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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국경지역 노마드(nomad)들

등록일 2014-04-17 02:01 게재일 2014-04-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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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들이 빼곡하게 접해있는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수많은 국경을 접하며 넘나들게 된다. 때에 따라서는 너무나 자유롭게 넘나들기에 도무지 국경이라는 개념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많다. 국경이라면 무장한 남북의 군인들이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는 부동자세로 상대를 응시하며 꼿꼿이 대치하는 판문점을 연상하기에 우리로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유럽의 국경은 일반적으로 자유롭게 개방돼 있다. 1995년 쉥겐 협약국가인 유럽 25개국 내에서는 예외적인 사안을 제외하고는 국경통제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날씨가 따뜻한 봄날이면 국경의 왕래는 아무래도 더욱 잦아지고 붐비게 된다. 인접한 이웃나라에 봄나들이를 겸한 쇼핑, 외식 그리고 합법적인 일자리를 찾으러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것이다. 활짝 웃는 얼굴로 국경의 봄을 맞이하는 좋은 모습들이 아닐 수 없다.

국경에서 노마드(nomad)시대임을 절감케 하는 장면이다. 노마드는 유목민, 방랑자를 의미한다. 21세기를 신유목민, 특히 정보기술을 갖추고 국경을 넘어 세계를 유랑하는 인류의 모습을 두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프랑스의 사회경제학자요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는 `디지털 노마드`까지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저기의 불모지를 넘나들며 삶의 터전으로 바꾼 유목민의 문화를 현대인의 패러다임으로 새롭게 제시해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노마드들은 보다 창조적인 활동을 위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국경을 누빈다. 지난 동계 올림픽 때 러시아에 귀화해 선전한 안현수(빅토르 안) 선수도 하나의 예다.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교수, 연구원, 음악가 등 예술인에서부터 봄철 쇼핑이나 여행을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모든 부류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교수로 역사가이자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신중세주의(neo-medievalism)가 떠오른다. 소설 `장미의 이름`과 함께 해박한 지식으로 잘 알려진 에코는 오늘날을 가리켜 탈냉전의 시대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도 아닌 신중세의 시대라고 말한다.

오늘날, 마치 중세의 영주가 칼과 창으로 성을 함락시켜 영토를 늘려가듯, 실제의 영토뿐만 아니라 마우스로 국경을 넘는 사이버 영역에서도 세력에 따라 숨 가쁜 새로운 영토의 재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중세 후반 농노와 농민들이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삶의 터전인 농토를 버리고 쫓기는 몸으로 도심 공장지대를 떠돌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유목민처럼 좀 더 좋은 직장이나 환경을 찾아 국경을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경에서 안타깝고도 가슴 저미는 슬픈 노마드도 종종 목격하게 된다. 특히 삶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 국경에서 좌절되는 모습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노마드들이다. 가끔이긴 하지만, 주로 유럽에서도 부국(富國)에 속하는 독일이나 스위스의 국경에서 펼쳐지는 모습들이다.

이런 장면이다. 한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두려움에 떨고 있다. 희망의 끈을 놓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모습이다. 그 옆에는 헝클어진 머리칼과 남루한 옷차림의 아내가 주저앉아 있다. 그들 앞에는 무장한 경찰과 세관원이 무엇인가 뒤지고 있다. 공포에 질린 어린 딸은 축 늘어진 아빠의 손가락을 놓지 못한다. 어린 딸의 공포는 무장한 경찰과 세관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보다도 크고 든든한 바람막이라고 생각했던 아빠의 작고 초라한 모습에 더욱 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동구권 사람들이 풍요로운 서유럽으로 가기 위해 자동차 트렁크 안에 딸과 아내를 숨기고 불법이민으로 국경을 넘어 정착하려다 적발당하는 장면이다. 서 유럽국의 국경에서는 종종 이런 광경들을 접할 수 있다. 안타까운 국경지역 노마드들. 신유목민 시대로 불리는 오늘날 국경에서 일어나고 있는 빛과 그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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