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스위스의 연례행사 꽃동네 가꾸기

등록일 2014-03-20 02:01 게재일 2014-03-20 18면
스크랩버튼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

봄이 성큼 다가왔다. 개울물 소리도 들리기 시작하고 겨우내 웅크렸던 꽃망울이 기지개를 켜는 상큼한 계절이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스위스 사람들의 `꽃 김장`이다. 꽃으로 먹을 김장을 담근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데 왜 김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할까?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초겨울에 일제히 김장을 담그듯이 봄이면 스위스인들도 연례행사처럼 집집마다 꽃씨를 뿌리거나 묘목을 심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장을 담가 이듬해 봄까지 두고두고 먹으면서 이웃도 나눠주기도 한다. 스위스인들은 봄에 심은 꽃들을 여름부터 농익은 치즈와 포도주 맛이 절정에 달하는 늦가을을 지나 초겨울까지 두고두고 감상한다. 그래서 우리의 연례행사인 김장담그기를 비유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잘 가꾼 꽃들을 자기 거실이나 발코니 안으로 들이지 않고 밖으로 내밀기만 한다는 사실이다. 발코니가 있는 연립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발코니 바깥에 고리를 만들어 화분을 걸어둔다. 단독주택의 창에도 화분들이 모두 바깥을 향해 있다. 집 안에서 식구들끼리 바라보면 화분의 뒷부분만 보게 된다. 그러나 모두가 밖으로 꽃을 내민 결과, 자기만의 꽃이 아니라 그들의 꽃, 나아가 온천지 그들의 꽃동산을 만들어 버린다.

여름이 되어 거리에 나가보면 알록달록한 꽃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꽃동네의 절경을 만들어낸다. 마을 사람들 각자가 밖으로 밀어낸 꽃들이 어우러져 동네 전체에 아름답고 풍성한 향기를 뿜어준다. 동네가 온통 꽃으로 뒤덮인 스위스에는 집집마다 담이 없기에 내 마당 네 마당이 구분되지 않는다. 열린 공간을 향해 한 송이의 꽃을 밀어냄으로써 저마다 수천 송이의 꽃을 함께 소유하는 모습이 부러운 것이다. 스위스의 동네와 도시들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가꾸어 진다.

기원전 1세기 독일 지역의 헬베티아인(Helvetian)들이 남하하여 정착하기 시작한 나라, 면적이 남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작은 나라 스위스는 1291년 8월 북부 산악 지역의 3개 칸톤주가 공동방어를 위해 영구 동맹 서약을 맺음으로써 지금의 스위스 연방 효시가 된다. 1인당 국민소득을 따질 필요도 없을 정도로 스위스는 작지만 강하고 아름다운 세계 최고의 부국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최근 신문 지상에서 봄이 오면 빨래터가 생각난다는 글을 읽었다. 옛날 봄볕이 좋은 날이면 동네 개울 빨래터에서 아낙네들이 묵은 빨래를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이 그립다는 내용이다. 세탁기가 등장하면서 빨랫감은 사람의 손을 떠나게 되었지만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맑은 물이 흐르던 동네 개울이 오염되고, 개울 위에 차나 사람이 다니는 복개도로가 생기면서 개울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점 멀어져갔다는 것이다.

최근 대구 도심에서는 빨래하고 자맥질하며 놀던 동네 개울을 살리기 위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대구 동구 일부지역에 선바위쉼터, 생태체험장 등을 만드는 `고향의 강` 사업을 2016년 말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포항도 친환경 도시 건설에 팔을 걷어 부치고 있다. 인도에 녹도 조성 등 폐철도부지를 녹색의 도심 숲으로 만들고 있다. 내년 세계 물포럼대회를 앞두고 국내 최대 규모의 하수재이용처리장과 관련해 자칫 회색도시로 오인될 포항을 자연친화적인 도시에로의 탈바꿈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안동도 마찬가지다. 연내 도청 이전을 앞두고 조성될 신도시는 그야말로 글로벌적인 친환경 녹색도시로 만들어질 전망이다. 이처럼 요즘 어느 도시든 친환경과 녹색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예산과 관련된 관(官)주도만의 친환경도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음에 유의해야 한다. 한 송이의 꽃을 던짐으로써 천 송이의 꽃동산을 만드는 스위스인의 시민의식을 기억해야 한다. 도시의 주인은 바로 시민이기 때문이다.

김부환의 세상읽기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