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을 맞아 동물원 나들이를 다녀온 가족이 적지 않을 것이다. 코끼리, 기린, 하마, 사자, 얼룩말 등 책에서만 보던 동물들을 실제로 볼 수 있는 동물원은 가족 나들이의 단골 코스다. 어린 시절의 필자 또한 동물원에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동물원에 가지 않는다. 철이 들어서, 동심을 잃어서가 아니다. 동물원이라는 공간에서 동물들이 행복하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동물원 우리 안에서 뱅글뱅글 맴도는 동물을 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이상행동의 원인은 너무 좁거나 관람객들의 시선에 무방비로 노출된 공간 때문에 발생하는 극도의 스트레스다. 만약 당신이 기후도 식생도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납치되어 우리에 갇힌다면? 더구나 낯선 이들이 갇혀 있는 당신을 바라보고 가리키며 웃고 떠든다면? 우리는 이를 ‘폭력’이라고 부를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식민지에서 포획한 ‘이국적인’ 동물들을 본국으로 보내 전시한 것이 동물원의 시초다. 희귀종의 보존이나 생태 학습 등의 기능은 한참 뒤에나 덧붙여진 것이고, 그나마도 최우선 목표는 아니다. 동물들을 본연의 서식 환경에서 강제적으로 이탈시켜 관람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동물원의 본질이다. 초기의 동물원에서는 ‘인간 전시’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서구인들의 눈에 신기하게 보이는 원시 부족민을 동물들과 함께 전시한 것이다. 이처럼 동물원이라는 제도는 시초부터 제국주의적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지난 3월, 서울 광진구의 동물원을 탈출한 얼룩말 ‘세로’가 도심지와 주택가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다수의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사람들은 아프리카 사바나에 있어야 할 얼룩말이 대도시 한복판을 활보하는 이색적인 이미지를 흥미롭게 소비했다. 문제는 동물원과 인간의 도시 모두가 세로에게는 편안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것이다. 닭발집과 중화요리점 앞을 지나가는 세로의 모습이 이질적이라면, 동물원 우리 안에 있는 세로 또한 자연스럽지 않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이러한 동물원의 폭력적 속성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청주동물원에는 코끼리 같이 관람객에게 인기 있는 외래동물이 거의 없다. 기후와 풍토가 맞지 않는 동물은 사육하지 않는다는 방침 때문이다. 외래동물이 차지하던 넓은 공간에서는 늑대, 수달, 오소리 같은 고유종들이 사육된다. 고유종의 종 보존과 번식, 생태 연구도 이루어진다. 다쳐서 구조된 동물들을 치료하고 돌본 뒤 야생으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전시는 청주동물원의 수많은 기능 중 하나일 뿐이다. 가장 이상적인 동물원은 관람객들에게 동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 동물원일 것이다.
에버랜드 동물원의 아기판다 ‘푸바오’의 귀여운 모습이 화제다. 필자 또한 온라인으로 푸바오의 영상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여러 번 지었다. 하지만 푸바오를 직접 보기 위해 동물원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1년 뒤면 중국으로 돌아갈 푸바오가 또 다른 동물원이 아닌 야생의 대나무숲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푸바오가 그곳에서 잘 지낸다는 소식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