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독일어 가운데 `게셰헨(geschehen)`이라는 단어가 있다. `일어나다. 발생하다`의 뜻을 가진 동사다. 이 동사를 명사화시키면 일어남, 발생함 등이 될 것이며 이것들이 축적되면 역사가 된다. 독일어에서 역사를 뜻을 가진 단어가 바로 `게시히테(Geschichte)`다. 역사를 뜻하는 `게시히테`는 보다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지나간 일 뿐만 아니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도 이 용어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와 지나간 역사를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독일어는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뉘앙스를 풍기게 한다. 시간의 연속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미래의 내일이 다가오면 바로 역사가 되기에 현재와 미래 그리고 지나간 역사는 분리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문법에서나 거론될 만한 시제를 생뚱맞게 얘기하고 있는 이유는 분단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독일의 과거, 현재와 무관치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 때문이다. 우리의 현재는 독일의 과거이며 우리의 미래는 독일의 현재와 닮아야 한다는 것이다.현재 우리는 통일을 이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독일은 이미 지난 과거에 통일을 이루고야 말았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공식적으로 1989년 11월9일부터 시작됐다. 이날은 동서독 주민들이 망치와 곡괭이 등을 들고 베를린 장벽을 부수기 시작한 상징적인 날이다. 여러가지 과정을 거치면서 독일 통일은 1990년 10월3일 마무리됐다. 분단의 역사를 극복해야 할 우리의 현재는 독일의 과거사에 해당하는 것이다.독일은 통일만 이룬 것이 아니다. 나치와 관련된 과거사 청산문제 등을 진지하게 정리해 나갔다. 프랑스와 함께 쌍두마차를 이루며 유럽연합을 이끌어 가고 있는 독일의 현재는 통일을 이룬 다음, 언젠가는 동북아의 평화공동체 구축과 함께 중심국으로 부상해야 할 우리의 미래와 무관치 않다는 얘기다.그러나 우리는 70년 가까이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지구촌의 유일한 나라다. 남북은 여전히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반도다. 반도는 정치, 경제적으로 민감한 지정학적인 운명을 가질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둘러싼 분쟁만 봐도 그렇다. 미국과 유럽연합 그리고 러시아의 정치, 경제적 이익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곳이 크림반도다. 강대국 사이에 위치해 모두에게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가치가 놓은 우크라이나는 우리에게 결코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만은 없는 곳이다. 한국, 미국, 중국 삼각관계의 틀 안에서 과연 우리의 통일은 가능할 것인가. 통일 이후에 우리가 동북아의 중심국으로 자리 잡기 위해 주변 강국과 어떤 관계를 설정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반도가 지니는 특성상 주변국가와 능동적인 조화를 이루며 중심국으로 부상하려면 강한 경제력과 국력을 지녀야 함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다행히 우리에게는 통일친화적인 분위가 큰 틀에서 형성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통일에 대비해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하겠다고 밝혔다. 한반도 통일에 대비하면서 통일 한반도의 청사진을 그리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세대별로 극복해야 할 과제는 남아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염원의 노래는 계산적이고 세속적 합리주의에 물들어 예전처럼 흔히 들을 수 없는 노래로 전락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공공연히 남북통일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통일친화적인 사회분위기로 사회를 통합하며 흡수시켜야 할 문제들이다.통일이 싫든 좋든, 통일의 형태가 어떤 것이든, 통일로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다 해도 우리의 미래인 통일 열차는 달려야 한다. 한반도가 진정한 경제대국으로 솟아나기 위해서도 통일 열차는 달려야 한다.통일 후 유럽연합의 중심국으로 우뚝 선 독일의 현재를 보면서 마치 우리나라의 미래의 모습처럼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착각일까.
2014-03-13
▲ 김부환 유럽경제문제연구소장미국의 경제를 종종 `카지노 경제`에 비유하곤 한다. 특히 서유럽인들의 눈에 비치는 미국은 더욱 그러한 경향이 짙다. 물론 서유럽인들도 미국이 세계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나라임을 인정하고 배울 것은 배우려고 한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천박한 자본주의를 말할 때는 미국을 빠뜨리지 않으며 미국의 발전에는 언젠가 한계가 닥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세계적인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베버는 파리아(Paria)를 인용해 천민자본주의(Pariakapitalismus)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파리아는 천한 계급을 가진 최하층민을 뜻한다. 주변의 어려운 상황과는 아랑곳없이 오직 자신들의 이익만을 빨아들이는 것이 천민자본주의의 속성이다.미국의 엘리트들이 실력으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모의 부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메리카 대학 경제학과 교수 헤르츠도 이 같은 세습 현상은 미국이 독일, 프랑스나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10배 이상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적이 있다. 능력에 따른 계층 간의 사회적 이동이 활발하지 못하고 부모를 잘 만나는 행운이 사회적 신분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좁은 문을 향해 올인 하지만, 거의가 하층민으로 떨어지는 미국은 더 이상 기회 균등과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는 열린 공간이 아니라고 비판한다.구태여 다른 예를 들 것도 없이 미국은 유럽인이 보기에 그래서는 안 되는 교육마저 지나치게 상업화시켜 이윤을 취하려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세계 도처에서 몰려드는 사람 중 기회를 잡는 사람은 극히 일부분일 뿐인데도 그러한 이야기가 성공 신화로 포장돼 다시 대중으로 퍼져간다며 비판적인 눈길을 준다.미국에 대한 유럽인들의 비판적인 시각은 이처럼 일단 교육 시스템에서 드러난다. 서유럽의 대학이나 기타 유사한 교육기관에는 내국인·외국인 할 것 없이 영업적인 등록금이 없다. 교육수혜자 당사가가 아닌 일반 세금으로 충당된다. 일부 국가의 대학에서 수수료 정도가 부과될 뿐이다. 독일도 수수료 정도의 등록금이 잠시 부활했다가 올해부터 니더작센주(州)를 마지막으로 종전처럼 등록금이 사라졌다.물론 대부분 학문에 흥미와 소질이 있는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지만 너 자식 내 자식 할 것 없이 사회를 이끌어 나갈 공동의 미래자산으로 여기기에 세금으로 공부시키는 시스템을 유지한다. 예체능에 소질이 있는 학생을 제대로 키우려면 우리는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며 서민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지만 서유럽 선진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스위스의 경우 예체능에 남다른 소질을 보이면 `게마인데`(동사무소와 유사한 행정단위)에서 공적비용을 지불하며 소질을 개발시킨다.자라나는 세대들은 사회 공동의 자산이라는 개념이 일상화 돼 있는 셈이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사회안전망이라고 부르지만 그들만의 `사회적 울타리`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유럽인들은 한국을 두고 `작은 미국`이라고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전적으로 옳은 판단은 아닐지라도 부인하기도 어렵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생존을 위협하는 생활고 앞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는 상황만 봐도 그렇다. 더구나 어린자식을 동반한 안타까운 자살 사건들이다. 어린자식은 개인소유물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미래 자산이다. 피어나지 못한 꽃이 아니라 봉오리도 채 맺지 못한 대한민국의 어린자식들이다. 있어서는 안 될 극단적인 선택을 한 부모들도 안타깝지만 우리들의 사회적 울타리를 믿지 못하고 행한 동반자살은 우리들을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일반적인 양극화 현상은 어디서나 존재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극단적인 양극화는 결국 천민자본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며 우리들이 쌓아가고 있는 `사회적 울타리`의 현주소를 가늠케 하는 사건이라서 더욱 안타깝다.
2014-03-06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어떤 국가나 지역에 대해 정체성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과거와 현재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압축해야 하며 미래까지 관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서유럽에 대한 정체성을 얘기할 때 서유럽 안에 살고 있는 자신들보다는 밖에서 보는 시각이 훨씬 의미심장한 경우가 많다. 선진 서유럽국들에 대한 정체성을 논할 때 필자는`자생적 소명정신`과 `수평적 공존정신`을 빠뜨리지 않는다. 봉건제도를 거치지 않은 나라는 선진국이 되기 어렵다는 학설과 청교도적인 기독교의 원리가 선진 자본주의의 동인이라는 막스 베버의 주장과도 관련이 있다.봉건사회는 봉토에 의해 주군과 종신의 법적인 계약관계가 형성되는 복잡한 제도다. 왕만 주군이 되는 것이 아니라 봉토를 받은 영주가 그 봉토를 다시 기사들에게 나눠주면서 소위 오늘날 3권에 해당하는 행정, 입법, 사법권을 이양하는 체제다. 무신들에 의한 지방자치제도라 할 수 있다.이 시기에는 신분의 이동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지배 계급인 귀족은 대를 이어 귀족으로, 피지배 계급은 영원히 농노나 평민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운명적이긴 해도 평민의 신분은 세습되면서 자연스럽게 기술이 축적되고 장인정신이 싹트게 되었다. 여기에다 청교도적인 기독교 원리가 추가로 작용해 주어진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소명정신까지 가세하게 된다.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1970년대 초까지 유례없는 서유럽의 경제성장은 축적된 공업 기술의 활용과 직업에 소명의식이 더해져 성장 동력에 무섭게 불을 지핀 결과다.시민혁명이후 봉건시대의 신분이나 계급은 오늘날 자신의 능력에 따른 각자의 사회적 지위나 직업 등으로 바뀌며 `자생적 소명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교적 완벽하게 기회 균등이 보장되는 직업교육과 각종 사회 시스템에 의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한편 당시 봉건 영주의 성곽 내에서는 영주를 포함해 기사와 대장장이, 하녀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계급이 차별화되면서 상호의존적으로 아슬아슬하게 계층 간의 균형을 이뤄왔다. 의식주에서부터 행동이나 말투까지 모든 것이 계층에 따라 달랐다. 계약이나 계급에 따른 약속을 어기면 가차 없는 잔인한 형벌이 따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역사가 흐르며 문명이 진보하듯이 인권이나 시민의식 같은 개념들이 서서히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새로운 의식들은 급기야 성곽을 뛰어넘어 성 밖으로도 광범위하게 퍼져나간다. 억압과 수탈의 봉건제를 타파하고 모두가 동등한 인권과 권리를 가진다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다. 시민혁명과 투쟁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투쟁과 혁명을 거치며 근·현대적으로 형성된 `평등적 공존정신`은 오늘날 사회 안정망으로 인한 사회적 연대의식이 가미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피의 유럽 혁명사는 그렇게 이뤄진 것이다.때마침 최근 경북도에서도 개도 700년 및 신도청시대가 시작되는 원년을 맞아 경북의 정체성을 체계적이고 내실 있게 확산해 나가기로 했다. 대내외적인 공감대 형성을 위해 경북의 정체성을 집대성한 이론집을 발간하고, 전 도민이 실천해 나갈 수 있는 경북정체성 헌장을 제정해 올해 하반기에 선포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체성 강화를 위한 뿌리사업, 길을 여는 사업, 글로벌 사업 등을 발굴해 나가기로 했다는 것이다.고대 화랑정신, 중세의 선비정신, 근대 호국정신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새마을 정신을 경북의 정체성과 혼(魂)으로 압축하고 있다. 의미 있는 일이다.하지만 경북의 정체성 확립과 관련된 사업들이 장기적으로 성공하려면 돌파해야 할 것들도 남아있다. 실존적인 과거를 압축하며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정체성과 혼은 경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진정하게 대외적인 공감대가 형성 되도록 사려 깊은 해석과 함께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 해외 등 바깥에서 바라보고 있는 다양한 시각과 유사한 사례들을 비교분석하는 작업도 빠뜨릴 수 없는 것들이다.
2014-02-27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유럽에서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미묘한 감정관계를 얘기할 때 흔히 우리는 일본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위안부 문제나 교과서 왜곡, 독도문제 등 우리나라와의 식민지 역사를 예상외로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유럽에서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감정에 대해 소개할 때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럴 때는 대충 `독일인과 프랑스인들 사이에 흐르고 있는 감정을 생각하라`고 소개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다. 대화 당사자가 독일인이나 프랑스인일 경우 단번에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서로의 영토를 번갈아 점령하고 탈환한 그들이다.스포츠에서 그들의 일상만 봐도 그렇다. 가령 중요한 축구경기에서 독일과 프랑스가 맞붙게 되는 날이면 그날은 바로 양국의 축제일이 된다. 진정한 적수끼리의 만남과 그에 대한 승리는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인 모양이다.국민들의 정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부도 마찬가지다. 독일과 프랑스는 누가 뭐래도 하나의 유럽을 향해 함께 질주하는 `쌍두마차`로 표현하면 적절한 것 같다. 그러나 유럽내부의 현안에 대해서 단번에 한 목소리로 화답하는 경우는 드물다. 걸핏하면 두 나라 언론들은 `형제이기는 해도 미묘하고 복잡한 형제`라며 자기들의 입장을 피력하며 조율에 들어간다. 이 같은 티격태격은 그들이 주고받은 역사와도 결코 무관치 않다. 거창한 유럽의 역사를 모두 끄집어내는 것은 시간낭비다. 프랑스 알자스로렌지역의 얘기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을 기억해 보자.`여느 때와는 달리 차분하고 엄숙한 교실로 소년 프란츠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지각이다. 정장차림의 선생님은 꾸짖기는커녕 자상하게 맞아주었다. 교실 뒤편에는 마을사람들이 암울한 모습으로 수업을 참관하고 있었다. 알자스로렌을 점령한 독일이 프랑스어 수업을 금지했기 때문에 그날이 마지막 수업이었던 것이다. 나라 잃은 슬픔이 가슴에 와 닿는 프란츠는 평소 프랑스어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데 대해 후회를 거듭하며 그날처럼 열심히 공부한 적이 없었다`이 단편소설은 우리나라 일제 식민시대의 국어말살 정책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그러나 진작 이 소설은 알자스로렌 지역과는 동 떨어진 남프랑스 작가에 의해 쓰인 소설이다. 사실 알자스 지역민들의 지금 정체성은 프랑스인도 독일인도 아닌 그저 알자스인으로 살아가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알자스로렌의 주도(州都) 스트라스부르는 9세기는 신성로마제국, 17세기는 프랑스, 19세기는 독일, 20세기는 프랑스 등 10여 차례 번갈아 가면서 양국이 점령한 국경분쟁지역이다. 알자스인 중에는 일생동안 여러 차례 독일과 프랑스의 국적을 번갈아 바꾼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금 스트라스부르 시내의 식당 간판과 메뉴에는 불어와 함께 독일어가 함께 쓰이고 있다. 힘의 균형이 팽팽하게 이뤄지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우리와 일본과의 역사적 감정도 독일과 프랑스 못지않다. 스포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아직 피겨경기가 남아있지만 빙상종목 부진 등으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가중인 대한민국 대표팀이 3회 연속 톱10 진입 실패는 물론 12년 만에 일본에 추월당할 위기에 처했다고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네티즌들도 일본과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일본만큼은 반드시 눌러야 한다는 격려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스포츠를 보면서도 많은 생각을 해봐야 한다.사실 외국에 나가 일본에 의한 우리의 식민역사를 소개해야 할 때는 머뭇거려 진다. 창피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침략보다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기에 겪어야 했던 역사라고 변명하면서 서둘러 화제를 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진정 평화를 사랑할 자격을 갖추려면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능력과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런 힘이 있었다면 일방적인 식민의 역사가 이 땅에 존재했을까. 그래서 힘의 균형이 팽팽한 독일과 프랑스간의 역사적 감정이 부러워진다.
2014-02-20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러시아에 첫 메달을 안긴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올가 그라프가 노출사고의 위기를 간신히 넘겨 화제가 되고 있다. 그라프는 지난 10일 소치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3천m에서 자신의 시즌 최고 기록을 갱신한 나머지 기쁨에 겨워 트랙을 한 바퀴 돌며 세리머니를 펼쳤다.그런데 그라프가 경기복의 갑갑함을 덜기 위해 지퍼를 내린 순간,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속옷을 착용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스피드스케이팅 유니폼은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몸에 착 달라붙는 첨단소재로 제작되는데 일부 선수들은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속옷을 착용치 않는다고 한다. 맨 가슴이 그대로 노출될 뻔한 그라프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채고 황급히 지퍼를 올리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같은 시기 김연아 선수의 적수로 급부상하고 있는 러시아 피겨스케이팅의 신예 리프니츠카야도 화려한 속옷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러시아 여성의 속옷은 소련이 해체된 1991년 전후로 화려해지기 시작했다. 2000년으로 기억된다. 당시 유서 깊은 문화와 역사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인들의 구소련시절의 속옷 전시회가 3개월간이나 열려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1917년 10월 혁명에서부터 1991년 고르바초프가 공산당서기장직을 사임하고 공산당 중앙위원회를 해체해 버림으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까지 소련연방 공산당시절의 속옷들이다. 러시아 미래의 방향을 잡아가기 위해선 과거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속옷 전시회의 취지였다.상트페테르부르크. 1991년 공산당이 무너지면서 레닌그라드라는 명칭에서 되찾은 이름이다. 1905년 추운 겨울, 짜르(황제)에 대항할 계획을 세우며 노동자들이 언 손을 녹이던 곳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궁전이었고 1917년 2월 혁명의 소식을 듣고 그해 4월 외국에 망명 중이던 레닌이 돌아왔을 때 그를 열렬이 맞은 시민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이었다. 이처럼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혁명의 중심지였다.속옷 전시회는 세 번의 시대 순으로 분류돼 전시됐다. 첫 번째는 1920년에서 40년대의 속옷들이다. 이 시대의 압권은 볼셰비키 레닌그라드 당 서기장 키로프를 상징하는 인형과 피로 얼룩진 속옷의 재현이다. 레닌이 사망한 뒤 권력투쟁과정에서 스탈린에 의해 1934년 희생된 키로프와 스탈린의 피의 숙청은 1938년까지 계속됐다. 당시 소련인들이 입었던 속옷은 개인의 개성 따위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초라할 정도로 투박한 것이 특징이었다. 여성들의 팬티는 무릎까지 올 정도로 길고 옷감도 두터워 추위에 잘 견디도록 돼있다. 속옷조차 혁명과 전쟁의 시대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두 번째는 1946년에서 1964년 사이의 속옷들로 한 마디로 활동적인 것이 특징이었다. 잠 잘 때는 속옷이지만 작업장에서 겉옷을 벗고 작업을 시작하면 바로 작업복이 되기도 했다. 소련은 전승국이었지만 독일군이 후퇴하면서 공장과 시설 등 많은 것들이 초토화됐다. 전쟁의 공포도 서서히 지워지는 시기인데다 경제재건의 기치가 울러 퍼지는 시기였다. 국가의 계획안에 발맞춰 모두가 열심히 일했던 시기로 여성들의 속옷도 서방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제서야 하늘색이나 분홍색 등 개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세 번째는 1964년부터 서방의 문화와 경제력이 유입되면서 소련이 무너지는 1991년까지로 옷감도 고급화되고 서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최고 유행에다 화려하게 치장된 여성들의 속옷이 전시된 것이다.결국 소련의 속옷 역사는 경제력이 바꿔 놓고 말았다. 구소련이 붕괴되기 전 볼품없었던 그들의 속옷은 세월이 흘러 전 세계 패션쇼에 소개될 만큼 소치올림픽 주체국 러시아의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진다.
2014-02-13
▲ 김부환 유럽경제문제연구소장“행운은 누구에게도 찾아온다” 기원전 106년에 태어난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웅변가인 키케로가 한 말이다. 키케로의 말대로 행운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아무에게나 찾아오기 때문에 행운만큼 정의로운 것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것을 단번에 검증할 수 있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카지노다.이미 18세기부터 유럽에서는 카지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당시 카지노는 왕국의 재정충당에 상당히 기여했을 정도로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합법화하고 있으며 주정부나 국가의 재정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독일 주정부의 경우 전체 세입의 3~4%가 복권이나 카지노경영에서 충당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독일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카지노는 미국의 라스베가스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독일의 일부 카지노는 오히려 소박할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 많다. 때때로 대학생들이 시험을 끝내거나 생일을 맞았을 때 넥타이를 정결히 매고 애인과 함께 출입해 보는 곳이 카지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행운을 검증하기 위해 도박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누구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 만큼 맥주 한잔과 함께 눈요기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수들이 강의시간에 확률과 관계되는 이론을 설명할 때 블랙잭의 카드 패나 룰렛을 예로 들면서 자연스럽게 설명하기도 한다.게임을 즐기려는 인간 본연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잔인하다. 인간은 어차피 놀이와 유희를 즐기는 호모루덴스가 아닌가. 게임은 자기책임 하에 냉정하게 즐기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유럽인들도 많다. 우리나라 보다 카지노에 대한 인식이 부드러운 편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카지노는 역시 도박장이기 때문이다.카지노의 진정한 피해자는 가진 자 보다 못 가진 자다. 비숙련 노동자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빠지기 시작하면 가산탕진으로 이어진다. 가난한 노동자가 돈을 잃게 되면 몇 달치 봉급인 거대한 액수의 칩도 돈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어차피 도박은 제로섬(Zoro Sum Game)게임이다. 누가 잃는 만큼 자신이 따는 것이다. 그러나 카지노에서의 게임은 마이너스섬(Minus Sum Game)게임이다. 판돈의 일정액은 항상 카지노측이 챙기기 때문이다.1년간 카지노에 빠졌던 아인슈타인도 룰렛에서 이기는 방법 중의 하나는 바로 칩을 훔치는 것이라는 극단적인 결론을 내렸을 정도다. 프랑스의 문인이었던 사강마저도 칩이 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고백한 적이 있으며 스스로 카지노에 출입금지시켜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카지노를 진정한 휴식공간으로 이용하는 유럽인들도 있다. 풍족한 노년생활을 하는 사람이나 돈은 많으나 쓸 곳이 적어 돈에 대한 한계효용이 아주 작은 사람들이다. 돈을 마다할 사람이 없지만 돈을 가질수록 돈에 대한 욕심이 적어 돈에 대한 한계효용이 적은 사회는 비교적 바람직하고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도박을 즐긴 만큼 사회에 환원하고 잃어도 게임을 즐겼으니 덤덤히 돌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카지노를 즐길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요 진정한 호모루덴스들이다.우리는 강원도 정선 카지노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된다. 자본과 화려한 카지노산업의 뒤에서 피어나는 어두운 그림자가 아닐 수 없다.최근 정부가 발표한 국내 관광 활성화 방안에서 국내 카지노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을 담아 논란이 되고 있다. 카지노도 국제적인 산업인 만큼 관광활성화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계 자본의 속성도 간파해야 한다. 카지노 영업에서 언젠가는 내국인까지도 타깃으로 삼으려는 직간접의 압력과 전략에 대한 대비다. 아직 가야할 길이 먼 우리들에게 더 이상의 카지노 노출은 시기상조가 아닐까 싶어 하는 말이다.
2014-02-06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박근혜 대통령이 수교 이래 처음으로 스위스를 국빈방문한데 이어 22일부터 시작된 스위스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했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세계경제포럼이지만 실상 `다보스포럼(Davos Forum)`으로 더 유명하다. 다보스는 인구 1만여명이 살고 있는 스위스의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겨울철 주말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곳에 몰려들어 스키를 즐기는 휴양도시다. 세계 각국 쟁쟁한 정치인, 정부 인사, 기업인, 학자 등 최고 오피니언리더 2천700여명이 다보스를 찾았다. 박 대통령을 비롯해 국가 정상만 40여명을 넘어섰다.이번 세계경제포럼 44회 연례총회에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고 있는 주제는 `세계의 재편(Reshaping of the World)`이다.독일에서 태어나 스위스 연방공과대학에서 공부했으며 하버드대학교 교수시절 세계경제포럼을 창시한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은 세계경제는 여전히 회복단계라고 하지만 불안한 요소들이 도처에 깔려있다고 진단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양적 완화로 신흥국 시장에서 자금이 이탈할 가능이 있어, 디플레문제 그리고 소득 불균형에 대한 사회적 불안 요인들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질서를 논하는 `세계의 재편!`, 스위스의 조그만 시골마을 다보스에서 울려 퍼지는 정치 경제적 구호는 이처럼 거창하다.하지만 진작 스위스인들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정치엔 `까막눈`이다. 정치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관심이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세계 최고 부국인 스위스에도 당연히 신문이 있다. 경제 분석기사 만큼은 세계적 권위의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새 취리히 신문)도 있고 지역마다 유력지들도 수두룩하다. 지구촌 여느 신문이 그러하듯 주요 정치기사는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유럽에서도 스위스 신문 만큼 정치면이 재미없이 편집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물론 스위스도 진보, 보수성향의 단체 그리고 환경 정당들이 있다. 하지만 진보나 보수라는 단어들이 쉽게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껏해야 어느 당에서 혹은 누가 어떤 사안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는 객관적인 보도와 분석이 대부분이며 내용도 딱딱한 편이다. 이만 저만 재미없는 게 아니다. 재미가 없으니 일반 스위스인들은 어지간해서 좀체 정치면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대통령 이름을 기억하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비교적 대통령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은 바로 1998년에 대통령이 된 루트 드리이푸스 정도다. 그것도 탁월한 정치력으로 알려진 것이 아니라 그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유태인 출신이란 점 때문이었다. 스위스는 연방의회에서 선출된 임기 4년인 7인의 장관이 1년씩 돌아가면서 대통령을 맡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나라처럼 막강한 권력을 가지진 못해도 그래도 대통령이다.그렇다고 스위스인들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한 것을 정치적 불신이나 냉소로 봐서는 곤란하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국민이 정치인들을 크게 믿고 있으니 각자 제 할일이나 하자는 식이다. 정치인도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고 업무를 수행하는 직업인이라서 국민이 자기 업무에 충실하듯 정치인도 맡은 일에 충실하리라고 생각하는 스위스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투명한 사회인데다 이런저런 이권에 얽힐 게 없으니 정치인에게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는다.정치인들은 당연히 본업에 충실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하고 있으니 관심을 끌 이유가 없는 것 또한 당연하다. 웬만한 사안은 국민투표로 직접 해결해 버리니 그럴 만도 하다. 요즘처럼 스위스 정치의 논리적 역설과 국내 정치 현실과 비교하면 영 딴 세상 같은 기분이다.
2014-01-23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프랑카는 40대 중반의 독일여인이다. 대학생 시절 프랑카는 어느 날 우연하게 호수를 찾아 27년 전 옛 애인, 하인리히라는 남자를 만났다. 호수에서, 숲에서, 벤치에서 거침없이 사랑을 나누었던 하인리히도 어느덧 세탁소 주인이 된 채 장년으로 변해있었다. 그들은 5박6일간(1989년 11월6~11일) 오랜 세월에 묻혔던 사랑의 불씨를 되살려 놓는다. 프랑카의 가슴이나 하인리히의 뱃살이 옛날 같지 않았지만 둘은 아름답게 바라보면서 다시금 사랑을 불태운다. 그렇게 침대에 묻혀 사랑에 빠져있던 닷새 사이인 1989년인 11월 9일, 위기적 상황에 몰린 에곤 크렌츠 동독 공산당 서기장은 오후 7시를 기해 베를린 장벽을 전면 개방한다고 선언, 사실상 동서독의 장벽이 무너져 버린 채 동독시민들은 파도처럼 서독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프랑카나 하인리히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 사랑을 하고 있었다.이것은 독일의 작가 엘케 하이덴리히의 소설에 등장하는 한 장면이지만 실제로 많은 서독인들은 베를린 장벽인 무너졌던 그날 저녁, 연인끼리 데이트 하거나 선술집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았다. 필자도 그날 1989년 11월9일 저녁 독일에서 독일친구들과 어울려 선술집에서 생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날 그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마시던 많은 독일인들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튿날 TV에서 쏟아져 나오는 청천벽력 같은 특보를 보고서야 놀라는 사람들도 많았다. 베를린 장벽은 그렇게 무너진 것이다.재미있는 사실은 지금도 많은 독일인들은 통일이 예상치 못하게 어느 날 갑자기 닥쳐왔다고 얘기한다. 우리로서는 아리송하면서도 여간 흥미 있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구서독은 60년대 이후부터 체제우위를 굳히면서 공산체제는 외부압력으로 굴복시킬 수 없다는 인식아래 꾸준하게 동독체제에 접근하면서 체제변화를 유도해 왔다. 이른바 동방정책이다. 그럼에도 갑작스런 통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 않은 통일이 실제로 어느 날 느닷없이 닥쳐왔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무너뜨려야 할 장벽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많이 잠잠해지고 있지만 통독체제에서 아직도 겉돌고 있는 일부 구 동독인들은 강력했던 구동독체제에 어렴풋한 향수마저 느끼고 있다. 이것을 두고 `오스탈기`(동독을 향한 노스텔지어)현상이라 한다. 통독 기념일이 다가오면 곳곳에서 축제가 열리지만 그러나 일부 동독인들은 아직도 축제 대신 `차라리 옛날이 좋았다`고 깜짝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박근혜대통령 신년기자회견에서 등장한`통일대박`이 연신화제가 되고 있다. 박 대통령 당선 후 줄곧 대립각을 세워오던 야당에서조차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통일대박`으로 신년사 대박을 친 셈이다.`통일대박 발언`후 전문기관이나 전문가들의 의견도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통일비용과 그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와 관련된 것들이다. 통일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지하자원의 엄청난 매장량만 보드라도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의견들이다.통독 전부터 서독이 동독의 각종 인프라 구축에 투자 했듯이 한국도 그렇게 해야 만 통일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의견에서부터 통일이 되면 중국과 러시시아를 연결하는 한반도 에너지 망(網)이 완성되어 동북아 경제의 역동성을 크게 키울 것이라는 의견들도 등장하고 있다. 통일대박을 현실적으로 기대하지 않은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남북통일. 언젠가는 현실화될 것이다. 독일 연인들이 사랑에 빠진 사이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듯이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닥쳐올지도 모를 일이다. 잇속을 노리는 주변 열강들의 움직임 역시 빨라질 것이다. 이 점 만큼은 우리는 깨어있어야 한다.
2014-01-16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갑오년 새해가 밝았다. 서 유럽인들의 새해맞이는 우리보다 훨씬 요란하다. 비교적 가족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와는 달리, 그들은 장소를 불문하고 친구 혹은 모르는 사람끼리도 기꺼이 한 몸이 되어 떠들며 그믐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일이 허다하다. 우리는 그런 모습의 근원을 서 유럽인들의 소통능력을 얘기하며 사회적 연대감에서 찾아보기도 한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정확한 분석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따지고 보면 유럽은 실제로 복잡한 곳이기 때문이다.“유럽에 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이미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던졌던 말이다.그러면 지금은 어떨까. 예나 지금이나 유럽의 정체성에 관한 논란은 계속된다. 시인 괴테는 유럽은 함께 모두 노래하지만 똑 같이 노래하지 않는 대륙이라고 노래했다. 90년대에 들어서도`유럽통합에 대한 심리적 관점에서 본 유럽인들의 이데올로기와 실현`이란 책을 저술한 독일학자 카를 슈미트는 다음과 같이 유럽 정체성에 대한 의미 있는 의혹을 제기했다.“유럽인들은 유럽을 대체로 같거나 비슷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 각 나라들은 자신들의 사고(思考)나 생활양식이 바로 유럽식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학자들뿐만 아니다. 지금도 많은 유럽인들은 자기들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지면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이 정도니 우리가 유럽대륙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찍어서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무리다. 아무리 역사적 사실을 꿰어 유추해 봐도 어차피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우리가 말하는 서 유럽은 프랑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국가 중에서도 선진유럽을 일컫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프랑스 정도는 지리적으로 근접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지만, 독일이나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은 중부유럽으로 불러줘야 한다는 유럽인들이 많다. 지리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나 중부유럽이라면 폴란드, 체고, 헝가리, 슬로바키아까지를 포함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은 구소련과 함께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했기에 우리에게는 동구권이요 동유럽으로 분류되는 나라들이다. 우리가 말하는 서유럽이니 동유럽이니 분류하는 방식을 유럽의 신세대들은 언뜻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한편으로는 영국을 놓고 과연 유럽국인가에 대해 시비를 거는 유럽인들도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타 유럽 국가사람들 보다도 영국인 자신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1946년 영국인들이 존경하는 영국수상 처칠은 유럽으로부터 영국의 완전한 분리를 원했던 적이 있었다. 영국을 제외하고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가 되어 유럽합중국을 건설해야 된다고 역설하기도 했던 것이다유럽의 긴 역사를 뒤로하고도 실제 처칠의 말처럼 지금 EU는 독일과 프랑스를 견인차로 하여 통합의 길로 달리고 있다. EU(유럽연합)는 단순한 통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국가형태로 나아가고 있다. 국가 아닌 국가의 형태로 달리는 모습은 아직도 진행형이다.어디까지가 유럽인지 장차 어디까지가 유럽이 될 것인지는 유럽인들도 잘 모른다. 터키는 1963년 지금의 EU가입신청을 해 놓았지만 아직 문턱에서 서성이고 있는 상태다. 작년 크로아티아가 EU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28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으며 앞으로 회원국이 늘어가면서 EU의 영토도 새롭게 그려질 것이다. 국가 아닌 국가 EU의 경제동맥으로 혈액(단일 화폐 유로화)도 어디까지 흐를지는 알 수 없다. 2014년, 올해 리트비아가 유로 존에 합류하면서 28개 EU회국 중 18개국에서 유로화가 통용하게 된다. 유럽의 영토도 경제동맥도 어떻게 그려지고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들은 앞으로 유럽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14-01-09