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과메기와 기후위기

등록일 2023-01-02 19:27 게재일 2023-01-03 18면
스크랩버튼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포항에 와서 과메기 맛을 재발견했다. 저장과 유통기술의 발달로 타지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찬바람이 불면 찾아오는 햇과메기의 맛은 포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별미다. 김이나 돌미역, 곰피 쌈으로 먹는 것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방식은 썰지 않은 ‘짜배기’(배를 갈라 말린 것)를 한 손에 들고 베어먹으며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과메기 하면 막걸리와의 궁합을 떠올리기 쉽지만, 꾸덕하게 기름기 오른 제철 과메기는 참치 뱃살에도 밀리지 않는 진한 맛 덕분에 맥주와도 잘 어울린다.

과메기는 주로 예전에는 청어, 최근에는 꽁치로 만든다. 그 시대에 가장 많이 잡혀서 저렴한 생선을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은 내륙지방에서도 신선한 활어회를 얼마든지 맛볼 수 있지만, 불과 백여 년 전만 하더라도 신선한 생선은 바닷가 사람들이나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새우젓이나 북어 정도가 내륙지방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해산물의 전부였던 시대가 고작 백여 년 전이다. 서민들도 육고기 맛보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요즘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상허 이태준의 소설 ‘사상의 월야’(1941)에는 배고픈 아이들이 북어를 널어 말리는 덕장에서 꼬챙이로 북어 눈깔을 빼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만큼 육고기나 생선 같은 단백질 식품을 접하기 어려운 시대였음을 잘 보여준다.

‘탄소 발자국’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의 원료 채취, 생산, 수송 및 유통, 사용, 폐기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발생량을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해 파악하는 것이다. EPA(미국 환경보호청) 보고서에 따르면 양고기 1kg를 소비하는 것은 39.2kg의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며, 이것은 약 145km를 운전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같다고 한다. 양을 기르고 도축하고 운송하는 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메기의 탄소 발자국은 어떨까? 물론 원재료가 되는 생선을 잡는 과정과 유통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겠지만, 이후부터는 태양과 바람, 그리고 영상과 영하를 오르내리는 기온의 힘으로 만들어진다. 특히 햇과메기를 산지 인근에서 소비한다면 온실가스 발생은 최소화될 것이다. 내륙에서는 소금에 절이거나 바짝 말린 해산물을 먹고, 해안가에서는 활어와 선어를 먹는 것이 자연스럽다. 과메기는 교통과 냉장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 귀한 해산물을 내륙지방까지 전하기 위해 고안된 ‘적정 기술’(해당 공동체의 상황에 맞춰 고안된 기술)이었다. 따라서 미식과 괴식 사이에 놓인 지역 특산물이 아니라, 생산, 유통, 소비의 전 과정에 걸쳐 적정 기술의 차원에서 과메기를 재평가해야 한다. 과메기 자체를 신화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지혜와 절제의 미덕을 배우자는 것이다.

계절과 지리에 상관없이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신선한 해산물과 과일, 채소, 푸짐한 육고기를 먹고 싶다는 소비자본주의적 욕망이 탄소 발자국을 늘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메기를 먹으며 기후위기를 생각해 본다.

홍덕구의 어림생각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