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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스위스인들의 특별한 휴가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매년 이맘때면 여름 휴가철이 절정에 이른다. 스위스도 예외가 아니라서 8월 전후로 불꽃과 축포놀이 등 휴가철의 클라이맥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일은 스위스 건국일로 19세기 말 우리, 슈비츠, 운터발덴 등의 3개 칸톤(주) 사람들이 이맘 때 외세의 침입시 서로 도와주기로 약속한 협약에서 비롯된다. 그 협약이 동맹의 시작과 동시에 건국의 기원으로 여긴다. 현재 26개의 칸톤으로 구성된 스위스는 조그만 나라지만 그래도 연방 공화국인 것이다.스위스는 8월1일부터 정치, 문화계 등 각 지방에서 유명한 인물의 연설이나 합창, 경기, 국가 부르기 등의 행사가 잇따라 개최되고 있다.그 중에서도 보덴호수에서 벌어지는 대형 축포놀이는 유명하다. 이 호수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3개국이 서로 소유국인 커다란 호수다. 스위스의 건국을 기념하는 축제지만 인접국인 독일도 참여한다. 축포놀이를 즐기기 위해 스위스와 독일 각지에서 모인 자동차 행렬은 대낮부터 이어지는데 인근 도시의 교통이 마비돼 버릴 정도다.일몰 직후 시작되는 보덴호수의 축포는 지구의 평화를 상징하는 모형, 보덴호수의 영원함을 상징하는 모양 등 갖가지 형상을 만들며 상공에서 춤추다 호수로 내려 내려앉는다. 독일 쪽의 호수에서, 스위스 쪽의 호수에서 번갈아 고공 축포가 쏘아진다. 호숫가며, 인근 언덕에서 각각의 장소에 마련된 연회장에서 그리고 호수의 배위에서 화려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보덴호수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최근에는 스위스의 상징이자 국기인 빨간 바탕에 흰 십자가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축제를 즐기는 스위스인들도 많아졌다. 우리의 붉은 악마를 연상시킨다. 중립국으로 누렸던 가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금, 스위스인들은 또 다른 정체성을 위해 가치혁신에 몰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 등의 강국에 둘러싸인 유럽의 지정학적 위치뿐만 아니라 복잡한 국제역학 속에서도 최고의 나라를 만들고 있는 작은 나라 스위스는 지정학적 여건으로 보면 우리 한반도와도 많이 닮았다.십자가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십자가의 축포놀이로 온통 하나의 스위스를 만들어낸다. 똘똘 뭉친 그들의 자존심이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들은 단순한 축제놀이만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간파할 수 있다. 스위스는 스위스인의 자존심을 마치 살아있는 광고탑처럼 십자가에 실어 하늘 높이 올리고 있다. 십자가가 선명하게 새겨진`Swiss made`의 명품은 시계 외에도 1천여 종류가 넘는다. 휴대용 칼 `빅토리아녹스`, 동그란 초콜릿 `린트 스프링귈리`, 압력냄비 `쿤 리콘`, 치즈 `스브린츠`, 건강음료 `바이오 스타라트`, 생수 `하이디 란트`, 군용향수 `벤거`…. 모두 열거할 수는 없을 정도다. 축제에 참여하는 그들의 얼굴과 팔에도 스위스의 명품을 상징하는 십자가 문양이 그려져 있다.오늘날 십자가는 퇴색된 중립국 대신에 스위스의 명품이라는 의미로 대체되고 있다. 스위스의 건국과 광복의 축포놀이는 바로 시민 마케팅이자 스위스만의 이미지마케팅인 것이다.유럽의 강국들 틈새에서 역사의 격랑을 헤치며 세계 부국이 된 스위스, 아름다운 자원경관을 가졌어도 실제로는 빈궁하기만 한 지하자원들, 우리 한반도와 정말 닮은 점이 많은 나라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 스위스는 공평하면서도 효율적인 교육시스템으로 인력자원을 개발, 그들만의 성장 동력으로 깔면서 최고의 명품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국민모두가 한 몸이 되어 세계시장의 홍보대사가 되고 있다.통합되고 소통된 사회에서 진정한 주인의식과 자부심을 가지며 이웃가 하나가 된 스위스. 휴가철 축제에서도 이처럼 많은 의미가 함축된 데는 그 나라만의 장점인지 요즘 같은 복잡한 한반도 정세와 비교하면 그저 부럽기만 하다.

2014-07-31

멀고도 험난한 역사청산의 길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1970년 12월7일 오후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폴란드 바르샤바. 이날 폴란드를 공식 방문 중이던 빌리 브란트 서독 수상은 무명용사의 묘를 참배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항거하다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리는 바르샤바게토 희생자 추념비도 함께 있었다. 한 나라의 국가 원수나 정부수반이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면 으레 하기 마련인 의전행사였기에 아무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그런데 멀리서 지켜보던 기자들의 시야에서 갑자기 브란트의 머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희생자 추념비 앞에서 풀썩 주저앉더니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머리를 숙인 것이다. 당시 보좌관들과 기자 등 참석자들은 피로가 누적되어 쓰러진 것이 아닌가 싶어 무척 놀랐다. 브란트는 무릎을 꿇은 채 한참동안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과 폴란드 침략으로 인해 희생된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빌었다. 그는 나치 극우정권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오히려 19세의 어린나이 때부터 나치에 대한 저항운동에 가담했던 인물이다. 서양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용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한 나라의 총리가 다른 나라에서, 그것도 추념비 앞에서 진솔하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이 같은 참배는 브란트의 정치 역정에서 가장 값진 순간으로 평가됐다. 역사가들은 브란트가 바르샤바에서 무릎을 꿇은 것은 그 어떤 정치적 수사나 행동보다 세계에서 독일을 도덕적으로 복권(復權)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독일의 잘못된 역사에 대한 청산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지난달 89세의 나치전범이 미국에서 체포됐다는 소식이 대표적이다. 공소시효가 없는 전범의 심각성을 철저히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이뿐만 아니라 독일 정부는 2016년 이후에도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Mein Kampf)`을 “나치 부활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로 별도의 법을 만들어 2016년 이후 출판과 판매를 금지키로 했다. 외국인 혐오증, 불관용, 반유대주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확실하고도 분명한 신호였다. 이 책의 저작권을 보유한 독일 바이에른州는 히틀러가 사망한 1945년 이후 70년이 되는 2015년까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출판을 금지한 상태였다. 단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해외출판만은 허용된다.독일에서 독일인들과 대화를 할 때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히틀러와 관련된 테마는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대화를 하다보면 꼭 그럴 수만도 없는 것이다. 히틀러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면 묘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전후세대인 일부 젊은이들에게서도 기성세대 못지않게 강대국에 대한 스스로의 묘한 두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경제적이나 정치적으로 이미 유럽의 중심국으로 솟아오르고 있는 독일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것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독일의 강대국 공포증이다. 심한 독일인들은 독일축구팀이 승승장구 하는 국제경기가 중계되면 채널을 돌려버릴 정도다. 물론 모든 독일인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독일축구대표팀을 두고 독일전차라고 부르는 것도 싫어할 정도다. 강대국 그리고 히틀러의 야욕이 부른 2차 대전의 참패로 엄청난 대가를 지불했던 그들의 뼈저린 역사 인식 때문이다.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팀인 독일이 금의환향한 자축행사에서 “가우초(아르헨티니 등 남미의 목동)는 이렇게 간다”며 허리를 숙여 구부정한 자세로 노래를 부르며 걷다가 허리를 곧게 펴고 걸으면서 “독일인들은 이렇게 간다”는 노래를 불러 논란이 일었다. 차별주의 조장에 대한 오해다. 선수들은 단순한 자축행사였다고 하지만, 독일 언론들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천박한 행동이라며 자국선수들을 호되게 질타했다.독일은 잘못된 역사를 진심으로 청산하는 모범 국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유수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청산의 길은 아직도 멀고 험난한 모양이다.

2014-07-24

월드컵 우승이 던지는 메시지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한가위에 들을 법한 이 노래는 브라질 축구의 성지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울려 퍼졌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이 우승하자 독일축구팬들이 `타게 비 디제(Tage wie diese·이처럼 오늘 같은 날)`라는 노래를 부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준결승전에서 융단폭격 같은 독일의 공격에 브라질이 무너지자 브라질축구팬들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같은 눈물이지만 만감이 교차하는 희비의 눈물이었다. 실망한 브라질 일부지역에서는 난동과 소요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월드컵축구가 단순한 지구촌의 스포츠축제로만 여길 수 없음을 증명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라운드를 누비는 국가대표선수들의 유니폼만 보더라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니폼은 한마디로 팀 정신을 함축한다.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는 물론 국민정서까지 포함해 그 나라를 상징한다. 사라졌던 영광과 권위도 각인시킨다. 이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색깔과 디자인에다 명도와 채도를 달리하면서 국기의 문양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런 경향은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더욱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전문가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승리한 독일의 유니폼은 32개 팀 중에서 가장 높은 지지도를 끌어낸 유니폼으로 평가하고 있다.흰색 바탕에 승리의 상징인 붉은색의 V자가 가슴에 새겨져 있다. V자 안에는 별 3개. 월드컵 3회 우승을 상징하는데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별 하나가 더 추가될 전망이다. 유니폼 소매 자락의 검은색과 붉은색은 독일 삼색기(흑·적·황)인 국기에서 차용한 것이다. 삼색기는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처음 국기로 지정됐으며 독일의 단결과 자유를 상징한다. 물론 이 같은 자유는 독일이라는 국가의 자유 뿐 아니라 독일 국민의 개인적 자유를 동시에 상징하는 것이다. 독일과 결승전을 치른 아르헨티나는 전통적인 디자인으로 권위를 유지했으며 흰색과 푸른색의 스트라이프로 강한 이미지를 풍긴 유니폼이었다.이 같은 유니폼과 정신으로 무장한 국가대표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격돌하는 것이 월드컵 축구다. 여기서의 승패가 과연 단순한 스포츠만의 승패가 될 수 있을까. 많은 것을 함축하면서 국가와 사회적으로 뻗어가는 또 다른 갈림길이 되기도 한다.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은 독일 통일의 신호탄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사실상 통일을 앞둔 당시 서독은 지금처럼 아르헨티나를 꺾고 통산 3번째 우승의 과업을 달성했다. 감격했던 우승의 기쁨은 같은 해 10월3일 통일로 이어진 것이다. 그보다 앞선 1974년 서독 월드컵 때는 동독과 서독이 각각 본선에 진출했고 예선전에서는 같은 조에 편성되는 운명을 가진 적이 있다. 당시 독일사회는 통일의 필요성을 더욱 더 절감했던 것이다.독일 언론들도 만약 독일대표팀이 이번에 월드컵우승컵을 거머쥔다면 남아있는 동서 갈등 해소는 물론 이민자 화합 등 독일사회에 긍정적 역할을 하는 지렛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기도 했다. 예상대로 독일은 이 시기에 맞춰 축구로 세계를 평정했고, 독일 전체가 일심동체가 됐다.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아직도 독일 사회에서는 출신에 대한 앙금이 잔재해 있다. 서독사람들이 일컫는 오씨(동독출신임을 살짝 비꼬는 말)와 동독사람이 일컫는 베씨(서독출신임을 살짝 비꼬는 말)처럼 감정적으로 주고받는 말이다.독일은 전체인구의 약 20%가 이민자로 구성돼 있다. 70년대 중반까지 외국 인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다. 인종에 대한 혐오가 전연 없다고 말하긴 어렵다. 신형전차군단으로 불리는 독일대표팀은 터키, 가나, 튀니지 등 이민가정출신도 포함됐으며 모두 사회적으로 하나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아직 분단국이면서도 본격적인 다문화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독일 월드컵 우승이 던지는 메시지는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4-07-17

`인문가치포럼` 세계를 향해 뿌려진 첫 씨앗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21세기 인문가치포럼`이 최근 안동에서 사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국내외에서 130여명의 석학들이 참여했고 포럼기간 중 연인원 1만여명이 이곳을 찾아 유교문화의 재조명을 통해 지구촌의 문명 간 융합과 소통을 했다. `21세기 인문가치포럼`은 일명 다보스포럼이라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EF)`처럼 훗날 세계적인 포럼을 꿈꾸고 있다는 점과 유교문화의 가치가 바로 다보스 포럼에서 언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필자가 여러 번 언급했듯이 스위스의 다보스포럼도 처음부터 지금처럼 세계의 정상급 인사와 정치, 경제계를 주름잡는 쟁쟁한 인사들이 참여하지는 않았다. 다보스포럼은 독일 태생으로 스위스 연방공과대학에서 공부했던 클라우스 슈바브 박사가 하버드대학 교수시절에 심포지엄 형식으로 출발한 모임이었다. 슈바브 박사는 1971년 유럽 경영인 심포지엄(EMS)을 개최했을 당시 유럽의 기업인들과 미국의 비즈니스 스쿨의 교수들이 산업 이슈들에 대해 논의하고자 했던 자리 정도였으며 유럽 경영인들이 친목과 근황을 묻는 사교모임으로 출발한 성격이 짙었다. 이후 참가자들의 저변을 확대하고 좀더 격의 없이 자유롭게 토론에 참여하는 성격을 강화하고자 `유럽 경영인 포럼(EMF)`으로 명칭을 바꾸게 된다. 그 이후 유럽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 국가로 참여 범위를 확대해 나갔고 경영이나 산업 분야 뿐 만 아니라 범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다양한 이슈들을 다루는 `세계경제포럼(WEF)`으로 거듭 태어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1981년부터 세계경제포럼이 스위스 산골 휴양지 다보스에서 개최되면서 다보스포럼이라 불리기 시작했으며 오늘날 그야말로 세계를 움직이는 포럼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다보스포럼이 경제 포럼으로 불려지고 있지만 실상은 글로벌 정치적인 성격을 동시에 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 다보스포럼에서는 신자유주의적인 시장경제체제에 대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런 점들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기존 시장경제 철학의 위기를 진단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시장경제에서 우선시 되는 기업의 이윤만이 전부가 아니라 세계적인 공익문제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재조명하면서 세계경제의 새로운 기준(New Normal)을 재정립하는 또 다른 패러다임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을 필두로 하는 아시아의 부상 및 인본을 위주로 하는 유교문화와 인문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올해 다보스포럼의 주제도 세계 경제의 불평등 심화와 함께 세계적 공익을 염두에 둔 `세계의 재편`이었다.지난주 안동에서 막을 내린 `21세기 인문가치포럼`의 선언문에서 영국 런던대의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는 “인류발전의 역사적 경험을 성찰하고, 축적된 지식과 지혜의 바탕을 재계발함과 동시에 인간 본성과 주체성 회복을 추구하기 위해 모였다”면서 앞으로 “유교의 가르침을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재해석해 인류의 다양한 문명 간 소통과 창조적인 융합의 도모를 천명한다”고 선언했다.이번 인문포럼에 참석한 미래학의 거장 짐 데이토 미국 하와이대 교수도 18~19세기까지 서양에선 개인주의가 극심해 개인에게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줬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는 사라져 버렸다며 단체를 하나로 결속하는 능력이 부족했음을 꼬집었다. 반면 유학은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데 아주 훌륭한 사상이라고 생각한다며 “미래 사회에서는 개개인이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공동체를 하나로 묶기 때문에 각자 더 책임과 성실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인문 및 유교문화는 경북의 4대 정신 중의 하나인 선비정신과도 그 맥이 닿아 있다. 안동에서 열린 `21세기 인문가치포럼`이 세계를 향한 힘찬 출발의 씨앗이 됐으면 한다.

2014-07-10

한국판 베켓효과를 기대하며

최근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내각의 경제정책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금융의 양적완화다. 쉽게 얘기하면 국채를 매입하고 재정지출을 늘리는 등 시중에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해 저성장구조에서 탈출하겠다는 전략이다. 베켓효과(Becket Effect)라는 것이 있다. 13세기 들어서야 유럽에서는 화폐경제가 발달하게 된다. 왕들은 제멋대로 화폐를 과도하게 만들어서 나라의 부채를 줄이고 봉건 영주들의 힘을 약화시켜 나갔다. 영주들은 대부분 화폐를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과도하게 화폐를 만들어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야기함으로써 영주들의 실질자산 가치를 떨어뜨린 현상을 고전적 의미의 베켓효과라고 부른다.독일에는 깨어난 시민의식의 상징인 현대판 베켓효과라는 것도 있다. 유로화가 등장하고 유럽중앙은행이 탄생하면서 지금은 독일연방은행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당시 독일연방은행을 두고 베켓효과로 무장돼 있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누구라도 일단 독일연방은행에서 근무하게 되면 은행의 독립성을 위해 그 자세가 자연스럽게 베이는 현상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 자세는 물론 국민 앞에서가 아니라 권력 앞에서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어떤 외부의 압력도 단호하게 차단하겠다는 독일연방은행의 독립성은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 유수의 중앙은행관계자들은 독일연방은행의 독립성을 벤치마킹하려고 줄지어 독일을 찾곤 했다.선거 때만 되면 여당정치인들은 시중에 돈을 풀어 반짝경기를 부양해 유권자의 민심을 얻으려고 했다. 그런 유혹은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독일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한 배상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독일국립은행이 마구잡이로 화폐를 발행해 일어난 초 인플레이션으로 평생의 부가 휴지 조각으로 변했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독일인들이 독일연방은행에 가졌던 애정은 그야말로 각별한 것이었다.어떤 정치권력도 함부로 독일연방은행에 압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독일 국민들은 항상 예의주시했다. 시민들은 독일연방은행에게 시중에 돈을 풀자는 줄기찬 러브콜을 던진 정부를 용서치 않았다. 언론은 그런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러한 정부를 적나라하게 풍자하곤 했다. 필자가 의미 있게 받아들인 풍자의 핵심 장면은 한 손엔 정부가 독일연방은행을, 다른 한 손엔 독일 시민들의 모가지를 움켜쥐고 있는 장면이었다.독일연방은행은 총리나 재무부장관의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민이 깨어 있을 때 가능한 것으로 베켓효과는 결국 깨어 있는 독일 시민들이 만들어낸 것이다.독일연방은행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아직도 계승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범한 유럽중앙은행(ECB)의 독립성이 그것이다. ECB는 유로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회원국의 통화주권을 인수, 유럽공동의 통화금융정책을 지휘하는 유로 경제권의 중앙은행이다. 큰 틀에서 보면 환율안정과 외채 감소 등 독일연방은행의 엄격한 통화안전 노선을 취하고 있다.경기상황에 따라 시중에 통화를 풀던 혹은 거둬들이던 그것은 오직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는 독일연방은행의 역할이지 정부가 섣불리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베켓효과의 핵심이었고, 베켓효과로 인한 독일연방은행의 꼿꼿함 뒤에는 깨어있는 시민의식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최근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민선6기 출범을 맞아 취임식 대신 독도를 찾아 더 큰 경북 꿈의 완성을 위한 새 출발의 의지를 대내외에 선언했다. 경북의 각 지자체장들도 시민과 소통하며 시정과 군정을 펼칠 것을 약속했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각 부처가 오직 시민을 위해 소신껏 업무를 추진할 수 있도록 한국판 베켓효과가 작동하는 민선6기의 출범이 됐으면 한다. 그것도 추상같은 시민의식이 함께 할 때 가능한 일이지만.

2014-07-03

스위스 초등학교의 `관심학생`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스위스에 머물 때의 일이다. 당시 필자의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으로 투루가우 칸톤주에 속한 란트슐라흐트 초등학교 다니고 있었다. 스위스 초등학교에는 학기 도중 아이들의 발달 과정과 상담, 소통 등을 겸한 수업 참관의 날이 있어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특히 그날은 담임 교사로부터 꼭 상담할 사항이 있으니 가급적 시간을 내어달라는 쪽지를 받은 터여서 궁금증이 더할 수밖에 없었다. 반 아이들은 모두 14명. 그 가운데 외국인 학생은 한국인과 이탈리아인이 각각 1명이었다. 담임 교사는 갓 발령을 받은 젊은 미혼여성이었다.상담에 앞서 수업 참관이 있었다. 과목은 우리나라 식으로 설명하면 `사회` 과목인데 학생들에게 담임선생님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비교적 쉽게 소개하고 있었다.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프랑스 등 유럽 각 나라의 지리적·사회적 정체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배려를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정 국가의 역사적 우월감보다는 대등하고 공평한 관점에서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과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유럽의 역사를 균형적으로 서술하기 위해 각 나라 사학자들이 공동으로 유럽사를 편찬하는 작업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사회 시간인데도 전쟁과 관련된 자유의견을 권유하며 전쟁과 관련한 음악도 틀어준다. 과목을 넘나드는 통합 교육이다. 한번 발표한 학생에게는 손을 들어도 기회를 주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학생에게 무엇이라도 좋으니 발표를 하라고 격려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능력과 소질을 가능한 한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교사로서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마침내 소통을 곁들인 학부모와의 상담시간이 다가왔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필자로선 쇼킹한 것이었다. 집 아이가 수업시간에 다른 학생을 배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혼자서만 발표하려고 해서 원활한 수업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소위 `관심학생`으로 분류된 것이다. 학교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도할 터이니 집에서도 참고해 달라는 조심스런 당부였고 부모가 원한다면 사회성을 전문으로 하는 상담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충고했다. 우리나라 교육 분위기라면 리더십에 관한 소질이 엿보이니 칭찬해야 마땅한 터인데 초등학생을 두고 사회성 부족일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에 처음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이다.돌이켜보면 그것은 고마운 상담이었고 유익한 소통이었다. 개개인의 자유와 인격,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성, 타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 등 장차 시민사회의 일원이 될 새싹들에게 쏟는 스위스 초등학교의 인성교육은 지금도 필자에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다.담임 교사가 작사를 했다는 그 교실의 메아리가 지금도 맴돈다. 수업이 시작될 때와 마칠 때 반드시 부른다는 노래다.“한국도 지구촌, 이탈리아도 지구촌, 스위스도 지구촌, 우리는 함께 살아갈 란트슐라흐트(해당 초등학교가 있는 동네) 2학년 어린이…”같은 반 외국인 친구들의 국적을 지리적으로 먼 곳부터 우선 나열한 가사로 타인에 대한 배려가 고스란히 스며있다.소통과 관심 그리고 인성교육이라는 말은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지겹게 반복되고 있는 단어들이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GOP 총기사고 등으로 온통 사회가 어수선하기만 하다. 최전방지역의 `관심병사`와의 소통과 관리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대부분 한 자녀 가정에서 청년을 나라에 맡겨야 하는 것이 오늘날 국방의무의 현실이다. 엄격한 공동체적 규율은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기에 소통과 관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들이다.경제성장과 인성 및 정신의 풍요로움은 반드시 대척점에 있어야만 하는가.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라지만 타인의 안전과는 아랑곳없이 컨테이너 한 개라도 더 실어 자신의 이익을 채우는 것이 상식이어야 하는가. 돈과는 상관이 없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예의는 과연 냉소 받아야만 할 것인가.

2014-06-26

英·佛·獨의 흥미로운 삼각패스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2014년 브라질월드컵이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촌 전체를 달구고 있다. 이 같은 대규모 경기에는 의례히 예선전이지만 결승전을 방불케 하는 게임도 있고 역사 혹은 감정적으로 뒤얽힌 숙명적인 라이벌게임도 있어 흥미를 돋우기 마련이다.지난 17일 결승전을 연상케 하는 빅 매치답게 독일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독일 메르켈 총리가 직접 현지를 찾아와 관람했다. 매스컴도 메르켈 총리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독일의 골이 포르투갈 골문을 가를 때마다 환호하는 메르켈 총리의 모습이 TV화면을 통해 세계로 생중계 됐다.앞서 일본과 코트디브아르 예선전에서 코트디브아르가 골을 넣을 때 내심 우리들은 환호했을 것이다. 둥근 축구공을 통해 잘못된 역사나 감정을 생산적으로 해결해 가며 지구촌이 하나로 뭉쳐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10여년 전 프랑스에서는 토고의 역사 알기 등 토고 열풍이 분 적이 있다. 토고뿐만 아니라 북서아프리카의 웬만한 나라는 프랑스의 식민지 국가들이다. 파리의 대학생들이 토고에 건립할 도서관에 기증하기 위해 다양한 책을 모은 것이다. 프랑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도 있고 소설도 있었다. 근대 시민사회의 주역으로 떠오른 부르주아들의 세속적인 삶을 실감나게 묘사했던 발자크의 소설도 있고 프랑스의 고전극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몰리에르의 작품도 있었다.독일인들은 프랑스의 젊은이들의 이 같은 아프리카 열풍을 두고 블랙골드를 향한 포스트식민주의의 포석이 아니냐며 비판의 눈길을 주기도 했다. 당시의 `아프리카 셀`이 그것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셀`이란 프랑스가 아프리카 옛 식민지에 비밀리에 개입해 군 파병부터 내부 쿠데타 조종은 물론 각종 경제적 이권에 관여하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였다.그런데 프랑스의 토고 열풍은 바로 영국 때문이었다. 프랑스와 영국은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하다. 영국 사람들은 13세기부터 미식가 프랑스 사람들을 `개구리 잡아먹는 사람`이라고 조소했으니 양국 간의 그 감정을 짐작할 수 있다.당시 영국은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책을 멀리하고 있다고 야단법석이었다. 영국 정부가 직접 후원하는 독서 캠페인이 등장했을 정도였다. 영국의 한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남학생의 성적이 여학생에 비해 뒤지고 있으며, 그 원인이 독서량의 차이에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것이다. 영국의 일간지 `옵서버`는 아들이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모방하려는 심리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아버지가 먼저 책을 펴주기를 권하기도 했다. 그런데 권장하는 독서 분야가 프랑스인들을 자극했다. 바로 역사 분야였기 때문이었다.프랑스는 영국의 역사를 생각하며 경쟁심을 불태웠다. 19세기 영국은 망망한 대양을 헤치며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렸고 말 그대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프랑스가 영국에게 질 수 있으랴. 식민지 경영의 역사로 따지면 빠질 수 없는 프랑스도 가만히 있을 리 없다.“독일과 프랑스는 사소한 일에는 서로 티격태격하지만 중요한 일에는 머리를 맞댄다. 프랑스와 영국은 사소한 일에는 합의하지만 중요한 일에는 대립한다” 는 어느 외교가의 유명한 말이 있다. 유럽연합의 중심국이면서도 단일통화 유로화는 도입하지 않고 손익만을 저울질하고 있는 영국을 독일과 프랑스가 좋아할 리 없다. 게다가`유럽도 똘똘 뭉쳐 미국을 견제하는 유럽 합중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첫 언급한 사람이 영국 수상 처칠인데, 말만 해놓고 한 발짝 비켜서는 영국이 고울 리 없다.참으로 재미있는 삼각패스가 아닐 수 없다. 영국의 역사 알기가 프랑스의 아프리카 열풍을 낳았고, 프랑스의 아프리카 열풍은 독일인에게 프랑스의 포스트 식민주의라는 재갈 물리는 구실을 제공했으니 말이다.이 같은 세 나라의 감정이 브라질 월드컵에서 비록 맞상대로 부닥치지 않더라도 어떻게 표출될 것인지 감상해 보는 것도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2014-06-19

유럽의 聯政을 연상케 하는 당선자들의 포부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지난주 정치에서 서로 다른 정파가 연합해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는 프랑스의 동거정부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과 제휴나 연립, 연정(聯政) 뜻하는 독일의 `코알리치온`(Koalition)을 언급한 적이 있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오래된 이런 서유럽의 정치시스템은 권력 집중을 견제하면서도 공통분모를 찾아 생산적인 상생과 공존을 모색하라는 유권자들의 민의가 함축된 결과물이다. 정당의 목적이 정권창출이기에 선거에서는 정당들이 치열하게 싸워야 하겠지만 선거후엔 유권자들의 삶과 일상을 위해 머리를 맞대며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오는 7월, 새 출범을 앞두고 각 우리 지자체 당선자들도 프랑스의 `코아비타시옹`과 독일의 `코알리치온`(Koalition)을 연상케 하는 포부를 밝히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광역단체장 당선자들에 이어 기초단체장 당선자들도 예외가 아니다.3선에 성공한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묶어 경북 발전의 새로운 에너지로 승화시키겠다”고 약속했고,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자는 “경기도에서 여야 통합을 실천하기 위해 야당 인사를 사회통합부지사에 임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희룡 제주지사 당선자도 야당후보로 출마했던 출마자에게 도정(道政)인수위원회에 해당하는 자리를 맡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지역 기초단체장 당선자들도 마찬가지다. 포항의 자존심을 세우고 새로운 포항을 건설하겠다는 이강덕 포항시장당선자는 “선의의 경쟁을 펼쳤던 야당 및 무소속 후보에게 포항의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아 주기”를 부탁했다. 또 경북의 역사적 과업인 신도청시대를 열어갈 권영세 안동시장 당선자도 “더 좋은 안동의 미래를 위해 세 후보자들의 뜻과 공약을 함께 담아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이 같은 당선소감들은 물론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응할지는 아직 미지수며 쌍방이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는 재임기간 동안 줄 곧 시민들이 지켜보며 평가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견제와 균형도 필요하지만, 어쨌든 무지막지한 대립 보다는 한 걸음씩 타협과 상생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염원이 축적되고 있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정책선거로 물꼬를 트게 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제대로 착근 되려면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우선 언론의 노력도 절실해 보인다.정치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높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정치판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탓도 있다. 정치인이 헛기침 한번 하면 정치공학이라는 이름으로 그 진의와 숨은 뜻을 해석하려고 방정식 풀듯이 언론들이 연속적으로 집중 조명해 나간다. 아슬아슬 하기도 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니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관심들이 과연 모두 생산적인 것인지는 언론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선거의 여왕`이라는 낯익은 단어도 여과 없이 언론들이 마구잡이로 인용하고 있다. 되짚어 보면 `선거의 여왕`인 당사자도 그리고 유권자 모두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단어임에 틀림없다. 정책선거가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고 유달리 정(情)이 많은 우리들이긴 하다. 하지만 `선거의 여왕`이 등장했다고 아무 생각 없이 유권자들이 몰표를 준다는 뜻인가. 민도(民度)가 높다는 우리 유권자에게 차마 할 얘기가 아닌 것이다.서유럽국가들의 연정을 연상케 하는 상생과 타협을 향한 우리 지자체장들의 정치적 노력은 일단 높이 평가해야 한다. 언론과 유권자들의 인내와 노력 역시 필요한 것들이다. 정치는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정당과 이념이 달라도 진정한 정치는 더 나은 시민의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상생과 타협을 위한 정치인들의 행보는 흥미와는 거리가 멀다. 꾸준하게 관찰하고 평가할 일이다. 유권자도 그리고 언론도.

2014-06-12

`코아비타시옹`과 `코알리치온` 그리고 상생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6·4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그러나 막을 내린 것은 선거일뿐 유권자와 시민을 위한 진정한 당선자와 낙선자의 행보는 지금부터일 것이다. 여야가 따로 없다. 유권자와 시민이 바라는 것은 한 가지. 빨리 당리당략을 버리라는 것이다. 선거라는 게임에는 어차피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존재하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차피 정치는 국민과 시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이긴 하지만, 보다 효율적인 선진정치로 뻗어가기 위해서 승자와 패자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얘기다. 협력과 상생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큰 틀에서 독일과 프랑스를 살펴보면 프랑스는 유럽의 대표적 중앙집권국가에 해당하며 독일은 지방분권제도가 잘 발달된 연방국가에 속한다. 프랑스의 대통령은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기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프랑스의 총리는 의회 다수의석을 점한 당에서 선출되는 구조를 가진다.이에 비해 독일의 대통령은 연방의회에서 선출되며 대외적으로 단순히 독일을 대표하는 정도의 권한만을 가진다. 그에 반해 철저한 내각책임제를 운용하는 독일이기에 총리에게는 막강한 권한이 주어진다.하지만 두 나라의 총리는 주로 의회에서 연립내각을 구성한다는 전제하에 다수당에 의해 간접선거로 선출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나라는 다양한 이념과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유권자의 다양한 선택을 위해 다당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 때만 되면 사생결단을 하듯이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당중심제의 우리나 미국과는 달리, 두 나라는 연립내각을 구성하며 연합과 제휴 등을 통해 다양한 정당들이 공존한다.프랑스의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이 좋은 예다. 코아비타시옹이란 프랑스어로 한 지붕 밑에서 살아가는 동거를 뜻한다. 정치에서는 좌우 서로 다른 정파가 연합해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프랑스에서 좌우 동거정부가 탄생한 것은 1981~1995년까지 프랑스 대통령을 역임한 좌파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이 우파인 공화국연합 시라크 당수를 총리로 지명하면서 부터다. 사회당이 인플레, 실업자 증가 등 경제정책에 실패함에 따라 국민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1986년 총선에서 우파연합이 다수당으로 승리하면서 좌파 미테랑 대통령과 우파 시라크 총리로 된 동거정부, 코아비타시옹이 시작된 것이다.독일의 `코알리치온`(Koalition)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코알리치온은 독일어로 제휴나 연립을 뜻한다. 선거 후 어느 당이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할 경우, 득표율이나 정책의 일관성 유지 등을 고려해 정당끼리 제휴나 연립을 통해 내각을 구성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연정(聯政)이다.이런 서유럽의 시스템들은 권력 집중을 견제하면서도 공통분모를 찾아 상생과 공존을 모색하라는 유권자들의 염원과 민의가 담긴 정치적 선택에 의한 것이다.코아비타시옹이나 코알리치온은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6·4지방선거가 막을 내렸지만 이와 유사한 형태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서울이나 광역단체의 경우, 법적인 제도적 틀이 갖춰져 있지 않지만, 시장과 구청장은 당이 다른 여야가 섞여 있기 때문에 코아비타시옹에 다름 아니다.문제는 정치선진화와 시민을 위한 진정한 상생과 공존을 위한 노력이다. 승자와 패자, 여야가 따로 없는 것이다.시민들은 지켜 볼 것이다. 확성기와 함께 재래시장을 연례행사처럼 다니며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들은 주위에 깔려있다는 것을. 그러나 선거가 끝나도 평소 진정 시민을 위한 상생과 공존을 고민하는 정치인들은 쉽게 보지 못하고 있다. 유권자들에 의한 선거혁명은 생각보다 빨리 닥칠 수 있음을 정치인들은 이제 고민해야 할 것이다.

2014-06-05

부동층이 올바른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6·4지방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막바지에 달하고 있다. 예전처럼 소란한 확성기 동원과 율동은 자제되고 있는 편이다. 줄어든 확성기 소리에 비례해 후보자와 선거운동원들의 움직임은 더욱 분주하다. 며칠 남지 않은 선거이기 때문에 일분일초가 황금 같은 시간이라며 길거리나 시장 등 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누비고 다닌다. 한 표라도 아쉬우니 그럴 만하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의 `벼락치기 공부`를 연상케 한다. 우리는 그런 수험생들을 보고 평소에 실력을 닦아야 한다고 따끔하게 일침하지 않는가. 엄격해진 선거법으로 식당은 죽을 맛으로 깊은 한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당선만 되면 서민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동분서주하고 있다. 선거 때 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풍경들이다.국가개조론마저 나오고 있는 마당에 이런 선거풍토조차 개조하지 못하고 언제까지 유권자들이 바라봐야만 할까 생각하니 막막해 진다. 선거운동에 소요되는 비용의 상당부분은 유권자들이 바친 세금이라 생각하니 더욱 그런 것이다.곰곰이 생각해 보면 선거분위기가 이처럼 막바지에 북새통을 이루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만큼 아직 지지자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벼락치기로 공략이 가능한 부동층의 유권자가 많기에 가능한 것이다. 부동층은 투표율을 하락시키는 중요 변수중의 하나로 작용한다.서유럽, 독일의 선거분위기의 경우 선거가 다가왔다고 난리법석을 피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통상 일요일 오전 8시에서 오후6시까지 투표를 하게 된다. 투표 당일인 일요일, 어린아이들은 부모님과 손을 잡고 투표소에 설명을 들으며 평온하게 투표를 마치는 장면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투표장은 어린 새싹들에게 투표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모든 과정을 목격하게 하는 살아있는 학습체험장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후보자들의 포스터도 한적한 산책길이나 호젓한 길가에서 목격할 수 있다.정당의 생활화라고나 할까. 많은 독일인들의 가정은 마치 무슨 종교를 가지듯이 집안 대대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그만큼 독일 정당들은 오래전부터 일관된 흐름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며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조금씩 진화한다. 그야말로 온전한 정책정당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며 그러기에 또한 정당의 생활화가 일반화 될 수 있는 얘기다. 소수당이라도 연정(聯政)이 가능하기에 더욱 그렇다. 독일 사민당(SPD)의 경우 약 150년의 역사를 가진다. 산업혁명기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기본적인 인권보장을 위해 만들어졌다. 해방 이후에 정당이 만들어지고 당명이 수시로 바뀌면서 온갖 부침을 겪고 있는 한국의 정당들과는 대조되는 대목이다.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독일 정치는 시민과 정치가 조화롭게 결합돼 움직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기 쉬운 말로만 국민을 위한다고 게 아니다. 실질적으로 정치과정에 국민이 결합돼 있고 또 국민의 의사와 뜻이 잘 반영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독일 정당들이 시민교육을 강화하고 중시하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조용한 선거 같지만 이 같은 이유로 독일의 투표율은 적어도 평균 70%는 거뜬히 상회한다.투표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 `선택할 대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본다면 엄청난 오류에 해당하며 정치를 퇴보시키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선택할 대상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악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똑 같이 나쁜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정책정당이 착근하지 못해 생기는 우리나라 부동층의 유권자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반드시 미래를 선택하는 올바른 투표는 해야 한다. 막바지 요란한 선거운동에 휘둘리는 부동층이 돼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2014-05-29

`회색골드`를 캐려는 공약이 보고 싶다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로 지방선거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공식적인 선거 운동이 시작되고 있지만 비교적 차분하고 조용한 움직임이다. 선거가 민주주의 축제라고 하지만 확성기를 동원하고 화려한 율동이 선거 축제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해경의 해체라는 사상 초유의 국가기관 문책 등 국가개조론도 확산되고 있다. 국가를 개조하는데 너와 내가 따로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모두가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다. 주어진 모든 분야에서 맡은 바 할 일을 제대로 점검하고 다짐 할 일이다.차분한 이번 6·4지방선거에서 유권자가 반드시 점검해야 할 것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후보자들이 내거는 공약이다. 실효성 있는 공약인지 듣기 좋은 소리인지 그리고 유권자들이 부담해야 할 세금이 얼마인지도 따져봐야 한다.이번 6·4지방선거공약에서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공통으로 등장하는 공약이 있다. 바로 `노인 일자리창출`이다. 2000년에 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는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국가)로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을 보면 수긍이 가는 공약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노년층의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최고를 기록한다.지금의 노인세대는 한국의 현대사에서 많은 희생을 치르며 오늘의 경제발전을 일궈낸 세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미처 자신의 노년을 준비할 겨를도 없이 부모를 봉양하면서도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세대이기도 하다. 이런 노년층에 대한 제대로 된 일자리제공은 진정한 노인복지는 물론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최근 독일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이후에도 높은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고령자의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연구개발(RD)투자 확대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노년층의 증가는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를 의미한다. 경제활동인구 감소는 산업구조개편과 기술진보가 이뤄져도 경제성장에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유럽의 각 나라는 물론 EU(유럽연합)차원에서도 고령사회를 극복하는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정책적인 배려만으로는 쉽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노년층의 일자리를 위해 오래전부터 서유럽에서는 홈 케어 서비스 등에 주목해 왔다. 홈 케어 서비스의 수혜자는 노년층이다. 하지만 상당수는 이러한 사업에 뛰어드는 공급자이기도 하다. 자신과 상황이 비슷한 다른 노년층을 위해 보다 확실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을 인정받을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독일에 `회색골드(graues Gold)`라는 개념이 있다. 1998년 덴마크의 슈퍼마켓 체인 `네토`에서 45세 이상의 종업원들만 채용한 적이 있다. 신중하고 사려 깊은 중년층 이상의 종업원들은 예상외로 많은 고객을 끌어들였다. 이것을 두고 `회색 골드`를 캐는 기업이라고 불렀다. 젊은이들에게 찾기 힘든 노년층에 대한 노동의 가치를 `회색골드`로 인정해준 것이다. 독일의 `오트마 파리온`이라는 회사는 한 술 더 떠 경험과 숙련도를 위해 50세 이상 65세미만의 기술자만을 채용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 업무처리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고정관점을 깨면서 성공적으로 회사를 운영한다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회색골드`는 노년층의 생산성과 경제력제고는 물론 노년층에 대한 존재감과 성취감을 확인시켜 준다는 점에서도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이번 6·4지방선거에서 등장하는 노년층에 대한 일자리창출 공약은 한시적이며 또 지자체의 재정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회색골드`를 캐려는 땀과 노력 그리고 고민이 보이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2014-05-22

피케티와 기부문화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프랑스 경제학자 토마스 피케티가 쓴 책이 유럽과 미국에서 많은 주목을 끌고 있다. 아직 번역판이 나오지 않은 한국에서도 기고나 칼럼을 통해 피케티가 언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책이 `21세기 자본론(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이다. 독일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Das Kapital)`을 연상시키고 있으며 실제 자본주의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맥이 닿아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득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가능하게 됐다는 극찬을 받는가 하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자본 수익률이 경제 성장률을 웃돌기 때문에 자본주의 아래에선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일해서 버는 속도를 앞지르기 때문에 지금 세계는 상속 엘리트들이 물려받은 부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는 `세습 자본주의`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그것을 완화하고 소득불평등 해소를 위해 소득 상위 1%에 엄청난 소득세를 물리고, 매년 일정의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문제는 자본수익률이 그리 간단치 않으며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자본을 잡는 데만 해도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하는데, 자본과 노동이 결합하는 현대의 생산물에서 자본수익률을 정확하게 추정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러나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속성과 소득불평등 해소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소득불평등 해소책의 강력한 수단은 세금이다. 하지만 적정의 세율을 부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레퍼가 입증하고 있다. 경제학의 `레퍼곡선`이 그것이다. 공급주의 경제학자 아더 레퍼에 의해 도출된 이론으로 국가가 세율을 높인다고 해도 국가의 조세수입이 항상 비례해서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론을 담은 곡선이다. 조세수입이 극대화되는 어떤 적정세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때 레이건정부가 구사했던 세금감면·자유무역·기업에 대한 규제완화 등 공급위주의 경제학인 레이거노믹스의 기본이념도 레퍼로부터 출발했다. 오늘날 미국경제의 호황은 레이거노믹스 덕택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레퍼는 높은 세율은 근로자의 근로동기와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경제성장의 핵심장애 요소다.근로자의 근로동기와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지 않을 자율적인 세금의 역할을 하는 수단은 없을까? 그것 중의 하나가 바로 기부와 성금이다. 스스로 사회에 환원되며 소득불평등 완화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자율적인 성금이나 기부가 자유시장경제체제하에서 제기되고 있는 분배문제에 어떤 순기능을 하는지는 명백해 진다. 문제는 강세성이 없으므로 활성화 여부에 달려 있다.15년 전부터 독일에서는 사회적 성금과 기부 활성화를 목표로 전문가를 양성하는 2년제 전문적인 직업학교인 `펀드레이징(Fundrasing) 아카데미`가 개설되기 시작했다. 펀드레이징과 관련된 시장과 조직이론 및 전략과 부기 그리고 관련법규 등을 공부한다. 현재 독일에 있는 복지, 환경, 인권, 교회, 동물보호단체 등 크고 작은 사회복지단체나 협회는 약 8만개로 집계되고 있다. 신학이나 심리학 등 인문사회학을 전공한 사람이면 전문 성금모금업자로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성금이 주는 사회적 순기능을 피력하며 소신껏 설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독일에는 또 `교회세`라는 세금이 있다. 신자들이 내는 세금으로 주(州)정부가 거둬들여 교회에 준다. 교회는 이것으로 인건비와 신도들의 결혼(결혼을 주로 교회에서 하기 때문)이나 장례비에도 쓰지만, 장애인이나 갈 곳 없는 사람, 난민구호 그리고 각종 사회문화사업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펼치기도 한다. 그러나 교회세는 신자가 동(洞)에 가서 신자가 아니라고 신고만 하면 납세 의무는 자동면제 된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세는 성금과 기부성격을 띠는 것이기도 해 독일의 기부문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기도 하다.

2014-05-15

관광퍼포먼스의 주역, 빈 거리의 악사들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어린이날, 석가탄신일에 이은 연휴동안 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분향소를 찾았다. 반복되지도 말아야 할 참사임에 틀림이 없다. 재난 안전기구 신설, 매뉴얼 정비, 관피아 척결…. 이제 귀에 따까리 앉도록 반복되는 뉴스와 토론들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그걸 모르는 국가와 사회가 이 지구촌에 존재하겠는가. 그것 보다는 시간을 두고 백년대계를 모색하는 심정으로 보다 근원적인 해결점들이 도출됐으면 한다. 지나친 물질만능의 배금주의를 완화할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도출할 것인가? 다가오는 지방선거부터 총선, 대선까지 그 실마리라도 찾아갔으면 한다. 그것이 억울한 희생자에 대한 진정한 추모요 또한 의무일 것이다.이제 화제를 돌려보자. 애도와 함께 차분하게 일상에 복귀해야 할 때다. 바야흐로 푸르름의 계절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거리의 악사들이 거리로 나와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는 계절은 지금과 같은 초여름부터 시작된다. 거리의 악사들이 넘치는 음악의 도시를 꼽으라면 오스트리아 빈을 빼 놓을 수 없다. 빈을 꼽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음악의 도시답게 거리의 악사들에게도 수준(?)을 고려해 당국에서 허가를 내어주는 곳이 바로 오스트리아 빈이기 때문이다. 빈의 번화가인 케른트너 거리에서는 수준 높은 거리의 악사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대부분 음대에서 정식으로 음악을 전공한 거리의 악사들이다. 세계적인 음악가 바흐나 브람스의 아버지들도 거리의 악사였으니 많은 것을 짐작할 수 있다.그런데 거리의 악사를 둘러싸고 함께 자유인이 되고자 하는 청중들의 대부분은 빈시민이 아니라 관광객들이라는 점이다. 타 도시 혹은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다. 반복되던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여름 휴가철을 보내는 관광객들이다. 그 탈속의 관광객이기에 거리의 악사들이 뿌리는 보헤미안적인 자유와 낭만이 더욱 깊게 도시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그것은 관광객을 위한 도시의 전략적이면서도 자연스런 퍼포먼스로 봐야 한다.케른트너 거리는 국립 오페라극장과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성당 슈테판 사원을 이어주는 거리이다. 케른트너 거리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의 천국으로 많은 상점과 거리 카페, 거리의 악사들과 관광객들로 항상 가득 차 있다. 거기엔 당연히 안경과 오리 털 이불, 철제품 등 빈의 명산품이 관광객을 위해 등장한다.그렇다고 관광객들이 음악 때문에만 빈을 찾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빈은 또 다른 역사적 도시다. 유럽에서 보기 드물게 오랜 영화(1273~1918)를 누렸던 유럽의 최대 맹주 합스부르크 왕가의 숨결을 모두 간직한 도시가 바로 빈이기 때문이다. 화려했던 왕가의 삶과 영욕이 그대로 배어있는 도시인 빈을 상징하는 고딕양식의 웅장한 슈테판 사원에서 오늘도 오스트리아 젊은이들은 웅장했던 역대의 왕조들과 교감을 나눈다. 왕들이 묻힌 지하 묘지 위에도 젊은이들의 비엔나커피문화가 살아 움직인다. 뜨겁고 차갑고 검은 커피에다가 여러 가지의 크림이 조합된 다양한 커피 때문에 젊은이들과 관광객들에게 의미 있는 오늘날의 관광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관광도시, 특히 세계적인 관광도시는 이처럼 생각보다 단순하고 쉽게 이뤄지지는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멀지 않아 곧 여름과 함께 본격적인 휴가철이 다가올 것이다. 정신문화의 수도, 신도청 소재지가 될 안동 그리고 경북의 주요 도시들도 각 특성에 맞는 관광 퍼포먼스를 개발해 봄직하다. 정신문화라면 많은 것들을 떠 올릴 수 있다. 유교문화와 선비정신, 특히 오늘날 우리사회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새롭게 각인되고 교훈적으로 되새겨야 할 많은 선각의 정신과 다양한 문화재들…. 이 휴가철에 더 많은 사람들이 안동과 경북을 찾아오게 할 수는 없을까? 빈 거리의 악사에서 힌트를 찾아볼 수 있다. 큰 재정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 충분히 고민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2014-05-08

수도원의 경영철학과 경북 `21세기 인문가치 포럼`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프란치스코 교황의 리더십을 경영학 관점에서 분석한 외신기사들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국내 모 일간지 기사에는 지난달 프란치스코 교황 취임 1주년을 맞이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사례 연구에 들어가야 할 CEO”라고 보도한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를 분석했다.가톨릭이 기업은 아니지만 교황은 `주요 시장(유럽)`에서 `경쟁자(다른 종교)`에게 `고객(신자)`을 빼앗겨 위기에 빠졌던 `조직(바티칸)`을 되살려낸 경영자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프란치스코의 리더십의 핵심을 3가지로 압축했다.첫째는 경영학적 분석을 위해 가톨릭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다국적기업`에 비유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로 가톨릭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등 핵심가치를 재정립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최초 남미출신 교황, 최초 예수회 출신 교황, 호화 관저 대신 성직자 숙소 이용, 벨벳망토 대신 백색 신부복 착용 등 브랜드 이미지를 재정립했으며 셋째로 외부 컨설팅 회사에 바티칸 행정기구와 은행점검 의뢰 등 조직 분석을 통해 구조조정에 성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그러나 이같은 분석은 완전히 새로운 분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세 수도원의 경영철학 등은 오늘날 유럽의 많은 기업들에게 현대적인 가치로 승화시키며 그대로 이어져 오기 있기 때문이다.중세 수도원은 우리나라의 두레처럼 제한된 범위의 동료끼리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는 협력적인 경제 조직의 성격을 띠었다. 수도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자본가를 위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피동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이기적인 욕구를 공동체적 협력으로 승화시키며 생산성을 향상시켜 나갔다. 이로 인한 구두, 모직물, 포도주, 맥주 등 잉여생산물은 유랑 걸식하는 빈민층에게 배분됐고, 수도원은 자연스럽게 자선 단체나 빈민 구제소로 자리 잡았다.그러나 화폐가 등장함으로써 양상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잉여생산물인 농작물, 물고기 등은 화폐로 교환됐고 부를 축적하기 쉬워졌다. 나눔의 미덕은 사라지고 부가 쌓이는 재미에 따라 수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외도를 하기도 했다.중세 중반의 수도원은 기업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반 기업과는 달리 종교적인 임무와 사회적 의무를 동시에 띠었다는 점이다. 베네딕트 수도원은 공동체의 규율을 정하고 엄격한 운영 방침에 따라 수도원을 운영했다. 나중에는 농업뿐만 아니라 상업과 제조업에도 관여했는데, 적자를 기록한 수도원에는 어김없이 퇴출 명령이 떨어졌다.현재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지에서는 클로스터(Kloster·수도원)의 브랜드로 출시되는 세계시장에 공급되는 인기 있는 맥주들이 많다. `맥주 품질에만 신경을 쓸 뿐 다른 경영비법은 없다`라고 말하는 수도사들이 많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경영 슬로건이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그 이상의 경영비법은 없지 싶다.세계로 뻗어가는 유럽 수도원의 철학을 생각하면서 경북도와 안동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한국정신문화의 세계화 프로젝트의 의미가 되새겨진다. 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올 7월에 개최될 예정인 `21세기 인문가치 포럼`이다.경제, 경영이 아닌 인물과 윤리, 돈보다는 사람, 이(利)보다는 의(義), 양극화보다는 대통합, 포용의 인간중심, 사람됨을 강조하는 포럼이다. `21세기 인문가치포럼`은 경제, 경영 분야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인문가치, 유교·선비 정신을 바탕으로 인문가치 융성, 문화융성을 세계적으로 이끌어간다는 계획이다.세계적인 행사가 된 스위스 다보스 포럼처럼 그 규모를 키워 갈 `21세기 인문가치포럼`. 최근 다보스 포럼에서 아시아의 유교적 가치가 지구촌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제안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2014-05-01

직업윤리의식과 서유럽의 교육시스템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세월호' 침몰 사건은 발행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글로벌이슈로 번져가고 있다. 승객 대부분이 미래 꿈나무들인 고교생들이고 사건에 대한 초기대처가 안타까움을 자아냈기에 일파만파 이 소식은 지구촌으로 번져나갔다.독일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독일신문 `빌트'지는 사건이 발행하자마자 베를린에서 3명의 기자들을 급파해 현장에서 밀착취재를 하고 있다. 독일의 유력 주간지 `슈테른'과 독일의 유력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도 진도 관제센터(VTS)와 세월호가 주고받은 교신내용에 대한 분석,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 등 사건의 경과에 따른 사설을 싣기 시작했다.온 국민이 심적 고통과 상처를 받고 있다. 모두가 트라우마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의 언론도 마찬가지로 거미줄처럼 얽힌 총체적 부실, 후진국 형 참사, 매뉴얼 재정비, 관련자 엄벌, 부패사슬, 비정상적 관행, 어처구니 없는 관제(官災)…. 중앙과 지역 언론을 막론하고 연일 이어지는 톱기사로 다루고 있다.역사는 반복되지만 후진형 참사는 반복되지 말아야 하기에 언론들이 당연히 짚어가야 할 대목들이기도 하다.특히 선장을 비롯한 선박직 승무원의 조기탈출에 대한 비난은 내외신을 막론하고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그리고 승객에 대한 기본적인 임무를 저버린 직업 윤리의식에 분노하고 있다. 설령 시스템에 잘못이 있었더라도 직업윤리의식 하나에만 충실했어도 이같은 끔찍한 대형 참사는 최소화될 수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우리는 이번 사건에서 어긋난 직업윤리의식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는지 목격하고 있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돌이킬 수 없는 일. 희생자 그리고 실종자에 대한 구조의 노력은 최후의 일각까지 계속돼야 한다. 국가가 따로 없고 국민이 따로 없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또한 임무이기도 하다.이제 우리 사회를 한번 돌이켜 보자. 윤리의식으로 무장된 선장과 승무원 역할은 비단 세월호 같은 여객선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그렇게 돼 있다. 직업윤리의식은 이같은 대형 참사에만 강조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사회는 이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과연 직업윤리의식은 토론이나 강요, 그리고 당위성에 의해서만 온전하게 키워질 수 있는 있는 것일까.직업윤리의식은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소명의식이 수반될 때 극대화된다. 자신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을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황금만능주의와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도대체 그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실제 현재 서유럽 선진국에서는 그런 교육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작동되고 있다. 지금 그들의 초등학교 수업에서부터 학부모의 협조아래 교사와 학생이 삼위일체가 되어 승자와 패자를 없애며 소질을 발견하고 자질을 키워가고 있다. 공부에 소질 있는 학생, 노래에 소질 있는 학생, 춤 잘 추는 학생, 손재주 있는 학생, 그림 잘 그리는 학생 등등, 초등학교 교사들은 이 점을 간파하는데 집중해야 하고 학부모들은 초등학교 교사들을 전적으로 믿으며 아이들의 경쟁력 있는 진로를 생각하며 협조해 가고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집에서 학부모들이 함부로 과제나 숙제를 도와주지 않는다. 교사들이 학생의 소질과 자질을 판단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사교육이니 과외니 하는 것들은 먼 나라 얘기다.통상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 스위스의 경우 초등학교 6학년쯤이면 학생들의 일차적인 진로가 확정된다. 그들은 나중에 직업의 귀천이나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자긍심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어쨋든 이번 진도 앞바다에서 유명을 달리한 채 세월호에서 희생된 학생들의 영전에 우리는 어떤 조사(弔詞)를 올려야 할지 대한민국에서 명색이 어른으로 산다는 자체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2014-04-24

안타까운 국경지역 노마드(nomad)들

나라들이 빼곡하게 접해있는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수많은 국경을 접하며 넘나들게 된다. 때에 따라서는 너무나 자유롭게 넘나들기에 도무지 국경이라는 개념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많다. 국경이라면 무장한 남북의 군인들이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는 부동자세로 상대를 응시하며 꼿꼿이 대치하는 판문점을 연상하기에 우리로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현재 유럽의 국경은 일반적으로 자유롭게 개방돼 있다. 1995년 쉥겐 협약국가인 유럽 25개국 내에서는 예외적인 사안을 제외하고는 국경통제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날씨가 따뜻한 봄날이면 국경의 왕래는 아무래도 더욱 잦아지고 붐비게 된다. 인접한 이웃나라에 봄나들이를 겸한 쇼핑, 외식 그리고 합법적인 일자리를 찾으러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것이다. 활짝 웃는 얼굴로 국경의 봄을 맞이하는 좋은 모습들이 아닐 수 없다.국경에서 노마드(nomad)시대임을 절감케 하는 장면이다. 노마드는 유목민, 방랑자를 의미한다. 21세기를 신유목민, 특히 정보기술을 갖추고 국경을 넘어 세계를 유랑하는 인류의 모습을 두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프랑스의 사회경제학자요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는 `디지털 노마드`까지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저기의 불모지를 넘나들며 삶의 터전으로 바꾼 유목민의 문화를 현대인의 패러다임으로 새롭게 제시해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노마드들은 보다 창조적인 활동을 위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국경을 누빈다. 지난 동계 올림픽 때 러시아에 귀화해 선전한 안현수(빅토르 안) 선수도 하나의 예다.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교수, 연구원, 음악가 등 예술인에서부터 봄철 쇼핑이나 여행을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모든 부류들이 여기에 해당한다.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교수로 역사가이자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신중세주의(neo-medievalism)가 떠오른다. 소설 `장미의 이름`과 함께 해박한 지식으로 잘 알려진 에코는 오늘날을 가리켜 탈냉전의 시대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도 아닌 신중세의 시대라고 말한다.오늘날, 마치 중세의 영주가 칼과 창으로 성을 함락시켜 영토를 늘려가듯, 실제의 영토뿐만 아니라 마우스로 국경을 넘는 사이버 영역에서도 세력에 따라 숨 가쁜 새로운 영토의 재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중세 후반 농노와 농민들이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삶의 터전인 농토를 버리고 쫓기는 몸으로 도심 공장지대를 떠돌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유목민처럼 좀 더 좋은 직장이나 환경을 찾아 국경을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국경에서 안타깝고도 가슴 저미는 슬픈 노마드도 종종 목격하게 된다. 특히 삶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 국경에서 좌절되는 모습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노마드들이다. 가끔이긴 하지만, 주로 유럽에서도 부국(富國)에 속하는 독일이나 스위스의 국경에서 펼쳐지는 모습들이다.이런 장면이다. 한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두려움에 떨고 있다. 희망의 끈을 놓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모습이다. 그 옆에는 헝클어진 머리칼과 남루한 옷차림의 아내가 주저앉아 있다. 그들 앞에는 무장한 경찰과 세관원이 무엇인가 뒤지고 있다. 공포에 질린 어린 딸은 축 늘어진 아빠의 손가락을 놓지 못한다. 어린 딸의 공포는 무장한 경찰과 세관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보다도 크고 든든한 바람막이라고 생각했던 아빠의 작고 초라한 모습에 더욱 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동구권 사람들이 풍요로운 서유럽으로 가기 위해 자동차 트렁크 안에 딸과 아내를 숨기고 불법이민으로 국경을 넘어 정착하려다 적발당하는 장면이다. 서 유럽국의 국경에서는 종종 이런 광경들을 접할 수 있다. 안타까운 국경지역 노마드들. 신유목민 시대로 불리는 오늘날 국경에서 일어나고 있는 빛과 그늘의 모습이다.

2014-04-17

독일군에게 빼앗긴 프랑스 자전거 한 대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독일의 웬만한 가정이나 식당, 선술집 등에서 중앙유력지와 지역신문을 동시에 2부 구독하는 것을 쉽게 접하게 된다. 중앙유력지라 해도 우리처럼 수도 서울에서만 발간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발간되고 있고 `쥐트 도이체 차이퉁`은 뮌헨에서, `베스테 도이체 차이퉁`은 에센에서, `디 벨트`지는 베를린 등에서 발행된다. 비중 있게 취급되는 기사들이 중앙의 정치와 경제, 시사 등이기에 말로만 중앙유력지라 불릴 뿐이다. 지역신문은 그야말로 그 지역만의 이슈와 소식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중앙유력지와 함께 독자들은 반드시 지역신문을 읽게 되는 것이다.아래는 필자가 독일에 머문 90년대 말 남독일의 어느 지역신문에서 읽은 내용인데 무척 의미를 부여하는 내용이어서 간략하게 메모를 해 둔 것이다. 내용인 즉 이렇다.“빼앗긴 자전거는 저의 아버지 것이었습니다. 당시 11살이었던 저는 놀라움과 함께 충격을 받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중략) 그러나 54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특별한 증오나 원망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약속대로 빼앗긴 자전거 한 대를 되돌려 주십사하고…”이것은 1998년 파리 외곽에 거주하고 있던 프랑스인 졸 바도씨가 파리 주재 독일대사관 앞으로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다. 청원서에 가까운 간절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바도씨는 아버지가 타계하자 서류를 정리하면서 빛바랜 영수증 한장을 발견했다. 압수번호 01066. 1944년 9월1일 날짜가 희미하게 찍혀져 있는 낡은 쪽지였다. 바도씨는 54년 전의 사건을 정확히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당시 어린 소년이었던 바도씨는 이웃집 농가에 들러 우유를 가져오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을 이행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독일군 3명으로부터 그만 자전거를 빼앗기고 말았다. 슬피 울면서 돌아온 소년의 손에는 독일군이 건네준 영수증이 쥐어져 있었는데 돌려줄 것을 믿은 아버지가 이것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연은 비시(Vichy)정권의 말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비시정권은 1940년 6월 프랑스 패전으로 남북이 분할되면서 성립된 파시스트 독재정부로서 북쪽은 독일 나찌군이 다스렸지만 남쪽은 페텡을 수반으로 비시란 도시를 중심으로 친나찌 정권인 비시정부가 들어섰던 것이다.편지를 받은 파리주재 독일대사관에서는 바도씨에게 독일 본 주재 프랑스대사관을 통해 자전거를 돌려줄 것을 요구했지만 침묵만이 흘렀다. 그러나 바도씨는 국가와 국가가 풀어야할 문제가 따로 있고 개인과 국가가 해결해야할 문제도 따로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자전거를 돌려달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파리주재 독일대사관은 바도씨의 주장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당시 독일군인의 무례함을 사과드립니다. 요구하는 자전거에 대해서는 상응한 조치를 해드릴 것입니다` 라는 답장이 돌아왔다.바도씨가 이 같은 편지를 주고받을 당시 독일의 외무부장관은 요슈카피셔였다. 물론 그 후 독일외무장관으로부터 바도씨가 문제의 자전거를 돌려받았는지 혹은 어떤 보상이 이뤄졌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짐작하겠지만 독일의 과거사청산은 이처럼 미미한 곳에서부터 철두철미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반해 일본은 아직도 우리 국민들에게 이런저런 상처만을 안겨주고 있다. 내년부터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국이 일본 땅 독도를 불법 점령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는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이쯤이면 일본은 진정 우리와 이웃이 될 수 없는 역사 왜곡의 길로 들어 선 것임에 틀림이 없다.비록 전쟁 중에 빼앗긴 자전거 한 대였지만 반세기가 흐른 시점에도 공식 사과와 함께 이웃나라 국민의 작은 아픔마저 보듬어 준 독일의 올바른 역사인식의 진정성은 그래서 전 세계가 공감을 사고 있는 것이 아닐까.

2014-04-10

경북의 히든 챔피언들을 기대하며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일주일전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공대에서 드레스덴 선언을 하루 앞둔 날, 베를린에서도 중요한 움직임이 있었다. 베를린 시내 한 호텔에 한국과 독일의 중소 및 중견기업인 200여명이 모인 것이다. 이유인 즉 독일과의 기술협력을 확대하고 산학협력 노하우를 배우기 위한 `한·독 히든 챔피언 포럼` 행사 때문이다. 작지만 강한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s)`의 본고장은 바로 독일이다. 독일의 중소기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히든 챔피언`을 들어봤을 것이다.`히든 챔피언`은 독일 출신의 세계적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 박사의 저서 이름이다. 지몬 박사는 수많은 전문분야에서 압도적 시장지배력을 가진 작고 강한 강소기업(중소기업)이 세계화의 진정한 승리자라고 강조한다. 지몬 박사는 그러한 중소기업들이 가진 경영전략과 기술력 등 베일에 가려진 비법을 기업 상담을 통하거나 손수 발품을 팔아가며 조사해 책으로 엮어냈다.이 책의 독일어 초판은 1995년 `숨은 승자(Die heimlichen Gewinner)`로 독일의 옛 수도엔 본에서 출판됐다. 이후 내용들이 추가돼 하버드경영대학원에서 영어 번역판인 `히든 챔피언`이란 제목으로 재탄생해 급속히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숨은 승자`나 `히든 챔피언`은 이름도 없이 조용히 숨어서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중소기업이라는 같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제목들이다.세계적으로 2천여개의 작고 강한 `히든 챔피언`들이 있다. 이중 2/3가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독일어권에 집중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이 요란한 홍보보다는 오직 기술과 품질로 승부하며 야금야금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무명의 기업들이다. 단적인 예로 독일의 `크노프(Knopf)`는 무려 20여만 종이 넘는 단추만을 생산하는 세계적 회사다. 푸스테픽스(Pustefix)사의 비눗방울 장난감은 온 지구촌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무명의 기업에 가깝다. 비눗방울이나 장난감이 철저히 친환경적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수출대국의 명성을 떨치며 오늘날 유럽 경제의 리더가 되고 있는 독일, 그 이면에는 바로 `히든 챔피언`이 존재하고 있다.유독 독일어권 국가에서 강소기업 출현이 많은 것은 여러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역사와 문화 그리고 교육환경(소질과 능력에 따른 직업교육)을 빠뜨릴 수 없을 것이다. 대대로 한 우물만 파는 철저한 장인정신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어온 그들의 혼(魂)이 뒷받침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기업인만큼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단번에 일확천금을 노리기보다 철저한 책임과 신뢰를 우선시하는 사회분위기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저자 지몬 박사는 `히든 챔피언`집필을 위해 각 국을 돌아봤지만 숨은 승리자들은 대체적으로 독일적이며 뛰어난 수공업의 솜씨와 자기 일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가격으로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가치로 제품을 팔기 때문에 비싸도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식 경영과는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는 부분인데, 독일의 강소기업들은 시골 도시를 떠나 어느 지역이든 골고루 분포돼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경북 역시 신도청시대를 앞두고 있다. 지역마다 특색과 혼을 가진 23개 시·군이 상생하며 웅비를 향한 역사의 장을 열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경제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선진 경제의 허리는 경쟁력을 가진 중소기업들이다.곧 식목일이다. 백년 앞을 내다보며 나무를 심듯 선진 경북의 먼 미래를 위해 지역강소기업이 태동할 토양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한다.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내려온 자랑스러운 경북의 혼과 정신을 압축하는 경북의 많은 히든 챔피언들이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날을 기대해본다.

2014-04-03

독일 드레스덴이 경북에 던지는 시사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통일과 관련된 연설장소를 작센주(州)의 드레스덴으로, 그리고 드레스덴공대로 선택한 배경에 대해 많은 관심들을 쏟아내고 있다. 드레스덴은 옛 동독지역으로 통일 후 역동적으로 경제적 활력을 찾아가고 있는 부활의 자족도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드레스덴은 연합국으로부터 블록버스터라는 폭탄과 함께 융단폭격을 받아 도시 대부분이 무너졌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전쟁전만 하더라도 작센왕국의 수도였던 드레스덴은 찬란한 문화와 역사 그리고 예술은 물론 공업중심지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동서독 분리 후 드레스덴은 동독의 주요산업도시로 재편됐지만, 사회주의체제의 한계점 때문에 별다른 발전과 주목을 받지 못했던 도시다.그런 드레스덴이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화려한 부활과 함께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서독체제하에 있던 대도시와 어깨를 겨룰 정도로 드레스덴 도시의 총생산은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독일이나 유럽연합차원에서도 막대한 투자를 했다. 새내기 작은 기업들이 물밀듯이 드레스덴으로 몰려왔다. 대부분 중소기업인데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클러스터도 드레스덴의 심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반도체 기업들이 드레스덴의 중심부에서 관련 제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독일의 실리콘 밸리인 셈이다. 항공기제조, 광학기기, 기계, 화학 등 여타 많은 분야에서도 드레스덴의 산업심장은 힘차게 박동하고 있다.한편 드레스덴은 찬란한 역사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문화도시이기도 하다.르네상스 중세문화유산이 아직도 상당부분 남아있는 곳이다. 19세기의 낭만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들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빼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드레스덴의 엘베강은 주변 건축물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오죽하면 `엘베강의 베네치아`로 불릴까. 음악의 도시, 예술의 도시…. 드레스덴 도시를 수식하는 단어들은 이처럼 많다. 드레스덴의 국립미술관은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이 같은 드레스덴에 유서 깊은 드레스덴 공대가 있다. 1828년에 설립된 이 대학은 공대지만 일반 공학 분야 외에도 경치, 경제, 사회, 철학, 음악 및 예술분야는 물론 신학과 의과대학도 있으니 우리로 보면 종합대학인 셈이다. 2013년 기준으로 재학생수는 정확히 3만7천134명으로 규모도 상위권에 속한다. 독일의 공대는 대부분 이와 유사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드레스덴공대는 드레스덴 도시를 빼어 닮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것을 압축하고 있다. 대학의 슬로건은 `협력, 시너지의 대학`(Die synergetische Uni)이다. 전통과 첨단의 결합에서 솟아나는 힘과 저력 그리고 경제력을 강조한다. 창연한 예술과 문화의 도시에서 쏟아지는 첨단의 제품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밀착형 산학협력의 모범대학이기도 하다. 독일 최대 철강업체인 티센크루프, 솔루션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인 SAP, IBM, 롤스로이스 등이 대학의 산학협력파트너들이다.한편 우리나라 언론에서 드레스덴 공대를 명문대학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유념할 부분이 있다.독일의 어느 대학이던 우리처럼 신입생들의 학력편차가 없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크게 보아 드레스덴대학이 명문이라면 독일의 모든 대학이 명문인 것이다.드레스덴과 드레스덴공대가 신도청시대 경북에 던지는 시사점도 적지 않다. 전통문화와 첨단산업의 결합에 성공하고 있는 드레스덴. 신도청 소재지가 될 안동과 예천은 문화도시다. 그와 함께 단계적으로 조성되어야 할 자족의 신도청신도시 건설의 과제도 남아있다. 시너지와 상생을 위한 큰 틀의 아이디어를 이 기회에 드레스덴에서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2014-03-27

스위스의 연례행사 꽃동네 가꾸기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봄이 성큼 다가왔다. 개울물 소리도 들리기 시작하고 겨우내 웅크렸던 꽃망울이 기지개를 켜는 상큼한 계절이다.봄이 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스위스 사람들의 `꽃 김장`이다. 꽃으로 먹을 김장을 담근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데 왜 김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할까?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초겨울에 일제히 김장을 담그듯이 봄이면 스위스인들도 연례행사처럼 집집마다 꽃씨를 뿌리거나 묘목을 심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장을 담가 이듬해 봄까지 두고두고 먹으면서 이웃도 나눠주기도 한다. 스위스인들은 봄에 심은 꽃들을 여름부터 농익은 치즈와 포도주 맛이 절정에 달하는 늦가을을 지나 초겨울까지 두고두고 감상한다. 그래서 우리의 연례행사인 김장담그기를 비유하는 것이다.흥미로운 것은 그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잘 가꾼 꽃들을 자기 거실이나 발코니 안으로 들이지 않고 밖으로 내밀기만 한다는 사실이다. 발코니가 있는 연립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발코니 바깥에 고리를 만들어 화분을 걸어둔다. 단독주택의 창에도 화분들이 모두 바깥을 향해 있다. 집 안에서 식구들끼리 바라보면 화분의 뒷부분만 보게 된다. 그러나 모두가 밖으로 꽃을 내민 결과, 자기만의 꽃이 아니라 그들의 꽃, 나아가 온천지 그들의 꽃동산을 만들어 버린다.여름이 되어 거리에 나가보면 알록달록한 꽃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꽃동네의 절경을 만들어낸다. 마을 사람들 각자가 밖으로 밀어낸 꽃들이 어우러져 동네 전체에 아름답고 풍성한 향기를 뿜어준다. 동네가 온통 꽃으로 뒤덮인 스위스에는 집집마다 담이 없기에 내 마당 네 마당이 구분되지 않는다. 열린 공간을 향해 한 송이의 꽃을 밀어냄으로써 저마다 수천 송이의 꽃을 함께 소유하는 모습이 부러운 것이다. 스위스의 동네와 도시들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가꾸어 진다.기원전 1세기 독일 지역의 헬베티아인(Helvetian)들이 남하하여 정착하기 시작한 나라, 면적이 남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작은 나라 스위스는 1291년 8월 북부 산악 지역의 3개 칸톤주가 공동방어를 위해 영구 동맹 서약을 맺음으로써 지금의 스위스 연방 효시가 된다. 1인당 국민소득을 따질 필요도 없을 정도로 스위스는 작지만 강하고 아름다운 세계 최고의 부국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최근 신문 지상에서 봄이 오면 빨래터가 생각난다는 글을 읽었다. 옛날 봄볕이 좋은 날이면 동네 개울 빨래터에서 아낙네들이 묵은 빨래를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이 그립다는 내용이다. 세탁기가 등장하면서 빨랫감은 사람의 손을 떠나게 되었지만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맑은 물이 흐르던 동네 개울이 오염되고, 개울 위에 차나 사람이 다니는 복개도로가 생기면서 개울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점 멀어져갔다는 것이다.최근 대구 도심에서는 빨래하고 자맥질하며 놀던 동네 개울을 살리기 위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대구 동구 일부지역에 선바위쉼터, 생태체험장 등을 만드는 `고향의 강` 사업을 2016년 말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포항도 친환경 도시 건설에 팔을 걷어 부치고 있다. 인도에 녹도 조성 등 폐철도부지를 녹색의 도심 숲으로 만들고 있다. 내년 세계 물포럼대회를 앞두고 국내 최대 규모의 하수재이용처리장과 관련해 자칫 회색도시로 오인될 포항을 자연친화적인 도시에로의 탈바꿈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안동도 마찬가지다. 연내 도청 이전을 앞두고 조성될 신도시는 그야말로 글로벌적인 친환경 녹색도시로 만들어질 전망이다. 이처럼 요즘 어느 도시든 친환경과 녹색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예산과 관련된 관(官)주도만의 친환경도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음에 유의해야 한다. 한 송이의 꽃을 던짐으로써 천 송이의 꽃동산을 만드는 스위스인의 시민의식을 기억해야 한다. 도시의 주인은 바로 시민이기 때문이다.

2014-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