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2022년은 유난히도 대형 사건사고가 많았던 해로 기억된다. 1월에는 광주 화정 아파트 건설현장 붕괴 사고로 여섯 명이 희생됐고, 평택 냉동창고 신축공사현장 화재로 세 명이 사망했다. 5월에는 울산 온산공단에 위치한 에쓰오일 공장 화재로 열 명이 희생됐으며, 7~8월에는 중부권 폭우로 열두 명이 사망하고, 세 명은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9월에는 남부지방을 직격한 태풍 힌남노로 인해 포항에서만 여덟 명이 사망했고, 대전 아울렛 화재사고에서는 일곱 명이 희생되었다. 10월에는 SPL 제빵공장에서 기계끼임 사망사고가 발생하였고, 10월 29일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에서는 무려 158명이 사망하고 197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동해안 지역에서는 3월부터 산불이 자주 발생해 막대한 삼림피해와 재산피해를 냈으며, 11월에는 산불 취약지 예방 활동을 벌이던 소방헬기가 추락하여 탑승자 다섯 명이 모두 사망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0월 말에 발생한 봉화 광산 붕괴사건의 매몰자 두 명이 극적으로 구조된 것이 그나마 작은 위안이었다.미국의 재난사회학자 레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펜타그램, 2012)라는 책에서 ‘재난 유토피아’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본 홉스 이후의 대중관을 완전히 뒤엎은 것이다. 홉스 이후, 지배자들은 통제에서 벗어난 대중이 폭도로 변모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솔닛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재난 상황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이타적으로 행동할 기회를 제공한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을 때, 뉴올리언스는 일시적으로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피해가 너무 커서 해당 지역의 모든 공공시스템이 마비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살아남은 주민들은 서로를 돕기 시작했다.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나서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조하고, 남는 물자를 나눠주고, 집을 잃은 사람들을 돌봤다. 솔닛은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재난 유토피아’라고 명명하였다.우리에게도 재난 유토피아를 만들어낼 힘이 있다. 포항 시민들은 태풍 힌남노로 인해 발생한 고통을 함께 나누고 피해 복구에 힘을 모았다. 제빵공장에서 일어난 사망사고에 분노한 사람들은 특정 브랜드를 불매함으로써 피해자에게 공감을 표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태원 참사의 아픔을 공유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 것을 촉구하였다. 봉화 광산 붕괴사고의 생존자가 구조되기까지 온 국민이 마음을 모아 생환을 염원하였다. 재난 유토피아는 결국 개개인의 공감과 연대의 능력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안이 아니라 밖을 향하는 마음, 타인에 대한 선의,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에 대한 존중,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넘치는 연말이 되기를 바란다. 내년에는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해지기를, 더 따뜻해지기를 소망한다.
2022-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