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필자는 유튜브를 즐겨 본다. 구독한 채널에 새로 올라온 영상을 시청하기도 하지만, 알고리즘의 추천에 몸과 마음을 맡길 때가 많다. 최근에는 알고리즘이 재테크 관련 영상들을 자주 추천한다. 아마도 내 검색어와 사이트 방문 기록 등을 종합하여 이 40대 남성은 재테크 관련 영상을 좋아할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재테크에 투자할 자금도 없지만, 소위 경제 유튜버들의 현란한 말솜씨에 매료되어 한참을 보게 된다. 저축, 보험, 주식, 부동산, 펀드, 코인(가상화폐) 등 콘텐츠의 종류도 엄청나게 다양하다.필자야 가벼운 마음으로 시청하지만, 실제로 재테크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이런 영상들을 보며 공부에 열중할 것이다. 피땀 흘려 모은 종자돈을 투자해야 하니 얼마나 불안하고 애가 탈까. 그 절박함은 대학 입시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경제 유튜버들은 이런 사람들의 불안함을 이용해 돈을 번다. 서점에도 재테크 서적이 수두룩하다. 재테크로 돈을 버는 것보다 재테크 콘텐츠로 돈을 버는 것이 훨씬 빠를 것 같다. 퇴근 후 녹초가 된 몸으로 재테크 공부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 노동가치가 추락한 사회의 자화상이다.서울 동작도서관은 5월부터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 등 ‘시세차익형 재테크’ 서적의 구입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구입 희망도서 중 재테크 관련 서적의 비중이 너무 높아서 장서불균형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책들은 유행을 타서 한두 번 대출된 뒤에는 서가에서 자리만 차지하는 경우가 많고, 예산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재테크 관련 희망도서를 모두 구입하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등 다른 분야의 책들은 구입할 수 없기도 하다. 특히 공공 도서관에서 이러한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도서관은 단지 책을 모아놓은 공간이 아니라, 정보의 축적을 통해 독서, 교육, 조사, 연구 활동에 기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동작도서관의 혁신적 시도에 박수를 보내며, 전국의 도서관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인문학이 위기라고 한다. 그 원인으로 종종 지목되는 것이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영상 플랫폼이다. 사람들이 책 대신 영상을 즐겨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은 영화의 라이벌은 다른 영화가 아니라 등산과 예배당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일요일에 등산을 가고 교회에 나가면 영화관을 찾지 않게 되지만, 다른 감독이 좋은 영화를 만들면 영화계 전체의 파이가 커진다는 것이다. 탁월한 통찰이다. 사람들이 문화와 여가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면 그 효과는 문화계 전반에 미치게 된다.반면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어떤가? 재테크를 공부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사회. 노동의 가치, 근로소득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사회. 건물주가 ‘갓물주(GOD+물주)’가 되고, 불로소득이 찬양받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문학책을 읽고 인문학을 공부하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문학의 라이벌은 유튜브도, 넷플릭스도 아니다. 재테크를 강요하는 사회가 인문학의 적이다.
2023-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