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9일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은 2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실종자, 47만 명에 달하는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재해 복구 사업을 통해 도로나 건물 같은 인프라는 상당 부분 복구되었지만, 이재민들의 마음까지 치유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잃은 것은 가족, 연인, 친구, 반려동물, 마을, 학교, 고향처럼 ‘사망자·실종자 수’나 ‘재산피해액’이라는 숫자로 요약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쿠시마산 농산물을 먹읍시다’와 같이 경제적 손해를 벌충해주는 방식은 충분하지 않다. 재난 이전의 삶은 어떤 경제적 보상으로도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재난 피해자들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를 기반으로 위로를 건네는 일이다. ‘지나간 일은 빨리 잊고 새출발하라’는 식의 조언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들이 이 당연한 사실을 몰라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잃어버린 소중한 존재들(피해자 자신도 포함한)을 애도할 충분한 시간, 그리고 다정하면서도 지나치지 않은 관심이 필요하다. 이는 공동체 전체의 몫일 수밖에 없다. 재난 이후에도 여전히 그들은 이웃이자 동료 시민이므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러한 점을 매우 잘 알고 있는 창작자이다. 전작인 ‘너의 이름을’에서 그는 재난으로 인한 상실과 회복의 문제를 다뤘다. 이 주제는 최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도 반복된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엄마를 잃은 여고생 스즈메는 지진을 일으키는 ‘미미즈(거대 지렁이 괴물)’의 존재를 우연히 알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규슈의 미야자키현에서 도호쿠의 이와테현까지 일본 열도를 종단하는 이 여정에서 스즈메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받는데, 이는 재난 피해자인 스즈메를 사회가 포용하고 위로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스즈메는 비로소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재난 이후’가 아닌 ‘미래’를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조력자들이 민박집 딸, 스낵바 마담, 대학생처럼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 또한 감동을 더한다. 재난 피해자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평범한 시민들의 공감과 선의, 연대이기 때문이다.
스즈메는 또 다른 재난을 막기 위해 싸우는 히어로이기도 하다. 거대한 괴물에 맞서는 스즈메의 용기는 그녀가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재난을 겪으며 죽음에 한없이 가까이 다가갔던 경험에서 나온다. 즉, 이 영화는 스즈메를 단순히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스즈메는 상실을 애도하고 ‘재난 이후’의 삶을 일상으로 바꾸기 위해 용감하게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영화라는 감독의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십여 년간 우리 사회도 세월호 사건이나 이태원 참사와 같은 재난들을 겪어 왔다. 포항에서는 몇 년 전 지진으로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고, 작년에는 폭우로 인해 일곱 명의 귀중한 생명을 잃기도 했다. 우리는 이러한 상실들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위로해 왔는가. 피해자에 대한 동정과 금전적 보상으로 충분하다고 여겨 왔던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