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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리란 무얼 남길지 고르는 일

김현욱 시인포항에서 경주로 직장을 옮기게 됐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은 종이상자나 캐리어 하나 달랑 들고 가뿐하게 떠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학교라는 특성도 있지만, 나는 늘 짐이 많았다. 옮길 때마다 책 때문에 애를 먹었다. 그러지 말자고 다짐을 해도 일 년이 지나면 생각지도 못한 책들이 한가득 쌓여있다. 책뿐인가. 잡동사니는 왜 그렇게 많은지. 이건 뭐지, 싶을 것도 부지기수다. 100리터 쓰레기봉투의 위력(?)이 아니었다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버리지 않으면 정리가 안 된다. 보이지 않게 숨길 뿐. 최고요의 책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를 읽으며 이번 기회에 집 정리도 하자고 마음 먹었다. 역시나 책이 문제다. 한숨밖에 안 나온다. 버리자고 골라놔도 다시 집어 들고 망설이는 내 모습이 가엾기까지 하다. 나는 왜 이토록 버리지 못하는가.“나는 언제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집이기를 바랐다. (중략) 멋진 것, 비싼 것, 남이 보았을 때 부끄럽지 않은 것보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가 유일한 기준이었다. 가지고 있던 물건도 필요 없거나 지나치게 눈에 거슬리면 처분했다.” 최고요는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라는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있다. 반면에 나는 그런 기준이 없다. ‘언젠가 쓰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무엇이든 못 버리게 만든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안 꺼낸 책들, 안 입은 옷들, 안 쓴 물건들이 즐비한데도 막상 버릴 참으로 집어 들면 ‘나중에 쓸모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내려놓게 된다.집과 주인은 닮는다고 한다. 교실도 담임과 닮는다. 내가 쓰던 교실, 내가 살던 집은 나와 닮았는가? 당신이 사는 집은 당신과 닮았는가? 최고요는 “언제나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비움. 공간을 구성하며 집중해야 하는 것은 물건보다는 전체의 분위기다. 물건은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솎아내는 대상이자 치열한 검열이 결론이어야 한다. 비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 공간에 대해 오래 고민해본 사람들은 알고 있다”며 정리 정돈이란 물건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남기는 작업이자 물건의 제자리를 정해주는 작업이라고 소개한다. 정리 정돈의 시작은 비움이다.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옆에는 책장에서 꺼낸 책들이 한가득이다. 분리 수거하려고 바닥에 내려놓은 책들이 나를 애잔하게 쳐다본다. 아깝지 않냐고. 후회하지 않겠냐고. 매년 이맘때가 되면 비움의 철학을 실천해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버리고야 말 것이다. 꽉꽉 채워진 공간이 나를 숨 막히게 한다.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라는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집은 그런 질문을 할 공간이 아니라고 여겼다. 주어진 대로 사는 곳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정원을 가꾸듯 집도 가꾸는 곳이라는 문장에 오래 마음이 머물렀다. 과연 나는 버릴 수 있을까. 비움에 성공할 수 있을까. 정리를 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물건이 나에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부끄럽다.나에게도 물건에게도 미안하다. 각자 제자리를 찾아가자. 안녕.

2021-02-21

행운목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몇 해 전에 행운목 한 토막을 샀다. 길가에 늘어놓고 파는 것을 지나다가 별 생각 없이 산 거였다. 세 개의 순이 돋아 있는, 팔뚝 굵기로 한 뼘 가량인 행운목 토막을 수반에 세워 두고 가끔씩 물을 갈아 주었다. 어둡고 비좁은 내 방에 생기를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건 흐뭇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몇 달을 못 가서 두 개의 순이 시들어 버렸다. 하나 남은 순도 곧 시들 것 같아서 에멜무지로 떼어서 작은 화분에다 옮겨 심었더니 뜻밖에도 잘 자랐다.내가 보탠 것은 이따금 물을 준 것 밖에 없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은 크고 푸른 잎을 무성하게 단 의젓한 식물로 자라 내방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햇볕이 들지 않아 상당히 열악한 환경일 텐데도 저토록 왕성하게 자란다는 것은 필시 좋은 징조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란 말이 있지만, 저 행운목이 전하는 메시지는 ‘삶이 행운(幸運)이라는 걸 기억하라’는 게 아닐까 싶다. 가진 것도 이룬 것도 별로 없는 삶일지언정 살아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라는 걸 부단히 환기하는 것 같다.운명(運命)이라는 걸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재수가 없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있듯이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을 때는 팔자소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없지가 않아서 운수대통이라는 말도 있다. 인생에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이 우연일 뿐인 것인지, 제 하기 나름으로 팔자나 운명은 얼마든지 달라지는 것인지, 동서고금에 여러 갈래의 주장과 신념들이 분분하다.기독교에서는 세상만사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고, 불가에서는 일체의 현상을 ‘연기법’에 의한 것으로 본다.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이 다 헤아릴 수는 없으니 무조건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기독교적 세계관이고, 수행과 깨달음을 통해 인과율에서 자유로운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불교적 세계관이다. 둘 다 세상사에 우연(偶然)이란 없다는 것과, 그렇다고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는 다르지가 않다. 하지만 흔히들 ‘운이 좋다’거나 ‘재수가 없다’는 말을 다반사로 쓰고 있듯이 운수(運數)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바뀔 수도 있는 게 운명이란 생각도 대다수인 것 같고.개인에게 운세가 있듯이 나라에도 흥망성쇠의 국운(國運)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국운이 집권자의 자질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는 걸 요즘처럼 절감한 적이 없었다. 문재인 정권 4년 동안 나라 도처에 불길한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정치, 경제, 안보, 외교, 교육, 언론 어느 하나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수천 년을 이어온 나라도 하루아침에 패망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피땀으로 쌓아온 대한민국을 더이상 저들의 손에 맡겨서는 안 되겠다는 경각심이 드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민주주의국가라면 모든 책임도 결국 국민에게 있다. 국민의 의식수준이 국운의 향방을 가른다는 걸 모두가 명심할 일이다.

2021-02-18

상아탑은 없다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2월 한 달 내내 마음이 어수선하다. 졸업식과 명절을 집어삼킨 코로나도, 진흙탕 싸움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정치인도 원인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이 때문이다.“아빠, 이제 설날 없어지는 거 아니야? 추석에도 못 갔는데, 할아버지 어떻게 해?”설날임에도 할아버지 집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운 둘째 아이의 걱정 가득한 말이 잠시 잊고 있던 명절에 대한 생각을 일깨워주었지만, 필자는 거실에 쌓여가는 상자의 무게에 눌려 아이의 말을 금세 잊어버렸다. 한동안 집 안은 한숨 소리로 가득했고, 한숨에 어지럼증이 났다.상자 주인은 서울살이를 준비하는 첫째 아이이다. 대학 합격 소식의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수도권 코로나19 발생 상황은 기쁨의 반대 감정을 더 빠르게 불러왔다. 2020년 대학 신조어 중 하나는 “코로나 휴학”이다. 할 수만 있다면 필자도 아이에게 권하고 싶었다.교육의 대전제는 만남이다. 만남을 통해 가르침과 배움이 이루어지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다. 만남은 배운 내용을 내면화하여 더 큰 지혜로 바꾸어 주는 힘의 원천이다. 특히 대학교에서 만남이 주는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쩌면 그 힘을 얻으러 대학을 가는지도 모른다.하지만 코로나19는 그 기본을 앗아갔다. 기본이 사라진 교육계엔 공허한 온라인 영상만이 흉물처럼 자리 잡았다. 말 짓기 좋아하는 정부는 ‘비대면 수업’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만들어 위기 상황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니 무조건 따르라고 윽박이다. 무한 재생하는 영상에 영혼이 있을 리 만무하다. 영혼 없는 영상에 학생들의 선택은 학교를 잠시 접는 것이었다.2020학년도 대학생들에게 대학다운 대학 생활은 없었다. 코로나 정국에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것은 캠퍼스의 추억보다 학생들의 대학 감성이다. 최근 들어 대학교가 취업 공장이 되면서 대학 감성이 많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코로나19는 그나마 있던 것까지 모조리 없애버렸다. 대학생들의 감성은 낭만을, 낭만은 꿈을, 꿈은 포부를, 포부는 도전을, 도전은 열정을, 열정은 창조를, 창조는 더 큰 감성을 낳았는데, 그 고리들이 완전히 끊겼다.그런데 2021학년도 또한 많은 대학교에서 비대면 수업을 공지하고 있으니, 강의실엔 대학생들의 창조 감성 대신 먼지만 수북이 쌓이게 생겼다. 비대면만이 살 길이라고 떠들어대는 시대에 지금과 같은 대학교의 존재 이유는 뭘까?코로나도 코로나지만, 대학 생활에 대한 설렘을 키우는 아이를 보면서 필자는 ‘상아탑’을 떠올렸다. 비록 지금은 상아탑 대신 취업탑이 자리했지만, 대학이 상아탑이라고 불리던 그때 대학생들에겐 진리연구의 뜨거운 피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살기 위한 취업 전쟁만 남았다.설 다음 날 아이들과 함께 늦은 세배를 위해 부모님 댁으로 가다가 씁쓸한 가로펼침막이 눈에 들어왔다.“주소 갖기 운동으로 포항 사랑 실천해요.” 곧 서울로 주소를 옮길 아이를 보았다. 어수선한 마음이 결국 길을 잃었다.

2021-02-17

청하읍성, 복원돼야 한다

박창원수필가지난해 12월 11일, 청하읍성이 있는 포항시 북구 청하초등학교 북쪽 도로변에서 포항시 주관으로 회의가 열렸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보행로 개설공사 관련 발굴조사 설명회였다. 여기에는 포항시 관계자, 발굴조사업체 전문가, 문화재위원을 지낸 심정보 박사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발굴 현장 설명을 듣고, 청하읍성을 둘러본 심정보 박사는 두 번 놀랐다고 했다. 문헌상으로만 보던 청하읍성이 이렇게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처럼 잘 남아 있는 청하읍성이 국가사적은 물론, 지방기념물로도 지정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했다. 참석한 포항 사람들은 다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기록에 의하면 청하읍성은 처음 고려 현종 때 토성으로 쌓았고, 조선 세종 9년(1427)에 청하현감 민인이 석성으로 쌓았다고 한다. 2012년 포항시에서 용역기관을 통해 작성한 ‘청하읍성 기본조사 및 복원타당성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청하읍성은 구릉형 자연지형에 남북 180m, 동서 140m의 장방형으로 축조되었으며, 현재 잔존율이 약 53%에 이를 정도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고 한다.그러나 보고서가 나오고 주민설명회를 개최하려다가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후 9년 간 청하읍성 복원문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청하읍성은 잔존율 못지않게 1733년부터 2년 간 청하현감으로 재임했던 겸재 정선이 그린 청하성읍도(淸河城邑圖)로 인해 유명하다. 청하성읍도는 겸재 자신이 근무하던 읍성의 모습을 조감도처럼 세밀하게 그려 남긴 작품이다. 여기에는 읍성의 형태와 건물의 배치, 향교를 비롯한 읍성 주변의 모습이 담겨 있다. 겸재의 이 그림 하나만으로도 청하읍성은 복원되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겸재는 청하읍성에 근무하는 동안 내연산 폭포를 탐승하면서 내연산 폭포 그림을 여러 점 그렸는가 하면, 한국 회화사에 길이 남을 금강전도 같은 명작을 그려 남겼다. 그래서 혹자는 겸재의 청하현감 시절을 진경산수화의 발현기라 하기도 한다. 청하읍성은 그런 곳이다.조선시대 포항지역에는 흥해, 청하, 연일, 장기에 읍성이 있었다. 이 중 장기읍성과 청하읍성은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특히 장기읍성은 20여 년 전부터 수백 억 원의 국가예산을 들여 기초조사와 발굴조사,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이미 포항시의 명소가 되었다. 청하읍성도 복원된다면 포항시 북부 지역의 새로운 명소가 될 것이다.포항시에서는 지금부터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청하읍성 보존 및 복원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선 지장물이 없는 부분에 대한 발굴을 서둘러야 하고, 발굴 결과에 따라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해야 한다. 읍성 내 관공서 이전도 필요하다. 그런 다음에 복원사업을 벌여야 한다. 물론 이 같은 절차는 인근 주민들의 불이익을 최소화하도록 배려해야 하며, 또한 읍성 복원으로 생기는 이익이 주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청하읍성도 살고, 청하도 산다. 청하읍성은 반드시 복원돼야 한다.

2021-02-16

장모님, 우리 장모님!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장모님! 제가 누구인지 알아요.’ ‘누구세요 몰라요.’ 눈을 마주치지 않고 피하면서 고개를 떨구고 만다. 6남 1녀의 유일한 사위 권서방을 몰라본다. 지금까지 권서방! 권서방! 했던 장모님이 치매라는 판정을 받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필연적으로 치매 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치매는 고령화 시대의 숙명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어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현재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한다. 엄청 빠른 속도이다.칠십대 후반인 큰형님이 장모님을 모시고 있다. 하지만 농사를 짓고 계시는 형님은 치매인 장모님이 혼자 집에 계실 때 가스로 인해 여러 번 어려운 일이 생기고 집에서 150m 근처의 아주 가까운 노인 요양센터에서 생활을 하시게 됐다.2020년은 코로나19로 요양센터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발생했다. 이것으로 인해 방문을 못하는 어려움이 생기게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k방역으로 대면서비스가 제한됨에 따라 요양센터를 방문하지 못하게 되면서 치매 환자들의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 특히 인지력·기억력 저하로 개인위생을 지키기 어려운 치매 환자는 치매 악화와 코로나19 감염증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한 달에 두 번은 찾아뵙고 있었는데 방문 자체를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번지게 됐다. 한 번은 창문을 열고 3분정도의 얼굴만 바라보고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한없는 한숨과 눈물을 흘리는 아내의 모습에 마음이 너무나 아파했던 기억이 난다.이러한 문제는 사회적인 문제로 발생했다. 2월 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이런 글이 올랐다. “코로나 백신 접종 후 요양병원 환자 면회를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이다. 뇌졸중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연이 절절했다. 가족 중 치매를 가진 사람이나 요양병원에 가족이 있으면 인지상정으로 마음을 알 수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치매 환자는 인지기능이 급격히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지기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환자와 교류가 중요하므로 직접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전화나 가까운 사람을 통해 정기적으로 연락을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장모님께서 요즘은 요양센터에서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래서 조카가 옆에서 도와주어서 영상통화를 한다. 퇴근 후에 할머니에게 와서 통화를 할 수 있게 배려를 한다. 참 고맙다.‘장모님, 장모님! 제가 누구인지 알아요.’ ‘권서방이지.’ 미소를 지으신다. ‘식사는 하셨어요, 아픈 곳은 없으세요, 사위 보고 싶으시죠,’ 등 수다를 떤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시다. 말이 없고 잔잔한 미소와 잠뿐이시다. 가슴이 아프다. 97세의 고령이었지만 늘 ‘권서방!, 권서방!’ 하셨다. 사위 사랑은 장모님 사랑이라고 하였는데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온다. 나 권서방만의 아픔이 아닌 사회의 아픔이다.오늘도 병실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 해본다. 장모님을 불러본다. 장모님, 우리 장모님!!

2021-02-15

떠난 후에 남은 것

최미경동화작가내 이별의 처음은 7살 때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질 않아 외증조할머니 손에 맡겨진 나는 걸음을 떼자마자 할머니가 데리고 다녔다고 다들 나를 할머니 껌딱지라 불렀다. 초등학교 입학을 한 달쯤 남겨둔 어느 날 할머니는 옥상계단을 오르다 발을 헛디뎠고 얼마 후 영영 내 곁을 떠났다.요즘도 가끔 내 말투를 들으며 고향이 어디인지 묻는 사람이 있는데 부산에서 왔다고 하면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고 신기해한다. 서울 분이셨던 외증조할머니의 고운 말투를 들으며 유년을 보낸 나에게 내 말투는 그녀의 흔적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내게 두 번째 이별은 16살 봄이었다. 일요일 아침 고모라며 전화가 왔다. 부모님 결혼식 사진에서 본 게 전부였던 고모는 엄마를 찾았고 엄마가 없다고 하자 내게 아버지의 죽음을 알렸다. 9살 때 아버지를 처음 본 나는 16살 때까지 그와 함께 있었던 날을 다 꼽아보아도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계절에 한 번, 그러다 일 년에 한 번 쯤 아버지가 집으로 온 날은 약속이나 한 듯 엄마가 부재중이었다. 고모와 통화를 하는 동안 나는 부엌에 세워져 있던 다리가 네 개인 양철 상을 펴서 반찬 몇 가지와 수북이 담은 밥을 올려 그가 들어간 방으로 들였던 기억이 떠올랐다.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가끔 도루코 칼로 연필을 깎던 아버지 이야길 했다. 가난으로 중학교를 포기해야 했던 아버지에게 연필을 깎는 시간은 불요했다고 엄마는 말했지만 아버지가 쓰지 못했던 연필은 내 마음에 뾰족이 남아 쓰는 일에 심(心)이 옅어질 때마다 고스란히 묻어났다.그리고 2012년 가을, 셋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질 않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더 이상 카드 값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결혼 전부터 엄마는 나와 동생의 카드를 돌려쓰며 병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었다. 나는 동생에게 전화를 해 학자금대출 받았다 생각하고 개인회생신청을 하자고 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간암 진단을 받았고 딱 1년 6개월을 버티고 떠났다. 서른여섯, 세 번째 이별이었다. 온전히 슬플 시간도 완벽하게 그리울 시간도 없었다. 내 모자란 경제력이 엄마를 너무 일찍 보냈다는 죄책감에 나는 그저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일만 했다.지금 이 시간, 이 공간, 내 모습 하나하나가 지나온 시간 안에서 부딪히고 스며들었던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부분은 간과할 수 없다. 기로마다 순간마다 오로지 내가 결정한 내 선택의 결과물이 나를 여기로 데려다 놓은 것이기에 지금의 모든 책임은 내가 짊어져야 하는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다. 그렇다.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것도 그들이 남긴 것을 안은 것도 버린 것도 나였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그렇게 오늘의 나는 어떤 우연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지만 그런데 그런데도 말이다. 내 말투며 내 시심(詩心)이며 내 생활력을 부둥켜안고 오늘까지 살아내고 있는 내가 한없이 가없게 여겨 질 때가 있다.떠난 이들이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이 시간이자 꽁꽁 얼었던 겨울이 봄에 살살 풀리고 있는 이 계절이다.

2021-02-14

(제안) 정치인 인성교육진흥법 발의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방역은 핑계 같다. 모이면 정부와 정치인 욕하니까, 욕 듣기 싫어서 모이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재보궐 선거가 있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국민이 욕하는 거 알기나 할까?”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중년의 손님들이 하는 말을 잠시 옮겼다. 물론 비속어들은 모두 제외했다. 단어 사이가 모두 비속어라고 생각하면 된다. 비속어도 그냥 비속어가 아니다. 감정이 최대한 고조될 대로 고조된 상태에서 마음 저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한이 서린 비속어! 말이 비속어지, 실제로는 울분이고 절규였다. 만약 청와대에 있는 사람과 여의도에서 파란 넥타이를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면, 분명 그들은 불안감을 넘어 살기(殺氣)를 느꼈을 것이다.그들에 의해 거리마다 내걸린 고향 방문 자제 가로펼침막은 거의 공해 수준이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있어 제일 큰 혼돈은 명절 풍습이다. 다음은 어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설 5인 이상 금지 신고는 어디에 하나요? 저희 시댁은 씨도 안 먹혀요. 자기네 가족들은 절대 안 걸리는 줄 알아요. 어이가 없어서, 벌금을 내야지 반성할 건가 봐요. (….)”이 글을 읽다가 필자는 현 정부는 시댁과 시댁 식구들을 범죄인으로 만들고, 나아가 가족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불순조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위와 같이 말하는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서 음식을 먹고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를 나누면 당연히 위험하다.”라고 덧붙였다.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조건 방역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방역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기에 5인 이상 모이는 식당이나, 관광지 등에는 절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방역을 걱정하는 이런 분들이 많은 이상 코로나19도 더 빨리 끝난 것이라고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추석에 이어 설에도 제주 등 유명 관광지는 예약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보다 더 어렵다고 하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코로나19 이후에 맞게 될 명절은 진짜 어떤 모습일지 걱정이다. 불 보듯 뻔한 명절 갈등을 정말 어이할까!명절을 앞둔 지금 인성교육진흥법이 생각나는 이유는 왜일까? 비록 믿지 못할, 또 편향된 언론이지만, 그런 언론에 비친 정치인의 모습과 혼돈의 정점에 있는 우리 사회 모습은 절대 무관하지 않다. 인과 관계로 볼 때 우리 사회 혼돈 주범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정치인이다. 말로만 국민이 하늘이라고 떠들어대는 위선 덩어리 정치인들은 그들이 만든 인성교육진흥법을 기억이나 할까! 나라의 진정한 주인인 이 나라 국민을 위해 더 이상 위선 덩어리 정치인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정치인을 위한 강력한 인성교육진흥법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혹시 바쁘다는 핑계를 댈 것 같아 그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만든 인성교육에 대한 정의를 적어 준다.“인성교육이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말한다.”(법 제2조1호)

2021-02-09

줌, 휴대폰으로 하는 졸업식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세상은 바뀌었다. 신축년 2021학년도 새해는 코로나19로 졸업식이 온라인 졸업식으로 바뀌었다. 3년간 함께한 친구들과 대학 진학의 기쁨을 나누며, 부모님의 축하 꽃다발을 받으며, 친구와 함께 사진도 찍고, 담임 선생님과 이별의 인사도, 추억의 사진을 남겼던 축하의 졸업식이 바뀌었다.올해는 텅 빈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 혼자 인사를 하고 졸업식을 진행했다. 교장선생님의 인사 말씀도, 부모님의 축하인사도, 친구와 교정에서 마지막 나눌 이야기도, 선생님과 마지막 감사의 인사도, 강당에서 상을 받는 친구에게 보내는 큰 박수 소리도, 교복 입고 남길 추억의 사진도, 학교 앞 꽃다발을 파는 상인들이 줄지어 있던 모습도 없는 썰렁한 모습의 졸업식이 되어 버렸다.필자는 졸업식 날 정든 제자들에게 늘 편지를 낭독했었다.“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몇 날 동안 깊은 잠을 계속 들지 못했다. 잠결에 울컥 화가 나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하며 1월이 시작되면서 생긴 새로운 현상이다. 새벽에 잠이 깨면 늘 이런 생각들을 한단다. 아! 이제 서서히 준비를 해야 겠구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하며 살아가는 모습 이길 진심으로 빌며 00학년도에 우린 같은 공간에 머물던 가족이었고 3학년 3반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여라. 너희들의 앞날에 좋은 일, 행복한 일, 기쁜 일만이 있길 바랄게. 그리고 그럴 땐 언제나 너희를 생각하고 있는 한 사람을 생각하여라. / 이별을 가슴 아파하는 아빠 같은 선생님이”이러한 편지를 낭독하게 되면 교실 뒤쪽에 계시던 학부모님께서 눈물을 훔치곤 하신다. 편지 속에는 간단하게 졸업생들에게 축하의 말, 당부의 말, 대학생활, 사회생활, 앞으로 시련과 고난을 이겨 내야 할 일 등 이런 저런 이별과 축하의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학생·학부모·교사 서로 졸업을 축하해 주고 함께 사진도 찍고 이별의 악수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축하와 격려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코로나19로 세상은 바뀌었다.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웃는 얼굴에서 마스크를 사용해서 웃는 얼굴을 볼 수 없는 세상으로 교실은 바뀌었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개인적으로 혹은 친구들과 함께 졸업사진 대신 각자 추억의 스냅사진 찍기가 요즘 유행을 한다.2020년은 온라인 수업으로 인하여 학교에서 서로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던 한해였다. 그러나 졸업생들은 휴대폰 속의 줌 채팅창으로 축하와 감사의 마음을 나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상으로 변해 버렸다.정든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은 하루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어 모든 것이 멈춘 일상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두 번은 없어야 한다.2021년에 처음 경험해 보는 휴대폰 졸업식 풍경, 코로나19로 힘든 한 해를 보낸 친구들과 대학합격의 기쁨도 축하도 나누지 못한 채 또 다른 세계를 향해 첫 발을 내딛고 있다. 바라건데, 온라인 공간에서 이별의 정을 나누었지만 서로를 격려하고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마음과 힘찬 전진을 약속하는 친구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야 한다.

2021-02-08

알코올 중독자에게 희망을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술 소비량이 증가하게 되면서 알콜중독환자도 늘어날 것이다.어린 시절 우리 집의 뒷집에도 술을 많이 마시는 한 남성이 살았다.그는 딸기코의 붉은 얼굴, 술 취한 목소리, 건들거리는 발걸음으로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사람들이 알코올중독자라고 하였다. 그의 아내는 결국 도망가 버리고 외동딸은 외롭게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서 자라났다. 그 아이는 우리 집에 와서 내 여동생과 자주 어울리며 놀았다. 결국 딸기코의 붉은 얼굴의 그 남성은 어느 추운 겨울날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하였다.내가 기억하는 알코올중독자의 첫 기억이었다.나는 심리학을 전공하고 정신병원에서 임상심리사로 일하면서 정신병원의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는 사람들이 신기하게도 50%이상이 술문제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40∼50대 남성이 주로 많았고, 간혹 20∼30대의 남성과 여성도 입원해 있었다.그 시절 의료진들은 알코올문제는 완치가 잘 안되며, 재발이 잘 된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심리상담과 약물치료로는 안 된다. 평생 관리해야 한다’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자조모임(A.A: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모임)이 그나마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퇴원한 날 병원 앞 슈퍼에서 환자들은 다시 술을 마시고 재입원을 하였다. 가족들에게도 철저히 버려져서 정신병원을 전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끔 교통사고도 내고 자기 몸에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자살하기도 하였다.내가 지금도 기억하는 그는 젊은 나이에 온 몸이 성한 데가 없고 자해 이외에도 자살과 같은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망상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웬일인지 나와 상담하는 것을 좋아하고 나를 참 많이 따랐다. 그렇지만 나는 그를 위로해주고 희망을 주는 것에 그쳤을 뿐, 그를 완치시키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해주지는 못하였다.나는 병원을 퇴직하고 상담센터를 개업해서 다양한 심리적 문제를 치유했다. 그렇지만 알코올문제는 자신이 없었다. 알코올중독은 완치가 안 된다는 병원에서의 사고의 도식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최근에 알코올문제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내방하고 있고, 그들은 최면치료로 신기하게도 치유되고 있다.어렸을 때 우리 집 뒤에 살았던 그 남성도 나와 같은 임상심리전문가를 만났다면 가정이 깨지지도, 비명횡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딸은 할머니 품에서 외롭게 홀로 성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독서를 좋아하던 그 아이는 잠재력이 있어보였다. 어디에서 좋은 일하면서 살고 있을까? 아니면 마음의 상처를 술로 위로하며 외롭게 살고 있을까?사람들은 술을 마시는 사람을 욕을 한다. 손가락질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술 문제는 우리나라의 빠른 경제 성장 과정에서 선택한 하나의 스트레스 관리방법임을 사람들은 알까?알코올중독자에게 욕하고 손가락질 하지 말라. 위로하고 격려하며 대화를 시작하라. 그리고 마음의 전문가를 만나보라.

2021-02-07

입춘 무렵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우리나라는 12월부터 석 달 동안을 겨울이라 한다. 그 때가 연중 가장 추운 기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절기상으로는 2월 초에 입춘(立春)이 들었다. 우수와 경칩을 지나 실지로 봄이 시작되는 3월 초순과는 한 달가량의 시차가 있는 셈이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월급을 가불해 쓰듯이, 겨우살이가 혹독했던 시절에 봄이란 절기라도 미리 당겨 온 게 아닐까 싶다. 봄이 선다는 입춘은 태양이 지나가는 길이라는 황도(黃道)를 24등분해서 만든 24절기 중 하나다. 그런 절기는 설이나 단오, 한가위 같은 음력을 기준으로 한 명절과는 맞지 않는다.계절로는 아직 한 달이나 남은 겨울이지만 입춘 무렵부터 봄의 기미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기후에 가장 민감한 곳인 들판에 나가보면 알 수 있다. 얼핏 보아서는 달라진 게 없는 겨울들판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죽은 듯 숨죽이고 월동하던 풀들이 조금씩 깨어나는 기척을 느낄 수 있다. 논둑길 양지쪽에는 벌써 봄까치꽃도 피었다. 검불 사이로 얼굴을 내민 작고 가냘픈 꽃이 전해주는 생명의 메시지는 참 시리고 환하다. 영하 십 몇 도까지 내려간 혹한에도 살아남아 피워낸 풀꽃을 들여다보면 삶이 절로 숙연해진다.일 년 열두 달 날마다 들길을 걷다보면 계절의 아주 미세한 변화까지 감지하게 된다. 계절의 추이에 섬세하게 반응하는 감각이야말로 때 묻지 않은 생명감이라 할 것이다. 어제와 오늘은 전혀 달라진 게 없는데 어느덧 계절이 바뀌어 있다는 건 그 작은 변화를 건너뛰기 때문이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 충실한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자세라고들 한다. 하루하루가 다 종요로운 날이라는 말일 것이다. 혹독하게 추운 겨울날이라 해서 싫고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들길을 걸어보면 안다. 매서운 삭풍의 겨울이나 산들바람이 부는 봄날이나 어느 날이든 그 하루에 담긴 삶의 비중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아직은 한두 차례 더 한파가 닥칠지 모르지만 입춘인 오늘은 날이 좀 풀린 것 같다. 매서움이 덜한 바람도 그렇지만 동지를 한 달 넘게 지난 햇빛도 고도가 높아진 만큼 더 가까워졌다. 그래서 그런지 겨울 철새인 청둥오리와 고니들의 분위기도 좀 달라 보인다. 이번 겨울엔 고니들이 지난해보다 많이 왔다. 다 모일 때는 50마리도 넘는 것 같다. 연간 수십 종의 동물이 멸종한다는데 이 들판을 찾은 고니의 수가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적막하고 황량한 겨울 들판이 저들 때문에 소란하고 활기가 넘치기도 한다.코로나19 팬데믹 시국이나 암울한 정치적 현실에도 아직은 봄이 먼 것 같다. 입춘방(立春榜)이라도 써 붙이고 이 겨울이 빨리 지나가기를 빌고 싶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 지만 겨울이란 그저 참고 기다리기만 하는 계절은 아니다. 삼동의 혹한도 살고 입춘의 낌새도 사는 것이 겨울이다. 겨울이 지나가야 봄이 오는 것이 아니라 겨울을 살아야 봄이 되는 것이다. 겨울을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는 겨울들판에 나가보면 안다. 거기 얼어붙은 땅과 매운바람에 월동하는 풀과 새들은 봄을 기다리기 위해 오늘을 사는 게 아니다.

2021-02-04

학생 여러분, 여러분이 정답입니다!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2월이다. 학교에서는 사회 달력으로 치면 12월에 해당하는 달이다. 학교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달 2월. 지금은 아니지만, 2월의 가장 대표 행사는 졸업이었다. 코로나 19 전에도 1월에 학년을 마치면서 졸업식도 같이하는 학교가 많았다. 그래도 그때는 졸업생과 재학생이 한자리에 모여서 석별의 정을 노래했다. 아쉬움 가득한 눈물은 새 출발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졸업식을 상상하는 것조차 죄가 되어버렸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상상을 하는 학생은 물론 교사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많은 교사는 방역을 핑계로 졸업식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그저 귀찮은 졸업식 어떻게든 빨리 끝내버리고 2월 휴가를 즐길 생각뿐이다.“철든 학생과 철없는 학교(교사)!”이 말은 2020년을 보내면서 필자의 마음 깊이 새겨진 말이다. 스승이 사라진 학교에는 월급쟁이 직장인만 남았다. 그들에게 있어 학교는, 수업은, 학생은 자신들의 생계유지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 교사에게 사랑, 희생, 배려 등이 있을 리 만무하며, 그런 학교에 희망은 사치다.희망이 부재한 학교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은 말도 안 되는 온라인 수업이다. 학생이 스스로 동영상을 보고 과제를 하는 것을 어떻게 수업이라고 할 수 있는가! 교사들도 그것이 수업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하지만 교사들은 입을 닫았다. 만약 전 국민 고통 분담 차원에서 단방향 온라인 수업 시간에 코로나19 극복 봉사활동을 하자고 하면, 교사들은 목에 핏대를 세우고 뭐라고 할 것이다. 필자부터 입 닫은 교사로서의 철없음에 용서를 빈다.2020년부터 학교는 온라인에 중독되었다. 독불장군으로 돌변한 정부와 교육부의 밀어붙이기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다지만, 그래도 중독이 너무 심하다. 이제 학교에서 온라인을 빼면 아무것도 없다. 온라인 졸업식이 대표적인 예이다. 졸업식마저 형식뿐인 온라인에 갇혀 버렸다.그래도 부디 부탁한다, 온라인 졸업식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으로 걱정 가득한 학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졸업식이 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최선을 다해 주기를! 그리고 기원한다, 최선을 다하는 마무리가 새로운 시작을 위한 행복한 출발점이라는 것을 학생들이 느끼는 졸업식이 되기를! 하지만 안다, 바람은 바람뿐이라는 것을!졸업식을 맞이하는 자세를 보면 학생들은 스스로 철이 들었음을 알 수 있다. 온라인에 철을 잃은 학교(교사)와는 달리 학생들은 2월의 의미를 되새기며 아직도 눈물로 졸업을 말한다.“ (….) 최선을 다해 왔다고 생각하지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죄송하기만 한데, 너무나 많은 사랑과 믿음을 주셨기에 제가 남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항상 저를 응원한 가족들과 도움 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저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산자연중학교 3학년 졸업생, 「감사장」)학생의 눈물에 답한다, “학생 여러분, 여러분이 진정한 이 나라의 정답입니다.”

2021-02-03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김현욱 시인정재찬 교수와 정재승 교수를 착각하여 지난 글에 정재승 교수의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이라고 오기를 했다. 정재찬으로 정정한다. 정재찬 교수는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베스트셀러가 있다.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은 2020년 2월에 출간했다.책은 ‘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소유’로 나누어 모두 7장으로 쓰여졌다. 정재찬 교수가 생각하는 ‘인생이라 부를 만한 것들’의 목록이다. ‘토요일의 인천공항’이 재미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SNS 속 텍스트에 나타난 감정 어휘를 위치 기반 정보에 입각해 분석해보면, 언제나 행복도가 가장 높게 나오는 특정 지역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인천국제공항. 토요일의 인천공항은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곳이다. 그러면서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글을 곁들인다. 밥벌이의 비애와 토요일의 인천공항이라니. 토요일의 인천공항은 일상에서 가장 멀어진 시공간이 된다. 먹고살기 위해 매일같이 일하는 일상이 없다면, 토요일의 인천공항 같은 특별한 시공간도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인천공항이 밥벌이의 터전인 사람들도 수 천명은 될 테니까.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은 학생들에게 “의술, 법률, 사업, 기술, 이 모두가 고귀한 일이고 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정재찬 교수는 “우리의 꿈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이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누구나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 무엇은 명사겠지요. 의사, 교사, 공무원, 회사원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 가령 명사 ‘교사’는 이삼십 대 안에 되든지 안 되든지가 결정이 납니다. 하지만 가령 형용사 ‘존경스러운’ 교사는 정년까지도, 아니 평생토록 이루기 힘듭니다. 생의 목표는 그런 게 되어야 하지 않을는지요.”라고 조용히 일러준다. 우리 인생의 목표가 시, 낭만, 아름다움, 사랑이 넘치는 삶이기를 바라는 것이다.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라고 찰리 채플린이 말했다. 원문을 직역하면, “인생은 클로즈업으로 보면 비극이지만, 롱숏으로 보면 희극이다.”가 된다. 느낌이 달라진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삶을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나만 빼고 모두 행복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누구나 각각의 사연으로 아픔을 품고 산다. 누구나 소소한 기쁨으로 삶을 살아간다. 정재찬 교수는 행복하려면 자기 자신을 약간 떨어진 자리에서, 좀 더 객관적 시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대상에 대한 적당한 거리와 시간의 간격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목표가 이끄는 삶처럼 거창할 필요는 없다. 소소한 행복의 즐거움과 삶의 감사함을 아는 일상을 사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행복의 비밀인지 모른다. 마음만 바꿔먹으면 일상이 토요일의 인천국제공항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꽉 막힌 퇴근길, 차창 밖 노을이 한 편의 근사한 미술작품이 될 수 있는 것처럼.

2021-02-02

예술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류영재포항예총 회장구랍 13일 밤늦은 시간까지 포항중앙아트홀 전시실에는 훤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화가로서 절정의 기량을 꽃피울 무렵 안타깝게도 우리 곁을 떠난 이병우의 유작전(遺作展) 설치작업이 늦게까지 이어진 것이다. 밤 10시가 훌쩍 지난 늦은 시간이었지만 의미 있는 전시회를 정성껏 준비하던 포항미술협회장을 비롯한 회원 친구들이 디스플레이를 마치고 흐뭇한 마음으로 전시장을 한 바퀴 휘돌아 보던 중 포항문화재단 관계자로부터 전시장 폐쇄 통보를 받았다. 코로나 감염의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적용 단계의 전국적인 격상이 발표된 까닭이다. 그의 작품들은 그로부터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불 꺼진 전시장의 컴컴한 벽면에 매달린 채 사랑하는 가족이며 친구, 선후배, 관람객들을 기다려왔다.생전의 그는 늘 웃음 가득한 모습으로 주변의 어려움을 살피는 다정다감한 이웃이었고, 사랑으로 가르치는 멋쟁이 선생님이었으며, 미술협회장을 맡아서는 성심껏 봉사하는 사람으로 우리들의 가슴에 각인되어 있다. 동빈항과 죽도시장 등 지역의 소재를 화두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쳐온 화가로 50년을 불꽃처럼 살다간 예술가이기도 하였던 그가 떠난 지 벌써 4년의 세월이 지났다. 병상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가 불귀의 길을 떠나기 며칠 전, 통증이 몹시 심하였을 상황에서도 그는 본인의 아픔이나 먼 길 떠날 걱정보다는 필자에게 포항 미술계의 미래를 염려하는 말을 하였다. 그와의 생애 마지막 약속, 이제 그를 작품으로 만나게 된다. 과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 것일까.‘등대처럼 살다간 화가 이병우’라는 타이틀이 붙은 유작전이 포항중앙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다. 포항문화재단이 매년 지역의 우수작가를 선정하여 전시회 개최를 지원하고 있는데, 작고 화가의 전시기획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로나 사태의 확산으로 폐쇄되었던 전시장이 조건부로 개관이 허용되어 다시 열리게 된 것이다. 미망인은 이번 전시를 통해 큰 작품들은 공공기관에 기증하겠다는 의향을 밝혀왔다. 생전에도 그는 아내와 협의해 포항교육청에 여러 작품을 기증한 바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이 전람회가 화가 이병우의 삶과 예술을 제대로 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그의 소중한 유작들이 고인과 미망인의 뜻대로 의미 있는 장소에 잘 보존되어 각박한 세상을 밝히는 부표가 되고 등대가 되기를 소망한다.예술가들은 자존을 먹고 산다. 벌써 일 년이 훌쩍 지나버린 코로나사태는 여전히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생업조차 내려놓은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의 아픔에 비하면 문화 예술계의 어려움은 상대적으로 절박함이 덜할 것이라 생각하면 인식의 오류다. 예술인들은 예술활동이 바로 생업이며 예술이라는 ‘정신’과 생업이라는 ‘물질’의 간격 때문에 상공인들이 호황을 누릴 때도 어려움을 감내하여왔고, 지금은 더욱 절박하다. 다만 어려움의 눈물을 삼키고 내면에 천착하여 예술적 깊이를 더하며 인내할 뿐이다.화가 이병우가 남긴 유작을 망라한 이번 전람회가 성황리에 개최되어 예술가들의 자존을 밝히는 또 하나의 등대가 되기를 바란다.

2021-02-01

우리는 함께한다 고로 행복하다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입과 손발을 묶어둔 지, 약 1년이 되어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과학기술이 가져다준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여기저기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북구에서 남극까지, 바다에서 하늘까지 사람들이 가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그 모든 이동, 만남을 중지시킨 지 1년이 되어간다.자연의 재앙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지면서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그 홀로 있는 시간에 어떤 이는 공부를 시작하고, 어떤 이는 사랑을 하고, 어떤 이는 기도와 명상을 했으리라. 그러나 혹 어떤 이는 잠을 너무 많이 자거나 못 자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을 수도 있었으리라. 즉, 생각에 또 생각을 더 하며 생각의 꼬리를 자르지 못했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생각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현실과 자신의 본성을 잊어가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요즘 눈이 오는 날, 비가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나의 상담실에 와서 사람들은 말한다.“생각이 멈추지 않아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요. 벗어날 수가 없어요. 이러다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요?”이런 생각 과다로 인한 심리적 고통의 호소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람들과 만남을 못 하게 하고, 혼자 있도록 한 이후 좀 더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홍자성의 ‘채근담’에는‘마음과 몸이 밝으면 어두운 곳에서도 푸른 하늘이 있고, 생각하는 머리가 어둡고 우매하면 환한 대낮에도 도깨비가 나온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도깨비라는 것은 정신건강 용어로 ‘환청, 환시 등 환각을 말한다. 이 환각이란 조현병을 특징짓는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며, 심리적 부적응의 종착지에서 겪게 된다.즉, 혼자 있고 생각이 많아지면 우울, 불안해지고, 더 심해지면 강박증이 되고, 조현병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증상들에 한 번도 노출된 적도 없고, 주변에 물어볼 정신건강전문가도 없는 경우, 그 충격은 상당히 클 수 있다. 실제 증상의 위험성에 비해 그 후폭풍이 더 커서 지혜로운 판단을 못 하게 된다면, 삶이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도 흘러갈 수도 있다.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로 생각의 중요성을 설파했지만, 그는 혼자 있으면서 생각을 너무 많이 한 결과로, 마음의 병이 올 수도 있음을 간과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홀로 있는 사색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시간이 길어지는 요즈음, 정신건강의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사람들의 정신건강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잦아들고 백신이 보급되어, 혼자가 아닌 둘이, 셋이 아닌 여럿이 함께 일하고, 밥 먹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바래본다.‘우리는 여기 그리고 지금 함께한다. 고로 행복하다.’

2021-01-31

트로트 신동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발명왕으로 불리는 에디슨은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흔히들 그 말을 ‘천재는 영감보다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는 뜻으로 알고 있으나, 에디슨은 ‘1퍼센트의 영감이 없으면 99퍼센트의 노력도 소용이 없다.’는 의미로 한 말인데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타고난 재능이 없이 노력만으로 천재가 될 수는 없는 건 분명한 것 같다. 같은 노력을 해도 타고난 소질과 재능에 따라 현격한 기량의 차이를 보이는 게 사실이니까.각 분야마다 신동(神童)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유아기부터 어떤 분야에 몰입하고 특출한 능력을 드러내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이다.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분야에 천재적 소질을 가진 아이도 있고, 체육 분야에 특출한 기량을 보이는 아이, 수학이나 언어 분야에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는 아이들도 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천재성이 불후의 음악이 되어 인류에 기여하는 것처럼 신동들은 잘 길러지면 인류문명의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요즘은 트로트 신동들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 나온 유소년기의 아이들이 트로트 가요를 가수들 뺨치게 잘 불러서 환호와 갈채를 받고 있는 걸 본다. 어린아이들이 성인가요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것도 물론 신동이라 할 만하다. 그 소질을 잘 키우면 훌륭한 가수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일찍부터 예능프로그램에 출연시켜 지나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당사자는 물론 그걸 보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바람직한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아서다.성인들도 갑자기 엄청난 각광을 받게 되면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무중력상태가 되기 쉽다. 아직 모든 것이 미성숙한 아이들이 갑자기 엄청난 관심과 환호를 받게 되면 정상적인 정서나 인성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다. 타고난 끼와 소질을 아예 무시하거나 막으라는 게 아니라, 적어도 청소년이 되기 전까지는 대중 앞에 세우는 걸 유보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얘기다. 특히 방송매체는 시청률을 위해서 과장되고 자극적인 연출을 하게 마련이다. 성인프로그램은 어린아이들의 정서와 이해의 수준에 부적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어린 시절에 불렀던 노래는 그 정서와 기억이 평생을 간다. 노년이 되어도 옛날의 동요를 듣거나 부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유소년기의 아이들에게는 성인가요보다는 그 또래의 사고와 정서에 맞는 동요나 가곡을 부르게 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노래는 곡조 못지않게 노랫말도 중요한 법인데, 유행가 가사가 어찌 동심(童心)에 어울린다 하겠는가. 요즘 아이들이 아무리 되바라졌다고 하나 그 연령대에 맞는 정서와 동심이 아주 없지는 않을 터이다. 동요보다는 유행가에나 빠져들게 방치하지 말고, 요즘 아이들의 감각에 맞는 노래를 지어서 보급하고 권장하는 것이 아이들 정서와 심성을 함양하는 교육이 될 것이다. 어린이들의 음악교육에 대한 성찰과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1-01-28

(학)부모가 답이다!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코로나19에 무너진 세상은 1년이 넘도록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시간은 벌써 1월 달력을 넘기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한 각오로 시작한 2021년이지만, 그 시작부터가 쉽지 않다. 올 1월에 대한 기억은 최강 추위와 코로나, 그리고 저질 정치 이야기뿐이다.2021년 1월 1일, 국가 지도자들은 저마다 새해 희망 메시지를 발표했다. 내용이 복사 수준이어서 아쉬웠지만, 희망이 멸종된 사회에서 희망이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좋았다.“‘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라 했습니다. 모두의 삶이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까지 한 사람의 손도 절대 놓지 않고 국민과 함께 걷겠습니다. (중략) 국민이 희망이고, 자랑입니다.” 말한 사람을 모르고 보면 정말 희망적이다. 필자는 “한 사람의 손도 절대 놓지 않고”라는 문장을 읽을 때는 가슴이 벅찼다. 필자는 이와 비슷한 말을 예전부터 봐왔다. 그것은 교육부의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표어이다. 그런데 두 문장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단정하는 이유는 지금까지도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대통령이 말한 “국민”, 또 교육부가 말한 “모든 아이”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코로나 시대 교육격차 완화 (….)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공정에 대한 요구에도 끊임없이 귀 기울이고 대책을 보완해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비록 희망 고문이지만,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박수는 금방 멈추었다. 대신 헛웃음만 났다.그래도 필자는 희망을 믿는다! 왜냐면 이 나라는 특정 정치 성향의 대통령을 보유한 나라가 아닌 우리의 희망인 학생의 참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부모님을 보유한 나라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지난 주말 학생들의 행복 교육을 찾아 전국에서 오신 부모님과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님들의 생각은 그 자체가 교육학 개론이었다. 교육의 답을 찾지 못하는 청와대와 교육부에 답이 적힌 그 개론서를 전한다.“시험을 위한, 수능을 위한, 대학을 위한 교육이 아닌 지구인으로 생존하기 위한,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그리고 행복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학교 교육의 틀에서 조금 벗어난다고 문제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수업 시간의 질문을 같이 고민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창의적인 질문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교육이 삶이 질을 높이는 선물이었으면 합니다. 수치로 평가된 평균적인 삶보다 개개인의 고유성을 인정받고 (중략) 더 나아가 창조할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하는 것이면 좋겠습니다.”교육의 시작은 가정이다. 가정이야말로 제일 중요한 평생 학교이며, 부모는 아이들에게 있어 첫 번째 선생님이자, 평생 교사다. 부모가 바로 서야 자녀도, 가정도, 교육도, 그리고 국가도 바로 선다. 이 나라는 기적의 경제 성장을 이룬 주역들을 길러낸 부모를 보유한 나라다. 그들이 바로 이 나라의 답이다.

2021-01-27

홀로서기에 대하여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코로나19의 영향일까? 최근 들어 홀로 또는 따로 하는 문화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바이러스의 전염을 우려한 한 줄 칸막이 식사를 한다거나 한 칸 띄어 앉기 등으로 거리두기를 하다 보니 저절로 혼자 하는 행위가 많아지게 된 것이다.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먹거나 어울리고 활동하는 자체에 많은 제약과 기준의 적용으로 다소의 불편과 움츠림 속에서도 자구책(?)으로 나타난 것이 홀로 하는 문화라 할 수 있다.그러나 혼자 하는 식사나 행동, 작업 등은 이미 한참 전부터 우리의 생활 저변에 나타나거나 스며든 삶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근래부터 1인 가구 혼족들이 많아지면서 혼자 움직이고 생활하는 문화가 늘어나다 보니 혼밥혼술이니 혼행, 혼잠 등의 유행어가 생겨나면서 ‘혼OO’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새로운 추세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렇듯 시대가 변하면서 ‘홀로 생활’은 누구에게나 통용되고 낯설지 않은 현재의 생활방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실제 우리나라에선 지난 2013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나홀로 문화’가 당시 3~4개에서 2018년 39개, 2020년 말엔 65개에 이르기까지 급격하게 증가하여 홀로 하는 세태가 더해지는 듯하다. 최근에 두드러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가세된 영향도 있겠지만, 혼자 먹고 입고 놀고 자는 것들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고 편안한 일상이 아닌가 싶다. 사람의 일생을 크게 보면 더불어 함께하는 삶이지만, 작게 보면 소소한 개인의 생활이기 때문이다.이른 바 ‘나홀로 문화’란 자발적 고립을 택해 식사, 여가생활 등을 홀로 즐기는 문화를 말한다. 즉,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혼자만의 일상생활에서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는 것으로, 나홀로 밥을 먹거나 여행, 캠핑을 즐기고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타인과의 관계 보다는, 혼자의 생활을 즐기면서 행복을 찾는 것이다. 예컨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소화하면서 감정의 소모를 줄이고 그 가운데서 자신만의 은밀한 만족을 맛보는 것이다.세상의 무엇이든 바뀌고 변화되기 마련이다. 계속되는 변화 속에 우리는 다만 적응의 문제를 간단없이 풀어나가야 한다. 미래의 상황은 환경변화라는 상수 속에 인간 욕망의 변수가 끊임없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희대의 감염증 확산에 따른 주거문화나 식사, 회식, 만남 등의 정서가 분화되고 이질적인 양상을 띄고 있지만, 우리의 고유한 습성은 하루 아침에 바뀔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점진적이고 유화적인 측면으로의 꾸준한 변모와 진전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사람은 어차피 홀로서기다. 홀로 태어나서 가족과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함께 지내다가 결국 홀로 가게 된다. 외롭고 쓸쓸할지 모르지만, 사람은 혼자 있을 때 가장 편하다고 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가치는 뼈저릴만큼 혹독한 홀로서기에 달려있다. 그 모질고 처절한 혼자만의 고뇌와 시련 속에서 예술작품은 탄생하고 빛 부신 새날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2021-01-26

국민통합이 필요하다

박창원수필가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고 있다.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세운 현 정부 들어서 전직 두 대통령이 구속됐고, 그들은 아직도 옥살이를 하고 있다. 힘센 여당이 각종 개혁정책을 밀어붙이면서 국회의 생명인 ‘협상’은 실종돼 버렸다. 지금도 여야는 이런 저런 정치 이슈로 피 튀기는 싸움질을 하고 있으니, 지지하는 성향에 따라 국민도 편이 갈려 사회관계망서비스 상에서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이 갈등은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에 치명적이다. 사사건건 진영 간 싸움으로 번져 버리는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아무리 논리가 옳더라도 그 주장을 하는 이가 우군이 아니다 싶으면 가차 없이 적의를 드러낸다.보복은 보복을 낳는다고, 다음 선거에서 정권이 바뀌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벌써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 어떻게 정치보복이냐고 따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해도 국민 중 최소 30%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부정하진 못한다.이대로는 안 된다. 힘이 센 거대 여당이라면 자기편의 정치적 목표 달성에만 골몰해서는 안 된다. 반대편에 있는 30%의 목소리를 외면하고서는, 이들을 적으로 돌려놓고서는 진정한 의미의 개혁도 기대하기 어렵다. 상대 당을 국민이 부여한 정치 파트너로 인식하고 협상을 복원해야 한다. 때로는 통 큰 양보도 할 줄 알아야 한다.새해 벽두에 전직 대통령 사면을 두고 우리 사회가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여당 대표가 먼저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꺼냈고, 여당 내에서, 야당 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결국 사면권자인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아직 말할 때는 아니며, 적절한 시기 되면 더 깊은 고민을 통해 결정할 것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하고 함으로써 논란을 잠재웠다.여당 대표는 여당 대표대로,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셈법이 있겠지만, 꼬여 가는 정국을 푸는 해법으로서 사면은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다. 국민통합을 위한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가끔 텔레비전 화면에서 초췌한 얼굴에 수의를 입은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보는 국민의 상당수는 그에게 내려진 죄의 경중을 떠나 몹시 안타까워 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앞 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기구로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설치했다가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아무런 실적도 남기지 못한 채 해산되고 만 적이 있다.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실패한 그 위원회를 다시 설치하자는 게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국민통합의 중요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념으로, 지역으로 극심한 분열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를 새로운 가치로 통합하는 것이야말로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정치행위가 아닌가. 대통령은 모름지기 갈등의 중재자여야 하기 때문이다.2021년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이즈음에서 우리 정치는 숨을 한번 고를 필요가 있다. 상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고, 타협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포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편안해진다.

2021-01-24

팬덤의 심리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무리를 지어 산다는 뜻이다. 원시시대에는 사바나의 초식동물들처럼 혼자 떨어져서는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럿이 힘을 합치면 적이나 맹수의 공격을 막기도 쉽고 큰 동물을 사냥할 수도 있으니 그만큼 생존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는 지금도 고립되거나 소외되면 왠지 불안해지는 것은 아마 그런 습성이 유전자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들어 무슨 동호회나 팬덤이 성행하는 것도 그런 까닭일 터이고.팬덤(Fandom)이란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 즉 어떤 대상의 팬(fan)들이 모인 집단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팬덤이 시작된 것은 가수 조용필로부터라고 한다. 물론 그 전에도 남진, 나훈아 등 인기가수들의 팬 집단이 있었지만, 대규모의 체계적인 팬덤을 형성한 것은 조용필의 ‘오빠부’가 시초였다는 것이다. 그 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위시한 1세대 아이돌스타의 등장으로 조직적인 응원문화가 형성되고 팬덤의 개념이 대중화됐다. 2000년대에는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 2세대 아이돌스타들이 팬덤 문화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2000년대 이전 팬덤은 좋아하는 스타를 응원하는 지지자의 역할이 강했다면 이후에는 스타 보호 및 변호, 성공을 위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하는 서포터(supporter)로서의 역할로 확대되었다. 또한 한국을 넘어 세계전역으로 팬덤의 범위가 확산되었고 이는 한류열풍의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오늘날에는 가수뿐만 아니라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 같은 특정 인물이나 브랜드에 대한 팬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고려대 성영신 교수는 팬과 스타의 관계를 ‘심리적 공생관계’라고 했다. 팬들은 스타를 통해서 대리만족을 하게 되고, 스타는 팬을 통해서 자신의 인정 욕구나 자아실현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비평가 앤드류 튜더는 팬덤이 되는 과정을 스타와 친해지는 단계에서부터 감정적인 동일시 단계, 스타의 외모를 모방하는 단계, 심리적인 부분까지 완전히 몰입하게 되는 단계로 나누기도 했다,팬덤활동은 소속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한편, 특정한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하나의 성취감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스포츠나 연예계를 활성화 시키는 등의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는 한편 여러 가지 부작용을 드러내기도 한다. 스포츠나 운동선수에 열광하는 팬들이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가 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라이벌에게 위해를 가해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치적 팬덤의 위험성이다. 특정 정파나 정치인의 팬덤이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형성되어 국정운영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팬덤의 심리에는 냉철한 현실인식이나 사리분별보다는 감정적 군중심리나 ‘내로남불’같은 진영논리가 판을 치게 마련이다. 정체성이나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시류에 휩쓸리거나 팬덤 같은 집단에 함몰되기 쉽고, 그런 부류가 많을수록 사회는 불안정해진다. 팬덤의 심리를 최대한 이용하여 잇속을 챙기려는 장사치들이나 정치꾼들의 술수에 부화뇌동하거나 집착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2021-01-21

수업이 답이다!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수업이 달라요. 지금 학교에서는, 학교에서 수업도 얼마 안 했지만, 애들이 수업 시간에 다 자요. 왜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여기는 수업이 너무 재밌어요.”지난 주말 산자연중학교에서는 입(전)학을 위한 겨울 예비학교가 열렸다. 참가 학생들에게 필자는 왜 입(전)학을 하려고 하는지 꼭 묻는다. 그러면 거의 모든 학생이 위와 같이 답한다. “수업 시간에 자도 괜찮니? 선생님들께 혼나지 않니? 수업 시간에 왜 자니?” 이 질문에 대한 답도 필자는 잘 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지만 역시나 답은 똑같다. 수업 붕괴를 보도하는 뉴스 내용을 필자는 매년 학생들에게서 직접 듣는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수업 붕괴의 강도가 해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자는 친구를 깨우는 선생님은 거의 없어요. 어느 선생님은 애들 깬다고 아주 조용하게 수업하시기도 해요.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하면, 집중력이 없어서 그렇다고 집중하면 들린다고 하세요. 선생님 혼자 말씀하시고는 종 치면 바로 나가세요. 수업 정말 재미없어요.”물론 모든 학교가 이렇지는 않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많은 학교 수업이 또 이렇다는 것이다. 교육청에서는 수업 질 개선을 위해 교사들을 대상으로 거꾸로 교실, 하브루타 수업 등 별별 수업 관련 연수를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연수가 늘수록 학생들의 수업에 관한 관심과 흥미는 더 떨어지고, 학교 붕괴는 극에 달한다는 것이다.학교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업이다. 그래서 무너진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 수업 혁신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한때 “교사들, 교실의 위기 맞서 ‘수업 혁신’ 나섰다”와 같은 기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뭔가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꼬이기만 하는 실패의 블랙홀인 이 나라 교육계 특성상 결과는 걷잡을 수 없는 교실 혼돈뿐이었다.그럼 수업을 바꿀 방법은 없는가! 당연히 있다. 혁신의 방향을 바꾸면 된다. 지금까지의 혁신은 교사 주도 혁신이었다. 그것은 마치 순리를 거스르고 역류하는 물과 같은 것이다. 혁신 수업을 보면 겉으로는 학생 중심 수업 같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오히려 더 교사 중심 수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수업 혁신에 학생은 없다.과연 수업의 주인은 누구일까? 물론 교사와 학생이다. 그런데 학생이 듣지 않는 수업은 아무리 좋은 수업이라고 해도 수업이 아니다. 혹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아는가? 필자가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 학생들은 재밌는 수업을 가장 원한다. 그래서 필자는 평교사 때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한 번 이상 크게 웃을 수 있게 하자!”라는 목표를 정하고 수업을 하였다.교사도 즐겁고, 학생도 즐거운 수업! 이런 수업을 위해 다음과 같은 수업디자인을 제안한다.“수업을 마치고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수업”2021년부터는 학생과 교사 모두 잃어버린 즐거움과 의미를 되찾은 수업만 있기를 바란다.

2021-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