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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1인 가구의 코로나 투병기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코로나에 걸렸다. 지난 2년 동안 운 좋게 피해왔는데 결국 걸려버리고 말았다. 백신은 2차까지 접종했지만 시일이 꽤 지나서 항체가 거의 없어졌던 모앙이다. 증상은 일요일 아침부터 발현됐다. 발열, 몸살, 오한, 목과 가슴 통증, 기침, 콧물과 가래 등 전형적인 코로나 증상이었다. 마련해두었던 자가진단 키트로 검사하니 아니나 다를까, 두 줄로 양성 반응이 나왔다.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사람도 많다는데, 나는 꽤 심하게 앓는 축이었다. 코로나에 걸렸던 동료들을 내심 부러워하며 ‘나도 가볍게 코로나 좀 걸려서 일주일쯤 쉬었으면’하고 생각했던 것을 깊이 후회했다. 일반적인 감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고열과 통증이었다. 특히 처음 며칠 동안은 가슴과 목을 날카로운 것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어 코로나가 폐렴의 일종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상비약으로 구비해 둔 타이레놀 덕분에 일요일은 겨우 넘기고, 월요일 아침에 선별진료소를 찾아 PCR 검사를 받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나는 포항시에서 살고 있는 1인 가구다. 선별진료소는 집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기에 조금 힘들지만 혼자 걸어서 다녀올 수 있었다. 문제는 PCR검사 결과 확진임을 문자로 통보받은 뒤다. 코로나19 감염증 홈페이지(https://ncov.kdca.go.kr/)에 안내된 의료기관에 전화를 걸어 원격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홈페이지 안내에 따르면 확진자는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절대 스스로 약을 받으러 가지 말고 가족 또는 대리인에게 부탁하라고 나와 있었기에, 원격진료 의료기관에 의약품을 집으로 배달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지만 현재 그런 서비스는 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직접 차를 몰고 원격진료기관에서 처방전을 보낸 약국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해당 약국의 유리문에는 코로나 확진자가 약국 앞에서 전화하면 약사가 약국 밖으로 나와서 약을 건네준다는 내용이 붙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내가 직접 약국 안까지 들어가서 약을 받고 결제까지 해야 하는 환경이었다. 치료의 온상이 되어야 할 약국이 오히려 코로나 감염의 허브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컸다.포항시는 산업구조의 특성상 1인 가구가 다수 거주하는 지역이며, 전국적으로도 1인 가구는 급격한 증가세에 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코로나19 감염증 홈페이지’의 확진자 행동 지침이 1인 가구를 고려하지 않고 가족 또는 동거인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은 문제가 크다. 가족공동체는 빠르게 그 수명을 다해가고, 사회구조는 1인 가구를 양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수많은 1인 가구들의 노동력이 산업현장을 지탱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과 제도, 사회적 인식은 아직도 가족중심주의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가족에게 부여된 의무를 국가와 사회가 나눠서 짊어질 때 가족을 만들어 볼 생각도 드는 게 아닐까?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한국사회라면 출산, 육아, 노인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를 실행할 충분한 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은 멍에가 아니라 기쁨이어야 한다.

2022-12-20

모두에게 안전한 겨울이 되기를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2022년은 유난히도 대형 사건사고가 많았던 해로 기억된다. 1월에는 광주 화정 아파트 건설현장 붕괴 사고로 여섯 명이 희생됐고, 평택 냉동창고 신축공사현장 화재로 세 명이 사망했다. 5월에는 울산 온산공단에 위치한 에쓰오일 공장 화재로 열 명이 희생됐으며, 7~8월에는 중부권 폭우로 열두 명이 사망하고, 세 명은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9월에는 남부지방을 직격한 태풍 힌남노로 인해 포항에서만 여덟 명이 사망했고, 대전 아울렛 화재사고에서는 일곱 명이 희생되었다. 10월에는 SPL 제빵공장에서 기계끼임 사망사고가 발생하였고, 10월 29일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에서는 무려 158명이 사망하고 197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동해안 지역에서는 3월부터 산불이 자주 발생해 막대한 삼림피해와 재산피해를 냈으며, 11월에는 산불 취약지 예방 활동을 벌이던 소방헬기가 추락하여 탑승자 다섯 명이 모두 사망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0월 말에 발생한 봉화 광산 붕괴사건의 매몰자 두 명이 극적으로 구조된 것이 그나마 작은 위안이었다.미국의 재난사회학자 레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펜타그램, 2012)라는 책에서 ‘재난 유토피아’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본 홉스 이후의 대중관을 완전히 뒤엎은 것이다. 홉스 이후, 지배자들은 통제에서 벗어난 대중이 폭도로 변모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솔닛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재난 상황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이타적으로 행동할 기회를 제공한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을 때, 뉴올리언스는 일시적으로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피해가 너무 커서 해당 지역의 모든 공공시스템이 마비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살아남은 주민들은 서로를 돕기 시작했다.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나서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조하고, 남는 물자를 나눠주고, 집을 잃은 사람들을 돌봤다. 솔닛은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재난 유토피아’라고 명명하였다.우리에게도 재난 유토피아를 만들어낼 힘이 있다. 포항 시민들은 태풍 힌남노로 인해 발생한 고통을 함께 나누고 피해 복구에 힘을 모았다. 제빵공장에서 일어난 사망사고에 분노한 사람들은 특정 브랜드를 불매함으로써 피해자에게 공감을 표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태원 참사의 아픔을 공유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 것을 촉구하였다. 봉화 광산 붕괴사고의 생존자가 구조되기까지 온 국민이 마음을 모아 생환을 염원하였다. 재난 유토피아는 결국 개개인의 공감과 연대의 능력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안이 아니라 밖을 향하는 마음, 타인에 대한 선의,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에 대한 존중,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넘치는 연말이 되기를 바란다. 내년에는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해지기를, 더 따뜻해지기를 소망한다.

2022-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