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로 지방선거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공식적인 선거 운동이 시작되고 있지만 비교적 차분하고 조용한 움직임이다. 선거가 민주주의 축제라고 하지만 확성기를 동원하고 화려한 율동이 선거 축제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해경의 해체라는 사상 초유의 국가기관 문책 등 국가개조론도 확산되고 있다. 국가를 개조하는데 너와 내가 따로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모두가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다. 주어진 모든 분야에서 맡은 바 할 일을 제대로 점검하고 다짐 할 일이다.
차분한 이번 6·4지방선거에서 유권자가 반드시 점검해야 할 것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후보자들이 내거는 공약이다. 실효성 있는 공약인지 듣기 좋은 소리인지 그리고 유권자들이 부담해야 할 세금이 얼마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번 6·4지방선거공약에서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공통으로 등장하는 공약이 있다. 바로 `노인 일자리창출`이다. 2000년에 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는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국가)로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을 보면 수긍이 가는 공약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노년층의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최고를 기록한다.
지금의 노인세대는 한국의 현대사에서 많은 희생을 치르며 오늘의 경제발전을 일궈낸 세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미처 자신의 노년을 준비할 겨를도 없이 부모를 봉양하면서도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세대이기도 하다. 이런 노년층에 대한 제대로 된 일자리제공은 진정한 노인복지는 물론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독일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이후에도 높은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고령자의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연구개발(R&D)투자 확대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노년층의 증가는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를 의미한다. 경제활동인구 감소는 산업구조개편과 기술진보가 이뤄져도 경제성장에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유럽의 각 나라는 물론 EU(유럽연합)차원에서도 고령사회를 극복하는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정책적인 배려만으로는 쉽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노년층의 일자리를 위해 오래전부터 서유럽에서는 홈 케어 서비스 등에 주목해 왔다. 홈 케어 서비스의 수혜자는 노년층이다. 하지만 상당수는 이러한 사업에 뛰어드는 공급자이기도 하다. 자신과 상황이 비슷한 다른 노년층을 위해 보다 확실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을 인정받을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독일에 `회색골드(graues Gold)`라는 개념이 있다. 1998년 덴마크의 슈퍼마켓 체인 `네토`에서 45세 이상의 종업원들만 채용한 적이 있다. 신중하고 사려 깊은 중년층 이상의 종업원들은 예상외로 많은 고객을 끌어들였다. 이것을 두고 `회색 골드`를 캐는 기업이라고 불렀다. 젊은이들에게 찾기 힘든 노년층에 대한 노동의 가치를 `회색골드`로 인정해준 것이다. 독일의 `오트마 파리온`이라는 회사는 한 술 더 떠 경험과 숙련도를 위해 50세 이상 65세미만의 기술자만을 채용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 업무처리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고정관점을 깨면서 성공적으로 회사를 운영한다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회색골드`는 노년층의 생산성과 경제력제고는 물론 노년층에 대한 존재감과 성취감을 확인시켜 준다는 점에서도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번 6·4지방선거에서 등장하는 노년층에 대한 일자리창출 공약은 한시적이며 또 지자체의 재정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회색골드`를 캐려는 땀과 노력 그리고 고민이 보이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