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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벼랑 끝 수산업… 한반도 조업 환경 악재 산적

수산업은 식량안보 핵심산업이다. 에너지와 더불어 국가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기본조건이다. 식량과 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한 국가는 존립 위기를 피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세계 강대국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에너지와 식량이다.최근 세계 각국의 식량주권 전쟁이 격화한 가운데 수산물 공급은 정체된 반면 수요는 매년 증가하고 있어 글로벌 수산식량 위기가 올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 식량 문제에서만큼은 우리에게 중국과 러시아는 리스크에 가깝다.국내 수산업은 이미 벼랑 끝에 서 있다. 80년대 평균 151만t에 달했던 연근해어업 생산량은 90년대 140만t, 2000년대 116만t으로 감소하다가 2016년에 이르러 93만t을 기록하며 100만t 선이 붕괴됐다. 어업인구는 11만명대로 급감했고 이들 중 절반 이상이 60대 이상 고령층이다. 국내 낚시인구는 700만명을 넘어섰고, 중국어선의 싹쓸이 조업까지 횡행하면서 어족 자원은 점차 고갈되고 있다. 노르웨이 연어와 같은 수입산 수산물의 확산과 함께 국산으로 둔갑한 일본산 수산물까지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성장은 고사하고 산업 전체가 쇠퇴하고 있는 구조적 한계에 도달했다.□ 중국어선과 오징어 어획량의 반비례 관계현재 국내 수산업 전역은 악재투성이다. 수산업이 맞닥뜨린 현안들을 어업인 주도로 해결하기 위해 지난달 ‘우리바다살리기 중국어선 대책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발대식을 갖고 대정부 활동에 나섰다.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강석호(영양·영덕·봉화·울진) 의원 등 여·야 의원 9명이 고문위원단을 맡았다. 추진위는 지난 22일 강석호, 김성찬 의원 공동 주최로 중국어선 불법조업과 한일어업협정 장기표류 등 수산업 위기 타파를 위한 어업인 성명서 발표와 함께 창립총회 및 정책토론회를 가졌다.대형어선으로 세력화된 중국어선이 먼저 도마 위에 올랐다. 동해안 북한수역에서의 남획 조업으로 오징어 등 회유성 수산자원은 씨가 마르고 있다.통계청이 발표한 어업생산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근해 오징어 어획량은 지난 2014년 16만t에서 2018년 5만t 이하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중국어선의 북한수역 입어 척수는 2014년 144척에서 2018년 2천161척으로 급증했다. 중국어선의 북한수역 입어 척수 증가와 반비례해 동해안 오징어 어획량이 감소한 것으로 풀이된다.이러한 어장 파괴로 국내 어선들은 러시아수역까지 진출하고 있지만 입어허가를 받은 근해 채낚기어선 70척은 극심한 어획 부진으로 2019년 10월 현재 쿼터량의 10%인 500t만 겨우 생산하고 있는 상황이다.추진위는 “해양경계 획정을 통해 양국 간 조업 구역을 구분하고 EEZ 내 입어척수 및 어획량 합의규모도 상호 비례하도록 중국어선 입어척수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며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결의 2397호에 따라 중국어선의 북한수역 입어를 금지해야 한다. 무분별한 불법 조업으로 수산자원을 고갈시키는 중국어선으로 피해를 입은 어업인을 중심으로 대정부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일어업협정 3년째 결렬어민들은 한반도를 둘러싼 조업 환경에 답답함을 호소한다. 동해는 국제협약에 따라 조업쿼터 제한에 걸리고, 러시아 쪽에서는 조업량 규제를 받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이 합의한 서해 북방한계선 평화수역 조성도 지연되고 있다.아래도 꽉 막혔다. 한일어업협정이 4년째 타결을 보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이라 2016년 7월부터 일본수역 내 조업이 차단됐다. 수산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한일어업협정 결렬로 인해 지난 3년간 약 2천억원의 누적 피해가 발생했다. 이는 고스란히 어업인들에게 돌아갔다.생존 터전인 어장은 축소됐지만 대체어장 마련은 지지부진한 상황 속에 생존권 위협을 느끼고 생업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위아래로 꽉 막힌 한반도 조업 환경 속에서 우리바다살리기 추진위는 현재 표류 중인 한일어업협상 재개로 숨구멍을 찾을 방침이다. 양국 공동 자원관리를 위한 대책 마련과 함께 수익성 높은 해외어장 개척을 계획 중이다. 농사짓는 땅이 넓으면 다양한 곡식이 나오듯, 조업 해역이 넓어지면 어종이 풍부해질 것이란 희망이다. 어선들 역시 과열 경쟁을 벌일 이유가 줄어든다.자유한국당 강석호 의원은 “한일어업협정 미타결과 중국어선 불법조업 등 대·내외적으로 위기에 직면한 수산업을 위한 실효적인 대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힘을 실었다.□ 어업인 생존권 보호대책 마련 촉구추진위는 북한수역에 입어해 동해안 수산자원을 싹쓸이하고 있는 중국어선 문제와 한일어업협정 지연으로 피해를 입은 어업인을 중심으로 대정부 대안 마련 및 협상 재개를 촉구하고 어업인 생존권 보호 대책을 건의할 방침이다.아울러 멸치 어선을 비롯해 어민 대부분이 적자를 보고 있는데도 정부는 ‘수산혁신 2030계획’ 상의 수산자원관리 명목으로 규제 강화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중국어선 싹쓸이 불법 조업과 같은 핵심문제 해결보다는 규제 강화 위주의 땜질식 정책들만 내놓은 정부를 비판했다.앞서 해양수산부는 지난 4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19차 한·중 어업공동위원회에서 ‘2020년도 어기 한·중 어업협상’을 타결했다. 양국은 내년 입어 척수와 어획할당량을 감축하기로 했다. 한국과 중국의 배타적경제수역 내 상대국 어선의 입어 척수를 올해 1천450척보다 50척이 줄어든 1천400척으로 4년 연속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어선의 어획할당량도 지난 2017년 이후 3년 만에 1천t을 줄이기로 했다.이와 관련해 추진위는 “현재 국내 어업 상황을 보면 규제 강화보단 어민 지원을 강화할 때”라며 “어민들 속은 타들어 가는데 정부는 땜질식 처방만 내놓고 있다. 정책과 현실의 괴리로 정부와 어업인 간의 불신만 커지고 갈등만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중어업협정에 따른 양국 EEZ 입어척수는 등량등척 원칙에 따라 동일하지만, 지난 2018년 기준 중국 수역에 입어한 국내어선은 180여척, 중국 어선은 1천200여척이 우리나라 영해선을 넘어 조업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김대경 후포수협 조합장은 “이대로 가면 우리 먹거리를 수입 수산물에 의존해야 하는 때가 올 것”이라며 “한일어업협정 재개 등으로 어장이 넓어져야 조업 환경이 개선된다. 과도한 수산관계법령 강화와 바닷모래채취 등으로 위기에 처한 어업인들의 생존권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김민정기자 mjkim@kbmaeil.com

2019-11-24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흥겨운 잔치 계속된다

‘2019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45일간의 문화 대장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25일부터 상시개장에 들어갔다.(재)문화엑스포는 24일 오후 5시 엑스포문화센터에서 주낙영 경주시장을 비롯한 쿤 쏘다리 캄보디아 국회부의장, 수스 야라 아시아문화위원회 사무총장 등 국내외 인사 및 관광객이 참석한 가운데 ‘2019경주엑스포 폐막식 및 경주엑스포공원 상시개장식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2019경주엑스포에 대한 경과보고, 축하 공연과 함께 ‘365일 운영 체제’로 전환하는 경주엑스포공원의 상시개장을 선포했다.□ 새로운 문화 이정표 세운 2019 경주엑스포경북도와 경주시가 주최하고 (재)문화엑스포가 주관한 이번 ‘2019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문화로 여는 미래의 길’을 주제로 독창적인 전시와 체험, 공연 등을 다각적으로 선보이며 큰 호응을 얻었다.특히 첨단영상기술과 3D홀로그램, 로봇팔 등 ICT기술을 도입한 ‘4대 킬러 콘텐츠’와 한국,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이집트 등 5개국 40여 개 팀이 참가한 공연 페스티벌은 화려한 볼거리로 관람객을 매료시켰다.그동안 경주엑스포는 경주와 해외에서 2년에 한 번씩 번갈아 가며 개최했다. 이런 방식으로 경주에서는 4년마다 엑스포가 열렸고 엑스포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는 동절기를 제외하고 부분적으로 엑스포공원을 개장해 왔다. 이처럼 영속성이 보장되지 못하다보니 킬러콘텐츠 개발과 관광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어왔다.올해 엑스포는 기획과정에서부터 ‘누구나, 언제나 즐길 수 있는 엑스포’를 추구하며 관광객 편의를 높이는데 목표를 두었다. 연중무휴, 365일 상시개장을 염두에 두고 콘텐츠 개발에 전략적으로 투자했다. 예년 엑스포 때 보다 투입 예산은 절반으로 줄였고 시설, 운영, 홍보, 마케팅비를 최소화하면서 예산의 65%를 지속 가능한 상설 콘텐츠 구축을 위해 정성을 들였다.이전 엑스포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공연과 일회성 이벤트 행사는 지양하고 외형보다는 내실을 다졌다. 엑스포가 끝나면 볼 수 없는 콘텐츠가 아니라 계속해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구축하는데 중점을 뒀다.올해 엑스포 기간 동안 무리한 동원 없이 30만명(지난 23일 기준 29만6천750명)에 달하는 자발적인 관광객이 방문했다. 올해는 비수기에 지역관광 수요를 창출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10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쉽지 않은 도전을 펼쳤고,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올해 2019경주엑스포를 앞두고 사전 연계행사(3월18일~10월10일)를 통해 경주엑스포공원을 찾은 관람객은 57만9천여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8년(3월26일~11월31일) 33만8천여 명과 2017년(4월1일~11월30일) 26만7천여 명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재)문화엑스포 이사장인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경주엑스포공원을 새로운 문화 창출과 관광산업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문화플랫폼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며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지역과 국가 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첨단기술이 융합된 4대 킬러콘텐츠올해 열린 ‘2019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지난 22년간 경주엑스포의 축적된 노하우와 대한민국의 발전된 첨단기술을 융합한 콘텐츠를 통해 경주엑스포 연중 상설화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그동안 ‘공연과 전시를 중심으로 한 문화박람회’의 역할을 수행해온 경주엑스포를 다양한 방식의 문화 콘텐츠를 경험하는 ‘체험형 역사문화 테마파크’로 한 단계 더 성장시켰다.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4대 킬러 콘텐츠’이다. 경주의 랜드마크인 경주타워 꼭대기 층 ‘신라천년, 미래천년’ 전시관의 4방향 전면 유리는 경주 보문단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관광객들에게 선사했다. 20분에 한 번씩 천장에서 스크린이 내려와 8세기 서라벌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구현하며 시간여행을 체험케 했다. ‘찬란한 빛의 신라’(타임리스 미디어아트)는 신라의 역사문화를 환상적인 첨단 미디어아트로 표현해 감탄사를 자아냈다.전국 최초 맨발 둘레길로 조성한 ‘비움 명상길’은 첨단 문화기술 사이에서 힐링 포인트로 자리했다. 밤에는 홀로그램과 조명이 어우러진 ‘신라를 담은 별(루미나 나이트 워크)’로 화려하게 변신해 야간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었다. 세계 최초로 로봇팔과 3D홀로그램을 적용한 상설공연인 ‘인피니티 플라잉’도 화려한 액션 퍼포먼스로 관람객을 압도했다.지난 12일 방문한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은 “경주엑스포에서 큰 감명을 받았고 문화재를 효과적으로 가꾸고 보존해 신라 문화의 혼이 잘 전수되길 바란다”는 평가를 남겼다.□ 국내 최초 야간 반응형 관광코스 도입경주엑스포는 이번 행사를 통해 과감한 콘텐츠 다변화를 시도하며 지역 관광시장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대한민국 대표 역사문화 관광도시라는 타이틀 이면에 야간 관광 프로그램의 부재라는 고민을 안고 있던 경주에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야간 체험형 인터랙티브 산책 코스인 ‘신라를 담은 별(루미나 나이트 워크)’은 유휴부지였던 공간을 20년 만에 처음으로 개발해 성공을 거뒀다. 2km 길이의 ‘화랑숲’을 조성하고 경주엑스포가 자체 제작한 입체영화 ‘토우대장 차차’의 이야기를 3D홀로그램과 레이저, LED조명 등으로 표현하며 체험요소가 가득한 ‘빛의 숲’으로 꾸며 인기를 끌었다. 야간 프로그램은 입소문을 타며 전국에서 관심이 집중돼 ‘경주 나이트 투어’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을 보여줬다.□ 문화 관광산업의 선두주자새롭게 선보인 경주엑스포의 콘텐츠는 신라문화를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치를 인정받으며 교육적인 효과도 발휘했다.고즈넉하고 웅장한 느낌의 문화유산을 역동적이고 창의적이게 표현해 낸 콘텐츠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지자체에서 찾아왔다. 광주시, 서울시 중랑구, 순천시, 영주시, 울산시 북구, 인천시, 전라남도 등지에서 콘텐츠 탐방을 위해 방문했다.전국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비롯해 경북교육청, 한국인재교육원, 대구지방법원, DGB금융그룹, 한국수력원자력, 언론사 등 학교, 기관, 기업에서도 견학과 교육 및 워크숍 코스로 경주엑스포를 선택해 역사문화 교육장으로도 위상을 재확인했으며, ‘민·관·학 문화소통의 창구’가 됐다.□ 글로벌 문화교류의 장이번 2019경주엑스포는 오픈 전부터 해외 각국에서 관심을 보이며 국제적인 ‘문화 선도자’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베트남과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몽골, 헝가리, 이집트, 러시아, 중국 등 세계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분야의 외빈들 참관이 행사기간 내내 잇달았다. 문화를 비롯한 다방면의 지속적인 교류협력 논의가 펼쳐져 ‘글로벌 문화교류의 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지난달 24일 경주엑스포를 보기 위해 한국에 왔다는 헝가리 9선 국회의원 졸트 네메트 외교위원장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훌륭한 콘텐츠”라며 극찬했다. 졸트 위원장은 25일 이철우 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향후 헝가리와 경상북도의 공연단 상호 파견 등 활발한 문화 교류 방안에 대해 폭넓게 협의했다.□ 문화관광 경북, 경주의 새로운 동력경북도와 경주시는 전국 문화재의 20%를 보유하고 있는 문화 관광 일번지로 문화유적지를 바탕으로 한 조용하고 차분한 여행지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올해 엑스포는 ‘천년 신라, 빛으로 살아나다’를 콘셉트로 경주의 이미지를 역동적인 체험형 관광도시로 탈바꿈시키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전유택 평양과학기술대학 총장은 지난 5일 “대한민국의 과거 역사와 미래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콘텐츠들이 매우 훌륭하다”며 찬사를 보냈다.이마드 마흐무드 이집트 룩소르주 부지사는 “아름다운 역사문화 도시 경주와 그에 맞는 훌륭한 콘텐츠를 가진, 모든 것이 멋진 엑스포다”며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역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됐고 앞으로 많은 문화교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시대 흐름을 앞서는 젊은 축제이전에 경주엑스포는 일정기간 동안 30~40개 나라에서 참여해 전시와 공연을 펼치는 ‘단기집중, 단체관광형’ 이벤트로 치러져왔다. 반면 올해는 첨단기술이 펼치는 화려한 모습의 콘텐츠를 엑스포 곳곳에 녹여내며 여행, 레저를 중요시하는 시대 흐름에 발맞춰 개별과 가족단위 관광수요를 적극적으로 유입했다.특히 ‘인증 샷’이 여행의 묘미로 자리 잡은 SNS시대에 첨단 영상이 꾸미는 참신함은 경주엑스포 전체를 ‘인증샷 명소’로 만들어 더욱 각광을 받았다.□ 문화복지와 문화나눔 앞장이번 엑스포를 통해 문화 사각지대 축소를 위한 ‘사회적 공헌’ 활동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나라 문화발전을 이끌어 온 만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입장료를 면제해 전통문화에 익숙한 어르신들이 첨단 문화 콘텐츠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한 태풍피해 성금 기탁자에게 행사기간 입장료를 면제해 주는 캠페인을 벌여 재해지역을 돕고 피해 복구에 여념이 없는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문화 나눔’을 실천했다.문화복지 증대를 위해 장애인(1~3급)과 국가유공자, 기초수급자 대상 무료입장과 수능 수험생 50% 할인 등 다양한 제도를 펼쳤다. 뿐만 아니라 경주월드, 블루원 워터파크, 동궁원 등 지역 관광지와 연계 할인을 추진하고 지역 호텔과 리조트 등 숙박시설과도 제휴를 맺어 시민들과 경주에 오는 관광객에게 다양한 혜택이 가도록 노력했다.□ 향후 운영 계획경주엑스포공원은 ‘365일 힐링파크, 모두가 꽃이 되는 행복한 정원’을 캐치프레이즈로 25일부터 연중 상시 개장한다. 입장요금은 2019엑스포 행사기간에 비해 30% 이상 저렴하게 조정했다. 대인 8천원, 소인 7천원이며 연간 이용권은 1만5천원이다.공원 입장요금만 내면 경주타워, 찬란한 빛의 신라, 솔거미술관, 첨성대영상관, 자연사박물관, 경주엑스포 기념관 등을 관람할 수 있다. 공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야간에 신라를 담은 별(루미나 나이트 워크)은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운영하며 입장요금은 5천원이다.경주/황성호기자 hsh@kbmaeil.com

2019-11-24

“세상에 같은 대장(大腸)은 없다”

지난 2월 대만 첸칭병원 대장항문 전문의들이 대구 구병원을 방문했다. 자국민에게 더 나은 치료를 제공하고자 ‘구병원 방식(Koo’s Methods)’을 배우러 온 것이다. 당시 대만 의료진은 원형자동봉합기를 이용한 치핵수술을 참관했다. 직접 보고 배운 경험을 토대로 대만에서도 치핵 수술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다짐을 남기고 돌아갔다고 한다.대구·경북 지역에서 대장항문 질환 수술을 가장 많이 시행하는 곳이 바로 구병원(병원장 구자일)이다. 지난 22일 수술 10만례 달성을 기념해 축하행사를 가졌다. 우수한 의료진과 첨단 의료장비로 대장항문 질환 치료에서만큼은 해외에서도 인정한 전문병원이다. 대만에서만 여덟 차례, 싱가포르에서도 두 차례에 걸쳐 의료연수를 받으러 왔고, 중국과 일본 등 해외 전문의 50여명이 구병원을 찾았다.구자일 병원장은 지난 1991년 구외과의원 개설을 시작으로 국내 대장항문 질환 치료를 선도해왔다. 대장항문학 연수를 통해 검사 또는 수술 방법 등을 전파하며 대중화를 이끌었다. 이러한 발자취로 이뤄낸 항문질환 수술 10만례 달성은 구병원의 양적 성장과 더불어 질적으로도 그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특한 수술기법 창안으로 성장을 이끈 구자일 병원장을 만났다.-구병원 방식이란 무엇이며, 왜 해외 전문의들까지 주목하는가.△우리 병원에서만 실시하는 치핵 수술법이다. 원형자동봉합기를 이용한 수술로 합병증이 제로에 가깝고 통증도 없다. 항문 협착과 변실금을 예방할 수 있는 수술 방법으로 국내 대장항문 전문의뿐만 아니라 대만이나 싱가포르 의사들도 연수받으러 온다. 지난 2001년부터 시행했는데 학회를 통해 수술 사례를 꾸준히 발표하면서 국내 대학병원을 비롯한 해외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수술이 어떻게 진행되는가.△항문 밖으로 내려온 조직을 원형자동복합기를 이용해 위로 당기고 직장(直腸)에서 문합술, 즉 장기와 장기를 서로 접합시켜 이은 후 남은 조직은 잘라낸다. 미용적인 측면에서도 기존 방법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원형자동봉합기를 이용한 치핵고정술은 이미 여러 병원에서 시행되고 있는데.△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원형자동봉합기 수술을 시행하고 있지만 합병증이 많고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병원의 수술법은 합병증이 없어 1만여건의 수술 사례들이 해외 의료진에게 소개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로 송기환 부원장은 지난 6월 몽골에서 열린 대한대장항문학회 공동 심포지엄에 ‘궤양성대장염의 진단과 치료’ 주제발표 연자로 초청받았다.-치료법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근대 100년간 치핵 수술의 원칙은 혈관 절개법(고위결찰술)과 치핵조직 절제술로 제한돼 있었다. 이후 1998년 이탈리아 외과의사 론고(Longo)가 개발한 원형자동봉합기를 이용한 수술법이 시행됐으나 국내에서는 잘 먹히지 않았다. 앞서 말한 합병증을 비롯해 문제가 많아 6∼7년 전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에게 적합한 수술법으로 변형시켰더니 결과가 좋았다. 합병증이 월등히 줄고 오히려 방법은 간단해 수술시간도 단축됐다. 원형자동봉합기를 이용한 수술 기법은 시술하는 곳의 위치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수술 부위를 절개할 때 두께와 넓이를 조절하는 것이 핵심이다. 치상선 위에 분포한 치핵이나 점막을 고리처럼 동그랗게 절제한 뒤 근육 조직에 고정하기 때문에 재발과 협착증세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수술 후 출혈도 적어 회복이 빠른 것도 장점이다. 인도와 중동지역에서도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러브콜이 온다.-사람에 따라 수술법을 다르게 적용한 것이 지금의 성과를 이룬 셈이다.△대장항문 질환 치료도 맞춤 진료 시대다. 증상 정도에 따라 치료법을 구분하는 게 아니라, 환자에 따라 검사와 수술법을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 사람마다 눈, 코, 입 생김새가 다르듯, 대장이나 항문 모양과 길이도 천차만별이다. 여러 질환 중에서도 치핵은 수술 빈도가 높은 편에 속하는 흔한 질병이다. 모양이나 위치, 크기도 제각각 다르므로 이를 고려해 수술하면 더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사람들은 흔히 항문질환을 치질이라고 말하는데 치핵, 치루 등과 어떻게 다른가.△일반적으로 항문질환을 치질이라고 부른다. 치질은 덩어리가 생기는 치핵, 항문 내벽이 찢어지는 치열, 항문 주위 조직에 고름이 차는 치루로 구분된다. 치질의 가장 흔한 증상이 바로 치핵으로, 전체 치질의 50% 이상을 차지하며 보통 치핵을 치질이라 부르기도 한다.-치핵의 원인은.△배변 시 지속적으로 과도하게 힘을 주면 항문 주위 조직이 변성돼 탄력이 떨어진다. 변을 볼 때마다 점차 조직이 밑으로 내려오면서 항문이 빠지는 증상과 함께 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 치루일 경우에는 간단하게 절개술로 치료하면 되지만 고위복합치루, 크론병치루는 매우 난치성에 속하고 재발이 잦은 편이다. 괄약근 손상으로 변실금이 올 수 있어 괄약근 보존술식이 필요하다.-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주로 어떤 증상을 호소하는가.△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변비, 변실금, 요실금, 직장탈출증, 자궁탈출증 등을 겪는 환자가 늘었다. 역동성 MRI 배변조영술을 시행해 골반근육 약화로 인한 다양한 질환들을 진단하고 치료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대한대장항문병학회에서 직장탈출증 환자에 대한 복강경 수술 사례를 발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대 변화에 따라 환자 연령층이 다양해진 만큼 우수한 장비와 기술 도입에 늘 관심을 가진다. 반대로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인해 젊은 층에서도 대장항문 질환 발병률이 높아졌다. 10∼20대를 중심으로 복통, 설사, 혈변 등을 동반하는 크론병 치루, 궤양성 대장염이 급격히 증가했다. 어떤 병이든 조기 치료가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대장암은 처음에 특별한 증상이 없어 일찍 발견하기 어렵다. 암이 어느 정도 진행돼서야 변비, 설사, 혈변, 용변 후 잔변감, 복통, 소화 불량과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대장암의 85∼90%가 선종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병원은 대장내시경 전문의 20여명과 환자 8명을 동시에 검사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있다. 연간 평균 2만여명에게 대장내시경 검사를 시행한다. 국가암검진에 포함되는 위내시경 검사처럼 대장내시경도 2년마다 예방 검진이 시행된다면 대장암 발병률을 현저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수술법 외에 구병원만의 특징이 있다면.△국내 최초로 배변장애 클리닉을 개설해 전문적인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MRI 배변조영술로 배변 기능과 장기 움직임을 실시간 동영상으로 확인하고 배변장애를 정확하게 진단한다. 빠르고 확실한 수술만이 환자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신념으로 복막염, 장파열, 장폐색, 혈복강과 같은 복부 응급 수술을 24시간 시행하며, 갑상선유방과 복강경수술 등 외과 진료 강화로 종합병원으로서의 위상을 다지고 있다. /김민정기자 mjkim@kbmaeil.com

2019-11-24

방울참외·껍질째 먹는 참외·씨 없는 참외미래 50년, ‘성주참외’ 세계로 도약

반세기. 한 아이가 태어나 소년과 청년 시절을 보내며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머리카락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중년에 이르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 장구한 세월 동안 한 가지에 집중했다면 무언가 의미 있는 성과가 없을 수 없다.성주군의 대표적 특산물인 참외. 50일 후인 2020년은 성주에서 참외 재배의 역사가 시작된 지 반세기가 되는 해다.가만히 눈을 감고 성주참외가 첫 출발을 알린 시절을 떠올리면 이를 ‘도저한 역사’라 불러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이에 본지는 ‘성주군의 자랑’이자 보물인 참외의 어제와 오늘, 미래의 전망까지를 두루 살펴보고자 한다.◇통일신라시대에 이미 참외를 길러 먹은 사람들참외와 인간이 접목된 역사는 길고도 길다. ‘해동역사(海東繹史)’와 ‘고려사(高麗史)’ 등 고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참외는 삼국시대 혹은, 그 이전 시대에 중국(인도가 원산지라 주장하는 식물학자도 있다)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왔다.통일신라시대 때의 농민들은 이미 참외는 일반적으로 길렀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문헌과 관련 유적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참외와 관련된 흥미로운 에피소드 중 눈에 띄는 것은 ‘예술과 참외의 결합’이 구체화돼 나타난 사례다.세계적으로도 그 미려함을 인정받는 고려시대 청자. 그 가운데 대표적 작품의 하나인 ‘청자 참외 모양 병’(국보 제94호)은 먹음직스럽고 고운 참외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 우아함이 현대의 어떤 예술품도 모방할 수 없을 정도.이런 사례를 볼 때 참외는 이미 고려시대에 우리가 즐겨 먹던 농산물로 자리매김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성환참외(개구리참외), 강서참외, 감참외, 열골참외 등 우리나라의 재래종 참외는 전국 각 지방에서 다양하게 재배된 것으로 알려졌다. 1950년대 중반엔 일본에서 바다를 건너온 은천참외가 도입됐고, 이후 이 품종이 한국 참외의 주축을 이루게 됐다는 것이 관련 학계의 대체적인 주장이다.이제 눈길을 미시적 사안으로 옮겨 성주참외를 돌아보자. 누가 뭐래도 성주하면 참외가 떠오르고, “참외 하면 성주”라는 말은 이제 보편화됐다.지역적으로 산자락에 자리한 성주군은 대부분이 분지로 이뤄졌다. 여기에 비옥한 토양과 맑고 풍부한 물(지하수)을 자연으로부터 선물 받은 성주는 참외 농사에 적합한 고장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표현처럼 “하드웨어가 좋은 것”이다.또한 기상으로 인한 재해가 적고 겨울철에 안개 발생이 거의 없다. 이는 참외의 당도를 높이고, 품질을 향상시키는 최적의 조건. 좋은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까지 힘을 보태니 성주참외가 고품질을 가진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닐까?◇최고의 품질을 유지하며 미래를 향하는 성주참외어느 지역보다 유리한 환경적·지리적 여건 아래서 성주군 농민들은 1950년대부터 꾸준히 참외를 키워왔고, 1960년대엔 직파 및 온상 육묘법을 적극 도입해 기술력의 발전을 도모했다.1970년대는 본격적인 ‘본포 하우스 재배’가 시작된 시기다. 이때부터 큰 도시로 참외를 대량 출하했고, 대중적 상품화가 이뤄졌다. “이는 성주군 농가 소득이 높아지는 경사로 이어졌다”는 게 성주군청 농정과의 설명이다. 재론의 여지없이 성주는 꾸준히 쌓아온 풍부한 재배 경험과 축적된 농업 기술력을 바탕으로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전국 최고의 품질”이라 평가받는 참외를 생산했다.1981년부턴 ‘참외작목회’가 조직됐고, 이는 참외 재배 면적의 비약적 증대로 이어졌다. 1984년엔 ‘금싸라기 은천참외 육종’이 보급됐다. 참외 재배지는 더 늘어나게 된다.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보온 피복자재 개선, 연장재배가 일반화되면서 원예시설도 참외 재배에 최적화 됐고, 1997년도에는 하우스 보온덮개 자동개폐장치가 개발돼 노동력 절감 분야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이뤘다고 한다.이제 성주참외는 ‘찬란했던 과거 50년’을 넘어 더욱 첨단화되고 과학적인 농법을 개발해 ‘미래 50년’을 꿈꾸고 있다. 이를 뒷받침할 핵심 성장전략도 이미 수립했다.소비 성향의 변화와 급변하는 국내외 농산물시장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참외 농업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에도 분주하다. “그 어느때보다 체계적인 장기 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문제의식을 성주군청 관계자들 모두가 마음에 새기고 있다.성주군은 향후 ▲성주참외를 국제적 브랜드로 성장시키기 ▲재배 환경의 규모화·집약화·과학화 추진 ▲달라진 소비 패턴에 맞는 품종 개발 ▲성주형 스마트팜 구축 ▲최소의 노동력으로 고품질 참외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 개발 ▲성주참외 대체작물 개발 등에 진력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성주참외가 안고 있는 현 단계에서의 과제를 각 분야별 전문가와 민·관이 함께 고민할 예정”이라는 게 성주군청의 부연.◇한국을 넘어 ‘세계 속의 성주참외’로 가는 길이외에도 성주군은 생산량에만 의존하는 성주참외 산업의 발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근 참외 재배 시·군 관계자, 마케팅·수출·생산·유통 부문 전문가, 참외 생산농가와 더불어 토론회와 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다.함께 연구하고 그 결과를 공유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운다는 건 성주군의 미래를 밝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사실 성주참외는 품목의 특성상 수출에 한계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2019년엔 435t의 참외를 일본, 싱가포르, 홍콩, 말레이시아 등에 수출했다. 이는 전년에 비해 84% 이상 증가된 수치다.이에 부흥해 내년엔 태국, 2021년에는 베트남 시장을 추가로 공략한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이를 위한 상품 개발과 시장 분석, 현지 조사는 필수이기에 이 계획에도 게으름이 없을 터.성주군청 농정과는 “앞으로도 해외 신규 시장 개척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한다.지난 5일엔 성주군과 디원UAV아카데미가 농업기술센터에서 병해충 무인항공방제기 운영 전문가 양성에 관한 업무협약을 맺었다.이날 협약에서 농업기술센터 서성교 소장은 “고령화된 농촌에서 농업용 드론으로 병해충 방제를 하면 노동력과 경영비가 절감되고 시간 단축도 가능하다”며 “적기 방제, 실시간 작물 모니터링, 작물 생육관리와 축사 소독 등에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디원UAV아카데미 이혜정 대표 역시 “농업인대학에서 드론 교육을 진행하며 드론에 대한 농업인들의 열정에 감명 받았다”며 “협약을 통해 내실 있는 교육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성주군은 이번 협약으로 농업용 드론을 운용할 수 있는 ‘초경량 비행장치 무인멀티콥터 조종자’ 자격 취득을 위한 교육과 사후 보수교육이 효과적으로 추진될 것이라 내다봤다. 이것만이 아니다. 성주군 농민과 농업 전문가들은 편리성과 간편함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를 위해 방울참외, 껍질째 먹는 참외, 씨 없는 참외 등을 개발해 변화한 소비 패턴에도 대응할 방침이다.소과, 고당도, 편리성에 맞는 상품 개발과 효율 높은 스마트팜의 구축, 기술영농, 과학영농, 6차산업에 맞는 가공식품 개발, 대체작목 개발과 연구에도 땀 흘린다는 것이 성주군의 내년 계획이다. 관심을 가지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전병휴·홍성식 기자

2019-11-21

공공기관 직원 지역발전 앞장-市는 정주여건 개선 최선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균형 발전을 위해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제정(2004년)된 지 16년이 흘렀다. 당시 정부는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 가운데 단계적으로 지방으로 이전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2007년 수도권을 뺀 전국 광역시·도에 모두 10곳의 혁신도시를 지정했다. 이전할 계획이었던 153개 공공기관 중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을 제외한 152개 기관이 이전을 마무리했다. 김천시 율곡동 일원에 조성된 김천혁신도시에는 한국도로공사와 한국전력기술,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교통안전공사 등 총 13개의 공공기관이 이전해왔다. 당초 혁신도시 조성으로 김천은 경북 중·서부 발전의 신성장엔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9조 원의 경제효과와 더불어 5만여 명의 고용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가 않다. 그렇다고 비관해할 필요도 없다. 김천혁신도시가 가지고 있는 인프라는 분명 김천의 미래를 이끌고 나갈 힘이 있다. 이에 본지는 김천혁신도시에 위치한 공공기관과 김천시가 만들어가고 있는 김천의 미래에 대해 알아봤다.△김천의 시민이 되다김천시는 혁신도시에 공공기관들이 입주를 완료하기 전부터 공공기관 직원들이 김천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11년에는 김천포도축제기간에 맞춰 한국도로공사 등 13개 공공기관 직원과 그 가족을 초청해 포도따기 현장체험과 문화탐방행사를 가졌다. 이 행사는 이전공공기관 임직원들에게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게 함으로써 지역문화를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마련됐다.당시 한국전력기술 직원가족 150여 명과 한국도로공사 직원가족 80여 명 등 400여명이 참여해 포도축제와 직지사, 직지문화공원, 백수문학관, 도자기박물관 등 김천지역 관광명소를 둘러봤다.김천시의 이러한 적극적인 행보로 김천의 인구는 2017년 9월 14만3천여 명까지 증가했다. 이후 인구가 다시 감소세로 돌아서자 김천시는 이전 공공기관을 찾아 ‘김천愛 주소갖기 운동’을 전개했다. 공공기관 임직원들에게 ‘김천시민’이라는 주인의식과 지역발전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이로써 김천혁신도시 상주인구는 계획인구의 80%를 넘어서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 6월 기준 김천혁신도시 주민등록 인구는 2만1천674명으로 계획인구 2만6천명의 83%에 달했다. 하지만, 가족동반 이주율은 55.1%로 전국 혁신도시 중 최하위권으로 나타나 아직 김천혁신도시 정주여건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지역발전에 앞장서다김천혁신도시에 이전한 공공기관들은 김천시와 함께 지역발전에 힘을 쏟고 있다. 이들 공공기관들은 김천시가 도농도시임을 감안해 매년 설과 추석에 농특산물 직거래장터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올해 1월 28일 한국도로공사 2층 로비에서는 15개 읍·면·동 27개 농가가 참여한 혁신도시 어울림 직거래 장터가 열렸으며, 1월 31일에는 한국전력기술, 2월 1일에는 농림축산검역본부와 한국교통한전공단에서 장터가 운영됐다. 지난 9월에도 추석을 앞두고 각각 공공기관에서 직거래 장터가 열려 이전기관과 지역주민 간 상생발전을 도모했다.직거래장터는 김천지역에서 생산, 가공되는 농특산물을 판매함으로써 지역 농민들에게는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고 공공기관 임직원들에게는 안전하고 신선한 먹거리를 유통경로 없이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매년 진행되는 직거래장터는 그동안의 신뢰를 바탕으로 구매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 신뢰는 공공기관들의 지역 상생협력사업으로 이어졌다.공공기관들은 지역 마을들과 자매결연을 맺는 등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한국도로공사는 농소면 신촌리와 자매결연을 맺었고, 구내식당과 도서관, 운동장, 테니스장, 농구장, 풋살장을 연중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개방된 수영장은 지역주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한국전력기술은 재능나누미 봉사활동으로 지역 아동들에게 학습지도 및 정서지원, 체험 및 신체활동, 드림스타트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고 있다. 또 불우이웃 사랑의 쌀 기부, 취약계층 장학금기부 등의 기부 봉사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한전기술은 1본부 1촌 자매결연을 추진해 지역의 오지마을의 농촌일손을 돕고 있다.한국교통안전공단 역시 증산면 부항리와 자매결연을 맺었고, 어린이 안심통학버스 서비스 운영, 지역특산품 구입, 장애인 등 소외계층 지역복지시설 봉사활동, 주거개선사업과 지역축제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이밖에 한국건설관리공사, 대한법률구조공단,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농림축산검역본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국립종자원, 우정사업조달센터, 조달품질원 등도 지역 마을과 자매결연, 편의시설 개방, 사회복지시설 지원, 농촌일손돕기 등 지역발전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상생의 길을 모색하다김천시와 혁신도시 이전공공기관은 상시 소통으로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김천시는 매년 신년에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을 차례대로 방문해 지역과 상생·협력할 수 있는 방안 모색과 혁신도시 발전에 대한 협력에 대해 논의하고, 정주여건에 대한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다.특히, 공공기관 노조위원장과의 소통시간을 통해 상생발전 방안에 대해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올해 2월에도 김충섭 시장은 공공기관 노조위원장을 시청으로 초대해 정주여건 확충과 혁신도시의 역할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공공기관들은 김천시가 민선7기 출범과 시 승격 70주년을 기념해 진행하고 있는 ‘Happy together 김천운동’과 인구감소 대응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김천愛 주소갖기 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또 김천시와 공공기관은 동호회 교류대회를 통해 동반성장을 위한 소통·화합·상생의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지난 6월에도 공공기관과 김천시청 등 12개 기관의 당구동호회와 탁구 동호회가 교류대회를 개최했다.한국전력기술은 지난 5일 김천시민과 함께하는 한마음 코러스 콘서트를 열었다. 한국전력기술 임직원과 김천 주민들로 구성된 한마음 코러스는 직원들의 정서함양 및 혁신도시 이전기관의 지역 상생 문화공연을 선보였다. 이날 콘서트는 정오에는 직원들을 위한 런치로비 콘서트, 오후 7시에는 김천시민들과 함께하는 한마음 콘서트로 진행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혁신도시 공공기관은 상생을 위해 지역 인재 채용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5년에서 2018년의 지역인재 채용율은 9.7%에서 23.5%로 크게 증가했다. 공공기관의 이러한 노력으로 입주 기업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올해 1월에서 3월까지 혁신도시에 3개의 기업이 입주해, 산학연 클러스터 분양률을 52.1%로 끌어 올렸다.혁신도시 공공기관을 위한 정주여건 개선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김천시는 2020년까지 혁신도시에 문화시설 확충을 위해 도서관과 다목적 강당이 포함된 복합혁신센터를 건립한다. 또 공공기관 공동 직장어린이집을 만들고, 차량과 자전거 등에 대한 공유 모빌리티 플랫폼도 구축해 운영할 방침이다.여기에 자족도시 완성에 꼭 필요한 종합병원 건립을 진행하고 있다. 170병상 규모의 연합병원을 착공한 상태다.김천시와 혁신도시 공공기관의 상생을 위한 노력은 정주여건만족도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지난해 9월 국토교통부가 작성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김천혁신도시의 주거환경분야 만족도는 63.4점으로 부산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로 높았다. 김천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정주여건 개선에 총력을 기울여 혁신도시 공공기관 임직원들이 김천에서 가족들과 함께 정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갈 방침이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9-11-21

추워야 제 맛 ‘평양냉면’·식감 좋은 ‘한우갈비’ 제대로 즐겨볼까요

왜 ‘영주의 평양냉면’인가?왜, 느닷없이 ‘영주 냉면’일까? 영주 인근인 봉화, 안동 문경 등지에는 이름난 냉면집이 없다. 경북 전체나 인근 충청도에도 별다른 냉면집은 드물다. 영주에는 업력 50년을 넘긴 냉면집이 있다.냉면은 북한 음식이다. 서울 장충동에서 냉면 노포가 시작된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전쟁 당시, 월남한 이들이 많이 살았다. 장충동 일대는 서울의 끝자락이었다. 피난민들이 쉽게 자리 잡았다. 이 지역에 서울의 냉면 노포들이 문을 연 이유다. 냉면은 북쪽 평안도 일대에서 온 이들을 통하여 서울에 정착한다. 피난민들을 통하여 냉면집이 생긴다. 냉면집 이름에 ‘평양’을 붙인 이유다. 영주의 냉면집들도 평양, 평안도, 북한발 냉면 전문점이다. 한국전쟁 때 피난 온 이들이 문을 열었다.서문가든윗대가 월남 가족이다. 현재 가게 위치와 부근도 마찬가지. 피난 온 이들이 시작한, 인견(人絹) 등을 생산하는 작은 수공업체가 가득했던 곳이다. 인견은 레이온(rayon), ‘사람이 만든 비단’ ‘인조견’이다. 누에고치의 실 대신 나무 펄프로 만든다. 서구에서 시작된 인조 비단이 한반도로 들어온다. 평안도 일대에 인견 공장이 많았고,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을 통하여 영주 풍기 지역으로 들어온다. ‘풍기 인견’의 시작이다. 현재 ‘서문가든’ 일대는 인견 공장 지역이었다. 자리에 누워도 인견 공장의 베 짜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서문가든’의 냉면은 오래된 평양냉면의 모습 그대로다. 메밀 함량은 70%, 나머지는 전분을 넣는다. 주문을 받은 후 바로 반죽을 시작한다. 여전히 손반죽을 고집한다. 냉면 뽑는 기계는, 당연히, 유압식이다. 오래전에는 손반죽, 사람 힘으로 내리눌러서 국수를 뽑는 방식이었다. 1980년대 이후, 냉면 기계는 대부분 유압식으로 바뀐다.냉면 고명은 원형 평양냉면 그대로다. 오이, 달걀 반쪽, 배나 무 등으로 고명을 얹는다. 매운 고추 등은 사용하지 않는다. 냉면 면발에 가뭇가뭇한 점이 있다. 하얀 녹쌀이 아니라 도정이 덜 된 거친 녹쌀을 사용한다. 검은 자국은 녹쌀 속껍질이다.재미있는 것은 반찬. ‘슴슴한 맛’을 추구하는 북한식은 아니다. 냉면은 북한식 그대로, 반찬은 ‘경북 영주 방식’이다. 냉면에 맵고 짠 영주의 밥상 반찬을 더했다.겨울철에 선보이는 콩비지가 대단히 좋다. 풍기 지역이다. 부석태(浮石太)를 사용하여 북한식 콩비지(되비지)를 만든다. 북한식 ‘되비지’는 비지가 아니라 날콩을 삶아서 통째로 비지찌개를 만든다.서부냉면오래된 냉면 노포다. 불과 10~20년 전에는 “한강 이남에는 서부냉면만이 평양냉면 전문점”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마당이 널찍한 가정집 한 귀퉁이에서 냉면을 만들었다. 이 지역 고기가 유명하니 고깃집도 겸했다. 지금도 불고기와 냉면을 같이 내놓고 있다.냉면은 전형적인 북한식 평양냉면. 물냉면이다. 육수 색깔이 상당히 검은 것이 특징. 면발은 꾸준히 달라지고 있다. 메밀 함량보다는 녹쌀의 도정 차이가 있다. 때로는 완전 도정한 녹쌀을 사용, 면 빛깔이 흰색이었다가, 때로는 가뭇가뭇한 점들이 박힌, 도정을 덜 한 녹쌀을 사용한다. 예나 지금이나 손님이 주문하면 그때부터 냉면 국수용 반죽을 시작한다. 메밀 함량도 상당히 높다. 반죽에 전분을 사용한다. 냉면 가락의 겉면이 매끄럽고, 반짝거린다.육수도 평양 방식 그대로다. 때로는 닭고기, 한약재 냄새가 났다. 원형 물냉면용 육수 재료는 닭, 꿩, 쇠고기를 모두 아우른다. 닭, 꿩, 쇠고기 어느 것이나 흠잡을 일은 아니다. 평양냉면을 제대로 내놓는 집에서는 돼지 살코기 혹은 뼈를 사용하기도 한다. 냉면 가락 위에 돼지고기와 쇠고기 수육이 동시에 올라간다. 두 가지 고기나 뼈를 모두 사용했다는 뜻이다. ‘서부냉면’은, 지금은, 쇠고기 위주의 육수다.50년에 가까운 업력이다. 3대 전승 중.‘영주 한우갈비’는 숙성보다 생육… 소백산 자락서 제대로 키운 신선한 육질에 반하다왜 영주 한우갈비인가?영주 쇠고기 마니아들이 제법 많다. 영주의 쇠갈비, 쇠고기는 특징이 있다. 별다른 장식 없이 무심한 듯 내놓는다. 그릇에 곱게 펼치지 않는다. 갈비의 경우, 경북지방에서는 대부분, 늑간(肋間)살을 곱게 펼치지 않는다. 양념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늑간살을 있는 모습 그대로 갈라서 내놓는다. 고기 단면이 네모꼴일 때가 많다. 고기가 상당히 두껍다. 숙성보다는 생육의 신선한 맛을 드러낸다. 얼마간 질긴 느낌을 준다. 입안에서 기름기가 살살 녹는 ‘한우암소갈비’보다는, 씹는 식감이 좋은, 얼마간 질긴 갈비를 선호한다. 이른바 ‘마블링’보다는 살코기 원래의 맛을 즐긴다.영주는 소백산 자락이다. 태백산맥과도 멀지 않다. 일교차가 심하다. 고기나 채소 모두 깊은 맛이 있다. 영주 쇠고기, 영주 갈비가 맛있는 이유다.중앙식육식당영주에는 삼겹살 등 돼지고기 전문점보다 한우 갈빗살 전문점이 훨씬 많다. ‘골목마다 갈빗살 집’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중앙식육식당’은 그중에서도 비교적 오래된 노포다. 고기는, 영주의 다른 식당과 비교해도 질긴 편이다. 숙성보다는 생육의 싱싱한 맛을 따른다. 크지 않은 가게다. 입구에 들어서면 주방, 계산대에서 고기를 거는 쇠꼬챙이를 볼 수 있다.숯불에 석쇠를 사용한다. 한우갈비가 150g 기준 25,000원이다(2019년). 갈빗살이 유일한 메뉴인데, 메뉴판에 손글씨로 안창살 30,000원이라고 덧붙였다.소앤소한우전문점비교적 최근에 문을 연 가게다. 가게 내부는 식사보다는 저녁 술자리에 어울리는 인테리어. 검은색, 붉은색 위주의 깔끔한 분위기다. 연탄불이 어울릴 법한 둥근 식탁 위에 숯불을 놓고 고기를 구워 먹는다.부분육으로 정형한 고기를 가져와서 가게에서 손질하여 사용한다. 재미있는 것은 고기 구성. 접시에 내오는 고기의 질이 다르다. 아래는 ‘마블링’이 적은 갈빗살 위주. 접시 위에는 살치살에 가까운, 마블링이 많은 고기를 얹었다. 기름기가 많은 부위는 눅진한 맛을 내고, 아래의 갈빗살은 얼마쯤 질긴 고기 특유의 맛을 낸다. 숙성육보다는 싱싱한 고기 맛을 살린 구성이다. 젊은 세대, 외지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고기 구성이다.횡재먹거리한우풍기 동양대 부근에 있다. 다른 고깃집과는 달리 메뉴가 상당히 다양하다. 청국장, 육회비빔밥, 갈비탕 등의 메뉴도 권할 만하다. 여러 가지 음식을 내놓지만 하나하나 정성을 기울였다. 수준급의 음식이다. 고기도 갈빗살을 비롯하여 등심도 아주 좋다. 영주 토박이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영주에서 생산된 원육을 고집한다. 등심, 갈비, 육회(우둔살), 갈비탕 등을 모두 내놓는 것은, 덩어리 고기를 식당 내에서 손질한다는 뜻이다. 밑반찬도 수준급이다. 고기 가격이 상당히 싸다는 점도 매력적. 이 지역 고깃집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숯불 직화 방식이다. 마블링이 적당한 고기를 내놓는다. 기름기보다는 살코기의 맛을 제대로 살린다.영주 맛집 2곳역한 냄새가 나지 않는 ‘한결같은’ 맛을 짓다한결청국장3대 전승 중이다. 가게 업력은 조금 혼란스럽다. 처음 가게 문을 연 것은 1970년대다. 가게 이름은 ‘인천식당’. 1980년대까지, 상당수 가게가 그러했듯이, 영업 허가도 없이 운영했다. 1980년대 정식 허가를 받고 운영하기 시작했다. 현재 식당 이름 ‘한결청국장’을 사용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창업주가 20~30년간 운영했던 가게를 아들 부부가 2000년대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다. 청국장에 기울인 노력이 대단하다. 2대 안주인이 멀리 대구까지 가서 청국장 공부를 따로 했다. 원래 손님이 꾸준했던 가게다. 2대에서 ‘학문적으로’ 청국장을 배워서 역한 냄새가 나지 않는 청국장을 만들었다. 손님이 꾸준한 이유가 있다. 현재 남편은 청국장 만드는 일을 위주로 하고, 아내는 식당을 운영한다. 덕분에 청국장 가루나 생 청국장을 전국적으로 통신 판매할 수 있다.재미있는 음식은 ‘콩탕’이다. 이 지역의 콩이 좋으니 청국장을 빚고, 한편으로는 콩탕을 만든다. 콩탕은 ‘콩으로 만든 탕’ 즉, 콩을 삶아서 거칠게 간 후, 마치 비지 탕이나 찌개같이 만든 것이다. 북한식 ‘되비지찌개’ ‘되비지탕’이 영주 인근의 콩탕이다.인삼·상황버섯 등 온갖 약재로 끓인 삼계탕토방식당별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식당이다. 영주 시내에 있다. 가게 유리에 고기부터 청국장, 상황삼계탕 등의 메뉴를 써 붙였다. 큰 기대 없이 들어가서 주문을 한다. 반전은 이 식당의 밑반찬들이다. 된장이나 무장아찌, 깻잎절임 등이 상당히 좋다. 모두 직접 담근 것이다. 채소와 더불어 먹도록 내놓는 된장은 압권이다. 투박하진 않지만 재래, 집 된장의 꼴을 갖추었다. 물기가 많지 않고 제법 되직한 된장이다. 직접 재배한 채소나 인근에서 구한 식재료들을 사용한다.영주는 풍기 인삼이 흔한 곳이다. 인삼을 넣은 삼계탕이 유명하다. 이 식당의 삼계탕은 인삼은 물론, 각종 약재, 상황버섯 등을 넣은 것이다.   /음식평론가 황광해

2019-11-20

고고한 멋을 간직한 선비의 고장, 속 깊은 가을빛에 젖다

조선시대의 왕은 요즘의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일정 기간 동안 통치권을 행사하는 ‘최고위직 국민의 심부름꾼’이다. 반면 조선의 왕은 한번 자리에 오르면 죽을 때까지 하늘을 대신해 ‘백성 위에 군림하는 천자(天子)’로 행세했다. 그 시절엔 비단 조선만이 아닌 아시아 여러 국가의 황제, 유럽의 제왕도 마찬가지의 지위를 누렸다.그 같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왕이 특정한 교육기관의 현판을 직접 써주고, 여기에 땅과 책, 노비까지 선사한다는 건 대단히 큰 의미를 가지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왕의 신뢰와 애정을 받은 조선의 사립대학을 ‘사액서원(賜額書院)’이라 부른다.영주의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그렇기에 영주시민들이 ‘선비의 고장’이라는 프라이드를 가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조선 중기 유림의 거두 주세붕(1495~1554)은 풍기군수를 지냈다. 그가 세운 서원이 백운동서원. 이후 ‘조선 성리학의 시스템을 완성했다’고 추앙받는 퇴계 이황(1501~1570)은 왕에게 이 서원에 현판과 서적을 내려줄 것을 청했고, 명종(조선의 13대 왕·재위 1545∼1567)은 퇴계의 부탁을 받아들여 ‘소수서원’이란 현판과 많은 책들을 선물한다. 더불어 면세·면역의 권한까지 부여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액서원이 된 소수서원은 조선 말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도 건재할 수 있었다.기자가 소수서원을 찾았던 시간은 늦가을 해질 무렵. 바람 소리와 은은하게 풍겨오는 소나무의 향기가 가득할 뿐 서원 주위는 고요했다. 건물 기와에 내려앉은 햇살이 부침(浮沈)을 거듭했던 조선 유림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세월의 때가 묻은 강학당 툇마루 아래 서니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는 젊은 선비들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 같았고, 사방을 둘러싼 은행나무가 노란 옷을 갈아입은 경렴정에선 주세붕의 그림자가 환영처럼 어른거렸다.어두워지기 전에 바쁜 걸음으로 취한대와 탁청지, 서원의 스승들이 생활하던 일신재 등을 돌아봤다.물론 ‘紹修書院’이란 쓴 명종의 글씨와 700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색채가 선명한 ‘대성지성 문선왕 전좌도(大成至聖 文宣王 殿坐圖)’도 만날 수 있었다.소수서원을 둘러본 후엔 이곳을 찾는 관광객 10명 중 9명은 찾게 되는 선비촌으로 향했다.“학문과 예의를 숭상했던 영주의 전통을 잇고, 현대를 사는 우리가 마땅히 계승해야 할 선비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해 조성한 공간”이란 게 영주시청 관계자의 설명.선비촌은 영주 선비들이 실제로 살았던 터전을 복원함으로써 그들의 정신을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만들어졌다. 고풍스런 집들과 조그만 마을길이 여행자를 포근하게 안아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은 TV 드라마도 여러 편 이곳에서 촬영됐다고 한다.‘입신양명’, ‘우도불우빈’, ‘수신제가’, ‘거구무안’이라는 유학적 가치에 따라 공간을 구성한 영주 선비촌에선 전통가옥 체험과 예절 교육을 경험할 수 있다.대장간, 한지공방, 도예촌, 민속공예실 등은 도시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것들이라 아이를 동반한 부모들에게 인기라고 한다.시간이 넉넉한 사람이라면 조선 유교와 관련된 각종 유물이 다양하게 전시된 소수박물관까지 방문해보기를 권한다.영주시 풍기읍 창락리에 자리한 인삼박물관 앞에 섰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소설가 김종광(48)의 장편 ‘조선통신사’였다.1763년부터 이듬해까지 일본을 다녀온 ‘계미통신사’의 행적을 맛깔스럽게 소설로 옮긴 이 작품 속엔 당시 일본인이 조선의 인삼을 어떻게 생각했었는지가 짤막하게 등장한다.“먹으면 늙지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과장된 소문으로 인해 일본 사람들은 가느다란 인삼 한 뿌리조차 귀한 보물 모시듯 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통신사 일행에게 적은 양의 인삼이라도 얻고자 온갖 아양을 떨었다고 한다.비단 옛날 일만도, 일본만도 아니다. 터키와 불가리아 등의 나라에선 현재까지도 인삼이 ‘희귀한 병을 치료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인삼 성분이 소량 함유된 과립까지 인기가 높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귀한 대접을 받은 약재이니 우리에게도 인삼에 대한 궁금증이 없을 수 없다. 영주 인삼박물관은 이런 세간의 궁금증을 깨끗하게 해소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풍기 지역에서 재배한 인삼은 통상 10월 중순이나 11월에 수확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수확 시기가 1개월 정도 늦다. 이로 인해 잎과 줄기의 영양분이 뿌리에 축적되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소백산이 선물한 맑은 공기와 특유의 토질이 조직이 치밀하고, 향이 강한 인삼을 만들어준다”는 평가 또한 있다. 영주 풍기인삼은 약탕기에서 여러 번 끓여도 쉽게 물러지지 않는다. 최고의 인삼 산지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한 영주에 ‘인삼박물관’이 들어선 건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다.인삼박물관측은 “한국 인삼의 역사와 효능을 관광객에게 알리고, 인삼과 관련된 유물을 한곳에 모아 전시하기 위해 ‘시간을 이어온 생명의 숨결’이란 주제로 박물관을 조성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박물관은 인삼의 전파 경로를 소개하고 기획전시를 여는 로비와 한국 인삼의 기원과 인삼의 생육 환경을 요약해 보여주는 ‘인삼 전시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1층에서 2층 입구로 이어지는 통로엔 인삼이 오가던 길을 흥미롭게 재현한 곳이 있어 어린이 방문객들의 호기심과 탄성을 불러낸다. ‘인삼 나라’라고 이름 붙인 체험관에선 인삼포 만들기, 산삼 캐기 놀이 등을 즐길 수 있다.널찍한 카페와 야외무대도 갖춘 영주 인삼박물관은 건강 정보와 함께 즐거움까지 얻을 수 있는 흥미로운 가족 여행지다.한국사를 전공한 선배에게 영주에 갈 것이란 말을 전하니 “금성대군 신단에 꼭 가보라”고 했다. “왜냐”고 되묻자 이런 슬픈 대답이 돌아왔다.“아끼던 조카(단종)가 임금 자리를 뺏긴 것도 마음 아팠을 텐데, 형(세조)에게 죽임까지 당했으니 얼마나 비극적인 삶이냐. 아픈 역사도 역사니까 듣지야 못하겠지만 가서 위로의 말이라도 한마디 전하는 게 좋지 않겠니.”‘세조(수양대군)-금성대군-단종’은 피로 이어진 혈족 관계였다. 그러나 보통의 친족들처럼 서로를 감싸주며 아껴주지 못했다. 조선 초기의 아픈 역사를 이야기 때 수없이 등장하는 스토리이기에 더 이상은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 숙부와 조카, 형과 아우가 다투다가 억울하게 피를 흘린 이 사건은 영화와 드라마, 연극으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다.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쓸쓸하게 서있는 금성대군 신단(錦城大君 神壇)은 조카 단종을 다시 왕으로 복귀시키려던 금성대군이 이에 실패하고 형 세조에 의해 죽음을 맞은 후 세워진 제단(祭壇·제사를 올리는 단)이다. 세조 2년(1456) 사육신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된 금성대군과 추종자들은 죽음을 피해갈 수 없었다. 세조의 성격은 거칠고 불같았다고 한다. 그랬기에 당시 금성대군이 있던 순흥부는 폐읍(廢邑·일정 지역을 없애버림)의 고통까지 겪어야 했다.가을날 영주 풍경은 더없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하지만 세상사 대부분이 그러하듯 환한 빛의 반대편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하는 법. 찾아오는 사람들 드문 금성대군 신단. 조그만 비석 하나만이 이곳이 그 옛날 ‘골육상쟁(骨肉相爭) 왕조사’의 현장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권력은 무엇이고, 왕의 자리란 과연 무엇일까. 동생과 조카를 죽이면서까지 차지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홍성식·김세동 기자

2019-11-20

안동이 청년을 응원합니다

최근 지방 중소도시에선 청년인구 유출과 고령화, 저출생 등으로 인한 지방소멸을 걱정하고 있다. 경북 도내에는 전국에서 소멸위험이 가장 높은 지역인 군위·의성을 비롯해 소멸 위험이 큰 상위 10개 시·군 가운데 6곳이나 됐다.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연구위원은 지난 14일 열린 ‘제20차 저출산·고령화 포럼’에서 올해 기준 소멸위험지수가 전국에서 가장 낮은 기초자치단체는 경북 군위와 의성(0.143)군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청년창업’을 통한 지역 정착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정부와 자치단체들은 이를 위해 각자 청년창업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이다.이런 상황에서 안동시도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젊은이들의 창업을 통한 지역 정착을 유도하는 다양한 현장 중심의 청년 일자리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청년예비창업 지원사업과 청년마을일자리 뉴딜사업, 일자리 창출 우수기업 지원 사업 등을 소개한다.◇ 안동시 청년예비창업 지원 사업안동시는 지역 대학 창업지원센터와 연계해 만 18세 이상 39세 이하 예비 또는 청년 창업가에게 창업활동비를 지원하는 ‘청년예비창업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시는 올해 1억1천만원(도비 3천300만원, 시비 7천700만원)을 투입해 11명의 청년예비창업가를 지원한다. 이들에겐 팀당 700만원의 창업활동비, 창업교육 및 컨설팅, 창업공간과 기자재 등을 지원하며 관계기관과의 네트워킹 및 사업 연계도 지원한다.안동시는 올해 안동대 창업지원센터와 안동과학대 창업보육센터에 각각 청년예비창업자를 모집해 교육 및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우수한 청년창업자 발굴, 양성에 일조하고 지역경제 활성화 및 청년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기 위한 이 지원 사업에 올해 11명이 선발돼 사업 준비가 한창이다.안동대에선 총 7명(기창업자 3명, 예비창업 4명)의 각기 다른 참신한 아이디어의 창업 아이템을 갖고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이 가운데 안동대 마카롱과 케이크 맛집으로 유명한 ‘달콤한정류장’을 운영하고 있는 전주영(39·여)씨는 맛있는 딸기케이크를 1년 내내 맛볼 수 있는 가게를 구상, 안동시 청년예비창업 지원 사업을 통해 안동시청 옆에 신규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다. 전 씨는 유치원, 초등학생, 중학생들의 창의 수업과 두드림 수업 등 아이들에게 베이킹으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케이크 만들기와 마카롱 만들기 출강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아울러 그녀는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케이크와 마카롱을 직접 집에서 만들 수 있는 DIY세트 프렌차이즈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전 씨는 “취미로 시작했던 홈베이킹이 지금은 파티시에라는 나의 천직으로 자리 잡았다”며 “케이크로 마음을 전하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이 밖에도 야외에서 손쉽게 설치할 수 있는 반려동물 울타리,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쿠킹클래스, 멘토링 인터넷 플랫폼, 홈트레이닝 영상 콘텐츠 사업 등 기발한 아이디어를 활용한 사업들이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안동시와 안동대가 돕고 있다.안동과학대에선 총 4명(기창업자 2명, 예비창업 2명)의 청년 (예비)창업가를 지원하고 있다.대표적인 사업 아이템에는 최근 농촌 관광 활성화 사업 중 하나인 농촌 체험을 보다 효율적이고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도록 6차 산업과 IT를 융합한 농촌 체험 O2O 플랫폼 구축 사업을 비롯해 지역 특산품을 활용한 비누 만들기 체험, 광고 디자인, 소음측정 파라솔 등이다.◇ 청년마을일자리 뉴딜사업‘청년마을일자리 뉴딜사업’은 지역 청년들이 마을 자원을 활용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사업화함으로써 청년의 지역 정착과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올해 시는 이 사업에 1억5천750만원(국비 7천312만5천원, 도비 4천218만8천원, 시비 4천218만7천원)을 들여 3팀(9명)을 선발해 지원하고 있다. 시는 우선 이들에게 창업 성공을 위한 교육과 맞춤형 컨설팅을 하고 지역의 마을자원을 활용한 6차 산업화 아이템에 대한 창업 사업비를 1명당 연 1천500만원 팀당 최대 6천만원까지, 1년차 사업평가 결과에 따라 2년 차까지 지원한다.올해 안동시는 풍천면과 서후면, 와룡면 등에서 사업을 펼칠 3팀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글 쓰는 책방 ‘가일서가’‘글 쓰는 책방 : 가일서가’ 팀은 안동시 풍산읍 가곡리 가일마을에서 고택을 활용, 문화공간을 창출해 관광객을 비롯해 경북도청신도시, 마을 주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이 팀은 안동시 문화유산 제25호인 노동서사 및 노동재사 건물을 리모델링해 창작그림책 및 북큐레이션으로 컨셉을 담은 서점을 운영 중이다. 이곳에선 ‘자연과 글을 벗하는 시골의 삶’을 주제로 곁에 두고 읽을 만한 100여 권의 책을 선정해 판매하고 있다. 또 장기적으론 가일마을 전체를 작가 및 프리랜서들의 정주형 공간으로 형성한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우선 고택(빈집 등)의 순차적인 공간 리노베이션을 통해 마을 전체의 공간콘텐츠 확대하고 마을주민들의 유휴공간(집, 방) 활용을 통해 숙박시설 확충, 도시를 떠나 글을 쓰거나 작업을 하는 프리랜서들을 위한 레지던시 기능도 할 예정이다.김현정·이가람 가일서가 대표는 “마을주민들의 소득증대 및 자부심 고취, 지역 내 창의적 문화공간으로 지역주민들의 갈증 해소, 국내외 관광객 수 및 정주시간 증대 등을 기대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글쓰기와 책만들기 등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예술프로그램을 기획 및 개발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을 생산 농산물 활용한 ‘청년방앗간’‘청년방앗간’은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인근 폐가 및 폐건물을 활용해 가공시설을 비롯해 체험· 휴양 시설을 갖추고 지역 특산물인 안동고추를 활용한 체험학습을 운영할 계획이다.체험 참가자들은 고추의 선별 방법 등을 배우고 직접 선별한 고추를 활용해 고춧가루를 만들고 고추장까지 만들어 볼 수 있다. 또 마을 인근 ‘종택’에서의 문중 유교체험 프로그램과 연계한 체험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이 팀은 ‘지역 농업과 함께 성장하는 청년창업’이라는 목적으로 1차 농업만이 주류인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청년들이 2차, 3차 역할을 담당해 이를 통한 농가 소득 창출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발판이 되고자 이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한다.△ 체험용 가족 테마파크 ‘어드벤처 스토리’어드벤처 스토리(Adventure Story) 팀은 안동시 와룡면 이하리에 실내 테마파크인 플레이 파크를 조성할 예정이다.이 사업은 최근 미세 먼지로 인해 소극적인 야외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 아이들에게 쾌적하고 미세먼지 걱정이 없는 공간을 제공하고자 추진됐다. 이곳에선 어린이들이 꿈과 희망을 펼칠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활동을 비롯해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아무런 걱정 없이 온몸 놀이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또 지역마을자원을 활용해 마을의 농산물을 활용한 체험, 소개, 판매를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도 할 계획이다.이곳엔 가족과 함께하는 체험형 테마파크, 농촌 테마별 체험, 실내 익스트림 스포츠 체험, 근거리 관광코스, 농산물 직거래 장터 등이 마련된다.◇ 일자리 창출 우수 기업 지원 사업안동시는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창업 지원뿐만 아니라 이들을 비롯해 중장년층까지 신규 고용실적이 우수한 지역 중소기업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이 일자리 창출 우수 기업 지원 사업이다.이 사업은 기존 중소기업 인터사원제와 별도로 고용실적이 우수한 기업에 근로환경개선을 위한 다양한 지원을 비롯해 지역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개선 및 청년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도 돕는다.안동시는 올해 총 사업비 9천782만6천원(도비 2천935만원, 시비 6천847만6천원)을 투입해 우수 중소기업의 근로자 복지시설 개보수 또는 물품 구입 지원을 한다. 기업 당 지원 규모는 신규 채용 인원에 따른 고용지수별로 최대 4천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김광수 안동시 일자리경제과장은 “지역에 다양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도시 청년의 유입하는 동시에 지역 청년들의 정착을 유도하겠다”면서 “앞으로도 지역 일자리를 만들고, 마을 공동체 복원을 비롯해 지역 중소기업까지 상생할 수 있는 다양한 시책을 펼쳐나가겠다”고 말했다.한편, 안동시는 이밖에도 중소기업 인턴사원제, 공공부문 및 지역공동체 일자리 사업 등 현장과 연계한 다양한 일자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손병현기자 why@kbmaeil.com

2019-11-19

괘서사건과 이성 잃은 영조

경종 즉위 후 노론과 소론은 연잉군(훗날 영조)의 세제 책봉과 대리청정 문제로 마찰을 빚었다. 급기야 서로 상대방을 역적으로 몰아가는 극단적 붕당싸움으로 번졌다. 이런 복잡한 시기에 경종이 갑자기 죽고 노론의 지지를 받은 영조가 즉위했다. 위기에 처한 소론의 급진세력(준소)과 남인들은 영조의 정통성을 부인하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이들의 불만은 결국 무신난(戊申亂·이인좌의 난)으로 표출되었다.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무신난이 진압된 뒤에도 또다시 ‘나주괘서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를 두고 윤지(尹志)가 주도하였다고 하여 ‘윤지(尹志)의 난,’ 또는 옥사가 일어난 해가 1755년 을해년(乙亥年)이므로 ‘을해옥사(乙亥獄事)’라고도 한다.엄밀히 따지자면 을해옥사는 이해 2월에 발생한 나주괘서사건과 바로 뒤이어 5월에 일어난 ‘심정연(沈鼎衍) 시권(試卷:답안지)사건’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나주괘서사건의 실체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영조는 이 사건을 불만을 품은 소론급진 세력들의 역모로 몰아갔다. 사건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 되자 으레 그랬듯이 유3천리 경상도 장기현은 유배인들을 맞느라 분주했다. 장기로 배정된 유배인의 숫자는 확인된 것만 무려 아홉 명이나 된다. 김창대((金昌大), 이양조(李陽祚), 이석조(李錫祚), 단이(丹伊), 단이의 강보에 싸인 생후 1년 미만 된 아이, 강이노(姜二老), 이백련(李白連), 성불상 희(喜), 김몽성(金夢成)이 그들이다.이 사건의 발단은 단순했다. 1755년 2월 4일, 전라감사 조운규(趙雲逵)는 나주의 객사 망화루(望華樓) 벽에 익명의 괘서(掛書)가 붙은 사실을 보고받고 조정에 급보했다. 괘서는 ‘조정에 간신들이 가득 차서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는 내용이었다. 영조는 필시 무신여당의 행위라고 단정을 짓고 좌우 포도대장에게 기한을 주며 괘서의 주모자를 색출하여 체포할 것을 지시했다.수사 7일 만에 주모자로 체포된 자는 나주에 살던 윤지(尹志)였다. 그는 숙종때 과거에 급제하여 지평(持平·사헌부의 정5품)을 지냈던 인물이었다. 그의 아버지 윤취상(尹就商)은 형조판서를 지낸 인물인데, 1724년(영조 즉위)에 있었던 김일경(金一鏡·소론의 거두)의 옥사에 연루되어 고문 끝에 죽었다. 윤지도 그 사건으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18년 만에 나주로 이배(移配)된 인물이었다.윤지는 자신의 가문을 파멸로 몰아넣은 노론과 영조를 언젠가는 제거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자면 세력들을 모아야 했다. 우선 아들 윤광철(尹光哲)을 통해 나주지역을 중심으로 필묵계(筆墨契)를 조직했다. 이 조직은 표면적으로는 학동들의 계모임이었지만, 실제로는 거사를 위한 비밀결사단체였다. 또 전 나주목사 이하징(李夏徵)과 아전들도 포섭했다. 집안과 교유하던 유배인들 뿐 아니라, 서울과 충청도 지역에서도 뜻을 같이하는 집안들을 끌어들였다. 세력이 결집되자 윤지는 먼저 민심을 동요시키고자 했다. 1755년(영조 31) 정월, 그는 조정을 비방하는 익명의 글을 작성하여 처남과 집안의 노비를 시켜 몰래 나주 객사에 붙이도록 했다. 하지만 수사망을 피해나가진 못했다. 작은 고을에서 목숨을 걸고 영조를 비난할 만큼 간 큰 양반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수사는 40일간 진행되었다. 윤지와 친분관계에 있던 나주 지역의 관리와 아전들, 같은 처지에 있던 유배인들, 윤지에게 학문을 배웠던 자들, 편지를 주고받았던 서울의 소론 정치인들이 하나둘씩 체포되었다. 윤지는 영조의 직접 심문을 받았으나 자백을 하지 않고 버티다가 능지처사되었다.이 해 3월 8일, 영조는 왕세자인 사도세자를 비롯한 백관과 도성의 백성들이 지켜보도록 한 뒤, 참혹하게 윤지의 아들 윤광철을 공개 처형했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절대 권력을 과시하고 통치기반을 다지기 위한 본보기의 하나였다. 이로써 윤취상의 집안은 아들인 윤지와 손자 윤광철까지 3대가 영조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래도 화가 안 풀린 영조는 윤지 부자의 집을 연못으로 만들어버렸다. 박찬신(朴纘新)은 자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즉시 남대문 밖에서 효시되었다. 이들 외에도 조정과 포도청 등에서 60여 명이 가혹한 심문을 받았다. 김윤(金潤)·조동하(趙東夏)·민후기(閔厚基)·민효달(閔孝達)·김주천(金柱天)·이시희(李時熙)·이명조(李明祚) 등도 공범으로 몰려 함께 참형을 당했다. 이광사(李匡師)·윤득구(尹得九) 등은 귀양을 갔다. 특히 서예가이자 양명학자로 유명한 이광사는 윤광철과 몇 차례 서신을 주고받은 것 때문에 의금부에 하옥되었는데, 그가 참형을 받을 것이라는 소문에 절망감을 느낀 부인 유씨는 두 아들과 일곱 살 배기 딸 하나를 두고 목을 매달아 자결했다. 친국 끝에 종신유배형을 받은 이광사는 총 23년간의 유배생활 끝에 유배지 신지도(薪智島)에서 생을 마감했다.이 사건으로 모두 65명이 화를 입었다. 영조 재위기간에 모두 열다섯 차례의 괘서사건이 발생했는데, 단일 괘서사건으로 가장 많은 인명이 살상된 것이다.피비린내가 잠시 멈춘 그해 3월 20일 경상도 장기현으로 유배를 온 김창대(金昌大)는 사건 연루자인 임천대(林天大)와 같이 나주에서 조직한 필묵계 계원 중 한 사람이었다. 또 그보다 열흘 뒤에 장기현에 도착한 이양조(李陽祚)와 이석조(李錫祚)는 참형을 당한 이명조의 동생들이었다. 이들은 한양 사람들로서 윤광철과 교유했다는 이유로 화를 입었다.영조는 나주괘서사건을 처리한 후 종묘에 나가 역적들을 토벌했다고 고하고, 5월 2일에 춘당대(春塘臺)에서 특별과거시험인 토역경과정시(討逆慶科庭試)를 열었다. 나주 괘서사건이 마무리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실시한 특별과거시험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시험장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험 답안지(試券)에 콩알만 한 작은 글씨로 영조의 치세와 조정의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비판하는 내용과, 익명의 투서까지 함께 나왔던 것이다. 영조실록에는 답안지와 같이 제출한 투서의 내용이 너무 적나라하여 ‘임금이 다 보지 못하고 상을 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적고 있다.조사결과 주인공은 나이 스물아홉의 심정연이었다. 심정연은 본관이 청송(靑松)이고,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무신난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이미 큰 화를 입고 있었다. 아버지 심수관(沈受觀)과 형인 심성연(沈成衍)·심익연(沈益衍)이 모두 무신난 때 죽임을 당했다. 심정연은 친국하는 영조에게 ‘이는 일생 동안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생각으로 과장(科場)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써 두었던 것’이라고 답했다.심정연은 윤지의 숙부 윤혜(尹惠)와 모의했으며, 김일경의 종손인 김요채(金耀采)·김요백(金耀白) 등과 같이 춘천에서 거병(擧兵)을 계획했다고 자백했다. 사건은 이제 역모사건으로 확대되었다. 윤혜를 비롯한 여러 명이 춘천에서 잡혀왔다. 영조는 갑옷을 입고 숭례문의 누각에 서서 그들의 심문을 감독했다. 윤혜로부터 압수한 문서에는 선왕들의 휘(諱:이름)가 적혀 있었다. 영조가 그 이유를 묻자 ‘내 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 참고하려고 썼다’고 태연스럽게 답했다. 영조가 주장(朱杖:붉은 곤장)으로 마구 치게 했으나, 윤혜는 혀를 깨물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종묘로 달려간 영조가 엎드려 ‘저의 부덕으로 욕이 종묘에 까지 미쳤으니 제가 어떻게 살겠습니까?’라고 흐느낄 정도로 선왕들의 휘는 금기였던 것이다.윤혜가 드디어 대역부도의 죄를 시인하자 영조는 대취타(大吹打:군악)를 울리도록 지시했다. 훈련대장 김성응(金聖應)에게는 윤혜를 효수(梟首)하게 한 후, 그 머리를 깃대 끝에 매달고 여러 백관에게 돌아가며 조리돌리도록 명했다. 이를 말리는 판부사 이종성을 곧바로 귀양보내고, 즉시 윤혜의 머리를 바치지 않은 김성응에게는 곤장까지 친 후 귀양을 보내버렸다. 영조실록에도 이때 영조는 ‘술에 취해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고 적고 있다. 분노 속에 이성을 상실한 영조는 그나마 남아 있던 소론세력들을 대거 숙청하기에 이른다.심정연은 주모자 윤혜·김도성(金道成)·신치윤(申致雲)·강몽협(姜夢協)·강몽상(姜夢相)·유봉린(柳鳳麟)과 함께 사형을 당했다. 이 밖에도 김일경의 일파라고 하여 김인제(金寅濟)·박사집(朴師緝)·이전(李佺)·이준(李峻)·유수원(柳壽垣)·김성(金渻) 등도 참형을 당했고, 그 가족들이 연좌된 것이다. 아울러 심정연 등이 춘천부의 사람들이었으므로 춘천부가 현(縣)으로 강등되었고, 유수원이 충주 출신이었으므로 충주목(牧)이 충원현(縣)으로 강등되었다.그 여파는 동해 땅 끝 장기고을까지 흘러들어 왔다. 1755년 (영조31) 5월 14일, 강몽상의 처 단이(丹伊)와 그해 출생하여 아직 이름도 짓지 못했던 아들 하나, 그리고 조카 강이노(姜二老)가 유배객의 신분이 되어 장기현으로 왔다. 강몽상은 강몽협의 사촌 동생인데, 60여 명으로 춘천부(春川府)를 공격하려 했다는 혐의로 사형을 당했다. 이들만이 아니었다. 그해 5월 18일에는 이준(李埈)의 손자 백련(白連), 며느리(子婦) 희(喜)가 왔고, 6월 9일에는 김성(金渻)의 서질 아들 김몽성(金夢成)이 장기로 왔다.연달아 일어난 이 두 사건으로 처형당한 소론 강경파는 500여 명에 달했다. 영조는 이미 지난 무신난 때 용서해 줬던 사건의 관련자들을 다시 역적으로 규정짓고 해당 가족들을 연좌시켜 처단하기도 했다. 또 이종성(李宗城)·박문수(朴文秀) 등 극소의 인물을 제외하고는 소론 온건파들도 모두 조정에서 쫓아냈다. 그해 11월, 영조는 이를 계기로 천의소감(闡義昭鑑)이란 책자를 펴냈다. 을해옥사에 연루된 인사들의 숙청, 왕위계승 과정, 재위 기간에 발생한 옥사 처리의 정치적 정당성을 천명하기 위해서였다.다음 해인 1756년(영조 32) 2월, 영조는 노론에서 정신적 지주로 삼는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을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했다. 드디어 노론이 한 당파의 이념을 뛰어 넘어 국가의 이념임을 선포한 셈이었다. 소론과 남인은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정도로 전락하였고, 노론들의 독주가 진행되었다. 아울러 전제군주가 된 영조는 어지간한 신하들의 반대에도 자신이 원하는 일은 밀어붙였다. 균역법의 전면 실시, 서얼의 등용 등 영조 후반의 과감한 제도개혁은 이처럼 광기(狂氣)의 피비린내 나는 굿판을 벌이고 나서야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상준 향토사학자

2019-11-19

“전국 최고 스포츠 도시, 전지훈련 메카 문경으로 오세요”

문경시가 2013년 국가스포츠의 요람이자 엘리트 체육의 산실인 국군체육부대의 문경 이전과 함께 2015 경북문경세계군인체육대회의 성공적 개최, 국제적 스포츠 인프라 구축으로 국내·외 스포츠대회는 물론 전지훈련의 메카로 우뚝 섰다◇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문경은 대한민국의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로서, 전국 어디에서나 2시간대에 접근이 가능한 대한민국의 중심지이다. 현재 차질없이 진행중인 중부내륙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수도권과 1시간대에 접근가능하며, 국군체육부대의 우수한 스포츠 인프라와 함께 천혜의 자연환경과 관광자원을 연계한 융복합 스포츠 산업으로 스포츠·전지훈련의 메카로 발돋움해 앞으로도 더 많은 대회와 전지훈련 유치가 가능할 전망이다.◇전국 최고 시설 국군체육부대국군체육부대는 2013년 성남에서 문경으로 이전됐으며, 태릉선수촌의 5배 규모로 국제규격 스포츠 시설을 자랑하는 국가 스포츠의 요람이자 엘리트 체육의 산실이다.건립비 3천900억원으로 호계면 견탄리 일대 45만평 규모에 실내훈련장 18동, 실외훈련장 10동, 실내육상장 1동, 선수 숙소 등 29개동과 영외 아파트가 있다.1만2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메인스타디움은 4개면의 축구장, 근대5종 복합경기장, 사이클 벨로드롬을 갖추고 있다. 국제규격 경기장은 축구, 럭비, 핸드볼, 농구, 유도, 복싱, 레슬링, 수영, 육상, 태권도, 아이스하키, 빙상 등 25개 하계종목과 바이애슬론, 아이스하키, 빙상, 스키, 루지, 봅슬레이, 스켈레톤 등 7개의 동계종목을 치러낼 수 있다. 14개 종목 동시훈련이 가능한 V자형(520m)의 세계 정상급 수준인 국내 최대 실내훈련장, 세계 유일의 근대5종 전용 실내경기장 등도 있다.◇전지훈련의 메카로 부상2013년 국군체육부대가 문경으로 이전하고 난 뒤 문경시와 국군체육부대가 협력한 적극적인 스포츠마케팅으로 2018년 325팀 4만1천100명이 전지훈련을 위해 문경을 찾았다. 올해는 9월 말 현재 275팀 3만6천여명이 다녀갔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2020년 도쿄올림픽을 대비해 국내·외 전지훈련 선수단 5만여명 이상이 문경을 다녀갈 것으로 예상된다.문경을 방문하는 전지훈련팀은 종목별 국가대표팀과 국가대표 상비군, 한국체대를 비롯한 각종 대학팀, 전국의 체육 중·고등학교, 실업선수팀 뿐만 아니라 문경시, 국군체육부대, 한국관광공사 등 3개 관계기관이 긴밀히 협력해 노력한 결과 미국, 중국,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스페인,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등 해외 훈련팀의 참여도 해마다 늘고 있다.문경 전지훈련의 가장 큰 매력은 국군체육부대의 최첨단 시설을 갖춘 경기장에서 국가대표급 체육부대 선수들이 멘토로 지도를 해주는 등 훈련 파트너로서 실전연습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또한 훈련장과 숙소 간 차량지원과 함께 관광체험, 지역 특산품 홍보 등 전지훈련 선수단에 대한 타지역과 차별화된 문경시의 다양한 정책으로 문경을 방문하는 전지훈련 선수단들이 훈련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는 점도 문경이 추진하고 있는 스포츠마케팅의 강점이다.◇전국단위 규모 체육대회 유치시는 문경 브랜드를 앞세운 전국 단위 체육대회를 개최해 문경 브랜드 홍보 및 스포츠도시 문경의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매년 문경의 특산품과 관광명소를 타이틀로 하는 체육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지난해 28개 전국대회에 이어 올해는 33개 전국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또한 국군체육부대와 스포츠 발전 상설협의회를 운영해 문경시, 국군체육부대 간 스포츠발전 상호 협력체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두 기관의 긴밀한 협조체제를 통해 전국 단위 체육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그 중에서도 올해 체육부대와 함께한 2019 KBL 유소년 클럽 농구대회와 제28회 국방부장관기 전국 단체대항 태권도대회는 대회에 참여한 선수들과 학부모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문경의 스포츠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앞으로도 시는 국군체육부대와 연계해 다양한 대회운영 노하우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각종 전국단위 체육대회 유치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스포츠도시 이미지 제고에 노력할 예정이다.◇우수한 공공체육시설 구축시는 국제규격의 최신시설을 갖춘 국군체육부대와 문경국제소프트테니스장, 배드민턴 전용경기장, 문경온누리스포츠센터, 문경국제클라이밍센터, 문경야구장, 영강체육공원 등 다양하고 우수한 스포츠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2019년에는 문경국제정구장 돔 설치와 국민체육센터 및 실내체육관 리모델링 등 공공체육시설 개·보수로 사계절 전지훈련의 스포츠 메카로서의 입지를 더욱 다지고 있다.◇스포츠 메카도시 부상·경제 활성화시는 매년 전지훈련팀과 전국대회 규모가 늘어나고 있으며, 지난해 4만1천여명의 전지훈련 유치와 47개의 체육대회 개최를 통해 모두 40만명이 문경시를 방문해 290억원의 지역경제 유발효과를 거뒀다.올해에도 9월까지 3만6천여명의 전지훈련 선수단이 방문하고 41개의 체육행사를 개최했으며 올해 말까지 9개의 체육대회가 더 예정돼 있어 2019년에도 300억원 이상의 경제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문경시의 적극적인 스포츠마케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는 체육행사와 전지훈련팀 유치로 지역 숙박업소와 음식점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윤환 시장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우수한 스포츠 시설을 활용해 적극적인 국내외 전지훈련 유치와 전국대회 개최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겠다. 문경이 스포츠 메카도시로 거듭나 지역의 미래를 견인해 나가겠다”고 말했다./강남진기자 75kangnj@kbmaeil.com

2019-11-17

생경한 풍경·소리·냄새… ‘낯선 차원’으로 떠났던 길

이제는 지나온 길들을 추억할 때다. 지난봄부터 시작한 경북 바닷길로의 긴 여행은 겨울비와 함께 끝났다. 그러나 여행은, 단 한 번 물리적 체험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회상이라는 마음의 발걸음을 통해 언제든 재방문과 열람이 가능한 무한재생의 세계다. 나는 겨울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봄으로 지나온 길들을 되돌아가며 그때는 미처 눈길을 주지 못했던 풍경과 사람들을 향해 다정하게 인사하고자 한다.여행이 가장 아름다워지는 순간은 뜻밖의 풍경과 마주할 때다. 예기치 못한 특별한 경험을 통해 ‘나’의 상투적인 관념과 습관들이 쇄신될 때, 여행은 더욱 가치 있는 체험이 된다. 널리 알려진 명소를 찾는 것이 여행의 큰 기쁨이겠지만, 알려지지 않은 장소를 발견하거나 또는 전혀 특별해보이지 않는 곳에서 특별한 순간과 만날 때 여행의 기쁨은 무한대로 증식한다. 상투성과 관념, 기성의 유행에 길들여진 ‘나’를 낯선 곳으로 데리고 갈 때, 거기서 퇴화된 감각들로 하여금 새로운 감동과 충격을 받아들여 눈과 코와 입을 갱신하게 할 때 여행은 참된 의미를 획득한다.그러므로 우리는, 가끔씩이나마 편리하고 익숙한 일상의 자리에서 벗어나 생경한 풍경과 소리, 냄새가 있는 ‘낯선 차원’으로 갈 필요가 있다. 시와 평론, 논문, 칼럼, 에세이 등 온갖 글쓰기로 좀처럼 일상을 벗어날 수 없던 나도 ‘낯선 곳에서의 방랑’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다. 일상에 갇혀 있으니 생각도 고인 물이 되어 썩어갔기 때문이다. 새로움에 대한 갈증이 깊어졌다. 새로움을 위해선 익숙함과의 결별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데, 자기존재를 ‘모르는 자’이자 ‘질문하는 자’, ‘감동하는 자’로 복원하는 과정에는 방랑이 필수적이다.그동안 부계(父系)의 혈통인 석양을 따라 서쪽으로, 모계 혈통인 “김 냄새 나는 비”(백석, ‘통영1’)를 따라 남쪽 바다로만 다녔던 나는 울진부터 경주에 이르는 경북 바닷길을 이번에 처음으로 ‘종주’했다. ‘종주’의 사전적 정의는 “능선을 따라 산을 걸어, 많은 산봉우리를 넘어가는 일”인데, 해안선을 따라 해변을 걸어, 많은 파도를 넘어갔으니 이번 여행을 바닷길 종주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여행은 보편 공감의 영역에서 어느 장소의 분위기와 정서를 타인과 공동으로 향유하는 집단체험이 아니다. 개별의 뒷골목에서 상점의 불빛과 음식 냄새와 노랫소리, 살갗에 피어나는 호기심을 나 혼자 감각으로 전유하는 행위다. 특히 경북 바닷길은 패키지 단체 관광이 아닌 단독 자유 여행이어야 한다. 몸은 다시 돌아가도 마음만은 떠나온 자리로 돌아가지 않는 편도 여행이어야 한다. 여행은 어떤 식으로든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키기 마련이다. 나는 이번 여행으로 얼마나 달라졌을까? 내 내면을 새롭게 한 감동과 충격들을 어디서 어떻게 만나왔을까?지난계절 동안 파도를 수직으로 깎아내는 울릉 태하 대풍감에 서 있었다. 아까시 향기가 수평선을 노랗게 물들이는 걸 바라보며 울진 월송정에 앉아 있었다. 해물잡탕국수가 모락모락 끓는 포항 구룡포항에 퍼질러져 있기도 했고, 햇살과 물이 금빛 동색(同色)으로 흐르는 영덕 오십천에서 낚시도 했다. 신라의 달밤 아래 천 년 전 사람들의 미소가 연못에 비치는 경주 월지를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선명한 장면들의 틈새마다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별 것 아닌 순간들’이 내 여행을 키운 ‘팔할의 바람’이었다.지난봄 “만 그루 소나무 가운데”에 세워진 울진 월송정에서 초록빛 솔향에 몸을 씻을 때, 정자 앞 소나무 숲에 한 무리의 교인들이 돗자리를 깔고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차를 아무렇게나 세워놔 경치를 망치고, 마이크와 앰프로 시끄러운 소음을 내 고요한 명상의 기쁨을 깨뜨리는 것이었다.그 공해를 피해 월송정에서 내려오니, 나를 위로하듯 멋진 카페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몸을 뻗어 올린 울창한 소나무 숲 속, 기와지붕과 모던한 통유리 건물이 옛것과 새것, 한옥과 양옥, 동양미와 서양미의 조화를 이루는 카페 ‘노바(NOBA)’다. 화이트 톤의 벽과 은은한 조명빛, 한옥식 나무 서까래가 어우러진 내부도 좋지만, 그곳이 매력적인 이유는 바깥에 있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커피와 함께 피톤치드가 몸속으로 스며들며 불쾌함이 싹 씻겨나갔다. 내 몸속 나쁜 피와 불쾌감까지 깨끗하게 씻어준 그 한 잔의 커피에게 이제야 고맙다고, 늦은 인사를 보낸다.영덕에서는 목은 이색 기념관으로 가는 길, 영해면 괴시마을의 고즈넉한 정취가 마음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그곳의 오래된 햇살에선 해금 소리가 나는 듯했다. 괴시마을을 걷다가 괴정(槐亭) 앞에 멈춰 섰다. 1766년 조선 영조 때 괴정 남준형 선생이 지은 정자다. 마당에서는 전통 활쏘기 체험이 한창이었다. 담장 너머로 그 광경을 엿보다가 활쏘기를 지도하던 영양남씨 괴시파의 어르신과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나도 마당으로 가 활을 당겨 보았다. 지금도 내 몸엔 그날 손끝에서부터 손목, 팔꿈치, 어깨로 이어지던 팽팽한 근육의 긴장이 새겨져 있다. 따사로운 봄볕 속에서 고요히 침묵하는 입술은 바짝 마르고, 머리칼을 한 올 한 올 세고 가는 섬세한 바람에 뺨이 부르르 떨렸다. 그때, 한 눈을 감고 바라본 세상은 참 아름다웠다. 몇 번 연습 끝에 과녁을 명중시키자 어르신께서 활짝 웃으며 박수를 쳐주셨고, 그제야 긴장이 풀리면서 내 온몸이 가벼워졌다.포항에는 뜻밖의 ‘밤의 카페 테라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 아귀찜’에서 아귀간수육과 아귀찜을 배불리 먹고 숙소로 들어가던 길, 모던풍의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밀집해 있는 환호동 카페거리의 불빛에 매료되어 아무데나 들어간 곳이 ‘커피명가’였다. 그곳 야외 테라스에서 영일만의 야경을 바라보며 갓 구워낸 빵과 커피, 아포가토 등 디저트를 즐겼다. 커피도 커피지만 페이스트리와 케이크 등 빵맛이 빼어났다. 깨끗하게 씻긴 달과 별과 어선의 불빛들이 수평선 빨랫줄에 나란히 걸린 밤, 음식 평론가 황광해 선생, 홍성식 기자와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는 어둠이 푸르게 깊도록 좀처럼 지치지 않았다.문무대왕릉과 감포를 지나 선덕여왕릉에 오를 때까지 경주는 내내 맑고 따사로웠다. 황남동에 도착하는 순간, 마른하늘에서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나기는 이른 여름의 열기를 식혀주면서, 선덕여왕을 짝사랑한 천민 지귀처럼 혼자 애달파 끓는 내 가슴 열병을 달래주면서 시원하게 내렸다. 갑자기 내린 비에 황남동은 한바탕 소란스러웠다. 비를 피해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배낭으로 비를 막으며, 막기는커녕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으며 처마를 때리는 빗소리가 왁자지껄 웃음소리처럼 들리는 ‘황남고택’의 문을 열었다. 삐거덕거리는 문소리, 마당에는 벌써 물웅덩이가 요란스럽게 부서지고 있었다. 처마 밑에 겨우 비를 피하고 섰더니 그 집 주인 어르신께서 맨발로 달려 나와 마른 수건을 건네주셨다. 비에 젖은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낸 후 나와 어르신은 마주보며 웃었다. 경주는 그렇게 천년의 마음으로 나를 격하게 환영해준 것이었다.이런 일들도 있었다. 해파랑길을 걷다가 갑자기 배낭의 어깨끈이 떨어져나가 당혹스러웠고, 시장 상인들끼리 드잡이하는 걸 구경하다가 버스를 놓쳤다. 지갑을 두고 와 밥값을 외상으로 치르기도 했다. 경주 보문단지에서 빌린 전동스쿠터가 방전돼 손으로 낑낑 밀면서 간 적도 있다. 그때는 별로 대단한 사건들이 아니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참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다. 늘 환하게 켜져 있어서 빛이 빛인 줄 모르는 사이, 사소하기에 특별한 순간들이 여행을, 우리의 삶을 가로등처럼 밝혀준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겠다. /시인 이병철

2019-11-17

경북 중·서부 발전 新 성장엔진 달다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균형 발전을 위해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제정(2004년)된 지 1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당시 정부는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 가운데 단계적으로 지방으로 이전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2007년 수도권을 뺀 전국 광역시·도에 모두 10곳의 혁신도시가 지정됐다. 현재 이전할 계획이었던 153개 공공기관 중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을 제외한 152개 기관이 이전을 마무리했다. 김천시 율곡동 일원에 조성된 김천혁신도시에는 한국도로공사와 한국전력기술,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교통안전공사 등 총 13개의 공공기관이 이전해왔다. 당초 혁신도시 조성으로 김천은 경북 중·서부 발전의 신성장엔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9조 원의 경제효과와 더불어 5만여 명의 고용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그리 녹록지가 않다. 그렇다고 비관할 필요도 없다. 김천혁신도시가 가지고 있는 인프라는 분명 김천의 미래를 이끌고 나갈 힘이 있다. 이에 본지는 김천혁신도시에 위치한 공공기관과 김천시가 만들어가고 있는 김천의 미래에 대해 알아봤다.◇ 혁신도시란혁신도시(革新都市, Innovation City)는 행정중심복합도시 사업과 연계해 고(故)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지역균형발전사업으로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산(産)·학(學)·연(硏)·관(官)이 서로 협력해 지역의 성장거점지역에 조성하는 미래형 도시를 뜻한다. 혁신도시는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계기로 혁신 주도형 경제의 지역 거점을 형성함으로써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의 특색 있는 발전을 촉진하는데 목적이 있다.당시 공공기관은 중앙행정기관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410개인데, 그중 약 85%인 346개 기관이 수도권에 위치해 있었다. 이 중에서 수도권 입지가 불가피한 것을 제외하고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심의를 거쳐 176개 기관을 이전 대상 기관으로 선정했으며, 이전 기관과 지방의 특성에 맞춰 집단 이전을 하도록 했다. 현재 전국 혁신도시에 152개의 공공기관이 이전을 완료했다.◇ 김천, 혁신도시로 선정되다2004년 1월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공포되자 정부는 공공기관 이전 방안의 기본 원칙과 추진 방향을 2004년 8월 31일 발표한다. 이 발표에서 공공기관은 원칙적으로 집단 이전으로 결정하고, 혁신도시 입지는 시·도지사가 이전 기관 의견을 수렴해 결정키로 했다. 2005년 6월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시·도별 배치 방안 발표에서 경북에는 한국도로공사, 한국건설관리공사, 교통안전공단, 대한법률구조공단,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조달교육원, 조달품질원, 농림축산검역본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국립종자원, 기상통신소, 우정사업조달센터, 한국전력기술(주) 등 13개 이주 기관 명단이 확정됐다.이에 경북도는 그해 9월 혁신도시입지선정위원회를 구성하고, 혁신도시 후보지 신청을 받았다. 경북도내 23개 시·군 중 영양, 청송, 울릉을 제외한 20개 시·군이 유치 신청을 했다. 혁신도시 유치를 신청한 20개 시·군은 접근성 등 지리적 여건, 교육·주거·문화환경, 도시 기반시설, 미래발전 가능성 등을 제시하면서 자신들이 최고의 적지라며 유치에 열을 올렸다.김천시는 농소·남면 일대의 고속철도 역세권개발단지 170만평을 미래형 혁신도시 조성 후보지로 제시하고, 혁신도시 건설에 최적지임을 홍보했다. 김천시의 전략은 그대로 통했다. 혁신도시입지선정위원회 위원들은 접근성과 혁신거점도시 등 전체 평가항목에서 김천시에 고르게 높은 점수를 주면서 2005년 12월 13일 김천시가 혁신도시로 확정됐다.◇ 험난하기만 했던 김천혁신도시 조성김천시가 혁신도시로 결정되긴 했지만, 조성까지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우선 혁신도시 유치에 뛰어들었던 다른 지자체들이 혁신도시 분산론을 꺼내며 반발했다. 탈락한 경북북부지역의 반발이 가장 거셌다. 이들 지역은 낙후된 경북북부 지역을 배제하고 혁신도시를 선정한 것은 북부지역의 몰락과 침체된 경제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것이라며 경북도를 분할, 새로운 도를 신설하는 분도(分道) 운동까지 전개했다. 여기에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혁신도시를 축소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면서 김천시는 혁신도시 건설에 많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혁신도시 변경이 수도권의 각종 규제 완화와 맞물리면서 위기감은 최고조에 달했다.이에 김천시는 10개 혁신도시가 들어서는 전국 14개 시·군·구청장으로 구성된 전국혁신도시협의회를 중심으로 정부의 혁신도시 축소에 공동 대응했다. 당시 박보생 김천시장이 협의회 회장을 맡았다. 김천시가 중심이 된 협의회의 지속적이고, 끈질긴 대응으로 혁신도시 건설은 계획대로 추진하게 됐다.◇ 김천, 경북 성장거점도시로 거듭나김천시는 농소·남면 일대 381만 1천㎡ 터에 8천676억원을 투입해 김천혁신도시를 조성했다.2010년 우정사업조달사무소가 연면적 8천188㎡에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의 사옥을 건립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국도로공사 등 모든 이전 공공기관이 사옥을 건립하고, 2016년 이전을 완료했다.김천혁신도시는 2010년 개통한 KTX 김천(구미)역으로 인해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 됐고, 경부고속도로와 혁신도시를 바로 연결하는 동김천IC와 더불어 인근 김천공단과 구미5산업단지를 연결하는 도로와 혁신도시를 경유하는 국도 우회 대체도로 등이 개설되면서 인근 대도시와의 접근성도 높였다.2015년도 말 기준으로 김천혁신도시 인구가 9천234명이던 것이 현재는 2만1천674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물론 이전 공공기관의 가족 동반 이주율은 55.1%로 전국 10개 혁신도시 가운데 9번째에 불과하지만, 김천시 전체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기에 큰 문제는 아니다.국토교통부가 지난해 10월 전국 10개 혁신도시의 정주 여건 개선 등을 위해 2022년까지 4조3천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혁신도시 종합발전계획(2018∼2022년)도 제9차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심의에서 확정됐다.김천혁신도시는 첨단자동차 산업 육성을 테마로, 첨단 미래교통·안전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자동차 부품·소재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교통안전공단 등과 연계해 첨단자동차검사연구센터도 건립할 예정이다.또 김천시는 지난 7월 16일 교통안전공단과 친환경자동차, 첨단자율주행자동차, 특수목적자동차 등 운행차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인증·승인·기술검토를 수행하는 ‘튜닝카 성능·안전시험센터’ 건립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튜닝카 성능·안전시험센터’는 튜닝에 의한 운행자동차의 안전도 확보를 위한 튜닝기술검토를 실시하고, 신기술을 접목한 튜닝에 대한 성능·안전시험, 튜닝항목 개발 및 확대를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김천시는 자동차 튜닝산업을 지역전략산업으로 육성해 명실상부한 경북의 성장거점도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9-11-14

성주하면 ‘참외’… 노란빛 달콤함으로 유혹

특정한 물품이나 음식 또는, 과일이 그 지역의 명칭 바로 뒤에 붙어 도시를 대표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존재한다.경기도 이천의 도자기, 전라북도 전주의 비빔밥 등이 바로 그런 경우.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지역 대표 특산물’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경북 성주의 참외다.맛깔스런 노란빛으로 사람들을 달콤하게 유혹하는 과일 참외. 성주군은 바로 이 참외의 주산지다. 많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 ‘성주=참외’라는 등식이 새겨져 있다.내년은 성주가 참외를 본격적으로 기른 지 50년이 되는 해다. 지역을 대표하는 먹을거리가 지천명(知天命)을 맞았으니 성주군으로선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1970년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군 농가의 보물이 되어준 ‘성주참외’의 50번째 생일을 의미 있게 축하하고 기념할 계획”이라는 게 성주군청의 각오다.◇참외의 잎은 부지런한 농부의 손과 닮았다참외는 박과의 1년생 덩굴식물로 타원형의 모양을 가졌고, 노란색·연한 초록색 등 여러 가지 빛깔로 탐스럽게 익는다.인도 혹은,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진 참외는 야생에서 자라던 것을 인간들이 오늘날의 형태로 개량해왔다. 참외의 역사는 의외로 길다. 중국에선 기원전부터 키웠고, 이미 1천500년 전쯤에 현대 품종과 유사한 참외가 생겨났다.원줄기가 길게 옆으로 뻗어나며 다른 물체로 기어 올라가는 참외. 참외의 잎은 열심히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손바닥과 닮았다.6∼7월에 꽃을 피우는 참외는 실수로 위험한 음식을 먹었을 때 이를 토해내는 약제로도 사용됐다.한국에선 6.25전쟁을 전후해 재래종들이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육질이 단단하고 단맛이 강한 성주참외는 오래 전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 과일’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자신의 고장에서 생산되는 특산품 ‘참외’에 자부심을 가진 성주군은 ‘나이 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일’이라는 참외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키고, 20~30대의 젊은 세대까지 ‘성주참외의 팬’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미래 소비층이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성주참외’의 브랜드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리뉴얼을 진행하고 있는 것.사실 성주참외가 고품질 재배 기술을 개발하고, 생산 분야와 시설 분야에서의 발전에 애쓰는 동안 현대인들의 소비 트렌드는 급속도로 변했다.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기에 외부적 시장 환경 또한 변하고 있다.성주참외에 열광하며 가격에 상관없이 구매하던 베이비붐 세대들은 이제 대부분 은퇴했거나 은퇴가 가깝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사회로 가고 있는 한국. 해가 거듭될수록 ‘나 홀로 세대’와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고 있다. 그들은 간편식의 구매와 소비가 이미 일상으로 굳어졌다.이런 형태의 환경 변화가 농산물의 생산과 소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인구 구조의 변화는 식습관의 변화도 동반하고 있다.◇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성주참외로깎아 먹는 과일보다는 씻어서 먹기 편한 과일, 가벼운 간편식이 21세기형 식습관으로 굳어지고 있는 세태. 성주참외 같은 과일에겐 매우 불리한 시대가 온 것이다. 집에서 밥을 해먹는 오랜 전통마저 무너지고 있는 게 2019년 오늘이다.요즘 젊은이들은 친환경·유기농 과일을 선호하고,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라이프’가 일상화됐다. 동영상 등 시각 정보에 의존해 소비의 패턴을 결정한다는 것도 이전 세대와는 다른 점이다. 성주군은 이에 발맞춘 ‘참외 홍보 방식’에 고심하고 있다.“내년엔 성주참외 50주년을 기념하는 것과 함께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를 감안해 감각적이고 매력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새로 만들고, 마케팅에도 진력할 예정”이라는 게 성주군청의 목표다.이를 위해 성주참외의 장점을 명확히 드러낼 BI(브랜드 이미지의 통일화)와 신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캐릭터를 개발하고, 참외를 포장하는 박스와 각종 홍보물에도 디자인의 개념을 입힌다는 계획을 세웠다.성주참외가 경북을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특화 품목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는 건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전국 참외 재배 면적의 70% 이상을 성주군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성주군의 참외는 농산물 수입이 늘어가는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가격이 올랐고, 2019년을 기준으로 조수입 5천50억 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연간 18만t이 생산된다는 것은 성주참외가 한국의 대표 과일이라는 걸 증명한다.성주의 농민들은 “다른 지역은 따라올 수 없는 맛과 향을 가졌고,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알아주는 명품 브랜드”라는 말로 자신이 기른 참외에 자부심을 드러낸다. 최상의 위치에 우뚝 선 성주참외와 ‘참외의 고장 성주’라는 명성을 앞으로도 이어가기 위해 군민과 군청은 힘을 모으고 있다.◇‘성주참외’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한 행사들내년엔 ‘성주참외 순회 런칭 행사’가 펼쳐질 예정이다. 1년 중 성주참외가 가장 달콤한 향과 맛을 자랑하는 시기인 3월에서 6월까지 집중적으로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성주참외 리뉴얼 런칭’은 서울과 광역시 등에서 열리게 된다.“생산 현장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소비의 현장으로 진입하는 순회 런칭 행사는 내년에 처음으로 도입하는 것”이란 게 성주군청의 부연이다.성주군은 개선된 성주참외의 브랜드 이미지를 들고 기존 소비층인 50대 이상 중장년들과 더불어 새로운 소비층인 20~30대들에게 파고든다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직접 참외를 들고 대학가와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로 찾아가는 공격적 마케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순회 런칭 행사는 단순한 판매 위주의 홍보 이벤트가 아닌,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풍부하고 문화와 예술이 결합되는 페스티벌 형식으로 소비자들과 만나게 된다.성주군은 이런 행사를 통해 “2020년이 성주참외 50년이 되는 해임을 전국에 알리고, 참외 주산지로서의 명성을 재정립 시킨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성주를 가본 사람은 이미 봤을 것이다. 대구에서 서쪽 방향으로 국도를 달려 낙동강을 건너면 성주참외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장관을 이룬다. 바다처럼 넓은 참외밭은 ‘아름다운 8개의 성주 풍경’ 중 하나가 됐다.성주군은 영남 내륙에 자리한 분지다. 서북쪽은 가야산에 둘러싸여 겨울 북서풍이 덜하고, 동남쪽은 4대강의 하나인 낙동강을 따라 넓은 평지가 펼쳐진다. 이런 자연환경이 성주를 시설하우스 재배의 최적지로 만들었다.또한 풍부한 햇빛과 깨끗한 농업용수, 비옥한 미사질 양토(부드러운 모래진흙)가 참외 재배의 적지라는 걸 알려준다.◇지속적인 혁신이 오늘의 성주참외를 있게 해성주참외의 시설재배가 시작된 것은 1970년대. 오늘날 ‘최고의 참외’라는 위상과 명성을 얻은 배경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하우스 시설재배법을 도입해 발전시킨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 할 수 있다.성주참외는 2006년 ‘성주참외산업특구’ 지정으로 다시 한 번 도약의 계기를 맞이했다. 특구 지정은 농가소득 증대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지원 조치인 동시에 성주참외의 차별성과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은 경사였다. 이후 성주군은 농산물산지유통센터를 건립했고, 산지 가격 형성을 주도하는 등 유통 과정에서도 혁신을 추진했다.2008년 고품질 참외를 소비자에게 공급하기 위한 저급 참외 수매, 2011년 참외 박스 10kg 규격화와 디자인 단일화, 참외사업의 자동화 등이 바로 그 혁신의 결과물이다.농민들의 노력과 성주군의 지속적인 지원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상품 고급화를 위한 공동브랜드 도입과 철저한 선별 과정을 거쳐 품질을 인증하게 한 것도 참외 가공품 개발, 수출, 기능성 참외 품종 재배 등의 성과로 이어졌다.반세기의 역사를 가진 성주참외. 성주군은 향후 이를 알리는 기념행사도 열 예정이다. ‘2020년 성주생명문화축제’와 ‘제7회 성주참외 페스티벌’ 등이 바로 그것.이와 관련 성주군청은 “우리 군 농민들은 성주참외의 명성을 만들어준 선대 농민의 수고를 잊지 않고 있다”며 “성주참외 재배 농가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한 각종 프로젝트를 꾸준히 추진할 방침”이라고 약속했다./전병휴·홍성식 기자

2019-11-14

첨단과 전통의 공존, 영주시 100년 먹을거리 ‘새 동력’

영주시는 지역균형발전과 미래지향적 행정 계획을 바탕으로 후손에게 물려줄 경쟁력 있는 도시 건설을 위해 다양한 제도 개선과 100년 먹을거리 마련을 위해 역량을 모으고 있다.올해는 경제, 사회, 문화, 복지, 농업, 보건, 체육,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원과 정책 마련 등 영주 발전을 다지는 한해가 됐다.이 중 산업을 통한 미래 역량을 결집한 베어링산업 국가산단, 2021년 개최를 목표로 준비 중인 영주 풍기 세계인삼엑스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통한 세계 속의 문화관광 중심 도시로서의 역량 강화, ‘한 테마파크 사업’으로 추진 중인 선비세상은 영주 미래의 새로운 동력이 될 전망이다.◇베어링산업 국가 산단 추진 배경시는 국내 베어링산업 앵커기업인 일진그룹 (주)베어링아트를 발판으로 첨단베어링산업을 지역의 대표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국내 유일의 베어링 전문연구기관인 하이테크베어링 시험평가센터 건립, 베어링 관련기업, 연구소 유치에 나서는 등 베어링산업 중심지 기반구축을 적극 추진 중이다.시의 지속적인 베어링산업 육성 당위성 요구에 중앙정부에서도 국가경쟁력을 강화할 산업으로 인정해 2017년 7월 첨단베어링산업 클러스터 조성사업을 새 정부 100대 국정과제 경북지역공약으로 선정, 이후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베어링 클러스터 사업은 총 5천억원 규모의 국토부 사업으로 2천500억원이 투입되는 베어링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과 산업부 사업으로 2천500억원이 투자 되는 첨단베어링 제조기반 구축, 핵심원천기술 개발과 고부가 베어링 제조기술개발, 베어링 전문 인력 양성 및 사업화 지원 사업으로 구분 된다.사업대상지는 영주시 적서동, 문수 권선리 일원에 130만㎡ 규모로 조성된다.△지역 불균형 해소 큰 기여할 듯경북 북부권 일대 지역에 국가 산단이 전무한 상황에 있어 베어링클러스터가 들어서면 지역 불균형 해소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영주를 중심으로 인접한 중부내륙 3개도 8개시군(충북동부, 강원남부, 경북북부) 1만5천개 일자리 창출과 인근 동양대학교 등 7개 지역대학 인재확보 및 청년일자리 창출에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 된다.계획대로 첨단 베어링클러스터 사업이 추진될 경우 베어링 국산화 83.9%, 수출 5조원에서 10조원, 베어링 세계시장 4.1%에서 10% 점유, 세계베어링 시장 10위에서 5위 진입 달성 목표가 가능해질 전망이다.베어링클러스터 조성 사업은 2027년까지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2021풍기세계인삼엑스포시는 세계 제일 풍기인삼의 경쟁력 확보와 국내 최초 재배인삼 시효지인 풍기의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하고 글러벌 인삼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2021풍기세계인삼엑스포 개최를 추진 중이다.2021풍기세계인삼엑스포는 영주시 풍기읍과 봉현면 일원에 총사업비 215억원의 예산을 투자해 87만5천㎡규모에 주 행사장과 부대행사장을 마련해 전시, 이벤트, 교육, 학술, 경연대회, 체험 행사 등을 펼치게 된다.엑스포 개최를 위해 시는 2017년부터 현재까지 주민여론 조사 및 부지선정 용역, 풍기세계인삼엑스포 기본구상 및 타당성연구용역, 올해 2월 경북도 지방재정평가를 완료했다.또, 올해 5월부터 9월까지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 발주와 중앙부처 투자심사 의뢰에 이어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국토부 지역수요 맞춤지원 공모사업에 선정 국비 30억원을 확보해 엑스포 행사장 부지를 매입했다.시는 올해 중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 완료와 도비예산 확보, 조직위 출범준비(발기인 대회, 법인설립 허가 신청, 법인등기, 사무실 및 인력확보)를 마치고 2020년에는 조직위를 1-2단계로 출범하고 예산편성, 실시설계 완료 및 조성공사 추진, 부문별 세부계획 추진, 홈페이지 개설 및 홍보에 들어간다.2021년에는 행사장 조성공사 완료와 함께 풍기세계인삼엑스포 홍보 마케팅, 2021풍기세계인삼엑스포를 9월에서 10월중 개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선비세상 조성 사업 추진시가 추진 중인 선비세상은 한국문화테마파크조성 사업의 또 다른 명칭이다.한국문화의 기반을 튼튼하게 해줄 선비세상은 배움의 자양분으로서의 역할과 새로운 상품과 교육의 컨텐츠는 사람들을 불러 모을 힘을 갖게 되면서 영주 한국문화테마파크는 자생력을 가진 테마파크로 성장 할 것으로 전망 된다.선비세상은 영주시 순흥면과 단산면 일대에 추진 중인 사업으로 총사업비 1천470만3천600만원이 투자돼 96만974㎡규모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추진되는 사업이다. 선비세상에는 한문화RD지구에 한문화센터, 한국전설체험관, 전통인형극장, 전래동화4D상영관, 오픈공연장, 전망대, 선비정원, 민가정원, 인포메이션 등이 마련된다.전통숙박 지구에는 전통숙박시설, 전통음식촌, 습지공원, 솟대마을 등이 시설되고 전통문화지구에는 전통무예장, 국궁장, 매화공원, 선비의길 야외무대 등이 갖춰진다.선비처럼 보고, 입고, 먹고, 배우고, 즐기며 선비정신의 가치를 생각해 보는 공간인 선비세상은 선비를 핵심테마로 한옥, 한복, 한식 등 한국문화속 선비정신을 경험하는 공간이 마련된다.◇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된 부석사·소수서원△부석사부석사는 676년 신라 화엄종의 개창자 의상에 의해 창건된 사찰이다.이후 고려(918~1392)와 조선(1392~1910)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절 없이 한국불교의 미타신앙을 대표하는 산사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부석사는 종합 승원으로서 출가자와 신도들의 신앙과 수행과 생활을 위한 다양한 건축물을 갖추고 있다. 신앙 공간으로는 무량수전, 지장전, 자인당, 응진전, 단하각이 있다.주불전인 무량수전 내부에 봉안된 아미타불상은 서방세계에 있는 아미타불을 의도해 좌향 불상을 동향으로 자리 잡아 부석사가 미타신앙을 중심 교리로 삼고 이를 가람 구성에 구현한 것으로서 의미가 있다. 무량수전은 13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의 하나이며, 중국 북방과 남방건축 양식이 모두 나타나는 독특한 유산으로 동아시아 목조건축의 발달과정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가치를 갖는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는 유산이다.△소수서원중종 38년(1543)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말의 명신이며 대학자인 회헌 안향(安珦)선생을 추모하고 그 분의 얼을 계승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해 사묘를 건립하고 영정을 봉안하고 강학당을 세워 강학의 중심으로 삼도록 한 것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다.그 후 명종 4년(1549)에 풍기군수 퇴계 이황이 서원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고 국가적인 뒷받침을 위해 백운동서원의 사액을 요청해 이듬해인 1550년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친필 현판과 함께 토지, 서책, 노비 등을 하사받아 최초의 사액서원이 됐다.소수서원은 고종 때 서원철폐령이 내려진 가운데서도 훼철되지 않은 전국 47개 서원중의 하나이며 서원의 기능이 다할 때까지 약 4천여명의 유생들이 이곳에서 수학했다.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부석사와 소수서원에 대해 문화재활용사업을 펼쳐 나갈 방침이다.시가 추진하는 문화재활용사업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관람과 강연, 사진전시 및 체험활동, 야간관람과 숙박을 병행하며 여러 가지 자료를 집대성한 사료집 발간, 디지털 안내시스템 구축, 홍보리플렛과 종합 가이드북 발매와 원형유지를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세계인이 찾을 수 있는 명소로 만들어 나가는 사업이다./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2019-11-13

소규모 황금노선 운항 성공 ‘투자 선순환’ 부른다

□ 에어포항, 우여곡절 겪으며 포항공항에서 사라지다포항의 하늘길 관문인 ‘포항공항’은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진행된 활주로 재포장공사 이후 취항 항공사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었다.이에 포항시·포항시의회·포항상공회의소·포항지역발전협의회가 국토교통부와 아시아나항공을 방문해 35만여 명이 참가한 경북 동남권 주민들의 서명부를 전달하는 등 항공기 재취항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김포행 대한항공의 재취항에는 성공했지만, 기존 아시아나가 운영하던 제주노선이 없어져 ‘절반의 성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운항횟수 축소, 노선의 단일화, 지속적인 재정지원부담 문제가 매번 발목을 잡자 아예 민자 유치를 통한 지역 저가 항공사 설립으로 돌아섰다.설립 초기, 한중 합자사업 형태로 추진되기로 했으나 당시 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 관계 악화로 인해 무산된 후, 동화전자가 초기 자금 100억 원을 들여 지난해 2월 7일 포항∼김포 노선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운항에 나섰다.포항∼제주 노선과 김포∼포항 노선에 편도 총액 1만원이라는 파격적 할인도 운항 초기에 실시하며 이용률이 최고 85.5%에 달하는 등 인기를 얻기도 했다.하지만, 할인기간 이후 책정된 정상 가격이 KTX 요금과 비교해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고, 사우스웨스트 항공사가 ‘박리다매’정책을 펼치며 잠재 고객들을 발굴하고 유지시켜온 행보와는 달리 에어포항은 그자리에만 머물렀다. 점차적으로 승객이 줄어들었고 최저 이용률이 40.4% 수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이에 에어포항은 매달 4억∼5억원 가량 적자가 계속적으로 발생했고, 경영상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더욱이 에어포항이 보유한 항공기 2대 운행에 적합한 인력 수준이 많아야 90명으로 업계가 분석했지만, 무려 120명을 고용하며 자금압박을 가중시켰다.또한 외부 투자자와 합리적인 회사 경영을 진두지휘할 임원진들의 절반 가량이 군 출신으로 배치돼 있어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할만한 대책도 성사시키지 못했다.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경우, 군 출신들은 대부분이 비행기 조종사에 그쳤고, 경영진과 임원진들은 모두 타 항공업계에서 주목할 만한 실적을 낸 바 있는 ‘검증된 전문경영인’으로 구성됐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이러한 문제점이 중첩되다보니 결국에는 ‘매각설’이 나돌기 시작했고, 지난해 10월 기존 동화전자에서 신설 소형항공사 법인인 베스트에어라인으로 대주주가 바뀌게 됐다.동화전자 투자분의 15% 정도를 인정하는 조건과 동화전자의 기존 채무 50억 정도를 상환하기로 했고, 직원 고용도 보장해주기로 한 것으로 당시 알려졌다.그러나 이미 ‘곪아있던’ 에어포항의 기존 채무가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고 베스트에어라인 측도 결국 기존 직원들을 대거 권고사직 등의 형태로 해고하기 시작했다.이 과정에서 직원들의 급여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직원들이 노동청 등에 소송을 내는 사태로 악화되는 등 회사의 명운이 더욱 암울해져만 갔다.이어 보다못한 경북도와 포항시가 출자지원금 40억원을 에어포항에 지원하려고 했으나 ‘이미 포항공항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은’것으로 알려진 에어포항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끝내, 지난해 12월 1일부터 포항∼김포 노선, 12월 10일부터 포항∼제주 노선 운항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당시 에어포항을 이용하던 시민들의 불편함과 실망감은 컸다.에어포항을 회사 출장용으로 자주 이용하던 한 시민은 “회사와 거리도 그다지 멀지 않고 무엇보다도 업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어 자주 애용했다”며 “하지만 무턱대고 이리 운항을 중단해버리는 것은 이용객들을 우롱하는 일”이라고 토로했다.운항 중단 당시, 에어포항(베스트에어라인)은 중단 이유로 비행하던 CRJ-200기종이 지난 2007년부터 생산이 중단돼 정비부품 공급에 어려움을 겪어서라고 설명했고, 이후 언론을 대상으로 한 공식기자회견에서 ‘포항 본사 사무실을 철수해 서울로 직원을 집중시키겠다’고 말한 뒤, 보잉 기종의 도입과 새 노선을 준비 중이라며 ‘장밋빛 계획’을 내세웠지만 끝내 실현하지 못했다.에어포항의 재기가 어렵다고 본 포항시도 ‘새로운 지역항공사’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추가 투자자 등의 확보가 어려워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시는 이에 포항공항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대한항공의 포항∼제주 노선 재운항에 초점을 맞췄고, 지난 9월 16일 이 노선이 운항을 시작했다.그러나 대한항공이 기존에 수익을 내지 못해 시의 재정지원금을 받아온 김포∼포항 노선의 운항을 중단하면서, 포항공항의 온전한 하늘길이 또다시 무산돼 버렸다.□ 포항 지역항공사 다시 취항하나세계 3대 항공사 사우스웨스트(South West)가 자리잡고 있는 미국 텍사스 댈러스는 요즘들어 가장 급부상하고 있는 ‘핫’한 도시다.미 연방 인구조사국이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 7월부터 2017년 7월 사이 텍사스 주 댈러스 대도시권(댈러스-포트워스-알링턴) 인구는 14만6천238명이 증가하며 전체 인구 740만여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신생아 수(10만 2천423명)가 사망자 수(4만5천826명)을 크게 상회했고, 국내 전입자 수가 전출자보다 5만8천829명 많아 미국내 최고를 기록했으며, 해외 유입 인구도 3만798명에 달했다.댈러스의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교통’편의가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교통 인프라 구축이 뛰어나 기업들이 사업하기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기업들이 사업 정착을 하면서 일자리가 자연스레 늘어나게 되고 이에 뒤따른 부가사업도 증가하고 있다.실제로 최근 삼성전자 공장이 댈러스에 위치하면서 한인사회가 떠들썩하기도 했다. 10만명이 웃돈다고 추산되는 한인사회의 규모가 3만명 이상 더욱 늘 것으로 한인사회는 전망하고 있다.한인 김모(43)씨는 “삼성전자 공장이 댈러스에 들어오면서 한인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입지 선정에 까다롭기로 알려진 삼성전자의 선택은, 타 유수기업들에서도 반영되는 만큼 댈러스의 발전이 더더욱 기대된다”고 말했다.러브필드 공항의 터줏대감인 ‘사우스웨스트’항공사는 우리나라 포항공항 격인 러브필드 공항에서 오랜 시간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국내 노선을 확장시켜 왔다.‘10분 턴’ 등 빠른 회전율로 특히, 시간이 촉박한 비즈니스맨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이러한 신뢰가 결국 기업들 유치에도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지역주민들의 평가다.댈러스 주민인 KIM(50·여)씨는 “대학생 때부터 사우스웨스트를 애용해왔다”며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노선이 구축돼 지역 교통의 자랑거리이다”고 말했다.사우스웨스트 기장 출신인 빌 콜씨는 ‘에어포항’의 좌초에 대한 얘기를 듣자마자 ‘너무나 비합리적이고 낭비적인 운영’이었다고 일갈했다.우선, 전문 경영인들과 회계사 등이 구성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최소 노선을 구비하고, 최소 인력으로 ‘여러번’ 운항하는 실리적인 운영방식을 보여야 흑자운영에 접어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흑자운영이 전제돼야 투자자들이 수익을 기대해 추가적으로 투자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선순환’구조가 형성된다고도 했다.빌 콜씨는 “포항 지역항공사가 재부활하려면 우선 시민들 중에서 사업자 등이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나 지자체가 이러한 과정을 도우며 머리를 맞대 작지만 강한 항공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라고 첨언했다.에어부산 측도 마찬가지다.에어부산 관계자는 “우리 에어부산도 초기에 일정부분 자금적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황금노선이라 지칭되는 서울∼부산 노선의 성공을 위해 집중했고 이를 토대로 오늘날의 에어부산이 자리잡게 되는 큰 힘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이런 가운데, 울릉공항도 올해 말까지 설계공모를 마친 뒤 오는 2023년 공사에 돌입, 2025년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울릉도의 관광 수요는 물론이거니와, 포항공항을 허브공항으로 세운 새로운 ‘지역항공사’가 이를 통해 국내 노선 확장을 시도할 수 있어 그 존재 필요성이 다시금 부각된다는 것이 업계 전현직 관계자들의 평가다.특히 서울에서 울릉도까지 비행시간이 1시간 정도로 짧고, 최소 6∼7시간이 걸리는 등 육지와 연결되기 위한 시간과 비용 모두 단축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어 ‘황금노선’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끝※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황영우기자 hyw@kbmaeil.com

2019-11-13

묵 한사발에 담긴 농밀한 메밀향에 취하다

묵집3곳서너 해 전에 가본 적이 있는 식당이다. 음식이 아주 좋았다. 메뉴는 단출했다. 칼국수와 메밀 묵밥. 국수와 메밀묵이 별다른 맛이 있을 리는 없다. 메밀묵과 밀가루 국수의 맛이었다. 오래전에 먹었던 그 음식 맛이었다. 사진을 찍었지만, 정리할 때 막연했다. 간판이 없다. ‘간판 없는 집’으로 저장. 그리고 잊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름은 ‘두산묵집’. 간판은 여전히 없다)오래간만의 영주 나들이. 풍기읍은 영주에서도 제법 멀다. ‘확인 차’ 다시 가보기로 했다. 아뿔싸. 가게 이름도 모른다. 초행일 때도 안내하는 이의 차를 뒤따라 갔다. 풍기 외곽 언저리라는 것밖에. 위치를 모르고, 주소도 없다. 이름으로 검색하는 것도 불가능.알만한 이들에게 전화하고, 인터넷으로 열심히 검색했다. 가게 전화번호 ‘054-636-8304’를 겨우 구했다. 전화하니 엉뚱한 대답. 나이 드신 노인분이, “주인이 없어 주소를 모른다”는 대답. 나중에 받은 명함의 ‘영주시 봉현면 두산2동 838번지’나 가게 이름 ‘두산묵집’ 모두 차량 내비게이션에 나타나지 않는다. 도깨비에 홀린 듯하다.‘영주시 테라피로 417’. 이 정보(?)는 도움이 된다. 차량 내비게이션에 나타난다.음식은 단순하지만 수준급이다. 전형적인 경북 북부의 밥상이다. 반찬들이 얼마간 맵고 짜다. 조미료를 절제하니, 달지 않고 투박하다. 북어포무침은 간간하지만 맛있다. 거칠지만 잘 무친 맛이 난다. 간장이 아주 재미있다. 일반적인 간장보다 칼칼하고 짜다. 콩간장에 어간장(맑은 생선 젓갈 물)을 섞었다. 비린내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싫어할 수도 있다.칼국수, 메밀묵, 도토리묵이 메뉴다. 가격은 6천 원 선. 술은 동동주가 있다.칼국수는, 당연히, 가게에서 직접 썬 것이다. 경북 북부의 칼국수는 대부분 콩가루를 넣는다. 이 가게의 칼국수에는 검은콩을 넣었다. 국수에 작은 점들이 있고, 전체적으로 검은 색깔을 띤다. 묵도 직접 쑨 것이다. 매끈하지 않지만 부드럽고 툭툭 끊어진다. 오래전의 음식이다.점심시간엔 만석. 기다리는 줄도 생긴다. 풍기읍내에서도 제법 떨어진 곳이지만 현지 손님들로 가게가 빼곡하다. 30~40명 정도 앉는 좌석에 빈자리가 없다. 바깥에는 승용차들이 넓은 지방도 길가에 빼곡하다.바쁘기도 하고, 별로 친절하지도 않다. 무뚝뚝하다. 국수나 메밀 묵밥 한 그릇 후루룩 먹고 나가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몇 마디 물어보면 바로 지청구 듣기 십상이다.“메밀묵을 직접 쑤느냐?”는 질문에 대답이 없다. 그저 쳐다본다. “메밀묵을 직접 쑤지, 그럼 어디서 사 오느냐?”고 되묻는 표정이다. 구수한 칼국수에서는 밀가루 냄새가 풀풀 난다. 쫄깃하기는커녕 툭툭 끊어진 채로 내놓는다. 밀가루의 풋 냄새가 아련하다.40년 전통의 순두부, 태평초 전문 식당이다.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영주 읍내에 있다. 가게 안팎의 분위기가 아주 좋다. 바깥마당은 가정집 분위기. 깔끔하게 정리한 작은 정원이 정취가 있다. 아늑하다. 실내는 깔끔하면서 아늑하다. 대청마루를 식당 공간으로 개조했다.메뉴는 순두부와 태평초다. 태평초는 메밀묵, 돼지고기, 신김치를 넣고 한차례 끓인 음식이다. 안동, 예천, 영주 등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다. 영조 시대 시작했다는 탕평채에서 태평초가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지는 않다. 태평초가 서민적인 음식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겨울이면 신김치는 흔하다. 메밀이 흔한 계절이다. 메밀묵도 겨울이면 흔하다. 쇠고기 대신 돼지고기다. 서민적인 음식, 가난한 시절의 음식이다.봉화는 인접 지역이다. 봉화유기를 사용한다. 묵직한 유기가 품위를 더한다. 서민 음식인 태평초를 유기에 담았다. 어색하지 않다.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든다.순두부는 아주 좋다. 재래 간장을 조금 얹어 먹으면 고소한 기운이 온몸에 번진다. 가벼운 술안주, 해장에도 좋다. 반찬들이 소박하지만 단아하다.두 가지 반찬을 눈여겨볼 만하다. 된장고추박이. 시판 된장고추박이는 흉내만 낸 것이다. 전통 재래 된장도 아니고 제대로 삭힌 것도 아니다. ‘전통영주묵집’의 된장고추박이는 재래 된장에 고추를 넣어서 제대로 삭힌 것이다. 배추 무침도 재미있다. 경북 북부지역은 배추를 잘 사용한다. 배추전도 부치고, 배추 무침도 흔하게 사용한다. 잘 만진 배추 무침이다.묵직한 유기에 푸짐하게 담아낸 순두부와 단아한 반찬들, 추천한다.40년 전통, 노포다. 널리 알려진 ‘전국구 맛집’이다. 묵밥과 두부가 메뉴의 전부다. 메밀 묵밥은 구성이 재미있다. 가마솥에서 직접 쑨 메밀묵 채에 고춧가루, 김 가루 등을 뿌려서 내놓는다. 육수가 ‘자박자박한’ 그릇에서 먼저 메밀묵을 건져 먹는다. 작은 그릇에 좁쌀밥을 준다. 마지막에 좁쌀밥을 넣고 말아 먹는다. 가난한 시절의 음식이다.순흥으로 귀양 온 금성대군은 ‘단종 복위’를 꾀했으나 실패. 안동 감옥에 하옥된다. 순흥의 많은 이들이 이 사건에 얽혀서 죽었다. 융성했던 ‘순흥도호부’는 단종 복위 사건으로 강등된다.영주시의 홈페이지 등에서는 이때 몰락한 순흥 사람들이 먹을 것이 귀해서 메밀묵을 먹었고, 이게 지금의 ‘순흥 묵’으로 연결되었다고 말한다. 그렇지는 않다. 영주는 태백산과 멀지 않고, 소백산 지역이다. 다른 지역보다 산지가 많고 평야는 좁다. 태백산맥 언저리의 산골에서는 대부분 메밀과 도토리를 많이 먹었다. 어디나 식량은 귀했다. 결국, 메밀과 도토리 등이다.메밀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 막국수, 메밀전병, 메밀묵 등이 모두다. 국수가 필수적이었던 경북 북부는 수입 밀가루가 흔해지면서 죄다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었다. 안동 지방의 ‘건진국시’나 ‘제물국시’ 등이다. 메밀로 묵을 만들기는 힘들지만, 방법은 쉽다. 메밀을 곱게 갈아서 가루로 만들고 체로 친다. 뜨거운 물을 부어 곱게 내린 물을 가마솥에 넣고 끓인다. 이때 눋지 않게 나무 주걱으로 잘 저어준다.‘순흥전통묵집’의 메밀 묵밥은, 겉면이 매끈하지 않고 부드럽게 감기는 맛이 있다. 두부도 좋다. 이른바 ‘시골 두부, 촌 두부’지만 단단하지 않다. 입자는 거칠지만, 입안에서는 부드럽다. 수준급 두부다. 콩의 단맛과 적당히 부드러운 식감이 아주 좋다.빵 도넛 2곳37년의 업력이다. 생강 도넛이 유명하다.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가게다. 사과, 인삼, 커피 등을 첨가한 도넛도 개발했다.경북 북부 도시인 영주에 도넛 가게가 있다. ‘영주의 도넛 가게’? 얼마간 생뚱맞다.주인 부부는 오랜 기간 외지에서 경제적으로 고생했다. 서울 생활을 접고, 남편 고향인 풍기로 낙향한 후 분식집을 열었다.‘정아분식’. ‘정아’는 아내의 애칭이었다. ‘정아분식’을 운영하던 시절 생강 도넛을 개발했다. 가게 이름은 ‘정아 생강 도너츠’. 이 이름이 ‘정도너츠’로 바뀌었다.지금은 서울을 포함 전국 여기저기 분점,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원래 ‘정도너츠’ 자리는 ‘본점’이고 영주 읍내 외곽의 새 건물은 ‘본사’다. 본사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구마 빵’ 전문점이다. 쿠키 모양, 비스킷 모양 등 다양한 고구마 첨가 빵을 만날 수 있다. 빵이라고 부르지만, 쿠키, 빵, 케이크가 혼재된 형태다. 실제, 고구마 케이크도 있다.풍기 IC 부근에 있다. 새로 지은 건물이다. 바깥 분위기는 반듯하다. 내부 인테리어는 깔끔하다. 마치 카페 혹은 대도시의 디저트 카페 같다. 실제로도 카페처럼 운영한다.연결된 건물에서는 고구마 빵 관련 체험학습도 할 수 있다.‘미소머금고’의 고구마 빵은 맛, 식감뿐만 아니라 색깔도 잘 살렸다.비슷한 맛이라고 짐작하지만, 실제 먹어보면 맛이나 식감이 모두 다르다. 선물용 세트도 판매한다. 1만 원부터 3만 원대까지 다양한 세트가 있다./음식평론가 황광해

2019-11-13

광활한 가을이 머무는 산사서 천년 세월을 건너 남겨진 혜안을 찾다

균형과 절제·조화와 우아함을 갖춘 부석사유서 깊은 절을 찾아가는 길. 가로수로 서있는 은행나무에서 눈이 부신 황금빛 잎사귀가 무더기로 떨어지며 함박눈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 읽던 동화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가운데 웅장하게 들어선 부석사. 초입에서부터 경내까지 나무란 나무는 모두 가을 옷을 갈아입고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그 노랗고 붉은 형상이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일주문으로 들어서자 오면서 본 ‘은행나무의 화려한 페스티벌’이 한 번 더 펼쳐졌다. 이어서 관광객들에게 눈 호강을 시켜주는 천왕문과 안양루가 나타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무량수전. 정면 5칸·측면 3칸의 무량수전은 팔작지붕이 미려하기로 이름 높은 국보(제18호)다. 부석사의 본전인 무량수전은 건축을 전공한 학자들로부터 “한국에서 가장 멋들어진 목조 건물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60여 년 전에 국보로 지정된 이 건축물은 배흘림기둥(조화와 안정을 위해 기둥 중간 부분의 배가 약간 볼록하도록 꾸민 양식), 귀솟음(건물의 귀기둥을 가운데 기둥보다 높게 꾸미는 기술), 안허리곡(건물 가운데보다 귀퉁이 처마 끝을 더 튀어나오도록 만든 것) 등의 공법으로도 주목받는다.나무 문 하나, 기둥 하나에까지 선조들의 숨결이 묻어나는 부석사 건축물들은 균형과 절제, 조화와 우아함을 모두 갖췄다.꽃 피는 봄과 눈 내린 겨울 풍경이 절경이라는 부석사. 하지만 사람을 설레게 하는 면에선 부석사의 가을 풍광이 최고일 듯했다. 이 사찰엔 국보도 여러 개다.앞서 말한 무량수전을 필두로 측면을 바라보는 독특한 형태로 제작된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은 고려시대 때 만들어진 것으로 “부처의 위엄이 잘 표현돼 있다”는 평가를 얻었다.천년 세월을 뛰어넘어 무량수전 앞에 오연하게 서있는 석등(石燈) 역시 국보다. 3m쯤되는 이 석등은 신라시대 석공의 돌 다루는 기술이 얼마나 세련되고 정교했는지를 알려준다. 볼거리 가득한 절 안을 이리저리 돌아보다 조사당(국보 제19호) 앞에 섰다. 그곳엔 사찰을 만든 의상대사의 형상이 안치돼 있었다. 그걸 본 순간, 기자의 상상력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까마득한 옛날로 날아가 부석사가 만들어질 무렵에 이르렀다. 모든 것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가을날이었다. 범종루 근처에서 들려오는 법고(法鼓) 소리가 맑고 선하게 살아오지 못한 지난 삶을 반성하게 했다. 부석사는 ‘착하게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하게 하는 절이다.내성천 아슬아슬 외나무다리 건너 ‘무섬마을’이른 아침. 보드라운 물안개가 관광객들의 볼을 어루만졌다. 저 멀리 강을 건너기 위해 나무로 만든 다리가 보였다. 산속에선 작은 새가 청명한 소리로 울고 있고…. 도시에선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포근한 둥지처럼 자리 잡은 무섬마을. 이곳엔 사당과 우물이 없다.옛날 풍수학자들은 “마을이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내놓았고, 이를 믿은 사람들이 우물을 만들지 않아서다. 사당 역시 홍수가 날 경우 조상들의 위패가 떠내려 갈 것을 우려해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또 하나 무섬마을이 특이한 것은 농사짓는 땅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엔 농부들이 배를 타고 건너편 탄현리까지 가서 모내기와 벼 베기를 하곤 했다. 아슬아슬한 외나무다리가 생기고부터 배는 사라졌다.‘무섬’이란 단어는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의미한다.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인 것. 그 이름처럼 무섬마을은 물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휘돌아 앞을 흐르는 내성천은 서정적인 풍경을 이 마을에 선물했다. 그런 이유로 일 년 내내 관광객이 적지 않다.하지만 마냥 좋았던 시절만 있던 건 아니다. 조선 후기까지 경상도 각 지역 특산품이 모여드는 큰 마을이었지만, 장마 때면 불어난 물에 의해 다리가 떠내려가고 마을은 어김없이 수해를 입었다. 무섬마을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전통을 이어온 귀한 공간이다.무섬마을을 대표하는 건 목재 외나무다리.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든 이 다리는 폭이 30cm에 길이가 150m에 이른다. 무섬마을을 찾았다면 꼭 한 번 걸어보길 권한다. 현재는 물이 얕아 빠져도 큰 위험은 없을 것 같았다.‘양반의 고장’답게 무섬마을엔 고택과 문화재도 숱하다. 해우당고택, 만죽재고택, 김규진 가옥, 김위진 가옥 등을 살펴보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전통한옥에서 생활하고 잠드는 체험관광도 가능하다. 문의는 054-633-1011(무섬마을 전통한옥 체험수련관).600살 대장부 ‘영풍 태장리 느티나무’자그마치 600살이라고 했다. 속을 텅텅 비워내면서까지 견뎌온 그 아득한 시간이 실감으로 와 닿지 않았다. 기자가 ‘무한’이 아닌 ‘유한’을 살아가는 인간이라서 그랬을 터.곧게 뻗은 소나무와 초봄에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가 선비의 지조를 상징한다면, 영주시 순흥면 태장리에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 느티나무는 ‘대장부의 넉넉한 품’이라 부르면 좋을 듯했다.둘레가 9m에 가깝고 동서와 남북으로 뻗어 내린 가지가 25m에 육박하는 태장리 느티나무는 제 몸 안에 웅장함과 수려함을 두루 가지고 있다.만약 여름날 초등학생들이 소풍을 온다면 족히 2~3학급 아이들 모두에게 넉넉한 그늘을 나눠줄 수 있겠다 싶었다.세월의 흐름과 지나온 영주의 역사를 눈앞에서 지켜봤기에 누구보다 현명해 보이는 고목. 하지만, 세상의 현자(賢者)가 그러하듯 나무는 모든 것을 알지만 입을 열어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멋질 수 있는 것 아닐까? 태장리 느티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74호다. 마을 사람들은 휴식처를 제공하고, 마음의 위안을 선물해온 이 나무를 무엇보다 아낀다고 한다. 해마다 정월 보름이 되면 나무 아래서 동제(洞祭·마을의 공동 제사)를 지내며 안녕과 행운을 빈다.프랑스의 시인 이지도르 뒤카스(Isidore Ducasse)는 “나무는 자신의 위대함을 모른다”라고 했다. 이 짧은 문장에 담긴 깊숙한 은유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태장리 느티나무와 만나는 것이다.조선의 장관 3명이 생활한 ‘삼판서고택’판서(判書)란 지금으로 말하자면 장관에 해당하는 고위직 벼슬이다. 특정한 어떤 한 집에서 3명이나 되는 판서(장관)가 나왔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드문 일. 가문으로선 영광이고 혈족들에겐 큰 자랑이다. 영주시 가흥동 언덕 위엔 삼판서고택(三判書古宅)이 있다. 여기서 3명의 판서는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활동한 영주 출신의 정운경, 황유정, 김담을 지칭한다. 이들 모두는 앞서 말한 삼판서고택에서 살았다.고려 말기에 형부상서(조선시대 형조판서에 해당)를 지낸 정운경은 ‘조선의 일등 개국공신’으로 불리는 삼봉 정도전의 아버지다. 삼봉의 어머니는 순흥 안씨로 알려져 있다.정운경의 사위인 황유정은 조선이 개국된 초창기 공조, 예조, 형조에서 판서로 일했다. 그 역시 정도전과 정치적 입장을 같이 했고, 마찬가지로 개국공신이었다.조선 세조 때 이조판서로 봉직한 김담은 황유정의 외손자. 황유정은 사위에게 집을 물려줬는데 그 사위의 아들이 ‘장관’이 된 것이다. 김담의 어머니는 삼봉의 여동생이다.삼판서고택을 찾은 날은 볕이 좋았다. 따스한 가을 햇살 아래 고택의 검은 기와가 흑진주처럼 빛났고, 돌아본 집 내부에선 은은한 향기가 났다.입신양명(立身揚名)의 절정에 섰던 ‘3명 판서’의 기운을 받기 위해서인지 주말이 아님에도 찾는 이들이 많았다. 산책 나온 영주시민도 여러 명이었다. 이 집에선 판서만 나온 게 아니다.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 교리, 훈련원 녹사, 단성 현감, 통례원 좌통례 등의 벼슬아치도 태어났고, 천문학 교수 김만인도 여기서 첫울음을 터뜨렸다. 원래의 삼판서고택은 1961년 영주 대홍수 때 상당 부분이 파손됐고 이후 철거됐다. 현재의 고택은 영주 유림들이 뜻을 모아 2008년 복원한 것이다. /홍성식·김세동 기자

2019-11-13

유토피아를 꿈꾼 사람들

어떤 이는 영·정조시대를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말한다. 탕평책을 실시해서 붕당의 폐해를 줄이려 했고, 세금 부담을 들어주기 위한 균역법을 실시했다. 암행어사를 파견하고 신문고를 부활하는가 하면 학문과 제도를 정비했고, 많은 책을 펴내 문화발전에 도 기여를 했다. 규장각을 짓게 하고 정약용, 박제가 같은 숱한 인재들도 나왔다. 새로운 학문이라고 일컬어지는 실학이 점차 뿌리를 내린 것도 이시기였다.이런 치적들이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통치한 18세기는 이전 어느 시기보다도 역모사건이 많았다. 정감록과 같은 조선왕조의 몰락을 예언한 서적들이 급속하게 퍼져 나간 것도 이때였다. 이들 비결서(秘訣書)들이 역모세력의 길잡이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때의 ‘역모사건’이란 ‘왕권과 지배계층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을 말한다. 현재로 치면 정치적 집단 간의 정견의 차이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데모나 집회 같은 것으로 이해하면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때문에 이 시기에는 경상도 장기현으로 유배를 온 유배객들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모두가 역모사건에 엮였거나 아니면 연좌된 그 가족들이었다. 1748년(영조24) 2월 29일 장기로 온 심해용(沈海容)과 1760년(영조36) 3월 21일 유배를 온 이광필(李光弼)은 이색·이염의 모반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었다. 또 1755년(영조 31) 3월 17일에 장기로 온 이차원(李次願)은 권혜·권집의 모반사건에 연좌된 왕실의 여자였다. 이 두 사건의 당색은 1728년(영조4) 3월에 일어난 무신난(戊申亂:이인좌의 난)과 맥을 같이했다. 무신당(戊申黨)과 뜻을 같이하는 남인계열은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반영조의 기치를 내걸고 모반을 시도했던 것이다.무신난 잔당들은 하나같이 백성들을 선동하는 수단으로 괘서를 내걸었다. 이때 가장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것이 정감록(鄭鑑錄이었다. 정감록에는 ‘조선은 운명이 다했으니 진인(眞人)이 나타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간다’는 예언이 적혀있었다. 이는 기존의 도참설에 비해 역성혁명과 이상사회의 지향에 대한 논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담고 있었기에 난의 주모자들은 이를 통해 민심을 얻고자 했다.흔히 무신난의 핵심인물로는 이인좌를 꼽지만, 그에 못지않게 황진기(黃鎭紀)란 불가사의한 인물이 있었다. 선전관으로 있다가 무신난에 가담했던 그는 이인좌와는 달리 그때 잡히지도 않았다.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을 검토해 보면, 황진기는 역적임에도 지략과 검술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다. 황진기 아버지 황부(黃溥)는 함경도 경흥부사(종3품)로 무신난에 가담했다가 1728년(영조4) 6월에 잡혀 죽었다. 그는 죽었지만 아들 황진기가 홀연히 나타나더니 백성들의 이상향을 충족시켜줄 구심체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졸지에 나타난 황진기는 정감록에서 예언한 정도령과 함께 그 시대의 ‘메시아’요 ‘미륵’과 같은 존재로 취급되었던 것이다.동해 가운데 삼봉도(三峯島)라는 섬이 있다고 했다. 그 섬은 둘레가 매우 크고 사람도 많으나 옛날부터 나라의 교화를 벗어나 도망친 사람들이 만든 섬이라고 했다. 황진기는 이 섬에 살고 있었다. 때가되면 가난하고 미천한 자를 위해 망명 역적인 그가 장군이 되어 진인(鄭眞) 정씨를 모시고 울릉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에게 청주와 문의(충청도 청원군 문의면)가 먼저 함락되고, 곧이어 한양이 함락될 것이라고 했다. 그 후에는 이(李)씨 대신에 정(鄭)씨가 들어서서 가난 없고 귀천 없는 새 세상이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이게 이른바 해도진인(海島眞人) 설이다.황진기가 등장하는 해도진인설에는 전설의 저 편으로 숨은 아틀란티스와 같은 유토피아가 등장한다. 그곳은 질서 정연하게 이루어진 도시라고 했다. 나라가 부유해 백성들은 세금 걱정이 없었다. 강력한 군대가 있어 전쟁걱정도 없었다.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초(超)고대문명이 전설만을 남기고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바로 아틀란티스 이야기다. 해도진인설에 등장하는 미지의 섬 ‘삼봉도’는 조선의 아틀란티스였다. 조선지배층의 부패와 부조리, 차별 등을 타파하고 삼봉도에서 이상국가를 만들기 위해 나타난 황진기는 그래서 모든 백성들의 구세주요 영웅이었다. 대부분의 모반사건에서 그의 이름이 등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무신난으로부터 17년의 세월이 흐른 1745년 12월, 황진기는 충청도 서산에 있는 가야산 백암사(白巖寺)의 승려로 신분을 감추고 있었다. 드디어 그는 무신난 때 핵심역할을 하다가 처단된 사람들의 가족들을 끌어 모았다. 황진기는 이들을 이끌고 전라도 낙도(樂島)에서 영조 타도를 외치며 또다시 봉기를 했다. 이들은 황해·평안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오랑캐들을 불러들여 평안·함경도 북변(北邊) 땅을 점령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난의 주동자들이 모두 잡혀 영조의 친국을 받고 능지처사되었지만, 이번에도 황진기는 청(淸)나라로 도피하여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흔치않은 망명사건이 발생하면서 영조와 조정은 바짝 긴장했다. 황진기가 이미 처벌된 무리의 일당들과 연락해서 다시 역모를 일으키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영조는 그를 잡기 위해 청나라로 군사를 보내는 등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국내외 어느 곳에서도 황진기의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그 뒤에도 황진기는 ‘평안도에서 중이 되었다’ ‘충남 가야산에서 은둔했다’는 등의 소문만 무성했고, 20년이 넘도록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한 때 180여 개에 달했다던 충남 가야산의 절집은 그가 도피했다는 풍문이 돈 이후에는 거의 폐사가 됐다고 한다.조정은 황진기 대신 그의 가족들을 잡아와 고문을 하고 닦달했다. 1752년(영조28) 11월 9일에는 황진기의 아들 황영(黃英)이 붙잡혀와 포도청에서 조사를 받다가 죽었다. 하지만 황진기는 그 후 수많은 수배령에도 끝내 붙잡히지 않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1745년(영조 21) 10월, 무신여당 이색과 이염 등이 모반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영조의 친국을 받았다. 흉서를 만들어 한양에서 퍼트리다가 붙잡힌 것이다. 이색은 무신난에 가담한 이순관(李順觀)의 친척으로 남인계열이었다. 이염 역시 무신난에 연루되어 능지처사된 이만구(李萬衢)의 숙부였다.이들이 지은 흉서의 내용에도 황진기가 등장한다. 황진기가 칠보사(七寶寺)의 중이 되었다가 모반하여 승군을 조직하였고, 그 군사들이 압록강을 건너 북변을 할거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색은 황진기가 지금은 환속해서 무산(茂山)에서 살고 있다며 민중을 선동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이 말을 믿고 육진(六鎭) 일대 지리에 익숙한 오위장 이양중(李陽重)에게 명하여 황진기를 붙잡도록 했다. 이양중이 국경지대로 나가 탐문했으나 헛수고였다.이색·이염의 괘서사건은 모반사건으로 간주되었다. 당사자 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연루되어 능지처사되었다. 이때 경상도 장기현으로 유배 온 심해용은 역적으로 몰린 이색의 생질이었다. 이색과 이염은 이미 3년 전에 처형되었지만, 1748년에 와서 심해용도 그때의 역모사건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이 괘서사건은 그 후에도 계속 여파가 미쳐 1760년(영조36) 3월 21일 이광필이 같은 무리로 몰려 장기로 유배되어 왔다. 그는 고치룡(高致龍)과 중(僧) 청윤(淸潤) 등과 함께 잡술(雜術)을 가지고 나쁜 무리들을 종용하였다는 이유였다.한편, 1748년(영조 24) 11월에는 권혜(權嵇) · 권집(權鏶)의 모반사건이 일어났다. 권혜는 여천군(驪川君) 이증(李增)의 외손자로서 당시 열여덟 청년이었다. 이증은 효종의 4세손으로, 영조와 8촌간이다. 영조의 근친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증은 영조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았다. 1743년 이증은 영의정 김재로(金在魯) 등과 더불어 사도세자의 관례(冠禮)를 주재하기도 했다. 영조는 이증의 집 사당에 제14대 선조의 서자인 왕자 의창군, 인조의 막내아들인 낙선군의 신위 뿐 아니라, 선조의 후궁인 인빈김씨(仁嬪金氏)의 신위를 옮겨 제사를 지낼 정도로 그를 아꼈다.그런데 1748년 11월, 이증의 집 묘당(廟堂)에서 괴이한 투서가 발견되었다. 국문(鞫問)결과 놀랍게도 그 투서는 이증의 동생인 이학(李學)과 외손인 권혜·권집 형제가 작성했던 것이다. 이들은 이증을 왕으로 옹립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다.역모혐의를 덮어선 이증은 삼사로부터 집요한 탄핵을 받고 제주도로 유배를 가서 죽었다. 이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755년(영조 31)까지 삼사의 끈질긴 탄핵이 이루어졌다. 그해 3월 17일 이증의 딸이자 권혜의 어머니인 이차원(李次願)이 이 사건에 연좌되어 경상도 장기현으로 유배되어 왔다. 이는 왕실의 딸이 장기로 유배를 온 최초의 사례가 된다.이처럼 18세기부터 일어난 각종 반란이나 대규모 민란에는 거의 정감록이 등장했다. 조선 왕조가 무너지고 만민 평등의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정감록의 예언은 조정에서 밀려난 양반들과 가렴주구에 시달리던 민초들에게 조선판 ‘유토피아’였다.돌이켜보면, 조선 후기 백성들은 자연재해에 거의 방치되어 있었다. 정치도 평탄치는 않았다. 영조가 탕평책을 실시하고 법전을 정비하며 혼탁한 사회를 정비하였다고는 하지만,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당파싸움은 근절되지 않았다. 이에 지배계층에 저항하는 무리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정계에서 배제된 양반들이 동조 세력을 규합하고 거사를 추진했다. 이들은 이상사회 구현을 목표로 삼았다. 이때마다 정감록이 사상적 틀로 이용되었던 것이다.이런 반체제 변혁 운동이 꿈틀거리고 있었음에도 18세기 조선의 지배계층은 위기의식이 없었다. 그들은 영·정조라는 현명한 군주와 함께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학문 또는 예술의 부활을 꿈꾸며 백성들의 요구를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왕권에 도전하는 세력들은 그저 부덕하고 불손한 역모자들에 불과했다.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불과 100년도 지나지 않아 홍경래의 난, 동학농민운동, 그리고 왕조체제 붕괴라는 무서운 대가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 대가는 시대의 경고를 무시해 버린 왕실과 조정 뿐 아니라 힘없는 민초들까지도, 꺼져 들어가는 패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이었다. /이상준 향토사학자

2019-11-12

분홍으로 물든 천년고도에는

나는 봄에 떠났다가 겨울이 되기 전에 돌아오고 싶었다. 봄과 여름 동안 경북 바닷길 537km를 부지런히 걸었다. 물길에 잠겨 걷고, 바람길에 두 발이 붕 떠 날면서, 수평선에 불을 지르는 석양과 푸르스름한 별들의 자맥질을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다시 울진에서 영덕, 포항을 통과해 경주로 들어서려는 순간, 뺨에 닿는 공기가 얼음을 흉내 내고 있음을 알았다. 차가운 대기 속에서 나는 계절이 바뀌듯 나도 어딘지 달라졌음을, 소리 없지만 분명한 변화가 내 안에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아직 모르는 채,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서늘한 사실만을 피부로 느끼면서, 걸음을 재촉했다.아까시가 피고 지고, 장미가 피고 지고, 수국이 피고 지고, 장마와 태풍이 지나가고, 거리에 은행잎이 수북이 쌓이는 동안 몇 사람을 만났고, 몇 사람과 헤어졌다. 사람이 들어왔다가 나간 마음의 방은 이제 텅 비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긴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은 열리고, 여행을 멈추는 순간 또 다른 여행이 이미 시작되는 법인데, 마음에는 작은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 지난 계절, 경북 바닷길을 혼자 누비면서 나는 자연과 끊임없이 교감했으며, 사람이 줄 수 없는 위로와 감동을 신라의 푸른 길 위에서 얻었기 때문이다.“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포항 양포를 지나 동해의 푸른 해안선을 왼쪽 옆구리에 낀 채 경주로 가는 길, 정현종 시인의 시 ‘견딜 수 없네’를 외우며 하늘과 바다를 한참 바라보았다. 불과 6개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있었던 “변화와 아픔들”을 생각했다. “흐르고 변하는 것들”과 “아프고 아픈 것들”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저 하늘과 바다가 나를 안아주었다. 이제는 저 파도와도, 저 수평선과도 헤어져야 할 때, 여행을 마치기 위한 여행이 막 시작되는 중이었다.마음이 허전하면 몸도 헛헛해진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경주에 도착하자마자 찾은 곳은 월성 서쪽, 교동의 ‘교리김밥’이다. 경주의 식당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전국 각지에서 온 손님들로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메뉴는 오직 김밥과 잔치국수 뿐. 김밥 두 줄과 잔치국수 한 그릇을 주문했다. 이 집 김밥의 특징은 달걀지단이 잔뜩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소하고 은은한 단맛이 느껴진다. 씹을 때마다 보들보들하고 푹신한 식감이 입 안에 퍼진다. 화려하진 않지만 은근히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잔치국수는 본연의 맛에 충실하다. 아, 이 반가운 것!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백석‘국수’) 앞에서 나는 새벽기도 드리는 신자의 둥근 등처럼 바짝 엎드리고 싶어졌다. 배고픔이 해소되니 마음의 허전함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언제 상념에 빠졌었냐는 듯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라는 인간이 이토록 단순하다. 아니다. 김밥과 국수가 그만큼 힘이 세다.오후 두시는 햇살이 가장 너르게 퍼지는 시간, 이맘때의 날빛에는 온화하면서도 쓸쓸한 표정이 있다. 그 표정은, 뜨겁게 사랑했다가 그 정념 오래 전에 다 식고, 추억으로만 남은 옛 연인을 바라보는 이의 눈빛처럼 아련하고 애틋하다. 그래서 이 계절의 햇살 속을 걷는 것은 추억과 그리움의 이정표들을 따라 내 마음의 풍경들을 들여다보는, 내면으로의 여행이다. 지난날 함께 경주에 가자며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던 사람은 곁에 없고, 그 새끼손가락의 감촉만 손 끝에 하얗게 남아 있는 가을 오후, 나는 추억을 향해 속력을 더 내기로 했다. 걷는 대신 탈것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 보문관광단지 앞에는 전동스쿠터와 자전거, 4륜 바이크 등을 대여해주는 상점이 즐비하다. 전동스쿠터 한 대를 빌렸다. 전기로 움직이기 때문에 소음 없이 달리고, 제법 빠르기도 해 운전하는 재미가 쏠쏠했다.전동스쿠터를 타고 선덕여왕 공원으로 달렸다. 선덕여왕 공원이 있는 보문호수변은 지금 분홍색 축제가 한창이다. 핑크뮬리 갈대밭이 꽃차례를 하는 시절, 핑크뮬리와 울긋불긋한 단풍과 은빛 물결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색채의 콘서트가 열린 것이다. 선덕여왕 공원에는 수많은 연인들이 인생의 핑크빛 한 철을 만끽하고 있었다. 지금이 다시없을 순간이라는 듯이. 그 마음들을 아는지 핑크뮬리는 기꺼이, 폭죽처럼 터지는 소중한 웃음들의 배경이 되어주었다. 연인들의 두 뺨도, 하늘도 모두 분홍색으로 곱게 물들어 있었다.하지만 가을해는 지나치게 빨리 진다.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사위가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주를 걷는 사람의 마음은 날이 저물어도 캄캄해지는 법이 없다. 경주는 신라의 천년 보석, 밤에 더 찬란한 ‘빛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석양과 어스름이 신비한 빛을 내는 저녁, 첨성대를 찾았다. 1300년 전 사람들이 별을 관측하고 우주를 가늠하기 위해 세운 탑,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다. 첨성대를 통해 신라 사람들은 해와 달과 별을 관측하고, 우주의 섭리를 학습하며, 국가의 길흉화복을 점쳤다. 우주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곧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기도 해서, 신라인들은 인간은 소우주고 자연은 대우주라는 사실을, 미물에도 우주가 깃들어있다는 것을 일찍이 깨우쳤다. 그래서 그들은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하늘에 올라가 우주에 편입된다고, 해 달 별 바람 비 천둥 번개 흙으로 영원히 산다고 믿었다. 천문대는 첨성대인 동시에 제단(祭壇)이었던 것이다.첨성대에서 동궁, 월지까지 걸었다. 밤공기는 차갑고 신라의 불빛은 따뜻했다. 월지의 물거울 속에서 동궁은 금관처럼 화려한 빛을 뿜으며 일렁였다. 야경에 매혹된 사람들이 연못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지난봄에는 축제의 들뜸이 가득했는데, 늦가을 동궁과 월지에는 고요한 아름다움만 남았다. ‘가을이 저물어가는구나. 저 불빛들도 “시간의 모든 흔적들”이자 “그림자들”이자 “상흔”이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연인과의 헤어짐처럼 계절과도 이별한다. 나도 그렇다. 가을을 보내는 마음이 애처롭다. 첫눈이 내리고 긴 겨울이 시작되면 오래된 사진을 펼쳐 보듯 가을밤 경주의 불빛들, 그 쓸쓸한 표정들을 오래토록 추억할 것이다.황리단길의 휘황찬란한 불빛들 속에서도 나는 색이 바란 은행나무 낙엽을 보았다. 거리는 깨끗했지만 마음속에서 자꾸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황오동 ‘진가네 대구갈비’까지 걸었다. 이 집의 매운돼지갈비찜은 찬바람이 불 때 먹어야 제 맛이다. 양은냄비에 담긴 돼지갈비를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 입 안에 단풍이 든다. 화끈거리는 매운맛에 몸에서 열이 오르는 순간, 콧물인지 눈물인지 뭉클한 것이 갈비찜과 함께 쑥 목구멍으로 넘어간다.또 한해를 살았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스스로가 대견하다. 세상은 어수선하고 캄캄하지만 나는 여전히 저 불빛들처럼, 내 생을 온몸으로 태우며 멋지게 살아 있다. 세상이 자주 멈추고, 때로 후퇴하더라도 나는 끝없이 움직이고, 나아가야 한다. 올해는 다 가지 않았고, 내게는 아직 더 걸어가야 할 경북 동해의 바닷길, 영원으로 가는 신라의 푸른 길이 남아 있다. ‘그러니 다시 걷자. 발끝이 파랗게 물드는 저 길 위로 다시 나를 데리고 가자.’ 식당에서 나오니 경주의 불빛들이 아련한 눈시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인 이병철

2019-11-10

함께할 수 있음에 행복한 세상 가장 소중한 ‘가족’

어머니의 남자 - 고운기섣달 그믐밤 잠깐 정신이 들었을 때어머니는큰오빠가 가자한다고 또렷이 말했다누구 오빠?우리 큰오빠…여동생이 한 번 더 물었어도 같은 말을 했다기쁜 듯의기소침한 듯어떤 제삿날이었을까묵묵히 지방을 써주고 가던방 어두운 한 구석의 사내를나 또한 어렴풋이 기억한다마흔 갓 넘기었나,어머니의 큰오빠 나의 큰 외숙부는전쟁통에 홀로 된 여동생의 안부를지방 써주는 날에 와서 확인하던 것인데나는 이승에서 그의 모습이그날 단 한 번으로 가물거릴 뿐이다친정아버지도 아니고아이 둘씩 낳아준 두 남자도 아니고눈이 팔팔 내리던정월 초하룻날 새벽길 걸어 와어머니를 데리고 간 남자는큰 외숙부였으리라 믿고 있다.- 톤레삽 호수에서 만난 의좋은 남매는…사진에 찍힌 남매를 만난 건 몇 해 전 캄보디아 여행에서였다.빛나는 크메르의 유적 앙코르와트가 있는 도시 씨엠립. ‘무너지고 망가진 폐허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역설적 사실을 보여주는 그곳에서 7일을 묵었다.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약한 마지막 날. 일행의 권유로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톤레삽 호수’를 찾았다. 시내에서 출발해 붉은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 길을 1시간 남짓 달렸다. 창문이 없는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호수 초입엔 허름하고 낡은 목선 수십 척이 북미와 유럽, 한국과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을 태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가 오래 전 본 우리나라 1970년대처럼 빈한한 시골 풍광.‘톤레삽 호수 투어’를 위해 20달러를 지불한 여행자들이 각자에게 배정된 배에 올랐다. 그때였다. 채 10살이 돼 보이지 않는 어린 남매가 나타난 것은.▲ 열 살 누나를 돕던 예닐곱 살 어린 꼬마는투어를 함께 하게 된 일행 중엔 2m 가까운 키에 100kg이 넘어 보이는 네덜란드 대학생이 있었다.그런데, 이건 뭐지? 1m쯤 되는 키에 30kg이 될까, 말까…. 조그만 여자아이가 그 유럽 거구의 손을 붙잡고는 “조심해서 건너세요”라며 승선을 돕고 있었다. 누가 봐도 우스꽝스런 풍경. 그 꼬마숙녀는 기자의 손도 잡아주며 배에 오르는 걸 거들었다. 기자 역시 183cm에 90kg. 손바닥만한 거리를 널빤지에서 배로 뛰어오르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누가 있어 감히 조그만 손이 내미는 권유를 마다할 수 있을까. 그 와중에 잠시 밀려든 물결이 출렁, 허술한 목선이 흔들렸다. 이때 나타난 남자애 하나가 누나의 허리를 잡아준다. 겨우 예닐곱 살이나 됐을까? 동생을 바라보는 어린 누이의 눈망울이 터무니없이 맑아서 슬퍼 보였다.남매는 10명이 넘는 우리 일행 모두를 안전하게(?) 승선시키고는 고물(배의 뒤쪽)에 나란히 앉았다. 동정이나 연민 따위는 이미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둘을 보니 이상스레 가슴이 울컥했다.“무슨 사연이 있어 저러고 사는 걸까?”그 순간 동시에 떠오른 시 한 편이 있으니 고운기(58) 시인의 절창 ‘어머니의 남자’였다. 이런 문장이다.▲ 이성적 잣대로 해석 불가한 누이와 오빠의 관계고운기의 시가 그려내는 풍경을 요약하면 이렇다. 죽음을 눈앞에 둔 엄마. 아들은 임종을 위해 집을 찾았다. 그런데 위독한 모친은 부모도, 자식도 아닌 오빠를 가장 먼저 찾는다. 마지막 생의 순간에.아들은 ‘엄마의 오빠’, 즉 자신의 외숙부를 긴 세월 저편에서 겨우겨우 기억해낸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젊어서 홀로 된 여동생을 찾아와 제사 때마다 서러운 필체로 지방(紙榜)을 써주고는 구석에 앉아 말이 없던 사내. 그 사내의 ‘말없음’을 이제는 이해하게 된 아들. 그걸 먹먹하게 지켜보는 식구들.피를 나눠 가진 누나와 남동생, 오빠와 여동생의 서로를 향한 애틋함. 그걸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단어로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서다. 이런 문장으로 시가 끝나는 것은.‘친정아버지도 아니고/아이 둘씩 낳아준 두 남자도 아니고//눈이 팔팔 내리던/정월 초하룻날 새벽길 걸어 와/어머니를 데리고 간 남자는/큰 외숙부였으리라 믿고 있다’.이미 죽은 오빠가 이제 곧 저승에서 만날 여동생의 마지막 길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풍경. 아버지도 남편도 해주지 못한 일을 거뜬히 해내는 이름 ‘오빠’.이 시가 주는 울림이 깊고도 큰 것은 바로 이런 ‘새로운 시선’ 때문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합리적 잣대로 해석 불가한 피를 나눈 누이와 오빠남매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실체로 확인한 적은 또 있다. 인도 남부 도시 마이소르의 시끌벅적한 시장통에서다.유럽에서 왔다는 20대 관광객 네댓 명이 예쁘장한 인도 소녀에게 농담을 걸며 사진을 찍자고 하고 있었다. 부끄러워 자신이 할 말을 다하지는 못했지만, 서툰 영어로 싫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표시하는 소녀. 그걸 바라보며 재밌다는 듯 웃는 백인 청년들.소녀의 오빠로 추정되는 17~18세 소년이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자기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사내들 가운데로 나서며 “꺼져!”라고 일갈하는 ‘소년 오빠’의 눈빛에서 살의가 번득이고 있었다.외국인에게 한없이 친절한 인도 사람에게서 그처럼 무서운 기운을 느낀 건 그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기세에 눌려 소녀 곁에 있던 청년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기자가 보기에도 오빠에게 총이나 칼이 없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상황이 정리되자 여동생의 손을 잡고는 거리 저편으로 총총히 걸어가는 오빠의 등이 세상 무엇보다 든든해 보였다. 하이에나 무리에게서 새끼를 구한 수컷 사자 같았다.▲ 세상 가장 소중한 친구는 바로 남매가 아닐지몇 해 전에도 한 장의 사진이 우리의 눈시울을 붉게 만든 적이 있다. 저 먼 곳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군인들이 마구잡이로 쏘아댄 총탄에 조그맣고 가난한 마을이 쑥대밭이 됐다.신발도 신지 못한 3~4살 여자 아기가 폭음에 질려 잔뜩 웅크리고 있는데, 그 역시 고작 6~7살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웅크린 여동생의 어깨와 등을 꽉 끌어안고 있는 모습.카메라는 자신이 먼저 총에 맞아도 좋다는 어린 소년의 처연한 눈빛을 담아내고 있었다. 여러 말이 필요 있을까. 그는 분명 오빠였을 터.“세상이 주는 고통과 서러움을 함께 나누라고 신은 자매와 형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서술엔 무신론자도 감동시키는 힘이 담겼다.때론 곁에 있는 오빠와 여동생, 형과 누나가 밉거나 싫어질 때가 있다. 사람이란 게 그렇고, 기자 또한 그렇다. 그럴 때면 위의 사진을 보며 마음을 바꾼다. 서로를 아끼고 위해주기에도 인간의 삶은 짧다. 그게 형제와 자매라면 더 말해 무엇할까?/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19-11-07

가벼운 주머니 넉넉하게 만드는 기분좋은 한 끼를 찾다

60년을 한결같이… ‘몰랑몰랑’ 식감의 유희할매손두부두부는 만들기 쉽다.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 두부 만드는 걸 봤다. 따라 만든다. 두부는 만들기 쉽다. 두부는 만들기는 어렵다. 상당 부분 기계화가 되었지만, 여전히 두부를 만드는 일은 힘겹다. 음식 만드는 최고의 공력은 꾸준함이다. 두부 만드는 최고의 레시피는 ‘알고 있는 대로, 꾸준히’다. 두붓집 역사 60년, 쉽지 않다.상주 함창버스터미널 앞 작은 골목 안에 ‘할매손두부’가 있다. 창업주에 이어 며느리 신복순 씨 부부가 두붓집을 운영하고 있다. 여름에는 일주일에 두 번, 겨울에는 일주일에 세 번 두부를 만든다. ‘한 번에 서른다섯 모 정도’ 만든다.수제 두부는 단면이 거칠다. 입에 넣어보면, 콩의 달짝지근한 맛이 살아 있다. 콩이 좋은 계절은 12월부터다. 겨울철에는 두부의 비릿한 콩 맛이 살아 있다.시골 손두부는 딱딱, 퍽퍽하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잘 만든 두부는 몰랑몰랑하고 부드럽다. ‘할매손두부’는 퍽퍽한 듯 보이지만 입에 넣으면 입자가 부드럽게 펼쳐진다.산초두부구이도 반드시 맛봐야 할 아이템. 산초의 은은한 향을 제대로 살린 두부구이다. 산초 채취가 힘들어지고, 산초 기름 가격이 급등하면서 산초 두부구이는 사라졌다. 산초의 향을 과하지 않고 은은하게 살렸다.된장찌개는 과하지 않은 곰삭은 맛과 구수함이 두루 좋다. 반찬 중에는 북어 껍질 조림도 아주 좋다. 북어 껍질의 파삭한 질감이 잘 살아 있다.놀라운 부분은 이 집의 기명(器皿). 사기그릇을 사용한다. 사기그릇은 무겁고 잘 깨진다. 웬만한 식당들은 멜라닌 그릇이다. 가격이 높지 않은 대중식당에서 사기그릇을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 정갈한 반찬들을 정갈한 그릇에 담았다. 손님들을 귀하게 여기는 주인 부부의 마음 씀씀이를 그대로 드러낸다.업력 60년 가볍지 않다. 2013년 무렵 선대 창업주가 돌아가셨다. 현재 주인 부부의 업력도 20년이다. 가볍지 않은 세월. 묵묵히 두부를 만들고 있다. 두부,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누구도 제대로 만들기는 어렵다. 작은 읍내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집이다.메뉴 단 하나… 소박하고 동화같은 가게꽃들추어탕가게에 들어서면 왠지 기분이 좋다. 깔끔하다. 손님을 대하는 주방 주인, 홀에서 음식을 나르는 이들이 마치 동화 속의 인물들 같다. 한결같이 부드럽게 웃는다. 가게 이름부터 ‘동화’스럽다. ‘꽃들추어탕’. 미꾸라지가 ‘들판의 꽃’이다.멀고 가까운 논배미, 개울, 크고 작은 웅덩이, 들판에서 미꾸라지를 잡는다. 직접 잡은 미꾸라지로만 추어탕을 끓인다. 가게가 문을 닫는 날, 부부가 직접 미꾸라지를 잡으러 길을 나선다. 들판 여기저기 통발을 놓고 미꾸라지를 기다린다. 하루 80그릇 한정. 더러 오후 나절에 준비한 미꾸라지가 부족해서 손님을 돌려보낸 적도 있다. 준비한 물량이 소진되면 문을 닫는다. 가게 입구에는 손님들이 기다리는 ‘대기실(?)’ 공간도 있다.미꾸라지를 곱게 갈아서, 채소 등을 넣고 끓인, 이른바, ‘갈추’다. 추어탕과 반찬들에 일체의 조미료, 감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부부가 모두 요리사다. 오래전부터 음식 만드는 일을 하다가 처음 문을 연 ‘내 가게’다. 위생, 맛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가격도 낮다. 메뉴는 딸랑 하나다. ‘꽃들추어탕 8,000원’ 원산지 표기도 재미있다. 단순히 국산, 국내산이라고 하지 않는다. 쌀은 함창, 고춧가루는 영양, 제피(초피, 산초가루)는 상주, 문경 등으로 상세히 표기한다. 모두 인근 지역들이다. 소박하고 동화 같은 가게다.‘2천500원의 행복’ 질리지 않는 집밥같은 맛남천식당숫자 몇 개로 이 가게를 설명한다. 1936년. 이 자그마한 식당이 문을 연 시기다. 시장통.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이른 아침의 한 끼 식사. 우거지 국밥이었을 것이다. 2천500원. 2019년 현재, ‘남천식당’의 우거지 국밥 가격이다. 메뉴도 딸랑 한 가지, 우거지 국밥뿐이다. 벽에 붙은 메뉴판에는 ‘해장국 2,500원’이라고 써 붙였다.해장국은, 기능성을 강조한 이름이다. ‘해장 국물’이라는 뜻이다. 재료를 이야기하면 우거지 국밥, 시래기 국밥이다. 곱빼기, 500원 더 받는다. 3천 원. ‘막걸리 1천 원’도 재미있다. 잔술이다. 막걸리를 한잔 가득 주고 1천 원이다. 이것뿐이다.문 입구에 “그동안 수천만 명이 다녀갔다”고 써 붙였다. 실제 그러했을 것이다.모녀가 운영한다. 어머니는 연세가 많다. 인근 시장 상인들 혹은 농민들이 각종 채소를 들고 찾는다. 무청 우거지, 배추 우거지, 근대 등을 가져온다. 이런저런 채소를 다듬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다. 2대째인 어머니가 언제부터 일하셨는지 물어봤다. “박정희 대통령, 윤보선 씨가 대통령 선거하던 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1963년 무렵이다. 3대 전승. 창업주, 어머니, 딸로 연결되었다.가격이 낮다고 해서 얕볼 집은 아니다. 국물이 맑으면서도 슴슴하다. 좋은 장을 사용하고, 내용물을 잘 만졌다. 우문현답. “어떤 채소를 사용하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이것도 쓰고 저것도 쓰고”라는 현답이 돌아온다. 한 가지 채소를 사용하지 않고 이것저것 섞어서 사용한다.채소는 부드러우면서도 씹히는 맛이 살아 있다. 국물은 맑고 시원하다. 수수하다. 매일, 매 끼니 먹어도 질리지 않을 ‘집밥’ 같은 맛이다.오래된, 널리 알려진 집들‘청자회관’은 이름과는 달리 중식당이다. 상주 외곽의 국도변. 바깥은 작지만, 내부는 상당히 넓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식당이다. 부자 2대 전승. 짬뽕밥을 주문하는 사람이 많다. 점심시간에는 기다려야 한다.‘고려분식’은 시내 시장통의 분식집이다. 매운맛의 꼬마김밥과 군만두가 유명하다. 군만두라고 부르지만 튀김만두다. 50년의 업력이다.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분식집이다.‘부흥식육식당’은 석쇠 돼지불고기 전문점이다. 3대 전승. 외부에 간판이 없는 특이한 집이다. 상주시와 공검면 사이 국도변 깊은 뒷길에 있다. 소금구이와 양념구이 두 종류가 있다. 양념구이는 단맛이 강하다.새롭게 문을 연 맛집 2곳뽕잎의 다양한 변신두락‘두락’은 상주의 농가맛집이다. 주인이 한방에 조예가 깊다. 한방 내용을 따라 밥상을 구성했다. 상주는 ‘농잠(農蠶)’이 번성했던 지역이다. 뽕나무, 누에치기가 한때는 번성했다. 단품으로는 뽕잎을 넣은 ‘뽕잎돌솥밥’이 이 집의 주력 메뉴다. 이외에도 ‘뽕잎대보탕’이나 ‘두락뽕잎밥상’도 있다.밥상의 반찬들은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많지 않은 반찬 중 몇 개가 눈에 띈다. 널리 사용하지 않는 식재료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뽕잎.‘상추 줄기 무침’도 특이하다. 상추는 흔하게 사용하는 식재료다. 늦여름부터 잎은 작아지고 대는 굵고 뻑뻑해진다. 상춧잎의 맛도 한결 쓰다. 먹기 힘든 시기다. 이때쯤이면 상추를 통째로 뽑아낸다. ‘두락’의 상추 줄기 무침은 늦여름, 가을의 억센 상추대로 만든 반찬이다. 예약하는 것이 좋다.낙동강변서 받아보는 조선시대 밥상시의전서‘시의전서’는 낙동보 언저리에 있는 한식집이다. ‘시의전서’는 조선 말기 상주 지방에서 발견된 요리 서적 ‘시의전서(是議全書)’에서 따온 것이다. 저자 미상의 ‘시의전서’는 1910년대 상주 군수로 일했던 심환진이 필사본으로 남겼다. 필사본이 상주 군청에서 사용한 편면괘지(片面罫紙), 모필인 것이 상주와의 인연이다.‘시의전서’에는 처음으로 ‘골동반(骨董飯)=부븸밥’ 표기가 나타난다. 비빔밥은 ‘혼돈반(混沌飯)’ 혹은 골동반으로 표기했다. 그 이전에도 한글로 ‘부븸밥’으로 불렀을 것이다. 글로 남길 때는 ‘骨董飯(골동반)’이었다. ‘시의전서’에, 지금까지 발견된 책 중에는, 처음으로 한글 표기 ‘부븸밥’이 나타난다.식당 ‘시의전서’에도 비빔밥 메뉴가 있다. 떡갈비, 갈비 등을 주제로 한 밥상도 가능하다. 문을 열면 낙동강이 보이는 곳의 한옥이다. 실내는 개별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음식평론가 황광해

2019-11-06

안전·편리·경제성 집중… 영남권 제1항공사 자리잡게 했다

□ 12년간 에어부산이 걸어온 길에어부산은 지난 2007년 8월, 부산시와 부산 지역 상공계가 힘을 합쳐 부산국제항공으로 처음 출범했다. 이후 2008년 2월, 아시아나항공의 대주주 참여를 통해 에어부산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재출범했다. 에어부산은 지역의 항공교통 편의 증진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지역 관광 활성화를 목표로 2008년 10월 27일, 부산∼김포 노선으로 첫 취항했다. 당시 항공기 2대, 임직원 수는 100명이 채 되지 않는 항공사였다. 포항의 지역항공사였던 에어포항과 비슷한 규모였다. 하지만 취항 초부터 일관되게 회사의 핵심가치인 안전성·편리성·경제성을 잘 지켜가며 운영해온 결과, 2019년 현재 26대의 항공기, 국내외 39개 노선, 1천400명이 넘는 임직원이 근무하는 LCC 대표 항공사로 거듭났다. 특히 취항 첫해인 2008년 김해국제공항 전체 이용객 점유율이 1.4%에 불과했지만 6년 만인 2014년에 점유율 34.5%를 기록하며 대형 항공사를 제치고 김해국제공항 이용객 1위 항공사로 등극했다. 현재는 김해공항과 대구공항에서 총 32%의 이용객 점유율을 차지해 명실상부 영남권 제1항공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부산 하늘길 확장의 일등공신, 에어부산지역의 항공 교통 편의 증진을 사명으로 출범한 에어부산은 2008년 부산∼김포 노선 취항 후 지속적으로 지역의 하늘길을 넓혀왔으며, 현재 김해공항을 이용하는 승객 중 가장 많은 승객이 에어부산을 이용하고 있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부산에서는 가까운 해외 지역의 직항 노선이 없어 인천공항까지 가서 항공편을 이용해야만 했다. 일반대중교통수단은 수도권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였지만 유독 항공편만은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에 비해 노선 수나 운항횟수가 매우 적었다. 이러한 열세는 지역민들이 인천공항까지 갈 수밖에 없게 만들어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 가중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는 것이 에어부산의 설립 목적 중 또다른 한 가지였다.에어부산은 현재 국내 7개, 국제 32개 등 총 39개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초창기 당시에는 인기 노선이 아니었던 부산∼타이베이, 부산∼마카오 노선 등 신규 노선을 발굴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현재와 같은 인기 노선으로 만들었다. 또한 기존 대형항공사의 인천발 독점 노선이었던 몽골 울란바토르 노선에 어렵게 진입해 승객들의 선택폭을 넓혔으며, 대만 가오슝, 중국 시안 노선 등 부산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노선도 적극적으로 개발·취항해 새로운 여행 수요를 창출했다.한국공항공사의 항공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김해국제공항 전체 이용객은 약 1천700만 명으로 본격적으로 이용객 수가 증가한 2010년과 비교해 약 900만 명이 증가했다. 지난해 에어부산의 이용객은 600만여 명으로 2010년 대비 약 400만 명 증가했다. 김해공항 이용객 증가분의 절반 수준인 44% 이상을 담당하며 김해공항 전체 이용객 증가를 이끈 것이다.특히 에어부산이 국제선을 첫 취항한 2010년 이후의 전체 이용객 수 증가 추이와 김해국제공항 전체 이용객 수의 증가 추이가 같은 증가폭을 보이는 점을 감안해보면, 김해국제공항의 이용객 및 항공수요 증대의 일등공신이 바로 에어부산임을 알 수 있다.□ 에어부산의 성공 비결에어부산에는 독특한 이벤트도 있다. 7년째 ‘웃음 전용기’행사를 벌이고 있기 때문. 이는 사우스웨스트의 직원 및 고객들의 웃음 유도 이벤트와도 흡사 닮아있다.올해는 코미디언 변기수와 오나미가 일일 승무원으로서 참여해 기내 분위기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다.이 행사는 매년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리는 에어부산의 대표적인 행사이기도 하다. 코미디언들의 유쾌한 입담과 기내방송을 진행하며 이용객들의 웃음을 자아내 ‘타면 즐거운’ 에어부산의 이미지 창출에도 기여를 하고 있다.음료 제공과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공연 관람 티켓 증정, 에어부산 굿즈 등 경품 추첨 이벤트도 에어부산에서만 이뤄지는 진풍경이다. 에어부산의 승무원들이 직접 야구장에 등장해 시구를 하는 행사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야구 경기 관람시 주의해야 하는 사항을 평소 기내 안전방송을 하듯이 안내하는 색다른 장면도 연출됐다.지역민들과 소통하는 퍼포먼스의 개발을 통해 에어부산을 알림과 동시에, 향후 국내외 노선 개척시 잠재 이용고객을 미리 선점하는 기대효과도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마케팅 효과가 에어부산의 탑승 자체의 매력을 전달해 이용객들로부터의 좋은 반응도 얻고 있다.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연구원의 ‘2018년 항공교통서비스 평가’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에어부산은 ‘예약 및 발권의 용이성’과 ‘탑승 수속의 용이성’, ‘정보제공의 적절성’에서 높은 만족도를 보이며 이용자 만족도 1위에 올라섰다.이러한 성과와 더불어, 에어부산은 부산지역 사람들의 애향심을 크게 자극하는 이미지인 ‘부산 갈매기’모양을 로고로 사용해 일명 ‘끼룩이네’라는 애칭으로도 불리고 있다.“항공사 규모·조건 맞는 틈새노선 발굴 중요해”인터뷰 ▶▶ 박진우 에어부산 홍보팀 과장-에어부산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에어부산은 지난 2007년 부산국제항공으로 창립됐다. 부산시와 부산상공계 기업체들이 십시일반해 투자금을 모아 시작했다. 특히 신정택 전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이 에어부산의 산파 역할을 함과 동시에 부산시와의 가교 역할, 아시아나 기업 유치 등 혁혁한 도움을 주셨다. 사우스웨스트의 ‘허브 켈러허’와 비슷한 역할을 하셨다. 이후 2008년 2월 아시아나가 대주주로 참여했고 이때 ‘에어부산’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같은해 10월 비행기 2대로 부산∼김포 노선을 취항하면서 오늘날까지 이르렀다.-LCC 항공사 운영의 애로사항은.△LCC가 안전하지 않다는 막연한 인식을 타파하는 것이 선행 과제였다. 이에 안전 관련 투자에 초기 역량을 집중했다. 기존 대형항공사로부터 견제도 만만치 않았다. 영업과 계약부분 등 지역 여행사들이 에어부산과의 관계를 가까이 하지 않도록 하는 ‘텃세’가 존재했다. 또한 운항승무원을 채용해 양성하면 일부를 대형항공사에서 빼가기도 했다.-에어부산을 자랑한다면.△가장 안전한 항공사이자 정부로부터도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LCC 항공사가 ‘에어부산’이라고 자부한다. 국내 3대 서비스 평가기관에서도 LCC 중 유일하게 최고 7년 연속 등 1위를 계속 선점하고 있다. 안전에서도 검증됐고 지역에서도 사랑받고 있는 항공브랜드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특히 부산지역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일반사무직 인원의 70%가 지역 출신으로 구성돼 있고 올해로 12년째인 에어부산은 직원수 기준으로 부산 기업 중 6위를 차지할 정도로 지역경기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포항 거점 LCC 항공사 설립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에어부산은 2014년부터 대한항공을 제치고 김해공항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이 과정도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다. 우리 역시 대형항공사뿐만 아니라 KTX·SRT 등과도 경쟁해야 했다. 이에 출장 수요가 많은 점에 착안해 신속하면서도 안전에 대한 신뢰도를 확보하는 것에 주력했다.항공사는 또한 자본금이 든든하게 받쳐줘야 하는데, 포항에서도 주요 대기업·중소기업들이 십시일반해 지역 하늘길 창출에 도움을 주는 방식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넉넉한 자본금은 곧 안전과 서비스로의 투자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국토부에서도 최근 신규 LCC 항공사 면허 발급시에도 자본금 헤드라인을 따로 정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지역항공사 설립을 준비하는 포항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각 지역에 맞는 항공사는 그 존재가치가 분명하다. 유럽의 경우, 소형항공기를 운항하는 지역항공사가 많이 있다. 포항지역에 맞는 노선을 우선 검토해야 하고, 울릉공항이 신설되는 것을 대비해 울릉 노선도 고려해 볼만하다. 무조건 특정 노선을 고집하기보단 항공사 규모와 조건에 맞는 틈새노선을 발굴해 특색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황영우기자 hyw@kbmaeil.com

2019-11-06

적요하게 흐르는 강의 호흡을 따라 기암절벽 위서 부르는 ‘상주별곡’

아찔한 절벽은 ‘삼국지’의 제갈공명이 수십 만 위나라 병사들과 맞섰다는 적벽(赤壁)과 닮았고, 울울창창 늙은 소나무 군락은 조선 선비의 지조를 보여주듯 푸르게 꼿꼿했다. 상주 경천대(擎天臺)와 마주선 첫 느낌이었다.이곳 경치에 매료된 옛 문인들은 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무우정(舞雩亭)에 올라 “경천대야말로 낙동 제1경이로다”라며 감탄했다고 한다.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3분쯤 걸으면 바로 그 무우정과 만날 수 있다. 푸른 솔숲이 호위하듯 들어선 이곳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간 소현세자를 수행한 우담 채득기(1605~1646)가 은거하며 책을 읽던 장소. 사벌면 경천로 낙동강변에 자리한 경천대 주위엔 볼거리가 적지 않다.8.5m 높이에서 굵은 물줄기가 시원스레 떨어지는 인공폭포와 TV 드라마 ‘상도’가 촬영됐던 세트장에는 어린애들의 손을 잡은 젊은 부부 관광객이 적지 않았다. 전투 체험이 가능한 ‘밀리터리 테마파크’도 인기가 좋다.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경천대에 왔으니 무지산(159m) 꼭대기에 들어선 전망대를 빼놓을 수 없다. 그곳에서 만난 70대 노인은 “여태껏 내가 본 강(江) 풍경 중 최고”라며 엄지를 세웠다. 기자 역시 고개 끄덕여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상주시 관계자는 “야영장, 출렁다리, 어린이 놀이시설, 수영장, 눈썰매장 등도 갖추고 있어 가족 모두가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고 경천대를 설명한다.도시의 소음이 사라진 적요한 가을날 오후. 무우정 뒤편 소나무 그늘을 지나 경천대에 올랐다. 울퉁불퉁한 바위를 조심스레 딛고 섰다. 펼쳐진 풍광이 저절로 한 편의 시를 불렀다. 권준호 시인의 ‘수향별곡’을 떠올린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날이었다.가을빛 저녁 강 노을 속으로물새 한 마리 스며들었네홀로 강을 건넌 내 사랑처럼숨어버렸네…(후략)현재 상주시는 경천섬을 관광지로 바꾸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낙동강 물의 흐름에 따라 자연적으로 형성된 삼각주인 경천섬은 남이섬의 1/2 크기.원래는 인근 농민들이 감자와 무 등을 재배하던 곳이었는데, 여기에 다리를 놓고 꽃밭과 산책로를 깔끔하게 조성했다. 경천섬과 회상나루 관광지가 연결된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상주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생겼으니 내년엔 관광객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높이가 족히 4m는 돼 보이는 자전거, 단단한 쇠를 꽈배기처럼 꼬아 만든 자전거, 몸체와 바퀴를 나무로 만든 자전거…. 세상에 존재하는 희귀한 자전거를 모두 모아놓은 것처럼 보였다.상주시 용마로에 위치한 자전거박물관은 ‘자전거 마니아’가 아닌 보통 사람들도 충분히 흥미를 느낄 공간이다. 내부엔 자전거에 얽힌 유래와 역사, 각종 에피소드가 재밌는 소설처럼 펼쳐져 있다. 1940년대 중반에 일본에서 만든 자전거는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자그마치 쌀 1가마 가격에 팔렸다고 한다. “자전거는 부자가 타는 교통수단”이란 말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대가 불과 40~50년 전이었다.오르막과 내리막이 드물고, 대부분 평지로 이뤄진 상주는 오래 전부터 ‘자전거의 도시’로 불렸다. 자전거의 도시에 자전거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 아니었을까?일제강점기. 쟁쟁한 일본 선수들을 단박에 꺾으며 ‘조선 자전거의 황제’로 대접받았던 엄복동(1892~1951)의 경주용 자전거 복제품도 상주자전거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이 자전거는 브레이크가 없고, 바퀴의 일부가 나무로 만들어졌다.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엔 이외에도 초창기 자전거부터 외국의 자전거까지 다양한 형태의 제품들이 방문객을 반긴다. 바퀴 폭이 1m를 넘는 우스꽝스런 것도 있다.4D영상관에선 자전거를 탄 듯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역동적인 화면에 푹 빠진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귀여운 조형물이 가득한 포토존도 마련돼 가족끼리 추억을 남기기에도 좋다.건강을 위해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상주자전거박물관에선 자전거를 빌릴 수 있고, 안전 점검까지 가능하다. 자신의 체형과 체력에 꼭 맞는 자전거에 올라 시원스레 뻗은 낙동강 주변 도로를 달려보는 것도 ‘건강하고 행복한 여행’의 한 방법이 아닐까.엄마의 치마 끝을 붙잡고 종종거리던 네댓 살 꼬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로 눈앞에서 살아있는 듯 생생한 호랑이가 사슴을 쫓아 달리고, 이빨이 주먹만한 상어가 자기 머리 위에 나타났기 때문.상주시 도남동 국립 낙동강생물자원관에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평소엔 그림책이나 아동용 애니메이션에서나 보던 온갖 날짐승과 길짐승, 희귀한 꽃과 풀, 곤충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이 웃음으로 환했다. 생물자원관 전시실과 로비엔 커다란 백상아리와 새하얀 북극곰, 등껍질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대모거북과 ‘낙동강의 귀한 손님’으로 불리는 재두루미가 각기 제 모습을 뽐내며 어린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낙동강생물자원관은 ‘미래 생물주권의 확보와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만들어졌다. 여기에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공간으로도 역할한다”는 것이 생물자원관측의 부연이다.야외 공간엔 옥외풍경원과 전시 온실, ‘계절의 화원’과 ‘생명의 샘’ 등을 조성해 정원을 산책하듯 자연스러운 관람을 유도하고, 철마다 피는 아름다운 꽃을 아이들과 만나게 해주고 있다.생물자원관은 놀이와 학습을 효과적으로 결합시킨 각종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방문자들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들의 놀라운 능력과 사라질지도 모를 생물들의 보존 필요성을 배운다.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곳이니만치 부모가 미리 관람 예절을 알려주는 것이 좋다.전시된 생물 표본을 만져서는 안 되고, 계단이 많아 뛰어다니면 위험하다. 사진을 찍는 것은 좋지만 플래시를 터뜨리면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니 조심해야 한다.2015년 7월 개관한 낙동강생물자원관의 방문객은 지난달 100만 명을 넘어섰다. 한 해 평균 25만 명이 찾는다는 이야기다. 적지 않은 숫자다.◇국립 낙동강생물자원관 홈페이지: https://www.nnibr.re.kr나이 지긋한 관광객들은 경천대와 상주자전거박물관을 돌아본 후 당연한 순서처럼 도남서원을 향하게 된다.상주의 유림이라면 이곳에 대한 자부심이 없을 수 없다. 그들은 “조선 유학의 정통성은 영남에 있다”고 말한다.선조 39년(1606년)에 세워진 도남서원은 숙종 때 사액서원(賜額書院·왕이 이름을 써 편액을 내린 사원)이 됐다.1871년엔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헐렸으나, 1992년 상주 유림들이 뜻을 모아 복원을 시작했다. 2002년 ‘유교문화 관광개발사업’으로 옛 모습을 찾은 도남서원엔 정몽주, 이황 등 9명의 선현이 배향돼 있다고 한다.주위는 강을 따라 서원을 바라보며 산책하기에 좋다.지척에서 수백 년을 유유히 흘러온 강물은 도남서원이 간직한 온갖 사연과 충절과 기개로 일생을 살아낸 그 옛날 선비들의 삶을 지켜봤을 것이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한마디 말이 없었다.도남서원 일대를 둘러보고도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여행자들은 인근 ‘회상나루 관광지’를 찾아가보면 어떨까? 그곳엔 주막촌, 객주촌, 낙동강문학관 등이 자리했다. 잊고 살았던 조선시대의 풍류를 잠시나마 맛볼 수 있을 것이다./홍성식·곽인규기자

2019-11-06

‘똑똑’ 치매 걱정되면 문 두드리세요

매년 통계청이 발표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인구 구조 변화 양상이 심상치 않다. 11월 현재 65세 이상 노인이 14.9%이지만 2051년에는 40%를 초과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노인인구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치매유병률의 증가를 동반하게 된다. 지금의 추세라면 2050년 우리나라의 추정 치매유병율은 2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최근 방영된 노년기 치매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인기를 끄는 것도 치매에 관한 국민적인 높은 관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서는 치매국가책임제 선언 이후 각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치매국가책임제의 지역 중심축(허브)인 치매안심센터의 운영을 통해 치매로 인한 사회적 손실 비용을 줄이고 고령 인구 증가에 따른 치매환자 증가를 사전에 예방하고 있다.영양군도 2017년 12월 군 보건소 내에 치매안심센터의 문을 열었다. 지난달 14일에는 289㎡ 규모로 증축공사를 끝내고 정식 개소했다. 노인인구가 많은 영양군의 변화와 희망을 알아본다.□ 선제적 국가책임 치매관리로 전환2017년 발표한 치매국가책임제는 치매 환자를 가정에서 무리하게 감당함에 따라 가족 갈등, 해체 등 치매가족의 고통이 심화되고 치매 치료 및 간병으로 인한 가계 부담 등 사회적 비용의 급증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위한 정책이다.치매국가책임제는 ▷치매지원센터 확대 ▷치매안심병원 설립 ▷노인장기요양보험 본인부담 상한제 도입 ▷치매 의료비 90% 건강보험 적용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 ▷치매 환자에게 전문 요양사 파견 등의 내용을 핵심으로 담고 있다. 전국 시군구 256개소에 치매지원센터를 구축하고, 치매안심병원도 현 34개소에서 79개소로 2배 이상 늘리는 것을 목표로 문재인 정부에서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복지 분야다.□ 영양군의 치매안심센터 개소치매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사람이 다양한 후천적 원인에 의해 인지기능에 이상이 생겨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영향을 주는 상태를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알츠하이머 치매(70%)이다. 이러한 치매는 조기 발견해 발견 당시의 뇌 인지 기능 상태를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유지시키고 중증화를 방지함으로써 환자가 자존감을 갖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영양군도 증가하는 치매환자 상황을 인식하고 2017년 12월 치매안심센터를 우선 개소해 각종 맞춤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영양군 치매안심센터는 영양군 보건소에서 직영 형태로 운영하고 있으며 간호사, 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 등 전문가로 구성해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치매안심센터 원스톱 서비스로 비용 줄여군은 보건소 건물을 3층(289㎡)으로 증축해 지난 10월 14일 치매안심센터를 정식 개소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내부는 상담실, 검진실, 진단실, 프로그램실, 사무실, 가족 카페로 구성하는 등 군의 모든 치매 관련 사업을 이곳에서 이뤄지게 하고 있다. 이로써 치매환자의 중증화를 억제하고 환자 가족의 사회적비용 경감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현재 치매관련 상담·등록 관리, 일대일 사례관리, 조기 검진, 치매치료 관리비 지원, 예방 프로그램, 치매인식개선 교육·홍보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실종 치매노인 제로’… 경찰과 협업영양군 치매안심센터는 지난해 3월 치매노인의 실종예방과 신속한 발견을 위해 영양경찰서와 ‘치매노인 실종 제로(ZERO)사업 추진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지문 사전등록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상습실종 치매노인 배회감지기 보급대상자를 선정, 지급하고 실종 치매노인 발생 시 신속발견을 위해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치매안심센터와 영양경찰서는 업무협약을 통해 상호 협력을 강화하고, 경찰서에서만 가능한 치매노인 사전 지문 등록을 보건소 치매안심센터에서도 적용하도록 했다.□ 치매 가족들의 어려움도 함께 나눠야군은 치매어르신을 돌보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어려움도 이해하고 치매와 돌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가족지지프로그램인 ‘헤아림’을 운영하고 있다. 치매가족 대상의 △치매알기 △돌보는 지혜 △마음 이해하기 △부정적 태도 극복하기 △의사소통방법 △가족의 자기 돌보기 △자조모임 등이다. 이 프로그램은 치매안심센터 간호사와 사회복지사가 진행하고 있다. 치매가족들의 지속적인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을 나누고 치매어르신과 함께 잘 지내기 위한 올바른 지식과 지혜를 배우는 자리가 되고 있다. 또 치매 질환정보 및 간병 경험을 공유하며 스트레스 해소와 심리적으로 서로 지지하며 돕는 자조모임으로 혼자가 아닌 나눔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으로 치매 퇴치군은 단계별 치매인지 재활프로그램 운영으로 치매안심센터 역할과 기능을 확대해 주민들의 치매극복에 앞장서고 있다. 보건소에서는 치매환자를 위해 입암·석보·수비면보건지소 치매단기쉼터에서 만 60세 이상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지 수준별 예방, 인지강화, 인지재활 프로그램으로 나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단계별 치매인지 재활프로그램은 등록된 치매환자 대상 ‘치매환자쉼터프로그램’, 인지저 하나 경도인지장애 진단자 대상 ‘인지강화프로그램’, 65세이상 일반노인 대상 ‘치매예방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내용은 인지자극, 현실인식훈련, 정서 및 건강교육 등 다양하다.□ 조기발견, 지속치료가 가장 중요치매는 조기발견, 조기치료가 가장 중요하다. 완치 가능한 치료제가 없는 진행성 질환이기 때문이다. 치매가 진행되면 점차 심각한 인지기능 저하, 행동장애는 물론 일상생활과 직업적, 사회적 기능장애를 보이게 된다. 치매의 진행을 늦추는 약물치료는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초기에 약물을 사용하면 건강한 모습을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할 수 있다.중앙치매센터 자료에 따르면 전 국민이 치매를 조기 발견해 진행을 지연시킬 경우 20년 뒤엔 현재 10% 가량인 치매 유병률이 8% 수준으로 낮아진다고 밝혔다. 또 치매 초기일 때부터 약물치료를 하면 5년 뒤 요양시설 입소율이 5분의 1로 줄어든다고 한다.약물치료를 지속하면 증상악화를 늦춰 치매 환자의 독립성을 연장하고 가족 돌봄의 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이 때문에 영양군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조기발견, 지속치료 등 어르신들의 건강한 노후생활을 위해 치매관리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오도창 군수는 “치매안심센터의 정식 개소로 이제 포괄적인 치매관리가 가능해진만큼 치매의 조기 예방과 발견, 치매어르신과 가족을 위한 적절한 지원과 서비스가 원스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심체가 치매안심센터가 되길 바란다”며 “크게는 ‘건강 100세’시대를 준비하는 영양군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장유수기자 jang7775@kbmaeil.com

2019-11-05

읍호(邑號)를 강등하라

1739년(영조15) 10월 11일, 전라도 남원에 사는 양재육(梁再六)이란 사람이 경상도 장기현으로 유배되어 왔다. 땟국이 꾀죄죄하게 흐르는 찢어진 옷, 헝클어진 머리에 오목한 눈만 번들거리는 그의 몰골에서, 걸어온 ‘유3천리’ 유배길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실감케 했다.양재육은 평범한 농부였다. 헌데 그가 동해안 땅 끝 고을인 여기까지 흘러온 사연은 이도령과 성춘향의 이야기로 유명한 저 남원부(南原府)를 일신현(一新縣)으로 강등시킬 만큼 큰 사건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읍호(邑號)는 고을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고을의 위격(位格)’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조선시대 왕들은 집단적 상벌 조치의 하나로 읍호를 올리거나 내림으로써 왕실에 대한 충성과 협조를 강요했다. 왕비의 출신지나 왕의 태실을 봉안하는 곳 , 또는 왕사나 국사의 고향과 같이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고을은 읍호가 승급된다. 반면에 고을에서 삼강(三綱:군신·부자·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세 가지 도리)과 오상(五常:인·의·예·지·신의 5가지 기본적 덕목)의 도덕을 심하게 위반한 강상죄인(綱常罪人)이나 대역죄인이 발생한 고을은 읍호가 강등되기도 했다. 나름의 효과가 있었기에 조선 내내 왕들은 지방통제의 수단으로서 이 제도를 자주 이용하였다.장기현이 속한 경주부도 ‘읍호강등’의 수모를 겪은 곳이다. 1650년(효종 원년) 경주부의 속현으로 있던 기계(杞溪·현재 포항 기계면)에서 일어난 일이다. 예천에서 도망해 온 종 대립(大立)이란 자가 기계로 도망을 와서 숨어 살고 있었다. 본 주인이 어떻게 알고 그를 찾아와 잡으려 하자, 그는 도리어 그 주인을 죽여 버렸다. 노비가 주인을 살해한 이 사건은 강상죄에 해당되었으므로 대립은 처형되었고, 경주부(府)의 읍호는 강등되어 경주목(牧)이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살인이 일어난 곳은 경주부 기계현이지만, 죽은 주인과 종 대립은 사실상 예천 사람이었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게 전개됐다. 본래 강등된 읍호는 10년이 지나야 승호하였지만, 이 사건은 8년 후 다시 부(府)로 승격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5년 뒤에는 이보다 더 끔찍한 사건이 관내에서 발생했다.1665년(현종6) 8월, 경주부 서면(西面)에 사는 이경무(李慶楙)가 아내를 박대하자 그의 아내 곽영(郭英)이 원한을 품고 아들 이만(李萬)과 공모하여 그를 죽이기로 작정하였다. 이들 모자는 집에서 거느리는 노비 옥매(玉梅)와 같은 집에 살고 있던 임용(林龍)·사남(士男)·최덕창(崔德昌)·암외(巖外)·치만(致萬) 등과 함께 밤을 틈타 경무를 돌로 쳐 죽였다. 조정은 이를 강상윤리를 위반한 대표적인 사례로 간주하여 매우 엄중하게 다스렸다. 임금이 특별히 경차관(敬差官) 신후재(申厚載)를 내려 보내 조사하게 했다. 후재가 미처 경주에 도착하기도 전에 곽영은 옥에서 죽었다. 이만 및 같은 패거리들이 범죄사실을 순순히 자백하였으므로 모두 한양으로 압송해가 의금부에서 국문하였다. 임금이 이들처럼 극도로 흉악무도한 자는 잠시라도 이 땅에서 살려두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그믐과 보름의 금기에 구애받지 말고 즉시 처형하라고 명하였다. 덩달아 경주부윤은 종2품에서 2등급이나 낮은 종3품 부사로 강등되었다. 이 사건은 죄질이 매우 좋지 않았기에 경주가 다시 부윤이 부임하는 부(府)로 승호하는 데는 14년이나 걸렸다.영조 시대에는 남인들과 준소(峻少·소론 강경파)들의 입지가 너무 좁았다. 영조 4년의 무신난(이인좌의 난)은 정계에서 배제되고 중앙의 실권에서 멀어진 남인과 소외된 준소 세력이 연합하여 일으킨 반란이었다. 이 반란 이후에도 뚜렷한 대안이나 해결책이 없던 현실 속에서 이들은 영조와 노론에 대한 저항을 계속했다. 영조는 52년이라는 오랜 기간 왕위에 있었지만, 재위기간 중 반을 넘는 전반기 30여 년을 각종 모반과 반역에 시달리면서 불안하게 보냈다.1733년(영조9) 7월, 남원의 성 변두리에서 괘서사건이 발생하였다. 조정을 비난하고 정부의 관리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리고 글 아래쪽에 이여매(李汝梅)와 이여진(李汝榛) 형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관에서는 이들 형제를 즉시 체포하여 추궁했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후 고을을 탐문하던 남원현감은 김영건의 집에 똑 같은 흉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체포하여 추궁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이 괘서사건의 주모자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김영건과 그 아들들은 이여매 형제와 평소 원한 관계에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처벌받게 할 목적으로 괘서 아래쪽에 마치 이 형제가 그 글을 작성한 것처럼 이름을 적어 넣었던 것이다. 이 사건의 주모자인 김영건을 비롯한 김원팔 형제들은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1739년(영조15)에 일어난 양찬규(梁纘揆)의 옥사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이미 무신난이 일어난 지 11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그동안 관련자들이 다수 처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라도 남원 지역에서는 여전히 무신난의 재현을 꿈꾸고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양찬규의 모반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표면에 드러났다.사건의 내용은 이랬다. 1739년 9월 16일, 두 남자가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의 집에 찾아와 문지기에게 남원에 사는 친척이라고 전하며 주인 만나기를 청했다. 김주신은 숙종의 장인이었다. 그러나 행색이 초라한 이들을 보고 문지기가 밖에서 쫓아버렸다. 얼마지 않아 이들이 다시 찾아와 이번에는 서장(書狀·편지)을 가지고 와서 주인에게 전해야 한다고 했다. 종들이 ‘여기는 서장을 바치는 곳이 아니다’ 라고 하며 또 쫓았으나, 뭔가 꺼림칙하여 포도청에 이런 사실을 신고하였다. 포도청에서는 이들의 뒤를 밟아 그 중의 한 사람을 잡아 성명을 물어보니 양찬규라고 했다. 그의 주머니를 수색해보니 봉투가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부원군 집에 바치는 글이었고, 하나는 ‘감고원몽(感故園夢)’이란 제목이 달린 글이었는데 거의 200구(句)나 되는 것이었다. 그 글들의 내용은 요사하고 간악하였고, 기괴한 말이 많았다.우포장 구성임(具聖任)은 우선 사람은 석방하고 그런 사실이 있음을 좌의정 김재로(金在魯)에게 알렸다. 김재로는 구성임을 대동하여 증거물을 가지고 영조에게 가서 ‘어떤 미친놈이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 다닌다’고 보고를 했다. 실제로 양찬귀는 자신이 왕자라고 자청하는 등 이상한 소리를 하고 다녔던 것이다.그런데, 영조의 생각은 달랐다.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 필시 무슨 음모가 있을 것이고, 그 배후 세력이 있을 것이라며 친국을 열었다. 얼마 후 다시 잡혀온 양찬규·양안귀 형제는 고문에 못 이겨 자백을 했다. 자신들이 남원에 살고 있는 일가친척들과 광주에 사는 백성 최태원, 이덕방 등과 함께 호남의 괘서를 짓고 역모를 꾸몄다는 것이다. 영조는 반드시 이들이 신임옥사를 일으킨 소론의 거두 김일경·박필몽의 잔당들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우선 양찬규 형제를 대역부도죄로 참형에 처하고, 남원부를 일신현으로 혁파하는 조치를 내렸다. 당시 남원부사 권감(權瑊)에게도 책임을 물어 즉시 파직시켰다. 이어서 남원과 호남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관련자들을 전부 잡아들여 추국했다. 이 과정에서 더러는 고문으로 죽고 남은 사람들은 극변으로 유배되어 갔다.그 후에도 영조는 미심쩍었든지 암행어사 이이장(李彝章)을 남원에 파견하여 동정을 살폈으나, 역모를 꾸몄다는 정황은 찾지 못했다. 오히려 평소 양찬규와 그의 아우 양안귀는 무명옷 속에 들어있는 솜을 빼내어 술을 사먹기도 했고, 패랭이에 용을 그려 머리에 쓰고 다니는가 하면, 사람들이 바늘로 두렵게 하면 겁을 먹고 달아나는 등 미치고 실성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다녔다는 진술만 확인한 것이다. 그래서 양찬규의 옥사는 두고두고 신빙성에 의문이 가는 사건이었다.어찌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이 옥사에 연좌되어 장기로 유배를 온 양재육은 양찬규의 삼촌이었다. 이 사건으로 양찬규의 또 다른 삼촌인 양재구(梁再九)·양재팔(梁再八)·양재오(梁再五)도 모두 연좌되어 먼 곳으로 유배를 갔다.읍호가 강등된 남원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부로 승격이 되었다. 그때 파직된 남원부사 권감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다행히 다시 서용되어 1744년(영조20) 동지중추부사(종2품)가 되었다.한편, 양찬규의 옥사가 있은 지 23년이 흘렀다. 1762년(영조38) 8월 4일이었다. 이번에는 전라도 담양도호부(都護府)의 읍호를 담양군으로 강등시키면서 장기현으로 유배 온 가족들이 있었다. 이홍범(李弘範)의 손녀 이황(李黃)과 이광(李光)이 그들이다. 이홍범은 담양좌수(潭陽座首)로 있으면서 영조를 망측스러운 말로 비방했던 사실이 3년 후에 밝혀지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이홍범·이창거·이상필·이세진이 역모죄로 참형을 당하고 가족들은 연좌되어 장기현으로 와 노비가 된 것이다.담양은 고려 때는 현(縣)이었으나 1395년(태조 4) 국사 조구의 본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하였다. 다시 1399년(정종 1) 정종의 비 김씨의 외가가 있던 곳이라 하여 부로 승격한 뒤, 1413년(태종 13) 담양도호부가 되었다. 이런 도호부가 1762년에 와서 역적 이홍범의 태생지라 하여 다시 현으로 강등되었던 것이다. 이때 강등된 담양은 10년 후인 1772년 담양도호부로 다시 승격되었다.이후에도 무신난의 여파는 계속되었다. 영조가 사색당파를 고루 탕평했다고는 하지만 남인과 준소 세력이 정계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불만은 괘서, 비기, 투서 등의 형태로 계속 표출되었다. 1748년(영조 24) 권혜·권집의 투서 사건, 1755년(영조 31)의 이하징·윤지의 괘서 사건, 신치운·심정연 흉서 사건 등이 연이어 일어났다. 이 사건들은 모두 무신난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건들이었다. 덩달아 유3천리 경상도 장기현은 정계에서 밀려난 남인들과 소론(준소)들의 적거지(謫居地)로 자주 이용되었다. 유배객들이 늘어감에 따라 이들을 먹여 살려야 할 장기현 아전과 백성들의 시름도 이에 비례하여 깊어만 갔다. /이상준 향토사학자

2019-11-05

과메기 파스타에 샐러드… 외국인 관광객들도 ‘엄지 척’

1일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 천우각에서 개최된 포항구룡포과메기 서울 미디어설명회 및 홍보·시식 행사는 과메기 첫 출시일이어서인지 서울시민은 물론 언론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다.○…이날 참석자들은 ‘과메기, 스타 간식 되다’라는 슬로건에 주목했다. 과메기가 겨울철 별식이나 술안주로 인식되었던 것을 탈피했다. 2018년에는 ‘과메기, 밥상에 오르다’를 통해 밥상 차림을 선보였다면 올해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간식으로 새롭게 선보이고자 과메기를 이용한 ‘과메기 샐러드’, ‘과메기 루꼴라피자’, ‘과메기 카나페’, ‘과메기 파스타’ 등이 선보여 참석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특히 필리핀 등 외국인 관광객들도 과메기에 큰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과메기를 맛본 뒤 엄지를 치켜들기도 했다.○…행사장을 찾은 방문객들은 판매부스와 시식코너를 돌아본 뒤 과메기 상품을 양손 가득 사들고 귀가. 과메기 판매 부스는 하루 종일 북적였고, 포항시가 과메기 제조, 유통 등 모든 과정에서 인증제도화했다는 것이 입소문을 타면서 더더욱 인기를 끌었다. 실제 이날 ‘포항 해선생’이라는 브랜드를 서울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해선생은 포항시가 수산물 품질을 보증하기 위해 도입한 브랜드다.○…이날 행사에서는 포항 과메기 홍보대사를 맡은 탤런트 김청 씨가 단연 인기를 끌었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위촉식에서 “김청 씨는 평소에 구룡포과메기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면서 “영양과 맛이 뛰어난 과메기를 온 국민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데 함께 하게 돼 감사하고 기쁘다”고 말했다. 이 시장이 김청 씨에게 포항으로 이사할 것을 권유해 한바탕 웃음꽃이 피기도.○…행사가 끝난 뒤 이 시장과 서재원 포항시의회 의장, 경북매일신문 최윤채 대표, 탤런트 김청 씨가 과메기 홍보 방안을 놓고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청 씨는 “김치에 과메기, 그리고 밥을 싸먹으면 정말 맛있다”며 자신이 홍보대사로 있는 ‘평창고랭지 김장축제’와 포항 과메기가 만나면 좋겠다고 밝히고, 즉석에서 “평창-포항 간 자매결연 맺는 것은 어떠냐”고 즉석 제안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메기를 먹을 때 배추가 들어가지 않느냐. 찰떡궁합”이라며 이강덕 시장에게 강력히 요청했다.○…이날 초청된 파워 블로거들과 타지역 언론사 청와대 출입기자 등도 저마다 분주히 움직이며, 과메기에 큰 관심을 표명. 이 시장은 “일년 내내 과메기를 안 먹으면 못사는 분을 봤다. 건강이 나빠져 과메기를 1년 내내 먹고 거뜬하게 산을 오르는 분을 봤다. 그만큼 과메기 안에 좋은 성분들이 다 들어 있다”며 과메기 홍보에 열성을 보였다./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사진/이용선기자

2019-11-03

드라마 주인공 된 듯 구룡포 누비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구룡포로 가는 길에는 언제나 기분 좋은 긴장 상태가 된다. 흔히 ‘설렘’이라고 말하는 감정의 고조를 느끼기 때문이다. 겨울과 봄 사이, 늦겨울이라고 부르기엔 따뜻하고 초봄이라고 부르기엔 추운 그 짧은 한 철을 나는 ‘겨우봄’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겨우봄 구룡포는 푸른 파도와 흰 담벼락 사이로 언뜻 붉은 입술을 비추는 동백꽃의 숨바꼭질이 명랑하다. 그러다 술래인 햇살이 세게 달려들면, 동백 무리는 일제히 꽃잎을 크게 벌리고 깔깔 웃는다. 그때 비로소 골목마다 봄빛 수다가 수런거리기 시작한다.가을과 겨울 사이를 ‘가울’ 혹은 ‘겨을’이라고 불러볼까? 너무 작위적이다. 아직 멀리서 오는 첫눈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구룡포의 이 계절을 그냥 늦가을이라고 부르자. 단풍이 절정으로 타오르는 늦가을이지만, 지금 구룡포에는 엉뚱하게도 동백꽃이 여기저기 난리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이야기다. 일본인 가옥거리로 알려진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는 드라마 속 배경인 ‘옹산간장게장 골목’으로 모습을 바꿨다.근대문화역사거리에 들어서서 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룡포에 웬 간장게장집이?’ 동해안 홍게와 대게를 가지고 게장을 담그는 새로운 음식 문화가 생겨난 줄로만 알았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탓이다. 인기리에 방영중이라 제목은 귀에 익은데, 이곳 구룡포에서 촬영한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날 근대문화역사거리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아무리 주말이라지만 평소보다 훨씬 사람이 많은 이유는 바로 드라마에 있었다. 사람들은 극중 주인공 동백(공효진)이 운영하는 술집 ‘까멜리아’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사진을 찍고는 함박웃음 짓는 것이었다. 행복이란 이토록 소박한 찰나에 있구나, 나는 생각했다.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닌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실내포장마차를 운영하며 아들을 키우는 미혼모 동백, 그리고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세상 통념과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무작정 돌진하는 동네 순경 용식, 그 둘의 러브 스토리를 중심으로 드라마는 차별과 소외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청자들은 용식의 순정한 사랑을 통해 동백의 아픔들이 아물어가는 과정을 보며 위로를 얻는다.‘옹산’을 찾아온 사람들은 간장게장골목에서 호떡과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고두심이 운영하는 백두할매간장게장집의 원래 정체가 ‘호호면옥’이라는 사실에 박장대소하며 안으로 들어가 냉면과 갈비탕을 먹었다. 골목을 나서면 꿈에서 깨듯 다시 구룡포,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옹산 골목을 거닐던 사람들은 구룡포 전통시장과 수산물직판장으로 흘러들어 포항의 특산물들을 두 손 가득 구입했다. 드라마 제작진에 따르면 촬영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전국을 다 돌아다녔지만 구룡포만큼 아름다운 곳이 없었다고 한다. 한편의 드라마가 태풍으로 침체된 지역경제에 활력을 일으키고, 경색된 한일관계로 입장이 난처해진 ‘일본인 가옥거리’의 이미지마저 쇄신시킨 것이다. 문화 콘텐츠의 힘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구룡포 해수욕장은 태풍이 헤집고 간 상처들이 아직 다 아물지 않아 보였다. 흰 모래가 곱던 해변에는 흙과 돌, 파도에 떠밀려온 쓰레기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그래도 구름과 파도는 여전히 새하얀 꿈과 푸른 희망을 노래하는데, 어디서 떠밀려왔는지 해변에 돼지저금통 하나가 굴러다녔다. 온통 희고 파란 색만 가득한 가을 바다에서 빨간 돼지가 풍경의 온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도, 살처분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저 돼지, 배가 갈린 채 동전들을 다 토해내야 했지만 덕분에 돼지는 가벼움을 얻어 바다를 건널 수 있게 되었다. 이내 큰 파도가 달려와 돼지저금통을 바다로 실어갔다. 물살을 타고 망망대해로 멀어져가는 돼지저금통이 마치 동백꽃처럼 보였다. 내 마음의 끓는점에 불이 켜졌다.햇빛이 지상의 그림자들을 길게 늘어뜨리는 걸 보니 이제 또 다른 드라마를 만나러 갈 시간, ‘동백꽃 필 무렵’보다 한 1,900년쯤 전에 이미 포항은 문화 콘텐츠의 땅이었다. 포항이 ‘연오랑 세오녀’ 설화의 고장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신라 제8대 아달라왕 때 일이다. 포항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큰 바위가 바다에서 솟아올라 연오랑을 싣고 일본으로 갔다. 일본에 간 연오랑은 한 고을의 왕이 되고, 남편을 찾아 나선 세오녀 역시 바위를 타고 일본에 가 부부는 재회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부부가 해와 달이 육화(肉化)된 신령한 인간들이었다는 점이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떠나자 신라의 해와 달은 빛을 잃어버렸다. 왕은 일본에 사신을 보내 부부의 귀환을 요청했지만, 연오랑은 하늘의 뜻이라며 귀환을 거부한 대신 세오녀가 짠 명주 비단을 건넸다. 신라 사람들이 그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해와 달이 다시 빛을 찾았기에 왕은 그 비단을 국보로 삼아 보물창고에 보관했다. 그리고 그 비단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불렀다.구룡포에서 포항 시내로 가는 길, 가을 햇빛이 비단처럼 영일만을 덮고 있었다. 남구 동해면 임곡리의 ‘연오랑 세오녀 테마공원’을 찾았다. 2017년에 개장한 이곳 공원은 연오랑 세오녀 설화를 주제로 ‘공간 스토리텔링’을 해 방문객들에게 지식적 유익함과 감성적 즐거움을 동시에 제공한다. 전설 속의 귀비고는 이곳 테마공원에 와 귀비고 전시관이 되었다. 귀비고 전시관에는 연오랑 세오녀 설화가 기록된 한국과 일본의 각종 고문헌들을 비롯해 4D체험관, 영상관, 포토존, 카페 등 다양한 체험 및 문화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귀비고 전시관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서면 잔디밭과 꽃나무들이 싱그러운 자연의 향기를 뿜는다. 바닷바람은 팽팽하게 당겨진 수평선이 연주하는 현악 소리를 귀에 실어 나른다. 야외공원엔 쌍거북바위, 일월대, 신라마을 등 여러 볼거리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근사한 것은 노을이다. 연오랑 세오녀 테마파크는 포항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다. 세오녀가 짠 명주 비단이 되찾아준 빛일까? 태양이 영일만을 온통 금빛으로 휘감는 시간, 석양 속에서 역광의 그림자가 된 젊은 남녀들은 말없이 사랑의 대화를 속삭였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너무 많은 연오랑 세오녀들, 그 근처를 괜히 얼쩡거리다가 연인들의 기념사진을 망치는 ‘곤란한 정물’이 될까봐 나는 자리를 피했다.공원 한쪽에서는 2019 포항 무용제가 열리는 중이었다. 공식 경연에 앞서 포항시 어머님들 취미 무용단의 세오녀 길쌈놀이가 한창이었다. 한복을 차려입은 어머님들이 태양빛을 형상화한 빨간색 노란색 대형 비단을 펼쳐 들고 강강술래하는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져 혼났다. 이유는 모른다. 어머님들의 동백꽃 같은 웃음 뒤에 첩첩이 쌓였을 고단한 삶을 엿본 탓일까. 아니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길쌈놀이를 보며 아이처럼 손뼉 치고 좋아하는 할머님의 뒷모습 때문일까. 요양병원에 누워 꼼짝도 하지 못하는 내 할머니 생각이 났다. 정정하셨을 때는 장충체육관에 모시고 가 마당놀이 구경도 시켜드리곤 했다. 눈물로 얼굴이 더 엉망이 되기 전에 나는 서둘러 테마공원을 빠져나왔다.포항 시내의 토요일 밤은 화려한 불빛들이 밝혀드는 축제, 그러나 휘황찬란한 불빛들을 뒤로 하고 어둔 시장 골목, 허름한 옛 식당의 문을 열었다. 북구 장성동 장성시장 안에 있는 ‘영주식당’의 고래수육은 일품이다. 어떻게 삶아내는지 고래 특유의 냄새가 전혀 없고, 부위마다 다른 식감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고래수육 한 접시는 미식 중의 미식이자 최고의 안주, 술잔을 비우다 보니 접시도 금방 비워졌다. 얼큰한 국물 생각이 나 찌개를 주문했다. 메뉴판에 없는 가자미 찌개가 상에 올랐다. 한 숟갈 떠먹자 붉은 고춧가루와 탱글탱글한 가자미살이 몸속에 동백꽃을 활짝 피웠다. 꽃은 아래에서부터 피어 위로 올라오기에, 식당을 나서서도 나는 두 볼에 동백꽃, 동백꽃 발그레 매단 채 밤거리를 걸었다. 그날 밤에는 낡은 여관방 이불이 세오녀의 비단처럼 부드럽게 꿈속까지 감싸주었다.           /시인 이병철

2019-11-03

‘나만의 명소’ 찾아 떠나는 여행엔 먹는 즐거움이 최고

세월과 세태의 변화 속에 여행의 패턴도 바뀌고 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유명한 관광지로 우르르 몰려가 사진 한 장 찍고는, 또 다른 장소로 바삐 옮겨 다니는 천편일률적인 관광은 이제 차츰 줄어드는 추세다.가능하면 한 곳에 오래 머물며 꼼꼼하게 그 지역의 특색을 살피고, 남들은 잘 찾지 않는 ‘나만의 명소’를 발견하고자 하는 여행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더불어 신세대들은 새로운 걸 ‘보는 기쁨’과 함께 독특한 음식을 ‘먹는 즐거움’까지 포기하기 않으려 한다.영덕은 볼거리와 더불어 먹을거리 또한 풍부한 여행지다.해 뜰 무렵 강구항에 나가보면 “바다는 인간의 식량창고”라는 말이 실감으로 다가온다. 새벽부터 항구에 모여든 어부와 상인들은 싱싱한 해산물 사이를 바삐 오가며 ‘살아간다는 것의 엄혹함’을 몸으로 보여준다.청정한 바다에서 잡아온 대게와 물가자미, 청어와 멍게 등의 수산물은 물론이고 오염되지 않은 산과 들에서 자라는 송이버섯과 복숭아 등은 영덕이 ‘미식의 도시’로 발전할 수 있음을 구체화시켜 보여주고 있다. 아래 ‘먹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싶은 관광객들을 위해 영덕군이 내세워 자랑하는 식재료와 그것들을 이용해 언필칭 ‘맛집’으로 자리매김한 식당을 소개한다.◆‘물가자미’와 ‘송이’는 빼놓을 수 없는 영덕의 먹을거리영덕군은 6개 읍면이 64km의 바다와 접해 있다. 다소 비싸지만 그 맛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덕대게를 비롯해 다양한 해산물이 1년 내내 풍부하다. 대게와 함께 전국의 미식가들을 불러들이는 영덕 축산항의 ‘효자 생선’ 은 물가자미(미주구리)다. 영덕 해역에서 잡히는 물가자미는 수심 200m 이내의 모래와 뻘에서 주로 산다. “몸의 길이가 20~40cm 정도인 물가자미는 양식이 되지 않은 100% 자연산”이라는 게 영덕 어부들의 설명이다.영덕군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바다 목장화 사업’을 추진해왔다. 이는 수산자원을 보호하고, 해산물 품질의 우수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영덕의 수산물은 믿고 먹을 수 있다’는 신뢰감을 얻고자하는 목적도 있다. 물가자미는 회, 찌개, 구이, 조림 등 다양한 형태로 조리하는 게 가능하다. 얼마 전부턴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고 뼈 채로 발효한 ‘물가자미 밥식해’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영덕군청 관계자는 “생소하게 느꼈던 사람들도 한 번만 먹어보면 담백하고 고소한 맛에 매료돼 물가자미 요리 마니아가 된다”며 웃었다. 다른 생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해 ‘가격 경쟁력’도 갖춘 게 바로 물가자미다.물가자미의 뼈에는 칼슘이 풍부해 수술 직후 환자의 기력 회복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2010년에 이미 ‘한국의 8대 웰빙 해산물’에 선정된 물가자미는 골다공증 환자에게도 권할만한 음식이다. 영덕군 축산항 인근에서 자란 물가자미는 타 지역에서 잡히는 것보다 갈색 무늬가 선명하고, 육질 또한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예로부터 왕의 밥상에 오르는 등 귀한 대접을 받았던 송이버섯은 숲에서 소나무 뿌리에 공생해 만들어진다. 지구 위에서 생산되는 송이의 95%가 한국, 일본, 중국에서 나온다.송이는 강원도 인제, 삼척, 강릉 등지와 경북 영덕, 울진, 봉화 등에서 주로 자란다. 이중 영덕군의 송이 생산량은 전체의 30%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얼마 전부턴 중국에서 수입된 송이가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고 있지만, 씹히는 맛과 향에서는 국내산을 따르지 못한다는 것이 요리사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영덕군은 ‘송이 환경 개선사업’과 ‘솔잎 혹파리 방제사업’ ‘소나무 재선충 예찰 강화’ 등으로 영덕 송이의 명성 유지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식물 생장에 적합한 토질이 영덕 송이버섯의 맛과 향기를 만들어낸다”고 영덕군청은 말한다.단백질은 높고 칼로리는 낮은 영덕의 송이는 건강 식품인 동시에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송이버섯은 비타민 B가 풍부하고, 구아닐산이 다량 함유돼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며, 동맥경화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식재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좋은 송이를 고르려면 “유백색 몸체에 짙은 갈색의 갓을 먼저 살피라”는 것이 요리사들의 조언.영덕군산림조합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송이의 품질 향상과 유통질서 확립을 위해 이미 오래 전 ‘영덕송이 지리적 표시 등록’을 완료했다.◆‘입이 즐거운’ 영덕 여행을 위해 노력하는 식당들사람들의 입맛은 각기 다르다. 그렇기에 몇 군데를 선별해 “이곳이 맛집”이라 말하는 건 언제나 조심스럽다. 아래 소개하는 식당 외에도 영덕군에는 다양한 맛집이 존재한다. ‘맛집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각자의 취향과 기호에 따르는 것이다. 보리밥을 좋아한다면 ‘수석분식’에 들러도 좋을 것 같다. 제철 채소로 만든 나물과 보리밥을 내놓는다. 나물과 밥이 따로 제공돼 자기 입맛에 맞춰 스스로 비빔밥을 제조하는 재미가 있다.‘풍경시골’은 양기를 살려주는 음식으로 알려진 들깨칼국수를 낸다. 주재료가 모두 국내산이라고 한다.어린 시절 특식으로 먹던 불고기의 맛을 재현한 식당은 ‘이가네 옛날불고기’다. 한우를 사용하고, 함께 먹는 깻잎 장아찌도 맛있다.다양한 생선초밥과 함께 한우불초밥을 맛볼 수 있는 ‘해동초밥’은 재료가 신선하고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야성 숯불가든’은 무청과 재래식 된장이 하모니를 이루는 시래기정식이 인기다.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좋은 품질의 풋고추, 마늘, 멸치 등을 사용한다.미주구리찌개를 맛보려면 ‘나비산 기사식당’에 가면 된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물가자미에 채소와 고추장 양념을 올려 끓인다.‘낙원 보쌈식당’에선 여러 가지 한약재를 더한 보쌈을 즐길 수 있다. 돼지고기의 기름기를 잘 제거한 담백한 맛이 방문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돌솥에 지은 따끈한 밥에 정갈한 반찬이 차려지는 ‘토박이 돌솥밥’은 마지막에 먹는 누룽지도 좋다. 아이들을 위한 메뉴도 준비하고 있다.시원한 대구지리탕이 먹고 싶다면 ‘별미식당’을 찾으면 된다. 소박한 상차림이지만 손님을 위한 정성은 언제나 잊지 않는다고 한다.◆청년이 운영하는 독특한 카페도영덕군 강구면 금호리에 들어선 카페 ‘커피 앤 스프’도 흥미로운 공간이다.보통의 젊은이들은 꿈을 찾아 ‘도시’로 간다. 하지만, 이 카페의 운영자는 반대의 방법을 선택했다. 대도시 서울 출신임에도 자신의 꿈을 소도시 영덕에서 키워가고 있는 것.김수빈 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공부했고, 광고디자인 회사에 입사해 3년간 일했다. 야근이 잦았고 스케줄은 타이트했지만 즐겁게 일하려 애썼다. 하지만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퇴사한 김씨는 평소 동경해온 ‘조용하고 아늑한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지역’을 찾아 영덕에 정착할 계획을 세웠다. 물론 이전에도 영덕 여행을 수차례 다녔다.영덕의 특산물인 송이와 대게 등은 김수빈 씨가 꿈을 이루는데 도움을 줬다. 좋은 식재료를 구하는 건 카페 운영의 기본이다. 또한 ‘도시청년 시골파견제’는 그가 가게를 창업하는데 적지 않은 힘이 됐다.서울에서의 회사 생활을 마무리한 뒤 본격적으로 커피 만들기와 요리를 공부한 김씨는 외국에선 버섯커피를 마신다는 것에 착안해 송이를 활용한 ‘번영커피(송이 크림라떼)’와 송이 스프, 송이 마들렌 등을 개발해냈다.7년 동안 비어있던 공간을 리모델링 해서 지금의 카페를 만든 김씨는 직접 바닥 공사를 하는 등 힘겨운 육체노동도 피하지 않았다고 한다.“관광객과 주민들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편안한 휴식 공간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젊은 창업자의 꿈이 영덕의 바다 빛깔처럼 맑고 푸르게 커나가길 기대한다./홍성식·박윤식기자

2019-10-31

수려한 자연경관 기반 ‘굴뚝 없는 황금산업’ 최적지

흔히들 구미시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녔다고 말한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낙동강과 영남의 명산으로 꼽히는 금오산, 천생산 등이 있기 때문이다. 낙동강은 구미지역 구간의 강 폭이 가장 넓어 수상레저스포츠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신라불교문화를 대표하는 도리사와 약사암 등의 유적들도 많아 문화와 역사의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내륙최대의 국가공단이 위치해 한국 산업역사를 이끌어 온 곳이기도 하다. 구미시는 이런 관광자원들을 이용해 산업관광을 활성화시키는 다양한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구미가 가진 관광자원들의 면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관광, 산업, 마케팅 전시 등의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어 앞으로 마이스산업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구미의 마이스산업 발전에 대해 알아봤다.△마이스(MICE)산업이란고층빌딩, 도심의 화려한 불빛, 관광과 레저, 거대한 전시장, 세계 최고 정상들이 모이는 회의, 역사를 만드는 이벤트 등이 바로 마이스(MICE)산업을 나타내는 말이다. 마이스(MICE)는 Meeting(아이디어와 정보의 교환, 토론, 네트워크 형성 등을 목적으로 진행되는 회의), Incentive Travel(회사에서 비용의 전체 또는 일부를 부담, 조직 구성원에게 성과에 대한 보상이나 동기부여를 위해 제공하는 여행), Convention(사회적 네트워크 형성, 토론, 정보 교환, 사업 등을 목적으로 진행되는 국제회의), Exhibition Event(유통업자, 소비자, 일반인을 대상으로 전문시설에서 마케팅 활동을 하는 전시)의 약자이다.마이스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이유는 엄청난 파급효과 때문이다. 마이스 참가자들은 대부분 회사에서 모든 경비를 지불하기 때문에 가족들을 동반하고 일반 여행자에 비해 더 많이 쓰고, 그 지역의 특성을 파악해 더 많은 것을 보고 즐기려는 특징이 있다. 이렇다보니 그 지역의 숙박, 교통, 관광, 무역, 유통 등의 산업이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지역경제 효과 뿐만 아니라 도시 브랜드 가치도 올릴 수 있다.△작은 농업도시서 글로벌 마이스산업 도시로 성장한 올란도1970년대까지 감귤 생산이 주요 수입원이었던 미국의 작은 농업 도시 올란도. 지금은 마이스를 통해 연간 4천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도시로 발전했다. 1970년대 세계 최대 테마파크인 디즈니월드가 생기면서 미국 최고의 레저관광휴양지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숙박시설과 쇼핑센터가 함께 들어서게 됐다. 엔터테인먼트 중심지로 시작된 개발에 마이스 개념이 더해지며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로 급부상했다. 레저관광휴양지로 머물수도 있었지만, 다양한 공간을 지닌 호텔들이 들어서면서 모든 종류의 마이스가 가능해졌고, 이를 토대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시설인 오렌지카운티 컨벤션센터가 생기면서 미국의 대표적인 마이스산업 도시로 급성장했다.하지만, 시행착오와 여러 문제점들도 많았다. 올란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마이스산업에 필요한 인재가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올란도에는 세계적인 대형 호텔들이 들어서고 있었지만, 지역에는 호텔경영 등과 관련된 교육프로그램 하나 없었다. 지역 대학에서는 재정문제로 이를 해결할 수 없었다. 이에 주정부가 디즈니월드와 상의를 했고, 디즈니월드는 일부 부지를 기증하는 방법으로 대학의 재정문제를 해결했다. 이로인해 올란도는 레스토랑, 호텔, 컨벤션, 컨퍼런스 등에 관련된 인재들을 육성할 수 있었고, 마이스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가공되지 않은 자연을 지키기 위해 영화제를 만든 일본 유후시연간 400만명이 찾는 일본의 관광도시, 오이타현 유후시. 온천이 대표적인 관광상품이긴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극장이 아닌 야외 스크린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곳, 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1976년 시작한 ‘유후인 영화제’는 ‘온천’이라는 지역의 관광상품을 알리고자 하는 유후인 마을 사람들과 오이타현의 젊은 시네필들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이들의 기획은 성공적이었고, 1989년부터 ‘유후인 어린이영화제(3월)’가 1998년부터는 ‘유후인 문화·기록영화제(6월)’가 추가로 열리면서 유후인은 온천뿐 아니라 영화제 도시로 거듭났다.유후인 영화제가 특별한 것은 현존하는 가장 낡은 영화제이기 때문이다.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극장 하나 없는 곳이 바로 유후시이다. 이런 곳에서 영화제가 열리는 것도 특이하지만, 학교 운동장 천막 등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이 곳만에서만 즐길 수 있는 영화 관람법으로 자리잡았다. 이 영화제는 가공하지 않은 자연을 그대로 유지하길 소망하는 지역 주민들의 바램을 고스란히 담고 있고 더욱 사랑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 영화제에는 지금도 세계 각국의 영화인들이 많은 작품을 출품하고 있다. 유후인 영화제는 마이스산업이 규모가 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빈 운동장과 영화 등의 소재에 네트워크와 마이스가 결합되면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구미와 마이스산업국내에서는 아직 마이스산업이라고 하면 거대한 컨벤션뷰가 있는 대도시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착각한다. 마이스에서 대형 컨벤션이 하나의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지금의 마이스는 네트워크와 결합으로 더 큰 이익과 효과를 낼 수 있다. 구미에는 마이스의 기본 요소인 관광·레저, 산업, 컨벤션 등의 요소가 이미 갖춰져 있다. 여기에 어떻게 네트워크를 결합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미국 올랜도 역시 처음부터 마이스산업과 관련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이스산업의 필수요건인 전문인력이 없었다. 문제해결을 위해 주정부와 기업, 대학, 시민들이 함께 나서 해결했다. 일본 유후시의 시민들은 관광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연을 헤치는 개발을 막기 위해 영화인들과 영화제를 만들어 온천관광과 연계해 큰 성공을 거뒀다.이 모든게 바로 네트워크이다. 구미에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낙동강이 있고, 거기에서 매년 수상레저스포츠가 열린다. 사계절 내내 시민들의 사랑 받는 금오산 있다. 문제는 여기에 어떤 네트워크를 연결 할 것인가이다. 한 예로 일본 유후시가 영화제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긴린코’라는 작은 저수지였다. 아름다운 풍광으로 영화제를 보러오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선물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미에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금오산 저수지가 있고,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강동문화복지회관 맞은편에도 작은 저수지가 있다. 강동문화복지회관 맞은편 작은 저수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다면 제2의 긴린코도 가능하지 않을까.구미는 천혜의 관광자원이 너무나 많고, 인근 대도시와의 교통도 편리하다. 규모가 크지 않은 마이스를 할 수도 있고, 편리한 교통체계를 이용해 대형 마이스까지도 가능한 도시가 바로 구미시다. 구미가 가진 관광자원에 마이스와 네트워크를 접목한다면 구미시는 분명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산업관광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끝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19-10-31

미식의 계절 가을, 소문난 전국구 맛집 지나치면 섭섭하지

‘수제순대’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식재료 비용과 더불어 인건비 때문이다. 식당 종업원들도 힘든 일은 피한다. 순대 만드는 일은 힘들다. 대부분 ‘공장제 대량생산’ 순대를 내놓는 이유다. 순대 및 머리 고기 수육, 뼈를 우린 국물까지. 죄다 수제다. 맛이나 가격 모두 넉넉하다. 제법 수북한 순대 한 접시, 머리 고기 수육 작은 것이 1만 원, 큰 것은 2만 원이다. 잘 곤 국물은 덤이다. 두 사람이 순대나 머리 고기 한 접시만 주문해도 제법 넉넉할 듯하다.이른 새벽 3시 무렵에 주인 남자가 직접 순대를 만든다. 순대는 두 종류다. 대창 순대는 피순대다. 유명한 전주 남문시장의 피순대와 흡사하지만, 오히려 낫다. 좋은 피를 많이, 가능하면 100% 사용한 것이 좋은 것이다. 텁텁한 식감의 피순대는 별미다.막창 순대는, 흔히 ‘함경도 아바이순대’라고 부르는, 채소, 곡물 등이 잔뜩 들어간 것이다. 경북 김천의 작은 시장통 가게에서 함경도 식 아바이순대와 전주식 피순대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것은 재미있다. 외부, 다른 이의 손을 빌리지 않고 경력 30년의 주인 남자가 직접 만든다.국물도 수준급이다. 돼지 사골을 비롯하여 3가지 정도의 뼈를 섞어서 곤다. 잡내가 나지 않는다. 쭉 들이키면 희미한 곡물 냄새가 난다. 정갈하게 곤 국물이다. 국물 음식을 주문하거나 순대, 수육을 주문하면 이 국물을 마실 수 있다.‘황금시장’은 재래시장이다. 시장의 기능은 많이 약해졌다. 순대 집들은 성업 중이다. ‘보람이순대’ ‘황금순대’ ‘장군순대’ 등이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곳들. 대부분 직접 순대를 만들거나 수육을 만진다. ‘지례순대’도 황금시장 안에 있다.무지했다. ‘갱시기’가 ‘갱식’에서, 갱식은 다시 데워먹는 ‘更食’인 줄 알았다. 갱시기는 ‘羹食(갱식)’이다. 국물이 있는 음식, 국밥 같은 음식이다.갱시기는 신 김치에 식은 밥을 넣고 끓인 것이다. 돼지고기, 콩나물, 두부를 넣어도 된다. 다 끓인 후, 김 가루를 뿌려도 좋다. 갱시기치고는 업그레이드, 화려한 버전이다.절대 빈곤의 시절은 아니라도 늘 뜨거운 밥에 반찬을 챙길 수는 없었다. 국물이 있는 음식, 그러면서 별다른 반찬 없이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갱시기다. 갱시기의 시작은 보잘것없지만, 그 진화는 놀랍다. 갱시기는 김치찌개로 발전한다. 돼지고기, 두부, 콩나물 등을 넣는다. 때로는 햄, 소시지나 마른 생선도 넣는다.갱시기는 추억의 음식이다. ‘기차길옆오막살이’는 추억의 음식 갱시기를 파는 곳이다. 음식과 더불어 추억을 내놓는다. 가게 분위기도 복고풍이다. 멀리 기찻길이 보이고, 기찻길과 가게 사이에는 너른 들판이 있다. 가게 안팎에도 추억이 하나 가득하다. 고르지 않은 모양의 크고 작은 장독, 그릇이 있다. 꽃들도 나란하지 않다. 들쑥날쑥한 자연스러운 분위기다. 실내도 70~80년대 복고풍이다.음식 맛은 굳이 따지지 말자. 갱시기는 갱시기 맛일 뿐이다.동네 이름보다 ‘김천 아랫장터에 있는 만둣집’이라고 말하면 더 빨리 알아듣는다. 10평 언저리의 작은 가게다. 메뉴는 만두와 찐빵 두 종류. 대부분 만두를 주문한다. 가게 이름이 ‘중국만두’. 화상노포다. 예순을 넘긴 노부부가 운영한다. 바쁜 주말에는 가끔 아들인 듯한 젊은 남자가 일을 거든다.‘중국만두’의 만두는, 정확하게는, 바오쯔[包子, 포자]다. 그중에서도 소룡포자, 소룡포(小籠包)에 가깝다. 소룡포라 하지 않고 ‘가깝다’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소룡포는, 중국 상해의 남상(南翔, 난샹) 것이 유명하다. 흔히 ‘남상소룡포’라고 부른다. ‘소룡’은 작은 나무 찜통이다. 나무 찜통에 일정량의 포자를 넣고 쪄내면 소룡포다. ‘중국만두’는 작은 가마솥에서 쪄낸다. ‘소룡’은 아니다. 포자를 빚을 때 제일 위 끄트머리 부분을 보자기 묶듯이 틀어 올린 것이다. 북경, 천진 등의 ‘천진구부리포자’가 유명하다.전국적으로 인기 있는 이유가 있다. 작은 나무 찜통, 가마솥 부분을 제외하면 상당히 맛있는, 수준급의 포자, 소룡포다.“만두가 너무 늦게 나온다” “30분 혹은 한 시간 기다렸다”는 불평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다. 미리 준비하는 것은 반죽뿐이다. 포자를 위한 반죽은 발효,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전날 반죽하여 숙성한 다음, 다음날 사용한다. 만두 속도, 물론, 미리 준비해야 한다. 돼지고기, 부추, 양파, 생강 등을 잘 다져서 섞어두어야 한다.주문을 받은 후, 만두를 빚는다. 바깥주인은 주방 안쪽에서 연신 만두피를 민다. 잠시도 쉬지 않고 하나하나 만두피를 빚는다. 안주인은 만두 속을 채우고, 일정량이 되면 가마솥에서 쪄낸다. 테이크아웃 용 만두를 포장하거나 작은 홀에 만두를 내놓는 일도 안주인 몫이다. 계산대나 손님 응대도 모두 안주인의 몫이다.주문 후, 피를 밀고, 만두를 빚고, 쪄낸다. 바로 만든 음식은 맛있다. 업력이 상당히 긴 노포다. 소룡포 같은 포자가 10개 5천 원이다(2019년 10월 기준). 음식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을 수 없다. 전국구 만두 맛집이 된 이유다.대단한 수준급의 복어탕이나 복국을 기대한다면 가지 말 것. 내륙 도시 김천에서 복어 전문점(?)을 만나다니, 라고 생각하면 가볼 것.복집이지만, 복어가 중심이 아니다. 경상도 사투리로 ‘저래기’라는 표현이 있다. 무생채, 나물 겉절이 등을 이르는 말이다. 비빔용 겉절이, 저래기가 나온다. 겉절이로 밥을 비빈 후 복국을 한 그릇씩 떠서 국물 삼아 먹으면 된다. ‘겉절이 비빔밥+복국’의 형태다. 가격이 싸다. 1만 원 이하다.70년 가까이 버틴 이유가 있다. 복국을 내륙 식으로 바꿨다. 이 지역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겉절이 비빔밥과 복국을 같이 내놓는다. 쪽파 썬 것과 새우를 무쳐서 내놓는 음식도 특이하다. 새우젓갈이 아니라 마른 새우를 쪽파와 무친 것이다. 양념 겸 비빔 나물이다.창업주에게서 며느리로 전승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음식 만지는 일에는 얼씬도 못 하게 했다”고 말한다. 며느리는 긴 세월 동안 그릇 씻는 일, 청소, 정리하는 일만 도우면서 기다렸다. 음식 만지는 일은 10년이 채 되지 않지만, 곁에서 지켜보며 눈으로 음식을 익힌 세월은 수십 년이다.김천에는 두 곳의 큰 맛집 타운이 있다. 관광객들도 자주 들르는 곳들이다. 단체로 찾는 이들도 많다.황악산 직지사 아래에는 산채비빔밥, 산채비빔밥 정식을 내놓는 곳들이 상당히 많다. 업력 50~60년을 내세우는 집들도 제법 있다. 음식은 큰 차이가 없으나 상을 받으면 비빔용 채소나 반찬 등의 맛이 각각 다르다.‘부일산채식당’은 이 지역에서도 노포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깔끔한 맛의 산채비빔밥이 좋다. 정식은 2인분 이상만 가능하다. 뜬비지가 이 가게의 특징이다. 다른 곳 뜬비지에 비해서 곰삭은 구수한 맛이 돋보인다. 비지는 두부를 만들 때 나오는 부산물이다. 콩의 주요 영양분을 뽑아내고 남은 것이다. 별맛이 없다. 이 비지를 한 차례 띄우면(발효, 숙성), 뜬비지가 된다. 가난한 시절의 음식이지만 영양가도 높고 구수한 맛이 돋보인다.산채비빔밥 타운 안의 ‘일직식당’이나 ‘서울식당’ 등도 노포다.‘지례흑돼지타운’은 김천시 지례면의 특산물 흑돼지로 불고기 등을 내놓는다. 역시 2~3대 전승, 50~60년 된 노포들이 많다.‘지례식육식당(한마음농장)’, ‘장영선지례원조불고기’ ‘현구삼대원조불고기’ 등이 유명하다. 모두 2~3대 전승된 노포들이다. 소금구이 스타일의 비교적 맑은 맛의 돼지고기와 고추장, 매운 양념의 불고기가 모두 가능하다.흑돼지는 새로운 품종이 아니라 오래전 품종을 복원한 것이다. 크게 자라지 않아 찾지 않던 품종을 복원했다. 비계와 고기의 밀도가 높다. 특히 지방 부분이 차진 맛이 특징이다. 여러 명이 가면 먼저 소금구이를 주문하고 마지막에 양념 불고기를 먹는 것이 요령. 양념의 경우, 단맛이 강하다. 고기 맛을 가린다.     /음식평론가 황광해

2019-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