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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에 사는 형산강 철새들

등록일 2023-02-06 20:01 게재일 2023-02-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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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필자의 집에서 십 분 정도만 걸어가면 형산강이 나온다. 한겨울인 요즘, 추위와 귀찮음을 이겨내고 강변으로 산책을 나가 보면 꽤나 다양한 겨울 철새들을 만날 수 있다. 흰뺨검둥오리나 홍머리오리 같은 오리들, V자 편대비행이 일품인 기러기들, 잠수를 잘하는 물닭과 가마우지, 갈색 목도리가 인상적인 논병아리, 각종 갈매기들과 물수리 같은 맹금류까지. 종류도 개체수도 만만치 않다. 아직 만나지는 못했지만 천연기념물인 큰고니, 매, 흰꼬리수리도 종종 관찰된다고 들었다.

사실 지금의 형산강은 철새들이 머물기에 아주 적합한 공간은 아니다. 강을 따라 조성된 공업단지와 주택지를 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직강화공사 및 콘크리트 제방 공사가 이루어져 왔고, 그 결과 하류에는 철새들이 선호하는 모래톱이나 갈대숲, 자연습지가 거의 사라졌다.

인간의 주거에 비유하면 주거지로 선호되지 않는 반지하나 옥탑방 같은 공간인 셈이다. 이 열악한 공간을 매년 꾸준히 찾아주는 철새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전해야 할 판이다. 떠서 노니는 물새 한 마리 없는 강 풍경이 얼마나 쓸쓸할지 상상해 보자. 아니, 그 전에 새가 살 수 없는 강은 사람도 이용할 수 없다.

이는 하나의 도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보면 필연이겠지만, 인간과 자연의 관계라는 측면에서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사회적 본능이듯이, 범람하는 것은 강의 자연적 본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명화, 산업화를 위해 강에게 그 본성을 억누를 것을 수십 년 동안이나 요구해 왔다. 지난 수십 년간은 그럭저럭 버텨 왔을지 몰라도 기후위기 시대로 접어든 현재, 과거의 방식은 더이상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작년 가을에 일어난 형산강 범람과 같은 사건이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최선의 방법은 콘크리트 제방을 허물고, 인간의 영역을 범람원 뒤로 후퇴시키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이는 단기간 내에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인터스텔라’ 같은 SF 영화를 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기도 하지만. 우선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따뜻하면서도 편안한 옷차림으로 형산강 수변공간을 찾아가 보자. 그 척박한 공간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들을 관찰하고, 그곳이 얼마나 인간 편의적으로 만들어져 있는지도 직접 느껴보자. 유네스코(UNESCO)에서 1978년에 제정된 ‘동물 권리 선언’은 “모든 야생 동물은 땅이건, 하늘이건, 물이건 본연의 자연 환경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생육할 권리를 가진다”(제4조)라고 주창한 바 있다.

지금까지는 ‘먹고 살기 바빠서’, ‘더 잘 살기 위해서’ 잊고, 놓치고 살아왔다고 하지만, 소위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한국 사회인만큼 철새들까지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도 충분하다고 믿는다. 해마다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들에게 콘크리트로 덮인 반지하 같은 강이 아니라, 모래톱과 갈대숲이 풍성한 대저택 같은 강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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