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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은 없다

등록일 2021-02-17 19:06 게재일 2021-02-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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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2월 한 달 내내 마음이 어수선하다. 졸업식과 명절을 집어삼킨 코로나도, 진흙탕 싸움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정치인도 원인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이 때문이다.

“아빠, 이제 설날 없어지는 거 아니야? 추석에도 못 갔는데, 할아버지 어떻게 해?”

설날임에도 할아버지 집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운 둘째 아이의 걱정 가득한 말이 잠시 잊고 있던 명절에 대한 생각을 일깨워주었지만, 필자는 거실에 쌓여가는 상자의 무게에 눌려 아이의 말을 금세 잊어버렸다. 한동안 집 안은 한숨 소리로 가득했고, 한숨에 어지럼증이 났다.

상자 주인은 서울살이를 준비하는 첫째 아이이다. 대학 합격 소식의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수도권 코로나19 발생 상황은 기쁨의 반대 감정을 더 빠르게 불러왔다. 2020년 대학 신조어 중 하나는 “코로나 휴학”이다. 할 수만 있다면 필자도 아이에게 권하고 싶었다.

교육의 대전제는 만남이다. 만남을 통해 가르침과 배움이 이루어지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다. 만남은 배운 내용을 내면화하여 더 큰 지혜로 바꾸어 주는 힘의 원천이다. 특히 대학교에서 만남이 주는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쩌면 그 힘을 얻으러 대학을 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로나19는 그 기본을 앗아갔다. 기본이 사라진 교육계엔 공허한 온라인 영상만이 흉물처럼 자리 잡았다. 말 짓기 좋아하는 정부는 ‘비대면 수업’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만들어 위기 상황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니 무조건 따르라고 윽박이다. 무한 재생하는 영상에 영혼이 있을 리 만무하다. 영혼 없는 영상에 학생들의 선택은 학교를 잠시 접는 것이었다.

2020학년도 대학생들에게 대학다운 대학 생활은 없었다. 코로나 정국에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것은 캠퍼스의 추억보다 학생들의 대학 감성이다. 최근 들어 대학교가 취업 공장이 되면서 대학 감성이 많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코로나19는 그나마 있던 것까지 모조리 없애버렸다. 대학생들의 감성은 낭만을, 낭만은 꿈을, 꿈은 포부를, 포부는 도전을, 도전은 열정을, 열정은 창조를, 창조는 더 큰 감성을 낳았는데, 그 고리들이 완전히 끊겼다.

그런데 2021학년도 또한 많은 대학교에서 비대면 수업을 공지하고 있으니, 강의실엔 대학생들의 창조 감성 대신 먼지만 수북이 쌓이게 생겼다. 비대면만이 살 길이라고 떠들어대는 시대에 지금과 같은 대학교의 존재 이유는 뭘까?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대학 생활에 대한 설렘을 키우는 아이를 보면서 필자는 ‘상아탑’을 떠올렸다. 비록 지금은 상아탑 대신 취업탑이 자리했지만, 대학이 상아탑이라고 불리던 그때 대학생들에겐 진리연구의 뜨거운 피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살기 위한 취업 전쟁만 남았다.

설 다음 날 아이들과 함께 늦은 세배를 위해 부모님 댁으로 가다가 씁쓸한 가로펼침막이 눈에 들어왔다.

“주소 갖기 운동으로 포항 사랑 실천해요.” 곧 서울로 주소를 옮길 아이를 보았다. 어수선한 마음이 결국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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