널찍한 수영장을 남과 공유하지 않고 혼자 쓸 수 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할 때 더 좋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처음에는 가평이나 포천 등 숲과 계곡 여행지에 주로 들어섰지만 이제는 ‘오션뷰’ 풀빌라가 대세다. 필리핀 세부나 인도네시아 발리,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의 풀빌라 못지않은 ‘럭셔리 풀빌라’까지 생겨났다. 굳이 해외 휴양지를 가지 않더라도 국내에서 얼마든지 특별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그런 풀빌라들은 대개 비버리힐즈 저택처럼 근사한 외관과 내관을 지녔다.경북 바닷길에도 풀빌라들이 여럿 생겼다. 동해안 여행의 트렌드가 새로워진 것이다. 침식작용이 활발해 절벽이 많고 수심이 깊은 동해의 특성이 풀빌라가 들어설 천혜의 입지조건이 되었다. 이제 경북 동해안을 찾는 사람들은 해파랑길 절벽 위에 지어진 풀빌라에서 물놀이와 함께 휴식을 즐기며 깊은 바다만이 낼 수 있는 신비한 푸른빛에 몸과 마음을 적신다. 그 환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경북 바닷길의 풀빌라 몇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울진 후포에는 ‘프렌치페이퍼’라는 풀빌라가 있다. 기하학적 설치미술작품을 연상시키는 건물 외관이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펜션 마당에 넓은 야외 공용 수영장이 있어 동남아 휴양지 리조트의 분위기가 난다. 총 24개의 객실 중 풀빌라 타입은 10개인데, 객실마다 바다를 향해 막힘없이 개방된 야외 테라스와 내밀한 수영장이 있다. 테라스에선 바비큐를 즐길 수도 있다. 숙박료도 합리적인 편, 풀빌라 객실 기준 1박 17만원에서 33만원 선이다.영덕에는 지난 글에서 자세히 소개한 병곡면의 ‘하벳리조트’가 ‘럭셔리 풀빌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남정면에는 하벳리조트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내실이 탄탄한 ‘프라이빗어스’가 있다. 구계리 해변에 있는 이 풀빌라 펜션은 언뜻 보기에는 카페처럼 생겼다. 3층 구조에 총 다섯 개의 객실을 보유했으니 꽤 아담한 편이다. 하지만 다른 곳과 구별되는 특징을 지녔다. 바로 ‘파티 풀빌라’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풀빌라들이 연인, 또는 아이를 동반한 부부를 고객층으로 삼아 2인 내지는 4인이 이용하도록 만들어진 데 비해 이곳 프라이빗어스의 ‘펜트하우스’는 최대 10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객실에는 10명이 동시에 들어가 놀 수 있는 수영장과 편백나무 사우나가 있으며, 다 같이 둘러앉아 영화를 볼 수 있는 소파와 대형 티브이, 바비큐 시설도 갖추고 있다. 친구들끼리 또는 가족 친척들끼리 함께 와 놀기에 안성맞춤이다. 펜트하우스 기준 1박 60만원에서 72만원 선이다.포항 구룡포에는 ‘이스케이프 풀빌라’가 있다. 동해안의 여러 풀빌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며, 숙박요금이 제일 비싼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 인적 드문 하정리 바닷가에 자리한 이곳은 바다와 매우 근접한 거리에서 외부 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채 은밀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외관부터 호화스러운데, 내부는 더 고급스럽다. ‘올 화이트’톤으로 인테리어된 객실에 들어서면 마치 그리스 산토리니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고급화 전략이 주요했는지 높은 가격대에도 아랑곳 않고 이곳을 찾는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하정리 바다에서 매년 겨울마다 볼락 낚시를 하는 나는 그곳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알고 있다. 가히 포항의 숨은 비경이라 할 만하다. 그 바다와 뺨이 닿을 듯 마주보면서 스파와 수영, 미니바, 바비큐, 빔프로젝트 영화 관람을 모두 즐기는 이스케이프 풀빌라의 1박 요금은 최저 25만원에서 90만원까지다.하지만 하룻밤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숙박비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념일이나 여름휴가 때 큰맘 먹지 않는 이상 엄두를 내기 어렵다. 비싼 풀빌라는 ‘그림의 떡’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일상의 단조로움을 벗어나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을 귀띔해드리려 한다. 분위기 좋은 카페들이 밀집해 있는 포항 환호동에 ‘에스피에스타’라는 펜션이 있다. 비록 사방이 트인 ‘오션뷰’는 아니지만, 멀리 영일대 해수욕장과 포항 도심의 화려한 야경을 보며 목욕을 즐길 수 있다. 야외에 작은 공용 수영장이 있고, 각 객실마다 별도 공간에 대리석 자쿠지 욕조가 마련되어 있다. 카페와 레스토랑, 루프탑 바도 이용 가능하다. 1박 요금은 8만원에서 26만원, 부담이 덜하다. 평일에 이용한다면 ‘가성비’를 한껏 누릴 수 있다.한옥 펜션이 즐비한 경주에 무슨 풀빌라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경주의 대형 한옥 펜션 중에는 마당에 수영장을 갖춘 곳도 있다. 그런데 한옥 펜션 대다수가 ‘황리단길’이나 보문관광단지 주변에 모여 있기 때문에 ‘바닷길’에서는 조금 멀다. 바다로 가자. 경주 남단의 양남면 수렴리 해변엔 ‘루트94’라는 신축 풀빌라 펜션이 있다. 객실에 딸린 개별 수영장에서 짙푸른 경주 바다를 바라보며 수영하고, 테라스 벤치에 앉아 생과일주스를 마시는 망중한을 1박 20만원대의 비교적 낮은 금액으로 누릴 수 있다.현실은 남루해도 상상은 풍요롭다. 근사한 테라스 풀장에서 나는 ‘태양은 가득히’의 알랭 드롱이다. 어차피 보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 알랭 드롱도 되고 뱅상 카셀도 되고 정우성도 될 수 있다. 눈앞의 바다를 바라보며 물놀이를 즐기고, 썬베드에 누워 책을 읽고 또 음악을 듣는다. 석양을 감상하면서 바비큐 그릴에 고기와 함께 키조개, 뿔소라, 문어를 굽는다. 시드니 베쳇의 ‘Summer time’을 틀어놓으니 소프라노 색소폰 선율이 풀장 수면에 너울진다. 황홀감에 젖어서 나는 물에 몸을 담그고 와인을 마신다. 캄캄한 수평선 위로 달이 뜨고, 오징어잡이 배들이 불빛을 흘리는 밤바다 풍경이 별천지다. 새벽엔 하늘에서 글썽거리던 별들이 빗방울처럼 풀장에 떨어져 내린다. 누가 곁에 있으면 좋겠는데, 혼자 누리기엔 너무 사치스런 낭만이다.      /시인 이병철

2019-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