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지방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막바지에 달하고 있다. 예전처럼 소란한 확성기 동원과 율동은 자제되고 있는 편이다. 줄어든 확성기 소리에 비례해 후보자와 선거운동원들의 움직임은 더욱 분주하다. 며칠 남지 않은 선거이기 때문에 일분일초가 황금 같은 시간이라며 길거리나 시장 등 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누비고 다닌다. 한 표라도 아쉬우니 그럴 만하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의 `벼락치기 공부`를 연상케 한다. 우리는 그런 수험생들을 보고 평소에 실력을 닦아야 한다고 따끔하게 일침하지 않는가. 엄격해진 선거법으로 식당은 죽을 맛으로 깊은 한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당선만 되면 서민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동분서주하고 있다. 선거 때 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풍경들이다.
국가개조론마저 나오고 있는 마당에 이런 선거풍토조차 개조하지 못하고 언제까지 유권자들이 바라봐야만 할까 생각하니 막막해 진다. 선거운동에 소요되는 비용의 상당부분은 유권자들이 바친 세금이라 생각하니 더욱 그런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선거분위기가 이처럼 막바지에 북새통을 이루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만큼 아직 지지자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벼락치기로 공략이 가능한 부동층의 유권자가 많기에 가능한 것이다. 부동층은 투표율을 하락시키는 중요 변수중의 하나로 작용한다.
서유럽, 독일의 선거분위기의 경우 선거가 다가왔다고 난리법석을 피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통상 일요일 오전 8시에서 오후6시까지 투표를 하게 된다. 투표 당일인 일요일, 어린아이들은 부모님과 손을 잡고 투표소에 설명을 들으며 평온하게 투표를 마치는 장면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투표장은 어린 새싹들에게 투표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모든 과정을 목격하게 하는 살아있는 학습체험장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후보자들의 포스터도 한적한 산책길이나 호젓한 길가에서 목격할 수 있다.
정당의 생활화라고나 할까. 많은 독일인들의 가정은 마치 무슨 종교를 가지듯이 집안 대대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그만큼 독일 정당들은 오래전부터 일관된 흐름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며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조금씩 진화한다. 그야말로 온전한 정책정당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며 그러기에 또한 정당의 생활화가 일반화 될 수 있는 얘기다. 소수당이라도 연정(聯政)이 가능하기에 더욱 그렇다. 독일 사민당(SPD)의 경우 약 150년의 역사를 가진다. 산업혁명기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기본적인 인권보장을 위해 만들어졌다. 해방 이후에 정당이 만들어지고 당명이 수시로 바뀌면서 온갖 부침을 겪고 있는 한국의 정당들과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독일 정치는 시민과 정치가 조화롭게 결합돼 움직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기 쉬운 말로만 국민을 위한다고 게 아니다. 실질적으로 정치과정에 국민이 결합돼 있고 또 국민의 의사와 뜻이 잘 반영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독일 정당들이 시민교육을 강화하고 중시하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조용한 선거 같지만 이 같은 이유로 독일의 투표율은 적어도 평균 70%는 거뜬히 상회한다.
투표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 `선택할 대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본다면 엄청난 오류에 해당하며 정치를 퇴보시키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선택할 대상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악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똑 같이 나쁜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책정당이 착근하지 못해 생기는 우리나라 부동층의 유권자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반드시 미래를 선택하는 올바른 투표는 해야 한다. 막바지 요란한 선거운동에 휘둘리는 부동층이 돼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